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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칸트주의 법철학에서 방법이원주의 - 존재와 당위의 관계에 대한 구스타브 라드브루흐의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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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철학연구 제20권 제1호: 335~360
한국법철학회 2017

신칸트주의 법철학에서 ‘방법이원주의’*69)

― 존재와 당위의 관계에 대한

구스타브 라드브루흐의 입장

울프리드 노이만(Ulfrid Neumann)**1)

윤재왕 옮김***1)

Ⅰ. 서론: 신칸트주의 (법)철학에서의 방법이원주의 원칙

신칸트주의 철학은 20세기의 첫 10년 동안 법철학적 사고를 지배했었다.

DOI: 10.22286/kjlp.2017.20.1.011 * 이 글은 오랜 기간에 걸쳐 ARSP(Archiv für Rechts- und Sozialphilosophie)의 책 임편집인이었던 게르하르드 슈프랭어(Gerhard Sprenger; 1933-2012) 추모논문집 「Wert und Wahrheit in der Rechtswissenschaft(Anette Brockmöller, Stephan Kirste, Ulfrid Neumann 편집, 2015)」에 실린 논문 “‘Methodendualismus’ in der Rechtsphilosophie des Neukantianismus. Positionen zum Verhältnis von Sein und Sollen bei Gustav Radbruch”의 한국어 번역이다. 옮긴이 개인적으로 슈프랭어 교수 의 온화하고 겸손한 인격, 신칸트주의에 대한 심오한 지식 그리고 이방인에 대한 섬 세한 배려를 기억하며 이 작은 번역으로 그의 죽음을 뒤늦게 추모하고자 한다. **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교 형법, 형사소송법, 법철학, 법사회학 담당교수. 본지 편 집 자문위원. ***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투고일자 2017년 3월 7일, 심사일자 2017년 4월 6일, 게재확정일자 2017년 4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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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을 학문적 고향으로 삼는 법철학자들 가운데 특히 루돌프 슈타믈러

(Rudolf Stammler), 헤르만 칸토로비츠(Hermann Kantorowicz), 구스타브 라드브

루흐(Gustav Radbruch), 한스 켈젠(Hans Kelsen)2)이 신칸트주의에 속했다. 일

반 철학을 전공했던 학자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물은 신칸트주의의 토대 위

에서 독자적인 법철학을 발전시켰고, 요절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법철학

적 논의에 강한 영향을 미친 에밀 라스크(Emil Lask)를 들 수 있다. 라스크가

라드브루흐 법철학에서 갖는 의미는 결코 간과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

라스크가 1905년에 출간한 「법철학」만이 라드브루흐에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1910년에 출간한 「철학의 논리학과 범주이론」도 ‘법이념의 소재규정

성’에 관한 라드브루흐의 이론적 구상에 지침이 되는 역할을 했다. 이에 관해

서는 나중에 다시 설명하도록 한다.

  1. 신칸트학파 내부에서의 차이점

그러나 신칸트주의적 접근방법을 취하는 법철학의 영역에서 도출되는 결

론들은 결코 동질적이지 않다. 이는 신칸트주의의 ‘기본도그마’인 방법이원주

의, 즉 존재와 당위 사이에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간극이 있다는 테제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이다.3) 물론 신칸트주의 학파 내에서 이 원칙을 근원적

2) 신칸트주의가 켈젠의 ‘순수법학’에 구체적으로 미친 영향이 얼마나 강했는가라는 물음에 관해서는 예컨대 Stanley L. Paulson, Four Phases in Hans Kelsen’s Legal Theory? Reflections on a Periodization, Oxford Journal of Legal Sudies 18(1998), S.153 이하 참고. 이 논란이 많은 문제와 관련된 다른 문헌으로는 Ulfrid Neumann, Wissenschaftstheorie der Rechtswissenschaft bei Hans Kelsen und Gustav Radbruch. Zwei “neukantische” Perspektiven (2005), in: ders., Recht als Struktur und Argumentation. Beiträge zur Theorie des Rechts und zur Wissenschaftstheorie der Rechtswissenschaft, 2008, S.294 각주 1도 참고. 3) 이에 관해서는 Ralf Dreier/Stanley Paulson, Einführung in die Rechtsphilosophie Radbruchs, in: Gustav Radbruch, Rechtsphilosophie (Studienausgabe), hrsg. von Ralf Dreier und Stanley Paulson, 2.Aufl. 2003, S.237 이하, 240. 라드브루흐는 방법이 원주의 원칙과 관련해서는 1914년의 「법철학 기초(Grundzüge der Rechtsphilosophie, GRGA Bd.2, S.9 이하, 38)」에서든 1932년의 「법철학(Rechtsphilosophie, Gustav Radbruch Gesamtausgabe(=GRGA) Bd.2, S.206 이하, 230)」에서든 주로 칸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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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부정하는 경우는 없다. 그렇지만 게르하르드 슈프랭어(Gerhard Sprenger)

는 볼프강 케어스팅(Wolfgang Kersting)을 원용하면서 타당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방법이원주의의 실현과 관련해서는 마르부르크 신칸트주의와 주로 문

화철학에 지향된 ‘남서독 학파’ 신칸트주의 사이에 현저한 차이가 있었다.4)

즉 문화과학적 고찰은 현실과 가치를 날카롭게 가르려는 시도에 대해 커다란

거부감을 느꼈다.

마르부르크 학파와 남서독 학파 사이의 이러한 차이는 신칸트주의 계열의

법철학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켈젠은 호흡을 멈추게 할 정도로 놀라운

결론들과 함께 방법이원주의를 철저하게 추구하고, 이를 통해 법학을 순수한

당위라는 차가운 얼음으로 뒤덮인 정상으로 끌어올리는 반면, 라드브루흐는

그의 저작활동의 일정한 단계에서부터는 존재와 당위, 현실과 가치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고5) 빈번하게 시도한다.6) 물론 라드브루흐가 방법이원주의라

는 기본원칙을 포기한 적은 없다. 그의 마지막 법철학 저작에서도 라드브루

흐는 방법이원주의와 상대주의를 자신의 법철학의 근본사상으로 신봉한다.

즉 「법철학」 개정판을 준비하면서 쓴 후기의 초고에 라드브루흐는 다음과 같

이 적고 있다. “나의 법철학의 방법론은 방법이원주의와 상대주의라는 두 가

지 사상에 기초한다. 이 두 가지 사상은 그 사이 변화를 겪긴 했지만 여전히

슈타믈러를 원용한다. 4) Gerhard Sprenger, Die Wertlehre des Badener Neukantianismus und ihre Ausstrahlungen in die Rechtsphilosophie, in: Robert Alexy u.a.(Hrsg.), Neukantianismus und Rechtsphilosophie, 2002, S.157, 169. 5) 신칸트주의가 라드브루흐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 대해서는 예컨대 Stanley L. Paulson, Ein ‘starker Intellektualismus’. Badener Neukantianismus und Rechtsphilosophie, in: Marcel Senn/Daniel Puskas(Hrsg.), Rechtswissenschaft als Kulturwissenschaft? ARSP-Beiheft 115(2007), S.83 이하; Frank Saliger, Radbruch und Kantorowicz, ARSP 93(2007), S.236 이하, 243 이하; Gerhard Sprenger(각주 3), S.157 이하; Sascha Ziemann, Neukantianisches Strafrechtsdenken. Die Philosophie des südwestdeutschen Neukantianismus und ihre Rezeption in der Strafrechtswissenschaft des frühen 20. Jahrhunderts, 2009, S.66 이하 참고. 6) 법학을 규범과학에 귀속시키는지(켈젠) 아니면 문화과학에 귀속시키는지(라드브 루흐)라는 상이한 관점으로부터 도출되는 결론에 대해서는 Ulfrid Neumann(각주 1), S.294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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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되고 있다.”7) 그 때문에 가치관련적 방법을 수용함으로써 나타나게 되는

방법삼원주의(Methodentrialismus)를 라드브루흐는 방법이원주의에 반대되는

입장이 아니라, 방법이원주의의 한 유형으로 해석한다.8)

  1. 법철학에서 방법이원주의가 갖는 역량과 결함

나는 아래에서 방법이원주의 원칙에 대한 라드브루흐의 입장 변화를 추적

해 보도록 하겠다. 이러한 시도는 연대기적으로, 즉 라드브루흐 법사상이 전

개되는 여러 단계에 비추어 이루어진다. 하지만 라드브루흐 법철학의 전개과

정을 보여주는 개별 저작의 흐름을 포착하는 것은 이 글의 주요 관심사가 아

니다. 이 점은 이미 수많은 문헌들을 통해 충분히 밝혀져 있다.9) 내 생각으로

는 라드브루흐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각 시기마다 상이한 입장을 취하고 있

다는 사정이야말로 법철학에서 엄격한 방법이원주의가 갖고 있는 역량과 한

계를 너무나도 뚜렷하게 보여 주고 있는 것 같다.

방법이원주의가 갖고 있는 역량은 예를 들어 법에 대한 법도그마틱적 고찰

방식과 ‘사회이론적’ 고찰방식을 엄격히 분리하는 데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분리에 따르면 과거의 법질서 또는 다른 법질서를 ‘도그마틱’10)을 통

해 처리하려는 시도를 ― 옐리네크(Jellinek)의 표현을 빌리자면 ― ‘조롱거리

에 가까운 노력’으로 여기게 된다. 이는 매우 시의적절한 측면도 갖고 있다.

왜냐하면 연방법원의 판례는 동서독 국경에서 복무했던 장벽수비대 소송에서

7) GRGA Bd.20, S.25 이하, 38. 8) Gustav Radbruch, Rechtsphilosophie(1932), GRGA Bd. 2, S.230 각주 2. 이에 관해서 는 Marc André Wiegand, Unrichtiges Recht. Gustav Radbruchs rechtsphilosophische Parteienlehre, 2004, S.123 참고. 방법삼원주의를 방법일원주의와 방법이원주의와 구별되는 ‘제3의 길’로 파악하는 칸토로비츠(H. Kantorowicz)의 입장에 관해서는 Saliger(각주 4), S.246 참고.
9) 이에 관해서는 특히 라드브루흐의 법개념의 전개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Ralf Dreier, Gustav Radbruchs Rechtsbegriff, in: Matthias Mahlmann (Hrsg.), Gesellschaft und Gerechtigkeit. Festschrift für Hubert Rottleuthner, 2011, S.17 이하 및 이 논문에 인용된 문헌들을 참고.
10) Georg Jellinek, Allgemeine Staatslehre, 3.Aufl. 1914, S.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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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철학과 형법학으로부터 많은 박수갈채를 받으면서 그러한 노력을 경주했기

때문이다.11) 방법이원주의의 한계는 이 이론의 논리 자체로부터 등장한다.

즉 법사상의 영역에서 존재와 당위의 분리를 엄격하게 유지하고자 하면 법과

법이 관련을 맺는 사회적 상황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모습을 갖고 있는지를

도외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순수법학의 예가 보여 주듯이 얼마든지 이론

적으로 가능한 접근방법이다. 하지만 법을 문화현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주

장하는 경우라면 존재와 당위의 엄격한 분리는 비난의 대상이 된다. 이 점에

서 존재와 당위의 문제에 관해 라드브루흐가 시기에 따라 서로 다른 입장을

취했다는 사실에서 표현되고 있는 긴장은 문화철학적 계열의 신칸트주의에

이미 처음부터 내재해 있었던 긴장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Ⅱ. 라드브루흐 초기저작에 나타난 일관된 방법이원주의

그러나 라드브루흐의 법철학 저작의 초기 단계에서는 이러한 긴장이 아직

은 잠재되어 있었을 뿐이었다. 다시 말해 방법이원주의 원칙을 명시적으로

옹호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기의 저작의 중심은 그가 평생에 걸쳐 부정적

인 입장을 취했던 ‘방법일원주의’에 대한 비판적 반론이었다.

  1. 목적론적 역사해석의 거부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방법일원주의에 대한 라드브루흐의 반론은 일단 필

연적인 역사발전이 갖는 규범적 의미에 대한 물음을 대상으로 한다. 이 물음

11) 이에 관한 자세한 서술은 Horst Dreier, Radbruch und Mauerschützen, JZ 1997, S.421; Steffen Forschner, Die Radbruchsche Formel in den höchstrichterlichen ‘Mauerschützenurteilen’, Diss. Tübingen 2003; Henning Rosennau, Tödliche Schüsse im staatlichen Auftrag. Die strafrechtliche Verantwortung von Grenzsoldaten für den Schusswaffengebrauch an der deutsch-deutschen Grenze, 2.Aufl. 1998; Kurt Seidel, Rechtsphilosophische Aspekte der ‘Mauerschützen’- Prozesse, 1999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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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관련하여 라드브루흐는 슈타믈러12)와 마찬가지로 일원주의를 지향하는

마르크스주의적 역사이해를 비판한다.13) ‘존재와 당위, 필연적 발전과 추구할

가치가 있는 목표를 동일시’하는 유물론적 역사이해에 대항하여 라드브루흐

는 사실성과 규범성의 분리를 고수한다. “미래의 역사적 과정에 관한 자연의

인과적 필연성을 입증한다고 해서 이성의 목적론적 필연성에 대한 입증까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14) 즉 사회주의자는 “실제로 사회주의가 불가피하

게 도래할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현재의 사회적 상태를 불법으로 느끼기 때

문에” 사회주의를 긍정한다고 말한다.15)

  1. 진화론적 일원주의의 거부

라드브루흐는 그의 스승 프란츠 폰 리스트(Franz von Liszt)의 형법의 역사

에 관한 진화론적 견해도 ‘방법일원주의’로 보고 이를 명시적으로 거부한다.

리스트는 진화론적 기초 위에서 자신의 형사정책적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즉

맹목적 응보에 대한 목적사상의 우위는 단순히 목적사상이 응보사상에 비해

더 후기에 속한다는 사실을 통해 정당화되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이러한

논증이 상당히 특이하게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상당히 널리 퍼

져있던 견해였고, 특히 1906년에 설립된 ‘일원주의자 연맹(Monistenbund)’이

표방했고 학술지 ‘일원주의(Monismus)’를 통해 호응을 얻었던 견해였다.16) 이

러한 일원주의적 접근방법의 의미에 따라 리스트는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발

언한다. “앞으로 다가올 것과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은 … 동일한 개념이다. 오

로지 우리가 인식한 발전경향만이 우리에게 마땅히 존재해야 할 것이 무엇인

12) Rezension zu Rudolf Stammler, Wirtschaft und Recht nach der materialistischen Geschichtsauffassung(1924), GRGA Bd.1, S.541. 13) 이 점 및 아래의 내용에 관해서는 Ulfrid Neumann, Einleitung zum Band ‘Strafrechtsgeschichte’, GRGA Bd.11, S.9 이하 참고. 14) Rezension zu Rudolf Stammler(각주 11), S.541. 15) Radbruch, Rechtsphilosophie(각주 7), S.246. 16) 이 학술지는 나중에 ‘일원주의의 세기(Das monistische Jahrhundert; 1912-1915)’ 및 ‘독일 일원주의자 연맹 소식지(Mitteileungen des Deutschen Monistenbundes; 1916-1919)’로 이름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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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를 밝혀 줄 수 있을 뿐이다.”17)

라드브루흐는 특히 1905년의 논문 ‘비교법의 방법에 관하여’18)에서 이러한

견해에 대항한다. 즉 존재해야 할 것을 지금 있는 것 또는 예전에 있었던 것

으로부터 도출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다가올 것으로부터도 도출

할 수 없다고 한다. 이러한 언급은 라드브루흐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논문에 대해 자신이 쓴 짧은 서평에서 이 점을 특별히

강조한다.19) 라드브루흐가 1938년에 출간한 「형법의 우아함(Elegantiae Juris

Criminalis)」에 수록된 논문 ‘프란츠 폰 리스트 ― 소질과 환경’에서 라드브루흐

는 리스트가 이러한 방법론적 기본입장 때문에 거의 모든 쪽에서 반론을 받았

고, 심지어 자신의 학파 내에서도 저항에 부딪혔다고 쓰고 있다.20) 또한 로젠

펠트(Rosenfeld) 기념논문집에 기고한 글에서도 라드브루흐는 리스트의 몇몇

제자들이 일원주의의 입장으로부터 “빈델반트(Windelband)와 리커트(Rickert)

의 남서독 철학 학파로 전향했을 때” 리스트 학파 내부에서 전개됐던 투쟁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21)

라드브루흐는 이와 관련된 자신의 입장을 「법철학(1932)」에 분명하게 표명

하고 있다. 물론 그는 예링(Rudolf von Jhering)에 연결된 리스트의 테제, 즉

법은 반드시 목적을 뚜렷이 의식하면서 투입해야 하는 조종수단으로 발전한

다는 주장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이러한 발전에 대한 어떤 가치평가를 이 주

장에 결부시켜서는 안 된다고 한다. “충동적인 법형성(Rechtsbildung)에서 목

17) Franz von Liszt, Das ‘richtige Recht’ in der Strafgesetzgebung, ZStW 26(1906), S.553 이하, 556.
18) Radbruch, Über die Methode der Rechtsvergleichung(1905/06), GRGA Bd.15, S.152-156. 19) GRGA Bd.1, S.473. 또한 다른 서평[Rezension zu Fritz Berolzheimer, System der Rechts- und Wirtschaftsphilosophie. Zweiter Band(1905), GRGA Bd.1, S.475] 에서도 이 점을 유독 강조한다. 20) Gustav Radbruch, Franz v. Liszt - Anlage und Umgebung(1938), GRGA Bd.16, S.27 이하, 37. 이에 관해서는 헤르만 칸토로비츠에 대한 라드브루흐의 추념사 (Gedenken an Hermann Kantorowicz, GRGA Bd.16, S.75 이하, 84)도 참고. 21) Gustav Radbruch, Strafrechtslehrbücher des 19. Jahrhunderts(1949), GRGA Bd.11, S.407 이하, 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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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에 부합하는 법형성으로의 필연적 발전, 즉 비합리적 법형성에서 목적합리

적인 법형성으로의 발전 필연성은 다양한 가치판단의 대상이 될 수 있다.”22)

왜냐하면 개인의 의도적 행위보다는 ‘문제와 상황의 이성’에 의해 결국은 ‘이

성이 승리’할 것이라고 희망하는 사람만이 이러한 발전을 진보로 여길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때문에 다가올 법을 ‘정당한’ 법과 동일시하는 리스트의

이론은 라드브루흐에게는 ‘마르크스주의적 착각’일 따름이다.23)

라드브루흐는 방법이원주의의 토대 위에서 비교법적 연구가 갖는 규범적

의미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태도를 취한다. 매우 폭넓은 범위에 걸쳐 있었고,

그 당시 완결 직전 상태에 있던 프로젝트 ‘독일형법과 외국형법에 대한 비교

서술’24)과 관련하여 라드브루흐는 특정한 형법규율이 외국의 법질서에 존재

한다는 사실이 국내의 입법자의 프로그램에 대해 어떠한 직접적 의미도 갖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비교법은 입법자의 계획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결코 ‘법철학적으로 올바른’ 규율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고, 단지 법정

책적으로 가능할 수 있는 규율들만을 보여 줄 수 있을 뿐이라고 한다.25) 확고

한 이원주의적 관점을 갖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이러한 결론은 거의 진

부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시대사적 배경을 감안하면 결코 진부하다고 볼 수

없다.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던 일원주의자들 집단과 논쟁해야 했던 당시

에는 널리 확산된 규율이 곧 ‘정당한’ 규율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위험에 대처

해야 했기 때문이다.

  1. 과거의 법질서 또는 다른 법질서에 대한 도그마틱적 처리에 대한

비판

이에 반해 라드브루흐가 옐리네크와 칸토로비츠와 마찬가지로 방법이원주

의 원칙으로부터 다른 법체계를 다루는 법적 방법과 관련하여 도출하고 있는

22) Radbruch, Rechtsphilosophie(각주 7), S.322. 23) Radbruch, Über die Methode der Rechtsvergleichung(각주 17), S.154. 24) Vergeleichende Darstellung des deutschen und ausländischen Strafrechts, hrsg. von Karl Birkmeyer, Fritz Kalker u.a., 16 Bde., 1905-1909. 25) Radbruch, Über die Methode der Rechtsvergleichung(각주 17), S.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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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칸트주의 법철학에서 ‘방법이원주의’ 343

결론은 오늘날에도 매우 현실적인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 다른 법체계란 과

거에 존재했던 법질서뿐만 아니라 현재 존재하고 있는 다른 나라의 법질서를

모두 포함한다. 이와 관련된 라드브루흐의 논의의 배경은 좁은 의미의 법학

(Jursiprudenz)과 법에 대한 사회이론(Sozialtheorie des Rechts)의 구별이다. 즉

법학은 현행법에 대한 도그마틱으로서 법률의 해석을 통해 현행법을 적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과제를 담당하는 반면, 법의 사회이론의 대상은 사실, 즉

사회적 현상이다. 따라서 법학은 당위와 관련을 맺고, 법의 사회이론은 존재

와 관련을 맺는다. 하지만 구속력을 주장하는 현재의 법질서와 관련해서만

당위라고 말할 수 있다. 옐리네크의 명료한 표현에 따르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당위란 있을 수 없다.”26) 그렇기 때문에 법학의 한 부분인 국가론은

거의 전적으로 현재를 다루어야 한다고 한다. 이에 반해 법사학적 연구는 사

실적인 법적 사건에 관한 학문으로서의 사회적 국가론의 과제에 해당한다고

한다.

라드브루흐는 옐리네크의 「일반국가학(Allgemeine Staatslehre)」 제2판에 대

한 1907년의 서평에서 이러한 고찰방식에 대해 명시적으로 동의한다.27) 1905

년에 발표한 논문 ‘비교법의 방법’에 관한 논문에서도 이미 법도그마틱은 과

거의 법에 대해 적용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현재의 다른 법질서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없다는 견해를 주장했다. 왜냐하면 도그마틱적 작업의 목적은 법

을 적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법률은 효력을 상실하

는 즉시 더 이상 법도그마틱의 대상이 아니며, 사회과학의 대상이 된다는 것

이다. 당시의 법학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형법전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해야 할 것인지가 아니라, 오로지 어떻

게 해석했고 적용했는가만이 오늘날 학문적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28) 이

와 마찬가지로 외국의 법률도 단지 문화적 요소로 고찰할 수 있을 뿐이라고

한다.29) 즉 외국법을 다루는 것 역시 과거의 법을 다루는 것과 마찬가지로

규범과학인 법학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과학의 영역에 속한

26) Georg Jellinek(각주 9), S.52(옐리네크는 라드브루흐와 칸토로비츠를 지적한다). 27) GRGA Bd.1, S.484. 28) GRGA Bd.15, S.155. 29) E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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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 법철학연구

다.30)

(1) 현재상황에의 적용

과거의 법질서에 대한 도그마틱적 처리에 대한 이러한 비판은 오늘날에도

상당히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이 비판은 ― 이미 간략히 언급했듯

이 ― 1989년 독일 통일 이후 연방공화국에서 구동독의 시민이었던 많은 사

람들에게 선고한 유죄판결이 기초로 삼고 있는 법이론적 전제를 명백히 부정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독일 연방공화국의 법원들은 라드브루흐가 불가능

하다고 선언했던 바로 그것을 한 셈이다. 왜냐하면 독일 연방공화국의 법원

들은 몰락한 구동독의 법률 자체를 해석하여 이미 사라진 구동독의 법실무가

그들 자신의 법률을 잘못 해석하고 적용했음을 밝힐 수 있다고 주장하기 때

문이다.31) 그러나 이는 옐리네크가 ‘조롱거리에 가까운 노력’32)이라고 표현했

던 바로 그 활동에 해당한다.

실제로 구동독의 법률에 대한 ‘인권 친화적 해석’33)을 통해 이 법률이 구동독

당시의 법체계에 속하던 관할 법원과 다른 제도들의 해석에 따라 갖고 있었던

내용과는 다른 내용을 주입하려는 시도는 실패하지 않을 수 없다. 구동독의 법

질서에 대해 자연법적 해석을 통해 구동독의 입법자와 사법부 그리고 법학이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규율을 집어넣으려는 시도 역시 당연히 실패한다. 따라

서 라드브루흐와 옐리네크의 법이론적 입장은 ‘장벽수비대(Mauerschützen)’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소급입법[이는 유럽인권협약(제7조 제2항)을 위반하지 않고서

도 헌법개정을 통해 얼마든지 가능했었다]을 필요로 한다는 견해를 표방하는 모

든 학자들의 입장을 지지하는 근거가 된다.

30) Gustav Radbruch, Rechtswissenschaft als Rechtsschöpfung(1906), GRGA Bd.1, S.409 이하, 420. 31) 이에 대한 비판으로는 ― 라드브루흐와 옐리네크를 원용하지는 않지만 ― Ulfrid Neumann, Rechtspositivismus, Rechtsrealismus und Rechtsmoralismus in der Diskussion um die strafrechtliche Bewältigung politischer Systemwechsel(2002), in: ders., Recht als Stuktur und Argumentation. Beiträge zur Theorie des Rechts und zur Wissenschaftstheorie der Rechtswissenschaft, 2008, S.163 이하 참고. 32) 앞의 각주 9. 33) BGHSt 39, I, 23; BGHSt 41, 101,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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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칸트주의 법철학에서 ‘방법이원주의’ 345

(2) 라드브루흐와 칸토로비츠 사이의 차이점

헤르만 칸토로비츠가 이러한 입장에 대해 부분적으로만 동의한 것으로 보

인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34) 물론 칸토로비츠도 기본적으로는 라드브

루흐와 옐리네크의 입장에 동의한다. ‘자유법론’의 강령과도 같은 저작에서

칸토로비츠는 라드브루흐와 옐리네크를 명시적으로 인용하면서 “더 이상 효

력을 갖지 않는 법을 법적 기술을 동원하여 처리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

다”는 점을 강조한다.35) 1911년의 강연인 ‘법학과 사회학’에서는 이러한 견해

를 더 자세하게 전개한다. 이 강연에서 칸토로비츠는 과거의 법체계에 속하

는 규범을 ‘도그마틱적으로’, 다시 말해 ‘체계적이고 구성적으로’ 처리하는 것

은 법사학적 방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한다. 칸토로비츠가 이를 위해 제시

한 근거는 라드브루흐가 제시한 구별과 완전히 일치한다. 즉 법규범에 대한

도그마틱적 작업은 전적으로 실천적 법적용을 위한 것이고, 과거의 법에 대

해서는 그러한 법적용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 논리적 결론이라고 한다. 따라

서 논리적 모순은 설명의 대상이지, 결코 논증에서 은근슬쩍 감출 수는 없다

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칸토로비츠는 어떤 법명제로부터 과거에 살던 사람

들이 도출하지도 않았고 또한 도출할 수도 없었던 결론을 도출해서는 안 된

다고 말한다.36) 이 점에서 칸트로비츠의 입장은 오늘날의 연방법원 판례와

다수의 법철학 문헌에 대한 비판으로 읽힌다.

그렇지만 칸토로비츠는 과거의 법질서에 속하는 규범에 대한 도그마틱적

처리를 절대적으로 배제하지는 않는다. 즉 역사적 연구가 관심을 갖는 개별

적인 사례들에 따라 규범을 ‘도그마틱적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한다. 다만 이

경우에도 “극히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야 하고 법적 기술을 적용해서는 안 된

다”는 단서를 추가한다.37) 그러한 개별적 사례의 보기로 칸토로비츠는 방앗

간 주인 아놀드(Arnold)의 소송과 관련하여 과연 프리드리히 대제가 실제로

34) 방법이원주의 원칙에 대해 라드브루흐와 칸토로비츠가 다른 입장을 취했다는 점 에 관해서는 Frank Saliger(각주 4), S.245 이하 참고. 35) Gnaeus Flavius(Hermann Kantorowicz), Der Kampf um die Rechtswissenschaft (각주 4), S.245 이하. 36) Hermann Kantorowicz, Rechtswissenschaft und Soziologie, 1911, S.33. 37) E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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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 법철학연구

그 당시의 법에 따라 그와 같이 결정을 내렸어야만 했는가라는 물음을 제기

한다. 이 물음에 대해 칸토로비츠는 그와 같은 일회적인 사건에서는 법사학

이 가치관련적이 아니라, 가치평가적으로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고 대답한다.

이는 곧 법사학자는 그와 같은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과거의 법질서 당시의

관점을 벗어나 특정한 역사적 행위의 위법성 또는 합법성에 대해 판단해야

한다는 뜻이다.

과연 방법이원주의에 대한 이와 같은 제한이 타당성이 있는지는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왜냐하면 방법론적 유보가 갖는 의미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극히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법적 기술을 적용하

지 않으면서’ 규범을 ‘도그마틱적으로 처리’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

가? 어쨌든 역사적 인물의 행동을 그 당시의 관련 규정이 어떻게 해석되고

적용되었는가라는 물음에 비추어 판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는 하나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물음이고, 따라서 가치관련적 태도에서 가치평가적 태도

로 변경하는 위험을 부담할 필요가 없다.

적어도 이 점에 관한 한, 라드브루흐는 칸토로비츠에 비해 훨씬 더 일관성

이 있다고 보인다. 즉 방법이원주의 원칙과 이 원칙을 기초로 도그마틱적 법

학과 법의 사회이론이 각각 관할하는 영역 사이에 명확한 경계를 설정하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이 맥락에서 라드브루흐는 ‘자유법학’이 표

방하는 법발견 방법을 ‘사회학적 방법’으로 부르는 것에 반대한다. 왜냐하면

사회학은 사실을 다루는 학문이고, 사실로부터 가치판단은 도출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38)

다른 측면에서도 라드브루흐의 초기 사상은 엄격한 방법이원주의를 신봉

한다. 즉 훗날 그 스스로 현대 법철학이 분석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지칭했던39) ‘사물의 본성(Natur der Sache)’이라는 사유형식을 명시적으로 거부

한다. 그리고 “칸트의 이론에 따르면 존재로부터 당위를 결코 끄집어낼 수 없

기” 때문이라고 짧게 근거를 제시한다.40) 하지만 이러한 엄격한 방법이원주

38) Gustav Radbruch, Brief an Ernst Fuchs v. 8. Oktober 1910, GRGA Bd.17, S. 134 이하. 39) Gustav Radbruch, Brief an Thomas Würtenberger v. 14. November 1949, GRGA Bd.18, S.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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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칸트주의 법철학에서 ‘방법이원주의’ 347

의를 유지했다고 해서 라드브루흐가 법학의 학문이론적 방법을 통해 존재와

당위를 뒤섞고, 따라서 방법이원주의의 원칙을 위반했다는 비판으로부터 벗

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 법학의 학문이론에서 존재와 당위

(1) 규범과학으로서의 법학과 문화과학으로서의 법학

켈젠은 1916년에 발표한 논문 ‘규범과학 또는 문화과학으로서의 법학’에서

라드브루흐에 대해 바로 이러한 비판을 제기한다.41) 켈젠의 공격지점은 라드

브루흐가 「법철학 기초」에서 법학의 대상과 방법의 구별에 관해 제시했던 설

명이다. 라드브루흐에 따르면 법학 ― 여기서는 좁은 의미의 도그마틱 분과

로서의 법학으로 이해된다 ― 은 (경험적) 문화과학의 대상이지만, 규범과학

의 방법을 사용한다고 한다.42) 따라서 대상의 측면에서 법학은 법에 관한 사

실적 고찰에 국한되고, 이 점에서 법사회학 및 법사학과 비교법학까지 포함

하는 법의 사회이론과 구별되지 않는다고 한다(S.185). 그러나 법의 사회이론

과는 달리 도그마틱 분과로서의 법학은 ― ‘경험적’ 대상으로서의 ― 법을 ‘규

범적 방향에서 처리’해야 한다고 한다(S.206). 이 맥락에서 라드브루흐는 법적

해석의 창조적 성격을 강조한다. 법적 해석은 각 개별사례에 대해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과제에 당면하지만, 법률이 모든 개별사례에 대해 결정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법적 해석은 법률의 경험적 의미를 뛰어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S.202). 그렇기 때문에 법적 해석은 문헌학적 해석과는 달리 법질서의 완

결성과 무모순성이라는 도그마를 신봉한다는 것이다(S.193).

40) Radbruch, Rechtswissenschaft als Rechtsschöpfung(각주 29), S.409 이하, 418. 41) Hans Kelsen, Rechtswissenschaft als Norm- oder Kulturwissenschaft, in: Schmollers Jahrbuch für Gesetzgebung, Verwaltung und Volkswirtschaft im Deutschen Reich 40(1916), S.1181-1239(= Heft 3, 95-151)[Hans Kelsen Werke(hrsg. von Matthias Jestaedt), Bd.3, 2010, S.551 이하에 재수록(인용은 이 전집에 나온 초판본 페이지에 따름)]. 42) Gustav Radbruch, Grundzüge der Rechtsphilosophie(1914)[GRGA Bd.2, S.9 이 하], S.186(페이지 번호는 전집에 나와 있는 원본의 페이지에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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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8 법철학연구

그 때문에 라드브루흐에 대한 켈젠의 핵심적 반론은 경험적 대상영역과 규

범적 방법을 통합하는 학문모델은 방법이 대상을 구성하는 기능을 갖는다는

방법이원주의 원칙과 합치할 수 없다는 것이다.43) 다시 말해 이 원칙에 따를

경우 규범적 분과는 필연적으로 당위를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이러한 반론

을 통해 켈젠은 신칸트주의 학문이론의 핵심원칙을 그 어느 누구보다도 신칸

트주의가 법철학의 영역에서 풍성한 결과를 낳을 수 있도록 만들고자 했던

라드브루흐의 법철학적 이론 자체에 대항하는 무기로 삼고 있다.

(2) 라드브루흐 법철학에 나타난 법개념의 이원주의

여기서는 이 방법이원주의 원칙이 신칸트주의 학문이론에서 실제로 어느

범위에서 타당성을 갖는지, 다시 말해 켈젠과 라드브루흐 가운데 누가 ‘더 훌

륭한 신칸트주의자’인지를 다루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맥락에서 켈젠의 비

판은 무엇보다 이 비판이 일찍부터 라드브루흐의 이론적 구상이 갖고 있는

이중성과 불확실성에 주목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흥미를 끈다. 즉 이러한 이

중성과 불확실성으로 인해 라드브루흐의 법철학은 법개념의 이원주의로 흐르

는 경향을 보이고, 또한 라드브루흐 법철학에서 법의 개념과 효력을 분리할

수 있는가44)를 둘러싸고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논쟁 역시 이러한 이중성과

불확실성에 기인한다. 왜냐하면 실제로 법에 대한 규범적 작업은 법을 구속

력을 주장하는 질서, 즉 당위로 파악할 때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

드브루흐 법철학에서 법의 개념은 가치평가를 통해 구속력을 갖는 당위질서

로 정의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가치평가(Wertung)를 거치는 것이 아니라, 가

치관련(Wertbezug)을 거쳐 법의 개념을 정의한다. 「법철학」 초판에 나와 있듯

이 라드브루흐에게 법은 “정의판단뿐만 아니라, 부정의판단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모든 것”이다.45) 이와 같이 법의 개념이 문화적, 더 정확히는 문화과

학적 기준을 통해 정의된다.

그러나 법을 규범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는 규범적으로 정의된 법개념이

43) 이에 대해 자세히는 Ulfrid Neumann(각주 1), S.309 이하 참고. 44) 분리할 수 없다고 보는 입장으로는 Ralf Dreier, Gustav Radbruchs Rechtsbegriff (각주 8), S.20의 각주 12(푼케 Funke에 대한 반론) 참고.
45) Radbruch, Grundzüge der Rechtsphilosophie(각주 41), S.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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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칸트주의 법철학에서 ‘방법이원주의’ 349

전제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는 켈젠이 명백히 옳다. 용어상의 정확성을 기하

자면 그와 같은 규범적 법개념은 라드브루흐의 문화적 법개념과는 일치하지

않는, 법기술적 또는 효력이론적 법개념이라고 부를 수 있다. 1914년의 「법

철학 기초」에서는 라드브루흐 법개념이 갖는 이러한 이중성이 아직은 잠재적

인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왜냐하면 부정의한 법의 구속력에 대한 물음이 아

직은 법의 개념과 관련하여 논의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46) 존재의 영역으로

부터 당위의 영역으로의 전환, 즉 문화현상으로서의 법으로부터 법학의 규범

적 작업의 대상으로서의 법질서로의 전환은 사실적 의사표시로서의 명령으로

부터 이 명령의 의미로서의 규범으로 이끌어 주는 다리를 통해서만 확보되어

야 한다.47)

그러나 이 다리는 안정적인 토대가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명령이라는 단

순한 사실로부터 법학의 방법을 구성하는 당위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이다.48) 즉 명령의 주관적 의미가 규범이라는 사실은 규범적으로 작업하

는 법학의 유일한 토대가 될 수 있는 객관적 당위를 결코 정당화하지 못한다.

하지만 다리의 구성 자체에 하자가 있다는 점은 객관적 당위의 원천으로 승

인되어서는 안 될 명령에 시야를 고정시켜 보면 비로소 명확하게 드러난다.

‘라드브루흐 공식(Radbruchsche Formel)’에서 정점에 도달하게 되는 이러한 시

각의 변화는 1920년대의 저작에서 서서히 시작된다.

46) ‘치욕적인 법률(Schandgesetz)’의 구속력에 관한 문제는 「법철학 기초」(S.157 이 하)에서든 「법철학」(GRGA Bd.2, S.168 이하)에서든 모두 법의 효력에 관한 장에 서 논의된다.
47) Radbruch, Grundzüge der Rechtsphilosophie(각주 41), S.61 이하, 161. 48) Hans Kelsen, Rechtswissenschaft als Norm- oder Kulturwissenschaft(각주 40), S.1235 이하. 이에 대해 자세히는 Ulfrid Neumann, Wissenschaftstheorie der Rechtswissenschaft bei Hans Kelsen und Gustav Radbruch. Zwei “neukantische” Perspektiven(각주 1), S.306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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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 법철학연구

Ⅲ. 완화된 방법이원주의

  1. 이념의 소재규정성

1923년에 발간된 논문 ‘법이념과 법소재’49)에서 이미 완화된 방법이원주의

로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전환은 존재와 당위 사이의 엄격한 대립을

해소하려고 시도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50) 소재를 통한 그리고 소재에 대

한 이념의 규정성으로 이해되는 ‘이념의 소재규정성’ 원칙은 라드브루흐에 따

르면 선험적 논리학에 그 체계적 위치를 갖고 있지만, 법질서 및 법질서와

당시의 사회적 상태 사이의 관계에도 적용되어 하나의 경험적-인과적 원칙으

로도 전개된다.51) 그리하여 법형식이 ‘법소재’로서의 사회적 및 경제적 상황

에 부합하는 정도는 서로 다르다고 한다. 예를 들어 당시의 사법(私法)은 사실

상으로 존재하는 경제적 불평등을 등한시하고, 이에 반해 사회복지정책과 경

제민주주의는 “법형식이 법소재에 다시 접근하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52)

여기서는 특히 법이념과 법소재 사이의 거리가 멀거나 또는 가깝다는 진단

이 가치평가와 결부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53) 하지만 이를

말 그대로의 의미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만일 라드브루흐가 ‘사물의 본성’과

동일시하고 있는 ‘이념의 소재규정성’이라는 사유형식이 규범적으로 전혀 중

요하지 않다면, 이 사유형식이 도대체 왜 엄격한 방법이원주의 도그마를 ‘완

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지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라드브루흐가 1930

년에 발표한 논문 ‘개인주의적 법으로부터 사회적 법으로’에는 당시의 자본주

49) Radbruch, Rechtsidee und Rechtssoff(1923), GRGA Bd.2, S.453. 50) 이에 관해서는 Rezension zu Leonard Nelson, System der philosophischen Rechtslehre und Politk(1925), GRGA Bd.1, S.537, 540에서 ‘이념의 소재규정성’을 통해 ‘엄격한 방법이원주의 도그마’를 ‘완화’할 수 있다는 지적을 참고. 51) Radbruch, Rechtsidee und Rechtssoff(1923), GRGA Bd.2, S.453, 455. 52) Ebd., S.456. 53) Ebd., S.456 각주 2. 또한 Radbruch, Die Natur der Sache als juristische Denkform(1948), GRGA Bd.3, S.229 이하, 221에서도 같은 의미로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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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칸트주의 법철학에서 ‘방법이원주의’ 351

의와 관련하여 법현실과 법형식 사이의 모순에 대한 확인은 명백히 부정적인

뉘앙스를 담고 있었다. 그리하여 법현실에 부합해야 하는 사회적 법은 ‘너무

나도 확실한 역사적 필연성의 자기실현’으로 묘사된다. 즉 사회적 법의 목표

는 “사용자와 노동자를 더 이상 주인과 노예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노동시민으로 여기는 더욱 정의로운 사회구조”라고 한다.54) 여기서 법형식이

법소재에 아주 가까이 근접하는 것에 대한 도덕적 가치평가가 이루어지고 있

음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1. 법학적 개념구성과 법학 이전의 개념구성

학문이론적으로 보면 법소재와 법이념의 관계는 법학적 개념구성과 법학

이전의(즉 ‘사회적’) 개념구성의 관계에 반영된다. 이와 관련하여 라드브루흐는

‘의미의 분화(Bedeutungsdifferenzierung)’에 관한 라스크의 이론55)을 명시적으

로 원용한다. 즉 법의 소재는 아무런 구조도 갖고 있지 않은 존재사실이 아니

라, ‘사회적 개념을 통해 이미 형태를 갖추고 있는’ 존재사실이라는 것이다.56)

사회과학적 개념 이외에 사회과학의 영역에 해당하는 ‘학문 이전의’ 개념도

이러한 사회적 개념에 속한다. 그리하여 법을 적용할 때에는 “사회적 개념을

통해 미리 형태를 갖추고 있는 존재사실이 이 개념에 따라 구성된 법적 구성

요건개념에 포섭된다”고 한다.57)

이와 같이 ‘학문 이전의’ 개념들을 끌어들임으로써 신칸트주의의 학문이론

54) Radbruch, Vom individualistischen zum sozialen Recht(1930), GRGA Bd.2, S.485 이하, 495. 55) Emil Lask, Die Logik der Philosophie und die Kategorienlehre, 1911, 1. Teil 4. Abschnitt. 라드브루흐에 의한 의미분화 이론의 수용에 관해서는 Friederike Walper, Werte und das Recht, 2008, S.199 이하 참고. 56) Radbruch, Rechtsidee und Rechtssoff(각주 50), S.458, 459. 마이호퍼가 적절히 지적하고 있듯이 이런 이유에서 라드브루흐가 법소재를 조각가의 소재와 비교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없다[Werner Maihofer, Die Natur der Sache (1958), in: Arthur Kaufmann(Hrsg.), Die ontologische Begründung des Rechts, 1965, S.52 이하, 59]. 57) Radbruch, Die Problematik der Rechtsidee(1924), GRGA Bd.2. S.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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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 법철학연구

적 접근방법의 근원적 특성에 해당하는, 가치평가와 가치평가의 대상 사이의

엄격한 분리는 포기된다. 왜냐하면 학문 이전의 개념들은 사회현실의 구조를

지칭하지, 결코 학문이 아무런 형태도 없는 사회적 대상을 구조화한다는 의

미로 사용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가치관련적 학문은 약속이

라는 제도를 정의 또는 법적 안정성이라는 가치에 비추어 가늠할 수 있지만,

이 제도가 포함하고 있는 규범적 의미는 학문적 재구성에 앞서 이미 존재하

고 있다.

  1. 법개념과 법효력

앞에서 진단한 라드브루흐 법개념의 이중성과 불명확성은 ‘가치관련적’ 법

고찰 방법의 핵심인 법의 정의 관련성을 실정법규범의 법적 성질과 관련된

선별기준으로 끌어들이는 순간 곧바로 명백한 문제로 드러난다.58) 법의 정의

관련성이 이러한 선별기준으로 도입된 것은 1924년의 논문 ‘법이념의 문제점’

에서이다. 이 논문에서 라드브루흐는 ‘이제는 마감한 시대’의 공리주의적 법

철학과 실증주의적 법철학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법철학 역시 정의사상을 등

한시했다는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한다.59)

이로써 결코 “최소한일지라도 정의에 봉사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60)고

인정할 수 없는 하나의 구체적 법규범을 과연 효력을 갖는 법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제기된다. 이 물음에 대한 라드브루흐의 대답은 매우 놀

랍다. 즉 그러한 법규범은 효력을 갖지만, 법이 아니라고 한다. 이 대답을 통

해 라드브루흐는 효력을 갖는 비법(Nicht-Recht)이라는 얼핏 보아도 역설적인

모델을 승인한다.61) 라드브루흐의 말을 그대로 옮겨 보자. “예컨대 특정한 성

58) “법은 실제로 정의로운 법인지에 관계없이 마땅히 정의로워야 하는 것이다 (Grundzüge der Rechtsphilosophie, GRGA Bd.2, S.54)”; “법은 부정의할 수 있다 (극단적인 법은 극단적인 불법이다). 그러나 법은 오로지 그것이 정의롭다는 의미 를 갖기 때문에 법이다(Rechtsphilosophie, GRGA Bd.2, S.227).” 59) Radbruch, Die Problematik der Rechtsidee, GRGA Bd.2, S.460 이하, 460. 60) Ebd., S.462. 61) 이에 관해서는 Ulfrid Neumann, Ralf Dreiers Radbruch(2005), in: ders., Rec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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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칸트주의 법철학에서 ‘방법이원주의’ 353

질을 갖는 개인 또는 개인집단에게만 불이익을 부과하는 예외명령처럼 같은

것을 같게 그리고 다른 것을 다르게 취급하려는 의지가 내재하지 않는 명령

일지라도 실정적으로 효력을 가질 수 있고, 합목적적일 수 있으며, 따라서 절

대적으로 타당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명령에 대해 법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을 거부해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최소한일지라도 정의에 봉사하는 것을 목

적으로 삼는 것만이 법이기 때문이다.”62)

구속력을 갖는 ‘비법’이라는 이론구성은 1929년에 라드브루흐가 뤼멜린

(Rümelin)의 총장연설 ‘법률 앞의 평등’에 대해 쓴 서평에서도 명시적으로 나

타나 있다. 이 서평에서 라드브루흐는 더 이상 법이념에 지향되어 있지 않은

법률에 대해서는 복종을 거부할 수 있다는 뤼멜린의 견해를 반박한다. 즉 뤼

멜린은 “오로지 ‘법’이라는 개념에 부합하는 것만이 국가의 과제일 뿐, 반드시

‘불법’일 필요는 없는 ‘비법’에 부합하는 것은 국가의 과제가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63)

바로 이 지점에서 법개념의 이원주의가 드러난다. 즉 한편으로는 “최소한

이나마 정의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는 것을 통해 개념이 정의되

는 문화적 법개념이, 다른 한편으로는 법률의 구속력을 법의 개념정의를 위

한 기준과 완전히 분리하는 효력이론적, 국가이론적 법개념이 등장한다. 여기

서 라드브루흐는 이러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법률에 대해서는 ‘법’이라는

개념의 사용을 피한다. 그러한 법률은 효력을 갖는 ‘비법’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이 안고 있는 역설은 실질적으로는 두 가지 서로 다른 법개념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라드브루흐는 1945년 이후에야

비로소 ‘부정 테제(Verleugnungsthese)’를 통해 국가이론적, 효력이론적 법개념

을 국가가 제정한 법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에

als Struktur und Argumentation.Beiträge zur Theorie des Rechts und zur Wissenschaftstheorie der Rechtswissenschaft, 2008, S.203 이하, 214 참고.
62) Radbruch, Die Problematik der Rechtsidee, GRGA Bd.2, S.462. 랄프 드라이어 (Ralf Dreier, 각주 8)는 이 문장에서 “‘부정 테제’를 이미 밝히고 있다”는 타당한 지적을 하고 있다. 또한 결정적 차이점(이 1924년의 텍스트에 따르면 명령이 ‘실정 적 효력’을 가질 수 있고, ‘절대적으로 타당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지적한다(S. 38). 이에 관해서는 Stanley L. Paulson(각주 4), S.83 이하, 90도 참고.
63) Radbruch, Die Gleichheit vor dem Gesetz(1928), GRGA Bd.1, S.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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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4 법철학연구

구속시킴으로써 두 가지 법개념을 다시 결합한다.64)

Ⅳ. ‘사물의 본성’에 기초한 사고

  1. 방법이원주의의 완화로서의 ‘사물의 본성’

‘법이념과 법소재’에 관한 논문에 뒤이은 저작들에서 라드브루흐는 자주 이

념의 소재규정성이라는 사고로 돌아가, 이제는 법의 소재규정성을 법의 ‘이

념’이 법의 ‘실재’에 의존한다(이는 오이겐 후버 Eugen Huber의 주장이다)는 의미

로 이해하게 된다.65) 이렇게 해서 ‘사물의 본성’이라는 개념은 방법론적 맥락

에 국한된 원래의 의미(법발견에서 일어나는 ‘직관의 행운’)66)로부터 완전히 벗어

나 점차 방법이원주의의 ‘완화’에 기여하고, 이를 통해 법의 구조이론에서도

의미를 갖게 된다. 그리하여 라드브루흐는 벨첼(Hans Welzel)의 「형법에서의

자연주의와 가치철학」에 대한 1936년의 서평에서 ‘가치의 존재적 연원’에 관

한 벨첼의 형이상학적 사고를 명백히 비판하긴 하지만, ‘가치를 현실에 더 가

깝게 구체화해야 한다는’ 요청을 신봉하는 발언을 한다. 이 맥락에서 라드브

루흐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모든 가치에는 현실의 특정한 부분을 향한

‘효력’이 이미 내재해 있다. 가치는 현실에 대해 효력을 가진다. 다시 말해 가

치는 현실에 지향되어 있고, 현실에 의해 함께 규정된다.”67)

“가치가 가치의 기반(Substrat)인 대상을 통해 함께 규정되어 있다”는 이러

한 이론은 곧 사물의 본성이라는 개념에 부합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개념에

대한 철학적 구성을 위해 다시 라스크의 ‘의미분화’68)이론을 끌어들인다. ‘법

64) Gustav Radbruch, Gesetzliches Unrecht und übergesetzliches Recht, GRGA Bd.3, S.83 이하, 89. 65) Radbruch, Rechtsphilosophie(각주 7), S.382. 66) Radbruch, Rechtsphilosophie(각주 7), S.232. 67) Radbruch, Rezension zu Hans Welzel, Naturalismus und Wertphilosophie im Strafrecht, GRGA Bd.3, S.29 이하, 31. 68) Emil Lask, Die Logik der Philosophie und die Kategorienlehre(각주 54), Er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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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칸트주의 법철학에서 ‘방법이원주의’ 355

사상에서 집합개념과 등급개념’이라는 논문에서는 사물의 본성에 기초한 사

고가 ‘개별사례를 유형화하고 유형으로부터 개별사례를 판단하는 사고방식’으

로서의 사물의 본성을 칼 슈미트(Carl Schmitt)의 구체적 질서사상(konkretes

Ordnungsdenken)과 동일시한다.69) 그러나 이러한 서술이 단순히 시대정신에

대한 굴복이 아니라는 점은 라드브루흐가 1948년에 라운(Laun)의 기념논문집

에 기고한 논문에서도 슈미트의 ‘구체적 질서사상’을 ‘사물의 본성’에 따른 사

고로 규정하고 있다는 사정을 통해 입증된다.70)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드브루흐는 사물의 본성이라는 사유형식을 인정할지

라도 방법이원주의의 원칙이 결코 부정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사물의 본성’에 관한 초기(즉 1937년에서 1939년 사이에 쓰인)71) 텍스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물의 본성은 법세계의 이념적 내용을 밝힘으로써 법

세계의 존재를 뛰어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물의 본성은 존재와 당

위의 거대한 이원주의적 대립에서 여전히 존재의 쪽에 서있으며, 이 존재의

가치에 대해서는 당위, 즉 이념이 결정한다.”72) 라드브루흐는 「법철학 서설」

에서도 같은 의미로 말한다. 즉 “‘존재사실의 의미로서 존재의 쪽에서 움직이

는’ 사물의 본성에 대해서도 법의 이념이 ‘최종적인 결정권을 갖고 있다”고 한

다.73)

Teil 4. Abschnitt. 69) Gustav Radbruch, Klassenbegriff und Ordnungsbegriff im Rechtsdenken, GRGA Bd.3, S.29 이하, 31.
70) Radbruch, Die Natur der Sache als juristische Denkform(각주 52), S.229 이하, 230. 71) 이에 관해서는 Editionsbericht von Kastner, GRGA Bd.20, S.64 참고. 72) Gustav Radbruch, Die Natur der Sache als juristische Denkform(1937/39), GRGA Bd.20, S.10 이하, 21(각주 52에서 인용한 논문의 초고). 73) Gustav Radbruch, Vorschule der Rechtsphilosophie(1947/49), GRGA Bd.3, S. 121 이하,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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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6 법철학연구

  1. 대답되지 않은 물음들

(1) 존재/당위의 관계에서 ‘사물의 본성’의 위치

‘사물의 본성’이라는 사유형식을 방법이원주의의 구성에 이런 식으로 편입

시키더라도 이 이론구성의 구조에 손상이 가지는 않는 것일까? 어떠한 경우

든 일단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사물의 본성을 ‘존재’에 귀속시

키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 문제가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첫째, ‘사유형

식’으로서의 사물의 본성의 체계적 위치는 라드브루흐가 ― 라스크의 이론을

받아들여 ― ‘이념의 소재규정성’과 관련하여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있듯이 선

험논리학이다.74) 이처럼 사물의 본성의 체계적 위치를 선험논리학으로 포착

하는 것은 사물의 본성을 존재의 영역에 귀속시키는 것과 아무런 문제없이

합치할 수는 없다. 둘째, ‘사물의 본성’이 존재와 당위 사이의 엄격한 이원주

의를 완화하거나 약화시키는 데 기여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기능이 어떻

게 존재의 측면에 위치해야 하는 요소들에 의해 수행될 수 있는지는 분명하

게 밝혀져 있지 않다.

(2) ‘사물의 본성’ 모델에서 이루어지는 ‘당위’로의 전환

사물의 본성이라는 사유형식을 이해하기 위해 결정적 의미를 갖는 물음은

“어느 지점에서 사물의 본성이 규범적 요소, 즉 ‘당위’라는 요소가 작용하도록

만드는가?”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라드브루흐가 ‘사물의 본성’이라는 구상을

가장 섬세하게 밝히고 있는, 1948년의 루돌프 라운(Rudolf Laun) 기념논문집

에 기고한 논문에서 펼친 논증을 재구성해 보기로 하자.75)

1) ‘사물’

이 논문에서 라드브루흐는 ‘사물의 본성’을 구성하는 개별 요소들로부터 이

이론적 구성을 체계적으로 전개하고자 시도한다. 즉 ‘사물’은 ‘법이 형성해야

할 토대가 되는 대상, 재료, 소재’로 규정된다. 이 점에서 법의 소재는 ‘사회

74) 이에 관해서는 앞의 각주 50 참고. 75) Radbruch, Die Natur der Sache als juristische Denkform(각주 52), S.229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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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칸트주의 법철학에서 ‘방법이원주의’ 357

내의 모든 생활관계와 생활질서의 총체’라고 한다(S. 232). 이와 관련하여 라

드브루흐는 ① 자연적 사실, ② 법적 관계의 사전형태, ③ 법적으로 규율된

생활관계를 구별한다. 따라서 ‘사물’의 개념을 규정하는 이 단계에서 이미 규

범적 요소가 작용하고 있다. 이 점은 세 번째 범주인 ‘법적으로 규율된 생활

관계’에서 분명히 드러나며, 두 번째 범주인 ‘법적 관계의 사전형태’ 역시 규범

적 요소를 갖고 있으며, 심지어 첫 번째 범주인 ‘자연적 사실’에도 해당된다.

왜냐하면 ‘자연적 사실’ 역시 ‘순수한 자연적 원재료’로서가 아니라, 예컨대 단

혼 또는 중혼이라는 제도와 같이 하나의 사회적 구성물로서 법적 규율의 대

상이 되기 때문이다(S.233).

그렇다면 규범적 요소들은 다시 사회적-규범적 요소와 법적-규범적 요소로

구별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자연적 사실’이라는 범주는 어떠한 경우든

(단지) 사회적-규범적 요소에 속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이 라드브

루흐의 의도에 부합할지 의문이다. 왜냐하면 1943년에 라드브루흐가 쓴 한

편지에 따르면 ‘생활관계’ 전체, 즉 자연적 사실에 기초한 모든 사회적 관계는

‘실정화가 이루어지기 이전의 법적 사고’를 통해 일정한 구조를 갖게 되기 때

문이다. 이 편지에서 라드브루흐는 혼인과 소유권의 법적 본성이 실정법의

규정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 “혼인 또는 소유권의

법적 본성으로부터 ― 특정한 실정법에 대한 해석에 의존하지 않고 ― 결론

을 도출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사물의 본성에 따른 논증이다.”76)

2) 사물의 ‘본성’

법에 집중된 이러한 관점은 ‘사물의 본성’이라는 사유형식에서 ‘본성(자연)’

이라는 요소의 개념을 규정할 때에도 유지된다. 일단 본성(자연)에 대한 개념

정의는 생활관계라는 사회적 구조의 영역에 머무르게 된다. 즉 ‘사물의 본성’

은 ‘생활관계의 속성 자체로부터 도출해 내야 하는 객관적 의미(S.234/235)’라

고 한다. 하지만 논증의 바로 다음 단계에서 이미 법적-규범적 영역으로 넘어

가게 된다. 왜냐하면 생활관계의 의미에 대한 물음은 ‘생활관계 속에서 실현

되는 법적 의미와 법이념’에 대한 물음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S.235). 생활관

76) Gustav Radbruch, Brief an Walter Spiess v. 4. April 1943, GRGA Bd.18, S.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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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8 법철학연구

계를 하나의 법제도로 전환해야 할 과제를 담당하는 ‘법적 구성’은 이미 법적

으로 일정한 구조를 갖고 있는 사안에 연결된다. 따라서 법적 구성은 해당하

는 생활관계가 실정법적 규율 이전에 이미 갖고 있는 법적 구조에 대한 섬세

한 분석에 기초한다. 그 때문에 라드브루흐는 ‘사물의 본성’을 이제 ‘엄격하게

합리적인 방법의 결과’라고 부른다(S. 235). 이는 사물의 본성을 단지 ‘직관의

행운’77)일 뿐이라고 여겼던, 그 자신이 예전에 했던 평가와는 완전히 동떨어

진 평가이다.

따라서 라드브루흐의 ‘사물의 본성’론의 어떠한 지점에서 규범적 요소가 작

용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가장 기초적인 단계에서!’라고 대답할

수 있다. 즉 사회적 구성물의 ‘자연적 핵심’이 ‘자연적 원재료’를 형성한다는

전제하에 이러한 사회적 구성물에서 이미 규범적 요소가 작용하고 있다. 그

렇기 때문에 사회적 구성물은 그것의 ‘본성’을 규정할 때 이미 법이념과 관계

를 맺게 된다. 라드브루흐가 생활관계 ― 즉 법의 소재 ― 를 세 가지 범주로

분류할 때, 각 범주들을 엄격하게 분리하지 않는다는 것 역시 이러한 사정에

부합한다. 즉 첫 번째 범주인 자연적 사실은 이미 ‘법적 관계의 사전형태’를

지시하고 있으며, 법적 관계의 사전형태도 뚜렷한 경계가 없는 상태에서 세

번째 범주(법적으로 규율되는 생활관계)로 전환된다고 한다(S.233/234). 따라서

사물의 본성에서 확인할 수 있는 규범적 요소들은 모두 명백히 법적-규범적

성격을 갖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구조에 내재하는 규범성을 모두 법적 규범성으로 해석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남는다. 오늘날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만일 제도적 사실

(institutionelle Tatsache)로부터 당위를 도출할 수 있다면, 그러한 제도적 사실

은 법 이전의 규범성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 법적 제도가 아니라 ― 사회적

제도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사물의 본성’을 통해 존재와 당위 사이의 이원

주의를 ‘완화’하는 것이 과연 이러한 이원주의를 유지하는 가운데 가능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도 제기하게 된다. 조금은 첨예하게 표현하자면, ‘사물의 본

성’론에 따라 존재(또는 존재자) 그 자체가 규범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면, 방

법이원주의는 이미 포기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규범적

77) Radbruch, Rechtsphilosophie(각주 7), S.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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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칸트주의 법철학에서 ‘방법이원주의’ 359

의미를 존재가 아니라, 존재에 속하는 당위에 귀속시킨다면, 존재와 당위 사

이의 이원주의가 도대체 어떻게 ‘사물의 본성’이라는 이념을 통해 완화될 수

있다는 것인지를 파악할 수 없다.

V. 법의 문화철학의 범위 내에서 방법이원주의가 갖는 의미

이러한 생각들을 통해 다시 출발점이었던 물음, 즉 문화현상으로서의 법을

법학적 고찰의 대상으로 삼는 이론에서 방법이원주의 원칙이 어떠한 결론을

통해 실제로 수행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앞에서 언급

했듯이 게르하르트 슈프랭어는 볼프강 케어스팅을 원용하면서 문화철학적 계

열의 신칸트주의를 가치와 현실을 통합하고 양자를 화해시키는 입장으로 파

악한다.78) 자신의 법철학의 전개과정 속에서 이루어진 방법이원주의에 대한

라드브루흐의 입장변경은 엄격한 방법이원주의와 법에 대한 문화철학적 고찰

이 결코 합치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는 것 같다. 즉 가치관

련적 사고를 가치평가적 사고와 엄격히 분리할 수 있다는 방법론적 낙관주의

는 유지될 수 없다. 더 나아가 사회현실에 대한 가치평가는 학문적 사고의

산물이 아니라, 이러한 사회현실 자체에 내재하고 법적으로도 직접적 의미를

갖는 구성부분이라는 점도 밝혔다. 라드브루흐가 사물의 본성을 최후의 순간

까지 ‘사유형식’으로 지칭한 것은 문제 자체보다는 신칸트주의적 전통에 기인

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법철학에서 방법이원주의는 아마도 법의 사회적, 즉 ‘문화적’ 현실을 완전

히 도외시한다는 대가를 치를 때에만 일관되게 관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

게 하면 우리는 아마 다시 켈젠과 규범과학으로서의 법학이라는 모델에 도달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혹독한 대가이다. 그보다는 방법이

원주의 원칙의 정당한 지배영역과 이 원칙이 찬탈자로 등장하는 영역 사이에

경계를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당위가 미래에 의존한다는 것은

당연히 옳고, 제도적 사실에 대해 내재적 규범성을 부정하는 것은 당연히 틀

78) 앞의 각주 3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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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 법철학연구

리기 때문이다. 법의 규범성은 필연적으로 이러한 법 이전의 규범성에 연결

된다. 이 점을 설득력 있게 밝힌 것은 ‘사회적 개념’ 및 이 개념이 법질서의

구조에 대해 갖는 의미에 관해 라스크와 라드브루흐가 발전시킨 이론의 공적

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