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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섭/배제”-새로운 법개념?: 아감벤 읽기 I
1)윤 재 왕*
▶목 차◀ Ⅰ. 한 가지 장면 그리고 질문들
Ⅱ. 루만의 체계이론에서 “포섭과 배제”
의 전개과정
Ⅲ. 아감벤: “배제로부터 포섭을 보기”
-
“구별할 수 없음"
-
“포섭하는 배제” - 생명정치화의
보편성과 수용소의 편재성
- “구별할 수 없음” 또는 “구별하지
않음”
IV. 전망
I. 한 가지 장면 그리고 질문들
무쇠로 만든 작은 철제 컨테이너가 트럭에 실려 간다. 컨테이너 속에서 손에
쇠파이프를 들고 완전무장을 한 채 작전에 투입되는 익명의 진압경찰들이 서성거
린다. 이제 컨테이너는 크레인을 타고 하늘을 나른다. 진압대상은 철거를 거부하
고 건물을 사수하려는 사람들이다. 그들 또한 옥상에 설치된 천막집에 몰려 있으
나, 제작된 경찰 컨테이너에 비하면 초라한 바람막이에 불과하다. 건물사방에서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가 난무하고, 할리우드 액션을 능가하는 공중전을 펼치며 검
은 전투복의 진압경찰 하나가 하늘에서 물벼락을 날린다. 허공에는 낭랑한 목소리
의 여경이 “경찰은 여러분과의 물리적 충돌을 원하지 않습니다”는 멘트를 날린다.
갑자기 불이 붙는다. 늘 그렇듯 불은 무차별적이며, 사람을 모른다. 남은 건 경찰
한 명을 포함한 여섯의 죽음이었다. 우리는 그것을 “참사”라고 부른다.
그림이 강요하는 강렬한 인상을 접어두더라도 국가권력이 개입한 곳
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개인과 개인들 사이의 사건에 비해 사람의 감정을
- 법학박사,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강사.
고려대학교 법학연구원 고려법학 제56호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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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자극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더욱이 ‘폭력’이라는 요소가 가미되면 그
자극의 정도는 더 높아지고, ‘죽음’이 개입되면 흥분을 넘어 분노 그리고
거기에 뒤따르는 슬픔 때문에 한 순간 어떠한 커뮤니케이션도 연결가능성
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공백지대에 들어선다. ‘참사’라는 표현은 어쩌면
연결가능성을 찾지 못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정지를 뜻하는지도 모른다. 그
림의 힘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관타나모(Guantanamo)처럼 도저히 상
대가 안 되는(비대칭적인) 거대한 조직 대 소수의 무력한 ‘무리’ 사이의
비일상적인 상호작용의 ‘상태’로 장면이 바뀌거나, 오로지 생존을 꿈꾸며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탈출을 감행하는 배에서 붙잡혀 이탈리아 해안가
의 어느 피난민수용소에서 마치 몽유병환자처럼 걸어 다니는 슬픈 대륙의
사람들처럼 조직화된 공간으로부터 배척된 ‘상황’으로 바뀔 수도 있다.
이 “그림들의 힘(Macht der Bilder)" 앞에서 아마도 법(철)학은 여러
가지 물음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옥상위에서 진압의 대상이 된 사람
들은 누군가의 표현처럼 “도심의 테러리스트들”이거나 법효력을 관철하기
위한 단순한 객체인가? 아니면 민주적 헌법질서를 구성하는 기본권의 주
체이긴 하지만, 어떤 일회적 사건으로 인해 권리가 배제된 채 법집행을
위해 일시적으로 의무주체로 전락한 “시민”인가? 목가적인 섬 관타나모의
한 구석에서 온몸이 사슬로 묶이고, 눈은 가려져 있고 입에는 자살방지용
방구장치가 달린 채 끌려가는 “테러리스트들”은 법질서의 바깥에 있는 존
재인가 아니면 그저 법질서의 보호영역에서 일시적으로 배제된 존재인가?
지중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피난민수용소의 난민들은 과연 인권의 주체,
즉 -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식으로 표현하면 - “권리를 가질 수
있는 권리(Recht, Rechte zu haben)"1)의 주체들인가?
적어도 근대 이후의 법질서는 한 법질서의 구성원들 모두가 평등한
권리와 의무의 주체라는 것을 전제하고, 이를 통해 법체계 안으로 모든
인격들을 끌어들이고 극단적인 예외(예컨대 사형)가 아닌 이상, 인격을 법
1) H. Arendt, Es gibt nur ein einziges Menschenrecht, in: Die Wandlung, 1949, S. 754ff., 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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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계로부터 배제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한다. 민주주의와 헌법국가의 이
러한 이상은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다시 전 세계적으로 하나의 보편적
의미론(universelle Semantik)으로 자리 잡았고, 설령 그 배후에 감추어진
이데올로기에 대해 혐의를 제기하거나 근대성 자체가 안고 있는 부정적
부수현상에 관심을 기울일지라도 이 의미론 자체는 다른 모든 담론
(discourse)의 출발점으로 여겨져 왔다.2) 법학적 맥락에서도 헌법의 기본
권주체, 민법의 권리주체 그리고 형법의 책임원칙은 일단 모든 인격이 법
체계에 포섭되어 있음을 전제하면서 그 한계현상에 대해서만 예외를 인정
하는 방식을 주축으로 한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장면들과 이 장면들이
불러일으키는 (법학적) 질문들을 극단화할 경우, 그러한 전제 자체를 다시
문제 삼는 것까지 가능해진다. 즉, 법체계로의 보편적 포섭이라는 전제가
혹시 법체계로부터의 배제라는 결과까지 동시에 전제하고 있는 것은 아닌
가라는 의문을 갖게 만든다. 예를 들어 인권의 보편성을 선언하고, 이를
토대로 헌법적 기본권주체를 광범위하게 설정한 프랑스 인권선언은 이 선
언과 동시에 프랑스 국민이 아닌 자들을 기본권주체의 범위에서 배제한
것은 아닌가?3) 또는 “참사”의 희생자들 - 특히 철거민들 - 은 이미 처음
부터 “하급시민”으로서 법체계로부터 배제되어 있었고, 참사는 완전한 배
제를 확인하는 사건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법체계로의 포섭은 배제를 수
반할 뿐만 아니라, 사실상으로는 배제가 포섭에 우선하는 형식이 아니었
을까? 아니면 모든 인격의 완전한 포섭이라는 근대헌법국가의 규범적 이
상이 아직 충분히 실현되지 못한 사실적 상태에 불과한 것인가?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 앞에서 서성거리는 지점에서 우
리는 니클라스 루만(Niklas Luhmann)4)과 조르지오 아감벤(Giorgio
Agamben)5)을 만난다. 한 사람은 20세기의 말을 장식한 사회학자로서, 다
2) 근대성의 이러한 측면 그리고 특히 “인권”의미론의 전개양상에 관한 개관으로는 Ch.
Menke/A. Pollmann, Philosophie der Menschenrechte, 2007, 특히 S. 71ff. 참고.
3) 이러한 역설적 측면에 대한 법이론적 대응에 관해서는 N. Luhmann, Das Paradox
der Menschenrechte und drei Formen seiner Entfaltung, in: ders, Soziologische
Aufklärung 6, 2. Aufl., S. 218, 220 참고.
4) 루만의 체계이론에 관한 개관으로는 크네어/낫세이, 니클라스 루만으로의 초대, 2008;
Detlef Horster, Niklas Luhmann, 2. Aufl., 2005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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른 한 사람은 21세기 초에 갑작스럽게 각광받기 시작한 철학자이자 미학
자로서 세계사회의 학문 커뮤니케이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더
욱이 우연인지 알 수 없으나 두 사람 모두 법학을 공부한 이후 각자의 분
과로 경계를 넘어섰기 때문에 각각의 이론적 틀 속에서 법 또는 법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동시대의 다른 유명한 학자들에 비해 상당히 크다. 그리
고 두 사람 모두 앞의 질문들을 통해 제기된 포섭과 배제의 원리에 대해
나름의 답을 제시하고 있다. 다만 루만은 그의 학자로서의 말년에 자신의
이론에 대한 약간의 수정을 시도하면서 포섭/배제의 도식을 끌어들이고
이에 대해 몇 가지 시사점을 던져주었을 뿐, 자신의 다른 이론적 작업에
비해서는 비교적 섬세한 체계적 구성을 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고, 아
감벤은 포섭/배제를 자신의 이론의 핵심개념의 하나로 삼고 있다는 점에
서 차이가 있다.
이 글은 부제가 보여주듯이 최근 전 세계적으로 그리고 당연히 우리
학계에서도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한 아감벤의 저작들을 법학
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독해하기 위한 몇 편의 연작 가운데 첫 번째에
해당한다. 연작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이 글 아감벤 읽기 I에서는 아감벤
이 생각하는 포섭/배제의 논리를 주로 루만의 체계이론적 관점에 비추어
비판적 읽기를 시도한다. “원칙과 예외”라는 제목을 달게 될 II.1은 아감벤
이 칼 슈미트(Carl Schmitt)의 주권이론과 예외상태를 읽는 방식에 대한
비판을 내용으로 한다. II.2는 아감벤이 지속적으로 원용하고 있는 아우슈
비츠 등의 나치수용소에 관한 서술들을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이론 및
5) 아감벤의 저작들은 비교적 빠른 속도로 우리말로 번역되고 있다. 현재 다음 네 권의 책의 한국어판이 나와 있다: 호모 사케르, 2008; 남겨진 시간, 2008; 예외상태, 2009; 목적없는 수단, 2009. 논문으로는 우선 아감벤의 철학과 “가족적 유사성”을 띠고 있는 푸코(Foucault)의 연장선상에서 독해를 시도하는 양운덕, 미시권력들의 작용과 생명 정치: 푸코의 권력분석틀과 아감벤의 근대정치학 비판, 철학연구 36(2009), 169면 이하 그리고 아감벤의 정치비판적 관심을 조명하고 있는 유홍림/홍철기, 조르지오 아감벤의 포스트모던 정치철학: 주권, 헐벗은 삶, 그리고 잠재성의 정치, 정치사상연구 13(2007), 155면 이하가 있다. 아감벤의 철학 전반에 대한 개관은 Eva Geulen, Giorgio Agamben zur Einführung, 2. Aufl. 2009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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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과거청산에 관한 이론에 비추어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마지막 III은
존엄사, 배아연구 등 생명윤리와 관련된 아감벤의 비판에 대한 반비판을
시도하는 “생명정치와 생명윤리”가 될 것이다.6) 다만 아감벤을 읽기 위한
안경의 역할을 하는 이론들, 즉 루만, 슈미트, 아렌트, 생명윤리학 등도 모
두 거대한 주제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지면의 제약으로 인해 상당부분 아
감벤과의 연관성을 염두에 두면서 제한적으로만 서술하기로 하고, 각각의
이론에 대한 본격적인 취급은 단행본의 형태에 맡기기로 한다는 점을 밝
혀두기로 한다. 그리고 아감벤의 작업이 갖는 철학적 의의나 위상에 관한
일반적 서술은 선행연구를 지적하는 것에 그치기로 한다.
II. 루만의 체계이론에서 “포섭과 배제”의 전개과정
루만은 그의 법사회학 주저 “사회의 법(Das Recht der Gesellschaft)”
에서 법체계의 작동상의 폐쇄성을 설명하는 가운데 평등권이 인권의 패러
다임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지적하면서, 인권은 본질적으로 상황의 불투명
성, 즉 기능적 분화가 미친 영향과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즉, 인권은 현
대사회가 그 구조상 미래에 개방될 수밖에 없다는 필연성과 밀접하게 관
련을 맺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현대사회에서는 각 개인들이 다양한 방
식에 따라 모든 기능체계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이러한 가능성을 포섭(Inklusion)7)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8) 물론
6) I.1/I.2/II/III의 일련번호는 아감벤의 저작 자체의 일련번호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아감벤은 그의 주저 “호모 사케르(Homo Sacer)”를 출간한 이후 유사한 주제영역의 속편들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있다. 예를 들어 “예외상태”는 “호모 사케르 II.1”, “제국과 찬란함. 경제와 정부의 신학적 계보”는 “호모 사케르 II.2”, “언어의 성스러움. 선서의 고고학”는 “호모 사케르 II.3” 그리고 “아우슈비츠에서 남아 있는 것. 아카이브와 증인 들”은 “호모 사케르 III”을 부제로 달고 있다. 이 연작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7) Inklusion의 번역을 ‘포함’[예컨대 정성훈, 법의 침식과 현대성의 위기 - 루만의 체계이 론을 통한 진단, 법철학연구, 제12권 제2호(2009), 346면]이 아니라, ‘포섭’으로 한 데에 는 전자의 어감이 후자의 그것에 비해 일정한 상태를 뜻하는 정태성을 갖기 때문이다. 동사 inkludieren/exkludieren을 감안하면 포섭으로 하는 것이 원의에 더 가깝게 느껴 진다. 물론 법학자들에게는 ‘포섭(Subsumtion)’은 사안이 규범에 귀속되는 과정을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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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들이 기능체계에 포섭되는 문제 자체는 각 기능체계 내부에서 규율되
어 있다. 즉, 각 기능체계는 무엇을 같게(포섭) 볼 것이고 무엇을 다르게
(배제 Exklusion) 볼 것인지를 기능이라는 기준에 따라 결정할 수 있게
된다.9) 그러므로 체계이론의 관점에서 인권은 인간의 ‘본성’이나 이러한
본성으로부터 논리적으로 추론되는 권리가 아니라, 기능적 측면에서 각
체계의 고유한 자기생산적(autopoietisch) 재생산을 위해 미래가 개방된
상태에 있도록 만들어 주기 위한 장치이다. 따라서 인간들을 미리 특정한
표지에 따라 분할하고 분류하는 것, 특히 특정한 인간을 정치적으로 분리
하고, 이러한 분리가 고정적으로 이루어진 나머지 미래까지도 완전히 제
한되는 상황이 와서는 안 된다고 결론짓는다. 인권에 관한 통상의 철학적
근거설정과는 상당히 거리를 두고 있는 이러한 체계이론적 인권관은 사회
적 체계와 인격이 서로 분리된 상태에서 서로 구조적으로 중첩되어 있기
때문에, 각 기능체계의 관점에서 그 기능체계의 유동성과 탄력성 또는 불
확실성을 유지하기 위한 작동의 차원에서 인권의 의미를 파악한다.10)
인권에 대한 어떠한 격정적 고백도 없는 루만의 이 이해가 과연 인권
에 대한 일반적 이해에 부합할 수 있는지 여부와는 관계없이, 우리의 맥
락에서 주목을 끄는 것은 적어도 이 구절을 쓸 때까지만 해도 루만 자신
은 기능체계의 분화나 세계사회(Weltgesellschaft)의 맥락에서 포섭이 가
하기 때문에 혼동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Inklusion 역시 하나의 과정이라는 점에서
포함보다는 포섭이라고 옮기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본다. 이 점은 아감벤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이 글에서 ‘포섭’으로 옮긴 경우 대부분 우리말 번역서에서는 ‘포함’으로
번역되어 있다. 이 글에서는 일관되게 ‘포섭’이라고 옮긴다.
8) N. Luhmann, Das Recht der Gesellschaft, 1993, S. 115ff.
9) 우리의 논의의 출발점인 ‘사건’에 비추어 말한다면, 법체계는 예컨대 경제체계와 다른
형식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경제적 부/빈곤이 곧 법체계 내부의 작동이나 법체계의
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되므로 그것이 “철거민”이 되었든 아니면 “재벌
회장”이 되었든 법의 잣대는 같은 것에 대해 같게(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다. 물론 양자가 똑같은 방식으로 법체계의 커뮤니케이션 대상이 되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문제는 다른 체계들이 구체적인 법적 커뮤니케이션의 동기와는 관계없이 부자
와 가난 한 자에 대한 불평등취급을 스캔들로 취급하게 되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법체계 자체가 그러한 구별 또는 불평등을 내면화할 때 발생한다.
10) Luhmann, Das Recht der Gesellschaft, S.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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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의미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고, 또한 포섭의 반대편에 있는 배제와의
관련성에 대해서도 별다른 이론적 성찰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와는 반대로 같은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세계사회의 차원에서 법과
정치가 구조적으로 중첩되는 전 지구적 헌법이 존재하지 않는 원인이 세
계의 여러 국가에서 국민들의 상당부분이 기능체계의 커뮤니케이션에 충
분히 포섭되지 못한 데 있다고 추측하면서, 포섭과 배제가 지나치게 엄격
한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는 법체계에 포섭된
계층과 그렇지 않은 계층 사이에 너무나도 확연한 경계가 그어져 있기 때
문이라고 한다. 물론 루만에 따르면 이러한 차이 역시 기능적 분화의 산
물이지만, 이 차이는 기능적 분화와 합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능적
분화 자체를 파괴하는 경향까지 보인다고 한다. 여기서 루만은 국민의 상
당수가 법체계의 바깥으로 배제되고, 그 배제의 원인이 다른 기능체계로
부터 배제되었기 때문이라든가 또는 법체계로부터의 배제가 다른 기능체
계로부터의 배제를 유발하는 상황들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리하여 포섭
과 배제가 법/불법, 정부/야당, 참/거짓 등과 같은 개별 기능체계들의 코
드를 아우르는 메타코드 또는 슈퍼코드(Meta- oder Supercode)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11) 루만의 다른 이론적 용
어에 비해 썩 명쾌한 설명이라고 할 수 없는 이 부분의 서술은 1980년대
말에 그가 브라질을 방문하여 상파울로의 빈민촌 파벨라스(favelas)를 방
문했을 때 받았던 충격12)을 사회이론적으로 어느 정도 설명하려는 시도
의 일환으로 제기된 개념이었다. 1991/92년의 빌레펠트(Bielefeld) 대학교
의 “체계이론입문” 강의에서 루만은 사회적 배제의 현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1) Luhmann, Das Recht der Gesellschaft, S. 583f. 12) 파벨라스 방문에 동반했던 마르첼로 네베스(Marcelo Neves) 교수는 그 당시 루만이 방문 이후에 말 수가 뚜렷하게 줄어들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내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체계이론 전반 그리고 제3세계나 기타 근대의 주변국가에 체계이론을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함께 얘기를 하며 많은 배움의 기회를 준 친구 네베스 교수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뜻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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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봄베이에는 분명 수백만의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산다. 그들에게
확실한 거주지 주소가 없다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없고, 그로 인해 여러 가
지 결과들이 뒤따르게 된다. 브라질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신분증이 없다. 이들의
부모 역시 신분증을 갖고 있지 않으며, 태어나서 출생신고를 한 적도 없다. 엄마
는 어디선가 하녀로 일을 했을 것이다. 아이들은 할머니가 키웠다. 아이들이 어른
이 되더라도 신분증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신분증이 없으면 취학하는 데 문제가
생기고, 사회가 주는 어떠한 혜택도 받을 수 없으며, 투표권도 없게 되며 등등등
... 브라질의 파벨라스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기능하는 것은 아마도 예방주사일 것
이다. 전염병에 감염되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나 두려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예
방주사를 맞으면 아이에게 분유를 살 수 있는 딱지를 준다. 이 딱지는 다시 맥주
를 살 수 있는 딱지와 교환할 수도 있다.”13)
1990년대 중반에 들어 루만은 “포섭과 배제”라는 개념이 “다음 세기
의 주도적 차이”14)가 될 것이라고 선언할 정도로 이 구별형식 또는 코드
(Code)에 대해 훨씬 더 정치한 이론을 전개하게 된다. 루만은 우선 환경
과 구별되는 체계라는 형식과 마찬가지로 배제와 구별되는 포섭이라는 형
식을 전제함으로써 포섭과 배제 사이의 비대칭성(Asymmetrie), 다시 말해
구별의 한 쪽인 포섭이 더 우선적 지위에 있는 구성이라고 확인한다. 즉,
‘포섭’은 형식의 안쪽을 표시하고, 그 바깥쪽이 ‘배제’이다. 따라서 배제가
있을 때에만 포섭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으며, 이론의 과제는 포섭과 배
제의 차이를 체계형성의 요건들과 관련시켜 고찰하는 일이다.15) 그렇다면
하나의 커뮤니케이션을 포섭적 커뮤니케이션으로 규정하기 위한 기준이
무엇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 루만은 포섭은 커뮤니케이션의
맥락에서 인간이 표시될 때에만, 다시 말해 인간이 중요하게 여겨질 때에
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대답한다.16) 그리하여 “용어의 전통적인 의미를
13) Luhmann, Einführung in die Systemtheorie, 2005, S. 80f. 14) Luhmann, Jenseits von Barbarei, in: M. Miller u.a.(Hrsg.), Modernität und Barbarei. Soziologische Zeitdiagnose am Ende des 20. Jahrhunderts, 1996, S. 228. 15) Luhmann, Inklusion und Exklusion, in: ders., Soziologische Aufklärung 6. Die Soziologie und der Mensch, 2. Aufl. 2005, S. 226ff., 241. 16) 다시 우리의 사건으로 돌아가 얘기하자면, 진압대상이었던 철거민은 - 설령 그것이 일시적일지라도 - 법적 커뮤니케이션 과정에 포섭되지 않은, 즉 중요하게 여겨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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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른다면, 인간이 ‘인격’으로 취급되는 방식에 의해서만 포섭은 이루어진
다”17)고 한다. 이는 루만 체계이론이 구사하고 있던 지금까지의 언어사용
방식에 비추어 보면 상당히 놀라운 것이고, 어쩌면 기존의 이론과 모순관
계에 놓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루만은 인간이 사회의 바깥에 있음을 지
속적으로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18)
어쨌든 루만의 후기저작들에서 등장하는 이 포섭/배제의 형식은 체계
이론에서 계속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계기를 마련했고, 이 논의는 여
전히 현재진행형이라 할 수 있다.19) 루만 스스로 자신의 이론에 내재적
모순이 발생하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도입하게 된 이 개념은 분명 체계
이론적 관점의 변화를 불러일으켰고, 이러한 변화와 관련해서는 특히 두
가지 측면이 부각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 루만은 사회의 기능적 분
화를 통해 도달하게 된 “완전한 포섭(Vollinklusion)”이라는 사고를 철저히
부정하는 결론에 도달한다. 즉, 이제 루만은 “기능체계들이 합리적으로 작
동한다면 기능체계들이 인격을 배제한다”는 새로운 테제를 내세운다.20)
둘째, 이렇게 문제의 중심을 완전히 다른 곳으로 옮겨 놓음으로써 루만은
이제 그가 전혀 주제로 삼지 않았던 새로운 측면, 즉 여하한 인격적 지위
도 갖지 않고 오로지 육체성으로만 존재하는 인간이라는 현상을 탐구대상
않는 ‘비인격(Unperson)’일 따름이다. 여기서 그러한 사건의 원인에 대한 탐구라든가,
진압대상으로서의 철거민과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수감된 수형자 모두 똑같은 배제
의 희생자라 할 수 있는가와 같은 경험적 측면은 부차적이다. 우리에게 1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포섭/배제’라는 형식과 이 형식의 의미일 뿐이다.
17) Luhmann, Die Gesellschaft der Gesellschaft, 1998, S. 241.
18) 체계이론의 이 측면은 루만이 자신의 이론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여러 저작
에서 자주 지적하는 내용이다. 이에 관해서는 예를 들어 자기생산(Autopoiesis)테제와
관련시켜 설명을 하고 있는 Das Recht der Gesellschaft, S. 46ff. 참고.
19) 여러 연구들 가운데 다음 세 가지 문헌을 지적한다. S. Farzin, Inklusion/ Exklusion.
Entwicklungen und Probleme einer systemtheoretischen Untersuchung, 2006; A.
Nassehi, Die paradoxe Einheit von Inklusion und Exklusion. Ein systemtheoretischer
Blick auf die “Phänomene”, in: Heinz Bude u.a.(Hrsg.), Das Problem der Exklusion.
Ausgegrenzte, Entbehrliche, Überflüssige, 2006, S. 46ff.; R. Stichweh, Inklusion und
Exklusion. Studien zur Gesellschaftstheorie, 2005.
20) Luhmann, Jenseits von Barbarei, S.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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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 “포섭/배제”-새로운 법개념?: 아감벤 읽기 I
으로 삼게 된다. “포섭영역에서 인간은 인격으로 여겨지는 반면, 배제영역
에서는 거의 오로지 육체만이 문제의 대상일 뿐인 것으로 보인다.”21) 그
리하여 “오로지 육체적인 것에만 국한된 존재”는 기능체계로부터 완전히
배제되어, 커뮤니케이션을 거의 거치지 않은 채 그저 “다음 날에도 살아
남아 있도록 노력하는” 존재로 전락한다고 한다.22) 그렇지만 루만의 이러
한 결론은 -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 어디까지나 포섭이라는 형식개념
에서 출발하여, 그 바깥쪽에 배제가 자리한다고 함으로써 양자 사이의 비
대칭성을 전제한 것이다. 이 점은 다음 장에서 서술하는 아감벤의 포섭/
배제 이론에 비추어 특별히 강조해둘 필요가 있다.
III. 아감벤: “배제로부터 포섭을 보기” - “구별할 수 없음"
- “포섭하는 배제” - 생명정치화의 보편성과 수용소의 편재성
루만이 배제영역에서 오로지 육체적일 것에만 국한된 존재라고 말하
는 현상은 조금은 변형된 형태이긴 하지만 아감벤의 법철학과 정치철학에
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루만의 “포섭/배제”이론에서
는 ‘육체’와 ‘인격’을 나누어 본다고 한다면, 아감벤은 조에(zoe)와 비오스
(bios), 즉 “자연적 존재”와 “정치적 삶의 형식”을 구별하고 있으며,23) 양
21) Luhmann, Die Gesellschaft der Gesellschaft, S. 631f. 22) Luhmann, Jenseits von Barbarei, S. 228. 23) 아감벤, 호모 사케르, 33면 이하. 책의 서두를 장식하는 이 두 그리스어 단어는 모두 삶 또는 생명을 의미한다. 아감벤 자신은 ‘조에’를 ‘개인적’ 또는 ‘사적’인 삶/생명으로, ‘비오스’는 ‘정치적’ 삶/생명이라고 규정한다. ‘삶’과 ‘생명’을 함께 표기한 것은 다음과 같은 사정에 기인한다. 한국어판에서는 예컨대 ‘nuda vita'를 일관되게 ’벌거벗은 생명 ‘으로 번역하고 있다. 우리말 어감에는 ’벌거벗은 삶‘ 또는 ’헐벗은 삶‘이 더 적합하겠지 만, ’조에‘, ’비오스‘, ’생명정치‘ 등의 단어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생명‘을 선택한 것으 로 추측된다. 이러한 일관성은 예를 들어 책의 맨 앞에 인용된 사비니(Savigny)의 유명한 말 “법은 특수한 관점에서 바라 본 인간의 삶 그 자체(das Leben der Menschen selbst)이다”를 “... 인간의 생명이다”라고 번역한 데에서도 나타난다. 이 글에서 원칙적 으로 우리말 번역본을 존중하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우에만 ’삶‘이라고 단어를 사용 한다. 따라서 ’생명‘이라고 표현하는 경우에도 ’삶‘이라는 의미를 함께 고려하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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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271
자의 구별은 그 구조적 차원에서는 거의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아
감벤은 근대성 전체에서 등장하는, 법질서와 예외상태 사이의 전도된 관
계로 말미암아 갈수록 조에와 비오스가 구별할 수 없는 상태로 빠져들었
다고 주장한다. 이와 동시에 아감벤의 사고는 상당히 복합적인 구별이론
적 설명모델을 제시하면서, 포섭과 배제의 상호관련성을 극단적이고 첨예
한 형태로 설명한다. 즉, 아감벤에 따르면 정치가 영원한 예외상태를 추동
함으로써 “주권적 권력”은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권력이 장악할 수 있는
영역 바깥에 있는 것들까지 자기 안으로 끌어들인다고 한다. “아무런 의
미도 갖지 않은 채 그저 효력을 가질 뿐”24)인 법은 삶을 장악하고, 이로써
삶은 그저 “벌거벗은 생명”25)으로서 법적, 정치적 결정권의 영역에 포섭되
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이를 아감벤은 “생명정치화(Biopolitisierung)”
라고 규정한다.
이 정도의 설명만으로도 포섭과 배제의 관계에 대한 아감벤의 문제설
정은 루만의 그것에 비해 훨씬 더 극단적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루만
과는 달리 아감벤은 - 기능체계의 분화라는 관점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 정치적 삶이 개인적 삶을 완전히 장악하는 상태를 상정하고, 생명정
치화라는 거의 무자비할 정도로 가혹한 결론이 곧 현실이라고 하기 때문
이다. 이는 계몽 이후의 정치철학적 전통과의 완전한 결별이다. 정치 또는
정치공동체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에 따르면, 비록 개인이 주권적 권력에
대항할 수 있는 개연성이 극히 희박하다 할지라도, 개인의 사적인 삶과
정치적 실존은 분리할 수 있다고 하며, 이 분리의 토대 위에서 개인과 국
가, 공동체 구성원과 주권의 상호관련성을 어떤 식으로 구성할 것인지를
중심으로 법과 국가의 기능 또는 실체를 설명하려고 한다. 이에 반해 아
감벤은 그와 같은 “고전적” 분리가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도피를 할 수
있는 공간이 그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왜냐하면 “우리는”
바람직하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은 ‘삶/생명’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인용에도 해당한다. 24) 이는 법형식(Rechtsform)에 대한 기본적 출발점이다. 자세히는 호모 사케르, 119면 이하 참고. 25) 호모 사케르 4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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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 “포섭/배제”-새로운 법개념?: 아감벤 읽기 I
현재 수용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근대 정치철학의 서두를
장식하는 홉스(Hobbes)가 참을 수 없는 자연상태를 정치의 출발점으로
삼았다면, 아감벤에게 수용소에서의 삶은 모든 정치의 종착점이다.
이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아감벤의 이러한 극단적 문제설정의 법이론
적 위치를 가늠해보고, 이를 통해 아감벤의 이론 전체에 대한 비판적 고
찰의 실마리를 찾아보자. 무엇보다 아감벤에 대한 비판을 더욱 면밀하게
구성하기 위해 앞에서 간략하게 서술한 루만의 이론적 관점과 대비시키는
일종의 대위법적 사고가 아감벤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물론 루만과 아감벤 모두 사회적 배제라는 현상을 단순한 육체성이라는
측면으로 연결시키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된다. 하지만 이 현상을 고찰
하는 시각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즉, 루만의 배제개념은 “완전포섭”이
라는 체계이론적 요청에 대해 자기비판적 수정을 가하기 위한 개념인 반
면, 아감벤의 경우에는 이와는 정반대로 “완전배제”의 보편성을 주장하는
방향으로 논증이 이루어진다. 수용소가 곧 “근대의 새로운 노모스”26)라고
보는 아감벤의 테제 또한 이러한 완전배제라는 사고를 철저하게 반영하고
있다. 이 맥락에서 아감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본질적으로 법적, 정치
적 질서의 일시적인 정지인 예외상태는 ... [수용소에서는] 벌거벗은 생명
이 거주하는 안정적인 공간적 기반으로 바뀌며, 벌거벗은 생명이 그러한
질서에 편입되지 못하게 되는 정도가 갈수록 커져간다.”27)
이러한 배경에 비추어 보면 아감벤의 이론에 대한 의문은 무엇보다도
법체계를 포함한 사회 또는 아감벤이 말하는 “정치적 공동체”나 “사회”라
는 개념이 그와 같은 위상학적(topologisch) 구상에서 과연 어떠한 분석적
지위를 갖고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집약될 수 있다. 적어도 이 맥락에서는
아감벤의 이론에 대항하여 공동체나 사회가 어떤 확고한 동질성을 갖는다
는 식의 구상을 내세워 반론을 제기하기는 어렵다. 공동체든 사회든 아감
26) 호모 사케르, 315면. 27) 호모 사케르, 3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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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273
벤으로서는 모두 개념적으로는 일정한 정치적 공간의 포섭영역을 뜻하고,
벌거벗은 생명은 이 영역으로부터 어떠한 형태로든 배제되어 있다는 식으
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체계이론뿐만 아니라, 이른바 후기구조주의적
사회이론 또한 사회를 고정된 실체로 “폐쇄된” 그 무엇, 다시 말해 고정된
동질성으로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전제할 때에만 포섭과 배제의 이
분법도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기능체계의 복잡한
분화과정이나 극도로 이질적인 담론의 구조들을 전제하면서 각각의 기능
체계 또는 담론 속으로의 포섭 또는 그로부터의 배제의 역학관계를 분석
하게 된다. 이에 반해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homo sacer)에 관한 그의 분
석에서 동질성사고를 묵시적으로 전제하고 있다. 다차원적 역학관계에 대
한 분석이 아니라, 모든 차원들을 “수용소”라는 동질적인 관계가 모든 것
을 흡입하는 논증구조를 표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감벤의 이론에서 포섭/배제라는 개념의 관계는 구체적으
로 어떤 형태를 띠고 있는가? 아감벤의 법철학과 정치철학의 전체구상은
“호모 사케르”의 목차에도 드러나 있듯이 궁극적으로는 “경계영역”이라는
개념에 기초하고 있고, 이 개념은 내부와 외부, 포섭과 배제 사이의 명확
한 경계선을 긋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리하여 아감벤에 따르면 “근대
의 결정적 사건”은 “모든 곳에서 예외가 규칙이 되는 과정과 더불어 원래
법질서의 주변부에 위치해 있던 벌거벗은 생명의 공간이 서서히 정치공간
과 일치하기 시작하며, 이런 식으로 배제와 포섭, 외부와 내부... 법과 사
실이 더 이상 도저히 구별할 수 없는 상태로 빠져드는 것”에 있다고 한
다.28) 그리고 이 벌거벗은 생명과 관련하여 아감벤은 다음과 같이 덧붙이
고 있다. “생명의 한계-형상, 즉 생명이 법질서의 내부와 외부에 동시에
자리하는 일종의 경계영역이 존재하며, 이 경계영역이 바로 주권의 장이
다.”29) 이런 맥락에서 호모 사케르라는 법적 형상30)은 아감벤에게는 벌거
28) 호모 사케르. 46면. 29) 호모 사케르, 76면. 30) 고대 로마의 역사에서 실제로 “호모 사케르”가 존재했는지에 관해서는 상당한 논란이 있다. 이에 관해서는 Steinhauer, Gestaltung des Rechts: Agamben,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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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 “포섭/배제”-새로운 법개념?: 아감벤 읽기 I
벗은 생명이라는 하나의 “패러다임”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두 개의 공
간이 서로 겹치는 상황을 형상화하는 의미도 갖고 있다. 다시 말해 호모
사케르는 “아무런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하는 법 바깥에 있는 존재로서 그
를 죽일지라도 아무런 형벌도 받지 않으며, 동시에 이 더렵혀진 존재는
제물로 바칠 수도 없다. 이와 같이 세속적 법질서와 신적 질서로부터 이
중으로 배제되는 상황을 아감벤은 다시 이중의 포섭으로 번역해 낸다. 즉,
호모 사케르는 세속적 및 종교적으로 아무런 권리도 갖지 못하는 형식으
로 배제된 상태에서 바로 이 배제를 통해 그에게 자의적인 폭력을 가하는
영역으로 포섭된다고 한다. “주권적 예외상태에서는 법이 이 예외상태로
부터 물러남으로써 이 예외상태에 적용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호모 사케르
역시 제물로 바칠 수 없음의 형태로 신에게 바쳐지며 또한 죽여도 괜찮다
는 형태로 공동체에 포섭된다. 제물로 바칠 수는 없지만 죽여도 되는 생
명이 바로 신성한 생명이다.”31) 그렇다면 아감벤에서도 물리적 육체와 그
물리적 육체의 총합으로서의 정치적 육체(politischer Körper), 즉 정치공
동체를 구별하는 홉스 이후의 전통과 마찬가지로 두 가지 육체가 존재한
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구별을 제거하는 법제도로서 “호모 사케르”라는
법제도를 원용한다. 한 인간이 법질서와 종교질서 모두로부터 배제된 채
마치 허공을 떠도는 것과 같은 상태에 빠지게 만드는 이 기이한 추방의
형식으로부터 아감벤은 예외상태를 규정하는 기준을 확보한다. 즉, 호모
사케르는 사회로부터 배제되어 있지만, 그의 배제는 곧 사회적 도구로 이
해되며, 바로 그 때문에 하나의 인격으로서의 호모 사케르는 다시 사회를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
그러나 아감벤이 호모 사케르 또는 벌거벗은 생명이라는 지위를 표현
하기 위해 사용하는 “포섭하는 배제”라는 형용의 모순(contradictio in
Buckel/Christensen/Fischer-Lescano, Neue Theorien des Rechts, 2. Aufl. 2009, S. 201ff., 216 참고. 물론 아감벤에게 중요한 것은 역사(History)가 아니라, 이야기(Sttory) 이다. 다시 말해 구조를 중심으로 사고를 하고, 비유의 힘과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하려 고 하는 아감벤에게 역사적 증거따위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아감벤의 전 저작에 걸친 이러한 태도에 관해서는 E. Geulen, Giorgio Agamben zur Einführung, S. 22f. 참고. 31) 호모 사케르, 17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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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275
adjecto)에서 포섭이라는 한 극과 배제라는 한 극이 동일한 비중을 갖고
있지는 않다. 왜냐하면 상당히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고, 어쩌면 비약적 논
리를 통해 경계선상의 현상들을 역설적으로 표현하는 개념으로 이러한 형
용의 모순을 사용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벌거벗은 생명은 어쨌든 1차적
으로는 배제의 형태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포섭과 배제를 하나의 구
별의 형식으로 전제하는 한, 형식의 한쪽은 다른 한쪽을 ‘배제’할 수밖에
없고, 하나의 체계에 대한 포섭 또는 배제의 가능성이 있을 뿐, 제3의 가
능성은 존재할 수 없다.32) 물론 포섭/배제라는 이치적 구별에서 어느 한
쪽이 구별의 한쪽이면서 동시에 다른 한쪽에 비해 더 상위에 존재하는 것
으로 상정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루만의 포섭/배제 도식을 이론적으
로 확장, 발전시킨 슈티히베(Stichweh)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를 “위계적
대립(hierarchische Opposition)”이라고 말할 수 있다.33) 예를 들어 법체계
에 대한 포섭, 즉 법체계가 보장하고 있는 권리를 실제로 향유하는 집단
의 포섭을 더 지배적인 현상으로 상정한다면 포섭이 배제와 대립되면서
위계적으로는 또는 구조적으로 더 상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루만이 포
섭과 배제의 비대칭성을 말하는 것 또한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와 같은 벌거벗은 생명, 즉 배제를
우선시하기 때문에 배제가 포섭에 비해 위계적, 구조적으로 우선하는 상
위개념이 된다. 이밖에도 “포섭하는 배제”에 관한 아감벤의 사고과정은
아감벤이 역설적인 내용의 극단적 경계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과는 달리
얼마든지 형식논리적인 논증형태로도 포착해낼 수가 있다. 예를 들어 이
미 20세기 초에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은 “가난한 자”에 대해 “안
에 있으면서 동시에 바깥에 있는 관계라고 지칭하면서, 가난한 자는 성숙
한 주체임에도 사회로부터 배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배려와
복지의 대상(마치 벌거벗은 생명이 주권적 폭력의 대상인 것과 같이)으로
서 사회에 포섭되어 있는 존재”라고 설명했다.34) 루만이 말하는 “부정적
32) 루만에 관한 앞의 267면 이하 참고. 33) R. Stichweh, Inklusion/Exklusion, funktionale Differenzierung und die Theorie der Weltgesellschaft, in: ders., Inklusion und Exklusion. Studien zur Gesellschaftstheorie, 2005, S. 45ff.,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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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 “포섭/배제”-새로운 법개념?: 아감벤 읽기 I
통합(negative Integration)” 역시 이와 비슷한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즉,
사회로부터의 배제과정(가난)은 필연적으로 극도로 문제가 많은 포섭강제
(단순히 복지정책의 대상)를 수반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루만은 “배제
가 포섭에 비해 훨씬 더 강하게 통합작용을 한다”35)고 지적한다. 물론 여
기서 말하는 통합은 통상의 긍정적 개념과는 반대로 “선별을 위한 자유정
도의 제한”36)이라는 소극적, 부정적 함의를 담고 있다.
2, “구별할 수 없음” 또는 “구별하지 않음”
이러한 형식적 유사성과 구조적 차이(즉, 배제와 포섭 가운데 어느
것이 우선하는가에 따른 차이)와는 별개로 아감벤이 벌거벗은 생명에 어
떠한 사람들을 포함시키고 있는지를 조금 더 자세히 고찰해 볼 필요가 있
다. 왜냐하면 루만의 체계이론은 포섭/배제를 하나의 구별이라는 형식으
로 파악하고, 이를 다른 기능체계의 코드를 아우르는 슈퍼코드로 규정함
으로써 포섭/배제가 보편적 형식으로 사용되는 반면, 아감벤은 면밀한 이
론구성보다는 일종의 문명비판의 차원에서 벌거벗은 생명, 예외상태, 전체
주의와 민주주의의 구조적 등가성 등을 섬세한 논증이 아니라, 단정적이
면서 동시에 어쩌면 종말론적 비판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루
만의 체계이론에서는 원칙적으로 한 기능체계로부터의 배제가 반드시 또
다른 기능체계로부터 배제를 뜻하지 않는다고 보는 경우처럼 각 기능체계
들 사이의 어떤 유기적 연관성을 포착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는
반면(이 점에서 완전포섭의 가능성을 부정하면서도, 동시에 완전배제를
예외로 볼 수 있는 여지가 남겨져 있기도 하다), 아감벤은 ‘근대’라는 시대
전체 또는 현재의 세계 속에 살아가는 모든 인간을 대상으로 담론을 펼친
34) G. Simmel, Soziologie. Untersuchungen über die Formen der Vergesellschaftung, 1992, S. 547. 포섭/배제의 관계에 대한 짐멜의 사회학적 입장에 관해서는 M. Kronauer, Exklusion. Die Gefährdung des Sozialen im hochentwickelten Kapitalismus, 2002, S. 146ff. 참고. 35) Luhmann, Die Gesellschaft der Gesellschaft, S. 631. 36) Eben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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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아감벤의 벌거벗은 생명은 과연 그 배제의 양태
가 총제적인 배제(Totalexklusion)인지 아니면 “구조적 폭력”37)과 같이 체
계 내의 미시적 차원에서 발생하는 일상적 배제인지 분명하지 않다. 아감
벤에 따르면 벌거벗은 생명을 완전히 장악해버린다고 말하는 주권적 권력
역시 마찬가지이다. 즉, 그러한 주권적 권력이 아우슈비츠나 관타나모에
수용된 사람들에 대한 직접적이고 극한적인 폭력을 뜻하는지, 아니면 상
징적, 간접적, 구조적 폭력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호모 사케
르”는 아무런 대답도 하고 있지 않다. 물론 아감벤에 대해 이러한 폭력의
형태들이 정치적 주권과 결합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식으로 반론을
제기할 수는 없다. 최소한 독재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아감벤의 개념들이
불러일으키는 연상들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러 가지 형태들의 폭력이 야기하는 배제의 메카니즘은 서로 다를 수 있
으며, 각각의 메카니즘에 따라 이 벌거벗은 생명의 발현형식도 완전히 달
라질 수 있다는 점은 얼마든지 추론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아감벤 스
스로 벌거벗은 생명의 전형으로 삼고 있는, 나치 수용소의 무젤만
(Muselmann)38)과 일반 교도소의 수형자 또는 피난민 사이에는 아감벤의
주장처럼 정도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 전혀 다른 카테
고리라고 보아야 한다. 더 나아가 수형자나 피난민의 열악한 법적 지위는
다시 아감벤이 법윤리적 회색지대라고 칭하는 “뇌사자”와는 완전히 다른
형식의 “포섭하는 배제”에 해당한다. 뇌사자와 관련하여 아감벤은 1975년
부터 10년 동안 식물인간상태에 있다가 사망한 뇌사환자 카렌 퀸란
(Karen Quinlan)의 경우를 벌거벗은 생명의 측면에서 무젤만이나 수형자
또는 피난민 등과 같은 지위에 있다고 설명하려고 한다.39) 그러나 이는
완전히 서로 다른 카테고리를 하나의 카테고리로 축소시킨 오류에 해당한
37) 이는 요한 갈퉁(J. Galtung, Strukturelle Gewalt, 1984)의 용어로서 오늘날 별다른
구체적 구별을 전제하지 않고서도 일상적으로 쓰이는 단어가 되었다.
38) Agamben, Was von Ausschwitz bleibt. Das Archiv und der Zeuge, 2003, S. 36ff.
무젤만은 원래 무슬림을 뜻하는 고어지만, 나치 수용소에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거의
완전히 쇠잔하여 그저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태에 도달한 유대인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던 일종의 은어였다.
39) 호모 사케르, 3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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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8 “포섭/배제”-새로운 법개념?: 아감벤 읽기 I
다. 왜냐하면 후자의 예에 속하는 인간들은 특정한 체계 또는 체계들로부
터 배제된 영역에 자리 잡고 있는 반면, 퀸란의 운명은 명백히 포섭영역
(의료체계나 복지체계 또는 가족체계 그 어느 것이든)에 속했기 때문이다.
피난민과 같이 아무런 권리도 갖지 못하는 사람들로서는 현대의학의 “생
명유지”장치를 결코 이용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 점은
더욱 분명해진다.
이렇게 볼 때 아감벤으로 하여금 개별 배제현상의 질적 차이를 구별
하지 않은 채, “수용소상태”라는 동질성에 도달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곧 구별의 부재(不在)라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실제로 아감벤은 사실과
법, (법)질서를 구성하는 권력과 주권적 권력, 규범과 삶, 생명과 정치, 법
제정과 법적용 등을 구별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아감벤은 이와 같은 구
별불가능성과 탈분화 그리고 서로 대립되는 것들의 혼융상태에 관한 이야
기를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큰 줄기는 법과 생명의
관계가 차지하고 있다. 이 점은 그가 소환한 최고의 증인 칼 슈미트의 다
음과 같은 말을 반추해 보는 것만으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주권자는
정상적인 상태에서 효력을 갖는 법질서의 바깥에 있지만, 그럼에도 그러
한 법질서에 속한다. 왜냐하면 주권자는 헌법질서 전체를 유예시킬 수 있
는지에 대한 결정을 담당하기 때문이다.”40) 이렇게 한편에 있으면서 동시
에 다른 한편에 있는 것, 즉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바깥에 있다는 것은
곧 어떤 상황이 법적 상태인지 사실적인 상태인지를 구별할 수 없는 예외
상태의 특성이라고 아감벤은 생각한다. 그리하여 사실과 법은 더 이상 구
별할 수 없다. “주권자의 결정은 외부와 내부, 배제와 포섭, 노모스[법, 관
습]와 퓌시스[자연]가 서로 구별되지 않는 경계영역을 때로는 구획 짓고
때로는 이를 갱신하는데, 이 영역에서 생명은 근원적인 방식으로 그것도
법의 안에서 배제된다. 그러한 결정은 곧 결정 불가능한 것을 결정하는
일이다.”41) 그러나 이렇게 되면 아감벤은 더 이상 법이 아무런 의미도 갖
40) Carl Schmitt, Politische Theologie. Vier Kapitel zur Lehre von der Souveränität, 2. Aufl. 1934, S.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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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못한다는 사실 자체를 파악할 수 없다. 즉, 어떠한 구별도 전제하지 않
는다면 과연 어떻게 무의미(법)와 의미(사실, 생명)가 구별되지 않고 같은
것이라고 확인할 수 있는가? 구별이 없이는 그러한 확인 자체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작동과 사건에 불과할 것이다. 그리하여 아감벤이 말하는
“구별할 수 없음”은 어쩌면 구별을 전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별하
지 않음”을 표방한 탓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원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현상의 질적 차이를 ‘배제’하고 하나의 논증선상에서만 머무르려는 고집이다.
그래서도 아감벤에게 법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일 뿐이다. 아감벤도 이
점을 알고 있지만, 다시 눈을 감는다. 한편으로 아감벤은 언어와 법의 유
사성을 인식하고 있다. 그는 헤겔을 원용하면서 “언어가 의미를 전달하는
순수한 잠재성”이고, 바로 그 때문에 언어는 “영원한 예외상태에 있다”고
한다. 언어는 언어일 뿐, 언어 바깥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법 또
한 마찬가지이다. “법의 독특한 구조는 인간 언어가 갖고 있는 이러한 전
제하는 구조에 기반하고 있다.”42) 이 맥락에서 아감벤은 법률의 “단순한”
형식에 관한 칸트의 이론, 내용이 없는 법률에 관한 카프카의 절규 그리
고 의미 없는 효력, 즉 무(無)에 관한 벤야민의 탄식을 끌어들인다.43) 바
로 이 내용이 없고, 그래서 포착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는 법의 무의미성,
즉 법의 공허한 잠재성으로 인해 법은 더 이상 삶과 구별될 수 없는 사실
일 뿐이다. 아감벤의 천재적 기질은 바로 이 지점에서 호모 사케르와 슈
미트의 주권론을 결합시키는 데에서 드러난다. 호모 사케르는 법과 종교
의 바깥에 있다. 이 벌거벗은 존재는 이중의 예외상태라는 또 하나의 “구
별없는 영역”에 잡혀 있다. 바로 이 영역은 오로지 주권자만이 지배하는
영원한 예외상태이이다. “주권의 영역은 살인죄를 저지르지 않고도 또 희
생 제의를 치르지 않고도 살해가 가능한 영역이며, 신성한 생명 즉 살해
할 수 있지만 제물로 바칠 수 없는 생명이란 바로 이러한 영역에 포섭되
41) 호모 사케르, 77면. 42) 호모 사케르, 66면. 43) 호모 사케르, 123면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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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 “포섭/배제”-새로운 법개념?: 아감벤 읽기 I
어 있는 생명을 말한다.”44) 이로써 근대성의 패러다임이 된 수용소는 우
리에게는 구별을 해소하는 패러다임으로 다가온다. 즉, 예외상태가 규범이
되고 규범이 예외상태가 되며,45) 법이 사실이 되고 사실이 규범이 된
다.46) “절대적 구별불가능성”47)은 모든 곳에 존재한다. 이 절대적 구별불
가능성은 그저 불확정 법개념이나 일반조항과 같이 법규범 스스로 개방시
켜 놓은 영역이 아니다. 이 영역에서는 법관을 포함한 어느 누구도 하나
의 규칙이나 상황 또는 사실을 지침으로 삼을 수 없다. 이제 규범을 제정
하는 것과 그 규범을 적용하는 것은 더 이상 구별할 수 없다. 그리하여
사실과 규범, 존재와 당위, 더 나아가 법체계로의 포섭 또는 그로부터의
배제를 규범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마저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
한 기준 또한 규범이고, 그것이 규범이라면 다시 사실과 구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용소는 이처럼 사실과 법, 규범과 적용, 예외와 규칙 사이에
서 어느 한쪽으로 결정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공간이면서, 그럼
에도 불구하고 그것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결정을 내리는 공간이다.”48) 물
론 마치 신앙고백과도 같이 끝없이 반복되는 “구별할 수 없음”이라는 주
장의 배후에는 법비판, 즉 법의 폭력과 폭력의 법을 비판하려는 충동이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이 충동을 실현시키기 위해 다시 “구별할 수 없음”
으로 되돌아가는 순환성을 장착한다. 이를 통해 법을 비판하는 것은 곧
사실을 비판하는 것이며, 사실을 비판하는 것이 곧 법을 비판하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이 비판충동의 배후에는 다시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가?
아감벤에게 어떤 비판적 의도가 있다고 확인할 수 있는 한, 비판은 다시
구별을 전제한다.49) 그리고 그 구별은 결국 법과 불법, 즉 올바른 법과 잘
못된 법의 구별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이 법비판의 충동을 최대한
격정적으로 표출하기 위해 아감벤은 “구별할 수 없음”이라는 주장을 전면
44) 호모 사케르, 177면.
45) 호모 사케르, 318면, 322면.
46) 호모 사케르, 322면 이하.
47) 호모 사케르, 324면.
48) 호모 사케르, 327면.
49) 비판(Kritik)의 어원인 그리스어 ‘κρίνειν’은 ‘구별’ 또는 ‘분리’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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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281
에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모든 경험적 검토와 개념적 엄밀성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아감벤의 “구별할 수 없음”은 실제로는 “구
별하지 않음”으로 귀착한다. 어떤 측면에서는 비판의 대상을 극도로 단순
화함으로써 비판의 무기를 더욱 날카롭게 닦는다고 말할 수 있다. 만일
법(철)학이 아감벤의 이러한 입장을 추종한다면, 법(철)학은 무엇보다 성
찰의 대상을 상실하게 된다. 설령 법체계를 규범 텍스트와 그에 대한 해
석의 텍스트가 아니라, 하나의 커뮤니케이션체계로 이해한다 할지라도, 아
감벤을 따르게 되면 ‘법’ 또는 ‘불법’을 구별할 수 있는 일정한 지점을 확
인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하여 “구별하지 않음”은 곧 법이 어원적 의미의
유토피아, 즉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전락/상승하는 결과를 낳는
다. 법비판을 위해 대상 자체를 포기하는 가혹한 대가를 치르는 셈이다.
아감벤의 저작들 속에는 등장하는 여러 가지 생명정치적 현실들도 동
일한 분석 및 비판의 틀에 잘 맞아떨어진다. 적어도 아감벤 자신은 각각
의 현실들을 섬세하게 분석하려는 작업을 시도하지는 않는 것 같다.50) 그
보다는 “생명정치”라는 개념에 포섭시킬 수 있는 여러 현상들을 너무나도
성급하게 동일선상에서 취급하는 직관을 내세운다. 그렇기 때문에 각 현
상들에서 관찰가능한 차이점에 비추어 각각의 생명정치적 장악양태들이
예컨대 법체계 내에서 어떤 식으로 작용을 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분석
적 틀을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 “생명정치”라는 개념 자체가 갖고 있
는 막연하고 모호한 성격을 감소시키기 위해서도 그러한 분석틀이 필요함
은 물론이다. 그럴 때에만 법체계가 표방하는 인격의 완전한 포섭의 이상
(Idee)이 과연 실현가능한지 또는 어떠한 측면에서 실현되고 있지 않은지
를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50) 예를 들어 “호모 사케르” 전 저작에 걸쳐 그 어느 곳에서도 법과 법률이 무엇을 의미하 는지에 대한 개념정의나 이념 또는 그에 대한 이론을 찾아볼 수 없다. 두 단어가 무수히 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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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 “포섭/배제”-새로운 법개념?: 아감벤 읽기 I
이러한 맥락에서 아감벤의 논증이 섬세한 차이를 부정하고 개념적 평
준화를 시도하는 또 다른 측면을 볼 수 있다. 즉, 아감벤에 의하면 벌거벗
은 생명은 “모든 인간생명과 모든 시민의 내부”51)로 이동해 가고 있으며,
이로써 “우리 시대에 모든 시민들은 대단히 특수하지만, 현실적인 의미에
서 호모 사케르로 여겨진다”52)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아감벤의 구상에서
는 오로지 벌거벗은 생명의 긴 그림자만이 드리워져 있을 뿐이고, 그 반
대쪽 양지에 자리한 주권자는 거의 모든 인간을 배제된 자로 만들려고 기
도한다는 식의 결론만이 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아감벤이 서양의 정치 일
반과 관련하여 사용하는 “정치적 공동체”라는 개념은 적어도 근대의 새로
운 노모스에서는 주권적 권력의 영향권 아래 어떠한 예외도 없이 모두 벌
거벗은 생명들로 가득한 예속상태를 의미할 뿐이다.53)
주권적 권력에 대한 아감벤의 신비로운 서술에 대해 법이론적 또는
정치이론적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것도 바로 이 지점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주권적 권력이 과연 누구 또는 무엇인지는 아감벤 자신의 저작
에서도 구체적으로 밝혀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과연 민주적 헌법국가를
포함한 국가라는 제도 일반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현실의 또는 가상의 예
외상태를 근거로 비상사태의 국가를 의미하는지가 전혀 설명되어 있지 않
다. 그럼에도 아감벤 자신은 오늘날의 정치적 재난이 모두 주권적 권력의
탓이라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반복할 뿐이다. 물론 포섭/배제라는 개념 및
51) 호모 사케르, 269면. 52) 호모 사케르, 225/6면. 53) N. Werber, Die Normalisierung des Ausnahmefalls. Giorgio Agamben sieht immer und überall Konzentrationslager, Merkur 65, 2002, S. 618. 또한 이와 관련해서는 아감 벤 자신이 수용소로서의 근대성에 대한 분석을 시작하기 직전에 “우리 모두가 잠재적 인 호모 사케르”라는 문장으로 끝을 맺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잠재적”이 라는 표현은 분명 벌거벗은 생명의 보편성이라는 테제와는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개념적으로 가장 명확성을 가져야 할 부분에서 혼란스러운 논증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다시 말해 모든 시민이 단지 ‘잠재적’인 호모 사케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가? 만일 시민이 사실상 벌거벗은 생명이 아니라면, 위 문장은 쓸 필요가 없는 문장이다. 또는 수용소를 지상의 새로운 노모스라는 그의 테제를 일관되게 유지 하면서 시민과 벌거벗은 생명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본다면 “잠재적”이라는 표현이 필요가 없다. 의문은 과연 이 두 가지 해석 방식이 어떻게 하나의 책 속에 공존할 수 있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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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283
이 개념과 정치적 공동체의 관계에 비추어 볼 때, 주권이라는 형상과 벌거
벗은 생명이라는 형상 사이에 존재하는 대칭성(Symmetrie)은 상당히 중요
한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주권자와 호모 사케르는 정치질서의 맨 바깥쪽
경계에서 서로 만나는데, 양자는 서로가 서로를 완벽하게 비추고 있는 거
울같은 관계에 있다고 하기 때문이다.54) 즉, 주권자는 - 앞에서 여러 번
언급했듯이 주권자는 칼 슈미트가 말한 대로 예외상태를 결단하는 자이
기에 이미 개념적으로 법률의 위에 있다 - 법질서의 궤도에서 벗어나 위
를 향해 나가는 반면, 벌거벗은 생명은 이와 거꾸로 모든 법질서로부터
배제되는 탈선을 거쳐 아래로 떨어진다고 한다. 그리하여 적극적으로 배
제를 행하는 주권이라는 형상에서든 소극적으로 배제되는, 벌거벗은 생명
에서든 모두 동일한 사회적 비정상성이 표출되어 있다. “호모 사케르와
주권자를 단일한 패러다임으로 결합시키는 것은 우리가 매번 ... 인간세계
와는 양립할 수 없게 된 벌거벗은 생명과 마주친다는 사정이다.”55)
이와 같은 수직적 도식을 배경으로 하면 이 양 극단, 즉 주권자의 우
월권과 벌거벗은 생명의 무력(無力)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은 아감벤으로
서는 전혀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 지루한 공간에 불과하다.56) 왜냐하면
아감벤은 시민과 벌거벗은 생명의 차이를 완전히 묵살할 뿐만 아니라, 주
권이라는 형상을 다시 벌거벗은 생명과 대칭적인 관계에 있다고 봄으로
써, 정치적 공동체의 내부영역은 “포섭하는 배제”라는 무인도 속에서 완
전히 해체돼 버리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배제의 경계 이쪽 편에 어떤 형태로든 위치하고 있을 정치
적 집단이 결여되어 있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공백은 아감벤의 이론이
안고 있는 중대한 문제점을 드러낸다. 예컨대 아감벤이 주권적 권력의
“근원적 활동”으로 파악하는 생명정치적 행위의 지평이 결과적으로 아감
벤 자신의 구상과 딱 들어맞지 않는 이유 또한 그와 같은 중간적 집단의
54) 호모 사케르, 178면 이하.
55) 호모 사케르, 206면.
56) 이점과 관련해서는 “호모 사케르”에 대한 탁월한 서평인 Ph. Sarasin, Agamben -
oder doch Foucault?, in: Deutsche Zeitschrift für Philosophie 51, 2003, S. 348ff.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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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 “포섭/배제”-새로운 법개념?: 아감벤 읽기 I
결여에 연유한다. 물론 아감벤 스스로도 “현대의 생명정치에서는 ... 생명
그 자체의 가치 또는 무가치에 대해 결단하는 자가 주권자이다”57)라고 언
급하고 있지만, 도대체 생명의 가치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감벤의 논증 어디에서도 확인할 길이 없다. 이 점에서 아감벤
은 ‘살 가치가 없는’ 생명을 죽일 수 있다는 것 이외에는 생명의 생산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58) 그렇기 때문에
타인을 죽인다는 것은 생물학적 자기강화를 뜻하고 그 때문에 죽음은 곧
생명권력의 경제학에서 중요한 기능을 한다는 식으로 인종주의를 설명하
는 푸코의 시도59)는 - 아감벤 자신은 푸코의 이론을 발전시킨다고 표방
하고 있음에도 - 극단적 배제의 형태인 죽음의 측면에서만 생명정치 전반
을 고정시키려는 아감벤에게는 전혀 의미를 갖지 못한다. 어쩌면 아감벤
이 주제로 삼고 있는 대상은 ‘생명정치’가 아니라, ‘죽음정치’라고 규정해
야 할지 모른다.60)
“호모 사케르”의 마지막 장에서 아감벤은 결론을 요약하면서 “정치적
공동체에 대한 ‘귀속’에 해당하는 그 무엇을 부여하려는 모든 시도”61)는
계속 근원적 의문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구 민주주의가
9.11 사건 이후 끝없이 치안 및 국가안전과 관련된 정책을 지속적으로 강
화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아감벤의 이 주장이 전혀 설득력이 없다고 할 수
는 없다. 그러나 아감벤의 분석은 항상 벌거벗은 생명의 보편성과 편재성
57) 273. 이 맥락에서 아감벤은 '안락사‘ 논쟁에서 빈번히 인용되는 유명하면서 동시에
악명 높은, 형법학자 칼 빈딩(Karl Binding)의 논문 “Die Freigabe der Vernichtung
lebensunwerten Lebens: Ihr Maß und ihre Form (1920)”을 인용한다.
58) 이 비판에 대한 자세한 서술은 Ph. Sarasin, Zweierlei Rassismus? Die Selektion des
Fremden als Problem in Michel Foucaults Verbindung von Biologie und Rassismus,
in: Martin Stingelin(Hrsg.), Biopolitik und Rassismus, 2003, S. 59f. 참고.
59) M. Foucault, In Verteidigung der Gesellschaft. Vorlesungen am College de
France(1975-1976), 2001, S. 305f.
60) 이러한 비판 및 푸코의 생명정치와 아감벤의 생명정치 사이의 ‘같음’과 ‘다름’에 관해서
는 M. Muhle, Bio-Politik versus Lagerparadigma. Eine Diskussion anhand des
Lebensbegriffs bei Agamben und Foucault, in: Ludger Schwarte u.a.(Hrsg.), Auszug
aus dem Lager. Zur Überwindung des modernen Raumparadigmas in der politischen
Philosophie, 2007, S. 78ff. 참고.
61) 호모 사케르, 34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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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285
으로 귀착되기 때문에, 그가 구사하는 배제개념은 - 앞에서 언급한 것처
럼 - 경험적으로 극히 모호하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단정적이다. 왜냐하면
만일 아감벤의 분석을 일관되게 유지한다면 2천년에 걸친 서구의 역사는
결국 보편적인 불확실성 속에서 끝없이 재난을 반복한 것일 뿐이며, 단지
벌거벗은 생명을 재생산하고 이를 장악하는 다양한 형식의 반복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62) 그리하여 “오늘날 비로소 최대한으로 확장되어 전 지
구적 규모에 이르게 된”63) 아감벤의 예외상태에서 “정치적 공동체”는 궁
극적으로는 배제의 공동체일 뿐이다. 즉, 공동체라는 집단성이 존재하기
위한 유일한 형식은 그저 개개의 벌거벗은 생명들의 총합일 따름이며, 생
명이 존재하는 유일한 양식 또한 벌거벗은 생명일 뿐이다. 바로 그 때문
에 아감벤으로서는 민주적 헌법국가와 같이 하나의 정치적 공동체에 대한
기획을 통해 인격들을 사회적 체계들 속에 지속적으로 포섭시키려는 노력
그리고 이러한 노력을 공동체에 부여된 과제로 전제하는 모든 규범적 이
론과 철저히 결별하지 않을 수 없다. 그에게 ‘포섭’은 그저 배제의 결과
또는 배제의 한 속성일 뿐이며, 포섭과 배제 사이의 다양한 관계나 개별
사회적 체계들과의 유기적 관련성은 아감벤의 시야에 포착되지 않는 어두
운 사각지대에 해당한다.
IV. 전망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과 함께 양극화된 세계질서가 종말을 고한 이후
“역사의 종말”과 새로운 세계질서를 꿈꾸는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발간된
책들 가운데 아마도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는 가장 음울하고 비관적인
책일 것이다. 모든 환상으로부터 벗어난 그의 글쓰기는 읽는 사람에게도
환상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호소한다. 1991년의 골프전이 드리운 긴 그림
62) B. Menke, Die Zonen der Ausnahme. Giorgio Agambens Umschrift Politischer Theologie, in: J. Brokoff u.a. (Hrsg.), Politische Theologie. Formen und Funktionen im 20. Jahrhundert, S. 147. 63) 아감벤, 예외상태, 16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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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6 “포섭/배제”-새로운 법개념?: 아감벤 읽기 I
자 속에서 쓰여진 이 책은 세계사회와 법의 진보에 대해 어떠한 낙관도
있을 수 없다는 “금지의 책”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아감벤의 공격은 서구
사회와 서구를 추종한 사회가 200년 넘게 가장 이상적인 법, 정치, 국가모
델로 삼아 온 민주주의 자체를 대상으로 삼고 있다. 즉, 민주주의 질서는
결코 국가권력의 민주적 정당성이나 권력분립 또는 국민주권에 기초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사회적 통합은 시민들을 “배제”함으로써 권리
없는 자들과 사회적으로 몰락한 자들의 양산체제를 통해 실현된다고 한
다. 그리하여 민주주의라는 외관 뒤에는 늘 예외상태가 숨어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시민의 정치적 육체(비오스)는 질서 속으로 편입되는 반면, 자연
적 육체(조에)는 배제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시민은 생명정치적
조치의 처분대상일 뿐이며, 궁극적으로는 기초적 권리마저 완전히 박탈된
상태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호모 사케르”라는 법적 형상을 통해 배제에 대한 탐구를
시도함으로써 단순히 법적 관철력의 하자나 법효력의 정당성의 관점에서
법의 본질을 지적하는 데 그치는 법철학의 주류를 단숨에 극복한 것은 분
명 아감벤의 공적이다. 실제로 아감벤은 정치적 관점에서 법의 역사를 파
악하는 시도를 통해 법을 복권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즉,
법학 내부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법학적 법철학을 뛰어넘어 학제간 연
구로서의 법철학이라는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무
엇보다 법의 규범적, 도덕적 내용을 완전히 탈색시킴으로써 법 또는 법의
부재는 그 자체 “배제하는 기계(Exklusionsmaschine)”로 작동할 수 있음
을 깨닫게 해준다. 이는 분명 오랜 역사에 걸쳐 지속되어 온 법비판
(Rechtskritik)의 전통64)과도 일맥상통하며, 세계사회에 여전히 내재하
고 있고, 어떤 측면에서는 더욱 강화되어 가고 있는 중심과 주변의 분
리, 중심부에서도 서서히 심각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중심의 주변부화
(Peripherisierung des Zentrums) 그리고 한 국가 내에서의 양극화
64) 법비판의 전통에 관한 간략한 개관으로는 쿠르트 젤만, 법철학, 제2판, 2010, 10면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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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arisierung)에 대해 상당히 설득력 있는 설명과 비판모델을 제시해 줄
수도 있다.
그렇지만 특히 III. 2에서 서술한 것처럼 아감벤의 사유의 출발점을
형성하고 있는 극단적 배제의 논리는 바로 그 극단성으로 말미암아 비판
을 넘어 재구성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지 않는다는 커다란 문제점
을 안고 있다. 이 문제점의 원인은 - 요약적으로 말하자면 - 법체계에 대
한 관찰을 철두철미 배제로부터 시작해서 배제로 끝을 맺기 때문이다. 비
록 아감벤 스스로 이론구성의 엄밀성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는
다 할지라도, 기존의 법(철)학에 그의 인식관심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필연
적으로 기존의 이론적 틀과의 연결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이 점에서 아감벤의 “배제이론”을 관찰하기 위해 서두에 제시했던 루만의
“포섭/배제”이론이 상대적으로 이론적 중립성을 보장하기에 훨씬 더 적절
한 도구로 여겨진다. 물론 - 짧게 지적했듯이 - 루만의 이 개념이 루만
자신의 전체 체계이론과 얼마만큼 정합성을 가질 수 있도록 발전시킬 수
있는지는 현재로서는 향후의 연구에 맡겨져 있는 문제이다. 예를 들어 포
섭/배제의 형식을 기준으로 하나의 민주적 헌법질서에 포섭되어 있기는
하지만, 포섭의 양태가 일방적인 의무부과나 형벌의 대상일 뿐이어서 사
실상 헌법질서로부터 배제된 상태에 있는 인간집단(하위시민)과 헌법의
모든 ‘혜택’(기본권 등)을 누리면서, 동시에 그에 따른 어떠한 의무도 부담
하지 않음으로써 또한 배제된 상태에 놓여 있는 인간집단(상위시민)으로
나누어 법체계의 양면성과 양극성을 분석하는 방법65)은 루만의 이론구성
을 출발점으로 하여, 아감벤의 법비판을 수용하는 한 가지 대안으로 작용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누구인가? - 민주적 헌법국가의 탈선으로 인한 희생자들인가
아니면 헌법국가 자체의 숙명으로 인한 피해자인가? “포섭하는 배제”의
65) 특히 라틴아메리카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와 같은 이론적 틀을 모색하고 있는 M. Neves, Zwischen Subintegration und Überintegration: Bürgerrechte ernstgenommen, in: KJ 1999, S. 557ff.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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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 “포섭/배제”-새로운 법개념?: 아감벤 읽기 I
증거인가 아니면 단순한 “배제”의 증거인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가치와 개인의 의미”66)를 새롭게 성찰할 필요가 있으며, 지금 우
리의 현재가 과연 ‘예외상태’인지에 대한 경험적 관찰 또한 필요하다. 그
렇기 때문에 물음에 대한 답은 칼 슈미트와 아감벤이 원용한 칼 슈미트의
관계에 대한 II.1의 문을 통과할 때쯤에야 비로소 가능해질 것 같다. 다만
“포섭과 배제”가 새로운 법개념으로서의 잠재성을 - 설령 현재성으로 전
환하지 못할지라도 - 충분히 갖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것으로 I.의 목
적은 어느 정도 달성한 것 같다. 그리고 이 모든 이론적 모색과는 별개로
‘그들’의 그림은 문명의 이름으로 자행된 야만이거나 문명을 더럽히는 야
만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포섭/배제”-새로운 법개념?: 아감벤 읽기 I ― 윤 재 왕
수령 날짜 심사개시일게재결정일
’10.01.17 ’10.02.22 ’10.03.15
66) 이는 칼 슈미트의 교수자격논문의 제목(Schmitt, Der Wert des Staates und die Bedeutung des Einzelnen, 1914)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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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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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 “포섭/배제”-새로운 법개념?: 아감벤 읽기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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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페이지
윤 재 왕 291
“Inklusion/Exklusion” - Ein neuer Rechtsbegriff?:
Agamben-Lektüre I
Zai-Wang Yoon
(Dozent an der juristischen Fakultät der Korea-Universität)
Bei der Räumung eines Squats kamen sechs Menschen, darumter
ein Polizist, ums Leben. Das Gebäude war kürzlich aus Protest gegen
eine Zwangsräumung besetzt worden. Die Bilder, die während des
überaus harten und brutalen Polizeieinsatzes aufgenommen wurden,
zeigen uns, wie auch das um den Staat herum organisiertemoderne
Leben “jenseits von Barbarei”(Luhmann) bestimmte Menschen bzw.
Menschengruppenaus jeweiligen Funktionseinheiten systmatisch
ausschließen kann. Ohne die Macht der Bilder übertreiben zu wollen,
lässt sich aus rechtswissenschaftlicher und –philosophischer Sicht
durchaus die Frage stellen, ob und, falls ja, inwieweit die Opfer dieser
Tragödie sich als Bürgerin einem demokratischen Verfassungsstaat
verstehen konnten, weil sie vor und während der Zwangsräumung de
facto “bloße Objekte” der souveränen staatlichen Machtausübung
waren. Vor diesem Hintergrund versucht der vorliegende Beitrag
anhand der Rechts- und Politischen Theorie Giorgio Agambens die
Aufnahmemöglichkeit eines von Haus aus soziologischen Begriffspaares
“Inklusion/ Exklusion” in den rechtsphilosophischen Diskurs kritisch zu
beleuchten, wobei die Systemtheorie von Niklas Luhmann und dessen
Verständnis über dieses Begriffspaarals theoretischer Ausgangspun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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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nt. Im Zentrum des Beitrages steht Agambens mit Blick auf das
‘nackte Leben’ entwickelte Argumentationsfigur des ‘einschließenden
Ausschlusses’. Hierbei werden zunächst die Exklusionskonzepte der
Systemtheorie auf ihre rechtstheoretische ‘Anwendbarkeit’ hin überprüft.
Vor dem Hintergrund der strukturellen Analogizität zwischen dem
‘nackten Leben’und der ‘Souveränität’ wird desweiteren aufgezeigt, dass
sich der von Agamben gebrauchte Begriff der politischen Gemeinschaft
einschließlich des Rechtssystems schlicht als ‘Exklusionsgemeinschaft’
ausformulieren lässt, auf die – sofern jegliche Inklusion immer nur als
Attribut eines allumfassenden Ausschlusses fungiert – ein biopolitisches
Erklärungsmuster anzuwenden unmöglich ist. Darüber hinaus wird
gezeigt, dass die These der Ununterscheidbarkeit zwischen Recht und
Faktum bei Agamben in Wahrheit auf sein allzu entdiffrenzierendes
‘Nichtunterscheiden’ zurückzuführen ist. Der Beitrag versteht sich als
Auftakt der Aufsätzereihe, die unter dem Titel Agamben-Lektüre
fortgesetzt wird.
주제어(Keyword) : 포섭/배제(Inklusion/Exklusion),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 니클라스 루만(Niklas Luhmann), 호모 사케르(Homo Sacer), 법과 양극화(Recht und Polarisier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