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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왕, 자기결정권과 후견주의, 2012

원본 파일: 윤재왕, 자기결정권과 후견주의, 201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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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법학연구원 고려법학 제67호 2012년 12월

  • 115 -

자기결정권과 후견주의*

  • 형법상 촉탁살인죄(제252조)의 보호법익에 대한

법윤리학적 성찰 -

1) 윤 재 왕**

▶목 차◀ Ⅰ. 머리말

Ⅱ. 자기결정권과 생명(권)

Ⅲ. 후견주의, 법도덕주의 그리고 기본권

보호의무

Ⅳ. 맺음말

이 세상의 헤아릴 수 없는 죽음과 끝없이 되풀이되는 죽음 중에 인간이 감

지할 수 있는 죽음은 저 자신의 죽음뿐일 테지만, 그 죽음조차도 전할 수 없고

옮길 수 없어서 이해받지 못할 죽음일 것이다.

김 훈

Ⅰ. 머리말

죽음에 대한 모든 이야기는 무지와 미지의 영역에 대한 이야기이다.

모든 인간의 숙명이긴 하지만, 그 현상은 개별적이고 실존적이다. 그러면

서도 바로 그 ‘모든’이라는 성격 때문에 죽음, 더 정확히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사회적이고, 따라서 죽음에 대한 논의 역시 비록 경건함과 민감

  • 이 글은 고려대학교 신임교원정착연구비의 지원으로 이루어졌다. 연구를 지원해준 학교 측에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학박사(Dr. i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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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을 갖추어야 할지라도 여전히 사회적이다. 심지어 죽음에 대한 논의를

꺼리게 만드는 ‘금기’마저도 사회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죽음은 사회 내

에서 발생하고, 사회 내에서 이야기된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은 당연히 법

과 도덕의 주제이기도 하다.1) 예를 들어 ‘살인금지’는 보편적 도덕이자 보

편적 법이며, 이를 통해 죽음의 반대현상으로서의 ‘생명’은 보편적이고 신

성한 가치로서 법과 도덕의 보호대상이 된다. 그렇지만 보호를 받는 생명

은 반드시 이를 떠받치고 향유하는 주체를 전제한다. 그래서 생명을 보호

한다는 것은 동시에 생명의 주체(subject)를 보호하는 것이다. 전적으로

근대적 의미론에 속하는 이 주체라는 개념2)은 한 인간의 자유와 자율 그

리고 자기결정권을 핵심적 표지로 삼고 있다. 즉, 주체의 ‘주체성’은 자유

와 자유의 외화(Entäußerung)로서의 자율을 통해 행사되는 자기결정권 속

에서 가장 뚜렷하게 표현되며, 이로써 주체는 행위의 자유를 확보하고 하

나의 ‘인격’주체가 된다. 이 맥락에서 생명은 이 주체성의 동반자이고, 그

래서 주체의 시작과 끝은 곧 생명의 시작과 끝이다. 그러므로 생명에 대

한 침해는 곧 주체에 대한 침해이다.

하지만 주체와 생명 사이를 잇는 이 단단한 끈을 주체 스스로 끊는

경우가 있다. 즉, 주체의 자기결정권의 행사가 자기결정권의 마감을 유발

하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한다. 자유의 실현이 생명의 단절과 궁극적으로

는 자유의 종말로 이어지는, 인간 특유의 실존적 현상은 - 이를 어느 정

도 부정적인 도덕적 선판단이 개입된 ‘자살’이라고 부르든, 아니면 어느

정도 긍정적 또는 중립적 선판단이 개입된 ‘자유로운 죽음(Freitod)’3)이라

1) 모든 주제, 모든 커뮤니케이션의 사회적 성격에 관한 근본적 통찰로는 N. Luhmann, Soziale Systeme, 1984; ders., Was ist Kommunikation?, in: ders., Soziologische Aufklärung 6, 1995, 113면 이하 참고. 2) 사회구조의 변화에 따른 인간의 주체적 개인성 및 이에 따른 주관적 권리의 형성과 관련된 의미론의 변화에 관해서는 N. Luhmann, Individuum, Individualität, Individualismus, in: ders., Gesellschaftsstruktur und Semantik, Bd. 3, 1993, 149면 이하; ders., Subjektive Rechte: Zum Umbau des Rechtsbewußtseins für die moderne Gesellschaft, in: ders., Gesellschaftsstruktur und Semantik, Bd. 2, 1993, 45면 이하 참고. 3) 독일어에서는 거의 일상용어로 자리 잡은 이 개념에 관한 개인사적, 역사적 이해에 관해서는 Jean Amery, 자유죽음: 삶의 존엄과 자살의 선택에 관하여, 2010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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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117

고 부르든 - 절대적이고 신성불가침이라는 의미론과는 상반되는 ‘비극적

충돌(헤겔)’의 순간이다. 그렇다면 바로 이 지점에서 생명에 대한 법과 도

덕의 보호는 끝나는 것인가? 즉,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처분하는 행위는

인격주체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근대적 법질서와 도덕질서가 개입할 수

없는 한계상황인가? 아니면 외면의 행위를 규율하는 법질서는 자유가 자

유의 종말로 이어지는 역설을 해소하기 위해, 주체의 소멸을 유발하는 주

체의 자기결정으로부터 그 주체 스스로를 보호할 가능성을 갖고 있는가?

만일 후자의 가능성이 현실이 된다면, 과연 생명은 주체의 처분영역으로

부터 벗어나 ‘그 자체’로서 독자적인 가치를 갖는 것인가? 그리고 이렇게

생명에게 독자적 가치를 부여하게 된다면, 주체의 의미론을 법질서의 시

작과 끝으로 엮어 놓은 근대적 의미의 민주적 헌법국가의 이념에 모순되

는 ‘반(反)주체’, ‘탈주체’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아닌가? 이렇게 ‘삶과

죽음’의 포괄성만큼이나 의문은 의문을 낳고, 끝없는 의문들에 대해 체계

적 연관성을 유지하면서 대답을 구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촉탁살인과 자살관여의 가벌성을 확정하고 있는 우리 형법(제

252조, 제1항과 제2항)을 감안하면 이 의문들은 손쉽게 해결되는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자살 자체를 금지할 수는 없지만, 자살에 관여하거나, 타

인의 도움으로 자살이라는 결과에 도달하려는 행위 자체를 금지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자살을 금지하려는 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러나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이 명확한 금지규범은 자유제한의 원리로서의

법치국가로서는 자유제한의 근거를 명시적으로 논증할 의무가 있다는 점

에서 커다란 의문에 봉착한다. 설령 자살을 자유행사의 범위에서 배제하

는 논증방식을 취할지라도, 그 자체에 대한 정당성을 논증해야 하며, 그

논증은 동시에 전체 법체계와의 연관성을 함께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

문이다. 더욱이 생명이라는 도덕적으로 민감한 영역은 당연히 근대적 법

질서의 바탕에 있는 윤리적 판단에 대한 성찰을 수반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점에서 형법 제252조의 보호법익인 ‘생명’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판

단은 특정한 형법조항의 정당성근거에 대한 성찰을 넘어, 법철학적 및 법

윤리적 성찰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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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배경을 감안하면서 이 글은 촉탁살인죄 보호법익의 구체적 내

용을 확인하기 위해 1) 자기결정권이라는 근대적 자유주의의 원칙과 생

명의 관계에 비추어 자살이 자기결정권의 행사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검토

하고, 2) 자기결정권의 제한 원칙으로서의 후견주의의 의미와 이에 대한

법도덕주의의 반론을 검토하면서 국가의 생명보호의무의 의미와 한계를

확인하며, 3) 후견주의로서도 정당화할 수 없는 한계사례에 대한 평가를

시도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생명‘가치’와 자유‘가치’ 사이

에 있을 수 있는 긴장성에 대한 감각을 높이고, 이 긴장성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을 탐색하고자 한다.

Ⅱ. 자기결정권과 생명(권)

오늘날 상당수의 죽음은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의료장치의 사용을 중

단하거나 생명유지 치료나 의약품의 제공을 중단한다는 의식적인 결정을

통해 이루어진다.4) 그러나 이 ‘죽음의 통제’는 “선택의 자유를 지지하는

자들과 생명권을 지지하는 자들 사이에 격렬한 투쟁의 전선”5)을 구축하

게 만들었고, 당사자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걸쳐서까지 커다란 윤리적

및 법적 문제에 봉착하게 만들었다. 물론 이처럼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등장하는 죽음의 문제는 심리적으로 전통적 의미의 ‘자연적’ 죽음과의 대

비를 통해 삶/죽음의 경계선을 인위적으로 결정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의 문제가 극명한 형태로 드러나지는 않는다고 볼

수 있다.6) 그렇지만 설령 삶의 마지막 단계에 해당할지라도 환자의 주체

4) 최소한 이 점에서는 “죽어가는 자의 고독”으로 현대의 한 단면을 이야기하는 엘리아스 (N. Elias, Über die Einsamkeit des Sterbenden in unseren Tagen, 1982)“의 진단은 틀린 셈이다. 오히려 죽음마저도 고독하지 못하도록 만든 것이 현대의 과학기술이다. 물론 그로 인해 죽음이 더욱 고독해졌을 수 있고, 그렇다면 궁극적으로는 엘리아스가 옳다. 5) A.M. Capron, Legal and Ethical Problems in Decisions for Death, in: Law, Medicine & Health Care 14(1986), 141면. 6) 이른바 ‘안락사’를 둘러싼 여러 이론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죽음에 대한 논의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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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전제하는 이상, 생명의 주체가 자신의 생명을 처분할 가능성과 그

한계에 대한 원칙적인 논의를 피해갈 수는 없다. 그렇다면 죽음의 현대적

현상형식과는 별개로 통상 ‘비자연적’ 또는 ‘반자연적’ 죽음으로 여겨지는

자살 역시 어떠한 결과주의(Konsequentialismus)적 해석도식과는 관계없

이 그 자체가 갖는 법적 및 윤리적 문제의 측면에서 다루지 않을 수 없

다. 특히 생명권의 법적, 윤리적 성격을 해명하지 않고서는 특정한 종교

적, 세계관적 가치가 주도권을 장악하고, 이로써 종교적, 세계관적 중립성

을 견지해야 하는 민주적 헌법국가와 법치국가가 특정한 도덕적 심정에

종속당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도 생명, 생명권과 관련된 모든

논의에서는 자유적 법치국가가 출발점이자 종착점이 되어야 한다.

  1. 자유 대 생명인가 또는 자유와 생명인가?

인간의 생명은 언제나 그 자체 선이며, 이런 의미에서 필연적으로 긍

정적인 것을 의미하고, 따라서 법질서는 인간생명이 경우에 따라서는 오

히려 부정적인 것이라고 결정하여 이를 소멸시키는 행위를 결코 용납해서

는 안 된다는 원칙을 일관되게 고수한다면, 사실상 생명과 죽음과 관련된

모든 문제는 매우 명확한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간접적 안

락사와 직접적 안락사를 달리 평가할 이유가 없으며, 자살과 같은 생명의

‘처분’은 어떠한 경우에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단순하고 명쾌한 결론에 도

달할 수 있다.7) ‘생명의 신성함’과 그에 따른 ‘절대적 생명보호’는 이 원칙

의 필연적 결론이 된다. 그리하여 생명의 ‘질’은 결코 삶과 죽음에 대한

결정의 기초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게 된다. 이와 동시에 생명은 이 생명

의 주체8)조차도 함부로 처분할 수 없는 독자적 가치의 세계를 구성한다.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보인다. 다시 말해 ‘삶의 마지막 단계’라는 사실이 심리적으로 부담감을 덜어주는 셈이다. 이 점은 예를 들어 생명의 자기처분권을 부정하면서도, 일정한 형태의 안락사를 허용할 수 있다는 절충적 견해에서 드러난다. 7) 형법적 맥락에서는 예컨대 배종대, 형법각론, 제7전정판, 2010, 92면 이하 참고. 8) 적어도 모든 생명을 관장하는 제3의 주체를 전제하지 않는 한, 오로지 구체적 개인만이 생명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이는 세속국가에서는 당연한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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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자기결정권과 후견주의

자기결정권을 실질적 내용으로 삼는 인간의 존엄이나 인격권과는 전혀 관

계없이 존엄주체와 인격주체가 자살할 권리를 갖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

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증방식은 주체의 물리적 존재, 즉 생명이 주체로서의 지위

가 존재하기 위한 유일하고 결정적인 조건이 아니라, 인간존엄의 핵심으

로서의 인격적 자율9)을 위한 전제조건의 하나일 뿐이라는 사고를 철저히

배격한다. 인격적 자율은 단지 법질서나 어떤 초월적 존재에 의해 ‘보장’

또는 ‘허용’된 것일 뿐이기 때문에, 그 존재의 조건을 유지하는 것은 자율

주체의 의무로 보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자율주체의 물리적 근거인 생명

에 대한 보호근거는 자율 자체의 보장으로부터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생

명보호가 자율에 앞서거나 최소한 자율과 동일한 지위를 갖는다고 해야

한다. 예컨대 자유 또는 자율은 주관적이고, 생명은 객관적이라는 헌법도

그마틱적 구성의 기저에는 이와 같은 견해가 깔려 있다.10) 하지만 이와

같은 논리구성은 난관에 봉착한다. 무엇보다 자율과 객관적 생명가치가

최소한 동등성을 보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생명의 처분

권을 자기결정의 영역에서 배제하여 생명에 대한 처분권을 박탈함으로써

생명보호를 목적으로 개인의 자율을 포괄적으로 보장한다는 자유법치국가

의 기본원칙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살에 대한 권리를 부인하

는 것은 자유권과 생명 사이의 조화가 아니라, 사실상 자유권의 배제이다.

이와는 반대로 생명을 스스로 처분하는 행위를 자기결정권의 범위에

서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원칙적으로 생명은 주체의 인격적 자유의 발현

에 기초하여 자율적으로 처분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게 되면, 이러한 자

9) 여기서 ‘자유’, ‘자율’, ‘자기결정’은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물론 엄격히 구별한다면 자율 은 자유의 ‘외화(Entäußerung)’를 뜻하기 때문에, 양자의 의미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자기결정은 자율(auto-nomia), 즉 ‘자기 스스로 법칙을 만든다’는 어원적 의미를 달리 표현한 것이다.
10) 이준일, 헌법학강의, 제4판, 2011, 421면: “헌법이 생명권을 통해 보장하는 것은 생명에 관한 주관적 ‘지위’와 객관적 ‘규범’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죽을 권리’를 인정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단지 ‘주관’과 ‘객관’ 사이의 연결고리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가 문제이고, 이 문제를 ‘객관’으로부터 해결할 것인지 ‘주관’으로부터 해결할 것인지를 명확히 밝히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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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121

기결정권의 행사를 법질서는 무조건적으로 보호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에 봉착한다. 생명은 다른 어떤 ‘이익’보다도 귀중한 것이며, 그 이익

의 포기는 되돌릴 수 없으며(irrevisible), 또한 생명을 보호하는 것은 - 굳

이 홉스(Hobbes)를 원용할 필요 없이 - 법질서의 1차적 과제 가운데 하

나이기 때문에, 법질서가 이러한 이익의 침해를 저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

히려 이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것은 법질서 자체의 기반을 위협할 수 있

다. 더욱이 죽음과 같은 한계상황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자율을 온전히 실

현한다고 볼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설령 자율적 생명처분의 가능

성을 전제할지라도 그러한 처분이 자율에 부합하는지에 따라 법질서의 개

입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특정한 행위가

자유와 자율에 근거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을 어떻게 설정하는가이다. 즉,

미리 자유와 자율의 의미를 객관적으로 확정하고, 예컨대 합리적인 자유

와 비합리적인 자유를 구별하여, 구체적 자율주체의 주관적 상황을 고려

할 것인지 아니면 외적 강제가 없고 주체의 자유로운 의지가 행사된다는

조건이 충족된다는 전제하에 객관적 합리성과는 관계없이 주체의 자율성

을 최대한 보장해야 하는가에 따라 생명을 스스로 처분하는 자유의 범위

와 한계가 달라진다.

이와 같이 생명가치를 자율의 범위에서 배제하는 입장이든 아니면 이

를 일단 자율의 범위에 포함시키면서도 다시 그 한계를 설정하려고 하

든, 궁극적으로는 자율의 의미내용을 어떻게 확정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된다. 전자가 자율을 전제하면서, 이와는 대립하거나 이보다 우선

하는 생명이라는 외재적(extern)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는 논증방식을 취

한다면, 후자는 거꾸로 생명가치를 포함하거나 이보다 우선하는 자율을

인정하면서, 생명가치의 중요성에 비추어 자율 내재적(intern)인 한계를

설정하려는 논증방식을 취한다. 더욱 단순화시킨다면, 전자의 논증에서는

생명가치의 절대성이 자율을 외재적으로 제한한다면, 후자의 논증에서는

자유 자체가 자유를 내재적으로 제한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근대의 거대이론(grand theory)을 대표하는 자율의 의미론(Semantik der

Autonomie)을 곱씹어보는 일은 이 문제에서도 피할 수 없는 숙명에 해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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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자기결정권과 후견주의

다. 그리고 이 숙명의 출발점이자 정점에 해당하는 칸트(Immanuel Kant)를

비켜갈 수 있는 길은 처음부터 차단되어 있다는 점도 미리 밝혀둔다.

  1. 자기결정권(자율)의 의무론적 지위와 생명가치

적어도 개인들의 총합으로서의 사회 또는 국가 전체의 효용을 도덕적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결과주의를 배제하고, 구체적인 개인을 그 자체 목

적(Selbstzweck)으로 이해하는 의무론(Deontologie)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면, 인격주체로서의 개인은 자신의 자유로운 결정과 이 결정에 따른 자유

의 외적 행사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타인에 대해 자신의 결

정을 정당화할 도덕적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율은

우리 자신에 대한 처분권을 뜻한다. 이와 같은 자율의 법철학적 시발점은

칸트의 법개념에서 찾을 수 있다.

(1) 칸트의 자율중심 법개념과 생명에 대한 자기처분

칸트의 유명한 법개념정의에 따르면 “법이란 한 사람의 자의(Willkür)

가 다른 사람의 자의와 자유의 일반법칙에 따라 서로 양립할 수 있는 조

건의 총체”11)이다. 이는 곧 정당한 실정법질서는 오로지 개인적 자유영역

들의 상호적 합치성(Kompatibilität) 원칙을 기준으로 삼을 때에만 행위규

범을 설정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12) 이 점에서 칸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의 행위 또는 나의 상태 일반이 모든 사람의 자유와 일반법칙에 따라 양립할

수 있는 한, 나의 행위 또는 나의 상태를 방해하는 것은 나에게 불법을 행하는

것이다.”13)

11) Kant, Metaphysik der Sitten, Einleitung in die Rechtslehre, § B, Kants Werke VI(Akademie Textausgabe, 1968), 230면. 이 명쾌한 법개념정의의 철학적 배경과 의미에 관한 명쾌한 설명으로는 심재우, 인간의 존엄과 법질서, 법률행정논집 12권, 1974, 103면 이하 참고. 12) W. Kersting, Wohlgeordnete Freiheit. Immanuel Kants Rechts- und Staatsphilosophie, 1992, 365면 이하. 13) Kant, e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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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123

따라서 정당한 자유행사에 관련된 보편적 합치성이라는 기준을 충족

하는 행위는 절대적으로 보호받아야 하는, 개인의 행위자유의 영역에 속

한다. 이 자유의 영역에서 개인은 ‘자의’14)라는 법적 자유를 향유한다. 이

법적 자유는 “무엇인가를 자신의 뜻대로 하거나 하지 않을 수 있는 능

력”15)이다. 타인이 이 영역에 개입하거나 이를 침해하는 것은 모두 불법

이다. 그리고 오로지 인격주체 자신의 법적 이익에만 관련되고, 타인의 자

유영역에 어떠한 해악도 미치지 않는 모든 행위는 인격의 자유영역에 해

당하기 때문에, 법이라는 수단을 동원하여 성숙한 인간을 그 자신으로부

터 보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타인에 대한 의무를 포함하지 않는, 자

기 자신에 대한 의무는 법의 개념영역에 속하지 않는다.16) 이처럼 성숙한

인간에 대한 보호와 후견의 부당성을 지적하려는 칸트의 이론구성은 그의

법개념이 강제의 정당성에 대한 물음으로부터 출발했다는 점에서 더욱 분

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칸트에 따르면 법적 강제는 한 인격이 타인의 자

유를 존중해야 할 법의무를 자발적으로 이행하지 않을 때, 이를 강제를

통해 관철시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의 권리에 대한 침해가 없는

자기관련적 행위에 국가가 강제를 통해 개입하는 것은 이미 개념적으로

불법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볼 때, 칸트의 법개념은 그가 ‘내적 나의 것

과 너의 것(das innere Mein und Dein)’17)이라고 부르는 자유와 신체, 즉

인격의 자유에 대한 처분권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동시에 이 처분권은 오

로지 자유영역의 ‘보편화가능성(Universalisierbarkeit)’이라는 기준에 의해

서만 법적 제한이 가능하다는 사실의 표현이다. 그렇기 때문에 칸트는 인

격의 자유를 “모든 인간에게 그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귀속되는 유일

하고 근원적인 권리”로 파악하고, 따라서 인격의 자유를 “타인의 강제적

14) 우리말에서는 보통 부정적 의미로 갖는 이 단어는 칸트의 맥락에서는 행위의 자유, 즉 외적 자유를 의미하기 때문에 결코 부정적 의미를 갖지 않는다. 참고로 칸트 저작의 영역본은 자의를 ‘choice’로 번역한다.
15) Kant, Metaphysik der Sitten, 229면. 16) 이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O. Höffe, Kategorische Prinzipien. Ein Kontrapunkt der Moderne, 1994, 87면 이하 참고. 17) Kant, Metaphysik der Sitten, 23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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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자기결정권과 후견주의

자의로부터의 독립성”18)이라고 규정한다.

1793년에 출간된 『이론으로는 맞을지 모르나 실천에서는 쓸모가 없

다는 일반적 생각에 관하여』에서 인간으로서의 자유를 법의 선험적 기본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그의 방식대로(즉, 그가 다른 사람도 이렇게 하면 행복하리

라고 생각하는 대로) 행복해지라고 강요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의 자유가 일반법

칙에 따라 양립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비슷한 목적을 추구하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각자는 스스로 생각한 방식에 따라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19)

그렇기 때문에 국가의 입법은 이미 선험적으로 선의의 쾌락주의적 의

도에서 시민을 보호하고 양육하는 어떠한 행위도 해서는 안 될 의무를 부

담한다.20) 이 점을 칸트는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국민에 대해 마치 아버지가 아이에게 하듯이 선의의 원칙을 기초로 수립된 정

부, 즉 신민들로 하여금 자신들에게 무엇이 유익하고 무엇이 해악인지를 알 수

없는 미성숙한 아이처럼 그저 소극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가부장

적 정부(imperium paternale)는 ...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전제정이다.”21)

이처럼 거의 극단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유주의적인 법개념을

일관되게 유지한다면 생명에 대한 자기처분은 법적 금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자살은 타인의 자유영역에 대한 침해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칸트는 자살에 관한 한, 정반대되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는『도덕형이상

학』의 제2부인 ‘도덕론(Tugendlehre)’에서 자살(Selbstentleibung)은 범죄

이고, 살인이라고 단정한다.22) 즉, 자살은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

18) Kant, ebd., 239면. 19) Kant, Über den Gemeinspruch: Das mag in der Theorie richtig sein, taugt aber nicht für die Praxis, Kants Werke VIII, 1968, 290면. 20) W. Kersting, ebd., 364면. 21) Kant, e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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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125

의 위반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자살이란 인간이 “그 자신의 인격 속에 있

는 도덕성의 주체를 말살”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서 칸트는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homo noumenon)과 경험적 존재로서의 인간

(homo phaenomenon)을 구별하면서, 후자의 경험적 존재는 전자의 이성적

존재, 즉 인간의 인격성의 전제조건이고, 따라서 자살을 하는 인간은 그의

인격성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본다. 결과적으로 인격 자체는 그 주체의 처

분의 대상이 아니며, 주체의 목적설정을 위한 일방적 수단으로 만들어서

는 안 된다는 정언명령이 자살의 경우에도 타당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 칸트는 자세한 논거를 제시하지 않는다.23) 그렇지만

우리의 맥락에서는 무엇보다 자살을 범죄로 단정하는 칸트의 서술이 ‘법

론(Rechtslehre)’이 아니라, ‘도덕론’에서 제기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

요가 있다. 즉, 충분한 논증이 제시되어 있는지 여부와는 관계없이, 칸트

의 자살금지는 인격의 도덕적 의무의 내용이 될 수는 있지만, 자유영역의

경계를 설정하는 법의 세계에서는 자살금지가 법의무가 될 수 없다. 더욱

이 법과 도덕의 엄격한 분리라는 일반적 관점에서 볼 때 ‘자기 자신에 대

한 법의무(Rechtspflicht gegen sich selbst)’24)는 일종의 형용의 모순으로

서, 자살금지를 이 논거를 통해 법적으로 정당화할 수는 없다.25)

22) Kant, Metaphysik der Sitten, 422면 이하. 23) 이에 관해서는 U. Klug, Kontradiktionen in der Suizidverbotslehre von Kant, in: Festschrift für Ernesto Gazon Valdes, 1992, 127면 이하; 칸트의 자살금지논거를 ‘자기모순논거’로 파악하고, 이 논거가 타당성이 없음을 밝히고 있는 K. Seelmann, Selbstwiderspruch als Grund für Rechtszwang, in: Festschrift für Emil Angehrn, 2006, 250면 이하 참고. 24) 이를 자기침해의 법적 근거로 삼는 입장으로는 M. Köhler, Die Rechtspflicht gegen sich selbst, in: B. Byerd/J. Hruschka(Hg.), Jahrbuch für Recht und Ehtik, Bd. 14, 2006, 425면 이하; A. Maatsch, Selbstverfügung als intrapersonaler Rechtspflichtverstoß. Zum Strafunrecht einverständlicher Sterbehilfe, 2001. 이에 대한 비판으로는 B. Fateh-Moghadam, Grenzen des weichen Paternalismus, in: ders./S. Sellmaier/W. Vossenkuhl(Hg.), Grenzen des Paternalismus, 28면 이하 참고. 25) 이 점에서 자살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자살자를 처벌할 수 없기 때문에 명문으 로 금지하지 않았다거나, 자살관여와 촉탁살인의 가벌성으로부터 우회적으로 법적 자살금지를 도출하는 논증(예컨대 김종원, 형법강의, 상권, 1965, 48, 49면; Eberhard Schmidhäuser, Selbstmord und Beteiligung am Selbstmord in strafrechtlicher Sicht, Festschrift für Helmuth Mayer, 1974, 811면)은 설득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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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자기결정권과 후견주의

(2) 자율과 이익

법적 자유를 최상의 원칙으로 삼는 칸트의 법철학은 궁극적으로는 인

격에 대한 존중의무에 대한 이론으로서 “하나의 인격은 단지 인격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미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으로 집약된다.26) 이 원칙은 무엇

보다 인격주체 자신의 삶에 대한 해석을 그 주체 스스로에게 맡길 것을

요구한다. 다시 말해 인격주체 외부에서 그에 대해 “더 좋은” 이익을 강

요해서는 안 된다. 만일 자유적 법치국가 스스로 그와 같은 강요를 법의

형식을 빌려 행사한다면, 이는 법치국가 자신이 서있는 자신의 규범적 토

대 자체를 붕괴시키는 것이다.27)

이러한 자유주의적 프로그램은 법적으로 보호되는 이익의 관점에서도

재구성이 가능하다. 예컨대 로널드 드워킨은 자유사회에서 자유로운 개인

이 갖고 있는 이익을 크게 두 가지로 구별한다. 첫째, 개인은 자신의 경험

을 통해 무엇인가를 향유하는 이익을 갖는다. 고통이 없는 상태, 신체적

완결성, 생명 등은 이러한 향유적 이익(experiential interests)에 속한다.

둘째, 개인은 향유적 이익에 앞서 자율 또는 가치와 관련된 비판적 이익

(critical interests)도 갖고 있다. 즉, 한 개인의 삶을 전체적으로 좋은 삶

으로 만들어 주는 특정한 신념이나 성격과 관련된 이익도 갖는다. 이 비

판적 이익은 다른 사람이 대신해서 그 내용을 규정하거나 표현할 수 없

다.28) 다시 말해 설령 다수의 개인들이 공통의 향유적 이익을 갖고 있다

고 할지라도, 각자에게 무엇이 향유적 이익이 되는지는 전적으로 각자의

비판적 이익에 따라 결정된다. 이러한 구별에 따른다면, 개인의 비판적 이

익은 어떠한 향유적 이익이 그 개인에게 중요하고 어떠한 향유적 이익은

다른 향유적 이익을 위해 희생시켜야 하는지를 평가하는 기초가 되기 때

26) 이에 관해서는 칸트 실천철학 전체를 이 원칙으로 집약하고 있는 Stanley L. Benn, The Principle of Respect for Person, in: ders., A Theory of Freedom, 1988, 103면 이하의 서술을 참고. 27) 따라서 법체계는 이념적으로 모든 법규와 제도가 이와 같은 자유의 원칙에 따라 정당 화할 수 있는 일관된 구조에 통합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에 관해서 는 R. Dworkin, 법의 제국, 255면 이하, 563면 이하. 28) R. Dworkin, 자유의 지배영역, 2008, 213면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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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127

문에, 비판적 이익은 향유적 이익보다 더 높은 차원에 있다. 그렇다면 인

격에 대한 존중이라는 원칙은 그와 같이 가치와 관련된 비판적 이익의 주

체로서의 인격을 존중하고, 인격들 상호간에 이를 승인하고 있다는 사실

에 근거한다. 그리하여 자유로운 사회의 구성원들은 각자의 가치관에 따

라 스스로에게 좋은 삶과 올바른 삶을 영위할 기본적 능력과 권리를 갖고

있고, 서로 상충되고 양립할 수 없는 대안들 가운데 선택을 할 수밖에 없

을 때에는 각자의 신념과 가치관에 따라 대안들을 비교형량하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과 권리를 갖고 있다고 전제하며, 동시에 이러한 능력

과 권리를 인격들이 쌍방적으로 승인한다.29) 그리고 이러한 형태의 쌍방

적 승인은 개인이 사회 속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을 펼칠 수 있는 전

제조건이다.

이와 같이 자율의 핵심을 개인의 비판적 이익과 연결시킨다면, 자율

적 인격이란 개인적 목표를 추구하면서 타인과 관계를 맺고, 이를 통해

자신의 인격적 통합성(integrity) 및 존엄과 자기존중에 관한 개인적 신념

을 구체화하고 그에 따른 부담을 수용하는 행위주체이다. 따라서 자율적

인격은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의 방식인지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자유를 향

유하는 이익의 주체이고, 이 점에서 자율적으로 행위하는 자는 곧 자신의

도덕적 세계를 함께 창조하는 자이다. 이러한 논증을 인정한다면, 개인은

적어도 다른 개인에게 위법한 방식으로 손해를 가하지 않는 한, 자기결정에

대한 도덕적 권리를 보유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점을 파인버그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가장 기본적인 자기결정권이란 자신이 어떻게 살고자 하는

지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권리, 특히 삶의 극히 중요한(critical) 결정을 스

스로 내릴 수 있는 권리이다.”30) 파인버그가 ‘주권적 권력(sovereign right

)’31)이라고 부르는 이 자기결정권은 원칙적으로 외부의 개입과 간섭을 배

제하는 ‘최상의 카드(trump card)’32)이다. 그러므로 자기결정권의 주체가

29) R. Dworkin, Sovereign Virtue: The Theory and Practice of Equality, 2002, 449면 이하. 30) J. Feinberg, Harm to Self. The Moral Limits of the Criminal Law, Bd. III, 54면. 31) J. Feinberg, ebd., 47면 이하, 52면 이하. 32) J. Feinberg, ebd.,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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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자기결정권과 후견주의

설령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그의 객관적 이익 또는 장기적인 효용을 스스

로 해칠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일지라도, 결정주체가 결정과 관련

하여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고 자발성을 확보하고 있는 한, 그 결정은 존

중받아야 한다. 이 점에서 개인의 자기결정권은 분명 자기 스스로를 해치

는 행동까지도 포괄한다. 즉, 개인적 결정의 자유라는 법익은 다른 법익에

우선하며, 그에 따라 개인의 자유를 다른 복리와 비교형량하는 것은 원칙

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유 또는 자기결정이라는 이익을 ‘복

리’라는 막연한 개념 속에 포함되어 있는 한 가지 요소로 생각할 수 없

다.33) 이렇게 자유와 자율의 우선권을 인정한다면, 인간이 자신의 삶과 관

련하여 선호하는 방향을 추구하면서 스스로를 해칠 수 있는 가능성까지도

감수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생명을 자율적 처분대상에 포함시켜 ‘자유 대 생명’이라는 배타적

관계가 아니라, ‘자유와 생명’이라는 함축관계를 인정할지라도, 과연 어떠한

경우에 그리고 어떠한 조건하에서 이루어지는 행위결정이 자유의 자율적

행사로 볼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로 남는다. 단순화를 감수한다는 전제하에,

자율을 객관화하면 할수록 개인의 주관적 자유행사의 외연(Extension)은

좁아지고, 이에 반해 자율을 주관적 관점에서 판단할수록 자율의 외연은

넓어진다. 다시 말해 자율의 내포(Intension)에 객관적 기준을 더 많이 추

가할수록 특정한 행위가 자율의 소산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여지는 그만

큼 줄어든다. 예컨대 순간적인 충동이나 일시적인 고통으로 인해 자신의

생명을 처분하는 행위는 ‘객관적’ 의미의 자율이 아니라고 본다면, 설령

생명이 자율적 처분의 대상이라고 전제할지라도 그러한 ‘자살’행위는 자율

적 자기결정에 따른 생명포기가 아니다. 이와는 달리 외부의 물리적 강제

33) 이는 칸트의 자유주의를 구성주의(construtivism)로 변용하고 있는 롤즈(Rawls)의 기본적 출발점이기도 하다. 즉, 객관적 행복의 적절한 보호(좋은 것; the good)보다 인격의 자기결정권의 존중(올바른 것; the right)이 우선한다는 기본원칙(이에 관해서 는 John Rawls, Der Vorrang des Rechten und die Idee des Guten, in: ders., Die Idee des politischen Liberalismus, 1992, 255면 이하; ders., Political Liberalism, 1993, 173면 이하. 이에 관한 기본적인 설명은 M. Mahlmann, Rechtsphilosophie und Rechtstheorie, 2010, 160면 이하 참고)은 자율이 행복에 우선하는 이익이라는 자유주 의적 기본원칙을 표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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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129

나 기망이 없는 상태에서 이루지는 한, 어떠한 결정이든 자기결정권의 행

사로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출발하면, 그와 같은 충동적 행위 역시

자율적 결정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렇게 ‘자율’의 의미내용을 어떻게 이해

하느냐에 따라 자율의 존재 여부 및 그 범위가 달라진다. 즉, 자유와 자율

의 우선을 원칙으로 하더라도, 다시 자유내재적 한계를 논의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 점에서 자율의 의미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

인 논의를 하지 않을 수 없다.

  1. 자율개념과 자율의 한계

자율적인 인격의 발현이 보편적인 도덕법칙과 합치한다는 칸트의 이

상적 자율개념(정언명령: “너의 의지의 준칙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

의 원칙으로서 타당할 수 있도록 행위하라!”34))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현

실에서 등장하는 인격의 자율은 각각의 경우에 따라 그러한 이상에 더 근

접한다거나 그로부터 많이 탈피했다고 판단할 수 있는 단계적이고 등급적

인 개념이다. 이 점에서 자율은 이미 주어져 있는 실체는 아니지만, 인격

이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선택과 결단 행위를 통해 삶을 형성하

고 삶의 과정을 규정하는 절차적 능력으로서 인격주체는 그러한 이상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도덕적’ 의무를 부담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리하여 자율적인 삶은 곧 이성적인 삶의 계획에 따르는 삶으로서, 특정

한 결정을 내릴 때에는 결정과 관련된 중요한 사실들을 완벽하게 인식하

고, 결정이 어떠한 결과를 낳을 것인지를 섬세하게 검토하는 이성적 능력

을 온전히 구사할 때 비로소 그러한 삶의 계획을 실현할 수 있다고 하게

된다. 따라서 자율은 주체가 갖고 있는 욕구나 희망에 대해 이를 비판적

으로 성찰하고, 더 고차원에 있는 가치나 선호(preference)에 비추어 1차

적인 욕구와 희망을 수용하거나 변경하려고 시도하는 능력을 의미한다.35)

34) Kant, 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Kants Werke IV, 1968, 421면. 35) G. Dworkin, The Theory and Practice of Autonomy, 1988, S. 20. 그래서 제럴드 드워킨은 성찰능력을 ‘2차적 질서의 능력(second-order-capacity)’이라고 부르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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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자기결정권과 후견주의

그러나 특정한 이상적 상태를 기준으로 자율의 존재 여부를 판단하

고, 단계적 발전을 거쳐 완벽한 상태에 도달해야 한다고 이해하게 되면,

자율은 결코 인격주체로 하여금 자기책임에 따른 결정을 할 수 있는 자유

영역을 보장하지 못하게 된다. 왜냐하면 경험적으로 자유의 행사로 여겨

지는 대다수의 자기결정은 이상적 자율(예컨대 칸트의 정언명령에 완벽하

게 부합하는 자유의 행사)에 도달하지 못한 또는 아직 그러한 발전단계에

도달하지 못한 부자유 또는 비자율적 결정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36) 다

시 말해 자율 또는 자율능력의 내용을 이상화(Idealisierung)할수록 자유와

자율은 그만큼 축소된다. 따라서 자기결정에 대한 도덕적 또는 법적 권리

라는 의미의 자율은 자유보호의 영역과 관련하여 일종의 경계개념으로 이

해해야 한다.37) 즉, 자율은 자율주체가 합리성과 자기지배능력과 관련된

최소한의 요구(경계)를 충족시키고 있는 한, 자율적인 삶에 대한 어떤 이

상에 얼마만큼 도달했는가나 객관적인 이익을 최적의 상태로 실현했는가

에 관계없이 그 자체만으로 자율의 행사로 인정해야 한다.38) 이 점에서

민주적 헌법국가에 부합하는 자율은 각 개인에게 자신의 고유한 삶의 영

역에 대해 자기책임에 따라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규범적 관할권을 보장한

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이 점에서 자율주체가 자신의 문제에 대한 결정

권을 갖고 있다고 판단하는 데에는 주체가 원칙적으로 결정능력이 있다는

의미의 자율만으로 충분하다. 그렇지 않다면 개인이 결정에 대한 규범적

관할권을 갖는다는 민주적 법질서의 기본전제의 기초가 상실된다. 즉, 어

떤 이상적 자율의 실현 또는 평균적인 사회구성원의 자율을 기준으로 삼

를 자율로 파악한다. 이 점은 객관적 실존조건에 대한 주관적 실존조건의 우위로 표현할 수도 있다. 즉, 생명, 신체, 재산, 명예와 같은 객관적 실존조건은 인격이라는 주관적 실존조건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으며 그 자체 자기목적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심재우, 인간의 존엄과 법질서, 106면).” 36) 자유개념의 이러한 측면에 대해서는 St. Benn, A Theory of Freedom, 10면 참고. 37) St. Benn, ebd.; J. Feinberg, ebd., 29면. 38) 자유와 자율이 갖는 이러한 의미에 관해 자세히는 A. Honneth, Dezentrierte Autonomie. Moralphilosophische Konsequenzen aus der modernen Subjektkritik, in: Ch. Menke/M. Seel(Hg.), Zur Verteidigung der Vernunft gegen ihre Liebhaber und Verächter, 1993, 153면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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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131

아 개인의 규범적 관할권을 박탈하고 자율을 인정하지 않게 되는 결과에

도달한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자율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한, 다시 말해

자유의 원칙에 기초한 민주적 헌법국가의 원칙의 완전한 발현을 전제하는

한, 자율개념은 등급과 단계의 개념이 아니라, 2치적(binär)인 한계개념으

로 파악하여, 인격주체는 자율적이거나 자율적이지 않거나 둘 가운데 어

느 하나에 속한다고 파악해야 한다.39) 그리하여 최소한의 기초적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 당사자는 스스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거나 동의를

할 수 없고, 그를 대신하여 국가를 포함한 타자가 그를 대신하여 결정을

내리도록 할 수 있다.40) 그러므로 개인이 자신의 법익(생명을 포함하여)

을 자신의 결정에 따라 처분할 수 있는 규범적 능력이 있다고 전제하면

서, 자율의 흠결(통찰능력과 동의능력의 결여, 충분한 정보의 결여 또는

협박, 강제, 착오, 기망 등으로 인한 의사의 흠결)이 배제된 상태라면 당연

히 처분과 관련된 의사표시나 동의의 실효성을 인정해야 한다.

이렇게 자율적 결정능력을 - 결정의 기초가 되는 자율개념의 경계선 바

깥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소극적 확인을 통해 - 전제할지라도, 그러한 능력의

행사가 결정주체의 이익에 비추어 과연 ‘합리적’인 결정인지 여부는 별개

의 문제영역에 속한다. 즉, 자율적인 인격과 자율적인 행위에 해당할지라

39) 2치적 한계개념으로서의 자유에 관해서는 E. Garzon Valdes, Kann der Rechtspaternalismus ethisch gerechtigt werden?, in: Rechtstheorie 18(1987), 273 이하 참고.
40) 통찰능력과 판단능력이 없는 자에게 행위능력, 책임귀속능력을 부정하는 법제도는 이러한 사정의 반영이다. 물론 이와 같은 기초적 능력을 기준으로 삼을 때에도 ‘자율주 체’로부터 배제되는 범위는 상당히 넓다. 하지만 일단 기초능력의 존재를 인정하는 규범적 전제에서 출발한다면, 그 부존재를 증명하는 입증책임은 자율을 부정하는 쪽 에서 부담한다는 점에서, 특정한 행위(예컨대 ‘자살’)의 자율성을 자율과는 무관한 객관적 가치를 통해 제한하거나, 자율성 자체를 의문시하는 입장을 우선하는 경우와 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간단히 말한다면 자율로부터 출발하여, 그 부존재를 문제 삼는 쪽으로 향하는 것과 자율의 영역에서 배제하거나 자율을 부정하는 것으로부터 자율의 여지를 인정하는 쪽으로 향하는 방향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즉, 원칙과 예외의 구성방향의 차이가 있다. “의심스러울 때는 자유의 이익으로(in dubio pro libertate)”라는 자유적 법치국가원칙이 갖는 의미는 이 측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원칙에 대해서는 Werner Maihofer, 법치국가와 인간의 존엄, 1994, 147면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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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자기결정권과 후견주의

도, 인격 또는 행위가 합리성의 요구를 충족하는지 여부와 합리성의 정도

를 물어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파인버그는 비합리적(irrational)인 인격

/행위와 비이성적(unreasonable)인 인격/행위를 개념적으로 구별하면서,

합리성을 아예 갖추지 못한 전자의 경우에는 자율의 형식 자체가 배제되

고, 구체적 결정의 규범적 관할권 자체가 차단되는데 반해, 단지 이성이

최적의 상태로 실현되지 않은 뿐인 후자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고 한

다.41)

물론 현실의 인간은 사실상 모든 결정상황에서 결코 완벽하게 이성적

으로 행동할 수 없다. 근대적 합리성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경제적 인간

(homo oeconomicus)마저도 정보와 정보처리능력의 제한이나 여러 가지

심리적 메커니즘으로 인해 완벽한 합리성을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도덕적 판단이나 결정에서는 더욱 더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장기적인 측

면에서 개인의 합리적인 이익에 반하는데도 순간의 욕구와 희망이 행위의

지침이 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보통의 경우 개인은 결코 정합성을 갖춘

가치의 질서를 내면화하지 않으며, 다수의 욕구와 희망 사이에 존재하는

불일치와 모순을 배제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그 때문에 일관성을 갖

는 욕구의 체계를 실현하는 일은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 특히

삶의 목표에 중대한 의미를 갖는 본질적인 결정들은 서로 화합할 수 없는

(incommensurable) 선택의 대상들이며, 다수의 선택가능성들을 하나로 결

집할 수 있는 포괄적(transitive) 질서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42) 그러나 이

러한 난관 속에서 내려진 결정이라고 해서, 그 결정이 이성적인 결정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어쩌면 여러 가지 결정들이 서로 모순되고 화합

할 수 없는 상황(예컨대 삶과 죽음)에서 결정을 내린다는 사실 자체가 이

자기결정의 과정에서 주관적이고 의지적인 요소를 더욱 강하게 획득한다

고 볼 수도 있다. 따라서 한 인격의 삶에 중대한 의미를 갖는 결정에 대

해서는 객관적 의미의 이성과 합리성이라는 기준으로 주체의 결정을 판단

하거나 결정에 개입할 ‘근거’가 더욱 약해진다.43) 이 점에서 인격적 자율

41) J. Feinberg, ebd., 107면 이하. 42) 이에 관해서는 J. Raz, The Morality of Freedom, 1986, 325면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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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133

을 전제한다면 주체의 자율적 결정이 합리적이라거나 이성적이라는 판단

은 1차적으로 그 주체의 주관적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또한 결정의

주관적 합리성을 추정하는 데에서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44)

그러나 이와 같은 합리성‘추정’은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 추정이라는

점에서 추정을 반박할 가능성이 있다. 즉, 파인버그의 구별에 따라 처음부

터 자율의 행사라고 볼 수 없는 비합리적 결정과는 별개로, 결정이 자율

의 행사와 표현으로 볼 수 있지만, 자율주체 자신의 장기적 이익에 비추

어 볼 때 결코 이성적이지 않은 경우에는 합리성의 추정을 반박할 수 있

다. 특히 자살과 같이 자율주체의 자율성 자체를 소멸시키는 되돌릴 수

없는 실존적 결정의 경우에는, 합리성추정을 반박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욱 높아진다. 이 점에서 자율은 이미 내재적 한계를 안고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어디까지나 자기결정권의 행사라는 사실 자체에는 변화가 없다.

그 때문에 합리성추정을 반박하는 근거는 자율주체와는 독립된 객관적 가

치로부터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 자신의 주관적 상황에 대한 판단으

로부터 도출되어야 한다. 그럴 경우에만 자율적 개인에게 자신의 삶을 나

름의 가치관에 따라 수행할 수 있는 근원적인 도덕적 권리를 인정하고,

그러한 인격적 존재가 갖는 인간존엄을 존중하는 자유법치국가원칙을 최

대한 실현하는 것이 된다.

43) 라즈(J. Raz, ebd., 387면)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근거를 마련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형성한다.” 여기서 ‘근거’는 구체적인 원칙적으로 개별 주체의 근거이고, 따라서 개인의 결정에 개입하는 외부적 근거가 아니다.
44) 이 맥락에서 파인버그(J. Feinberg, ebd., 64면)의 다음과 같은 서술을 음미할 가치가 있다. “자율이 의미를 가지려면, 착각하거나 바보 같은 결정을 내리거나 커다란 위험 을 무릅쓰는 권리도 있어야 한다. 그와 같은 권리가 없다면 자율적 권리에 대한 생각 자체가 사라져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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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자기결정권과 후견주의

  1. 촉탁살인죄의 보호법익과 자율

형법 제252조 제1항은 “사람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그를 살해한

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형벌

구성요건은 제250조의 살인죄에 관한 특별구성요건으로서, 통상 그 보호

법익을 일반살인죄의 연장선상에서 ‘생명’이라고 본다.45) 즉, 설령 ‘피해자’

가 진지하고 명시적으로 동의할지라도, 생명의 처분에 관한 한, 그러한 동

의는 법적 효력이 없다는 사고에서 출발한다. 무엇보다 이 조항은 가벌성

이 없는 자기침해와 개인의 동의에 따른 타자침해 사이의 차이를 인정하

지 않는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즉, 통상 자신의 법익을 스스로 침해하는

행위를 처벌하지 않는 형법의 일반원칙의 예외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이

러한 예외로서의 촉탁살인죄는 과연 무엇을 가벌성 근거로 삼는가? 적어

도 생명의 신성불가침 도그마를 거부하고, 또한 개인의 자유를 생명의 영

역에까지 확장한다면, 촉탁에 의한 살인행위 자체가 가벌성의 근거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 않다면 자살이나 자살미수도 당연히 처벌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도덕률’이나 ‘금기’46)와 같이 개인의 자율과는 전

혀 무관한 제3의 기준을 끌어들여 가벌성의 근거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

나 그렇게 되면 촉탁살인죄의 보호법익은 구체적 생명이 아니라, 추상적

이고 객관적인 ‘생명가치’를 보호하는, 보편적 법익이 되고 만다. 이는 조

문의 체계상 쉽게 인정할 수 없는 결론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격주체의

45) 김일수, 서보학, 형법각론, 제7판, 2007, 18, 36면; 김성돈, 형법각론, 제2판, 2010, 27, 47면; 배종대, 형법각론, 제7전정판, 2010, 51, 89면; 이재상, 형법각론, 제8판, 2012, 9, 31면; 임웅, 형법각론,제3정판, 2011, 10면. 46) 물리적 또는 외적 측면에서 촉탁살인은 당연히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다. 즉, 자살은 법익주체가 삶과 죽음에 대한 결정을 할 뿐만 아니라, 그 결정을 직접 현실로 옮기는 것이고, 이에 반해 촉탁살인의 경우에는 결정주체와 결정의 수행주체가 구별된다. 만일 자율주체의 자기책임에 따른 결정을 중시한다면, 양자의 구별은 단지 현상적 차이일 뿐, 본질적으로 커다란 차이가 없다. 이에 반해 생명의 처분을 타부로 삼게 되면 양자의 같은 점과 다른 점에는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물론 타부의 내용을 세분하여 촉탁을 받아 다른 사람을 살해하는 자가 느끼게 될 고뇌와 고통을 방지하기 위해 촉탁살인의 가벌성을 정당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해는 형법적으로 불가능하다. 보호대상인 주체가 형벌대상의 주체가 되는 역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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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135

자율성의 관점을 유지하면서 이 구성요건의 보호법익을 조금 더 구체적으

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자유외재적-보편적 논증방법

촉탁살인죄의 가벌성을 정당화하는 가장 직관적인 방법은 생명침해를

사회적 금기로 인정하여, 생명은 어떠한 경우에도 절대적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방법이다.47) 이 논증방법은 다시 인간존엄으로까지 확장

하여, 촉탁자의 동의와 요구가 있을지라도 ‘살인’은 촉탁자 자신의 인간의

존엄에 반한다고 볼 수도 있다.48) 그러나 만일 이와 같이 자유외재적 정

당화를 시도하면, - 앞에서 보았듯이 - 자유와 자율의 위치를 전혀 확인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엄의 실질 역시 자율주체의 존엄을 보

호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인간상(Menschenbild)’의 보호로 추상화하여,

구체적 존엄주체가 처분할 수 없는 어떤 형이상학적 가치를 보호대상으로

삼는 난점이 발생한다.49) 다른 한편 촉탁살인을 통해 죽음을 의욕하는 것

이 공동체를 위협한다는 논증도 설득력이 없다. 촉탁살인죄의 가벌성 근

거를 공동체의 존속이라고 보게 되면, 자살을 금지해야 할 뿐만 아니라,

외국으로의 이주 또한 금지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50) 그러므로 형법 제

47) 특히 촉탁살인뿐만 아니라, 자살관여까지 동일한 형량으로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우리 형법의 경우에는 이러한 논증방식이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고 보인다. 물론 현행법의 이러한 ‘강경한’ 태도를 다시 자유권적 기본권과 같은 헌법적 차원이나 자율 이라는 법윤리학적 카테고리를 함께 고려하려는 이 글은 이미 이러한 단순한(명쾌 한?) 논증방식과는 상당히 많은 거리를 두고 있다.
48) 대표적으로는 H. Wilms/Y. Jäger, Menschenwürde und Tötung auf Verlangen, in: ZRP 1988, 41면 이하 참고. 49) 인간존엄의 보호를 특정한 ‘인간상’의 보호로 추상화하는 것에 대한 비판으로는 U. Neumann, Deontologische und teleologische Positionen in der rechtlichen und moralischen Beurteilung von Sterbehilfe und Suizidteilnahme, in: H. Jung u.a.(Hg.), Recht und Moral, 1991, 393면 이하; ders., Die Tyrannei der Würde, in: ARSP 84(1998), 153면 이하; ders., Strafrechtlicher Schutz der Menschenwürde zu Beginn und am Ende des Lebens, in: E. Manoledakis/C. Prittwitz(Hg.), Strafrecht und Menschenwürde, 1998, 51면 이하(53면) 참고.
50) 이는 자살의 법적 금지에 대한 전통적인 반론에 해당한다. 이에 관해서는 R. Ingelfinger, Grundlagen und Grenzbereich des Tötungsverbots, 2004,170면 이하, 173면 이하; D. Sternberg-Lieben, Die objektive Schranken der Einwilligung 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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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자기결정권과 후견주의

252조의 목적을 생명 ‘그 자체’의 보호라든가 법공동체 구성원들의 생명유

지에 대한 법질서의 무조건적 이익으로 포착할 수 없다. 이 점은 특히 안

락사에 관한 최근의 논쟁과 그 결과를 고려하면 더욱 분명해진다. 모든

형태의 안락사를 절대적으로 금지하는 입장이 아닌 한, 보통 소극적 안락

사와 간접적 안락사51)는 - 그 도그마틱적 구성의 차이와는 관계없이 -

가벌성이 없다고 인정한다. 물론 안락사의 대상이 되는 인격주체의 승낙

또는 최소한 추정적 승낙을 전제한다. 그렇다면 흔히 말하는 절대적 생명

보호의 ‘절대성’은 일종의 수사학일 뿐이다.

이러한 규범적 논증과는 달리 촉탁살인을 처벌하지 않을 경우에는 타

인의 생명에 대한 존중심이 사라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촉탁살인의 가벌

성을 정당화하는 소극적-경험적 논증이 있다. 이른바 ‘경사면효과(slippery

slope-effect)’로 불리는 이 논증52)은 촉탁자의 동의만으로 사람을 살해하

는 것이 일반화하면 인간 사이의 관계가 황폐화하고, 심지어 동정심에서

살인을 저지르는 ‘생명경시풍조’가 만연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직관적으로

는 충분한 설득력을 갖는 것처럼 보이는 이 논증은 논증의 경험적 성격이

가장 커다란 맹점이다. 즉, 이 논증이 타당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경험적

근거를 제시해야 하지만, 실제로 촉탁살인죄를 폐지하여 그 경험적 결과

를 입증할 수 없다는 현실적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안락사와 같은 촉

탁살인의 예외를 인정한 선례가 곧 바로 생명경시를 낳았다는 경험적 증

거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더욱이 이 논증의 설득력을 가정할지라도, 이를

촉탁살인죄의 가벌성근거로 삼게 되면 법률의 목적이 결국은 죽음을 원하

Strafrecht, 1997, 114면 이하 참고.
51) 환자의 고통을 줄여준다는 ‘동기’가 중요하기 때문에 간접적 안락사는 ‘살인’에 해당하 지 않는다고 보는 것은 형법도그마틱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동기와 고의는 명백히 구별되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서는 R. Merkel, Teilnahme am Suizid - Tötung auf Verlangen - Euthanasie. Frangen an der Strafrechtsdogmatik, in: R. Hegselmann/ders.(Hg.), Zur Debatte über Euthanasie,1992, 90면 이하; ders., Aktive Sterbehilfe, Festschrift für Friedrich-Chritian Schroeder, 2006, 298면 이하 참고. 52) 이 논증을 통한 촉탁살인죄의 정당화에 관해서는 R. Ingelfinger, ebd., 189면 이하 참고. 논증 자체에 대한 분석에 관해서는 F. Saliger, Das Dammbruchargument in Medizinrecht und Medizinethik, in: B. Byrd/J. Hruschka/J. Joerden (Hrsg.), Jahrbuch für Recht und Ethik, Band 15(2007), 633면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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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137

는 사람의 구체적 이익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존중심이라는 사회 일반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 되어, 자율주체와는 무관한 보편적 가치가 보호법

익이라고 설명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촉탁살인을 합법화할 경우 이를

남용할 위험성이 많다는 ‘남용논거’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반박이 가능하

다. 경험적 근거를 제시해야 할 뿐만 아니라, 보편적 법익보호로 추상화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남용논거 자체가 남용될 위험이 많다. 다시 말해

자율을 우선시하는 한, 이러한 자유외재적 논증들은 부수적이고 2차적 고

려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언정, 그 자체가 촉탁살인죄의 가벌성을 정당화

하는 직접적이고 1차적인 논증이 될 수 없다.

(2) 자유내재적-구체적 논증방법

생명을 생명의 주체 및 주체의 자율과 단절시키지 않고, 양자의 논리

적-실질적 결합의 관점에서 촉탁살인죄를 이해하는 경우, 가장 가까운 논

증방식은 생명이라는 법익이 구체적 개인에게 갖는 핵심적 성격을 강조하

는 것이다. 즉, 개인의 물리적 실존으로서의 생명은 개인의 자율의 필수불

가결한 전제조건으로서, 생명의 마감은 곧 자율주체의 개별성이 절대적으

로 말살되고, 자기결정능력이 종식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결정권을 인정

할 수 없고, 따라서 형법적 개입을 통해 그러한 자기결정권의 행사를 제

한해야 한다는 논거를 내세울 수 있다. 주체의 자기결정권의 행사가 자기

결정권 자체와 모순 또는 딜레마에 빠지기 때문에, 구체적 주체의 자기결

정권 자체를 보호하기 위해 자기결정권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특히 기본

권으로서의 생명권을 절대적 권리로 인정하고, 다시 이 권리에 대한 절대

적 보호를 선언하는 논증이 여기에 속한다. 이 경우 생명권은 그 권리주

체와의 관련 속에서 포착되긴 하지만, 이 권리 자체를 주체 스스로 ‘포기

할 수 없는’ 권리라는 설명방식을 취하게 된다. 그리고 촉탁살인죄 규정은

이러한 기본권이해의 구체적 표현일 뿐만 아니라, 생명권이 시민들 상호

간에서도 효력을 갖도록 생명권을 보호할 의무를 국가가 부담한다는 기본

권보호의무의 표현이기도 하다.53)

이와 같이 기본권의 ‘포기불가능성’을 전면에 내세우면 - 이미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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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자기결정권과 후견주의

보았듯이 - 자율주체의 개별성을 스스로 말살하는 것 역시 다른 진지한

의사형성과 마찬가지로 얼마든지 자율적일 수 있다는 점을 완전히 배제하

는 결과를 낳는다. 더욱이 인격의 자율성을 마감하는 자율적 결정은 - 역

시 앞에서 지적했듯이 - 결코 자기모순이 아니라, 자율이 최고로 발현된

형태로 볼 수 있는 경우가 있다. 특히 기본권으로서의 생명권을 포기할

수 없는 권리라고 전제하면서, 이 주관적 권리의 주체의 자율적 처분에

반해서까지 이를 관철하게 되면, 이 권리는 오히려 의무로 바뀌게 된다.

즉, 기본권주체의 완벽한 동의하에 그 기본권의 행사를 포기하는 것 자체

가 불가능하고, 주체의 처분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하게 된다. 이를 기본권

포기(Grundrechtsverzicht)의 불가능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지 여부는 또

다른 심사의 대상이다.54) 왜냐하면 생명을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것은 정

확히 보면 결코 기본권 자체의 포기가 아니라, 기본권의 행사 또는 기본

권보호요청의 포기일 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진지하고 명시적으로

타인에게 자신을 죽여 달라고 요청(살인의 촉탁)하는 것은 결코 생명권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이 생명이라는 이익

또는 재화의 포기는 그에 대한 권리의 포기나 양도와는 다른 의미이다.

즉, 촉탁자는 자신의 생명권에 대한 처분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에 대한 처분에 동의할 뿐이다.55) 따라서 촉탁살인을 금지하는 것은

촉탁자의 생명권을 보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생명권의 물질적 실체인 생

53) 이러한 헌법도그마틱적 설명방식 및 그에 대한 비판에 관해서는 Ch. Hillgruber, Schutz des Menschen vor sich selbst, 1992, 134면 이하 참고. 54) 기본권포기에 관해서는 J. Pietzcker, Die Rechtsfigur des Grundrechtsverzichts, in: Der Staat 17(1978), 527면 이하 참고. 55) 메르켈(R. Merkel, Früheuthanasie, 2001, 407면 이하; ders., Aktive Sterbehilfe, ebd., 310면 이하)은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비유를 한다. 즉, 누군가 자신이 소유한 물건을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손괴하도록 동의하는 경우, 그러한 동의는 결코 자신의 소유권에 대한 파괴가 아니라, 단지 그 물건에 대한 파괴에 동의했을 뿐이라고 한다. 촉탁살인의 경우에도 생명권이 아니라, 단지 생명이라는 재화에 대한 침해를 동의했 을 뿐이라는 것이다. 물건과 생명을 같은 차원의 재화로 보는듯한 이 비유는 생명과 물건을 같은 선상에서 취급하기에 상당히 도발적이지만, 메르켈 자신이 덧붙이고 있 듯이 규범논리적으로는 달리 보아야 할 이유가 없다. 다른 한편 생명을 자율적 처분의 대상영역에서 배제하는 입장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려는 이 글의 의도에 비추 어 볼 때에도, 양자의 구별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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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139

물학적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촉탁살인죄는 촉탁자

가 자신의 생명권의 실현과 관련하여 설정해놓은 한계 바깥에서 생물학적

생명을 보호하는 셈이다. 따라서 주관적 권리로서의 생명‘권’은 촉탁살인

죄의 헌법적 근거가 될 수 없다.

보호영역을 생명권과 생명으로 구별하게 되면, 자율 또는 자기결정권

이 생명이라는 재화에 우선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즉,

촉탁살인죄가 보호하려는 법익은 생명이기 때문에 이로부터 곧 바로 자기

결정권의 제한을 도출할 수 없다. 그리하여 자기결정권의 우위를 인정하

면서, 다시 생명보호(생명권보호가 아닌)의 한계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생명권에 근거하여 생명이라는 재화를 얼마든지 자의

적으로 처분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촉탁살인죄를 자기결정

권의 제한이 아니라, 결정권의 처분대상에 대한 제한으로 이해함으로써,

자기결정권과 자발적 생명처분의 관계를 더욱 정확히 밝히고, 자율적 생

명처분을 제한하기 위한 다른 정당화근거를 찾아내지 않을 수 없게 만든

다. 단순히 생명보호라는 개념으로 촉탁살인죄를 정당화하기에는 법치국

가에서 자유, 자율, 자기결정이 갖는 무게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이 점에

서 자기결정권을 배경으로 하면서 촉탁살인에 대한 현상적 이해를 통해

이 형벌구성요건의 규범적 구조를 다른 측면에서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

(3) 추상적 위험범으로서의 촉탁살인죄?

자살이 자기결정권의 표현이라는 전제를 인정한다면, 촉탁살인은 촉

탁자의 자기결정을 타인에 의해 실현하는 현상이다. 즉, 촉탁살인이라는

타인을 침해하는 불법이 사실상 자기침해를 통해 매개되는 구조를 갖는

다. 일반적인 불법은 특정한 행위(작위와 부작위)가 타인을 인격으로 존중

하지 않는다는 것, 다시 말해 인격의 자기결정권 및 그 결정권의 행사를

침해한다는 데 있다. 따라서 타인의 인격을 존중하지 않는 불법을 행하는

자는 곧 자신의 결정권에 속하지 않는 타인의 결정권을 마치 자신의 결정

권인 것처럼 참칭(Anmaßung)하는 것이다.56) 그러나 촉탁살인의 경우에

는 그러한 참칭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촉탁자와 행위자 사이에 일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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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자기결정권과 후견주의

의 공동체가 형성되어, 상호간의 의사가 연결되고 행위실현의 분업적 협

력관계가 이루어진다. 이 점에서 촉탁살인은 현상적으로 공동의 조직

(gemeinsame Organisation)이고, 따라서 촉탁살인의 불법은 통상의 침해

범에서 나타나는 불법이 아니다.57)

이러한 근본적 차이는 당연히 촉탁살인에 개입되어 있는 자기결정이

라는 요소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촉탁살인의 상황에서 행위자는

촉탁자의 의사결정의 실현을 위한 단순한 ‘도구’이다. 자기결정의 주체가

그 결정을 직접 실행에 옮기는 것(자살)이 아니라, 실행을 타인에게 위탁

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촉탁살인의 금지는 곧 그러한 위탁의 금지로 이해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자기결정권을 진지하게 고려한다면, 이

위탁의 금지는 명백히 자기결정권의 제한과 침해이다. 타인의 법익에 대

한 침해가 없고, 자신의 법익에 대한 침해에 동의했음에도 이를 가벌성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법익론의 관점에서 이례적이고 이질적인 형벌구성요

건이다. 따라서 자기결정권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한, 이 형벌규범의 가

벌성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자기결정권과는 관계없는 제3의 논거를 동원

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자기결정권에 외재적인 객관적 논

거인 경사면효과나 남용의 위험 또는 시민 일반의 이익 등과 같은 공익적

요소를 끌어들일 수 있다. 즉, 절대적 생명보호를 상징적으로 강화하기 위

한 의도에서, 설령 주체의 자기결정이 진지하고 명시적으로 이루어져서

구체적 침해나 위험이 없는 경우라 할지라도, 그 축적적(kumulativ) 효

과58)에 비추어 생명을 경시할 수 있는 추상적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이를

56) 자살 및 촉탁살인에 대한 이러한 현상학적 이해방식으로는 G. Jakobs, Zum Unrecht der Selbsttötung und der Tötung auf Verlangen, in: Strafgerechtigkeit. Festschrift für Arthur Kaufmann, 1993, 459면 이하, 466면 이하; ders., Tötung auf Verlangen, Euthanasie und Strafrechtssystem, 1998, 22면 이하 참고. 57) 그런데도 촉탁살인을 ‘타살’이라는 측면에만 국한시켜 이해하려는 시도는 형법적 귀 속을 자연주의적(naturalistisch)으로만 고찰하는 잘못을 범한다. 예컨대 간접정범의 경우에도 볼 수 있듯이 형법도그마틱에서 결정적인 것은 결과의 귀속이고, 이 귀속은 사건의 자연적이고 외적 과정에 따라 판단되는 것이 아니다. 이에 관해서는 U. Neumann, Triplik auf die Duplik von der Pfordtens, in: A. v. Hirsch/ders./K. Seelmann(Hg.), Paternalismus im Strafrecht, 2010, 344면 참고.
58) J. Antoine, Aktive Sterbehilfe in der Grundrechtsordnung, 2004, 381면. 이에 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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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141

배제하기 위한 형벌구성요건이 곧 촉탁살인죄의 가벌성근거라는 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정당화 모델을 따른다면 촉탁살인죄는 전형적인

추상적 위험범에 해당한다.59) 왜냐하면 이 구성요건을 통해 생명은 불가

침이라는 원칙의 규범적 효력을 강화하고, 이로써 살인금지 규범의 붕괴

와 침식이라는 일반적 위험을 방지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초개인적 정당화를 절대시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생

명권 주체와의 연관성을 확보하지 않는다면, 촉탁살인죄는 공동체를 위해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희생해야 한다는 법치국가적 역설에 봉착하기 때문

이다. 물론 구체적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초월하여 생명에 대한 사회적 이

익 역시 보호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자기결정권의

존중과 보호에 따른 부수적이고 부차적인 의미로 남아야 한다. 그렇기 때

문에 촉탁살인죄의 가벌성근거는 반드시 구체적 촉탁자 개인을 중심으로

먼저 정당화가 이루어져야 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초개인적 정당화가능성

이 모색되어야 한다. 그래서도 다시 한 번 촉탁살인죄가 촉탁자에 대해

어떠한 의미의 금지명령을 부과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연히 이 금지는 촉탁자로 하여금 타인에게 자신을 죽이는 행위를

위탁하는 것이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의식하게 만

든다. 그리고 이를 통해 촉탁자 자신의 생명을 경솔하고 성급하게 다루어

는 또한 H. Dreier, Grenzen des Tötungsverbotes - Teil 2, in: JZ 2007, 320면; Ch. Tenthoff, Die Strafbarkeit der Tötung auf Verlangen im Lichte des Autonomieprinzips, 2008, 126면 이하 참고. 59) 이러한 보편적 이익에 대한 추상적 위험과는 달리, 개인의 자율을 중심으로 추상적 위험범을 구성할 수도 있다. 즉, 개인의 자기결정에 흠결이 발생할 위험이 증대되는 경우에는, 결정의 흠결이 있을 수 있는 단순한 가능성만으로도 이미 결정의 실효성을 부정할 수 있다. 예컨대 누군가가 자신을 직접 침해(자살)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이를 위탁(촉탁살인)했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자기결정의 결핍을 전제하고(설령 진지하고 명시적이며, 심지어 ‘이성적’인 자기결정인 경우라 할지라도), 이를 근거로 촉탁살인 을 금지한다면 촉탁살인죄는 추상적 위험범이 된다(이에 관해서는 U. Murmann, Die Selbstverantwortung des Opfers im Strafrecht, 2005, 513면 이하 참고). 과연 이러한 구성이 추상적 위험범의 범죄유형에 어느 정도 합치하는가는 별개로, 이 구성을 일관 되게 관철한다면 사실상 자기결정의 여지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에 대한 비판으로는 F. Müller, § 216 StGB als Verbot abstrakter Gefährdung, 2010, 134면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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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자기결정권과 후견주의

서는 안 된다는 호소기능(Appelfunktion)을 내용으로 한다. 이 점에서 촉

탁살인죄는 촉탁자를 보호하는 기능을 갖는다. 이와 동시에 제3자의 개입

을 전제하는 촉탁살인의 현상적 구조에 비추어 볼 때, 살인의 결과가 촉

탁자의 자율적 의지가 아니라, 오히려 행위자(수탁자)의 의지에 의해 이루

어질 위험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그래서도 촉탁살인을 금지하는 이유는

생명에 대한 자기결정과 관련된 궁극적 종결행위가 결코 제3자의 손에 놓

여서는 안 된다는 것과 함께 진정한 의미의 자기결정권의 행사인지 또는

완전한 동의가 없이 타인에 의해 살해되는 것인지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

을 피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60) 이러한 논리구성 역시 궁극적으로는 자

살을 의도하지만 이를 직접 실행하지 못하여 실행을 제3자에게 위탁하는

잠재적 촉탁자에 대한 보호로 귀결된다. 특히 자살을 하려는 자기결정을

스스로 실현하지 않고 제3자에게 이를 위탁한다는 사실 자체는 자살에 대

해 인간이 자연적으로 갖고 있는 심리적 거부감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

을 뜻하고, 따라서 촉탁자의 자기결정의 진지성과 합리성에 대한 의문을

낳게 한다.61) 그렇기 때문에 촉탁살인의 금지는 그러한 심리적 거부감을

계속 유지하게 하여, 개인의 장기적 이익에 대한 통찰을 통해 자기결정의

합리성을 최적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와 같은 형법적 보호는 결국

단순히 객관적 의미의 생명가치 또는 자기결정과는 무관한 생명가치의 보

호가 아니라, 개인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보호이며, 비록 제3자에 대한 형

벌을 위협함으로써 간접적 방식을 취하고 있긴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촉

탁자’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러한 보호를 위해 보호

60) D. Sternberg-Lieben, ebd., 109면 이하; R. Ingelfinger, ebd., 175면 이하. 61) 이와 같이 촉탁살인죄를 자살에 대한 자연적 거부감을 중심으로 촉탁자에게 심리적 억제를 가하는 효과의 측면에서 이해하는 대표적인 입장으로는 C. Roxin, Zur strafrechtlichen Beurteilung der Sterbehilfe, in: ders./U. Schroth(Hg.), Handbuch des Medizinstrafrechts, 3. Aufl., 2007, 352면 이하; ders., Die Abgrenzung von strafloser Suizidteilnahme, strafbarem Tötungsdelikt und gerechtfertigter Euthanasie, in: J. Wolter(Hg.), 140 Jahre Goltdammer‘a Archiv für Strafrecht, 1993, 177면, 특히 184면 참고. 이러한 방식의 이해가 갖는 한계에 대한 비판으로는 A. v. Hirsch/U. Neumann, Indirekter Paternalismus und § 216 StGB: Weitere Bemerkungen zur Bedeutung und Reichweite des Paternalismus-Begriffs, in: dies./K. Seelmann(Hg.), Paternalismus im Strafrecht, 2010, 100면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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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143

대상인 인격주체의 자율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추상적 위험과는 별개로 인

격주체의 자기결정 자체와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정당화 근거를 필요로 한

다. 바로 여기서 이른바 후견주의(paternalism)의 문제가 등장한다. 즉, 주

체에 ‘의한’ 자기결정을 주체를 ‘위해’ 제한한다는 것은 전형적인 후견주의

적 배려와 보호에 해당하는데, 이러한 후견주의가 과연 (형)법적으로 정당

화되는지 여부를 검토해 보아야 한다. 특히 이 경우에는 후견이 국가에

의해 이루어지고 동시에 형법적 강제를 수단으로 삼는 것이기 때문에 후

견주의적 정당화는 상당히 섬세한 논증을 필요로 한다. 이 후견주의의 문

제는 - 지면의 제약을 의식하면서 - 별도의 장으로 나누어 설명하기로

한다.

Ⅲ. 후견주의, 법도덕주의 그리고 기본권 보호의무

  1. 후견주의와 법도덕주의

일반적인 형법상의 명령 또는 금지는 행위자유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

을 뜻한다. 이를 통해 각 개인의 자유의 경계선을 확정하여, 타인에 대한

침해에 대한 형법적 반작용을 확정한다. 그런데 이러한 개입 가운데는 한

사람의 복리를 위한다는 근거로 그 사람의 의지에 반하여 행위 및 결정의

자유에 개입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그와 같은 개입을 후견주의적

(paternalistic)이라고 한다.62) 특히 법적 맥락에서 후견주의는 한 개인의

의사에 반하여 또는 의사가 없음에도 국가가 그 개인의 복리를 위하여 행

62) 후견주의의 개념에 관해서는 오세혁, 법적 후견주의, 법철학연구 제12권 제1호(2009), 153면 이하; Young Sun Kang, Murder upon Request or with Consent in terms of Paternalism, in: Korea University Law Review, Vol. 11-12(2012), 155면 이하; G. Dworkin, "Paternalism", in: R. Sartorius(Hg.), Paternalism, 1983, 19면 이하; D. Birnbacher, Paternalismus im Strafrecht - ethisch vertretbar?, in: A. v. Hirsch/U. Neumann/K. Seelmann, Paternalismus im Strafrecht, 2010, 11면 이하 참고. 또한 개념사적(begriffsgeschichtlich) 측면에 관해서는 H. U. Zude, Paternalismus. Fallstudien zur Genese des Begriffs, 2010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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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자기결정권과 후견주의

위자유를 침해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국가의 강제를 수단으로 한

개인이 자기 자신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보호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후

견주의적 개입 또는 침해는 그 대상이 되는 개인 자신으로부터 그 개인을

보호하는 것이고, 그 정당화근거는 해당하는 개인의 복리의 유지 또는 증

진이다. 이 점에서 후견주의적 개입은 일단 개인의 자율을 전제하면서, 그

자율의 행사가 개인의 복리에 반하거나 자율이 충분히 실현되지 않았다고

판단될 때 이루어지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자유내재적 논증방식에 속한다.

후견주의는 다시 개인의 복리를 위해서라면 자율적으로 행위하는지

여부와 전혀 상관없이 자기처분의 제한을 정당하다고 보는 경성 후견주의

(hard paternalism)와 개인의 자율적 결정을 원칙적으로 존중하면서, 개인

의 자기결정능력에 흠결이 있을 때에는 자기결정과 자기처분을 제한하여

궁극적으로는 개인의 자율이 보장되도록 하는 연성 후견주의(soft

paternalism)로 구별된다. 경성 후견주의에 따른다면 예컨대 생명이나 육

체적 완결성은 개인 자신의 진정한 이익(객관적 이익)으로 보호되어야 하

기 때문에, 개인의 결정의 자유 자체는 결정적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보

게 된다. 이에 반해 연성 후견주의는 개입의 대상이 되는 개인이 원칙적

으로는 자율적 결정능력이 있고, 따라서 통찰능력과 판단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단지 구체적인 상황에서 예컨대 정보의 결핍 등으로 인해 의사의

흠결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개인의 자기결정권의 완전한 발현을 위해

순간적인 의사결정에 따른 행위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본다.

이러한 구별방식은 촉탁살인죄의 가벌성근거를 설명하는 데에도 직접적인

의미가 있다. 즉, 생명이라는 법익의 유지에 대한 객관적 이익이 자기결정

권이라는 이익보다 훨씬 더 우선하기 때문에 촉탁자의 촉탁 및 승인은 실

효성이 없다는 근거로 촉탁살인을 금지한다면 이는 경성 후견주의적 해석

에 해당한다. 물론 촉탁자가 의도하는 생명처분이 촉탁자 자신의 인간의

존엄에 합치하기 때문에 그러한 자기처분이 금지된다고 설명할 때에도 경

성 후견주의적 해석이다. 이와는 달리 개별 주체가 자신의 생명을 자율적

으로 처분할 수 있는 주관적 권리를 원칙적으로 인정하지만, 예컨대 실연

이나 갑작스러운 실업과 같이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타인에게 죽음을 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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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145

탁하는 것은 촉탁자의 장기적인 이익에 반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자기결

정 자체가 합리적인 자율의 표현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촉탁살인의 가벌

성이 정당화된다고 파악한다면, 이는 연성 후견주의적 해석에 해당한다.

특히 자살의 경우와는 달리 촉탁살인의 경우에는 촉탁자 스스로 자살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을 극복하지 못한 증거로 여기고, 따라서 그 자율능력

에 흠결이 있다고 전제하는 것은 전형적인 연성 후견주의적 해석이다.63)

다른 한편 후견주의는 형벌규범 또는 금지규범이 직접 자율주체에 지

향되어 있는지 또는 주체의 동의를 받아 행위하는 제3자에 지향되어 있는

지에 따라 직접적 후견주의(direct paternalism)와 간접적 후견주의(indirect

paternalism)로 구별할 수 있다.64) 예를 들어 자살 자체를 형법적으로 금

지한다면, - 주체의 자기결정권을 전제한다면 - 이는 직접적 후견주의에

해당한다. 우리의 논의대상인 촉탁살인의 경우에는 금지의 대상이 촉탁자

가 아니라, 촉탁을 받아 살인행위를 하는 제3자에게 지향되어 있기 때문

에 간접적 후견주의에 해당한다.65) 이 간접적 후견주의 역시 법익주체(우

리의 맥락에서는 촉탁자)의 자기처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고, 따라서

형식적으로는 기본권에 대한 침해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성 후견주의와

연성 후견주의의 구별과 직접적 후견주의와 간접적 후견주의의 구별은 별

개의 차원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 경성 후견주의는 직접적 후견주의이고,

연성 후견주의는 간접적 후견주의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66)

주체의 복리 또는 자율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후견주의와는 달리, 하

나의 행위가 타인에 대해 침해를 야기(이른바 harm principle)하거나 타인

의 감정을 현저하게 자극(이른바 offense principle)하는 것67)이 아닐지라

63) 경성 후견주의와 연성 후견주의의 구별 및 그 의미에 관해서는, 오세혁, 앞의 논문, 164면 이하; Kang, 156면 이하 참고. 64) 오세혁, 앞의 논문, 169면 이하. 65) 이는 -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 당연히 촉탁살인죄가 어떤 추상적 법익으로서의 생명가치가 아니라, 구체적 개인의 구체적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전제 하에 서만 가능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후견주의라는 단어 자체를 동원할 이유가 없다. 66) 이 점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는 B. Fateh-Moghadam, ebd., 24면 참고. 67) 이 두 가지 침해의 원칙은 파인버그의 유명한 두 저작(J. Feinberg, Harm to Others. Moral Limits of Criminal Law, Bd. 1, 1984; Offense to Others, Bd. 2, 1985)에 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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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자기결정권과 후견주의

도, 그러한 자율적 행위 자체가 이미 도덕에 반하기 때문에 형법적으로

금지되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 있다. 이러한 입장을 법도덕주의(legal

moralism)라고 부른다.68) 예컨대 촉탁살인은 촉탁자의 개인적 이익이나

자율을 보호하기 위해 금지되는 것이 아니라, 살인은 어떠한 경우에도 도

덕적 악이기 때문에 그 자체 금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자유외재적인

법도덕주의적 논증방식이 된다. 따라서 법도덕주의는 자율주체의 복리를

통해 금지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손상하는 자율적 처

분은 사회적 도덕관념에 반하고, 사회의 도덕적 통합을 저해하며 그 자체

악(malum in se)이기 때문에 금지를 정당화한다.69) 그렇기 때문에 법도덕

주의는 주체가 자율적으로 행위했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자기처분의 자유

를 제한한다는 점에서 경성 후견주의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다만 경성

후견주의는 자율주체의 복리(물론 구체적 주체의 복리가 아니라, 객관적

기준에 따른 복리)를 중심으로 논증한다는 점에서 법도덕주의와는 다른

논증의 길을 걷는다. 그렇지만 경성 후견주의가 내세우는 객관적 관점의

복리나 이익은 법도덕주의가 말하는 ‘도덕’과 마찬가지로 매우 추상적이고

동시에 구체적 주체의 입장에서는 일방적인 외적 강제라는 점에서 양자의

간극은 매우 좁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과연 법도덕주의적 정당화가 규

범적 개인주의, 즉 개인의 자율을 출발점으로 삼는 법치국가 헌법과 얼마

만큼 합치할 수 있는가이다. 특히 법익보호를 1차적 과제로 삼는 형법에

비추어 볼 때, 법익주체 스스로 특정한 이익을 더 이상 ‘자신의’ 이익으로

여기지 않게 되는 경우에는 법익보호의 원칙이 적용될 대상이 없어진다.

아주 섬세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 원칙은 법익론(Rechtsgutslehre)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논의되고 있다. 이에 관한 대표적 문헌으로는 A. v. Hirsch, Rechtsgutsbegriff und das "Harm Principle", in: R. Hefendehl u.a.(Hg.), Rechtsgutstheorie, 2003, 13면 이하 참고. 68) 여기서 “법도덕주의”는 자연법의 현대적 명칭이 아니라, 영국의 이른바 Wolfenden Report를 둘러싼 데블린(P. Develin)과 그에 대한 하트(H.L.A. Hart)의 반론을 둘러싸 고 형성된 개념이다.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Zude, ebd., 83면 이하 참고.
69) 물론 법도덕주의에 기초하여 개인의 자율을 제한하는 것도 현상적으로는 후견의 형태 를 취하기 때문에 ‘도덕적 후견주의’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 후견의 근거가 개인의 자율의 강화와 보호가 근거가 아니기 때문에 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 다. 단지 자유제한의 대상만이 동일할 뿐, 그 근거는 완전히 다른 선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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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147

다시 말해 자율은 기본적으로 무엇이 주체의 이익인지를 주체 스스로 규

정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자율주체와의 연결가능

성을 확보하지 않은 채, 객관적 또는 초월적 도덕, 심지어 종교적 도덕 자

체를 근거로 자율을 제한하려는 법도덕주의는 세속적인 헌법국가의 기본

원칙에 반할 뿐만 아니라, 이를 기초로 형법의 제정 또는 해석이 이루어

진다면, 구체적인 법익과는 관계없는 추상적 규범을 보호하는 상태로까지

전락한다. 그래서도 - 앞에서 지적했듯이 - 자유외재적 논증방식인 법도

덕주의는 촉탁살인죄의 가벌성을 정당화하기 위한 1차적인 논증방식이 될

수 없다. 설령 살인금지를 절대적으로 유지하려는 사회의 이익을 전면에

내세울지라도, 자율주체를 초월한 논증은 법치국가에 충실한 논증이라 할

수 없다.

이에 반해 후견주의적 개입은 자율의 원칙 자체를 의문시하지는 않는

다. 왜냐하면 후견주의적 배려는 언제나 자율을 제한받는 주체의 장래의 주

관적 이익을 관련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체의 자율적 결정능력을 일

시적으로 침해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주체 스스로 규정한 이익에도 상응할

때에만 후견주의적 조치는 규범적 개인주의(normativer Individualismus)의

토대 위에서 정당성을 갖는다. 이 점은 촉탁살인죄와 관련하여 설령 주체

의 진지하고 명시적인 촉탁과 승낙이 있을지라도, 다시 말해 주관적으로

는 충분히 자율의 행사라고 볼 수 있는 경우일지라도, 생명이라는 이익이

중대한 이익이고 이에 대한 침해는 돌이킬 수 없으며 또한 금지가 행사하

는 강제의 정도가 약하고, 금지에 대해 주체가 사후적으로 동의할 개연성

이 높다는 이유로 후견적 제한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는 궁극적으로 자

율주체 자신의 이익, 즉 자율의 행사조건을 강화한다. 따라서 정당한 후견

주의적 개입은 자율적 개인의 자기결정의 시점을 유예할 뿐, 자기결정 자

체를 유보하지는 않는다.70)

물론 살인을 촉탁하는 현상적 유형에 비추어 볼 때, 형법 제252조가

어떠한 사안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사람의 촉탁 또는

70) 자세히는 U. Neumann, Triplik auf die Duplik von der Pfordtens, ebd., 345면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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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자기결정권과 후견주의

승낙을 받아”라는 구성요건에서는 촉탁과 승낙의 진지성과 명시성, 즉 촉

탁자의 자율성을 곧바로 끌어낼 수 없다. 하지만 이 구성요건에 ‘진지하고

명시적인’ 촉탁을 추가하는 일반적인 해석론에 비추어 본다면, 현행 촉탁

살인죄는 경성 후견주의로 볼 수 있다. 이와는 별도로 그러한 진지하고

명시적인 자기결정이 아니라, 순간적이고 즉흥적인 결정에 따라 자신의

생명을 처분하는 것 역시 당연히 금지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제252조는

자율의 흠결을 이유로 자율을 제한하는 연성 후견주의도 함께 포함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71) 하지만 대소추론 논거(argumentum a maiori

ad minus)에 비추어 촉탁살인죄는 경성 후견주의를 통한 구체적 생명보

호를 그 가벌성근거로 삼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1. 기본권 보호의무

헌법적 차원에서는 촉탁살인죄를 통해 개인의 자기결정을 제한하는

후견주의적 개입은 국가의 기본권 보호의무의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생명권은 헌법에 명문의 규정은 없지만, 인간의 존엄과 행복추구권에 비

추어 헌법질서가 당연히 전제하고 있는 기본권으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

이다. 그렇다면 생명권에 대한 침해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기본권의 형성사와 그 법치국가적 구체화과

정을 고려한다면 기본권으로서의 생명권 보호는 국민의 육체적-정신적 자

기결정권을 보호하는 것이다. 즉, 기본권은 기본권 주체의 “인격적 핵심”

을 보장하기 위한 헌법제도적 장치로서, 자기발현의 기회를 가진 인격적

자율주체의 개인적 실존을 보호하고 보장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특히 생

명은 기본권 행사의 대상이 아니라, 기본권주체가 보유하고 있는 상태로

서, 기본권주체의 인격적 자율의 실현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작용한다. 이

71) 형법도그마틱적으로 이 사례유형은 경우에 따라서는 단순 살인죄의 구성요건에 해당 할 수도 있다. 즉, 매우 즉흥적인 촉탁에 응하여 사람을 살인한 경우에는 살인죄의 가벌성을 물을 수도 있다. 물론 ‘촉탁’이라는 개념에 ‘진지성과 명시성’을 함께 포함시 키는 경우에는 사례유형을 나눌 필요가 없게 된다. 법개념 해석과 관련된 복잡한 측면 은 여기에서는 고려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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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149

점에서 생명기본권에 대한 국가의 보호의무와 국민의 보호청구권은 1차적

으로 제3자로부터 생명권이 침해당하지 않도록 보장하기 위한 장치이

다.72) 따라서 오로지 기본권주체 자신의 행위에 따른 손상이나 위험은 기

본권보호의 직접적 대상이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결정에 근거한 자살이나 치명적 질병의 예방이나 치료를 거부하는 행위는

보호범위에 속하지 않는다. 이 경우에는 국가의 기본권 보호의무로부터

국가의 행위의무를 도출하거나, 국가가 기본권주체의 자율을 무시하고 자

율에 반대하면서 기본권을 보호해야 할 권리를 도출할 수 없다.73) 만일

그렇지 않다면 - 자살자와 관련하여 - 생명권의 주체는 경우에 따라서는

권리주체가 아니라, ‘살아야 할 의무’의 주체로 전락하게 된다.74)

이러한 사고는 앞에서 지적했던 생명과 생명권의 구별에 비추어 볼

때에도 타당성을 갖는다. 기본권으로서의 생명권의 실체는 단순한 생물학

적 생명이 아니라, 말 그대로 생명‘권’이고, 그것이 권리라는 점에서 - 모

든 기본권이 그렇듯이 - 생명권의 보장 역시 인격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

한 것이다. 그리고 인격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기본권주체는 일반

적 행위자유를 행사할 때 이미 주어져 있는 가치질서를 지향할 의무가 없

다. 개인적 목적을 설정하고 그 목적을 추구하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영역에 속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가 국민을 국민 자신으로부터 또

는 국민 자신에 반하여 보호할 의무는 기본권의 기능에 근본적으로 반하

며, 기본‘권’을 기본‘의무’로 전도시키는 것이다.

생명기본권과 자유의 필연적 결합은 기본권의 객관적 가치질서

(objektive Wertordnung)를 원용할지라도 결코 느슨해질 수 없다. 왜냐하

72) ‘기본권 보호의무’에 관한 기본적 내용은 정태호, 기본권 보호의무, 인권과 정의 252(1997), 83면 이하; H. Dreier(Hg.), Grundgesetz Kommentar, 2. Aufl., Bd. I, 2004, Vorb.-Dreier, Rn. 101 이하 참고. 73) G. Hermes, Das Grundrecht auf Schutz von Leben und Gesundheit, 1987, 228면 이하. 74) 그래서 아르투어 카우프만(Arth. Kaufmann, Euthanasie - Selbsttötung - Tötung auf Verlangen, in: MedR 1983, 124면)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개인은 공동체에 대해 의무를 부담한다. 그러나 오직 개인이 살아 있는 동안에만 그렇다. 그러나 개인은 공동체에 대해 살아야 할 의무를 부담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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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자기결정권과 후견주의

면 객관적 가치질서에 근거한 기본권보호는 어디까지나 기본권의 방어권

적 성격을 넘어, 개별 기본권주체인 사인들 사이에서도 기본권의 효력이

유지되도록 하려는 것일 뿐, 어떤 ‘객관성’을 근거로 기본권주체의 자유에

반하여서까지 주체를 보호하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75) 만일 생명권과

관련해서도 어떤 객관적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면, 그러한 객관적 가치는

막연한 의미의 ‘생명가치’76)가 아니라, 자유, 즉 도덕적 자율 자체이다. 따

라서 이 가치의 주체인 구체적 인간의 처분권을 제한하는 근거로 가치를

끌어들이게 되면, 결국은 개인이 자신의 인간다운 삶의 형성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결정한다는 것이 된다. 이는 국가가 생명을 지배하는

것이고,77) 자유적 법치국가의 원칙에 근본적으로 모순되는 결과이다. 따라

서 기본권보호가 개인의 자유를 박탈하는 결과를 낳는다면 그러한 기본권

보호는 자유의 보호가 아니라, 자유외재적인 보편적 가치 자체의 보호일

뿐이다. 이는 자유적 법치국가 헌법에서는 자유롭고 자기책임에 근거한

자기결정이 우선권을 갖는다는 기본적 출발점에 모순된다.

75) G. Hermes, ebd., 234면. 76) 막연한 의미의 객관성을 근거로 자기결정권의 의미를 퇴색시키거나 이를 완전히 부정 하는 입장으로는 신동일, 존엄사에 대한 형법적 물음, 형사정책연구 제20권 제1호 (2009), 330면 이하 참고. 신동일 교수는 이 글에서 “법규범은 항상 인간생명의 보호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333면)”는 사실에 반하는(정당방위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주장에서 시작해서 생명이 “관계법익(같은 곳)”이라는 모호한 주장(그렇다면 형법의 모든 법익은 관계법익이다)을 넘어 국가의 보호의무를 극단적으로 객관화(334면 이 하)하는 논증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자주 사용하는 ‘객관’의 의미는 이 글 어느 곳에서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다. 즉, 그것이 경험적 객관이라는 의미인지, 초월 적 객관이라는 의미인지 또는 상호주관으로서의 객관인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없 다. 신 교수의 논리대로라면 생명에 대한 한 성직자의 경건한 주관적 감정마저도 얼마 든지 객관으로 ‘포장’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그러한 감정은 존중해야 하지만, ‘객관적’ 법질서에 대한 논의를 그러한 ‘주관적’ 감정으로부터 시작할 수는 없다. 또한 신 교수 가 안락사 반대의 근거로 내세우는 호스피스(327면), 국가의 재정지원(337면), 거대병 원의 이익(339면) 등과 같은 정책적 근거들은 말 그대로 정책적, 사실적 측면일 뿐, 자기결정과 생명에 관련된 헌법적, 법윤리학적, 형법적 논의의 1차적 고려대상이 될 수 없다. 예컨대 호스피스를 거부하는 환자에게도 거대병원을 배제하는 국가의 재정 지원 정책을 통해 자기결정권을 무시하고 강제로 호스피스 대상이 되도록 만들어야 하는가?
77) 여기서 푸코와 아감벤의 ‘생명정치(Biopolitik)’를 떠올리는 것은 결코 과장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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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151

기본권 보호의무와 기본권의 객관적 성격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촉탁

살인죄에 대한 후견주의적 이해와도 합치한다. 즉, 형법을 통해 촉탁살인

을 금지하는 것은 어떤 추상적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우회적으로 개인의

자유행사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구체적 기본권주체의 자유와

자유의 전제조건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 기본권주체의 기본

권행사가 이 주체의 장기적 이익에 반하거나, 기본권행사의 자율성에 흠

결이 있는 경우 이를 보충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촉탁살인죄의 기본권적

의미이다. 이 점에서 촉탁살인죄를 통한 기본권보호는 생명보호가 아니라,

생명권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자유보호이다.78)

  1. 후견주의의 한계와 절차적 후견주의

국가의 후견적 개입과 기본권보호가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한다

는 원칙에서 출발할지라도 경험적 영역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들에 비

추어 구체적으로 개인의 자기책임과 자기결정이 발현되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순간의 격정이나 일시적인 고통으로 인해

생을 마감하려고 할 수도 있지만, 어떤 사회적 압박감으로 인해 자신의

생명에 대한 처분을 타인에게 촉탁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생각해 볼 수 있

다. 이렇게 자율성 여부에 의문이 있거나 자율이 순전히 제3자의 이익을

치장하는 논거로 남용되지 않도록 국가가 금지규범을 통해 후견주의적 개

입을 하는 것은 이성적이고 정당한 조치이다. 그렇지만 이와는 반대로 예

컨대 의학적으로 도저히 치료할 수 없는 극단적인 고통에 시달리는 말기

(moribund) 환자나 불치의 전신마비로 인해 거의 모든 일상생활이 불가능

한 환자와 같이 타인의 도움이 없이는 자신의 삶을 마감할 수조차 없는

상태에서 진지하고 명시적으로 촉탁을 하는 경우에도 과연 후견주의적 금

지규범이 타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경우 형법적 금지는 결코 우발

적이고 순간적인 결정을 억제하거나 자살에 대한 자연적 거부감을 유지하

78) 생명과 생명권의 구별에 관해서는 앞의 각주 55 및 해당하는 본문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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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자기결정권과 후견주의

도록 억제하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자신의 삶

을 마감하는 자율적 결정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사례유형에서는 한 사람의 ‘복리’를 위한 개입이라는 (경성) 후견주의의

논거를 견지할 수 없다.79) 복리는 미래를 기약하는 것이고, 장기적인 측면

에서 당사자에게 이익이 된다고 전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에도 형벌규범을 통해 촉탁자의 자율적 결정의 실현을 금지하는 것은

더 이상 후견주의적으로 정당화할 수 없다. 오히려 금지의 근거는 생명과

관련된 어떤 도덕이나, 생명을 둘러싼 어떤 사회적 이익에서 찾지 않을

수 없고, 그렇게 되면 당연히 개인의 자유와 자율이라는 출발점으로부터

완전히 이탈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 모든 상황들에 개입되어 있는 개념들 - ‘진지’하고 ‘명시’적인

‘의사’, ‘말기’, ‘남용’, ‘사회적 압박’, ‘불치’, ‘이익’ 등 - 은 경험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고, 따라서 이를 확인하는 일은 언제나 불확실성을 수반한다.

이러한 불확실성을 흡수 또는 감축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절차를 거쳐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촉탁살인의 후견주의적 정당화가 불가능한 사례유

형과 관련하여 만일 형법적 금지의 예외80)를 인정한다면, 관련된 경험적

요소에 대한 섬세한 검토를 거쳐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당사자

의 의사가 사실상 그의 ‘진정한’ 의사에 합치하도록 보장하는 일정한 절차

적 규칙을 마련해야 한다. 즉, 특정한 결정맥락의 구조화를 보장하는 절차

방식을 수립하여 자율주체가 결정과 관련하여 필수적인 이성적 통찰능력

79) 후견주의의 이러한 한계에 대해서는 A. v. Hirsch/U. Neumann, “Indirekter” Paternalismus im Strafrecht - am Beispiel der Tötung auf Verlangen(§ 216 StGB), in: dies./K. Seelmann, ebd., 86면 이하; D. Sternberg-Lieben, ebd., 110면 이하; B. Fateh-Moghadam, ebd., 37면 이하 참고. 80) 의료상황을 전제하고 있는 안락사논쟁을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이 경우에는 적극적 안락사 금지의 예외상황에 해당한다. 흔히 간접적 안락사(통증완화의 부수현상으로 사망에 이른 경우)의 가벌성을 부정하면서도, 적극적 안락사는 가벌성이 있다고 하지 만, 현상유형에 비추어 볼 때에는 양자 사이의 경계는 불투명하다. 그리고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도그마틱적으로 간접적 안락사는 살인의 고의를 배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양자 모두 하나의 상위원칙에 포함시켜 논의해야 할 대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간접적 안락사를 허용하는 근거 역시 자율과 후견주의의 변증법을 통해 설명하는 것이 체계 성을 확보하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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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153

을 갖추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절차적 보장이 있어야 하고, 자신의 결

정에 대해 숙고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더 나아

가 통찰능력과 숙고과정을 거친 자기결정을 존중하여 이루어진 조치가 그

결정의 조건이 되었던 상황보다 더 나쁜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보장하는

절차 역시 규율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이와 같은 절차는 당연히 자율

주체의 현재의 의지를 일단 유보시킨다는 점에서 이 역시 후견주의적 개

입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러한 후견주의는 절차적 후견주의(prozeduraler

Paternalismus)라 할 수 있다.81) 이 절차적 후견주의가 제공하는 보호와

배려는 후견을 받는 자율주체 스스로를 손상하는 행위를 확정적이고 종국

적으로 제한하지는 않는다. 단지 그러한 행위를 일단 유보하고, 과연 후견

주의적 개입을 위한 전제조건이 충족되어 있는지를 심사하는 절차를 수용

하도록 강요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절차적 후견주의는 관련된 모든 경

험적, 규범적 사정들에 대한 포괄적인 인식을 기초로 합리적인 결정이 가

능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 점에서 절차적 후견주의는 자율주

체의 의지를 자율주체와는 무관한 이익 또는 객관적 기준에 따른 그의

“진정한 이익”으로 대체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율주체의 안정적 의지가

전제될 때에만 주체 스스로를 손상하는 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보장

하고자 한다. 특히 거의 대부분의 죽음이 의료체계 내부의 커뮤니케이션

을 거치는 오늘날의 현실에 비추어 보면 이러한 절차주의는 더욱 절실하

다. 한편으로는 환자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존중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러한 의사결정 및 의사결정에 따른 행위실현의 회색지대를 제거하면서 복

잡성을 감축하고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은 법체계뿐만 아니라, 의료체계

에게도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물론 후견주의와 그 절차적 형성을 둘러싼

81) 절차적 후견주의 및 생명윤리와 관련된 절차주의의 의미와 그 실현가능성에 관해서는 U. Neumann, Der Tatbestand der Tötung auf Verlangen(§ 216 StGB) als paternalistische Strafbestimmung, in: B. Fateh-Moghadam/S. Sellmaier/W. Vossenkuhl(Hg.), Grenzen des Paternalismus, 262면 이하; F. Saliger, Grundrechtsschutz durch Verfahren und Sterbehilfe, in: L. Schulz(Hg.), Verantwortung zwischen materialer und prozeduraler Zurechnung, 2000, 101면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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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자기결정권과 후견주의

이 모든 사고의 시발점과 종착점은 개인의 자율과 자기결정권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사고에 대해 거부감을 갖거나 이를 부정하려고 한다면, 남

아 있는 길은 개인의 권리를 진지하게 고려(Taking Rights Seriously; R.

Dworkin)하지 않거나 규범적 집단주의(normativer Kollektivismus)의 논

증방식을 취하는 것뿐이다.

Ⅳ. 맺음말

죽음은 금기이다. 더 정확히는 죽음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은 쉽게 연

결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한다. 이와 동시에 죽음은 개별적이고 개인적이다.

이 점에서도 죽음은 더 이상의 연결가능성을 찾지 못하는 커뮤니케이션의

단절이다. 그래서 죽음은 사회 바깥에 있다. 금기이면서 동시에 사회 바깥

에 있는 죽음을 자유와 관련시키는 것은 금기에 대한 도전이자 바깥을 안

으로 끌어들이는 것이고,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의 연결가능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연결가능성으로서의 죽음은 삶의 한 부분이다. 법체계에서

이 연결가능성은 법치국가와 민주적 헌법국가라는 근대적 기약 한 가운데

서 있는 인간의 자유와 자율에 맞닿지 않을 수 없다. 법적 연결가능성을

거부하지 않는 한, 생명마저도 자유의 테두리 내에서 커뮤니케이션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 커뮤니케이션의 한 양상이 후견주의이다. 촉탁살인죄는

‘자유와 후견’이라는, 얼핏 보기에는 서로 부딪힐 것 같은 두 단어의 상호

연관성을 밝혀내기 위한 발견술적(heuristisch) 실마리일 뿐이다. 물론 생

명은 소중하다. ‘의심스러울 때는 생명의 이익으로(in dubio pro vita)’ 역

시 소중한 원칙이다. 하지만 우리의 법체계는 ‘의심스러울 때는 자유의 이

익으로(in dubio pro libertate)’라는 또 하나의 소중한 원칙을 체계의 구조

로 갖고 있다. 이 두 소중한 원칙은 많은 경우 갈등을 빚지 않는다. 하지

만 유감스럽게도 - 모든 원칙들의 관계가 그렇듯이 - 때로는 이 두 원칙

은 서로 갈등관계에 놓인다. 양자가 완벽한 조화상태에서 함께 가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어느 것이 우선인가는 분명 사회문화적 요인이 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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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155

게 작용한다. 그래서도 생명 또는 죽음에 대한 사회적 논의에서 자유가

어떠한 의미의 지평에 자리 잡고 있는지를 보면 그 국가와 그 사회에서

자유가 차지하는 비중을 가늠할 수 있다. 과연 우리는 어떠한 국가에 살

고 있는가? 만일 이 물음에 대해 ‘법치국가’라고 대답하고, 이 대답을 자

살이나 촉탁살인의 문제에 연장시켜 생각한다면 자기결정권과 후견주의와

같은 단어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글쓴이는 글로 표현되지 못한 여러 지점에서 자주 망설이곤

했다. 금기가 이미 억압의 기제로 내면화한 탓이기도 하고, 죽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행여 법의 잔혹함이나 생명을 경시하는 망

언이라는 비난이 두려울 때도 있었다. 그 또한 자유의 제한일지도 모른다.

이 때 문학은 커다란 위안이 된다. 그리고 이 모든 문제와 관련하여 법학

은 문학의 가난한 사촌일 뿐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살아 있는 것들이 왜 죽는가, 멀쩡히 살아 있는 것들이 무슨 연유로 죽는

것인가, 삶과 죽음은 반대현상이라고 하는데 삶과 죽음 중에서 어느 쪽이 자연

이고 어느 쪽이 자연이 아닌가. 양쪽 다 자연이라면 그것이 왜 반대현상이어야

하는지.”

(김훈)

자기결정권과 후견주의

- 윤 재 왕

수령 날짜심사개시일게재결정일

2012.11.12. 2012.11.26. 2012.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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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자기결정권과 후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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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자기결정권과 후견주의

【국문초록】

근대의 민주적 헌법국가 이념은 개인(주체)의 자율과 자기결정권을

기초로 삼는 의미론(Semantik)이다. 이 이념은 그 주체를 전제하는 생명

(권)을 둘러싼 논의에서도 일관되게 견지되어야 한다. 이러한 배경을 감안

하면서 이 논문은 촉탁살인죄(형법 제252조 제1항)의 보호법익을 구체적

으로 검토한다. 우선 선결문제로서의 자살은 법윤리학적 성찰을 거쳐 자

기결정권의 행사로 평가한다. 따라서 촉탁살인은 인격주체로서 촉탁자가

자살을 타인에 의해 실현하는 현상으로서, 촉탁살인죄가 촉탁자에 대해

부과하는 금지명령은 촉탁자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는 구조를 갖는다. 이

점에서 촉탁살인죄의 가벌성에 대하여 인격주체의 자기결정권과 직접적으

로 관련되는 정당화가 요청된다. 이를 위하여, 주체에 ‘의한’ 자기결정을

주체를 ‘위해’ 제한함으로써 자유내적인 논증방식에 해당하는 후견주의를

원용해볼 수 있다. 이와는 달리 자유외재적 논증방식으로서의 법도덕주의

는 촉탁살인죄의 가벌성을 법치국가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한 1차적인 논거

가 될 수 없다. 결국 우리 형법상 촉탁살인죄는 - 그 일반적인 해석론에

비추어 본다면 - 경성 후견주의를 통한 구체적 생명보호를 그 가벌성의

근거로 삼는 것으로 판단해야 한다. 헌법적 차원에서 보면, 촉탁살인죄를

통해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는 후견주의적 개입이란 국가의 생명권

보호의무의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고, 이는 궁극적으로 기본권주체의 자

유보호를 지향하고 있다고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촉탁살인에 대한 후견

주의적 개입이 더 이상 정당화될 수 없는 한계상황이 존재한다. 그에 해

당하는 사례유형과 관련하여 형법적 금지의 예외를 인정하려면, 관련된

경험적 요소에 대한 섬세한 검토를 거쳐 일정한 절차적 규칙을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절차적 후견주의의 필요성이 도출되며, 이는 자율

주체의 안정적 의지가 전제될 때에만 스스로를 손상하는 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보장할 것을 목표한다. 물론 이를 둘러싼 모든 사고가 결코 간

과해서는 안 될 토대는 개인의 자율과 자기결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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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161

【Abstract 】

Zusammenfassung Selbstbestimmungsrecht und Paternalismus

  • eine rechtsethische Betrachtung über das Rechtsgut des § 252

Abs. 1 kStGB(Tötung auf Verlangen)

Prof. Dr. iur. Zai-Wang Yoon

(School of Law, Korea University)

Die Idee des demokratischen Verfassungsstaates gehört zu einer auf

der Autonomie und Selbstbestimmung des Einzelnen basiernden Semantik

der Moderne. Sie ist auch in der Diskussion über die Verfügung des

Subjekts über das Leben bzw. Lebensrecht konsequent durchzusetzen. Die

vorliegende Abhandlung nimmt das Rechtsgut, welches durch das

strafrechtliche Verbot der Tötung auf Verlangen (§ 252 Abs. 1 kStGB)

geschützt wird, im Rahmen dieser modernen Semantik in einen kritischen

Blick. Dafür ist zunächst festzustellen, dass die Selbsttötung, rechtsethisch

gesehen, als Ausübung der Selbstbestimmung angesehen werden muss. In

diesem Sinne kann man unter der Tötung auf Verlangen in ihrem

phänotypischen Aspekt einen Suizid verstehen, den ein Subjekt mit der

Hilfe eines anderen Subjekts verwirklicht. Wenn dem so ist, schränkt das

Verbot der Tötung auf Verlangen die Selbstbestimmung des Verlangenden

ein, was dazu nötigt, den Bestrafungsgrund des § 252 Abs. 1 kStGB gegen

eine verbreitete Meinung in der Strafrechtsdogmatik ausschließlich in

Hinsicht auf die Autonomie des Subjekts zu rechtfertigen. Dafür ist die

rechtsethische Figur des Paternalismus einzusetzen. Der Paternalismus

geht davon aus, dass die autonome Freiheitsausübung eines Subjekts für

dessen Freiheit im Prinzip einschränkbar ist. Deshalb lässt sich e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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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자기결정권과 후견주의

paternalistische Befürwortung der freiheitseinschränkenden Fürsorge mit

einem strafrechtlichen Mittel als freiheitsinterne Argumentation einstufen.

Demgegenüber steht der Rechtsmoralismus, der die subjektiven

Freiheitsrechte im Namen einer objektiven Moral einschränken will, im

Rahmen einer freiheitsexternen Argumentation. Er kann jedoch - so eine

der wichtigsten Thesen dieser Arbeit - keineswegs kompatibel mit der

Idee des freiheitlichen Rechtsstaates sein. Deshalb zielt § 252 Abs. 1 nicht

auf den Schutz irgendeines abstrakten Wertes, sondern vielmehr den des

Lebensrechts eines konkreten Subjekts ab. Dies läuft darauf hinaus, dass

auch die staatliche Schutzpflicht das Leben des einzelnen

Grundrechtssubjekts und letztlich dessen Freiheit zum Gegenstand haben

muss. Dabei ist zu berücksichtigen, dass es Grenzsituationen gibt, in denen

die paternalistische Intervention des Staates mit dem strafrechtlichen

Verbot nicht mehr legitimierbar ist. Angesichts dessen, dass das Leben ein

wichtiges Gut und dessen Verlstzung irreversibel ist, soll ein Verfahren

bereitgestellt werden, mit dem festgestellt werden kann, ob und in

welchem Maße die paternalistische Einmischung in einer konkreten

Situation vorzunehmen ist. Vor diesem Hintergrund plädiert der Autor

für einen prozeduralen Paternalismus, dessen Zweck darin liegt, die

Selbstbestimmung im Sinne des freiheitlichen Verfassungsstaates ernst zu

nehmem und gleichzeitig möglichst optimal zu schützen.

주제어(Key Words) : 자기결정권(Selbstbestimmungsrecht), 후견주의(Paternalismus), 촉탁살인(Tötung auf Verlangen), 생명권(Lebensrecht), 자살(Suiz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