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체계의 자율성 - 체계이론적 관점에서 본 법과 정치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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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대학교비교법학연구소강원법학 제50권, (2017. 2) 259-317쪽. Kangwon Natl. Univ. Kangwon Law Review Vol.50, (Feb. 2017) pp.259-317.
법체계의 자율성 - 체계이론적 관점에서 본 법과
정치의 관계*
윤 재 왕**
2)
<국문초록>
법의 독자성을 긍정하면서 법과 정치의 상호작용 또는 상호의존관계 밝힐 수 있
는 적절한 이론적 도구를 찾아내는 것은 법이론으로서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이다.
따라서 정치 일변도 또는 법 일변도의 시각에서 벗어나 법과 정치를 각각의 독자
적 단위로 설정하면서도 동시에 양자의 관계까지 설정할 수 있는 개념적 틀을 확
보할 수 있는 길이 요청된다. 어느 누구도 법의 논리가 정치에 의해 지배되는 것
을 긍정하지 않으며, 거꾸로 정치가 단순히 법의 실현에 불과하다고 주장할 수 없
다는 전제하에, 이 전제의 충족조건 및 구체적인 실현과정을 이론적으로 밝히는 것
은 법이론 또는 법철학의 과제에 해당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니클라스 루만의 체
계이론은 현재의 법이론 또는 정치이론의 지형 내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법과 정치
의 독자성(‘작동상의 폐쇄성’ 혹은 ‘자기생산’)을 확인하고, 이러한 독자성에 기초
하여 양자의 상호관계(‘구조적 연결’)를 설명하려는 독창적이고 독보적인 이론적
시도라는 점을 관찰하게 된다. 본 논문에서는 루만의 체계이론이 어떠한 이론적 배
경에서 법과 정치가 자율적인 체계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하는지를 설명하고, 특
히 각 체계의 자율성이 곧 상호관련성의 전제조건이 된다는 사실을 밝히고자 한다.
또한 이러한 전제조건이 충족된다면 과연 어떠한 메커니즘을 통해 법과 정치의 상
호작용이 이루어지는지를 서술하고자 한다.
DOI: 10.18215/kwlr.2017.50..259 투고일자: 2017.01.19, 심사일자: 2017.02.14, 게재확정일자: 2017.02.14. * 이 논문(저서)은 2014년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연구되었음(NRF-2014S1A5A8015893) **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학박사(Dr. j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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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어: 니클라스 루만, 체계이론, 법의 자율성, 구조적 연결, 헌법
목 차
Ⅰ. 서론
Ⅱ. 법체계의 자율성에 대한 체계이론의 구상
Ⅲ. 법과 정치의 구조적 연결로서의 헌법
Ⅳ. 맺음말
I. 서론
근대적 의미의 헌법국가를 전제하는 한, 모든 정치적 활동은 법을 통해
또는 법적 근거의 뒷받침을 받으면서 이루어져야 한다.1) 이 점은 통상 ‘법
치국가’라는 표제하에 논의되는 모든 이론적 성찰의 공통분모라고 할 수
있다.2) 다시 말해 법질서는 헌법을 매개로 삼아 한편으로는 정치를 제한
및 통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적 활동을 가능하게 만든다. 적어도 이
점에서는 법과 정치는 ‘법 →정치’라는 일방적 관계로만 설정된다. 하지만
이는 직관에 반한다. 왜냐하면 법은 자신의 실현과 관철을 위해 정치, 특
1) 헌법 및 법치국가가 갖는 이러한 근대적 의미는 칸트의 다음과 같은 언명에 극적으
로 표현되어 있다: “법이 정치에 순응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정치는 언제나 법에 순응해야 한다(Immanuel Kant, Über ein vermeintes Recht aus Menschenliebe zu lügen, in: Kant Werke. Akademie-Textausgabe Bd. 8, 1971, S. 429).”
2) 법치국가가 갖는 이러한 의미에 관해서는 무엇보다 베르너 마이호퍼, 법치국가와 인
간의 존엄(심재우 역), 1994, 특히 70면 이하 참고. 또한 국가통제 원칙으로서의 법 치국가에 대한 개념정의 및 그 문제점 그리고 역사적 전개과정에 대해서는 Katharina Sobota, Das Prinzip Rechtsstaat. Verfassungs- und verwaltungsrechtliche Aspekte, 1997, S. 19 이하, 263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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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물리적 폭력을 포함한 권력 작용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과 정치는 ‘정치 →법’의 관계 설정을 필요로 하고,
그렇다면 양자는 상호작용적 관계, 즉 ‘법 ↔정치’로 파악되어야 한다.
문제는 법과 정치 사이의 상호작용 관계를 법이론적으로 어떻게 이해해
야 하는가이다. 일단 ‘상호작용’이라는 표현에 집중한다면, 상호성은 각각
의 독자적 단위 사이의 관계로 이해해야 하고, 그렇다면 법과 정치는 각각
독자성을 가지면서 일정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다고 보아야 한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완전히 지배하는 상황에서는 상호작용을 전제할 수 없
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주의적-사회주의적 법이해와 같이 모든
법률을 사회주의 유일정당의 정치적 의지의 표현이자 이 의지의 관철을 위
한 수단으로 파악한다면, ‘정치 →법’의 관계만이 존재할 뿐, 상호작용을
전제할 수 없다.3) 다시 말해 법은 정치에 완전히 흡수되어 있고, 그로 인
해 법의 독자성이나 자율성을 전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데올로기적 측
면에서 사회주의적 법이해와는 정반대 방향에서 예외상태에 대해 결단을
내리는 주권적 권력을 법의 궁극적 토대로 삼는 칼 슈미트의 결단주의
(Dezisionismus) 역시 정치적인 것(Das Poitische)이 정치를 규율하는 법보
다 훨씬 더 우월한 지위를 갖기 때문에 ‘법과 정치’는 정치의 관점에서 통
일성을 형성할 뿐,4) 법이 정치를 제한하고 통제한다거나 법이 정치로부터
3) 법은 전적으로 정치(국가)의 반영 또는 도구(“법은 지배계급의 국가의지이다”)일 뿐
이라는 사회주의적 법칙성에 관해서는 Institut für Theorie des Staates und des Rechts der Akademie der Wissenschaften der DDR(Hg.), Marxistisch-leninistische Staats- und Rechtstheorie, 1980, S. 98 이하 참고. 또한 기본적으로 사회주의적 관 점에서 정치와 법의 통일성을 지지하는 Eckard Bolsinger, Autonomie des Rechts? Niklas Luhmanns soziologischer Rechtspositivismus — Eine kritische Rekonstruktion, in: Politische Vierteljahresschrift 42(2001), S. 3 이하; Peter Nahamowitz, Autopoietische Rechtstheorie: mit dem baldigen Ableben ist zu rechnen, in: Zeitschrift für Rechtssoziologie 11(1990), S. 137 이하 참고.
4) 정치의 우위에 기초한 결단주의에 관한 개괄적인 내용은 윤재왕, 예외상태와 주권의
역설 - 아감벤의 칼 슈미트 해석에 대한 비판, 「강원법학」제47권(2016), 348면 이하 참고. 최근의 정치철학에서 일종의 슈팅스타(shooting star)로 떠오른 조르지오 아감벤의 정치철학도 법이 발생론적으로 법질서로부터 인간을 배제함으로써 성립한 다고 주장함으로써 법의 권력적 요소를 부각시키고, 이를 정치에 연결시키고 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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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된 자율성을 갖는다는 사고로부터 철저히 단절되어 있다. 물론 이 두
가지 사례는 법과 정치의 관계를 정치의 압도적 우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
는 극단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그렇긴 하지만 근대 이전부터 정치가 독자
성을 갖기 시작하고, 국가라는 정치적 통일성이 사회의 형성에서 핵심적인
지위를 확보하면서 비로소 근대적 의미의 법도 형성되었다는 역사적 전개
과정을 감안한다면 법을 정치의 측면에서 파악하고, 법과 정치를 하나의
단위에 속하는 하부영역으로 생각하는 것은 결코 낯선 사고형태라고 할 수
없다. 무엇보다 ‘주권(Souveränität)’이라는 정치적 개념이 형성되면서부터
법의 제정, 적용, 및 집행은 주권자의 의지에 속하는 영역이 되었고, 중세
까지만 해도 어떤 고정불변의 질서를 의미했던 법은 근대 이후에는 ‘정치
적 법률개념(politischer Begriff des Gesetzes)’5), 즉 정치적 과정의 산물로
서의 법을 의미하게 되었다. 더욱이 군주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법의 적용
을 유보할 수 있는 긴급권(ius eminens)을 인정하거나 법적 당사자의 신분
에 따라 법위반에 따른 제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할 수 있
는 질서에서 법은 정치적 필요에 따라 적용되거나 적용되지 않을 수 있는
정치적 장치에 불과했다. 여기서 ‘정치적’의 의미를 민주주의적으로, 다시
말해 국민주권의 관점에서 이해할지라도 이러한 사정 자체에는 커다란 변
화가 있을 수 없다. 이때에도 법은 법 고유의 논리나 작용방식에 비추어
포착되는 것이 아니라, (넓은 의미의) 정치적 프로세스의 침전물이자 동시
에 이 프로세스의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처분 가능한(disponible) 대상으로
여겨질 뿐이다. 이러한 역사적 전개과정은 법과 정치를 하나의 단위로, 다
시 말해 정치를 중심으로 한 하나의 통일성으로 파악하는 데 중요한 계기
로 작용했고, 어쩌면 그러한 이해방식이 법과 정치의 관계에 관한 상식으
때문에 법의 독자성이나 자율성이라는 사고를 연결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즉 아감벤에게 법은 그 자체 폭력이거나 폭력적 정치의 수단으로 기능하는 메커니즘일 뿐이다. 이에 관해서는 윤재왕, 앞의 논문, 362면 이하; Sven Opitz, Ausnahme mit System. Niklas Luhmann und Giorgio Agamben an der Grenze zum Anderen des Rechts, Kritische Justiz 44(2010), S. 438 이하 참고.
5) 법이 전통과 종교 또는 자연법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정치적 형성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정확히 표현하고 있는 이 용어는 Franz Neumann, Die Herrschaft des Gesetzes, 1980, S. 68 이하에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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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통용되고 있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이와 같이 정치를 중심으로 법과 정치의 관계를 설정하는 것과는 정반
대로 법실증주의적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면서 정치나 법을 오로지 법의 관
점에서 포착하는 이론은 한스 켈젠에 의해 본격적으로 구성되었다. 켈젠은
- 무엇보다 인식론적 근거에서 - 당위의 영역에 속하는 법과 권력행사나
목적달성과 같은 존재 영역에 속하는 정치를 엄격히 구별하고, 이를 통해
법의 완벽한 독자성을 강조하면서 법이 정치와는 분리된다는 점을 이론적
으로 규명하려고 시도한다.6) 하지만 켈젠의 법실증주의는 법과 정치의 역
학관계를 설득력 있게 밝히기 보다는, 법의 독자성을 강조하고 법 이외의
영역은 정치적 실천과 정치적 투쟁에 내맡김으로써 법과 정치 사이의 상호
적 역학관계를 파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7) 특히 켈젠은 자신의 ‘순수’
법학에 기초하여 정치의 상징적 표현으로서의 국가마저도 법과 동일시하는
‘법과 국가의 동일성’ 테제8)를 통해 법이론적 사고에서 정치적 요소를 제
거하여 정치를 오로지 법을 중심으로 파악하는 결론에 도달한다. 즉 켈젠
의 순수법학은 법의 독자성을 확보한다는 점에서는 ‘법’이론적 정점에 해
당한다고 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법으로부터 정치적 요소를 제거함으로
써 법과 정치의 상호작용을 설명할 수 없다는 난관에 봉착한다.
이러한 이론사적 배경을 감안할 때, 과연 법의 독자성을 긍정하면서 동
시에 법과 정치의 상호작용 또는 상호 의존관계라는 의문의 여지없는 사실
6) 이에 관해서는 특히 Hans Kelsen, Der soziologische und juristische Staatsbegriff,
1922[Neudruck 1962], S. 88 이하; ders., Staat als Integration. Eine prinzipielle Auseinandersetzung, 1930, S. 13 이하 참고.
7) 특히 켈젠의 법실증주의가 법질서의 완결성을 통해 민주적 실천에 대한 개방적 태
도를 취한다는 점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는 Horster Dreier, Rechtslehre, Staatssoziologie und Demokratietheorie bei Hans Kelsen, 2. Aufl., 1990, S. 278 이하 참고.
8) Hans Kelsen, Reine Rechtslehre, 1. Aufl., 1934, S. 117 이하; ders, Reine
Rechtslehre, 2. Aufl., 1960, S. 278 이하. 켈젠의 이 동일성 테제에 관해서는 Horst Dreier, Hans Kelsen und Niklas Luhmann: Positivität des Rechts aus rechtswissenschaftlicher und systemtheoretischer Perspektive, in: Rechtstheorie 14(1983), S. 451 이하; Robert Chr. van Ooyen, Hans Kelsen und offene Gesellschaft, 2010, S. 26 이하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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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밝힐 수 있는 적절한 이론적 도구를 찾아내는 것은 법이론으로서는 상
당히 중요한 문제가 된다. 다시 말해 정치 일변도 또는 법 일변도의 시각
에서 벗어나 법과 정치를 각각의 독자적 단위로 설정하면서도 동시에 양자
의 관계까지 설정할 수 있는 개념적 틀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게
된다. 어느 누구도 법의 논리가 정치에 의해 지배되는 것을 긍정하지 않으
며, 거꾸로 정치가 단순히 법의 실현에 불과하다고 주장할 수 없다는 전제
하에, 이 전제의 충족조건 및 구체적인 실현과정을 이론적으로 밝히는 것
은 법이론 또는 법철학의 과제에 해당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니클라스 루
만의 체계이론은 현재의 법이론 또는 정치이론의 지형 내에서는 거의 유일
하게 법과 정치의 독자성을 확인하고, 이러한 독자성에 기초하여 양자의
상호관계를 설명하려는 독창적이고 독보적인 - 물론 그 타당성은 별개의
문제이다 - 이론적 시도라는 점을 관찰하게 된다. 이 점에서 본 논문은 루
만의 체계이론이 어떠한 이론적 배경에서 법과 정치가 자율적인 체계로 구
성되어 있다고 주장하는지를 설명하고, 특히 각 체계의 자율성이 곧 상호
관련성의 전제조건이 된다는 사실을 밝히고자 한다(II). 또한 이러한 전제
조건이 충족된다면 과연 어떠한 메커니즘을 통해 법과 정치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지를 밝히고자 한다(III). 다만 법의 관점에서 바라 본 정치와
정치의 관점에서 바라본 법을 각각 별개의 이론영역으로 구성하고 있는 체
계이론을 한 편의 글에 모두 담을 수는 없기 때문에, 이 글은 일단 법의
관점, 더 정확히는 법에 관한 체계이론의 관점을 더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더욱이 20세기 최후의 거대이론(grand theory)으로
평가되는 체계이론의 모든 측면들을 다룰 수는 없기에 체계이론의 기초개
념들에 대해 낱낱이 설명할 수 없다는 사정 역시 첨언해 두고자 한다.
II. 법체계의 자율성에 대한 체계이론의 구상
루만의 체계이론을 이해하기 위한 첫 단계에서 가장 커다란 인식적 장
애물(obstacle épistémologique)9)로 작용하는 것은 이론의 명칭 자체에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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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되어 있는 ‘체계’라는 개념이다.10) 법학의 전통에서 체계는 통상 최상위
에 있는 추상적 공리로부터 연역적으로 도출되는 다수의 명제들 사이의 연
관성으로 이해된다. 즉 명제들의 위계적 연관성 및 그에 따른 논리적 도출
가능성(logische Ableitbarkeit)을 체계라고 한다. 예를 들어 켈젠은 ‘근본규
범’이라는 가상의 규범을 정점으로 삼아 이로부터 논리적으로 도출되는 하
위의 규범들이 단계구조를 형성하고, 법질서는 이러한 단계구조의 총체로
서 하나의 통일성을 형성한다고 한다.11) 이에 반해 루만의 체계개념은 이
와는 전혀 다른 내용을 갖고 있다. 즉 체계이론의 체계는 더 이상 서로 논
리적 연관성을 갖는 법규범과 법제도들 사이의 내적 통일성을 통해 구성되
는 것이 아니라, 체계에 해당하지 않는 다른 모든 것과의 지속적인 경계설
정을 통해 구성된다. 따라서 법체계는 법체계에 속하지 않는 다른 모든 것
들과 경계를 설정하는 지속적 과정을 통해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구성된
다. 이 점에서 체계이론은 통일성이 아니라, 차이를 지향한다. 이는 곧 법
체계를 체계(우리의 맥락에서는 법)/환경(법이 아닌 다른 모든 것)의 구별
에 의해 파악한다는 사고를 뜻한다.12)
9) 루만이 즐겨 사용하는 이 표현(예컨대 Niklas Luhmann, Einführung in die Theorie
der Gesellschaft, 2005, S. 32)은 프랑스의 과학철학자인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La Formation de l'esprit scientifique, 1938(독일어판: Die Bildung des wissenschaftlichen Geistes, 1987)에 기원한다. 루만은 이 표현을 기존의 사고방식 이 체계이론을 전개하는 데 장애로 작용한다는 의미로 사용하지만, 아마도 그 자신 의 이론 자체에도 해당하는 자기적용(Selbstanwendung) 메커니즘으로 보아도 무방 할 것이다.
10) 루만의 체계이론은 일반 체계이론으로서 유기체와 인간의 의식과 같은 비사회적 체
계와 사회적 체계를 모두 포괄한다. 따라서 체계에 관한 루만의 서술은 사회적 체 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러한 ‘보편이론’으로서의 체계개념을 전제할 경우에는 서술이 극도로 복잡해지기 때문에 이 글에서 ‘체계’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에는 사 회적 체계를 염두에 두고 있으며, 특히 법체계와의 관련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11) 이러한 전통적인 (법학적) 체계개념에 관해서는 Thomas Vesting, Rechtstheorie,
2007, S. 35 이하. 이에 대한 루만의 간략한 언급으로는 Niklas Luhmann, Das Recht der Gesellschaft, 1994, S. 54 이하(니클라스 루만, 「사회의 법」, 2014, 윤 재왕 옮김, 2014, 84면 이하); ders., Recht als soziales System, in: Zeitschrift für Rechtssoziologie 20(1999), S. 6 참고.
12) “체계개념 자체는 체계와 환경의 구별을 지칭한다[Niklas Luhmann, 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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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러한 체계개념에서도 체계는 체계이기 때문에 이를 구성하는 요
소(Element)를 전제해야 한다. 전통적 체계개념에서 체계의 요소는 명제
또는 (법의 경우에는) 법규범이다. 이에 반해 체계이론에서 체계요소는 커
뮤니케이션(Kommunikation)이다. 따라서 법체계를 구성하는 요소는 법적
커뮤니케이션이다. 커뮤니케이션이란 무수히 많은 가능한 의미들 가운데
특정한 의미를 현재화하는 선별로서의 정보(Information), 다양한 전달 가
능성들 가운데 특정한 방식을 선별하는 통보(Mitteilung) 그리고 여러 가지
다른 가능성들 가운데 특정한 가능성을 선별하여 정보와 통보의 차이를 구
성하는 이해(Verstehen)의 종합(Synthese)을 뜻한다.13) 이러한 커뮤니케이
션은 언제나 의미가 수반되어 있는(sinnhaft) 현상이지만, 그것이 이루어지
는 순간 사라지는 일회적인 사건일 뿐이다. 이 점에서 하나의 체계, 즉 요
소들 사이의 연관성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하나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진
이후 여기에 같은 종류의 다른 커뮤니케이션이 연결되어야 한다. 다시 말
해 커뮤니케이션이 그 이전의 (같은 종류의) 커뮤니케이션이나 (역시 같은
종류의) 장래의 커뮤니케이션과 연결가능성(Anschlussfähigkeit)을 확보할
때에만 비로소 커뮤니케이션들의 체계가 형성된다. 이처럼 회귀적(rekursiv;
즉 과거의 커뮤니케이션 또는 장래의 커뮤니케이션에 연결되는) 연관성이
확보된 상태의 커뮤니케이션을 루만은 작동(Operation)이라고 부른다.14) 그
Gesellschaft der Gesellschaft, Zweiter Teilband, 2, 2007, S. 609(니클라스 루만, 「사회의 사회」, 장춘익 옮김, 2014, 706면)].” 법체계의 관점에서는 니클라스 루 만, 「사회의 법」, 2014, 66면 이하 및 법과 환경의 차이와 그에 따른 법체계의 통일성의 문제를 설명하는 Niklas Luhmann, Die Einheit des Rechtssystems, in: Rechtstheorie 14(1983), S. 129 이하, 특히 S. 138 이하 참고.
13) 루만의 커뮤니케이션 개념에 대해서는 무엇보다 Niklas Luhmann, Soziale
Systeme. Grudriß einer allgemeinen Theorie, 1984, S. 194 이하 및 이에 대한 비 교적 ‘친절한’ 설명인 Wolfgang Ludwig Schneider, Grundlagen der soziologischen Theorie, Bd. 2, 3. Aufl, 2009, S. 276 이하(‘사회적 체계의 작동으로서의 커뮤니케 이션’) 참고.
14) 체계의 요소로서의 작동과 연결가능성에 대해서는 Niklas Luhmann, Soziale
Systeme, 1984, S. 245 이하, 249 이하; ders., Einführung in die Systemtheorie, 2002, S. 77 이하(니클라스 루만, 「체계이론 입문」, 윤재왕 옮김, 2014, 100면 이 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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렇다면 체계는 작동이라는 요소가 회귀적으로 연결되는 연관성이다. 하나
의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작동은 당연히 의미가 수반되어 있고, 특정한 체
계에는 이 체계 고유의 의미가 수반되며, 이 고유한 의미는 ‘다른 것이 아
닌 바로 이것’이라는 구별의 산물로서, 이러한 구별이 다시 동일한 구별에
지속적으로 연결될 때에 비로소 체계가 형성된다. 그 때문에 체계는 곧 체
계와 환경을 구별하는 지속적인 작동의 연결이며, 따라서 작동 그 자체가
이미 체계/환경의 구별이다. 이를 법체계에 대입해보면, 법체계는 법적 의
미가 수반된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작동들의 연결로서 이를 통해 법체계와
법체계에 속하지 않는 환경을 구별하는 지속적인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
다.
체계의 이러한 작동은 자신을 어떤 다른 것과 구별하고, 구별의 어느 한
쪽을 지칭(Bezeichnung)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 점에서 작동은 구별과 지
칭을 포괄하는 하나의 단위이며, 작동이 갖는 이 측면을 루만은 관찰
(Beobachtung)이라고 부른다. 즉 작동은 구별과 지칭의 통일성이라는 의미
에서 곧 관찰이다. 다시 말해 관찰은 구별과 지칭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으며, 무엇인가를 관찰한다는 것은 관찰에 포함되는 것과 관찰을 통해
배제되는 것을 구별하여 지칭하는 작동이라는 것을 전제한다.15) 이 점에서
체계개념을 체계와 환경의 구별로 정의하는 체계이론은 모든 관찰이 구별
또는 차이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인식론적 통찰을 이론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더 나아가 체계의 작동은 그것이 체계의 작동이란 점에서, 즉 체계 고유
의 구별을 지속적으로 연결하는 작동들의 연관성이라는 점에서 언제나 체
계 자신과 관련을 맺는다. 이처럼 체계가 자기 자신과만 관련을 맺는다는
측면을 자기준거(Selbstreferenz)16)라고 부른다. 조금 더 엄밀하게 표현하면,
15) 이처럼 하나의 구별이라는 측면에서는 작동과 관찰은 구별되지 않는다. 다만 작동
과 관찰이 각각 다른 것과 어떻게 구별되는지에 따라 양자는 다시 다른 의미를 갖 는다. 양자의 관련성 및 차이는 매우 복잡한 문제영역에 해당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이를 자세히 논의할 수 없다. 이에 관해서는 니클라스 루만, 「사회의 법」, 2014, 66면 73면 이하 참고. ‘관찰’ 개념에 관해서는 또한 니클라스 루만, 「체계이론 입 문」, 183면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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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계는 언제나 구별을 하고 구별된 것을 지칭하는(관찰!) 체계 자신과 관
련을 맺고 있다. 이는 작동들이 언제나 체계의 작동들에만 연결된다는 점,
즉 체계가 체계요소들 사이의 상호연관이라는 점에서 너무나도 당연하다.
이 당연한 측면을 기초적 자기준거(basale Selbstreferenz)라고 한다. 하지만
체계의 자기준거는 개개의 요소들 사이의 관련성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
라, 체계 내에서 일정한 방식으로 관련을 맺는 다수의 요소들이 다른 관련
을 맺는 요소들과 관련을 맺거나 요소들의 연관성으로서의 체계 전체가 체
계 스스로와 관련을 맺는 경우도 있다. 전자의 자기준거를 반사성
(Reflexivität)이라 하고, 후자의 자기준거를 성찰(Reflexion)이라고 한다. 예
를 들어 법체계의 작동이 정치나 경제와 같은 환경의 작동이 아니라 법체
계 자신의 작동과 연결된다는 합법성은 기초적 자기준거에 해당한다. 이에
반해 법체계의 작동들의 일정한 연관성으로서의 합법성이 법체계의 또 다
른 작동 연관성으로서의 헌법에 부합하는지에 관련된 합헌성은 반사성으로
서의 자기준거이다. 또한 체계라는 포괄적 단위가 과연 사회 전체에서, 특
히 사회 내의 다른 체계와의 관련 속에서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라는 정당
16) ‘준거’와 ‘관찰’ 역시 서로 구별된다. 루만의 설명에 따르면 구별이 지칭된 것에 대
한 정보를 획득할 목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준거’는 ‘관찰’이 된다(Niklas Luhmann, Soziale Systeme, S. 596 이하). 보통 준거는 정보의 획득을 위해, 즉 관 찰로서 이루어지지만, 그러한 목적 또는 이익의 요소를 배제한 개념을 구사하기 위 해 루만은 양자를 구별한다. 「사회의 사회」를 번역한 장춘익 교수는 ‘Referenz’를 ‘지시’로 번역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 편의 논문[장춘익, ‘자기지시적 체계’에서 ‘자 기지시Selbstreferenz’란 무엇을 뜻하는가?, 「철학연구」107(2014), 141면 이하]을 통해 전개하고 있다. 특히 ‘준거’가 사전적으로 ‘기준과 근거’라는 의미를 갖기 때 문에 ‘Referenz’를 ‘준거’로 번역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앞의 논문, 146면, 150면 등)은 설득력이 있다. 다만 자기준거라는 번역어를 선택한 나는 ‘기준과 근 거’라는 의미로 ‘준거’를 이해하지는 않았다. 물론 ‘준거’라는 단어가 너무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독일어 ‘Referenz’는 ‘관련(Bezug)’ 또는 ‘관련성 (Bezüglichkeit)’이라는 의미이고, 나 역시 ‘준거’를 이런 의미로 이해한다는 전제하 에 사용했다. 따라서 반드시 ‘지시’라는 용어로 번역해야 할 필연성을 느끼지는 않 는다. 첨언이지만 장춘익 교수도 독일어 ‘Bezugspunkt’를 ‘준거점으로 번역(예컨대 「사회의 사회」, 855면)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준거’를 반드시 ‘기준과 근거’로 만 이해하지는 않는 것 같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여 - 더 적절한 번역용어와 관 련된 합의를 기대한다는 전제하에 - 일단 ‘준거’라는 번역을 고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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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체계의 자율성 - 체계이론적 관점에서 본 법과 정치의 관계269
성의 문제를 작동의 내용으로 삼는 자기준거는 성찰에 해당한다.17)
다른 한편 체계의 자기준거는 체계가 체계와 환경의 구별이라는 점에서
이미 타자준거(Fremdreferenz)를 포함한다. 왜냐하면 구별로서의 작동은 이
작동을 수행하는 것과 관련을 맺음과 동시에 이 작동을 통해 배제되는 환
경과도 관련을 맺기 때문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타자준거 역시 여전히
체계의 작동이지, 결코 환경의 작동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체계
는 체계의 작동으로서 자기준거와 타자준거를 구별하기 때문에, 타자준거
는 체계의 관점에서 관찰한 환경일 뿐, 환경 그 자체가 아니다.18) 다시 법
체계와 관련시켜 예를 들자면, 법체계가 체계 바깥에 있는 경제적 이익을
고려할 경우, 법체계는 그러한 이익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법체계 내의 작동들의 연결을 통해 형성된 법개념에 비추어 평가하거나 변
용하는 과정을 거친다(더욱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배임죄의 성립 여부를
판단할 때 ‘손해’라는 법적 개념은 순수한 경제적 의미의 손해와는 다르고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타자준거는 어디까지나 체계의 작
동이다. 그리고 이러한 타자준거를 통해 체계는 환경에 대한 개방성을 갖
게 되고, ‘체계는 체계이다’라는 자기준거적 동어반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이상에서 서술한 체계이론의 몇몇 기초개념들은 개념 자체에 이미 체계
의 독자성과 독립성 또는 자율성을 내포하고 암시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
한 기초개념들이 각각 별개의 개념들이 아니라, 다시 서로가 서로를 지시
하는 복합적인 순환관계를 형성하고 있어서, 시간적 순서와 공간적 배열을
거부한다는 데 있다.19) 즉 각 개념들을 평면적으로 서술하는 데에는 명백
17) 자기준거가 갖는 이 세 가지 측면에 관해서는 Niklas Luhmann, Soziale Systeme,
S. 600 이하 및 이를 법질서의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는 Marcelo Neves, Verfassung und Positivität des Rechts in der peripheren Moderne. Eine theoretische Betrachtung und eine Interpretation des Falls Brasilien, 1992, S. 183 이하; ders., Symbolische Konstitutionalisierung, 1998, S. 108 이하 참고.
18) ‘타자준거’가 갖는 이 자기준거적 의미에 관해서는 니클라스 루만, 「사회의 법」,
82면 이하 참고. 루만의 단행본 가운데 그 어느 곳에서도 ‘타자준거’를 별도의 항 목으로 제시하지 않는다는 사정은 이를 그대로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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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한계가 있다. 더욱이 ‘법체계의 자율성’이라는 체계이론의 특수한 문제
영역에 집중하고자 하는 이 글이 개념적 순환성을 온전히 담아낼 수는 없
다. 이런 이유에서 아래에서는 평면적 서술이라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루만
의 체계이론이 법체계의 자율성을 주장하는 이론적 배경들을 개관하는 데
한정하기로 한다. 이를 위해 먼저 기능체계의 분화에 관한 일반적 서술(1)
을 행한 이후, 이 일반이론을 법체계의 특수성에 국한시켜 법체계의 기능
그리고 기능적 분화의 전제조건으로서의 커뮤니케이션매체 및 코드/프로그
램의 구별(2)을 다룬다. 상대적으로 낮은 추상성을 갖는 1과 2의 논의를
토대로 이른바 자기생산 테제와 작동상의 폐쇄성 이론(3)에 관한 더욱 추
상적인 논의를 소개하겠다.20)
- 기능체계의 분화와 법체계의 분화
1) 기능체계(들)
루만은 일단 역사적 관점에서 사회가 다양한 형태의 체계분화
(Systemdifferenzierung)21)를 전개하는 진화 과정을 거쳤다는 사실을 체계
19) 루만은 자신이 구사하는 기본개념들의 순환성을 하나의 도표로 구성하여 이론적 프
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도표는 Niklas Luhmann, Unverständliche Wissenschaft, in: ders., Soziologische Aufklärung, Bd. 3. Soziales System, Gesellschaft, Organisation, 1993, S. 177을 참고. 또한 이러한 프로그램에 관해 설명하고 있는 Andreas Goebel, Theoriegenese als Problemgenese. Eine problemgeschichtliche Rekonstruktion der soziologischen Systemtheorie Niklas Luhmanns, 2000, S. 10 이하도 참고.
20) 추상도(Abstraktionsgrad)와 관련된 이러한 서술방식은 단순히 서술기술 (Darstellungstechnik)에 관련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루만의 체계이론 전체의 전 개과정에도 부합한다. 즉 이른바 자기생산적 전환(autopoietische Wende)의 상징으 로 불리는, 1984년의 저작 ‘사회적 체계들(Soziale Systeme)’ 이후 그렇지 않아도 추상적인 체계이론의 추상도는 더욱더 상승한다. 이 점은 ‘사회적 체계들’에 등장하 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구절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비행은 구름 위에서 이루어지 며, 더욱이 상당히 짙게 덮인 구름을 예상해야 한다. 그 때문에 자신의 도구에만 의존해야 한다(Niklas Luhmann, Soziale Systeme, S. 13).”
21) Niklas Luhmann, Soziale Systeme, S. 37(“체계분화는 체계 내에서 체계형성이 반
복된다는 것을 뜻한다. 즉 체계 내부에서 다른 체계/환경의 차이들이 분화하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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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체계의 자율성 - 체계이론적 관점에서 본 법과 정치의 관계271
이론의 출발점으로 삼는다.22) 가장 근원적 분화 형태는 분절적(segmentär)
분화이다. 분절적 분화는 예컨대 혈족 또는 거주 지역에 따라 사회 내에
다수의 동일한 종류의 부분체계가 성립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가족은
가장 단순한 형태의 부분체계에 해당한다. 그리고 다수의 가족들은 촌락을
형성하고, 다수의 촌락은 다시 부족을 형성하는 등등의 과정이 지속된다.
이에 반해 근대 이전의 고도문명에서는 - 각 문명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 위계적(stratifikatorisch) 분화와 중심/주변에 따른 분화가 병존하
게 된다. 주로 중심/주변을 기준으로 분화된 사회에서는 부분체계들 사이
의 차이는 공간적 위치에 따라 결정된다. 즉 하나 또는 다수의 중심은 중
심의 관점에서는 중요한 의미가 없는 주변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와는 달
리 중세의 신분사회와 같이 주로 위계적으로 분화된 문명에서는 전체체계
는 위계적으로 단계화된 부분체계들로 나뉘고, 각각의 부분체계 내에서 다
시 같은 등급을 갖는 부분체계들(가족 또는 가문)의 분절적 분화가 이루어
진다. 이 세 가지 형태의 분화는 근대 이후의 사회에서도 일정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학문체계 내에서의 분절적 분화(학문분과), 경제에서의 중
심/주변 분화(산업국가와 저개발국가), 조직 내에서의 위계적 분화(대법원/
고등법원/지방법원) 등은 오늘날에도 관찰할 수 있는 분화형태이다. 그렇지
만 근대사회의 특징은 기능적 분화의 우위이다. 기능적 분화의 핵심은 서
로 다른 기능을 갖고 있고 서로 위계적(수직적)이 아니라 수평적 관계에
있는 다수의 체계들로 분화하는 것이다.23)
다. 이를 통해 전체체계는 부분체계들을 위한 ‘내재적 환경’이라는 기능하게 되며, 더욱이 각각의 부분체계들에 대해 특수한 방식으로 기능한다.”).
22) 여기서 말하는 진화는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변화라는 진보(Fortschritt)가 아니라,
다윈의 진화개념이 원래 의미한 대로 일정한 방향으로의 변화를 뜻할 뿐이다. 이러 한 진화개념과 체계이론의 상관성에 대해서는 Niklas Luhmann, Soziale Systeme, S. 588 이하; ders., Einführung in die Theorie der Gesellschaft, S. 181 이하; 루 만, 「사회의 사회」, 460면 이하 참고. 또한 법의 진화에 관해서는 Niklas Luhmann, Rechtssoziologie, 2. Aufl. 1983, S. 132 이하; ders., Evolution des Recht, in: ders., Ausdifferenzierung des Rechts, 1981, S. 11 이하 참고.
23) 이러한 분화형식들 및 그 역사적 과정에 대해서는 특히 니클라스 루만, 「사회의
사회」, 제4장 분화(691면 이하)의 서술을 참고. 또한 법체계의 분화에 관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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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기능적 분화로의 전개를 결코 목적에 지향된 과정 또는 수직적
발전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체계 내부의 복잡성을 구축하는 능력의 관
점에서는 분절적 사회로부터 고도문명을 거쳐 근대사회에 이르기까지 지속
적으로 상승했고,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다. 하지만 이 상승과정은 전적으로
진화(Evolution)에 힘입은 것이지, 어떤 발전계획에 따라 진행된 것이 아니
다. 또한 각각의 진화형태는 인류의 사회적 발전의 시간적 진행과정에 대
한 도식이 아니다. 즉 모든 시대의 사회에는 여러 가지 분화형태가 병존한
다는 사실 그리고 얼마든지 그 이전의 주도적 분화형태로 되돌아갈 수 있
는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분화형태에 일정한 시간적 순서
나 가치적 우위를 전제하는 것은 진화 또는 진화이론이라는 개념 자체에
반한다. 그렇지만 사회의 체계분화의 잠정적 종착점은 기능적으로 분화된
근대사회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물론 기능적 분화는 과거의 분화형태에서와 같이 하나의 체계가 다수의
부분단위로 나뉘고, 인간은 각 부분단위들(예컨대 귀족체계 또는 중심체계)
가운데 어느 하나에 귀속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능적 분
화는 개개의 독립된 커뮤니케이션 영역들이 병존하면서, 각 커뮤니케이션
영역은 오로지 하나의 문제에만 관련을 맺는 상태이다. 다시 말해 각각의
기능체계는 오로지 하나의 특수한 문제설정의 관점에서만 전체사회 및 분
화되어 있는 다른 체계들을 관찰한다. 바로 이 점에서 각 기능체계는 체계
와 환경의 차이라는 구별도식을 통해 체계를 형성하고, 체계 형성을 위해
체계 고유의 커뮤니케이션매체(Kommunkationsmedium)를 사용하고 코드
(Code)라는 단순한 구별도식을 형성한다.24) 예를 들어 학문체계는 모든 커
뮤니케이션들을 진리의 측면에서 문의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지식의 생성
Niklas Luhmann, Ausdifferenzierung des Rechtssystems, in: ders., Ausdifferenzierung des Rechts, 1981, S. 37 이하 참고. 또한 루만의 기능적 분화 이론 그리고 이에 대한 비판을 포괄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Armin Nassehi, Die Theorie funktionaler Differenzierung im Horizont ihrer Kritik, in: Zeitschrift für Soziologie 33(2004), S. 98 이하, 특히 110 이하 참고.
24) 코드와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한 기능적 분화의 논리에 대한 명쾌한 설명으로는
Niklas Luhmann, Einführung in die Theorie der Gesellschaft, S. 261 이하의 설명 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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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추구한다. 즉 학문체계의 작동으로서의 커뮤니케이션은 언제나 진리라
는 매체를 거쳐 이루어지고, 어떤 커뮤니케이션이 학문체계에 속하는지를
명확하게 확인하기 위해(또는 학문체계를 체계 바깥의 환경과 구별하기 위
해) 진리/비진리(참/거짓)이라는 도식(코드)를 형성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정치체계는 모든 것들을 권력관계에 미치는 영향의 관점에서 관찰하고, 경
제체계는 하나의 사건이 금전의 지불을 야기하는지 여부에 따라 관찰한다.
이렇게 해서 근대사회는 다수의 관점들(Perspektive)로 분할되고, 어느 한
관점이 전체사회를 대표한다고 볼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한다.25) 루만은 학
문, 정치, 경제, 예술, 법, 친밀관계, 보건체계, 대중매체, 교육 등을 그러한
기능체계들로 파악한다.26)
기능적 부분체계들로의 분화로 인해 사회는 하나의 사건이 각 기능체계
에 따라 서로 다른 정보를 생산하고 각 체계마다 서로 다른 결과를 야기
하는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 서로 다른 정보와 서로 다른 결과를 조율하
거나 일정한 계획에 따라 연결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각 기능
체계들은 체계 고유의 작동들의 연관성이라는 체계 자체의 의미에 따라 각
각 독립되고 완결된 상태에서 체계 고유의 기준에 따라 작동하기 때문이
다. 다시 말해 하나의 기능체계는 오로지 그 기능체계에만 해당하는 작동
들의 회귀적 연관성으로서, 그 자신 이외의 다른 어떠한 기능체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구별에 기초한다. 그 때문에 루만은 기능체계의 작동은 폐
쇄성(Geschlossenheit)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27) 예를 들어 물가상승이라는
25) 이에 관해서는 개개의 기능체계들을 하나의 연구에 담고 있는 (이 측면에서는 루만
의 저작 가운데 유일한 저작이라 할 수 있는) Niklas Luhmann, Ökologische Kommunikation, Kann die moderne Gesellschaft sich auf ökologische Gefährdungen einstellen?, 1986, S. 202 이하, 206 참고.
26) 각각의 기능체계들에 대한 단행연구로는 Niklas Luhmann, Liebe als Passion. Zur
Codierung der Intimität, 1982; Die Wirtschaft der Gesellschaft, 1988; ders., Die Wissenschaft der Gesellschaft, 1990; ders., Das Recht der Gesellschaft, 1993; ders., Die Kunst der Gesellschaft, 1995; Die Politik der Gesellschaft, 2000(사후 출간); ders., Die Religion der Gesellschaft, 2000(사후출간); ders., Das Erziehungssystem der Gesellschaft, 2002(사후출간)이 있다.
27) 체계의 폐쇄성에 관해서는 Niklas Luhmann, Soziale Systeme, S. 602 이하; d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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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사건을 둘러싸고 기능적으로 분화된 사회에서는 다수의 관점들로
분해되는 과정을 겪게 된다. 즉 학문체계는 물가상승을 전적으로 진리의
관점에서 파악하면서, 적절한 학문적 방법을 통해 물가상승을 확인했는지
여부를 검토하여 결론이 진리인지 여부를 판단한다. 이에 반해 정치체계에
게는 물가상승의 진리성 여부는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정치체계에 결정
적인 문제는 물가상승이 의회의 권력관계에 영향을 미치는지, 다시 말해
야당이 여당에게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 근거로 작용하는가이다. 또한 경
제체계의 관점에서는 물가상승이 금전지불의 수행 또는 포기에 어떤 영향
을 미치고, 소비행태가 어떤 식으로 변화하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이와 같
이 각 기능체계마다 서로 다른 작동의 연관성을 갖는다는 사실로 인해 모
든 기능체계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상위의 메타작동 또는 메타커뮤니케
이션은 존재하지 않는다.
2) 기능과 매체
앞에서 서술한 체계분화이론은 상당부분 역사적 또는 진화적 전개과정
을 묘사할 뿐, 이로부터 기능체계들의 내재적 논리를 직접 파악할 수는 없
다. 그 때문에 루만은 체계분화의 조건과 내적 메커니즘을 밝히기 위해 다
양한 이론적-개념적 도구를 구사한다. 이 측면에서는 특히 근대사회로부
터 하나의 커뮤니케이션 연관성, 즉 체계가 부분체계로 분화할 수 있기 위
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사실이 중요하다. 첫째, 사회의 부
분체계는 - 전체사회의 관점에서는 - 하나의 기능의 충족에만 관련되어야
한다. 즉 부분체계는 - 체계 자신의 관점에서는 - 하나의 기능을 독점해야
한다. 여기서 부분체계의 기능은 ‘사회의 한 가지 문제와의 관련성’을 뜻한
다.28) 다시 말해 전체사회에서 중요한 한 가지 문제를 처리하는 것이 곧
기능이다. 예를 들어 정치체계의 기능은 결정의 정당성에 대해 합의가 존
재하지 않을지라도 그 결정이 집단적 구속력을 갖게 만들거나 그러한 결정
Die Einheit des Rechtssystems, S. 133 참고.
28) 니클라스 루만, 「사회의 사회」, 856면; Niklas Luhmann, Ökologische Kommunikation, S. 207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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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준비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 부분체계가 한 기능을 독점한다는 것은 이
기능을 다른 어떤 부분체계도 이 기능을 충족하지 못한다. 그 때문에 기능
적 분화는 ‘반복의 포기(Redundanzverzicht)’29)이다. 그 때문에 전체사회 -
그리고 전체사회에서 분화되어 있는 다른 모든 부분체계들 역시 - 특정한
부분체계가 그 체계의 기능을 충족한다는 사실에 의존한다. 그 때문에 어
느 한 부분체계가 붕괴되면 이 체계의 기능을 다른 부분체계가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학문체계가 기능하지 못한다면 새로운 지식의
생산이라는 이 체계의 기능을 다른 부분체계가 대체할 수 없다.
둘째, 오로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작동으로만 구성된 사회적 체계로서의
전체사회로부터 역시 오로지 커뮤니케이션 작동으로만 구성된 부분체계로
서의 한 사회적 체계가 분화되기 위해서는 이 부분체계의 커뮤니케이션 방
식(= 작동방식)이 다른 커뮤니케이션과 구별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에
만 비로소 특수한 커뮤니케이션들의 독자적이고 자기준거적인 재생산 네트
워크가 포괄적인 커뮤니케이션체계로서의 전체사회로부터 분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리, 즉 체계분화는 한 부분체계에서 하나의 상징적으로
일반화된 커뮤니케이션매체(symbolisch generalisiertes Kommunikations-
medium)30)를 독점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더욱 강화된다. 상징적으로 일반화
된 매체는 커뮤니케이션을 수용할 수도 있고 이를 거부할 수도 있다는,
(넓은 의미의) 언어 자체에 내재하는 가능성에 대응하기 위해 진화적 발전
을 거쳐 형성된다. 이는 커뮤니케이션이 갖고 있는 불안정성에 기인한다.
즉 정보-통보-이해의 종합으로서 하나의 커뮤니케이션이 성립한 이후 이해
를 한 자는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이루어진 선별들(앞에서 지적했듯이 정보,
통보, 이해는 모두 선별이다)을 수용하여 자신의 체험과 행위의 전제로 삼
29) Niklas Luhmann, Ökologische Kommunikation, S. 97, 208 이하.
30) 파슨스(Talcott Parsons)에서 유래하는 이 개념에 관해서는 니클라스 루만, 「사회
의 사회」, 373면 이하; Niklas Luhmann, Einführende Bemerkungen zu einer Theorie symbolisch generalisierter Kommunikationsmedien, in: ders., Soziologische Aufklärung, Bd. 2. Aufsätze zur Theorie der Gesellschaft, 1975, S. 170 이하; ders., Soziale Systeme, S. 222 이하 참고. 또한 Wolfgang Ludwig Schneider, Grundlagen der soziologischen Theorie, Bd. 2, S. 317 이하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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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수도 있고 아니면 커뮤니케이션을 거부할 수도 있는 선택의 기로에 놓
인다. 이 선택가능성은 언어 자체가 ‘예/아니요’ 또는 ‘긍정/부정’의 가능성
을 포함한다는 사실에 근거한다.31) 이처럼 개개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긍
정적 또는 부정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는 사정 때문에 과연 커뮤니케이션이
수용될 것인지 여부가 불확실하게 된다. 그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이 수용될
수 있는 개연성을 높이는 장치가 필요하게 된다. 개인들 사이의 직접적 상
호작용을 중심으로 하는 단순한 사회에서는 주로 도덕이 그와 같은 장치로
사용된다. 예컨대 곤궁에 처한 사람이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 도움을 요청
하는 커뮤니케이션 자체만으로는 이것이 수용될 개연성은 매우 낮다. 여기
에 인간에 대한 존중과 멸시의 조건들을 규정하는 도덕 - 이 경우에는 ‘곤
궁에 처한 자에게 도움을 주어야 하는 게 마땅하다’는 도덕적 명령 - 이라
는 커뮤니케이션 매체, 즉 커뮤니케이션의 연결가능성을 매개하는 장치가
개입하면 커뮤니케이션의 수용 가능성이 높아진다(물론 가능성이 높아진다
는 것일 뿐 확실하게 수용된다는 뜻은 아니다. 상징적으로 일반화된 매체
라는 표현에서 ‘상징적’은 바로 이 의미이다. 즉 현실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도덕이라는 매체는 주로 개인적 상호작용에 구속되기 때문
에 특히 문자를 사용하여 커뮤니케이션이 시간적-공간적으로 개인들이 직
접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면 커뮤니케이션의 통제
메커니즘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한다.32) 그리하여 도덕과 같이 상호작용에
국한되지 않으면서도 도덕과 마찬가지로 커뮤니케이션의 수용가능성을 높
이는 기능을 담당하는 다수의 상징적으로 일반화된 커뮤니케이션매체들이
등장한다. 루만은 화폐, 권력, 진리, 사랑 또는 법을 대표적인 커뮤니케이
션매체로 꼽는다. 예를 들어 긴급구조의무를 부과하는 법규정은 곤궁에 처
한 사람이 도움을 요청하는 커뮤니케이션이 수용될 수 있는, 다시 말해 커
뮤니케이션이 성공할 수 있는 개연성을 높이고, 화폐라는 매체를 투입하면
31) 이 때문에 언어는 언명의 가능성을 이중화(verdoppeln)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한
다. 이에 관해서는 Niklas Luhmann, Soziale Systeme, S. 222 이하, 602 참고.
32) 도덕이 갖는 이러한 의미와 사회의 분화에 따른 한계에 대해서는 Niklas Luhmann,
Soziologie der Moral, in: ders., Die Moral der Gesellschaft, hg. v. Detlef Horster, 2008, S. 97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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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불이라는 작동이 그에 뒤따르는 다른 작동으로 원활하게 연결될 개연성
을 높인다. 이 점에서 루만은 상징적으로 일반화된 커뮤니케이션매체를
‘성공매체(Erfolgsmedium)’라고도 부른다.33) 이렇게 볼 때, ‘법’은 특정한
방식의 커뮤니케이션 작동들의 연관성이라는 하나의 사회적 체계이면서,
동시에 이 체계 내부의 작동들의 연결가능성을 확보하고, 커뮤니케이션의
수용가능성을 상승시키는 매체이기도 하다.34)
그러므로 상징적으로 일반화된 커뮤니케이션매체는 의미의 제안
(Sinnofferte)으로서의 한 커뮤니케이션에 다른 커뮤니케이션이 연결되어야
하고, 연결되는 커뮤니케이션이 그 이전에 제안된 의미를 새로운 커뮤니케
이션의 전제로 수용되어야 할 때 투입된다.35) 이와 관련하여 루만은 다시
커뮤니케이션(의미의 제안)과 여기에 연결된 커뮤니케이션(의미의 수용)에
서 이루어진 선별이 체계 자체에 귀속되는지 아니면 환경에 귀속되는지에
따라 커뮤니케이션매체를 구별한다. 루만은 전자의 경우를 체험(Erleben)으
로, 후자의 경우를 행위(Handeln)로 지칭한다.36) 예를 들어 진리라는 커뮤
니케이션매체가 투입될 때에는 타자(Alter)의 체험에 해당하는 커뮤니케이
션이 자아(Ego)의 체험에 해당하는 연결 커뮤니케이션을 야기하기 위한 것
이다. 이 때 체험의 내용이 되는 정보의 선별은 커뮤니케이션 체계에 관련
33) 이에 반해 대중‘매체’와 같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의미의 매체를 ‘확
산매체(Verbreitungsmedium)’라고 한다. 양자의 구별과 그 의미에 관해서는 니클라 스 루만, 「사회의 사회」, 243면 이하; 정성훈, 디지털 시대, 확산매체와 성공매 체 사이의 긴장, 인문학연구 51(2016), 11면 이하 참고.
34) 특히 상징적으로 일반화된 매체로서의 법에 관해서는 니클라스 루만, 「사회의 사
회」, 419면 이하 참고.
35) 자세히는 Niklas Luhmann, Soziale Systeme, S. 203 이하 참고.
36) 루만의 초기이론에서도 뚜렷한 윤곽을 갖고 등장한 체험/행위의 구별 및 이 구별이
커뮤니케이션매체와 맺고 있는 관련성에 대해서는 루만이 하버마스에 반론으로 작 성한 Niklas Luhmann, Systemtheoretishe Argumentationen. Eine Entgegnung auf Jürgen Habermas, in: Jürgen Habermas/ders., Theorie der Gesellschaft oder Sozialtechnologie, 1971, S. 342 이하(커뮤니케이션매체로서의 진리); ders., Erleben und Handeln, in: ders., Soziologische Aufklärung, Bd. 3, Soziales System, Gesellschaft, Organisation, 1993, S. 67 이하 참고. 또한 Wolfgang Ludwig Schneider, Grundlagen der soziologischen Theorie, Bd. 2, S. 321 이하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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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 당사자들이 아니라, 환경에 귀속된다(앞에서 예로 든 ‘물가가 상승했다’
라는 정보는 진리를 매체로 삼는 학문체계 바깥의 환경에 속하는 정보이
다). 이에 반해 권력이나 법이라는 커뮤니케이션매체로 투입될 때에는 타
자의 행위에 해당하는 커뮤니케이션이 자아의 행위에 해당하는 연결 커뮤
니케이션을 야기하기 위한 것이다. 예컨대 경찰공무원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근거하여 폴리스라인을 설치했다면 해당하는 법은 커뮤니케이
션매체로서 시위참여자들이 이 폴리스라인을 넘지 않는 (부작위의) 행위를
자신들의 행위의 전제로 수용할 것을 강제한다. 이 때 경찰공무원과 시위
참여자들의 행위는 이 커뮤니케이션 과정 자체에 귀속되지, 환경에 귀속되
지 않는다.
기능체계의 분화와 커뮤니케이션매체에 관한 이상의 논의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부분체계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부분체계가 독점하는 기능이 특화
되고, 체계 내의 커뮤니케이션이 다른 커뮤니케이션에 성공적으로 연결될
가능성을 높이는 매체가 투입되어야 한다. 이 점을 체계의 작동의 측면에
서 보면 체계를 구성하는 요소로서의 작동들이 서로 연결될 수 있는 가능
성들이 제한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체계의 기능이 특화되어 있으
면 체계 내의 작동 및 작동들의 연관성은 모두 특화된 기능에 지향되도
록 제한되고, 부분체계 고유의 커뮤니케이션매체 역시 작동들의 연관성을
촉진하면서 동시에 연결가능성을 제한하는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이 작동들
의 연결가능성의 제한을 루만은 체계의 ‘구조(Struktur)’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체계는 체계의 작동들이 체계에 귀속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해주고, 또한 체계의 작동들이 오로지 체계의 작동들에 연결될 수 있게 해
주는 일정한 구조를 필요로 한다. 이와 같은 구조가 형성될 때에 비로소
체계에 귀속되는 요소들을 체계의 다른 요소에 지속적으로 연결되고, 이를
통해 체계 자신을 환경으로부터 뚜렷이 구별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루만
은 연결가능성이라는 소극적 표현을 뛰어넘어, 심지어 체계의 요소들이 다
른 체계 요소들을 지속적으로 재생산한다는 적극적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
한다.37) 체계의 작동은 곧 체계가 생산한다는 것이다. 그의 자기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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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체계의 자율성 - 체계이론적 관점에서 본 법과 정치의 관계279
(Autopoiesis) 테제는 바로 이러한 맥락과 관련이 있다. 즉 구조는 체계의
지속적 자기생산 및 자기생산을 통한 완결성과 폐쇄성의 전제조건이라고
한다. 이러한 구조에 대한 서술을 위해 루만은 ‘코드(Code)’라는 개념을
동원한다.
3) 코드와 프로그램
바로 앞에서 말한 대로 사회로부터 분화된 부분체계가 자기생산적 연관
성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커뮤니케이션 및 커뮤니케이션매체를 체계의 특수
한 코드를 통해 변환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부분체계의 자기생산적 연관
성은 사회 내에서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에 기초해서 이루어지긴 하지만, 커
뮤니케이션을 코드화함으로써 사회 내의 다른 모든 커뮤니케이션과 뚜렷하
게 구별되는 작동을 진행한다. 예를 들어 학문체계는 참/거짓이라는 코드
를 통해 체계의 작동을 구조화하고, 정치체계는 정부/야당이라는 코드를,
경제체계는 지불/비지불이라는 코드를 그리고 법체계는 법/불법이라는 코드
를 사용한다. 개개의 기능체계는 체계의 자기생산을 보장하기 위해 이러한
특수한 코드를 필요로 한다. 이 개개의 코드들은 매우 상이한 것 같지만,
모든 코드들은 공통된 속성을 갖고 있다. 즉 모든 코드는 ‘예/아니요’라는
형식으로 존재하며, 긍정가치와 부정가치로 언어를 코드화한다.38) 따라서
두 개의 가치 이외의 제3의 가치는 인정되지 않는다. 예컨대 법과 불법 이
외에 ‘정의’나 ‘국가의 존립’과 같은 다른 가치들은 개입할 수 없다. 이러
한 이항적 코드(binärer Code)는 체계 자신의 작동이 다시 체계 자신의 작
37) 흔히 자기생산적 전회(autopoietische Wende)라고 표현하는 루만의 ‘후기이론’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으로 등장하는 자기생산은 바로 체계 스스로 체계의 요소들을 생산한다는 의미이다. 1984년에 ‘사회적 체계들’이 출간되기 이전에 발표된 ‘법체 계의 통일성’에 관한 논문에서 루만은 자기생산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자기생 산적 체계는 이 체계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바로 이 체계가 구성된 요소들을 통해 생산하고, 이를 통해 체계의 환경에 있는 하부구조의 복잡성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경계를 설정한다(Niklas Luhmann, Die Einheit des Rechtssystems, 1983, S. 131).”
38) 코드에 관한 명확한 설명으로는 Niklas Luhmann, Ökologische Kommunikation, S.
78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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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에 연결되도록 하며, 이는 체계가 오로지 체계의 요소로 체계의 요소를
재생산하는 것, 즉 자기생산을 위한 기본조건이 된다.
“법으로 확인된 것은 다음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법 또는 불법’이라는 물음 을 새롭게 제기하는 데, 예컨대 법개정을 요구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 ‘참’으 로 여겨진 것은 새로운 데이터나 새로운 이론들이 등장하여 수정할 필요가 생 길 수 있다. 야당에게 유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러한 사정이 너무나도 분 명하게 드러나면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정부에 유리한 논거가 될 수도 있다.”39)
이와 같이 코드화는 한쪽 가치로부터 그 반대가치로 쉽게 전환할 수 있
게 만들고,40) 이를 통해 특정한 코드에 지향된 작동이 코드의 어느 쪽 가
치에 관련을 맺든 특정한 체계의 작동임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가치의 전환 가능성이 기능체계의 형성을 위해 이항적 코드화를 필수불가
결하에 만드는 유일한 특성은 아니다. 무엇보다 코드 역시 하나의 구별,
즉 양쪽을 갖고 있는 형식이다.41) 그 때문에 코드는 코드와 관련된 영역에
속하는 모든 것들을 한쪽 가치 또는 그 반대가치에 귀속시키며, 제3의 가
능성을 배제한다. 예를 들어 물건을 구입하고 대금을 지불하지 않는 것은
경제체계의 코드영역에 속하고, 이 현상에 대해 하나의 코드가치(‘비지불’)
가 귀속될 뿐, 직접적으로 경제적 관련성이 없는 ‘부정직’ 또는 ‘약속의 파
기’와 같은 도덕적, 일상적 가치가 귀속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지불을 하
고 구입한 물건을 곧장 노숙자에게 선물한다면 이는 지불/비지불의 코드영
역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코드에 의해 포착되지 않는 현상일 뿐이다. 이
점에서 코드는 체계의 유일한 주도적 차이(Leitdifferenz)를 형성하며,42) 그
39) 니클라스 루만, 「사회의 사회」, 860면(번역은 한국어판을 토대로 글쓴이가 변경
함).
40) 물론 코드의 반대가치로의 전환이 어느 경우에나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
다. 예를 들어 선/악의 코드에 따르는 도덕 커뮤니케이션의 경우에는 선(긍정가치) 하지 않다고 해서 곧바로 악(부정가치)이 되는 것이 아니며, 그 역의 경우 역시 마 찬가지이다. 바로 이 점에서 도덕은 코드화를 통한 기능체계로 형성될 수 없다. 이 에 관해서는 Niklas Luhamm, Soziologie der Moral, S. 141 이하 참고.
41) 양쪽을 갖는 형식(체계/환경, 예/아니요, 자기준거/타자준거, 구별/지칭 등)의 의미에
관해서는 니클라스 루만, 「체계이론 입문」, 98면 이하의 서술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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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체계의 자율성 - 체계이론적 관점에서 본 법과 정치의 관계281
결과 체계코드를 이용하는 커뮤니케이션만이 체계에 의해 체계 자신의 커
뮤니케이션으로 인식되고, 그러한 커뮤니케이션만이 체계에 귀속된다. 이와
같이 코드가 오로지 두 가지 가치만을 갖는다는 엄격성은 체계로 하여금
자신 이외의 모든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차단하고, 폐쇄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하나의 체계의 작동에 해당하지 않는(= 이 체계의 코드가치에 귀속
되지 않는) 다른 체계의 작동들은 이 체계 내에서는 연결가능성이 없으며,
단지 체계에 대한 교란(Irritation)으로 작용할 수 있을 뿐이다.43) 물론 그
러한 환경의 작동이 체계에게 교란이 되는지 여부 역시 전적으로 체계의
작동을 통해 확인되며, 따라서 교란은 체계 바깥에서 야기하는 인과적 작
용이 아니라, 체계 스스로의 작동을 통해 성립하는 체계 내부의 메커니즘
을 지칭한다. 예를 들어 정치체계의 작동이나 경제체계의 작동은 학문체계
에서는 연결가능성을 차지 못하며, 단지 학문체계가 이들 작동을 교란으로
인식할 때에만 의미를 가지며, 학문체계의 코드인 ‘참/거짓’의 범위 내에
서 처리될 뿐이다.
이밖에도 코드는 코드에 의해 포착되는 현상들의 우연성(Kontingenz),
즉 얼마든지 달리 될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을 창조한다. 이 우연성 공간
(Kontingenzraum)은 코드 내에서 형성될 수도 있고(예컨대 지불이 이루어
지면, 이는 곧 비지불도 가능하다는 것을 포함한다), 코드의 바깥에서 형성
될 수도 있다(즉 하나의 현상은 코드의 적용영역에 귀속될 수 있고, 다른
코드의 적용영역에 귀속될 수도 있다.44) 뇌물을 공여할 목적으로 시장가격
을 훨씬 상회하는 대금을 지급한 행위는 법체계의 코드에 따르면 불법이지
만, 경제체계의 코드에 따르면 지불일 따름이다). 이러한 우연성으로 인해
42) 체계의 주도적 차이로서의 코드에 대해서는 Niklas Luhmann, Ökologische
Kommunikation, S. 85 참고.
43) 이 점에 관해서는 특히 법체계와 환경의 관계에서 교란(또는 장애)이 갖는 의미를
설명하고 있는 Niklas Luhmann, Soziologische Beobachtung des Rechts, 1986, S. 25 이하; 니클라스 루만, 「사회의 사회」, 903면 이하; 「사회의 법」, 586면 이하 참고.
44) ‘우연성 공간’에 대해서는 Niklas Luhmann, Die Codierung des Rechtssystems, in:
Rechtstheorie 17(1986), S. 175 이하, 195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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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현상이 코드의 한쪽 가치 또는 그 반대가치를 통해 지칭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특정한 현상이 두 개의 가치들 가운데 어느 쪽에 위치하
는지를 확정하는 기준이 존재해야 한다. 코드 자체만으로는 - 예컨대 학문
체계의 경우 - 무언가가 어느 경우에는 참이고 어느 경우에는 거짓인지에
대한 확실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코드가치의 귀속을 위한 기준들을 루만은 프로그램(Programm)이라고 부
른다.45) 예를 들어 학문체계의 경우 이론이나 방법론은 무엇이 참으로 여
겨지고 무엇이 거짓으로 여겨지는지를 귀속시키는 프로그램이다. 또한 법/
불법 코드의 귀속은 법률이나 선례 또는 계약을 통해 확정된다. 프로그램
의 특성은 무엇보다 고정된 두 가지 가치만을 갖는 코드와는 달리 가변성
을 갖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프로그램은 변경될 수 있다. 이론은 폐기
될 수도 있고 새로운 이론을 구성할 수도 있으며, 법률 역시 개정이 가능
하다. 또한 코드를 프로그램화함으로써 이항적 코드화를 통해 배제된 제3
의 가치를 체계에 다시 끌어들일 수도 있다. 그리하여 학문체계의 이론은
얼마든지 경제적 현상과도 관련을 맺을 수 있고,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가
법적 규율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체계는 코드의 불변성과 프로그
램의 가변성을 결합함으로써 코드가 전제하지 않는 제3의 가치를 체계 내
로 도입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체계의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변화에 대응
할 수 있다. 달리 표현하면, 코드의 불변성은 체계의 폐쇄성을 상징하고,
이와 동시에 프로그램의 가변성은 체계의 개방성(Offenheit)을 상징한다.
즉 체계는 코드와 코드에 대한 프로그램화를 통해 자신의 폐쇄성과 개방성
을 결합할 수 있게 된다.46) 따라서 전체사회라는 체계의 기능적 부분체계
45) 코드와 프로그램의 구별에 관한 기초적 설명은 Niklas Luhmann, Ökologische
Kommunikation, S. 90 이하 참고.
46) 이에 관해서는 법체계와 관련하여 코드화와 프로그램화 및 이를 통한 폐쇄성과 개
방성의 결합에 관해 자세히 서술하고 있는 니클라스 루만, 「사회의 법」, 229면 이하; Niklas Luhmann, Die Codierung des Rechtssystems, S. 193 이하 참고. 또 한 교육체계와 관련된 ders., Codierung und Programmierung. Bildung und Selektion im Erziehungssystem, in: ders., Soziologische Aufklärung Bd. 4, Beiträge zur funktionalen Differenzierung der Gesellschaft, 1987, S. 193 이하, 208면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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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은 프로그램의 차원에서는 환경(사회 내의 다른 체계들 또는 사회적 체
계의 환경에 해당하는 비사회적 체계)에 개방되고, 기능체계의 구성요소인
커뮤니케이션의 코드화의 차원에서는 작동상 폐쇄(operative Schließung)되
어 있다.
- 기능체계로서의 법
기능체계의 분화와 체계형성의 논리에 대한 이상의 설명은 근대사회의
한 기능체계인 법체계에도 당연히 적용된다. 즉 기능과 매체 또는 코드와
프로그램의 구별 역시 당연히 법체계의 속성에 해당한다. 다만 이상의 논
의는 법체계의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법체계가 다
른 사회적 부분체계들과 구별되는 측면을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기로 한
다. 물론 법체계 역시 사회를 수행(vollziehen)하는 체계이기 때문에 체계
에 관한 일반이론이 여기에서도 반복되지만, 법체계의 특수성에 따른 변이
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서술 자체의 반복과 변이(Redundanz und Varie-
tät)47) 역시 불가피하다.
1) 법의 기능
법체계도 자신의 분화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전체사회를 위해 하나의 기
능에 충족하는 방향으로 특화되어야 한다. 루만은 법체계의 기능을 ‘규범
적 기대의 시간적, 내용적, 사회적 일반화 규율을 통해 규범적 기대를 안
정화’하는 것이라고 한다.48) 사회적 차원의 일반화는 기대가 타인의 (기대
47) 정보이론(Informationstheorie)적 개념인 ‘반복과 변이(Redundanz und Varietät; 이
에 관해서는 주로 논증의 맥락에서 이 구별을 설명하고 있는 니클라스 루만, 「사 회의 법」, 479면 이하 그리고 구조형성에서 ‘반복’이 갖는 의미에 관한 Niklas Luhmann, Soziale Systeme, S. 386 이하 참고)’는 예컨대 개개의 사회적 체계에 대한 서술에서 등장하는 끝없는 반복과 놀라운 변이에 비추어 볼 때, 루만의 전체 저작에 적용해도 무방할 것이다.
48) 니클라스 루만, 「사회의 법」, 185면. 또한 이와 관련된 초기이론에 해당하는
Niklas Luhmann, Rechtssoziologie, S. 94 이하(정합적 일반화로서의 법)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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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는) 합의의 지원을 받게 될 때 성립한다. 즉 법을 통해 특정한 상황에서
합의가 사실상으로 존재하는지를 검토하지 않고서도 합의가 존재한다고 가
정할 수 있게 된다. 내용적 차원에서의 일반화는 다양한 기대들이 확정되
어 있고, 이 기대들이 서로가 서로를 확인하고 또한 서로가 서로를 제한하
는 연관성 속에 있게 됨으로써 이루어진다.49)
그렇지만 법의 기능에서 가장 중요한 측면은 시간적 차원의 일반화이다.
즉 법체계는 기대들에게 시간적 안정성을 부여하여, 기대가 실제로 충족되
었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기대를 계속 고수할 수 있도록 해준다. 예컨대 뇌
물죄에 관한 형법구성요건은 설명 뇌물수수라는 사실이 발생할지라도 뇌물
죄와 관련된 기대를 포기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법규범은 기대를 좌절시
킨 실망에 대해 저항한다. 법체계의 이러한 성격을 더욱 명확하게 규정하
기 위해 루만은 인지적 기대와 규범적 기대(kognitive und normative
Erwartungen)를 구별한다.50) 인지적 기대의 특징은 기대의 변경가능성이다.
이 경우에는 기대가 지절되면 기대를 변경하여 새로운 상황에 적응한다.
대통령이 빨간색 정장을 입고 행사에 참석하리라고 기대했는데, 검은색 옷
을 입고 등장했다면 기대를 변경하면 그만이다. 따라서 인지적 기대는 곧
학습할 자세(Lernbereitschaft)를 뜻한다.51) 이에 반해 규범적 기대는 실망
에도 불구하고 계소 기대를 유지하는 안정성을 갖는다. 대통령이 헌법에
반하는 권력행사를 해서는 안 된다는 법적 기대는 대통령이 조직적이고 지
속적으로 헌법을 위반했을지라도 기대를 고수하고,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
해 다른 규범적 기대를 투입한다. 즉 기대와 정반대되는 사실이 눈앞에 펼
쳐지더라도 규범적 기대를 포기하지 않는다. 따라서 규범적 기대는 곧 학
습의 거부(Lernverweigerung)이다.52) 그 때문에 일단 규범적 기대로 고정
되는 한, 기대는 원칙적으로 장래의 시점에까지 연장되고, 이 점에서 법은
일종의 시간구속(Zeitbindung)이다.53) 이렇게 볼 때, 법의 기능은 사회생활
49) Niklas Luhmann, Rechtssoziologie, S. 94.
50) Niklas Luhmann, Rechtssoziologie, S. 40 이하; 니클라스 루만, 「사회의 법」,
113면 이하, 188면 이하.
51) Niklas Luhmann, Rechtssoziologie, S. 43.
52) Ebd., S. 44(여기서는 ‘학습의 거부’라는 표현 자체를 사용하고 있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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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특별히 중요하거나 특별히 보호할 가치가 있는 기대들을 선별하여,
법규범의 형태로 이러한 기대들이 시간적 안정성을 갖도록 보장하는 데 있
다.54) 다시 말해 그러한 기대들을 법적 기대로 전환하여, 다수의 실망에도
불구하고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하고 또한 미래의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기대 자체만이라도 안정성을 갖게 만든다. 법체계는 시간적으로 안
정화된 기대를 법규범으로 형성함으로써 현재의 시점에서는 알 수 없는 갈
등, 즉 누가 갈등의 당사자인지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떠한 내용인지를 알
수 없는 장래의 갈등이 그것이 발생하기 이전에 이미 결정되어 있는 상태
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의미에서 루만은 법에 대해 ‘갈등에 대해 사전에 조치를 취하고
좌절을 겪을지라도 안정된 기대를 배려’55)한다는 기능을 귀속시킨다. 법의
기능을 이와 같이 규정하면서 루만은 법이 기대안정화 기능 이외에 다른
기능을 갖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즉 법이 다수의 사회적 기능들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루만은 기능과 기여
(Leistungen)를 구별한다.56) 예컨대 행위조종이나 갈등해결은 법체계의 기
능이 아니라, 기여에 해당한다. 법체계가 다른 기능체계들 또는 전체사회에
행하는 이러한 기여는 - 루만에 따르면 - 법체계만이 수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행위조종이나 갈등해결은 법체계 이외에도 예컨대 도덕이나 집단
내의 비공식적 갈등처리 메커니즘과 같이 다른 체계에 의해서도 충족될 수
있다. 즉 이러한 기여는 법이 없이도 가능하며, 법 이외에 다른 대안도 얼
마든지 가능하다. 이에 반해 규범적 기대의 안정화라는 기능은 사회 내에
이와 관련된 다른 대안이 없다는 점에서 체계분화가 단 하나의 문제에 대
한 특화를 전제한다는 사실에 부합한다.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법을 통한
53) 시간구속으로서의 법에 관해서는 니클라스 루만, 「사회의 법」, 178면 이하 참고.
54) 니클라스 루만, 「사회의 법」, 183면.
55) Niklas Luhmann, Ökologische Kommunikation, S. 128.
56) ‘기여’에 관해서는 니클라스 루만, 「사회의 법」, 217면 이하. 또한 ‘기여’라는 표
현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법의 기능을 기대안정화에 고정시키고 있는 Niklas Luhmann, Die Funktion des Recht: Erwartungssicherung oder Verhaltenssteuerung?, in: ders., Ausdifferenzierung des Rechts, S. 53 이하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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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통합은 시간에 지향된 법의 기능의 부수적 결과일 수는 있지만, 사회
통합 자체를 법의 기능으로 파악할 수는 없다고 한다.57)
2) 법적 코드화와 프로그램화
그러나 사회의 한 가지 중요한 기능으로의 특화만으로는 법이 전체사회
의 커뮤니케이션 연관성으로부터 분리되어 독자적인 체계로 형성되는 것을
보장하지 못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능의 특화 이외에 다시 특수한 법적 작
동을 필요로 한다. 물론 법체계의 작동은 법체계의 기능에 의해 제한되고,
그 때문에 규범적 기대의 안정화라는 법의 기대는 충족과 실망이라는 이항
적 도식을 생성하게 된다. 하지만 기대가 좌절되는 경우 이를 어떻게 처리
할 것인지, 기대를 인지적으로 처리할 것인지 규범적으로 처리할 것인지는
실망을 겪은 자가 과연 자신의 기대를 고수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사회적
지원을 받을 것인지에 의존하게 된다. 이처럼 기대의 충족 또는 실망이라
는 단순한 관찰(구별)은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이 관찰을 다시 관찰하는
차원(이를 이차적 질서의 관찰 Beobachtung zweiter Ordnung이라고 한
다58))에 있는 다른 구별을 통해 변형된다. 즉 일차적 질서의 관찰이 기대
의 실망/충족의 구별에 따른다면, 이차적 질서의 관찰은 일차적 차원의 기
대 및 이 기대에 반하는 행위가 법에 부합하는지 또는 법에 반하는지의
57) 니클라스 루만, 「사회의 법」, 178면. 이 맥락에서 루만은 법의 사회통합적 기능을
주장하는 하버마스의 이론(Jürgen Habermas, Faktizität und Geltung. Beiträge zur Diskurstheorie des Rechts und des demokratischen Rechtsstaats, 1992)을 비판한 다. 이에 관해서는 앞의 책, 177면 각주 3 참고. 또한 루만과 하버마스의 법이론 사이의 차이점에 관해서는 Marcelo Neves, Zwischen Themis und Leviathan: Eine schwierige Beziehung. Eine Rekonstruktion des demokratischen Rechtsstaates in Auseinandersetzung mit Luhmann und Habermas, 2000, S. 55 이하, 69 이하 참 고.
58) ‘관찰에 대한 관찰’을 뜻하는 이 개념에 관해서는 니클라스 루만, 「사회의 사회」,
878면 이하; 「사회의 법」, 202면; 「체계이론 입문」, 210면 이하; 이차적 질서의 관찰에 관한 가장 상세한 서술로는 Niklas Luhmann, Die Wissenschaft der Gesellschaft, S. 68 이하, 85 이하 참고. 이밖에도 Gunther Teubner, Recht als autopoietisches System, 1989, S. 28 이하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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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별에 따라 판단을 내린다.59) 이를 통해 법체계의 코드가 형성된다. 코드
는 - 앞에서 서술했듯이 - 하나의 현상이 법규범에 부합할 때 적용되는 긍
정가치(법)와 규범에 위반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부정가치(불법)의 구별
이다. 법체계는 이 구별을 사용함으로써 법체계 자신의 작동을 환경의 작
동으로부터 분리한다. 따라서 법체계에서는 이 법/불법의 코드화 내에서
코드가치인 법과 불법의 귀속을 행하는 커뮤니케이션들만이 체계 내부의
연결작동이 될 수 있다. 그리하여 법/불법의 코드에 연결되지 않는 다른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환경에 속하고, 법체계의 작동 차원에서는 배제된다.
그러한 커뮤니케이션은 법체계에 속한다고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법적 주장을 제기하거나 이를 거부하는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법체계 내부 의 작동이다. 설령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이 이웃과의 다툼이나, 교통사고 또는 경찰의 통제 등등 어떠한 계기에서 성립했든 관계없이 모두 법체계 내부의 작 동이다. 따라서 커뮤니케이션 스스로 자신을 법체계에 귀속시키는 것으로 이 미 충분하고, 법체계에의 귀속은 법/불법이라는 코드의 사용으로 이미 이루어 진다.”60)
그렇기 때문에 법체계의 커뮤니케이션은 판검사나 변호사들이 참여하는
커뮤니케이션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 커뮤니케이션 역시 그것이
법체계의 특수한 코드인 법/불법을 지향하는 이상 법체계의 일부분이다.61)
또한 체계코드인 법/불법은 작동들이 구별의 어느 한쪽을 지칭하도록 고정
시키고, 만일 코드가치의 어느 쪽도 지칭하지 않는 작동은 그저 환경에서
발생하는 이해할 수 없는 소음(Rauschen; noise)으로 배제함으로써 법체계
의 자기생산적 폐쇄성을 보장한다.
그러나 코드는 - 역시 앞에서 서술했듯이 - 불변적이기 때문에 코드만으
59) 자세히는 니클라스 루만, 「사회의 법」, 229면 이하와 법체계의 코드화에 대해 압
축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Niklas Lumann, Die Codierung des Rechtssystms, S. 171/172 면 참고.
60) Niklas Luhmann, Recht als soziales System, S. 6.
61) 코드를 통한 법체계 커뮤니케이션 영역의 확대에 관해서는 니클라스 루만, 「사회
의 법」, 92면, 101면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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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는 법체계가 자신의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규율하기에는 적합하
지 않다. 그 때문에 다른 모든 기능체계와 마찬가지로 법체계도 코드화와
프로그램화의 차이를 통해 코드의 시간적 불변성와 규율구조의 가변성을
결합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법체계 자체가 자신의 환
경에 개방될 수 있도록 만든다. 다시 말해 이 차이는 법체계의 자기준거와
타자준거를 서로 결합할 수 있도록 해준다.62) 프로그램은 일정한 사안에
대해 코드가치를 분배하는 과제를 담당하고 법과 불법에 대한 올바른 결정
의 조건을 확정한다. 이 점에서 법률과 법규명령뿐만 아니라, 법실무를 통
해 형성된 법관법, 단체의 정관, 계약 또는 의사표시 등도 법/불법 코드가
치의 분배를 담당한다는 점에서 법체계의 프로그램이다.63)
법적 프로그램화는 코드가 갖고 있는 엄격한 이항성(Zweiwertigkeit) 때
문에 배제되는 제3의 가치, 특히 다른 기능체계들이 갖고 있는 관점들을
법체계에 도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물론 프로그램도 코드와 마
찬가지로 체계의 작동들의 연결가능성을 제한한다는 의미에서 법체계 스스
로 만들어낸 체계 내재적 구조에 해당한다. 즉 프로그램도 법체계의 구조
를 형성한다. 다만 불변의 코드와는 달리 프로그램이라는 구조는 구조변경
을 통해 법체계가 환경에 대응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
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체계는 오로지 프로그램에 비추어서만 환경을 인식
할 수 있다.64) 설령 프로그램을 변경하여 제거할 정도로 커다란 장애를 유
발하는 소음일지라도 환경에 대한 인식은 오로지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가
능하게 된다.
다른 한편 루만은 법체계의 프로그램을 조건프로그램(Konditionalprogramm)
으로 규정한다. 조건프로그램은 하나의 사안에 법 또는 불법을 귀속시키는 결
정을 내릴 때 존재해야 하는 조건들을 확정할 뿐, 특정한 상태에 도달을 위한
목적프로그램이 아니라고 한다. 이러한 조건과 결과의 확정은 구성요건과 법
62) 니클라스 루만, 위의 책, 265면 이하.
63) Niklas Luhmann, Die soziologische Beobachtung des Rechts, S. 40; ders.,
Ökologische Kommunikation, S. 127.
64) Ebd., S.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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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체계의 자율성 - 체계이론적 관점에서 본 법과 정치의 관계289
률효과라는 형식으로 ‘... 라면 ...이다(wenn, dann)’라는 결정지침이 된
다.65) 즉 구성요건 T가 입증될 수 있으면 이로부터 법률효과 R의 귀속이
합법성(법/불법이라는 코드가치의 분배의 합법성)을 갖는다고 결정을 내려
야 하고, T가 존재하지 않는데도 R을 귀속시키는 것은 불법성(역시 법/불
법이라는 코드가치의 분배의 불법성)을 갖는다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 물
론 이와 같은 조건관계로 프로그램화된 법체계가 실제로 이루어지는 행위
의 불확실성 자체를 제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실상의 행위에 지향되어
있는 기대의 유지와 관련된 불확실성은 얼마든지 제거할 수 있다. 국민이
대통령의 위법한 행위를 인식한다고 해서 곧바로 대통령은 법질서를 준수
해야 한다는 규범적 기대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이 점에서 법체계는 학습
이 가능한 인지적 기대형성을 실망에 관계없이 그리고 실망에도 불구하고
행위기대를 안정화하는 메커니즘을 통해 보충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긴 하
지만 법이 변경불가능하다거나 영원한 지속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법의
프로그램화가 보여주듯이 근대의 법은 변경가능성을 전제하는 실정법이다.
루만에게 실정법은 얼마든지 달리 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우연적이며, 일
정한 전제조건을 충족한다면 언제든지 개정이 가능하다. 따라서 현재 효력
을 갖는 법은 단지 가능성의 영역으로부터 특정한 선별을 한 결과이며, 이
선별 결과 역시 선별을 통해 배제된 다른 가능성들을 통해 대체될 때까지
만 효력을 유지할 뿐이다.66)
3) 법체계의 내재적 분화
법체계는 규범적 기대의 안정화라는 한 가지 기능을 독점하면서 전체사
65) 조건프로그램에 대해서는 Niklas Luhmann, Rechtssoziologie, S. 220 이하, 227 이
하; ders., Positivität des Rechts als Voraussetzung einer modernen Gesellschaft, in: ders., Ausdifferenzierung des Recht, 1981, S. 140; 「사회의 법」, 266면 이하. 또한 정성훈, 루만의 법이론의 위상과 법의 역설 전개 고찰, 「법과 사회」 48(2015), 50면 이하도 참고.
66) 이처럼 법의 실정성이 선별과 변경가능성을 의미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Niklas
Luhmann, Rechtssoziologie, S. 192 이하; ders., Positivität des Rechts als Voraussetzung einer modernen Gesellschaft, S. 118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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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로부터 분화한 기능체계이다. 하지만 분화과정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다시 법체계 내부에서 분화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법체계 내부의 분화는
기능의 관점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 왜냐하면 사회체계의 한 가지 문제에
만 관련된다는 기능의 의미에 비추어 볼 때, 기능체계의 분화 자체를 다시
반복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법체계 내부의 기능체계를 루만은
중심과 주변(Zentrum und Peripherie)의 구별로 이해한다. 법체계에 대한
통상적인 이해방식에 따르면, 입법부는 법률을 제정하여 사법부로 하여금
이를 적용하도록 지시한다는 의미에서 입법과 사법을 상하관계의 위계질서
라고 한다.67) 그러나 루만이 말하는 중심/주변의 구별은 이러한 위계질서
적 의미를 갖지 않는다. 무엇보다 입법자가 제정한 법률을 해석하는 법원
의 자율성이 상승한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그러한 이해방식은 타당하지 않
다고 한다. 그 대신 루만은 법원이 법과 불법에 대한 최종적 결정을 내린
다는 점에서 법체계의 중심에 있는 결정체계라고 한다. 법원은 법원에 제
기된 모든 사건은 다루어야 하며, 이에 대해 최종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
즉 법원은 법률의 불명확성이나 법률의 미비를 이유로 재판을 거부할 수
없다. 법원에게 부과되어 있는 이 재판거부금지원칙(Prinzip des
Justizverweigerungsverbotes)68)을 통해 법원은 법체계의 중심에 자리 잡게
되며, 이와 동시에 입법과 판결의 분리를 엄격하게 관철하는 것도 불가능
하게 된다. 다시 말해 결정거부를 금지함으로써 법원은 설령 법률의 내용
이 사안을 법/불법 도식으로 해결하는 데 불충분할지라도 어쨌든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결정강제 상태에 처하게 된다.69)
67) 이러한 일반적 이해 및 그 역사적 배경에 관해서는 니클라스 루만, 「사회의 법」,
402면 이하(루만은 이러한 이해를 법체계의 ‘자기서술 Selbstbeschreibung’이라고 부른다); Niklas Luhmann, Die Stellung der Gerichte im Rechtssystem, in: Rechtstheorie 21(1990), S. 463 이하 참고.
68) 니클라스 루만, 「사회의 법」, 416면 이하. 법에서 이 원칙의 의미에 관해서는 또
한 Marie Therese Fögen, Schrittmacher des Rechts. Anmerkungen zum Justiz- und Rechtsverweigerungsverbot, in: Heinrich Honsell u.a. (Hg.), Privatrecht und Methode. Festschrift für Ernst A. Kramer, 2004, S. 3 이하, 5 이하도 참고.
69) 니클라스 루만, 「사회의 법」, 416면 이하; Niklas Luhmann, Gesetzgebung und
Rechtsprechung im Spiegel der Gesellschaft, in: Udo Derbolowsky u.a.(Hg.), 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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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체계의 자율성 - 체계이론적 관점에서 본 법과 정치의 관계291
이와 같이 법원은 결정강제하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루만은 법원이 법
체계의 중심이라고 한다. 이에 반해 이러한 결정강제가 적용되지 않는 다
른 영역들은 모두 법체계의 주변부에 위치시킨다.
“다른 모든 법생성 가능성들, 특히 입법을 통한 법생성(Rechtserzeugung)이 나 구속력을 갖는 의사표시 또는 계약을 통한 법생성은 법원의 활동에 비교하 면 주변적이다. 이 점에서 주변의 법생성은 이용할 수도 있고 이용하지 않을 수도 있는 형성 가능성일 뿐이다.”70)
그러나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법체계를 중심/주변으로 분리한다는
것이 법체계에서 법원이 입법이나 계약체결보다 더 중요하다는 의미가 아
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중심/주변의 내재적 분화는 서로 상반되는 측면
(즉 결정강제와 결정강제가 없음)이 하나의 체계에서 동시에 가능할 수 있
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중심/주변의 분화는 단지 결정강제의 존
부에 비추어서만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이 분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또
다른 구별지점은 체계의 중심을 조직(Organisation)을 통해 규정한다는 점
이다. 즉 법원을 조직화된 중심체계로 형성함으로써 비로소 법체계의 기능
을 충족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마련된다. 물론 조직으로서의 법원은 사회적
체계로서의 조직이 모두 그렇듯이 조직구성원 자격을 허용 또는 박탈할 가
능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법원의 구성원인 법관은 일정한 규정에 구속될
수 있다. 즉 법관이라는 직위를 갖고 법원조직의 구성원이 되면 법관의 행
위는 조직 내부의 제한이나 법률텍스트, 법적용의 방법적 및 내용적 기준
등에 구속되고, 이를 위반할 때에는 일정한 제재를 받거나 심할 경우에는
자격을 박탈당하게 된다. 법체계의 중심에서 이루어지는 조직강제
(Organisationszwang)는 법관으로 하여금 법률과 해석규칙에 구속되게 만
들고, 이를 통해 법관은 결정에 대한 사회적 영향으로 벗어나 결정의 결과
Wirklichkeit und das Böse, 1970, S. 161 이하(특히 일반화/특화의 관계로서의 입 법과 사법) 참고.
70) Niklas Luhmann, Die Politik der Gesellschaft, S. 250. 또한 같은 맥락에 있는 니
클라스 루만, 「사회의 법」, 430면(“주변부에서는 작동의 강제가 존재하지 않는 다.”)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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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대한 개인적 책임으로부터도 해방되는 작용을 한다.71) 이에 반해 법체
계의 주변에는 그와 같은 조직강제가 없다. 그 때문에 주변에서는 극히 다
양한 형태의 사회적 영향이 난무하고, 법체계에게 교란을 유발한다. 다시
말해 법체계의 주변, 특히 입법은 환경의 자극을 통해 법체계 내부에서 교
란이 발생하는 통로의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법체계의 주변은 ‘법체
계가 다른 기능체계들과 접촉하기에 적합한 지역’72)으로서, 기능의 독점
및 코드화를 통해 폐쇄된 체계가 환경에 개방되는 ‘접경지역’이다. 즉 중심
/주변의 분화는 곧 법체계의 폐쇄성과 개방성의 결합을 상징한다.
중심/주변의 구별이 갖는 또 다른 중요한 의미는 법체계의 하부체계의
형성 가능성과 관련된 측면이다. 즉 하부체계의 형성은 법체계의 중심에서
만 가능할 뿐, 주변에서는 독립된 부분단위가 분화할 수 없다. 다시 말해
법원이라는 법체계의 중심에서는 민사법원, 형사법원, 행정법원, 가정법원
등과 같이 물적 관할에 따라 또는 지역적 관할에 따라 분절적 분화가 발
생하고, 동시에 상급법원/하급법원이라는 위계적 분화도 이뤄진다.73) 그리
고 이 중심의 위계적 분화의 정점을 차지하는 조직은 헌법재판소(또는 미
국의 경우에는 연방대법원)이다.
- 법체계의 작동상의 폐쇄성으로서의 법의 자율성 - 이른바
‘자기생산’ 테제
루만은 법체계의 분화를 상징하는 기능적 특화, 체계 고유의 커뮤니케이
션매체, 법적 코드화와 프로그램화 그리고 법체계 내부의 분화 메커니즘
등 다양한 개념들을 ‘자기생산(Autopoiesis)’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집약
한다. 루만의 초기 법이론은 주로 분화이론과 진화이론의 관점에서 독자적
기능체계가 형성되는 진화적 전개양상 및 그에 따른 체계 내의 구조와 과
정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에 집중했다. 특히 체계와 환경의 관계와 관련하
71) 니클라스 루만, 위의 책, 431면 이하.
72) 위의 책, 430면.
73) 법체계 내부의 이러한 분절적 및 위계적 분화에 관해서는 니클라스 루만, 앞의 책,
433면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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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체계의 자율성 - 체계이론적 관점에서 본 법과 정치의 관계293
여 투입/산출(Input/Output) 모델을 동원하여, 환경적 요소가 체계에 투입되
면 블랙박스(Black Box)로서의 체계가 이 투입을 체계 자신의 구조와 과
정을 거쳐 결과를 산출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루만은 무엇보다 환경
이 체계를 인과적으로 규정한다거나 체계가 환경에 적응한다는 식의 사고
와 결별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는 여전히 환경적 요소가 갖는 체
계규정성을 피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 단순화하자면 - 투입이 없는 산출
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루만은 법체계가 환경에 대해 상대
적 자율성(relative Autonomie)을 갖는다고 생각했다.74)
이러한 사고는 1980년대 초반부터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된다. 변화를 상
징하는 개념은 ‘자기생산’이었다. 원래 생물학에서 탄생한 개념인 자기생산
은 - 서론에서 짧게 지적했듯이 - 체계를 구성하는 요소를 다시 체계의 구
성요소를 통해 재생산한다는 것을 뜻한다. 체계의 구성요소는 이미 자기생
산 개념을 사용하기 이전부터 커뮤니케이션으로 파악했기 때문에, 법체계
의 경우 요소는 어떤 고정되어 있는 법규범이 아니라, 순간순간 발생했다
가 사라지는 법적 사건, 즉 커뮤니케이션적 에피소드라는 점에서는 과거의
이론구성과 커다란 차이가 없다. 문제는 이러한 에피소드들 속에서 규범이
다른 상황에서도 반복과 재사용을 위한 구조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상대적
자율성이라는 ‘어정쩡한’ 개념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75) 즉 법적
사건은 단지 개개의 커뮤니케이션들로 결합되어 있는 것일 뿐, 어떤 존재
론적 대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안정적인 구조나 법률텍스트가 아니라, 끝없
이 지속되는 작동 속에서 불안정적인 또는 역동적인 구조를 포착하려는 초
기 이론의 통찰을 체계와 환경의 엄격한 분리라는 차이이론과 어떻게 결합
74) 체계의 자율성을 상대적 자율성으로 파악한 루만 초기사상을 대표하는 문헌으로는
Niklas Luhmann, Soziologie des politischen Systems(1968), in: ders., Soziologische Aufklärung 1, 4. Aufl. 1974, S. 156 이하; ders., Politische Soziologie, 2010(1960년대의 저작을 사후출간), S. 106 이하; ders., Rechtssoziologie, S. 22(법률전문용어의 ‘상대적 자율성’) 참고. 또한 Input/Output 모델과 관련해서는 ders., Rechtssystem und Rechtsdogmatik, 1974, S. 25 이하, 58 이하 참고.
75) 그 때문에 루만은 자신이 ‘상대적 자율성’이라는 개념을 포기한다는 점을 명백히
밝힌다(「사회의 법」, 96면 각주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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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킬 것인지의 문제이다. 그리하여 핵심적인 물음은 법체계가 지속적인 작
동을 거쳐 환경과의 경계설정을 반복하고 시간적 측면에서 안정성을 갖게
함으로써 이 체계가 세계 내의 다른 체계들(유기체계, 의식체계, 다른 사회
적 체계들)과 어떻게 구별될 수 있게 할 것인가이다. 바로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자기생산적인 작동상의 폐쇄성이다. 루만은 작동상 폐쇄된 체계를
‘체계 고유의 작동을 산출하기 위해 자신의 작동들의 네트워크를 이용하고,
이런 의미에서 자기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체계라고 규정한다.76) 다시 말
해 체계는 자기 자신을 전제하고, 체계의 지속적인 작동은 곧 체계 자신의
재생산 활동인 셈이다. 따라서 체계의 지속적인 재생산은 단순히 체계 고
유의 구조에만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체계의 기초적인 요소, 즉 체계 자
신도 더 이상 해체할 수 없는 작동과도 관련을 맺는다. 아니 재생산이 작
동이라는 기초적 요소와 관련을 맺는다는 사실이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일정한 구조에 의해 요소들이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구
조 역시 요소들 사이의 재생산적 연관성을 통해 형성되거나 변경 또는 소
멸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체계의 재생산은 체계 내에서 체계를 위해 하
나의 단위(Einheit)로 기능하는 모든 것들과 관련을 맺으며,77) 이 요소들의
네트워크 속에서 체계의 구조와 요소가 지속적으로 생산된다. 바로 이것을
루만은 자기생산이라고 지칭한다.78)
그렇다면 자기생산적 체계라는 구상은 무엇보다 체계 내에서 체계요소
들 상호간의 관계와 체계의 구조들 상호간의 관계에 주목하게 된다. 체계
는 그것이 사회적 체계인 한, 정보들을 선별적으로 연결하고 체계 내재적
으로 정보들을 선별한다. 그럴 때에만 체계 고유의 요소들, 체계의 경계
76) 니클라스 루만, 「사회의 법」, 71면.
77) 위의 책, 72면.
78) 이 개념이 생물학적 기원에 대해서는 Humberto Maturana/Francis Varela, Autopoiesis
and Cognition, 1980, S. 77 이하 및 이 개념이 사회학적 적용을 둘러싼 비판에 대답 하는 Niklas Luhmann, Autopoiesis als soziologischer Begriff, in: Hans Haferkamp/Werner Krawietz(Hg.), Sinn, Kommunikation und soziale Differenzierung. Beiträge zu Luhmanns Theorie sozialer Systeme, 1987, S. 307 이 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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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체계의 자율성 - 체계이론적 관점에서 본 법과 정치의 관계295
또는 체계의 분화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79) 그리하여 체계의 자율성
은 곧 자기생산적 체계가 작동(요소들의 연결 또는 조건관계)의 측면에서
체계 외부의 환경과 뚜렷이 구별되고 환경으로부터 차단된 폐쇄성을 가질
때에만 가능하다고 보게 된다. 우리의 관찰대상인 법체계를 중심으로 말하
자면, 법체계는 법체계에 귀속되고 법체계의 구조를 이용하는 커뮤니케이
션 사건들만을 선별하고 연결시킬 뿐이기 때문에, 예컨대 피의자가 범죄현
장에서 빨간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는 사건은 그 자체로는 법체계에 속하지
않는다. 물론 이 사건 역시 법체계가 법적 커뮤니케이션의 대상으로 삼게
되면 법체계에서도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예컨대 범죄현장을 목격한 증인
이 피의자가 빨간 넥타이를 매고 있었음을 진술하는 경우에는 법체계의 정
보로 선별될 수 있고, 그에 따른 작동들의 연결이 이루어질 수 있다. 하지
만 이 사건이 법적 의미로 선별되는 것은 전적으로 법체계의 작동에 따른
것이다. 이에 반해 법체계가 선별하거나 연결시키지 않는 다른 모든 것은
법체계의 환경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체계의 작동상의 자기생산적 폐쇄성
은 정보의 폐쇄성에 기초할 뿐, 결코 인과적 자폐성(Abgeschlossenheit) 또
는 고립(Isolation)에 기초하지 않는다.80) 단지 체계의 바깥, 즉 환경에서
발생하는 모든 커뮤니케이션과 모든 사건은 법체계가 이들을 자신의 작동
적 연관성 속으로 끌어들일 때에 비로소 의미를 가질 뿐이며, 그렇게 되면
환경의 작동 자체가 법체계에서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법체계의 작동이 된다는 의미일 뿐이다. 다시 말해 체계는 환경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지만, 환경은 오로지 체계에 의해서만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는 체계/환경 차이이론의 핵심은 법체계의 경우에도 그대로 해당된다. 이
점에서 작동상의 폐쇄성은 의미의 경계, 즉 법체계의 안쪽에서는 법과 법
이 연결되고, 이에 반해 다른 모든 커뮤니케이션과 다른 모든 사건은 정보
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칭한다.
이렇게 볼 때, 법체계의 작동상의 폐쇄는 체계의 자기생산에 따른 당연
한 결과이다.81) 즉 요소들로부터 요소를 스스로 재생산한다는 자기생산이
79) 니클라스 루만, 「사회의 법」, 70면.
80) 위의 책, 62면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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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체계의 존재 유무에 대한 기준이 된다면, 체계는 이미 자기생산적이며,
만일 자기생산적이지 않다면 체계가 아니다. 그리고 체계가 유지되기 위해
서는 작동들 사이의 지속적 네트워크가 형성되어야 하고, 이러한 네트워크
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다시 작동들의 연결가능성을 보장하는 구조(코드화
와 프로그램화)가 형성되어야 한다. 작동들의 연결 및 연결을 위한 구조의
형성이 곧 작동상의 폐쇄성을 뜻한다. 중요한 점은 바로 이러한 폐쇄성이
비로소 환경에 대한 개방성을 보장하게 된다는 점이다. 즉 폐쇄성은 개방
성의 전제조건이다. 왜냐하면 자기생산적 체계에서 환경은 오로지 체계 고
유의 활동에 기초해서만, 다시 말해 전적으로 체계 내부의 정보가 될 때에
만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환경에 대한 민감성은
환경이 체계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 아니라, 체계가 자기생산적
폐쇄성을 갖고 이를 통해 체계 내재적 구조의 다양성과 안정성을 확보하기
때문이다.82) 굳이 비유를 하자면, 인격적으로 성숙되지 어린 아이가 다른
사람가 접촉하는 방식과 인격이 성숙한 어른이 다른 사람의 요구와 욕망을
감안하는 방식은 다르다는 점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환경과 관련된 자기
생산적 체계의 이러한 내재적 과정을 이론적으로 포착하기 위해 루만은 스
펜서 브라운(George Spencer Brown)이 발전시킨 ‘재진입(re-entry)’이라는
개념을 활용한다.83) 이에 따르면 자기생산적 체계는 환경을 체계 고유의
커뮤니케이션들을 기준으로 체계에 반영시키거나 복사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는다. 즉 체계/환경의 구별을 이 구별을 통해 구별된 것(체계)에 다시 진
입시킬 능력을 갖는다.84) 예를 들어 법은 도덕규범과는 구별되지만, 도덕
규범을 법의 내용으로 삼을 수 있다(법과 도덕의 구별을 법으로 다시 진입
시키는 것).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법이 이미 법과 도덕을 구별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재진입을 가능하게 만드는 체계 내부의 능력은 자기준거
와 타자준거라는 개념적 구별을 통해서도 설명할 수 있다. 즉 체계는 체계
81) 위의 책, 95면.
82) 위의 책, 111면(“폐쇄성은 개방성의 근거이다.”).
83) 위의 책, 112면 이하; ‘재진입’의 복잡한 논리적 문제에 관해서는 니클라스 루만,
「체계이론 입문」, 215면 이하 참고.
84) 이에 관해서는 니클라스 루만, 「사회의 법」, 110면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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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체계의 자율성 - 체계이론적 관점에서 본 법과 정치의 관계297
(자기준거)와 환경(타자준거)의 차이를 체계 자신에게 수용하여, 이 구별의
도움으로 체계는 이차적 질서의 차원에서 체계 자신을 관찰할 수 있게 된
다. 즉 단순히 체계/환경(법/도덕)의 구별이 아니라, 체계 내에서 다시 체계
/환경의 구별을 반복함으로써 체계와 환경의 관련성(도덕이 갖는 법적 의
미)을 체계의 작동으로 삼을 수 있게 된다.
자기준거/타자준거의 구별은 법체계에서는 두 가지 방식으로 작용한다.
일단 이 구별은 법체계 특유의 스타일인 규범적 기대와 관련하여 규범적
폐쇄성과 인지적 개방성이라는 또 다른 구별을 가능하게 해준다.85) 이 구
별은 무엇보다 법체계가 규범(자기준거)과 사실(타자준거)을 엄격히 구별하
도록 학습한다는 것을 뜻하고, 또한 사실로부터 규범을 추론하는 것과 같
이 사실과 규범의 구별을 희석하려는 모든 시도를 최대한 회피하고자 노력
한다는 뜻이다.86) 다른 한편 자기준거/타자준거의 구별은 이항적 코드화와
관련하여 체계가 환경의 지식을 끌어들일 때에는 오로지 코드에 대한 프로
그램화를 거칠 때에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재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87) 예
컨대 민법에 명시적으로 신의성실이라는 일반조항(프로그램)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비로소 유책성 여부(법/불법; 자기준거)를 판단하는 책임법은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사회적 관행(타자준거)을 법체계에 수용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에서 루만은 법이 오로지 법/불법의 도식(코드)에 지향되어 있
는 한, 법체계의 규범적 폐쇄성은 침해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상의 서술은 자기생산 →작동상의 폐쇄성 →(자기준거와 타자준거를
통한) 폐쇄성에 기초한 개방성으로 이어지는, (법)체계의 자율성에 대한 루
만의 사고를 간략하게 추적한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루만의 체계개념
또는 체계의 자율성 개념은 처음부터 환경이라는 요소를 전제하고 있으며,
특히 체계의 자율성과 폐쇄성이 결코 체계가 환경과 아무런 관련성이 없는
85) 위의 책, 115면.
86) 존재/당위 이분법에 관한 이러한 체계이론적 재구성에 관해서는 위의 책, 125면 이
하의 서술을 참고.
87) 위의 책, 133면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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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존자(idiotes)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율성과 폐쇄성 때문에
환경과의 관련성이 더욱 상승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더욱이 기능체
계의 분화는 어떠한 부분체계든 다른 부분체계의 원활한 기능에 의존하고,
동시에 환경에 속하는 부분체계와의 접촉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렇
기 때문에 모든 자기생산적 체계는 자신과 환경의 관계를 규율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부터 우리는 법체계와 정치체계라는 자율적 체계들의 관계가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를 ‘구조적 연결(strukturelle Kopplung)’이라
는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Ⅲ. 법과 정치의 구조적 연결로서의 헌법
법과 정치라는 각 기능체계의 자율성을 전제하고, 이 자율적인 체계들의
관계를 규율하는 메커니즘으로서의 구조적 연결에 대해 서술하기 전에 양
체계의 자기생산적 독립성과 관련된 루만의 논증을 다시 한 번 다룰 필요
가 있다. 법과 정치가 서로 독립된 사회영역이라는 루만의 테제는 법과 정
치 또는 양자의 관계에 관한 상식적인 이해에 반하기 때문이다.88) 특히 근
대적 의미의 ‘법치국가(Rechtsstaat)’에서는 사법부(법체계의 중심)가 입법
부와 행정부(정치체계)라는 다른 국가권력과 밀접한 상호작용 관계 속에
88) 특히 정치가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에 개입하고, 미디어와 일반 대중의 주목
(Aufmerksamkeit)을 흡입하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정치체계가 다른 기능체계보다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루만은 사회의 정점(Spitze)을 인정하는 것은 기능적 분화의 논리에 모순되고, 현상적 차원에서도 정치체계는 다른 기능체계에 서 기생자(Parasit)의 역할을 할 뿐이라고 함으로써, 정치체계를 여러 기능체계들 가운데 하나로 축소시킨다. “오늘날의 사회에 대해서도 정치가 우위에 있다는 점 을 정치의 우선적 규율권과 관철력을 통해 정당화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보다는 정치가 모든 코드에 기생하고 있고, 다른 체계에서 단단히 고정시켜 놓 지 않아 밑으로 굴러 내려오는 모든 것들을 받아내는,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있 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Niklas Luhmann, Die Rückgabe des zwölften Kamels. Zum Sinn einer soziologischen Analyse des Rechts, in: Zeitschrift für Rechtssoziologie 21(2000), S.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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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체계의 자율성 - 체계이론적 관점에서 본 법과 정치의 관계299
있다. 또한 정치체계에 속하는 행정은 법률에 구속되는가 하면, 역으로 정
치는 정치적 목표를 관철하기 위해 법을 이용하며,89) 법의 이용은 다시 법
적 통제하에 놓이는 순환관계에 있다. 그 때문에 현상적 차원에서 법과 정
치는 별개의 체계가 아니라, 법치국가라는 형식을 통해 종합되어 있는 것
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만은 - 앞에서 살펴본 각 체계의 자율성 논리에
기초하여 - 법치국가를 통한 법체계와 정치체계의 종합을 거부한다.
“따라서 ... 법과 정치의 통일성이라는 확고한 전통과는 반대로 법과 정치는 국가라는 개념으로 표현되는 하나의 체계가 아니라, 서로 다른 기능과 서로 다른 코드화 그리고 나름의 코드에 의존하는 서로 다른 프로그램을 지닌 별개 의 작동상의 폐쇄성을 갖는 별개의 체계들이라는 점에서 출발한다.”90)
물론 법체계와 정치체계에서 법치국가라는 개념을 각각 상대방 체계와
의 통일성을 지시하기 위해 이용된다. 법치국가(Rechtsstaat)는 법(Recht)과
국가(Staat)의 통일성이다. 하지만 법치국가 개념은 각 체계에게 상이한 의
미를 갖고, 각각의 체계준거에 따라 서로 다르게 이용된다. 예컨대 법체계
에서 법치국가 개념은 정치체계가 정치적 폭력의 독점을 통해 오로지 정치
체계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저지할 때에만 법이
실현될 수 있다는 사실을 표현한다. 이에 반해 정치체계에서 법치국가 개
념은 정치적 결정을 현실로 전환하기 위해 법을 이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법치국가 개념은 두 개의 자기생산적 기능체계들이 서로
융합하지 않은 상태에서 각 체계가 갖고 있는 서로 다른 관점을 결합시키
89) 법치국가를 정치에 대한 법의 통제로만 이해하는 법학적 사고방식과는 달리 법치국
가적 범위 내에서 정치가 법을 이용할 수 있는 가능성의 확대라는 측면에서 법치국 가의 의미를 부각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특히 니클라스 루만, 「사회의 법」, 559면 이하; Niklas Luhmann, Zwei Seiten des Rechtsstaates, in: Conflict and Integration. Comparative Law in the World Today. The 40th Anniversary of Institute of Comparative Law in Japan, Chuo University 1988, Tokyo 1989, S. 493 이하 참고.
90) 니클라스 루만, 「사회의 법」, 55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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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역할을 한다.91) 그렇기 때문에 다른 기능체계에서 발생한 사건들과 마
찬가지로 법/불법의 코드에 지향된 법체계의 사건 역시 정치체계에서는 권
력우위/권력열세 또는 정부/야(당)의 코드의 어느 한쪽에 귀속시킬 수 있을
때에만 정치체계에서 의미를 갖는다.92) 예를 들어 성추행 범죄자에 대한
유죄판결이라는 법적 결정은 이 결정으로 인해 정부와 야당 사이의 권력구
조에 변화를 불러일으키거나 다음 번 선거에 영향을 미칠 때에만(범인이
정부 대변인인 경우),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93) 이 점에서 모든 법적 커뮤
니케이션이 그 자체로 정치적 평가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법적 커뮤
니케이션에 대한 해석만이 정치적 평가의 대상이 된다. 거꾸로 정치적 작
동에 대한 법체계의 평가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법과 정치를 이와 같이 분리하여 고찰할 경우 한 가지 난관에
봉착한다. 입법이라는 현상 때문이다. 입법과정은 정치체계의 맥락과 의회
라는 정치체계의 조직 속에서 진행된다. 그런데도 루만은 체계준거의 엄격
한 분리를 주장하면서 입법을 법체계의 부분으로 파악한다( 더 정확히 말
하면 - 앞에서 서술했듯이 - 법체계의 주변으로 파악한다). 왜냐하면 작동
91) 두 체계의 관계에 관해서는 법체계를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앞의 책, 559면 이하와
정치체계를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Niklas Luhmann, Die Politik der Gesellschaft, S. 390 이하 참고.
92) 정치체계의 분화와 이 체계의 코드/프로그램 그리고 행정 - (좁은 의미의 정치) -
대중 사이에서 진행되는 권력의 순환관계에 관해서는 Niklas Luhmann, Die Politik der Gesellschaft, S. 69 이하; ders., Politische Soziologie, S. 151 이하; ders., Macht im System, 2012(사후출간), 특히 S. 115면 이하 참고.
93) 이처럼 하나의 커뮤니케이션적 사건이 다수의 체계에서 의미를 갖는 경우를 루만은
‘작동적 연결(operative Kopplung)’이라고 한다(니클라스 루만, 「사회의 법」, 584 면). 이러한 연결은 일회적이고, 우연적이라는 점에서 본문에서 주로 설명하고자 하 는 ‘구조적 연결’과는 뚜렷이 구별된다. 물론 ‘작동적 연결’이라는 표현은 한 체계 의 작동과 다른 체계의 작동이 연결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단지 각각의 체계에서 다른 의미가 수반되어 작동한다는 의미일 뿐이다. 즉 한 체계의 작동과 다른 체계 의 작동은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 이 점에서 ‘작동적 연결’은 부적절한 표현이다. ‘구조적 연결’과 명확하게 구별하고자 하는 의도 자체는 이해할 수 있지만, 표현 자 체는 잘못이다(이 점에서 글쓴이가 ‘operative Kopplung’을 ‘작동상의 연결’이라고 번역한 것 정확하다고는 볼 수 없다. 다만 독일어 원문 자체가 달리 번역할 가능성 을 열어놓지 않기 때문에 이 번역어를 유지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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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체계의 자율성 - 체계이론적 관점에서 본 법과 정치의 관계301
이 법/불법이라는 법적 코드를 사용하는 즉시 이 작동은 자동적으로 법체
계의 작동이 되고, 따라서 법체계에서만 작동으로 확인할 수 있고 다른 작
동에 연결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루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법을 개정하자는 제안 역시 설령 그러한 제안이 정치집단이나 이익단체 또는 사회운동 단체에서 이루어졌다 할지라도 변경을 해야 할 규범을 표시하 는 즉시 법체계 내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이 된다.”94)
이에 따라 입법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법체계와 정치체계의 연관성은 입
법이 그 이전단계에서 정치적 조율을 거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정치로부
터 자극을 받은(politisch inspiriert) 입법일 뿐, 정치체계가 입법을 수행하
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95) 따라서 법을 개정하는 자극이 발생한다면 그것
은 정치적 과정으로서 정부/야(당)이라는 정치적 코드와 정치적 프로그램에
따라 진행된다. 이러한 자극에 직면한 법체계는 입법절차, 행정적 규율 및
판결을 통해 그와 같은 자극을 처리하는 지속적인 과정을 전개한다는 것이
다.96) 이 점에서 법률의 공포는 정치체계가 원하는 방향으로 법체계가 반
응을 하는 것으로서 정치의 작동이 아니라, 법의 작동이다. 법체계와 정치
체계의 자기생산 및 자율성이라는 루만의 테제는 바로 이러한 논증을 통해
계속 유지된다.
이러한 자율성에도 불구하고, 더 정확히는 자율성 때문에 자기생산적 기
능체계인 법체계와 정치체계는 서로의 관계를 일정한 형식을 통해 규율하
지 않을 수 없게 된다.97) 즉 각 체계의 자기생산적 자율성이란 두 체계가
별개의 체계로서 다른 체계에게는 단지 교란의 계기로만 작용하고, 자율적
인 두 체계 사이의 접촉은 특정한 영역에만 한정될 뿐 여타의 모든 영역
94) 니클라스 루만, 「사회의 법」, 101면. 또한 562면, 570면도 참고.
95) 이에 관해서는 니클라스 루만, 「사회의 사회」, 896면 이하; Niklas Luhmann,
Ökologische Kommunikation, S. 125 참고.
96) 니클라스 루만, 「사회의 법」, 631면.
97) 이를 ‘자기준거’의 관점에서 파악하면 순수한 자기준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뜻한
다. 이 점에 관해서는 니클라스 루만, 위의 책, 89면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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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는 서로에게 무관심(Indiffrenz)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계설정은 단순히 하나의 커뮤니케이션적 사건이 우연적으로 동시에 여러
체계에서 의미를 갖는(앞에서 예로 든 성추행 사건) 작동적 연결(operative
Kopplung)이 아니라, 두 개 이상의 체계가 일정한 형식을 거쳐 지속적으
로 서로 관계를 맺고, 또한 맺을 수밖에 없는 메커니즘을 말한다.98) 이처
럼 서로 다른 체계 상호간의 지속적 관계를 규율하는 메커니즘을 루만은
구조적 연결이라고 부르고, 법체계와 정치체계의 구조적 연결을 담당하는
형식은 헌법이라고 한다.
헌법국가에서 법과 정치는 각 체계의 자기생산에 합치하는 방식으로 서
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헌법은 진화적 성취(evolutionäre
Errungenschaft)99)로서 법체계와 정치체계를 분리하면서도, 이와 동시에 법
과 정치가 구조적 연결을 통해 서로에게 반응하는 영역을 확정하기 때문이
다. 헌법이라는 연결 장치가 발명되기 이전, 즉 기능체계의 분화가 이루어
지지 않았을 때에는 분쟁에 대한 법/불법의 결정이 권력의 우위를 주장하
는 자의 권한에 속했고, 그에 따라 법체계의 코드와 정치체계의 코드가 분
리되지 않았다.100) 이에 반해 근대국가의 헌법은 법적 현상과 정치적 현상
사이의 접촉영역을 소수의 고정된 영역으로 제한하고, 이를 통해 법체계와
정치체계의 자율성을 보장한다. 다시 말해 법적 관점에서 불법이 아니라
법의 편에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정치적으로 권력의 우위를 점하고 있다
는 뜻은 아니며, 거꾸로 정치권력을 장악한 공직을 갖고 있다고 해서 법적
분쟁에서 반드시 법의 편에 서게 된다고 보장해주지 않는다(장관도 불법을
행하면 구속된다). 즉 한 체계의 코드가치 가운데 어느 하나에 귀속시키는
것은 다른 체계의 코드가치 가운데 어느 하나에 귀속시키는 것과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 그러나 헌법을 통해 고정되어 있는 특정한 영역에서는 사
98) 자세히는 Niklas Luhmann, Die Politik der Gesellschaft, S. 389 이하 참고.
99) 이에 관해서는 니클라스 루만, 「사회의 법」, 620면 이하, 626면 이하; Niklas
Luhmann, Verfassung als evolutionäre Errungenschaft, in: Rechtshistorisches Journal 9(1990), S. 176 이하, 특히 (헌법의 ‘발명’을 둘러싼 역사적 배경에 관 한), S. 178 이하 참고.
100) Ebd., S. 184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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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 완전히 다르다. 즉 이 좁은 영역에서는 법체계의 작동과 정치체계의
작동이 극도로 민감하게 서로 반응하고, 쌍방적으로 교란을 야기하며, 그러
면서도 어느 한 체계가 다른 체계를 규정하지 않는다.
헌법에 확정되어 있는 국가조직 규정들에 따르면 법체계는 필연적으로
정치적으로 야기된 교란에 반응해야 한다. 예컨대 법관자격이 없는 법학교
수를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려는 정치적 계획은 일단
정치체계 내부의 커뮤니케이션에 해당한다. 정부 또는 야당은 정치체계에
서 이루어지는 권력의 순환관계 속에서 이 계획을 일반 대중이 지지할 것
이라는 기대에 의존한다. 그 때문에 정치적 계획이라는 형식은 다음 번 선
거에서 더 유리한 지위를 확보할 가능성과 같이 더 우월한 정치적 지위의
확보라는 정치적 지위에 일반 대중의 지지가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라
는 관점에서 규정된다. 이와는 달리 정치적 계획은 법체계의 입장에서는
법체계가 온전히 포착할 수 없는 규칙에 따라 작동하는 환경으로부터 야기
된 교란으로 경험된다. 그 때문에 정치체계의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다수의
지지를 받는 정치적 계획은 헌법의 규정에 따라 법체계에 수용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즉 정치적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법체계 내부의 기준에
따라 파악해야 하고, 법/불법 코드에 비추어 처리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법률의 형태로 법적 프로그램이라는 법체계의 구조에 대한 변경을 수행해
야 한다. 따라서 정치적으로 내려진 결정이 법체계에서 어떤 의미를 가진
다면 그것은 정치적 결정 그 자체가 아니라, 법체계 내부의 기준에 따라
표현되는 법률이다(법률개정). 즉 새로운 법률은 입법절차를 통해 법체계가
갖고 있는 기존의 구조에 편입시켜야 한다. 다시 말해 기존의 법률과 갈등
을 빚거나 모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와 같이 헌법은 정치체계의 자극
에 따른 교란이 법체계에서 일정한 방향으로 흘러들어가는 통로 및 그 이
후의 진행과정을 규율하여 정치체계가 실정법을 정치적 형성수단으로 이용
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법체계의 자율성이 폐기되지 않도록 하는 구조적
연결 메커니즘이다.101)
이와는 반대방향에서 구조적 연결 메커니즘으로서의 헌법은 법체계의
101) 자세히는 니클라스 루만, 「사회의 법」, 620면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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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을 통한 정치체계의 교란을 규율한다. 즉 헌법은 정치적 권력의 적용
이 법적인 한계 내에서만 조직되고 행사될 수 있도록 규율한다.102) 다시
말해 정치적 결정과 결정절차가 법적 규율에 복종하도록 만든다. 그 때문
에 헌법을 구성하는 두 가지 핵심부분이 기본권과 국가조직 규정이다. 다
시 말해 기본권 규정은 정치적 결정을 제한하고, 국가조직 규정은 정치적
결정의 절차를 규율한다.103) 또한 바로 그 때문에 헌법은 국가의 권한을
다수의 권력으로 분할한다(권력분립).
법체계와 정치체계의 구조적 연결 메커니즘으로서의 헌법과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헌법재판소이다.104) 물론 헌법재판소는 헌법을
해석하고 정치적 과정이 헌법에 합치하는지를 심사한다는 점에서 법체계의
내재적 분화에 따른 조직이다. 따라서 헌법재판소가 어떤 때는 법체계가,
102) 위의 책, 622면.
103) Niklas Luhmann, Die Politik der Gesellschaft, S. 392.
104) 헌법재판소는 법원으로서 법체계에서 이루어지는 내재적 분화의 소산이고, 또한
하나의 조직이다. 따라서 법체계와 정치체계의 구조적 연결은 다른 구조적 연결 과 마찬가지로 ‘조직’을 통해 이루어진다. 더욱이 헌법재판소 자체가 구조적 연 결을 뜻하지는 않으며(이에 반해 예컨대 ‘대학’은 학문체계와 교육체계의 구조 적 연결 그 자체를 뜻한다), 단지 구조적 연결을 매개하는 장치에 해당한다. 루 만 자신은 구조적 연결과 조직의 관계에 관해서는 딱히 많은 연구를 남겨 놓지 않았다. 그 때문에 루만 사후에 이 측면을 조명하는 연구가 축적되고 있다. 이러한 연구 가운데 대표적으로는 (법체계와 경제체계의 구조적 연결을 중심으로 구조적 연결과 구조적 연결의 매체를 구별하는) Tanis Lieckweg, Das Recht der Weltgesellschaft. Systemtheoretische Perspektiven auf die Globalisierung des Rechts am Beispiel der lex mercatoria, 2003, S. 37 이하, 56 이하; (법과 정치의 구조적 연결을 조직을 통해 실현하는 문제에 관한) Alfons Bora, Politik und Recht. Krisen der Politk und Leistungsfähigkeit des Rechts, in: Armin Nassehi/Markus Schroer(Hg.), Der Begriff des Politischen. Soziale Welt Sonderband 14, 2003, S. 189 이하; (Lieckweg의 구별을 수용하여 법과 정치의 구조적 연결을 설명하는) Martin Schulte, Eine soziologische Theorie des Rechts, 2011, S. 132 이하 참고. 이밖에도 구조적 연결과 체계의 폐쇄성의 관계에 관한 Ruth Sima, Strukturelle Kopplung: Die Antwort der Theorie auf die Geschlosseheit sozialer Systeme und ihre Bedeutung für die Politik, in: Kai-Uwe Hellmann/Rainer Schmalz-Bruns(Hg.), Theorie der Politik. Niklas Luhmanns politische Soziologie, 2002, S. 149 이하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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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떤 때에는 정치체계가 승리하도록 ‘이중적인 충성’을 보이는 야누스
적 방식으로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105) 그렇기 때문에 정치체계의 관점
에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온전히 파악할 수 없는 복잡한 환경, 즉 법체계
에서 진행되는 과정일 따름이다. 헌법재판소가 어떠한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이 정부에 유리할 것인지 아니면 야당에 유리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법
적으로 프로그램화된 코드에 따라 규정된다. 그러므로 헌법재판소는 정치
적 사건을 합헌/위헌이라는 추가적인 법코드를 통해 관찰한 결정을 내린다.
당연히 법체계와 정치체계의 일반적 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정치체계에 교란이 발생하는 자극이 되며, 정치체계 내부에서 발생
한 교란은 다시 이 체계 내부에서 처리되고, 권력이라는 매체를 통해 이루
어지는 정치적 커뮤니케이션을 제한하는 구조가 형성된다. 따라서 헌법재
판소의 결정이 정치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는 교란을 정치적 코드
에 따라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의존한다.
헌법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는 구조적 연결을 통한 법체계와 정치체계
사이의 지속적 교란은 궁극적으로 법체계와 정치체계가 각각의 환경에 속
하는 다른 체계로부터 발생한 장애를 다루는 방법을 학습하는 결과를 낳는
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구조적으로 연결된 체계들은 그 발전방향의 측면에
서 서로 서로 영향을 비치고, 마침내는 이른바 공진화(Co-Evolution)라는
개념을 통해서만 설명할 수 있는 상태에 도달한다.106) 함께 진화하는 상태
에 있는 체계들은 기대구조를 지속적으로 구축하고 파기하면서 환경에 있
는 체계가 야기하는 교란에 대처하며, 이를 통해 환경체계의 복잡성을 체
계의 구조를 구축하는 데 이용하게 된다. 그리하여 한 체계가 작동으로 실
현할 수 있는 것은 함께 진화하는 다른 체계에 의해 제한된다. 물론 체계
의 자율성은 계속 유지되기 때문에 다른 체계에 의해 확정 또는 고정되지
는 않는다. 다시 말해 헌법을 통해 법이 정치에 대해 특정한 내용의 결정
을 지시하고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결정이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
105) Niklas Luhmann, Organisation und Entscheidung, 2000(사후출간), S. 398.
106) 다수의 체계들의 ‘공진화’에 관해서는 Niklas Luhmann, Die Wissenschaft der
Gesellschaft, S. 563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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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범위(기본권의 존중 또는 절차규칙의 준수)만을 제시한다. 이와 마찬가
지로 정치체계는 법체계에 대해 특정한 법률의 제정을 강제할 수는 없으
며, 단지 일반적인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뿐이다. 법률의 내용을 구체적
으로 형성하는 것은 법체계의 몫이다.
이와 같이 법체계와 정치체계가 상호 자극을 통해 구조를 구축하는 것
을 가능하게 해주는 헌법은 두 체계 모두에 의해 이용되긴 하지만, 각 체
계마다 다른 의미의 연관성 속에서 이용되는 장치에 해당한다.107) 이 점에
서 헌법은 ‘이중적으로 독해가 가능한 형식’108)이고, 이를 독해하는 체계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법체계의 관점에서 헌법은 체계에 속하는 모
든 법이 준수해야 할 최상위의 법률이다. 또한 헌법을 통해 법체계는 새로
운 법률을 위헌이라는 이유로 거부할 수 있는 가능성, 다시 말해 법이 법
을 위법으로 선언할 가능성을 획득한다. 이 측면에서 루만은 헌법을 자기
포함적(autologisch) 텍스트,109) 즉 법의 한 부분으로서 법의 제정과 법에
대한 통제의 근거가 되는 텍스트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헌법은 헌법의 내
용 가운데 일부는 개정이 불가능하다고 규정을 자신의 규정으로 삼기도 하
고, 누가 법의 합헌성을 통제할 권한을 갖는지를 헌법 자체에 규정하기도
하며, 심지어 헌법 자신을 선포하는 내용(헌법전문)을 자기 자신에게 포함
시키기도 한다. 따라서 헌법을 통해 법은 오로지 법체계 내부의 관점만을
기준으로 삼게 됨으로써 법체계의 폐쇄성이 완성된다.110) 이에 반해 정치
체계에게 헌법은 일차적으로 법의 변경을 자극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
다는 점에서 기존상태를 변경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이다. 이와 동시에 헌
법은 정치로 하여금 기존상태를 변경하라는 요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근
107) 니클라스 루만, 「사회의 사회」, 901면.
108) Niklas Luhmann, Die Politik der Gesellschaft, S. 392.
109) 이 점에서 헌법은 “어떠한 규범도 자신의 적용(Anwendung)에 대해서까지 규정할
수 없다”는 원칙의 예외에 해당한다. 물론 자신의 적용에 대한 규범을 적용할 때에 는 다른 규범과 마찬가지로 또 다시 적용을 둘러싼 문제가 발생한다. 헌법이 갖는 이러한 ‘자기포함적’ 논리에 관해서는 니클라스 루만, 「사회의 법」, 622면 이하, 691면; Niklas Luhmann, Verfassung als evolutionäre Errungenschaft, S. 183 참고.
110) 이에 관해서는 니클라스 루만, 위의 책, 622면 이하의 서술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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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체계의 자율성 - 체계이론적 관점에서 본 법과 정치의 관계307
거가 된다. 헌법이 정치에 부과하고 있는 한계를 지적하는 것만으로 헌법이
제시한 가능성의 범위에서 벗어난 상태변경을 거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헌법이 수행하는 역할은 법체계와 정치체계의 자율성을 침
해하지 않으면서도 두 체계를 연결시키는 것이다. 즉 각 체계의 작동의 측
면에서 볼 때, 정치와 법이라는 기능적 부분체계는 계속 분리된 상태에서
각각의 고유한 코드에 지향되어 작동하고, 각 체계의 작동들은 동일한 코
드에 따른 작동들의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오로지 그러한 작동으로서의 커
뮤니케이션들에게만 연결가능성을 제공한다. 그렇기 때문에 두 체계가 서
로 접촉한다는 사실은 결코 체계들의 융합이 아니며, 헌법이라는 구조적
연결 장치를 거치더라도, 더 정확히는 그러한 장치를 거치기 때문에 두 체
계는 융합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정치체계에서 특정한 법률의 제정이 아
무리 중요하게 여겨질지라도 그 이유만으로 자동적으로 법적 효력을 갖지
는 않으며, 거꾸로 특정한 법률이 아무리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 될지라도
그 법률의 효력 자체에는 변화가 있을 수 없다. 구조적 연결을 이용하여
법률의 개정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Ⅳ. 맺음말
법체계의 자율성과 구조적 연결을 통한 법과 정치의 관계를 니클라스
루만의 체계이론의 관점에서 설명하고자 시도했던 이상의 서술은 체계이론
이라는 거대한 바다에서 표류하는 자의 숨 가쁜 언어일 뿐이다. 즉 체계이
론의 추상성과 복잡성을 지나치게 단순화하여, 최소한 어느 정도의 가독성
을 확보했을지는 모르지만, 체계이론의 다양한 개념들이 서로가 서로를 지
시하는 순환적 관계에 있다는 사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론적 서술 기술이라는 방법적 문제보다 훨씬 더 커다란 문제는 내용적
차원에서 루만의 분석이 우리의 사실적 경험과 동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우리를 둘러싼 현실은 법체계의 자율성이 아니라, 법의 실현과
관철 그리고 심지어 법의 제정의 단계까지도 불법을 일삼는 정치권력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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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법학 제50권(2017. 2) 308
경제권력의 노골적 또는 은밀한 지배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루
만의 이론 자체에도 법체계의 자율성이 정치나 경제에 의해 침해되는 현상
을 설명하는 개념을 마련하고 있다. 즉 루만은 정치권력의 강제로 인해 법
체계의 작동이 법/불법 코드가 아니라, 권력에 지향된 경우를 체계의 부패
(Korruption)라고 말한다.111) 그러나 루만이 말하는 ‘부패’는 일회적인 사
건으로서만 의미를 가질 뿐, 지속적인 부패상태를 염두에 두고 있지는 않
다.112) 그렇다면 만일 부패가 ‘정상적’인 상태가 되어, 헌법을 통한 구조적
연결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용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법적 커뮤니케이
션이 다시 법적 커뮤니케이션으로 연결되는 작동이 되지 못하고, 언제든지
다른 체계의 작동으로 대체되고 만다면 과연 법체계의 자기생산 또는 자율
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타당성을 갖는 것일까? 혹시 자기생산이 아니라, 타
자생산(Allopoiesis)인 것은 아닐까? 헌법을 진지하게 고려(Taking
Constitution Seriously)하지 않는 정치문화에서 과연 헌법이 법과 정치의
구조적 연결 장치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113)
이러한 물음들을 계속 제기하다보면 근대사회에 대한 분석을 표방하는
루만의 체계이론은 적어도 우리의 법과 정치의 맥락에서는 분석이 아니라,
도달해야 할 이상을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읽힌다. 즉 단순한 분석이 아니
라, 일종의 규제원칙(regulatives Prinzip)처럼 읽힌다.114) 하지만 만일 체계
111) Niklas Luhmann, Die Codierung des Rechtssystems, S. 186.
112) Ebd., S. 188.
113) 이에 관해서는 세계사회의 중심/주변 구별에 기초하여 제3세계와 같은 주변 국가
에서는 헌법이라는 구조적 연결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용하지 못한 탓에 법체계의 자기생산이 아니라, 타자생산으로 보아야 한다는 Marcelo Neves, Symbolische Konstitutionalisierung, S. 107 이하; ders., Von der Autopoiesis zur Allopoiesis des Rechts, in: Rechtstheorie 34(2003), S. 245 이하 참고.
114) 만일 체계의 분화, 코드/프로그램, 구조적 연결 등 체계의 자기생산과 작동상의 폐
쇄성을 이처럼 규범적으로 읽게 되면, 루만의 체계이론 자체는 하나의 비판적 척 도로서 규범적 체계이론으로 변모하게 된다. 실제로 최근에는 루만의 이론을 ‘비 판적 체계이론’으로 파악하는 경향이 뚜렷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는 Marc Amsturz/Andreas Fischer-Lescano(Hg.), Kritische Systemtheorie, 2013; Koja Möller/Jasmin Siri(Hg.), Systemtheorie und Gesellschaftskritik. Perspektiven der Kritischen Systemtheorie, 2016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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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을 이렇게 규범적으로 독해하게 되면, 여하한 형태의 규범성도 배격하
려는 체계이론의 의도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 모든 복잡한 문제들을 감
안하면, 체계이론은 세계사회의 주변의 관점에서 재서술(re-description)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재서술은 서술을 전제하고, 서술은 이해
를 전제한다. 이 점에서 - 최소한 글쓴이에게 - 루만의 체계이론은 이것으
로 끝이 아니라, 비로소 시작이라고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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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onomy of the Legal System - On the Relationship
between Law and Politics from the System Theoretical View
Zai-Wang Yoon*
115)
It is crucial for legal theorists to develop appropriate theoretical tools
to regard law as an autonomous entity and to reveal the interactions or
interdependencies between law and politics. Accordingly, any possible
hierarchical relationships between the two are required to be superseded
by a more convincing explanation. It is naturally naïve to believe that
law just belongs to the outcome of politics or politics is merely the
realization of law, which needs to be theoretically articulated by legal
philosophers or theorists. At this point, Luhmann's systems theory is
almost unique in the current context of legal or political theory,
affirming the self-reliance (i.e. ‘operational closure’ or ‘autopoiesis’) of
law and politics and exploring the interrelationship (i.e. ‘structural
coupling’) between both systems on the basis of this autonomy. This
paper tries to examine how the grand theory argues that law and
politics respectively constitute an autonomous system and to demonstrate
that autonomy of each system is a prerequisite for interrelationship in
particular. In addition, against this background, the paper will finally
describe how the social subsystems of law and politics interact with
each other.
- School of Law, Korea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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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체계의 자율성 - 체계이론적 관점에서 본 법과 정치의 관계317
Key Words : Niklas Luhmann, System Theory, Autonomy of Law,
Structural Coupling, Constitu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