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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상태와 주권의 역설 - 아감벤의 칼 슈미트 해석에 대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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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대학교비교법학연구소강원법학 제47권, (2016. 2) 337-404쪽. Kangwon Natl. Univ. Kangwon Law Review Vol.47, (Feb. 2016) pp.337-404.

예외상태와 주권의 역설 - 아감벤의 칼 슈미트

해석에 대한 비판*

1)

윤 재 왕**

1)

<국문초록>

조르조 아감벤의 이론은 주권과 예외상태 그리고 생명정치 개념을 중심으로 구

성된다. 특히 주권과 예외상태와 관련해서는 칼 슈미트의 이론에 깊숙이 의존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두 학자의 이론 사이에는 미시적・거시적 차이가 존재한다.

바로 그 때문에 슈미트의 개념구성이 어떤 식으로 아감벤의 이론적 구상에 반영되

어 있는지를 섬세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아감벤의 슈미트 수용의 타

당성 여하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우선 슈미트의 국가철학적 결단주의에 대한 개관을 통해

주권 개념과 예외상태 개념의 이론적 위치를 확인한다(II). 이를 토대로 아감벤이

이 개념들을 어떤 식으로 수용하고 있는지를 역시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프로젝

트 전반을 의식하면서 설명한다(III). 끝으로 슈미트 국가이론을 의식하면서 아감벤

의 프로젝트 전반에 대한 몇 가지 비판적 의문을 제기한다(IV.).

주제어: 조르조 아감벤, 칼 슈미트, 주권, 예외상태, 호모 사케르

DOI: 10.18215/kwlr.2016.47..337 투고일자: 2016.01.29, 심사일자: 2016.02.19, 게재확정일자: 2016.02.19. * 이 논문은 2013년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연구되

었음(NRF-2013S1A5A8021992). **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학박사(Dr. j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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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Ⅰ. 서론

Ⅱ. 칼 슈미트의 결단주의 - 예외상태와 주권

Ⅲ. 아감벤의 주권비판과 예외의 논리

Ⅳ. 아감벤의 슈미트: 선택적 친화성?

진정한 주권자는 예외상태가 오는 것을 가로막을 능력을 가진 자이다1)

  • 니클라스 루만 -

I. 서론

20세기 후반에 시작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법질서는 급

속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 모든 사람을 그 인격성의 측면에서 전체 법질서

에 포함시키고, 이를 보편적 인권과 민주적 헌법국가의 형식을 통해 실현

하고자 했던 근대적 기획은 아직 그 완성을 말하기 전에 근대 이전의 상

태로 회귀하거나 새로운 정치형식을 통해 다수의 인간이 사실상 법질서로

부터 배제되는 현상을 낳고 있다. 이는 단순히 세계적 차원에서 중심/주변

을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법질서 내에서 중심/주변 또는 포섭/배제

의 메커니즘을 확인할 수 있는 상태에 도달했고, 흔히 말하는 ‘양극화’는

이러한 변화를 상징하는 단어로 정착했다.2) 즉, 보편화와 일반화라는 계몽

1) Niklas Luhmann, Archimedes und wir. Interviews, hrsg. v. Dirk Baecker und

Georg Stanitzek, 1987, S. 12.

2) 법질서의 이러한 위기와 포섭/배제의 구별에 따른 양극화의 의미에 관한 시론적 연

구로는 윤재왕, “포섭/배제”- 새로운 법개념?: 아감벤 읽기 1, 고려법학 56(2010), 261-292면 참고. 또한 세계화의 맥락에서 중심/주변의 구별을 통한 글로벌한 차원의 양극화를 법적 차원에서 분석하고 있는 Marcel Neves, Gerechtigkeit und Differenz in einer komplexen Weltgesellschaft, ARSP 88(2002), S. 323-338; ders., Transconstitutionalism, 2013, 특히 S. 174 이하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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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이념은 파편화와 특수화 그리고 그에 따른 계층적 분할로 전도되었고,

한 국가 단위 내에서도 특정한 계층은 법체계가 제공하는 모든 권리를 향

유하면서 동시에 그에 따른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가 하면, 거꾸로 또 다른

계층은 오로지 의무의 주체로서 통제와 관리의 대상일 뿐, 근대 법체계가

약속한 통합과 포섭에서 배제된다는 진단이 성행하고 있다.3) ‘21세기 자

본’이 사회의 주류담론으로 형성될 수 있을 정도로 힘을 발휘하거나 민주

적 헌법국가의 퇴행을 한탄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져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정치적 전개과정에서도 민주적 헌법국가와 법치국가 이념은

근대의 부정적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가장 핵심적 이데올로기를 제공하고,

따라서 법치국가 및 이를 복지이념과 결합한 사회적 법치국가를 통해 그러

한 부정성을 불식시킬 수 있으며, 따라서 이러한 - 역시 - 근대적인 이상

에 최대한 접근하는 것이 지금 여기에서의 과제로 여기는 것이 일반적이

다. 그리하여 법질서 그 자체에는 어떠한 배제의 논리도 개입되어 있지 않

으며, 단지 아직 이상에 근접하는 현실을 실현하지 못했다고 설명하게 된

다. 이에 반해 근대의 기약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입장에서는 이미 법질

서 자체에 배제와 억압의 논리가 내재해 있음을 ‘폭로’함으로써 법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을 수행한다. 다시 말해 현재의 모든 부정성은 근대적 성취

가 아니라, 근대 자체가 안고 있는 모순의 표현이며, 그러한 모순의 측면

에서는 근대 이전과 근대 이후 그리고 현재의 상황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입장을 표방한다.4)

3) 이와 관련된 기초적 개념들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으로는 Heinz Bude/Andreas

Willisch(Hrsg.), Exklusion: Die Debatte über die “Überflüssigen”, 2007에 실린 논 문들과 Rudolf Stichweh, Leitgesichtspunkte einer Soziologie der Inklusion und Exklusion, in: ders.(Hrsg.), Inklusion und Exklusion: Analyse zur Sozialstruktur und sozialen Ungleichheit 2009, S. 29 이하 참고. (헌)법학적 맥락을 부각시키는 글 로는 Marcel Neves, Zwischen Subintegration und Überintegration - Bürgerrechte nicht ernstgenommen, KJ 1999, S. 557-577 참고.

4) 법적 근대를 둘러싼 이른바 모던과 포스트모던의 대립에 관한 간략한 지적으로는

윤재왕, “포섭/배제”- 새로운 법개념?: 아감벤 읽기 1, 고려법학 56(2010), 263면 참 고. 또한 근대의 시민적 법치국가가 자기관련성(Selbstbezug)을 통해 지속적인 수정 과정을 거치는 전개양상(모던)과 이러한 전개 자체를 극히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법 비판(포스트모던)의 대립을 면밀하게 추적하고 있는 Christoph Menke, Kritik 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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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지점에서 현재 국제적으로 활발한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는 조

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의 극단적 법비판은 법철학적 관점에서 커

다란 관심의 대상이 된다. 무엇보다 법에 대한 기존의 비판이 주로 법의

실현과정에 수반되는 부정적 현상 또는 법의 형식성에 집중하면서 법 자체

를 문제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던 반면, 아감벤은 그의 대표저작 ‘호모 사

케르(Homo Sacer)’부터 줄곧 근대적 법질서에 내재하는 폭력성과 통치성

을 역사적, 이념사적 맥락에서 증명하려고 시도하고 있다.5) 이는 당연히

기존의 법철학에 대한 커다란 도전이자 도발이며, 동시에 민주적 헌법국가

를 완성하려는 법치국가와 시민사회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특히 아감벤

의 표제어 ‘호모 사케르’는 고대 로마의 법개념이고, 또한 그의 연작의 핵

심적 구성부분인 ‘예외상태’에서는 독일의 보수적 헌법학자이자 법철학자

인 칼 슈미트(Carl Schmitt)의 주권 개념과 예외상태 개념을 수용하여 이

를 현재의 법과 국가에 대한 비판적 분석의 핵심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감벤은 법철학과 국가철학에 커다란 논의주제를 던져주고 있다.

이 점에서 이 글은 법 자체 그리고 법비판을 둘러싼 아감벤의 새로운

도전에 대한 법철학적 대응이라는 의미에서 한편으로는 슈미트와 아감벤의

연결고리라는 이론사의 관점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의 문제상황에 대

한 체계적 논의를 위한 출발점이라는 관점에서 아감벤의 극단적, 비관적

성찰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는 단순히 ‘유행’을 따라잡거나 기존의 법철학

바깥에서 야기된 ‘소음’에 대해 적절하게 반응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현재의 국내외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변화의 흐름을 관찰

하면 적어도 아감벤의 분석과 비판은 상당부분 설득력을 갖고, 이 설득력

은 더욱더 커다란 힘을 얻고 있다. 물론 그 설득력은 극단적 상황과 예외

적 현상에 대한 민감성이라는 현대적 지각 - 특히 매스미디어를 통한 - 의

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양극화’로 대표되는 우리 사회의 현상태를

Rechte, 2015 참고.

5) 1995년에 시작된 ‘호모 사케르’ 연작은 2015년에 ‘스타시스 - 정치적 범주로서의 내

전’과 ‘신체의 사용’이 발간되면서 완결되었다. 그리고 연작의 일련번호에도 수정이 가해졌다. 자세한 내용은 박진우, 역사와 동시대성, 파국과 희망의 정치철학 - 조르 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시리즈에 부쳐, 문학동네 82(2015), 1-13쪽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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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안하면, 서양의 근대로부터 우리에게 강제적으로 이식된 근대적 법체계

를 구성하고 재구성하려는 노력을 성찰하고 재음미하기 위해 아감벤의 경

우와 같은 극단적 법비판을 조명하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민주화 이

후의 민주주의’라는 역설적 표현을 차용하자면, ‘법비판 이후의 법’을 성찰

할 때에만 비로소 우리의 헌법질서의 자기서술(Selbstbeschreibung)에 대한

비판적 검증절차를 사고할 수 있다. 그 전제에서만 과거와 현재의 부정성

을 극복하고 미래의 부정성을 미리 감지하거나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긴 하지만 아감벤의 비판적 충동(kritischer Impetus)은 상당부분 과

장의 산물이라 것이 이 글의 ‘선이해’에 해당한다. 문헌학자로서의 아감벤

은 다수의 학문분과를 지속적으로 넘나들고 역사적 과거와 현재를 끊임없

이 교차시키기 때문에 그가 동원하는 준거(Referenz)의 양은 한마디로 엄

청나다.6) 하지만 이러한 학제적이고 시대를 관통하는 논증방식을 통해 -

아감벤 스스로 주장하듯이 -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연속성(Kontinuum)을 밝

히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아감벤 자신은 근대의 민주적

법치국가에 내재하는 근본적 원리가 이미 서양 고대로부터 일관되게 연속

성을 갖고 있다는 주장한다. 이처럼 역사적 연속성을 주장하는 경우에는

필연적으로 단순화와 과장이 개입되지 않을 수 없다.

과장의 징후는 당연히 아감벤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핵심적 개념

인 주권과 예외상태 그리고 생명정치에서도 드러난다. 아감벤은 주권과 예

외상태의 본질적 관련성을 분석할 때에는 칼 슈미트를, 생명정치 개념을

분석할 때에는 미셀 푸코를 원용한다.7) 특히 생명정치의 개념과 관련해서

는 개념 자체는 푸코로부터 원용하면서도 그의 이론적 구상으로부터는 상

당히 거리를 두는 반면, 주권과 예외상태와 관련해서는 슈미트의 이론을

6) 아감벤의 저작들의 이러한 특성에 관해서는 Eva Geulen, Giorgio Agamben zur

Einführung, 2. Aufl. 2009, S. 19 이하 참고.

7) 아감벤이 끌어들이는 개별 학자들과의 연관성에 관해서는 양운덕, “미시권력들의 작

용과 생명 정치 :푸꼬의 권력분석틀과 아감벤의 근대 생명정치학 비판”, 철학연구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2008), 169쪽 이하; 임미원, “홉스의 법 및 정치사상에 대 한 재해석 가능성: 슈미트, 아감벤, 푸코, 아렌트의 홉스 해석을 중심으로”, 법과사 회 42(2012), 289쪽 이하; 엄순영, 아감벤의 “ “주권의 논리”: 경계공간사유와 잠재 성사유“, 법철학연구 제16권 3호(2013), 39쪽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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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대부분 채용한다. 따라서 적어도 슈미트 이론의 수용에 관한 한, 아

감벤의 ‘과장’은 상대적으로 축소되고, 이 점에서 텍스트 비판적 작업이 비

교적 용이하게 된다. 물론 아감벤과 슈미트의 정치적 의도는 거대한 강을

사이에 두고 있을 정도로 먼 거리가 있다. 슈미트가 이 개념들을 통해 예

외상태에서 작동하는 주권의 논리를 법치국가의 궁극적 정당성을 확인하는

논리로 사용하는 반면, 아감벤은 이를 통해 법치국가 자체의 폭력적 성격

을 진단하고 폭로하고자 한다. 바로 그 때문에도 아감벤이 일반화하고 있

는 주권 및 예외상태 개념이 어떠한 측면에서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 슈미

트의 그것에 맞닿을 수 있는지 자체를 검토해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는

무엇보다 슈미트의 개념구성이 어떤 식으로 아감벤의 이론적 프로젝트에

반영되어 있는지를 자세히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칠 때에만 아감벤에 의한 슈미트의 해석과 수용이 과연 타당한지를 확인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이 글은 먼저 칼 슈미트의 주권 개념과 예외상태 개념

에 대한 서술(II)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여기에서는 특히 슈미트의 국가

철학적 결단주의(staatsphilosophischer Dezisionismus)에 대한 개관을 통해

주권과 예외상태의 이론적 위치를 확인하는 데 집중하겠다. 이를 토대로

아감벤이 이 개념들을 어떤 식으로 수용하고 있는지를 역시 아감벤의 ‘호

모 사케르’ 프로젝트 전반을 의식하면서 설명(III)한 이후, 슈미트의 국가이

론을 의식하면서 아감벤의 프로젝트 전반에 대한 몇 가지 비판적 의문을

제기(IV)하면서 글을 맺도록 하겠다. 미리 밝혀두지만, 이 글은 자신의 주

장을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결코 특정한 학문분과에 구속당하지 않는 아감

벤의 글쓰기에 대한 글쓰기라는 점에서 어쩔 수 없이 아감벤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구속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법학 또는 법

철학이라는 특정한 분과에 대한 구속이 글의 진행방향을 제시하기는 하지

만, 글의 서술 자체를 조종할 수는 없다는 점을 밝혀둔다. 그러한 구속성

을 고집해서는 결코 아감벤의 이론에 적합한 글쓰기가 될 수 없기 때문이

다. 이와 함께 하나의 완결된 거대이론적 단위로서의 슈미트의 국가철학과

현재진행형인 아감벤 철학의 포괄성에 직면하여 서술의 추상성을 약화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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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데에 한계가 있음도 미리 지적해두고자 한다.

Ⅱ. 칼 슈미트의 결단주의 - 예외상태와 주권

  1. 출발점: 사법적 결단주의

흔히 ‘결단주의’ 표현되는 칼 슈미트의 법사상은 그의 저작이 법이론과

정치이론의 본격적 논의대상이 되기 시작한 ‘정치신학(Politische Theologie,

1922)’과 ‘정치적인 것의 개념(Der Begriff des Politischen, 1932)’에서 비

롯된 것이 아니다.8) 슈미트는 형법상의 책임개념에 대한 박사학위 논문9)을

제출한 직후 출간된 첫 번째 단행본인 ‘법률과 판결’10)에서부터 이미 법적

용실무, 즉 법관의 재판과 관련하여 결단이라는 요소가 갖는 독자적인 의

미를 밝히고자 했다.11) 그의 사법이론(Justiztheorie)의 출발점은 법관의 판

결이 상위의 규범이나 법이념으로부터 논리적으로 도출되거나, 이에 대한

포섭 또는 이로부터의 연역을 거쳐 이루어진 결과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다. 오히려 법적 결정은 내용적 무차별(inhaltliche Indifferenz; 즉, 결정의

내용이 결정의 근거가 되는 규범과 어떠한 관련성도 없다는 점)과 자의를

뜻하는 결단적 요소가 판결의 본질에 속한다고 본다. 다시 말해 규범적 측

면에서 논리적 연관성을 확보하여 판결에 도달해야 한다는 통상의 법적용

이론을 거부하고, 오로지 결정을 내린다는 사실 자체를 강조한다.12) 그럼

8) 이 점에 대한 섬세한 분석은 Hasso Hofmann, Legitimität gegen Legalität. Der

Weg der politischen Philosophie Carl Schmitts, 2. Aufl. 1992, S. 32 이하 참고. 9) Carl Schmitt, Über Schuld und Schuldarten - Eine terminologische Untersuchung,

1910.

10) Carl Schmitt, Gesetz und Urteil - Eine Untersuchung zum Problem der

Rechtspraxis 1912(인용은 1969년의 영인본에 따름). 저작의 형성배경에 관해서는 Reinhard Mehring, Carl Schmitt. Aufstieg und Fall. Eine Biographie, 2009, S. 37 이하 참고.

11) Carl Schmitt, Gesetz und Urteil, Vorwort.

12) Carl Schmitt, Gesetz und Urteil, S. 3, 118. 이에 관해 자세히는 Hasso Hof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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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법학 제47권(2016. 2) 344

에도 불구하고 슈미트는 법적용과 입법 또는 정치 사이의 분리를 고수한

다. 왜냐하면 개별 법관은 법실무 및 법실무를 규정하는 제도에 구속되고,

그 때문에 법관이 정치적 결정을 내릴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개

별자로서의 법관은 자신과는 무관하게 지속되고 힘을 발휘하는 어떤 전체

적인 과정에 그저 참여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13) 그 때문에 법관이

법관으로서의 과제에만 전념할 뿐, 다른 과제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자

한다면 법관은 지배적인 법실무에 복종해야 하고, 이것이 곧 슈미트로서는

그 당시에 효력을 갖고 있던 법치국가 제도에 합치하는 사고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정치적 결단의 핵심은 권력분립 원칙에 따라 입법이 담당하고,

사법은 규범에 구속되며, 규범의 내용이 의심스럽거나 논란의 대상이 될

때에는 사법의 구속은 끝난다. 그러므로 사법적 형식에 따라 작업하는 법

원이 존재해야 한다면, 사법은 정치를 통해 제정된 법에 엄격히 지향되어

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맥락에서 슈미트는 법률의 불명확성과 불투명

성을 비판한다. 즉 입법자의 태만이 곧 사법의 결단적 성격을 더욱 조장한

다는 것이다.14)

그렇다면 어떻게 한편으로는 법적 결정의 결단적 요소를 강조하면서, 다

른 한편으로는 사법의 엄격한 법률구속을 표방할 수 있을까? 슈미트에 따

르면 법질서의 측면에서 고찰해볼 때 법관의 판결이 결단적 성격을 갖는다

는 것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지배적이고 통일

적인 법실무가 존재하는 이유는 법실무의 참여자들, 즉 법관들이 마치 자

신들의 결정이 정당한 근거를 갖고 있다거나 법률규범으로부터 논리적으로

도출되고 연역되는 것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일종의 허구(Fiktion)나 구성

(Konstruktion)을 구사하여 법실무의 예측가능성과 기대의 안정성(법적 명

확성)이 지배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라고 한다.15) 다시 말해 법관의 결정 자

Legitimität gegen Legalität, S. 33 이하; Lorenz Kiefer, Begründung, Dezision und Politische Theologie. Zu drei frühen Schriften von Carl Schmitt, ARSP 76(1990), S. 480 이하 참고.

13) Carl Schmitt, Gesetz und Urteil, S. 36.

14) Ebd.

15) Carl Schmitt, Gesetz und Urteil, S. 48 이하. 이러한 테제가 법실증주의와 어떠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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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상태와 주권의 역설 - 아감벤의 칼 슈미트 해석에 대한 비판345

체는 결단의 소산이지만, 결정을 정당화하는 맥락에서는 결단적 성격을 탈

색시키는 논리적 추론의 형식을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법실무

에서 특정한 구성방식이 경험적 일반성을 획득하면 법관은 법률이 아니라,

‘대다수의 법관이 그렇게 결정할 것이다’16)는 사실적 측면에 구속당하게

된다고 한다. 그 때문에 슈미트는 이렇게 말한다.

“규범에 포섭시키는 것은 더 이상 논리적 추론과 판결이유의 목표가 아니 라, 법적 명확성(확정성)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결정이 정당화되는 토대는 결 정 이전에 있는 어떤 것(실정법, 문화규범 또는 자유법의 규범)이 아니라, (실 정법, 문화규범 또는 자유법 규범의 도움을 받아) 비로소 만들어내야 하는 것 일 뿐이다.”17)

그러므로 상위의 규범이 법관의 결정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법관의

결정으로부터 비로소 무엇이 그때그때마다 법과 정당성으로 여겨지는지가

밝혀질 뿐이다.

이러한 ‘결단주의적’ 사고는 헌법재판제도의 정치사법적 성격에 대한 슈

미트의 진단인 ‘헌법의 수호자’18)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슈미트에 따르

관련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Lorenz Kiefer, Begründung, Dezision und Politische Theologie, S. 481 이하 참고.

16) Carl Schmitt, Gesetz und Urteil, S. 71. 이 맥락에서 슈미트는 ‘오늘날의 법관의

경험적 유형(empirischer Typus des modernen Richters)’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17) Carl Schm itt, G esetz und U rteil, S. 97. 이를 사법의 ‘자기정당화

(Selbstrechtfertigung)’ 또는 ‘자기지시(Selbstrefrenz)’로 해석하는 Friedrich Balke, Der Staat nach seinem Ende. Die Versuchung Carl Schmitts, 1996, S. 383 이하 도 참고.

18) Carl Schmitt, Hüter der Verfassung, 1931(인용은 2. Aufl. 1969에 따름). 이른바

‘헌법의 수호자 논쟁’을 촉발시킨 계기가 된 이 저작과 슈미트의 대척점에 있는 한 스 켈젠의 입장에 관한 간략하지만, 정확한 설명으로는 Wolfgang Mantl, Hans Kelsen und Carl Schmitt, in: Werner Krawietz/Ernst Topitsch/Peter Koller(Hrsg.), Ideologiekritik und Demokratietheorie bei Hans Kelsen, 1982, S. 186-199; Manfred Walther, Politische Theologie bei Kelsen und Schmitt, in: ders.(Hrsg.), Religion und Politik. Zu Theorie und Praxis des theologisch-politischen Komplexes, 2004, S. 250 이하와 발터의 논문에 대한 코멘트인 Reinhard Mehring, Antipodische Polemik: Zur Kontroverse zwischen Hans Kelsen und Carl Schmi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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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법학 제47권(2016. 2) 346

면 헌법을 둘러싼 다툼에서 사법절차가 최종적 결정기관이 되어야 한다는

요구는 정치적 생활 전체를 사법적 형식에 복속시키려는 법치국가적 사고

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한다.19) 법치국가적 사고는 법률의 지배, 법질서의

완결성을 전제하면서 헌법적 갈등 역시 법의 형식으로 만들어 이에 대해

사법적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본다. 이와 관련하여 슈미트는 두 가지 종

류의 헌법적 갈등을 구별한다. 즉 의문의 여지없는 명백한 헌법위반이 존

재하면 법원은 사법적 형식에 따라 절차를 진행하면서, 어떤 식으로든 과

거의 행위가 헌법에 비추어 ‘유죄’, 즉 위헌임을 선언하면 된다.20) 이에 반

해 하위법률이 헌법의 일반원칙에 합치하는지 또는 이 일반원칙 내부의 모

순과 갈등이 존재하는지가 불확실하고 이에 대해 의문이 있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법치국가 독트린에 의하면 이 경우에도 헌법재판소는 문제의 특

수성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판결 또는 법적용에 해당하는 문제에 해당한다

고 보는 반면, 슈미트로서는 이 경우에는 결코 법적용이 아니라, 정치적

결단의 문제라고 한다. 즉 헌법의 내용에 대한 불명확성을 제거하거나, 헌

법에 비추어 법률의 내용을 확정해야 한다면 이는 입법 또는 헌법제정의

문제이지 결코 사법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21) 따라서 법률의 내용에

대한 의문을 제거하는 기관은 모두 사실상 입법자로서 활동하는 것이 된

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헌법의 내용에 대한 다툼에 대해 의문을 제거하고

자 한다면 그러한 기관은 헌법제정자의 지위를 갖게 된다. 슈미트는 자신

의 저작 ‘법률과 판결’을 지시하면서 헌법재판소가 최종적인 결단을 내리

는 경우 법과 사법이 결국 정치의 영역으로 옮겨가지 않을 수 없다는 사

실에 대한 법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고, 헌법재판소의 비정치적 성격을 고수

하려는 법치국가적 사고를 파괴한다.

ebd. S. 265 이하 참고.

19) Carl Schmitt, Hüter der Verfassung, S. 26 이하. ‘헌법의 수호자’가 기본적으로 사

법적 형식 자체에 대한 전면적 부정이 아니라는 점에 관해서는 Volker Neumann, Carl Schmitt als Jurist, 2015, S. 225 이하 참고.

20) Carl Schmitt, Verfassungslehre, 1928(인용은 5. Aufl. 1970에 따름), S. 27; ders.,

Hüter der Verfassung, S. 31.

21) Carl Schmitt, Hüter der Verfassung, S.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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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상태와 주권의 역설 - 아감벤의 칼 슈미트 해석에 대한 비판347

“모든 결정, 심지어 구성요건적 포섭을 통해 절차를 진행하는 법원의 결정 에서조차도 규범의 내용으로부터는 논리적으로 도출될 수 없는 순수한 결단의 요소가 담겨져 있다. 나는 이를 ‘결단주의’라고 지칭했다. 의문, 불확실성, 의 견의 차이를 결단해야 하는 특수한 기능을 가진 기관의 판결이 갖는 결단적 성격은 더욱 강하고 본질적이다. 이 경우 결단주의적 요소는 사법적 결정 자 체가 가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규범적 요소에 추가되는 결정의 한 부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결단 그 자체가 판결의 의미와 목적이며 결정의 가치는 탁월한 논증이 아니라, 권위를 통해 의문을 제거하고 수많은 가능한 논증들 때문에 형성된 의문을 제거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논리적으로 날카로운 통찰 마저도 아주 쉽게 새로운 의문을 생산한다는 것은 비판적 사고의 진보에도 불 구하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아주 오래 된 현상이기 때문이다.”22)

이 점에서 슈미트가 ‘법률과 판결’에서는 법관의 판결이 갖는 결단주의

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사법과 정치 또는 입법 사이의 엄격한 분리가 가능

하다고 전제했다면, 헌법재판의 경우에는 이러한 분리를 수행할 수 없다고

본 셈이다. 헌법규정의 내용을 둘러싼 대립이나 서로 충돌하는 규범들 사

이의 대립은 최상위에 있는 법원칙 또는 근본규범으로부터의 연역을 통해

조정될 수 없으며 오로지 불가피한 결단을 통해서만 조정이 가능하다는 것

이다. 따라서 헌법재판소는 헌법에 포함되어 있는 의미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헌법해석(authentische Verfassungsinterpretation)’23)을 행

하는 것이 된다. 더욱이 슈미트가 보기에 헌법재판의 결정은 정치적인 결

정이다. 왜냐하면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최후심급으로서 권위를 통해, 다시

말해 원칙적으로 무한대로 가능한 토론을 필연적으로 단절시킴으로써 특정

한 규범을 정립하여 규범적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헌

법재판소의 활동은 최고권력, 즉 국가의 주권적 지배권행사에 참여하는 특

수한 방식이 된다.24)

결론적으로 법률의 지배 또는 흠결이 없는 완결된 법질서라는 법치국가

적 사고는 결단주의의 관점에서는 최상위의 규범인 헌법에 대한 해석의 경

22) Carl Schmitt, Hüter der Verfassung, S. 46.

23) Carl Schmitt, Hüter der Verfassung, S. 45.

24) 이 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Ernst-Wolfgang Böckenförde, Der Staat als

sittlicher Staat, 1978, S. 14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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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법학 제47권(2016. 2) 348

우에는 가능할 수 없다. “헌법합치에 대한 결정은 결코 비정치적인 결정일

수 없다.”25) 이와 같이 이미 사법적 차원, 즉 통상의 법원의 결정과 헌법

재판에서 필연적으로 개입되는 결단이라는 요소는 슈미트로 하여금 법을

오로지 규범의 상호연관성으로 포착하고, 이를 통해 사실적, 정치적 요소를

배제하려는 규범주의적 사고 - 특히 한스 켈젠의 ‘순수법학’ - 에 정면으

로 배치되는 이론적 선택을 하게 만드는 출발점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이

러한 반규범주의적 사고는 법질서 자체와 국가를 결단이라는 정치적 및 사

실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법이론으로 관철된다.26)

  1. 국가이론적 결단주의

1) 국가 - 법의 선험적 조건

모든 법률과 모든 법실무에 결단적 요소가 독자성을 갖고 내재해 있다

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다면 자연히 이러한 요소가 법질서와 헌법질서 전

체와 관련해서도 존재하는지를 묻게 된다. 다시 말해 이 차원에서도 법률

과 법실무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의이념과는 무관하게 또는 상위의 근본규범

으로부터의 논리적 도출과는 무관하게 결단의 법적 가치가 존재하는 것일

까? 이 물음과 관련하여 슈미트는 법질서와 헌법질서 역시 실제로 결단에

의해 규정된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법(Recht)과 법실현

(Rechtsverwirklichung)의 차이27)를 끌어들이고, 이를 국가론의 법적 근본

25) Carl Schmitt, Hüter der Verfassung, S. 136.

26) 사법이론적 차원에서 슈미트가 제시하는 결단주의와 정치적, 주권적 결단주의의 관

계에 관해서는 Volker Neumann, Theoretiker staatlicher Dezision: Carl Schmitt, in: Stefan Grundmann u. a.(Hrsg.), Festschrift 200 Jahre Juristische Fakultät der Humboldt-Universität zu Berlin. Geschichte, Gegenwart und Zukunft, 2010, S. 741 이하 참고.

27) 슈미트 연구가 일반적으로 크게 주목하지 않는 양자의 구별은 슈미트의 교수자격논

문 ‘국가의 가치와 개인의 의미(Der Wert des Staates und die Bedeutung des Einzelnen, 1914)’에서 이미 거의 완결된 형태로 드러나 있다. 여기서 슈미트는 이 념으로서의 법과 이를 실현하는 기관으로서의 국가를 구별하고, 법이 국가에 우선 한다는 입장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당위와 존재를 구별하는 신칸트주의적 이원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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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상태와 주권의 역설 - 아감벤의 칼 슈미트 해석에 대한 비판349

문제로 규정한다. 즉 이념으로서의 법은 그것이 실현되기 위해 반드시 사

실적 권력을 필요로 하고, 이 사실적 측면은 결단을 통해 표현되고 그 자

체 법을 구성하는 핵심적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28) 이처럼 법이 가능하기

위한 구체적 조건, 즉 법이 힘을 갖기 위한 사실상의 조건을 탐색하는 작

업은 결국 국가이론적 결단주의로 귀착하며, 그 핵심내용은 곧 주권이론이

된다.

이 맥락에서 슈미트의 핵심적인 관심은 법질서의 극단적 영역인 ‘한계사

례’에 집중된다.29) 이 한계사례에서도 법은 법규범 자체가 효력을 갖고 실

효성을 가질 수 있는 사실상의 전제조건을 마련해야만 한다. 국가론의 일

반개념인 예외상태에서는 법실현이라는 문제가 갖는 방법적 독자성이 하나

의 법적 문제로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30) 슈미트가 예외상태에 주목하

서 출발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구별은 이념이 현실에 구속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 라, 이념과는 단절된 노골적인 사실로서의 국가 활동마저도 어떤 식으로든 법이념 의 실현에 해당한다는, 헤겔 국가철학에 근접하는 방향으로 귀착한다. 이로써 법실 현이 법 자체에 우선하는 결단주의적 사고의 이론적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 법과 법실현의 구별이 슈미트의 결단주의에서 갖는 의미에 관해 자세히는 Peter Schneider, Ausnahmezustand und Norm, 1957, S. 259 이하; Hasso Hofmann, Legitimität gegen Legalität, S. 53 이하 참고.

28) Carl Schmitt, Die Diktatur. Von den Anfängen des modernen Souveränitätsgedankens bis zum proletarischen Klassenkampf, 1928(인용은 5. Aufl. 1989에 따름), S. 194.

29) Carl Schmitt, Politische Theologie. Vier Kapitel zur Lehre von der Souveränität,

1934(인용은 5. Aufl. 1990에 따름), S. 11.

30) Carl Schmitt, Die Diktatur, S. 136 이하. ‘정치신학’에서 슈미트는 ‘예외’의 의미를

명시적으로 이름을 언급하지 않은 채, 19세기의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외는 일반과 자기 자신을 설명한다. 그리고 일반을 연구하 고자 한다면 진정한 예외를 살펴보기만 하면 된다. ... 일반에 대한 끝없는 장광설 은 짜증스러운 일일 뿐이다. 예외는 존재한다. 예외를 설명할 수 없으면 일반도 설 명할 수 없다. ... 예외는 일반을 열정적인 에너지를 갖고 사고한다(Carl Schmitt, Politische Theologie, S. 21).” 슈미트가 말하는 19세기의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는 쇠렌 키에르케고르이다. 하지만 슈미트는 키에르케고르의 사고를 완벽하게 왜곡하 고 있다. 키에르케고르에서 등장하는 ‘정당한(berechtigt)’ 예외라는 표현을 의도적 으로 삭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 자세히는 Hasso Hofmann, “Souverän ist, wer über den Ausnahmezustand entscheidet”, Der Staat 44(2005), S. 173 이하 참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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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법학 제47권(2016. 2) 350

는 이유는 체계적이고 법논리적인 근거에 기인한다.31) 즉 법과 법실현의

분리는 궁극적으로 자유주의 법이론의 근원적 흠결에 기인하는 문제라고

진단한다. 자유주의 법이론은 헌법이 모든 국가적 기능들을 각각의 관할에

따라 한계를 설정하고 국가권력을 권한의 체계들로 규율하여, 어느 한 지

점에서 국가권력 전체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행사되는 권력의 집중을

피해야 하고 또한 피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런 식으로 해서

자유 법치국가적 사고는 예외상태를 법적으로 처리하고자 시도하지만, 정

상적으로 효력을 갖는 법명제로서의 일반적 규범은 절대적 예외를 결코 포

착할 수 없고, 따라서 진정한 예외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완벽하게 정당화

할 수 없다는 것이다.32) 무엇보다 예외상태에 대한 법적 규율이 안고 있는

논리적 문제는 규범이 결코 규범 자신의 적용을 규율할 수 없다는 데 있

다고 한다. 설령 규범이 자신의 적용을 규율할지라도 다시 언제 이 규율에

대한 규율이 적용되어야 하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으며 결국은 무한회귀에

빠진다는 것이다.33) 그 때문에 슈미트는 다음과 같이 확언한다.

“언제 긴급한 상황이 존재하는지에 대해 포섭가능한 명확성을 갖는 기준을 제시할 수 없으며 진정으로 극단적인 긴급상황과 이 상황의 제거가 문제된다 면 이 경우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낱낱이 내용적으로 열거할 수 없다. 따라서 긴급상황을 제거할 권한의 전제조건과 그 내용은 필연적으로 무제한적일 수밖 에 없다. 이 경우 법치국가적 의미의 권한이란 존재하지 않는다.”34)

따라서 과연 긴급한 상황, 즉 예외상태가 존재하는지 여부는 결코 사법

31) Carl Schmitt, Politische Theologie, S. 11.

32) Carl Schmitt, Die Diktatur, S. 239.

33) 이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모든 규범적 사고가 필연적으로 봉착하게 되는 근원적

문제에 해당한다. 즉 규범에 대한 최종적 정당화가 가능한지 또는 규범의 정당화를 이해 규범 이외의 요소를 어느 지점에서 어느 정도까지 끌어들일 수 있는지를 둘러 싼 실천철학의 근본문제이다. 이에 관해서는 쿠르트 젤만(윤재왕 옮김), 법철학, 제 2판(2010), 202면 이하; Wolfgang Wieland, Aporien der praktischen Vernunft, 1989 참고. 이러한 논의배경에 비추어 볼 때, 슈미트는 무한회귀의 문제를 너무나 도 쉽게 결단이라는 사실적 요소를 통해 해결하는 셈이다.

34) Carl Schmitt, Politische Theologie, S.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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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상태와 주권의 역설 - 아감벤의 칼 슈미트 해석에 대한 비판351

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극단적으로 긴급한 상

황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진정으로 긴급한 상황에서는

긴급적인 행동을 하는 자와 긴급한 상황의 존재 여부를 결정하는 자가 구

별되지 않는다고 한다.35) 바로 이 점이 ‘정치신학’의 서두를 장식하는 구

절인 “주권자란 예외상태에 대해 결단을 내리는 자이다”36)의 체계적이고

법논리적인 의미이다. 즉 주권적 기관은 극단적인 예외상태의 존재 여부

및 이 상태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결단을 내린다. 이 점에서 슈

미트에게 주권은 법적 한계개념(또는 경계개념)이다. 왜냐하면 주권자는 정

상적으로 효력을 갖는 법질서의 바깥에 있지만, 그럼에도 이 법질서에 속

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슈미트는 “주권자는 헌법 전체가 유예될 수 있

는 있는지에 대한 결단을 담당한다”고 말한다.37)

이처럼 예외상태는 법으로 규정된 권한과 정치적 지배의 제한의 한계가

드러난다. 이 점에서 이러한 예외상태에서 사실적 힘을 갖고 이 상태에 대

한 결단을 내리는 자가 곧 주권자이고, 법‘질서’는 사실상의 질서를 전제할

때에만 비로소 ‘법’질서일 수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주권은 국가의

자기주장(Selbstbehauptung)이라는 사실성에 힘입어 원칙적으로 무제한적인

국가의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한다.

켈젠의 법실증주의와는 달리 슈미트는 예외가 단순히 법 바깥의 사실적

문제가 아니라, 그 자체 하나의 절박한 법적 문제이고, 법이론이 진지하게

다루어야 할 문제라고 주장한다. 즉 예외는 규범에 포섭할 수 없는 것이고

일반적 규범으로 포착할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예외는 특수한 법적

형식요소인 결단을 완벽하고 절대적이고 순수하게 드러낸다고 한다.38) 법

규범과 법실현의 분리를 전제하면서 슈미트는 예외상태에서야말로 법이 효

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을 창출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모든 일반규범은

생활관계에 대한 일반적 형성에 의존하고, 그 때에만 적용과 규율의 성격

35) Carl Schmitt, Die Diktatur, S. 179.

36) Carl Schmitt, Politische Theologie, S. 11.

37) Carl Schmitt, Politische Theologie, S. 12.

38) Carl Schmitt, Politische Theologie, S.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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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법학 제47권(2016. 2) 352

을 유지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규범은 동질적인 매체를 필요로 한다.

이 맥락에서 사실상으로 수립된 정상적 상황은 규범의 내재적 효력에 속한

다. 왜냐하면 무질서와 카오스에 적용 가능한 규범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

이다. 일단 정상적인 상황을 유도해야 하고, 주권자는 이러한 정상적인 상

태가 진정으로 존재하는지에 대해 확실하게 결정할 수 있는 자이어야 한

다. 그 때문에 모든 법은 곧 상황의 법(Situationsrecht)으로 파악해야 한다

는 것이 슈미트의 결론이다.

“주권자는 상황 전체를 총체적으로 창출하고 보장한다. 주권자는 이러한 최 종적 결단을 독점한다. 바로 이 점이 국가 주권의 본질이다. 따라서 주권의 개 념은 법적으로 볼 때 강제와 지배의 독점이 아니라, 결단의 독점으로 정의되 어야 한다. 예외는 국가의 권위의 본질을 가장 뚜렷하게 드러낸다. 바로 이 점 에서 결단은 법규범과 구별되고, (역설적으로 표현하자면) 국가의 권위는 이 권위가 법을 창설하기 위해 반드시 법을 지켜야 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증 명한다.”39)

그렇기 때문에 예외상태에서 주권자는 법을 유예(Suspension)함으로써

법이 효력을 가질 수 있는 정상적인 상황을 창출하는 자가 된다. 즉 법의

파괴라는 법 바깥의 활동을 통해 법이 법으로서 실현될 수 있는 질서를

형성한다는 역설적인 상태에 있게 된다. 이러한 역설은 다시 예외상태나

비상사태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헌‘법’이 스스로 ‘법’의 효력정지를 선언한

다는 역설로도 표현된다. 아무튼 법의 파괴를 통한 법의 실현이라는 이러

한 역설은 법질서를 유예하고 예외상태에 대해 결단을 내리는 주권자가 한

편으로는 법질서의 바깥에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법실현의 근거를

마련한다는 의미에서 법의 안쪽에 있다는 교묘한 역설적 착시현상을 만들

어낸다. 물론 이러한 역설을 해소하거나 비가시화(Invisibilisierung)하는 장

치는 결단이라는 사실상의 권력이다.

헌법 전체에서 결단이라는 요소가 갖는 독자성을 찾으려는 슈미트의 시

도는 그로 하여금 주권이라는 법적-정치적 기초개념을 법 자체가 가능하기

39) Carl Schmitt, Politische Theologie, S.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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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상태와 주권의 역설 - 아감벤의 칼 슈미트 해석에 대한 비판353

위한 사실상의 조건으로 파악하도록 만든다. 이러한 사실상의 전제조건이

비로소 법이 실효성을 갖게 만들고, 따라서 사실상의 질서가 지배한다는

전제하에서만 법은 실효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40) 그리고 이러한 질

서를 확보하고 보장하는 힘이 곧 주권을 뜻하고, 주권이 가장 첨예하게 표

현되는 상황이 곧 예외상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권이란 최종적 단계의

결단을 독점한다는 의미이고, 주권은 법과 관련이 없는 원초적 사실

(factum brutum)이 아니라, 법의 개념 자체에 속하는 내재적 요소이다. 바

로 그 때문에 모든 법은 그것이 실현될 수 있는 사실상의 상황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법은 평화로운 상황이 창출되어 이 상황이 지배

할 때에만 효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법적인 한계사례에 대한 이러한

분석은 기본적으로 법치-국가 또는 법-질서라는 개념이 국가의 결정권과

법규범이라는 두 요소로 구성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즉 국가권력은 굳이

법을 제정할 과제까지 담당할 필요가 없는 반면, 법은 효력을 갖고 법적

힘을 발휘하기 위해 국가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이 점에서 슈미

트는 국가법과 법이론이 예외상태를 고려의 대상에서 배제할 수 없고 또한

배제해서도 안 된다고 역설한다.

“예외는 원칙보다 더 중요하며, 이는 결코 역설에 대한 낭만주의적 아이러 니가 아니라, 평균적이고 반복하는 것들을 일반화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오한 통찰이다. 정상적인 것은 아무것도 입증하지 못하며, 예외는 모든 것을 입증한 다. 예외는 원칙을 확인시켜줄 뿐만 아니라, 원칙 자체는 오로지 예외 덕분에 생명을 유지한다.”41)

이처럼 예외가 원칙(규칙)에 우선할 뿐만 아니라, 원칙의 존재근거가 된

다는 역설적 논리는 결과적으로 예외가 원칙에 비해 훨씬 더 밝혀주는 것

이 많고 모든 것을 증명하며 원칙의 유지는 곧 예외가 갖는 힘을 통해 가

능하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예외는 법의 사실상의 존재조건인 주권을 포착

40) 특히 법효력의 관점에서 이 측면을 분석하고 있는 Peter Schneider, Ausnahmezustand

und Norm, S. 263 이하; Hasso Hofmann, Legitimität gegen Legalität, S. 37 참고.

41) Ebd. 이에 관해서는 또한 앞의 각주 30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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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법학 제47권(2016. 2) 354

할 수 있게 해주는 최상의 렌즈 역할을 한다. 즉 예외는 질서의 핵심이 무

엇인지를 알게 해주며, 그것은 다름 아닌 정치적 지배라는 것을 통찰할 수

있게 해준다. 예외는 법률의 지배가 허구이고 그저 정치적으로 평온한 시

대에나 법적으로 별다른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보여준

다. 슈미트는 그러한 ‘정상성(Normalität)’이 쳐놓은 허구의 장막을 걷어내

고 사실상 최종적으로 결정권을 갖는 기관, 즉 주권의 소재와 정치적 지배

의 소재에 대한 감각을 첨예화하려는 것이다. 이 맥락에서 프란츠 노이만

(Franz Neumann)은 예외에 관한 사고가 법이론과 정치이론에서 갖는 지배

사회학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때때로 마치 번개처럼 갑자기 정치권력의 중심에 빛을 비추는 상황이 존 재한다. 그것이 바로 포위, 전쟁 등과 같은 예외상황이다. 그러한 예외상태를 탐구하는 일은 정상적인 상태에 정치권력이 과연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밝혀주는 소중한 계기가 된다.”42)

이와 같이 법과 국가에 관한 사고를 예외와 예외상태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결코 비정상적인 것에 대한 낭만적인 감각이 아니라, 법규범과 정치

제도를 이에 대한 지속적인 위협과 파괴의 측면에서 파악하는 정치적 이론

을 형성한 결과이다. 그 때문에 슈미트는 법을 법규범들 상호간의 형식적,

논리적 연관성으로 파악하는 규범주의적 사고를 철저히 배격하고, 오로지

국가라고 하는 사실적 질서와 이러한 사실적 질서의 문제가 가장 첨예하게

표출되는 예외상태 그리고 이 예외상태를 극복하는 주권적 결단으로부터

법을 파악하는 ‘사회학적’ 이론구성을 시도한다. 법철학의 전통적 개념을

빌리자면, 법의 사실적 효력이 곧 법개념의 핵심적 구성요소가 되는 셈이

다. 그리고 사실적 효력을 전적으로 결단이라는 주권적 요소에 집중시킴으

로써 법의 개념 자체를 결단주의적으로 극단화하는 결론에 도달한다.

2) 결단주의적 법개념

42) Franz Neumann, Demokratischer und autoritärer Staat. Studien zur politischen

Theoirie, 1986, S. 95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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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상태와 주권의 역설 - 아감벤의 칼 슈미트 해석에 대한 비판355

슈미트는 자신의 법이론과 국가이론의 결론을 법적 사고형식을 분화하

는 방향으로 더욱 섬세하게 구성한다. 즉 법학을 통해 포착되는 궁극적인

사고 - 이로부터 다른 모든 형태의 법학적 사고들이 도출된다 - 는 규범이

냐 아니면 결단이냐의 문제로 집약된다고 한다.43) 슈미트의 대척점

(Antipode)에 있는 실증주의적 규범이해에 따르면 헌법은 법률체계의 기본

법을 형성하고, 국가는 곧 그 헌법, 즉 통일적인 근본규범과 동일하다.44)

그리하여 규범은 법적 사고의 유일한 토대이며 관심의 초점은 각 법규범들

사이의 위계질서이다. 이 위계질서에 따라 각각의 법규범은 그 상위에 있

는 규범에 귀속되고, 최종적으로는 통일적인 근본규범에 귀속된다. 이에 반

해 슈미트의 결단주의적 관점에서 그와 같은 규범주의는 헌법이 법률적 규

범화의 체계일 뿐이라는 가정, 다시 말해 이러한 체계가 완결성을 갖는다

는 가정과 이 체계가 주권적이라는 가정(다시 말해 국가의 정치적 실존의

필연성을 이유로 이 체계를 파괴해서는 안 된다는 가정)에 불과할 따름이

다. 다시 말해 법실증주의는 법의 효력근거를 다시 법적 규범에서 찾고자

하는 반면, 슈미트의 결단주의적 법개념은 모든 법적 효력은 법 바깥에 있

는 지배사회학적인 토대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며, 더 나아가 이러한 법 바

깥에 있는 요소를 법과 헌법에 포함시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45)

바로 이 점에서 슈미트에게 주권은 하나의 법형식이자 동시에 결단의

문제가 된다. 주권은 일단 법의 형식에 관련된다. 왜냐하면 모든 구체적인

법적 결정은 내용적 무차별이라는 요소를 담고 있으며 결단이 필요하다는

사정은 법규범 자체와는 별개로 독자성을 갖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결단의 기저에 있는 규범의 내용의 측면에서 보면 구성적이고 특수한 결 단적 요소는 무언가 새롭고 이질적인 것일 뿐이다. 결단은 규범적으로 고찰해 볼 때 무( )로부터 탄생한다. 결단이 갖는 법적 힘은 근거제시의 결과와는 완 전히 다른 것이다. 결단은 규범의 도움으로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

43) Carl Schmitt, Über die drei Arten des rechtswissenschaftlichen Denkens, 1934(인

용은 3. Aufl. 1993에 따름), S. 7.

44) Carl Schmitt, Politische Theologie, S. 29.

45) Carl Schmitt, Verfassungslehre, S.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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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법학 제47권(2016. 2) 356

꾸로 귀속지점으로부터 무엇이 규범이고 무엇이 규범적 정당성인지가 결정된 다.”46)

결단의 연원이 되는 규범적 무(Nichts)는 상위의 법규범이나 정의이념으

로부터 법규범을 남김없이 도출할 수는 없다는 현상으로부터 기인한다. 각

각의 경우에 무엇이 규범이고 무엇이 규범적 정당성인지는 다시 또 다른

규범으로부터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 결단이 비로소 무엇이 법이고 무엇이

불법이어야 하는지를 확정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적 결단이 비로소 규

범의 근거가 된다. 법이 법으로서 힘을 갖도록 하는 것은 규범적 또는 규

범논리적 정당화가 아니며, 그러한 정당화가 아무리 성공적이고 훌륭할지

라도 법에게 힘을 불어넣는 것은 오로지 결단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모든

법적 효력의 궁극적인 법적 근거는 오로지 정치적 의지, 즉 결단에서 파악

할 수 있을 뿐이며, 정치적 의지 자체가 법을 창조한다고 한다. “법은 법

률이고, 법률은 법을 둘러싼 다툼에 대해 결단을 내리는 명령이다.”47) 하

지만 오로지 결단만이 무엇이 법적으로 정당하고 무엇이 법적으로 오류인

지를 규정한다면 곧바로 누가 결단을 내리고 누가 해석을 하는가라는 핵심

적인 물음이 제기된다. 그 때문에 법이론과 정치이론의 핵심문제는 도덕적

또는 법적 명령의 내용적 규범성이 아니라, 최종적인 결정기관에 대한 형

식적인 물음, 즉 주권과 정치적 지배에 관한 형식적 문제가 된다.48) 그에

따라 주권의 문제는 항상 각각의 경우에 결정기관과 지배기관의 문제일 뿐

이다. 왜냐하면 법규범 자체는 궁극적으로 누가 결단의 독점권을 보유하는

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법규범이 누

가 결정을 내리고 누가 법을 해석하는지에 대해 확정을 할 수는 있지만,

46) Carl Schmitt, Politische Theologie, S. 42.

47) Carl Schmitt, Über die drei Arten des rechtswissenschaftlichen Denkens, S. 25,

27.

48) Carl Schmitt, Der Begriff des Politischen, 1932(인용은 7. Aufl. 1996에 따름), S.

121 이하; ders., Carl Schmitt, Über die drei Arten des rechtswissenschaftlichen Denkens, S. 24 이하. 또한 이 문제를 국제법적 차원에서 논의하는 ders., Positionen und Begriffe im Kampf mit Weimar - Genf - Versailles, 1923-1939, 1940(인용은 3. Aufl. 1994에 따름), S. 50, 206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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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상태와 주권의 역설 - 아감벤의 칼 슈미트 해석에 대한 비판357

문제는 다시 무한대로 유예될 뿐이다. 왜냐하면 규율에 대한 규율에 대해

결단을 내리는 자는 누구인가를 다시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49) 헌법이 결

정권한을 확정해 놓을지라도 이 규범에 대한 규범의 적용 및 비적용 또는

바로 이 규범의 효력을 배제하는 문제에 대한 결단을 누가 내릴 것인가라

는 문제가 다시 등장한다. 그 때문에 슈미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결단이 갖는 독자적인 의미의 경우 결정 주체는 그 내용과는 별개로 독립 적인 의미를 갖는다. 법생활의 현실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결단을 내리는가이 다. 내용적 정당성의 문제와는 별개로 관할에 대한 물음이 제기된다. 결단의 주체와 결단의 내용 사이의 대립 그리고 주체가 갖는 독자적 의미야말로 법적 형식의 문제의 핵심이다.”50)

실증주의적 법사상의 순수한 규범주의는 개인과 무관한 일반적 규범의

완결성과 지배를 강조하는 반면, 결단주의적 법이론에서는 최종적인 결단

을 내리는 정치적 의지와 인간의 인간에 대한 지배가 관심의 중심에 서

있다. 누가 결단을 내리고 누가 해석을 하는가라는 형식적인 물음은 최종

적인 결단을 내리는 기관과 법적 힘을 가하는 해석을 하는 주체에 대한

물음으로서 슈미트 사유체계의 핵심을 구성한다.51) 즉 설령 세계가 단순한

기술적 법칙성에 의해 지배될지라도 최종적 결단기관이라는 요소는 결코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외관상 완벽하게 기술화된 세계에서조차도 정치

적 지배 또는 주권적 권력(인간을 지배하는 인간)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

고, 법질서 역시 이 숙명에 순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52)

49) Carl Schmitt, Politische Theologie, S. 34 이하.

50) Carl Schmitt, Politische Theologie, S. 46.

51) 이 점을 열정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Carl Schmitt, Der Begriff des Politischen, S.

  1. 홉스의 리바이어던에 대한 슈미트의 비판적 해석 역시 전적으로 이 측면에 집 중되어 있다. 이에 관해서는 ders., Der Leviathan in der Staatslehre des Thomas Hobbes. Sinn und Fehlschlag eines politischen Symbols, 1938(인용은 Neudruck 2003에 따름), S. 166-174 참고.

52) 이에 관해서는 슈미트의 국가이론과 결단주의를 기술적 지배와 국가의 해체의 관점

에서 재해석하고 있는 Thomas Vesting, Erosionen staatlicher Herrschaft. Zum Begriff des Politischen bei Carl Schmitt, AöR 117(1992), S. 4 이하; ders., Der permanente Revolution. Carl Schmitt und das Ende der Epoche der Staatlichke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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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법학 제47권(2016. 2) 358

3) 절대적 가치로서의 국가의 존립

정치적 통일성으로서의 국가가 법과 헌법의 선험적 조건이라면 국가의

정당성을 묻거나 법률의 궁극적인 정당성을 묻는 것은 불가능하다. 슈미트

로서는 그러한 정당화 절차는 존재할 수 없고,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국

가의 강제의 배후에 있는 내용적 정당성과 타당성을 찾으려는 것은 합리주

의일 뿐이고, 따라서 목적의 내용과 강제의 내용이 무엇인지 물을 것이 아

니라, 강제를 행사하는 자가 누구인지를 물어야 한다고 한다.53) 따라서 결

단주의는 통상의 법철학과 국가철학과는 달리 지배사회학적 관점, 즉 질서

를 수립하고 유지하는 사실상의 역학관계에 관한 인식을 취해야 한다고 주

장한다. “국가 또는 국가권력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한 국민

의 정치적 통일성으로서의 국가는 정치적인 것의 영역에 존재할 뿐, 정당

화와 합법성, 정당성 따위는 필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럴 능력도 없

다.”54)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 결단과 지배의 통일성으로서의 국가는 항상

긴장의 영역에서 행동한다고 한다. 이 영역에서는 힘과 권력만이 중요할

뿐이고 필요하다면 물리적 폭력을 행사해야 하고, 평화로운 투쟁은 무장투

쟁으로 대체된다는 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정치적 통일체는 규범의 정당성이나 유용성에 그 존재적 정당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에 정당성이 있다. 정치적 단위로서 존재하는 것은 법적으로 고찰해보면 그 자체 이미 존재할 가 치가 있다. 따라서 자기보존권은 모든 다른 논의의 전제조건이 되어야 한다. 모든 정치적 통일성은 무엇보다 그 존재를 유지하고자 한다(스피노자). 정치적 통일성은 그 존재와 완결성, 안전 및 헌법 등과 같이 존재를 위해 필요한 모든 실존적 가치를 보호한다.”55)

in: Andreas Göbel/Dirk van Laak/Ingeborg Villinger(Hrsg.), Metamorphosen des Politischen. Grundfragen politischer Einheitsbildung seit den 20er Jahren, 1995, S. 191 이하, 특히 195 이하 참고.

53) Carl Schmitt, Soziologie des Souveränitätsbegriffs und politische Theologie, in:

Melchior Palyi(Hrsg.), Hauptprobleme der Soziologie. Erinnerungsausgabe für Max Weber, Bd. II, 1923, S. 20. 이에 관해서는 또한 Reinhard Mehring, Carl Schmitt. Aufstieg und Fall, S. 124 이하도 참고.

54) Carl Schmitt, Verfassungslehre, S.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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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상태와 주권의 역설 - 아감벤의 칼 슈미트 해석에 대한 비판359

정치의 영역에서 힘과 권력은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서로 결합하거나

분리된다. 여기서 적과 동지, 즉 다른 편과 내편이 대립하고 적과 동지는

각자의 특수성을 유지하려고 한다. 따라서 정치적 통일성의 가치는 이 통

일성의 정당성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재생산하고 자신의 존립을 보장하

는 사실상의 능력이 중요하며, 특히 위기상황에서도 그러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슈미트는 스피노자를 원용하면서 정치의 영역

에서는 자기 스스로를 유지하고자 하는 존재의 내적 합리성이 있다고 한

다.56) 존재하는 모든 정치적 지배는 언제나 자기보존의 안정성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적 지배의 실체와 그 존재를 위해 결

코 포기할 수 없는 통합성, 안전 그리고 헌법(타자와 대립되는 자신의 것)

은 구체적인 상황에 비추어 반드시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서 결단을 통한

정치적 지배를 규정하는 핵심이 된다. 더 나아가 슈미트는 이 문제를 결코

사전에 보편타당한 규칙을 통해 규율할 수 없다고 한다. 국가의 지배는 그

존립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의 지배 영역 내부에서 발생하는 갈등이 적과

동지의 대립으로 비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주권은 최종적이

고 모든 것에 기준을 제시하는 결정기관으로 남아 있어야 하며, 다른 대립

하는 집단들이 극단적인 적대관계에 놓일 정도로 해체되는 것을 가로막아

야 한다. 이 점에서 정치적 지배의 통일성이 최고의 통일성인 이유는 그것

이 전지전능하게 명령을 내릴 수 있다거나 다른 통일성을 말살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최종적 단계에서 결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

서 슈미트는 주권의 본질은 법적으로 볼 때 강제나 지배의 독점이 아니라,

55) Carl Schmitt, Verfassungslehre, S. 22.

56) Carl Schmitt, Positionen und Begriffe im Kampf mit Weimar - Genf - Versailles,

1923-1939, S. 51. 국가의 존립의 절대성은 1934년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 전반을 관통하는 화두이기도 하다. 우리가 뒤에서 아감벤의 맥락에서 다루게 될 적/동지 (Freund/Feind)의 구별은 적어도 슈미트의 국가이론 또는 국가주의의 맥락에서는 부차적인 문제이다. 왜냐하면 슈미트처럼 국가의 실존적 결단과 자기주장을 절대시 하게 되면 이 구별은 거의 자동적으로 정치적인 것의 핵심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적/동지의 구별은 그 자체 독자적인 가치를 갖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국가의 존립만을 강조하는 슈미트의 입장의 필연적 결론에 해당한다. 이에 관해서 는 Hasso Hofmann, Legitimität gegen Legalität, S. 104 이하, 136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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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법학 제47권(2016. 2) 360

결단의 독점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하면서57) 다음과 같이 단언한다. “정치

적 지배의 통일성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개인과 사회집단들의 갈등에 대해

결단을 내릴 수 있고, 그리하여 하나의 질서, 즉 정상적인 상황이 성립하

게 된다.”58)

결론적으로 슈미트는 헌법의 적용과 법적용뿐만 아니라 법질서와 헌법

질서와 관련해서도 내용적 무차별(inhaltliche Indifferenz)을 핵심적인 요소

로 밝힌다. 즉 어떤 합리적 사고나 논리적 추론의 피안에 있는 비합리적

결단으로서 그 내용이 아니라, 오직 결단을 내리고 결단을 내릴 사실상의

힘을 갖추고 있다는 지점으로 모든 법이론과 국가이론을 수렴시키고 있

다.59) 이러한 무차별적 요소 때문에 법규범이나 정의규범으로부터 결정을

논리적으로 도출하거나 정당화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실질적 원

칙이 결여된 상태에서 단지 구체적 현실만이 각각의 정치적 지배의 형태에

따라 결정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그리하여 정치적 지배의 역량에 따라 법

과 헌법이 제정되고, 이러한 법제정의 근거는 원칙적으로 법이념이나 정의

이념이 아니다. “주권자의 의지는 자유롭고 주권자의 행위는 필연적으로

결단이다. 규범적으로 볼 때 결단은 무로부터 나온다.”60) 이는 슈미트에게

는 단순한 분석적 명제이다. 그에 따라 결단주의 이론의 핵심문제는 결단

과 해석의 주체가 누군가일 뿐이며, 정치적 지배권이 누구 또는 어떤 기관

에 자리 잡고 있는가의 문제일 뿐이다.

이렇게 볼 때 칼 슈미트는 모든 규범적 사슬로부터 벗어난 주권을 통해

정치적 통일체로서의 국가의 존립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을 국가이론의 최

대 과제로 삼으면서, 주권의 본질을 결단이 가장 현저하게 드러나는 예외

57) Carl Schmitt, Politische Theologie, S. 20.

58) Carl Schmitt, Positionen und Begriffe im Kampf mit Weimar - Genf - Versailles,

1923-1939, S. 141.

59) 이 점을 지적하고 있는 Karl-Heinz Ilting, Hobbes und die praktische Philosophie

der Neuzeit, Philosophisches Jahrbuch 72(1964), S. 96 이하; Peter Schneider, Ausnahmezustand und Norm, S. 206 이하 참고.

60) Karl-Heinz Ilting, Hobbes und die praktische Philosophie der Neuzeit, S.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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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상태와 주권의 역설 - 아감벤의 칼 슈미트 해석에 대한 비판361

상태로부터 도출하고자 한다. 이와 함께 결단이라는 비합리적이고 ‘주권적

인’ 폭력을 거쳐 예외상태의 존재 여부에 대한 궁극적 판단 및 이 상태를

극복하기 위한 조치가 취해진다고 본다. 이로써 ‘법과 폭력’이라는 고전적

인 법철학적 주제의 위상은 ‘법 대 폭력’이 아니라, ‘법에 내재하는 폭력’

으로 전환된다. 즉 폭력은 법의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법으로부터 배

제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법에 포함되어 있는 ‘구성적인 바깥konstitutives

Außen)’61) 또는 ‘포함된 배제된 제3자(eingeschlossene ausgeschlossene

Dritte)’62)이고, 더 나아가 이 구성적 타자가 법 안쪽에 언제나 함께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법의 운명을 결정하는 핵심적 구성부분이기도 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법에 내재하는 폭력 또는 법 자체의 폭력성에 대한 슈미

트의 이러한 통찰은 궁극적으로는 국가의 존립 자체를 지상명령으로 삼는

국가주의(Etatismus)의 극단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Ⅲ. 아감벤의 주권비판과 예외의 논리

아감벤의 국가이론은 푸코(M. Foucault)의 권력분석63)과 마찬가지로 고

전적 주권개념, 즉 계약론적 주권개념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아감벤의 국가이론은 그 비판적 요구와 목표에 비추어 볼 때 푸코의 권력

분석과는 합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미리 강조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61) 라클라우(Ernesto Laclau)와 무페(Chantal Mouffe)에 의해 발전된 이 개념에 관해

서는 Judith Butler, Körper von Gewicht. Die diskursiven Grenzen des Geschlechts, 1997, S. 259 이하 참고.

62) 이 개념에 관해서는 특히 Niklas Luhmann, Individuum, Individualität, Individualismus. in: Ders., Gesellschaftsstruktur und Semantik. Studien zur Wissenssoziologie der modernen Gesellschaft. Bd. 3., 1989, S. 199 이하 참고.

63) 이에 관해서는 푸코의 권력분석과 생명정치의 맥락에서 아감벤 이론을 검토하는

Philipp Sarasin, Agamben - oder doch Foucault?, Deutsche Zeitschrift für Philosophie 61(2003), S. 348 이하; Thomas Lemke, Die Regel der Ausnahme. Giorgio Agamben über Biopolitik und Souveränität. Deutsche Zeitschrift für Philosophie, 52(2004), S. 943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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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법학 제47권(2016. 2) 362

푸코는 고전적 주권개념을 극복하고 법을 시대착오적(anachronistisch)인 개

념으로 파악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던 반면, 아감벤은 주권적 권력을 역

사적 및 분석적 관점에서 결코 지나간 과거에 속하는 개념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감벤의 비판은 고전적 주권이념의 체계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주권의 국가이론적 토대를 재해석함으로써 주권적

국가가 실제로 기능하는 논리와 그 정치적 실현을 폭로하려는 데 있다. 다

시 말해 아감벤은 주권을 시대착오적 개념으로 보지 않는다.64) 오히려 아

감벤은 국가주권의 기능논리를 해석할 때 등장하는 문제점을 밝혀서 주권

이 작동하는 사실상의 정치적 논리를 재구성하고 이를 서술하고자 한다.

그 때문에 아감벤의 주권비판은 주권적 국가에 대한 고전적 개념을 재해석

하는 작업에서 출발한다. 결국 아감벤의 정치이론은 미시적 권력을 포함하

여 권력의 편재성을 폭로하려는 푸코와는 달리 처음부터 끝가지 국가를 중

심으로 전개되며, 이 점에서 기본적으로 고전적 주권이론과의 연결가능성

을 염두에 두고 있다.

  1. 주권비판 - 주권의 역설과 경계개념

주권에 대한 아감벤의 정치적 비판은 주권적 국가의 구성과 관철에 대

한 인식론적 분석에서 시작한다. 그의 주권비판의 논증 토대는 주권에 대

한 체계적 및 인식론적 분석이다. 아감벤에 따르면 주권의 핵심적 특성은

  • 여기서 아감벤은 명시적으로 슈미트를 원용한다65) - 주권이 예외상태와

64) 양자 사이의 이러한 결정적 차이점에 대해서는 Thomas Lemke, Die politische

Ökonomie des Lebens. Biopolitik und Rassismus bei Michel Foucault und Giorgio Agamben, in: Ulrich Böckling u.a.(Hrsg.), Disziplinen des Lebens. Zwischen Anthropologie, Literatur und Politik, 2004, S. 265 이하; ders., Biopolitik zur Einführung, 2007, S. 79 이하.

65) 아감벤의 슈미트 수용 전반에 관해서는 Eva Geulen, Giorgio Agamben zur

Einführung, S. 65 이하; Andrew Norris, The Exemplary Exception. Philosophical and Political Decisions in Girgio Agamben’s Homo Sacer, in: ders(Hrsg.), Politics, Metaphysics, and Death: Essay on Giorgio Agamben’s Homo Sacer, 2005, S. 262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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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상태와 주권의 역설 - 아감벤의 칼 슈미트 해석에 대한 비판363

법질서 전체의 유예 및 배제에 대해 결단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통해 법

질서의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바깥에 있다는 측면이다. 이와 함께 아감벤

은 슈미트의 주권이론을 푸코의 생명권력과 결합시킨다. 일단 아감벤은 슈

미트와 마찬가지로 주권이 법을 구성하고 보장하는 기능을 갖고 있으며,

동시에 법 전체를 유예할 수 있는 잠재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서 주권의

근원적 논리를 포착한다.66) 이 점에서 아감벤에게 주권은 본질적으로 양가

적(ambivalent)인 구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권은 아감벤에게 언제나 개념

적 역설로 드러난다.67) 이러한 결론은 이미 주권을 구성하는 계약론적 체

계 자체에 내재해 있다고 본다. 그 때문에 주권은 자연상태를 사회에 편입

시키는 것이고, 주권자의 절대적 권력을 정당화하는 것은 곧 자연상태와

폭력의 동일성이다.68) 또한 주권을 통해 자연상태(= 폭력)는 사회상태에서

도 지속된다. 주권자는 사회상태에서도 모든 것에 대한 자연적 권리를 보

존하고 있는 유일한 주체이기 때문이다.69) 그러므로 아감벤으로서는 사회

계약론처럼 주권적 국가의 구성을 오로지 질서와 법의 생산으로 이해할 수

없으며, 주권의 근원적 본질이 법의 생성이 아니라 법을 유예할 수 있는

지속적 가능성 및 예외상태를 선언할 수 있는 행정적 권력으로 파악하게

된다. 물론 계약론적 관점은 예외상태에서 결단을 내릴 가능성 역시 전적

66) 굳이 법학적 용어를 구사하자면 주권은 권한에 대한 의문이 있을 때 누가 권한을

갖고 있는지를 결정할 권한이라는 의미의 ‘권한의 권한(Kompetenzkompetenz)’이라 고 말할 수 있다.

67) 아감벤의 주권이론을 넘어 그의 저작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개념으로 볼 수 있는

‘역설’에 관해서는 무엇보다 Giorgio Agamben, Homo Sacer. Die souveräne Macht und das nackte Leben, 2002, S. 25 이하 참고. 또한 ‘주권의 역설’에 관한 입문적 분석을 탁월하게 보여주고 있는 Eva Geulen, Giorgio Agambens Souveranitatstheorie: Kontexte und Kritik, 독일어문화권연구 19(2010), 315면 이 하도 참고.

68) Giorgio Agamben, Homo Sacer, S. 46. 계약론적 주권이론, 즉 근대의 주권이론

전반의 역사에 관해서는 Dieter Grimm, Souveränität. Herkunft und Zukunft eines Schlüsselbegriffs, 2009, S. 35 이하 참고. 또한 주권 개념의 고전적 저작인 Hermann Heller, Die Souveränität, in: Gesammelte Schriften, Bd. 2, 1992, S. 115 이하도 참고.

69) Giorgio Agamben, e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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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법학 제47권(2016. 2) 364

으로 주권이 자연상태에 있던 개인들의 결합된 의지에 기인한다고 보게 된

다. 그러나 이러한 결단이 오로지 행정권력의 주체로서의 주권자에게 귀속

된다는 사실은 주권자가 개인들을 대표하고, 이로 인해 주권자의 권력이

개인들의 정치적 형성 의지에 우선하는 결과를 낳는다. 즉 주권자가 개인

들을 대표한다는 사실 자체가 공동체의 구조를 민주적으로 형성할 것인지

여부보다 논리적으로 우선하게 된다. 바로 이 측면에서 주권자의 본질적

역량은 - 아감벤에 따른다면 - 합법적인 질서구조를 형성하는 데 있는 것

이 아니라, 합법성이 지배할 것인지 아니면 특정한 영역, 특정한 공간에서

는 법질서 전체를 일시적 또는 지속적으로 유예하고 특정 집단, 특정 개인

을 법질서의 영역으로부터 완전히 배제할 것인지에 대한 결단을 내리는 데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아감벤이 의미하는 예외상태는 주권적 정치가 모든 합법적 형

식으로부터 벗어나 전적으로 사실적이고 집행적인 조치를 실현하는 영역에

위치한다.70) ‘자연과 법이 구별되지 않는 영역’으로서의 예외상태에 대해

결단을 내리는 주권적 권한은 법이 폭력이 되고 폭력이 법이 되는 위치이

다.71) 주권적 예외의 정치는 무제한적 우선권(prärogativs Gewalt)과 긴급

권(ius eminens)에서 표출된다.72) 그리고 법질서를 유예한 상태에서 개인은

그저 피조물, 즉 순수한 생물학적 존재로 축소된다. 사실상의 조치를 행사

하는 주권적 정치는 개인을 단순히 특정한 권리나 명확하게 정해진 법적

질서영역으로부터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합법적인 것의 영역 전체로부터

개인을 절대적으로 외재화하고, 이를 통해 법적 주체로서의 지위 자체를

박탈한다. 다시 말해 예외상태에서의 인간은 정상상태에 비해 축소된 범위

70) Giorgio Agamben, Homo Sacer, S. 37; ders., Ausnahmezustand, 2004, S. 38 이

하. 또한 예외상태의 개념사를 요약하고 있는 ders., The State of Exception, in: Andrew Norris(Hrsg.), Politics, Metaphysics, and Death, S. 284 이하도 참고.

71) Giorgio Agamben, Homo Sacer, S. 30.

72) 아감벤의 예외상태 이론을 이렇게 해석하는 Judith Butler, Gefährdetes Leben.

Politische Essays, 2005, S. 95. ‘우선권’ 개념은 특히 로크의 사회계약론에서 집행 권의 권한에 속하는 문제로 등장하고, 계약론의 한계를 둘러싸고 오랫동안 커다란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에 관해 간략하게는 Karin Glaser, Über legitime Herrschaft. Grundlagen der Legitimitästheorie, 2013, S. 60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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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상태와 주권의 역설 - 아감벤의 칼 슈미트 해석에 대한 비판365

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라는 속성 자체가 근원적으

로 부정된다. 이 점에서 예외상태에서 완전히 배제되는 것은 - 아렌트 식

으로 표현하자면 - 권리에 대한 권리(Recht auf Recht)73)이다. 법질서에

대한 주권적 유보를 통해 인간은 개별적 권리주체로서 주권자의 시야에 포

착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벌거벗은 생명(nuda vita)’으로서 주권자의 사실

상의 처분권에 내맡겨져 있는 존재에 불과하다. 아감벤의 ‘벌거벗은 생

명’74)이라는 개념에 따르면 벌거벗음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고 말해도 무방

하다. 주권적 예외를 통한 벌거벗은 생명이 바로 아감벤의 연작시리즈의

주인공인 호모 사케르(homo sacer)이다.75) 법사학적 관점에서 이 형상이

로마법상에 실재했는지 여부는 극히 의심스럽고,76) 따라서 생명정치의 역

사적 연속성을 주장하는 아감벤의 입장77)은 그 근거가 상당히 희박하다고

볼 수 있다.78) 하지만 적어도 아감벤에게는 호모 사케르의 역사적 실재 여

부는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왜냐하면 그의 관심은 근대의 국가이론에서

호모 사케르에 대한 체계적 구성과 그 의미에 지향되어 있을 뿐이기 때문

73) 아렌트의 이 핵심개념에 관해서는 무엇보다 Hannah Arendt, Elemente und

Ursprünge totaler Herschaft, 6. Aufl. 1998, S. 608 이하 참고.

74) 이 맥락에서 ‘벌거벗음’은 단순히 출생을 통해 얻게 된 자연적 생명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주권에 의해 외재화된 ‘정치적’ 의미의 벌거벗음을 의미한다. 아감벤 자신은 ‘벌거벗은 생명’이라는 용어가 갖고 있는 이 이중적 의미를 명확히 구별하지 않고 혼용해서 쓰고 있다. 이 점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는 Martin G. Weiß, Biopolitik, Souveränität und die Heiligkeit des nackten Lebens: Giorgio Agambens Grundgedanke, Phänomenologische Forschungen, 2003, S. 269 이하 참고.

75) Giorgio Agamben, Homo Sacer, S. 93. 노리스(Andrew Norris, The Exemplary

Exception, S. 270)는 아감벤이 ‘호모 사케르’의 벌거벗은 생명을 섬세하게 규정하 지 않는다고 비판하지만, 이는 옳지 않다. 비록 앞의 각주 74에서 지적한 혼동 가 능성이 존재하긴 하지만, 아감벤의 개념정의 자체는 충분히 구체화되어 있다. 물론 이 개념의 역사적 의미 또는 개념을 구사하는 맥락의 타당성은 별개의 문제이다.

76) 이와 관련해서는 ‘호모 사케르’가 역사적 신화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사실

을 법사학적으로 밝히고 있는 Rainer Maria Kiesow, Ius sacrum. Giorgio Agamben und das nackte Leben, Rechtsgeschichte 1/2002, S. 56 이하 참고.

77) Giorgio Agamben, Homo Sacer, S. 81-96.

78) 특히 근대적 의미의 생물학적 생명개념이 1800년경에 비로소 탄생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는 Thomas Lemke, Die Regel der Ausnahme, S. 957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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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법학 제47권(2016. 2) 366

이다. 즉 아감벤이 주장하는 호모 사케르의 역사적 일관성과 연속성이 과

연 타당한지는 별개의 문제영역에 속한다. 특히 ‘sacer’의 이중적 의미(성

스러운/저주받은)는 아감벤의 테제, 즉 인간은 주권자로부터 한편으로는 합

법적 질서 내에서의 잠재적 권리주체로(성스러운),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주권자가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저주받은, 즉 희생 제물로 바칠 수 없

고, 언제든지 죽일 수 있는) 피조물로서의 생명(예외상태에 있는 생물학적

물질)로 여겨질 수도 있다는 테제의 어원적 토대가 된다. 아감벤에게 주권

자와 벌거벗은 생명 사이의 관계구조의 핵심은 추방(Bann)이다.

“추방된 생명(삶)은 질서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이를 추 방하고 이로부터 떠난 자의 처분에 완전히 맡겨져 있다. 다시 말해 배제되면 서 동시에 포함되어 있으며, 떠나보냈으면서도 동시에 붙들려 있다.”79)

인간을 생물학적 물질로 포착하는 주권자의 지각은 아감벤의 주권이론

에 따르면 단순히 주권자의 다양한 지각방식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오

히려 호모 사케르라는 벌거벗은 생명은 주권자의 관점에서 보면 다른 모든

지각방식에 우선하는 근원적인 정치적 요소를 뜻한다.80) 아감벤이 보기에

주권적 권력의 진정한 실현형태이자 주권의 고유한 본질이 드러나는 예외

상태의 특수한 지위 자체는 이미 주권에 대한 계약론적 구성논리 자체로부

터 도출되는 필연적 결론이다. “자연상태는 사실 예외상태이고, 이 상태에

서 국가는 해체된 것으로 나타난다.”81) 아감벤은 주권의 역설 그리고 주권

자가 인간의 단순한 삶(bloßes Leben)에만 초점을 맞춘다는 사실이 곧 주

권자의 근원적이고 1차적인 활동이라고 한다. 주권을 무엇보다 법과 질서

를 수립하는 개념으로 여기는 것 자체는 계약이론의 오해이자 계약이론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라는 것이다. 즉 주권자를 통해 인간의 늑대로서의 속

성이 국가상태에서도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에82) 계약 또는 의사의 합치

79) Giorgio Agamben, Homo Sacer, S. 119.

80) Ebd., S. 100, 116.

81) Ebd., S. 118.

82) Ebd., S.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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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상태와 주권의 역설 - 아감벤의 칼 슈미트 해석에 대한 비판367

가 자연으로부터 국가로의 전환을 명확하게 표시하는 종국적인 정치행위로

이해하는 사고방식과 단호히 결별해야 한다고 본다.83) 이렇게 해서 아감벤

은 주권의 극단적 진정성, 즉 주권의 사실상의 본질은 결국 수용소(Lager)

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예외상태에서 실현되어 있다고 한다. “수용소의

문은 예외상태가 원칙이 되기 시작하면서 열린다.”84) 수용소 내에서는 사

실과 법을 구별할 수 없고 합법성과 비합법성에 대한 물음을 제기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완전한 호모 사케르가 된다. 이 수용소를 통해

주권의 논리는 지속성과 안정성을 갖게 된다. 근대 생명정치의 ‘패러다임’

으로서의 수용소85)는 지구라는 ‘행성의 노모스’86), 즉 지상의 기본질서가

되었다는 것이다.

체계적인 관점에서 볼 때 아감벤의 주권 개념은 법의 효력과 법질서의

유보 사이의 관계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아감벤의 재구성에 따르면

주권은 법의 효력에 대한 결단의 지점이자 동시에 법의 효력을 완전히 유

예하는 지점이다. 물론 주권의 내재적 경향은 항상 법질서를 유예하는 방

향으로 흐른다. 따라서 주권은 처음부터 경계개념(Grenzbegriff)87)으로 설

정되어 있다. 아감벤에게 예외와 모든 법의 유예라는 거의 자연상태에 가

까운 영역이 위치하는 것은 바로 주권이라는 ‘경계를 넘어선’ 영역이다. 따

라서 이 영역은 보편적-형식적 법과 이 법의 효력이 불가능한 영역으로 이

해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아감벤의 주권이론은 극도로 경계이론적 의미를

갖고 있고, 경계로서의 주권은 곧 법의 효력의 경계이자 질서의 한계를 뜻

한다는 의미에서 중대한 정치적 의미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

와 함께 아감벤의 주권비판은 명시적으로 주권구성의 계약론적 토대에 기

83) Ebd., S. 119, 133 이하.

84) Giorgio Agamben, Mittel ohne Zweck. Noten zur Politik, 2006, S. 44. ‘수용소’에

관해서는 아래의 III. 3에서 더 자세히 서술한다.

85) Giorgio Agamben, Homo Sacer, S. 125.

86) Ebd., S. 186; ders., Ausnahmezustand, S. 8 이하, 38 이하.

87) 아감벤이 지속적으로 현상과 개념의 ‘경계’를 의식하면서 이론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은 특히 Ersin Yildiz, Agambens Theorie des Ausnahmezustandes, in: Gerd Sebald/Michael Popp/Jan Weyand(Hrsg.), GrenzGänge - BorderCrossings. Kulturtheoretische Perspektiven, 2006, S. 92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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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법학 제47권(2016. 2) 368

초하고 있고, 자연상태와 사회상태라의 이분법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자연상태와 사회상태의 관계구조를 계약론과는 다른 방

식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 때문에 아감벤은 계약론적 구성과는 달리 자연과 사회 사이의 주권

적 경계를 사회 이전의 경계로 보는 것이 아니라, 법질서와 언제 어느 곳

에서나 얼마든지 다시 깨어날 수 있는 자연상태 사이의 경계로 본다. 자연

상태에서 구가하던 모든 것에 대한 권리는 주권자의 인격 속에 그대로 보

관되어 있고, 이는 예외상태에서 언제든지 부활할 수 있다. 이로써 아감벤

은 사회상태가 구성된 이후에도 자연상태가 부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묵시

적으로 전제하는 계약론을 훨씬 더 뛰어넘게 된다. 왜냐하면 계약론에서는

계약적 실험이 실패한 경우 개인들이 다시 자연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선

택권을 갖는다고 보는 반면, 아감벤의 경우에는 자연/사회의 경계가 단순

히 국가/비국가라는 경계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 자체에 이미

잠재적으로 언제든지 법질서를 예외의 영역으로부터 분리할 수 있다는 내

재적이고 유동적인 경계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법질서의 바깥쪽

경계는 예외상태를 통해 법질서 자체 안으로 통합되어 있다.

“자연상태와 예외상태는 단지 동일한 위상학적 과정의 두 측면일 뿐이다. 여기서 바깥쪽으로 전제되었던 것(자연상태)은 이제 안쪽(예외상태)에서 다시 등장하며 ... 주권적 권력은 바로 이 바깥쪽과 안쪽, 자연과 예외, 피시스와 노 모스의 분리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예외상태는 시공간적 파기 가 아니라, 복잡한 위상학적 형상으로서 이를 통해 예외와 원칙뿐만 아니라, 자연상태와 법, 바깥쪽과 안쪽이 서로 겹치게 된다.”88)

따라서 국가 이전 또는 국가 바깥을 확정하는 경계는 단순히 사회상태

로서의 국가질서가 타락한다는 가상의 경계가 아니라, 국가의 경계 내에서

실질적으로 구현될 수 있는 잠재성으로 지속된다. 따라서 사회상태에 내재

하는 자연상태가 실현되는 것은 자연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계약을 체결한

개인들의 결정이 아니라, 집행권을 가진 주권자의 결정에 기초한다. 더욱이

88) Giorgio Agamben, Homo Sacer, S.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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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상태와 주권의 역설 - 아감벤의 칼 슈미트 해석에 대한 비판369

주권자가 결정을 내린 상태는 자연적 자유가 지배하는 계약 이전의 자연상

태가 아니라, 잠재적 또는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주권자의 사실상의

조치권과 처분권에 내맡겨져 있는 상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외상태는 변

경된 제2의 자연상태로서 원래의 자연상태와는 전혀 달리 주권자에 의해

완벽하게 관리되는 상태이고, 이 상태에서 법을 제정하고 법을 유지하기

위한 권력을 장악한 주권자는 어떠한 침해도 받지 않고 법질서 전체를 유

보하고 배제할 수 있다. 따라서 - 아감벤의 논리에 따른다면 - 예외상태에

서도 법은 주권자의 인격 속에 내재하긴 하지만, 이러한 법의 실현은 어떤

규범논리적 연관성을 통해서가 아니라, 주권자의 관리(Verwaltung)와 단순

한 조치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 때문에 예외상태에서는 법률과 사실상의

행위는 서로 구별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상태는 법이 사실상의 조치와 엄

격히 구별되는 상태가 아니라, 일반적 법률과 특수한 행위가 서로 융합하

는 상태이다. 아감벤 자신은 이러한 관계를 경계영역의 ‘구별불가능성

(Ununterscheidbarkeit)’이라고 표현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법과 사실의 경계

자체를 삭제하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89)

아감벤이 말하는 주권과 경계를 이와 같이 자연상태/사회상태라는 고전

적 계약론의 구별에 비추어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이미 ‘호모 사케르’라는

예외적 존재 또는 예외상태의 벌거벗은 생명은 한편으로는 주권의 실질적

대상으로서, 다른 한편으로는 경계에 위치한 존재로 확정된다. 즉 주권은

호모 사케르를 ‘생산’하기 때문에 곧 주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주

권 →호모 사케르의 관계를 뒤집어 호모 사케르 →주권의 방향으로 고

찰해보면 아감벤이 제기한 예외와 배제의 논리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를 통해 주권/호모 사케르의 관계가 단순히 한 쪽이 다른 한쪽을 대상화

한다는 의미에 국한되지 않고, 양자가 생명정치를 매개로 삼아 ‘서로 맞물

려 있는’ 구조를 형성하고 있어서 쌍방적 구성과 상호적 내재화 관계에 있

음을 밝힐 수 있다.

  1. 예외와 배제 그리고 인권

89) 이에 관해서는 Eva Geulen, Giorgio Agamben zur Einführung, S. 77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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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법학 제47권(2016. 2) 370

아감벤의 주권이론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듯이 그의 사고는 주제의 측면

에서 볼 때 예외라는 현상과 및 예외와 정상(원칙)의 관계를 둘러싸고 전

개되고 있다. 즉 예외라는 가능성은 - 칼 슈미트에서와 마찬가지로 - 원칙

적 사례의 속성에 해당하고, 예외는 원칙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계기라는

것이 아감벤의 방법론적 전제이다. 이 점에서 푸코가 권력의 구체적 작용

방식과 권력의 효율성을 분석하는 데 집중한다면, 아감벤은 예외라는 현상

을 중심으로 권력의 잠재성을 포착하고자 한다. 푸코의 권력이론이 적극적

이고 활동적인 실행(Performanz)에 초점을 맞춘다면, 아감벤의 권력이론은

잠재성을 훨씬 더 중시한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90)

아감벤의 분석의 출발점은 특히 배제로서의 예외라는 현상이다. 권력을

통해 개인을 정치의 영역에 포섭하는 것은 외부에 대한 공간적 제한이라는

의미에서의 배제를 전제할 뿐만 아니라, 그 공간 내부에서도 구성원의 자

격에 대한 기준을 정함으로써도 배제가 이루어진다. 즉 구성원의 자격을

정하는 것은 곧 구성원에서 배제되는 자를 규정하기도 한다. 이는 근원적

인 법논리적 필연성에 해당한다.91) 이 점에서도 아감벤은 추방을 근원적인

정치적 관계라고 말하게 된다. 이처럼 정치의 필수불가결한 부분으로서의

배제에 관한 아감벤의 테제는 고전적 국가이론에서도 등장한다. 예를 들어

인권과 이성의 무조건적 절대성을 강조한 사상가인 칸트마저도 누군가를

법의 보호에서 배제된 자(exlex)로 규정할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다.92) 그

90) 이 지점에서 이미 아감벤의 슈미트 해석과 관련된 결정적 측면을 음미해볼 수 있

다. 즉 ‘잠재성’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발전시키는 아감벤(이에 관해서는 Giorgio Agamben, Homo Sacer, S. 50 이하)이 과연 슈미트의 ‘결단주의’까지도 그대로 이어 받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아감벤은 슈미트와 마찬가지로 예외가 원칙을 입증해주고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아감벤은 슈미트처럼 예외가 갖는 강력한 힘에 대한 신뢰보다는, 원칙에 대한 불신을 부각시키고, 이 점에서 규 범적 원칙에 내재하는 ‘어두운 측면’을 폭로하는 데 더 집중한다. ‘잠재성’이 갖는 이러한 측면에 대해서는 Eva Geulen, Giorgio Agamben zur Einführung, S. 48 이 하 참고.

91) Giorgio Agamben, Homo Sacer, S. 190.

92) Immanuel Kant, Metaphysik der Sitten, in: Kant Werke. Akademie-Textausgabe

Bd. 6, 1968, S.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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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상태와 주권의 역설 - 아감벤의 칼 슈미트 해석에 대한 비판371

때문에 아감벤으로서는 이 당연한 인식을 역사적으로 재구성하고 이 인식

이 갖고 있는 드라마틱한 함의를 명백히 밝히고자 한다.

주권 개념 자체와 마찬가지로 호모 사케르라는 개념 역시 법의 경계개

념이다. 또한 주권과 마찬가지로 ‘벌거벗은 생명’은 법률의 바깥에 있으면

서도 동시에 법률이 벌거벗은 생명을 구성한다. 정확히 보면 호모 사케르

라는 예외는 어떤 곳에 속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단순한 배제와 같지 않으

며 또한 그저 희귀하다는 의미도 아니다. 왜냐하면 호모 사케르는 법개념

이고, 단지 그 준거가 법 바깥에 있을 뿐이다(법 바깥에 있는 자로 규정하

는 법). 호모 사케르가 추방됨으로써 그는 법의 보호 바깥에 있지만 동시

에 그를 살해하는 것을 법적으로 허용함으로써 법의 대상이 된다. 이 점에

서 예외는 배제를 통한 포섭이라는 역설적 형식이고, 이 형식은 지속적으

로 현재화한다.

서구의 정치적 전통 전체를 관통하는 패러다임이라고 보는 구별을 아감

벤은 고대 그리스의 ‘조에(zoē)’와 ‘비오스(bios)’에 관한 정치적 차원과 언

어적 차원의 구별에서 찾는다.93) 비오스는 인간적 실존을, 조에는 자연적

생명을 뜻한다. 이는 ‘좋은 삶’과 ‘단순한 삶’의 차이에 해당한다. 아감벤

은 주권적 권력의 행사가 생명정치적 사회의 구성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전제하기 때문에 주권적 권력의 역사적 기원이 보댕(Jean Bodin)이

살던 후기 중세가 아니라, 이미 고대 로마에서부터 주권적 권력과 생명권

력 사이의 기초적 연결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결합의 연원은 아들

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아버지의 권리이며, 이 권리가 전체 제국

으로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생명은 죽음에 대한 무조건적 권력에 내맡겨

짐으로써만 비로소 정치화한다.”94) 바로 이 측면에서 오늘날 모든 인간은

잠재적 호모 사케르라는 아감벤의 주장95)을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아감

벤이 세계 전체가 오늘날 거대한 수용소가 되었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

고, 단지 생명정치적 성격까지 갖고 있는 주권적 국가의 구성원들이 궁극

93) Giorgio Agamben, Homo Sacer, S. 16 이하.

94) Ebd., S. 100.

95) Ebd., S.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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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법학 제47권(2016. 2) 372

적으로는 삶과 죽음에 대한 국가 권력의 처분에 내맡겨져 있다고 주장할

뿐이다.

호모 사케르의 존재는 사회를 생명정치적으로 구성함으로써 주권적 권

력을 투입하여 벌거벗은 생명을 분리하고 벌거벗은 생명을 인격화한다는

사실의 표현이다. 모든 정치적 의미를 박탈당한 채, 벌거벗은 생명은 주권

의 정반대 지점이자 목표점이 된다. 여기서 아감벤은 벌거벗은 생명을 근

원적인 생물학적 단위가 아니라, 그 자체 정치적인 과정의 결과로서, 다시

말해 생명의 정치적 차원을 정치적으로 삭제한 결과로서 파악한다.96) 그러

므로 벌거벗은 생명은 비오스를 파괴한 결과로서 인간을 동물적 존재에 근

접하게 만든 것이다. 법질서가 떠나버렸고(abandon) 그로 인해 아무런 형

벌도 두려워하지 않고 살해할 수 있는 생명의 벌거벗음인 셈이다. 따라서

벌거벗음은 사후적으로 성립하고, 배제된 것을 주권적 질서에 포섭하는 배

제의 소산이다. 즉 권리를 보장하는 법질서와 ‘관계를 맺지 않는 것으로

관계를 맺는’97) 방식이 곧 벌거벗은 생명이 된다. 다시 말해 벌거벗은 생

명은 조에/비오스의 구별에서 말하는 조에가 아니라, 그 자체 하나의 정치

적 형식으로서의 삶을 의미한다.

“주권은 살인을 저지르지 않고 죽일 수 있고 희생을 찬양할 필요 없이 죽일 수 있는 영역이며, 그래서 성스러운, 그러니까 제물로 바칠 수 없지만 죽일 수 있다. 즉 이 영역에 포함되어 있는 생명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벌거벗은 생명 의 생산은 주권의 근원적 활동에 해당한다.”98)

이렇게 볼 때 벌거벗은 생명은 이중적으로 정치에 복속되어 있다. 첫째,

96) 이 점에서 ‘벌거벗은 생명’은 ‘조에’와 일치하지 않는다. 이에 관한 지적은 Paul

Patton, Agamben and Foucault on Biopower and Biopolitics, in: Matthew Calraro/Steven DeCaroli(Hrsg.), Giorgio Agamben. Sovereignty & Life, 2007, S. 210 참고.

97) Giorgio Agamben, Homo Sacer, S. 92. 이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Oliver

Flügel-Martinsen, Giorgio Agambens Erkundungen der politischen Macht und das Denken der Souveränität, in: Daniel Loick(Hrsg.), Der Nomos der Moderne. Die politische Philosophie Giorgio Agambens, 2011, S. 28 이하 참고.

98) Giorgio Agamben, Homo Sacer, S.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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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상태와 주권의 역설 - 아감벤의 칼 슈미트 해석에 대한 비판373

법적으로 배제된 자로서 폴리스에 포함되고, 둘째 주권적 권력이 전혀 범

죄로서 처벌할 수 없는 상태에서 무제한적으로 주권적 권력에 내맡겨져 있

다.

이러한 역사적 서술의 타당성을 견지하기 위해 아감벤은 생명정치와 주

권에 관한 푸코의 분석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수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다. 특히 생명정치와 주권의 역사적 영향과 사실상의 작용방식과 관련된

푸코의 분석을 수정해야 한다. 문제는 푸코의 생명정치와 아감벤의 생명정

치 사이에는 명칭 이외에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푸코의 생명정치 개념은 18세기에 들어 생명과 관련된 통계가 통치의 핵

심적인 주제가 되었다는 특수한 통치방식을 의미하는 반면, 아감벤의 생명

정치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그저 인간의 생명이 정치의 준거영역에 포함되

었다는 의미일 뿐이기 때문이다.99) 이로 인해 주권이라는 개념 역시 그 윤

곽이 불분명하고 동시에 훨씬 더 포괄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아감벤의 주

권은 이제 생명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권과 통일성을 의미하는 개념이 된

다. 즉 주권 개념은 더 이상 중세 후기 이후의 근대 이후의 특정한 시기에

발생한 개념이 아니라, 사후적 관점에서 고대 로마에도 적용되고 더욱이

국가기관 이외의 다른 기관(의사, 경찰)에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생

명정치의 개념과 주권 개념을 확장함으로써 아감벤은 ‘권력에 대한 법적-

제도적 모델과 생명정치적 모델 사이의 은폐된 접점’을 밝혀서 생명정치적

규율이 곧 주권적 권력의 핵심을 형성한다는 사실을 밝히고자 한다.

“생명정치는 최소한 주권적 예외만큼 오래 된 현상이다. 근대국가가 생물학 적 생명을 국가의 계산의 중심에 위치지우면서 근대국가는 권력과 벌거벗은 생명을 연결시키는 비밀스러운 끈의 모습이 드러나게 만들었고 이렇게 해서 제국의 비밀(arcana imperii)의 시원에 연결되었다.”100)

아감벤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에서 조에는 비정치적인 것으로 폄하되었

다면 생명정치의 역사는 폴리스로부터 배제하는 포섭(ausschließende

99) 이에 관해 자세히는 Thomas Lemke, Die politische Ökonomie des Lebens, S. 265

이하 참고.

100) Giorgio Agamben, Homo Sacer, S.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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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법학 제47권(2016. 2) 374

Einschließung)이라는 역설적 형식을 통해 벌거벗은 생명을 정치화하면서

시작된 현상이다. 생명을 정치화하는 경향은 이미 수 세기 전부터 은밀하

게 작용하고 있었지만 아감벤은 이와 관련하여 결정적인 전환기가 있다고

전제한다. 즉 근대와 더불어 형성된 생명정치적 도구들은 서양의 정치적

전통 전체에 이미 자리 잡고 있던 배제과정을 확대하고 극단화화여 결국

예외상태라는 문제장소(Topos)가 성립하게 되었고, 이것은 더 이상 예외적

이 아니라, 원칙적이고 정상적으로 호모 사케르를 배제하고 말살할 수 있

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상당히 도발적으로 아감벤은 이러한 전환의 시점이

프랑스 인권선언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이 맥락에서 아감벤은 특히

출생을 뜻하는 라틴어 natio가 국민을 뜻하는 nation의 어원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프랑스혁명과 함께 국왕의 주권은 국민주권으로 전환되었지만,

이와 함께 누가 구체적으로 새로 수립된 국민주권의 구성원인가라는 물음

을 제기하게 되었다고 한다.101) 그리하여 국가가 그 정당성을 더 이상 신

이 아니라 인간으로부터 끌어올 수밖에 없다면, 한 국가의 시민이라는 사

실은 더 이상 그저 특정한 지역에 정주하고 있다는 사실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고, 그 의미의 핵심은 출생이라는 자연적 현상에 근거한다는 것이

다. 결국 국가의 국민인지 여부는 철학적, 정치적 기준이 아니라, 출생이라

는 생물학적 기준이 되는 셈이다. 이는 생명현상으로서의 육체를 법의 대

상으로 삼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통상 중세의 봉건적 왕정의 사슬로부

터 해방된 사건으로 기억되는 인신보호령(habeas corpus)에서도 시작되었

다고 한다.102) 개인의 육체가 권리의 담당자로 격상되었다는 사실은 권리

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 여부를 정치적 조건으로부터 해방시킨 시도로 볼

수도 있지만, 이와 동시에 인간의 생물학에 법이 개입하는 것을 더욱 강화

101) Ebd., S. 136 이하.

102) Ebd., S. 131 이하. 아감벤의 인권이론에 관한 간략한 설명으로는 Petra Wittig,

Die Herausforderung des liberalen Strafrechts durch die politische Philosophie Giorgio Agambens, in: Manfred Heinrich u.a.(Hrsg.), Strafrecht als Scientia Universalis. Festschrift für Claus Roxin zum 80. GT, Bd. 1, 2011, S. 118 이하 참고. 또한 아감벤의 ‘회의적’ 인권이론에 대한 비판으로는 Volker Heins, Der Ernstfall der Menschenrechte. Eine Kritik an Agamben, WestEnd 2(2005), S. 142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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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상태와 주권의 역설 - 아감벤의 칼 슈미트 해석에 대한 비판375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아감벤은 인간에게 주어져 있는 사

실, 즉 육체가 과거에는 법의 대상영역이 아니었지만 생명정치적 경향에

의해 육체를 배제할 위험이 증대하고, 그 때문에 인간의 생물학적 존재 자

체가 정치적으로 더욱 위험해졌다는 증거로 삼고자 한다. 다시 말해 인권

을 ‘발명’하기 이전에는 육체가 치명적인 배제(tödliche Ausschließung)라는

논리의 잠재성을 갖춘 국가로부터 숨을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았다는 것

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근대 국민국가는 국민과 출생 사이에 직접적인 표현관

계가 있다는 사실에 기초하고 있고, 따라서 생명정치의 영역에서 지속적으

로 배제 가능성을 생산한다는 것이 근대 정치사에 대한 아감벤의 진단이

고, 이러한 배제의 잠재성을 현실화하는 주체가 곧 주권이라고 말하게 된

다. 그 때문이 인간이 실제로 갖고 있는 다원성은 인간을 동질적인 국민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게 됨으로써 유예되고 제한되는 과정을 겪게 된다. 슈

미트를 의식하면서 아감벤은 모든 가치(Wert)가 동시에 그 반가치(Unwert)

까지 함께 정립한다고 지적한다. “모든 가치평가와 정치화는 필연적으로

정치적으로 중요한 생명이 중단되어 성스러운 인간, 즉 그를 제거하더라도

형벌을 받지 않는 어떤 경계선에 대해 새롭게 결단을 내리도록 만드는 것

같다.”103) 따라서 근대의 생명정치는 언제나 살 가치가 있는 생명과 살 가

치가 없는 생명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고, 이 물음에 대해서는 정치가 최종

적인 결단을 내린다는 것이다.

칼 맑스는 일찍이 부르주아 사회에서는 경찰활동을 통해 인간의 원자화

(Atomisierung)가 관철된다는 이유로 인권을 비판한 적이 있다. 맑스의 비

판은 무엇보다 정치공동체 내부의 영역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이에

반해 아감벤은 정치공동체가 규정하는 경계설정 자체가 그러한 원자화 또

는 주권적 폭력의 대상화를 주도한다고 비판한다. 이 점에서 아감벤은 맑

스의 비판을 보충하고 동시에 이 경계설정 자체의 폭력적 성격을 비판한

103) Giorgio Agamben, Homo Sacer, S. 148. 가치와 반가치의 상호제한적 관계에 관

한 슈미트의 입장은 Carl Schmitt, Tyrannei der Werte, 1960(인용은 3. Aufl. 2011에 따름)에서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에 관해 자세히는 Volker Neumann, Carl Schmitt als Jurist, S. 528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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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법학 제47권(2016. 2) 376

다. 물론 아감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제화를 더욱 강화하고, 배

제된 자들을 지속적으로 포섭하는 데에서 찾지 않는다. 즉 법을 통한 문제

해결을 거부한다. 오히려 인권의 개념을 정치공동체에 대한 귀속에 기초하

게 만드는 아렌트의 입장을 비판하면서, 국민국가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다

시 말해 그저 인간일 뿐인 개인의 인권은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 경우 법은 인간을 떠나버리고 그 때문에 인권개념은 역설적이게도 실제

로는 아무런 권리도 갖고 있지 못한 자들의 권리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난민들은 아무런 사회적, 정치적 청구권도 갖지 못한 채, 그저

인간적 도움에 의존할 뿐인 존재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단지 생명

일 뿐이고 객체의 지위를 갖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104) 따라서 국가가 없

는 자에게 인권은 결코 현실적인 보장책이 아니라, 단지 국가가 규율하는

빈곤프로그램의 객체일 뿐이다. 왜냐하면 인권선언을 통해 성문화된, 그저

인간일 따름이라는 추상적 벌거벗음을 무국적자는 그들에게 닥친 가장 커

다란 위험으로 여기기 때문이다.105)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않고 따라서 인권의 주체가 될 수 없는 삶의 형식

은 배제한다. 따라서 인권에의 호소는 순진할 따름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호소는 국민국가를 통해 그러한 삶의 형식을 끝없이 위협하는 기관인 국가

를 거꾸로 인권을 보호할 기관으로 삼기 때문이다. 이러한 호소는 또한 비

생산적이다. 왜냐하면 이는 인권의 제도화가 실제로 기능하는 방식을 은폐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예외(배제)가 비로소 법을 구성하는 것이라면 이

미 배제된 것을 법으로부터 다시 배제할 수 없다. 오히려 그 정반대로 현

재의 정치에 대한 자유주의적 비판자들이 정치적 및 규범적 시금석으로 삼

고 있는 인권은 아감벤의 눈에는 생명정치의 탄생과 직결되어 있고, 인간

의 실존에 대한 국가와 법의 총체적 장악과 결부되어 있다. 그 때문에 인

104) Giorgio Agamben, Homo Sacer, S. 142.

105) 이에 관해서는 Hannah Arendt, Elemente und Ursprünge totaler Herschaft, S.

  1. 또한 이 점에서 주권에 의한 인간의 ‘생명정치화’에 앞서 국가라는 보호장 치의 필요성에 초점을 맞추어 아감벤을 비판하는 입장으로는 Dieter Thomä, Der Herrenlose - Gegenfigur zu Agambens “homo sacer”, Deutsche Zeitschrift für Philosophie, 2004, S. 965 이하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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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상태와 주권의 역설 - 아감벤의 칼 슈미트 해석에 대한 비판377

권에 대한 요청을 충족할수록 또 다른 곤궁을 만들어낼 뿐이라는 것이 아

감벤의 결론이다.

  1. 예외와 ‘바깥을 끌어들이기’ 그리고 수용소

배제의 형식으로서의 예외 그리고 예외의 잠재성을 구현하고 있는 주권

의 논리에 대한 아감벤의 이론은 예외라는 법형식과 관련하여 또 다른 분

석차원을 제공한다. 이 차원 역시 시민민주주의의 탄생과 일치하는 측면이

라고 한다. 즉 주권의 행사를 위한 헌법적 전제조건을 마련하는 것과 동시

에 헌법의 경험적 준거영역을 밝힐 필요가 있게 되었다고 본다. 다시 말해

어떠한 인격들이 법에 복종하는가라는 국적의 문제뿐만 아니라, 법의 관할

영역 전반에 대한 일반적 개념정의에 대한 물음까지도 밝혀야 할 필요가

생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아감벤은 시민민주주의 질서 또는 통

상 민주적 헌법국가로 이해되는 법치국가질서가 성립되는 시점에 다시 주

권자의 권한에 대한 새로운 물음이 제기되었고, 물음의 ‘새로움’은 특히 헌

법이라는 전제조건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원칙을 확인해주는 예외 역

시 그 자체 (합헌성을 포함하는) 합법적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했다. 이 맥

락에서 아감벤은 근대적 혁명을 통해 쟁취한 시민의 권리가 위기 상황에서

는 혁명가들에게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했으며, 주권적 전권을 군사 지도

자에게 이양했던 역사적 경험을 상기시킨다.106) 아감벤의 주장에 따르면

중세에는 공공복리를 위해 법을 유예한다는 사고 자체가 없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근대의 예외상태가 민주적-혁명적 전통에서 탄생했지, 절대

주의적 전통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는 것이다.”107)

106) Giorgio Agamben, Ausnahmezustand, S. 36. 이에 관한 자세한 서술은 Johannes

Scheu, Giorgio Agamben: Überleben in der Leere, in: Stephan Moebius/Dirk Quadflieg, Kultur. Theorien der Gegenwart, 2010, S. 353 이하; Tilmann Reitz, Der Ausnahmezustand, in dem wir leben. Politische Ordnung und entgrenzte Verfügungsgewalt, in: Janine Böckelmann/Frank Meier(Hrsg.), Die gouvernementale Maschine. Zur politischen Philosophie Giorgio Agambens, 2007, S. 52 이하 참고.

107) Giorgio Agamben, Ausnahmezustand, S.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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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법학 제47권(2016. 2) 378

따라서 법과 권리에 대해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근대적 맥락에서 비로소

법률의 힘(Gesetzeskraft)이라는 개념도 숭고한 가치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법률의 힘이 갖고 있는 숭고함은 예외상태에서 법률을 완전히 제거

해버리고 오로지 법률 자체가 없는 법률의 아노미적 힘[이를 아감벤은 법

률의 힘(Gesetzeskraft)이라고 표현한다108)]만이 표출될 때에조차도 지속되

는 역설적 상황이 전개되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 헌법 질서 자체를 유보하

고 헌법을 파괴하는 사실상의 폭력마저도 여전히 법률의 힘의 표현으로 여

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법률의 바깥에 있는 폭력을 법률 안으로 내

재화(끌어들이기)하고 이를 법률의 본질적 속성으로 삼게 된 것은 예외상

태를 헌법의 한 구성부분으로 규정한다는 사실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다고 한다.

예외상태의 성문법제화를 통해 민주주의는 문제를 합법적으로 해결하고

자 시도했고, 이는 다시 주권의 원칙 및 주권의 역사에 내재하는 실질적

측면에 해당한다. 이 문제는 주권자와 주권적 질서의 바깥과의 관계에 대

한 물음 또는 이 바깥의 경계를 규정해야 한다는 요청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등장한다. 즉 주권자는 자신의 주권을 그저 자신의 의지에 기초하여 선언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위를 폭력과 승인에 기초하여 구성하며, 자신

의 바깥을 안으로 끌어들인다. 이 바깥을 끌어들이기는 근원적 권력찬탈이

라는 일회적 활동에 국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경계설정의 문제는

모든 상황에서 늘 다시 새롭게 제기되고 주권적 질서는 자신과 자신의 바

깥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문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권은 “자

신의 준거영역을 현실의 삶 속에서 창출해야 하고 이 준거를 정상화해야

한다.”109) 아감벤에 따르면 예외는 자신의 전지전능을 확인하는 가운데 법

질서에서 배제된 것(이처럼 바깥을 붙잡아 끌어들이는 것이 예외를 뜻하는

라틴어 ex-ceptio의 원래 의미이다110))을 주권과 결부시키려는 주권자의 시

108) Ebd., S. 48 이하. 이 특유의 용어사용법 및 그 의미에 관해서는 Daniel Loick,

Von der kraft zum Gesetzes. Studium, Spiel, Deaktivierung - drei Strategien zur Entsetzung der Rechtsgewalt, in: ders.(Hrsg.), Der Nomos der Moderne. Die politische Philosophie Giorgio Agambens, 2011, S. 194 이하 참고.

109) Giorgio Agamben, Homo Sacer, S.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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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상태와 주권의 역설 - 아감벤의 칼 슈미트 해석에 대한 비판379

도이다. 다시 말해 예외상태는 법률만으로는 예측할 수 없는 장래의 사건

이 우연성과 정치적 요구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사실상의 한계

를 내재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일종의 트릭인 셈이다. 이렇게 바깥을 안으

로 끌어들임으로써 예외, 즉 법적으로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을 규율

할 권한, 즉 – 슈미트 식으로 표현하면 - 질서(Ordnung)와 위치설정

(Ortung)의 연결이 이루어진다.111)

주권자는 언제든지 다시 복귀할 수 있다는 유보조건하에 스스로 예외로

부터 거리를 유지한다. 그 때문에 홉스가 말하는 자연상태는 예외상태로

전환된다. 당연히 이 예외상태는 계약을 통해 종결된 계약 이전의 상태가

아니라, 법률을 벗어나 있으면서 동시에 법률의 지배하에 있는 규범적 영

역이다. 그러므로 예외는 주권의 잠재성의 영역에 머물러 있고, 법률의 바

깥을 안으로 끌어들이면서 동시에 법률의 적용에서 벗어나는 ‘포섭하는 배

제’를 뜻한다.112) 이 점에서 아감벤은 ‘예외상태에 대해 결단을 내리는 자’

라는 슈미트의 주권개념을 단순히 주권을 제한하는 법률을 유예한다는 주

권적 의지의 결단만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오히려 예외상태와 주권은 ‘바

깥의 것을 노모스의 육체에 집어넣는 것, 즉 노모스에 영혼을 불어넣고 그

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본다.113) 다시 말해 생명을 법적으로 장악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감벤에게 주권은 법률이 생명과 관계를 맺고 생명

을 독특한 폐기를 통해 주권 속으로 끌어들이는 근원적 구조라고 한다. 따

110) Ebd., S. 37. 이에 관해서는 또한 Johannes Scheu, Giorgio Agamben: Überleben

in der Leere, S. 354의 서술도 참고.

111) Carl Schmitt, Der Nomos der Erde: im Völkerrecht des Ius Publicum

Europaeum, 1950(인용은 5. Aufl. 1997에 따름); Giorgio Agamben, Homo Sacer, S. 29. 질서와 위치설정의 관계에 대한 슈미트의 주장에 관한 간략한 설명으로는 Hasso Hofmann, Legitimität gegen Legalität, S. 211 참고.

112) Giorgio Agamben, Homo Sacer, S. 31. 이 개념에 관해서는 루만(Niklas

Luhmann)의 포섭/배제의 구별과 비교하는 가운데 아감벤의 입장을 설명하고 있 는 Sven Opitz, Ausnahme mit System. Niklas Luhmann und Giorgio Agamben an der Grenze zum Anderen des Rechts, Kritische Justiz 44(2010), S. 436 이하, 특히 438-440 참고.

113) Giorgio Agamben, Homo Sacer, S.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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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법학 제47권(2016. 2) 380

라서 예외상태에서 관철되는 폭력은 벤야민의 법제정적 폭력이나 법유지적

폭력114)이 아니다. 왜냐하면 법은 스스로를 유보함으로써만 자신을 유지하

기 때문이다. 예외의 폭력은 법을 유보하는 폭력인 것이다.

이와 같이 법률의 적용으로부터 배제함으로써 법률을 적용하는 법률의

역설적 잠재성은 다시 추방을 의미한다. 추방은 시간적 차원과 공간적 차

원을 갖는다. 즉 추방은 시간적 차원에서는 예외상태를, 공간적 차원에서는

벌거벗은 생명의 배제를 뜻한다. 예외라는 주제가 갖는 이 두 가지 차원은

모두 포섭하는 배제, 즉 법을 유보하는 폭력이라는 공통의 특성을 통해 서

로 겹치게 된다. 예외가 갖는 이 두 가지 논리의 핵심에서 아감벤은 대재

난의 잠재성, 즉 예외상태가 시간적으로 영구화하고 벌거벗은 생명의 배제

가 공간적으로 확대되는 가능성을 감지한다. 그리고 이러한 가능성이 실현

된 곳이 수용소라고 한다.

“수용소란 예외상태 - 즉 근대의 권력이 기초하고 있는 결단의 가능성 - 가 정상적인 것으로 실현되는 구조를 말한다.”115)

이 지점에서 예외상태의 구조적 논리에 관한 아감벤의 사고에 현시대를

진단하는 요소가 추가된다. 즉 아감벤은 세계화라는 조건하에서 서구 민주

주의는 국민과 출생 사이의 근본적인 균열을 메울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을

갈수록 상실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하나의 정치적 체계 내에서 더 이상

대표되지 못하는 사람들, 즉 호모 사케르의 숫자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

114) Walter Benjamin, Zur Kritik der Gewalt, in: ders., Gesammelte Schriften, Bd.

II-1, 1977, S. 179-203. 또한 이러한 개념들을 제시하는 벤야민의 법비판에 관한 간략한 소개로는 윤재왕・임철희, 「업무방해와 파업방해(I)」, 노동법포럼 16(2015), 300쪽 이하 참고.

115) Ebd., 179. ‘수용소’의 극단적 형식으로서의 ‘집중수용소(Konzentrationslager)’가

갖는 의미에 관해서는 Giorgio Agamben, Was von Auschwitz bleibt. Das Archiv und der Zeuge, 2003 및 이에 대한 개략적 서술과 비판인 Sibylle Schmidt, Für den Zeugen zeugen. Versuch über Agambens “Was von Auschwitz bleibt”, in: Janine Böckelmann/Frank Meier(Hrsg.), Die gouvernementale Maschine. Zur politischen Philosophie Giorgio Agambens, 2007, S. 90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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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상태와 주권의 역설 - 아감벤의 칼 슈미트 해석에 대한 비판381

다고 한다.116) 그리하여 호모 사케르의 배제가 공간적으로 실체화하고, 예

외상태가 원칙이 되면 결국 수용소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일시적으로 질서를 파기하는 것인 예외상태는 이제 단순한 삶 이 살고 있는 새롭고도 안정적인 공간질서가 되었고, 단순한 생명은 이제 갈 수록 질서 속에 편입되기 어렵게 되었다. 출생(단순한 생명)과 국민국가 사이 의 연관성이 점차 해체되는 것은 우리 시대의 정치가 직면하는 새로운 사실이 고, 우리가 수용소라고 부르는 것은 이러한 단절을 뜻한다.”117)

여기에 덧붙여 근대에는 예외의 위상학적(topologisch) 실질화가 생명정

치적 도구를 통해 실현될 수 있다고 한다. 즉 인간의 생명에 대한 장악을

완벽하게 만들어서 수용소는 집중수용소나 말살수용소(Konzentrations- und

Vernichtungslager)가 된다는 것이다.118) 이러한 수용소에서는 가장 기초적

인 생물학적 속성까지도 체계적으로 정치화하는 형식을 취하게 된다. 물론

여기서 생명정치라는 개념은 푸코가 생각하는 것처럼 생명을 생산적으로

상승시킨다는 의미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오히려 수용소에서 행해지는 생

명정치는 죽음의 정치(Thanatopolitik)일 뿐이다.119)

하지만 수용소는 단순히 주권적이고 생명정치의 차원에서 스스로를 관

철하는 국가의 결단의 표현이거나 주권적 전지전능을 극단화한 것이 아니

다. 오히려 수용소는 법과 법률을 유보한다는 주권적 의지마저도 더 이상

효력을 갖지 않는다는 특성을 갖고 있다. 이 맥락에서 아감벤은 제3제국에

서 유대인의 말살이 영도자의 명령이나 법률에 기초하여 수행된 것이 아니

116) “우리 모두는 잠재적인 호모 사케르이다(Giorgio Agamben, Homo Sacer, S.

124).” 이 명제의 경험적 설득력에 대한 비판으로는 Andreas Vasilache, Gibt es überhaupt homini sacri? Das nachte Leben zwischen Theorie und Empirie, in: Janine Böckelmann/Frank Meier(Hrsg.), Die gouvernementale Maschine. Zur politischen Philosophie Giorgio Agambens, 2007, S. 58 이하 참고.

117) Giorgio Agamben, Mittel ohne Zweck, S. 48. 같은 취지의 ders., Homo Sacer, S.

184 이하도 참고.

118) Ebd., S. 185.

119) 푸코의 생명정치와 아감벤의 생명정치 사이의 이러한 결정적 차이점에 관해서는

Thomas Lemke, Die Regel der Ausnahme, S. 959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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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법학 제47권(2016. 2) 382

라, 처음부터 순수한 경찰활동을 통해 구상되었고, 예외상태의 선포나 뉘른

베르크 법률을 통한 유태인의 국적박탈은 단지 그 전제조건이었을 뿐이라

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수용소는 합법적 활동의 표현이 아니라, 순전히 비

법적인 지속적 유대인말살의 표현이었고, 법은 오히려 자기 스스로를 박탈

함으로써 그러한 잔혹성에 길을 열어주었을 뿐이라고 한다.120) 이 점에서

‘포섭하는 배제’라는 아감벤의 테제는 바로 수용소에서 극명하게 그 타당

성이 드러난다. 왜냐하면 수용소를 통해 주권은 주권 스스로를 유보함으로

써 자신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주권은 법질서와 충돌할 필요 없

이 다른 기관으로 하여금 임시적으로 주권적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공간

을 마련해주는 셈이다. 예컨대 경찰이나 감시자 또는 의사와 같이 주권적

국가권력 이외의 다른 기관이 그리고 마침내는 다른 모든 인간들이 호모

사케르에 대해 주권자로 행동하고, 어떠한 형벌도 받지 않고서 호모 사케

르의 생사에 대해 결단을 내릴 수 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왜 감금이나 고문과 같은 조치가 권위적 독재에서 뿐만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에서도 자행될 수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국

민이라는 주권자는 어차피 직접 행동하지 못하고, 단지 자신들에 대한 법

적 보호를 유보하는 사실적인 주권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행동할 뿐이다.

이에 반해 법을 유보하는 폭력으로서의 주권자는 이를 통해 자기 자신까지

도 배제하게 되고, 자신의 의사를 집행하는 기관을 법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여 거꾸로 이 기관이 잠재적 호모 사케르들에 대해 특권적 지위를 누리

고 직접적으로 권리를 행사하게 한다. 이를 통해 그러한 폭력이 사적인 폭

력이 아니라, 국가의 폭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물론 집행권

은 예외상태에서 권력과 정당화를 확보하고 있고 다른 사적 행위자들에 비

해 상징적 및 실질적으로 특권을 향유한다. 그러나 수용소의 예외상태가

지속되고 정상적인 것이 되면 모든 인간은 법의 후퇴에 직면하는 잠재적

호모 사케르가 되고 예외는 예외로서의 성격을 상실하고 원칙이 되고 만

다. 이로써 예외와 원칙의 구별, 법과 사실의 구별, 포섭과 배제의 구별,

비오스와 조에의 구별은 갈수록 의미를 상실하고 이들 개념은 ‘더 이상 되

120) Giorgio Agamben, Mittel ohne Zweck, S. 101; ders., Homo Sacer, S. 177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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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상태와 주권의 역설 - 아감벤의 칼 슈미트 해석에 대한 비판383

돌릴 수 없는 구별불가능의 영역’으로 빠져든다는 것이다.121)

아감벤이 확인하고 있는 이러한 ‘구별불가능’의 테제는 곧바로 정치적

실천 또는 법질서의 발전적 형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

다. 왜냐하면 정치적 실천이나 법의 개정을 통해 현실을 변화시키려는 행

위 역시 모두 이 구별불가능의 영역에 흡수되어 있다면 법적, 정치적 실천

은 모든 전략적 의미를 상실한다. 그 때문에 아감벤의 이론은 언제나 존재

론적이고, 비역사적이다.122) 또한 바로 그 때문에 아감벤은 기존의 모든

정치형식과 법형식을 극복한 새로운 ‘생활형식’을 꿈꾸는 메시아니즘을 표

방한다.123) 물론 아감벤은 구별불가능을 현상학적 사실이 아니라, 형이상학

적 잠재성으로 이해한다. 즉 현재의 상태가 갖고 있는 구조적 잠재성을 밝

힘으로써 그러한 잠재성이 실질적으로 현재화할 수 있고, 따라서 특정한

조건하에서는 그러한 것이 반복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 점에서 아감벤의

사유는 단지 최악의 상태가 똑같이 반복된다는 점에 지향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상태의 구조적 전제조건에 대항하려는 시도이다. 다시 말해

그저 민주주의의 정상적인 상태를 복원하고 시민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만

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모든 질서형식을 극복하는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지 않고서는 모든 정치적 실천은 단지 피상적인 증상

에 대한 임시적 처방에 불과하다고 한다. 하지만 아감벤은 새로운 제도적

모델과 관련된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한 채, “결코 형식과 분리되지

않은 삶, 즉 단순한 삶과 같은 것을 고립시키고 분리시키는 것이 결코 가

능하지 않은 삶”124)과 같은 존재론적 개념을 제시하는 데 그치고 있다.

121) Ebd. S. 19.

122) 아감벤의 존재론적 성향 및 이에 대한 비판으로는 Thomas Lemke, Biopolitik zur

Einführung, S. 79 이하 참고.

123) 아감벤의 메시아니즘에 관한 짧은 지적으로는 Oliver Flügel-Martinsen, Giorgio

Agambens Erkundungen der politischen Macht und das Denken der Souveränität, S. 38 이하. 여기서 자세히 다룰 수 없는, 아감벤의 메시아니즘 또는 새로운 생활형식에 대한 열망은 Giorgio Agamben, Homo Sacer, S. 196-198에 간략한 형태로 표현되어 있다. 이 밖에도 ders., Mittel ohne Zweck, S. 13-20; ders., Die kommende Gemeinschaft, 2003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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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아감벤의 슈미트: 선택적 친화성?

다양한 학문분과 그리고 정치적으로 서로 합치할 수 없는 이질적인 이

론적 접근방법을 하나의 주제의식으로 결합시키고자 시도하는 아감벤의 서

술방식은 당연히 극히 복잡하고, 때로는 비약과 상상력이 난무하는 글쓰기

의 전형에 해당한다. 그 때문에 그의 서술에 대한 서술 역시 복잡성을 감

축하는 데 커다란 장애를 겪지 않을 수 없다. 다른 한편 아감벤 자신이 서

구의 역사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하나의 경향에 극단적으로 몰입한다는 사

실로 인해 너무 단순하게 복잡성을 감축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서구의 정치는 고대 이후 법으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어 인간을 ‘벌

거벗은 생명’으로 전락시키는 일관된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아감벤의

화두이다.

바로 이 화두의 설득력을 강화하기 위해 아감벤은 무엇보다 ‘예외’ 또는

‘바깥’이라는 현상이 ‘원칙’과 ‘안쪽’을 구성하고 있음을 밝히고, 특히 원칙

의 표현으로서의 법과 법의 예외로서의 폭력 사이의 관계를 일반적인 ‘원

칙과 예외’의 관계가 아니라, ‘원칙에 우선하는 예외’의 관계로 구성한다.

이 점에서 아감벤의 관심은 처음부터 예외에 집중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예외의 본질을 밝히기 위해 주권이라는 현상을 끌어들이

고, 법을 배제함으로써 인간을 단순한 생물학적 존재로 전락시키는 생명정

치의 화신으로 주권을 규정한다. 이 점에서 아감벤의 분석의 핵심적인 틀

은 예외 + 주권 + 생명정치라고 규정할 수 있고, 예외 및 주권 개념은 슈

미트로부터, 생명정치 개념은 푸코로부터 차용 또는 변용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 앞에서 지적했듯이 - 아감벤의 생명정치는 푸코의 생명정치

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다. 즉 생명을 창출하고 관리한다는 푸코의 생명

정치는 아감벤에게는 사실상 호모 사케르라는 형상으로 대표되는 죽음의

정치일 뿐이다. 이와는 달리 슈미트의 주권 이론과 예외상태 이론은 - 인

식관심의 방향의 극단적 차이를 제외한다면 - 아감벤의 이론 전체에서 주

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외관이 반드시 진

124) Giorgio Agamben, Mittel ohne Zweck, S.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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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상태와 주권의 역설 - 아감벤의 칼 슈미트 해석에 대한 비판385

실에 부합하지는 않는다. 주권, 예외상태와 같은 동일한 용어를 사용하고

지속적으로 슈미트를 인용한다는 사실이 아감벤의 이론구성을 슈미트의 그

것에 일치한다고 판단할 필연적 이유는 없다. 이 점에서 몇 가지 측면에서

양자 사이의 미시적 및 거시적 차이점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1. 슈미트의 미래와 아감벤의 미래

앞의 서술에서 분명히 드러나듯이 슈미트와 아감벤은 모두 예외의 논

리로부터 정치적인 것을 사고한다는 점에서는 완벽하게 일치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를 통해 현실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이를 극복한 미래에 대한

구상의 측면에서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 슈미트는 법과 법 바깥의 폭력 사

이의 긴장관계라는 핵심적 영역에서 예외상태에 대한 결단을 내릴 권한의

형태로 주권적 권력을 강조함으로써 주권적 법을 강화하고 안정화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슈미트는 의회주의와 민주주의가 정치적 결단으로부터 멀

어지면서 국가가 중립화와 탈정치화의 길을 걷는 데 대해 강한 거부감을

표출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주권적 정치의 복원 및 결단을 내릴 수 있

는 권위의 재정립을 기획한다.125)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슈미트에게는 폭력

에 기초한 권위가 핵심적인 관심사항이다. 그 때문에 슈미트는 폭(권)력과

법의 밀접한 연관성을 수립하고 유지하는 길을 제시하고, 주권자가 정치적

인 것의 상실을 저지하고 삶의 형식으로서의 국가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

한다.126)

이와는 반대로 아감벤은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연속성을 진단할 때에는

슈미트로부터 이론적 자양분을 공급받고 있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법과

125) 이 점이 가장 강력하게 표출되어 있는 저작은 Carl Schmitt, Positionen und

Begriffe im Kampf mit Weimar - Genf - Versailles, 1923-1939이다. 이와 관련 해서는 슈미트의 법철학과 국가철학이 ‘국가의 몰락’에 대한 저항이라는 점을 섬 세하게 추적하고 있는 Thomas Vesting, Erosionen staatlicher Herrschaft. Zum Begriff des Politischen bei Carl Schmitt, AöR 117(1992), S. 4 이하; ders., Der permanente Revolution. Carl Schmitt und das Ende der Epoche der Staatlichkeit, S. 191 이하 참고.

126) 이에 관해서는 앞의 II. 2.3의 서술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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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법학 제47권(2016. 2) 386

국가의 폭력적인 순환관계로부터 탈피하기 위하여 무권력의 권력을 사고하

고 폭력과 법의 연관성을 파괴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역시 단순화해서 말

하자면, 아감벤의 미래는 폭력 없는 법 또는 폭력 없는 권력을 지향한

다.127) 그 때문에 아감벤은 - 슈미트와는 정반대로 - 법과 폭력의 연관성

을 해체하고, 국가를 포기하며 ‘정의가 지배하는 메시아의 식탁’128) 위에

앉을 수 있도록 만들고자 한다. 왜냐하면 법과 폭력의 연관성을 해체함으

로써 더 이상 국가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정치적이지도 않은 미래의 정치

적 영역이 펼쳐지고, 이러한 영역이 앞으로 도래할 정치적 사고의 핵심과

제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영역에서 비로소 행복하고 만족스러

운 인간의 삶이 전개될 수 있다고 기대한다. 즉 그러한 영역에서만 주권과

법이 더 이상 장악할 수 없는 진정한 주권적 주체로서의 ‘포기된 삶’이 자

리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129)

이처럼 슈미트는 국가의 권위를 회복하려는 반혁명주의의 전통 속에서

국가의 찬란한 과거가 지속되는 미래를 구상하는 반면, 아감벤의 미래는

슈미트의 이러한 미래구상이 숨을 거두는 바로 그 순간에서 시작된다. 그

렇다면 이 지점에서 아감벤이 왜 슈미트를 원용하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의

문을 제기할 수 있다. 물론 아감벤이 슈미트의 이론이 갖고 있는 분석적

설명력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반박할 수는 없다. 그보다

는 아감벤은 서양의 정치가 갖고 있는 부정성을 극단적으로 묘사하기 위

해, 극단주의자인 슈미트를 끌어들이고 있다고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아감벤의 전체 이론에 관통하고 있는 단순화 또는 단순한 복잡

성 감축 그리고 어떠한 역사적 구별도 거부하는 존재론화(Ontologisierung)

의 한 단면일 뿐, 슈미트를 원용해야 할 필연적 근거로 작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러한 거시적 차원의 근원적 차이와는 별개로 다시 개념의 내포

127) Giorgio Agamben, Mittel ohne Zweck, S. 108. ders., Ausnahmezustand, S. 77에

는 다음과 같은 ‘계시적’ 표현이 등장한다: “언젠가 인류는 마치 아이들이 더 이상 쓸모없는 물건을 가지고 놀면서, 그 물건의 원래의 사용방식을 회복하는 것이 아 니라, 이 물건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것처럼 법을 가지고 놀게 될 것이다.”

128) Giorgio Agamben, Das Offene. Der Mensch und das Tier, 2003, S. 101.

129) Giorgio Agamben, Mittel ohne Zweck, S. 108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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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상태와 주권의 역설 - 아감벤의 칼 슈미트 해석에 대한 비판387

(Intension)에 해당하는 미시적 차이도 드러난다.

  1. 정치적인 것의 개념

아감벤의 경우 정치적인 것의 핵심은 주체와 주체의 ‘좋은 삶’을 기획하

는 것이고, 그 때문에 그의 역사적 분석은 이러한 기획에 반하는 근원적인

구조를 밝혀내는 것이다.130) 이에 반해 슈미트의 경우는 주체가 아니라,

모든 처분과 조치의 토대가 되는 근원적인 질서로서의 노모스가 핵심을 차

지하며, 그 때문에 근원적 질서를 담당하는 국가에 우선권이 부여된다. 이

점에서 슈미트는 위치설정과 질서의 연관성을 명시적으로 모든 정치질서의

기초라고 한다.131) 다시 말해 정치적 질서는 슈미트에게 개개의 주체가 아

니라, 공간과 관련을 맺는다. 여기서 ‘공간(Raum)’은 단순히 영토를 얻는

다는 의미에서 법적-정치적 질서를 확정하고 영토의 위치를 정한다는 것이

아니라, 노모스로서의 공간을 확정하고 그 위치를 정한다는 뜻이다. 슈미트

는 노모스로서의 공간과 질서가 갖는 법률적 형식을 뚜렷하게 구별한다.

즉 슈미트에게 노모스는 근원적으로 법률에 앞서는 주권적 힘으로서 이 주

권적 힘은 공간을 구성하고 질서를 형성하는 근원적 행위라는 내적 척도로

부터 탄생한다. 이러한 근원적 행위라는 모델에서 주권자는 지금까지 자신

의 권력 바깥에 있던 공간도 예외상태에 대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자신

의 능력에 기초하여 정치적인 영역으로 포섭할 수 있다. 그리하여 주권자

는 지리학적 의미의 공간뿐만 아니라, 어떤 사안이나 문제영역이 정치적인

지 아니면 비정치적인지에 대해서도 결단을 내린다. 이처럼 주권적 권력이

행사될 수 있는 가능성을 탄력적으로 포착하는 것이야말로 국가의 개념은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전제한다는 슈미트의 유명한(또는 악명 높은) 선언

의 핵심이다.132) 국가와 정치적인 것은 더 이상 서로 직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분리되어 있으며, 따라서 정치적인 것은 예컨대 국가라는 고정된

130) 이에 관해서는 Giorgio Agamben, Homo Sacer, S. 47 이하 참고.

131) Carl Schmitt, Der Nomos der Erde, S. 36 이하.

132) Ebd., S. 37 이하,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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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법학 제47권(2016. 2) 388

문제영역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원칙적으로 모든 문제영역은 - 결합과

분리의 강도가 일정한 수준이 도달하면 - 언제든지 정치적인 것이 될 수

있다.133)

이와 같이 정치적인 것을 역동적이고 탄력적인 것으로 만들게 되면 그

영향은 매우 넓은 범위에 걸쳐 이루어지게 된다. 왜냐하면 이제 주권적 권

력의 관점에서 그때그때마다 사실상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정치적인

것에 연결시킬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슈미트는 명시적이고 체계

적으로 정치적인 것을 사실적인 것(현실적인 가능성,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삶의 힘)에 연결시키고, 그에 따라 무엇인가가 정치적인 것과 주권적 결단

및 주권적 처분으로부터 배제되는지 아니면 여기에 포함되는지와 같은 구

체적인 물음을 제기한다.134) 이처럼 정치적인 것이 사실적인 것을 지향135)

함으로써 정치가 설령 법적인 것과 다시 연결될지라도 그것은 결코 일정한

문제영역을 주권과 법의 관점에서 법적이고 객관적으로 조율하는 것이 아

니라, 단지 정치권력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것일 뿐이며, 인간의 생명 역시

정치권력이 장악할 대상이다.

아감벤은 아마도 슈미트의 이 출발점, 즉 정치적인 것의 절대성과 편재

성에 내재하고 있는 인간생명에 대한 장악을 슈미트보다 훨씬 더 단순화하

고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아감벤은 오늘날 주권적 권력행사가 생명정치

적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에 직면하여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 대한

슈미트 핵심적인 구별인 ‘적/동지’는 더 이상 의미가 없는 진부한 것이고,

따라서 이 구별은 ‘벌거벗은 생명/정치적 실존’의 구별로 대체되어야 한다

고 보기 때문이다.136) 하지만 아감벤이 그리스의 폴리스에서도 이미 효력

을 가졌다고 분석하는 벌거벗은 생명은 그 이후의 역사, 특히 근대에 들어

서양 정치의 근원적 개념이 되었다는 지적은 그 자체로서는 옳을지도 모르

133) ‘정치적인 것’이 갖는 이러한 포괄성과 전체성에 관해서는 무엇보다 Carl Schmitt,

Der Begriff des Politischen, S. 20, 27 참고.

134) Carl Schmitt, Politische Theologie, S. 22. 이와 관련해서는 구체적 삶에 지향된

‘상황의 법’에 관한 앞의 서술(II.2.1)도 참고.

135) 아감벤은 이 점을 하이데거에 연결시켜 서술하고 있다(Homo Sacer, S. 129 이하).

136) Giorgio Agamben, Homo Sacer, S.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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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상태와 주권의 역설 - 아감벤의 칼 슈미트 해석에 대한 비판389

지만, 적/동지의 구별을 통해 정치적인 것이 탄력성을 갖고 모든 문제영역

으로 확장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즉 슈미트의 적/동지의 구별은

생명에 대한 처분 또는 아감벤이 말하는 벌거벗은 생명의 배제는 물론이

고, 이보다 훨씬 더 포괄적인 범위로 정치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슈미

트로서는 정치적인 것의 확장과 탄력성은 주권에 대한 개념정의와 마찬가

지로 단지 겉으로만 법적-국가적 영역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일 뿐, 실

제로는 인간의 집단생활 전체를 적/동지의 구별을 통해 포섭하려는 총체적

이고 전체주의적인 구상이다. 따라서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을 단순히 생

명의 영역과 같은 극단적인 한계에서만 표출되는 것이고, 통상의 경우에는

질서와 위치 사이의 결합 및 규칙들의 복잡한 구조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

다는 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적과 동지의 구별에 기초한

‘정치적인 것’은 권력행사의 정치적 형식을 위한 모든 전제조건을 포함하

고 있고, 이 권력행사의 형식은 정치적인 것의 전통적인 경계를 넘어 삶의

모든 영역에 침투하여 질서와 위치의 연관성을 해체하는 폭발력을 갖고 있

기 때문이다.137) 다시 말해 이 개념이 표면상으로는 노모스라는 법적 개념

의 범위 내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으로는 생명과 정치적

실존 전체를 포괄하는 거대한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예컨대 정치적인 것

을 전제한다면 적을 말살하는 것뿐만 아니라, 적의 말살을 위해 주권적 국

가가 국민에게 생명을 희생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주권의 본질적 속성에 해

당한다. 결과적으로 적/동지의 구별은 진부하고, 이를 호모 사케르로 대표

되는 벌거벗은 생명과 정치적 실존의 구별로 대체해야 한다는 아감벤의 이

론은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에 표현된 절대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잠재

력을 과소평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아감벤은 벌거벗은 생명/정치적 실존이라는 구별 역시

슈미트가 말하는 적에 대한 개념정의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

과하고 있다. 왜냐하면 정치적인 것이 모든 것을 포함하고 따라서 인간의

생명까지도 주권적으로 장악할 수 있다는 식으로 개념정의한다면, 적은 더

137) 이 점이 적확하게 드러나 있는 Carl Schmitt, Politische Theologie, S. 22; ders.,

Der Begriff des Politischen, S. 46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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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법학 제47권(2016. 2) 390

이상 고전적-국가적 의미에서의 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인간 생

명에까지 개입하게 되기 때문이다. 주권적 권력은 더 이상 국가의 영토나

민족을 공간적으로 포함 또는 배제하는 것에 대한 결정에 그치지 않고, 모

든 문제를 관할하고 처리한다. 그리하여 내부의 적에 대한 결정 그리고 적

으로서의 타자, 즉 이방인이 정치적 통일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실존적 타

자인지에 대해 결정을 내리는 것 역시 주권자의 결단에 해당한다.138)

  1. 국가주의와 주체 중심의 정치

아감벤과 슈미트의 기본적 구별 사이의 또 다른 차이점은 아감벤은 ‘벌

거벗은 생명’이라는 개념을 통해 개인이라는 카테고리를 정치적 구별로 파

악하는 반면, 슈미트의 적/동지는 언제나 집단과 관련을 맺는다는 사실이

다. 이러한 차이는 다음과 같은 사정에 기인한다. 즉 정치적인 것에 대한

아감벤의 분석은 원칙적으로 - 근대의 형성과 함께 정치적인 것의 중심으

로 떠오른 - 주체에 지향되어 있고, 그 때문에 아감벤은 정치의 근원적 구

조를 서술하기 위해 개인을 관련지점으로 끌어들인다. 아감벤의 이러한 주

체 중심적 방향성은 예외상태와 주권적 권력행사의 핵심인 호모 사케르가

육체적 형태를 띠고 있고, 이 형태는 정치적인 것과 관련하여 전적으로 인

간에 지향된 관점을 구조로 삼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이러한 주체 중심의

관점은 아감벤의 이론이 보여주는 성과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 한계이기

도 하다. 즉 인간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그의 분석이 보여주고 있는 통찰

은 고전적인 정치이론들만으로는 결코 체계적으로 파악하지 못할 현재의

현상들을 포착할 수 있게 해준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고전적 의미의 정치적 체계나 그 역학관계와 관련하여 아감벤의 이론이 보

여주고 있는 혼란스러울 정도의 개념적 착종은 이론 자체를 개관하기 어렵

게 만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선택을 개인으로 축소시키는 관점에

138) 슈미트의 적/동지 구별의 이러한 극단성에 관해서는 Peter Schneider,

Ausnahmezustand und Norm, S. 235 이하; Hasso Hofmann, Legitimität und Legalität, S. 104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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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상태와 주권의 역설 - 아감벤의 칼 슈미트 해석에 대한 비판391

도 상당히 문제가 있다.139) 더욱이 아감벤의 이론에서 개인은 무엇보다 무

기력 또는 무력화의 관점에서 기획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더 그렇다. 즉

주체의 실천력과 주권에 대한 저항과 주체 중심의 주권구성(예컨대 국민주

권)의 가능성은 아감벤의 역사분석과 시대분석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실천의 불가능성을 단정하고, 완전히 다른 새로운 형식의 삶의 질

서를 기획하게 된다. 이 점에서 개인적 주체 중심의 사고는 주체의 상실과

전락으로 귀결된다.140)

이에 반해 적/동지라는 기본적 이분법에 대한 슈미트의 서술은 이중적

의미를 갖고 있다. 이 구별은 일단 고전적인 국가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그에 따라 집단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고 보

인다. 그렇지만 앞에서 말한 정치적인 것의 탄력성과 역동성을 배경으로

해서 보면, 적으로서의 타자의 성격에 대한 슈미트의 설명과 ‘존재적 실존

방식’에 대한 위협이라는 개념규정을 함께 고려해보면 주권자에 의해 규정

되는 예외상태가 이중의 차원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한 차원에서

는 고전적 국가의 의미에서 정치적 통일성에 대한 위협을 방어하기 위한

고전적 형식이 등장한다. 그 때문에 슈미트는 이 맥락에서 주권과 통일성

모두 정치적 통일성에 속하는 인간 존재의 개별성이 정치에 의해 규정되고

정치의 명령에 복속한다고 뜻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나 두 번

째 차원, 즉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서는 주권에 대한 개념정의에 따라 예외

상태가 원칙이 되고, 그 결과 정치적 통일성에 속하는 인간 존재의 모든

개별성이 정치적인 것에 의해 규정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주권적 권력이 인간의 생명을 장악한다는 것은 특히 1933년에 출간한 ‘국

가, 운동, 국민’141)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여기서 슈미트는 국가, 운동,

139) 이 비판에 관해 자세히는 Andreas Vasilache, Gibt es überhaupt homini sacri?

Das nachte Leben zwischen Theorie und Empirie, S. 63 이하; Sven Opitz, Ausnahme mit System. Niklas Luhmann und Giorgio Agamben an der Grenze zum Anderen des Rechts, S. 439; ders., An der Grenze des Rechts. Inklusion/Exklusion im Zeichen der Sicherheit, 2012, S. 234 이하 참고.

140) 이 점을 지적하고 있는 Eva Geulen, Giorgio Agamben zur Einführung, S. 19, 28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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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법학 제47권(2016. 2) 392

국민 모두를 영도자의 정치적 의지에 복속시킨다. 정치적인 것에 필수적인

인종적 동일성에 대한 개념정의와 함께 슈미트는 인종적 동일성이 존재적

이고 인종적으로 규정된 방식이며, 이 방식은 감정의 가장 심오하고 가장

무의식적인 곳까지 그리고 뇌의 가장 작은 선에까지 들어가며 인간의 모든

사고과정에 결정적으로 개입한다고 한다.142) 설령 이러한 표현이 나치에

적극 가담한 슈미트의 기회주의의 반영이라고 할지라도,143) 이 표현 자체

는 그가 그 이전에 표명했던, 정치적인 것에 대한 개념정의의 연장선상에

서 이해하는 데에는 구조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바로 이 측면에서도 슈미트와 아감벤의 정치적인 것의 근본구조에 대한

사고의 차이점을 파악할 수 있다. 주체에 집중된 벌거벗은 생명이라는 아

감벤의 개념은 일단 정치적인 것에 대한 현재의 생명정치적 체계의 표현으

로 볼 수 있고, 이 체계는 그 사이 원칙이 된 예외상태라고 본다. 이에 반

해 적/동지라는 슈미트의 특수한 정치적 구별이 갖는 이중적 의미는 정치

의 생명정치적 매트릭스의 시작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법적-제도

적 모델의 권력과의 관련성을 지속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슈미트가 1921년

의 ‘독재’에서 예외상태의 토대로 삼았던 법적 기초 역시 이러한 이중적

의미로 독해할 수 있다. 즉 한편으로는 주권적 폭력을 독재의 의미와 목적

(헌법질서 전체의 보장과 방어)에 부합하도록 법적으로 통제하는 것, 다시

말해 법을 실현하기 위해 법을 묵살하는 것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법

과 권력의 이와 같은 밀접한 연결, 즉 예외상태가 법질서에 통합되도록 하

는 연결 장치를 통해 주권적 권력의 정당성 기초를 더욱 강화하고, 이로써

주권적 권력이 더욱 강하게 정치적인 것으로 전환되고 정치적인 것의 구체

적 필연성과 결합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국가의 주권적 권력을 법질서에

수용함으로써 슈미트의 결단주의적 주권이 탄생하고, 이는 권력분립과 같

141) Carl Schmitt, Staat, Bewegung, Volk. Die Dreigliederung der politischen Einheit,

1933.

142) Ebd., S. 45.

143) 슈미트의 정치적 기회주의(Opportunismus) 및 반유대주의에 대한 인상적인 서술로

는 Raphael Gross, Carl Schmitt und Juden. Eine deutsche Rechtslehre, 2000, S. 48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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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상태와 주권의 역설 - 아감벤의 칼 슈미트 해석에 대한 비판393

은 법치국가적 보장책을 폐기하고 통치성의 영역에서 강력한 주권을 부활

시키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아감벤이 주권의 역설과 예외상태에 대한 분

석에서 끌어들이는 슈미트는 아감벤이 원용하는 정도를 훨씬 뛰어넘는 극

단적 국가주의의 표현이다. 그래서도 이 ‘위험한 정신’144)을 굳이 분석의

도구로 삼을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떨쳐버리기 어려운 것이다.

  1. 예외상태 - ‘결단’과 ‘구별불가능’

아감벤이 슈미트의 이론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예외상태는 ‘호모 사케르’

연작 시리즈의 한 권의 제목을 장식할 정도로 슈미트와의 연관성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에 해당한다. 물론 슈미트는 주권의 본질을 설명하

기 위해 예외상태에 골몰하며, 그 실질적 의미는 결단이라는 비합리적 활

동에 수렴되는 반면, 아감벤의 예외상태는 ‘구별불가능’의 영역이라는 측면

을 가장 중요한 표지로 삼는다. 즉 아감벤은 - 예외상태에서는 사실과 법

이 서로 합치하기 때문에 - 구별불가능으로 인해 성립하는 불확정성 지역

을 강조하면서, 이 지역이 공적인 법과 정치적 사실 사이에 있는 무인도

(Niemandsland)로서 법이 생명과 관련을 맺고 생명을 법에 끌어들이는 근

원적 장치(Dispositiv)라고 한다.145) 다시 말해 아감벤은 주권자에 의해 창

설된 구별불가능의 영역이 곧 주권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반해 슈

미트에게 주권의 본질은 예외상태에 대한 결단이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예외상태는 특수한 법적 형식요소인 결단을 절대적으로 순수하게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아감벤처럼 공간적으로 지향된 주권개념과 슈

미트처럼 결단에 지향된 주권개념 사이의 차이가 갖는 본질적 특성이 드러

난다. 무엇보다 다음과 같은 점을 확정할 필요가 있다. 즉 슈미트의 결단

개념 역시 어떤 불확정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와 관련하

여 - 앞에서(II)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서술했던 - ‘정치신학’의 다음과 같

144) 이 표현은 Jan-Werner Müller, Ein gefährliche Geist. Carl Schmitts Wirkung in

Europa, 2011에 따른 것이다.

145) Giorgio Agamben, Ausnahmezustand, S.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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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법학 제47권(2016. 2) 394

은 구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모든 구체적인 법적 결단은 내용적 무차별이라는 요소를 포함한다. 왜냐하 면 법적 추론은 결코 남김없이 추론의 대전제로부터 논리적으로 도출될 수 없 으며, 결단이 필연적이라는 사실은 그 자체 독자적인 규정적 요소로 남아 있 다.”146)

이러한 내용적 무차별을 통해 슈미트의 예외상태에서는 법규범에 대한

결단의 독점권으로서의 권위가 규범과 분리되고 법-질서라는 개념의 두 요

소(법/질서)가 각각 독자성을 갖는다는 것이 입증된다는 사실이 강조된다.

그렇긴 하지만 두 요소는 여전히 법적 인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 왜냐하면

법과 질서 모두 법적인 것의 영역 내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법과 구별되는 질서이든 질서와 구별되는 법이든 슈미트에게는 모두 포괄

적인 법(또는 지상의 기본질서로서의 노모스)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아감벤

이 강조하는 정치적-법적으로 불확정적인 지역 - 이는 주권적 결단에 의해

성립되고 그 불확정성 때문에 생명이 질서에 포함될 수도 있고 질서로부터

배제될 수도 있다 - 은 바로 이 맥락에 자리 잡고 있다. 그렇지만 슈미트

가 말하는 내용적으로 불확정적인, 즉 무차별적인 결단은 전적으로 주권자

의 권한 및 질서의 회복이라는 관점에 구속되어 있다.147) 따라서 내용적으

로 불확정적인 법-질서와 관련되는 결단은 전적으로 시간적 구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에 반해 아감벤은 법과 폭력의 무차별이라는 이름을 가진

무인도의 영역으로서의 공간을 예외상태로 해석한다. 더욱이 아감벤이 말

하는 내용적 무차별성은 확정된 방향성을 갖고 있다. 이 무차별은 언제나

결단의 위치 또는 결단의 대상인 인간의 생명과 관련을 맺기 때문이다. 또

한 이 위치는 끝없이 확대되고 지속되는 경향을 갖는다. 그러나 슈미트의

경우에는 이러한 시공간은 법질서의 수립 또는 회복을 예상하는 것이기 때

문에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 점에서도 아감벤과 슈미트의 정치이론은 뚜렷한 차이를 인식할 수

146) Carl Schmitt, Politische Theologie, S. 41.

147) Ebd., S. 19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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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상태와 주권의 역설 - 아감벤의 칼 슈미트 해석에 대한 비판395

있다. 슈미트의 시야는 주권자와 주권자의 권한의 관점에 고착되어 있고,

예외상태를 규범으로부터의 일탈 - 물론 현실적 삶의 힘이 관철되는 순간

적인 일탈 - 로 이해하는 반면,148) 아감벤은 주권적 결단으로 인해 영원한

예외상태가 지속되는 결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아감벤은 주권적

결단에 복종하는 주체를 정치적인 것의 위치로서 연구의 중심에 놓는 반

면, 슈미트는 주체는 단지 주권자의 선택으로서의 결단이 갖는 내용적 무

차별 속에 잠시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그러므로 - 약간 극단적으로 표현

하자면 - 슈미트는 예외상태의 법 없는 공간을 질서를 위해 극복하는 반

면, 아감벤은 이 공간을 주체의 공간으로 파악하여 정치적 일상의 정상적

상태로 파악한다.149)

슈미트와 아감벤 사이에 놓여 있는 이러한 거시적 및 미시적 차이는 아

감벤이 21세기에 일궈낸 대중적 성공에 가려 크게 부각되지 않는 것 같다.

실제로 아감벤이 표방하는 니힐리즘과 메시아니즘은 공산주의권의 몰락 이

후 전 세계를 지배하는 신자유주의가 덧씌운 음울한 세계에 대해 강력한

설득력과 미래에 대한 비전으로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150) 예컨대 중산

층의 파괴와 같은 서구 산업사회 전체가 겪고 있는 부정성은 사회적 배제

에 대한 위기감을 증폭시키고 그것이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필연적 소산

이고, 이를 극복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강화나 개선이 아니라, 이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생활형식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배경에서 ‘아감

벤’은 현실에 대한 비관적 진단을 위해 구입할 수 있는 대표적인 상품이

되었다. 물론 예외상태가 현실 민주주의 체제의 정상적인 실천의 패러다임

이 되고 있다는 경험적 인식 자체에 대해서는 경험적 반론을 제기하기 어

렵다. 관타나모 베이, 아부지랍, 최근의 난민 사태, 테러 이후의 프랑스 또

는 너무나도 간단히 국가 비상사태를 들먹이는 정치 현실 등은 근대의 민

148) Ebd., S. 22.

149) 이 점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는 Giorgio Agamben, Homo Sacer, S. 48 참고.

150) 아감벤의 대중적 ‘성공’과 시대적 배경에 관한 간략한 설명으로는 윤재왕, “포섭/

배제”- 새로운 법개념?: 아감벤 읽기 1, 고려법학 56(2010), 285쪽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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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법학 제47권(2016. 2) 396

주적 헌법국가가 예외로 상정했던 예외상태가 정상상태로 전도되었다는 아

감벤의 이론이 갖는 매력을 증폭시킨다.

그러나 아감벤의 법이론과 정치이론은 이러한 비관적 또는 비극적 현실

진단의 도구로 기획된 것이 아니다. 그의 이론의 핵심은 오히려 민주주의

와 독재를 구별할 수 없다는 강력한 테제이고, 슈미트는 이 테제를 정당화

하는 과정에서 소환된 ‘증인’인 셈이다. 그리고 이 증인의 증언은 법이 그

저 예외상태의 파생물에 불과하다는 반근대적 법개념이다. 물론 아감벤은

때때로 슈미트에 대해 비판적 반론을 제기하고 또한 슈미트의 주권개념이

갖고 있는 역설적 구조를 폭로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감벤이 슈미트로부터

물려받은 주권개념은 적어도 근대적 국민주권에 대한 완전한 오독의 소산

일 뿐이다. 다시 말해 예외상태에 대해 결단을 내리는 자라는 슈미트의 명

제는 근대적 주권개념의 근원적 의도를 그 정반대의 방향으로 타락시킨 것

이다. 왜냐하면 슈미트는 법의 제정이 아니라, 법의 폐기와 유예를 주권의

속성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적 주권개념은 기본적으로 입법의 기능

을 지칭한다.151) 다시 말해 모든 실정법의 원천이 곧 주권이고, 이런 의미

에서 국민주권 원칙은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핵심적 요소이다. 그러나 슈미

트는 주권에 대한 그의 개념정의를 통해 집행의 행위권한으로 주권개념을

전복하고, 이러한 행위권한은 예외상태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고 본다. 더

욱이 이러한 사실상의 폭력을 법의 개념에 내재화하고 있다. 다시 말해 슈

미트의 주권이론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주권의 역설화는 주권적 독재자가

설령 법 바깥에서 행동할지라도 법 안에 있다고 보게 된다. 이는 국민주권

개념을 완전히 전도시키고 절대적 국가주의로 주권의 의미를 타락시킨 것

일 뿐이다. 이러한 타락은 아감벤에게서도 재생산되고 있다. 아감벤 역시

국가가 법률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을 확립하는 극단적인 현상을 주권적 권

력의 발현형식으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151) 이 점에 대한 섬세한 논증으로는 Ingeborg Maus, Über Volkssouveränität, 2007,

S. 44 이하; dies, Das Verhältnis der Politikwissenschaft zur Rechtswissenschaft. Bemerkungen zu den Folgen politologischer Autarkie, in: Michael Becker/Ruth Zimmerling(Hrsg.), Politik und Recht, Politische Vierteljahresschrift Sonderheft 36(2006), S. 93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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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상태와 주권의 역설 - 아감벤의 칼 슈미트 해석에 대한 비판397

이렇게 볼 때, 슈미트의 개념을 수용하면서 법과 국가의 폐기를 주장하

는 좌파적 버전인 아감벤의 이론은 앞에서 지적한 거시적 및 미시적 차이

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그러한 차이를 인식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아감벤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슈미트의 이론에 가깝다.

물론 아감벤이 갖고 있는 법비판의 충동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하지만 모든 극단적 비판 또는 허무주의적 비판이 그렇듯이 아감벤의 극단

적 비판도 현재의 상태를 극복하기 위한 실천적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아

니라, 모든 실천이 결국은 현실의 단단한 벽에 부딪히고 말 것이라는 우울

한 예견과 함께 그저 순간적으로 벽 틈새에서 비치는 한 줄기 빛에 이끌

리는 미래가 올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만을 품은 채 주저앉아 있게 만든다.

법철학적 관점에서 ‘법과 정치’의 관계는 근본적인 문제이고, 법의 세계에

서 정치를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자리 잡게 할 것인지는 법과 법을 둘러

싼 투쟁의 역사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가 법을 압도하고, 정치

의 절대적 우위를 긍정하면서 심지어 정치를 법과 일치시키려는 이론을 구

성하는 슈미트와 아감벤의 법이론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설령 정치가

법을 압도하는 현실을 목도할지라도, 정치를 법을 통해 통제하려는 근대적

이상 자체를 곧바로 폐기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근대의 이상

을 표현한 고전적 사상가의 선언에 다른 말을 덧붙일 필요는 없을 것 같

다. 법과 정치의 본질에 대한 아감벤의 해석이 착각일 뿐이기를 바라는 희

망과 함께 말이다.

“법이 정치에 순응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정치는 언제나 법에 순응해야 한다.”152)

152) Immanuel Kant, Über ein vermeintes Recht aus Menschenliebe zu lügen, in:

Kant Werke. Akademie-Textausgabe Bd. 8, 1971, S. 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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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법학 제47권(2016. 2) 404

The paradox of ‘state of exception’ and ‘sovereignty’

: A critical approach to Giorgio Agamben’s reading of Carl

Schmitt

Prof. Dr. Zai-Wang Yoon*

153)

Giorgio Agamben’s work turns upon Sovereignty(souveräne Macht),

state of exception(Ausnahmezustand) and biopolitics(Biopolitik). In terms

of the former two concepts, his analysis is heavily indebted to Carl

Schmitt’s one. They, however, differ both macroscopically and

microscopically from each other. Accordingly, it needs to be thoroughly

considered how the Italian philosopher absorbs the Schmittian theoretical

resources. And this can lead us to evaluate the validity of his

interpretation.

In order to achieve this goal, Chapter Ⅱprovides the conceptual

significance of ‘sovereign power’ and ‘state of exception’ in the context

of Schmitt’s political philosophy(staatsphilosophischer Dezisionismus).

Chapter Ⅲ, along with the understanding of Homo Sacer project,

examines how Agamben traces and reformulates Carl Schmitt’s

conceptualization. As a consequence, we raise some critical questions

about Agamben’s achievement in Chapter Ⅳ.

Key Words: Giorgio Agamben, Carl Schmitt, Sovereignty, State of

exception, Homo sacer

  • School of Law, Korea Univers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