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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균, 국가와 법의 중립성에 관한 고찰 -동등한 존중으로서의 중립성 원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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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철학연구 제18권 제3호: 41~72
한국법철학회 2015

국가와 법의 중립성에 관한 고찰*1)

―동등한 존중으로서의 중립성 원리―

김도균**1)

<국문초록>

이 논문의 목표는 국가 중립성 원리의 위상, 성격, 대상영역을 해명하는 데

있다. 국가 중립성 원리의 요체는 시민 개인들의 삶의 계획 및 영위 방식과

관련해서, 이들이 가지는 종교관이나 정치관과 관련해서, 그리고 개인적 정체

성 및 집단적 정체성과 관련해서 국가가 중립적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요청이

다. 이 논문은 우선 국가 중립성 원리는 결과의 중립성이 아니라 근거의 중립

성 또는 정당화의 중립성으로 이해하는 편이 더 적절하며, 국가작용을 지도하

는 토대원리라기보다는 동등한 인간존엄성 원리를 실현하는 데 봉사하는 파생

적 원리라는 점을 밝힌다. 그리고 국가 중립성 원리를 차별금지 원리의 측면

에서, 그리고 공유된 근거에 기초한 국가작용 정당화 원리의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는 입장을 개진한다.

  • 이 논문은 2013년도 서울대학교 ‘인문·사회계열 학문전공교수 해외연수 지원 사 업’의 후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 결과물임. **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투고일자 2015년 11월 1일, 심사일자 2015년 12월 8일, 게재확정일자 2015년 1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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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문제 제기

  1. 국가의 종교 중립성, 법원과 검찰과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성, 대통령과

장관과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중앙은행과 공정거래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

회의 정치적 중립성을 많이들 말한다. 또 종교로부터의 중립성(헌법 제20조 제

2항), 공교육의 중립성,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이 헌법과 법률에서 규정되고

있기도 하다. 심지어 한 헌법학자는 정치자금과 관련된 법률의 근저에 국가

의 공공성과 중립성이라는 헌법원리가 놓여 있고, 이로부터 ‘자본으로부터의

국가 중립성’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이러한 생각들을 일반화해서 우리는 ‘국

가의 중립성’으로 표현해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헌법적 원리로서 중립성

을 한번 생각해 볼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1)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기성세대는 개인의 신념 문제에 관여할 권리를 가진

다고 오만하게 주장하는 국가를 겪어 왔다. 이런 역사적 맥락 때문에 국가

중립성 문제를 다루는 것은 큰 의미를 가지기도 할 것이다. 겉으로만, 그리고

형식적으로만 중립성의 요건을 충족하는 국가 작용 때문에, 중립성을 내세워

서 잘못된 기성질서를 수호하거나 지배를 강화하려는 국가 작용 때문에, 중

립성의 필요성과 가능성에 대하여 의심쩍어 하는 분위기가 만연하고는 있지

만, 국가 중립성은 여전히 호소력 있는 이념이라고 본다.

그런데 국가가 중립적이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국가 중립성이라는 개

념은 말이 되는 개념이며, 정합성을 갖는 개념인가? 또 도대체 실현가능한 이

념이기는 한 것일까? 국가와 법이 비중립적으로 형성되고 작동되는 현실 앞

에서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규범적(당위적) 요청은 가당키나 한 것일까? 중립

성의 요청이 그저 허구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국가와 법의 작용을 실제로

1) 자본으로부터의 국가 중립성은 정종섭, 헌법학원론(박영사, 2006), 727면 이하 참 조. 미국에서 헌법적 가치로서의 중립성 원리에 관해서는 H. Wechsler, “Toward Neutral Principles of Constitutional Law,” Harvard Law Review 73 (1959), 1-35면 참조. 독일 헌법질서에서 헌법원리로서의 중립성에 관한 연구로는 S. Huster, Die Ethische Neutralität des Staates. Eine Liberale Interpretation der Verfassung (Tübingen, 200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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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법의 중립성에 관한 고찰 43

향도하고 규제하고 평가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끔 가공할 수 있을까? 일반적

으로 ‘중립적’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수많은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 글은 그 의문들에 답하

려는 하나의 시도이다.

  1. 필자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국가 중립성은 국가 작용을 규제하는, 국가

작용이 지향해야 할, 토대원리(최상위 원리)는 아니다. 그런 점에서 제한된 힘

만을 가질 뿐이지만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원리이다. 중립성 원리는 정

의와 공동선을 실현하려는 국가의 적극적이고 역동적이고 다양한 작용들에

재갈을 물리려 하지는 않지만 국가의 공적 선택과 결정에, 그리고 그 수행

방식에 중요한 제약을 가한다. 국가 중립성 원리의 요체는 국가는 무엇이 바

람직하고 바람직하지 않은지, 무엇이 진리이고 진리가 아닌지를 결정할 권한

이 있다는 주장을 포기하라는 요청에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의 국가와 법의

중립성(이하 ‘국가 중립성’) 이념은 우리가 어떤 입장을 택하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가치이다.

  1. 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우선 국가 중립성의 이념을 실현

하려고 구상되고 실현된 제도들의 실제 결과가 어떠했는지를 간략하게 살펴

본 후 국가 중립성에 대한 비판론의 핵심을 제시한다(II). 다음으로 중립성 비

판론에 대한 자유주의 측의 대응을 고찰하고, 국가 중립성 원리의 의의를 되

살려서 동등한 존중이라는 관점에서 국가 중립성 원리를 재구성해 본다(III).

동등한 존중으로서의 중립성 원리를 다시 ‘차별금지로서의 중립성’과 ‘공통근

거로서의 중립성’이라는 두 갈래 하위원리로 나누어 살펴본 후(III-1), 각각의

하위원리의 내용을 제시하고 세밀한 기준들을 가다듬어 본다(III-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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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국가와 법의 중립성론 비판

  1. 자유주의 중립성론의 핵심 이념: 출발점

국가와 법의 중립성은 국가의 행위, 국가작용과 관련된 자유주의 특유의

정치도덕 원리이다. 개인의 삶에서 어떤 행위가 바람직하고 올바른 것인지

등과 관련된 도덕이 개인적 도덕이라면, 국가와 사회의 구성과 작동 방식에

관하여 바람직함과 올바름을 다루는 것은 정치도덕(political morality)이다.2)

로크, 칸트, 밀의 자유주의 전통 아래에서 논의되어 오던 국가 중립성 이념이

새로운 지형도 위에서 정식화되고 다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롤즈와 드워킨의

정치철학 이후라고 평가된다.3)

근대 입헌 민주주의 사회에서 공유되는 또는 공유될 것이라고 기대되는 합

의 중 가장 근본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국가작용 또는 공권력은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 집합체의 권력으로서 시민 각자가 평등한 몫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구성원인 시민들이—합당한 공적 규칙체계가 부여

하는 의무들을 이행하고 타인에게 부당한 피해를 주지 않는 한에서— 스스로

한사코 받아들이지 않는 삶을 살도록 국가가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입법, 사법, 정책결정 및 집행과 같은 국가작용은 종교 경전이나 특정한

철학적 교리의 권위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정당화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합의는 종교의 자유와 평등권과 같은 헌법 규정 속에 반영되

어 있기도 하다. 또 그 정신은 국가 행위는 바람직한 삶의 이상들과 관련해서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요청, 또는 국가 행위의 정당화는 시민 개인의 기본 신

조들과 관련해서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중립성의 요청으로 정식화된다.

2) J. Raz, The Morality of Freedom (Oxford, 1986), 3면: “political morality as the morality which governs political action.” 3) 국가 중립성 논의의 맥락과 사상사적 고찰은 S. Huster, 앞의 책(각주 1), 5면 이 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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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법의 중립성에 관한 고찰 45

  1. 중립성 개념의 분석

개념 분석은 의미론상의 작업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정의, 자유, 평등, 권

력, 민주주의 개념과 마찬가지로 국가 중립성 개념의 분석 역시 역사적으로

나 규범적으로나 진공상태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 이 정치적, 법적 개념들

은 태어나서 자라나게 된 배경과 토양을 갖는다. 그리고 사회적 실천 속에

서 생장해서 사람들의 인식과 해석이 덧붙여지고, 세월이 흐르면서 복합적

이고 중층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따라서 위 개념들은, 드워킨의 표현을 빌

리자면, 대체로 해석적 개념들(interpretive concepts)이다.4) 국가 중립성 개념

역시 이러한 속성을 가지므로, 국가 중립성이 사용되게 된 맥락, 심층적 문

제의식, 지향하는 목표를 고려해서 해명될 때 비로소 적절한 의미와 내용을

포착할 수 있다.5) 국가 중립성 이념이 왜, 어떤 점에서 중요한 것으로 인식

되고 평가되는지 등의 심층적 문제의식과 관심사를 명확하게 염두에 두어

야만 국가 중립성 개념이 제대로 해명될 것이다.

중립성은 그 자체가 고도로 문제가 많은 개념이자 대단히 모호한 개념이

다. 중립성은 많은 경우 분쟁당사자 어느 편도 들지 않는 것, 관여/개입하지

않는 것, 분쟁에 등을 돌리고 손을 씻는 것, 똑같이 대하는 것 등으로 이해된

다. 그 핵심은 어느 편도 들지 않고 거리를 두는 것, 분쟁/경쟁 당사자 어느

쪽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단 어느 쪽 편도 들지 않

는 것이 중립성의 개념소(槪念素)라고 할 수 있겠다.6) 가령 축구경기 심판을

생각해 보자. 심판의 역할은 양 당사자가 경기규칙을 똑같이 지키도록 하면

서 어느 쪽 편도 들지 않는다. 경기 당사자들의 실력, 체력, 운 등의 요인이

경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차단하지도 않는다. 이런 점에서 중립성은

소극적인 성격을 갖는다. 이러한 중립성을 소극적 중립성(negative neutrality)

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7)

4) 로널드 드워킨(박경신 옮김), 정의론(민음사, 2015), 260면 이하 참조. 5) J. Waldron, “Legislation and Moral Neutrality,” in: R. Goodin and A. Reeve (eds.), Liberal Neutrality (London, 1989), 69면. 6) P. Jones, “The Idea of the Neutral State,” in: R. Goodin and A. Reeve (eds.), 위의 책(각주 5), 9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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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법철학연구

그런데 중립성에는 경기 심판의 이미지 이상의 요소도 들어 있다. 이상적

인 재판과정을 떠올려보면, 분쟁 당사자의 부, 인종, 성별, 학력 등의 요인이

재판의 승패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끔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중립성의 핵

심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 재판의 승패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되는 요인들,

재판과정과 무관한 요인들을 적극적으로 ‘중립화’시키는 조건의 확립과 유지

가 중립성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어느 편을 편애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지

않음[불편부당(不偏不黨): ‘favouring neither one side nor the other’]이라는 의미와

함께 특정한 요인들이 재판과정과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끔 적극적으로

규제하는 의미도 중립성은 담고 있다. 이는 중립성의 적극적 측면으로 적극

적 중립성(positive neutrality)으로 불러 볼 수 있을 것이다.8)

이처럼 중립성은 상이한 맥락에서 상이한 형식으로 나타나며 상이한 의미

들을 가진다. 때로는 분쟁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

고, 때로는 중립성을 만족하기 위해서 분쟁의 규제에 적극적으로 간여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중립성 개념의 일반적 정의는 다음과

같이 풀이된다.

“분쟁에서 중립적이라는 것은 관련 당사자들을 동일한 정도로 도우거나 제한하

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9)

중립성 개념의 일반적 의미들은 국가 중립성에는 어떤 모습과 내용으로 나

타날까? 국가와 법의 중립성 이념은 다양하게 해석되어 왔지만, 대체로 국가

중립성은 맥락에 따라 다음과 같이 이해되고 있다.

“첫째, 바람직한 삶이 무엇인가에 관한 견해들과 입장들 중 어느 편을 들지 않음

을 의미한다. 둘째, ‘피부색’에 따라서 시민들을 구별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셋째, 국

7) P. Jones, 위의 논문(각주 6), 19면. 8) P. Jones, 위의 논문(각주 6), 20면. 9) A. Montefiore (ed.), Neutrality and Impartiality (Cambridge, 1975), 5면: “to be neutral in any conflict is to do one’s best to help or hinder the various parties concerned in an equal deg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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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법의 중립성에 관한 고찰 47

가는 특정한 민족혈통 집단을 편애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넷째, 국가가 특수이익집

단이나 지배계급 등의 도구가 아님을 의미한다.”10)

정치적 중립성은 아마도 네 번째의 의미를 가질 것이다. 국가 중립성 이념

과 관련해서 풀어야 할 쟁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누가 중립적이어야 하는

가? 둘째, 무엇에 대하여 중립적이어야 하는가? 셋째, 국가작용의 맥락에서

중립적이란 무엇을 의미하며, 어떤 중립성을 말하는 것일까?11)

  1. 국가 중립성의 제도들과 실제 결과

역사적으로 국가 중립성의 이념은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형식과 제도로

나타났다. 종교에 대한 국가의 중립성과 경제에 대한 불간섭이 대표적이고,

국가의 간섭으로부터의 자율성이 과학과 교육의 중립성으로 나타나기도 한

다. 공역무 수행의 정치적 중립성(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은 국가 중립성이 인

적 측면에서 제도화된 이념이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공적 의사결정의 영역과

과정이 복잡해지면서는 의사결정권한은 전문적 조직들, 가령 중앙은행, 공정

거래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등의 중립적 권력 및 규제기관

들(pouvoir neutre)이 등장하고 이들 조직의 전문적 중립성이 강조된다. 정치

영역에서의 중립성은 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 기회의 평등이라는 측면에서 선

거에서 정당 간의 기회평등으로 이해되고, 그런 이념이 실현될 수 있는 제도

들이 고안되고 정착되었다.12)

10) 국가 중립성의 문제군에 관해서는 P. Johnes, 위의 논문(각주 6), 9면 이하 참조. 또한 A. Sajó, “Concepts of Neutrality and the State,” in: R. Dworkin (ed.), From Liberal Values to Democratic Transition (Budapest and New York, 2004), 130면 이하 참조. 11) J. Waldron, 위의 논문(각주 5), 70면 참조. 12) 갈등당사자들로부터 독립해서 독자적인 기능과 영향력을 갖춘 중립적이고 중개 적인 권력(pouvoir neutre)에 관한 상세한 분석은 카를 슈미트(Carl Schmitt)가 이 미 1930년대에 수행한 바 있다. 초당파적이며 중립적이고 중재적인 권력으로서 국 가수반 또는 대통령을 이해하려는 견해를 슈미트는 제시하고 있다. 이에 관해서는 칼 슈미트(김효전 옮김), 헌법의 수호자(법문사, 2000), 183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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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법철학연구

이와 같은 중립성 제도들이 작동된 결과는 어떠한가? 국가 중립성의 가능성에

대하여 회의적인 사람들은 불간섭(non-interference)과 가치중립(non-commitment)

으로는 국가 중립성이 표방하고 지향하는 이념을 실현하지 못한다는 점이 역사

를 통해 충분히 밝혀졌다고 주장한다.13)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 중립성 실현을

위한 제도들이 현실에서 보이는 모습을 관찰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14)

국가의 소극적 중립성은 사적 영역의 행위자들 사이의 권력불평등에서 생

겨나는 비중립적 결과들에 정면으로 대처하기보다는 이를 묵인하기 때문에

기존질서의 유지를 강화할 뿐이어서 지배를 은폐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전

문적 중립성을 강조하면서 공적 결정의 영역에서 역동적인 정치적 요소를 제

거하기 때문에 공적 결정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어렵게 만들고 공적 결정을

내린 자의 민주적 책무를 묻지 못하게 만들어, 중립성이 지향하는 공정한 의

사결정을 왜곡한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 중립성 이념의 실현은 불가능하

다는 것이다.

자유주의 중립성의 내적 모순을 해부하고, 그 자기파멸적 결과를 예언한

대표적인 사상가로 카를 슈미트를 꼽을 수 있다. 슈미트는 바이마르 공화국

당시 헌법학자들 사이에서 풍미했던 자유주의 헌법적 중립성은 가치중립성을

그 본질로 한다고 파악하였다. 이 가치중립성은 형식적 다수결로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게 하므로, 민주적이고 중립적인 국가가 자신의 붕괴와 파멸로

이르는 결정까지 받아들여야 함을 함축하고 있다는 것이 슈미트 주장의 핵심

이다. 따라서 자유주의 국가 중립성의 자기모순과 기능부전은 국가 중립성

이념의 불가능성을 증거할 뿐이라는 것이다.15)

  1. 국가 중립성론에 대한 비판

(1) 국가 중립성 무용론

필자는 자유주의 국가 중립성 무용론을 다음의 세 흐름으로 갈래지어 보

13) 대표적인 경우가 국제법상 불간섭으로 인해 발생한 집단학살, 대규모 인종청소, 중대한 인권침해 등이다. 14) 이하의 내용은 A. Sajó, 위의 논문(각주 10), 113면 이하 참조. 15) C. Schmitt, Legalität und Legitimität (Berlin,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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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법의 중립성에 관한 고찰 49

고자 한다.

① 국가/법은 민주적 다수결에 의해서 운영되면 정당하므로 중립성 요청의 실현

여부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는 주장(민주주의는 중립성을 물리친다는 주장): 다수

지배주의 논변(a majoritarian argument)

② 국가/법은 진리인 가치들(시민덕목 형성, 공동선, 인간능력의 발현과 완성

등)에 입각하여 운영되거나 그것들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운영되면 정당하므로 중립

성 요청의 실현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는 주장(진리는 중립성을 물리친다는 주장):

진리 논변(a truth argument)

③ 국가와 법의 중립성 원리는 환상이거나 허위 이데올로기라는 주장(지배권력

은 중립성을 이용한다는 주장): 허구신화 논변(a ‘neutrality as a myth’ argument)

이러한 비판의 근저에 놓여 있는 생각은 자유주의 중립성 자체가 이미 편

향된 비중립적 규범적 전제들로부터 생겨났고, 또 그것들을 지향한다는 것이

다. 개인주의적 인간관/사회관을 전제로 한다느니, 윤리적 개인주의를 전제

로 하거나 지향한다느니 하는 비판들은 다 이런 생각을 공통되게 가지고 있

다. 자유주의 중립성은 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지나치게 중시하여 정치공동체

를 절차적 공화국으로 축소하고, 연대나 이웃사랑과 같은 덕목보다는 개인적

권리의 보호에 집착하는 공공철학(rights-obsessed liberalism)으로 왜소화되어

오히려 개인의 자주성 역량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라는 샌덜의 지

적도 비슷한 사유의 흐름 속에 있다.16)

70년대~80년대 높이 올려졌던 자유주의 중립성론은 이후 강력한 비판을

받게 된다. 오히려 국가 중립성 부정론이 자유주의 정치철학자들 내에서도

득세하기 시작하고 심지어는 ‘국가 중립성 이념에 대한 사체부검’이라는 용어

까지 등장할 정도가 되었다.17)

16) 마이클 샌델(안규남 옮김), 민주주의의 불만(동녘, 2012). 또한 동저자(이양수 옮 김), 정의의 한계(멜론, 2012) 참조. 17) R. Arneson, “Liberal neutrality on the good: an Autopsy,” in: S. Wall and G. Klosko (eds.), Perfectionism and Neutrality (Oxford, 2003), 191-208면 참조. 전북 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박준석 교수가 자유주의자 내부에서 중립성 이념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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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법철학연구

(2) 국가 중립성에 대한 새로운 비판론: ‘완전주의’ 정치철학

가치 다원주의에서 출발하면서도 국가 중립성 원리를 강력하게 부정하는

영국의 철학자 라즈(Raz)의 견해를 따라 국가 중립성론을 비판하는 ‘완전주

의’(perfectionism)의 논변을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18) 개인의 개성과 역량

을 완성시키는 국가작용을 개인의 자율성 이념에 의거하여 정당화하고 옹호

하는 완전주의의 정치철학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완전주의 정치원

리의 핵심 요청과 기본 사상만을 소묘하겠다.

라즈는 그의 저서 <자유의 도덕>(The Morality of Freedom)에서 가치 다원주

의와 국가 중립성 사이에 논리적 간극이 있음을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

한다.

“정치적 행위의 목표는 개인들이 자신들의 가치관을 발전시킬 수 있는 수단들,

또 개인들이 그 가치관을 선택하고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되는 수단들을 제공하는 것

이어야 한다. 그렇기에 이때 중립성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개인들이 타당한 가치관

들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해주고, 나쁜 가치관들이나 쓸데없는 가치관들을 추구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로 모든 정치적 행위의 목표이기 때문이다.”19)

이러한 완전주의 정치철학의 출발 전제는 가치 다원주의(value pluralism)

또는 도덕 다원주의(moral pluralism)이다.20) 이는 세 가지 주장으로 이루어

비판이 나오게 된 것은 어쩌면 80년대 확산된 적극적 우대조치 논쟁의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도 있다는 조언을 해주셨는데, 일리 있는 견해라고 생각한다. 귀중한 논평에 감사드린다. 18) J. Raz, 위의 책(각주 2), 특히 Ch. 5 “Neutral Political Concern” 부분 참조. 또한 S. Wall, Liberalism, Perfectionism, and Restraint (Cambridge, 1998). 해당 주제에 관한 논문 모음집으로 George Klosko and Steven Wall (eds.), 위의 책(각주 17) 참조. 19) J. Raz, 위의 책(각주 2), 133면: “Political action should be concerned with providing individuals with the means by which they can develop, which enable them to choose and attempt to realize their own conceptions of the good [life]. But there is nothing here which speaks for neutrality. For it is the goal of all political action to enable individuals to pursue valid conceptions of the good [life] and to discourage evil or empty o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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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법의 중립성에 관한 고찰 51

진다.21)

① ‘가치 다원성 명제’: 바람직한 삶의 실현에 기여하는 행위, 상태, 관계, 성격

등에 관련된 여러 좋은 가치들이 있고, 이것들은 상호 충돌한다.

② ‘통약불가능성 명제’: 상호 충돌하는 이 가치들 각각은 좋은 가치이지만 통약

불가능해서 하나의 공동선(a common good)이나 최고 가치로 환원되지 않는다.22)

③ ‘정답 부존재 가능성 명제’: 이 충돌하는 가치들은 통약불가능하기 때문에 충

돌하는 가치들 중 어느 편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좋은지를 합리적으로는 결정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동등하게 또는 통약불가능하게 가치 있는 인생관들과 이상들의 다양성이

라는 다원주의 사실로부터 ‘완전주의’는 국가는 나쁜 가치관보다는 좋은 가치

관을 선호하여 전자는 장려하고 후자는 억제하는 것이 허용된다는 명제를 이

끌어낸다.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이상들과 그럴 가치가 없는 이상들을 구

분하고 전자를 국가가 장려하는 것은 자유주의 정치도덕의 관점에서 보아도

정당하다는 입장, 즉 비중립적이고 적극적인 국가작용을 지지하는 입장을 라

즈는 ‘완전주의적 도덕 다원주의’(perfectionist moral pluralism)라고 명명하고

다음과 같이 정의하는데, 그 취지를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원문을 인용한

다.

“perfectionist moral pluralism, i.e. of pluralism of many forms of the good

[life] which are admitted to be so many valuable expressions of people’s nature,

20) 라즈의 도덕 다원주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Moral pluralism asserts the existence of a multitude of incompatible but morally valuable forms of life.”[J. Raz, 위의 책(각주 2), 133면 – 밑줄은 필자가 첨가]. 21) S. Wall, “Neutralism for Perfectionists: The Case of Restricted State Neutrality,” Ethics 120 (2010), 235면 참조. 22) 우정, 지식, 성취라는 세 가지 가치는 각각은 좋은 가치이지만, 가령 쾌락(즐거움) 이라는 최고 가치로 환원되지 않고, 쾌락이라는 가치에 의해 비교/약분되지도 않는 다. 기본적 가치들의 통약불가능성에 관해서는 J. Finnis, Natural Law and Natural Rights (Oxford, 198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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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법철학연구

but pluralism which allows that certain conceptions of the good [life] are

worthless and demeaning, and that political action may and should be taken to

eradicate or alt least curtail them.”23)

이러한 입장에 서서 라즈는 국가 중립성을 지향하는 정치철학은 현실에서

정치적 무관심으로 나아가게 할 뿐만 아니라 인간 문화의 수많은 소중한 측

면들이 살아남을 가능성을 제거하므로 자기파괴적이라고 비판한다.24) 완전주

의 명제를 단순하게 정식화하자면 다음과 같다.

“<완전주의 원리>: 국가는 객관적으로 더 나은 가치관들은 장려하고 객관적으

로 더 나쁜 가치관들은 제어하는 방향으로 행동하여야 한다[또는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허용된다].”25)

완전주의 정치철학은 후견주의 및 개입주의의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다.26)

흥미롭게도 최근 스티븐 월(Steven Wall)이 국가 중립성 이념이 완전주의 정치

철학 내에서도 수용될 수 있다는 견해를 제시하면서 자유주의 중립성 원리와

완전주의 중립성 원리(‘제한적 국가 중립성’ 원리)를 비교하고 있어27) 간략하게

소개하고, 국가 중립성 원리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옹호하는 필자의 논지를

뒷받침하는 논거로 활용하고자 한다.

월에 의하면, 자유주의 중립성 원리와 자신의 완전주의 중립성 원리는 다

음과 같이 정식화할 수 있다.

A. <자유주의 국가 중립성 원리>: 국가는 용납될 수 있는 가치관들에 대해서는

중립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용납될 수 있는 가치관들 사이에서 어느 하나를 다른

23) J. Raz, 앞의 책(각주 2), 133면. 24) J. Raz, 위의 책(각주 2), 162면. 25) F. Lovett and G. Whitfield, “Republicanism, Perfectionism, and Neutrality,” The Journal of Political Philosophy 23 (2015), 3면을 참조하여 간략하게 변형하였다. 26) S. Huster, 앞의 책(각주 1), 26면, 464면 이하 참조. 27) S. Wall, 앞의 논문(각주 21), 232-25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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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법의 중립성에 관한 고찰 53

것들에 비해서 선호하거나 그 가치관을 추구하는 개인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주려

는 의도를 가진 국가작용은 정당하지 못한 국가작용이다.(The state should be

neutral among permissible ideals of a good human life. It is illegitimate for the

state to intend to favor or promote any permissible ideal of a good human life

over any other permissible ideal of a good human life, or to give greater

assistance to those who pursue it.)28)

B. <완전주의 국가 중립성 원리>: 국가는 추구할 만한 의미가 있는 가치관들에

대해서는 중립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용납될 수 있는 가치관들 중에서 보다 나은

것을 선호하려는 의도를 가진 국가작용은 정당하다. (The state should be neutral

among worthy ideals of a good human life. It is legitimate for state to aim to

favor some permissible ideals of a good human life over others.)29)

국가 중립성 이념이 국가작용을 규제하는 원리로서 타당하고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월은 국가 중립성 원리의 적용 영역을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이상들’(worthy ideals of a good human life)로 범위를 좁힌다.30) 반면 자

유주의 국가 중립성의 적용 영역은 ‘용납될 수 있는 이상들’(permissible ideals

of a good human life)로 그 범위가 더 넓다. 용납될 수 있는 이상들이란 ‘타인

에게 해악을 끼치지 않고, 타인을 향해 짊어져야 하는 의무는 이행하는’ 이상

들로 이해해도 좋겠다.31) 완전주의 국가 중립성 원리에 남아 있는 후견주의

요소가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을 옥죄는 결과를 낳지 않는다는 점이 설득력

있게 해명할 때만 완전주의 국가 중립성의 기획이 성공할 듯싶다.32)

28) 여기서 용납될 수 있는 인생관/가치관은 민주주의 사회의 정의원리들에 부합하는 또는 이를 침해하지 않는 것들이다: “A permissible ideal of a good human life is an ideal that is consistent with the requirements of justice for a modern democratic society.” [S. Wall, 위의 논문(각주 21), 239면]. 29) S. Wall, 앞의 논문(각주 21), 238면. 30) “the recommended neutrality is not that between the worthy and the

worthless, but rather between the worthy and the worthy.”[S. Wall, 위의 논문(각 주 21), 242면]. 31) 이러한 관점은 J. Rawls, Political Liberalism (New York, 1996), 190면 이하 참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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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법철학연구

Ⅲ. 국가 중립성 원리의 재구성

  1. 국가 중립성의 지향점과 대상영역:

인생관/가치관/정체성에 대한 중립성

국가 중립성 원리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비판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국가 중

립성 원리의 성격, 위상, 대상영역 등이 명확하게 해명되었다. 필자는 국가

중립성의 대상영역(즉, 무엇과 관련해서 국가는 중립적이어야 하는가의 사안)을 인

생관(어떤 삶의 계획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관한 견해), 가치관(윤리/종

교/정치에 관한 견해), 정체성(개인적 정체성과 집단적 정체성)의 세 가지로 보고

자 한다. 그 핵심 논변을 간략하게 제시하면 아래와 같다.

(1) 국가 중립성과 가치중립성

중립성은 관계 개념이다. 어떤 행위가 그 자체로 중립적일 수는 없고, 중립

적이라고 평가될 때에는 항상 비교되는 양자 사이에서 중립적이라는 의미에

서이다.33) 국가 중립성 원리는 모든 것에 대해 국가의 행위가 중립적일 것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중립적일 것을 요구하는 주장과 중립적일 것을 요구하지

않는 주장 사이에서 중립적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34) 이러한 점에서 카를 슈

미트의 지적은 맞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국가 중립성 이념의 본질적 결함과

실현 불가능성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논거가 되는가?

국가는 시민을 동등한 지위를 갖는 존재로 대우해야 한다는 이념과 이를

부정하는 이념 사이에서 중립적일 수는 없다. 국가 중립성 이념이 태동하고

정치적, 사회적 실천 속에서 정치도덕적이고 법적 논변으로 사용되게 된 맥

락을 보자.35) 로크 시대에는 종교에 대한 국가 중립성, 밀의 시대에는 개인

32) 이러한 정당화의 시도는 S. Wall, 위의 논문(각주 21), 242면 이하 참조. 그리고 유보적인 입장은 윌 킴리카(장동진 외 옮김), 현대 정치철학의 이해(동명사, 2005), 344면 이하 참조. 33) J. Waldron, 앞의 논문(각주 5), 63면 이하 참조. 34) C. Schmitt, 앞의 책(각주 15), 28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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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법의 중립성에 관한 고찰 55

의 견해와 삶의 방식에 대한 국가 중립성, 롤즈와 드워킨 시대에는 바람직

한 삶에 대한 견해들(conceptions of the good life)36)에 대한 국가 중립성, 21

세기 우리의 시대에는 정체성들에 대한 국가 중립성이라는 점을 알게 된

다.37)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국가 중립성은 개인의 존중, 개인의 자유와 자기결

정의 존중이라는 배경 속에서 태어나 공적 논의에서 중요한 논변으로 제시되

었고 제도적으로 작동되고 있다는 점이다. 적어도 근대 사회 이후로는 개인

이 자신의 욕구, 삶의 계획과 전망에 대하여 스스로 성찰하고(,삭제)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꾸려가고자 노력하는 과정에 특별한 가치가 부여되어 왔다.

국가 중립성 이념이 깊은 관심을 받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가치 배경 하에서

이다. 월드론이 예리하게 지적하는 바와 같이, 국가 중립성 이념의 근저에 놓

여 있는 심층적 문제의식(‘deep concern and fear’)은 각 개인이 자신의 삶의

방식은 스스로 형성하고 꾸려 갈 수 있어야 한다는 가치의 중시, 국가/공동체

의 외부적 강제에 의해 그 형성과정이 강요되거나 왜곡될 위험성에 대한 끊

임없는 경계이다.38)

(2) 국가 중립성의 적용 영역: 인생관/가치관/정체성

도대체 어떤 조건에서 어떤 유형의 국가 비중립성이 용납될 수 없는 것일

까? 먼저 국가가 그에 대하여 중립적일 수 없는 대상인 가치와 원리들이 있

다. 각자가 모두 중요하다고 보고 보장되기를 원할 것이라고 분명히 기대할

수 있는 가치들, 가령 건강, 신체적 온전함, 자기존중, 부, 자유, 교육 등이

거기에 해당할 것이다.39) 또한 풀러가 말하는 ‘법에 내재하는 도덕적 가치

35) J. Waldron, 앞의 논문(각주 5), 75면 이하 참조. 36) 여기에는 개인의 선호나 취향과 삶의 스타일, 경력 선택과 같은 것을 향도하는 인생목표와 가치들, 무엇이 삶에서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를 평가하는 기준, 종 교 신앙, 윤리적 이상이 포함된다. 한 개인이 중요한 결정을 할 때, 그리고 즐길 것과 물리칠 것과 관련해서 중장기적인 일정을 짤 때 토대로서 사용할 삶의 전략이 나 계획도 포함된다. 이에 관해서는 J. Rawls, A Theory of Justice (Oxford, 1972), 395면 이하 참조. 37) K. Appiah, The Ethics of Identity (Princeton, 2005), 88면 이하 참조. 38) J. Waldron, 앞의 논문(각주 5), 8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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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법철학연구

들’(the internal morality of law)에 대해서도 국가는 중립적일 수 없을 것이

다.40) 그렇다면 어떤 유형의 가치들과 원리들이 국가 중립성 이념에 의해 국

가작용에서 고려되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배제되어야 할까?

국가 중립성은 국가는 공식적으로 개인적 인생관/가치관을 비교하여 어느

것이 더 낫고 못하다는 순위도 매기지 말고, 국가가 좋은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장려하고 나쁜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억제하는 짓도

하지 말라는 원리이다. 국가 중립성 이념이 탄생하고 실천되어 온 배경과 심

층적 문제의식을 고려하면 국가 중립성은 ‘모든’ 인생관/가치관/정체성도 아

니고, ‘추구할 의미가 있는’ 인생관/가치관/정체성도 아니며, ‘용납될 수 있는’

인생관/가치관/정체성에 대한 국가 중립성으로 이해하는 편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1. 결과 중립성, 의도 중립성, 근거 중립성

입법자가 인생관/가치관/정체성에 대하여 중립적이어야 한다고 할 때, 입

법자의 행위가 낳을 결과(효과)의 중립성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입법 이유

(근거)의 중립성을 말하는 것일까? 전자의 관점에서 자유주의 중립성을 이해

한다면, 입법자의 행위가 경쟁하는 인생관/가치관들에 미치는 효과(결과)가

균등할 때 중립성 요청은 충족된다.41)

그런데 결과의 측면에서 중립성(neutrality of results)을 요구하는 것은 불가

능할뿐더러 실제 국가 중립성의 사회적 실천을 보더라도 적절하지 않다. 동

39) 롤즈의 기본적 선 또는 가치들(primary goods)은 이러한 목록을 담은 전형적인 개념이라고 하겠다. 40) 론 풀러(박은정 옮김), 법의 도덕성(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5) 참조. 41) J. Raz, 위의 책(각주 2), 112면 이하 참조. 이러한 관점에서 자유주의 중립성 이 론을 비판하는 학자로는 P. Neal, Liberalism and its Discontents (New York, 1997), 20면 이하 참조. 결과 중립성에 관한 상세한 분석은 R. Goodin and A. Reeve, “Do neutral institutions add up to a neutral state,” R. Goodin and A. Reeve (eds.), 앞의 책(각주 5), 193면 이하 참조. 또한 A. Patten, “Liberal Neutrality: A Reinterpretation and Defense,” The Journal of Political Philosophy 20 (2012), 25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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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법의 중립성에 관한 고찰 57

성애자를 공직에서 배제하는 법률은 용납되기 어려운 비중립적 법률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공직담당자의 성적 지향성/정체성에 대하여 국가는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요구에 응하여 그러한 금지조치가 폐기되었다고 하자.

이성애자 공무원과 동성애자 공무원 간의 비율이 종전과는 달라지는 효과가

발생한다. 이 경우 입법상의 그러한 변화는 결과 측면에서의 중립성을 침해

한 것이겠지만, 그 입법적 변화가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예

는 결과-중립성으로 국가 중립성을 이해하는 것은 국가 중립성 원리의 탄생

배경이나 근본취지를 곡해하였다는 점을 잘 보여 준다.

그렇다면 국가 중립성 원리는 결과 측면이 아니라 근거 측면에서의 중립성

(neutrality of reasons)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42) 그런데 어떤 법률이나 정

책이 근거-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요청은 두 가지 방식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하나는 입법자가 정책결정자가 실제로 제안한 근거(실제 의도)와 관련해서 중

립성 요청이 적용될 수 있다. 의도 측면에서 중립성은 입법자가 법률을 제정

할 때의 동기(의도; 의사)가 중립적일 것을 요구한다. 다른 하나는 일정한 이

상적 조건 아래에서 제공될 수 있을 최선의 근거(가령 합리적 입법자라면 삼았

을 것으로 기대되는 입법 이유)와 관련해서 중립성 원리를 이해해 볼 수도 있다.

전자의 경우를 ‘실제 의도 측면에서의 중립성’(neutrality of intent/aim), 후자의

경우를 ‘정당화 측면에서의 중립성’(neutrality of justification)이라고 부를 수 있

을 것이다.43)

비중립적이고 편파적인 근거(non-neutral reasons)에 의거해서 국가의 강제

력이 시민에게 행사되어서는 안 된다는 밀의 주장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

될 수 있을 것이다.44) 가령 일요일 영업을 금지하는 법률이 안식일 신앙의

요청에 의거해서 그 신앙을 우대할 목적으로 제정되었다면, 그 목적은 해당

법률을 정당화하는 중립적 이유(근거)가 되지 못한다. 반면 상점 피고용인의

복지에 필요하다는 입법이유는 타당하며 중립적 근거가 된다.45) 이러한 경

42) 또한 J. Rawls, 앞의 책(각주 31), 193면. 43) 많은 학자들이 이렇게 구분하고 있다. 특히 A. Patten, 위의 논문(각주 41), 255면 참조. 또한 J. Rawls, 위의 책(각주 31), 193면. 44) 구체적인 사례를 들면서 이러한 취지의 논변을 펼치는 존 스튜어트 밀(서병훈 옮 김), 자유론(책세상, 2005), 158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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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법철학연구

우 입법의 결과가 여타의 세계관/가치관을 가진 시민들보다 안식일 신도인

시민들에게 더 큰 혜택을 준다고 하더라도 중립적 입법이라고 할만하다.46)

입법자의 실제 의도와 목표를 발견하거나 재현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국

가 중립성을 옹호하는 자유주의자들은 정당화 측면에서의 중립성 아래로

모여들게 된다.47)

  1. 국가 중립성 원리의 위상: 동등한 존중으로부터 파생된 원리

국가 중립성 원리는 국가작용을 규제하는 최고원리이자 토대원리인가 아

니면 파생적 원리인가?48) 어떤 학자들은 국가 중립성을 일종의 토대 원리로

파악하기도 한다.49) 중립성 원리가 정당한 국가작용의 최고원리가 되어야 한

다는 것이다. 반면 또 어떤 학자들은 중립성은 파생적 원리로 이해되어야 마

땅하다고 주장한다. 국가는 시민 모두를 동등한 지위를 갖는 존재로 대우해

야 한다는 상위 원리로부터 국가 중립성 원리가 파생된다는 것이다.50)

중립성을 토대원리로 보는 견해는 중립성은 윤리적 회의주의에 바탕을 둔

것이어서 자멸적이라는 카를 슈미트 식의 반론51)에 취약하다. 어떤 가치들의

경우에는 국가가 반드시 중립적으로 대하지 않아도 허용되거나 심지어 비중

45) 존 스튜어트 밀, 위의 책(각주 44), 166면 이하 참조. 46) 가령 도축금지법률은 동물을 종교예식에 바치는 종파에게는 분명히 불리한 결과 를 낳지만 경제적 또는 보건 상의 이유가 입법이유라면 정당화될 수 있다고 로크가 말할 때도 이와 유사한 사고방식을 표현하고 있다. J. Locke, Letter Concerning Toleration, edited by J.W. Gough (Oxford, 1976), 147-148면 참조. 47) 입법의도를 재구성하는 어려움에 관해서는 로널드 드워킨(장영민 옮김), 법의 제 국(아카넷, 2004), 441면 이하 참조. 48) 국가 중립성 원리의 위상을 이렇게 묻는 관점은 J. Kis, “State Neutrality”, M. Rosenfeld and A. Sajó (eds.), The Oxford Handbook of Comparative Constitutional Law (Oxford, 2012), 320면 참조. 49) 이러한 입장을 대표하는 학자로는 B. Ackerman, Social Justice in the Liberal State (New Haven, 1980) 참조. 50) 파생적 원리로 보는 견해로는 R. Dworkin, A Matter of Principle (Oxford, 1985), 205면 이하 참조. 51) C. Schmitt, 앞의 책(각주 15), 28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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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법의 중립성에 관한 고찰 59

립적일 것이 요구되기도 하지만, 또 어떤 가치들의 경우에는 국가가 반드시

중립적인 방식으로 대해야만 할 때도 있는데, 토대원리로서 중립성을 파악하

는 입장은 그런 경우를 분별해 낼 개념적 도구를 제시하지 못한다.52)

이러한 이유에서 필자는 국가 중립성이 파생적 지위를 갖는 원리라는 입장

을 취하여 동등한 관심과 존중의 원리를 국가 중립성 원리가 봉사하는 상위

원리로 보고자 한다. 시민들을 대우할 때, 그리고 시민들에게 공적 조치에 관

해 설명하고 왜, 어떤 근거에서 그런 조치가 내려져야만 했는지 해명할 때,

또한 시민들의 처지와 입장에 관하여 모종의 평가를 할 때, 국가는 모든 시민

에 대해 동등한 관심을 가져야 하고 동등한 존중을 보여야만 한다는 원리로

부터 국가 중립성은 나온다는 것이다.53) 동등한 존중의 원리로부터 파생되어

나온다는 점에서 국가 중립성을 ‘동등한 존중으로서의 국가 중립성’(neutrality

as equal respect)으로 표제화해 보자.54)

  1. 국가 중립성 원리의 두 갈래

자유주의 중립성 논쟁은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하나는 평등대우

원칙의 차원에서, 다른 하나는 공적 정당화(public justification)의 차원에서 접

근하는 것이다. 키이스는 국가 중립성에 접근하는 두 가지 갈래를 중립성 원

리의 두 하위원리로 포착하였는데, 필자는 그의 견해가 설득력이 있다고 생

각하여 그 발상을 수용하고자 한다. 평등대우 및 차별금지로서의 국가 중립

성 원리에 따르면, 시민들이 가지는 인생관/가치관/정체성에 관한 공식적 가

치평가에 기초하여 차별대우하는 법률이나 정책은 용납될 수 없는 비중립적

국가작용이다.55) 공적 정당화의 측면에서 포착된 국가 중립성 원리에 따르

면, 시민들이 공유하리라고 합당하게 기대할 수 없는 특정한 ‘포괄적 교리’에

입각한 근거 위에서 채택되고 시행되는 국가작용은 용납될 수 없는 비중립적

52) J. Kis, 위의 논문(각주 48), 320면. 53) R. Dworkin, 위의 책(각주 50), 205면. 54) 이렇게 국가 중립성을 이해하는 입장은 K. Appiah, 앞의 책(각주 37), 91면. 55) J. Kis, 앞의 논문(각주 48), 321면 참조. 이러한 관점에서 국가 중립성을 상세하 게 분석하는 견해는 S. Huster, 앞의 책(각주 1), 196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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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법철학연구

조치이다. 공적 이성(public reason)의 관점에서, 즉 공유될 것으로 합당하게

기대할 수 있는 근거(공통근거)의 관점에서 국가의 중립성을 바라보는 후기

롤즈의 입장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56)

차별금지로서의 중립성은 국가가 시민들을 ‘대우하는’ 방식과 비용(또는 혜

택)의 공정한 부과와 관련된 것으로, 공유되는 근거로서의 중립성은 국가가

시민들에게 자신의 공적 결정을 ‘설명하고’ 시민들의 처지와 입장(인생관/가치

관/정체성)에 관하여 국가가 ‘말하는’ 방식과 관련된 것으로 파악하는 키이스

의 견해는 이 양자의 속성을 잘 짚고 있다고 하겠다.57) 이하에서는 국가 중립

성의 두 하위원리를 설명하고 양자의 관계를 살펴보기로 한다.

(1) 평등대우로서의 중립성

평등대우 및 차별금지의 측면에서 국가 중립성을 바라보는 견해는 드워킨

에 의해서 아래와 같이 정식화되었다.

“형법상 허용되는 자유들까지 포함해서 사회적 자원들과 기회들이 분배될 때,

올바른 삶의 방식에 대한 우리의 견해가 공무원이나 동료 시민들이 생각하건대 무

시당함직 하다거나 잘못되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권리를 우리는 갖는

다.”58)

이 견해에 의하면, 국가 중립성 원리의 요체는 어떤 시민이 가지는 인생관

에 대해 국가가 공식적 평가를 한 후 이를 근거로 삼아 국가가 그 사람에게

혜택을 주거나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데 있다. 불이익을 당한 당사자

의 인생관이 실제로 가치 없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 국가

의 공식적 평가에만 기초해서 또는 그 공식적 평가를 핵심기준으로 삼아서

그를 불리하게 대우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는 차별금지의 이념이 국가 중

56) J. Rawls, 앞의 책 (각주 30), 193면 이하, 212면 이하, 437면 이하 참조. 공적 이성의 다양한 견해들에 대한 고찰로는 F. D’Agostino, Free Public Reason (New York and Oxford, 1996) 참조. 57) 이러한 해석은 J. Kis, 위의 논문(각주 48), 324면 참조. 58) R. Dworkin, 앞의 책(각주 50), 35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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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법의 중립성에 관한 고찰 61

립성 원리에 놓여 있다.59)

이렇게 보면, 중립성 원리는 특별한 유형의 차별금지 원리라고 볼 수 있겠

다. 개인의 인생관과 (개인적/집단적) 정체성에 대한 공식적 평가에 근거해서

내려지는 차별을 금지하는 원리이기 때문이다.60) 1995년의 독일 연방헌법재

판소의 ‘십자가상 결정’(Kruzfix-Beschluß)은 국가 중립성과 평등대우원칙의 관

련성을 잘 보여 준다.61)

“독일 기본법 제4조 제1항의 종교의 자유조항으로부터 (…) 종교와 신조에 대한

국가의 중립성 원리가 도출된다. 상이한 또는 상호대립적인 종교관이나 세계관을

가진 구성원들이 공존하는 국가는 신조의 문제에서 중립성을 지키는 경우에만 평화

로운 공존을 보장할 수 있다. 이 중립성 원리의 근거는 비단 기본법 제4조 제1항에

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이마르 헌법 제136조 제1항과 제137조 제1항과 관련하여 기

본법 제3조 제3항, 제33조 제1항 그리고 제140조에도 있다. 이 규정들은 국가종교의

형태를 거부하고, 특정한 신조의 특권적 지위 인정을 금지하고,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배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때 [추종하는 개인들의] 숫자의 많고 적음

이나 [어떤 종교나 세계관이 해당 정치공동체의 역사나 전통을 이루고 있는가 하는]

사회적 관련성은 고려되어야 할 중요한 요인이 아니다. 국가는 오히려 평등원칙에

바탕을 두고 상이한 종교공동체 들과 세계관공동체들을 동등하게 대우하도록 노력

하여야 한다.”

평등대우의 특수유형으로 국가 중립성을 파악한다면, 이로부터 중요한 물

음이 생겨난다. 국가 중립성 원리는 기존의 평등대우원칙이나 차별금지원칙

으로 해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후자의 원칙으로 해결될 수 없는 또는 제

대로 해결되지 못하는 중립성 사안의 예로 양심적 병역거부 사안을 들 수 있

겠다. 우리 헌법재판소의 법정의견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처벌하는 병역법 제

59) A. Patten, 앞의 논문(각주 41), 257면 이하 참조. 60) J. Kis, 앞의 논문(각주 48), 321면. 국가 중립성 원리를 평등대우 원칙의 측면에 서 상세하고 논구하는 문헌으로 S. Huster, 앞의 책(각주 1), 89면 이하 참조. 61) BVerfGE 93, 1면 이하 참조. 이 결정에 관한 상세한 분석은 S. Huster, 위의 책 (각주 1), 127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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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법철학연구

88조 제1항에 대해 합헌으로 판단하면서 다음과 같은 논거를 든다.

“이 사건 법률 조항[병역법 제88조 제1항 제1호 - 필자]은 병역거부가 양심에 근

거한 것이든 아니든, 그 양심이 종교적 양심이든, 비종교적 양심이든 가리지 않고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것일 뿐, 양심이나 종교를 사유로 차별을 가하는 것도 아니므

로 평등원칙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처벌하는 병역법 제88조 제1항 제1호는 현재 헌법학계

및 헌법실무에서 통설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평등원칙을 위반하지 않는다고

헌법재판소는 주장하고 있지만, 이 사안을 국가 중립성 원리에의 관점에서

접근해 보면 종래의 평등원칙 담론이 미처 포착해 내지 못한 측면이 부각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62)

(2) 공통근거로서의 중립성

공유될 것으로 합당하게 기대되는 근거의 측면에서 국가 중립성을 바라보

는 관점에 따르면, 특정한 인생관이나 가치관 또는 정체성에 유리한 결과를

낳는 국가작용이라도 그 근거가 합당한 생각을 가진 시민들이 동의할 것이라

고 합리적으로 기대될 수 있는 것일 때, 또는 그 근거가 합리적으로는 거부할

수 없을 것일 때, 당해 국가작용은 중립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63)

62) 헌법재판소 2011.8.30. 2008헌가22, 2009헌가7·24, 2010헌가16·37, 2008헌바 103, 2009헌바3, 2011헌바16(병합) 결정. 이에 대해 반대의견은 다음과 같은 반론 을 펼치고 있다: “자신의 종교관·가치관·세계관 등에 따라 전쟁과 그에 따른 인 간의 살상에 반대하는 진지한 양심이 형성되었다면, ‘병역의무를 이행할 수 없다’는 결정은 양심에 반하여 행동할 수 없다는 강력하고 진지한 윤리적 결정인 것이며, 현역복무라는 병역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상황은 개인의 윤리적 정체성에 대한 중 대한 위기상황에 해당한다.” 해당 법률조항이 종교관·가치관·세계관에 입각하여 형성된 개인의 윤리적 정체성에 대한 차별임을 암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대의견 은 평등원칙과 국가 중립성 원리와의 관련성을 짚고 있다고 해석해볼 수 있을 것이 다. 63) J. Kis, 위의 논문(각주 48), 329면 이하 참조. 롤즈는 중립적 근거를 공통된 근거 로 이해하되, 절차적 중립성 이상의 실질적 중립성의 성격을 가지는 것으로 파악하 고 있다. J. Rawls, 앞의 책(각주 31), 19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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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법의 중립성에 관한 고찰 63

그런데 합당한 의견불일치(reasonable disagreement)가 현대 입헌민주주의 사

회의 운명이라면, 합당한 시민들 사이에서 다툼이 있는 국가작용은 과연 이

들 각각에게 호소력을 가질 수 있을까? 어쩌면 현대 입헌민주주의 사회의 구

성원들은 거의 모든 것에 대해 의견불일치를 보이는 것이 아닐까? 만약 그렇

다면, 공유된 근거로서 중립성 원리를 파악하려는 입장은 포기되거나 수정되

어야만 한다.64)

국가작용을 반대하는 시민들조차도 공유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 결정

근거들을 국가는 과연 제시할 수 있을까? 국가작용을 결정하고 집행할 책임

이 있는 공직자들이 반대론자들도 공유할 것이라고 기대될 수 있는 근거들을

가지고서 해당 국가작용을 정당화할 의무를 진지하게 고려했다고 하자. 자유

롭고 평등한 시민들이 공유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는 근거들에 입각한 정당

화가 성심성의껏 시도되었고, 그로부터 당해 국가작용이나온 것이라고 인정

된다면—비록 그 정당화가 성공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국가작용은

중립적이라고 반대론자들도 합당하게 평가할 것이다. 특정한 인생관이나 가

치관 또는 정체성에 불리/유리한 결과를 가져오는 국가작용에 대해서 국가가

신의성실한(in good faith) 근거제시 의무를 충분히 이행하였다면, 그 국가작용

이 동등한 존중과 관심의 원리를 침해하고 비중립적이라는 비판이 곧바로는

정당화되지 못할 것이다.65) 반면, 공유될 것으로 합당하게 기대할 수 있는 근

거들에 입각하여 시민 모두에게 신의성실하게 설명하고 정당화할 의무가 당

해 국가작용을 변호할 책임 있는 자들에 의해 충분히 이행되지 못하였다면,

당해 국가작용이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동등한 존중을 가지고 대우하지

못하였기에 비중립적이라는 의심은 일단 이유 있다고 추정될 것이다.66)

그런데 어떤 국가작용이 그러한 정당화의 진지한 시도에서 나온 것인지 여

64) 이러한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루고 공적 근거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문헌으로 A. Gutmann and D. Thompson, Democracy and Disagreement (Massachusetts and London, 1996) 참조. 65) 이렇게 국가작용의 근거가 제시될 것을 요구하는 원리를 공적 이성의 원리(the public reason principle)라고도 할 수 있다. 이에 관해서는 S. Wall, “Perfectionism, public reason and religion accommodation”, Social Theory and Practice 31 (2005), 285면 참조. 66) J. Kis, 앞의 논문(각주 48), 3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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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법철학연구

부를 어떻게 판별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해법으로 두 가지 심사기준을 제시

하는 키이스의 견해67)가 경청할 만하여 아래에서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키이스에 의하면, 일상적인 논증과정에서 정당화를 위해 제시된 어떤 근거

가 과연 공유되는 근거로서의 자격을 가지는지 여부를 판별하는 데는 두 가지

방식이 존재한다. 우선, 내가 제시하는 근거가 논쟁상대방의 다른 견해들과

전적으로 충돌하기 때문에 그가 납득할 것으로 전혀 기대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이때 나의 논쟁상대방은 내가 제시한 근거를 자신이 이미 보유하고 있

는 견해들에 비추어서 검토한 후, 그 견해들의 망에 통합될 수 없기 때문에

적합한 근거가 아니라고 판단할 것이다. 이러한 경우 우리는 내가 제시한 근

거가 상호 승인할 수 있는 전제와 원리에 비추어 합당하게 받아들여질 것이라

고 기대될 수 있는 근거인지를 묻고, 상대방의 거부는 합당한 거부(reasonable

rejection)인지를 묻게 된다.

그런데 나의 근거가 상대방에게 납득될 수 있는지 여부를 판별하는 첫 번

째 방식보다 더 먼저 적용되어야 할 심사 방식이 있다고 키이스는 지적한다.

내 논쟁상대방이 내가 제시한 근거에 전혀 접근할 수도 없거나 제시된 논거

를 이해할 수조차 없을 때에는, 내 논쟁상대방은 내가 제시한 근거가 자신의

견해망에 비추어 적합한지 여부의 심사를 시작조차 하지 못한다. 내가 든 근

거에 접근할 수가 없어서이거나 그 근거를 이해조차 할 수 없어서이다. 키이

스는 바로 이렇게 작동되는 심사방식을 접근가능성 심사기준(the accessibility

test)이라고 명명한다.68) 보통의 성인 시민들 모두가 접근할 수 있고 활용할

수 있을 근거들에 입각해서 국가작용이 이루어지는지를 따지는 이 심사기준

은 공지성 원칙(the principle of publicity)을 가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

다.69) 공권력 행사의 논거로 제시된 것에 이 심사기준을 적용하면 어떻게 될

67) J. Kis, 앞의 논문(각주 48), 329면 이하 참조. 68) J. Kis, 앞의 논문(각주 48), 330면. 특정 종교 경전의 권위를 승인하는 근거들이 과연 합리적으로 접근가능한 근거일 수 있는지에 관한 논의는 J. Raz, “Facing Diversity: The Case of Epistemic Abstinence,” in: Ethics in the Public Domain: Essays in the Morality of Law and Politics (Oxford, 1996), 91면 이하 참조. 합리 적 접근가능성 기준은 강하게 파악할 수도, 약하게 파악할 수도 있다. 이에 관해서 는 S. Wall, 위의 논문(각주 65), 287면 이하 참조. 69) S. Wall, 위의 논문(각주 65), 286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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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법의 중립성에 관한 고찰 65

까? 일부 시민들에게는 전혀 와 닿지도 않거나, 공인된 논증규칙이나 입증규

칙으로는 참/거짓 여부 또는 타당성 여부를 따질 수도 없는 근거들(특정한 종

교 교리에서만 통용되는 근거)을 가지고서 국가작용을 정당화하려는 것은 동등

한 존중 원리를 부인하는 셈이 된다. 접근가능성 심사는 우리가 공적 논변에

서 제시하는 논거들이 또는 국가작용의 공적 근거로서 제시되는 것들이 자유

롭고 평등한 시민이라면 특정한 교리나 철학의 입장을 취하지 않더라도 접근

가능하고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일 것을 요구한다. 특정한 교리나 철학의 입장

을 취해야만 비로소 접근가능하고 이해될 수 있는 근거에 기반하여 공권력이

행사된다면, 이는 그 입장을 취하지 않는 구성원들을 적절하게 존중하지 않

은 것이어서 기본권을 부당하게 박탈하거나 제한하는 조치이다.70)

키이스가 드는 두 번째 심사기준은 ‘승인’ 심사(the recognition test) 또는

정체성 공인/배제 심사이다.71) 어떤 국가작용을 채택하고 시행할 근거가 명

시적으로건 암묵적으로건 국가가 공인한 국가 정체성에 의거하는 경우가 있

다. ‘우리 국민’이 누구인가에 관하여 국가가 공식적으로 정한 정체성을 지지

하지 않는 시민들에게는 국가가 그 공적 정체성에 의거하여 제시하는 근거는

공유가능한 근거가 되지 못하여 승인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한 근거에 기반

을 두고 채택되고 시행되는 국가작용은 공통근거로서의 국가 중립성 원리를

충족하지 못한다고 일단 추정된다.72)

정체성에 대한 국가의 평가와 국가 중립성의 관련성은 최근에 쟁점이 된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에서 잘 드러난다. 정치공동체의 공적 정체성에 관

한 특정 견해에 입각하여 역사 교과서가 서술될 것을 국가가 강제하는 조치

는 ‘공적 정체성의 국정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국가 중립성 원리

에 비추어 보면 어떻게 판단될 수 있을까? 지면 제약상 상세하게 논할 바는

아니지만 우리 헌법재판소의 다음과 같은 설시에서 판단의 단초를 찾을 수

70) 유사한 견해로 M. Nussbaum, “Perfectionist Liberalism and Political Liberalism,” Philosophy and Public Affairs 39 (2001), 20면 이하 참조. 또한 S. Wall, 위의 논 문(각주 65), 287면 이하 참조. 71) 이 부분은 J. Kis, 위의 논문(각주 48), 331면 참조. 유사한 발상으로 K. Appiah, 앞의 책(각주 37), 99면 이하 참조. 72) 정체성과 국가 중립성 원리에 대한 심층적 분석은 K. Appiah, 위의 책(각주 37), 62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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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법철학연구

있지 않을까 싶다.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이유는 교육

이 국가의 백년대계의 기초인 만큼 국가의 안정적인 성장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

는 교육이 외부세력의 부당한 간섭에 영향받지 않도록 교육자 내지 교육전문가에

의하여 주도되고 관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에 관한 제반정책의 수립 및 시행이 교육자에 의하여 전담되

거나 적어도 그의 적극적인 참여하에 이루어져야 함은 물론 교육방법이나 교육내용

이 종교적 종파성과 당파적 편향성에 의하여 부당하게 침해 또는 간섭당하지 않고

가치중립적인 진리교육이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 대의정치, 정당정치 하에서 다

수결의 원리가 지배하는 국정상의 의사결정방법은 당파적인 정치적 관념이나 이해

관계라든가 특수한 사회적 요인에 의하여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인간의 내면적

가치증진에 관련되는 교육문화 관련분야에 있어서는 다수결의 원리가 그대로 적용

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미에서 국가의 교육내용에 대한 권력적 개입은 가

급적 억제되는 것이 온당하다고 본다면, 국정 교과서제도는 교육부에 의하여 교과서

편찬이 주도될 뿐만 아니라 그 교과서만이 교재로 허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행정관료에 의하여 교과내용 내지 교육내용이 영향을 받을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교육의 자주성을 보장하고 있는 위 헌법의 규정과 모순될 수 있는 것이다”(헌법재판

소 헌재 1992.11.12. 89헌마88).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설명하면서 교육 전문가들의 전문성에 입각한 논

의과정을 통해 교육 내용과 방식이 자주적으로 결정될 것, 교육 방법과 내용

이 종교적 편향성 및 당파적 편향성에 부당하게 좌우되지 않을 것, 교육 내용

에 대한 국가권력의 개입이 없을 것을 꼽고 있는 헌법재판소의 견해는 국가

중립성 원리가 공적 정체성과 관련해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고찰할 때 유

의미한 디딤돌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3) 두 하위원리의 상호 관계

지금까지 차별금지로서의 국가 중립성과 공유된 근거로서의 국가 중립성

을 구별하고 각각의 하위 원리가 작용되는 사안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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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법의 중립성에 관한 고찰 67

가지 하위 원리는 어떤 관계에 있을까? 국가 중립성의 두 가지 하위 원리는

각각의 고유한 영역을 가지면서도 상호 연관되어 있다.73) 단순한 상징적 표

현들이라고 하더라도 개인적/집단적 정체성과 관련해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

친다면 정체성 공인/배제 심사의 영역에 해당되며, 이는 다시 차별금지로서

의 중립성 원리의 위반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또 기본신조와 삶의 방식에

대한 모종의 공식적 판단에 입각하여 특정 집단의 시민들을 차별대우하는 것

은 거꾸로 정치적 공동체의 정체성에 대한 국가의 판단을 전달하는 것이며,

이는 거기에 해당되지 않는 시민들을 이등국민으로 평가한다는 결과로 이어

지게 된다.

어떤 국가작용을 정당화하기 위해 제시되는 근거들이 특정한 공적 정체

성에 입각해서 나온 것이라서 특정 시민들의 정체성과 관련해서 배제적 효

과를 의도하는지, 또는 실제로 그런 효과가 발생할 개연성이 높은지 등을

따지는 정체성 공인/배제 심사는 공유된 근거로서의 중립성 심사의 핵심이

면서도 차별금지로서의 국가 중립성과도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 이러한 점

에서 공통근거로서의 국가 중립성 원리는 “삶의 방식에 대한 나의 견해가

공무원이나 동료 시민들의 생각에 비추어서 무시당함직 하다거나 잘못되었

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권리를 나는 보유한다”는 차별금지의 원

칙과 일맥상통한다.

거꾸로 차별금지로서의 국가 중립성이 공통근거로서의 국가 중립성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J신을 찬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가치

있다는 이유에서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J신을 찬미하는 성전 건립 프로

젝트 비용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고 해보자. 성전비용 지원정책은 성전건립

에 헌신할 동기가 전혀 없는 시민들이 세금납부자로서 그 성전건립에 기여하

게 만듦으로써 성전건립에 헌신하는 사람들이 치를 비용을 대폭 낮춰 준다.

이 국가지원정책은 성전건립이라는 특정 시민집단의 사적 목표 추구에 드는

비용 구조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국가지원 없이 자율적 선택행위들로 결

정되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내용으로 개인목표 추구(성전건립)의 비용구조가

73) 양 원리의 관계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J. Kis, 앞의 논문(각주 48), 311면 참조. 또한 K. Appiah, 앞의 책(각주 37), 88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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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법철학연구

편파적으로 형성되기 때문이다.74) 그 정책은 특정한 집단의 정체성에 대한

우열판단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국가가 우월하다고 평가한 정체성

의 실현에 드는 비용을 나머지 집단에게 부과하는 불공정한 차별이기도 하

다. 결국 이 정책을 통해 국가는 특정한 인생관/가치관/정체성에 입각한 비중

립적 근거 위에 서서 다른 구성원들의 기본권을 부당하게 박탈하거나 제한하

는 작용을 한 것이 된다.

국가와 종교의 맥락에서 보자면, 국가 중립성 원리는 국가작용의 공적 정

당화에서 종교적 언어, 종교적 근거, 종교적 논변을 가능한 한 배제할 것을

요구한다.75) 가령 공공기관이나 공립학교 교실에 십자가상을 거는 경우를 생

각해 보자. 십자가상을 걸어 놓음으로써 국가가 기독교 공동체에 속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여 비기독교도와 비종교인에게 주변적인 시민일 뿐이라는 정

체성 효과를 부과한다면, 십자가상을 공적 기관에 걸어두는 것은 비중립적이

며 차별적인 행위라고 추정할 수 있다.76)

그렇다면 아래의 헌법 논증은 국가 중립성 원리에 비추어서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무릇 사형이란 국가권력이 법과 제도라는 이름으로 수형자의 생명을 박탈하여

그 존재를 영구히 말살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형벌, 즉 이른바 극형이다. 그렇다

면 인간이 과연 같은 사회 국가의 구성원인 다른 인간의 생명을 박탈할 수 있는 것

인가의 이 문제는 동서고금을 통하여 오랫동안 찬반의 논란이 있어 왔고 각인의 가

치관과 인생관에 따라 첨예하게 대립되어 왔다. … 사람은 창조주에 의하여 피조된

신비스러운 존재이며 사람의 생명은 창조주 다음으로 가장 고귀하고 신성한 것이므

74) 이 사례는 J. Kis, 앞의 논문(각주 48), 322면 참조. 75) 종교의 언어와 공적 논증에 관한 비교법적 고찰과 한국의 헌법 해석론에 관해서 는 이석민, 국가와 종교의 관계에 관한 연구―중립성 개념을 중심으로, 서울대학 교 박사학위논문(2014), 46면 이하 참조. 철학적으로 세밀하게 다룬 것으로 R. Audi, Religious Commitment and Secular Reason (Cambridge, 2000), 70면 이하 참조. 또한 자유주의 중립성에 입각한 논변에 대해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문헌으로 S. Wall, 위의 논문(각주 65), 281-304면 참조. 76) 독일 헌법재판소의 십자가상 결정을 이러한 측면에서 고찰하는 S. Huster, 앞의 책(각주 1), 235면 이하, 371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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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법의 중립성에 관한 고찰 69

로, 사람의 생명을 박탈하는 일은 창조주만이 가능할 뿐 창조주가 아닌 사람은, 그

어떠한 권위를 가지고서도, 사람이 만든 어떠한 법과 제도를 통하여서도, 불가능하

다고 할 것이다. 만약 이것이 가능하다면 이는 창조주의 권위보다 더 큰 권위를 찬

탈하는 것이 되며 창조주의 구원(救援)을 거부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

람의 생명에 대하여서는 부정적인 어떠한 사회과학적 평가나 법적인 평가도 허용되

어서는 안 된다고 할 것이며, 이와 같은 평가로 세워진 사형제도는 허용될 수 없다

고 할 것이다(사형제도의 존치론자 중 혹자들은 성경 창세기 9장 6절, 출애굽기 21

장 24-25절의 성구를 인용하고 있으나, 이 성구들은 보복의 관념을 어느 경우라도

정당화한 것이 아니라 신체에 한하여 보복이 가능함을 말하는 보복의 한계를 정한

것이라 보이며 생명에 대한 보복이 가능함을 정한 성구라고는 이해되지 아니하므로

그들의 인용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77)

“창조주 신이 자신의 형상에 따라 우리 인간 모두를 창조하였기 때문에 인

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헌법 전문이 있다고 하자.78) 그 의미만 보자면, 위 전

문의 내용에 종교적인 함의가 있다고 해서 비종교인들이 전혀 이해하지 못할

성격의 것은 아니다. 그런데 특정 종교 교리 및 신학의 견해와 주장이 명시적

으로 드러나는 위의 전문이 국민의 이름으로 말한다는 암묵적 주장과 결합될

때, ‘우리’ 국가는 특정 종교 신도의 공동체라고 천명하는 발화수반적 언어행

위(illocutionary act)를 동시에 수행한다.79) 이 발화수반적 행위는 해당 종교를

믿지 않는 타종교인과 무신론자는 이등-국민이라는 규범적 신호를 보내고 있

다는 점에서 시민으로서의 정체성과 관련해서 차별적 효과를 낳는다. 이렇게

본다면, 사형제 반대를 위해 조승형 헌법재판관이 드는 논거와 정당화 방식

77) 헌법재판소 1996.11.28, 95헌바1 결정 중 조승형 재판관 의견이다. 78) J. Kis, 앞의 논문(각주 48), 332면 이하 참조. ‘공적 이성에 관한 포용적 견 해’(inclusive view of public reason)라는 개념을 써서 롤즈는 종교 교리나 논변이 라고 할지라도 공적 이성을 풍부하게 하거나 강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지적한 다. 롤즈에 따르면, 종교 교리나 논변이 평등 원리를 지지함으로써 평등 원리는 중 첩적 합의(overlapping consensus)의 내용을 이루게 된다. J. Rawls, 앞의 책(각주 31), 462면 이하, 474면 이하 참조. 79) 발화수반행위에 관해서는 John Austin(김영진 옮김), 말과 행위(서광사, 2005), 128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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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법철학연구

은 국가 중립성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혹을 벗기는 어려울 듯싶다.

Ⅳ. 맺음말

국가 중립성 원리의 요체는 삶의 계획과 영위 방식과 관련해서, 종교관이

나 정치관과 관련해서, 개인적 정체성 및 집단적 정체성과 관련해서 국가는

중립적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요청이다. 필자는 우선 국가 중립성 원리는 결

과의 중립성이 아니라 근거의 중립성 또는 정당화의 중립성으로 이해하는 편

이 더 적절하며, 국가작용을 지도하는 토대원리라기 보다는 동등한 인간존엄

성 원리를 실현하는 데 봉사하는 파생적 원리라는 점을 해명하였다. 또한 국

가 중립성 원리는 차별금지 원리의 측면에서, 그리고 공유된 근거에 기초한

국가작용 정당화 원리의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음을 설명하였다. 이렇게 파

악된 국가 중립성 원리는 평등원칙의 특수한 유형이라는 점을 제시하면서 필

자는 종래의 평등원칙 담론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중립성 원리로 걸러

보고자 했다.

그래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최근 논의되는 중립성론은 새로운 생각들

의 포도주를 중립성이라는 낡은 부대에 담으려는 시도는 아닐까? 국가와 법

의 중립성에 관한 연구들이 수행되면 위의 의문에 대한 답이 나올 것이고,

그때 국가 중립성 원리의 의의와 위상이 제대로 해명되리라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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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법의 중립성에 관한 고찰 71

Abstract

The Principle of State Neutrality as Equal Respect

Dokyun Kim

In this paper, I have tried to explicate the liberal principle of state

neutrality in a coherent way. According to the liberal principle of the state

neutrality discussed in this paper, the state should be neutral between

permissible ideals of a good human life, religious/ethical/political views,

and identities of citizens.

It follows from the analysis of the concept of neutrality that the

principle of neutrality can be best understood as neutrality of reasons or

neutrality of justification. The liberal principle of state neutrality is a

derivative principle which serves the principle of equal concern and

respect. So understood, the principle can be approached in two

dimensions. First, the principle can be interpreted in terms of

non-discrimination. The principle of neutrality at this dimension requires

that the state should not discriminate between citizens merely on the basis

of an official judgment regarding their ways of life, religious/ethical/

political views, and their identities. Secondly, the principle of state

neutrality can be understood in terms of mutually acceptable reasons. The

principle at this dimension requires the state to make a serious and

good-faith attempt to give common reasons for its acts, i.e. reasons which

reasonable citizens might be expected to accept and share. To sum up,

the principle of state neutrality has limited yet important applicability. The

principle sets limits to the ways in which the state acts, because it requires

that the state refrain from forcing the individuals to lead lives they do not

endorse themsel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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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법철학연구

국가 중립성(state neutrality), 근거의 중립성(neutrality of justification),

동등한 관심과 배려(equal concern and respect), 차별금지(non-

discrimination), 정체성(identities), 공통근거(common reasons)

색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