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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균, 한국 법체계에서 자연법론의 형성과 발전 -과거를 되돌아보며 미래를 가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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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철학연구 제11권 제2호: 183~226 한국법철학회 2008

한국 법체계에서 자연법론의 형성과 발전*

― 과거를 되돌아보며 미래를 가늠하다

34)

김도균**

“노스탤지어를 품는 것이 자신의 현재상황과 사려깊고 적극적인 관계를 맺

는 한 가지 길이라는 조건 하에서라면 어느 특정한 시대에 대하여 노스탤지어

를 품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현재를 이해하지 않고 공격하기 위하여 노

스탤지어를 품는다면 그 노스탤지어는 근절되어야 한다.” (M Foucault)***

“법이란 수세기에 걸쳐 한 정치공동체가 발전해 온 이야기를 체화한 것이므

로, 법을 마치 수학책처럼 공리와 그 결론만을 담고 있는 것으로 다룰 수는 없

다.” (O.W. Holmes)


  • 이 연구는 한국학술진흥재단 기초연구지원인문사회(창의주제연구) 분야(‘한국의 법철학 연구― 이론과 쟁점’)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이루어진 것임을 밝힌다.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부교수. *** 미셀 푸코 (외) (이희원 옮김), 자기의 테크놀로지, 동문선, 2002, 24면(표현을 약간 수정하였음). * O. W. Holmes, Jr., The Common Law (New York, 1991), 1면. ** 투고일자 2008년 10월 5일, 심사일자 2008년 10월 27일, 게재확정일자 2008년 1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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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 법철학연구

Ⅰ. 머 리 말

법철학은 당대의 절박한 법적 문제를 앞에 두고 치열하게 사유하는 과정에

서 형성되고 발전한다.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 없는 진공상태의 법철학은 없다

는 것이다. 설령 정밀한 개념들과 이론들의 형식을 띠지 않더라도 동시대의 정

치인들, 시민들 또는 법실무가들의 사고방식에서, 그리고 사회구성원들의 공적

이거나 사적인 발언들에서도 당대의 법철학은 은연중에 드러나게 마련이다.

이 글이 다루고자 하는 근본물음은 ‘근현대 한국의 법체계에서 자연법론은 어

떤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어떤 환경에서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전개되어

왔을까?’라는 것이다.1) 시기적으로는 일제의 강점에서 해방된 이후 현재까지

를 대상으로 하며, 법학자뿐만 아니라 법실무가의 사유, 그리고 필요하다면 공

적인 논의의 장에서 시민들이 제시했던 주장들도 고찰대상로 삼고자 한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한국의 법체계에서 자연법론은 실존적 차원에서이건 정

치적 차원에서이건 ‘고뇌와 저항의 법이론’으로서 형성되어 발전되었고 특히

독재정권이 기승을 부리던 70-80년대에 그 정점에 달하였다. 그렇다면 이른바

‘민주화’ 이후의 한국의 법체계에서 자연법론은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 독

재정권의 악법체계를 비판하고 그에 저항한다는 시대적 소명을 다하고 자연법

론은 ‘자기시대를 잃은 것’일까?2) 필자는 개인의 자유가 신장되고 정치적으로

‘민주화’된 다원주의 사회로 바뀐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자연법론은 심각한 도

전에 직면해 있다고 본다. 그러나 동시에 21세기 한국사회에서도 여전히 자연

법론은 진지하게 고려될 만하고, 논의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자연법의 본연의 임무3)와 새로운 임무는 무엇일까? 이 글은 이러한

1) 김홍우 교수는 자신의 저서 한국정치의 현상학적 이해, 인간사랑, 2007에서 그 동 안 한국의 법학계가 법의 논리적 정합성만을 추구한 나머지 ‘법에 관한 역사적 성 찰’(8면)과 ‘법의 시민적 읽기’(360면)를 소홀히 했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 이러한 지 적을 받아들여 필자는 한국사회에서 자연법론의 역사적 맥락(‘역사적 성찰과 시민적 읽기’)과 역할(시민사회의 형성에 기여한 역할)에 주목하고자 한다. 2) 이러한 지적은 이상돈, 기초법학, 법문사, 2008, 13면 참조.

3) 자연법론의 본연의 임무에 대해서는 한스 벨첼(박은정 역), 「자연법과 실질적 정의, 삼영사, 2002, 333면: “ ‘자연법’, 그것은 법의 정당성의 문제, 사실상 존재하는 사회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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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체계에서 자연법론의 형성과 발전 185

문제의식을 염두에 두고 진행될 것이지만 이 문제를 이론적으로 깊이 있게 다

루지는 않았다. 이 글의 목표는 한국 사회에서의 자연법론의 역사적 맥락과 역

할, 과제와 전망에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먼저 자연법론과 법실증주의의 기본적 주장들

을 간략하게 설명하고(II), 한국의 법체계에서 자연법론이 태동하게 된 시대적

상황, 당대의 법철학적 문제의식과 수행했던 역할을 다룬다(III). 마지막으로

민주화 이후 단계에서 자연법론이 처한 상황과 도전, 그리고 자연법론이 해결

하여야 할 과제에 대하여 간략하게 지적하고자 한다(IV).

Ⅱ. 예비적 고찰: 자연법론의 근본 주장과 유형

논의의 필요를 위하여 우선 간략하게 자연법론의 근본적인 주장들과 유형을

살펴보자. 법실증주의와 자연법론이 서로 대립하는 쟁점들 중 가장 핵심을 이

루는 법과 도덕의 관계는 매우 다양한 논쟁점들을 포함하고 있다.4) 가장 대표

적인 논점들을 짚어본다면 다음과 같다:

① 법과 도덕 사이에는 필연적인 연관성이 있는가? 다시 말하면, 어떤 법률이

특정한 도덕원리들(정의원리들)을 위반하는 경우 법효력을 상실하거나 아니면 위반

하는 그만큼 법효력이 약화되는가? 아니면 특정한 도덕원리들을 위반하였다는 사실

은 해당 법률의 법효력과는 아무런 상관성이 없는가?

② 한 법체계의 구성원들은 법의 내용과 상관없이 법을 준수할(법에 복종할) 도

덕적 의무를 지는가? 아니면 법에 복종할 법적 의무만을 질 뿐인가? 최고의 도덕원

리를 침해하는 법률에는 불복종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정당화되는가? 나아가서는 최

고의 도덕원리를 침해하는 법률에는 불복종하는 것이 법적으로도 정당화되는가?

서의 정당성의 문제인 것이다. 사람들이 자연법 하에서 무엇이든 자기가 원하는 바 대로 이해했을지라도, 항상 그 속에는 법은, 단순히 존재하는 권력이 명하는 바와 동 일하지 않다는 생각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4) 다양한 논쟁점들에 관해서는 A. Peczenik, A Treaties of Legal Philosophy and General Jurisprudence Vol. 4: Scientia Juris, Dordrecht, 2005, 8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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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법철학연구

③ 법관은 법을 정의롭고 공정한 방식으로―즉 법을 도덕원리들(정의원리들)에

합치하게― 해석할 법적 의무를 지는가? 최고의 도덕원리들(정의원리들)을 명백하

게 위반하는 법률을 적용하여 시민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한 법관은 도덕적 비난뿐

만 아니라 법적 비난까지 받게 되는가? 아니면 유효한 법을 적용한 것이므로 법적으

로나 도덕적으로 정당한 행위를 한 것인가? 아니면 법적으로는 정당하지만 도덕적

으로 비난받을 행위를 한 것인가?

앞에서 제기된 물음에 대하여 어떻게 답하느냐에 따라서 법실증주의와 자연

법론으로 나누어진다. 이하에서는 간략하게 법실증주의와 자연법론의 기본주

장을 살펴보기로 한다.

  1. 법실증주의: ‘법과 도덕의 분리’ 명제(the Separation Thesis)

법실증주의에 따르면 법과 보편적 도덕/정의/인권은 반드시 연관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도덕/정의/인권은 어떤 실정법이 법이기 위하여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필요조건이 아니므로, 도덕/정의/인권은 법에 대한 도덕적 판단기준일 수

는 있어도 법의 본질적 요소는 아니라는 것이다. 법실증주의는 도덕/정의/인권

을 침해하고 있는 실정법은 ‘악법(惡法)’이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법이라는 모토

아래에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친다.

① 법개념은 도덕적 요소를 포함하지 않고도 확정할 수 있다. 즉 법이 요구하는

것과 도덕 또는 정의가 요구하는 것 사이에는 반드시 연관성이 있을 필요가 없다.

② 법은 도덕적 요청이나 도덕적 권리를 내용으로 삼을 수도 있지만, 도덕적으

로 문제삼을 수 있는 내용의 명령, 금지, 허락도 법으로 표현될 수 있다.

③ 무엇이 법이고, 법이 요구하는 바가 타당하냐의 문제는 내용적 정당함과 상

관없이 이미 법으로 제정되어 있다는 ‘사실’이나 사회구성원들 사이에 법으로서 승

인되고 준수되고 있다는 ‘사실’에 따라 판단될 수 있다.

이러한 발상을 19세기 영국의 법실증주의자 존 오스틴(J. Austin: 1790-1859)

은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표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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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체계에서 자연법론의 형성과 발전 187

“법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 법이 좋은 법인지 나쁜 법인지 판단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설령 우리가 좋아하지 않더라도 현실로 존재하는 법만이 법이다.”5)

어떤 사회규범이 그 내용의 정당성과 상관없이 실정법으로서의 형식적 기준

만을 충족하기만 하면 법이라는 것이다.

  1. 자연법론: 법과 도덕/정의/인권의 필연적 연관성 강조

자연법(natural law)이란 객관적이고 보편적으로 타당한 도덕적 행위원리들

로서 법으로 반드시 인정되어야 하는 규범들의 총체를 지칭하는 개념이다. 자

연법론은 이러한 자연법을 우리가 인식할 수 있다고 믿고, 이 자연법적 규범들

이 실정법에 우선하는 지위를 가진다고 주장하는 견해이다.

(1) 필연적 연관성 명제(결합 명제)

법실증주의가 ‘분리명제’를 제창한다면, 자연법론은 반대로 ‘필연적 연관성

명제’(the connection thesis: 또는 결합명제)를 내세운다. ‘필연적 연관성 명제’는

실정법규범들 외에도, 실정법의 기초를 이루며 실정법의 한계를 설정하는 기

능을 담당하는 도덕원리들 및 정의원리들, 그리고 보편적 인권원리들 역시 법

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즉, 법은 반드시 도덕과 관련하여 파악되어야 하며,

일정한 도덕원리들에 위반하는 법규들은 법으로서 자격미달이거나 ‘하자(瑕疵)

있는 법’(defective law)으로서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6) 자연법론의 핵심주

장은 다음과 같다.

① 법과 도덕/정의/인권은 반드시 연관성을 갖는다.

② 도덕/정의/인권은 법의 내재적 구성요소이다: 도덕/정의/인권은 법에 대한

도덕적 판단기준일 뿐만 아니라 법 그 자체를 구성하는 본질적 요소이기도 하다.

③ 도덕/정의를 중대하고도 현저하게 위반하는 법은 애초부터 법이 아니다.

5) J. Austin, The Province of Jurisprudence Determined, London, 1832, 157면.

6) 이러한 해석에 대해서는 M. Murphy, “Natural Law Jurisprudence,” Legal Theory 9 (2003), 241-267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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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법철학연구

이러한 견해는 “부정의한 법은 법이 아니다(lex iniusta non est lex)”라는 ‘불

법(不法) 명제’로 표현되고 있다.7) 이 명제의 타당성 여부에 대하여 논란이 있

고 해석을 둘러싸고 자연법론 내부의 논쟁이 있지만 생략하기로 한다.8)

(2) 자연법론의 두 가지 하위 명제: ‘불법명제’와 ‘원리명제’

자연법론의 ‘필연적 연관성 명제’는 이른바 ‘불법(不法)명제’(극도로 부정의한

법은 법이 아니다)와 ‘법원리 명제’(법은 실정법뿐만 아니라 보편적 일반원리[도덕,

정의, 인권]로 구성되어 있다)를 하위명제로 하고 있다.9)

① 不法命題: “극도로 부정의(不正義)한 법은 법이 아니다.”

양심적이고 진지한 (사회)민주적 법실증주의자(democratic legal positivist)였

던 독일의 법철학자 라드브루흐(G. Radbruch)는 나치시대의 불법체제를 고통

스럽게 경험하고 난 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치 시대의 법체계를 청산

하려는 이론적 시도로서 실정법의 외양을 띤 불법(不法)과 실정법을 넘어서는

법(1946)이라는 논문에서 이른바 ‘불법판단공식’을 제시한 바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이 재구성할 수 있다.

모든 실정법은 그 내용과는 상관없이 분명히 법적 안정성이라는 가치를 실현한

다. 법률은 법적 안정성을 보장하기 때문에 무법상태보다는 낫다. 그러나 법적안정

성이 법이 실현해야 할 유일한 가치는 아니며 결정적인 가치도 아니다. (…) 법률의

내용을 판별하게 해주는 가치인 정의와 법적 안정성 사이의 갈등은 다음과 같이 해

결할 수 있을 것이다.

7) 이 법언의 의미와 정신에 대해서는 N. Kretzmann, “LEX INIUSTA NON EST LEX: Laws on Trial in Aquinas' Court of Conscience,” in: J. Feinberg/H. Gross (ed.), Philosophy of Law, Belmont, 1995, 8면 이하 참조.

8) 이 불법명제를 해석할 때 ‘모든 부정의한 법률은 법이 아니다’라고 파악하는 강한 해 석과 ‘극도로 부정의한 법률은 법이 아니거나(또는 애초부터 법효력이 부정되거나) 하자(瑕疵) 있는 법이다(또는 그 하자의 정도에 따라서 법효력 인정 정도가 달라진 다)’라는 약한 해석이 가능하다. 필자는 약한 해석을 취하는데, 이에 대한 논증은 다 음 기회로 미루고자 한다.

9) ‘불법논변’과 ‘원리논변’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자연법론적 법개념이 재판과정에서 법규범임을 보이는 박은정, 자연법의 문제들, 세창출판사, 2007, 60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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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체계에서 자연법론의 형성과 발전 189

① 절차에 맞게 제정되었고 강제력에 의해 보장되는 실정법은 설령 그 내용이

정의롭지 못하고 그 목적이 부당하다고 하더라도 일단 정의에 우선권을 갖는다.

② 그러나 실정법이 너무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정의원리를 위반하기에 이르렀

다면, 不正義한 법률에 의해서 보장될 법적 안정성은 정의보다 하위의 가치가 된다

[‘참을 수 없음’―판단기준].

③ 어떠한 경우에 법률의 외관을 띠지만 법이 아닌 ‘법률적 불법’이며, 어떠한

경우에 그 내용이 부정당하기는 하지만 법으로서 효력은 갖는 법률(‘악법’)인지 확연

하게 판별하는 기준은 물론 없다. 다만 다음의 경계선만은 명백하게 확정할 수 있다.

어떤 법률이 정의의 핵심을 의도적으로 否定하고 있는 경우 그 법률은 단순히 악법

에 그치지 않고 애초부터 법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다[‘의도적 否定(침해)’―판단기

준]. 이 기준을 세분화면 다음과 같다.

㉠ 실정법이 처음부터 정의의 본질적 요청인 “같은 것은 같게 대우하라”는

평등원리를 의도적으로 묵살한 경우, 그 실정법은 단순히 부정의한 법률이

아니라 아예 법이 아니다.

㉡ 인간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고 기본적 인권을 부정하는 실정법도 법으로

서의 자격을 상실한다.

㉢ 범죄의 경중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단지 순간적인 위협을 목적으로 상이한

등급의 위법행위에 대하여 사형과 같은 극형을 동일하게 부과하는 형벌규정

도 법으로서 성질을 갖고 있지 않다.

이와 같은 내용과 형식을 갖는 모든 법률들은 법률의 외관을 띠고는 있지만 법

이 아니다. 즉 위와 같은 실정법들은 ‘법률의 외관을 띠고는 있으나 실은 법이 아닌

‘법률의 탈을 쓴 不法’(gesetzliches Unrecht)에 불과하여 법효력을 갖지 못한다는 것

이다.10)

이와 같은 불법 명제는 이른바 ‘악법 상황’에 적용할 수 있지만 과연 ‘정상법

상황’에서도 적용할 수 있을까? 아래에서 설명하는 원리명제는 바로 이 질문을

10) 원문을 보려면 프랑크 잘리거(윤재왕 옮김), 라드브루흐 공식과 법치국가, 길안사, 2000, 132-146면 참조. 라드브루흐 공식에 대한 국내의 최근 논쟁으로는 이재승, “라 드브루흐 공식,” 법철학연구 제7권 제1호(2004), 99-120면, 조천수, “라드브루흐 방 법3원론,” 법철학연구 제7권 제1호(2004), 121-148면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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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법철학연구

염두에 두고 제시되었다고 생각한다.

② 法原理命題

‘법원리명제’는 법에는 실정법규와 법원리가 포함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보

편적으로 타당한 도덕원리, 정의원리, 인권원리가 실정법으로 표현되지 않더라

도 법으로서 효력을 갖는다는 견해는 독일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에서 명백하게

나타난다. 다음의 ‘Soraya’ 판결에서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실정법과는 다른 유

형의 법이 있음을 인정하고 다음과 같은 법개념론과 법원의 역할론을 피력한다.

“권력분립 및 법치국가의 핵심적 요소로서 ‘법관은 법률에 따라서 재판하여야

한다.’는 전통적인 법률기속원리(法律羈束原理)는 독일 입헌민주주의 법체계에서는

‘법원의 판결은 법과 법률에 구속된다.’[독일 헌법 제20조 3항]는 원칙으로 변형되었

다. 이는 [독일 법체계가] ‘협소한 법률실증주의’‘적 입장을 거부하고 있음을 나타낸

다. ‘법과 법률’이라는 표현은, 실정법(Gesetz)과 법(Recht)이 실제에서는 대체로 서

로 중첩되기는 하지만, 법이 실정법으로 환원될 수는 없다는 일반적인 인식을 보존

하고 있다. 즉 법은 실정법규들 총합 이상의 무엇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가

제정한 실정법 이상의, (…) 의미 전체로서 입헌적 법질서 내에 그 근원을 두고 있는,

법에 있어서 ‘실정법을 넘어서는 무엇’(ein Mehr an Recht)이 존재할 수 있고, 이것

은 국가권력에 의해서 제정된 실정법규에 대해서 교정자로서의 역할을 한다. 법에

있어서 ‘실정법 이상의 무엇’을 찾아내어 판결에서 구체화하는 것이 바로 법원의 과

제이다. (…) 다시 말하면 법원의 과제는 입헌적 법질서에 내재해 있지만, 실정법의

문언으로 표현되지 않고 있거나 불충분하게 표현된, 가치들 및 규범들을 (가치)평가

적 활동을 통하여 (…) 분명하게 드러내어서 판결에서 구체화하는 것이다. 법관은

이 때 자신의 개인적인 자의적인 견해로부터 벗어나서 합리적인 논증에 자신의 판

결을 근거지어야 한다. (…) 법원의 결정은 실천이성의 규준과 사회에서 타당하다고

인정된 일반적 정의관념에 따라서 법률의 흠결을 보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11)

법률(Gesetz)과 법(Recht)은 구분된다는 명제를 실정법과 자연법의 구분으

로도 이해할 수 있지만, 현대 입헌민주주의 법체계에서는 실정법과 법원리규

11) BVerfGE 34, 269 (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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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체계에서 자연법론의 형성과 발전 191

범의 구분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법의 지배란 “국가가 제정한 실

정법 이상의 원리, 즉 (…) 입헌적 법질서의 배경가치를 이루는 원리들에 그 근

원을 두고 있는 ‘법에 있어서 실정법에 내재하는 법원리’(ein Mehr an Recht)의

지배”를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우리 헌법재판소도 법원리명제와 유사한 견해를 표명하고 있다. 배우자가

법률로 정한 중대한 선거범죄12)를 범하여 징역형 또는 300만 원 이상의 벌금

형의 선고를 받은 경우 후보자의 당선을 무효로 하는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

지법’ 제265조가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

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제13조 제3항을 위반하는 법규범이 아닌

지 여부가 문제가 되었던 사안에서 권성 재판관과 김경일 재판관은 별개의견

에서 다음과 같은 주목할 만한 법원리론을 제시한다.

“헌법에 명문의 규정으로 선언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 없이는 ‘헌법규정의

보편적 가치’와 ‘헌법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도도한 의미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다수의 법적 원칙을, 우리는 투명한 이성적 통찰로 발견하여 이를 ‘헌법에 내

재하는 헌법의 기본원리’라는 이름으로 수용하여 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물론 치밀하고 신중한 사색이 거듭되어야 할 일이지만 그 논리와 결론의 타당성이

인정되고 그로 인한 부작용의 폐단이 확인되지 않는 이상 기왕에 발견된 헌법원리의

목록에 하나를 더 추가하는 일을 반드시 자제하여야 할 이치는 없다. 그러므로 스스

로의 생각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할 권리가 있고 그 대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는, 그

리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만, 자기가 책임을 진다는 자기책임의 원리는 충분히 자명

하고 합당한 보편적인 법적 원칙이어서 이를 (…) 헌법의 내재적 원리의 하나로 파악

하는 것이 옳고 이에 반하는 제재는 그 자체로서 하나의 헌법위반을 구성한다.”13)

12)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 제265조 본문에서 “선거사무장․선거사무소의 회계책 임자 또는 후보자의 직계존․비속 및 배우자가 당해 선거에서 동법 제230조(매수 및 이해유도죄) 내지 제234조(당선무효유도죄), 제257조(기부행위의 금지제한 등 위반 죄) 제1항 중 기부행위를 한 죄 또는 ‘정치자금에관한법률’ 제30조(정치자금 부정수 수죄) 제1항의 정치자금부정수수죄를 범함으로써 징역형 또는 벌금형의 선고를 받은 때에는 그 후보자의 당선은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3) 헌재 2005.12.22. 2005헌마19, 판례집 17-2, 785, 799-800(밑줄과 강조는 첨가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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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 법철학연구

즉 “자기책임의 원리는 인간의 자유와 책임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진지하

게 반영한 원리로서 비단 민사법이나 형사법에 국한된 원리라기보다는 근대법

의 기본이념으로서 헌법의 기본원리의 하나인 법치주의에 당연히 내재하는 원

리”이며 그러한 의미에서 “헌법에 내재하는 헌법상 원칙”이라는 것이다.14) 물

론 법원리명제를 취한다고 해서 반드시 자연법론인 것은 아니지만 자연법론은

반드시 법원리명제를 포함하고 있다고 해도 될 것이다.

Ⅲ. 자연법론 태동의 배경: 악법상황, 사회정의의 실현, 개인의 도덕적 완성

독립신문에서 간헐적으로 등장한 자연법사상15)이 법이론이나 법실무상

본격적인 모습을 갖추게 되는 것은 해방 이후 법체계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법을 적용해야만 했던 법현실, 특히 6․25 한국전쟁 하의 법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된다. 이는 한국의 법체계에서 자연법론이 태동하게

되는 이론적․현실적 맥락이 무엇이었는지를 추론하게 해주며, 현재의 자연법

론에도 커다란 시사점을 준다고 생각한다.

  1. 악법을 적용해야만 하는 법관의 딜레마와 자연법론의 태동: 유병진(柳秉震: 1914-1966) 판사의 사례

기본적 인권이 극도로 침해되고 대규모의 법률적 불법행위가 자행되는 ‘악

법상황’에서 그러한 악법들을 적용해야만 하는 법관은, 그가 통상의 법관으로

서의 양심을 지니고 있다면, 다음과 같은 4가지 선택지에 직면하게 된다.16)

14) 이러한 사상은 헌재 2004.6.24. 2002헌가27, 판례집 16-1, 706, 714-715에서도 나타난다. 15) 이에 대해서는 전봉덕, 한국근대법사상사, 박영사, 1980, 188면 이하 참조.

16) 악법을 적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법관이 택할 선택지 문제는 본래 미국의 법철학자 인 커버(Robert M. Cover) 교수가 도주노예법(Fugitive Salve Law)을 적용해야 하 는 미국의 법관들의 문제를 다루었던 자신의 저서 Justice Accused: Antislavery and the Judicial Process(Yale Univ. Press, 1975), 6면에서 제시한 것이다. 논쟁의 소재였던 법관은 1830년에서 1860년까지 매사추세츠 주 최고 법원의 재판장이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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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체계에서 자연법론의 형성과 발전 193

① 법관은 자신의 양심에 반해서 어쩔 수 없이 악법을 적용한다.

② 법관은 자신의 양심에 따라서 해당 악법을 따르지 않는다.

③ 법관은 판사의 직을 사임하고 저항운동에 참가한다.

④ 해당 악법은 자신이 법이라고 확신하는 바에 위배된다고 보고, 우회로를 통

해서 (자신이 법이라고 확신하는 바의) 법과 정의(도덕)에 충실하도록 악법적용을

배제하거나 가능한 한 축소시킨다.

필자는 한국의 자연법론이 태동하게 된 배경은 바로 악법 적용의 상황에 직

면한 법률가들의 딜레마였다고 확신한다.

구체적으로 유병진 판사의 예를 들어 설명해보고자 한다.17) 유병진 판사는

      1. 서울 환도 후 「비상사태 하 범죄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령」(1950. 6.
  1. 대통령 긴급명령 제1호: 이하 ‘특조령’)18)을 적용하여 서울을 빠져 나가지 못

쇼(Lemuel Shaw)이다. 그는 강력한 노예제폐지론자(abolitionist)였고 19세기의 가 장 유능한 법관 중 하나였으나, 1851년경 매사추세츠 주가 아닌 연방 정부가 도주 노예를 취급하는 데 배타적 권한이 있다고 판결[Thomas Sim's Case, 7 Cush. 285 (Mass. 1851)]을 내린 이후 그는 ‘배반자’이며 ‘노예 상인’이라 비방당했다. 미국의 법철학계에서는 쇼처럼 당대 최고로 유능한 법관이 왜 그런 판결을 내리게 되었는 지를 법철학적 측면에서 따져보고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해보는 진지한 논쟁이 벌 어졌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당시의 다양한 판결들과 방대한 문헌들, 그리고 실정 법적인 쟁점과 법철학적 논점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는 Anthony Sebok, “Legal Positivism and American Salve Law: The Case of Chief Justice Shaw,” D. Dyzenhaus (ed.), Recrafting the Rule of Law: The Limits of Legal Order, Oxford, 1999, 113-142면 참조. 이를 보다 일반적 문제(악법적용과 법관의 의무)로 접근하여 분석하는 J. Feinberg, Problems at the Roots of Law, Oxford, 2003, 3-35면 참조. (독자들을 위해 해당 제목을 소개하면: “Natural Law: The Dilemmas of Judges Who Interpret Immoral Laws”). 참고로 본문의 4가지 선택지는 커버 (Cover) 교수의 구분을 받아들여 J. Feinberg, 위의 책, 19면 이하에서 고찰한 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17) 유병진 판사의 일생과 사상에 대해서는 최종고, 한국의 법률가, 서울대학교출판부, 2007, 458-481면 참조. 또한 신동운 편저, 유병진 법률논집: 재판관의 고민, 법문사, 2008, 391-403면 참조. 또한 1994. 1. 30에 KBS에서 방영되었던 “다큐멘터리 극장 인 물발굴 (2): 유병진 판사”편도 참조. 이하 유병진 판사의 논문은 신동운 교수의 편저 로 출간된 유병진 법률논집: 재판관의 고민(법문사, 2008)을 참조하였다. 18) ‘특조령’에 대해서는 한인섭, “한국전쟁과 형사법,” 서울대학교 법학 제41권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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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 법철학연구

했던 잔류시민들을 부역범(附逆犯)으로 처벌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19)

‘특조령’이라는 악법 하에서 많은 시민들이 부역범으로 사형되는 부조리한 현

실 앞에서 유병진 판사는 “진실로 법률의 노예가 될 지경”에서 벗어나려면 “판

사의 직에서 떠나버려야 한다”는 양심적 갈등에 빠졌다.20) 자신이 재판해야만

억울한 시민들을 구할 수 있지만 이는 엄연하게 존재하는 실정법을 앞에 두고

‘回避의 橫路’를 찾아 재판관으로서 법규범을 창조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처하

게 된다.21) 법관의 양심과 법관의 의무(실정법에 충실해야 할 의무) 사이의 갈등

(2000), 135-179면, 특히 139면 참조. 이 ‘특조령’은 “한국 현대사에서 만들어진 법령 중 가장 엄중한 형벌을 규정한 법령”(한인섭, 앞의 논문, 139면)으로서 전시 하의 중대 범죄 및 일반범죄에 대하여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고, 범죄의 구성요건도 포괄적이었지만 적의 치하에서 마지못해 협력한 생 활형 부역자들도 극형에 처하도록 하는 규정을 포함하고 있었다. 또한 증거재판주의 와 심급제의 원칙도 무시하는 신속․졸속․약식처벌의 규정으로 인해 당시의 많은 시민들이 최소한의 인권조차도 보장받지 못한 채 처형되었다. 그리하여 이미 당시에 이 ‘특조령’의 악법성에 대한 비판이 강하게 제기되었고, 국회에서 개정되기에 이른다.

19) 여기서 부역자란 ‘적의 치하에서 혹은 자진하여 혹은 위협과 강제에 못 이겨 역도에 게 협력한 자’를 말하며, 부역자 처단의 목적은 ‘피탈지역을 수복함과 동시에 이들 부역자에 대한 방침을 확립하여 일면 민족정기를 밝힘과 동시에 타면 민심의 불안을 진정하도록 할 것이 긴급한 과제’였다. 대한민국국방부정훈국 전사편찬회, 한국전란 1년지, 1951, A76.

20) 전쟁으로 인해 집주인이 장기간 피난한 빈집에서 고추장을 훔친 사람에 대하여 ‘특 조령’에 따라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중형에 처하라는 검찰의 구형에 대하여 유병진 판사는 무죄를 선고하면서 다음과 같이 토로한다: “나는 그 중형을 과하기에 는 너무나 큰 법과 현실과의 간격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진실로 법에 사로 잡혀야 할 지경이라면, 아니 법률의 노예가 될 지경이라면 나는 판사의 직에서 떠나 버려야 한다. 그리하여 이러한 고민은 또다시 재판의 목적과 법률의 준수성과의 모 순 해결에로 귀착된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전과는 달리 법의 정면으로의 무시다. 아 니, 법의 무시라는 것보다도 재판으로서의 한 규범의 창조인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대담무모하게도 이에 대하여 무죄의 판결을 하였던 것이다”(신동운 편저, 유병진 법률논집: 재판관의 고민, 152-3면). 21) 이 때 유병진 판사가 재판규범으로서 원용한 규범이 기대가능성 원리였다.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소극적으로 부역한 시민들에 대한 처벌과 관련해서 근본적인 이 론적 해결을 모색하다가 유병진 판사는 “강압적인 정치에 피신하지 못한 몸, 그러고 보면 역도들에 대한 최소한의 협력은 불가피한 것이다. 적어도 그러한 범위 내에서 는 우리는 그들에게 그 不行爲를, 즉 그러한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을 기대하지는 못할 것이요, 따라서 그 최소한도의 행위에 대하여 그 범의를 인정하여 이를 문책할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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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체계에서 자연법론의 형성과 발전 195

으로부터 실정법의 효력과 실정법의 교정에 대한 절박하면서도 심층적인 사유

가 시작된 것이다.22)

이처럼 실정법의 한계에 부딪쳐서 유병진 판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회실정을 무시한 규범은 정의일 수 없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그것은 하나의

악인 것이다. 악인 이상 우리는 그것을 물리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악일지라

도 그것이 권력에 날개 돋친 한 우리는 덤벙덤벙 이에 부딪쳐서는 안 될 것이다. 그

권력은 형벌이라는 무기로써 장비되었으며 이를 파괴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전술

은 입법이라는 법개정 이외에 아무 도리도 없는 것이다. 이에 우리는 정면충돌이라

는 순로(順路)로부터 벗어나 회피(回避)라는 횡로(橫路)를 택(하여야 한다).”23)

그리고 또한 다음과 같은 주목할 만한 견해를 피력한다.

“그렇다. 재판도 하나의 정치인 것이다. 재판도 국가통치권의 하나인 작용인 이

상 국민을 위하여야 할 것이요 동시에 국가를 이롭게 하여야 할 것이다. (…) 현실에

초연한 재판이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 법은 우리의 재판관에게

자유재량이라는 범위를 허여하여서 사람 사람에 따르는, 아니 각 경우에 입각되는

과부족이 없는 타당한 재판을 시키려 한다. 적어도 그러한 자유재량을 할 수 있는

정도 내의 우리의 재량행위는 확실히 하나의 정치인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러한

없다는 것이다.”는 결론에 도달한다(신동운 편저, 앞의 책, 111면). 유병진 판사는 이 러한 기대가능성론을 받아들이게 되면 다음과 같은 “回避의 橫路”가 해결책으로 등 장하게 된다고 보았다: “그것은 「피고인은 …을 하여서 역도에게 협력한 것이다」라 하여 피고인의 적진돌입을 示現하나 「그러나 …에 의하면 동 행위는 당시 역도들의 압력에 의한 불가피한 행위로 인정함이 타당할 것인즉 피고인에게 그 不行爲를 기대 할 수 없을 것이요, 따라서 그 犯意를 인정할 수 없다」라고 하여 그 어마어마한 敵前 에서 벗어나게 한다”(신동운 편저, 앞의 책, 113면). 22) 이러한 고뇌의 산물은 유병진, “정의와 법강제의 한계―장후영 선생 현실주의법학 에 대하여를 읽고” 법정 제7권 5호․6호(1952. 6), 3-8면, 13면; 유병진, “재판관의 고민―부역자처벌법에 관하여,” 신태양 제6권 7호(1957), 신태양사; 유병진, 재판관 의 고민, 서울고시학회, 1957(이는 1952년 동 제목으로 신한문화사에서 출간된 것이 다)로 나타난다. 23) 신동운 편저, 앞의 책, 1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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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 법철학연구

자들을 대답하게 형벌에서 벗어나게 함이 그들을 위함이요 동시에 국가를 이롭게

하는 소이이며, 이것이 곧 재판의 목적을 달성하는 길인 것이다.”24)

그렇다면 재판관은 실정법에 충실한 입법의 시녀라는 견해에 반대하는 자유

법론에 따라25) 부역한 시민들을 대담하게 처벌하지 않아야 할 것인가? 유병진

판사는 자유법론을 다음과 같이 이해하고 있다. 자유법운동이 내세우는

“주장의 골자는 법률학에 있어서의 논리적인 개념구성방법을 철저히 배격하며 법

전의 권위를 가급적 감소함과 동시에 재판관의 권한을 될 수 있는 대로 증가시켜서

시시각각 유전하는 사회적 실재에 일층 적합한 재판을 시키려 함에 있다. 법조문에 얽

매이어 그것을 기초로 개념구성을 할 뿐 현실의 사회적 사실에는 일고도 하지 않았던

종래의 경향에 대한 일대 반항인 것이다. 그 목적은 요컨대 실제적이며 종래의 개념

법학의 부정인 것이요 나아가서는 재판관의 법조문으로부터의 해방인 것이다. 그리

하여 법조문의 고정과 재판관의 자유로운 인격과는 서로 상반되는 극단에 선다.”26)

이렇게 자유법론에 입각하여 부역자들을 처벌하지 않는 것이 국민을 위하고

국가를 위하는 것이며 재판의 목적이 아닌가? 유병진 판사는 고뇌에 찬 목소

리로 부르짖는다.

“그러나, 그러나 안 될 일이다. 아무리 재판이라고 하더라도 법을 넘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 자유재량도 법의 인정하는 범위 내에서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면 기어코 안 된다는 말인가. 과연 이것[처벌하지 않는 것 -인용자]을 단념하

여야 할 것인가? 그러한 궁지에서 헤맬 때 나의 가슴은 법에 대한 분노로서 꽉 찼

다. 그 분노는 나의 얼굴까지 붉게 하였으며 그 사색조차도 혼란하게 하였다. 이것

이 무슨 법일까, 이러한 법을 만들려면 하루에 몇 개라도 만들 것이다. 입법가는

무엇이라도 만들면 그것이 제법 법인 줄만 아는가? 고약한 법. 아니 그들은 법이

란 무엇인 줄 알고 있을까. 법은 감정으로써 만드는 것일까.”27)

24) 신동운 편저, 앞의 책, 117-118면

25) 신동운 편저, 앞의 책, 240면 이하 참조. 26) 신동운 편저, 앞의 책, 240면. 27) 신동운 편저, 앞의 책, 1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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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체계에서 자연법론의 형성과 발전 197

법관으로서 가져야 할 실정법에 대한 충실의무와 자유법론에 따라 올바르게

재판을 해야 한다는 법철학적 양심 사이에서 당시의 ‘법에 대한 분노’와 재판

관의 실존적․사회적 고민을 거쳐서 유병진 판사는

“법은 정의이며 정의의 실현을 주된 사명으로 하는 사회로서의 존재인 한 국가

의 법도 그것이 정의와 분리되어서는 권위가 없을 것이다. 법적 안정의 입장으로 볼

때 법의 내용 여하에도 불구하고 인민은 국가의 명령에 복종할 것이 요구될 것이다.

그러나 국가 및 그 법도 정의에 구속되는 이상 국가의 명령이 정의 즉 자연적․도덕

적 원리에 위반하지 않아야 된다는 것만은 최고의 원리로서 인정되지 아니하면 안

될 것이다.”28)

는 결론에 도달한다. 동시에 유병진 판사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수결에 의한

결정이 정의라고 하는 견해에 대하여 반대하면서 정의는 다수결 위에 ‘옳음’이

라는 가치판단이 더해져야 한다는 실질적인 정의관을 제시한다.29)

법은 가변적이고, 자연법과 조리도 가변적이라는 견해에 서서 당대의 사회

적 현실에 맞추어서 법을 파악30)하려 했던 유병진 판사는, 입법자가 불완전하

게 제정한 법률에 대하여 ‘악법도 법이다’라는 견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입법의 시녀’에 머무르려는 당대의 사법부 풍조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법과 현실 간의 불일치를 조정하기 위하여 유병진 판사는 ‘자유법론’에 기대어

신의성실의 원칙, 사정변경의 원칙, 기대가능성론과 같은 정당한 규범을 원용

하여 재판을 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31) 특히 해방 후와 같은 ‘과도기적 상황

에서는’ 재판관은 ‘입법자의 시녀’에서 탈피하여 제정법과 법현실 사이의 불일

28) 신동운 편저, 앞의 책, 238면. 29) 신동운 편저, 앞의 책, 258면, 260면 참조.

30) 신동운 편저, 앞의 책, 231면. 31) 사족을 덧붙이자면, 유병진 판사는 자유법론의 한계(“재판관이 입법가의 노릇을 할 수는 없는 것”―신동운 편저, 앞의 책, 245면)도 인식하고 있었다. 재판관 개인의 주 관적 가치를 실정법보다 우위에 두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확하게 하면서, 개념구 성의 방법도 엄밀하게 하고 학설도 적절하게 원용하는 방법을 써서 가능한 한 실정 법을 그대로 적용했을 때 생겨나는 극도의 불합리함을 해소하고자 노력하여야 한다 는 점을 강조한다. 이에 대해서는 신동운 편저, 앞의 책, 241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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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법철학연구

치를 조정하는 ‘입법의 조정자’에서 심지어는 ‘입법의 후견으로서의 지위’에까

지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피력하기도 하였다.32)

‘입법의 후견’이라는 용어로 유병진 판사가 말하고자 했던 바는 무엇이었을

까? 이러한 대담한 주장의 이면에는 법과 정의의 갈등에 대한 다음과 같은 문

제의식이 작동하고 있었다.

“비상조치령[‘특조령’―필자]이라는 법을 존중하여야 할 것인가 혹은 본래의 부

역범이라는 社會條理 다시 말하면 사회생활의 현실을 존중하여야 할 것인가.33) 법의

준수는 현실을 무시하게 하고 현실에의 추종은 법을 유린케 한다. 그러면 법과 현실

과의 모순, 아니 간격을 어떻게 해결하여야 할 것인가. 종래 많은 학자들은 아니 실

무가들은 외쳤다. 아니 현재에도 외친다. 「법은 그 내용이 정당하든 말든 간에 국민

을 이에 복종시킴으로써 사회의 안녕질서를 유지한다. 따라서 각 개인은 법내용의

당부를 일일이 심사하지 않고 법의 의사에 백지적인 복종을 하여서 법을 존중하여

야 한다. 어떠한 법이라 하더라도 국가의 명령으로서 사회생활의 질서를 유지하는

역량을 가지고 있는 한 그것은 그 내용을 떠나서 적어도 존재 자체에 의하여 법의

하나의 목적인 법적 안정에 봉사하는 것이다」라고. 그러한 사람의 눈으로 볼 때에

「재판관은 자기의 법률적 감정을 희생하고 법의 명령에 복종할 따름이다. 결코 법이

정의에 알맞느냐를 문제시하여서는 안 된다」라고 관념하며, 다시 「재판관은 모름지

기 법의 충실한 시녀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외친다. 물론 법은 충

실하게 준수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입법의 충실한 시녀까지 되어야 할 것인

가? 정의 아닌 법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 법에 맹목적인 주종을 하여야 할 것인가?

32) 신동운 편저, 앞의 책, 253면. 33) ‘본래의 부역범이라는 사회조리’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유병 진 판사는 본래의 부역범이란 역도에게 협력한 자이지만, 협력의 정도가 문제가 된 다고 파악한다. 이때 평균인을 기준으로 해야 하며, 민족지사의 민족의식을 요구할 수는 없기 때문에 평균인의 민족의식에 대한 최소한도의 희망선과 생에 대한 애착심 의 강도선과의 어떤 접촉점에서 그 기준을 찾아야 한다고 유병진 판사는 말하고 있 다. 당시의 사회조건하에서 일반적으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도저히 국민에게 부역행위를 하지 말 것을 요구하지 못할 정도 내에서는 최소한도의 순종행위는 정당 하다고 판단되어야 하며, 이것이 “본래의 부역행위에 내재하는 사회조리”라는 것이 다. 이에 대해서는 유병진, “비상조치령에 있어서의 몇 가지의 과제,” 법정 제6권 9호 (1961.9), 9-13면 참조(신동운 편저, 앞의 책, 205-2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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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체계에서 자연법론의 형성과 발전 199

우리는 국민에게 不當[不正義―필자]을 강제할 수 있을 것인가. 법을 준수하기 위한

국민일까. 국민을 위한 법이 아닐까.”34)

악법이라도 준수해야만 사회질서가 유지된다는 당대의 또는 전형적인 법실

증주의자의 주장에 대하여 유병진 판사는 “그러한 걱정은 너무나 과도한 것”이

라고 지적한다. 법과 현실의 갈등단계를 구분하여 유병진 판사는 법과 현실의

유리가 “초급단계”라면 법실증주의자의 걱정이 일리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정의 아니 진리의 옹호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법이 그 정의를 배반하고 그

從的 목적인 법적 안정에만 봉사할 수” 없다는 반론을 펼친다.35) 그리고 “진리

아닌 법에 대하여 또는 진리를 잃은 법”에 대하여 정의의 수호자로서 자처하는

법률실무가인 한 이러한 법에 대하여까지 맹목적인 추종은 할 수 없다고 선언

한다.36) 이는 라드브루흐의 ‘불법공식’을 연상케 하며 자연법론의 ‘불법명제’(극

도로 부정의한 법률은 법이 아니다)에 일치하는 사고방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법이라 한들 진리에 어긋나는 한 결단코 항쟁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

진리를 살려야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종래의 우리의 태도는 어떠하였던가.「악법

도 법이다」라는 눈초리를 두려워해서 고두(叩頭) 이에 추종만 하지 않았던가. (…)

「아! 시끄러워 법이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을 어찌하겠소. 결과가 부당하다는 것이야

나도 잘 알지만 나를 원망하기보다는 법을 원망하시오. 나는 모르겠소」라고 변명하

면서 재판관의 책임을 면하려 할 것인가. (…) 아니다. 우리는 사회적 부정의에 대하

여 의분의 눈물을 흘려야 할 것이오, 사회악에 대하여 광정(匡正)의 정열을 기울여

야 할 것이다. 그 의분이나 정열의 앞에 무슨 안주지가 있을 것이며 무슨 책임전가가

있을 것인가. 거기에는 오직 결단과 용기로써 진리의 옹호에로의 과감한 돌진이 있

을 따름이다. 이러한 돌진만이 도리어 법을 살리는 소이인 것이요, 국가․사회에의

최대 봉공일 것이다.”37)

34) 신동운 편저, 앞의 책, 101면.

35) 신동운 편저, 앞의 책, 105면. 36) 신동운 편저, 앞의 책, 105면. 37) 신동운 편저, 앞의 책, 105-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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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법철학연구

물론 사회현실을 반영하고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법의 개폐절차가 마련

되어 있다면 법의 존엄성이 절대적이지만, 만일 불완전하다면 “그 불완전성의

정도에 따라 이에 정비례하는 다른 부문으로부터의 보충을 받아야 할 것”이라

는 전제 하에서 유병진 판사는 재판을 통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38)

“필경 법은 자신의 不法不當을 교정하고 혹은 입법 후 사회사정의 변천으로 인

한 법의 결함을 보정하여 주는 어떠한 작용을 필요케 한다. 이것이 법에의 재판관의

협력이 요청되는 소이인 것이다. 그리하여 법의 불완전성이 심할수록 법조정의 책무

가 중대화될 것이며 그 정도가 우심(尤甚)함에 이르러서는 조정의 범위로부터 후견

의 단계에로 전이치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감정과 소홀에 빠지기

쉬운 과도기에 있어서의 재판관의 주의심은 이러한 방면에 집중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이러한 작용을 어떻게 하느냐는 곤란한 문제이다.”39)

아마도 ‘(입)법의 후견’이라는 표현으로 유병진 판사가 말하고자 했던 바는

불완전한 입법에 대해서 ‘법원리를 통한 보완’ 또는 ‘법원리를 통한 법흠결의

치유’였을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앞에서 든 자연법론의 ‘법원리명제’에 상응하

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유병진 판사의 견해로부터 배울

수 있는 바는 ‘법률의 부정의 정도에 따라 법원리에 따른 재판관의 법보충의

정도가 커진다’는 주장이다. 이는 ‘불법 명제’에 상응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1958년 1월 12일 조봉암 외 17인의 진보당 당원이 구속된 사건에서 동년 7월

2일 유병진 판사는 1심 재판의 재판장으로 평소의 자신의 소신대로 조봉암에

게만 어쩔 수 없이 국가보안법위반죄를 적용하며 징역 5년을 선고하고 나머지

피고인들에게는 무죄를 선고하였다. 이 판결로 말미암아 유병진 판사는 1958

년 말 법관재임용에서 탈락되었다.40) 독재정권, 즉 악법체계 하에서 자연법에

기초한 법관의 양심을 지켰던 법관들 및 법률가들의 운명과 자연법론의 험난

한 길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38) 신동운 편저, 앞의 책, 107면. 39) 신동운 편저, 앞의 책, 107-8면(강조와 밑줄은 첨가한 것임). 40) 최종고, 앞의 책, 479-480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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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체계에서 자연법론의 형성과 발전 201

  1. 개인의 완성과 제도적 정의의 구현: 토마스 아퀴나스의 자연법론을 계승한 자연법론

서구 자연법론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자

연법론이다. 한국에서 토미스트 자연법론의 영향을 받은 법률가 및 법학자로

서는 대표적으로 법실무가로서는 故 김홍섭 판사,41) 법철학자로서는 故 이태

재 교수(1921-2003)를 들 수 있다.

특히 1950년대 말부터 일관되게 자연법론을 전개해온 이태재 교수는 아퀴나

스의 자연법론을 받아들여 이른바 신자연법론(네오 토미스트 자연법론)을 제시

하면서 국가와 법의 목적을 개인의 도덕적 완성과 개성의 자유로운 발현에 두

고, 사회질서와 법질서의 목표를 구체화하려고 시도하였다.42) 법실증주의가

지배하는 한국의 법체계에서 이태재 교수는 본격적으로 자연법론의 기초를 닦

고 그 내용을 구체화하려고 시도하였는데 그 근본주장은 다음과 같다.

“법은 인간생활에 투영된 정의의 영상이다. 따라서 변천하는 인간생활면과 함께

그 영상도 또한 변천한다. 그러나 결코 정의는 변하지 아니한다. 자연법의 내용은

정의의 구현을 위한 질서이다. 인간이 이성의 빛으로 신이 정립한 연구법에 참여할

때에 발견되는 질서가 자연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자연법은 영구불변하는 인

간규범이면서도 실천이성의 발달과 함께 영원히 발전한다. (…) 자연법은 인류사회

가 지속되는 한 영원히 발전할 것이다.”43)

나아가 이태재 교수는 국가와 법의 목적은 인간 개개인의 완성에 있다고 하

면서 다음과 같이 전형적인 신자연법론의 사상을 제시한다.

“인간사회의 모든 질서는 정의의 구현을 위한 수단이다. 더 상세하게 말한다면

인간의 품위(존엄성 dignites)와 정의(justitia)와 공통선(bonum commune)을 보장

하고 발전시킴으로써 개개인을 완성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상은

41) 김홍섭 판사의 자연법론에 대해서는 최종고, 사도법관 김홍섭: 한 법률가의 사상과 신앙, 育法社, 1985 참조. 42) 이태재, 자연법개론―사회질서의 사상체계, 법문사, 1962. 43) 이태재, 자연법개론,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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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 법철학연구

목적이 국가에 있지 아니하고 인간 개개인의 완성, 즉 인간 자체에 있다는 점에

있어서 국가사회주의나 전체주의와 상반되는 동시에 공통선을 통한 개개인의 완

성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 있어서 개인주의와도 상위한 것이다.”44)

토미스트 자연법론은 국가와 법의 목적이 개개인의 도덕적 완성 및 개성의

자유로운 발현에 있다는 완전주의(perfectionism)를 특징으로 한다.45) 토마스

아퀴나스의 자연법론에 바탕을 둔 이태재 교수의 자연법론은 당시의 법현실에

직접적인 관련성을 갖고 있지 않았으므로 당대에는 이론적으로나 실무상 두드

러진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하였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네오 토미스트의

자연법론은 70-80년대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법철학적 기반으로 작용하였고,

12․12 군부쿠데타와 5․17사태에 대한 재판과정에서 권성 서울고법부장판사

의 판결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1. 70-80년대 민주화 운동과정에서의 자연법론

70-80년대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법현실과 대면하여 학문적인 차원에서 제

공되는 법철학의 역할은 미미했다. 나치 시대에 독일의 법철학이 질식당하였

듯이 당시 한국의 법철학이 법현실을 향하여 발언할 공간 역시 유신헌법으로

인해 위축될 대로 위축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 아래에서는 이

론적으로 정교함과 세련됨을 갖춘 민주적인 법실증주의가 아니라, 유병진 판

사의 말을 활용하자면 ‘권력의 시녀’가 되어버린 천박한 법실증주의가 득세하

게 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자연법론은 학계에서가 아니

라 인권변호사들의 변론에서, 민주화운동을 수행하던 지식인들이나 시민들의

발언에서, 긴급조치나 집시법 또는 국가보안법위반으로 구속기소된 학생들의

발언 및 항소이유서에서 등장하여 저항의 법담론으로서 전개되었다.

44) 이태재, 앞의 책, 15면(강조는 첨가된 것임). 45) 자연법론과 완전주의 밀접한 관련성은 J. Finnis, Natural Law and Natural Rights, Oxford, 1980; R. P. George, Making Men Moral, Oxford, 1997에서 잘 드러난다. 완전주의에 대해서는 T. Hurka, Perfectionism, Oxford, 199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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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체계에서 자연법론의 형성과 발전 203

(1) 유신 헌법과 긴급조치, 법관의 딜레마―인권변론과 자연법론

유신헌법 제102조는 “법관은 이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

하여 심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었다. 필자는 법관의 양심을 보장하고 있는 듯

이 보이는 유신헌법의 이 조항이야말로 법관의 양심을 옥죄는 질곡의 헌법적

원천이었다고 생각한다. 제헌헌법과 여타의 대한민국 헌법들에서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법관이 재판을 할 때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헌법의 연속성을 감안하여

제헌헌법의 정신과 규범을 원용할 수 있다. 그러나 유신헌법은 ‘이 헌법’이라고

제한함으로써 긴급조치관련 사건에서 이 헌법 이외의 제헌헌법이나 제2공화

국 및 제3공화국 헌법에서의 기본권규범들 및 법원리들을 원용할 여지를 완벽

하게 봉쇄(배제)해버렸다.

이렇게 유신헌법 제102조는 적어도 이전의 헌법들에는 ‘포용’되어 있었던 기

본적 인권의 보장이나 근본적인 정의원리나 정치도덕원리들을 재판규범으로

서 원용되는 것을 완전히 차단하고 배제하는 효과를 낳았다. 이러한 배제 효과

는 긴급조치관련 사건에서 악법을 적용해야만 하는 법관들에게 엄청난 양심적

갈등을 일으키게 한다. 1970년대 폭압적․초법적 규제인 긴급조치에 따라 수

많은 유죄판결이 잇따랐던 현실에 대해 당시 재판에 참여했던 법관들 가운데

상반된 대답을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당시 법관들이 느꼈던 참담

함과 부끄러움을 잘 보여주고 있다.46) 우선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부끄러워하

는 법관들의 반응을 보면 다음과 같다.

① “유신 시절 긴급조치 위반 사건을 맡았을 때 깊이 고뇌했다. 사표를 낼 것이

냐 판결을 내릴 것이냐를 두고 양심의 갈등을 느꼈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잡혀온 학

생이나 시민에게 무죄를 내리고 싶었지만, 불가능하다면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그마

저도 불가능하다면 어쩔 수 없이 판결을 내렸다.”(헌법재판관 출신 변호사)

② “나는 긴급조치 위반 사건을 포함한 형사사건이 적은 지방에 근무하고 있었

다. 그 때는 서울에서 근무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당시를 떠올리면 솔직히 괴

46) <한겨레> 1월 25일자 1․4면 참조. 이하는 <한겨레>가 당시 긴급조치 위반 사건을 판결한 법관 492명의 명단을 입수해 이 가운데 직․간접적으로 연락이 닿는 45명에 게 당시 판결의 정당성에 대한 견해를 물어본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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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 법철학연구

롭다. 그 때 일은 돌이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 중 하나다.”(대법관 출신 변호사)

③ “현직에서 긴급조치와 관련한 사건을 접할 때는 항상 마음이 무거웠다. 그

때는 살아 있는 법이 있었고, 어쩔 수 없는 판결을 했다. 그 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픈 것이 사실이고 그것은 우리의 공동 책임이라고 생각한다.”(고등법원장 출신 변

호사)

이들의 말에선 현행법을 판결의 준거로 삼을 수밖에 없었던 법관의 반성과

회한이 묻어난다. 이는 앞에서 든 악법을 적용해야 하는 법관의 딜레마 중 첫

번째 선택지를 택한 경우이다.

그러나 나머지 대부분의 전․현직 법관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당

시엔 어쩔 수 없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게다가 긴급조치 위반사건 판결에 참

여했던 전직 법관들은 대부분 당시 판결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꺼렸고 일부는

판결 내용과 법관 실명을 공개하는 데 반발하는 모습도 보였다.47) 우선 당시와

지금의 사회 분위기가 다르다는 ‘상황 논리’를 펴는 이들이 상당수였다. 1970년

대 고등법원 형사부장을 지낸 모 변호사는 “긴급조치 당시는 모든 것이 통제된

상황이라 소신대로 판결하려고 해도 어려웠다.”며 “긴급조치도 법령이어서 그

대로 적용했지만 될 수 있으면 양형을 내리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1971년 7월 ‘사법파동’48)이 일어나고 이어서 홍성우, 최영도 판사 등을 중심

47) <한겨례> 신문사가 492명의 법관이 이후 법원에서 어떤 직책을 거쳤는지 일일이 추 적해본 결과 현직 고위 법관으로 재직 중인 이가 12명에 이르렀으나, 이들은 “특별히 할 말이 없다.” “실정법에 따라 재판했다.”는 등의 반응을 보이거나 아예 답변을 꺼렸 다고 한다. 유신시대 이후 고위 법관을 지내다 퇴직한 이는 101명에 이르렀다. 48) 한국의 司法史에서 두 번의 사법파동이 있었는데, 바로 1971년의 제1차 ‘사법파동’과 1988년 제2차 ‘사법파동’이다. 제1차 사법파동의 배경을 간략하게 언급하자면 1967년 전면개정된 국가배상법 제2조 1항과 관련하여 소장 판사들이 적극적으로 위헌의견 을 개진하고 대법원에서도 위헌이라고 판시하자, 당시 정권은 검찰과 경찰을 동원하 여 법관을 통제하고 시국사건에 대하여 무죄판결을 선고한 법관을 사찰하면서 구속 영장을 청구하였다. 이에 항거하여 전국의 법관들이 정면으로 반발하고 여론도 사법 부에 유리하게 전개되자 정권은 물러났다가 1년 후 유신체제가 들어서면서 위헌판결 을 내린 9인의 대법원 판사들과 법관 40여명을 법관재임명에서 탈락시키게 된다. 제 1차 ‘사법파동’의 계기가 되었던 문제의 ‘국가배상법위헌판결’(대법원 1971.6.22. 선고 70다1010 판결)은 1995년 한국사법백주년을 기념하여 법관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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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체계에서 자연법론의 형성과 발전 205

으로 한 젊은 법관들이 사법권 위협에 항거하면서 집단사표를 제출하게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사법부는 정치권력에 급속하게 예속되게 되고, 사표를 제출

한 젊은 판사들이 당시 한승헌 변호사, 이돈명 변호사, 유현석 변호사, 조준희

변호사 등을 중심으로 한 인권변론활동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인권변호의

막이 오른다.49) 필자는 이 과정에서 신토미스트 자연법론의 영향이 컸다고 생

각한다.50) 가령 다음과 같은 예를 보자. 주지하듯이 유신체제 하에서는 고문과

조작이 일상적이었는데51) 당시 이에 대한 비폭력적 투쟁방식 중의 하나가 ‘양

심선언운동’이었다. 당시 양심선언의 전범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았던 지학순

주교는 1974년 7월 6일 긴급조치 제1호와 4호 위반 혐의로 연행될 때 고문과

조작으로 인한 진상왜곡의 위험을 앞두고 자신이 행하게 될 진술은 고문에 의

한 것임을 미리 밝히면서 이에 덧붙여서 유신헌법은 무효이며 진리에 반대되

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판결로 꼽혔다. 49) 유신체제 하에서의 민주화운동과 인권변론에 대해서는 한승헌 외, 「유신체제와 민주 화운동」, 춘추사, 1984 참조; 이석태 외, “‘무죄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인권 변호 사 황인철, 그의 삶과 뜻,” 문학과지성사, 1998 참조; 한승헌, 분단시대의 법정, 범 우사, 2006 참조. 50)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되어 옥고를 치루고 있던 김지하 씨가 1975년 2월 석 방되었다가 석방 직후 <고행 1974>란 글을 일간신문에 게재하였다는 이유로 다시 동년 3월 14일 재수감된다. 사형선고가 가능한 국가보안법상의 누범조항으로 그 어 떤 접견, 집필, 독서가 금지된 고립상황에서 공산주의자라는 자백을 강요받기에 이르 렀고 그렇게 작성된 자필진술서는 9개 국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유포된다. 이를 반박하기 위하여 옥중에서 양심선언을 준비한 김지하 씨는 1975년 5월 4일 완성한 후 이 <양심선언>서를 반출시켰고, 이것은 동년 8월 4일 외국에서 발표되었다. 여기 서 주목해야 할 점은 김지하 씨가 <양심선언>에서 “토마스 아퀴나스 이후의 카톨릭 정치사상에서는 민중의 생존을 유린하고 공동선을 침해하는 명백한 폭군적 압제를 타도할 자연법적 권리와 의무가 민중 자신에게 명백히 주어진 것으로 인정되어 왔 다. 이것은 압제에 의해 상실된 민중 자신의 인간성을 민중 스스로가 회복하는 폭발 적 전환점을 마련함으로써 민중의 급격한 보편적 각성, 즉 역사가 비약하는 기적을 일으킨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당시의 민주화 저항운동에서 법적 담 론, 그것도 아퀴나스적 자연법론 이론이 큰 역할을 하였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지하 씨의 양심선언은 한인섭 편, 정의의 법, 양심의 법, 인권의 법, 박영사, 2004, 195-219면에 수록되어 있다.

51) 유신시대의 고문현실에 대해서는 조갑제, 고문과 조작의 기술자들, 한길사, 198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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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 법철학연구

고 기본적 인권을 유리하는 악법이며 재판의 독립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선언

한다. 다음의 양심선언이 대표적인 것이다.

  1. 소위 유신헌법이라는 것은 민주헌정을 배신적으로 파괴하고 국민의 의도와는

아무런 관계없이 폭력과 공갈과 국민투표라는 사기극에 의하여 조작된 것이기 때문

에 무효이고 진리에 반대되는 것이다.

  1. 소위 유신헌법이라는 것은 국민이 최소한도의 양보도 할 수 없는 기본인권과

기본적인 인간의 품위를 집권자 한 사람의 긴급명령이라는 단순한 형식만 가지고

짓밟는 것이다.

  1. 소위 대통령 긴급조치 제1호, 제4호는 우리나라의 오랜 역사상 가장 참혹한

자연법 유린의 하나이다.52)

그리고 천주교 원주교구 평신도 일동의 이름으로 동년 10월 1일에 「지학순

주교에 대한 기소사실은 어떠한가」라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는데 그 중 다음과

같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 있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법무장관을 지낸 법철학자 구스타프 라드브루흐는

히틀러의 나치 곤욕을 겪은 다음 2차대전 종전 후 최소한도의 자연법원칙 하나를

제시하였다. 「국가권력을 위임받은 정부는 모든 시민들에게 정치적 사상의 자유를

허용할 책임이 있고 정치적 견해, 사상적 신념에 대한 관용의 의무가 있다. 다만

이러한 자유와 관용의 혜택을 받을 수 없고 또 받아서는 안 되는 시민이 있으니,

즉 자유와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자연법 자체를 파괴하려는 정치견해나 사상을

가진 분자들만은 자유와 관용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공산주의자나 나치

파시스트들이 그 예이다.」 그런 점에서 서독의 기본법이 공산당 기타 독재적 견해

를 불법화하고 우리나라도 국가보안법을 시행하는 것은 자연법적 근거가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지 주교는 공산주의자도 아니고 독재를 옹호한 분도 아니며 오히려

라드브루흐가 제시한 자연법을 사수하려는 분이다.”53)

52) 기쁨과희망사목연구소, 암흑속의 횃불 제1권, 1996, 67면.

53) 이 성명서 내용은 윤일웅, “유신정권과 정의구현사제단,” 한승헌 외, “유신체제와 민 주화운동, 98면에서 재인용하였다. 이 성명서에서 인용된 라드브루흐의 견해가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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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체계에서 자연법론의 형성과 발전 207

자신의 이론이 법철학자의 책상이나 강의실에서만 읽혀지고 논의되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폭압적인 권력과 천박한 법실증주의의 위력에 대항하는 논변의

이론적 무기로도 사용되었다는 것을 라드브루흐가 알았다면 매우 기뻐했을 것

이라고 생각한다.

긴급조치 제4호 위반으로 구속기소된 민청학련관련 학생들을 위하여 법정

변론을 하다가 강신옥 변호사는 ‘법은 정치의 시녀, 권력의 시녀’, ‘이 재판은

법을 악용하여 저지르는 사법살인행위’, ‘악법은 지키지 않아도 좋으며 악법과

정당하지 못한 법에 대하여는 저항할 수도 있고 투쟁할 수도 있는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게 되고, 이 변론 때문에 긴급조치위반, 법정모독죄 등으로 구속․

기소되어 비상군법회의에서 징역 10년과 자격정지 10년을 선고받았다. 강신옥

변호사는 <변호인의 변론을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는 제목의 항소이유서54)

의 ‘법률상의 저항권 이론’ 부분에서

“법학에 있어, 어떤 법률이 그 수범자인 국민을 구속하는 것이냐 아니면 법률

중에는 정당한 것도 있고 정당치 못한 법률이 있어 정당한 법률에 대해서만 국민을

구속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은 법률에 대해서는 준수할 의무가 없고 오히려 이 부당

한 법률에 대해서는 저항할 권리가 있다는 두 견해가 대립되어 있는바, 자연법이론

과 실증주자들의 견해가 그것이다.”55)

라고 시작한 후,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 키케로, 아퀴나스, 그로티우스,

로크, 근현대 미국의 사상가들, 전후 서독 각 주들의 헌법, 라드브루흐, 일본의

헌법학자 宮澤俊義, 마틴 루터 킹 목사 등의 견해를 간략하게 소개하고는 “어

록 정확한 것은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독재정권의 불법에 저항하는 논변으로서 라드 브루흐의 법철학이 원용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현실 속에서 법철학이 가지는 의미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재직하는 최종고 교수가 당시 2년여 간의 번역작업 끝에 1975년 라드브루흐의 법철학을 번역하였던 것은 그 때의 상황을 감안할 때 매우 의미심장한 사건이라고 본다. 이에 대해서는 G. 라드브 루흐 (최종고 역), 법철학, 삼영사, 1975 서문 참조.

54) 강신옥 변호사의 항소이유서 <변호인의 변론을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는 한인섭 편, 앞의 책, 223-258면에 수록되어 있으며 자연법론적 견해는 특히 237-240, 244- 252면에서 등장한다. 55) 한인섭 편, 앞의 책, 23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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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 법철학연구

떻든 현재 법철학에서는 자연법학자들의 이론이 더 우세한 상황에 있다고 본

인은 믿고 있습니다.”라는 자연법에 대한 신앙고백을 한다.56) 그리고 자연법이

론에 입각하여 당시 긴급조치 제1호 및 제4호를 ‘자연법에 반하는 정당하지 못

한 법’으로 보는 10가지 근거를 제시한 후,57) 긴급조치는 자신의 “자연법에 대

한 신앙심” 에 비추어보면 “바로 이런 법률은 지키지 않아도 좋은 악법이고 벌

써 법이 아니라고” 주장한다.58)

강신옥 변호사의 변론 및 항소이유서에서 등장하는 자연법론적인 발언은 단

순하면서도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이러한 견해는 당시 민주화운동에

관여했던 지식인, 학생들 및 시민들의 주장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59)

그렇다면 자연법에 대한 당시 대법원의 태도는 어떠하였을까? 1975년 민청

학련사건에서 변호인은 저항권에 기초한 변론을 제기하였는데, 당시 대법원은

상고심에서 이에 대한 견해를 다음과 같은 논변으로 물리쳤다.

“피고인들의 행위가 소위 저항권에 의한 행위이므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하

는 주장은 그 저항권 자체의 개념이 막연할 뿐만 아니라 (…) 이 점에 관한 극일

부소수의 이론이 주장하는 개념을 살핀다면, 그것은 현존하는 실정법질서를 무시

한 초실정법적인 자연법질서 내에서의 권리주장이며, 이러한 전제 하에서의 권리

로서 실존적 법질서를 무시한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것으로 해석되는바, 실존하는

헌법적 질서를 전제로 한 실정법의 범주 내에서 국가의 법적 질서의 유지를 그

사명으로 하는 사법기능을 담당하는 재판권행사에 대하여 실존하는 헌법질서를

무시하고 초법규적인 권리개념으로써 현존 실정법질서에 위배된 행위의 정당화

를 주장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받아들일 수 없다.”60)

자연법적인 견해에 대하여 정면으로 반박한 대법원은 법실증주의에 기반을

56) 한인섭 편, 앞의 책, 240면.

57) 한인섭 편, 앞의 책, 249-250면. 58) 한인섭 편, 앞의 책, 255면. 59) 가령 한승헌, “긴급조치와 긴급인권,” 한승헌 외, 유신체제와 민주화운동, 5-20면 참조; 윤일웅, “유신정권과 정의구현사제단,” 위의 책, 89-120면 참조. 60) 대판 1975.4.8, 74도3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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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체계에서 자연법론의 형성과 발전 209

둔 사법소극주의를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다.61) 그러나 이미 사법부 내에서 자

연법론을 받아들이는 흐름과 사법적극주의를 모색하던 흐름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후술하기로 한다.

(2) 제5공화국의 독재체제와 자연법론: 저항권의 자연법론

유신체제가 막을 내리고 1980년 봄 헌법개정논의가 활발하게 되면서 기본권

은 자연권이라는 의식이 확대된다. 이러한 법의식은 제5공화국 헌법에서도 ‘포

용’되어 제9조에서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그리고 제35조 2항에서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

우 국가가 기본권을 제한할 수는 있지만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

할 수 없다.”고 규정되었다. 기본권이 자연권적 성질을 갖는다는 견해가 헌법

에서 수용되었다는 것은 유신체제하에서의 민주화운동에서 자연법론이 가졌

던 역할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제5공화국의 악법체계에

서 위력을 발휘했던 담론은 이러한 자연권에 바탕을 둔 저항권의 담론으로서

폭압적 정체와 법의 타락에 대한 투쟁의 법철학적 기반이 되었다.62)

1975년의 판결과는 달리 1980년 ‘김재규사건’에 대한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저항권의 존재가 권리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논지가 시인된다고 하더라도 그

저항권이 실정법에 근거를 두지 못하고 오직 자연법에 근거하고 있는 한 법관

은 이를 재판규범으로 원용할 수 없다.”고 설시한다.63) 그러나 소수의견에서는

다음과 같은 견해를 제시하여 저항권과 자연법론에 대한 사법부 내의 변화를

감지하게 하였다.

“우리나라에 있어서의 정치의 기본질서인 인간존엄을 중심가치로 하는 민주주

의 질서에 대하여 중대한 침해가 국가기관에 의하여 행하여져서 민주적 헌법의 존

재 자체가 객관적으로 보아 부정되어 가고 있다고 국민 대다수에 의하여 판단되는

61) 동일한 견해로는 한인섭, 권위주의 형사법을 넘어서, 동성사, 2000, 130면 참조. 62) 당시 자연권으로서의 저항권을 제창한 대표적인 학자로는 김철수, “抵抗權 小考,” 서 울대학교 법학 제20권 2호(1980). 저항권 이론은 1980년 봄 헌법개정논의에도 영향을 주어 저항권을 헌법에 실정화하는 논쟁이 활성화되기도 하였다. 이 논쟁에 대해서는 법제처, 헌법연구반 보고서, (1980.3), 89-91면 참조. 63) 대판 1980.5.20, 80도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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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법철학연구

경우에 그 당시의 실정법상의 수단으로는 이를 광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경우에

는 국민으로서 이를 수수방관하거나 이를 조장할 수는 없다 할 것이므로 이러한 경

우에는 인권과 민주적 헌법의 기본질서를 옹호하기 위하여 최후의 수단으로서 형식

적으로 보면 합법적으로 성립된 실정법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국민의 인권을 유린하

고 민주적 기본질서를 문란케 하는 내용의 실정법상의 의무이행이나 이에 대한 복

종을 거부하는 등을 내용으로 하는 저항권은 헌법에 명문화되어 있지 않았더라도

일종의 자연법상의 권리로서 이를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할 것이고 이러한 저

항권이 인정된다면 재판규범으로서의 기능을 배제할 근거가 없다고 할 것이다.”64)

이와 같이 사법부 내에서 일어난 자연법에 대한 긍정적인 변화는 후에 5․

18관련 재판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일시 싹텄던 사법부 내

에서의 변화는 다시 위축되고 이후 7년 동안의 유례없는 폭압에 법철학적 자

연법론은 숨을 죽이게 되고 자연법론은 학계 외부에서 학생들의 학내시위, 노

동자들의 비합법노동운동, 민주화운동 그리고 법정투쟁에서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사법부와 검찰에서 지배적이었던 법실증주의의 폭력성에 절망하고 자

연법론의 무기력함에 실망한 학생들은 대항적 법이론을 모색하려는 노력을 하

게 된다.65)

(3) 사법적극주의의 등장: 법과 정의실현의 내적 관련성이 선언되다

1985년은 한국 사법부의 법철학사에서 기념해야만 할 해이다. 바로 이 해에

이회창 당시 대법관이 사법적극주의를 제창하고 대법원판결에서 비록 소수의

견이기는 하지만 이를 명시적으로 표명하였기 때문이다.66) 계엄법위반사건에

64) 임항준 대법원판사의 소수의견, 대법원전원합의체판례집(1990), 165면(당시 소수의 견은 한인섭 편, 앞의 책, 277-323면에 수록되어 있고, 임항준 당시 대법원 판사 소수 의견은 303-314면, 자연법론과 저항권 부분은 312-314면에 실려 있다). 65) 1989년 발족되었던 「민주주의법학연구회」가 이러한 이론적 모색을 보여주었는데, 여기에 참여하였던 법연구자들 이론적 경향은 (저항적) 자연법론, 비판법학, 마르크 스주의 법학의 혼합으로 해석해도 좋을 듯하다. 66) 이회창 전 대법관은 1981-1986년 사이에 ‘위대한 반대자’로 불릴 정도로 국민의 인권 과 사회적 약자를 옹호하는 소수의견을 제시하였다. 사족이겠지만, 이하의 부분은 정 치인으로서 이회창 현 자유선진당 총재에 대한 고찰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밝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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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체계에서 자연법론의 형성과 발전 211

대한 판결(1985.5.28, 81도1045)에서 대법원 다수의견은 “고도의 정치성이 있는

것은 권력분립의 원리에 따르는 한편 사법권의 헌법상에 내재하는 제약에 따

라 위헌판단은 이를 피하여야 한다고 할 것이다. 계엄의 선포와 해제 및 이에

부수되는 조치 등은 국가통치작용으로서 고도의 정치성이 있는 사항이므로 헌

법판단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며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설시하였

다. 반면 소수의견(이회창 대법관)은 법원의 임무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데 있으므로 권력의 자의적 전횡에 대하여 법원이 헌법해석과 사법심사의 권

능을 실제로 활용하여야 한다는 견해를 분명하게 제시하였다.

이로부터 2년 후 ‘6월항쟁’ 직전 1987년 3월 28일, 1986년 대법원 판사 재임

명에 탈락되고 1년 후, 이회창 전 대법관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제11회 졸업

생들의 졸업 30주년기념행사의 하나로 법과대학 재학생들에게 인상 깊은 강연

을 하였고 그 강연은 「사법의 적극주의―특히 기본권 보장기능과 관련하여」라

는 제목으로 서울대학교 법학지에 게재되었다.67) 이회창 전 대법관은 사법적

극주의를 제창하면서 다음과 같은 주목할 만한 견해를 제시한다.

“나는 첫째로, 법원이 법의 해석적용에 있어서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게 되면 궁

극적으로 법의 정의실현기능이 유명무실하게 되어 버리므로 적극적으로 정의실현의

자세로 법을 해석․적용하여야 한다는 것과, 둘째로 법원은 단순한 법문의 해석적용

에 그칠 것이 아니라 나아가 법해석을 통하여 법창조적 기능까지 발휘해야 한다는

것과, 셋째로 법원의 사법심사범위는 입법권이 제정한 법률과 행정권의 통치행위까

지 미쳐야 한다고 생각해왔고, 이러한 뜻으로 사법적극주의라는 용어를 써 왔으므로

오늘은 사법적극주의를 이러한 의미로 해석하여 말하고자 한다.”68)

이렇게 이해된 사법적극주의를 제창하는 법현실적 배경으로서 “과거 이른

둔다. 67) 이회창, “사법의 적극주의―특히 기본권보장과 관련하여,” 서울대학교 법학 제28 권 2호(1987), 147-161면(이 논문은 한인섭 편, 앞의 책, 377-399면에 수록되어 있고, 필자는 이것을 참조하였다.) 이회창 전 대법관은 1988년 사법민주화를 염원하는 제2 차 사법파동(전문은 한인섭 편, 앞의 책, 455-457면에 수록되어 있음) 이후 대법관으 로 복귀한다. 68) 이회창, “사법의 적극주의―특히 기본권보장과 관련하여,” 앞의 책, 37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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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 법철학연구

바 유신헌법 당시에 긴급조치 9호의 적용을 놓고 재판실무에 당한 법관들이

겪어야 했던 고뇌”를 들고 있고, 이러한 고뇌는 노예제도가 존재하던 미국에서

노예도주법의 적용을 놓고 당시 노예폐지론을 지지하던 법관들이 겪어야 했던

갈등과 유사하다고 하고 있다.69) 유신체제하에서 보였던 사법부의 소극적 태

도에 대한 이론적인 반성이자 치유책으로서 이회창 대법관은 법관들을 옥죄고

있던 이론적 족쇄를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로 풀어주고자 하였다.

“법관은 법을 해석․적용함에 있어서 형식적이고 개념적인 자구해석에 얽매이

지 말고 그 법이 담보하는 정의가 무엇인가를 헤아려서 그 정의실현의 방향으로 법

의 의미를 부여하여야 하며, 정의실현을 위하여 필요한 한도 내에서 성문법규의 의

미를 과감하게 확대해석하거나 축소․제한해석을 함으로써 실질적인 법창조적 기능

을 발휘해야 한다.”70)

필자는 유병진 판사의 고뇌와 이론적․실천적 노력이 이회창 대법관의 자연

법론(또는 최소한 反法實證主義)과 법실천으로 계승되었다고 감히 해석하고자

한다. 혹자는 ‘이회창 대법관의 사법적극주의가 과연 자연법론에 바탕을 둔 것

이었을까?’라고 반론할지도 모른다. 전통적인 형이상학적 자연법론에 바탕을

둔 것은 아님이 분명하지만, 자신의 논문들에서 제시했던 다음과 같은 견해를

보면 이회창 전 대법관의 견해를 자연법론(또는 非法實證主義)이라고 평가하는

필자의 견해에 동의할 것이다.

① “법의 이념은 정의이고 실정법의 해석적용은 법에 내재하는 정의실현의 요구

를 충족하는 의욕적 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71)

② “실정법에 내재하는 법의 이념인 정의는 실정법 해석의 한계 내에서 그 실현

을 추구할 수 있고 정의의 실현이라 하여 실정법 한계를 넘어서까지 무한정으로 허

용되는 것이 아니다.”72)

69) 이회창, “사법의 적극주의―특히 기본권보장과 관련하여,” 앞의 책, 378면.

70) 이회창, “사법의 적극주의―특히 기본권보장과 관련하여,” 381면. 71) 이회창, “조세법률주의,” 俓史 이회창선생화갑기념논문집 法과 正義, 박영사, 1995, 947면. 이 논문에서 롤즈의 정의론을 입법론이나 법해석론으로 가공해야할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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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체계에서 자연법론의 형성과 발전 213

③ “사회적인 보편타당성은 반드시 다수의견과 일치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다수인이 선택하는 도덕적 가치가 사회적인 보편타당성과 배치된다고 판단될 때에

는 법관은 과감히 그 가치기준을 배제하고 스스로 보편타당성 있는 가치기준을 찾

아내어야 한다.”73)

④ “개인의 자유권은 국가가 국법에 의하여 창설된 것이 아니라 전(前)국가적이

고 초국가적인 자연권에 속하는 권리이다.”74)

물론 이회창 전 대법관의 견해가 사법부의 법철학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

만 적어도 사법부 내부 상당수 법관들의 법철학에 반영되면서 계속해서 이어

져 내려오고 있다고 본다.

(4) 자연법론의 실천적 기능에 주목하기: ‘실천을 위한 보편적 이론’을

향한 노력

학계에서 자연법론을 현실 속에서 실현하려 했던 학자를 꼽으라면 대표적으

로 박은정 교수를 들지 않을 수 없다. 박은정 교수는 법존재론의 차원에서 자

연법의 정당화를 시도했던 박사학위논문 이래로 쉼없이 ‘실천을 위한 보편이

론’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자연법사상에 관심을 기울이고 연구해왔다.75) 또한

자연법사상에 기초하여 한국의 법현실을 개선하는 데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

였다.76) “실정법으로 하여금 결실을 맺도록 하고 실정법 속에서 실현되고자 하

는 경향”77)을 지니는 자연법의 실천적 기능에 주목하여 박은정 교수는 억압적

72) 이회창, “조세법률주의,” 948-949면. 73) 이회창, “조세법률주의,” 952-953면. 74) 이회창, “형사소송에 있어서의 적정절차,” 俓史 이회창선생화갑기념논문집, 法과 正 義, 930면. 75) 박은정, 자연법사상, 민음사, 1987; 동저자 편역, 라드브루흐의 법철학, 문학과지 성사, 1989 참조. 76) 참여연대 초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을 역임하면서 박은정 교수는 법현실의 개선에 적 극적으로 참여하고 주목할 만한 활동을 하여 참여연대의 명성을 높이는 데 큰 역할 을 하였다. 또한 2000년 총선연대의 낙선운동 당시 한국법철학회 회장으로서 박은정 교수는 시민불복종문제를 법철학적으로 다루는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단행본으로 편 집해냄으로써 당시 국내 시민불복종 논의에 이론적 기반을 제시한다. 77) A. Verdross, Statisches und dynamisches Naturrecht, Freiburg, 1971, 13면(박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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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 법철학연구

법체계에 저항하는 사상적 무기로서뿐만 아니라 법원의 법적 논의과정에서 자

연법이 수행할 역할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이고 그에 대해 여러 가지 측면에서

고찰해왔다.78)

특히 한국의 정치적 사회적 환경변화에 직면하여 법학자들 및 법실무가들이

자연법에 대하여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음을 지적하면서79) 박

은정 교수는 자연법론의 과제와 미래를 다음과 같이 전망한다.

“법에 관한 가장 오래된 철학이요 법이념의 보고(寶庫)인 자연법사상은 21세

기를 들어서는 전환시점에서 실정법에 위탁된 새로운 과제를 환기시키면서 다시

부상하고 있다. 지난 20여년 이래 법철학계에서 강세를 나타내기 시작하는 목적

적․정책적․규범적 논의들은, 설사 논자들이 자연법개념에 대해 직접적 혹은 간

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았다 할지라도, 자연법의 포괄적 이념과 그 사유전통에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자유민주국가의 법적 안정성 이념과 사회복지국가의 정의

이념의 통합, 세계화 시대의 법다원주의 논의, 가치상대주의 극복, 생명복제 등 첨

단과학기술시대에서의 윤리와 복지의 조화, 지속가능한 발전, 미래세대를 위한 정

의로운 저축 …. 이 모든 과제들은 실정법 질서를 다시 한 번 비판적으로 성찰하면

서 법사고의 새로운 지평을 열 것을 요구하고 있다.”80)

불법국가적 상황에서 권력이 법을 지배와 억압의 도구로 삼는 ‘법률적 불법’

에 대항하는 자연법론의 실천적 기능뿐만 아니라 일상적 법치국가적 상황에서

나타나는 ‘하드 케이스’(hard cases)에서 보다 나은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자

연법론의 이론적․실천적 기능까지도 함께 고려하려는 박은정 교수의 자연법

론은 한국 법학계의 귀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자연법의 문제들, 35면에서 재인용). 78) 박은정, 앞의 책, 제3장 (“자연법의 사법적 적용가능성”), 45-66면 참조. 79) 자연법의 역할에 대한 관심과 된 정치적․사회적 변화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박은정, 앞의 책, 46-52면 참조. 80) 박은정, 앞의 책,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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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체계에서 자연법론의 형성과 발전 215

  1. 12․12 및 5․18 쿠데타 재판과 자연법론

1995년과 1996년 12․12 및 5․18 쿠데타의 합법성과 정당성 여부가 한국사

회에서 법적인 쟁점으로 떠올랐다. 당시 검찰은 쿠데타(내란)가 성공하여 국민

들의 승인(국민투표 또는 대통령선거 등)을 통하여 새로운 법질서를 구축하였다

면 법으로서의 효력을 가진다고 보고, 따라서 그러한 쿠데타 행위는 더 이상

내란이 아니며 사법적(司法的) 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였다.81)

당시 검찰은 “정치적 변혁과정에서 새로운 정권과 헌법질서를 창출하기에 이

른 일련의 행위들이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사법부

에서 판단된 사례가 없으나, 정치적 변혁의 주도 세력이 새로운 정권 창출에

성공하여 국민적 정치적 심판을 받아 새로운 헌정질서를 수립해 나간 경우”에

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논변에 입각하여 그 법적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① ‘사실적인 것의 규범력’ 논변: 독일의 헌법학자 옐리네크(와 심헌섭 교수)의 견

해에 서서 보면 “새로운 정권이 출범한 현실을 인정하고 그 정권 형성의 기초가 된

사실행위에 대하여 사실의 규범력을 인정하여 사후에 법적 인증을 하여야 한다.”82)

② ‘근본규범 변동’ 논변: 켈젠의 견해를 따라서 보면 “정치적 변혁이 성공하여

새 질서가 실효적으로 되면 새 질서가 법률질서로 되며, 이는 근본규범의 변동으로

새로운 정부가 법 정립의 권위로 인정되는 데 따른 것으로 만약 정치적 변혁이 실패

하여 새 질서가 실효적이 되지 못한 때에는 헌법정립이 되지 못하고 일련의 행위는

범법행위를 구성한다.”83)

81) 검찰의 법적 논리는 서울지방검찰청이 국방부검찰부의 명의로 발표한 <5․18관련 수사결과발표문>(1995.7.18.)에 실려 있고, 박은정/한인섭 엮음, 5․18: 법적 책임과 역사적 책임,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95, 225-257면에 수록되어 있다. 82) 이 논변과 관련해서 검찰은 G. Jellinek, Allgemeine Staatslehre, (출판년도와 출판사 또는 출판지는 기재하지 않았음), 337면 이하, 360면 이하, 그리고 심헌섭, 법철학 1, 법문사, 1983, 101면 이하를 인용하고 있다. 83) 이 논변과 관련하여 검찰은 H. Kelsen, Reine Rechtslehre, (출판년도와 출판사 또는 출판지는 기재하지 않았음), 1934, 제5장(황산덕 역, 純粹法學, 조문사, 1953, 110면 이하)을 인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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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법철학연구

③ ‘법적 안정성’ 논변: 라드브루흐의 견해를 따르면 “재래의 실정법 질서가 무

너지고 새로운 법질서가 수립된 경우에는 법적 안정성의 요구에서 이러한 사태가

법의 기초가 되어 법적 효력을 인정받게 된다.”84)

이와 같은 검찰의 법철학적 논변에 대하여 당시 법철학자들의 분위기는 ‘당

혹과 불쾌감, 불만족감, 아연함’으로 나타났고,85) 즉각 검찰의 논변에 대한 법

철학적 분석과 비판이 이어졌다. 법실증주의적 견해를 취했던(그랬기 때문에

검찰의 논변에 ‘왜곡되어’ 원용되었던) 심헌섭 교수는 위 세 가지 논변 하나 하나

에 대하여 명쾌한 논리로 분석하면서 검찰의 법철학적 왜곡과 혼동을 설득력

있게 비판하였으며 “오늘날의 관점에서 더 타당하고 좀더 바람직한 법철학적

견해[법실증주의―필자 첨가]에 입각했더라면 달리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까”

하는 “불만족감”을 토로하였다.86)

법학자들과 법률가들의 비판을 받아들여서 헌법재판소는 내란행위의 정당

성은 해당 내란이 목적으로 하는 내용이 ‘정의실현, 불의타파,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의 수호, 국민주권회복’과 같은 가치를 담고 있느냐에 따라서 판단되

어야 한다고 설시하였다.87)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논지는 1년 후 서울고등법원

의 판결(서울고법 1996.12.16, 96노1892)에서 좀더 정치하게 발전되어 제시된다.

5․18재판의 항소심으로서 서울고등법원(권성, 김재복, 이충상)은 쿠데타의

범죄성을 인정하면서 쿠데타 정권의 합법성과 정당성 문제를 면밀하게 다루고

있다.88) 우선 서울고등법원은 쿠데타 주역들에 대한 사실상 불처벌 상태가 승

84) 이와 관련하여 검찰은 G. Radbruch, Einführung in die Rechtswissenschaft, (출판년 도와 출판사 또는 출판지는 기재하지 않았음), 1969, 제1장(정희철 역, 「法學原論」, 양 영각, 1982, 55면; 엄민영 외 역, 「法哲學入門」, 육법사, 1982, 67면)을 인용하고 있다. 85) 가령 심헌섭, “법철학․혁명․쿠데타―검찰의 5․18불기소 처분을 계기로―,” 박은 정/한인섭 엮음, 앞의 책, 41면 참조. 그리고 강진철, “5․18, 이 시대 법과 역사의 화 두”, 법과사회 제13호, 1996, 307면 이하 참조.

86) 심헌섭, “법철학․혁명․쿠데타―검찰의 5․18불기소 처분을 계기로―,” 41면, 53면. 당시 법철학자, 헌법학자, 형법학자, 전국법학교수 등의 비판은 박은정/한인섭 엮음, 앞의 책을 참조. 87) 헌재 1995.12.15. 선고, 95헌마221․233․297(병합). 자세한 분석은 박은정/한인섭 엮 음, 앞의 책,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95 참조. 88) 5․18 재판에 대한 입체적인 분석은 한인섭, 5․18 재판과 사회정의, 경인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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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체계에서 자연법론의 형성과 발전 217

인도 아니고 범죄성을 면책케 하는 것도 아님을 분명히 한 후 다음과 같은 주

목할 만한 견해를 제시한다.

“헌법은 가장 상위에 있는 법규범이므로 모든 법률은 헌법에 부합하는 범위 내

에서 합법성을 취득한다. 그러나 합법성이 정당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므로 합법

성이 있다 하여 반드시 정당성이 있는 규범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헌법의 배후 또

는 상위에는 정의와 선 그리고 평화의 원리를 내용으로 하는 보편적인 법의 원칙이

존재하고 이를 자연법이라 부른다면 이러한 자연법에 부합하는 내용의 헌법과 법

률만이 정당성을 갖게 된다. 자연법은 만고불변의 것이지만 그에 대한 인식은 인간

이성의 개화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게 된다. 그리하여 어떤 국가의 헌법 내지 기본

적 법질서가 자연법에 어긋나는 부당한 것이라는 인식이 그 사회에 팽배하여 마침

내 그 불일치를 힘에 의하여 극복하려는 급격한 투쟁이 전개될 때 이를 혁명이라

부른다.”89)

이 항소심 판결은 우리 사법부의 역사상 처음으로 자연법론에 바탕을 둔 것

이었다.90) 전통적인 아퀴나스 자연법론에 따라서 항소심은 ‘선량한 정부’의 목

적은 ‘국민의 안전과 복지’를 실현하는 데 있다고 보고, 쿠데타를 통하여 집권

한 정부의 권력행사 중 이 목적에 부합한 조치들과 법률들은 합법성을 보유하

지만 쿠데타 정권을 유지․강화하기 위하여 국민의 권리를 억압하고 침해하는

권력 행사 및 입법들은 모두 불법이라는 견해를 제시한다. “성공한 쿠데타는

그 자체로 새로운 법체계를 창출하는 것이어서 처벌될 수 없다”는 법리는 정당

화될 수 없다고 명료하게 논증하면서, 쿠데타 이후의 일부 조치들이 선량한 정

부가 취했을 성격이라고 해서 합법성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쿠데타 정

권에 대한 불처벌 상태는 국민의 승인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처벌을 할 정도로

2006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89) 서울고법 1996.12.16.선고, 96노1892(밑줄과 강조는 첨가한 것임). 필자는 이 판결에 서 권성 당시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의 자연법론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추정하 며, 후에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서 권성 재판관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에서도 자연법 론적 색채를 드러낸다. 90) 비슷한 견해로 한인섭, 5․18 재판과 사회정의, 94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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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법철학연구

국민의 힘이 약했을 뿐임을 보여주는 것이므로 법효력의 문제라기보다는 법집

행차원의 현실적인 문제라고 보고,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쿠데타 자체의 범죄

성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라고 분명하게 못을 박는다. 참으로 자연법론의 아름

다움이 빛나는 순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5․18재판을 계기로 해서 법실증주의와 자연법론의 논쟁구도는 더 이상 단

순하지 않고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보다 심층적이고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91) 검찰의 법실증주의가 한국법체계에서 그 동안 국가권력기관이 가져

왔던 ‘공식적 국가 법철학’92)을 대변하는 것이 되면서, 이렇게 왜곡된 ‘속류 법

실증주의’에 아연함과 더불어 불만족감과 불쾌감을 강하게 느끼게 된 법실증

주의 법철학자들 측에서도 좀더 발전되고 설득력을 갖는 법실증주의(‘비판적

법실증주의’)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를 가공하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93) 뿐만 아

니라 자연법론 측에서도 ‘악법은 법이 아니며, 악법에는 복종할 의무가 없다’라

는 단순한 견해만으로는 민주화 이후의 법체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음을 깨닫

게 되었고, 민주주의와 가치 다원주의 문제를 자연법론이 해결하여야 할 최대

의 과제로 설정하게 된다.94) 필자가 생각하건대, 5․18재판에 보여준 검찰의

91) 오병선 교수는 현대사회의 조건 하에서 자연법론과 법실증주의가 나아가야 할 새로 운 전망을 모색하고 있다. 오병선, “현대의 자연법론과 법실증주의의 수렴경향,” 법 철학연구 제1권(1998), 31-52면 참조.

92) 당시 헌법재판소에 제출되었던 <5․18관련 헌법소원에 대한 법학교수 의견서> (1995.10.21.)에 따르면, 법무부 및 검찰의 법철학은 ‘힘이 곧 정의’라고 하는 “실력설” 임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이며 “실력설이라는 것이 법의 이론이라기보다 법을 파괴하 고 힘의 질서를 정당화하는 이론이라고 할 때, 그리고 검찰과 법무부의 존재이유가 정의의 구현이라고 할 때 그러한 법무부의 견해는 비애와 허무를 안겨줄 뿐”이다(박 은정/한인섭 엮음, 앞의 책, 323면). 즉 “검찰이 내세우는 법실증주의는 힘은 곧 정의 라고 하는 실력설에 의해서만 지지될 수 있으며, 여기서는 법이념인 정의를 힘의 영 역으로 매몰시키는 법의 파괴만이 있을 뿐 어떤 규범적 정당화도 존재하지 않게 된 다.”는 것이다(앞의 책, 326면). 93) 이미 심헌섭, 법철학 I ―법, 도덕, 힘―, 법문사, 1982, 271-291면에서 ‘비판적 법실 증주의’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보다 더 정치한 모습으로 나타나 는 문헌으로는 심헌섭, 분석과 비판의 법철학, 법문사, 2001 참조. 94) 서양과 한국에서의 자연법 복권에 대한 상세하고 풍부한 논의로는 김홍우, 한국정 치의 현상학적 이해, 177-357면(해당 제목은 “자연법론의 해체와 복권“이다) 참조. 민주화 이후 다원화된 사회에서 자연법의 과제와 전망에 대해서는 박은정, 자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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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체계에서 자연법론의 형성과 발전 219

법실증주의는 종래 ‘공식적 법실증주의’의 비극적 몰락을, 법원의 자연법론은

전통적 자연법론의 장엄한 완성을 상징하는 동시에 그 종말의 서곡을 알리는

것이었다. 민주화 이후의 한국의 법현실에서 전통적 자연법론의 한계가 점차

로 드러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95) 이하에서는 자연법론이 부딪치게 된 현

실적인 도전과 이론적 한계를 기술하고, 해결하여야할 과제에 관하여 생각해

보기로 한다.

Ⅳ. 민주화 이후의 자연법론: 민주주의, 자연법론, 공공적 정당화 가능성

민주화 이후 상당한 정도 정상화된 법체계에서 자연법론은 어떠한 과제를

해결하여야 하며 어떤 이론적 전망을 가지는 것일까? 필자는 현재 한국의 법

현실에서 자연법론은 두 가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자연

법론에 가해지는 ‘반(反) 민주주의 반론’이며, 다른 하나는 가치원주의의 측면

에서 가해지는 ‘과도한 도덕주의 반론’이다. 이하에서는 이 두 가지 반론을 중

심으로 한국의 자연법론이 처한 곤경과 해결하여야 할 과제에 대하여 간략하

게 고찰해보기로 한다.

  1. 민주주의의 문제와 자연법론: ‘엘리트주의적 자연법론’의 위험성

법실증주의는 악이고, 자연법론은 선인가? 필자는 자연법론의 견해를 취하

지만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법은 한 사회의 사회․정치세력들 사이의 투

쟁, 공동논쟁, 타협의 산물(즉 구성의 산물)이라는 점은 누구나 아는 바이다. 그

렇다면 ‘관습헌법론’을 들어 ‘행정수도이전에관한법률’을 위헌선언한 우리 헌

재의 판결은 사회구성원들의 공동숙고과정에서 법이 형성되고 구성된다고 보

의 문제들, 28면 이하 참조. 95) 가령 ‘5․18 민주화운동에관한특별법에 과한 대한 합헌결정’(헌재 1996. 2.16. 96헌바 13 등)에서 개진된 자연법적 논변의 부작용에 대한 분석은 대표적으로 김영환, “공소 시효와 형벌불소급의 원칙,” 형사판례연구 제5호(1997), 1-27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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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법철학연구

기보다는 재판관들의 인식 속에서 존재하는 자연법을 선언하였다는 점에서 변

화된 법상황에서 과연 자연법론이 타당성을 갖는지 여부에 대한 시험사례라

할 것이다.

2004년 행정수도이전관련 사안에서 헌법재판소는 불문헌법론과 관습헌법론

을 제시하여 헌법논쟁을 불러일으켰는데(헌법재판소 2004.10.21, 2004헌마554),

이는 민주화 이후의 자연법론이 부딪치게 될 이론적 과제가 무엇인지를 잘 보

여주고 있다.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성문헌법을 가진 나라로서 기본적으로 우리

헌법전(憲法典)이 헌법의 법원(法源)이 되지만 성문헌법이라고 하여도 그 속에 모

든 헌법사항을 빠짐없이 완전히 규율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또한 헌법은 국가의 기

본법으로서 간결성과 함축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형식적 헌법전에는 기재되지 아

니한 사항이나 원리 및 가치가 있게 된다. 이러한 것들이 불문헌법(不文憲法) 내지

관습헌법이 내용을 이루며, 특히 헌법제정 당시 자명(自明)하거나 전제(前提)된 사

항 및 보편적 헌법원리와 같은 것은 반드시 명문의 규정을 두지 아니하는 경우에

는 불문헌법 내지 관습헌법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헌법재판소는 헌법사

항에 관하여 형성되는 관행 내지 관례가 전부 관습헌법이 되는 것은 아니고 강제

력이 있는 헌법규범으로서 인정되려면 엄격한 요건들이 충족되어야만 하며, 이러

한 요건이 충족된 관습만이 관습헌법으로서 성문의 헌법과 동일한 법적 효력을 가

진다는 것이다.

국민은 최고의 헌법제정권력이기 때문에 성문헌법의 제ㆍ개정에 참여할 뿐

만 아니라 헌법전에 포함되지 아니한 헌법사항을 필요에 따라 관습헌법의 형

태로도 직접 형성할 수 있다는 근거로 헌법재판소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

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한 헌법 제1조 제2항을

활용한다. 관습헌법도 성문헌법과 마찬가지로 주권자인 국민의 헌법적 결단의

의사의 표현이며 성문헌법과 동등한 효력을 가진다는 것이다.96) 필자는 헌법

재판소의 불문헌법론과 관습헌법론에서 자연법론이 밑바탕이 되고 있다고 생

96) 이러한 발상은 결정 당시 헌법재판소 헌법연구부장이었던 김승대 판사의 “헌법관습의 법규범성에 대한 고찰,” 헌법논총 제15집(2004), 133-175면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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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체계에서 자연법론의 형성과 발전 221

각한다. 앞에서 자연법론의 두 가지 근본명제로서 ‘불법명제’와 ‘법원리명제’를

든 바 있다. 관습헌법론은 이 법원리명제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자연법론에 대한 고전적 비판인 반민주주의(anti-democracy) 반론이 관습헌법

론에도 해당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필자가 관심을 두고자 하는 바는 관습헌법론의 타당성 여부보다는

관습헌법론을 통해 분명하게 된, ‘민주화 이후’의 법체계에서 자연법론이 직면

하게 되는 이론적 과제이다. 사법부가 국민주권을 반영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선언하는 자연법(또는 불문헌법 및 관습헌법)이 민주화 이후 다원화된 사회에서

얼마나 ‘공공적 정당화가능성’(public justifiability)을 가지는 것일까?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의사표현과 결집과정은 ‘독백적-단성악적’(monologic-monophonic)

이지 않고 대화적-다성악적(dialogic-polyphonic)인 성격을 갖는다.97) 자연법론

이 이러한 점을 무시하고 최고법원의 단성악(單聲樂)적 논의만으로 민주적 의

사를 구성하고자 한다면 법원의 판결이 아무리 민주주의를 보장하더라도 민

주적 의사결정 그 자체는 아닐 것이다. 한국의 자연법론은 이 문제를 진지하

게 다루고 그에 대한 대답을 내려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종래와 같이 민주주

의에 대한 단순한 견해만을 고수해서는 공공적 정당화가능성이라는 기준을

충족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유로운 공론과정을 통하여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결집함으로써 헌법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재판관들이 헌법전 내에

내재하는 자명한 법원리들을 헌법으로 인식하고 선언하며 헌법사항과 관련되

어 형성된 여러 정치적 관행들 중에서 특정한 부분을 관습헌법으로 인식하고

선언하는 것이 과연 민주주의 가치에 부합하가 라는 물음에 대하여 자연법론

은 진지하게 숙고해야한다는 것이다.

한국, 독일, 영미권의 경우 진보적인 법학자들이 자연법론에 비판적인 견해

를 제시하면서 민주주의(또는 공화주의)에 바탕을 둔 법실증주의를 강조하고

있는 까닭은 ‘미리 선험적으로 결정된 규범들이 있고 소수의 사법엘리트가 그

자연법규범을 인식하여 시민들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엘리트주의적 자연법론

을 거부하고, ‘법이란 시민들의 공공적 논의를 통해서 비로소 구성되고 형성

97) 바흐친(M. Bakhtin)의 용법을 활용한 이러한 표현은 김홍우, 앞의 책, 418-419면에 서 차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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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법철학연구

되는 사회적 산물이라는 속성’에 주목하기 때문이다.98) ‘엘리트주의적 자연법

론’은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달(Robert Dahl)이 말하는 ‘수호자주의’

(guardianship: 또는 후견주의)의 변형이라고 할 만하다. 플라톤의 저서 국가

에서 개진되는 이상적인 통치체제는 통치를 위한 전문성과 능력, 그리고 통치

에 필요한 덕성을 갖춘 수호자계급(guardians)이 민중(또는 공익)을 위하여 통

치를 하는 체제이다.99) 의회를 중심으로 한 정치과정에 대한 실망과 불신을 이

유로 내세우면서 ‘국민의 기본권보호의 사명감’에 불타는 사법부가 민주적 공

론과정을 제치고 직접 자연법을 인식하고 선언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공익과 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는 입장을 가지게 될 때 수호자주의와 유사한

‘엘리트주의적 자연법론’으로 빠지게 된다고 본다.100)

  1. 가치다원주의와 자연법론: ‘도덕주의적 자연법론’의 위험성

또한 현재 한국의 자연법론은 엘리트주의적 자연법론의 반민주주의의 위험

성과 함께 ‘도덕주의적 자연법론’(moralistic theory of natural law)의 위험성에

도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자연법의 내용을 특정 윤리학이나 종교의 관

점에서 구체화한 후, 이와 같은 상위법의 가치를 실정법을 통해서 강제하고 실

현하려는 도덕주의적 자연법론은 ‘법도덕주의’(legal moralism)를 수단으로 택

하게 될 것이다.101) 그러나 현재의 한국과 같이 ‘자연법적 확실성’에 대한 믿음

이 해체된 가치다원주의 사회에서102) 특정윤리를 자연법으로 보호하고 실현

하려는 법도덕주의를 택하게 되면, 그와 같은 자연법론에 입각한 법적 추론이

98) 이와 같은 관점에서 자연법론과 법실증주의의 대립을 지양하는 민주적 법이론의 필 요성과 가능성을 지적하는 예로는 이상돈, 기초법학, 11면 이하 참조.

99) 로버트 달(조기제 옮김), 민주주의와 그 비판자들, 문학과지성사, 1999, 112면 이하 참조.

100) 유사한 지적으로 이상돈, 앞의 책 240면 이하 참조. 101) 이러한 경향에 대한 비판의 예를 들면 미국의 경우 S. Macedo, “Against the Old Sexual Morality of the New Natural Lw,” in: R. George (ed.), Natural Law, Liberalism, and Morality, Oxford, 1999, 27-48면 참조. 국내에서 자연법론의 ‘도덕 적 권위주의화’에 대한 지적은 이상돈, 앞의 책, 105면 이하 참조. 102) 이상돈, 앞의 책, 113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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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체계에서 자연법론의 형성과 발전 223

과연 공공적 정당화가능성 기준을 충족할 수 있을 것인지의 문제가 핵심쟁점

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와 더불어 법의 중립성이라는 이론적 쟁점도 포함되어

있어서 자연법론은 이와 같은 문제들에 대하여 진지하게 성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본다.

Ⅴ. 맺음말: 과제와 전망

  1. 민주화 이후 법철학의 두 가지 핵심과제

5․18 재판을 둘러싼 한국사회의 공론장은 한국 사회가 민주화의 과정에서

어느 정도 성숙한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즉 한국사회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103) 법체계의 특성을 보여주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정치적인 차원에서 보았을 때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의 핵심과제를 ㉠ 종래

의 권위주의적 정치구조와 정치문화를 민주주의 규칙의 틀 내에서 변환시키

기, 그리고 ㉡ 저항적 민주화운동의 의사결정구조와 문화를 새로운 민주주의

규칙 내로 수용하여 성숙한 민주주의 정치구조를 정착시키기로 파악해보도록

하자.104) 이를 법철학에 적용해본다면, ㉠ 권위주의적 법실증주의를 민주주의

가치 틀 내에서 민주적 법실증주의로 전환시키는 것, ㉡ 민주화운동을 위한 저

항적 법이론으로서 역할을 해왔던 자연법론에 담겨 있던 과도한 도덕주의 및

낭만주의와 엘리트주의를 극복하고 민주적 자연법론으로 변모하게 만드는 것

이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법체계에서 법철학이 직면하는 도전 중의 하나일

것이다.

103) 민주화 이후의 단계로서 한국사회가 처한 상황과 전망에 대해서는 최장집,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후마니타스, 제1판, 2002 참조. 104) 정치적 차원에서 한국의 민주화가 갖는 두 가지 의미에 대해서는 최장집, 한국 민 주주의 무엇이 문제인가, 생각의 나무, 2008, 60-61면에서 개진된 생각을 필자 나름 대로 재구성해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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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 법철학연구

  1. 법실증주의와 자연법론의 새로운 대립구도

지금까지 서술한 바를 종합하여 법실증주의와 자연법론의 유형을 분류하여

보면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105)

① 권위적 법실증주의: 통치권자의 명령이 법이라는 견해를 취하는 법실증주의.

② 민주적 법실증주의: 국민주권원리를 중심으로 하여 의회에서 이루어진 심의

와 결정의 산물로서 법을 바라보고 입법과정에서의 공론과정을 중요시하는 법실증

주의.106)

③ 포괄적 敎理(comprehensive doctrine)로서의 자연법론107): 특정한 도덕철학

이나 종교, 정치철학의 관점에 서서 각 교리에서 주장하는 근본원리들을 자연법으로

보고 이러한 자연법에 비추어서 실정법을 판별하고 개개의 실정법의 효력과 권위를

판정하는 강한 ‘도덕주의적’ 자연법론(법도덕주의의 일종).

④ 민주적 자연법론: 모든 합당한 도덕철학, 종교, 정치철학이 동의할 만한 자유

주의적 가치와 민주주의적 가치, 그리고 도덕적 기본권들(basic moral rights)로 구

성된 원리들을 자연법으로 보고,108) 시민들의 공공적 논의과정에서 검토되고 의회

에서 심의되고 결정된 법률의 효력과 권위를 인정하되 필요한 경우 법원이 다시 한

번 자연법상의 기준에 비추어서 심사할 수 있는 성찰적 위헌법률심사제도

(deliberative judicial review)를 민주주의 실현에 필요한 하나의 기제로 보는 약한

자연법론.109)

105) 자세한 내용은 김도균, “근대 법치주의의 사상적 기초: 권력제한, 권리보호, 민주주 의 실현,” 김도균/최병조/최종고, 법치주의의 기초: 역사와 이념, 서울대학교 출판 부, 2006, 32면 이하 참조.

106) 이에 대해서는 T. Campbell, “Legal Positivism and Deliberative Democracy,” Current Legal Problems 51 (1998), 65-92면 참조; J. Waldron, “Kant’s Legal Positivism,” Harvard Law Review 109 (1996), 1535-1566면. 107) ‘포괄적 교리’로서의 자연법이란 발상 중 ‘포괄적 교리’(comprehensive doctrines)라 는 개념은 J. Rawls (장동진 역), 정치적 자유주의, 동명사, 1997, xxi, xxii, 14, 48, 167면 등에서 빌려왔다. 108) 이렇게 되면 자연법은 롤즈가 말하는 ‘중첩적 합의’(overlapping consensus)를 바탕 으로 하며, 이렇게 구성된 자연법은 다시 다양한 포괄적 교리들의 ‘중첩적 합의’ 내용 을 이루게 될 것이다. J. Rawls(장동진 역), 앞의 책, 179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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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체계에서 자연법론의 형성과 발전 225

희망컨대 이렇게 분류된 법실증주의와 자연법론의 입장 중에서 민주적 법실

증주의와 민주적 자연법론 사이의 대립이 향후 한국 사회에서 전개되어갈 법

철학적 대립이어야 할 것이다. 김홍우 교수의 통찰력을 빌려 표현해보자면, 법

의 ‘단순화 도구화’를 강조하는 법실증주의나 법의 ‘지나친 도덕화’를 지향하는

자연법론을 극복하고, ‘공동의 삶’이라는 관점에서 법에 접근하는 태도를 갖춘

법철학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이러한 법철학은 법을 단순히 주권자나 법관이

‘만들거나’ ‘발견하는 것’이 아닌, 사회구성원들 공동의 삶 속에서 공동의 노력

을 통해 ‘자라나는 것’(growing)으로 인식하는 태도를 그 핵심요소로 한다.110)

본문에서 한국의 법체계에서 자연법론이 형성되고 전개되는 과정을 살펴보았

는데 이렇게 사회구성원의 공동노력 속에서 법이 자라나고 있다는 점을 확인

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제 더 이상 법개념론상의 추상적 차원에서

법실증주의냐 자연법론이냐는 물음에만 법철학적 관심을 기울일 것이 아니라

고 본다. 공동체 및 개인에 대한 규범적 견해와 법의 목적과 기능에 대한 규범

적 견해가 무엇인지, 자유, 평등, 연대의 가치에 대해서는 어떻게 파악할 것인

지, 그리고 민주주의 가치를 보다 더 잘 실현하는 법치주의는 어떤 형태일 것

인지, 어떻게 하면 한국 사회의 공동적 삶과 법적 실천들을 최선의 빛으로 비

추어 적절하게 해석해낼 수 있는지와 같은 문제들에 대한 이론적 노력도 중요

하지 않을까 전망한다.111)

109) R. Alexy, Recht, Vernunft, Diskurs, Frankfurt/M., 1994, 177면 이하 참조. 110) 김홍우, 앞의 책, 384-385면 참조.

111) 이러한 점을 인식하고 법철학적 작업을 한 예로는 정태욱, 자유주의의 법철학, 2007 참조. 또한 법실증주의와 자연법론을 양자택일적인 대립항으로만 보는 무익한 관점의 극복에 대해서는 박은정, 자연법의 문제들, 28면 이하 참조. 그리고 오병선, “현대의 자연법론과 법실증주의의 수렴경향,” 법철학연구 제1권(1998), 34-43면 참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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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 법철학연구

Abstract

An investigation of the formation and development of Natural

Law Theory in modern Korea

Dokyun Kim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take a closer look at the development of

Natural Law Theory in modern Korea. My thesis is that the historical

background of Natural Law Theory in Korea consisted in the dilemmas of

judge who must interpret immoral laws. The korean judges in the

authoritarian period fell into conflict of professional duties and individual

conscience. In order to overcome the dilemma, the korean judges and

lawyers have made an appeal to natural law. Therefore, one could say that

Natural Law Theory has contributed to make korean legal system more

legitimate. However, in a new condition of the korean democratization,

Natural Law Theory encounters two serious challenges. The one is the

difficulty of anti-democracy, the other that of legal moralism. To sum up,

the following conclusion can be made: whether Natural Law Theory can

develop into an adequate theory of law in Korea depends upon how it solves

these difficulties.

자연법(natural law theory), 법실증주의(legal positivism), 악법(immoral laws), 법관의 딜레마(dilemmas of judges), 반민주주의(anti-democracy), 법도덕주의(legal moralism)

색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