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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법학연구원 고려법학제92호2019년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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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의결정의무–재판거부금지의역사적
전개과정에관하여*
1) 윤 재 왕**
▶목차◀
Ⅰ. 서론
Ⅱ. ‘입법자의의지’–재판권에서 입법권으로의전환
Ⅲ. 법관의문의의무–유권해석과 해석금지
Ⅳ. 해석규칙의법제화와재판거부
금지 V. 맺음말
Ⅰ. 서론
우리법질서는기본적으로대륙법적전통에따라법률은다수의불특
정한장래의사례들에대한추상적-일반적규정을담고있고, 이에반해법
관은사실상으로발생한개별적인갈등사례에대해서는이미주어져있는
법률을적용해결정을내린다는관점에서입법과사법을구별한다. 이미근
대초기에유럽대륙에서는법관은법률의시녀이지, 법률의지배자가아니
며, 법관의과제는법률의적용일뿐, 법률을생성하는것이아니라는견해
가보편적으로인정되었다.1) 입법과사법에대한이러한전통적구별은우
- 이논문은2016년대한민국교육부와한국연구재단의지원을받아수행된연구임 (NRF-2016S1A5A2A01023871). ** 고려대학교법학전문대학원교수, 법학박사(Dr. iur.). 1) ‘법률에구속된법관’의역사와의미에관해서는D. Simon, Die Unabhängigkeit 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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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법관의결정의무–재판거부금지의역사적전개과정에관하여
리헌법의토대이기도하다. 즉법관의법률구속을규정한헌법제103조는
권력분립시스템의초석이면서동시에–같은조항에서규정하고있는–법
관의독립으로인해발생할수있는법적안정성의침해를차단하는장치이
다. 더나아가법률구속은정치적의지형성과정의산물인의회의법률이
사법에비해훨씬더강한민주적정당성을가져야한다는헌법적원칙에도
부합한다.
하지만법관의법률구속(Gesetzesbindung)은입법자가제정한법률에
근거를두고있을때에만국민의기본권을침해할수있고, 따라서국민의
공동생활에관한본질적인규율은반드시입법자에의해서만수행될수있
다는법률유보(Gesetzesvorbehalt)와는달리단지법률의우위(Vorrang des
Gesetzes)를의미할뿐이다.2) 그이유는무엇보다입법자가장래에발생할
모든사례들을사전에완벽하게포착할수없고, 법관에게규율규범을완벽
하게지시할수없기때문이다. 모든실정법질서는끝없이등장하는규율
필요성에직면해결코흠결이없는완전무결한것일수없으며, 판결과법
학을통해서도이러한흠결을완전히배제할수는없다.3) 막스베버는이러
Richters, 1975, S. 68 이하참고. ‘시녀’라는비유는이미17세기부터존재했다고한다. 16세기후반비텐베르크(Wittenberg) 대학의법학교수였던카스파치글러(Caspar Ziegler)는다음과같이말했다고한다. “법관은법률의시녀이지, 형성자가아니다. 법관의공적의무는법률을준수하는것이다. 왜냐하면법률은규범과규칙을지시 하기위한목적에서제정되었기때문이다.” 인용은A. Söllner, Der Richter als Ersatzgesetzgeber, in: Zeitschrift für Gesetzgebung, 10(1995), S. 2 각주1에따름. 2) 법률구속과법률유보의이러한차이및법률의우위가사법부에대해갖는의미에 대해서는R. Herzog, Gesetzgeber und Gerichte, in: W. Brandt/H. Gollwitzer/J. F. Henschel(Hrsg.), Ein Richter, ein Bürger, ein Christ. Festschrift für Helmut Simon, 1987, S. 103 이하, 109 참고. 또한방법론적관점에서이러한관계를서술하고있는 K. Larenz, Menthdenlehre der Rechtswissenschaft, 2. Aufl. 1969, S. 224 이하; (역사 적측면을함께고려한) R. Fischer, Höchstrichterliche Rechtsprechung heute – am Beispiel des Bundesgerichtshofes - , in: G. Roellecke(Hrsg.), Zur Problematik der höchstrichterlichen Entscheidung, 1982, S. 392 이하참고. 이밖에도‘법률유보 (Gesetzesvorbehalt)’와‘법률의유보(Vorbehalt des Gesetzes)’를구별해, 전자는행정 의엄격한법률구속을, 후자는사법의느슨한법률구속을의미한다고이해하는이론으 로는Ph. Lassahn, Rechtsprechung und Parlamentsgesetz, 2017, S. 14 이하, 34 이하 참고.
3) 이불완전성에대한인식의역사적측면에관해서는D. Grimm, Rechtswissenscha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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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불완전성을‘사실의비합리성앞에서모든법률이겪지않을수없는숙
명’이라고지칭할정도이다.4) 법률의불완전성으로부터법관의결정과정이
생활사실과법률구성요건사이의매개작업속에서이루어지고, 이작업은
단순한기계적포섭을훨씬뛰어넘어필연적으로법창조적요소를담지않
을수없다.5) 따라서입법자가제정한법률프로그램은법관이결정을내려
야할구체적사례를사전에명확하게규율하는데에는명백히한계가있
다. 더욱이법률은필연적으로흠결이나오류또는불명확성을포함하지않
을수없다. 이러한관점에서법률의우위는구체적결정의측면에서보면
법률의완벽한조종또는법률프로그램의단순한이행명령이아니라, 입법
의사법에대한주도권또는우선권으로이해하는것이일반적이다. 권력분
립을권력들상호간의엄격한분리가아니라, 기능적분할또는기능적상
호작용으로파악하는오늘날의이해6) 역시이러한사정을반영한다. 그리고
und Geschichte, in: ders.(Hrsg.), Rechtswissenschaft und Nachbarwissenschaft, Bd. 2, 1976, S. 10 이하; H. Mohnhaupt, Rechtseinheit durch Rechtsprechung? Zu Theorie und Praxis gerichtlicher Regelbilung im 19. Jahrhundert, in: C. Peterson(Hrsg.), Juristische Theoriebildung und rechtliche Einheit, 1993, S. 128 참고. 또한헌법적 및방법론적측면에관해서는특히F. Müller, ‘Richterrecht’, 1986, S. 119 이하참고.
4) ‘자유법(Freirecht)’론에관한서술에서등장하는이유명한표현은M. Weber, Wirtschaft und Gesellschaft, hrsg. v. Johannes Winckelmann, 5. Aufl. Studienausgabe, 1980, S. 507에등장한다. ‘사회학자’ 베버가아니라, ‘법학자’ 베버가법학, 특히역사법학에 대해어떠한이론적입장을취하는지에대해서는G. Dilcher, Von der Rechtsgeschichte zur Soziologie. Max Webers Auseinandersetzung mit der Historischen Rechtsschule, in: JZ 2007, S. 105 이하참고. 5) 이는오늘날의모든방법론의공통분모에해당하며, 법관의법형성(richterliche Rechtsfortbildung) 또는법관법(Richterrecht)에관한논의자체가가능하게되는전 제조건에해당한다. 판결또는법학의법창조적성격에관해서는특히자유법론에 대한옹호와비판을한그릇에담으려고시도하는G, Radbruch, Rechtswissenschaft als Rechtsschöpfung. Ein Beitrag zum juristischen Methodenstreit(1906), in: Gustav Radbruch Gesamtausgabe, Bd. 1, 1987, S. 409 이하참고.
6) 이러한관점에서권력분립개념을성찰하는문헌으로는윤재왕, 권력분립과언어―
명확성원칙, 의미론그리고규범적화용론―,「강원법학」44호(2015), 429면이하; Ch. Möllers, Gewaltengliederung. Legitimation und Dogmatik im nationalen und internationalen Rechtsvergleich, 2005, S. 68; M. A. Niggli/M. Amstutz, Recht und Wittgenstein IV, in: P. Zen-Ruffinen(Hrsg.), Du monde pénal. Droit pénal, criminologie et olitique criminelle, police et execution des saction, proceédure penale. Mélanges en l’honneur de Pierre-Henri Bolle, de 2006, S. 161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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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법관의결정의무–재판거부금지의역사적전개과정에관하여
바로이맥락에서–법률‘구속’이라는헌법적전제를문자그대로이해한다
면매우역설적인–법관의법형성이나법창조를둘러싼법이론과법학방법
론의논의가이러한법형성또는법창조자체의허용여부가아니라, 허용
의한계를둘러싸고진행되는이유를이해할수있다.7) 다시말해오늘날
어느누구도사법작용이단순히미리주어져있는법률을결정해야할사안
에기계적으로적용하는‘법률의입(la bouche de la loi)’에불과하다고생각
하지않는다.8) 그리하여법적안정성을보장하는헌법적법률구속원칙에도
불구하고법관의법창조는명시적으로인정되고있고, 이로인해법관의판
결활동은법률구속이라는헌법적전제와법창조라는현실적및방법론적
전제사이의끊임없는긴장관계속에서이루어진다.
입법과사법, 법률과법관사이의이러한긴장관계를감안하면양자의
관계를적절히해명하려는이론적작업은헌법이론, 법철학, 법이론, 법학방
7) 법형성의정도와한계에관한다양한이론적스펙트럼은크게두가지입장으로분류할 수있다. 즉한편에서는법률구속이실현되는규범적용과이를뛰어넘는(법관의) 규범 제정을구별할수있다는전제에서사법부의판결활동이원칙적으로입법적결정의 실현을 뜻한다고 보는 ‘온건한’ 입장(예컨대 K. Larenz, Methodenlehre der Rechtswissenscahft, 2. Aufl. 1969, S. 155 이하; H.-J. Koch/H. Rüßmann, Juristische Begründungslehre, 1982; H.-M. Pawlowski, Methodenlehre für Juristen, 1981, S. 94 이하참고)이있고, 다른한편에는법원의개별적결정을법률로부터논리적이고직접 적으로도출할수있는가능성을극히회의적으로보는‘강력한’ 입장(예컨대D. Simon, Unabhängigkeit des Richers, 1975, S. 88; M. Reinhardt, Konsistente Jurisdiktion. Grundlegung einer verfassungsrechtlichen Theorie des rechtsgestaltenden Rechtsprechung, 1997, S. 133 참고)이대립한다. 이문제점에대한 간략하면서도명확한서술로는R. Ogorek, Richterkönig oder Subsumtionsautomat? Zur Justiztheorie im 19. Jahrhundet, 2. Aufl. 2008, S. 1-11 참고. 이밖에도법관의 법형성및법관법이라는주제를섬세하게추적하고있는이계일, 법관법의법원성에 대한유형적탐구–독일학계의논의를중심으로-, 「법철학연구」제19권2호(2016), 33-76면; 판결의법산출성을강조하는법이론의입장에서본법관법―에써, 피켄처, 뮐러를중심으로―, 「법철학연구」제19권3호(2016), 5-44면; 법관법의대상영역과 규범적힘에관한연구, 「법학연구」, 제26권3호(2016), 209-257면; 법관의법형성의 체계구성에관한탐구, 「법과사회」56권(2017), 297-350면도참고. 8) 권력분립론에기초한몽테스키외의법관상을상징하는이표현의문제점에관해서는 윤재왕, 법관은법률의입? - 몽테스키외에관한이해와오해, 「안암법학」, 제30권 (2009), 109면이하; Ulrike Müßig, Der mißverstandene Montesquieu: Gewaltenbalance, nicht Gewaltentrennung, in: Zeitschrift für neuere Rechtsgeschichte, 22(2000), S. 149면이하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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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론등다수의법학분과에걸쳐있는극히복잡한문제영역에해당한다는
것을곧바로감지할수있다. 특히구속과창조의역설을적절히해소할수
있는이론적도구를발견하는일은결코쉬운일이아니다. 여기에덧붙여
이역설과긴장을해소하기위한다양한역사적시도를함께고려하면문제
의복잡성은더욱더증대된다. 다만오늘날의헌법국가현실의관점에서볼
때입법과사법을구별하는한가지뚜렷한경계선은확인할수있다. 즉입
법자는원칙적으로특정한법률을필연적으로제정해야할의무를부담하
지않는반면, 법관은어떠한경우에도자신에게결정을내리도록제기된
사건에대한재판을거부할수없다. 다시말해입법자는형성의자유와함
께얼마든지결정을내리지않는소극적결정을할수있음에반해, 법관에
게는입법자처럼‘결정하지않는결정’이허용되지않고,9) 반드시적극적으
로일정한내용의결정을내려야할의무가부과되어있다. ‘거부’라는부정
(Negation)과‘금지’라는부정이교묘하게결합되어있는10) 이의무를
전통적으로재판거부금지(Justizverweigerungsverbot) 또는법거부금지
(Rechtsverweigerungsverbot)라고부른다.11) 이금지는법률에명문으로
9) 물론법관이예컨대원고가주장하는청구권이법률에규정되어있지않을때에는 곧바로청구를기각하는결정을내릴수도있다. 다시말해반드시청구권을인정할 수있는방향으로법형성을해야할의무는없다(이에관해서는R. Hegenbarth, Juristische Hermeneutik und linguistische Pragmatik, 1982, S. 200; Ch. Hillgruber, Richterliche Rechtsfortbildung als Verfassungsproblem, in: JZ 1996, S. 120 이하, 122 참고). ‘보편적소극적원칙(der allgemeine negative Grundsatz)’으로알려져있는 이법실증주의적이론에관해서는K. Bergbohm, Jurisprudenz und Rechtsphilosophie, Bd. 1, 1892, Neudruck 1973, S. 383 이하; H. Kelsen, Reine Rechtslehre, 2. Aufl. 1960, S. 251 이하참고. 또한간략한개관으로는S. Vogenauer, Die Auslegung von Gesetzen in England und auf dem Kontinent, Eine vergleichende Untersuchung der Rechtsprechung und ihrer historischen Grundlagen, Bd. I, 2001, S. 629 참고. 이원칙 을고수하는입장은오늘날에는극소수의예외에불과하다. 즉법관의‘적극적’ 법형성 을인정하는것이일반적이다.
10) 이에관해서는특히니클라스루만, 「사회의법」, 2014, 416면이하; N. Luhmann, Die Stellung der Gerichte im Rechtssystem, in: Rechtstheorie 20(1990), S. 467 참고.
11) 프랑스에서는‘déni de justice’, 영국에서는‘denial, refusal, neglect of justice’로불리 는(이에관해서는S. Vogenauer, Die Auslegung von Gesetzen in England und auf dem Kontinent, Bd. I, 2001, S. 312 이하, Bd. II, 2001, S. 905 이하참고) 이금지는 정확히는두가지의미를담고있다. 하나는절차법적측면에서법관이근거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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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법관의결정의무–재판거부금지의역사적전개과정에관하여
규정되어있지않을지라도관습법적효력을인정하는것이일반적이고,12)
실제로법률의불완전성을이유로재판불가(non liquet)를선언하고재판을
거부하는경우가없다는사실에비추어보더라도우리법질서와사법부의
묵시적전제에해당한다.
이러한금지를최초로법률에명시적으로규정한것은1804년에공포된
프랑스민법(Code Civil)이다. 오늘날에도계속효력을갖고있는이법제4
조(오늘날의프랑스민법전에도해당한다)는다음과같이규정하고있다.
“재판의대상이되는사건에대해법률이침묵하고있다거나법률이
불명확또는불충분하다는구실로판결의선고를거부하는법관은
재판거부의죄로인해법원에기소될수있다.”
소송을지연하거나결정을회피하는것에대한금지이고, 다른하나는실체법적측면 에서법률의미비나불완전성때문에결정을내리지않는것에대한금지이다. 독일어 권에서는전자를재판거부금지(Justizverweigerungsverbot; 또는사법거부금지)로, 후자를법거부금지(Rechtsverweigerungsverbot)로구별하는견해(예컨대M. Th. Fögen, Schrittmacher des Rechts. Anmerkungen zum Justiz-und Rechtsverweigerungsverbot, in: H. Honsel u.a.(Hrsg.), Privatrecht und Methode: Festschrift für Ernst A. Kramer, 2004, S. 4 이하; E. Schumann, Das Rechtsverweigerungsvebot. Historische und methodologische Bemerkungen zur richterlichen Pflicht, das Recht auszulegen, zu ergänzen und fortzubilden, in: Zeitschrift für Zivilprozeß 81(1968), S. 79 이하참고)가있다. 스위스에서는동일한 구별기준에따라전자를‘형식적법거부(formelle Rechtsverweigerung)로지칭한다 (예컨대U. Häfelin/W. Haller/H. Keller, Schweizerisches Bundesstaatsrecht, 8. Aufl. 2012, S. 259 이하참고). 절차법적측면의재판거부금지는상당히오랜역사적 전통을갖고있다(이에관해서는예컨대K. Perels, Die Justizverweigerung im alten Reich seit 1495, in: Zeitschrift der Savigny-Stiftung für Rechtsgeschichte. Germanische Abteilung 25(1904), S. 1 이하참고). 본논문은후자의실체법적측면에 집중하지만, ‘법거부금지’라는용어가일반적으로사용되지않고어감상으로도익숙 하지않아’재판거부금지‘라는용어를일관되게사용하겠다. 우리나라에서재판거부 금지는–글쓴이가아는한–국제법의차원에서만논의되고있다. 이에관해서는 예컨대김석현,「裁判의拒否」의槪念과그現代的意義,「국제법학회논총」제51권 1호(2006), 213면이하; 조영주, 재판의거부와국내구제수단완료의원칙,「국제법학 회논총」제59권3호(2014), 241면이하참고.
12) 재판거부금지를명문으로규정하고있지않은독일의경우이미19세기후반부터 이금지의관습법적효력을인정하고있다. 이에관해서는E. Schumann, Das Rechtsverweigerungsverbot, S. 90 각주41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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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4조의규정은법률과판결또는입법자와법관의관계를둘러싼
그이전의정치적, 이론적전개과정을정반대방향으로전복한획기적
(epochal)인사건에해당한다. 즉그이전의발전사는오히려법관을법률문
언에엄격하게구속시키고, 이법률구속을일관되게관철하기위해여러가
지법적, 제도적장치를마련하는방향으로이루어졌다. 아주단순하게생각
하더라도법률을제정할권력을가진자가자신의권력의표현이자산물인
법률을뛰어넘거나벗어나독자적으로결정을내릴수있는권한을법관에
게부여할가능성은매우낮다. 실제로근대초기의입법자는자신이제정
한법률에대해법관이의문을가질경우, 이의문을자신또는자신의직접
적지배하에있는기관에게제출해의문에대해결정을받도록하는의무를
법관에게부과했다. 다시말해법관의해석권한을배제하거나최소화함으로
써법률의실현과관철을최대화하려고노력했다. 이점에서법률을해석하
고, 심지어흠결을보충하며법률이외의근거를원용해어떠한경우에도
법관이결정을내리도록강제하는재판거부금지는근대의대륙법질서의진
화과정에서매우독특한의미와위상을갖고있다.
이러한배경을감안하면서이글은재판거부금지가법제도로정착하기
까지의역사적과정을추적함으로써역사적연원(Genesis)으로부터실질적
타당성(Geltung)을밝히고자시도하고자한다.13) 이를위해먼저근대초기
부터국가가형성되면서주권개념이탄생하고, 주권의핵심을법률제정권
으로파악함으로써입법이국가권력의핵심으로부상하는과정그리고이
에따라법률의제정과해석에관한이해의변화(II)를서술하고, 특히법관
의해석을금지하면서, 금지에따른문제점을법관의문의의무로보충하는
제도적장치(III)를설명하겠다. 이역사적서술은앞의제4조를명문으로규
13) ‘연원과타당성’ 사이의(긴장)관계에대해서는특히K. Lüderssen, Zur Dialektik von konsensorientiertem und entwicklungslogischem Rechtsdenken, in: ders., Genesis und Geltung in der Jurisprudenz, 1996, S. 15 이하, 59 이하참고. 역사와 규범성사이의관계에대한개관으로는S. Laukötter, Zur Genese und Geltung von Normen vor dem Hintergrund historischer Erfahrungen - Eine begriffliche Landkarte, in: Th. Gutmann/S. Laukötter/A. Pollmann/L. Siep(Hrsg.), Genesis und Geltung. Historische Erfahrung und Normenbegründung in Moral und Recht, 2018, S. 27 이하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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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법관의결정의무–재판거부금지의역사적전개과정에관하여
정한프랑스를중심으로, 비록명문의규정을제정하지않았지만동일한문
제상황과유사한문제해결시도를보여준프로이센과오스트리아의역사를
함께포함할것이다. 이러한전사(Vorgeschichte)로부터이와는완전히반
대되는재판거부금지로급격한변화를겪게된이유와과정은그다음의서
술내용에해당한다(IV). 이를통해오늘날에는거의당연한것으로전제되
어있는재판거부금지가역사적으로는결코당연한것이아니라, 상당히오
랜기간에걸친진화적성취에해당한다는사실을밝히도록하겠다. 미리
밝혀두지만, 이러한역사적탐문은연원에비추어타당성을설명하려는역
사주의적시도가아니다. 오히려실정법이법질서의중심이되고법체계가
독자성을강화해가는근대의발전이우연성의상승과상승된우연성의처
리라는문제와씨름하면서재판거부금지와같은제도적지원을필요로했
다는사실을밝히는것이글쓴이의궁극적인식관심이다. 따라서재판거부
금지가오늘날의법체계에정착하지않을수없는체계적근거들에관한이
론적설명은뒤이은연구에맡기고자한다. 물론연원에초점을맞추든아
니면타당성에초점을맞추든어느경우에나법률과판결, 입법자와법관
사이의관계라는여전히명확하게밝혀져있지않은문제에대한성찰의한
자락이라는사실에는변함이없다.
Ⅱ. ‘입법자의의지’ – 재판권에서입법권으로의전환
주로각지역의관습법중심으로전개된유럽대륙의법질서는11세기이
후고대로마법을계수해이를보편적법질서로서의보통법(Ius Commune)을
형성하는과정을겪게된다. 물론각지역의군주나영주가규칙을직접형
성하는경우도있었지만이는관습법/보통법체계의보충적수단이었을뿐,
독자적인법원(法源)으로서의성질을갖지는못했다.14) 여전히법(ius)은이
14) 이에관한법사학적개관은H. Schlosser, Neuere europäische Rechtsgschichte, 3. Aufl. 2017, S. 10-48 참고. 또한11세기이후유럽의법사를추적하고있는불후의 대작인 H. Berman, Recht und Revolution. Die Bildung der westlic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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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존재하는것또는이에대한인식으로여겼지, 법을적극적으로형성한
다는사고가정착하지는못했다. 이러한상황에서지배자의권력은분쟁에
대해종국적인결정을내릴수있는재판권에서표현되었다. 즉군주는최
상위의법관이었고국왕의궁정법원이곧최상급법원이었다.15) 그리하여
군주가원하기만하면확정판결이이루어지지않은어떤사건이든스스로
결정을내릴수있는권한을가졌다(이른바소환권jus evocandi16)). 예컨대
제국최고법원(Reichskammergericht)과제국궁정위원회(Reichshofrat)의발
전에서볼수있듯이신성로마제국이공식적으로소멸한1806년까지재판권
은황제의권한가운데가장강력한권한으로유지되었다.17) 그이유는바로
황제또는국왕이지배권을행사하는토대가입법과행정이아니라, 재판, 즉
사법이었기때문이다.18) 이맥락에서제국에속한각란트를지배하는군주
의권력은황제의소환권으로부터벗어날수있는특권(privilegium de non
evocando)의보유여부및그정도에따라가늠되었다.19) 황제와국왕사이
의이러한관계는다시국왕과각지방영주사이의관계에서도반복되었다.
이처럼국가권력의근원적핵심으로서의사법권으로부터오늘날우리
가입법과행정이라고부르는권력이파생되었고, 이점에서지배권의근원
적형태는입법이아니라, 사법이었다.20) 이사법우위의권력구조는중세
후반또는근대초기에제국의권한이약화되고영토국가(Territorialstaat)
가형성되면서절대주의주권(Souveränität; Majestät) 개념의등장과함께
결정적전환을맞이한다. 즉주권적군주의지배에관한근대초기이론의
Rechtstradition, 1995 참고.
15) 이에관한구체적인내용은H. Conrad, Deutsche Rechtsgeschichte, Bd. I, 2. Aufl. 1962(Reprint 2011), S. 378 이하참고. 16) 소환권의 역사에 관한 간략한 서술은 U. Eisenhardt, Jus evocandi, in: Handwörterbuch zur deutschen Rechtsgeschichte, Bd. II, 2012, Sp. 1462-1465 참고.
17) H. Conrad, ebd. 18) W. Ebel, Geschichte der Gesetzgebung in Deutschland, 2. Aufl. 1958(Neudruck 1988), S. 13, 27.
19) U. Eisenhardt, ebd.. 20) G. Roellecke, Die Bindung des Richters an Gesetz und Verfassung, in: Veröffentlichung der Vereinigung der Deutschen Staatsrechtslehrer, 34(1976), S. 25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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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법관의결정의무–재판거부금지의역사적전개과정에관하여
핵심은입법자의의지(voluntas legislatoris)가곧법률이고, 법률은군주의
의지일따름이라는것이다.21) 이맥락에서보댕(Jean Bodin)22)과홉스
(Thomas Hobbes)23)는법률을주권자의명령또는의지로규정하고, 주권
자는바로입법을통해자신의존재를증명한다고한다. “법률을제정하는
것은 최고권능의 상징이다(Condere legem, est signum supremae
potestatis).”24) 이주권이라는상징을통해입법자로서의지배자라는새로
운개념이법관으로서의지배자라는과거의개념을대체한다.25) 이로써주
21) ‘입법자의의지’에관해서는무엇보다J. Lukas, Zur Lehre vom Willen des Gesetzgebers. Eine dogmengeschichtliche Untersuchung, in: W. van Calker/F. Fleiner(Hrsg.), Staatrechtliche Abhandlungen. Festgabe für Paul Laband zum 50. Jahrestage der Doktor-Promotion, Bd. I, 1908, S. 399 이하참고. 이밖에도H. Mohnhaupt, Potestas legislatoria und Gesetzesbegriff im Ancien Régime, in: Ius Commune IV(1972), S. 188 이하참고. 22) 보댕은“법률은주권자의명령이다” 및주권자는자신이만든법률에구속당하지 않는다는legibus solutus를통해주권의핵심을사법권으로부터입법권으로전환하 는근대의서막을알리고있다. 이에관해서는장보댕, 「국가에관한6권의책」, 제1권, 2013, 261면이하. 또한입법권의형성에서보댕의의미에관해서는M. Schennach, Gesetz und Herrschaft. Die Entstehung des Gesetzgebungsstaates am Beispiel Tirols, 2010, S. 130 이하참고.
23) 이에관해서는“진리가아니라, 권위가법률을만든다(auctoritas, non veritas facit legem)”는유명한말이등장하는리바이어던제26장‘시민법에대하여’(토마스홉스, 「리바이어던」1, 2008, 347면이하) 참고. 홉스는보댕의이론을더욱섬세하게구성 하고있고, 주권자의입법권에대한근대적이해를너무나도잘보여주고있다. 즉 홉스는단순히입법행위자체에국한시키지않고, 법률의폐지와해석등법률의 ‘지속’과관련된모든권한을입법권으로이해하고있다. 법률해석과관련된홉스의 이러한이론이사법부에게는어떠한의미를갖고있는지에대해서는Wolfgang Gitter, Die Methode der richterlichen Gesetzesauslegung als staatsrechtliches Problem. Versuch einer Darstellung der Methodenlehre in ihrer Beziehung zum Staatsrecht, 1960(박사학위논문), S. 3 이하참고. 24) Sebastian Medicus, De legibus, statutis, et consuetudine, 1574, S. 34(H. Hofmann, Verfassungsgeschichte als Phänomenologie des Rechts, 2007, München, S. 23에서 재인용). 25) 이에관해서는M. Stolleis, Condere leges et interpretari. Gesetzgebungsmacht und Staatsbildung in der frühen Neuzeit, in: ders., Ausgewählte Aufsätze und Beiträge Bd. I, hrsg. v. S. Ruppert/M. Vec, 2011, S. 109 이하; ders., Die Idee des souveränen Staates, in: ders., ebd., S. 261 이하; K. Eder, Die Entstehung staatlich organisierter Gesellschaften–Ein Beitrag zu einer sozialen Evolution, 1980, S. 165 이하; H. Mohnhaupt, Potestas legislatoria und Gesetzesbegriff im Ancien Régime, S.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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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11
권독트린은군주의의지를현세의최고법원(法源)으로선언하고, 다른전
통적인법원(법원의관행을포함한관습법, 보통법)을원용하는것을단절
시켰다. 즉주로전통과관행에의지하던기존의세속적법은군주의의지
보다후순위에속하고, 자연법또는신법의명령과금지는군주의내면의
법정(forum internum)에속하는도덕적의미만을갖게되었다. 다시말해
그와같은명령과금지는단순한도덕적양심구속일뿐, 신민이이를근거
로군주에게권리를주장하거나요청을제기할수없게되었다.26) 이와같
은주권적군주지배의법률개념은의지적(volitiv)이고정치적법률개념이었
다. 이는이미있는법에대한인식적(kognitiv) 확인이라는과거의이론적
전통과의단절을의미했고, ‘있는법으로부터만드는법으로’라는근대적법
개념으로의전환을알리는서막이었다. 즉이때부터법률개념자체가국가
권력의행사에대한참여를둘러싼모든투쟁의중심에자리잡게되었
다.27) 그때문에주권은일정한기본법(lex fundamentalis)28)을제외하고는
모든법적관계를지배자의일방적인법제정의대상으로만들게되었다. 물
론이러한의지적법률개념이예전부터존재해왔던수많은권리와특권, 지
역의입법, 관습등모든전통적규범을군주의규범을통해제거하거나대
체하는데곧바로성공한것은아니다. 하나의통일적인지점으로부터법을
실정화하는특수한국가기술(Staatstechnik)은진화적과정의산물이었을
따름이다. 이를위해서는무엇보다모든것을포괄하는추상적-일반적입법
이라는사고가형성되어야했다. 그리고이와같은보편적입법은일정한
정도의시민적평등, 삶의질서로서의자연법개념의수용및모든사회적
이하참고. 26) 보댕만하더라도여전히‘공동선’, ‘신법’ 등을군주에대한객관적-법적구속의근거로 파악하지만, 그이후의역사는군주가이러한외적구속으로부터벗어나, 단지주관적 -도덕적구속만을받을뿐이라는쪽으로전개된다. 이에관해서는H. Hofmann, Legitimität und Rechtsgeltung, 1977, S. 25 이하참고.
27) 의지중심의법률개념과정치적투쟁을결과로서의법률개념에관해서는사상사적 관점에서접근하고있는G. Roellecke, Der Begriff des positiven Gesetzes und das Grundgesetz, 1969, S. 42와H. Hofmann, Das Postulat der Allgemeinheit des Gesetzes, in: Ch. Starck(Hrsg.), Die Allgemeinheit des Gesetzes, S. 9 이하참고. 28) 이에관해서는뒤의14면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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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법관의결정의무–재판거부금지의역사적전개과정에관하여
관계를계획적으로재구성할수있다는계몽주의적확신을전제했다.29)
그렇다고해서구체제(ancien régime)의입법이처음부터오늘날의권
력분립에서말하는독립적이고완결된권력을의미하지는않았다. 유럽대륙
의대다수절대주의국가에서는세개의권력이아니라, 절대적지배자의형
태로단하나의권력만이존재했다. 즉‘최고지배권(summum imperium)’,
‘다수의권능(plentitudo potestatis)’, ‘대권(majestas)’, ‘주권(souveraineté)’
등으로표현되는절대적국가권력을전제하고, 이전제하에세가지기능들
이존재한다는식으로지배의의미론을구성했다.30) 여기서세가지기능은
심의, 집행, 판결이라는아리스토텔레스의고전적삼분법을토대로삼았
다.31) 이세가지기능은서로다른국가기관에귀속시킬수도있지만, 구체
제에서는원칙적으로모든기능이군주에의존했고, 군주의이름으로행사
되었다. 그리하여‘입법권(potestas legislatoria; potestas legislativa)’은통일
적으로사고된이러한국가권력의부분기능이었다.32)
이부분기능으로서의입법권능이주권의핵심이자판결보다더중요한
권력으로떠오른것은지배권에대한중세의견해에서상정했던사법권우
29) 이와관련된전반적인역사적흐름, 특히‘자연법’ 개념의변화와법전편찬시대로의 전환에관한간략한개관은S. Meder, Rechtsgeschichte. Eine Einführung, 2002, S. 205 이하참고.
30) H. Mohnhaupt, Potestas legislatoria und Gesetzesbegriff im Ancien Régime, S. 188. 이밖에도A. Schwennicke, Die Entstehung der Einleitung des preussischen allgemeinen Landrechts von 1794, 1993, S. 271 이하; B. Droste-Lehnen, Die authentische Interpretation. Ddogmengeschichtliche Entwicklung und aktuelle Bedeutung, 1990, S. 127; H. Weller, Die Bedeutung der Präjudizien im Verständnis der deutschen Rechtswissenschaft. Ein rechtshistorischer Beitrag zur Entstehung und Funktion der Präjudizientheorie, 1979, S. 71 이하도참고. 또한로마법에서카논 법을거쳐근대에이르는입법권의간략한역사는M. Schennach, Gesetz und Herrschaft, S. 112 이하참고. 주권개념의형성및전개에관해서는H. Quaritsch, Souveränität. Entstehung und Entwicklung des Begriffs in Frankreich und Deutschland vom 13. Jahrhundert bis 1806, 1986 참고.
31) 아리스토텔레스의이고전적삼분이론(권력분립이론이아니다!)과그역사적수용에 관해서는K. Kluxen, Die Herkunft der Lehre von der Gewaltentrennung(1957), in: H. Rausch(Hrsg.), Zur heutigen Problematik der Gewaltentrennung, 1969, S. 133 이하참고. 32) H. Mohnhaupt, Potestas legislatoria und Gesetzesbegriff im Ancien Régime, S.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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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13
위와는반대되는방향으로권력기능의순서를역전시키는의미를갖고있
었다. 왜냐하면중세에는–앞에서지적했듯이–군주의입법권을결코최상
의국가과제로여겨지지않았기때문이다. 즉입법은군주에게의문의여지
없이귀속되는최고사법권의병합물이거나한구성부분이었으며, 판결활동
과입법활동을동등성과독자성의관점에서포착하지않았다. 입법이독자
성을갖고분화한것은절대주의가어느정도정착한이후, 특히보댕의주
권이론의등장과신분계급의입법참여권을완전히배제한이후의시기에
이루어졌다. 이러한입법우위의변화는동시에입법과판결의이론적및
실천적분리를야기했다. 이러한발전은크게두가지단계로이루어졌
다.33)
16세기부터17세기중반까지입법은여전히이른바‘합의로서의성
격’34)을갖고있었다. 즉입법의산물은지배자와신분계급사이의계약상
의약정과유사했다. 특히입법절차가군주의주도권과귀족의반대권사이
의긴장관계속에서어떤조화의지점을찾는일이무엇보다중요하게여겨
졌다. 예를들어독일지역의법률은정기적으로소집되는제국의회에서협
약의형태로모습을드러냈다. 신분계급역시신성로마제국의황제와함께
제국을통치한다는‘헌법’적구조를갖고있었기때문이다. 따라서법률의
성립근거와의미는곧황제와전체신분계급사이의쌍방적계약이었다.35)
이러한계약으로서의법률은당연히입법에참여하는정치적세력들의
당파적이익을표현했다. 특히조세동의권은절대주의가정착할때까지도
신분계급으로구성된의회가보유했고, 이고전적의회는주권자인절대군
주로하여금신분계급의권리를고려하지않을수없도록만들정도로여전
히강력한정치적권력을갖고있었다. 예컨대16세기프랑스신분의회는
입법에강한영향력을행사하면서, 무엇보다거부권(veto)을훨씬뛰어넘는
33) H. Mohnhaupt, ebd., S. 191 이하.
34) 이에관해서는W. Ebel, Geschichte der Gesetzgebung in Deutschland, S. 67; R. Grawert, Historischen Entwicklungslinien des neuzeitlichen Gesetzesrechts, in: Der Staat 11(1972), S. 4 이하; M. Stolleis, Condere leges et interpretari. Gesetzgebungsmacht und Staatsbildung in der frühen Neuzeit, S. 115 이하참고. 35) H. Mohnhaupt, ebd., S.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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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법관의결정의무–재판거부금지의역사적전개과정에관하여
‘이의제기(cahiers de doléances)’36)권의형태로군주에게정치적압박을가
할수있었고, 이의제기및특정한내용의요청가운데일부는직접법률텍
스트에수용되거나법률의토대가되기도했다. 물론이에대한결정권은
군주에게있었다. 신분의회와지배자사이의권력적긴장관계에서는이른바
기본법(lex fundamentalis)이군주의권력을제한하고신분계급의권리를
보장하는중요한요소였다.37) 이기본법은귀족과지배자사이에서계약을
통해설정된권리와의무를보장하는기능을갖고있었다. 물론이기본법
의준수는개별국가마다정도의차이가있었고, 군주와신분계급의역학관
계에따라다양한발현형태를갖고있었다.
그러나17세기에들어유럽대륙어디에서나주권자들이신분귀족의
저항을뚫고자신들의절대적권력을관철하는데성공하게된다. 무엇보다
입법의영역에서신분의회의참여와영향을배제함으로써입법과관련된
새로운단계가시작된다. 이에따라군주가입법권을독점하게되었고, 법을
제정하고창조하는행위에대한의미론도변화한다. 즉16세기까지만하더
라도관습법적법형성의부수현상으로여겨졌던법제정38)은– 사실상으로
는군주와신분계급사이의합의또는타협이었음에도불구하고– 입법자
의이성적통찰로포장되고, 법률의내용이정의의이념과일치한다는식으
로정당화하는의미론이지배적이었다. 그러나17세기초반부터주권자의
의지가절대주의국가를강화하는가운데이의지자체가법률의진정한실
체이고, 법률의구속력은전적으로지배자의명령으로부터도출된다는의미
36) ‘탄원서’로도번역할수있는이제도가프랑스혁명때까지전개된역사에관해서는 J. Sandweg, Rationales Naturrecht als revolutionäre Praxis. Untersuchungen zur ‘Erklärung der Menschen- und Bürgerrechte’ von 1789, 1972, S. 121 이하참고.
37) 이에관해자세히는H. Mohnhaupt, Die Lehre von der ‘Lex fundamentalis’ und die Hausgesetzgebung europäischer Dynastien, in: J. Kunisch(Hrsg.), Der dynastische Fürstenstaat. Zur Bedeutung von Sukzessionsordnungen für die Entstehung des frühmodernen Staates, 1982, S. 3 이하; H. Hofmann, Zur Idee des Staatsgrundgesetzes, in: ders., Recht – Politik – Verfassung, 1986, S. 275 이하 참고. 38) 이관습법의우위에관해서는Th. Simon, Geltung. Der Weg von der Gewohnheit zur Positivität des Rechts, in: Rechtsgeschichte 7(2005), S. 100 이하, 특히102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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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15
론이급격히부상한다. ‘입법자의의지’에집중된국가및법에관한이해는
18세기후반에야비로소추상적이성법이론에의해극복된다.39)
아무튼입법자의의지만이법률을구성한다는이론은유럽의절대주의
지배자들의권력주장의결정적토대였다. 정치적지배와권력에대한이론
역시이점을확인했다. 즉입법은주권적권력의가장중요한부분에속하
고, 신분계급과권력을분할하지않는정상적인군주정정부형태에서는입
법이법적소재에대한군주의포괄적인처분권을내용으로삼는다는데의
견이일치했다.40) 입법자의의지는의지적요소를법률의내용으로삼을뿐
만아니라, 법률이라는형식자체가이미입법자의의지로여겨졌다.41) 이
와같이입법자의의지를법률로절대화함으로써의지의주체가곧모든법
의독점적이고배타적인원천이될수있는토대를마련했다. 이러한주체
가절대주의에서는유일한지배자인군주였고, 군주의존엄, 다수의권능또
는주권은분할되지않은입법권을통해구현된다고생각했다. 그때문에
절대군주의권력주장이유일한법원(法源)이되었다. 물론현실에서는구체
적으로여러가지변형이존재했다. 그리고군주의지배에관한모든이론
은현명한군주라면입법권을행사할때신분계급으로구성된위원회와공
식적자문역할을하는신하의견해를함께고려하는것이바람직하다는지
적을포기하지않았다. 하지만이러한지적은지배자의에토스에지향된, 구
속력이없는도덕적권고였을뿐이고, 이미군주에게독점된입법권을분할
할근거가되지는못했다.
이와같은포괄적처분권으로서의입법권은결코법률의제정에만고
정시켜완결성을갖는통일적인권력이아니라, 각각독립성을갖고있는
개별적명령행위의총합으로여겨졌다. 즉입법권은법률의제정(condere)
뿐만아니라, 법률의해석, 폐기, 변경(interpretari, derogare, subrogare) 그
리고불특정다수의사례나개별사례에대한법률적용의배제및특권부여
39) 이측면을둘러싼간략한역사적개관은S. Meder, Rechtsgeschichte, S. 206 이하; H. Schlosser, Neuere europäische Rechtsgeschichte, S. 145 이하참고.
40) M. Stolleis, Condere leges et interpretari, S. 112. 41) ‘입법자의의지’라는형상이갖는형식적측면과내용적측면에관해서는J. Lukas, Zur Lehre vom Willen des Gesetzgebers, S. 400 이하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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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법관의결정의무–재판거부금지의역사적전개과정에관하여
(dispensare, eximere)까지포함하는포괄적권력에해당했다.42) 또한법률
의공포역시입법권의한부분으로보기도했다. 따라서입법권은특정한
개별사례에대한법률적용의배제를명령할수있는권능에서분명하게드
러나듯이오늘날과같은추상적-일반적내용의프로그램을의미하지않았
다. 즉법률은진리또는법률내용이갖고있는권위때문이아니라, 단지
주권을보유한군주의명령이기때문에효력을갖는다고보았고, 이명령과
관련된모든개개의활동을집약하고, 이활동들은다시입법권으로수렴되
었다. 심지어전통적인관습법마저도단순히사실상의반복과일반적확신
이아니라, 입법자의묵시적동의때문에효력을갖는다고이해43)할정도로
지배질서전체를주권자인군주에게집중시켜정당화를시도한다.
특히법률의해석에관한주권자의권능은입법권을독점한지배자가
법률의해석으로인해자신의독점권이다시상실될수도있다는우려에기
인한것이었다. 중세의교회법에서도교황의권능은법을제정, 폐기및해
석하는권능으로이해되었고, 근대초기절대주의는이를모범으로삼아입
법권으로부터곧바로해석의권능을도출했다.44) “법률의원천은곧해석의
원천이다(Ut igitur unde ius prodiit, interpretatio quoque procedat).”45)
42) M. Stolleis, ebd., S. 113. 또한H. Mohnhaupt, ebd. S. 208 이하; ders., Gesetzgebung und Gesetzgeber in Brandenburg-Preussen während des Ancien Régime, in: A. Giuliani,/N. Picardi(Hrsg.), L' educazione giuridica. V: Modelli di legislatore e scienza della legislazione. Tomo 2: Modelli storici e comparativi, 1988, S. 357; M. Schennach, Gesetz und Herrschaft, S. 136 이하참고. 또한제정이외의나머지요소 를‘법률의관철’로묶어고찰하는G. Immel, Typologie der Gesetzgebung des Privatrechts und Prozessrechts, in: H. Coing(Hrsg.), Handbuch der Quellen und Literatur der neueren europäischen Privatrechtsgeschichte, Bd. 2: Neuere Zeit(1500-188). Das Zeitalter des gemeinen Rechts, Tb. 2: Gesetzgebung und Rechtssprechung, 1976, S. 83 이하도참고. 43) 이는곧군주가제정한법률이관습으로정착이될때비로소효력을인정하던관습법 시대로부터역으로관습법이군주의의지로부터파생된것으로정당화될수있을 때에만비로소효력을갖게되는시대로전환되었다는뜻이다. 이러한전환및과도기 의의미론에관해서는Th. Simon, Geltung, S. 106 이하참고.
44) H. Mohnhaupt, Potestas legislatoria und Gesetzesbegriff im Ancien Régime, S. 204 이하; M. Stolleis, Condere leges et interpretari, S. 114. 45) 13세기의교황칙서에등장하는이표현에관해서는C. Schott, Auslegungsverbot, in: Handwörterbuch zur deutschen Rechtsgeschichte, Bd. I, 2. Aufl. 2008, 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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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법률을제정할권능을가진자가법률을해석할권능까지가진다는원칙
을수립하고, 중세이후의전통적해석이론의한구성부분이었던유권해석
(authentische Interpretation)46)을유일한해석원칙으로확립한다. 이는궁
극적으로주권자의입법권에는근대이전의지배권의표현이었던최고사법
권까지포함된다는것을의미했다. 다시말해입법권은법률형식의차원을
뛰어넘어, 법률의내용의외적발현까지도통제하는권능을의미했고, 이맥
락에서구체적인법적분쟁에대해결정을내리는법관을주권적입법자의
의지로서의법률에엄격히구속시켰다. 이러한의미의법률구속은당연히
법관의판결과정에대한외부의개입을배제하고법관의독립성과중립성
을보장하기위한헌법국가적적-법치국가적법률구속이아니다. 오히려입
법자의의지가구체적인재판에서완벽하게실현될수있도록법관의의지
(또는자의)를완벽하게차단하기위한장치였다. 이처럼입법자의해석독
점과법관의법률구속의연장선상에서법관에게는해석이금지되고, 법관이
법률의내용(= 입법자의의지)에대해의문을갖거나법률이불명확하다고
369-375 참고.
46) ‘유권해석’이라는표현은오늘날일반적으로–예컨대선거관리위원회의‘유권해석’과 같이–의회가제정한법률에대해행정청이해석을하는경우로이해된다. 그러나 이미일찍부터해석의한형태로서정착한유권해석은‘진정한(authentisch)’이라는 형용사가보여주듯이원래“말한사람이그말의의미를가장잘이해하고있기때문 에, 말한사람의해석이진정한해석이다”는의미로사용되었다. 따라서법적해석의 맥락에서는법을제정한자가자신이제정한법에대해해석을하는경우를뜻한다. 다시말해입법자에의한해석이유권해석이지, 행정청의해석은역사적의미의유권 해석에해당하지않는다. 유권해석의역사적전개에관해서는다른해석방법과결부 시켜섬세한서술을보여주고있는C. Schott, Gesetzesinterpretation im Usus Modernus, in: Zeitschrift für neuere Rechtsgeschichte 21(1999), S. 45 이하, 57 이하; B. Droste-Lehnen, Die authentische Interpretation, S. 124 이하; R. Störmer, Auslegungsverbote und authentische Interpretation. Exemplarische Betrachtungen unter besonderer Berücksichtigung der obligatorischen Rictervorlage an die Gesetzeskommission im Preußen des ausgehenden 18. Jahrhundert, in: G.-H. Gornig(Hrsg.), Staat–Wirtschaft–Gemeinde. Festschrift für Werner Frotscher, 2007, S. 71 이하; (개념및개념의확대에관한) F.-R. Grabau, Über die Normen zur Gesetzes- und Vertragsinterpretation, 1993, S. 102 이하참고. 이러한역사적 사실과는달리‘유권해석’의개념을입법자가아니라, 법관에의해이루어지는해석으로 이해하는예외적인–또는비역사적인–입장으로는Hans Kelsen, Reine Rechtslehre, 2. Aufl. 1960, S. 346 이하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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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법관의결정의무–재판거부금지의역사적전개과정에관하여
여기는경우(‘dubia et obscura’)에는법관스스로의문과불명확성을제거
하는것이허용되지않고, 의문이나불명확성에관해군주또는군주직속의
기관에게문의하고, 문의에대한대답을수령한이후판결을내려야할엄격
한의무를부과하게된다.47) 다시말해법률내용의불명확성으로인한해석
은전적으로입법자에게유보되어있었고, 법관은법률의문언에엄격히구
속되었다. 이점에서주권자의포괄적입법권과해석독점권및유권해석은
곧법관의해석금지와문의의무(Auslegungsverbot und Anfragepflicht)와
밀접한상호보충적관계를맺고있다고할수있다.48) 법관의활동영역을
극단적으로제한하는이해석금지와문의의무는약17세기후반부터18세
기말까지유럽대륙에서매우다양한형태로등장했고상당히복잡한변화
과정을겪게된다. 이러한다양성과복잡성을감안해이에관해서는별개의
장으로분리해서술하도록한다.
Ⅲ. 법관의문의의무–유권해석과해석금지
법률이장래에발생할모든사안을사전에완벽하게포착할수없기때
문에49) 나타나는법률의흠결또는법률을제정할당시에발생한오류가사
후에확인된경우나법률문언이사례에대한단순한적용을넘어해석을필
요로하는경우에는자동적으로어떠한제도가흠결의보충, 오류의수정
및해석의권한을갖는가라는물음이제기된다. 이와관련해서는원칙적으
47) H. Mohnhaupt, ebd., S. 220 이하.
48) 해석금지와 문의의무의 역사에 관한 간략한 서술로는 H. Conrad, Deutsche Rechtsgeschichte, Bd. II, 2. Aufl. 1962(Reprint 2011), S. 382-386; C. Schott, Auslegungsverbot 참고. 49) 법률의불완전성은–앞에서인용한베버의말처럼–입법의숙명일뿐만아니라, 언어 의측면에서도도달불가능한이상에해당한다. 특히언어이론적관점에서이문제에 접근하는오늘날의이론적경향에관해서는D. Busse, Verstehen und Auslegung von Rechtstexten–institutionelle Bedingungen, in: K. Lerch(Hrsg.), Recht verstehen. Verstädlichkeit, Missverständlichkeit und Unverständlichkeit von Recht(Die Sprache des Rechts 1), 2004, S. 17 이하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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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19
로세가지가능성을생각해볼수있다. 첫째, 법률을제정한입법자스스로
보충, 수정및해석할권한을유보하는방법. 둘째, 법률을사례에적용하는
법관이판결을통해판결을통해오류를수정하고, 법형성을통해흠결을
보충하며법률을적극적으로해석할권한을위임받는방법. 셋째, 이러한권
한을별개의기관에게위임해서, 입법자와법원으로부터독립해독자적으로
법률을수정, 보충, 해석할권한을담당하는방법. 18세기후반까지전개된
법의역사는법률의수정, 보충및해석과관련해주로첫번째와세번째
방법을사용했다. 즉법률의수정및해석은입법자자신에의해이루어지
도록했고, 법원을입법자의의지에최대한구속시키는경향이언제나지배
적인방법이었다. 이러한역사의배후에는지배자의절대적의지및이로부
터파생되는입법자의전권이자리잡고있다. 다시말해법률의수정및해
석의권한은입법자와법관또는법률가들이전개하는법학사이의정치적
권력의문제이기도했다.
이미로마의콘스탄티누스황제는316년에“형평과법사이에개입하는
해석은오로지나의의무이자권리이다”고선언했다.50) 또한로마의법률가
들은모든법률규정이‘언제나새롭게등장하는문제들을통해’ 또는나중에
등장하는새로운‘법적거래’를통해해석을필요로하거나보충을필요로
한다는사실을분명히의식하고있었지만, 해석과수정은오로지황제의권
력에속한다는것을잘알고있었다.51) 이연장선상에서유스티니아누스법
전의학설휘찬(Digesten) 1.3.11은다음과같이확정하고있다. “황제가애초
에규정한것은황제폐하의해석또는다른법률을통해더욱확실하게규
정되어야한다”라고명시한다.52) 그때문에법관에게는법률에대해의문이
50) Codex 1. 14. 1: “Inter aequitatem iusque interpositam interpretationem nobis solis et oportet et licet inspicere.”(인용은C. Schott, Auslegungsverbot, Sp. 369에따름). 이에관해서는또한C. Schott, Gesetzesinterpretation im Usus Modernus, S. 48도 참고.
51) O. Behrends/R. Knütel/B. Kupisch/H. H. Seiler(Hrsg.), Corpus Iuris Civilis II (Digensten 1-10), 1995, S. 13(Dekoden 18); S. 85(Constitutio ‘Tanta’). 52) Corpus Iuris Civilis II, S. 113(“Et ideo de his, quae primo constituuntur, aut interpretatione aut constitutione optimi principis certius statuendum est.”) 이에 관해서는C. Schott, Gesetzesinterpretation im Usus Modernus, S. 48, 58; M. 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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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법관의결정의무–재판거부금지의역사적전개과정에관하여
있을때는이를황제에게제출해야할의무가부과된다. “(법률에대해) 어
떤의문이발생하면이의문을황제의위임을받은법관에게제출해야하
고, 유일하게법률을제정하고선포할수있는황제의권력을통해제거해
야한다.”53) 그때문에유스티니아누스법전은법관의법률해석을금지했을
뿐만아니라, 심지어법학자가법전에대해주석을하는것마저도금지하면
서법학자의활동을청년들에게법률을가르치는강학상의목적에국한시
키도록했다.54)
그러나로마제국의쇠퇴와교황권의강화그리고봉건제도의확립은로
마법적전통의해석금지와주석금지및이에수반된유권해석을더이상유
지할수없게만들었다. 특히제정법마저도‘문자로기록된관습(consuetudo
in scriptis redacta)’으로파악할정도로관습법의우위는제정법의비중을
크게약화시켰고,55) 제정법의효력을사실상의준수(Observanz)와법원의
관행(usus fori)에의존하게만들었다.56) 이점은중세의해석이론에도그대
로반영되었다. 즉중세의해석이론은해석의주체를중심으로유권해석
(interpretatio authentica), 관습적해석(interpretatio usuali), 학문적해석
(interpretatio doctrinali)으로나누고, 관습적해석을중심으로삼아유권해
석과학문적해석을보조수단으로이용하는이론적체계를완성했다.57) 이
Fögen, Schrittmacher des Rechts, S. 5 이하; J. Lukas, Zur Lehre vom Willen des Gesetzgebers, S. 409 이하; L. Spiegel, Der référé législatif oder die Anfrage bei Hof, in: ders., Gesetz und Recht. Vorträge und Aufsätze zur Rechtsquellentheorie, 1913, S. 101 이하; S. Vogenauer, Die Auslegung von Gesetzen in England und auf dem Kontinent, Bd. I, S. 581 이하참고. 53) Codex 1. 17. 2. 21: “Si quid vero ... ambiguum fuerit visum, hoc ad imperiale culmen per iudices referatur et ex auctoritate Augusta manifestetur, cui soli concessum est leges condere et interpretari.”(인용은C. Schott, Auslegungsverbot, Sp. 369에 따름).
54) 이에관해서는H.-J. Becker, Kommentierverbot, in: Handwörterbuch zur deutschen Rechtsgeschichte, Bd. 2, 2. Aufl. 2012, Sp. 1979-1981 참고. 55) 이에관해서는S. Gagner, Studien zur Ideengeschichte der Gesetzgebung, 1960, S. 216, 296 참고.
56) 이에관해서는Th. Simon, Geltung, S. 104 이하; C. Schott, Gesetzesinterpretation im Usus Modernus, S. 64 이하참고.
57) C. Schott, Gesetzesinterpretation im Usus Modernus, S. 53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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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21
러한이론적발전은통일적인법전의부재그리고사법권이주로지역의신
분계급에속한법관들에의해행사되었다는사정에기인한것이었고, 무엇
보다법률의제정과집행(해석을포함)을한손에장악한절대적인정치권
력이형성되지못한탓이었다. 이러한역사적배경을고려하면근대초기에
입법권을중심으로유권해석과해석금지가다시부상한것은절대적권력
에기초한로마법적사고의르네상스에해당한다.58)
이르네상스는프랑스에서시작된다. 1667년에루이14세는법원개혁법
(Ordonnance civile touchant la réformation de la justice)을공포하고, 이
법의제7조에서법관이군주가제정한법률을적용할때의문과난점에봉
착할경우에는스스로법률을해석해서는안된다고명령하면서, 사례에대
한결정을유예하고군주의의도가무엇인지를알기위해사안을국왕에게
제출할의무를부과한다.59) 이처럼군주의유권해석을야기하는절차를프
랑스에서는입법문의(référé législatif)라고부른다.60) 이는군주가최상위의
입법자이자동시에최고의법관이며, 진행중인소송에개입하거나법률을
해석할권한을유보하고있다는표현이다. 하지만훗날유럽대륙의모든절
대주의체제에서동일한형태로등장하는이입법문의와해석금지는입법
과판결의긴장관계를둘러싼그이전의역사를감안하면매우혁명적인폭
발력을담고있었다.
근대초기의프랑스에서사법작용은역사적으로다양한경로를거쳐
성립된다수의재판권에의해분할되어있는상황이었다.61) 이렇게파편화
58) 이점을강조하는S. Vogenauer, Die Auslegung von Gesetzen in England und auf dem Kontinent, Bd. I, S. 583 이하참고.
59) 이제7조에관해서는J. Lukas, Zur Lehre vom Willen des Gesetzgebers, S. 412 참고.
60) 근대적해석금지와문의의무의출발점인이법원개혁법에관해서는M, Miersch, Der sogenannte référé législatif. Eine Untersuchung zum Verhältnis Gesetzgeber, Gesetz und Richteramt seit dem 18. Jahrhundert, 2000, S. 25 이하; H. Conrad, Richter und Gesetz im Übergang vom Absolutismus zum Verfassungsstaat, 1971, S. 20 이하; ders., Deusche Rechtsgescichte Bd. II, S. 394; J. Lukas, Zur Lehre vom Willen des Gesetgebers, S. 412; H. Mohnhaupt, Potestas legislatoria und Gesetzesbegriff im Ancien Régime, S. 205, 221 이하참고.
61) 이에관해자세히는M. Miersch, Der sogenannte référé législatif, S. 136 이하;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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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법관의결정의무–재판거부금지의역사적전개과정에관하여
된사법권의정점에는파리의재판소(Parlement),62) 지역재판소그리고법
관으로서의국왕이자리잡고있었다. 국왕의사법권에서벗어나독립성을
갖고있던재판소와국왕의관계는구체제의군주정이종식될때까지서로
중첩되고명확하게밝혀져있지않은갈등관계에있었다.63) 파리의재판소
는이미중세에도국왕의지배로부터해방되어있었고, 근대의절대주의군
주도장악하지못할정도로강력한권한을갖고있었다. 즉파리재판소는
분쟁에대해결정을내리는사법기능뿐만아니라, 이른바‘규율판결(arrêts
de règlement)’을선고할권리도갖고있었다. 이규율판결은명칭과는달리
판결의형식으로일반적구속력을갖는법제정행위였다.64) 더나아가재판
소는국왕의입법을심사하고경우에따라서는수정을거쳐공포할권한과
국왕의입법에대해이의를제기할권한도갖고있었다.65)
이러한역사적배경에비추어볼때루이14세의법원개혁법은국왕과
재판소사이의권력불균형을다시국왕의우위로전복하기위한시도였다.
즉법원과행정기관에게국왕의제정한법률을준수해야한다는명령을부
과하고, 재판소의법률심사권과이의제기권을박탈했다.66) 특히법률에대
한복종명령은해석의금지와입법문의의무로구체화되어있고, 이점에서
Hattenhauer, Europäische Rechtsgeschichte, 3. Aufl. 1992, S. 418 이하참고.
62) ‘Parlement’는프랑스에서는법원, 즉재판소를의미했다. 이에관해서는U. Müßig, Recht und Justizhoheit. Der gesetzliche Richter im historischen Vergleich von der Kanonistik bis zur Europäischen Menschenrechtskonvention, unter besonderer Berücksichtigung der Rechtsentwicklung in Deutschland, England und Frankreich, 2. Aufl. 2009, S. 82 이하, 83 각주17 참고.
63) 중세이후프랑스의사법부의상황에대해서는P. C. Hartmann, Französische Verfassungsgeschichte der Neuzeit(1450-2002). Ein Überblick, 2003, S. 33 이하 참고. 64) 이독특한제도에관해서는S. Vogenauer, Die Auslegung von Gesetzen in England und auf dem Kontinent, Bd. I, S. 614 이하; C. Schott, ‘Rechtsgrundsätze’ und Gesetzeskorrektur. Ein Beitrag zur Geschichte gesetzlicher Rechtsfindungsregeln, 1975, S. 50 참고. 혁명이후이제도를폐지하는역사에관해서는M. Miersch, Der sogenannte référé législatif, S. 137 이하참고.
65) M. Miersch, ebd., S. 26 이하. 66) 법원개혁법의제정전후의역사에관해서는W. Wilhelm, Gesetzgebung und Kodifikation in Frankreich im 17. und 18. Jahrhundert, in: Ius Commune I(1967), S. 243 이하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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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23
유스티아누스황제의역사적모범을충실하게따르고있으며, 18세기에펼
쳐진법률구속이념을완벽하게실현하고있다. 그러나법원개혁법의이러
한규정과현실적으로재판소의권력을효과적으로제거하는것은전혀별
개의문제였다. 즉실제로는법적지식이없는신분귀족에게장악되어있던
재판소의힘이너무나도강력한나머지재판소는프랑스혁명을통해폐지
될때까지계속권력을유지했다.67)
프랑스혁명을통해봉건적이고특권적인제도였던재판소를폐지함으
로써비로소법제도를완전히새롭게구성할수있는길이열렸다. 혁명을
주도했던부르주아계급은소유권의확실성과거래의안전을보장받기위
해명확한법(ius certum), 다시말해법적안정성을실현하고자했고, 이에
따라법의통일성과단순화를요구했다. 이러한요구는1791년과1793년헌
법제정의프로그램에반영되었다.68) 혁명세력은무엇보다혁명이전의사
법상황에대한생생한기억때문에법관의판결활동에대해커다란불신을
품고있었다. 즉입법권을가진법관은국민들이이해할수없는규범을토
대로자의적인지배를확립할수있는존재로서불신의대상이었고, 그때
문에국민의회는법관들을전통적특권을유지하려는위험요인으로인식했
다. 이맥락에서모든재판소의임시휴가를명령했던조치의효력을1789
년12월에다시연장하기도했다. 이점에서지나치게강한법관권력에대
한불신은구체제의국왕으로부터그대로물려받은셈이다. 그리고이러한
불신은그사이거의망각상태에빠졌던해석금지와입법문의를다시부활
시켜법관의입법뿐만아니라, 법관의법률보충을엄격히금지하는결과를
낳는다. 이미1793년의임시명령은이금지를명문화하여법관뿐만아니라,
67) 이에관해서는M. Miersch, ebd.; S. Vogenauer, ebd.; U. Müßig, Recht und Justizhoheit, S. 82 이하; C. Schott, ‘Rechtsgrundsätze’ und Gesetzeskorrektur, S, 49 이하참고. 68) 이러한시대적, 정치적요구와신분계급을타파하려는국왕의이익그리고자연과학 의영향을받아엄밀하고명확한법을제정할수있다는이론적확신이결합하는 과정에대해서는H. Mohnhaupt, Richter und Rechtsprechung in deutschen Verfassungen des 19. Jahrhunderts. Aufgabe und Funktionen, in: G. Kassimatis/M. Stolleis(Hrsg.), Verfassungsgeschichte und Staatsrechtslehre. Grieichisch- deutsche Wechselwirkungen, 2001, S. 184 이하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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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법관의결정의무–재판거부금지의역사적전개과정에관하여
모든공직자에게법률의해석과보충을금지하고, 법률의해석권은오로지
혁명위원회(convent)에의해서만행사하도록규정했다.69)
물론절대주의의유산인해석금지와문의의무는이제는다른방식으로
정당화되었다. 즉입법자의의지(voluntas legislatoria)는루소의영향에따
른일반의지(volonté générale)로대체된다.70) 그리고몽테스키외의권력분
립이론을극단적으로관철시키고자함으로써법의체계화를통해법적통
일성을확보하고법을통해사회를조종할수있다는계몽철학의합리주의
에연결되고, 이맥락에서법관에게는통일적인법을단순히구체화하는기
계적인역할만을허용해야한다고확신하게된다.71) 즉법관은법률을변형
하거나형평개념을이용해법률을무시할기회를가져서는안된다는것이
다. 그때문에국민의회는입법의절대적지배를끊임없이강조했고, 판결을
69) 혁명세력이사법에대해갖고있던불신과권력분립에대한형식적이해에기초해 법원을엄격히통제하려는의도를갖고있었다는사실에대해서는M. Miersch, ebd., S. 141; H. Mohnhaupt, Richter und Rechtsprechung, S. 184; H. Conrad, Richter und Gesetz im Übergang vom Absolutismus zum Verfassungsstaat, S. 21 이하; C. Schott, ‘Rechtsgrundsätze’ und Gesetzeskorrektur, S, 51 이하; H. Kötz, Über den Stil höchstrichterlicher Entscheidungen, in: Rabesl Zeitschrift für ausländisches und internationales Privatrecht 37(1973), S. 249 이하참고. 70) M. Miersch, ebd., S. 155 이하; H, Mohnhaupt, Potestas legislatoria und Gesetzesbegriff im Ancien Régime, S. 231 이하; H. Hübner, Kodifikation und Entscheidungsfreiheit des Richters in der Geschichte des Privatrechts. 1980, S. 42 참고. 또한루소의이론에서일반의지와사법부의관계가명확하게설정되어있지않다 는비판을제기하는W. Gitter, Die Methode der richterlichen Gesetzesauslegung als staatsrechtliches Problem, S. 51 이하도참고. 71) 권력분립을법제정(입법)과법적용(사법)의실질적분리로이해하고, 이에따라사법 부에광범위한권한을부여하는오늘날의이해와는반대로초창기의권력분립이론은 두권력의엄격한형식적분리를염두에두었고, 그때문에오늘날과는정반대로사법 부를엄격히법률에구속시키고사법부의재량을최소화해야한다는결론을권력분립 이론으로부터도출했다. 그때문에권력분립이론은엄격한법률구속을정당화할수도 있고, 법률구속의완화를정당화할수도있다. 이러한이중성을정확하게지적하고 있는Ulrike Müßig, Der référé législatif–österreichische Gesetzgebungsgeschichte zwischen Rechtsvereinheitlichung und Justizsteuerung, in: Beiträge zur Rechtsgeschichte Österreichs, 2014, S. 137 이하참고. 또한W. Gitter, ebd., S. 43 이하도참고. 이점에서재판거부금지를권력분립이론으로부터직접적으로도출하는 것은불가능하다. 이에관해서는E. Schumann, Das Rechtsverweigerungsvebot, S. 83 이하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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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의집행에국한된한부분으로축소시켰다. 혁명세력의이러한사고는
1790년8월의법원조직법제12조에서법관의기능과관련해다음과같이명
문화된다.
“법원은어떠한규율도제정할수없다. 단법원이법률을해석하거
나새로운법률을정립해야할필요가있다고여길때에는입법자에
게문의해야한다.”72)
입법과사법을완벽하게분리하려는이러한의도는결국1790년에파
기법원(Tribunal de cassation)을설립하는계기가되었다.73) 파기법원은일
반법원이법률을준수하는지를통제하는기관으로서사법권의일부가아
니라, 입법제도로이해되었다. 이점에서파기법원은법관이사법적삼단논
법(Justizsyllogismus)에따라법률과형식적논리에구속당하도록만들었
고, 입법문의는이러한논리적판결이권력분립의토대위에서보장될가능
성을제공한다고생각했다.74) 물론법관의판결이단순한논리적추론에따
른결과에불과한경우일지라도그것이정치적으로중요한의미를가질때
에는파기법원이판결을파기하거나혁명위원회가판결에개입할수있었
다. 이점에서프랑스혁명이후의입법문의는명시적으로정치적기능을
수행했고, 단순히해석금지에따른보충적인제도에그치지않았다.
프랑스에비해절대주의의성립은늦었지만, 왕정이상대적으로지속적
안정성을유지한75) 오스트리아에서도해석금지와법관의문의의무가진화
72) J. Lukas, Zur Lehre vom Willen des Gesetzgebers, S. 415에서인용. 이에관해서는 또한M. Th. Fögen, Schrittmacher des Rechts, S. 14 이하; H. Kantorowicz, Aus der Vorgeschichte der Freirechtslehre(1925), in: ders., Rechtswissenschaft und Soziologie. Ausgewählte Schriften zur Wissenschaftslehre, hrsg. von Th. Würtenberger, 1962, S. 58; M. Miersch, ebd., S. 27 이하; E. Schumann, ebd., S. 81 참고.
73) M. Miersch, ebd., S. 30 이하; E. Schumann, ebd., S. 82 이하. 74) M. Miersch, S. 130. 법관의기계적법적용을상징하는‘사법삼단논법’의역사와문제 점에관해서는D. Simon, Die Unabhängigkeit des Richters, S. 68 이하, 104 이하; R. Ogorek, Richterkönig oder Subsumtionsautomat?, S. 257 이하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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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법관의결정의무–재판거부금지의역사적전개과정에관하여
적변이를거쳐전개되는과정을확인할수있다.76) 당연히출발점은군주
의입법권과입법자의의지라는근대초기의유럽대륙전역에공통된이론
적, 정치적토대였다.
오스트리아에서입법자의의지이론이처음으로명시적으로표현된것
은1758년의이른바테레지아법전(Codex Theresianus)의제1부초안이었
다. 이초안은서두에법률의해석에대한상세한규율과함께특히입법자
의해석유보권을명문화했다. 즉이초안의제1장제5조의81호는“누구나
짐의법률의명시적인문언이갖는진정하고일반적인의미에구속된다. 어
느누구도본법에대한확정적인해석권한을참칭할수없으며, 법률의문
언과법률의의미사이의차이를구실로법률문언을확장하거나제한할수
없다”고규정하고, 82호에서는법관이자연적형평을이유로법률문언에서
벗어나는것을금지했으며, 84호에서는법관이법률에의문이있거나법률
이불명확하다고여기는경우또는법률을그대로적용하는것이특수하고
현저한우려가있다고판단할때에는궁정에문의하도록의무를부과했
다.77) 이테레지아법전의초안은법률로서효력을갖는상태에도달하지는
못했다.78) 하지만1786년에요세핀법전(Josephinisches Gesetzbuch)으로도
불리는일반민법전의토대가되었다. 즉일반민법전은테레지아법전에서
표방된법관상을그대로반복하면서법관의해석금지와문의의무및궁정
75) 이점을확인하고있는M. Stolleis, Condere leges et interpretari, S. 133 참고.
76) 전반적인개관으로는W. Gitter, Die Methode der richterlichen Gesetzesauslegung als staatsrechtliches Probelm, S. 12 이하참고.
77) 테레지아법전의형성배경에관해자세히는C. Schott, ‘Rechtsgrundsätze’ und Gesetzeskorrektur, S. 26 이하; 테레지아법전이전의상황까지포함하고있는U. Müßig, Der référé législatif – österreichische Gesetzgebungsgeschichte zwischen Rechtsvereinheitlichung und Justizsteuerung, S. 123 이하, 125 이하; H. Hübner, Kodifikation und Entscheidungsfreiheit des Richters, S. 30 이하; Th. Simon, Inhalt und rechtspolitische Bedeutung der ‘Einleitung’ des AGBG im Kontext der Kodifikationsgesetzgebung des frühen 19. Jahrhundert, in: B. Dölemeyer/H. Mohnhaupt(Hrsg.), 200 Jahre ABGB(1811-2011). Die österreichsche Kodifikation im internationalen Kontext, 2012, S. 43 이하; H. Conrad, Richter und Gesetz im Übergang vom Absolutismus zum Verfassungsstaat, S. 13 이하참고.
78) C. Schott, ebd., S.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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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27
의유권해석을규정했다. 더욱이완벽하게동일한사례에대한법관의유추
적용을허용했던테레지아법전의규정을이어받으면서도, 유추적용을군주
에게신고하도록규정함으로써법관의재량을더욱강하게통제했다. 이요
세핀법전을통해법관에대한통제와제한은절정에도달한다. 물론이미
입법과정에서이와같은엄격한구속이현실적으로불가능하고법관의재
량을지나치게제한한다는비판이제기되기도했지만, 법률제정위원회는법
관에게법률해석을최소한으로만인정할지라도새로운법률은수포로돌아
갈것이라는이유로그러한비판을전혀고려하지않았다.79)
요세핀법전이공포되기전인1781년에제정된일반소송법역시법관
을법률문언에엄격하게구속시켰다. 이법의제437조는“법관은법률의단
어가갖는진정하고일반적의미에따라판결해야하고, 법률의문언과의
미의차이, 법의엄격함과는구별되는형평또는법률에반하는관습을구
실로본법으로부터벗어나서는안된다. 법률의이성에대해충분히근거
있는의문이있을때에는이를궁정에신고하고, 이에대한결정을받아야
한다. 법관이본법에반해분쟁사안을지연하거나당사자에게부당한부담
을준때에는법관은모든손해에대해책임을부담한다”고규정했다.80) 즉
법관에게는법률만이판결의기준이되어야하고, 형평과관습법은판결의
지침이되지못한다. 법관이선택할수있는유일한결정기준은법률의문
언이고, 법률의문언과의미의구별은명백히거부되었다. 다만아직결정되
지않은사안과법률이이미언급하고있는사례사이에완벽한일치가존
재할때에만유추가허용되었다. 또한법관의문의가이루어져야할대상은
궁정의기관이다. 이황제직속의중앙기관이곧최상급사법기관이었고, 사
법행정기관이자동시에최고법원이었다. 이와동시에일반민법전의편찬위
원회로위임을받는법률수집위원회(Kompilationskommission)도문의에답
변할수있는기관이었다.81)
79) 요세핀법전의성립및심의과정에관해서는M. Miersch, ebd., 45 이하; U. Müßig, Der référé législatif, S. 128 이하; C. Schott, ebd., S. 29 이하.
80) U. Müßig, ebd., S. 129. 이법의제정배경에관해상세히는L. Spiegel, Der référé législatif oder die Anfrage bei Hof, S. 106 이하.
81) U. Müßig, ebd.; M. Miersch, ebd., S. 46; L. Spiegel, ebd., S. 113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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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법관의결정의무–재판거부금지의역사적전개과정에관하여
이두개의법률은해석금지와문의의무가입법자의의지의관철을보
장하고동시에법의통일성과안정성을보장하기위한수단이라는인식에
기초하고있다. 또한기존의사법부에대한뿌리깊은불신과함께신분계
급을사법권에서배제하려는의도를담고있었다. 하지만레오폴드왕이즉
위하면서요세핀법전의좋은의도가현실에서는법관들을과도하게위축
시키고, 궁정기관과수집위원회가업무과중에시달리는방향으로변질되었
음을시인하면서1791년의칙령을통해문의의무를폐지한다.82) 그대신법
관이법률에따라결정할수없을때에는법률과합치하는개념과의미에
기초해결정하고, 이것이불가능할때에는같은형태에속하는사례에기초
하거나법률의맥락에서표현된원칙과의도에기초해결정하도록명령한
다. 다만법관이법률을준수하는것이특수하고현저한우려를낳는다고
여길때에는스스로결정을내리는것이아니라, 궁정의교시를받아야한
다고규정했다.83) 이로써법관에게해석과유추적용을허용하게되고, 요세
핀법전에서문의의무의대상으로삼고있는세번째사례집단, 즉형평을
근거로법률로부터이탈하는것만이금지되었다. 이는입법자가장래의입
법에서고려해야할사항일뿐, 법관의권한에속하지않는다는것이이유
였다. 이렇게해서법률의흠결이나법률에관한의문은더이상문의의무
의근거가되지못했고, 문의의무라는제도자체가상당히제한되는결과가
발생했다.84) 물론문의의무가완전히폐지되었다고말할수는없다. 하지만
문의의무를어떻게다룰것인지를둘러싸고칙령이공포되기이전부터상
당한이견이드러났다는점만은분명히확인할수있다. 특히하급법원의
모든문의가곧장수집위원회에전달되어야하는지아니면상급법원의판
단에비추어법률문언만으로는결정을내릴수없는사안에국한시켜야하
82) E. Schumann, ebd., S. 83; L. Spiegel, ebd., S. 112.
83) 해당하는칙령의내용은다음과같다. “법관이제기된사례를법률의문언으로결정할 수없다고여기는경우법관은법률에서다른관련이있는개념과의미, 같은형태로 법률에표현되어있는사례, 법률들을결합시켜표현되는원칙과의도를파악해야 하고, 사례를 동일한기준에따라판단해야한다. 법률의준수가특수하고현저한 우려를낳는다고여길경우에는궁정의교시를받아야한다(C. Schott, ebd., S. 29에서 인용).”
84) U. Müßig, ebd., S. 131; M. Miersch, ebd., S.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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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29
는지에대해논란이있었다.85) 이밖에도사법기관이제출된문의에대한소
견서를작성해야하는지여부에대해서도견해가대립했다. 그때문에1790
년에새롭게구성된수집위원회의회의에서한위원은문의의무에관한일
반민법전의조항이“모든법학을추방하고모든법관을기계로만들며무지
가창궐하게만든다. 왜냐하면법관이그저문자만붙들고있는것으로끝
나기때문이다”는한탄의목소리를낼정도였다.86) 이처럼근대초기의정
치적의미론과직접적연관성을맺는문의의무와해석금지는오스트리아에
서현실적인장벽에부딪혀점차퇴색하는길을걷게된다.
프랑스처럼정치적혁명을겪지않았고오스트리아와같이계몽절대주
의의영향권하에있었던프로이센에서도사법부를법률문언에구속시키거
나최소한입법이사법을전면적으로통제할수있다는입법낙관주의가절
정에도달한다.87) 입법자인군주는자신이제정한법이외의다른법이적
용되는것을용납할수없다는사고는18세기초반부터프로이센왕정의통
치원칙에속했다.88) 초기에는예컨대1721년에프리드리히빌헬름1세의국
왕명령에서볼수있듯이입법자의의지라는절대주의도그마가순수한형
태로드러났다. 즉국왕의지시에따라개선된란트법을모든신민은엄격히
준수해야하고, 특히법관은새로운란트법이사실상으로준수되도록란트법
의문언에엄격히구속된다고선언했다. 또한프리드리히2세는1780년의각
료명령과1781년에공포된프리드리히법전(Corpus Juris Friedericianum)89)
에서법원과행정기관에대해“새로운법률을만드는것은물론이고, 짐의
법률을해석, 확장또는제한하는것”을엄격히금지한다고함으로써이도
그마를더욱선명하고명확하게확립한다. 그리고군주가제정한법률을절
85) C. Schott, ebd., S. 29.
86) 이에관해자세히는Th. Simon, Inhalt und rechtspolitische Bedeutung der ‘Einleitung’ des AGBG im Kontext der Kodifikationsgesetzgebung des frühen 19. Jahrhundert, S. 56 이하; M. Miersch, ebd., S. 47. 87) C. Schott, ebd., S. 37.
88) 법률과법관의관계에관련된프로이센의역사에대한개관으로는W. Gitter, S. 20 이하참고. 89) 이에관해서는M. Miersch, ebd., S. 50 이하참고. 성립배경에관한상세한내용은 H. Müller, Zur Geschichte der bindenden Gesetzesauslegung, S. 4 이하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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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법관의결정의무–재판거부금지의역사적전개과정에관하여
대적법원(法源)으로정착시키기위한노력의일환으로법률에대한주석과
학문적논의도금지한다.90)
입법자의의지라는도그마에기초해법의통일성을확보하려는의도는
오스트리아에서와마찬가지로근대초기의이성법의영향을받은계몽절대
주의의법전편찬이념과결합하는방향으로전개된다.91) 이제유스티니아
누스법전이나프리드리히법전과같이기존의관습법과법학적원칙들을
단순히수집하는법전의차원을넘어하나의통일적인관점에서체계적인
법전을편찬하려는이념이전면에부각된다. 특히이러한법전편찬이념속
에는신분계급의특권을배제하고배타적권력을강화하려는군주의의도와
법의확실성과통일성을통해시민의자유와권리를보장해야한다는부르
주아계층의이해관계가서로맞물려있었다.92) 그리하여프로이센에서도입
법자의의지라는도그마를뛰어넘어법전편찬의시대로향하는두번째단계
가등장하고, 이단계는1794년에공포된프로이센일반란트법(Allgemeines
Landrecht für die preußischen Staaten)으로결실을맺는다.93) 이법전의
90) 이에관해자세히는H. Conrad, Richter und Gesetz im Übergang vom Absolutismus zum Verfassungsstaat, S. 16 이하; H. Müller, ebd., S. 24 참고.
91) 법전편찬 이념에 관해서는 H, Thieme, Die preußische Kodifikation. Privatrechtsgeschichtliche Studien II, in: Zeitschrift der Savigny-Stiftung für Rechtsgeschichte. Germanische Abteilung 57(1937), S. 355 이하; H. Hübner, Kodifikation und Entscheidungsfreiheit, S. 30 이하; A. Schwennicke, Die Entstehung der Einleitung des preussischen allgemeinen Landrechts von 1794, S. 3 이하참고. 92) 이러한역사적배경에간략한서술은, S. Meder, Rechtsgeschichte, S. 216 이하; H. Schlosser, Neuere europäische Rechtsgeschichte, S. 204 이하참고. 더자세히는 H. Hattenhauer, Preußens Richter und das Gesetz(1786-1814), in: ders./G. Landwehr(Hrsg.), Das nachfriderizianische Preußen 1786-1806, 1988, S. 42 이하 참고. 이와는반대로일반란트법과란트법의법률구속이신분계급을철폐하려는진 보적경향의사법부에대한통제와억압으로이해하고, 왕정이반부르주아적성향을 갖고있었다고해석하는관점으로는U.-J. Heuer, Allgemeines Landrecht und Klassenkampf. Die Auseinandersetzungen um die Prinzipien des Allgemeinen Landrechts Ende des 18. Jahrhunderts als Ausdruck der Krise des Feudalsystems in Preußen, 1960, S. 104 이하참고.
93) 이에관해서는이념사적배경을전면에내세우는F. Wieacker, Privatrechtsgeschichte der Neuzeit, 1. Aufl. 1952, S. 203 이하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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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31
실질적인저자라할수있는수아레즈(Carl Gottlieb Suarez)에따르면법률
은국가의최고권력이명령한일반규정으로서신민은이일반규정에따라
행위해야하고, 이러한입법권에는법률을제정하고폐기할권리뿐만아니
라, 법률을설명할권리, 즉해석권도포함한다고한다.94) 이에따라프로이
센일반란트법은법관에게“법률의문언, 분쟁의대상과법률의연관성또
는의문의여지없이가장가까운법률상의근거로부터명확하게밝혀지는
의미이외에는다른의미를법률에부여해서는안된다(제46조)”고지시한
다.95) 이규정에서볼수있듯이일반란트법은이미오스트리아의테레지아
법전초안이나요세핀법전과는달리엄격한문언구속에서벗어나법관에
게제한적범위내에서체계적해석과유추를허용하고있다.
그러나이러한제한적범위의해석이외의다른해석가능성은부정되
고, 법관의문의의무를구체화하기위해법률의제정과동시에법률위원회
(Gesetzeskommission)를설립한다.96) 즉법률의의미에대해의문이있을
때에는법관은절차를유예하고법률위원회회의결정을구해야하며, 위원회
의결정을판결의토대로삼아야할의무를부담한다. 하지만법관이법률에
흠결이있다고여기는경우에대해서는일반란트법서론(Einleitung)의제49
조와제50조는엄격한문의의무를완화하는방식으로규정하고있다.97)
제49조: 법관이분쟁사례의결정에이용할법률을찾지못한경우
법관은본란트법이전제하고있는일반적인법원칙과유사
94) Carl Gottlieb Svarez, Recht der Gesetzgebung(1791/92), in: ders., Vorträge über Recht und Staat, hrsg. v. H. Conrad/G. Kleinheyer, 1960, S. 13. 물론수아레즈는 군주의입법권과해석권을통해신민의복리를증진하는것이법과국가의궁극적 목적이라고한다. 이에관해서는C. G. Svarez, Über den Zweck des Staates(1791), in: ders., ebd., S. 640 이하참고. 95) 이조문의성립배경에관해서는A. Schwennicke, ebd., S. 271 이하참고.
96) 프로이센이법률위원회에관해서는H. Müller, Zur Geschichte der bindenden Gesetzesauslegung, 1939, S. 28 이하참고. 또한J. Lukas, Zur Lehre vom Willen des Gesetzgebers, S. 413 이하; M. Miersch, ebd., S. 56 이하도참고.
97) 아래의두조문및그의미와배경에관해자세히는A. Schwennicke, ebd., S. 271 이하참고. 당연히이규정들의제정은격렬한논쟁을수반했다. 이에관해서는R. Ogorek, Richterkönig oder Subsumtionsautomat?, S. 71 이하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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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법관의결정의무–재판거부금지의역사적전개과정에관하여
한사례와관련해존재하는명령들에따라자신의최선의
통찰에비추어판결해야한다.
제50조: 다만이경우법관은자신이법률에오류가있다고여기는
사정을즉시사법부수장에게신고해야한다.
이제50조의규정은입법자로하여금법률의흠결을인지하고이를보
충할계기를마련하기위한것이었다. 그때문에일반란트법은법관의흠결
신고에기초해새로제정된법률은“그이전에이미유효하게수행된행위
에대해서는어떠한영향도미치지않는다(서론제51조)”고규정해법률의
소급효금지라는일반원칙을확인하고있다.98) 이로써입법자의유권해석
은소급효를갖지만, 기존의법률을사후적으로보충하는법률은소급효를
갖지않는다는원칙이형성된다.99)
이와같이프로이센일반란트법은법률의진정한의미에대해서는법
관으로하여금입법자, 구체적으로는입법위원회의결정을구하도록하고
있는반면, 법률의흠결과관련해서는–요세핀법전과는달리–문의의무를
신고의무(Anzeigepflicht)로대체했다.100) 1793년의일반법원법역시이와
유사한규정을담고있었다. 그러나일반란트법이제정된1794년으로부터
불과4년후인1798년3월의각료회의명령과같은해5월의칙령은법률의
진정한의미에대한의문을법률위원회에문의하도록한규정을폐지한다.
폐지의근거는칙령의주체인프리드리히빌헬름3세가직접제시하고있
다. 즉법관이법률에흠결이있는때에는스스로결정을내릴수있는데반
해법률에대해의문이있을때에는스스로결정할수없다는것은전혀이
해가가지않는다고설명한다.101) 이렇게문의의무자체를폐지하는대신
98) 이에관해서는J. Lukas, ebd., S. 404 이하참고. 또한유권해석과소급효금지의상관성 이라는오래된문제에관해서는B. Droste-Lehnen, Die authentische Interpretation, S. 155 이하; W. Meyer, Authentische Interpretation oder Rückwirkung von Rechtsfolgen?, in: M. Wullfen/O.E. Krasney(Hrsg.), Festschrift 50 Jahre Bundessozialgericht, 2004, S. 221 이하도참고. 99) H. Conrad, Richter und Gesetz, S. 17.
100) A. Schwennicke, ebd., S.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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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33
법관은사법권을행사하면서법률의의미를둘러싸고불명확성과의문에
봉착한경우에는법률의해석과관련된일반규칙에따라결정을내려야하
고, 소송이진행중인때에는입법위원회에어떠한문의도제기할수없으
며, 다만절차가종료한이후법률의불명확성을장래의입법을위해사법
부수장에게신고하도록명령한다.102) 따라서법률에대한의문역시법률
의흠결과마찬가지로문의의무의근거가아니라, 단순히사후적신고의무
의근거가될뿐이었다. 이러한변화는사실상해석금지와문의의무의폐지
를뜻했고, 동시에엄격한법률구속의해체와법관의해석자유의확대를의
미했다.
이상의간략한역사적서술이보여주듯이입법국가와법관의법률구속
사이의관계그리고법관의법률해석권의한계를둘러싼오늘날의수많은
논의는17세기부터정치적차원과이론적차원에서전개된다양한법률제
정및제정을위한논의의연장선상에있다.103) 무엇보다군주의절대적입
법권을최대한관철하려는절대주의와계몽절대주의의사법정책적목적설
정은사법부의자율성과는결코합치할수없었다. 오히려18세기의절대주
의국가는사법부를국가의법률에표현되어있는결정에구속시키고자했
고, 따라서관습법중심의시대에법관들이갖고있던전통적인자율성을
제거하고자했다. 그배후에는절대주의의정치적이상, 즉최대한사회의
전영역을중앙에서이루어지는통일적인조종하에놓이게해야한다는이
상이자리잡고있었다. 18세기후반에프로이센과오스트리아에서이루어
진법전편찬프로젝트역시이러한맥락에서이해할수있다. 즉이프로젝
트를통해국가는전통적으로사법부가사실상무제한의결정여지를갖고
101) 자세히는M. Miersch, ebd., S. 164 이하; J. Lukas, ebd., S. 413 참고.
102) 자세히는이전환을‘절대적법률지배의좌절’로표현하는H. Hattenhauer, Preußens Richter und das Gesetz(1786-1814), S. 52 이하참고. 103) 오늘날의법학방법론이상당부분역사적관점을배제하거나극히단순화하고있다 는사실은20세기후반부터법사학적연구를통해드러나고있다. 대표적인연구로 는R. Ogorek, Richterkönig oder Subsumtionsautomat?(1986); U. Falk, Ein Gelehrter wie Windscheid. Erkundungen auf den Feldern der sogenannten Begriffsjurisprudenz(1989); H.-P. Haferkamp, Georg Friedrich Puchta und die ‘Begriffsjurisprudenz’(2004) 등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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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법관의결정의무–재판거부금지의역사적전개과정에관하여
있던상황을제거하고자했고, 이를달성하기위해처음에는엄격한해석금
지를규정함으로써법관의법률복종을강제하고자했다. 이에따라법원은
국가의법률을단순히집행하기만하는기관으로국한되어야했다. 즉법원
은법률에표현된군주의의지를집행하는기관으로서구체적인개별사례
에서이의지를관철해야했다. ‘법률의입’이라는비유는이러한이상의정
점에해당한다. 이표현을처음으로사용한몽테스키외의이론은전적으로
규범제정이독립된결정기관에유보되어있어야한다는의미로만이해되었
다.104)
그러나이와같은사법정책적목적을실현하기위해도입된해석금지
와문의의무및이에따른유권해석등의제도는점차자취를감추게된다.
이러한변화는법관에게는“재판을거부하고입법자에게문의하라!”는명령
으로부터“어떠한경우에도재판을거부해서는안된다!”라는정반대의명
령으로의전환을의미한다. 즉법률해석의자유를박탈당한법관은역설적
으로해석뿐만아니라, - 18세기말의오스트리아와프로이센의입법적변
화에서드러나듯이– 일반적인법원칙까지끌어들여그것이설령법의창
조에해당할지라도반드시재판을해야한다는결정강제상황에직면하게
된다.105) 물론이러한결정강제를다른측면에서관찰하면엄격한법률구속
으로부터의‘해방’을의미한다.106) 그때문에이러한해방을법질서가있는
그대로감당할수있는지아니면해방된법관을다시구속하기위해과거와
는다른장치를마련할것인지가다시문제가되기시작한다. 법의역사는
결정강제와재판거부금지를통해법관을과감하게해방시키는전자의방법
과법관의해석을법률에규정된해석규칙을통해일정한궤도에서움직이
게만들려는후자의방법모두를기억하고있다. 이맥락에서우리는혁명
104) 몽테스키외의이론을반드시이렇게제한적으로이해할수없다는점에관해서는 윤재왕, 법관은법률의입? - 몽테스키외에관한이해와오해, 「안암법학」, 제30권 (2009), 109면이하참고.
105) 이에관해서는무엇보다C. Schott, ‘Rechtsgrundsätze’ und Gesetzeskorrektur; M. Th. Fögen, Schrittmacher des Rechts, S. 14 이하참고. 106) ‘해방된’ 법관에관해서는H. Kantorowicz, Aus der Vorgeschichte der Freirechtslehre, S. 29 이하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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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35
의화약내음이채가시지않은불과몇년사이에법관의법률구속을엄격
하게관철하고자했던혁명정부의기획이재판거부금지의명문화로급선회
하는프랑스민법전의성립배경과18세기의경험에대한성찰을통해해석
규칙의법제화라는온건한길을걸었던오스트리아민법전에관한고찰을
통해이역사적기억을짧게현재화하도록한다.
Ⅳ. 해석규칙의법제화와재판거부금지
극히상식적이고일반적으로생각해보더라도문의의무를폐지하고법
관에게완벽한해석의자유를부여하는것은입법자의의지라는수렴점에
고정된근대초기이후의입법이론과법률구속이념에명시적으로모순된
다. 그러나해석금지와문의의무를관철하는것이현실적으로커다란난관
에부딪힌다는것은이제도를마련한모든곳에서곧장경험할수있었다.
일단소송의지연과비용의증대를피할수없었고, 문의에대해결정을내
리는기관이일종의비약상고법원처럼기능하게됨으로써아직제대로정
착하지못한심급체계에도혼란을불러일으켰다. 더욱이사법작용이결코
기계적적용에서끝나지않는다는근본적인사실및법관들이문의의무를
책임회피의수단으로악용할가능성은지속적으로한탄과비판의대상이었
다.107)
107) 문의의무또는입법문의를폐지한이유에관해자세히는M. Miersch, Der sogenannte référé législatif, S. 161 이하(프로이센), 166 이하(오스트리아), 169 이하 (프랑스) 참고. 이밖에도문의의무의폐지가18세기의자연법론에기인한것이라고 보는J. Lukas, Zur Lehre vom Willen des Gesetzgebers, S. 424 이하. 루카스는 이주장을통해법률의완결성에대한벤담의이론이폐지의결정적원인이라고 주장하는J. Hatschek, Englisches Staatsrecht mit Berü cksichtigung der fü r Schottland und Irland geltenden Sonderheiten, Bd. I, 1905(https://archive.org/ details/ englischesstaat03hatsgoog), S. 153 이하를반박하고자한다. 이에대해 하트쉑이ders., Bentham und die Geschlossenheit des Rechtssystems. Eine Kritik und ein Versuch, in: Archiv des öffentlichen Rechts 24(1909), S. 442 이하에서 재반론을펼치고, 이에다시루카스가반론을제기하면서이른바하트쉑/루카스 논쟁이전개되었다. 루카스의견해에대해서는이미L. Spiegel, Der référé législat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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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법관의결정의무–재판거부금지의역사적전개과정에관하여
이러한이유때문에‘금지와의무’는입법적차원에서‘허용과권한’으로
전환이불가피했다. 그렇지만전환이야기하는, 초기의이념과의명시적모
순을뚜렷이의식하는한, 이모순을어떤식으로든완화또는해소하는길
을모색하는것또한일반적상식에부합한다. 이러한상식을적확하게반
영하고있는입법례가운데가장유명한예는1811년에공포된오스트리아
일반민법전(Allgemeines Bürgerliches Gesetzbuch)이다.
일반민법전의제정이전에–앞에서지적했듯이–레오폴드2세의1791년
칙령을통해문의의무는사실상폐지에가까울정도로이미상당부분완화
되었고, 그이후프란츠1세치하에서궁정위원회가제정해오스트리아일부
지역에국한되어도입된1797년의베스트갈리치아법전(Westgalizisches
Gesetzbuch)108)은최소한으로남아있는문의의무를더욱완화해서의문이
있는법적사례에관한문의의무자체를완전히폐지했다. 다만이법의제
18조는법관이법률을해석, 적용할때언어규칙에비추어문언의의미와
연관성으로부터또는입법자의명시적인의도로부터분명하게드러나는의
미이외에는어떠한의미도부여해서는안된다는원칙을제시하면서도, 다
시제19조에서는법관이법률의문언만으로사례를결정할수없을때는법
률의자연적의미, 유사한법률의근거, 법률에규정되어있는유사한사례
를감안하여결정하고, 이모든방법에도불구하고여전히의문이있을때
는섬세하게고찰하고충분한숙고를거쳐사례의사정을감안해일반적이
고자연적인법원칙에따라결정하도록규정하고있다.109) 이와같은규율
은일단문의의무를폐지하지만, 폐지로인해법관의자의적인해석이이루
oder die Anfrage bei Hof, S. 101 이하에서특히오스트리아일반민법전의형성 배경에대한루카스의무지를이유로신랄한비판이가해졌다. 이논쟁에관해서는 M. Miersch, ebd., S. 158 이하참고. 이밖에도U. Müßig, Der référé législatif, S. 132, H. Conrad, Richter und Gesetz, S. 21도참고.
108) 공식명칭은갈리치아민법전(Bürgerliches Gesetzbuch für Galizeien)이다. 이에 관해서는 W. Brauneder, Österreichs Allgemeines Bürgerliches Gesetzbuch (ABGB). Eine europäische Privatrechtskodifikation, Bd. 1: Entstehung und Entwicklung des ABGB bis 1900, 2014, S. 40 이하참고.
109) 이에관해자세히는M. Miersch, ebd., S. 49, 166 이하; U. Müßig, ebd., S. 131 이하; H. Conrad, Richter und Gesetz, S. 15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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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37
어질위험을방지하기위해다시일련의방법적규칙을제시하고, 방법적
규칙을통해법관의해석권한을제한하려고시도했다. 그렇지만‘일반적이
고자연적인법원칙’이라는일반조항은비록최후수단적성격을갖고있긴
하지만사실상법관에게전면적인해석의자유를부여한셈이었다.110)
이베스트갈리치아법전의제정을위해1792년부터1794년사이에행
해진심의과정111)은문의의무의폐지가결코간단하지않았음을보여주고
있고, 이의무의옹호자와비판자들이제기한다양한논거들을확인할수
있도록해준다. 문의의무를계속유지하고자하는입장에서는법관이문언
을엄격하게준수하지않고, 법률의의미에비추어해석할경우에발생할
위험을지적한다. 즉법관에게너무많은자유를부여하여변호인들이쓸데
없이다툼을벌이는구실을제공한다고한다. 다시말해과거의유사한선
례에서결정의토대가된법률해석을끌어들이는결과를낳을것이고, 이렇
게되면동일한형태의판례로부터관습법이형성되는결과를낳는다고비
판한다. 이와같은사태를방지하기위해법관의문의의무와신고의무를유
지해야한다고주장한다.112)
이에반해폐지론자들은법관의활동을극단적으로제한하는것에반
대하면서법률의문자를지나치게엄격히준수하게되면법률이의도하는
궁극적목적을제대로실현할수없다고한다. 따라서법률의문언과의미
가서로일치하지않을때에는법률의의미와목적에따라야하고, 문언의
엄격성을완화해서자연적형평도함께고려하도록해야하며, 특히형평이
법률규정과합치한다는데의문이없을때에는형평에기초한판결이얼마
든지가능할수있도록해야한다고주장한다. 이밖에도법률문언에대한
구속이오히려입법자의의지에모순될수도있으며, 법관을기계적인도구
로전락시켜덕성을갖추고있고계몽되어있는공정한법관을완전히마비
시키는결과를낳는다고한다.113)
110) C. Schott, ‘Rechtsgrundsätze’, S. 29 이하.
111) 심의과정에대해자세히는U. Müßig, ebd., S. 131 이하; W. Brauneder, ebd., S. 45 이하참고.
112) 이에관해서는Th. Simon, Inhalt und rechtspolitische Bedeutung, S. 54 이하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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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법관의결정의무–재판거부금지의역사적전개과정에관하여
심의과정에서드러난이러한견해대립은결국문의의무를폐지하는다
수의견해를따르는방향으로해소되었지만, 문의의무를존치해야한다고
주장하는입장을고려해제18조에법관의해석권한의범위를명시하고, 이
범위를벗어나는경우에준수해야할규칙으로서유추와일반적법원칙을
지시하고있다. 일종의타협책이었던셈이다. 하지만베스트갈리치아법전
의제19조는문의의무의폐지로인한법관권력의남용가능성을차단하기
위해해석규칙을법률자체에법제화하는18세기후반의경향을분명하게
보여주고있다.
베스트갈리치아법전에대한심의가종결되어궁정위원회가1796년에
프란츠1세에게법률초안의일부를제출했지만, 프란츠1세는이에대한재
가를유보하고초안을지시위원회(Directions-Commission)에게검토하도록
지시한다.114) 초안을재검토해갈리치아이외의오스트리아전역에걸쳐효
력을갖는민법전을제정하려는의도에서였다. 그러나주로고위급행정관
료로구성된지시위원회는법률에의문이있는경우법관이일반적법원칙
을원용할가능성과입법자의의도에따른해석을인정하고있는궁정위원
회초안의내용을거부하면서, 다수의위원들이법관의자의를차단하기위
해과거의문의의무를부활해야한다고결정한다. 다만문의가쇄도하는것
을방지하기위해상급법원에게부당한문의를거부할수있는권한을위임
하는것이바람직하다는쪽으로결론을내린다.115) 이러한다수의견해에
대항해소수의견은문의의무가안고있는문제점을근거로반론을제기한
다. 즉문의의무에상급법원을개입시킬경우상급법원이하급심에서이루
어질결정을미리확정하게되는심급체계의혼란과재판의지연을문제점
으로지적한다. 이와함께모든사례를포괄하는완전한법률을제정하는
것은불가능하고, 따라서법관이법률이외의보충적인법을원용하지않을
수없다고한다. 따라서문의의무를폐지하고, 그대신법률에기초해결정
을내리지않은모든사례들에대한신고의무를부과해5년단위로입법을
113) U. Müßig, ebd., S. 134. 114) M. Miersch, S. 169.
115) U. Müßig, e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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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39
개선하는것이바람직하다는반론을제기한다.116)
이지시위원회의의결은초안을개정하는결과를낳지는못했고, 1797
년에일단갈리치아지방에국한해법률로서효력을갖게되었다.117) 그이
후1801년에새롭게설립된법률개정위원회가전체오스트리아에서효력을
갖는새로운민법전을제정하는작업을시작한다.118) 이위원회를주도한
것은자연법과로마법학자이던차일러(Franz von Zeiller)였다.119) 차일러
는법전의소명은시민에게무엇이법이고불법인지를사전에명시적으로
가르치는것이라고보고, 그때문에법률은최대한완벽해야하며법률로
해결되지않는사례가있어서는안된다는입장에서출발한다. 그렇지만법
관에게법률의정신과일반적법원칙에기초한해석을금지하고법관을기
계로만들어오로지법률문언에만구속시키는입법은현실적으로불가능하
기때문에실패하지않을수없다는것을인정했다.120) 즉법률의완벽성이
라는이념을전제하면서도, 이이념의완벽한실현이불가능하다는사실을
충분히의식하고있었다. 그때문에법관의자의적인해석을방지하기위해
법률에법률의해석에관한규정을마련한다는베스트갈리치아법전의기
본정신을수용한다. 물론차일러본인은‘일반적, 자연적법원칙’에대해상
당히회의적인생각을갖고있었다. 즉법관은결코자신과같은철저한법
철학자가아니기때문에법관이법원칙을원용하는것은해악이된다고여
겼다. 하지만이러한해악을완전히제거할수는없고, 따라서일반적, 자연
적법원칙의남용을제한하는방법을찾고자했다.121) 이점은문의의무를
116) M. Miersch, ebd., S. 172 이하; Th. Simon, S. 56 이하. 117) M. Miersch, ebd., S. 170.
118) Ebd. 119) 일반민법전의탄생과정에서차일러가수행한역할에관해서는H. Hofmeister, Die Rolle v. Zeillers bei den Beratungen zum ABGB, in: W. Selb/H. Hofmeister(Hrsg.), Forschungsband Franz von Zeiller(1751 – 1828), Beiträge zur Gesetzgebungs- und Wissenschaftsgeschichte, 1980, S. 107 이하참고.
120) ‘입법자의의지’ 도그마로부터완전한탈피를뜻하는차일러의입장에관해서는H. Conrad, Richter und Gesetz, S. 16 이하; M. Miersch, ebd., S. 170 이하; Th. Simon, eb d., S. 48 이하, 58 이하; U, Müßig, S. 133 이하참고. 121) M. Miersch, ebd., S. 171; H. Mohnhaupt, Zeillers Rechtsquellenverständnis, in: W. Selb/H. Hofmeister(Hrsg.), Forschungsband Franz von Zeiller(1751 –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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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법관의결정의무–재판거부금지의역사적전개과정에관하여
폐지한베스트갈리치아법전과도관련이있다. 왜냐하면문의의무의폐지
가자연법론의영향이라고주장하는입장122)에서는법관이자연적법원칙
에구속되기때문에문의의무를폐지해도무방했다고주장하기때문이다.
하지만자연법을지지했던차일러마저도법관이자연적법원칙을원용하는
것을해악으로여겼고, 설령법원칙의원용이가능할지라도이를자연법적
맥락으로이해하지도않았다. 그가제정에깊숙이개입한일반민법전에서도
법전편찬자체가이성법적자연법의영향이라고볼수는있지만, 법관의해
석과관련해자연법의원용을적극적으로인정했다고판단하는것은분명
문제가있다.123)
아무튼1802년에이루어진해석규칙에관한심의는차일러의보고에
따라법관의결정자유와이자유의남용을통제하는방법사이의긴장관계
를해소하기위한세가지방법을논의했다. 첫째, 법률에명시적으로규율
되어있지않은사례는보통법과각지역법의원칙에따라결정을내리자는
제안은계수된로마법인보통법이새로운입법을통해배제된다는사실과
지역의법이자연법에우선한다는근거로거부된다. 둘째, 법률에의문이있
는경우상급법원에문의하는방안은당사자들이하급심의결정에대해이
의가있을때에는얼마든지상급법원에상소를제기할수있고, 만일하급
심에게문의의무를부과할경우상급심법관은이미공정성을상실한다는
이유로거부되었다. 셋째, 최고법원또는입법자에대한문의역시거부되는
데, 그이유는만일그렇게되면당사자는사실상심급제도를전혀이용하
지못하는결과를낳거나입법자가동시에재판관이되기때문이었다.124)
S. 172. 이는차일러가자연법을직접적인법원(法源)으로인정하지않았음을뜻한 다. 이에반해루카스는문의의무의폐지가자연법에기인한다고하면서오스트리아 의입법례를지적하지만(J. Lukas, Zur Lehre vom Willen des Gesetzgebers, S. 423), - 슈피겔(L. Spiegel, Der référé législatif oder die Anfrage bei Hof, S. 101 이하)이정확히지적하듯이– 차일러의이러한언급에비추어볼때타당하지않다. 122) 대표적으로는J. Lukas, Zur Lehre vom Willen des Gesetzgebers, S. 420 이하; M. Wellspacher, Das Naturrecht und das AGBG, Festschrift zur Jahrhundertfeier des allgemeinen bürgerlichen Gesetzbuches, Erster Teil, 1911, S. 184 이하참고. 123) 이에관해서는앞의L. Spiegel, ebd.와U. Müßig, ebd., S. 139 이하참고.
124) 이세가지방안및이에대한논의에관해자세히는M. Miersch, ebd., S. 171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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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어떻게든문의의무를유지하고자했던차일러의계획은실패했고,
법관이법원칙을원용해결정을내리고, 이사안이상급심으로상소되지않
은경우에는신고의무를부과하려고했던보충적대안역시위원회의다수
가받아들이지않았다.125) 그이후매우오랜기간에걸친심의를거쳐1811
년에제정, 공포된오스트리아일반민법전은프로이센일반란트법과같이
법률의서두에법률의해석과적용등에관한‘서론(Einleitung)’을규율하
고, 그가운데제7조– 이조항은오늘날에도효력을갖는다– 에서결국
다음과같이규정되었다.
“법적사례를법률의문언을통해서도결정을내릴수없고법률의
당연한의미에비추어서도결정을내릴수없을때에는다른법률들
에서확정적으로결정이내려져있는유사한사례들및이사례들과
관련이있는다른법률들의근거를원용해야한다. 그런데도법적사
례가여전히의심스러울때에는주의깊게수집하고충분한고려를
거친사정들에비추어자연적인법원칙에따라결정을내려야한다.”
그리고문의의무나신고의무에관한규정은일반민법전에는전혀흔적
을찾아볼수없게되었다. 다만제8조–이조항역시오늘날에도효력을갖
고있다–를통해입법자에게유권해석의권한을유보하고있다. 즉제8조
는“일반적구속력을갖는방식으로법률을설명할권력은오로지입법자에
게만귀속된다. 이러한설명은입법자가자신의설명이설명이전에이루어
진행위와그이전에확정된권리를대상으로삼고있는법적사례들을결
정할때에는설명을원용해서는안된다는추가사항을언급하지않는한,
장래의모든사례에대해적용되어야한다.” 이는법관의해석을금지한것
이아니라, 일반적구속력을갖는해석, 즉사실상의입법은입법자의권한
U. Müßig, ebd., S. 135 이하참고. 이방안들이18세기와19세기초반의정치적, 사법정책적및법이론적논의의맥락에포섭되어있는문제라는사실에관해서는 Th. Simon, Inhalt und rechtspolitische Bedeutung, S. 41 이하참고. 125) 이와관련된차일러의구체적인언급은Th. Simon, ebd., S. 58 이하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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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법관의결정의무–재판거부금지의역사적전개과정에관하여
을명시한것이고동시에이로인해야기될수있는소급효의문제를규율
한것일뿐, 법관에대한해석금지와문의의무의논리적결과로서의유권해
석을규정한것이아니다.126) 물론베스트갈리치아법전과마찬가지로일
반민법전도이두가지조항에앞서제6조에해석의일반원칙을규정하고
있다. 즉법률을적용할때법률문언, 체계적연관성그리고입법자의의도
로부터밝혀지는의미이외의다른의미를법률에집어넣어서는안된다는
동일한규정이존재한다.127) 이는근대초기부터일관되게유지되어온입
법자의의지우선및법관에대한불신의표현일뿐만아니라, 18세기와19
세기를거쳐오늘날까지도법학방법론의표준적해석규칙의표현이기도하
다.128) 그리고이러한해석규칙의적용만으로해결할수없는경우에해당
하는법률의흠결이나불명확성을입법자에대한문의가아니라, 유추와법
원칙을통해법관이독자적으로해결해야한다는지침이곧제7조의내용이
다. 이로써법적안정성, 법적통일성, 법관의자의와권한남용의방지, 해석
126) 이점에서문의의무는유권해석의특수한동기일뿐, 모든유권해석이반드시문의의 무를전제해야하는것은아니다. 이에관해서는H. Müller, Zur Geschichte der bindenden Gesetzesauslegung, S. 26 이하참고.
127) 이렇게해서일반민법전은제6조와제7조에기초해‘입법자의의도–유추–자연적 법원칙’이라는3단계모델을구성한다. 이에관해서는J. Kehrer, Gesetzeskonforme Methodik. Zur Bedeutung der §§ 6, 7 ABGB für die privatrechtliche Methodenlehre, 2013, S. 21 이하참고.
128) 물론해석의목표와관련된주관적/객관적해석이라는구별은‘입법자의의지’라는 도그마의퇴색이후에비로소정착했다. 다시말해근대초기에는‘주관적’이라는 수식어를필요로하지않았고, 이구별자체는입법자의의지로부터벗어나는객관 적해석론이부상하면서의미를갖기시작했다. 이점을잘보여주는문헌으로는 객관적해석을옹호하는J. Kohler, Über die Interpretation von Gesetzen, in: Grünhut’s Zeitschrift für das Privat- und Öffentliche Recht der Gegenwart 13(1886), S. 1 이하참고. 문법적, 체계적, 역사적, 목적론적해석등의해석규칙 역시우리가다루고있는18세기와19세기초반에걸친입법과해석이론의퇴적물로 여길수있다. 이점은19세기의해석이론에관한R. Ogorek, Richterkönig oder Subsumtionsautomat?와유럽대륙과영국의해석이론의과거와현재를보여주고 있는S. Vogenauer, Die Auslegung von Gesetzen in England und auf dem Kontinent, Bd. I/II에서명확하게밝혀져있다. 이밖에도주관적/객관적해석의역사 및해석목표를둘러싼이구별의역사가해석자체의변화가아니라, 판결을정당화 하는방식의변화라는점을밝히고있는R. Ogorek, Vom Subjekt zum Objekt und wieder zurück, in: Rechtshistorisches Journal 4(1985), S. 53 이하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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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43
규칙과규율의흠결을둘러싼오랜논란에서문의의무는도저히참기어려
운결과를야기한다는견해가결국관철되었다.129) 당연히이러한전환이법
관에게너무넓은재량을부여한다는우려가있긴했지만, 테레지아법전이나
요세핀법전처럼법관을문언에구속시키는것역시위험하기는마찬가지라
는인식이승리한것이다.130) 물론오늘날의법이론적관점에서는법률에규
정된해석규칙역시해석의대상이된다는자기관련적(selbstreferentiell) 측
면을지적할수도있겠지만, 입법권의성립, 이에따라법관의자유를엄격
하게제한하고이제한을다시해제해가는속도구조의역사속에서는아직
이러한측면까지의식할수는없었을것이다.
만일문의의무의폐지를18세기후반의시대정신이라고과장할수있
다면, 문의의무의폐지에따른문제점을해석규칙의법제화를통해흡수하
고자했던오스트리아와오스트리아의전개과정을공유또는답습했던프
로이센과는완전히다른정치적상황을겪고있던프랑스는–앞에서도지
적했듯이–시대정신과는정반대로문의의무를더욱강화하는길을선택했
다. 1791년헌법과1795년헌법131)은권력분립을토대로사법권의독립을
규정하고있었고, 입법문의역시권력분립의틀속에서이해하기도했다. 그
러나입법문의의정당화에서가장커다란의미를갖는측면은입법문의의
정치적기능이었다. 즉혁명정신을실현하고자했던혁명위원회와위원회에
의해조직된혁명정부에게입법문의는사법부를감시하기위한탁월한도
구였고, 최종적결정권을유보함으로써모든정치적세력에대항해지배권
을확보하기위한강력한수단이었다. 그때문에독립된사법부는사실상
존재하지않았다. 즉법관은혁명위원회의하위에놓여있었고, 심지어특별
한자격조건을전제하지않고21세이상의모든프랑스인은법관직선거에
129) E. Schumann, Das Rechtsverweigerungsverbot, S. 85; U. Müßig, ebd., S. 135. 이것 이오스트리아뿐만아니라, 유럽대륙전역에걸친현상이라는점에관해서는S. Vogenauer, Die Auslegung von Gesetzen in England und auf dem Kontinent, Bd. I, S. 504 이하참고.
130) 자세히는Th. Simon, ebd., S. 56 이하; M. Miersch, ebd., S. 47, 172 이하; C. Schott. ‘Rechtsgrundsätze’, S. 79 참고. 131) 두헌법의성립사와내용에관해서는P. C. Hartmann, Französische Verfassungsgeschichte der Neuzeit(1450-2002), S. 58 이하, 70 이하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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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법관의결정의무–재판거부금지의역사적전개과정에관하여
출마할수있도록함으로써법률가중심의사법부를와해시키고, 사법부의
완벽한’민주화‘를시도하기도했다.132) 판결은얼마든지사후적으로변경할
수있었으며, 법관의임명과면직은혁명위원회의소관이었다. 이러한상황
에서입법문의를단순히권력분립이나법률의해석에관련된방법론적맥
락에서이해할수는없었으며, 오히려혁명이전의사법현실에기인한법관
에대한뿌리깊은불신과혁명정신의관철이라는정치적관점에서만이해
할수있다. 실제로혁명위원회나파기법원에제기된문의는법적인문제가
아니라, 대부분정치적문제였다고한다.133)
이러한정치적배경을감안하면1804년에발효된프랑스민법전제4조
는또하나의혁명적전환을의미한다. 즉법률의흠결이나불명확성에도
불구하고법관은반드시결정을내려야한다고확정하고있는제4조자체가
혁명의소산이긴하지만, 내용적측면에서는혁명초기의이념적, 정치적전
개과정을뒤엎는혁명일뿐만아니라, 법관의기능에관한근대이후의역
사에종지부를찍는법적혁명에해당한다.134) 또한제4조는법관이입법자
의후견으로부터해방되었음을보여주는상징이고, 새로운법관상을창조했
으며법관이오로지입법자에게만봉사하는기능을갖는다는사고로부터
완전히단절되는역사의출발점이기도하다. 우리는이제부터이혁명적전
환이이루어진과정과이과정을가능하게만든사상적및제도적배경을
–세세한역사적사실들은배제하면서–간단하게마나추적해봄으로써오
132) 이전개과정에관한간략한서술은M. Miersch, ebd., S. 141 이하. 더자세히는 H. J. Schill, Die Stellung des Richters in Frankreich. Eine rechtshistorische Darstellung unter Einbeziehung der Gerichtsverfassung, 1961(박사학위논문), S. 95 이하참고.
133) M. Miersch, ebd., S. 142/143.
134) 제4조의혁명적성격에관해서는H. Kantorowicz, Aus der Vorgeschichte der Freirechtslehre, S. 55 이하; S. Vogenauer, Die Auslegung von Gesetzen, Bd. I, S. 585 참고. 이에반해입법문의의관철이현실적으로불가능하다는경험에따른 불가피한결과였다고보는E. Schumann, Das Rechtsverweigerungsverbot, S. 82와 입법, 법학, 법실무에의한지속적법형성에초점을맞추는J. Esser, Grundsatz und Norm in der richterlichen Fortbildung des Privatrechts, 4. Aufl. 1990, S. 144 이하참고. 슈만과에써의이러한진단은민법전제정의정치적배경을고려하지 않은결론으로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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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날에는당연한것으로여겨지는재판거부금지가법의진화의산물이라는
점을확인하고, 특히법률과판결의관계에관한오늘날의모든법이론적,
방법론적논의가결코‘지금여기(hic et nunc)’에국한된것이아니라는사
실을이해하고자한다.
혁명직후인1793년에이미초안이마련되어있던민법전135)은1800년
에나폴레옹이4인위원회를소집해통일된법전편찬을지시하게된다.136) 이
른바5대법전(민법, 민사소송법, 형법, 형사소송법, 상법) 가운데새로운부르
주아질서의핵심에해당하는민법전은포르탈리스(Jean-Étienne-Marie
Portalis)라는‘슈팅스타’의절대적인영향아래성립되었다. 민법전의아버
지로도불리는137) 포르탈리스는정치적으로는보수주의자였고, 1789년혁
명이후칩거와체포, 도주와망명을거쳐나폴레옹의집권과함께파리로
귀환했다.138) 혁명전부터유명한변호사였던포르탈리스는그의실무경험
을통해현실적으로법관의기능이입법자에대한봉사에그칠수없다는
사실을분명히알고있었고, 그때문에판결과법학이입법을보충하는역
할을해야한다는원칙에서출발한다. 이는곧법원(法源)에대한새로운이
해를의미한다. 즉법률의우위자체에대해서는의문을제기하지않지만,
법률의자율성은이와경쟁관계에있는다른법원(法源)과조화를이루어야
하고, 따라서법률은법실무에서상대적의미만을갖는다는것을뜻한다.139)
무엇보다포르탈리스는법률의완전성, 단순명확성, 초시간성이라는이념은
허상일뿐이고, 따라서그와같은‘위험한야심(dangereuse ambition)’140)을
135) 이른바캉바세레스(Jean-Jacques Régis de Cambacérès) 초안에관해서는H. Hübner, Kodifikation und Entscheidungsfreiehit, S. 41 참고. 프랑스민법전의성립 사에관해자세히는M. A. Plessner, Jean Etienne Marie Portalis und der Code Civil, 1997, S. 35 이하참고. 136) M. A. Plessner, ebd., S. 37.
137) E. Schumann, Das Rechtsverweigerungsverbot, S. 93; M. A. Plessner, ebd., S. 19. 138) 포르탈리스의생애에관해서는포르탈리스, 「民法典序論」, 2003, 145면이하: ‘역자 후기– 포르탈리스의생애와사상(양창수); M. A. Plessner, ebd., S. 23 이하참고.
139) (민)법전, 입법자, 법학, 판례의상호보충성에관한개괄적인내용은포르탈리스, 「民法典序論」, I. 일반적개념(15면이하) 참고.
140) 포르탈리스, 「民法典序論」, 33면. 법률이완전성을부정하는유명한표현은“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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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법관의결정의무–재판거부금지의역사적전개과정에관하여
추구해서는안된다고경고한다. 오히려법과관련된많은문제들은필연적
으로사실상의관행, 전문가들의논의, 법관의판결에맡겨야하고, 법률의
과제는법의일반적원칙들을확정하고법이향후에전개될수있는노선을
수립하는것이지, 결코구체적인문제에몰두하는일이아니라고본다. 그
때문에포르탈리스는법관이입법에참여하지는않았지만, ‘법률의보편적
정신’과결합되어있다고설명한다.141)
이처럼법률의절대성으로부터탈피하는것은곧제1권력인입법권의
구조적약점을분명하게의식한다는것이고, 이점에서제4조는법관에대
한금지와소추가능성을내용으로하고있음에도불구하고법률이라는법
형성도구의제한적조종능력에대한통찰로부터직접적으로법관의자율
을도출한것이다. 다시말해언어로표현된법적구성물로서의법률은이
를적용하고사회현실로전환하며평화로운갈등해결에도달하기위해서는
법관에의존하지않을수없으며, 따라서판결은추상적인법률의일반규율
과구체적인개별사례의정의사이에연결장치를만들고, 이를통해규율
이삶으로전환되는것을가능하게만든다. 이와같이법률이라는규범적
범주의불완전성, 즉생각할수있는모든사례들을사전에예견해서규율
하고명백한언어로구성된텍스트로포착할수있는가능성은존재하지않
는다는인식142)은궁극적으로는또다른권력에속하는사법부의원활한기
능을거칠때에만법적평화, 정치적사회형성, 정의가실현될가능성, 국가
의질서형성가능성이보장된다. 그러므로제4조의규정은어떠한경우든
판결을선고해야한다는법관에대한법률상의의무를통해법률에대한이
해와입법자의정치적역할, 법관의기능과법관의법형성권한및최상위
의규율로서의헌법의과제가서로마주치는접점에해당한다.
의법전은시간과함께만들어진다. 아니엄밀하게말하면사람이그것을만드는 것이아니다(앞의책, 47면)”이다. 또한법질서의완결성에관한E. Schumann, ebd., S. 98; J. Lukas, Zur Lehre vom Willen des Gesetzgebers, S. 420 이하; M. Th. Fögen, Schrittmacher des Rechts, S. 15도참고.
141) 포르탈리스, 「民法典序論」, 35면. 142) 이러한근본적통찰에관해서는D. Busse, Verstehen und Auslegung von Rechtstexten, S. 17 이하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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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판결의기능에대한이와같은적극적이고긍정적인인식이반드
시재판거부금지와결정강제를통한법관의해방과결합되어야하는것은
아니다. 오스트리아와프로이센의예에서보듯이얼마든지해석규칙을법제
화하는방향으로전개될수있기때문이다. 이가능성은프랑스민법전의성립
과정에서도확인할수있다. 즉민법전편찬위원회가처음부터판결의기능
에대한이러한통찰을문의의무의폐지및결정강제로구성된재판거부금지
만을통해실현하고자했던것은아니다. 민법전초안은프로이센일반란트
법과오스트리아일반민법전과마찬가지로법률에서론(livre préliminaire)을
규정해‘법률의적용과해석에관해(De l’application et de l’interpretation
des lois)’라는표제아래13개의규정을담고있었다.143) 즉제1조에서법률
의봉사자가지식과성실함을통해법률을적용해야한다는일반원칙을선
언하고, 법률의해석필요성및구체적사례에법률을적용할때법학을통
한해석은법률의진정한의미를밝히는것이어야한다는선언적규정(제2
조), 법관이일반적구속력을갖는처분을할수없다는금지조항(제3조), 법
률규정이명확한경우에는엄격하게문언에구속된다는규칙(제5조), 법률
의한부분의진정한의미를확정하기위해서는모든규칙을결합시켜야한
다는명령(제6조), 동일한근거를제시할수없는한유추를금지한다는규
정(제8조), 민사사건에서실정법이침묵하고있을때에는법관이자연법과
관습을원용해정의를실현해야한다는규정(제11조) 등을통해해석규칙을
법제화하는것이원래의계획이었다. 초안의이러한내용은구체제와혁명
기의법및사법부의상황에관한경험이반영되어있었고, 자연법을통해
법률을실천적으로개선할수있다는이성법적사고도스며들어있다. 그러
나초안의이규정들은최종안에수용되지못했고, 재판거부금지에관한제
4조를유지하면서초안제3조의일반적규율의금지를제5조로규정했을
뿐, 나머지법의적용과해석에관한규정들은배제되었다. 이결정은법관
과판결에관해편집위원회가원래갖고있던견해가변화한탓이아니라,
143) 아래의내용및초안의규정들에관해서는C. Schott, ‘Rechtsgrundsätze’, S. 54 이하; F.-R. Grabau, Über die Normen zur Gesetzes- und Vertragsinterpretation, S. 27 이하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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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법관의결정의무–재판거부금지의역사적전개과정에관하여
판결을강제하는명령이동시에해석명령을포함한다는취지에서텍스트를
함축적으로구성하려는의도에기인한것이었다.144)
아무튼제4조의발효및이조항에담겨져있는재판거부금지와함께
법을생산하는기관인입법과판결사이의전통적관계는근본적변화를겪
게된다. 즉제4조와함께입법문의는명시적으로폐지되었고, 새로운법관
상이법률로확정된셈이다. 그러나편찬위원회에서아무런저항이없이이
러한결론에도달한것은아니었다. 몇몇위원은재판거부금지가사법부의
권력을상승시킨다는이유때문에권력분립이론을입법문의를존치해야한
다는헌법적논거로사용했다.145) 이러한반론에도불구하고결국입법문의
를폐지하는데결정적인역할을한측면은입법문의절차의번거로움과이
로인한소송의지연이었다. 포르탈리스는법관으로하여금입법자에게문
의하도록강제하는것은입법자가개별적처분을행한다는치명적인제도
로회귀하는것이기때문에법률의일반성이라는헌법적원칙에도반한다
고보았다. 또한소송의지연역시입법자의지혜와신성함에반한다고한
다. 그때문에포르탈리스는법관들이입법문의를통해결정을연기하는폐
단을척결하는것이제4조의목적이라고명시적으로지적한다. 입법자에게
문의함으로써입법권과사법권이뒤엉켜극도로복잡하고일관되지못한
입법을야기했던과거의사법시스템의오류를제거하는것역시폐지의근
거로제시되었다.146)
이렇게해서민법전을통해법률과판결은법체계를구성하는두가지
핵심적인법원(法源)으로새롭게조명되고또한새롭게질서를형성하는새
144) 이에관해서는M. A. Plessner, ebd., S. 58; F.-R. Grabau, ebd., S. 30 참고.
145) 이에 관해서는M. A. Plessner, ebd., S. 63; H. Mohnhaupt, Richter und Rechtsprechung in deutschen Verfassungen, S. 194; H. Schlosser, Kodifikation im Umfeld des Preußischen Allgemeinen Landrechts. Der französische Code civil(1804) und das österreichsche Allgemeine Bürgerliche Gesetzbuch(1811), in: D. Merten/W. Schreckenberger(Hrsg.), Kodifikation gestern und heute. Zum 200. Geburtstag des Allgemeinen Landrechts für die Preussischen Staaten, 1995, S. 71 이하참고.
146) H. Kantorowicz, ebd., S. 56-57. 심의과정에대해자세히는M. Miersch, ebd., S. 173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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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운지위를얻게되었다. 다시말해입법자와사법부를상호보충적관계로
파악하게되었다. 왜냐하면입법자는판결을감독해야하지만, 사법부의판
결을통해비로소입법자가판결을어떻게수정할수있는지에대한정보를
얻게되기때문이다. 즉입법과판결은일방적인지시/복종관계가아니라,
일종의순환적피드백관계에있다는인식이정착하기시작했고, 이인식은
법률과판결의관계에대한오늘날의헌법적및방법론적논의의출발점에
해당한다.
V. 맺음말
이상의서술을통해우리는중세후기에시작된제정법중심의역사속
에서법률과판결의관계에대한다양한의미론과제도적변화를어느정도
감지할수있었다. 특히결정금지로부터결정강제로변화하는과정의1차적
종착점에해당하는오스트리아일반민법전과프랑스민법전에서는법률이
최대한추상적이고일반적으로표현된원칙만을규정하는데국한되고, 이
원칙들의구체화와구체화를위한규칙형성은상당부분사법부에맡겼다는
사실을확인할수있다. 즉18세기에서19세기로넘어가면서국가가의도적
으로그이전에는자신이독점적으로보유하고있다고주장하던해석권한
을사법부에맡긴것이다. 이러한변화는명백히방법적인해석과도밀접하
게맞물려있지만, 그렇다고해서근대의법률이중세적전통에속하던법
원의관행과법학의해석에게법률에대한규율권한을부여했다는뜻은결
코아니다. 법원과학문의전통적규율메커니즘으로의회귀가불가능할정
도로국가질서는근대적모습을갖추었고사회의복잡성또한크게상승했
기때문이다. 오히려근대국가는사법부에게해석의여지와규율의흠결을
메우도록위임한바로그순간방법적규칙들을제시하거나법률과헌법에
표현된일반적인원칙에구속되도록했으며, 새롭게성취된사법부의독립
에직면해서도법관의법률구속을관철하려고노력했다. 이점에서프랑스
민법이재판거부금지를명문화한것은한편으로는획기적인변화로여겨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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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있지만, 다른한편으로는이금지가법관의자의에게결코면죄부를부
여하지않는다는정치적및이론적확신을갖고있었기때문에가능한선택
이기도했다.147) 어쨌든제4조는그이후명문의규정의존재여부에관계
없이근대법질서의당연한전제로인정되는역사를거친다. 물론법관의
자유와이에따른법관의법창조권한이현실로드러나기까지는다시상당
한시간을필요로했다. 즉제4조의재판거부금지는19세기말까지도프랑스
법실무에서는단순히소송지연과같은소송법적차원에국한된규정으로
이해했고, 또한일반민법전의제7조가법관의법형성토대로작용하게된
데에는사회구조의변화를감지한20세기초반의자유법론의재발견이중
요한역할을했을정도이다.148) 이와같은역사적사실까지고려하게되면
재판거부금지가결코당연한원칙이아니라,149) 역사적진화의소산이고,
따라서얼마든지달리될수도있는우연성에해당한다는점이더욱분명하
게드러난다. 그렇기때문에이‘당연한’ 원칙이왜당연한것인지를묻는것
은역사적연원과는별개의문제영역이다. 이점에서재판거부금지를정당
화하는이론적근거를살펴보는일은과거와현재사이에다리를놓기위한
기초작업이될것이다. 주로니클라스루만(Niklas Luhmann)의체계이론
을이론적도구로삼아펼쳐질이작업은속편의몫이다.
147) 그렇기때문에해석방법론을둘러싼모든논의는1차적으로언어(철)학적논의가 아니라, (헌법)정치적논의이거나논의이어야한다. 이에관해서는특히B. Rüthers, Methodenfragen als Verfassungsfragen?, in: Rechtstheorie 40(2009), S. 253 이하; D. Grimm, Methode als Machtfaktor, in: ders., Recht und Staat der bürgerlichen Gesellschaft, 1987, S. 347 이하참고.
148) 이에관한지적으로는S. Vogenauer, ebd., S. 507/508 참고. 또한프로이센일반란트 법이법관에게허용한재량이19세기후반까지실무에서는거의사용되지않았다는 사실을밝히고있는J. Eckert, Gesetzesbegriff und Rechtsanwendung im späten Naturrecht. Die Spruchpraxis preußischer Gerichte unter dem Allgemeinen Landrecht, in: Der Staat 37(1998), S. 571 참고.
149) 재판거부금지가당연한원칙이라는것에대해의문을제기하는M. Th. Fögen, Schrittmacher des Rechts, S. 13 참고.
법관의결정의무–재판거부금지의역사적전개과정 에관하여 - 윤재왕
수령날짜심사개시일게재결정일
2019.02.06. 2019.03.04. 2019.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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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법관의결정의무–재판거부금지의역사적전개과정에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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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법관의결정의무–재판거부금지의역사적전개과정에관하여
【국문초록】
법관은제기된사건에대해반드시결정을내려야한다. 즉법관은적
용할수있는규범이나규칙이없다는이유로재판을거부할수없다. 이러
한규범은재판거부금지라일컬어지며, 오늘날이를부정하는견해는찾기
어렵다. 그러나이글에서필자는, 재판거부금지가역사적으로는결코당연
한제도가아니며, 오랜기간에걸쳐형성된진화적성취에해당한다는점
을밝히고자한다. 이를위해서는재판거부금지의연원에서부터이것이법
제도로정착되는국면까지의역사적추적이필수적이다. 근대국가가형성
되면서주권개념이덩달아탄생했다. 이때주권의핵심을법률제정권으로
파악함으로써입법이국가권력의알짬으로부상하였으며, 이에따라법률의
제정과해석에관한이해에도커다란변화가일어나게된다. 특히법관의
해석을금지하기에이르렀다는사실, 그리고이러한금지에따른문제에대
응하기위해법관의문의의무라는제도적장치를마련하게된사정에주목
할필요가있다. 즉이러한의무를명문으로규정한프랑스의역사를찬찬
히더듬어보고, 비록명문의규정을두지는않았으나동일한문제의식을
갖고유사한대응을보여준프로이센과오스트리아의역사도아울러살피
고자한다. 이어서법관의문의의무에서재판거부금지로의급격한전환을
겪게된과정을상술한다. 나아가이글의속편에서는주로루만(Niklas
Luhmann)의체계이론의힘을빌려재판거부금지의이론적근거를조명해
나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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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Compulsory Decision-making: The Historical
Development of the Prohibition of the Denial of Justice
Zai-Wang Yoon
(Professor Dr., School of Law, Korea University)
The judges must decide any case submitted to them; they cannot
refuse to decide because of a lack of applicable norms or rules. It is
called the prohibition of the denial of justice, which seems to be
beyond question nowadays. The main purpose of this paper is,
however, to show that such prohibition is not an a priori structure,
but an evolutionary achievement. To do this, we need to closely
observe the historical development of the prohibition of the denial of
justice in Western legal orders. The formation of the modern state
was accompanied by the concept of sovereignty. It was understood
that the legislative power forms the core of sovereignty; legislation
came to the fore when it comes to state power. This brought about
far-reaching changes in the way people understood the relationship
between legislation and interpretation as well. It is necessary to go
over the prohibition for the judge to interpret legislative provisions
when making a decision and hence the obligation for him to refer to
the legislature how to decide the case. These principles for the
judiciary can be observed in the modern history of France, Prussia
and Austria in particular, whether expressly written or not. And t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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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 attempts to elaborate on the dramatic transformation from such
référé législatif to the prohibition of déni de justice. Furthermore, a
sequel to this paper will deploy Niklas Luhmann's system theory to
examine the theoretical grounds for the prohibition of the denial of
justice.
주제어(Keyword) : 입법권(potestas legislatoria), 유권해석(authentische Interperetation), 해석금지(Auslegungsverbot; prohibition of interpretation), 문의의무(Anfragepflicht), 입법문의(référé législatif), 신고의무(Anzeigepflicht), 재판거부금지(prohibition of the denial of justice; Verbot der Justizverweigerung), 결정강제(compulsory decision-making; Entscheidungszwang), 프로이센일반란트법(Allgemeines Landrecht für die preußischen Staaten), 오스트리아일반민법전(Allgemeines Bürgerliches
Gesetzbuch), 프랑스민법전(Code civil des França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