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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_FI00138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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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도덕 그리고 사실”

  • 비얼링의 승인설에 대한 켈젠의 비판

1)윤 재 왕*

▶목 차◀ Ⅰ. 머리말

Ⅱ. 켈젠의 주요저작

Ⅲ. 켈젠의 이론과 그 약점

  1. 켈젠의 관심사 그리고 실패의 이유

  2. 켈젠의 이원주의

  3. 근본규범과 법질서의 단계구조

Ⅳ. 켈젠과 비얼링

  1. 켈젠의 승인설 비판과 그 이론적

배경

  1. 켈젠의 비얼링에 대한 오해: 비얼

링의 반론

  1. 보론 : 켈젠의 칸트에 대한 오해

  2. “근본규범”의 이면(裏面)으로

서의 “존중”

  1. “승인” 그리고 더 좋은 법과 더

나쁜 법의 전제조건 - 결론을 대신

하여

I. 머리말

법률가는 통상 “법률의 배후에 무엇이 있는가?” 또는 “무엇이 있어야

하는가?” 라는 물음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물음을 제기하게 되면,

그 순간부터 서로 모순되는 여러 가지 단어들이 떠오른다. “정의”, “이성”,

“폭력”, “정치”, “형벌”, “목적”, “이익”, “출세” 등등. 법률은 분명 법이 아

닌 것들과 많든 적든 관련을 맺기 마련이며, 그러한 비법적 요소들은 도

덕적이거나 사실적인 내용으로 집약할 수 있다. 그리하여 “왜 법은 구속

력을 갖는가?” 또는 “왜 법을 지켜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그

  •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강사. 1) 법률의 문 속으로 들어 갈 수 없고 그래서 법률 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 수 없다는 점은 카프카의 “법률 앞에서(Vor dem Gesetz)”라는 짧은 단편에 극명하게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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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법, 도덕 그리고 사실” - 비얼링의 승인설에 대한 켈젠의 비판

것이 도덕적으로 옳기 때문에”, “지키지 않으면 국가의 강제권 행사의 대

상이 되기 때문에”, “내가 그 법률을 인정하기 때문에” 등등 여러 가지 대

답이 가능하다. 실제로 거의 모든 법철학적 성찰은 어떠한 비법적 요소를

어떠한 방식으로 법과 관련을 시킬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대답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법과 비법의 관련성에 대해 커다란 회의를 품고, 법을 비법으

로부터 철저히 차단하며, 법에 슬쩍 끼워 놓았거나 붙여 놓았던 것들, 법

위에 얹혀놓았던 것들 모두를 말끔히 청소해 내려는 시도를 자신의 학문

적 프로그램의 핵심으로 삼았던 20세기의 법(철)학자는 프란츠 카프카와

같은 도시에서 태어난 동시대인 한스 켈젠이었다. 켈젠은 처음부터 “자연”

이나 “이성”과 같은 초월적 존재를 부정하면서, 동시에 “법률의 목적”,

“법공동체의 승인”, “개인의 의지”, “규범의 명령”, “주체의 이익”, “관습”,

“삶”과 같은 사실적, 경험적 요소로 법률을 근거지우려는 당시의 모든 이

론들이 단순한 환상과 착각에 불과하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했다.

즉, 그와 같은 비법적인 요소들은 단순한 이데올로기라고 폭로하거나, 법

학 이외의 영역에서 자리 잡아야 할 문제임을 밝히려고 했다. 예를 들어

“의지”는 생물학과 심리학에게, “목적과 명령”은 정치에게, “관습”은 사회

학에게, “도덕에 대한 성찰”은 윤리학에게 맡길 대상일 뿐, 법학은 법과

법의 관리자들의 자율성이라는 다른 프로그램을 추구한다고 한다.1)

“순수법학”이라는 이름으로 한 세기를 풍미한 켈젠의 이 거대한 프로

젝트는 (미완의) 웅장한 이론적 건축물을 남겨 놓았고, 전 세계의 법(철)

학자들은 여전히 이 건물의 어느 작은 한 구석에서 설계자이자 건축자인

1) 이에 대해 켈젠은 그의 교수자격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법률가는 다르다. 법률가에게는 결코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필수불가결한 전제가 주어져 있다. 그것 은 바로 법규의 규범적 본성이다. 아마 도덕철학자는 다시 이에 대해 비판적으로 결정 을 내려야 할지 모른다 ... 법률가가 제기할 수 있는 물음은 오로지 형식적인 물음일 뿐이다. 즉, 법률가가 확인해야 하는 것은 근거나 ‘왜?’가 아니라, 오직 ‘어떻게?’일 뿐이다. 법률가의 물음은, ‘국가기관에 의해 법규로 적용되어야 하고, 수범자들이 준수해야 하 는 문장이 무엇이고, 이를 어떤 식으로 인식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논리적 형식은 무엇인가?’일 뿐이다.” (Kelsen, Hauptprobleme der Staatsrechtslehre, Wien 1911, 35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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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3

켈젠이 과연 어떠한 생각에서 이 후미진 구석에 이러한 문양을 새겨 놓았

는지를 알기 위해 골몰한다. 이 작은 논문 역시 그와 같은 노력의 한 조

각으로서, 켈젠의 초기저작에 나타나는 “승인설” 비판을 거점으로 삼아,

법과 법학으로부터 정치적 또는 사실적 요소를 제거하려는 켈젠의 의도가

왜 완전히 실현될 수 없었는지 또는 그러한 시도 자체가 처음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해 보려고 한다. 이를 위해 아래에서는 먼저 켈젠

의 저작들을 일별(Ⅱ)한 이후, 켈젠의 이론의 대강 및 그 약점을 살펴보고

(Ⅲ), 켈젠이 비얼링의 승인설 그리고 칸트의 철학을 어떤 식으로 오해했

는지를 서술한다(Ⅳ). 그리하여 법을 사실적 요소로부터 독립시키려는 켈

젠의 프로그램이 오히려 법을 정치화(Politisierung)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

고, 켈젠으로 하여금 그의 이론적 적대자들에게 늘 혐의를 품게 만들었던

도덕 또는 사실성과 같은 요소들은 켈젠 자신의 이론적 안경을 통해 굴절

되고, 그의 이론적 틀 속에서 자의적으로 구성된 것임을 밝혀 보고자 한

다. 물론 이 글이 의도하는 목적이 성공한다고 할지라도, 켈젠이 남긴 전

체 건축물에는 아무런 손상을 가하지 않는다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각각

의 이론은 어차피 구성(Konstruktion)이기 때문이다.

Ⅱ. 켈젠의 주요저작

잘 알려진 대로 켈젠은 전 생애에 걸쳐 엄청난 양의 저작을 남겨 놓

았고, 켈젠의 저작에 대한 문헌은 전체를 조망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2)

그의 저작 및 2차 문헌에 대해 정통한 학자로는 로베르트 발터(Robert

2) 켈젠의 저작 목록에 관해서는 R. Walter u.a. (Hrsg.), Hans Kelsens stete Aktualität, Schriftenreihe des Hans Kelsen-Instituts, Bd. 25, Wien 2005, 79-114면 참고. 켈젠의 이론에 대한 입문적인 내용으로는 M. Jestaedt, Hans Kelsens Reine Rechtslehre. Eine Einführung, in: Hans Kelsen, Reine Rechtslehre. Einleitung in die rechtswissenschaftliche Problematik, Studienausgabe der 1. Auflage 1934, hrsg. u. eingel. von Matthias Jestaedt, Tübingen 2008, XI-LXVI면 (LV면 이하) 참고. 또한 켈젠 법이론의 전개과정 에 관해서는 오세혁, 켈젠 법이론의 발전과정, 중앙법학 제7집 제4호(2005), 425면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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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법, 도덕 그리고 사실” - 비얼링의 승인설에 대한 켈젠의 비판

Walter)3), 스탠리 폴슨(Stanley Paulson)4), 호르스트 드라이어(Horster

Dreier)5) 그리고 마티아스 예슈테트(Mathhias Jestaedt)6)를 들 수 있다.

3) 발터는 켈젠의 제자로서 오랫동안 빈 소재 한스 켈젠 연구소의 소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작으로는 Der Aufbau der Rechtsordnung, Graz 1964, 2. Aufl. Wien 1974; Der gegenwärtige Stand der Reinen Rechtslehre, Rechtstheorie 1 (1970), 69면 이하; Das Lebenswerk Hans Kelsens: Die Reine Rechtslehre, in: Adolf. J. Merkl/ Alfred Verdross/ Rene Marcic/ Robert Walter (Hrsg.), Festschrift für Hans Kelsen zum 90. Geburtstag, Wien 1971; Rechtstheorie und Erkenntnislehre gegen Reine Rechtslehre?, Wien 1990; Hans Kelsens Rechtslehre, Baden-Baden 1999(한국어판: 심헌섭 역, “한스 켈젠의 법이론”, 법학(서울대) 제40권 1호, 1999, 334면 이하). 4) 센트루이스 소재 워싱턴 대학교 철학과와 법학과 교수인 폴슨은 미국인으로서 켈젠 연구에 관한 한, 현재 가장 국제적으로 저명한 학자로 여겨진다. 그는 수차례 독일에 체류하면서 켈젠의 초기이론 및 당시의 법학과 관련된 중요한 논문들을 출간하였다. 켈젠에 관한 주요저작으로는 Läßt sich die Reine Rechtslehre transzendental begründen?, Rechtstheorie 21 (1990), 155면 이하; [Bonnie Litschewski와 공동 편집 한] Normativity and Norms. Critical Perspectives on Kelsenian Themes, Oxford 1998; Konstruktivismus, Methodendualismus und Zurechnung im Frühwerk Hans Kelsens, AöR 14 (1999), 631면 이하; [M. Stolleis와 공동 편집한] Hans Kelsen. Staatsrechtslehrer und Rechtstheoretiker des 20. Jahrhunderts, Tübingen 2005; Der Normativismus Hans Kelsens, JZ 2006, 529면 이하. 현재 폴슨은 켈젠 전기를 준비 중에 있다고 한다.
5) 2차 대전 이후 자연법론이 지배했을 뿐만 아니라, 나치 정권에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기여했던 법학자들이 주류를 이루었던 서독의 법철학계에서 켈젠의 법이론은 별다른 주목 을 받지 못하거나, 상투적인 비판의 대상이 될 뿐이었다. 이러한 상황에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온 계기는 호르스트 드라이어의 박사학위 논문 Rechtslehre, Staatssoziologie und Demokratietheorie bei Hans Kelsen, Baden-Baden 1986, 2. Aufl. Baden-Baden 1990 이었다. 켈젠에 대한 드라이어의 다른 저작으로는 Rezeption und Rolle der Reinen Rechtslehre. Festakt aus Anlaß des 70. Geburtstages von Robert Walter (Schriftenreihe des Hans Kelsen-Instituts, Band 22), Wien 2001, 17-34면; Hans Kelsen und Niklas Luhmann: Positivität des Rechts aus rechtswissenschaftlicher und systemtheoretischer Perspektive, Rechtstheorie 14 (1983), 419면 이하; Hans Kelsen (1881-1973): „Jurist des Jahrhunderts„?, in: Helmut Heinrichs/ Harald Franzki/ Klaus Schmalz/ Michael Stolleis (Hrsg.), Deutsche Juristen jüdischer Herkunft, München 1993, 705면 이하; Hans Kelsens Wissenschaftsprogramm, in: Helmuth Schulze-Fielitz (Hrsg.), Staatsrechtslehre als Wissenschaft, Berlin 2007, 81면 이하. 6) 예슈테트는 에얼랑엔 대학 법과대학 교수로서, 이 대학의 한스 켈젠 연구단의 책임자 이자 한스 켈젠 전집의 편집인이다. 켈젠에 관한 그의 저작으로는 특히 Matthias Jestaedt/ Oliver Lepsius, Der Rechts- und der Demokratietheoretiker Hans Kelsen - Eine Einführun, in: Hans Kelsen. Verteidigung der Demokratie. Abhandlungen zur Demokratietheorie, ausgewählt und hrsg. von Jestaedt und Lepsius, Tübingen 2006, VII-XXIX면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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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켈젠의 이론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기관으로는 오스트리아 빈의 한

스 켈젠 연구소(Hans-Kelsen-Instiut)와 에얼랑엔(Erlangen)에 있는 한스

켈젠 연구단(Hans-Kelsen-Forschungsstelle)7)을 들 수 있다. 후자의 기관

은 독일 학술진흥재단의 지원 하에 한스 켈젠 전집을 편집 출간 중이며,

현재 제2권까지 발간이 되었다. 켈젠의 저작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저작들

만을 꼽으면 다음과 같다.

무엇보다 그의 교수자격 논문인 “국가법론의 주요문제, 법규에 관한

학설을 기초로(Hauptprobleme der Staatsrechtslehre, Entwickelt aus

Lehre von Rechtssatz)”에서 켈젠은 당시의 국법학에서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8) 즉 켈젠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동시대인들이 설명을 했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이론적 사

고방식을 제시한다.9)

켈젠이 빈에 살았을 당시의 다른 주요저작들은 다음과 같다: “주권의 문제와

국제법 이론. 순수한 법학을 위한 논저(Das Problem der Souveränität und

die Theorie des Völkerrechts. Beitrag zu einer reinen Rechtslehre, Tübingen

1920)”; “사회학적 국가개념과 법학적 국가개념. 국가와 법의 관계에 관한 비판적

연구(Der soziologische und der juristische Staatsbegriff. Kritische Untersuchungen

des Verhältnisses von Staat und Recht, Tübingen 1922)” ; “일반국가론

(Allgemeine Staatslehre, Berlin 1925)”; “자연법론과 법실증주의의 철학적 기초

(Die philosophischen Grundlagen der Naturrechtslehre und des Rechtspositivismus,

Charlottenberg 1928)”; “민주주의의 본질과 가치(Vom Wesen und Wert der

Demokratie, Tübingen 1920, 2. Aufl. Tübingen 1929)”

이 책의 제목 자체가 이미 커다란 의미를 담고 있다. 당시의 국가(법)

학은 국가를 사회학적 측면에서 서술하거나 국가에 대해 법적 형식을 부

여하는 실증주의적 태도를 견지했을 뿐만 아니라,10) 국가의 도덕적 존립

7) http://www.hans-kelsen.org. 8) Horst Dreier, Rezeption(주 6), 18면. 9) Friedrich Caro, Rezension der “Hauptprobleme”„, in: Jahrbuch für Gesetzgebung, Verwaltung und Volkswirtschaft im Deutschen Reich 36 (1912), 1̂928-1942면(1928면). 10) 국가에 관한 이러한 “양면설(Zweiseitentheorie)”의 고전적 저작은 Georg Jellin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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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법, 도덕 그리고 사실” - 비얼링의 승인설에 대한 켈젠의 비판

근거를 정당화하고 국가를 유지, 보존하는 것을 과제로 삼았다. 그리하여

국가 자체가 가치를 갖고 있다고 보거나, 국가가 일정한 가치를 보장하는

객관적 기관이라고 생각했다.11) 켈젠이 보기에 이처럼 “국가를 지탱하려

는(staats- tragend)”, 그 당시 국법학(Staatsrechtswissenschaft)의 태도는

커다란 의문의 대상이었고, 그래서 이러한 국법학은 국가를 지탱, 유지하

는 학문은커녕, 국가에 기생하는 학문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그 때문에 켈

젠은 “자기 자신의 이름으로가 아니라, 국가라는 가면 뒤에 숨어 몰래 지

배권력을 행사하는 인간들이 품고 있는 권력에 대한 믿음”을 뒤흔드는 일

을 주저하지 않았다.12) 이에 반해 켈젠 자신은 정치권력은 독자적으로 작

동해야 한다는 것, 다시 말해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해 각자가 갖고

있는 생각들이 격렬하지만, 공정하고 개방된 투쟁을 통해 구체적으로 실

현됨으로써, 즉 민주주의라는 길을 거쳐 뚜렷이 표현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13)

켈젠이 칼 슈미트(Carl Schmitt)와 벌인 유명한 논쟁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헌법의 수호자”를 둘러싼 이 논쟁에서 슈미트는 바이마르공화국

헌법 제48조 2항14)에 비추어 제국대통령이 독재권을 기초로 헌법의 수호자가 되

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15) 켈젠은 이러한 슈미트의 주장을 격렬하게 비판하면서,

Allgemeine Staatslehre, Berlin 1900(김효전 역, “일반 국가학” 2005)이다. 이 책은 크게 “일반적 국가사회학”과 “일반국법학”으로 나뉘어져 있다.
11) 이는 특히 스멘트(Smend)나 홀슈타인(Holstein)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정신과학적 방법론의 기본적 태도였다. 12) 이 점은 특히 켈젠이 스멘트의 통합론을 반박하는 가운데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이에 관해서는 Hans Kelsen, Der Staat als Integration. Eine prinzipielle Auseinandersetzung, Wien 1930, 30면 참고. 특히 같은 책 40면의 각주에서는 헤라클레이토스를 원용하면서 오로지 깨어 있는 자만이 국가에 속하는지 아니면 잠들어 있는 자도 국가에 속하는지 라는 물음을 들어 스멘트의 통합이론을 비판하고 있는 부분은 켈젠의 수사학적 능력에 대해 감탄하게 만든다. 13) 이에 대해서는 Hans Kelsen, Was ist Gerechtigkeit? (1953), Stuttgart 2000, 52면의 결어 부분을 참고. 14) “독일제국의 공공의 안전과 질서에 대한 장애 또는 위해가 발생한 경우 제국대통령은 그 회복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15) Carl Schmitt, Die Hüter der Verfassung, Tübingen 1931, 4. Aufl. Berlin 1996; 특히 독재권에 관한 117면 이하의 서술과 수호자에 관한 132면의 서술을 참고. 놀랍게도 슈미트는 독재권이라는 매우 위험한 권한에 대해 별다른 논의를 하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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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성을 갖는 헌법재판소가 헌법의 수호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16)

켈젠의 가장 유명한 저작은 물론 “순수법학(Reine Rechtslehre, 1.

Aufl. Leipzig/Wien 1934, 2. Aufl. Wien 1960)”이다. 순수법학은 “국가법

론의 주요문제”에서 이미 단초가 제시되었던 내용들을 집대성한 것이자,

특히 이론적 적대자들과의 논쟁과 반박을 거쳐 자신의 이론을 더욱 부각

시키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작품이다. 어떻게 하면 법을 법으로

서, 그리고 오로지 법으로서만 - 즉 “순수하게” - 이해할 수 있으며, 이러

한 이해에 기초하여 법제정 및 법적용과 관련하여 어떠한 결론에 도달하

게 되는가에 대한 켈젠의 이론이 가장 “순수한” 형태로 나타나 있는 것이

바로 순수법학이다.

이밖에도 역사적, 인류학적, 사회학적 관점에서 법(문화)의 발전과정을 추적

하고 있는 “응보와 인과성. 하나의 사회학적 연구(Vergeltung und Kausalität.

Eine soziologische Untersuchung, Den Haag 1941)”, “법과 국가에 관한 일반이론

(General Theory of Law and State, Cambridge/ Mass. 1945)”, “국제연합법. 근

본문제들에 대한 비판적 분석(The Law of United Nations. A Critical Anaysis

of Its Fundamental Problems, London 1950)”, “국제법의 원리(Principles of

International Law, New York 1952)”, “규범의 일반이론(Allgemeine Theorie der

Norm, Wien 1979, 사후출간)” 등이 켈젠의 주요저작에 속한다.

Ⅲ. 켈젠의 이론과 그 약점

“순수법학”의 핵심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마도 순수법학이 적대시했

던 입장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즉 켈젠은 권력을 행사하면서,

그것이 전혀 권력의 행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들을 자신의 이

론적, 실천적 적으로 여겼다. 아마 그 때문에도 켈젠이 논쟁을 행하는 스

16) Hans Kelsen, Wer soll der Hüter der Verfassung sein?, Berlin 1931, 특히 12면 이하, 50면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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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법, 도덕 그리고 사실” - 비얼링의 승인설에 대한 켈젠의 비판

타일과 비난의 강도 그리고 구사하는 언어가 그처럼 첨예한 방식을 취했

을 것이다. 논쟁 속의 켈젠은 급진적이고 철두철미했으며, 적대자들이 표

방하는 “말도 안 되는(unsinnig)” 이론들의 뿌리까지 파고 들어가, 뿌리

자체를 제거하려고 시도한다. 켈젠이 갖고 있는 이 논쟁적인 재능은 많은

경우 적대자들을 “극단적으로 비난(abkanzeln)”하는 경향17)을 갖게 만들

었다.

  1. 켈젠의 관심사 그리고 실패의 이유

켈젠이 그의 전 생애에 걸쳐 추구했던 관심사는 도덕적, 종교적, 정치

적, 경험적 동기에서 행해진 결단, 다시 말해 모든 비법적인 결단에 대항

하여 법의 독자성을 주장하고, 법률가들을 법에 그리고 오로지 법에만 구

속시키는 것이었다. 물론 얼핏 보기에 “순수”하다기 보다는 “순진”하다고

보일 수도 있는 그의 이론적 선택은 상당히 복잡한 배경을 갖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그의 방법론적 토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신칸트

학파(Neukantianis mus)의 방법이원론을 표방하는 켈젠으로서는 그 어느

철학자보다도 칸트를 우선적으로 원용한다. 하지만 켈젠의 오류는 몇몇

중요한 부분에서 칸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결과적으로 켈젠은 법의 독자성을 근거지우기 위한 문제, 즉 법은 “정당”

할 수 있다는 대전제 자체가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 이로 인해 “어떻게

결정을 내려야 하는가?” 라는 법적, 실천적 문제가 궁극적으로는 “누가

결정을 내려야 하는가?” 라는 권력의 문제로 귀착되는 결과를 낳고 말았

다. 그리하여 켈젠의 법이론 전체를 떠받치고 있는 “법으로서의 법(Recht

als Recht)”은 “정치로서의 법(Recht als Politik)”으로 전도되는 역설에 봉

착하게 된다.18)

17) Dreier, Rezeption, 21면과 23면. 18) 이 궁극적 문제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재구성해 볼 수 있다. (1) 헌법재판소 또는 헌법에 비추어 분쟁을 종국적으로 결정하는 최상위 기관이 착오를 범할 수 있는 가능 성이 있는가? (2) 만일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질문 (1)에 대해 ‘그렇다’고 대답하면서 질문(2)에 대해 설득력 있는 답을 제시할 수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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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켈젠의 이원주의

켈젠은 마부르크학파의 신칸트주의자임을 자처했다.19) 그 때문에 켈

젠은 자신의 이론구성에서 두 개의 개념을 극적으로 대비시키는 이원주의

를 선호한다. 이원주의에서는 제3의 요소는 존재하지 않는다(teritium non

datur).20) 물론 켈젠은 이원주의를 다시 두 가지 방식으로 구사한다. 첫

번째 방식은, 두 개념의 대립을 허상으로 밝히면서 한 개념을 다른 한 개

념으로 해소되게 함으로써 이원주의 자체를 극복하는 것이다(개념의 흡

수). 두 번째 방식은 두 개념을 서로 대비시키고, 그 가운데 어느 한 개념

만을 자신의 목적에 비추어 절대적으로 타당하다고 보는 방식이다(개념의

양극화).

첫 번째 방식의 이원주의에 대해 켈젠은 1927년에 쓴 자기서술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21): (1) 객관적 법과 주관적 권리 사이의 이원

면 외관상 “법으로서의 법”을 고수하는 것처럼 보이는 켈젠의 입장을 얼마든지 지지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질문 (1)에 대해 긍정적인 답을 하는 한, “정치로서의 법”을 고려하는 것은 불가피하며, 이 점에서도 정당성문제 자체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물론 “승인”이 그러한 정당성기준으로서 정당성을 갖는다고 이 글이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점은 켈젠이 이론의 순수성을 견지할 수 없거나, 순수성 이데올로 기가 오히려 노골적인 사실의 세계에 몸을 던지는 결과를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19) Kelsen, Selbstdarstellung (1927), in: Jestaedt (Hrsg.), Hans Kelsen im Selbstzeugnis. Sonderpublikation anlässlich des 125. Geburtstages von Hans Kelsen am 11. Oktober 2006, Tübingen 2006, 24면. 신칸트주의와 관련해서 더욱 흥미로운 부분은 Kelsen, Autographie (1927), in: Hans Kelsen Werke Bd. 1, Tübingen 2007, 34면의 다음과 같은 서술이다: “나는 김나지움 학생 때부터 칸트를 읽기 시작했다. 그 당시 나는 칸트 철학의 핵심은 - 이런 생각이 옳든 그르든 - 인식의 과정 속에서 대상을 창출해 내는 주체라는 이념이라고 생각했다. 김나지움 학생시절에 나의 자의식은 끊임없이 상처를 받았고, 그래서도 어떤 충족을 갈구하곤 했다. 이런 나의 자의식은 분명 칸트에 대한 주관주의적 해석, 즉 세계의 중심은 ‘나’라는 사고를 통해 적절한 철학적 표현을 찾게 되었을 것이다.”
20) 이에 관해서는 Zai-Wang Yoon, Rechtsgeltung und Anerkennung. Probleme der Anerkennungstheorie am Beispiel von Ernst Rudolf Bierling, Baden-Baden 2009, 59면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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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법, 도덕 그리고 사실” - 비얼링의 승인설에 대한 켈젠의 비판

성은 모든 주관적 권리(각 개인에게 귀속되는 법적 권한을 통해 타인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것)가 객관적 법(법규범의 총체)에 근거한다고 밝힘

으로써 해소해야 한다.22) (2) 이와 마찬가지로 공법과 사법의 이원주의

역시 “모든 법은 공법이다”고 파악함으로써 해소되어야 한다.23) (3) 그리

고 국가와 법의 이원주의 역시 “국가와 법의 통일성”에 대한 통찰을 통해

포기되어야 한다.24) 이렇게 보면 법이란 단지 국가를 통해 보장된 법일

뿐이다. 다른 한편 국가는 “그 본질상” “하나의 - 상대적으로 중앙에 집

중된 - 법질서”일 따름이다.25) 이로써 법과 국가는 모두 그 신비적 속성

을 상실(entzaubern)하며,26) 또한 - 켈젠의 표현을 빌자면 - 탈이데올로

기화 한다.27) 다시 말해 법질서의 상위에 있는 어떤 법이 국가를 정당화

하는 것이 아니며, 어떤 윤리적 국가가 법을 정당화하는 것도 아니다(이

로써 “법치국가이론 Rechtsstaats-Theorie”28)이라는 독일 특유의 기괴한

건물 전체는 붕괴된다29)).

21) Kelsen, Selbstdarstellung (1927), 21-29면(22면 이하). 22) 같은 맥락에서 서술하고 있는 Kelsen, Reine Rechtslehre, 2. Aufl. Wien 1960, 130면 이하 참고(주관적 권리는 객관적 법의 “반사일 뿐”이다). 23) 이보다는 조금 완화된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Reine Rechtslehre, 2. Aufl. 285면 이하 참고.
24) Kelsen, Selbstdarstellung, 24면. 또한 Kelsen, Reine Rechtslehre 1960, 289면 이하(국 가와 법의 동일성)도 참고. 25) Kelsen, Autobiographie, 62면(강조는 필자). 켈젠은 자신의 이론의 배경을 이루었던 것은 오스트리아라는 국가였다는 점을 흔쾌히 인정하고 있다. 즉 오스트리아는 “여러 인종, 언어, 종교, 역사를 지닌 수많은 집단들이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어서”, 단지 “법적 통일체였을 뿐”이었다고 기억한다. “이 점에서 ... 순수법학은 오스트리아 특유의 이론 으로 여길 수 있다.”
26) 또는 호르스트 드라이어의 표현에 따른다면 “세속화(Profanisierung)”라고 할 수 있다. Dreier, Rechtslehre, 208면 이하.
27) 국가와 법의 이원론이 내포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에 관해서는 Kelsen, Reine Rechtslehre 1960, 288면 이하 참고. 28) 19세기 독일에서 시작된 법치국가는 민주주의 헌법국가의 형성에 실패한 독일제국에 서 왕권과 귀족 및 시민계층의 타협의 산물로 형성된 것이다. 그것이 역사적 진보에 해당하는지는 접어두더라도 다른 서유럽국가가 걸었던 민주주의의 길과는 사뭇 다른, 일종의 궁여지책이었다 할 수 있다. 이에 관해서는 Joachim Lege, Recht als Kulturgut. Warum der Streit zwischen Rechtspositivismus und Naturrecht undurchführbar ist, ARSP 93 (2007), 21-38면(38면) 참고.
29) Kelsen, Reine Rechtslehre 1960, 288면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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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11

두 번째 방식의 이원주의(개념의 양극화)와 관련하여 켈젠은 칸트를

원용하며(예컨대 “법과 도덕”, “존재와 당위”), “법과 정치”, “인식과 의욕”

과 같은 칸트를 넘어서는 극단적 대립을 자신의 이론적 축으로 삼기도 한

다. 특이한 점은 켈젠이 이러한 대비에서 언제나 법, 당위, 또는 의지와

같은 어느 하나의 측면만을 절대화한다는 사실이다. 즉, 그러한 하나의 측

면만을 전체 이론구성의 정점에 올려놓는다. 이와 같은 이원주의 이외에

도 켈젠의 이론구성에서 나타나는 또 하나의 두드러진 특징은 이른바 위

계질서화(Hierarchisierung), 즉 단 하나의 관점에서 전체를 구성한다는 점

이다.30)

  1. 근본규범과 법질서의 단계구조

이러한 위계질서화는 순수법학의 중심에 서있는 두 가지 이론구성,

즉 근본규범31)과 법질서의 단계구조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앞에서

지적한 대로 켈젠의 법이론에서는 법이 국가를 정당화하지 않으며, 또한

국가가 법을 정당화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법은 왜 효력을 가져야 하는

가? 이에 대한 켈젠의 대답은 궁극적으로는 동어반복(Tautologie)32)이다.

즉, 법이 효력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켈젠의 대답이다. 이에 대

해 켈젠은 “순수법학” 제1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강제는 최초의 헌법제정자 또는 그의 수권을 받은 기관이 규정하고 있는 조

건과 방식에 따라 정립되어야 한다. 이것이 곧 하나의 법질서(일단은 여기서 논의

하는 유일한 대상인, 개별국가의 법질서라는 의미에서)의 근본규범에 대한 도식적

30) 물론 켈젠의 이러한 기본적 태도는 칸트보다는 데카르트의 철학에 더 근접하는 것이다. 31) 근본규범(Grundnorm)에 관해 자세히는 심헌섭, 근본규범 이론 소고, 법학 40권 3호 (1999), 52면 이하; H. Dreier, Rechtslehre, 42면 이하 참고. 32) 동어반복은 논리학적으로 ‘거짓’이 될 수도 없다. 이에 관해서는 Joachim Lege, Was heißt und zu welchem Ende studiert man als Jurist Rechtsphilosophie? Ein systemtheoretischer Versuch, in: Rolf Gröschner/ Martin Morlok (Hrsg.), Rechtsphilosophie und Rechtsdogmatik in Zeiten des Umbruchs (ARSP-Beiheft 71), Stuttgart 1997, 83면 이하(98면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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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법, 도덕 그리고 사실” - 비얼링의 승인설에 대한 켈젠의 비판

인 표현이다.”33)

같은 내용을 “순수법학” 제2판에서는 다음과 같이 더욱 복잡한 형태

로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 국제법이 아니라 - 국가법질서만을 고찰의 대상으로 삼고 또한

역사상 최초의 헌법의 .... 효력근거에 대해 묻는다면, - 국가헌법의 효력 및 그

헌법에 따라 창조된 여러 가지 규범들의 효력을 신이나 자연과 같은 법외적인 권

위에 의해 정립된 권위에 연원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는 한 - 이 헌법의 효

력, 즉 헌법이 구속력 있는 규범이라는 가정을 전제해야 한다는 점만이 대답이 될

수 있다 .... 어떤 규범의 효력근거는 다시 규범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러한 전

제는 다시 (경험적으로) 법적 권위에 의해 정립된 규범이 아니라, (이론적으로)

전제해야 하는 규범일 수밖에 없다 ... 근본규범은 법질서, 즉 강제행위를 확립하

는 질서의 근본규범이기 때문에, 이 근본규범을 표현하는 명제는 다음과 같은 것

이다. ‘강제행위는 역사상 최초의 국가헌법 및 그 헌법에 따라 제정된 규범들이

규정하고 있는 조건과 방식에 따라 정립되어야 한다.’ 이는 다시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대로 행위해야 한다’는 명제로 축약하여 표현할 수도 있다. 이러한 근본규범

을 공통의 효력근거로 삼은 규범들은 .... 서로 병렬적으로 효력을 갖는 다수의 규

범들의 복합체가 아니라, 상위규범과 하위규범의 관계에 있는 규범들의 단계구조

이다.

근본규범의 본질을 인식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근본규범이란 직접적으로는

사실상 정립되고 관습이나 규정에 의해 창조된, 대체적으로(im großen und

ganzen) 실효성을 갖는 일정한 헌법과 관련되어 있으며, 간접적으로는 이러한 헌

법에 따라 창설된 대체적으로 실효성을 갖는 강제질서와 관련되어 있고, 따라서

근본규범이 헌법의 효력과 그 헌법에 따라 창설된 강제질서의 효력을 근거지운다는

점을 의식하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근본규범은 자유로운 발명의 산물이 아니다.

근본규범은 헌법제정행위 및 이 헌법에 따라 정립된 행위의 주관적 의미를 그 객

관적 의미로, 즉 객관적으로 효력을 갖는 법규범들로 해석할 경우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근본규범들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자의적으로 전제

되는 어떤 것이 아니다.”34)

33) Kelsen, Reine Rechtslehre, 1. Aufl. 1934, 65 면 이하. 34) Kelsen, Reine Rechtslehre, 2. Aufl. 1960(변종필/ 최희수 역, 순수법학 1999년), 203면 이하(인용은 독일어판에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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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13

이러한 서술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법질서의 근본규범과

단계구조는 서로 밀접한 상관성을 갖고 있다. 법의 효력을 법이 유용하다

거나 신성하다거나 또는 사실상으로 준수되고 있다는 등의 “존재사실”로

근거지우려고 하지 않는 한, “당위명제”로서의 규범은 오로지 이보다 상

위에 있는 다른 규범에 의해서만 근거지울 수 있다. (2) 따라서 근본규범

은 규범을 다른 상위의 규범으로 근거지울 때 봉착하게 되는 무한회귀

(regressus ad infinitum)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게 만드는 탈출구이다. 이

를 켈젠은 “왜?”라는 물음을 계속해서 제기하는 아이들의 놀이에 비유하

여 설명한다.35)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근본규범은 무한회귀의 단절을 말한

다.36) (3) 이 무한회귀의 단절은 - 켈젠이 의식적으로 칸트를 원용하여

표현하고 있듯이 - 선험적37) 전제(tanszendentale Voraussetzung)를 통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 사전적 정립(Voraus-Setzung)은 예컨대 “규범은

준수되어야 한다는 것이 근본규범으로서 효력을 갖는다”는 식으로 어떤

비경험적인 것이 아니라, 경험적으로 존재하는 각각의 구체적 법질서와

관련을 맺는 전제이다. 즉, “바로 이 법질서의 규범들은 준수되어야 한다”

라고 전제하게 된다. (4) 오해의 소지가 있는 표현(“...하게 행동해야 한

다”)임에도 불구하고 켈젠이 누구의 관점에서 무한회귀를 단절하고 있는

지는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다시 말해 규범에 복종하는 수범자(예를 들

어 수범자들이 규범을 승인함으로써)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법을 적용하고

법을 제정하는 기관38)의 관점에서(이러한 기관들에 대해 수범자들은 복종

을 해야 한다) 무한회귀의 단절이 이루어진다(켈젠 자신이 예로 든 사례

35) Kelsen, Reine Rechtslehre 1960, 199면 이하: “왜 나는 학교에 가야 해요? - 아버지가 그렇게 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이지. - 왜 아버지에게 복종해야 하는데요? - 부모에게 복종해야 하기 때문이지. - 왜 부모에게 복종해야 하죠? - 신이 그렇게 명령했으니까.......... ” 36) 이른바 “뮌히하우젠-트릴렘마”라고 불리우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Kurt Seelmann, Rechtsphilosophie(한국어판: 윤재왕 역, “법철학” 2000) 205면 이하 참고. 37) Kelsen, Reine Rechtslehre 1960, 204면 이하. “선험적”은 “초월적(transzendent)”과는 반대로 경험을 초월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비록 그 자체는 경험적은 아니고 따라서 그저 “우연적”인 것은 아니지만, 경험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으로서 전제되어야 하는 어떤 것을 뜻한다. 38) 법적용과 법창설은 기본적으로 일치한다고 보는 켈젠의 견해에 관해서는 Kelsen, Reine Rechtslehre 1960, 239면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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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법, 도덕 그리고 사실” - 비얼링의 승인설에 대한 켈젠의 비판

에 따른다면 끝없이 “왜?”라고 묻는 아이의 놀이를 아버지의 관점에서 단

절하는 것39)). (5) 켈젠이 법적용 및 법제정 기관의 관점에서 무한회귀를

단절한 이유는 그가 법을 강제질서로 파악한다는 사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렇다면 누구의 강제에 대해 복종을 해야 하는지도 간단하게 확인

할 수 있다. 즉, “대체적으로” 가장 효율성을 갖고 있는 강제에 복종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6) 이러한 전제에서 본다면 법을 창설하는 기관

이 주관적으로 의욕하는 것을 곧 객관적으로 법적 구속력을 갖는 당위로

해석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7) 법창설기관에 대해 켈젠이 명시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유일한 내용은 법창설기관이 반드시 자신들에 부여되어 있

는 권한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러한 내용들만으로는 법과 법학의 독자성을 근

거지우려는 켈젠의 목적을 제대로 실현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보인다.

이 점을 아래에서는 비얼링의 승인설에 대한 켈젠의 비판에 비추어 구체

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Ⅳ. 켈젠과 비얼링

  1. 켈젠의 승인설 비판과 그 이론적 배경

비얼링의 이른바 승인설(Anerkennungtheorie)40)에 대한 켈젠의 비판

은 순수법학의 모태를 이루고 있는, 1911년에 출간된 그의 “국가법론의

주요문제”에 이미 상세하게 나타나 있다. 이 비판은 훗날 “근본규범”이라

39) Kelsen, Reine Rechtslehre 1960, 199면 이하: “아이가 왜 신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느냐 고 묻는다면, 다시 말해 이 규범의 효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면, 그에 대해서는 이 규범 자체를 의문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 즉 이 규범의 효력근거를 다시 찾아야 할 것이 아니라, 그 규범을 단지 전제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 대답이 된다.”
40) 승인설에 관해서는 김영환, 법철학의 근본문제, 제2판, 2008, 133면 이하; 심헌섭, 법의 효력에 관한 연구, 법학 12권 1호(1980), 141면 히하(160면 이하); H..-L.. Schreiber, Der Begriff der Rechtspflicht, Berlin 1966, 65면 이하; Yoon, Rechtsgeltung, 32면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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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15

고 불리게 되는 가상적 규범의 배후에 자리하고 있는 핵심적인 전제, 즉

법의 강제적 성격에 관한 사고에 기초하고 있다. 다시 말해 강제적 성격

만이 법에 대해 개별 주체의 내면으로부터 독립된, 객관적 실재를 보장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켈젠은 법의 효력을 법에 복종하는

수범자의 관점에서 포착하려는 모든 시도들 - 법이 수범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한다거나 심리적으로 강제를 한다거나 또는 수범자들이 법을 “대체적

으로 정당하다고”41) 인정하는 것 등 - 은 오류라고 본다. 법은 수범자들

의 의지에 반하여 효력을 갖는다는 것이다.42) 물론 이러한 사실적 요소들

을 배제하고자 하는 켈젠의 의도는 그 당시의 정치적, 학문적 배경과 밀

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즉, 법의 탈신비화와 함께 민주주의를 향한 법이

론의 개방성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법학의 과학성을 담보하려는 켈젠의 거

대한 프로젝트는 이 초기저작에서부터 표층구조와 심층구조의 미묘한 연

결고리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일단 비얼링의 승인설에 대한 켈젠

의 비판이 배경으로 삼고 있는 법이론적 측면만을 우선적으로 서술하고자

한다. 특히 켈젠 자신이 “국가법론의 주요문제”에서 “승인설”을 지배적인

학설이라고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43) 그 사이 승인설, 특히 비얼링의

승인설은 거의 망각의 대상이 되었고, 기껏해야 정형화된 교과서식 설명

에 그치는 정도이기 때문에 당시의 논쟁을 조금은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44)

41) 켈젠은 강제질서의 실효성과 관련하여 “대체적으로 실효성을 갖는”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Kelsen, Reine Rechtslehre 1960, 209면 이하). 42) 자세히는 Yoon, Rechtsgeltung und Anerkennung, 52면 이하 참고(특히 켈젠이 비얼 링이 취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명령설과 계약론에 대한 비판과 관련된 내용). 43) Kelsen, Hauptprobleme, 346면, 351면; 이에 관해서는 또한 Yoon, Rechtsgeltung, 11면 참고. 44) 비얼링의 승인설에 대해서는 1990년대 까지만 해도, H..-L. Schreiber, Der Begriff der Rechtspflicht, 85면 이하에서 약 10페이지 정도의 서술을 한 것이 가장 상세한 문헌이었다. 이러한 불충분한 연구상황은 Ch. Bahlmann, Die Rechtslehre Ernst Rudolf Bierlings unter besondere Berücksichtigung seiner Anerkennungstheorie, Diss. Münster, 1995에 의해 어느 정도 극복되었고, Andreas Funke, Allgemeine Rechtslehre als Strukturtheorie des Rechts. Entwicklung und gegenwärtige Bedeutung der Rechtstheorie um 1900, Tübingen 2004에 의해 커다란 진척을 이루었 다. 다만 발만의 박사학위논문은 비얼링의 이론에 대한 체계적, 법철학적 관점이 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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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법, 도덕 그리고 사실” - 비얼링의 승인설에 대한 켈젠의 비판

무엇보다 켈젠은, 법은 전적으로 타율적이고, 이 점에서 자율적 의무

를 전제로 해야 하는 도덕과 엄격히 분리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에

따르면 도덕은 순전히 주관적으로, 다시 말해 의지의 내면적 구속이라는

실제적인 심리적 상태로서만 존재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도덕규범은

규범이 내용으로 삼고 있는 도덕적 의무와 일치하며, 다만 도덕규범 자체

는 보편적 효력을 갖는 반면, 도덕적 의무는 개개의 주체와 관련된다는

점에서만 차이가 있다고 본다.45) 이에 반해 법규범은 이 규범을 준수할

의사가 없는 사람 그리고 심지어 법규범의 존재 자체를 알지 못하는 사람

까지도 의무지운다고 한다. 이런 의미에서 법은 객관적인, 다시 말해 의무

를 부담하는 주체의 내면과는 무관한, 독자적인 존재이다.46)

물론 켈젠이 법과 도덕을 이처럼 엄격하게 대비시킨 것은 개별 주체

의 주관적 도덕이 법복종과 관련하여 아무런 의미가 없어야 한다고 함으

로써 법의무를 절대화하려는 의도에서 행해진 것은 아니다. 또한 법에 대

한 객관적-도덕적 정당화를 통해 법의 절대적 정당성과 그에 따른 복종의

무를 근거지우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법의무의 독자성에는 법의 강제

적 성격을 확인하고, 법복종과 관련하여 각 개인의 도덕적 판단에 훨씬

더 많은 자유를 인정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47) 다시 말하면 켈젠이 중

립적인 법학적 관점에서 법의 성격을 강제로 규정한다고 해서 과연 법에

복종해야 하는지 아니면 법에 저항해야 하는지에 대한 결정권을 각 개인

으로부터 박탈하려고 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바로 그 때문에 켈젠은 법

부분 결여되어 있고, 푼케의 책은 일반법학의 맥락에 집중함으로써 승인설 자체에 대해서 는 크게 주목하지 않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이에 관해 자세히는 Yoon, Rechtsgeltung, 87면 이하(90면) 참고. 비얼링의 승인설에 대한 개요는 Yoon, ebenda, 32면 이하 참고. 45) Kelsen, Hauptprobleme, 311면 이하. 46) Kelsen, Hauptprobleme, 318면 이하. 47) 법과 도덕의 엄격한 분리 및 그 이론적 배경에 관해서는 특히 Horst Dreier, Rechtslehre, 2. Aufl. 1990, 236면 이하; S. Hammer, Braucht die Rechtstheorie einen Begriff vom subjektiven Recht? Zur objektivistischen Auflösung des subjektiven Rechts bei Kelsen, in: Stanley Paulson/ Michael Stolleis (Hrsg.), Hans Kelsen. Staatsrechtslehrer und Rechtstheoretiker des 20. Jahrhunderts, 2005, 176면 이하(184 면); H. Hofmann, Einführung in die Rechts- und Staatsphilosophie, 4. Aufl. Darmstadt 2008, 15면 이하; R. Walter, Die Trennung von Recht und Moral im System der Reinen Rechtslehre, in: ÖZföR 17(1967), 123면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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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17

효력과 법복종을 엄격히 구별한다. 즉, 하나의 유효한 강제질서가 존재한

다는 우연적인 사정과 관련하여 법의 효력을 확인하는 문제와 그 법의 가

치에 대한 실천적, 윤리적 문제(이 문제는 효력의 확인과 자주 뒤섞인 채

제기되는 것이 보통이다) 사이의 연관성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양자를 철

저히 분리한다.48)

이러한 이유에서 켈젠은 법이 수범자에게 어떤 동기형성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도 단호하게 거부하다. 즉, 법규범과 법복종 사이에는 어떠

한 인과연쇄(Kausalnexus)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법의 본질적 요소

는 오로지 불법이 확인되었을 때에 부과하게 되는 제재(Sanktionen)일 뿐

이다.49) 그리하여 법의 행위조종력이라든가 국민의 법복종과 같은 사실적

요소는 법학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켈

젠은 “법복종”이라는 개념을 이미 행해진 불법에 대해 강제권을 갖고 있

는 국가기관이 법을 적용하는 행위로 이해할 뿐, 수범자인 일반국민이 법

에 대해 복종하는 것은 법학의 고찰대상에서 배제하게 되며, 그로 인해

“법복종”이라는 용어에 대한 통상적인 이해와는 상당한 거리를 두게 된

다.50)

이와 같은 이론적 배경에서 켈젠은 법에 복종하는 수범자(일반국민)

들의 승인이 법효력의 근거가 된다고 보는 승인설은 법이 도덕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지 못한 데 기인한다고 단정한다. 왜냐하면 켈젠에 의하면

승인설은 “승인”이라는 개념을 통해 국가의 강제로서의 법과 각 법주체의

도덕적 의지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는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48) 법효력(켈젠으로서는 도덕적 구속력이 완전히 배제되어 있는 의미의 효력이다)과 법 복종을 이렇게 엄격히 분리하는 문제에 관한 비판적 고찰로는 Norbert Hoerster, Was ist Recht?(윤재왕 옮김, “법이란 무엇인가?” 2009), 151면 이하(172면 이하 참고).
49) Kelsen, Hauptprobleme, 7면 이하, 57면 이하, 347면 이하. 이에 관해서는 또한 H. Dreier, Rechtslehre, 195면 이하도 참고. 50) 다시 말해 켈젠의 (초기)이론에서 법준수는 일반 수범자가 법규범을 준수한다는 의미가 아니 라, 법적용기관이 불법에 대해 제재를 가하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법규범은 평가규 범(Bewertungsnorm)이나 제재규범(Sanktionsnorm)일 뿐, 결정규범(Bestimmungsnorm)이나 행위규범(Verhaltensnorm)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관해 자세히는 Michael Pawlik, Die Reine Rechtslehre und die Rechtstheorie H.L.A. Harts. Ein kritischer Vergleich, Berlin 1993, 66면 이하(69면)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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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법, 도덕 그리고 사실” - 비얼링의 승인설에 대한 켈젠의 비판

다. 다시 말해 승인설은 자기 스스로를 의무지우는 심리적 행위(승인)를

통해 법규범과 법복종 사이에 인과연쇄를 만들고, 그렇게 함으로써 각 법

주체의 자율성을 확보하려고 시도한다고 전제한다. 그렇기 때문에 켈젠은

승인이라는 개념을 합법적 행위를 하게 되는 심리적 동기이자 동시에 법에

대한 윤리적 정당화이기도 하다고 전제한다.51)

그리하여 켈젠은 승인이 개인의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주관적 행위이며

인식하고 있는 법률에 대해 스스로 복종하는 것, 즉 법률을 자신의 의욕

과 행위의 동기로 만든다는 결단을 뜻한다고 한다.52) 이 경우 승인은 오

로지 규범준수의 원인이 되는 심리적 사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러한 사실에 의해 법의 의무구속력이 설명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다른

한편 켈젠은 승인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실제로 법률을 준수하겠다는 결

단뿐만 아니라, 그 법률이 정의로운 법률이라는 확신이나 규범의 타당성

에 대한 적극적인 인정도 포함된다고 한다. 다시 말해 승인은 이러 이러

하게 행위해야 한다는 의식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규범이 존재해야만 한

다는 믿음까지도 내용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53)

이처럼 매우 강한 의미의 “승인”개념을 출발점으로 삼으면서 켈젠은

승인설이 결국은 도덕에 예속된 채 법과 그 효력을 설명하려는 오류를 범

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즉, 승인설은 규범에 대한 실질적, 내용적 확신을

지닌 자율적이고, 자발적인 자기구속에 기초하여 법규범을 정당화하려고

하는데, 이는 법과 도덕의 엄격한 분리라는 켈젠의 이해에 비추어 볼 때,

법의 세계에서는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방법적 측면에서도 결코 수행할

수 없다고 한다. 이 점은 앞에서 말한 사실적-심리적 의미의 승인개념에

도 해당한다. 왜냐하면 승인설을 지지하는 학자들처럼 법복종에 대한 심

리적 의지를 통해 법규범의 구속력 근거를 설명하게 되면, 법의무 역시

도덕의무와 마찬가지로 법주체의 내면적 의지의 구속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로 그 때문에 켈젠은 승인설이 법규범과 법의무

51) Kelsen, Hauptprobleme, 311면 이하, 346면 이하. 52) Kelsen, Hauptprobleme, 314면 이하, 348면, 354면. 53) Kelsen, Hauptprobleme, 352면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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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19

를 인과연쇄로 결합시키고 있으며, 법규범을 원인으로 그리고 법의무를

결과로 파악하고 있다고 비판한다.54)

같은 맥락에서 켈젠은 명령설(Imperativentheorie)55)에 대해서도 비판

을 가한다. 명령설은 모든 독자적 및 완전한 법규범은 명령 또는 금지를

포함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법규에 표현되어 있는 허가, 수권

또는 부정 역시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명령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켈젠으로서는 법규의 본질적 기능이 합법적인 행위에 대한 동기부

여가 아니라, 불법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하기 때문에, 법규범의 논리적 형

식이 명령이라고 하는 명령설의 전제 자체를 문제 삼는다. 명령설의 입장

을 견지한다면, “의무부담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결과, 즉 주체의 내면적

의지의 구속이라는 결과를 야기하기 위해서 그리고 법규범을 통한 동기형

성력이 실제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다시 명령에 포함되어 있는 국가의 의

지가 주체의 의지가 되도록 만드는 또 하나의 행위를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주체가 법규에 스스로 구속되도록 하는 다른 행위를 필

요로 한다.”56) 그렇지만 법규범 또는 법규는 발생한 불법에 대한 제재를

본질로 한다고 보는 켈젠의 입장에서는 명령설이 주장하듯이 국가로 하여

금 다른 주체의 행동이라고 하는, 결코 법규의 내용이 될 수 없는 어떤

것을 의욕하도록 만드는 일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국가의

권위를 기초로 어떤 명령의 형식을 전제할 경우 그러한 명령이 절대적으

로 관철될 수는 없다는 현실적 이유에서 오히려 국가의 권위에 커다란 손

상을 입히는 결과가 되기도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57)

명령설에 대한 이러한 비판을 통해 켈젠은 법의 세계를 도덕이나 심리

적 상태와 같은 비법적인 요소로부터 해방시키려는 자신의 이론적 목표를

달성하고자 한다.58) 왜냐하면 명령설처럼 법규범의 본질을 국민에 대한

54) Kelsen, Hauptprobleme, 314면. 55) 명령설에 관한 일반적인 서술로는 K. Engisch, Auf der Suche nach der Gerechtigkeit, Stuttgart 1971, 31면 이하; Röhl/ Röhl, Allgemeine Rechtslehre, 208면; L. Legaz Lacambra, Rechtsphilosophie, Neuwied 1965, 351면, 360면 참고. 56) Kelsen, Hauptprobleme, 350면. 57) Kelsen, Hauptprobleme, 210면 이하, 349면. 특히 승인설과 관련해서는 30면, 378면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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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법, 도덕 그리고 사실” - 비얼링의 승인설에 대한 켈젠의 비판

규범의 행위조종력으로 파악하게 되면, 법의 존재는 필연적으로 개개 국민의

사실상의 규범준수나 규범준수를 통해 실현되어야 할 일정한 사회적 목적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훗날 “순수법학”이라는 형태로 응축과

폐쇄(kondensieren und kontaminieren)의 과정을 겪게 되는 이 순수한 규

범주의는 법이 갖고 있는 법적 요소를 오로지 사후적인(aposteriorisch),

다시 말해 불법구성요건에 뒤따르는 반작용으로서의 국가기관의 제재에서

찾고자 한다. 따라서 켈젠이 그의 초기저작에서 법규범을 가언적 판단

(hypothetisches Urteil)으로 파악한 것은 논리적인 귀결이었다.

명령설 및 명령설에 전제되어 있는 승인개념에 대해 켈젠이 가한 비

판의 핵심내용은 “심리강제”에 대한 비얼링의 견해를 반박하는 가운데 더

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일단 켈젠은 법의 강제설에 대한 비얼링의 비판에

동의한다. 비얼링은 법질서 스스로가 동원하는 수단으로는 결코 법규범의

준수를 강제할 수 없다는 분석을 상세하게 펼친 바가 있다. 그래서 켈젠

은 비얼링의 다음과 같은 서술을 인용한다.

“강제설이 자신들의 견해를 근거지우기 위해 동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제

도들, 즉 강제집행과 형벌을 법규범의 준수를 관철하기 위한 강제수단으로 볼 가

능성은 전혀 없다. 강제집행이란 실제로는 고작해야 규범이 준수되지 않았다는 결

과에 대한 대체물에 불과하다. 더욱이 형벌은 그와 같은 대체물조차 되지 못하고,

단지 규범침해자에 대해 침해된 규범 자체의 효력이 지속되고 있음을 표현하기

위한 목적에서 법 또는 법공동체가 반작용을 가하는 것에 불과하다.”59)

자신의 승인설에 입각하여 강제설을 일관되게 거부하는 비얼링은 강

제집행이나 형벌과 같은 물리적 강제뿐만 아니라, 포이어바하(Feuerbach)

이후 법학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하고 있던 심리강제설에 대해서도 반론을

제기한다. 이와 관련하여 비얼링은 법주체의 규범준수는 법규범에 의해

행사되는 심리적 강제와는 관계없이, 설령 최소한의 정도일지라도 규범준

58) 켈젠의 이 핵심프로그램에 관해서는 H. Dreier, Rechtslehre, 27면 이하 참고. 드라이 어는 이를 “이중의 전선구축(doppelte Frontstellung)”이라고 지칭한다. 59) Ernst Rudolf Bierling, Juristische Prinzipienlehre, Bd. 1, Tübingen 1894, 51면 이하 (켈젠의 인용은 Hauptprobleme, 213면 각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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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21

수에 대한 자유의지가 존재할 때에만 가능하다고 본다. 즉, 단순한 심리적

강제는 누군가로 하여금 일정한 규범을 준수하도록 유도하거나 그러한 방

향으로 행동하도록 자극할 수 있을 뿐, 규범준수 자체는 자유의지가 없이

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비얼링에게 규범준수는 강제수단

의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라, 법복종자 자신의 의지결정에 좌우된다.60)

켈젠은 심리강제의 행사가 법규의 본질이 될 수 없다는 비얼링의 입

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비얼링과는 반대로 켈젠은 규범준수에

대한 심리적 강제의 가능성을 인정한다. 물론 켈젠에게 그러한 사실적 강

제행사의 가능성은 어떠한 법(학)적 의미도 지니고 있지 않다. 그는 자신

의 규범주의적 프로그램에 충실하고자 하기 때문에, 법주체에 의한 법준

수라는 사실적 측면을 법학적 고찰방식에서 철저히 배제한다. 바로 이 지

점에서 켈젠은 심리강제설에 대한 비얼링의 비판 및 그에 대한 근거설정

을 문제 삼는다. 즉, 비얼링이 법규범을 통한 동기형성력을 결코 강제로

보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법규범이 법주체의 자유로운 심리

적 의지에 영향을 미치고, 그리하여 규범과 행위 사이에 인과적 관련성을

맺도록 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자유의지의 이념에 반하는 결론에 도달하

고 있다고 비판한다.61)

비얼링의 승인설에 대한 비판은 승인설이 결국에는 계약론과 자연법

론에 귀착하고 만다는 비난에서 정점에 도달한다.62) 물론 비얼링 역시 계

약론이 실정법에서는 전혀 확인할 수 없는, 계약의 보편타당성이라는 초

법률적 원칙을 전제로 하여, 실정법의 구속력을 실정법과는 모순되는 논

리적 전제에서 찾으려고 하는 모순을 범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켈

젠이 보기에 계약론에 대한 비얼링의 반론은 비얼링 자신의 이론인 승인

설에도 해당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실정법 어디에도 승인의 보편타당성을

규율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승인설과 계약론은

모두 국가의 권위를 통한 의무부과에서 주체가 어떤 역할을 함께 한다는

60) Bierling, Juristische Prinzipienlehre, Bd. 1, 50면 이하; Bd. V, 1917, 182면 이하. 각주 5 참고. 61) Kelsen, Hauptprobleme, 215면 이하. 62) Kelsen, Hauptprobleme, 376면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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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법, 도덕 그리고 사실” - 비얼링의 승인설에 대한 켈젠의 비판

허구적 의제(Fiktion)에 따르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의제는 승인설에 대해 .... 일련의 구체적인 물음들을 제기해보면 분

명하게 드러난다. 즉, 누구의 승인을 말하는가? 연령, 성별, 의사능력의 차이를 고

려하지 않은 채 그저 모든 법주체의 승인을 말하는가? 모든 사람의 승인이 필요

한 것인가 아니면 일부 사람의 승인이 필요한 것인가? 만일 다수의 승인만으로

충분하다면, 어떠한 종류의 다수이며, 이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다는 말인가? 불

법은 과연 이 불법행위를 통해 위반된 법규를 승인하고서 행해지는 것인가 아니면

그러한 승인이 없이 행해지는 것인가? 승인의 대상은 무엇인가? 개별 법규인가,

법질서 전체인가, 아니면 실정법규범 이외의 어떤 다른 규범인가? 승인과 법에 대한

지식은 어떠한 관계에 있는가?”63)

이러한 도발적인 물음들을 통해 켈젠은 승인설에서 말하는 주체의 동

의가 바로 (의제에 기초한) 계약일 따름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며, 이로써

“명령설, 승인설 및 계약론의 내적 연관성 그리고 이러한 사고들에 내포

된 자연법적 연원”64)이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단정한다.

  1. 켈젠의 비얼링에 대한 오해: 비얼링의 반론

켈젠의 이러한 비판에 대해 비얼링은 그의 마지막 저작 “법적 원리론

(Juristische Prinzipienlehre)” 제5권(1917)의 보론(Exkurs)에서 상세한 반

론을 제기하고 있다.65) 비얼링은 자신의 이론적 출발점에 따르는 한, 켈젠이

제시한 승인설의 구체적 문제점(승인의 주체, 불법의 문제, 승인의 대상,

승인과 법에 대한 지식의 관계)은 켈젠의 오해66)에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63) Kelsen, Hauptprobleme, 358면. 64) Kelsen, Hauptprobleme, 378면. 65) 비얼링의 켈젠에 대한 반론(Replik)은 지금까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단지 Ch. Bahlmann, Die Rechtslehre Ernst Rudolf Bierlings, 1995만이 간략하게 소개를 하는 정도였다. 켈젠의 비판에 대한 비얼링의 반비판(Gegenkritik)에 관해 자세히는 Yoon, Rechtsgeltung, 58면 참고. 66) Yoon, Rechtsgeltung, 57면: “켈젠은 부분적으로는 나르시즘에 빠져 .... 비얼링의 입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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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23

비얼링의 반론67)을 검토해 보면 무엇보다 비얼링이 말하는 “승인”은 훗날

켈젠의 순수법학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근본규범”과 마찬가지

로 결코 순수한 경험적 개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즉, 승인은 존재(심리

적 요소)와 당위(법적 효력), 법과 도덕을 뒤섞어 놓은 개념이 아니라, 근

본규범과 마찬가지로 선험적(transzendental)으로 해석해야 한다.68) 다시

말해 승인은 법복종자들이 법의무를 부담한다고 말할 수 있기 위한 가능

성의 조건, 즉 모든 경험에 앞서는(칸트식으로 표현하면 a priori’) 조건이다.

따라서 법주체가 어떠한 동기에서 법을 통해 의무를 부담한다고 여기는지

(예컨대 법에 대한 신뢰와 충성일 수도 있고, 단순히 제재에 대한 두려움

일 수도 있다) 또는 구체적인 경우에 법을 위반하는지 또는 복종하는지와

같은 경험적 문제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이렇게 보면 비얼링이 의미하

는 “승인”은 법적 강제와 단순한 강제를 구별할 수 있도록 해주는 “범주

(Kategorie)”일 뿐이다. 이러한 범주로서의 성격을 고려한다면 실제로도

승인이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이 배제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승인

이 존재할 것을 적극적으로 요청하지도 않게 된다.69)

물론 비얼링이 켈젠의 비판에 대응할 당시 76세의 고령에 거의 눈이

먼 상태였기 때문에, 그의 반박은 썩 격렬한 형태를 띠고 있지 않다.70) 하

지만 비얼링은 켈젠이 자신의 승인개념을 다른 학자들의 승인개념과 동일

시하면서 이를 충분히 반박했다는 승리감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기에 충

분할 정도의 실질적 근거를 지닌 반론을 제기한다. 다만 자신의 승인개념

이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비얼링 자신도 이 개념에 썩

만족하지 못하며, 더 나은 용어가 있다면 얼마든지 이를 대체할 수 있다

고 인정한다. 그렇지만 비얼링은 승인이 결코 의제가 아니라, 하나의 실재

라는 입장을 고수한다. 즉, “‘효력을 갖는다(geltend)’고 여겨지고 있는 규

67) 반론의 상세한 내용은 Yoon, Rechtsgeltung, 61면 이하 참고. 68) 자세히는 Yoon, Rechtsgeltung, 59면 이하(60면 이하) 참고. 69) 칸트가 말하는 “인과성(Kausalität)”이라는 범주 역시 실제로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거의 가치가 없을 것이다. 70) Bierling, Juristische Prinzipienlehre, 5. Band, Tübingen 1917, 174면 이하(182-206면); 더 구체적으로는 Yoon, Rechtsgeltung, 60-74면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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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법, 도덕 그리고 사실” - 비얼링의 승인설에 대한 켈젠의 비판

범들에 대한” 법복종자들의 지속적인 행태 속에서 승인의 현실성을 찾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행태는 공동체질서에 대한 “열렬한 지

지와 성원”이나 뚜렷한 의무감일 때에도 있고, 무의식적이거나 그저 감정

적인 전제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어쩔 수 없이 굴

복하는 것일 수도 있다.71) 이런 의미에서 비얼링이 말하는 승인은 하나의

선험적-실천적(transzendentalpragmatisch) 개념이다.72) 그리고 이러한 승

인개념에 기초한 당위(단순히 강제되어 있다는 존재사실이 아니다)는 적

어도 강제를 배후에 수반하고 있는, 켈젠의 근본규범보다는 훨씬 더 분명

하게 우리가 통상 이해하고 있는 당위(“마땅히 무엇인가를 행해야 한다”)

를 훨씬 더 잘 설명할 수 있다. 이밖에도 후기의 켈젠이 승인설에 대한

자신의 비판을 상당부분 철회했다는 점도 - 비록 비얼링을 더 이상 논의

대상으로 삼지는 않았지만 - 승인설에 대한 그의 오해를 보여주는 한 증

거이다.73)

71) Bierling, Juristische Prinzipienlehre, Bd. 5, 193면 이하. 72) 이에 대한 상세한 논거는 Yoon, Rechtsgeltung, 64면, 66면 참고. 철학자 아펠(K.-O. Apel) 역시 이와 동일한 표현을 사용한다. 다만 아펠의 논의이론(Diskurstheorie)에서는 이상적인 논의의 조건을 언어사용의 선험적 전제조건이라는 측면에서 파악하기 때문에 선험적-화용론이라는 번역이 타당하다. 이에 반해 비얼링에 대한 필자의 해석은 Pramatik의 희랍어 어원인 “pragma”의 원래 의미대로 “행동” 또는 “구체적 실천”이라 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Praxis와 혼동될 소지가 있긴 하지만, 현재로서는 더 적절한 번역어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일단은 “실천적”이라고 번역한다.
73) 유작인 “규범의 일반이론(Allgemeine Theorie der Normen, Wien 1979)” 39면에서 켈젠은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하나의 규범이 ‘효력을 갖는다’는 것이 곧 그 규범 이 준수되고 적용되어야 한다는 뜻이고 또한 절대성을 갖는 하나의 개별규범은 직접적 으로, 상대성을 갖는 하나의 일반규범은 단지 간접적으로만 준수, 적용되는 것이라면, 일반규범은 간접적으로만 효력을 가질 수 있다. 즉, 그러한 일반규범에 상응하는 절대 적인 개별규범의 효력, 다시 말해 일반규범에서 추상적으로 정립되어 있는 행동을 구체 적으로 정립하는 개별규범의 효력을 매개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개별규범을 정립하는 개인들이 일반규범을 승인할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이 점에서 도덕질서와 법질서의 효력을 이 질서에 복종하는 개인들에 의존한다고 보는 승인설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강조는 필자) 더 자세히는 Yoon, Rechtsgeltung, 75면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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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보론 : 켈젠의 칸트에 대한 오해 - “근본규범”의 이면(裏面)

으로서의 “존중”

켈젠은 비얼링뿐만 아니라, 칸트의 철학에 대해서도 오해하고 있다.

이 측면은 여기서의 논의에서는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켈젠이 법의 효력과 관련하여 법복종자들의 역할을 일관되게 부정했는지

를 이해하는 데에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켈젠은 칸트로부터 무엇보다 “법과 도덕”의 구별을 받아들이면서, 이

구별을 극단화하여 다음과 같은 등식으로 표현되는 철저한 이원주의를 수

립한다. “법=강제=타율성=객관적.” : “도덕=자발성=자율성=주관적.”74) 그

리고 이러한 이원주의로부터 켈젠은 법의 효력과 관련하여 법복종자의 태

도가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는다는 결론을 도출해낸다. 이러한 입장은 칸

트철학에 대한 편파적인 해석의 소산이다. 물론 칸트는 어떤 다른 동기

(형벌에 대한 두려움이나 상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아닌, 법칙 자체가

행위의 동기가 되는 경우에만 “도덕성”이라고 부르고, 이에 반해 동기와

는 관계없이 법칙을 준수하는 외적 측면은 “합법성”에 해당한다고 보았

다.75) 그러나 칸트가 말하는 “도덕적 법칙(즉, 자연법칙과는 반대되는 의

미에서의 “자유의 법칙”)”에는 오늘날의 일반적 의미에서의 도덕규범, 즉

이를 위반했을 경우에는 사회적 제재가 따르거나 개인적인 실패를 수반하

는 규범(칸트는 이를 윤리적 법칙 ethische Gesetze이라고 부른다)뿐만 아

니라, 법규범(칸트: 법적 법칙 juridische Gesetze)도 포함된다. 그리고 이

법적 법칙(Rechtsgesetz) 역시 도덕적 법칙이기 때문에, 그 자체 이미 존

중(Achtung)의 대상이 된다. 다시 말해 각 개인으로 하여금 어떤 다른 동

기(강제에 대한 공포나 포상에 대한 희망)가 아니라, 오로지 이 법칙 자체

74) 특히 Kelsen, Hauptprobleme, 346면 이하 참고. 75) 이 점 그리고 이하의 서술에 관해서는 Immanuel Kant, Die Metaphysik der Sitten (1797), Einleitung, 6면 이하, 14면 이하(인용은 Kant, Werkausgabe, hrsg. von Wilhelm Weischedel, Bd, VIII, Frnkfurt a. M. 1977, 318면 이하, 324면 이하에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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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법, 도덕 그리고 사실” - 비얼링의 승인설에 대한 켈젠의 비판

로부터 이를 준수할 동기를 부여받아야 한다.76)

물론 칸트가 말하는 이 “존중”은 켈젠도 강조하고 있듯이 사실상 주

관적인 영역에 속하는 문제이다. 그렇지만 만일 그러한 존중의 가능성이

보장되어 있지 않아서 법주체 스스로 어떤 의무감 - 의무는 칸트 철학의

핵심개념에 해당한다77) - 을 느낄 가능성이 없는 상태라면, 법은 단순한

강제에 불과하며, 외적 “자연법칙”일 따름이다. 설령 법위반과 같이 구체

적인 사례에서 법에 대한 존중이 결여된 경우라 할지라도 존중의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게 되면 법은 단순한 외부적 강제 또는 폭력에 불과하다(이

는 마치 모든 구체적인 법적 사례에서 국가에 의해 정당화된 권력만이 행

사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켈젠의 강제설에 어떠한 변경도 가하지 않

는다는 사정과 동일하다). 이렇게 보면 “존중”은 켈젠의 “강제”와 마찬가

지로 “대체적으로” 실효성을 갖고 있다면 이미 실재한다고 볼 수 있다.

즉, 법질서 전반이 승인을 받고 있고, 혁명 또는 다른 방식으로78) 제거되

지 않았다면, 강제와 존중은 모두 그 가능성의 조건이 보장되어 있는 셈

이다. 이렇게 보면 비얼링의 “승인”은 켈젠이 말하는 “근본규범”의 이면에

다름 아니다.79) 즉, - 칸트의 정언명령과 비슷하게 표현하자면 - “너 자

신이 법질서 전체(당연히 법질서가 행사하는 강제를 포함하며, 때로는 너

자신의 의지에 반할지라도80))를 승인하도록 행동하라!”는 또 하나의 근본

76) 이에 관해 자세히는 Joachim Lege, Abscheu, Schaudern und Empörung. Die emotionale Seite von Recht und Sittlichkeit bei Kant, Jahrbuch für Recht und Ethik 15 (2006), 447면 이하 참고; 이에 반해 켈젠은 존중을 전적으로 도덕의 영역에만 해당 하는 것으로 파악한다(Hauptprobleme, 315면이하, 355면 이하). 77) 예컨대 Kant, Metaphysik der Sitten, 11면 이하(Werkausgabe 321면 이하). 더욱 분명하게는 Kant, 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1785), 8면 이하(인용은 Werkausgabe Bd. VII, 22면 이하에 따름) 참고. 78) 예를 들어 국가를 통해 보장되는 법과 갈등관계에 있는 마피아와 같은 준 강제질서는 “다른 방식으로” 법질서를 제거하는 경우가 된다. 79) 따라서 비얼링과 켈젠 사이의 차이는 실제로 (켈젠과 스멘트 사이에 존재하는 것과 같은) 아주 커다란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가족싸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양자 모두 법실증주의의 관점에 서있다는 점 역시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에 관해 자세히는 Yoon, Rechtsgeltung, 57면 이하 참고. 칸트의 개념을 해석할 때 “이면(Kehrseite)”이 갖는 의미에 관해서는 Lege, Wie juridisch ist die Vernunft? Kants “Kritik der reinen Vernunft” und die richterliche Methode, ARSP 76(1990), 203면 이하(211면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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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재 왕 27

규범을 전제할 수 있다.81)

“존재와 당위”라는 칸트의 이원주의 역시 켈젠에 의해 지나치게 단순

하게 적용되고 있다. 물론 이미 존재하고 있는 권력관계로부터 그것이 마

땅히 그래야 한다거나 심지어 정의롭다고 추론할 수 없다는 점은 자명하

다. 그리고 있는 법과 있어야 할 법을 혼동해서도 안 된다(이는 켈젠뿐만

아니라, 하트 Hart의 기치이기도 하다82)). 그렇지만 법이 마땅히 어떠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은 무엇이 법이고 무엇이 정당한 것인가를 둘러싸고 분

쟁이 발생하는 일상적인 사건마다 늘 새롭게 제기되는 질문이다. 과연 이

러한 질문은 법적인 질문이 아니라, 그저 도덕적 또는 정치적 질문에 불

과한 것인가? 실제로 켈젠은 이러한 질문이 법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고

대답하며, 이로써 켈젠은 기존의 모든 법학이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근본

적인 이해를 거부한다(이는 곧 켈젠의 이론이 담고 있는 도발적 측면에

해당한다83)).

80) “의지에 반한다(widerwillig)”는 측면에 관해서는 Bierling, Prinzipienlehre, 203면 이 하 참고(비얼링은 여기서 혁명과 관련하여 이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 81) 아마 그 때문에 법에 대한 “승인”은 “내 가슴 속에 자리한 원대한 도덕법칙”에 대한 존중에 비해 열정적인 감정을 수반하지 않을 것이다. 82) Herbert Lionel Adolphus Hart, Der Positivismus und die Trennung von Recht und Moral, in: ders., Recht und Moral. Drei Aufsätze, Göttingen 1971, 160면 이하. 83) 켈젠의 이론은 기존의 금기를 깨는 성격을 갖고 있다. 이 점에서 켈젠은 프로이드와 상당히 유사한 점이 있다. 즉, 프로이드가 모든 사회적 관계를 기본적으로 성(性)에 기초한다고 보았다면, 켈젠은 법을 정치, 즉 권력에 기초한다고 본다. 여론(餘論)이지만 켈젠과 프로이드는 정신질환을 갖고 있던 켈젠의 제자 프리츠 잔더(Fritz Sander)로 인해 서로 교류를 갖게 되었다(이에 관해서는 R. A. Metall, Hans Kelsen. Leben und Werk, Wien 1969, 40면 이하 참고). 켈젠과 프로이드의 관계에 대해서는 또한 A. Avscharova & M. Huttar, Ohne Seele, ohne Staat. Hans Kelsen und Sigmund Freud, in: T. Ehs (Hrsg.), Hans Kelsen. Eine politikwissenschaftliche Einführung, Wien 2009, 171면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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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법, 도덕 그리고 사실” - 비얼링의 승인설에 대한 켈젠의 비판

  1. “승인” 그리고 더 좋은 법과 더 나쁜 법의 전제조건 - 결론을

대신하여

켈젠-비얼링 논쟁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우

선 법의 규범적 효력이 모든 법복종자들의 지금 여기에서의 (심리적 또는

습관적) 현재적 승인에 의존할 수 없다는 켈젠의 지적은 전적으로 옳다.

이와 동시에 법의 효력은 실효성을 지닌 강제에만 의존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 적어도 칸트의 철학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한 - 법의 가능성 조

건 또는 규범성 일반의 가능성 조건을 면밀하게 탐구해 볼 필요가 있다.

즉, 법과 규범성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은 강제 하나가 아니라, 강제와 함

께 이 강제에 대해 저항하거나 또는 강제를 준수할 수 있는 자유(그 동기

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역시 그러한 가능성 조건이 된다. 도덕론과

법론으로 구성된, 칸트의 전체 도덕철학은 자유라는 선험적 전제조건에

기초하고 있고, 켈젠은 이러한 칸트 철학의 구성요소들의 한 부분만을 절

대화하는 오류를 범했다.

그러나 자유가 존재하고 또한 강제가 규범의 모든 세세한 영역에 까지

발을 들여놓을 수는 없다면, 어떤 강제질서가 다른 강제질서에 비해 더

자발적으로 준수되는 데에는 일정한 근거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특정한

강제질서의 합리성 또는 이성적 성격에 대한 통찰 역시 얼마든지 그러한

이유가 될 수 있다. 법의 합리성(Vernünftigkeit des Rechts)은 - 다시 한 번

칸트를 원용하자면 -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노골적인 폭력이 아니라, 특정

한 질서에 부합하는 절차를 거쳐 문명화된 방식에 따라 각자의 권리를 추

구하고 관철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가능하다.84) 만일 더 좋은 법과 더

나쁜 법의 구별이 불가능하고, 어느 쪽이 더 좋은 법인지에 대해 결정을

내리는 기관(예컨대 헌법재판소)에 대해 합리적으로(다시 말해 충분한 근

거를 제시하면서) 영향을 미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법과 규범의 합리성

84) Kant, Metaphysik der Sitten, Rechtslehre § 61, 228면(Werkausgabe 475면)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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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결코 확보할 수 없다는 비합리적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따라서 법의

합리성이라는 전제를 거부하게 되면, 어떤 법적 결정에 대해서는 단지 투

표나 추첨만이 가능하게 될 것이며, 법(철)학 역시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될

것이다. 승인설에 대해 “말살에 가까운(vernichtend)” 비판을 행한 켈젠의

“순수한” 이론은 그와 같은 사실적, 도덕적 요소를 법과 법학의 영역에서

추방함으로써 합리성의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체계내재적 역량을 스스로

잘라버린 셈이다. 그의 이론이 갖고 있는 과학적, 이론적 중립성이 실천적

상대성을 근본으로 하는 민주주의를 향해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는 사정

그리고 그가 전 생애에 걸쳐 일관된 민주주의자였다는 사정85)은 법(학)체

계를 초월하는 별개의 문제영역에 속할 뿐이다.

주제어(Keyword) : 한스 켈젠(Hans Kelsen), 에른스트 루돌프 비얼링(Ernst Rudolf Bierling),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순수법학(Reine Rechtslehre), 승인설 (Anerkennungstheorie)

“법, 도덕 그리고 사실” - 비얼링의 승인설에 대한 켈젠의 비판 ― 윤 재 왕

수령 날짜 심사개시일게재결정일

’09.07.22 ’09.08.31 ’09.09.17

85) 켈젠의 민주주의 이론에 관해서는 특히 Oliver Lepsius, Zwischen Volkssouveränität und Selbstbestimmung. Zu Kelsens demokratietheoretischer Begründung einer sozialen Ordnung aus der individuellen Freiheit, in: H. Brunkhorst/ R. Voigt (Hrsg.), Rechts-Staat, internationale Gemeinschaft und Völkerrecht bei Hans Kelsen, Baden-Baden 2008, 15-38면; R. Chr. van Ooyen, Der Staat der Moderne. Hans Kelsens Pluralismustheorie, Berlin 2003, 70면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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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법, 도덕 그리고 사실” - 비얼링의 승인설에 대한 켈젠의 비판

“Recht, Moral und Faktizität” - Kelsen's Kritik an der

Anerkennungstheorie von E. R. Bierling

Yoon, Zai-Wang

(Dozent an der juristischen Fakultät der Korea-Universität)

Hans Kelsen hat bereits in seiner programmatischen Habilitationsschrift

“Hauptprobleme der Staatsrechtslehre. Entwickelt aus Lehre von

Rechtssatz (1911)” einen Grundstein gelegt, auf dem er später ein

imposantes theoretisches Konstrukt “Reine Rechtslehre” aufgebaut hat.

Mit dieser Schrift schlug Kelsen einen ganz neuen Ton in der

Staatsrechtswissenschaft und Rechtstheorie an, ja er wendet sich, wie

es schon den Zeitgenossen schien, in der Tendenz gegen alles, was

bisher über die behandelten Probleme geschrieben worden ist. Auch die

damals eine unangefochtene Stellung innehabende Anerkennungstheorie,

als deren herausragendste Vertreter Ernst Rudolf Bierling galt, konnte

der scharfsinnigen Kritik von Kelsen nicht gefeit sein. Kelsen stellt

zunächst Bierlings Ansatz in Frage, dass die Rechtsnorm als

Staatswille in ihrer verpflichtenden Kraft nur aufgrund des psychischen

Zustands der Anerkennung seitens der Normadressaten zu erklären sei.

Kelsen scheint dieser Ansatzpunkt ein Grundfehler zu sein, weil eine

rein psychologische Fragestellung in der normativen Jurisprudenz keinen

Platz finden könne. Trotz dieser Psychologismus- Kritik setzt er schon

voraus, dass die Anerkennung einerseits die kausale Verknüpfung

zwischen der an sich keine motivierende Kraft ausübenden Rechtsnorm

und dem Willen des zu verpflichtenden Subjektes herstellt (empirischer,

psychologischer Charakter), andererseits der Selbstbindung des Will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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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m Prinzip der Autonomie als solchem eine letzte normative Funktion

zuschreibt (normativ-moralischer Charakter).

Bierling hatte in seinen letzten Lebensjahren noch Gelegenheit, eine

Replik gegen Kelsen zu schreiben, die bis jetzt keine gebührende

Achtung gefunden hat. Der vorliegende Beitrag versucht, anhand der

Replik von Bierling aufzuzeigen, wie Kelsen Bierling missverstanden

hat und darüber hinaus woran das gesamte Konzept von Kelsen

gescheitert ist. Dafür werden nach einem kurzen Überblick über das

Werk von Kelsen (II) sein Hauptanliegen, sein methodischer Dualismus

und seine Grundnormtheorie dargestellt. Anschließend ist der theoretische

Hintergrund von der Kelsenschen Kritk an der Anerkennungstheorie

behandelt. Daneben lässt sich dieser Beitrag darauf ein, wie Kelsen Kant

missverstanden hat, um darzulegen, dass sich die Reine Rechtslehre

von Anfang an auf einem falschen Sattel gesetzt hat. Die Hauptthese

lautet: Die Reine Rechtslehre von Kelsen ist wegen bzw. trotz seines

“Reinheitsgebots” grandios gescheitert, vor allem daran, dass seine Theorie die Vernünftigkeit des Rechts nicht richtig berücksichtigen kann.

Außerdem bedroht ihre Politik-Abstinenz, die von der Bereinigung

außerjuristischen Faktoren mitbedingt ist, alltägliche Fragen nach der

Richtigkeit im Rechtssystem zu blockieren und damit die Rechts- in

die Machtfrage umkippen zu lassen. Dass Kelsen Zeit seines Lebens

ein bekennender Demokrat war, steht auf einem anderen Bla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