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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균, 집합행동, 신뢰, 법, 2013

원본 파일: 김도균, 집합행동, 신뢰, 법, 2013.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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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집합행동, 신뢰, 법*

‐ 공적 신뢰의 토대에 관한 고찰 ‐

1)

金 度 均**

요 약

사회 전반적으로 정착된 신뢰, 특히 법제도에 대한 신뢰는 일종의 사회적 자본으로서

한 사회의 발전 수준을 가늠하는 한 지표이다. 법에 대한 신뢰를 제고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 이 논문의 목표는 두 가지이다. 첫째,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신뢰가 가능

하기 위한 조건과 신뢰 형성의 기초를 설명해 낼 수 있는 이론적 틀을 확립하는 것

이다. 이를 위해 집합행동의 이론들에 관해 고찰한 후 호혜성에 바탕을 둔 집합행동의

논리를 정리한다. 둘째, 호혜성의 논리를 공적 제도 및 법에 대한 신뢰의 문제로 확장

하여 공적 신뢰가 정착되기 위한 특수한 가치군들을 추출하는 것이다. 이 논문의 결론은

사회적 신뢰의 반경을 확대시킬 이 신뢰가치군들을 법기관들과 법공무원들이 증진

하고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법에 대한 신뢰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법에

대한 신뢰 여부는 법담당기관에 대한 시민들의 체험 속에서 결정된다는 경험적 연구

들에 의거하여, 법적 결정의 유·불리와는 무관하게 공정하게 결정이 이루어졌다는

시민들의 느낌, 그리고 결정과정에서 자신의 의견이 충분히 존중받았다는 시민들의

느낌이 법에 대한 신뢰 형성과 법의 권위 확립에 매우 중요한 요인임을 주장한 후,

마지막으로 이 논문은 사회적 신뢰 형성의 선순환이 가능하기 위한 사회심리적 조건과

제도적 조건을 제안한다.

주제어: 신뢰, 집합행동, 호혜성, 사회적 자본, 공정성, 법의 권위

  • 이 논문은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가 2011. 8. 30. 주최한 <법과 신뢰> 학술회의에서 발표한 글을 수정․보완한 것으로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기금의 2010년도 학술연구비 지원을 받았다.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법학대학원 교수.

서울대학교 法學 제54권 제3호 2013년 9월 543∼599면 Seoul Law Journal Vol. 54 No. 3 September 2013. pp. 543∼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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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머리말

한국 사회는 저신뢰 사회로 분류된다. 2005∼2008년 세계가치관조사에 따르면,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이 낯선 사람을 신뢰하는 수준은 30.5%, 즉 10명 중 3명만이

타인을 신뢰한다고 한다. 그리고 국회, 행정부,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는 각각 15%,

30%, 48% 정도이다. 이는 OECD 평균을 훨씬 밑돌며 남부 유럽의 국가들이나

동구권 일부 국가와 비슷한 수준이다. 개인 간의 상호신뢰는 세계 전체적으로 보아

중하위권이지만 국가와 사회제도에 대한 신뢰는 최하위권에 속한다.1) 많은 논자들이

지적하듯이, 한국 사회의 과제는 국가와 제도에 대한 신뢰도를 높임으로써 사회

전반적인 신뢰도를 확립하는 데 있다.2) 이해관계의 충돌, 종교적/윤리적/정치적

신조들 사이의 충돌로 항상 소란스럽고 갈등이 심한 민주주의 사회라는 조건에서

정치제도와 법제도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고 유지될 때 ‘선진사회’가 확립된다면

그 조건은 무엇일까? 이하에서는 이것을 염두에 두고 법에 대한 신뢰의 문제를

다루어 보고자 한다.

그간의 여론조사를 통해 보자면 한국 사회에서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는 상대적

으로 높았다. 그런데 최근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음을 보여주는 징후

들이 나타나고 있다. 영화 <도가니>와 <부러진 화살>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뜨거운

논란은, 영화의 사실적합성 여부를 떠나서, 법(제도와 사법부)에 대한 대중의 신뢰

정도가 어느 만큼인지를 잘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사태를 걱정하면서

법과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제고하자고 강조한다.3) 법관들이 직업적 양심이나

1) KBS <사회적 자본>제작팀, 사회적 자본: 1% vs 99% 누가 양극화를 만드는가, 문예춘 추사, 2011, 135면 참조(이하 ‘사회적 자본’으로 약칭). 박영신, “한국인의 공공신뢰․ 불신: 경험적 결과에 토대한 토착심리 분석”, 한국행정연구소: 한국정책지식센터, 「정책 & 지식」포럼 제647회(2012. 11. 20) 발표문 참조. 또한 세계 각국의 민주주의, 정치적 자유, 시민적 자유, 인권, 부패 상황에 대해 분석하고 평가한 후 순위를 매기고 있는 Worldaudit.org.의 홈페이지(http://www.worldaudit.org/countries/south-korea.htm)에서 한국 사회의 발전정도를 알 수 있다.

2) 김태종․박종민․박정후․양정호․장원호․한준, 사회적 자본 확충을 위한 기본조사 및 정책연구, KDI 국제정책대학원, 2006 참조. 이 연구에 따르면(25면), 사회적 신뢰도 기본조사에서 한국 사회는 스웨덴, 미국, 일본 등과 비교해서 현저히 낮은 수치를 보 이고 있다.

3) 이에 대해서는 박철, “경제발전을 위한 법치주의: 사회적 신뢰와 협조의 기초인 법과 법치주의를 중심으로”, 저스티스, 통권 106호(2008. 9), 39-79면 참조. 이 논문에서 박철 변호사는 법과 신뢰의 문제에 관하여 한국의 법현실과 정면으로 대면하면서 이론적 으로나 실천적으로나 매우 통찰력 있는 견해를 개진하고 있다. 필자는 박철 변호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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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함, 공정함, 공평무사, 불편부당과 같은 공직자로서의 덕목을 갖추도록 법률가

양성제도를 개선하자고도 한다. 또한 입법과정의 절차적 공정성과 내용적 정당성에

대한 언급도 빼먹지 않는다. 때로는 시민들의 낮은 법의식과 님비현상(NIMBY: ‘Not

In My Back-Yard Syndrome’) 때문에 법의 권위가 추락한다고 보아 더 엄정한 법

집행을 강조하기도 한다. 주장의 요체인즉슨 법 및 법의 권위에 대한 신뢰를 회복

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을 신뢰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글에서는 법에

대한 신뢰형성의 조건을 해명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집합행동의 논리에 입각

해서 호혜성과 신뢰의 가능성 조건을 살펴보고, 신뢰를 바라보는 두 가지 대표적

관점을 비교하고 공적 신뢰 형성의 기반을 검토한다(II.). 다음으로 법에 대한 신뢰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국내외에서 수행된 경험적 연구들을 참조하여 법적 신뢰의

제도적 조건들을 추출하고 법에 대한 전반적 신뢰가 형성되고 축적되어 가는 경로를

살펴본다(III.).

II. 집합행동의 논리, 호혜성, 신뢰

“인간을 구원할 것은 협력이다.” (버트런드 러셀)

법제도는 본질적으로 대부분의 사회구성원들이 대체로 정직하다는 점을 전제로

해서 작동되는 것 같다. 사회구성원 대다수가 대체로 정직하지 않다면 법은 무용

지물이 될 것이고, 사회는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수단에 의거해서만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항상 감시하는 방식을 통해서만 유지될 것이다. 사람들이 대부분의 경우

대체로 정직하다는 점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법질서는 붕괴되고 만다. 법질서의

작동과 유지는 법관들이 대체로 정직할 것이라는 믿음에도 의존한다. 특히 법관에

대한 신뢰 없이는 법질서의 유지와 작동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이처럼 동료 시민과 법담당자들에 대한 신뢰가 법제도 작동의 중요한 요소임은

분명하다. 법이 정직한 대다수의 사람들을 부정직한 소수의 사람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제도여야 한다는 것은 인류의 오랜 소망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인간성에 대한 상당히 낙관적인 입장에서 출발하는 것은 아닐까? 가령 합리적 선택

이론은 인간이 대체적으로 정직할 것이라는 가정을 버리고 인간은 본질적으로

논문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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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이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직함을 진실로

추구하기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최대한 실현하려는 동기에서 의사결정을 하고 행동을

하므로, 법제도의 운영은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정직하지 않다는 전제로부터 출발

해야 한다.4) 이른바 ‘죄수의 딜레마’(the prisoner’s dilemma)나 ‘공유지의 비극’(the

tragedy of commons) 문제를 다루어온 학자들의 전통적인 견해에 따르면, 인간은

본성상 공익이나 공동선을 위해 행동하기보다는 각자의 이익만을 추구하다가 공도

동망(共倒同亡)의 길로 빠지기 십상이다. 죄수의 딜레마 상황이 일반화된 사회적

딜레마(social dilemma)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방안은 사회적 신뢰의 토대를 굳건

하게 세우는 것인데, 과연 그 조건은 무엇일까? 이하에서는 집합행동의 논리를

실마리로 하여 이 문제에 관해 고찰하도록 하겠다.

  1. 집합행동의 논리와 협력

집합행동(collective action)의 상황을 잠정적으로 다음과 같이 풀이하자. 공동의

목표와 이익을 가진 두 명 이상의 개인들로 이루어진 집단에서 그 목표와 이익 달

성에 필요한 공통의 행위 A(집합행동)가 있다. 집단구성원 개인들이 그 행위 A를

하려면 일정한 부담(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각 개인들 모두가 행위 A를 하면 공동

으로나 각자에게 이득이 되지만, 다른 사람들은 A를 하되 특정 개인은 하지 않을

경우 무임승차한 이 개인은 A를 하는 비용을 치르지 않고도 다른 사람들의 행위를

통해 성취된 공동이득의 수혜를 누린다. 개인적 비용을 감수하고 A를 수행한 다른

사람들의 희생을 대가로 발생한 공동이득의 혜택을 무임승차행위자가 누릴 것이

명백할 때, 그 집단구성원 각자는 무임승차행위 대신 공통의 행위 A를 할 동기를

가질 가능성이 있는지, 또는 모두가 그럴 동기를 가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가 문제 되는 상황이 집합행동의 상황이다.5) 집합행동 상황에서 협력과 신뢰가

어떻게 등장하고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지를 해명하는 작업이 집합행동 이론의

핵심과제이다.

이 분야의 고전인 The Logic of Collective Action(1965)에서 맨슈어 올슨(M.

4) 물론 게임 이론의 관점에서도 이기적인 개인들로부터 신뢰가 형성되는 메커니즘을 설명 할 수 있고, 나아가서는 신뢰라는 덕목의 도덕적 가치를 정당화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최정규, 이타적 인간의 출현, 뿌리와 이파리, 2004; 마틴 노왁․로저 하이필드, 초협 력자, 사이언스 북스, 2012.

5) 러셀 하딘(황수익 역), 집합행동, 나남출판,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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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son)은, 인간이 자기이익 실현에 따라 움직이는 합리적 개인(interests-maximizing

individuals)이라고 가정할 때, 한 집단에 소속된 모든 구성원들이 공익을 위하여

당연히 공동행위(집합행동)를 하는 경향이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전통적인 견해는

틀렸다고 주장하였다.6) 올슨에 따르면, 이익추구적 개인이 집합행동에 참여하는

이유는 그럼으로써 자기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각 개인은

그 비용보다 편익이 클 때 집합행동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비용과 희생을 치르지

않고도 공동행위의 과실을 공짜로 누릴 수 있다면 사람들이 굳이 집합행동에 참여

할 유인은 없다.

올슨의 논지는, 외부에서 부과되는 물질적 유인(경제적 유인이나 제재)이 없다면

합리적 개인들은 공동에게 이익이 되는 행위를 하기보다는 무임승차를 통해 자기

이익을 확보하려는 경향이 지배적이라는 것이다.7) 이 ‘기여 부정 명제’(the ‘zero

contribution thesis’)8)는 그 이후 공공정책 분야에서 거의 공리처럼 수용되어, 개인

들은 집합행동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장기적인 이익을 도모하려면 외부에서

강제되는 규칙이나 경제적인 유인이 주어져야만 한다는 견해가 통설이 되었다.9)

그런데 전통적인 경제학이나 공공선택이론 등이 주장하는 것과는 다른 관점에서

죄수의 딜레마와 공유지의 비극을 다루어온 최근의 연구들은 사람들이 서로 협력

하려는 성향이 있다는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기여 부정 명제’는 일상

생활에서 무수히 관찰되는 협력 현상에 모순된다는 점에서 현실을 설명하지도

못하며 이론적으로도 틀렸다.10)

집합행동 상황에서 협력의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개인을 자기이익극대화를 지향하는 이기적 인간(homo economicus)의 틀로 설명하는

것이다. 종전의 경제학이나 공공선택이론의 전통에서는 이렇게 합리적 이기주의자의

틀로 인간을 바라보므로 인간은 거짓말, 도둑질, 사기와 같은 뻔뻔한 행동양식이나

교묘한 방식의 속임수도 포함하는 온갖 종류의 전략을 동원하여 자기이익을 추구

6) M. Olson, The Logic of Collective Action: Public Goals and the Theory of Groups, Cambridge/MA., 1965. 7) M. Olson, 위의 책, 1-2면: “Unless there is coercion or some other special device to make individuals act in their common interest, rational, self-interested individuals will not act to achieve their common or group interests.” 8) 이 용어는 E. Ostrom, “Collective Action and the Evolution of Social Norms”,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 Vol. 14 (2000), 137면. 9) 이러한 흐름에 대한 요약과 비판은 E. Ostrom, 위의 논문, 137-158면 참조.

10) 이러한 논쟁에 관해서는 E. Ostrom, 위의 논문, 137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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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존재로 설정된다.11) 또 하나의 방식은, 이익뿐만 아니라 공정성과 협력을 지

향하는 호혜적 인간(homo reciprocans)의 틀로 설명하는 것이다. 이 접근방식에서

설정되는 호혜적 인간은 호의에는 호의로 배신에는 응징으로 대응하는 인간으로서,

조건부이기는 하나 협력지향적이며 상호간의 합의나 사회규범에 따라 행동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12)

죄수의 딜레마를 비롯하여 이와 유사한 집합행동 상황을 다루는 전통적인 게임

이론적 논의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각 참여자가 자기이익 극대화를 지향하는 이기적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배신(남에게 이익을 주려는 비용을 전혀 지불하지 않는

것)보다는 협력(남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자신에게도 유리

할 것이라고 계산하고는 무임승차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13)

이때의 협력행위를 설명하는 이론적 도구는, 상호작용이 지속적으로 반복된다면

무임승차 행위를 한 자는 다음번의 보복이 두려워서 협력행위를 할 것이라는

‘반복— 호혜성’ 가설이다.14) 배신의 전략을 택해 이득을 본 개인이라도 차후 상

대방의 보복을 계산한다면 결국에는 협조를 하는 편이 자신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협력하게 된다. 이러한 ‘조건부 협력 또는 조건부 보복’ 전략(이른바 ‘Tit

for Tat’ 전략: 협력에는 협력, 배신에는 배신)을 각자가 다 선택하게 되면 상호

협력의 균형상태가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15)

이 ‘반복— 호혜성’ 가설은 합리적 이기주의자들 사이에서도 협력행위가 발생하는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이 가설에는 결정적인 한계가 있다. 두

명의 사람이나 소규모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집단에서 오랫동안 직접 대면하면서

상호작용을 하는 경우에 나타나는 협력행위는 잘 설명하지만, 상호작용이 반복되지

않는 경우에 생겨나는 협력행위와 서로에 대한 정보가 없는 낯선 사람들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는 협력행위는 제대로 해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16)

대표적인 한계 사례가 단 일회의 상호작용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협력을 하게

11) 가령 O. Williamson, Economic Institutions of Capitalism, New York, 1985 참조.

12) E. Fehr/S. Gächter, “Fairness and Retaliation: The Economics of Reciprocity”,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 Vol. 14 (2000), 159-181면 참조.

13) 러셀 하딘, 앞의 책(각주 5), 47면 이하 참조.

14) 그 조건은, 상호작용을 할 확률 값이 [(이타적 행위․협력행위를 하는 데 드는 비용)÷ 상대방이 그 협력행위로 얻게 될 이득]의 값보다 커야 한다는 것이다. 최정규, 앞의 책(각주 4), 113면 참조.

15) 이 전략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최정규, 위의 책, 84면 이하 참조.

16) 최정규, 위의 책, 1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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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합행동, 신뢰, 법 / 金度均 549

된다는 점을 밝힌 ‘공공재 게임’(public goods game) 또는 ‘신뢰 게임’(trust game)

이다. ‘공공재 게임’은 일단 참가자들에게 각각 만 원을 주고는 그 중 각 참가자가

원하는 액수를 공공계정에 기부하면 전액을 합산하여 두 배로 불린 후, 참가자 모두

에게 균등하게 배분하는 구조를 가지는 게임이다.17) 반복-호혜성 가설이 상정하는

이기적 개인이라면, 모두가 전액을 기부하는 것이 집단 전체에게는 최적의 결과임을

알면서도 다른 사람들은 기부를 하되 자신은 기부를 하지 않는 전략이 개인적으로는

최적의 결과를 낳는다고 계산하고 기부를 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그런 계산은 누

구나 다 할 것이므로 모두가 기부를 하지 않을 전략을 택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

무수히 실험된 공공재 게임 결과는, 반복되지 않는 일회의 공공재 게임에서도 참

가자들은 자신이 가진 돈의 40∼60%의 액수를 기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호

작용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므로 다음번에 보복을 당할 가능성이 없는데도 사람들은

협력을 한다는 현상은 인간행위의 동기에는 이기적 인간상을 넘어서는 요소가 있음을

잘 보여준다.18)

‘신뢰 게임’은 참가자들 절반인 제안자들에게 돈을 각각 일정액(가령 만 원)을 주고,

이들이 나머지 절반인 응답자들 각각에게 그 중 얼마를 줄 것인지 결정하도록 한

후, 각 응답자에게 제안자가 낸 금액의 세 배를 주고는 다시 응답자가 제안자에게

얼마나 되돌려 줄지를 결정하도록 하는 일회의 상호작용 게임이다. 가령 제안자

X1이 만 원 중 오천 원을 응답자에게 주면 그 돈은 세 배인 만 오천 원으로 불어나

응답자 Y1에게 전달된다. 응답자 Y1은 받은 만 오천 원 중 제안자에게 돌려 줄

금액을 정하는데, 응답자가 오천 원을 돌려주기로 했다면 제안자와 응답자는 각각

만 원의 돈을 얻게 된다. 신뢰 게임의 규칙대로 하면 많이 나눌수록 총 금액은 늘어나

각 개인이 받을 이익도 커진다. 제안자와 응답자 각각의 선택에 따라서 전부를 돌려

받을 수도 있고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 자기이익극대화 지향적 인간의

17) 이에 관한 훌륭한 설명은 E. Fehr/S. Gächter, 앞의 논문(각주 12), 163면 이하 참조.

18) 물론 공공재 게임의 메커니즘은 간단하지 않다. 기부하지 않는 참가자에 대한 정보의 제공, 그리고 배신자를 응징하는 규칙의 문제는 이 게임구조를 복잡하게 만든다. 기부 하지 않는 사람들을 응징하지 않을 경우에 공공재 게임을 반복하면 이전에는 기부 하던 사람들도 기부를 하지 않게 되면서 기부행위는 줄어든다. 이것이 말하는 바는, 보복을 받을 가능성이 없을 때도 협력을 하던 사람들이 무임승차행위자들이 응징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자기 자신들도 배신의 전략을 택하게 되고, 그러면서 협력지향적 성향이 그것에 불리한 환경 때문에 소멸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환경이나 제도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것으로 협조행위와 신뢰 형성에 법제도가 기여할 역할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관해서는 E. Fehr/S. Gächter, 앞의 논문(각주 12), 166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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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0 서울대학교 法學 제54권 제3호 (2013. 9.)

가설에 따르자면, 제안자들은 받은 만 원을 전부 가지는 편이 유리하며, 거꾸로

응답자들은 세 배로 늘어난 돈을 돌려주지 않고 전액 챙기는 편이 유리하다.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걸고 하는 신뢰 게임은 우선 사람들이 상대방에게 호의를 베풀면 호

의로 보답할 것인지를 믿는지, 그리고 호의를 베푼 상대방에게 역시 호의로 보답

하는지를 묻는 게임이다. 신뢰 게임의 결과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일정 정도

희생하면서라도 상대방을 신뢰한다는 점, 그리고 상대방이 나를 공정하게 대우했

다면 나도 그에 보답하기 위해 내 이익을 희생할 용의가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19)

또한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이나 ‘독재자 게임’(dictator game) 실험에서

확인된 결과 역시 사람들은 공평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제안을 거부하는 성향이 있

음을 보여준다. 사람들이 공평하지 않은 제안을 거부함으로써 잃게 될 몫이 상당

하더라도 공평하지 못한 제안에 대해서는 응징의 비용을 치루면서까지 과감히 거부

함으로써 공평하지 않은 상대방을 응징하려 하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20)

‘천 번도 넘게 실험되었으며 모든 대륙에서, 거의 모든 집단에서, 아마존의 원주민

부터 프랑크푸르트나 뉴욕 은행가들까지 대상으로 해서도 항상 똑같은 결과가 나

왔다’고 평가되는 위의 게임들에서 확인되는 결과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상대방에 대하여 이용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역시 호의로 대응하는 경향이, 그리고

공정성 규범을 행위 원리로 삼아 행동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의

인간을 ‘호혜적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제한적기는 하지만 이타적인 인간형

으로서 자신에게 이득이 되지 않더라도 상대방을 도울 동기가 있으며, 상대방이

공정성 규범으로부터 이탈하여 자기 이득만을 챙기면 비용이 들더라도 그러한 행동을

응징하는 성향을 갖는다.21)

이러한 합리적 이기주의 인간형은 자신의 행위로 돌아 올 비용편익만을 따지는

‘보수대응적 인간형’이라면, 호혜적 인간형은 공정성을 위반하는 타인의 행위에

민감한 ‘행위대응적 인간형’이다.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만 행동하지

않으며 상대방이 자신에게 호의적으로 나오거나 사회적 합의나 규범을 충실히 따른

다면 그에 대해 보답하고 그렇지 않으면 응징한다는 의미에서 행위대응적이다.22)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종전 경제학에서 상정하는 이기적 인간형

19) 최정규, 앞의 책(각주 4), 250면 이하 참조.

20) 이 게임에 관하여 이해하기 쉽게 서술된 설명으로는 KBS <사회적 자본>제작팀, 앞의 책(각주 1), 252면 이하 참조.

21) 최정규, 앞의 책(각주 4), 137면 이하 참조.

22) 최정규, 앞의 책(각주 4), 14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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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합행동, 신뢰, 법 / 金度均 551

외에도 실제로 호혜적 인간형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인간이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이해타산만을 계산하는 개인들이라고 보는 인간상으로는, 공정함을 고려하고 비용

이 들더라도 타인에게 이득이 되게 행동하는 호혜적 인간형의 존재를 충분히 적합

하게 설명해낼 수가 없다. 최후통첩 게임에서 공정하지 못한 제안자의 금액 제시를

응답자가 거부하는 태도, 신뢰 게임에서 상당한 몫을 기꺼이 공동 계정에 기부하

려는 태도, 자기 몫을 희생하면서라도 무임승차행위를 응징하려는 태도는 인간이

영리만을 추구하는 존재는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1. 협력의 조건: 호혜성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현실의 인간들을 이기적 인간형과 호혜적 인간형으로 나눌

수 있다면, 전자가 구사하는 이기적 전략(배신)이 우세할 경우 호혜적 인간형들은 도태

되면서 소수로 몰리고 이기적 인간형들이 다수가 될 것이다.23)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의 메커니즘을 사회에 적용한 문화적 선택(cultural selection)의 측면에서

보자면, 이기적 인간형이 호혜적 인간형보다 더 많은 이익(보수)을 얻게 되어 다른

사람들 역시 그 전략을 채택하게 되고 그 결과 이기적 인간형의 특성을 가진 사람

들이 다수가 될 것이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24) 그렇다면 협력지향적인

호혜적 인간형이 있다거나 협력이 가능하다거나 하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에 머무

르지 않고 호혜적 인간형이 더 많은 보수를 얻으면서 이기적 인간형의 사람들도

호혜적 행위방식을 따라하게 되어 전자의 인간형이 다수가 되는 방안을 제시할 수는

있는 것일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엘리노어 오스트롬(E. Ostrom)이나 하버드 대학교 교수 마틴

노왁(M. Nowak) 등은 이 문제에 관한 오랜 연구를 통해서 협력자(호혜적 인간)가

배신자(이기적 인간)보다 더 나은 성과를 거두는 협력의 메커니즘을 밝혀냈다.25)

그 메커니즘은 아래와 같다.

① 직접적 상호성과 조건부 협력: 직접 얼굴을 대면하고 지속적 상호작용을 하는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서라면 협력에는 협력, 배신에는 배신이라는 직접 호혜성

23) 마틴 노왁․로저 하이필드, 앞의 책(각주 4), 123면 이하 참조.

24) 상황에 따라서 어떤 경우에는 이기적 인간형이, 어떤 경우에는 호혜적 인간형이 승리 하게 된다는 경험적 연구결과에 관해서는 E. Fehr/S. Gächter, 앞의 논문(각주 12), 159-181면, 특히 160면 이하 참조.

25) 마틴 노왁․로저 하이필드, 위의 책, 124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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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2 서울대학교 法學 제54권 제3호 (2013. 9.)

(direct reciprocity: the principle of give-and-take)이 우월한 전략이며 이를 통해 협력

이 발생할 출구가 열린다. 이 단계에서 적용될 협력 증진의 조건은, 두 명의 개체들이

다시 마주치게 될 확률이 협력이 낳을 비용-편익 비율보다 높으면 협력이 증진된

다는 것이다.26)

② 간접적 상호성과 평판: 일정한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상호작용을

하되 특정한 개인들이 다시 만나게 될 가능성은 적은 상황에서는 협력자나 배신자

에 대한 정보, 즉 평판(reputation)이 큰 역할을 한다. 내가 직접 대면하여 상호작용

을 한 적이 없는 상대방에 대해서 협력할지 배신할지를 결정하려면 그의 과거 행

적(협력 또는 배신)에 대한 타인들의 정보, 즉 평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27) 간접적

상호성(indirect reciprocity)의 망이 점차 증대해가는 사회관계에서는 사람들이 즉각적

인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도 이 평판을 고려하여 협력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누가 누

구에게 어떻게 대했는지에 관한 충분한 정보교환이 이루어진다면 사람들은 자연히

상대방의 평판에 따라서 협력이나 배신을 선택하는 전략을 고르게 된다. 이 단계에

서 협력의 진화는, 상대방에 대한 평판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협력의 비용-편익

비율을 상회할 때 발생하게 된다.28) 평판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간접적 상호성 때

문에 다수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협력 메커니즘이 진화한다는 것이다.29) 이 간접적

상호성 때문에 인간의 사회적 지능이 향상되며, 다른 사람의 관점과 이해관계를 고

려하는 도덕적 능력도 진화하게 된다.30)

③ 개인선택과 집단선택의 상호작용: 자연선택의 대상이 개인인 경우가 개인선택

(individual selection)이라면, 집단선택(group selection)은 그 대상이 개인이 아니라

집단인 경우이다. 어떤 유전적(또는 문화적) 특성이 개인의 생존 및 번영 가능성에

영향을 미친다면, 어떤 집단의 특성이 그 집단의 생존 및 번영 가능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문제는 집단 내부에서 진행되는 개인선택 과정과 집단

26) 마틴 노왁․로저 하이필드, 앞의 책(각주 4), 424면 참조.

27) “내가 당신의 등을 긁어주면 다른 누군가가 나의 등을 긁어주겠지.”라는 의식이 그 예이다. 마틴 노왁․로저 하이필드, 위의 책, 423면 참조.

28) 마틴 노왁․로저 하이필드, 위의 책, 115면.

29) 노왁은 직접적 상호성의 관계에서 ‘상대방의 얼굴’이 중요하다면, 간접적 상호성의 관계 에서는 ‘상대방의 이름’이 중요해진다는 점을 지적한다. 마틴 노왁․로저 하이필드, 위의 책, 122면.

30) 마틴 노왁․로저 하이필드, 위의 책, 10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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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합행동, 신뢰, 법 / 金度均 553

간에 진행되는 집단선택 과정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일어나는 경우이다. 집단 내

에서는 배신전략을 택하는 개인들이 승자가 되겠지만(개인 선택)31), 집단 자체의

차원에서는 협력전략을 택하는 개인들이 많은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생존하

기 쉽고 더 번영한다. 개인선택 과정에서는 협력지향적 개인들이 추려져서 도태되

겠지만, 집단선택 과정에서는 협력지향적 개인들이 적은 집단이 추려져서 도태된

다.32) 사기꾼이나 무임승차행위자들이 협력자들을 이용하여 자기 이익만을 취할

수 있기 때문에 협력이 항상 협력적인 개체들을 이롭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협력하는 개인들의 집단이 이기적인 개인들의 집단에 비해서 생존과 번영의 측면

에서 더 유리하다는 것은 역사를 통해서 입증된 사실이다. 집단 선택이 협력의 진

화를 낳게 하려면 충족되어야 하는 조건은, 편익—비용 비율이 {1+(한 집단의 크기

/전체 집단 크기)}보다 크면 된다는 것이다. 이 조건의 함의는 많은 소규모 집단들

이 존재하면 집단 선택이 잘 작동하고, 일부 육중한 거대 집단들이 존재하면 집단

선택은 잘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이다.33)

그런데 집단선택 과정의 속도가 과연 개인선택 과정의 속도를 압도할 수 있을

까? ‘선택과정의 속도’란 환경에 적합하지 않은 속성을 가진 개체(또는 집단)들이

얼마나 빨리 사라지는가, 그리고 환경에 적합한 속성을 가진 개체(또는 집단)들이

얼마나 빨리 증가하는가를 지칭하는 개념이다.34) 개인선택 과정에 주목해서 보자

면, X라는 속성(또는 행동전략)을 가진 개인들이 그렇지 않은 개인들보다 평균적으

로 더 잘 산다면(또는 얻는 평균적인 보수가 더 높다면), 전자의 수가 점차로 집단

내에서 늘어나게 된다. 그리고 양자 사이에 잘사는 정도(평균보수의 차)가 크면 클

수록 이 개인선택 과정은 가속화될 것이다. 상호작용에서 택한 행동전략의 측면에

서 보자면, 어떤 전략이 한 집단 내에서 퍼져나가게 될지 사라져버리게 될지는 각

전략으로부터 얻은 보수의 차이에 의해, 그리고 얼마나 빨리 퍼져나가게 될지는

그 전략으로부터 얻는 보수가 다른 전략으로부터 얻을 보수보다 상대적으로 얼마

나 더 클지에 의해 결정된다.35)

어떤 특성이나 행동전략이 한 사회에서 다른 사람에게 전파되는 과정을 ‘전

수’(transmission)라고 표현하자. 이는 다시 유전적 전수와 문화적 전수로 구분된

31) 마틴 노왁․로저 하이필드, 앞의 책(각주 4), 153면.

32) 최정규, 앞의 책(각주 4), 184면.

33) 마틴 노왁․로저 하이필드, 위의 책, 153면.

34) 최정규, 위의 책, 186면.

35) 최정규, 위의 책, 18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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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4 서울대학교 法學 제54권 제3호 (2013. 9.)

다.36) 전자는, 어떤 환경에서 X라는 유전적 특성을 갖는 개체가 그렇지 않은 개체

보다 더 적합하다면 전자가 살아남아 번식에 성공할 것임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다음

세대에도 X 유전적 특성에 유리한 환경이라면, X를 가진 개체들이 점점 더 늘어나

게 될 것이다.

문화적 전수란, 사람들이 성공한 사람들의 전략을 학습하고 답습하는 것을 말한

다. 어떤 환경 하에서 X라는 문화적 특성(전략)을 갖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에 비

해 더 많은 보수(성공)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사람들은 X 전략을 배우

려할 것이므로 이 전략은 무수히 모방될 것이다. 그 전략을 배운 사람들이 높은 성

공도를 보이게 되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신속하게 이 성공 전략을 학습하게 되

면서 그 전략의 전파속도는 매우 빨라진다.37) 상대적으로 높은 보수를 얻은 사람들

의 전략은 지식 또는 전략의 문화적 전수 과정을 통해 사회에 퍼져나갈 가능성이 매

우 높아진다. 그리고 전략 간에 얻게 되는 보수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성공 전략이

전파되는 속도는 가속화된다.38)

문화전수의 논리는 집단선택의 과정에 곧바로 적용할 수 있다. X라는 속성(또는

행위전략)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들보다 더 잘 살수록, 그

리고 그 잘사는 정도의 격차가 크면 클수록 집단선택의 과정은 매우 빨리 진행될

것이다. 이러한 집단선택 과정의 속도 법칙은 다른 생물집단보다는 인간 사회에

더 타당하다. 인간만이 갖는 제도 때문이다.39) 개인선택 과정의 속도를 늦추고 집

단선택 과정의 효과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므로 제도는 협력적 행동의 진화에 중

요한 영향을 미친다.40) 개인선택 과정의 측면에서 보자면, 협력지향적 사람들과 이

기적인 사람들의 평균 보수를 비교할 경우 후자가 크기 마련이어서 협력지향적 성

향은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집단 내에서 협력지향적 행위에 가해지는 가

혹한 선택의 압력이 제도를 통해서 완충된다면 협력지향적인 개인들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그리고 협력지향적 제도를 통해 협력지향적 개인들이 다수

가 된 집단은 집단 간의 경쟁에서 매우 유리하므로 흥성하게 된다.41)

이 메커니즘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임의의 사람들과 사회적 상호작용

36) 최정규, 앞의 책(각주 4), 183면.

37) 최정규, 위의 책, 183면.

38) 최정규, 위의 책, 186면.

39) 최정규, 위의 책, 187면.

40) 최정규, 위의 책, 193면.

41) 그러한 예로 식량공유 관습을 들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최정규, 위의 책, 195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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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합행동, 신뢰, 법 / 金度均 555

을 하면서 그 경험에 기초하여 배우고 다음번에 어떻게 행동할지를 정한다. 이러한

전략판단 과정에서 나보다 우월한 전략으로 성공한 사람을 선택하여 모델로 삼아

배우고 그 전략을 채택하게 된다. 그런데 한 사회에서 X 전략을 채택하는 사람들

이 과반이면, 가령 55% 이상이면 X를 채택한 사람들을 모델로 삼을 확률은 55%를

훨씬 상회하게 된다. ‘순응적 문화전수’(conformist cultural transmission) 현상 때문이

다.42) 예를 들어 A 집단에는 협력지향적 사람들이 55%, B 집단에는 45%라고 하자.

양 집단 사이의 협력지향적 인간형의 비율 차는 10%일 뿐이므로, 단순하게 계산

하면 어떤 개인이 협력지향적 인간들을 역할모델로 삼을 확률은 각각 55%와 45%

일 것이다. 그러나 순응적 문화전수 현상은, A 집단의 경우 개인들이 협력지향적

인 사람들을 역할모델로 삼아 배울 확률은 55%를 훨씬 넘게 되고 전략전수과정을

통해 협력지향적 전략이 확산되는 속도는 매우 빨라짐을 보여준다. 사람들이 너도

나도 그 전략을 학습하고 모방하는 것이 급속도로 대세가 되기 때문이다. A 집단

에서는 이기적인 사람들의 전략이 모방되는 속도는 현격히 떨어진다. 마찬가지의

논리로, B 집단의 경우에는 그 반대의 경향이 나타나서 협력지향적 인간형이 매우

빠른 속도로 소멸되어 갈 것이다. 처음에는 양 집단의 차이가 10%였지만, 순응적

문화전수 과정을 통해서 협력지향적 사람들과 이기적 사람들의 비율 차는 놀라울

정도로 커지게 되어 A 집단은 협력지향적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대다수를 차지하

면서 번영하는 반면, B 집단은 이기적 전략을 택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게

되면서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집단선택의 효과가 순응적 문화전수과정

을 통해 증폭되면서 개인 선택의 속도를 압도하게 되는 것이다.43)

④ 상호작용과 전략습득과정의 국지화(localization) 효과: 그런데 직접적이든 간

접적이든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순진할 정도로 무조건적인 협력자들과 구제

불능의 냉혹한 배신자들이 상호작용(죄수의 딜레마 상황)을 하는 경우에 과연 협

력지향적 개체들이 살아남을 비율은 어느 정도일까? 두 유형의 개체들이 균질하게

퍼져 있지 않고, 유사한 성향을 가진 개체들이 무리지어 있는 지리적(공간적) 조건

(유유상종, assortive interaction)44)이라면 양 집단의 끊임없는 각축 속에서 협력자가

42) 최정규, 앞의 책(각주 4), 201면.

43) 최정규, 위의 책, 202면 이하 참조. 이와 같은 논리를 국가의 번영과 흥망성쇠에 적용하여 치밀하게 분석한 문헌으로는 맨슈어 올슨(최 광 역), 국가의 흥망성쇠, 한국경제신문사, 1990. 그리고 이 틀을 활용하여 한국 사회의 현실을 분석한 뛰어난 문헌으로는 박창기, 혁신하라 한국경제, 창비, 201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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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6 서울대학교 法學 제54권 제3호 (2013. 9.)

살아남는 평균 비율은 31.78%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45) 그 생존비율의 타당성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그럴 가능성이 있는 것은 앞에서 서술한 ② 단계에서 적용된

협력 진화의 조건 때문이다. 그 조건에 따르면, 상대방에 대한 정보 및 평판이 개체

들의 행동을 결정하므로 협력지향적 개체들은 평판이 좋은 협력지향적 개체들과

협력한다. 죄수의 딜레마에 국지화된 공간적 요소를 투입하게 되면, 협력자형 개체

들은 배신자형 개체들에 포위된다고 하더라도 무리를 짓고 있는 한 살아남게 되

고, 이들 사이에서는 협력 전략이 우월한 성과를 거두면서 협력자형의 행동을 수

용하는 개체들이 늘어난다.46) 상호작용과 전략습득과정이 국지화되면, 부분적으로

양의 유유상종(positive assortive interaction) 또는 뭉침(clustering) 효과가 일어나면

서 우연히 끼리끼리 모여 살던 협력지향적 사람들은 살아남지만, 이기적인 사람들

주위에 있던 협력지향적 사람들은 도태되거나 이기적 인간들의 전략을 배워 이기적

인 인간이 된다.47) 살아남은 이타적인 사람들은 비슷한 성향을 가진 협력지향적인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상당히 높은 보수를 받는 반면, 이기적인 사람들은 자신

의 주위에 있던 협력지향적인 사람들도 이기적 전략을 수용했기 때문에 더 이상 무

임승차를 할 수 없게 되어 보수의 크기가 0으로 수렴된다. 그렇게 되면 협력지향

적인 사람들의 주위에 살던 이기적 사람들은 협력지향적 전략을 수용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48) 순응적 문화전수과정의 효과가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각 개인의 이웃이 누구인가에 따라 상호작용의 속성과 전략습득과정이 정해진다

고 할 때, 그 ‘이웃’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일 수도 있지만 사회적으로(문화

적, 사상적, 종교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일 수도 있다. 여기서 의미있는 점은 우리는

‘사회적 이웃’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그 문화적 특성과 행동전략을 습득하게 된다는

것이다.49) 내가 협력지향적 인간과 이기적 인간의 정체성 중 어느 것을 가지게 될

지를 정하는 데 ‘사회적 이웃’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물론 협력의 편익—

비용 비율이 개체당 평균 이웃의 수보다 커야 한다는 단서조건이 붙기는 하지만,

이러한 연구결과는 집단의 구조가 협력의 진화가 진행되는 궤적을 바꿀 수 있음을

보여 준다.50) 유사한 속성을 가진 집단에 소속된다는 것(set membership)이 협력 진

44) 이 표현은 최정규, 앞의 책(각주 4), 147면.

45) M. Nowak/R. May, “Evolutionary games and spatial chaos”, Nature 359 (1992), 826-29면.

46) 마틴 노왁․로저 하이필드, 앞의 책(각주 4), 139면 이하 참조.

47) 이에 관한 상세한 설명은 마틴 노왁․로저 하이필드, 위의 책, 416면.

48) 자세한 설명은 최정규, 위의 책, 204-214면 참조.

49) 최정규, 위의 책, 2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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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합행동, 신뢰, 법 / 金度均 557

화의 증진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51)은 “중요한 것은 네가 무엇을 아느냐가 아니라

누구를 아느냐이다.”라는 일반적 지혜와도 맥을 같이 한다. 우리가 어떤 집합들의

구성원이 되느냐, 그리고 어떤 사회적 네트워크를 맺고 있느냐가 협력의 진화에 중

요한 요인이라는 점은 함축하는 바가 크다. 신뢰가 협력의 증진에 기여하는 역할을

해명하는 데 사회적 정체성과 유대감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위에서 이기적 인간들과 협력지향적 인간들이 상호작용을 할 때도 협력지향적

전략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며, 일정한 조건이 갖추어지면 협력이 진화하여 안정

된 상태로 나아가게 된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협력지향적 개인들이 많은

집단들이 그렇지 않은 집단들보다 번영한다는 집단선택 과정도 살펴보았다. 이제

이러한 점들이 신뢰의 형성에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를 아래에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1. 신뢰 개념의 구조와 요소

전반적으로 협력이 정착되며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사회를 위해서는 신뢰가 필수적

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공공재 게임에서 살펴보았듯이, 공공재 축적에

기여하려는 마음가짐과 태도는 공공재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신뢰하는

가에 달려 있다.52) 그렇다면 신뢰는 어떻게 형성되며, 그 원천은 무엇일까? 신뢰를

깊이 연구한 학자들의 견해를 모아 보면, 그 비결은 ‘안정된 장래 예측’에 있다.

장래에도 더 많은 상호 협력이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이 보이면 이기적인 사람들

조차도 기꺼이 협력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무임승차행위자에 대한 응징이 얼마나

제도화되어 있는지도 안정성 판단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바로 여기에 신뢰의 요체가

있다. 법이 신뢰 형성에 기여할 수 있는 경로도 거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53)

법과 신뢰의 관계에는 두 가지 인과 문제가 있다. 하나는 법의 작동과 시행의

결과로 사람들이 사적 신뢰와 공적 신뢰가 형성되는 것(법의 작동이 신뢰 창출의

원인이 되는 경우)이다. 다른 하나는, 시민들의 태도가 법에 대한 신뢰창출의 원인이

되는 경우, 즉 법에 대한 신뢰 형성의 원인이 되는 경우이다. 이 문제들을 다루기

50) 마틴 노왁․로저 하이필드, 앞의 책(각주 4), 425면 참조.

51) 이에 대한 설명으로는 마틴 노왁․로저 하이필드, 위의 책, 397면 이하 참조.

52) D. Kahan, “Trust, Collective Action, and Law”, Boston University Law Review 81 (2001), 335면 이하 참조.

53) E. Fehr/S. Gächter, 앞의 논문(각주 12), 160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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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8 서울대학교 法學 제54권 제3호 (2013. 9.)

위해 우선 개인과 개인 사이의 신뢰 관계가 갖는 속성을 해명하고, 그 속성을 제도에

대한 신뢰의 차원으로 확장하여 법에 대한 신뢰의 특성을 밝히는 순서로 나아가는

편이 좋겠다.

(1) 신뢰 개념의 분석

신뢰는, 상대방의 장래 행동에 관한 정보 및 지식을 활용하여 상대방의 행동을

믿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타인과 상호작용을 할 때 우리는 반드시 상대방의 행동에

대해 예측을 한다. 모든 사회적 상호작용은 예측에 따른 행동의 끝없는 과정이며,

그 예측에는 인식적 요소, 정서적 요소, 도덕적 요소가 담겨 있다.54) 인간의 행위는

언제나 미래를 지향하는 것이고, 추구한 목적의 성취 여부는 항상 시간상 나중에

판가름된다. 미래의 결과가 자신의 예상과 기획대로 발생할지 여부에 관해 인간이

나름대로 짐작은 하지만, 충분한 지식(정보)을 완벽하게 확보할 수 없으므로 그 결과

발생에 대해 확신할 수는 없다. 예측과 결과정보 사이의 인식적 간극(epistemological

gap)은 인간행위의 숙명이다. 바로 여기에 신뢰의 속성이 있다. 신뢰는 타인의 행동에

대한 것이란 점55), 그리고 인간행동의 본질적 속성이 예측과 결과에 대한 지식 사이의

인식론적 간극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타인의 행동이 자신의 예측대로 수행될

수도 없고 완전한 통제도 안 된다는 상황에서도 타인의 장래 행동을 믿기로 하는

결정이 신뢰관계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신뢰는 타인의 행동에 관한 정보

불확실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타인에 대한 믿음이다.56)

타인의 행동이 자신이 예측한대로 수행되지 않을 수도 있는 불확실성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인간의 조건이라면, 신뢰 역시 불확실성과 위험감수(risk taking)를

그 속성으로 한다. 불확실성과 위험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장래행동에 베팅을 한다는

점이 신뢰의 핵심(“Trust is a bet about the future contingent actions of others.”)57)

이라는 것이다.

54) B. Barber, The Logic and Limits of Trust, New Jersey, 1983, 9면: “All social interaction is an endless process of action upon expectation, which are part cognitive, part emotional, and part moral.”

55) 자연현상에 대한 신뢰(“내일 해가 동쪽에서 뜰 것임을 나는 신뢰한다.”)는 무의미하거나 수사적 표현에 불과할 것이다.

56) D. Gambetta, “Can we trust trust?”, in: D. Gambeta (ed.), Trust: Making and Breaking Cooperative Relations, Oxford, 1988, 218면: “Trust is particularly relevant in conditions of ignorance or uncertainty with respect to unknown or unknowable actions of others.”

57) P. Sztompka, Trust: A Sociological Theory, Cambridge, 1999,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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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합행동, 신뢰, 법 / 金度均 559

이렇게 살펴본 신뢰의 일반 개념에서 두 가지 요소를 추출해 낼 수 있다. ‘앎/

믿음’의 요소와 ‘강한 지향성과 다짐’(commitment)의 요소이다. 앎/믿음 요소는, 타

인의 행동이 장래에 수행될 것으로 예상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에 있다. 이

인식적 요소에 더해서 신뢰는, 결과의 불확실성과 통제 불가능성을 감수하면서도

타인의 행동과 관련해서 결정을 내림으로써 타인에 대해 자기의 정서를 투여하는

‘강한 지향성과 다짐’을 보인다는 요소도 담고 있다. 우리는 어떤 정치인이 슬기롭

게 통치할 것이라 믿고는 지지 결정을 하고 투표한다. 그 정치인의 과거 행적에

비추어서 그의 장래 행동을 예측한 후, 현명한 통치를 할 것이라고 믿고 지지하기로

결단을 하고 우리의 정서를 투여해서 그에게 투표하는 베팅을 감행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법원이 공정하게 재판할 것이라고 믿고 소송하기로 결정한다. 이처럼

신뢰 행위에는 타인의 장래행동에 대한 믿음에 기초해서 결정하고 특정한 행위를

하는 과정, 즉 믿음에 바탕을 둔 베팅(강한 정서적 지향성의 표시) 과정이 항상 포함

되어 있다.

“상대방의 말 때문에 우리는 그를 신뢰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의 성향과 선택,

그 결과, 그의 능력 등에 대한 정보에 입각해서 상대방이 우리가 원하는 선택을 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기대하기 때문에 그를 신뢰하는 것이다.”58)

이 두 가지 요소, 즉 인식적 요소와 정서적 요소 외에도 신뢰에는 또한 도덕적

요소도 담겨 있다. 신뢰한다는 것에는, 신뢰행위가 도덕적으로 바람직하다는 평가

가 수반된다는 것이다. 또한 신뢰받는 자는 자신을 신뢰하는 사람에 대한 모종의

부채감(의무감)을 갖게 되고, 그 신뢰를 저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도덕적 부담을 지게

된다. 신뢰는 깨질 수 있는 관계이기는 하지만, 신뢰행위 자체가 신뢰자와 피신뢰자

모두를 함께 묶어주는 도덕적 역할(구속 기능)을 한다. 누군가가 나를 신뢰하면,

나는 그 사람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고 그 신뢰를 존중해야 한다는 의식을 갖게 되고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할 의무를 은연중 지게 된다. 신뢰를 부여한 사람은 신뢰상대

방을 향하여 무언가를 기대하고 심지어 요구할 (도덕적) 권리를 갖게 된다. 이것이

신뢰라는 사회적 실천에 내재해 있는 도덕적 요소이다.59)

58) P. Dasgupta, “Trust as a Commodity”, in: D. Gambeta (ed.), 앞의 책(각주 56), 50-51면 참조.

59) O. Lagerspetz, Trust: The Tacit Demand, Dordrecht, 1999, 80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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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0 서울대학교 法學 제54권 제3호 (2013. 9.)

따라서 신뢰는 세 개의 성분으로 구성된 관계(three-part relation) 개념이다. ‘Z와

관련해서 A는 B를 신뢰한다’ 또는 ‘A는 B가 Z할 것을 신뢰한다’는 진술에서 분명

하게 드러나듯이, ① 신뢰를 부여하는 자(truster), ② 신뢰를 받는 자(trustee), ③ 신뢰의

목적/대상/영역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신뢰의 공통요소이다. A는 B가 내일 돌려 줄

것임을 신뢰하고 책을 빌려줄 수는 있지만, B가 빌린 5천만 원을 잡음 없이 갚을

것이라고 신뢰하지 않을 수는 있다. 이 두 경우 신뢰자와 피신뢰자는 동일하지만

그 신뢰의 영역(대상 범위)은 다르다.

(2) 신뢰소(信賴素)의 분석

신뢰를 파악하는 두 가지 접근 방식이 있다. 하나는 신뢰를 도덕적 속성이 탈각

된 개념(unmoralized notion)으로 보고 이해타산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신뢰를 사회적 관점에서 보아 이해타산의 요소 외에 도덕의 요소도 첨가하

려는 방식이다. 여기서 신뢰관계에 담긴 이해타산의 요소와 도덕적 요소를 ‘신뢰소’

(信賴素)라고 부르기로 하자.

첫 번째 방식에 의하면, 내가 타인을 신뢰하는 까닭은 그의 장래행동이 나에게

이득을 가져다 줄 것이고 그도 자신의 이득 때문에 내 이득을 위해 행동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타인이 내 이득을 위해서 행동하면 그 자신에게도 이득이 된다는

판단을 할 때, 물론 이 ‘자기 이득’은 다양한 내용을 가질 수 있다. 그 이득은 나와의

관계를 지속하는 것일 수도 있고, 자신의 삶과 관련해서 내가 가진 영향력을 확보

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이해타산의 관점(calculative conception of trust)에서 신뢰관계를 해명하는 대표적인

학자는 러셀 하딘(R. Hardin)이다. 하딘의 핵심 주장은 신뢰는 “포장된 이해타산의

표현”(“trust as an expression of encapsulated interest”)이라는 것이다. 하딘의 견해를

원문으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To say that I trust you with respect to some matter means that I have reason

to expect you to act in my interest with respect to that matter because you have

good reasons to do so, reasons that are grounded in my interest. In other words,

to say that I trust you means I have reason to expect you to act, for your own reasons,

as my agent with respect to the relevant matter. Your interest encapsulates my

interest.”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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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합행동, 신뢰, 법 / 金度均 561

신뢰가 타인의 행동에 대한 단순한 예측 이상인 것은, 내게 이득이 되는 행위를 할

나름의 이해타산적인 판단에서 그가 장래에 그렇게 행동할 것이라고 내가 예측한

다는 점에 있다. ‘포장된 이해타산’으로서 신뢰를 바라보는 관점은 신뢰의 동기를

자기이익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합리적 선택이론의 공리를 신뢰관계에 확장·적용한

것이다. 합리적 선택이론의 관점에서 볼 때 신뢰행위는 역설적 행위이다. 그 까닭은

다음과 같다. 신뢰는 협동의 효용은 높이면서 정보비용(타인의 행동을 일일이 예측

하고 타인의 행동 여부와 관련해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 등에 대한 정보

비용)을 감축시키므로 합리적이다. 그런데 신뢰를 부여하는 자는 불확실한 타인

행동에 자신의 이익을 내맡기는 취약성을 증대하는 쪽으로 결정한 것이므로 비합

리적인 선택을 한 셈이다. 협동의 효용 증대와 정보비용의 감축이라는 점에서 보

자면 합리적이지만, 불확실한 타인행동에 자기이익이 좌지우지되도록 만들어 위험

비용을 증대시키는 것은 분명 비합리적이다.61)

합리적인 행동으로 보였던 것이 비합리적인 행동으로 되어버리는 이 역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하딘은 ‘타인의 행위동기에 대한 지식(정보)’이라는 인식적 요소를

첨가한다. 내가 상대방에 대해서, 상대방의 행위동기에 대하여 필요한 관련사실을

알고 있거나 또는 안다고 생각할 때, 신뢰의 비합리적 측면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62) 이러한 점에서 하딘의 신뢰 개념에는 도덕적 내용이나 색채가 없다. 신뢰

상대방의 동기에 관한 정보에 입각하여 신뢰행위의 이득여부를 정하는 이해판단의

결과 타인을 신뢰하게 된다는 견해에는 신뢰의 도덕적 요소는 없어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국가와 정부를 신뢰하는 문제와 관련해서 하딘은 “왜 국가를 신뢰해야 하는가?”

또는 “국가에 대한 신뢰가 도대체 왜 중요한가?”라고 반문한다. 신뢰관계에서 인

식적 요소(타인의 행위동기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중요한데, 내 이익을 위해서 행동

하는 것이 공직담당자들 자신의 이득이 될 것이라고 믿을 만한 지식과 정보가 내

게는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복잡화된 통치기구들의 기능분화, 공직담당자들의 보직

변경 등으로 인해 시민들이 그들을 신뢰할 인식적 요소(정보와 지식)가 불충분

하기 때문에 국가를 신뢰할 수도 없고, 신뢰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 하딘의 결론이다.

60) R. Hardin, “Do we trust in government?”, in: M. Warren (ed.), Democracy and Trust, Cambridge, 1999, 26면(밑줄은 첨가된 것임).

61) R. Hardin, 앞의 논문(각주 60), 24면 이하 참조.

62) R. Hardin, 위의 논문, 25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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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2 서울대학교 法學 제54권 제3호 (2013. 9.)

오히려 자유주의의 핵심은 국가와 정부를 불신하는 데 있지 않는가 물으면서 정부

에 대한 신뢰의 저하가, 통속적인 우려와는 달리, 전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하

딘은 주장한다.63)

이러한 신뢰관에 따르면, 자원이 심각할 정도로 불평등하게 배분이 되어 있는

사회적 상황에서도 신뢰가 유지될 수 있다. 신뢰와 사회적 협동의 발생과 유지를

합리적 이기심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신뢰와 사회적 협동의 규범을 내가 따름으로써

얻은 순이익이 그렇지 않을 경우의 순비용보다 크다면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개인

이라면 그 규범들을 준수할 것이라고 예상되기 때문이다.64)

하딘 식의 견해는 매우 분명하고 일관된 견해로서, 신뢰관계의 중요한 한 측면,

즉 타인의 장래행동에 대한 예측과 계산이라는 측면을 설명해낸다는 점에서 설득

력이 있다. 그러나 이해타산의 예측가능성 관점에서 신뢰를 파악하는 하딘의 견해

(trust as predictability)에 대해 필자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개인에 대한 신뢰(사적 신뢰)와 제도에 대한 신뢰(신뢰)가 동일하지 않다는

견해에는 동의하지만, 하딘의 원자론적 논변에는 동의할 수 없다. 사회관계 이전에,

사회관계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선호들(이해관계)을 가진 개인들이 필요와 계산에

의해 비로소 사회를 결성한다는 원자론적 가정(개인과 사회에 대한 원자론적 가정)

에서 출발해야만 제도에 대한 신뢰란 불필요하거나 무의미하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발견적 수단이거나 논증과 정당화의 한 방편일 뿐인 방법론적 개인주의

(methodological individualism)를 존재론적 개인주의(ontological individualism: 마치

개인들이 실제로 각각 원자처럼 고립되게 존재하고, 고립된 개인들의 상호작용 결과

비로소 사회가 발생/형성된다는 식으로 바라보는 견해)로 치환하는 우를 하딘이

범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65) 사회학적 측면에서 불충분한 개인관과 사회

관을 상정하기 때문에 빚어진 오류일 것이다.66)

63) R. Hardin, 앞의 논문(각주 60), 29면 이하 참조.

64) 이 견해를 요약하면서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J. Knight, “Social Norms and the Rule of Law”, K. Cook (ed.), Trust in Society, New York, 2001, 364면 이하 참조.

65) 합리적 선택이론의 인간관과 사회관에 대한 적절한 설명과 비판으로는 F. Fukuyama, Trust: the social virtues and the creation of prosperity, New York, 1995, 13면 이하, 155면 이하 참조.

66) 하딘 견해의 근저에 놓여 있을 인간관과 사회관은 홉스 식의 견해이다. 여기서 개인은 사회적 맥락(사회적 환경) 속에 위치되기 이전에 이미 본질적으로 모든 것을 갖춘 존재로 기술된다. 즉 합리성과 선호들을 완벽하게 갖춘 존재로 상정된다. 그리고 사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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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합행동, 신뢰, 법 / 金度均 563

둘째, 이해관계의 계산만을 신뢰의 핵심으로 보는 이해타산적 신뢰관은 이익

최대화의 측면에서만 타인의 행위동기를 바라본다. 그런데 이는 협소한 인간론과

인간행위 동기론에 기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앞에서 서술한 호혜적

인간의 현상을 진지하게 고려한다면 풍부한 인간론과 인간행위동기론에서 출발

하는 신뢰관을 설정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앞 절에서 집합행동과 죄수의 딜레마

상황을 다루면서 인간을 합리적 이기주의자(rational egoist) 외에도 호혜적 존재로도

볼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 바 있다.

집합행동 상황에 참여하는 인간형들을 탐구해 온 엘리노어 오스트롬에 따르면,

호혜적 존재로서의 인간 유형은 자신의 행동이나 타인의 행동을 공정성과 같은

규범에 비추어 평가한 후 보답하거나 응징하는 기질을 갖는다. 이를 오스트롬은 규범

활용적 개인(norm-using players)으로 파악한다. 진화심리학의 경험적 연구 성과에

따르면, 문법 규칙을 습득하는 성향처럼 인간은 사회규범을 학습하는 성향 역시

물려받아 왔다. 이를 바탕으로 오스트롬은 규범적 추론이라는 독특한 능력이 인간

에게 매우 발달해 있음을 강조한다. 금지된 것, 해야만 하는 것, 허용된 것에 관한

추론인 규범적 추론은 사실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참/거짓 추론과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된다. 규범적 추론을 수행하면서 인간은 위반을 하거나 속임수를 쓰는 자들에

대하여 민감하게 반응하고 자신과 타인의 행위를 평가할 때 공정성 원리를 적용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오스트롬의 규범활용적 인간형은 앞에서 설명한 공공재

게임이나 신뢰 게임 등의 경험적 연구성과들을 수용하여 인간의 본성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67)

오스트롬에 따르면, 합리적 이기주의자를 주된 인간상으로 삼는 이론들은 규범

활용적 인간형 존재를 설명하기에 불충분하다.68) 합리적 이기주의자와는 다른

성향인 규범활용적 인간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조건부 협력자

그렇게 이미 완벽하게 자족적인 이해관계와 합리성과 선호들을 완비한 개인들 사이의 합리적 계약(상호작용)의 산물이다. 홉스는 분석과 논증의 편의를 위해서라는 점을 밝히 면서도, 인간 존재를 “그 어떤 서로간의 관계맺음 없이, 마치 대지로부터 금방 솟아나온 듯이, 그러니까 버섯처럼, 완전히 모든 것을 갖춘 존재로 갑자기 출현하는 것처럼”(“as if but even now sprung out of the earth, and suddenly, like mushrooms, come to full maturity, without all kind of engagement to each other”)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T. Hobbes, De Cive. The Latin Version, ed. H. Warrender, Oxford, 1983, ch. 8, 160면 - O. Lagerspetz, 앞의 책(각주 59), 8면에서 재인용하였음).

67) E. Ostrom, 앞의 논문(각주 8), 143면 이하 참조.

68) E. Ostrom, 위의 논문, 1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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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4 서울대학교 法學 제54권 제3호 (2013. 9.)

유형(conditional cooperator)이며, 다른 하나는 무임승차행위자를 기꺼이 응징하는

유형(willing punisher)이다. 이 두 가지 유형의 인간형이 호혜적 인간형에 속하는

것이다.69) 응징적 인간형은, 무임승차행위의 응징에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하더라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그 비용을 치룰 용의가 있는 인간형이다. 조건부 협력자

유형은 협조적 성향이 강한 인간형인 반면, 응징적 인간형은 호의에는 호의로 보답

하지만 배신에는 응징으로 갚으려는 성향이 강한 존재다. 현실에서도 쉽게 관찰되는

규범활용적 인간의 두 유형이 함께 어우러져서 합리적 이기주의자와 대결을 벌이게

되고, 그 과정에서 후자의 인간형이 항상 승리하지는 못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신뢰의 문제에서 관건은 규범활용적 인간형과 합리적 이기주

의자가 집합행동 상황에서 상호작용을 할 때 전자의 인간형이 승리하여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구조를 어떻게 만들어내는가 하는 데 있다.70)

셋째, 이해타산적 신뢰관에서는 물질적 유인책(보상이나 처벌)을 통해 협조와

신뢰를 조장하려는 조치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 그러나 물질적 유인이 신뢰

형성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대략 세 가지 측면에서 그러하다.71) 우선 규범

활용적인 호혜적 존재로서 사람들은 물질적 유인책을 일종의 사회적 단서(social

cue)로 파악하여, 타인들이 자발적으로 협조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신호로 해석

한다. 그렇게 해석되면 호혜적 개인들은 협조 전략을 거둬들일 준비를 하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유치원에서 퇴근 무렵에 아이를 늦게 데리러 오는 부모에게

벌금을 부과하는 조치가 낳은 부작용이다. 처음에는 벌금이 무서워서 부모들이

아이들을 제때 데리러 오다가 점점 벌금이 유치원 교사들이 아이들을 늦게까지 보아

주는 것에 대한 금전적 대가라는 인식이 생겨나면서 너도나도 부모들이 아이들을

늦게 데려가게 되는 흐름이 생겨난 결과는 물질적 유인책의 부작용을 보여주는 예

이다.72)

69) E. Ostrom, 앞의 논문(각주 8), 142면 참조.

70) E. Ostrom, 위의 논문, 143면. 이와 관련해서 기부하지 않는 사람들을 응징하지 않고 공공재 게임을 반복할 때 나타나는 결과가 의미심장하다. 이전에는 기부하던 사람들 (협조적 인간형)도 기부를 하지 않게 되면서 기부행위가 감소하게 된다. 보복을 받을 가능성이 없을 때도 협력을 하던 사람들이 무임승차행위자들이 응징 당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비협조의 전략을 택하게 되고, 그 과정이 누적되면서 협력지향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71) 이 점에 대해서는 D. Kahan, 앞의 논문(각주 52), 338면 이하 참조.

72) 이에 관한 상세한 고찰로는 U. Gneezy/A. Rustichini, “A Fine is a Price”, Journal of Legal Studies 29 (2000), 1-17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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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합행동, 신뢰, 법 / 金度均 565

또한 물질적 유인책은 호혜적 협조행위의 진정한 동기를 가려서 모호하게 만듦

으로써 타인들의 자발적 협조행위를 오해하도록 만든다. 타인들이 자발적으로

협조를 하였는데도 그 동기가 물질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짐작하도록 사람

들을 이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물타기 효과’(masking effect) 때문에 물질적 유인책은

지속적인 협조행위를 확보해 주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물질적 유인책은 협조행위의

도덕적 동기를 밀어냄으로써(‘crowding out’) 호혜적 협조행위를 억제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들이 물질적 이득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명예나 정직성과 같은

도덕적 가치에 의해서도 움직인다고 평가받기를 원한다. 공익이나 공공선을 위해서

희생하거나,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기부하거나, 또는

신의를 중시하기 때문에 약속을 지키거나 하는 행위들은 이러한 심층적인 도덕적

욕구들이 발현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고귀한 행위들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보상

이나 처벌과 같은 물질적 유인책을 활용할 경우 그 고귀함의 의미가 탈각되기 때문에

이타적 행위들은 점점 줄어든다. 대표적인 예가 헌혈에 대한 금전적 보상 때문에

이타적인 동기에서 헌혈하던 사람들의 숫자가 감소하는 현상이다.73) 요약하자면,

다른 사람들이 협조할 것이라고 예측할 때 사람들은 물질적 유인 없이도 도덕적

동기에서 기꺼이 공익이나 공동선을 위해서 기여하려는 성향을 갖는다는 점을 이해

타산적 신뢰관은 제대로 해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넷째, 이해타산적 신뢰관은 정체성(identity)에 대한 앎이 신뢰의 형성과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는다. 이러한 비판의 논거는 다음과

같다. 신뢰는 사회적 상호작용 속에서 생겨남과 동시에 사회적 상호작용의 유대를

튼튼하게 한다. 사회적 유대는 개인들이 느끼는 소속감과 일체감, 그리고 존중받는

다는 느낌에 의해 형성되고 강화된다. 이러한 느낌은 개인의 사회적 정체성을 구성

하는 요소이기도 하다.74) 집단 소속감과 유대감을 통해서 개인적 정체성이 결정된

다면, 사람들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자기가치를 판단하기 위해서 집단 내의 구성원

이라는 점을 활용하기 마련이다. 사회관계 속에서 상대방을 신뢰할 것인가 말 것

73) 이에 관한 문헌들은 D. Kahan, 앞의 논문(각주 52), 339면 참조. 물론 본문에서 언급한 내용으로부터 경제적 보상이나 처벌과 같은 물질적 유인책이 신뢰의 형성과 유지에 오히려 나쁜 결과만 낳을 뿐이라는 점을 결론으로 이끌어내는 것은 맞지 않다. 개인적 이익에만 바탕을 두거나 처벌에 대한 공포만을 강조하여 협조행위와 신뢰를 조성하려는 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일 뿐이다.

74) T. Tyler/Y. Huo, Trust in the Law: Encouraging Public Cooperation with the Police and Courts, New York, 2002, 114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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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6 서울대학교 法學 제54권 제3호 (2013. 9.)

인가, 신뢰할 만한가 아닌가라는 신뢰 판단은 이익에 대한 관심사만큼이나 개인의

사회적 정체성에 대한 관심사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75)

신뢰가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생겨나는 사회적 속성을 갖는 것이라면, 신뢰의

기초는 이해타산과는 별도로 개인들이 각자 자기 자신에 대해 갖는 정체성 판단에도

놓여 있는 셈이다. 가령 뒤르켕의 사회학적 통찰력을 빌리자면, 모든 사회적 상호

작용 속에는 항상 이미 前-계약적인 요소(pre-contractual element)가 존재한다는 것

이다.76) 산다는 것 자체가 사람들 사이의 상호의존관계를 반드시 포함하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삶 자체의 기저(基底)를 이루는 이 의존관계는 이해타산에 입각한 합리적

정당화의 대상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합리적 개인들이 사회관계를 해석하고

정당화하는 기반이기도 하다. 이는, 상호의존성이 합리적 정당화의 언어행위 자체를

구성하는, 심지어는 합리성 자체를 구성하는 본질적 요소라는 속성에서 나오는 것

이다. 신뢰 역시 삶의 기저가 되는 사회적 상호의존관계의 하나이다. 그렇다는 것은

단어와 음성적 표현을 교환하는 모든 언어표현 과정에 이미 가장 기본적인 의미에

서의 신뢰소(信賴素)가 포함되어 있음을 함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뢰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인식적 및 정서적 신뢰요소의 원천은 개인보다 존재론적으로 선행

하는 사회적 관계들에 있고, 이로부터 신뢰가 길어 올려진다는 결론을 이끌어 내도

무방할 것이다.77)

‘신뢰 게임’에 담겨 있었던 규범적 함의는,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에는 자기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 달라는, 그리고 자신을 존중해달라는 암묵적 요구가 담겨 있다는

점이었다. 신뢰의 행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신뢰를 나에게 주는 사람이

나를 향하여 갖는 암묵적 기대를 존중해야 할 도덕적 부담감을 나는 진다. 그러한

암묵성(tacitness)은 상대방에 대하여 모종의 도덕적 태도(도덕적 관심)를 가짐으로

써 비로소 인식되는 것이어서 개인적 이익의 득실판단만으로는 포착되지 않는다.

불행한 자의 억눌린 비통한 절규(눌함: 呐喊)는 소리 없지만, 사랑이라는 특정한

종류의 주의를 기울인다면 그 소리 없는 절규를 듣게 된다. 신뢰관계에 이해타산의

요소가 담겨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고찰에서 암시된 바와 같이,

신뢰에 내재하는 도덕적 신뢰소 역시 충분히 고려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호혜성 규범에서 나온다.

75) T. Tyler, “Why do people rely on others?”, K. Cook (ed.), 앞의 책(각주 64), 289면 참조.

76) A. Seligman, The Problem of Trust, Princeton, 1997, 13면에서 재인용.

77) O. Lagerspetz, 앞의 책(각주 59), 13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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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합행동, 신뢰, 법 / 金度均 567

  1. 공적 신뢰와 법

지금까지는 사적 신뢰와 공적 신뢰를 포괄하여 신뢰 일반의 속성에 관하여 살펴

보았다. 합리적 이기주의 인간형과 호혜적 인간형이 상호작용을 하는 상황에서

신뢰가 발생하여 안정적으로 유지되려면, 일단 상호작용 참가자들에 대한 정보와

그들 사이의 의사소통 기회가 충분히 제공되고, 무임승차행위자에 대한 응징이 적절

하게 이루어져야 한다.78) 이러한 조건은 사적 신뢰와 공적 신뢰 모두에 적용된다.

그런데 사적 신뢰와는 구별되는 공적 신뢰의 특성이 있고 공적 신뢰가 유지되는

조건 또한 사적 신뢰의 조건과는 다른 점이 있다. 법에 대한 신뢰는 공적 신뢰의 한

유형이기에 이하에서는 공적 신뢰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을 해보도록 하자.79)

(1) 공적 신뢰의 특수성

앞에서 서술한 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신뢰의 기반은 타인에 대해 기대하는

행동과 관련된 믿음이다. 특히 타인이 작위나 부작위를 통해서 나/우리의 복리증진에

기여하고 나/우리에게 해악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신뢰관계의 핵심이다.

물론 믿음이 일반적으로 그렇듯이, 신뢰의 기반인 믿음도 틀릴 수도 있다. 나의

복리에 영향을 줄 타인의 행동에 대한 믿음이 잘못되면, 단지 틀리는 데 그치지

않고 손해라는 유형적(有形的) 위험이 발생한다. 타인에 대한 추측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자각 하에서 그로부터 초래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자신이 예측하는 대로

타인이 행동할 것이라고 믿으며 타인과의 관계에 들어서겠다고 결정하고 행동을

하는 것이 신뢰이다.

따라서 신뢰의 결과 발생할 위험성이 크다고 평가되면, 즉 신뢰함으로써 입을

손실이 전반적으로 퍼져 있고 지속적인 성격을 가질 것이라고 평가되면, 타인을

신뢰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고, 그 손실이 시간상 제한적이고 고도로 좁혀질 것

이라고 평가되면 타인을 신뢰하려는 경향은 커진다.80) 그렇다면 신뢰를 꺼리게 될

지점과 신뢰를 부여하게 될 지점을 결정하는 요인은 타인의 행동에 대한, 그리고

장래손실에 대한 정보수집 및 감독에 들 비용의 크기이다. 개인적 접촉이 가능해서

서로에 대한 잘 아는 상황에서는 타인의 신뢰도에 대한 정보 획득 비용은 저렴하며,

78) E. Ostrom, 앞의 논문(각주 8), 145면.

79) KBS <사회적 자본>제작팀, 앞의 책(각주 1), 135면 참조.

80) C. Offe, “How can we trust our fellow citizens?”, in: M. Warren (ed.), 앞의 책(각주 60), 44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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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8 서울대학교 法學 제54권 제3호 (2013. 9.)

정보들 또한 믿을 만하게 공급되고 수집될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반복되고

지속되는 사회적 상호작용 관계로부터 상대방을 신뢰할 동기가 생겨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런데 반복되는 개인적 접촉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사회적 상호

작용의 상황, 정보수집 및 감독의 비용이 높은 상호작용에서 신뢰는 어떻게 창출

될까? 그와 같은 상황에서의 신뢰창출의 조건은 무엇인가? 이것이 바로 제도에 대한

신뢰, 공적 신뢰의 문제이다.

사회제도를 신뢰한다는 것(trusting social institutions)은 그 제도에 담겨 있는 의미,

제도를 구성하는 세칙들, 가치들, 공식적․비공식적 규범들을 구성원들이 공유하

면서 그것들을 구속력 있는 것으로 기꺼이 인정한다는 점을 함축한다.81) 사회제도

들을 진심으로 지지하고 그 규칙들을 기꺼이 따르는 것이 공적 신뢰의 핵심이라는

점은 법적인 측면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제도에 대한 신뢰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제도에 대한 신뢰 형성을 다루는 학자들은

대체로 세 가지 요건을 꼽는다. 첫째 요건은 제도의 요구를 따를 때 치러야 할 비용

보다 얻는 이득이 더 클 것이라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는 조건(비용편익 심사)이다.

둘째 요건은, 그러한 믿음은 다른 사람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제도의 요구에 따를

것이라고 상당하게 기대할 수 있을 때 생겨난다는 상호성 조건이다. 셋째, 이 상호성

조건은 제도가 공정하다는 믿음을 줄 때 충족된다는 공정성 조건이다. 특히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불평등 격차가 있는 상황에서 공정성 조건은 큰 의미를 갖는다.

제도가 불공정하다는 지각은 한 사회에서 불리하게 대우를 받는 집단의 사람들이

제도의 요구를 따르는 의식과 태도(가령 법준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82)

사회에서 자원분배상의 불평등이 크고, 이것이 제도를 구성하는 가치와 규범에

반영되어 있으며 그 제도들이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다고 하자. 지배집단 구성원들은

그 제도들을 통해 이득을 얻고 있으므로 대체로 제도의 요구를 준수할 것이다.

자원분배의 불평등으로 불리한 대우를 받고 있는 집단구성원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제도의 규칙과 운영에 반영된 자원분배 편파성(distributional bias)이 크면 클수록,

제도의 요구에 따를 이유가 없다. 자원분배 편파성이 크면 클수록, 불리한 집단의

구성원들이 도덕적 동기에서 제도의 요구에 따를 가능성과 빈도수는 낮아질 것이기

때문이다.83)

81) C. Offe, 앞의 논문(각주 80), 71면 이하 참조.

82) J. Knight, 앞의 논문(각주 64), 363면 참조.

83) 한국 사회에서는 권력과 재력을 가진 계층의 사람들에 대해 법이 무력하다는 대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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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합행동, 신뢰, 법 / 金度均 569

앞에서 서술한 신뢰의 일반론에 비추어 보자면, 사회적으로 불리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신뢰(제도의 가치와 규범에 대한 신뢰, 그리고 사회적 협동에

대한 신뢰)가 낮아지면, 그들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하게 대우를 받는 집단의 구성원

들에게도 부정적 영향을 미쳐서 이들이 제도의 요구에 따를 유인을 떨어뜨린다.

이러한 현상이 확산되면, 이에 따라 지배집단구성원들도 마찬가지로 제도의 요구에

따르려고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다른 행위자들이 제도의 요구에 따를

것인지 여부가 불확실하면, 제도의 준수가 가져다 줄 기대가치는 전반적으로 낮아

진다. 다른 사회구성원들이 제도의 요구에 따르고 협조할 개연성을 각 개인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제도에 대한 신뢰 형성이 좌우된다면, 제도의 요구를 준수할 때 얻을

기대가치가 전반적으로 떨어질 때 협조의 개연성을 낮게 보는 생각과 태도가 확산

된다. 그렇게 되면 제도의 요구에 따르고 사회적 협동을 하려는 사회구성원 전체의

유인은 점점 낮아질 것이다.

이러한 효과들이 누적되면 사회구성원들의 준수와 사회적 협동을 유도하는 제도의

역량은 감소하고, 사회전반적인 신뢰는 무너지고 만다.84) 이른바 비협조행위 또는

불신의 균형상태(noncooperative equilibrium)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아무도 이 불신의

균형상태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 상황, 즉 만인에 대한 만인의 배신 또는 비협조의

전략을 취하는 균형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 나쁘다는 점은 누구나 안다. 이러한

상태에서 협조행위 또는 신뢰의 균형상태로 전환되는 계기는 무엇일까? 바로 여기

에서 법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2) 공적 신뢰의 토대 형성과 법

법이 호혜성과 신뢰의 형성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법이 호혜성과 신뢰의

토대를 잠식한다는 주장도 있고, 법이 그 토대를 강화한다는 주장도 있다. 법이 어떤

내용을 갖는지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지에 따라 이 물음에 대한 답이 달라질 것이다.

앞에서, 합리적 이기심보다는 호혜성을 통해서 현실의 사람들을 적절하게 파악

할 수 있다는 점을 주장하였다. 호혜성 가설에 따르면, 합리적 이기심 가설이 예측

하는 것과는 달리, 협력적 행위에 대해서는 사람들은 매우 협력지향적이며 무임

승차행위에 대해서는 매우 응징적이다. 완전히 낯선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에서조차

법의식은 김시업/김지영, “한국인의 법의식: 법리(法理)와 정리(情理)의 갈등”, 한국심리 학회지: 사회문제, 제9권 제1호(2003), 68면 이하 참조.

84) 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J. Knight, 앞의 논문(각주 64), 364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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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0 서울대학교 法學 제54권 제3호 (2013. 9.)

사람들은, 설령 큰 비용을 치르더라도 당장 또는 장래에 물질적 이득이 없다고 하더

라도, 호의에는 호의로 배신에는 복수로 응대한다는 것이다.85) 협조에는 협조로

대응하는 것을 ‘적극적 호혜성’(positive reciprocity)으로, 배신에는 복수로 대응하는

것을 ‘소극적 호혜성’(negative reciprocity)으로 명명해보자.86) 법의 역할은 대체로

소극적 호혜성과 관련되기는 하지만, 적극적 호혜성을 증진하는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신뢰의 토대 형성에 기여하는 바는 크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법의

‘표현적 기능’(expressive function of law)에 비추어서 설명하도록 하겠다.

물질적 유인책과 신뢰는 서로 배제하는 관계에 있을까? 여기서 물질적 유인책은

금전적 유인과 형벌적 유인으로 이해하도록 하겠다. 일단 돈을 예로 들어 살펴보자.

현실에서 보면 사람들은 단순히 금전적 유인 때문에만 협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금전적 유인의 제공을 제공자의 태도와 의도와 관련된 하나의 사회적 신호로 해석

하여 협력할지를 결정한다. 즉 금전적 유인의 제공자가 나를 어떻게 대우하는지를

해석할 수 있게 해주는 사회적 신호로 본다는 것이다. 금전적 유인이 나에 대한

존중을 반영하고 있다고 해석하면, 나는 그 제공자에 대하여 신뢰를 보내게 된다.

반면 금전적 유인의 제공이 나의 진심에 대한 왜곡으로 또는 다른 사람들의 비협

조행위에 대한 단서라고 해석되면 호혜성과 신뢰의 토대는 잠식된다.87) 돈의 사회적

의미는 매우 다양하므로, 그 맥락에 따라 돈의 의미는 상이하게 결정된다. 따라서

금전적 유인이 자발적 협조의 동기와 신뢰를 밀어낼 것이라는 결론을 간단하게 내

릴 수는 없다.88) 돈과 신뢰 사이의 이 복잡한 관계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법과 신뢰 형성 사이의 관계도 이와 마찬가지라면, 법적 규제가 신뢰의 토대를

잠식한다는 결론을 쉽게 내릴 수는 없다. 돈이 사회적 의미를 가지듯이, 법 또한

사회적 의미를 갖는다. 법을 통해 해당 사회를 이루는 사회적 가치와 구성원들의

공동적 태도가 표현되기 때문이다. 가령 형법은 단순히 위법행위를 억제한다는

기능 외에 해당 사회가 문제의 행위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취한다는 점도 전달한다.

85) E. Fehr/S. Gächter, 앞의 논문(각주 12) 159면 이하 참조.

86) 이 용어에 관해서는 E. Fehr/S. Gächter, 위의 논문, 160면 이하 참조.

87) 이러한 점을 극화하고 있는 예로는 마쓰모토 세이초, “공갈자”,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상(미야베 미유키 책임편집, 이규원 옮김), 북스피어, 2009, 65-97면 참조. 철학적 성찰에 관해서는 M. Sandel, What Money Cant’ Buy: The Moral Limits of Market, New York, 2012 참조.

88) V. Zelizer, The Social Meaning of Money: Pin Money, Paychecks, Poor Relief, and Other Currencies, Princeton, 199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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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합행동, 신뢰, 법 / 金度均 571

형법의 이러한 가치표현 기능(expressive function)은, 벌금이나 사회봉사와 같이 비용

수익의 측면에서 효율성은 높지만 비난 기능이 모호한 징계나 처벌보다는 감옥형

처럼 비난 기능이 명확한 형벌을 대중들이 선호한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89)

언어적이든 비언어적이든 모든 행위는 사회적 의미를 갖고 있으며 또 그것을 표현

한다. 그리고 어떤 행위가 담고 있고 표현하는 사회적 의미는 현행 사회규범에

의해 결정된다.90) 가령 어떤 사회에서 공공장소에서는 흡연금지를 명하는 사회

규범이 있다면, 그 사회에서 흡연이라는 행위가 담고 있고 표현하는 사회적 의미는

혐오나 무례함이다. 행위의 사회적 의미가 사회규범의 함수라면, 사회규범이 변하면

행위의 사회적 의미도 바뀐다.91) ‘혼인빙자 간음행위’를 처벌하던 형법 규정이

있다가 그 규정이 폐지되었다면, ‘혼인빙자 간음행위’라는 용어로 표현되던 행위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달라지고 그 사회적 의미도 바뀌었음을 뜻한다.

법의 변경이나 폐지가 어떤 행위에 대한 공동체 평가의 변화를 표현하는 것이라

면, 법규범에 대한 논란은 그 법규범의 표현적 내용(the expressive content of law)

에 대한 논란일 경우가 많다.92) 가령 간통죄 규정에 대한 (위헌성) 논란은 간통죄

규정의 형벌효과에 대한 논란이라기보다는, 그것이 담고 있고 표현하고 전달하는

내용(해당 사회의 가치관이나 태도) 자체에 대한 논란이다. 간통죄 규정의 합헌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간통죄 규정이 간통행위의 억제에 효과가 없다는 경험적 증거가

있다고 하더라도 굴복하지 않는다. 이들의 주 관심사는 간통죄 규정의 표현적 내용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국가보안법이 표현하고 전달

하는 바로 그 내용을 옹호하기 때문에, 국가보안법이 적용되는 사례가 드물거나 실제

효과가 없다고 하더라도 국가보안법의 존속에 찬성하는 것이다.

법은 무임승차행위자(배신자나 비협조자)에 대한 응징을 담고 표현함으로써 집합

행위의 문제를 해결한다. 협력행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법규범은 사회구성원들

에게 비협조행위의 사회적 의미를 전달함으로써 비협조행위를 사전에 예방하는 역할

89) 형벌의 표현적 기능에 관해서는 J. Feinberg, Doing and Deserving: Essays on the Theory of Responsibility, Princeton, 1970, 95면 이하 참조. 법의 표현적 기능에 관해서는 C. Sunstein, “On the Expressive Function of Law”, University of Pennsylvania Law Review 144 (1995), 2021면 이하 참조.

90) C. Sunstein, 위의 논문, 2022면. 법과 관련해서 사회적 의미의 구성과 규제의 문제를 논구하고 있는 독보적 문헌으로는 L. Lessig, “The Regulation of Social Meaning”, The University of Chicago Law Review 62 (1995), 943-1045면 참조.

91) C. Sunstein, 위의 논문, 2023면.

92) C. Sunstein, 위의 논문, 20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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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2 서울대학교 法學 제54권 제3호 (2013. 9.)

을 한다. 개인들이 비협조행위를 하려할 경우 스스로 수치심이나 양심의 가책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법의 가치표현 기능은 규제를 통한 유인책(regulatory

incentives)이 신뢰와 호혜성을 감소시킬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강화할 수도 있음을

함축한다.93)

해악을 끼치는 행위가 사회에 만연해 있는데도 그 행위가 처벌되지 않거나, 처벌

되더라도 높지 않은 과태료나 사회봉사와 같이 가치표현기능이 미약한 징계로 끝

나는 경우, 사회구성원들 개개인은 다른 사람들이 그 행위에 대해 비난하지 않는

다고 인식하면서 스스로도 그 행위를 하는 것에 도덕적 가책을 갖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행위에 대해 강력한 비난을 표현하는 형사입법이 이루어지면, 시민

각자는 다른 사람들도 문제의 행위를 명확하게 나쁘다고 평가하고 있다는 추론을

내리고는 이를 하지 않으려고 하게 된다. 즉 다른 사람들이 그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과 확신이 개개의 시민들로 하여금 남들이 그렇다면 나도 하지 않겠

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호혜성 성향이 작동한 결과이다. 가령

교차로에서 이른바 ‘꼬리물기’를 하는 운전자를 높은 벌금으로 처벌하는 법률을

제정하고 엄격하게 집행한다면 시민들 각자에게 다른 사람들 역시 그 행위에 대해

강력한 비난을 하고 있다고 판단하고는 ‘꼬리물기’ 운전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신뢰 부재의 상황에서는 개인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협조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지 못하게 되고, 이러한 믿음 때문에 점점 더 사람들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 기여하지 않게 된다. 이는 다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비협조의 전략을 택하

게끔 유도하고, 결국에는 사회전반에 걸쳐 비협조와 불신의 균형상태가 확립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금전적 유인책이 유일하게 효과적인 정책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앞에서 언급한 금전적 유인의 부작용 때문에 기대한 만큼의 효과를 내지 못한다.

그런데 믿을 만한 규제 조치가 행해지면 신뢰의 복원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무임

승차행위를 싫어하는 개인들(협력지향적 개인들)은 믿을 만한 규제조치의 도입을

다른 사람들도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회적 신호로 해석하여 사태를

복원하려는 의미있는 노력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이 그렇게 협력지향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면, 이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어 협력지향적 태도를 취하게

유도하고 다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어 간다. 이리하여 새로이 협력지향적 균형

상태가 확립되게 된다.94) 이것이 시민사회운동의 의의이자 긍정적 효과이다.95)

93) D. Kahan, 앞의 논문(각주 52), 346면 참조.

94) D. Kahan, 위의 논문, 346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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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합행동, 신뢰, 법 / 金度均 573

(3) 납세행위와 신뢰

앞에서 서술한 바를 납세행위에 적용하여 본다면 아래와 같다. 납세행위는 공공

정책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집합행위 문제의 결정판이다.96) 전통적인 집합행위

이론에 따르면, 성실한 납세행위를 유도하려면 탈세행위에 대한 물질적 유인책(처벌)

이 매우 중요하다.97) 그런데 납세행위에 관한 미국에서의 경험적 연구결과들은 물

질적 유인책(특히 엄중한 처벌)과 성실납부행위 사이에는 주목할 만한 상관관계가

없다는 점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탈세행위에 대해 예상되는 처벌과

위법행위로 인한 이득 사이의 비율 계산보다는 다른 시민들이 성실하게 납세를 하고

있는가에 대한 판단이 개인들이 성실하게 납세를 할 것인지를 결정할 때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98)

이러한 현상은 호혜성 성향(reciprocity disposition)이 시민들의 납세 문화에 지배

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을 입증해주는 것이다. 시민들이 납세행위를 중요한 시민적

의무나 덕목으로 보는지 여부도 결국에는 다른 시민들이 납세를 하는 태도에 의해,

즉 호혜성에 의해서 결정된다. 대부분의 사회구성원들이 성실하게 납세하고 있다고

믿는 개인들은 납세행위가 중요한 도덕적 의무라고 생각하는 반면, 많은 사람들이

조세당국을 속이고 있다고 믿는 개인들은 탈세가 특별히 심각한 위법행위라고 생각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탈세행위에 대한 처벌 숫자나 규모에 대한 정보에

노출되는 빈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사람들은 사회전반적으로 조세법을 위반하는 개인

들이 많다는 사회적 신호(social cue)로 해석하여 자신도 위법행위를 할까 생각하게

된다. 반면, 성실하게 납세하는 시민들의 비율이 통상 생각되는 것보다 더 높다는

95) 사회적 신뢰와 시민운동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로버트 퍼트넘(정승현 옮김), 나홀로 볼링: 사회적 커뮤니티의 붕괴와 소생, 페이퍼로드, 2009, 241면 이하, 605면 이하 참조.

96) D. Kahan, “The Logic of Reciprocity: Trust, Collective Action, and Law”, Michigan Law Review 102 (2003), 80면.

97) M. Allingham/A. Sandamo, “Income Tax Evasion: A Theoretical Analysis”, Journal of Public Economy 1 (1972), 323면 이하 참조. 특히 형벌에 관한 경제학적 이론틀에 따르면, 사람들은 탈세행위를 통해 얻을 이득이 그에 대한 처벌에서 기대되는 비용을 초과할 때 탈세를 할 것이다. 이러한 형벌론은 G. Becker, “Crime and Punishment: An Economic Approach”,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76 (1968), 169면 이하 참조.

98) 납세의 동기에 관한 이론적 문헌으로는 대표적으로 J. Slemrod (ed.), Why People Pay Taxes: Tax Compliance and Enforcement, Michigan, 1991 참조. 그리고 B. Torgler, Tax Compliance and Tax Morale: A Theoretical and Empirical Analysis, Northampton, 2007; E. Kirchler/V. Braithwaite, The Economic Psychology of Tax Behaviour, Cambridge, 200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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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4 서울대학교 法學 제54권 제3호 (2013. 9.)

정보를 접하게 되면 사람들이 성실하게 납세하는 비율이 높아진다는 결과도 호혜

성이 준법의식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99)

따라서 조세당국이 취할 적절한 조치는 탈세행위에 대한 처벌뿐만 아니라 시민들

사이의 신뢰를 증진시킬 정보들을 함께 제공하면서 호혜성 규범의 구현을 위해 노력

해야 한다는 것이다.100) 이는 합리적 이기주의자나 부의 극대화추구자로만 인간을

파악하는 이론틀로는 탈세와 성실납세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없으며, 호혜성에

기반을 둔 신뢰관을 적용할 때 비로소 현실설명력과 문제해결력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조세법체계에 대한 신뢰는 어떻게 형성될까?

조세법체계가 공정하고 공평하다는 판단이 국가의 조세법체계에 대한 신뢰를 증진

시켜 시민들의 납세행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에는 누구라도 동의를 할

것이다.

III. 법, 권위, 신뢰

“처벌을 두려워하고 보상을 바라는 마음 때문에만 사람들이 착해진다면,

참으로 우리 인간은 불쌍한 존재이다.” (아인슈타인)

법과 신뢰라는 주제는 두 가지 물음을 담고 있다. 하나는 법에 대한 신뢰는 어떻게

형성되고 창출되는가라는 법에 대한 신뢰형성의 조건에 대한 물음이다. 다른 하나는

법에 대한 신뢰는 사회 전반적인 신뢰를 창출하고 증진하는 데 기여하는가, 그렇

다면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 기여하는가라는 물음이다. 이는 법에 대한 신뢰가

수행하는 사회적 역할에 대한 물음으로서, 이른바 사회적 자본의 형성과 증진에

법에 대한 신뢰가 어떤 기여를 하는가라는 물음과도 관련성이 있다. 아래에서는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신뢰를 실마리로 하여 법에 대한 신뢰의 문제를 고찰하기로

한다.

99) 이에 대한 다양한 문헌들은 D. Kahan, “Social Influence, Social Meaning, and Deterrence”, Virginia Law Review 83 (1997), 349면 이하 참조.

100) D. Kahan, 앞의 논문(각주 96), 84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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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합행동, 신뢰, 법 / 金度均 575

  1. 사회적 자본과 신뢰

노벨 경제학 수상자 케네스 애로우(Kenneth Arrow)는 신뢰의 경제적 기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신뢰는 매우 중요한 실용적 가치를 갖는다. 신뢰는 사회시스템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며, 경제적 효율성을 제고하는 데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불행히도

신뢰는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상품(재화)이 아니다.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외부성’

(externalities)의 전형적인 예로서 신뢰는 사회제도의 효율성을 증진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시장에서 거래가 가능한 상품은 아니다.”101)

신뢰는 공공재(public good)의 성격을 갖는 것으로서 시장에서 구매되는 것은

아니지만, 신뢰가 구축되어 있다면 구성원들 사이의 협동은 증진되고 각종 사회적

비용이 감축되면서 경제적 효율성이 성취된다는 것이다. 신뢰가 형성되어 있다면

구성원들 각자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하려고 하고, 사회

규범을 지키려고 하고 타인과 기꺼이 타협하려 한다. 구성원들 사이에 신뢰가 쌓여

있다면 설령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기꺼이 상대방의 주장에

귀 기울이게 되기 때문이다. 신뢰에 바탕을 둔 구성원들의 적극적 참여와 도덕적

행위는 해당 공동체를 보다 풍요롭게 만든다는 점에서 제도에 대한 신뢰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으로서 높게 평가된다.102)

‘사회적 자본’으로서 신뢰를 파악하기 위해 사회적 자본 개념을 간략하게 살펴

보자.103)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은 사회적 자본을 “협력적 행위를 촉진

101) K. Arrow, The Limits of Organization, New York, 1974, 23면.

102) 로버트 퍼트넘(안청시 외 옮김), 사회적 자본과 민주주의, 박영사, 2000, 273면 이하 참조[원제목은 Making Democracy Work: Civic Traditions in Modern Italy (1993)]. F. Fukuyama, Trust: the social virtues and the creation of prosperity, New York, 1995. 국내에서의 사회적 자본에 대한 연구는 김태종 등, 사회적 자본 확충을 위한 기본조사 및 정책연구, 1면 이하 참조.

103) 원래는 집단과 조직에서 공동목표를 위하여 함께 일할 수 있는 구성원들의 능력으로 정의되었던 사회적 자본의 개념은 생산적이고 긍정적이며 풍요로운 정치적 공동체의 특성을 설명하는 데 핵심적인 이론적 도구로 활용된다. 사회적 자본 개념은 J. Coleman, “Social Capital and the Creation of Human Capital”,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94 (1988), 95-120면; R. D. Putnam, “The Prosperous Community: Social Capital and Public Life”, American Prospect 13 (1993), 35-42면. 로버트 퍼트넘, 앞의 책(각주 102), 281 면; 로버트 퍼트넘, 앞의 책(각주 95), 473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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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6 서울대학교 法學 제54권 제3호 (2013. 9.)

시켜 사회적 효율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사회조직(신뢰, 규범, 그리고 네트워크

등)의 속성”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이해한다.104)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신뢰는 사회적 자본을 구성하는 요소들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서 경제의

역동적 성장, 법제도와 공권력의 효과적 작동에 매우 큰 역할을 한다고 본다. 신뢰가

부족한 사회는 경제적으로 낙후하기 마련이다. 경제성장의 토대인 계약의 확실성이

생겨날 수 없으므로 법도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라는 속담은 신뢰부족 사회의 전형적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105) 이러한

사회의 양상은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모든 계급에서 공동체 의식의 결여는 수세기 간의 독재정치에서 학습된 불복종

(insubordination)의 습관에서 비롯되었다. 사회명사들조차도 법을 지키지 않는 데

익숙해졌으며, 속이는 것이 성공할 수만 있다면 도덕적 부담감 없이 정부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 세금은 납부해야만 한다는 인식 대신에, 일단의 사람들이

탈세를 하고 이익을 보는 길을 찾아내었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도록 하는 것이 낫다는 태도가 형성되었다. 이렇게 각 지방, 각 계급, 각

산업분야는 공동체를 희생시키며 이익을 추구하려 하였다.”106)

따라서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신뢰는 일종의 도덕적 자원(moral resource)이다.

‘도덕적 자원’은 사용되면 될수록 그 공급이 많아지는 반면, 사용되지 않으면 않을

수록 고갈되는 속성을 지닌 자원을 지칭한다.107) 구성원들 서로가 서로에 대해 믿

음을 보이면 보일수록 그만큼 상호신뢰는 더 두터워진다는 점에서 사회적 신뢰는

‘도덕적 자원’의 속성을 갖는다고 할 만하다.108)

104) 로버트 퍼트넘, 앞의 책(각주 102), 281면.

105) 로버트 퍼트넘은 신뢰결핍의 이탈리아 남부사회에서 통용되는 속담들의 예를 들면서 저신뢰 사회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정직하게 행동하는 자는 불행하게 끝장난다.”, “다른 사람을 믿는 자는 망한다.”, “각자는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고 친구를 속인다.”, “이웃집이 불타는 것을 보면 너의 집에 물을 끼얹어라.”(로버트 퍼트남, 위의 책, 227면).

106) D. Smith, Italy: A Modern History, Ann Arbor, 1959, 35면(로버트 퍼트넘, 위의 책, 226-27면에서 재인용).

107) ‘도덕적 자원’이라는 개념은 A. Hirshman, “Against Parsimony: Three Ways of Complicating Some Categories of Economic Discourses”, American Economic Review Proceedings 74 (1984), 93면. 이 개념에 대한 퍼트남의 풀이를 원문으로 보면 R. Putnam, Making Democracy Work: Civic Traditions in Modern Italy, 169면: “moral resources are resources whose supply increases rather than decreases through use and which become depleted if not u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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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합행동, 신뢰, 법 / 金度均 577

그러나 상호간의 신뢰라고 해서 모두 사회적 자본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은 아니다.

가족 간의 신뢰나 소규모 집단 및 지역 내의 굳건한 신뢰가 오히려 국가와 제도에 대한

신뢰형성에 장애가 될 때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과 신뢰라는 주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사회적 자본에 기여하는 유형의 신뢰가 무엇인지를 분석해야만 한다.

  1. 신뢰 반경의 확대: 사회적 신뢰의 형성 조건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자신의 저서 Trust를 통해서 사회적 자본의 중요한 요소

로서 신뢰가 합리적인 경제적 계산의 산물이 아니라 문화적 가치에 뿌리를 둔 습속

(habit)에 속한다는 점을 주장하였다.109) 후쿠야마는 윤리적 규범을 바탕으로 형성된

신뢰에 기반을 둔 사회가 선진화된 사회가 된다고 보고는 독일과 일본을 그 전형

적인 예로 꼽는다. 그리고 개인주의적 자유주의가 득세한 현대 미국 사회는, 종전

과는 달리 신뢰의 기반이 무너지면서 커다란 사회적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고

진단한다.110) 후쿠야마에 따르면, 독일과 일본의 경우 국가권력이 중앙집권화 되지

못하고 지방영주 권력으로 분산되면서 국가와 가족 사이에 중간지대인 다양한

결사체(직능단체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이 시민적 공동체들(civic communities)이

공유하는 윤리적 규범들로부터 사회적 신뢰가 형성되었다. 반면 프랑스와 이탈리아

(남부)의 경우 이 중간 집단들의 결여(‘missing middle’)111)로 말미암아 사회적 신뢰의

토대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였다. 중국과 한국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여 강력한

국가권력과 가족중심주의(familism) 때문에 가족을 넘어서는 사람들과 집단들을 신

뢰하는 문화가 발달하지 못한다. 이와 같은 ‘협소한 신뢰반경’(a narrow radius of

trust)으로 인해 후자 사회들에서 사회전반적 신뢰가 확립되지 못하였다고 후쿠야

마는 진단한다. 한 국가의 복지와 경쟁력은 사회전반적 신뢰의 수준에 의해 결정

된다는 명제를 제시하는 후쿠야마는 그동안 급속도로 발전해 온 한국 사회를 저신뢰

사회로 분류한다. ‘신뢰의 반경’이 좁기 때문에, 가족 내 신뢰와 비교할 때 사회적

신뢰의 수준이 낮으며 정부에 대한 불신이 매우 높아 사회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108) P. Dasgupta, 앞의 논문(각주 58), 56면 이하 참조. 사회적 자본의 양적 측정 기준에 관하여는 로버트 퍼트넘, 앞의 책(각주 95), 480면 이하 참조.

109) F. Fukuyama, 앞의 책(각주 65), 33면 이하 참조.

110) F. Fukuyama, 위의 책, 269면 이하 참조. 미국 사회에서 사회적 자본의 감퇴가 각 분야에서 어떤 양상으로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로버트 퍼트넘, 앞의 책(각주 95), 488면 이하 참조.

111) F. Fukuyama, 위의 책, 55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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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8 서울대학교 法學 제54권 제3호 (2013. 9.)

사회에 속한다는 것이다.112)

후쿠야마는 신뢰의 형성과 발전을 위해서는 법과 같은 공식적인 제재장치보다는

관습이나 윤리규범과 같은 비공식적 사회규범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113) 한 공동

체가 윤리적 가치들과 규범들을 공유하고 이에 따라 구성원들 상호 간에 정직한

행동이 일상적으로 행해질 때, 신뢰는 생성되고 굳건하게 안착된다는 것이다.114)

사회적 자본은 여타의 인적 자본(human capital)과는 달리 합리적 투자의 결정으로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한 사회의 도덕규범들로 정착되는 습속화(habituation)를 통

해서, 이를테면 충성, 정직성, 상호의존성 같은 덕목이 사회전반적으로 정착되면서

획득된다. 즉 신뢰가 사회구성원 사이에서 전반적으로 확립되어 사회적 자본이 되

려면 사회구성원들에 의해 먼저 공통의 가치들과 규범들이 채택되어야 한다는 것

이다. 사회적 자본인 신뢰는 가치들과 규범들의 공유가 핵심이라는 점에서 개인적

덕목이 아니라 사회적 덕목이라는 점을 후쿠야마는 강조한다.115) 이러한 문화적

뿌리(cultural roots)와 도덕적 기반을 가진 신뢰가 사회적 자본이 되며, 이것은 다시

사회 전체의 덕목이자 역량으로 발전한다.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신뢰야말로 경제

뿐만 아니라 정치 발전에도 큰 역할을 하여 한 사회를 번영케 하는 토대라는 것이다.116)

새겨들을 만한 견해를 개진하고는 있지만 후쿠야마는 정직성, 동료의식, 도덕성,

공동체의 가치에 대한 헌신으로 구성되는 신뢰가 도대체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서

형성되는지를 분석하지 않는다. 고도 신뢰사회로서 자신이 평가하는 독일과 일본

사회의 특징을 추출하여 기술하는 데 머물고 만다. 또한 후쿠야마는 사회 전반적

신뢰의 형성과 관련해서 법과 같은 공식적 제도보다는 비공식적 가치나 규범, 습

속에 더 큰 역할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정치적 신뢰나 법적

신뢰를 다루는 데에는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 한국과 같은 저신뢰 사회에서 도대체

사회적 신뢰가 어떻게 창출되는지, 사회적 신뢰의 창출을 위해 법제도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답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사는 우리가

112) F. Fukuyama, 앞의 책(각주 65), 56, 106면 참조.

113) F. Fukuyama, 위의 책, 11면 참조. 법이 사회적 자본의 창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하여 고찰하면서 법은 사회적 자본을 창출하는 제도들을 약화시키기 때문에 법이 사회적 자본의 보완물이라기보다는 대체물이라고 주장하는 견해로는 L. Ribstein, “Law v. Trust”, Boston University Law Review 81 (2001), 553-590면, 특히 568면 이하 참조.

114) F. Fukuyama, 위의 책, 26, 153면.

115) F. Fukuyama, 위의 책, 27면 참조. 사회적 자본의 부정적 측면에 대해서는 로버트 퍼트넘, 앞의 책(각주 95), 581면 이하 참조.

116) F. Fukuyama, 위의 책, 325, 356면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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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합행동, 신뢰, 법 / 金度均 579

알고 싶은 점은 바로 이것이기에 후쿠야마의 견해는 결정적인 한계를 갖는다고 여겨

진다. 그러나 후쿠야마가 ‘신뢰 반경’(radius of trust)이라는 개념을 활용하여 한국

사회에서 가족 외의 시민적 공동체들이 생겨나서 신뢰 반경이 넓어진다면 사회적

신뢰가 정착될 수 있을 것이라는 처방에는 동의할 만하다.117)

후쿠야마가 제안하는 신뢰 반경의 확대를 위하여 이하에서는 신뢰 이론의 분야

에서 중대한 전환을 이룬 독일의 사회학자 클라우스 오페(Claus Offe)의 견해에 주목

하여 보기로 하자.

오페에 따르면, 신뢰는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할 것이라고 믿는 데서”

형성된다.118) 그러나 타인의 행동에 대한 기대와 관련된 믿음은 언제나 리스크

(risk)를 동반하기 마련이다.119)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타인이 장래에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현재 예측한다. 그리고 장래에 대한 현재의 예측들은 일종의

정향성(a present orientation concerning the anticipation of future behaviour)을 띠게

된다. 이렇게 정향성을 갖게 되는 것에는 과거의 경험에 기초한 정보를 넘어서는

무엇인가가 있다. 과거의 정보에 비추어서 타인을 믿으려면 충분한 근거들이 있어야

하며, 바로 이 근거들 때문에 사람들은 타인의 장래 행동을 믿는 데 따르는 리스크를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다.120)

오페에 따르면, 타인의 행동 예측과 관련된 정향성은 신뢰 행위 자체에 내재하는

도덕적 요소 때문에 생겨난다. 신뢰자와 피신뢰자 사이에 맺어온 상호작용의 역사에

대해 피신뢰자가 자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면, 피신뢰자는 신뢰자가 자신을 신뢰

할 근거를 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신뢰자는 신뢰의 리스크, 즉 신뢰가 배신당할

때의 위험부담을 기꺼이 감수한다. 피신뢰자가 신뢰자의 믿음에 대해 그저 습관적

으로나 또는 그 자신의 성격이 그러해서 보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신뢰를 존중해

야겠다는 도덕적 의무감에서 신뢰에 보답할 수도 있다. 신뢰를 부여했다는 사실이

신뢰받는 측의 도덕적 의무감을 낳고, 이 의무감에서 피신뢰자가 신뢰행위에 보답을

한다면 신뢰 창출의 굳건한 조건이 마련된다. 그리고 신뢰를 함으로써 발생할 위험

발생은 줄어든다. 신뢰를 받는다는 바로 그 사실에서 생성된 도덕적 의무감의 강도가

신뢰형성의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즉 신뢰행위 자체가 신뢰창출의 근거가 된다.

117) F. Fukuyama, 앞의 책(각주 65), 336, 338면: “넓은 신뢰반경”(“a wide radius of trust”).

118) C. Offe, 앞의 논문(각주 80), 47면.

119) C. Offe, 위의 논문, 48면.

120) C. Offe, 위의 논문, 5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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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 서울대학교 法學 제54권 제3호 (2013. 9.)

신뢰행위 자체가 신뢰의 근거가 되어 신뢰를 낳는, 신뢰의 자기재생산적 구조가

갖추어지는 것이다.121) 신뢰받는 자가 과거에 일관되게 보여준 행동에 대한 신뢰

부여자의 경험과 정보뿐만 아니라, 신뢰받는 자 스스로가 신뢰받고 있음을 자각한

결과로 그 신뢰를 존중해야겠다는 의무를 인식하게 된다는 점이 신뢰관계의 토대

라고 하겠다.

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 사회적 호혜성(social reciprocity)의 관계로서 신뢰하고

신뢰받는 지속적인 과정은 신뢰자와 피신뢰자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신뢰는 타인의 장래행동과 관련해서 계산하고, 강제하고, 감독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결정하면서 시작된다. 신뢰시장(trust market)에서 신뢰공급자 측에서

보자면, 신뢰는 타인의 장래행위를 통제하는 데 투입할 자원을 대체하여 거래비용을

절감한다.122) 피신뢰자의 측에서 보자면, 신뢰받는다는 것은 자신(가령 대리인)의

자율성을 강화하고 행동할 수 있는 선택지의 수와 규모를 증대시킨다.123) 이와 같은

신뢰의 경제적 기능은 시장 영역에서 신뢰하는 사회적 자본이 수행하는 역할을 잘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가령 대리인이 본인의 신뢰를 받고 있고, 그 대리인이 신뢰

존중의 호혜성 규범(the norm of reciprocity)을 따르고 있다고 하자. 신뢰 부재의

경우였다면 권위적으로 강제되거나 돈으로 ‘구입’(시장에서의 거래나 뇌물)되거나

했을 피신뢰자의 협조행위를 신뢰자인 본인은 효율적으로 손에 넣을 수 있게 된다.

피신뢰자의 입장에서 보면, 피신뢰자는 신뢰받음으로써 일종의 신용이라는 자본을

얻게 된다. 사소한 실수들과 잘못들은 쉽게 만회될 것이므로 자신감을 가지고서

혁신과 실험을 할 수 있게 되며, 신뢰하는 자와 신뢰받는 자 모두에게 혜택이 될

조치들도 과감하게 취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과정이 축적되면서, 신뢰받는다는

것은 신뢰관계에서 신뢰받는 측에 서 있는 행위자(피신뢰자)에게도 매우 중요한

자원이 되고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될 수 있는 ‘사회적 자본’의 한 유형이 된다.124)

그런데 오페는 사회적 자본과 신뢰에 대한 종래의 연구가 주로 소규모 조직이나

기업, 지역사회와 같은 친밀성이 높은 집단을 대상으로 해서 이루어졌음을 지적하

면서, 현대 사회에서 다루어야 할 신뢰는 ‘서로 잘 알지 못하는 낯선 이들’ 사이에

서의 신뢰, 즉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정치적 신뢰(political trust)의 문제라고 강조

121) C. Offe, 앞의 논문(각주 80), 50면.

122) C. Offe, 위의 논문, 52면 이하 참조.

123) C. Offe, 위의 논문, 52면.

124) C. Offe, 위의 논문, 53면. 로버트 퍼트넘, 앞의 책(각주 95), 219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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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합행동, 신뢰, 법 / 金度均 581

한다.125) 후쿠야마가 적절하게 지적하였듯이, 친족집단이나 특정 집단(지연, 학연,

파벌) 내에서만 통용되는 신뢰와 사회 전반적으로 통용되는 신뢰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전자는 사회의 합리성과는 무관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126) 오페 역시 전자를

특수한 집단들에만 국한된 경우의 신뢰(particularized trust)로, 후자를 사회 전반적

으로 일반화된 경우의 신뢰(generalized trust)로 구분한다.127) 후쿠야마와 오페의 이

러한 구분은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신뢰와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적 신뢰 문제를

다루는 데 매우 유용하다고 하겠다.128)

이러한 구분을 이용하여 설명하자면, 사회적 자본의 발전에 기여하는 신뢰는

‘특정 집단 내에서만 통용되는 신뢰’가 아니다. 이방인들에 대해 내부자의 정체성

만을 공고하게 만드는 국지적 신뢰는 오히려 사회적 자본의 형성을 저해할 뿐이다.

반면 낯선 이들에게도 전반적으로 신뢰를 부여하는 ‘일반화된 신뢰’, ‘보편화된 신뢰’

유형이 사회적 자본의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129) 국지적 신뢰는 시민적 삶

(civic life)의 영역을 축소시키는 반면, 일반화된 신뢰는 공익과 공동선을 증진하는

효과를 낳는다는 것이다.130) 가령, 일반화된 신뢰가 구축되어 있다면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공공재정을 요구하려는 태도나 무임승차 행위는 도덕적으로 나쁘

다는 의식이 시민들 사이에서 일반화되면서 공익과 공동선이 증진된다.131) 그렇다면

사회 전반적 신뢰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그리고 법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1. 민주주의와 정치적 신뢰

친숙한 개인들 사이의 신뢰형성 조건은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부딪치는,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의 신뢰 상황에는 적용될 수 없다. 타인에 대한 정보부족과 정서적

125) C. Offe, 앞의 논문(각주 80), 56면.

126) F. Fukuyama, 앞의 책(각주 65), 113면 이하 참조.

127) C. Offe, 위의 논문, 56면 이하 참조; J. Cohen, “Trust, voluntary association and workable democracy”, in: M. Warren (ed.), 앞의 책(각주 60), 208면 이하 참조.

128) 친숙한 관계에서의 ‘두터운 신뢰’(thick trust)와 낯선 타자에 대한 ‘엷은 신뢰’(thin trust)를 대조하면서 후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로버트 퍼트넘, 앞의 책(각주 95), 221면 이하 참조.

129) E. Uslaner, “Democracy and Social Capital”, in: M. Warren (ed.), 앞의 책(각주 60), 121면 이하 참조. 일반화된 호혜성(generalized reciprocity)과 사회적 자본 사이의 연관 성은 로버트 퍼트넘, 앞의 책(각주 95), 218면 이하 참조.

130) E. Uslaner, 위의 논문, 128면 이하 참조.

131) E. Uslaner, 위의 논문, 1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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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2 서울대학교 法學 제54권 제3호 (2013. 9.)

친밀감의 결여 때문이다. 오페는 (사회)제도들이 특정한 가치들을 대변하면서 신뢰를

매개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132) 낯선 이들 사이에서 전반적 신뢰가 공식적 제도를

통해서 생성되고 발전되는 과정을 두 가지 측면에서 분석하고 있다. 하나는 사회

제도의 도덕적 설득력(moral plausibility)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낯선 이를 신뢰할

때 예상되는 리스크의 축소라는 측면이다.133)

이 두 측면을 종합하여 살펴보도록 하자. 각 개인에게 해악을 끼칠 능력을 가진

제도적 행위자 유형은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시민 일반의 네 가지로 대별된다.

이 행위자 유형 각각에 대한 개별적 정보들이 부족하여 개인적으로 신뢰할 기초가

미흡하므로 대체로 시민 개인은 이 행위자들을 특징짓는 제도들에 대한 지식에 입각

하여 신뢰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가늠하게 마련이다.

정치적 신뢰로서의 법적 신뢰의 핵심문제는 다음과 같다. 내가 개인적으로는 알지

못하는 이 낯선 이들에 대한 신뢰, 즉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시민 일반을 향한

신뢰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각각의 제도들이 어떤 특성을 가져야 하는가? 사회제도들,

특히 정치제도와 법제도들은 사회적 신뢰와 공적 신뢰의 확립을 위해서 어떤 특성을

가져야 하는가? 제도들에 담겨 있는 어떤 가치들이 신뢰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는가?

법은 국지적인 신뢰가 아닌, 사회전반적으로 일반화된 신뢰의 형성에 어떤 방식으로

기여하는 것일까?

오페에 따르면, 사회전반적인 신뢰 형성에 중요한 ‘특수한 가치군’(a specific set

of values)이 있고, 제도들이 이 가치군을 지향하고 시행할 때 신뢰가 사회전체적으로

정착되고 확산된다. 거꾸로 표현하면, 이 특수한 가치들의 어느 하나나 또는 모두를

제도들이 배반하거나 불충분하게 실현한다면 신뢰를 매개하는 제도의 역량은 심각

하게 손상된다는 것이다.134)

오페에 의하면, 사회전반적 신뢰를 창출하는 가치는 진실과 정의이다. 각각의 가

치가 시행되는 방식을 소극적인 방식과 적극적인 방식으로 구분하면 다음과 같은

조합이 생겨난다.

132) C. Offe, 앞의 논문(각주 80), 65면 이하 참조.

133) C. Offe, 위의 논문, 72면.

134) C. Offe, 위의 논문, 73면. 민주적 제도의 실현에 필요한 민주적 가치군에 대한 경험적 연구는 로널드 잉글하트․크리스찬 웰젤, 민주주의는 어떻게 오는가, 김영사, 2011, 308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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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합행동, 신뢰, 법 / 金度均 583

<표> 신뢰창출 價値群과 기능135)

진실(truth) 정의(justice)

소극적 작동방식 진실 말하기(truth-telling) 공정성(fairness)

적극적 작동방식 약속 지키기(promise-keeping) 연대(solidarity)

이 표를 통해서 오페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진실 가치가 사회적 제도들 속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으며, 이를 매개로 해서

사회전반적인 신뢰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오페에 의하면, 제도들이 구성원들로

하여금 진실말하기 규범을 지향하도록 하고 이 규범위반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한에서, 제도는 사회전반적 신뢰를 창출한다. 제도화된 정직성과 진정성(institutionalized

honesty and authenticity)의 틀 내에서 사회구성원들이 서로 대면할 때, 각 개인은

익명의 타자를 신뢰하게 된다는 것이다. 신뢰를 창출하는 준거 가치(trust-engendering

reference value)로서 진실은 언론의 자유에서 시작해서 소송절차에까지, 대학시험

에서 제품심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회적 제도들 속에서 구현되고 있다. 이처럼

진실말하기를 담보하고 시행하는 제도들이 사회적으로 안착되어 있을 때 사회전반적

신뢰가 구축된다.136)

둘째, 약속준수와 계약준수라는 덕목은 진실말하기의 적극적 작동방식이다. 이미

발생한 사실에 관하여 거짓말을 하지 않고 진실을 말한다는 것을 넘어서, 내가 장래에

행할 행동과 관련된 현재의 진술을 나중에 참인 것으로 만드는 적극적인 행위를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사회제도 전반에서 관찰되는 약속준수의 가치를 이런저런

제도들이 심각하게 위반한다면 사회전반적 신뢰는 형성되지 않을 것이다.137)

셋째, 사회전반적 신뢰는 공정성, 불편부당성, 중립성으로 구성된 정의의 가치들을

담보하고 시행하는 제도들을 통해서 강화된다. 법 앞의 평등과 평등한 정치적 참여는

정의 가치의 전형적인 예이다. ‘낯선 이들’ 사이에서 신뢰를 확산시키려면 국가는

‘낯선 이들’이 차별 없이 공적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정의의 가치가 차별을 하지 않는다는 소극적인 방식으로 실현

되면서 신뢰가 형성되는 과정이기도 하다.138)

135) 이 표는 C. Offe, 앞의 논문(각주 80), 73면의 것을 인용한 것이다.

136) C. Offe, 위의 논문, 74면.

137) C. Offe, 위의 논문, 74면.

138) C. Offe, 위의 논문, 7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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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4 서울대학교 法學 제54권 제3호 (2013. 9.)

넷째, 기존의 비합리적 차별에 따른 희생이 적극적으로 교정되고 보상될 때 사회

전반적 신뢰는 강화된다. 법적용의 평등을 넘어서는 사회정의의 실현, 이에 기반을

둔 사회권의 보장, 법을 통한 그리고 법이 적용되고 난 이후의 기회평등 실현은

신뢰창출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의 적극적 가치인 연대를

사회제도들이 대변할 때 신뢰가 창출되는 적극적인 메커니즘을 보여준다.139)

오페의 견해를 받아들여 법이 사회전반적인 신뢰를 창출하고 확산하는 메커니즘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법제도, 법담당자와 법시행자가 진실말하기, 약속준수, 공정성, 연대라는 가치들,

즉 사회전반적 신뢰의 창출에 특별한 기능을 하는 가치들을 표현하고 시행할 때

법에 대한 신뢰가 높아진다. 법에 대한 신뢰를 통해서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사회

전반적 신뢰가 형성되고 확산된다.

구성원들의 이해관계와 가치관이 다원화되어 있는 사회에서 법은 위의 신뢰형성

가치군을 매개로 하여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신뢰형성에 기여한다.140) 다원화된 사회

조건 하에서 일반화된 신뢰는, 후쿠야마의 주장과는 달리, 비공식적 사회규범들만

으로는 유지되지 않는다. 비공식적 사회규범들에 의한 제재만으로는 낯선 이들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안정적인 협조가 보장될 수 없는 까닭이 있다. 합리적 이기주의 인간형과

호혜적 인간형이 상호작용을 하는 경우에 배신을 하는 자들을 응징하는 제재 장치

가 없거나 불충분하게 작동되면, 합리적 이기주의 인간형이 득세를 하면서 호혜적

인간형이 점차로 도태되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무임승차행위자나 배신자를 응징

하는 제도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법이라면, 정치경제적 발전에 중요한 사회전반적

신뢰는 법을 통해서 증진된다는 결론을 이끌어내도 무방할 것이다.141)

그런데 법적 규제가 언제나 신뢰의 토대를 형성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법이

신뢰의 기초를 허물어 버릴 경우도 있다. 이하에서는 법이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신뢰 형성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어떤 조건 아래에서 그러한 신뢰 형성 및

유지의 역할을 하는지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139) C. Offe, 앞의 논문(각주 80), 75면.

140) J. Knight, 앞의 논문(각주 64), 354면 이하 참조.

141) J. Knight, 위의 논문, 36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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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합행동, 신뢰, 법 / 金度均 585

  1. 법에 대한 신뢰

법치가 무력하다고 인식되는 사회, 가령 범죄행위가 처벌받지 않고 넘어가는

사회에서는 협력자들이 배신자들을 처벌하기보다는 오히려 배신자가 협력자들을

보복하는 반사회적 ‘복수’ 형식의 응징이 만연하게 된다. 그 결과 협력은 극히 보기

힘들게 되며 재활용, 이웃돌보기, 투표, 지역환경 보호, 기후변화에 대한 대처 등의

시민정신에 입각한 운동은 조롱받고, 사람들 사이에서 무임승차하려는 경향이 확산

된다. 이와 같은 상황을 방지하려면 무임승차자를 응징하는 규칙과 협력행위자를

북돋아 주는 제도의 도입이 매우 중요하다. 법치주의 목표는 바로 협력 시스템을

유지시키고 안정적으로 만드는 데 있다. 법치주의가 정착된 현실적 모습은 법의

실효성(實效性: effectiveness)으로 나타난다. 법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핵심

열쇠는 시민들 대다수가 법을 존중하고 지키는 것(public compliance with law), 즉

법의 권위를 존중하는 것에 있다.142) 시민들의 법 준수 의식과 태도를 증진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들이 필요한 것일까? 여러 조건들이 있겠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법에 대한 신뢰이다.

(1) 법의 권위 존중

법을 신뢰한다는 것은 결국 법을 제정하고 적용하며 집행하는 당국(법당국: 입법부,

사법부, 검찰, 경찰, 교도소 등)을 신뢰한다는 것이다. 법에 대한 신뢰는 곧 법당국의

권위에 대한 신뢰이기도 하다. 수평적인 사회관계에서의 사적 신뢰 문제와는 달리

권위관계(authority relation)에서 형성되는 신뢰 문제는 어떤 속성을 갖는 것일까?

권위관계의 속성은 무엇일까? 그리고 권위를 갖는다는 것은 무엇을 함축하는 것일까?

권위는 지식이나 앎과 관련된 권위인 이론적 권위(theoretical authority)와 행동과

관련된 권위인 실천적 권위(practical authority)로 대별된다.143) 어떤 분야에 이론적

권위를 갖는 사람 P가 그 분야와 관련해서 어떤 발언을 하면, 별다른 사정이 없는 한

142) 이에 관한 상세한 고찰은 T. Tyler/Y. Huo, Trust in the Law: Encouraging Public Cooperation with the Police and Courts, New York, 2002. 그리고 T. Tyler, “Trust and Law Abidingness: A Proactive Model of Social Regulation”, Boston University Law Review 81 (2001), 361-406 참조. 또한 T. Tyler, “Building a Law-Abiding Society: Taking Public Views about Morality and the Legitimacy of Legal Authorities into Account When Formulating Substantive Law”, Hofstra Law Review 28 (2000), 707-739면 참조.

143) 권위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으로는 박효종, 국가와 권위, 박영사, 2001; 동저자, 민주 주의와 권위, 서울대학교출판부, 200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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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6 서울대학교 法學 제54권 제3호 (2013. 9.)

우리는 그 분야에 관한 우리 자신의 판단보다는 P의 발언을 수용하여 일단 그것에

따른다. P의 발언이 그 분야에 관한 우리의 믿음과 판단을 대체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관한 실천적 권위를 갖는 사람이 어떻게 행동

하라는 지시나 또는 행동했으면 좋겠다는 조언을 하면, 별다른 사정이 없는 한, 우리는

그 지시나 조언을 수용하고 일단 개인적 판단을 접어 둔다. 요컨대 권위관계의

특성은, 권위를 갖는 자의 발언이나 지시가 있으면 우리는 그 내용의 타당성에 대한

개인적 판단을 일단 접고 그것에 따른다는 것이다. 이것이 권위 개념의 본질이다.144)

반면 권위 없는 자의 발언이나 지시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이 경우 우리는 그

사람의 발언이나 지시의 내용이 맞는지 아닌지를 따지게 된다. 권위 있는 자의 판단은

그 판단 내용의 타당성 여부에 대한 의심에 노출되지 않으며, 권위 아래 놓여 있는

자가 행할 판단을 대체하게 된다. 바로 이 현상이 바로 권위관계의 속성이다.145)

그렇다면 실천적 권위의 관계는 다음과 같은 삼단논법으로 표현해볼 수 있다.146)

① X는 실천적 권위를 갖는다.

② X는 우리에게 B가 아니라 A를 하라는 지시(조언)를 내렸다.

③ ∴ 우리는 원래 가지고 있었던 행위근거들을 X가 제시한 행위근거 A로 대체

하고 그것에 따라야 한다.

법의 권위는 실천적 권위에 속하므로, 이하에서는 실천적 권위로서의 법의 권위에

주목하도록 하겠다. 법은 시민들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관한 행위근거(reason

for action)를 제시한다. 예를 들어 빨간 신호등에는 정지하라는 법규범은, 빨간 신호등

이 켜지면 사람들이 정지해야 할 행위근거를 제시한다. 보행자나 운전자가 가짐직한

개인적 행위근거들, 가령 정지하지 않고 가면 시간을 절약한다거나 업무상 급한

일이 있다거나 아픈 부모님을 뵈러 급하게 가야 한다거나 하는 개인적이거나 경제적

또는 윤리적 사유들은 법규범이 제시하는 행위근거에 의해 일단 차단되고 대체된다.

옥스퍼드 대학교 법철학자 조셉 라즈(J. Raz)에 따르면, 법의 본질적 속성은 위와

같은 실천적 권위를 수범자들을 향하여 주장한다는 점에 있다.147) 이러한 법의 권위

144) 박효종, 국가와 권위, 118면 이하; 민주주의와 권위, 37면 이하 참조.

145) 박효종, 민주주의와 권위, 44면 이하 참조.

146) J. Raz, The Morality of Freedom, Oxford, 1986, 46면의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147) J. Raz, The Authority of Law, Oxford, 1979, 30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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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합행동, 신뢰, 법 / 金度均 587

주장(law’s claim to authority)은, 그 권위주장이 과연 정당한가라는 도덕적 정당화나

정치적 정당화의 물음이나 그 권위주장이 실제 효과를 발휘하고 있느냐는 법의 실효성

물음과는 별개로, 법이라면 반드시 가지게 되는 속성이다. 빨간 신호등에는 정지

하라는 법규범에는, 그 지시된 행위근거를 사람들이 수용하여 그것으로 각 개인의

원래 행위근거들을 대체하고 따를 것을 요구하는 속성이 필연적으로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148)

법의 권위가 존중된다는 것은, 수범자들이 법의 권위주장을 받아들여 각자 개인적

행위근거들을 접고 법이 제시하는 행위근거대로 기꺼이 행동한다는 것이다. 법의

권위가 존중된다는 것은 결국 시민들이 법을 존중하고 법의 지시를 준수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법의 필연적 속성인 권위주장이 현실에서 실현되려면, 수범자들이

법을 제정하고 적용하고 집행하는 법당국의 권위 또는 법공무원들의 권위를 존중

해야만 한다. 법의 속성에 기대어 법당국이 권위주장을 하지만 그 주장이 존중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법당국의 권위주장에 대한 존중은 어떻게

형성될까?

(2) 법당국의 권위와 신뢰

법의 권위에 대한 신뢰는 법 준수의 행동으로 나타난다. 시민들이 법을 준수하게

되는 동기에 관한 경험적 연구들이 미국 학계에서 깊이 있게 진행되었기에 이들을

참조하여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149)

한국법제연구원의 <2008 국민법의식조사연구>150)를 보면 우리 사회의 법준수

정도에 대한 질문에 대해 지켜지지 않는다는 답변이 62.8%였는데, 응답자 자신이

법을 준수하는 정도를 묻는 자가진단에는 ‘매우 잘 지킨다’는 13.1%, ‘잘 지키는

편이다’는 77.8%로 약 90% 정도의 자발적 법준수 태도의 비율을 보였다.151) 반면

148) J. Raz, 앞의 책(각주 146), 57면 이하 참조.

149) 미국에서 행해진 경험조사들(the Chicago Study[1984], the Oakland Study[1997], the California Study[1998], the National Center for State Courts funded by the Hearst Corporation[1999/2000]) 등의 내용과 결과에 대해서는 T. Tyler, “Trust and Law Abidingness: A Proactive Model of Social Regulation”, 361면 이하. 그리고 T. Tyler/Y. Huo, Trust in the Law, 28면 이하 참조. 또한 T. Tyler, Why People Obey the Law, New Haven, 1990 참조(이 책은 2006년에 저자가 25쪽 가량의 후기를 첨가하여 출간 되었다. T. Tyler, Why People Obey the Law, Princeton and Oxford, 2006. 이 논문에서 인용된 것은 2006년 판이다.).

150) 이세정․이상윤, 2008 국민법의식 조사연구, 한국법제연구원(2008.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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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8 서울대학교 法學 제54권 제3호 (2013. 9.)

법을 지키지 않는 이유로 “법대로 살면 손해를 보니까”라는 답이 34.3%,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아서”라는 답은 20.1%였다는 점은 한국 사회구성원들의

법에 대한 불신이 상당한 수준임을 보여주는 것이다.152) 그리고 남들이 법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나도 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의식은 호혜성 규범의 증진이 유용한 법

준수 동기일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또한 읍면 지역

으로 갈수록, 학력이 낮을수록 “법을 지키지 않은 사람이 많아서 나도 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답이 많이 나온다는 점은 사회적 약자의 법의식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예이기도 하다.153)

그리고 법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97.7%의 비율로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법의

공평성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권위적이다 43.6%, 불공평하다 32.6%, 민주적이다

14.2%, 공평하다 8.9%로 나타났다. 대체로 법의 불공평성에 대한 인식이 높다는

점을 보여준다.154) 가장 시급하게 퇴치되어야 할 위법행위로서 부정부패를 꼽은

답이 54.9%에 달한다는 것은 법에 대한 신뢰 형성과 관련해서 시사점이 크다.155)

자신의 법준수 태도와 비교할 때 타인의 법준수 태도에 대한 신뢰는 높지 않다는

결과는 앞에서 언급한 호혜성이 작동하여 언제든지 법에 대한 불신이, 비협조적

태도가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법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강한, 그리고 소극적 호혜성이 작동하여 법에 대한 불신이 가속화될 가능

성이 큰 한국 사회에서 시민들이 법을 신뢰하고 법의 권위를 존중할 수 있게 만드

는 조건은 어떻게 마련될 수 있을까?

미국에서 이루어진 경험적 연구에 따르면, 시민들이 법당국의 결정을 존중하고

따르는 이유는 대체로 두 가지이다.156) 하나는 당국의 결정이, 종전의 자료를 바탕

으로 계산해볼 때,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151) 이세정․이상윤, 앞의 책(각주 150), 201면 이하 참조.

152) 이세정․이상윤, 위의 책, 192면 이하 참조.

153) 미국에서 사회적 소수집단이 법과 법당국에 대해 가지는 법의식은 T. Tyler, “Public Trust and Confidence in Legal Authorities: What Do Majority and Minority Group Members Want from the Law and Legal Institutions?”, Behavioral Sciences and Law 19 (2001), 215-235면 참조.

154) 이세정․이상윤, 위의 책, 101면 이하 참조.

155) 이세정․이상윤, 위의 책, 205면 이하 참조.

156) T. Tyler, “Trust and Law Abidingness”, 365면 이하 참조. 최근 미국 사회의 사회적 신뢰 수준이 떨어졌다는 진단에 대해서는 로버트 퍼트넘, 앞의 책(각주 95), 223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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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합행동, 신뢰, 법 / 金度均 589

시민들은 그 결정을 따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결정을 내리는 당국의 목적이나

동기에 대한 신뢰(trust in motive of legal authorities) 때문에 따르는 경우이다. 즉

시민들은, 시민 자신들의 필요에 대해 법당국이 큰 관심을 가지고서 최선의 이익을

낳도록 신경을 쓰며 이해당사자들의 견해를 배려하고 고려한다고 판단할 때, 그리고

공정하고자 애쓰고 있다고 판단할 때 법당국의 결정에 대해 신뢰하고, 그 결정을

존중하고 따른다. 법당국의 동기에 대한 신뢰는, 당국의 결정이 자기에게 유리한

결과를 가져다준다고 시민들이 판단하는 경우와는 분명하게 다른 내용과 방식으로,

그 결정에 대한 시민들의 존중과 복종에, 그리고 그 결정을 따라야겠다는 의무의식에

영향을 미치며 더 강한 안정성을 갖게 된다.157)

타일러는 시민들이 법을 지키는 동기를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을 제시하고 비교

하고 검토한다. 하나는 도구적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규범적 또는 비도구적 관점

이다.158) 전자는, 시민들이 법을 지키는 이유는 법 준수가 가져다 줄 개인적 이득과

손실을 계산하여 이득이 더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사람들의 동기를

<외부적 요인 + 개인적 득실 판단>의 결합, 즉 경제적 유인과 처벌에 대한 개인의

반응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법을 준수하는 것은 수

범자의 이득에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이 도구적 접근방식은 학자들의 분석방편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수범자들이 법을 지킬 것인가 위반할 것인가를 잴 때 작동되는

현실적인 동기이기도 하다. 현실의 수범자들이 법을 준수하는 실제 동기가 본질적

으로 도구적이라면, 법치주의 확립을 위해서 법당국은 법위반의 비용을 증가시키는

대책을 세워야한다. 그리고 법 준수를 이와 같이 득실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수범

자들이 대다수라면, 도구적 접근방식은 경험적으로도 맞고 시민들의 행동을 통제

하는 대책으로도 타당할 것이다.159)

반면 규범적 접근방식은, 사람들이 옳고 도덕적인 것으로 판단하는 가치들에 비추

어서 법 준수의 동기를 고찰한다. 이 관점에 따르면, 시민들이 법을 지키는 것은

법을 준수하는 행위 자체가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게 믿는 데는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수범자 개인이 도덕적으로 옳다고 믿는 가치들이 법규범에 담겨

있다고 판단할 때와 법을 제정하고 적용하는 법당국의 정당성이 있다고 판단할 때

157) 이에 대해서는 T. Tyler, “Why does people rely on others? Social Identity and the Social Aspects of Trust”, K. Cook (ed.), 앞의 책(각주 64), 286면 참조.

158) T. Tyler, Why People Obey the Law, 3면 이하 참조.

159) T. Tyler, 위의 책,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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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0 서울대학교 法學 제54권 제3호 (2013. 9.)

이다.160)

법의 권위 확립과 관련해서 한국 사회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견해는, 법의 권위를

확립한다는 것은 법을 엄정하게 집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생각이다. 엄정(嚴正)

하다는 것은 엄격하고 공정하다는 것일 텐데, 법의 엄정한 적용과 집행이라는 관념

에는 어쩌면 다음과 같은 발상이 놓여 있을지도 모르겠다.

법의 권위 확립은 곧 시민들이 법을 준수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법의 준수는

법위반의 동기를 처벌위협으로써 또는 처벌의 엄격한 집행으로 제거하거나 약화

시킴으로써 달성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법위반이 자기에게 가져다 줄 이득과 비용을

계산하여 그 비용이 더 크다고 판단할 때, 또는 체포되고 처벌될 확률이 크다고

판단할 때, 법을 지킬 것이기 때문이다. 법을 준수하고 위반하는 인간의 동기가 그러

하다면, 법의 엄격한 집행은 곧 법위반이 가져다 줄 위험부담을 높인다. 이럴 때

법의 권위가 확립되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법당국의 견해는 이러한 도구적 관점을 기반으로 하여 이론화된

억제/처벌/통제 모델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실제 한국 사회 구성원들도 다른

사람들이 법을 지키는 이유를 앞서 설명한 도구적 관점으로 파악하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물질적 유인책의 사회적 신호 효과, 물타기 효과, 밀어

내기 효과(‘cueing, masking, and crowding out effects’)161)로 인해 처벌중심적 패러

다임은 오히려 시민들 사이의 신뢰와 법당국에 대한 신뢰 형성과 관련해서 적절한

조치들을 제시하지 못한다.162)

이러한 점은 경험적 연구를 통해서도 잘 나타난다. 미국의 법심리학자 타일러(T.

Tyler)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은, 법 준수의 동기에 관한 도구적 접근방식과 규범적

접근방식 중 전자가 현실을 더 잘 설명한다고 여기는 통념과는 다른 연구결과를

제시하였다. 타일러 등은 경험적 연구를 통해서 체포/처벌될 확률이나 법위반의 비용

증대라는 물질적 유인책의 도입이 법을 준수하는 의식과 태도 형성에 영향을 미치

기는 하겠지만 부차적인 요인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통념과는 달리, 적어도 미국

사회의 시민들 스스로는 자신의 법 준수 동기를 비도구적 관점에서 파악하고 있다는

160) T. Tyler, 위의 책, 4면; T. Tyler, “Trust and Law Abidingness”, 366면 이하 참조; T. Tyler, “Building a Law-Abiding Society”, 711면 이하.

161) D. Kahan, 앞의 논문(각주 52), 340면.

162) D. Kahan, 위의 논문, 338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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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합행동, 신뢰, 법 / 金度均 591

것이다.163) 이러한 경험적 연구 결과는 한국 사회에서의 법 준수 의식 및 태도를

고찰하는 데에도 유의미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사회구성원들의 가치를 형성하는

문화적 요인들이 상이하기는 하나 인간의 심리적 동기에 대한 연구들은 대체로 인간의

심리를 구성하는 요인들은 큰 차이 없이 유사한 내용을 갖는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164)

경찰과 법원에 대한 시민들의 체험을 묻는 수차례에 걸친 대규모 경험연구(설문

조사나 인터뷰 등)를 통해서 타일러는, 흔히 짐작하는 것과는 달리, 사람들은 법

당국의 결정이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해서 신뢰하는 것은 아니라는

결과를 제시하였다. 법당국이 그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공정하려고 노력했다고

시민들이 믿거나, 법당국이 당사자들의 필요에 관심을 쏟고 의견이나 이해관계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며 당사자들을 존중한다는 느낌을 시민들이 받을 때, 설령 자신

에게 불리한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시민들은 법당국의 결정을 받아들이고 존중한다는

점이 경험적으로 입증된다는 것이다.165) 이 연구 결과는 주목할 만한 것인데, 인간의

동기를 단순히 경제적 합리성을 넘어서는 호혜성의 맥락에서 파악하는 것이 이론적

으로나 경험적으로나 더 적합성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3) 법에 대한 신뢰의 토대: 경험적 연구 결과

외부에서 부과된 강제규범이 사람들 사이의 협조를 증진하고 신뢰를 형성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탐구한 학자들의 연구결과를 살펴보도록 하자. 사람들 사이에

의사소통이 충분히 이루어지는 상황에서라면, 비공식적 사회규범들은 외부에서 부과

된 강제규범 시스템만큼이나 협조행위를 증진한다. 반면, 외부에서 부과된 강제

규범의 도입과 적용으로 유지되는 협조행위는 그 도덕적 토대가 미약하기 때문에

손쉽게 소멸할 수 있다. 최악의 경우는 국가에 의해 강제규범이 부과되었지만 무임

승차행위를 제대로 감시하지도 못하고 처벌하지도 않는 경우이다.166) 그렇다면 외부

에서 부과되는 공식적 규범인 법이 자발적 협조행위와 신뢰의 토대를 잠식하기

보다는 이를 발생시키고 증진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앞서 설명한 법의 표현적

기능에 주목하면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163) T. Tyler, “Trust and Law Abidingness”, 372면 이하 참조. 또한 T. Tyler/Y. Huo (ed.), Trust in the Law, 47면 이하 참조.

164) T. Tyler, 위의 논문, 372면 이하 참조.

165) T. Tyler, “Trust and Law Abidingness”, 374면 이하 참조.

166) 대표적으로 E. Ostrom, 앞의 논문(각주 8), 147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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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2 서울대학교 法學 제54권 제3호 (2013. 9.)

법에 대한 신뢰의 토대로 결정과정의 공정성과 법당국의 정당성을 꼽는 것에는

누구도 토를 달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공정성과 정당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다. 앞에서 서술한 도구적 관점에 따르면, 공정성은 결과의 유불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회(무기)의 평등과 연관성을 갖는다.167) 이 관점에서의 공정성 판정은

유리한 결과들을 낳을 수 있도록 결정과정에 영향을 어느 정도 미칠 수 있는지에

비추어서 이루어진다. 다른 사람이 전관예우의 기회를 이용한다면 나도 이용할 수

있어야 공정하다고 인식한다는 것이다. 결정의 정당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168)

반면 비도구적 관점은 공정성을 다음과 같은 다면적 기준들에 비추어서 판정한다.

우선 결정과정에 참여할 기회의 측면에서 공정성을 판정할 수 있다. 참여 요인에는

결정과정에 당사자들 자신의 입장과 견해를 개진하고 경청될 기회가 충분히 주어

졌는가, 그리고 법당국에 의해 그 의견들이 진지하게 고려되었는가가 포함된다. 둘째,

결정과정의 중립성(불편부당성)도 절차의 공정성을 판단하는 데 고려사항이 된다.

셋째, 당사자들이 인간적 대우를 받았는가, 당사자들이 차별 없이 공평하게 대우받

았는가, 그들의 권리가 존중되었는가, 그리고 당사자들의 관심사들이 충분히 청취

되고 적절하게 배려되었는가도 포함된다. 넷째, 법당국이 공정하게 행동하려는 동

기가 있었느냐 여부에 대한 판단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섯째, 설령 자신에게 불

리한 결정이라고 하더라도 판단 근거의 적정성도 절차적 공정성 판단의 고려사항

이 된다.169)

타일러는 법당국과의 체험에 관한 설문조사에서 시민들에게 ㉠ 결과의 유․불리

(the favorability of the outcome), ㉡ 결정과정에의 참여와 의견개진(voice and

participation in decisions), ㉢ 법당국의 동기에 대한 신뢰(trust in the motives of

authorities), ㉣ 법당국이 시민을 대하는 태도(the quality of interpersonal treatment),

㉤ 법당국의 중립성(the neutrality of the authorities) 5개 항목을 제시하고, 법 존중과

준수에 미치는 각 요인의 영향을 비교․검토하였다.170) 결정절차의 공정성을 경험한

시민들은 법에 대한 큰 신뢰를 보여주었는데, 이 공정성 판단에는 결정과정에의

167) T. Tyler, Why People Obey the Law, 161면 이하 참조.

168) 이와 같은 관점에서 공정성과 절차적 정의의 핵심을 이해하는 견해로서 대표적으로 J. Thibaut/L. Walker, Procedural Justice, New Jersey, 1975 참조.

169) T. Tyler, Why People Obey the Law, 123면 이하 참조. 그리고 T. Tyler, “Trust and Law Abidingness”, 378면 이하 참조.

170) T. Tyler, “Public Mistrust of the Law: A Political Perspective”, University of Cincinnati Law Review 66 (1998), 848면 이하 참조. 또한 T. Tyler, Why People Obey the Law, 45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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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합행동, 신뢰, 법 / 金度均 593

참여(의견개진)와 존중받았다는 느낌이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음이 확인

되었다. 특히 법당국에 대한 신뢰와 관련해서 결정자의 전문적 능력(competence)과

신의성실함(benevolence; good faith)을 비교한 결과, 후자의 요인이 상대적으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171) 또한 법당국의 동기에 대한 판단이 법과

법당국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데에도 상당한 역할을 한다는 점도 드러났다.172)

법에 대한 신뢰와 법준수 의식의 형성에 경찰, 검찰, 판사가 당사자들의 필요와

관심사에 귀를 기울이고 공정하게 처리하려고 노력하는 태도가 전문적 역량보다 더

중요하다는 타일러의 연구 결과173)는 한국 사회에 의미하는 바가 크다. 즉 시민들

이 법공무원들의 전문적 역량보다 그 태도에서 더 큰 감화를 받는다는 것은 결정

과정의 냉정한 중립성을 중시하는 방안에서 신뢰에 기반을 둔 방안으로 정책전환

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 그리고 냉정한 중립성에 기반을 둔 권위보다는 신뢰에

기반을 둔 권위(trust-based authority)를 확립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함축하기 때문이다.174)

<2008 국민법의식 조사연구>에 의하면, 한국 사회에서 권력과 재력이 재판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의견이 95.6%이며175) 국민의 여론이 재판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은 76.7%에 달했다.176) 이는 국민의 여론에 의한

재판을 찬성하는 의견이라기보다는 공정성의 실현을 위해서 사법부가 국민 대중의

의견과 소망을 진지하게 고려해 주었으면 하는 심정의 발로라고 해석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4) 법에 대한 불신의 극복 방안

한국 사회에서 법에 대한 신뢰를 제고하는 방안은 무엇일까? 박철 변호사는 그의

논문 “경제발전을 위한 법치주의”에서 법에 대한 신뢰제고의 방안을 제시하였는데,

귀담아들을 만한 견해라고 생각하여 이를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177)

171) 설문조사의 결과에 대한 다층적 분석은 T. Tyler, “Trust and Law Abidingness”, 385면 이하; T. Tyler, “Public Mistrust of the Law”, 850면 이하 참조; T. Tyler, Why People Obey the Law, 71면 이하 참조.

172) T. Tyler, “Trust and Law Abidingness”, 375면 이하 참조.

173) T. Tyler, 위의 논문, 381면 이하 참조.

174)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법당국에 대한 태도에 관해서는 이세정․이상윤, 앞의 책(각주 150), 231면 이하 참조.

175) 이세정․이상윤, 위의 책, 236면 이하 참조.

176) 이세정․이상윤, 위의 책, 238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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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4 서울대학교 法學 제54권 제3호 (2013. 9.)

우선 박철 변호사는 법담당공무원의 직무평가에서 부패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공무원이 법을 부당하게 집행하여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지는 않는지의 관점에서도

접근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부정부패의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공무원들이

지나치게 형식적으로 법규를 집행하여 시민들에게 불편함을 가중시키고, 이로 인해

불필요한 행정소송을 유도하는 결과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둘째, 법이 명확한 내용을

갖도록 제정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셋째, 법규범의 합리성이 갖추어지도록 설계

되어 적어도 해당 법규범이 적용되는 핵심영역에서는 합당한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규범의 속성상 모든 사례를 포괄할 정도로 명확성을 가질

수 없으므로, 법규범이 겨냥하는 핵심영역에서는 명확하되 주변부로 갈수록 법규

범의 의미가 불명확해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애당초의 잘못된 설계로 적용의

핵심부에서조차 합리성에 의문을 갖도록 제정된 법규범이 있다면 법 전반에 걸쳐

불신을 낳게 된다는 것이다.

넷째, 판결의 품질을 높이는 것이 법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데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재판의 지식기반이 확충되고 풍부해질 수 있도록 다각도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

이다. 그리고 법관들이 법과 현실 사이의 불일치나 간극을 ‘미세조정’(fine tuning)

할 수 있게 역량을 강화하여야 하고, 이를 위해 좋은 법률가 양성시스템이 필요하며

지속적인 교육프로그램들이 가동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법에 대한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고 박철 변호사는 강조한다.

향후 이러한 제안이 구체화되고 실현가능한 방안으로 정교화된다면 법과 법기관에

대한 신뢰는 크게 향상될 것이다.

IV. 맺음말— ‘법을 지키는 사회’와 신뢰

‘법을 지키는 사회’(law-abiding society)를, 대부분의 시민이 법적 규제에 동의하고

법당국에 협조하려는 동기를 가지고서 법을 준수하며 법당국의 권위에 자발적으로

따르는 사회로 파악한다면178), 그러한 사회의 확립이야말로 법치주의의 최종 목표

일 것이다. 그런데 법을 지키는 사회가 확립되려면, 법위반시 체포되고 처벌될

개연성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법을 준수해야겠다는 책임감을 갖게끔 하는 사회적

177) 박철, 앞의 논문(각주 3), 69면 이하 참조.

178) T. Tyler, “Building a Law-Abiding Society”, 708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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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합행동, 신뢰, 법 / 金度均 595

가치들이 전반적으로 공유되는 법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법의

표현적 기능을 다루면서 살펴본 바 있다. 강제력의 행사나 처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법의 권위에 대해 자발적으로 존중하기 때문에 시민들이 법을 지키는 사회. 이러한

사회는 법과 법당국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하여 형성될 것이다.

법당국의 동기에 대한 신뢰가 법당국의 권위 존중의 토대라면, 그러한 신뢰는

피신뢰자인 법당국의 과거행적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하여 형성된다. 그리고 법의

권위, 법당국의 권위에 대한 신뢰는 추상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일상생활에서 경찰, 검찰, 법원과 만나면서 얻은 개별적인 체험들을 통해서,

그리고 법당국의 행태에 대한 정보들을 통해서 형성된다. 특히 범담당공무원들이

시민들을 대하는 구체적인 모습들에서 법당국에 대한 신뢰의 기초들이 축적되어

간다는 점에서 경찰, 검찰, 법원에 있는 법담당공무원들의 태도는 법에 대한 신뢰

형성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떤 사회건 역사적 전환점이 있기 마련이다. 아주 지대한 장기적 결과를 가져

오는 역사적 전환점은 나쁜 방향으로도, 좋은 방향으로도 생겨난다. 사회적 신뢰의

선순환을 가져오는 계기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신뢰에 기반을 둔 시민들

사이의 생산적 네트워크 형성, 법제정자와 법운용자의 공정성과 공평성에 선순환의

씨앗이 들어 있을 것이다. 이 씨앗의 성장은, 입법자의 노력, 법관들 개개인의 치열한

노력, 시민들의 책임감을 통해서 촉진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법에 대한 신뢰가 정착되고 법을 지키는 사회가 확립되며, 이를 기반

으로 다시 사회에 대한 신뢰와 시민 상호간의 신뢰, 즉 사회적 신뢰가 확산되어

사회전반적으로 신뢰의 균형상태(trust equilibrium)가 확립되었으면 한다.

투고일 2013. 8. 10 심사완료일 2013. 8. 27 게재확정일 2013.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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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6 서울대학교 法學 제54권 제3호 (201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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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합행동, 신뢰, 법 / 金度均 599

Collective Action, Trust, and Law – A Study on the Foundations of Public Trust –

Kim, Dokyun*

179)

Trust in the law is a very important social capital which plays a key role for

developing and maintaining a good society. This article has two goals. The first is to

develop a theoretical framework for justifying the possibility and necessity of

trusting law. The second is to articulate conditions for trusting law in the light of

the logic of collective action. The possibility of trust in general consists in reciprocity

which emerges from interactions between homo reciprocans. Having examined the

relevance of reciprocity for trusting social institutions, i.e. public trust, this article

extends the logic of reciprocity into the theme of law and trust, and tries to explore

the specific set of values which contribute to engender ‘generalized trust’, especially

trust in the law. Those trust-engendering values are truth-telling, promise-keeping,

fairness and solidarity. When legal institutions and officials try to promote and

enforce these values, the law can claim to trust, authority, and obedience. Only if

such conditions are satisfied, a law-abiding society will be entrenched, and therewith

a trust-equilibrium in society can be achieved.

Keywords: collective action, reciprocity, generalized trust, public trust, authority,

law-abiding society

  • Professor, College of Law/School of Law, Seoul National Univers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