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南河 徐元宇 敎授 別世,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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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記 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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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河 徐元字 敎授 別世
2005년 10월 16일 행정법이론실무학회의 고문이신 南河 徐元字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께서 숙
환으로 별세하셨다. 향년 74세. 서울대학교병원에 마련된 빈소에는 친지와 수많은 학계 • 법조
계 • 관계 인사들이 찾아와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고인의 영결식은 10월 19일 서울대학교병원 1층 영결식장에서 고인과 유족의 뜻에 따라 카
톨릭 미사로 진행되었으며 100명이 넘는 조객들이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
다. 영결식에서는 현재 국무총리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인 崔松和 서울대 법대 교수가
甲辭를 하였고,崔鍾庫 서울대 법대 교수가 追慕詩를 낭송하였으며,제자 대표로 朴正動 교수
가 追傅辭를 바쳤다. 숙연한 분위기로 영결식이 행해지는 동안 장내에는 생전의 고인의 모습을
떠올리며 슬픔을 금치 못하는 사람들의 흐느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고인이 생전 즐겨들으시
던 가수 남인수의 <인생선〉노래와 함께 유족들이 준비한 고인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보면
서 참석자들은 다시 한 번 안타까운 마음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영결식을 마친 후 고인의
시신은 유족,제자, 지인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벽제 장묘문화센터에서 귀천하셨고, 남양주시
세종로성당 묘역에 안장되셨다.
중앙대 법정대, 서울대 행정대학원,서울대 법대에서 행정법학을 가르치셨던 고인은 법해석
론적 시각에 의한 전통적 행정법학으로부터 탈피하여 종합과학인 행정과학으로서의 행정법학
의 확립을 주창하셨고, 행정법학의 토착화를 위하여 노력하셨으며, 비교법적 연구를 진행함에
있어 유럽의 행정법만이 아닌 영미의 행정법의 소개에도 큰 힘을 쏟으셨다. 고인은 외부에서의
많은 손짓에도 불구하고 학자로서 정년에 이르기까지 교단을 지키셨으며, 한국공법학회장 등으
로 한국 공법학계의 발전에 헌신하셨다. 또한 고인은 아시아의 법학 교류에도 힘써 1995년 동
아시아행정법학회를 출범시키셨으며, 이러한 고인의 학문적 업적과 공로로써 올해 7월 일본 나
고야대 학으로부터 한국인 최 초로 명 예 박사학위 를 받으셨 다.
유족으로는 부인 李斗英 女史와, 딸 g珠 氏,아들 常敎 氏가 있으며,유족들은 생전의 고인
의 뜻을 기리어 행정법이론실무학회에 성금 500만원을 기탁하였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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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 辭
- 南河 徐元字 선생님의 靈前에 -
제자로서,그리고 동료로서, 선생님과 함께 한 40여 년의 세월을 뒤로 하고,이제 선생님의
영전 앞해 섰습니다. 부드리운 선생님의 얼굴읊 더 이상 외올 수 없고, 선생님의 명패한 말씀
과 낭랑하기 그지없는 노라!를 다시는 들을 수 없다니 실로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더지는 슬픔
일 뿐입니다.
오늘 선생님이 가시고 난 빈자리가 저희해게 이렇게 큰 것임을 매닫고 슬퍼하는 심정이 어
디 저 뿐이겠습니까? 이 땅에 태어나 법올 학문으로 삼은 모든 이들에게 선생님은 실로 위대
한 길잡이이셨기 때문입니다.
남하 서원우 선생님!
이저럼 '발리 가실 줄 무심한 저희들은 정말 몰랑습니다. 지난 5월까지 공법학회, 맹정판레연
구회,교수집담회, 그밖에 크고 작은 연구회모임에 하지지 않고 나오시어 학문적 소신을 일갈
하시고, 7월에는 일본해 가시어 나고야대학해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으셨으며, 여칠 전까지도 전
화통화해서 정정한 목소리로 곧 퇴원하여 만나자고 하시던 선생님이셨습니다. 자•주 선생님을
찾아뵙지 못한 저희들의 불충이 너무나 후회립니다. 그리나 분명 선생님은 이제 하늘나라에서
병마의 고통읊 잊으시고 편안히 거I실 것으로 믿고,더욱 선생님을 가까이 느껍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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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서는 일찍01 1956년 25세해 중앙대학교 법정대학의 전임강사로 막자의 길을 시작
하신 후 50년 간 한 번도 흔들리지 않고 학문을 지커 오셨습니다. 그 후 행정학의 미국 특별
유학 교수요원으로 선발되시어 미국 미네소타 대학에서 공법학과 행정학을 연구하시고 귀국하
여 1960년부터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로서, 1975년부터 서울대 법대 교수로서, 1996년 정년
하실 때까지 오로지 정정법학의 연구화 제자양성에 헌신하셨습니다. 선생님의 학문세게는 미
국 • 영국 • 독일 • 일본 어느 나라에도 치우치지 않는 종합적이고 개방적인 비교법적 방법론, 그
중에서도 특히 미국의 행정절차법을 강조하는 절차법적 사고, 토지공법과 환경법을 개척하시면
서 주창하신 토지공개념, - 토지공개념은 1980년대 말 망국적인 땅투기를 규제하는 여러 입
법으로 실현되었습니다. 一 행정법과 행정학의 연결, 특히 행정법에 있어 정책적 계기의 중시
등, 일일이 앨거할 수 없는 학문적 앨정으로 저희 앞에 우뚝 서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1996년 정년 이후해 더욱 학문적 앨정을 가지시고 일본의 여러 명문 대학에서
초밍교수로 강의화 연구에 몰두하셨습니다 그동안 일본의 행정법을 섭렵하시어 저회에게 가르
저 주셨을 뿐 아니라, 최근에는 우리나라의 발전된 행정소송과 헌법재판제도를 일본에 소개하
시어 일본에서 우리나라의 공법학의 위상을 확립하는 데 걸정적인 공헌을 하셨습니다. 또한 관
심분아를 법문화로 확대하시어,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동양의 법문화, 이슬람의 법문화를 연구
하셨습니다. 선생님의 학문해 대한 사랑과 연구업적은 영원히 저희 곁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진정 따뜻한 마음을 가진 법학자이셨습니다. 아니 해술가이셨습니다. 한편으로 클
레식음악을 그토록 사랑하시어 세계의 귀한 레코드 LP판을 무수히 수집하시어 심포니, 오페라
연주를 즐겨 들으시면서, 동시에 또한 스스로 연주자로서, 하늘이 내러 준 가장 우수한 악기인
그 정아한 목소리로 우리 가곡과 대중가요를 저희에게 들러주셨습니다. 방금 전 저희가 들었던
가수 남인수의 노래를, 정말 선생님이 부르시는 것인지, 가수 남인수가 부르는 것인지 모를 정
도로,그리하여 '서인수'라고 일멀어지실 정도로, 잘 하셨습니다. 선생님의 노래 속에는 앨정과
절제가 항께 있었고, 인생과 철학과 사랑이 담겨저 있었습니다. 저희는 정말 잊을 수가 없습니
다.
존경하는 남하 서원우 교수님, 선생님은 결코 저희로부터 더나실 수 없습니다. 저희 모두의
연구실해, 서재해, 책상해, 그리고 어리와 가슴해 영원히 살아 게십니다. 그리고 저희를 올바르
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제자로서, 동료로서, 선생님과 함께 한 40여 년의 세월, 자랑스럽습니다. 평생 이 땅에 행정
법학의 텃밭을 가꾸시고 그 학문적 꽃을 심고 키우시는 데 진력하신 선생님,이제 이 나라 행
정법학의 앞날은 저회 후학들에게 맡기시고 부디 편안히 영면하시음소서.
2005년 10월 19일
崔松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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追十卓辭 - 南河 徐元字 선생님을 기리면서 -
저희 못난 제자들은 선생님께서 이렇게 빨리 가실 줄 정녕 몰랐습니다. 지난 5월 스승의 날
에 저희들과 함께 하신 것이 언제인데,지난 7월 일본 나고야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으시고
나고야대학 교수들과 만찬을 함께 하고 선생님을 모시고 간 저희들의 아침 속풀이를 위해 라
면을 챙겨 주시던 것이 언제인데,정정한 전화 목소리로 퇴원하면 만나자고 하시던 것이 바로
엊그제인데, 저희들은 청천벽력 같은 사실 앞에 울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습니다. 생전에 잘 모
시지 못한 불충에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으로 가슴을 치고 또 칩니다.
저는 법학도로서,고시공부의 쇠사슬과 당시 어렴풋이 느끼던 학문으로서외 법학에 대한 매
력 사이에서 방황하던 시절,선생님을 꿈같은 인연으로 만났습니다. 주먹으로 저의 배를 치시
면서 “열심히 해,임마”라고 하시던 선생님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대학원 세미나 시간
에 저의 발표를 들으시고 부족한 점을 호되게 꾸짖어시면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던 선생님
은 큰 스승이셨습니다. 선생님의 칭찬을 듣고 싶어 노력하고 또 선생님의 칭찬으로 다시 힘을
얻고 노력하고,그렇게 지금까지 하여 온 것이 어느덧 저의 삶이 되었습니다.
80년대 초 처음 방배동 카페골목이 만들어졌을 시절,선생님께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노래방
인 ‘란’에서 낭랑한 목소리로 많은 노래를 들려 주셨습니다. 당시 왕성하게 발표하시던 수많은
선생님의 논문들을 소화하느라 밤잠을 설치던 저에게는, 긴장을 푸시고, 그러나 정갈한 모습으
로,낭만을 즐기시던 선생님의 모습은 새로운 경지이었습니다. 멋있는 학자의 모습 바로 그것
이었습니다. 저의 편협한, 옹졸한 마음을 부수어 버리기에 충분하셨습니다. 한 마디로,선생님
은 저의 인생을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선생님은 80년대 말,김동희 선생님,최송화 선생님과 함께 저희 제자들을 모두 ‘행정법이론
실무연구회’로 하나로 묶으셨습니다. 이제 회원이 100명이 넘는 모임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그
리고 무려 27명의 교수가 배출되었습니다. 선생님이 뿌리신 씨앗이,선생님의 크고 깊으신 제
자사랑이,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저희 모두는 선생님께서 베풀어주신 제자사랑의 추억을 저마
다 가슴에 품고 오늘 선생님의 영전에 섰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열심히 노력하겠습
니다.
선생님께서는 평생 학자의 길을 지키셨습니다. 정년 이후에도 식을 줄 모르는 학문적 열정
으로,젊은 저희보다도 더, 새로운 이론경향에 관심을 보이시면서 게으른 저희들을 질책하셨습
니다. 지난 6월부터 편찮으시게 된 이후에도 저술을 중단하지 않으셨습니다. 독일 학자들은 칸
트가 사망 한 달 전까지 저술활동을 한 것을 부러워하면서 자신들도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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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선생님께서는 지난 일요일 마지막 입원하실 때까지, 그러니까 돌아가시기 】주일 전까지,
이슬람 법문화에 관한 저술을 하시어,저희에게 너무나 귀한 유고를 남겨 주셨습니다. 끝까지
저희에게 학자로서,큰 스승으로서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렇게 선생님을 보내드리려고 하니 너무나 좋으셨던 스승이셨던 것을 뼈저리게 느입니다.
선생님을 잊지 않겠습니다. 잊을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을 닮겠습니다. 우리 선생님, 우리 선생
님,남하 서원우 요셉 선생님! 하늘나라에서 다시 뵈어 선생님의 명쾌한 법이론과 그렇게 잘
부르시던 남인수의 ‘산유화’ 노래를 다시 들을 수 있을 때까지 부디 편안히 계십시오.
“산에 산에 꽃이 피네,들에 들에 꽃이 지네,산유화야,산유화야 너를 잡고 내가 운다.”
2005년 10월 19일
불초 제자 朴正勤 프란치스코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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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河送歌
요셉 서원우 교수를 보내는 노래
한반도 남쪽 경상도 迎티濟風으로 자라
법학과 행정학을 경비하여
大器晩成으로 구축하신 行政法學.
珠玉같은 논문들을 왕성이 발표하면서도
수험용 교과서 출판은 끝내 내치셨다.
만년에 이를수록 행정법을 넘어서
법의 철학, 문화론으로 추구하시더니,
이웃나라 일본에서 한국법을 가르치시고
동아시아법학 건설에 澤身을 기울이셨다.
마침내 나고야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로
국위를 선양하신 것은 학문적 영광이지만.
속정 김은 그 운운한 웃음
이 세상 어디서 다시 볼까요?
곁에 계시면 늘 은쾌한 情調
이제 가라오케를 누구와 같이 같까요?
애창하시 던 "애수의 소야곡”을
언제 다시 들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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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가신 牧村선생님 만나
천국에 韓國行政法堂 하나 지어눔으세요
韓中티 법문화를 프리즘론으로 설명하셨듯
무지개로 가끔 한국하늘에 떠 주세요.
영원이 南으로 호르는 각물처럼
남북의 밤하늘에 은하수로 을러주세요.
한국법학의 학구적 정렬. 活火山.
큰 스승 南河선생이시여/
2005년 10월 19일
서울대병원 영안실 영결식에서
후학 崔種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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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河 徐元字 敎授 略歷
본 적 :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 5가 104-230
원 적 : 경북 영일군 청하면 용두리 414
주 소 : 서울특별시 양천구 목6동 902 / 목동 신시가지아파트 215동 703호
본 관 : 달성
생년월일 : 1931년 3월 20일
주민등록번호 : 310320-1068312
학 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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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률학과 졸업 (법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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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중앙대학교 대학원 수료 (법학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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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미국 미네소타주립대학교 대학원 수료 (행정학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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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박사학위 취득 (논문제목: 공용수용법제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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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일본 名古屋대학 명예 법학박사 학위 취득
경 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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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중앙대학교 법정대학 전임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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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조교수
-
II : 위 대학원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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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위 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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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1973. 2 : 영국 런던대학교(LSE)에서 사회보장행정법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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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
12 - 1982. 1 : 미국 스탠포드대학교 Law School에서 환경법,미국행정법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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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1987. 8 :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소장
1987 . 9 - 1988. 2 : 일본 東京대학 법학부 객원교수
1988 . 10 - 1990 . 11 : 서울대학교 평의회 의원
1992 . 6 - 1994 . 6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1992 . 6 - 1994 . 6 : 한국 법과대학협의회 회장
1995 .3 - 1995 . 9 : 일본 獨協대학 법학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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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서울대학교 정년퇴직,명예교수로 임명(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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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199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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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199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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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200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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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200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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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2001. 8
일본 名古屋대학 국제개발대학원 객원교수
일본 廣島修島대학 법학부 객원교수
일본 獨協대학 법학부 객원교수
일본 北九州대학 법학부 객원교수
서울대학교 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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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河 서원우 교수 약력 533
- 9 - 2005. 10 : 명지대학교 법과대학 초빙교수
학회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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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1980. 11 : 중앙토지수용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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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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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1997. 6 : 법무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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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1985. 8 : 국토이용계획심의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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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중앙환경보전자문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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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소원법 • 행정소송법개정심의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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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1986 6 : 한국환경법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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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총무처 정책자문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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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1997. 6 : 경제법령정비민간협의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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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총무처 행정심판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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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건설부 행정심판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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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보건사회부 행정심판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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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1988. 7 : 한국공법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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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건설부 토지개념연구 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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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1995. 2 : 한국행정법판례연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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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1994. 2 : 사법제도발전연구 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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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1995. 6 : 한국부동산법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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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1997. 6 : 기업활동규제심의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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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현 재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창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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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1997. 5 : 동아시아행정법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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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행정절차법제정심의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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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현 재 : 한국행정법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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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규제개혁추진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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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일본 名古屋대학 법학부교육평가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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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2005. 10 : 학교법인 성신학원 이사
기 타 : 사법시험,행정시험위원, 한국경제법학회 이사,한국부동산연합회 고문, 한국지방
자치학회 고문,한국행정연구원 자문위원,한국공법학회 고문,헌법재판소 자문위
원 등 역임,건국대,고려대,동국대,명지대,연세대,한양대,성균관대 등 강사
역임
상 벌
-
8 : 서울대학교 30년 근속상 (서울대학교 총장)
-
8 : 국민훈장 동백장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