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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법과 역사 - 존 로크 법철학의 양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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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대학교 비교법학연구소 강원법학 제34권, (2011. 10) 355-387쪽. Kangwon Natl. Univ. Kangwon Law Review Vol.34, (Oct. 2011) pp.355-387.

자연법과 역사 - 존 로크 법철학의 양면성? *

1)

윤 재 왕**

목 차

Ⅰ. 들어가며

Ⅱ. 자연상태, 자연법, 정치적 사회 - 소유권

과의 연관성 속에서

Ⅲ. 인식론적 경험주의와 소유절대주의 - 시

민 중심의 계급국가에 대한 정당화?

Ⅳ. 로크의 국민개념 - 소유를 통한 제한

Ⅴ. 맺음말

Ⅰ. 들어가며

“나로서는 증거가 없다는 말을 증거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증거를 획득할 수 없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증거가 존재하고 또한 획득할 수 있는데 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뜻으로도 이해한다. 즉, 어떤 명제를 확인할 목적으 로 스스로 실험하고 관찰할 시간이나 기회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증거가 없게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증언을 심사하고 수집할 가능성을 갖지 못하는 사 람들 또한 증거가 없는 셈이다. 인류의 거의 대부분이 그런 상황에 처해 있다. 그들은 노동에만 전념하고 자신들이 속한 비천한 신분에 따른 강제상황에 예 속되어 있는 자들로서, 그들의 삶은 그저 생계유지에 급급한 수준이다. 그들이

  • 논문투고일자: 2011.9.28, 심사일자: 2011.10.18, 게재확정일자: 2011.10.24. **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조교수, 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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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학습하고 탐구할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그들이 보유한 금전만큼이나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 그들의 이성은 거의 함양되어 있지 않다. 그들의 시간 과 노력이란 그들 자신의 뱃속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와 자식들의 아우성을 잦 아들게 만드는 데 모두 쏟아 붓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생 힘든 직업생활로 고 통 받는 사람이 날이면 날마다 험한 갓길과 더러운 시골길을 지나 시장에 갔 다 돌아오다 보니 그 지역 지리를 잘 알 게 된 말보다 더 이 세계에서 일어나 는 수없이 많은 사건의 다양성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으리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1)

이 인용문의 저자는 근대 자유주의의 정신적 아버지인 존 로크이다. 이

문장들을 통해 묘사한 상황은 그가 살았던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타당하다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어쩌면 영원한 진리를 표현한다고 여겨

도 좋을 듯하다. 물론 과연 인류의 거의 대부분이 처한 상황 자체가 자연

적이고 도저히 변경될 수 없는 상태인지 아니면 민주적 헌법국가라는 근

대적 이상을 실현하려는 끝없는 노력을 통해 바로 그 인류의 대부분을 법

체계와 정치체계 그리고 경제체계에 “포섭(Inklusion; Einbezihung)”함으로

써 인식의 영역에서도 완전한 자유와 평등을 실현했거나 또는 실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계속 성찰해 볼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근대 법철

학과 국가철학이라는 거대한 무대의 주인공 가운데 한 사람인 로크의 사

상이 갖는 양면성을 확인할 수 있을지 모른다. 다시 말해 한편으로는 지배

의 정당성을 국민의 동의에서 찾아야 하고, 그러한 전제에 따라 통치권력

을 통제한다는 근대 헌법국가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면서도, 다른 한편으

로는 그가 살던 당시 영국의 현실을 염두에 두면서 임금노동과 자본에 기

초한 생산양식과 그에 따른 사회경제적 결과를 확인함과 동시에 시민계급

의 입장에서 부자, 통치자 그리고 지식인들이 사회의 “말”, 즉 생존을 위

해 노동을 해야 하기에 통치를 하지도, 지식을 습득하지도 못하는 인류의

거의 대부분을 지배할 권리가 있다는 점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의문을 제

기할 수 있다.

1) J. Locke, 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Book II, Ch. XX., § 12 (인용은 독일어판, Versuch über den menschlichen Verstand, Bd. II, S. 418f.에 따 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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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크는 “근대 인식론의 초석”이라고 불리는 “인간오성론”과 자연철학

(Elements of Natural Philosophy), 의학(De arte medica; 로크 자신이 의

사이기도 했다) 관련 서적뿐만 아니라, 정치학, 경제학, 교육학, 신학에 관

련된 서적도 저술했고, 특히 그가 1679년에서 1689년 사이에 저술한 “통

치론(Two Treaties of Government)”은 그에게 적대적이든 아니면 우호적

이든 누구나 근대 시민계층의 정치와 법에 관한 기본적 태도를 서술한 표

준적인 이론이 담겨 있다고 인정하는 저작이다.2) “통치론”은 “반절대주의

의 핵심저작”3)이었다. 이 책에서 로크는 당시 카톨릭교도가 영국의 왕권을

물려받는 것에 반대하는 저작을 저술하라는 샤프츠베리(Shaftsberry) 백작

의 위임을 이행4)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연법에 기초한 사회이론과 국가

이론을 기획하여, 훗날 자유주의의 근본원칙에 속하는 자연적 자유와 평등

그리고 소유권5)에 대해 정당성을 제공했다. 이와 함께 로크는 종교적 관

용, 국가에 대한 사회의 우위, 법의 지배 그리고 입법과 행정 사이의 권력

분립, 모든 형태의 불법적인 통치에 대항할 수 있는 시민의 저항권, 국가

목적과 시민의 동의에 따른 국가권력의 제한 등 근대 민주적 헌법국가의

구성원리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이를 통해 로크는 “권력분립론의 아

버지”이자 “국민주권이론의 선구자(물론 그가 국민주권이라는 개념을 사용

2) 로크의 생애와 저작에 관해서는 W. Euchner, John Locke zur Einführung, 1996, S. 9f. 참고.

3) R. Brandt, John Locke, in: O. Höffe(Hg.), Klassiker der Philosophie, Bd. 1, 2008, S. 312.

4) “통치론”의 성립배경에 관해서는 M. Brocker, John Locke, Zwei Abhandlungen über die Regierung, in: ders, Geschichte des politischen Denkens, 2007, S. 258f.; H. Ottmann, Geschichte des politischen Denkens, Bd. 1/3, 2006, S. 346f. 참고.

5) 로크가 말하는 “소유권”은 때로는 좁은 의미의 물질적 재화를 뜻하기도 하고, 때로 는 생명, 자유, 재산을 포괄하는 넓은 의미를 갖기도 한다. 이에 관해 자세히는 김 남두, 소유권에 관한 철학적 성찰: 사유 재산권과 삶의 평등한 기회 - 로크를 중심 으로, 철학연구 27, 1990, 160면 이하; 양승태, 맥퍼슨(Macpherson)에서 로크 (Locke)로, 그리고 로크를 넘어서: 自由主義的 所有權理論의 비판적 극복을 위한 자연법적 接近 序說, 한국정치학회보 25, 1991, 333면 이하; G. Schochet, “Guards and Fences”: Property and Obligation in Locke's political thought, in: History of Political Thought 21(2000), pp.365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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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는 않았다6))”가 되었다. 이밖에도 로크는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있는

여러 저작들을 통해 뉴턴(Newton)에게 영향을 주었고7), 미국혁명의 정신

적 아버지이기도 했으며8) 프랑스의 유물론과 무신론9), 영국의 정치경제학

과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의 이론적 뿌리10)이기도 했다.

아래의 서술은 존 로크가 갖는 이러한 정치사적 및 정신사적 의미와 영

향을 부정할 의도는 없으며, 단지 “자연법”, “자연권” 또는 “보편적 권리”

등의 표제어를 달고 등장하는 계몽기의 법철학에서 로크의 이론이 갖는

의미를 다시 음미해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로크 법철학의 전체적인

윤곽을 그려나가면서, 그 핵심개념인 자연상태, 자연법, 정치적 사회를 소

유권개념과의 연관성 속에서 검토(Ⅱ)한 이후, 그의 경험주의 인식론과 실

천철학 사이에 있을 수 있는 모순을 이데올로기비판의 관점에서 지적(Ⅲ)

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로크가 이해하는 “국민”개념에 내재하는 시대사적

한계(Ⅳ)를 밝히도록 한다.

Ⅱ. 자연상태, 자연법, 정치적 사회-소유권과의

연관성 속에서

로크 법철학은 일단 전통적인 신학적 사고에서 출발한다. “통치론” 제2

권의 서두에서 로크는 인간은 신의 피조물로서, 신이 부여한 자연법의 범

위 내에서 자유를 구가한다고 한다. 즉, 신은 이 세계를 공유하도록 인간

6) 이 점을 지적하고 그에 대한 이론사적 평가를 하고 있는 F. Neumann, Demokratischer und autoritärer Staat, 1969, S. 31f. 참고.

7) 이에 관해서는 G.A.J. Rogers, Locke, Newton, and the Cambridge Platonists on Innate Ideas, in: Journal of the History of Idea, 40, 1979, pp.191-206 참고.

8) 로크 사상과 미국혁명의 관계에 관해서는 M.G. White, The Philosophy of the American Revolution, 1978 참고.

9) K. Marx/F. Engels, Die heilige Familie, in: Marx/Engels Werke(MEW), Bd. 2, 1957, S. 137.

10) 이에 관해서는 H. Klenner, Marxismus und Menschenrechte, 1982, S. 41ff.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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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이양했고, 인간으로 하여금 세계와 이 세계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인간의 생존을 위해 이용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2611)). 더욱이 신은 인간

이 욕망과 합목적성 및 본능의 절대적 지배를 받아, 어쩔 수 없이 사회를

형성하고, 사회 속에 머물러 있도록 강제한다(§ 77). 이로써 인간이 자연적

으로 구비하고 있는 이성, 언어, 본능은 신의 작품인 창조를 유지하고 이

를 확대한다는 목적에 기여한다. 성욕과 같은 본능은 개인들을 가족으로

결합시키고, 자기보존본능은 이미 자연상태에서도 평화로운 생존이 가능할

수 있도록 집단을 형성하게 만든다. 신의 법을 인식할 수 있는 원천이 되

는 이성은 인간이 평화롭게 공존해야 하며, 자기 자신 또는 타인을 말살할

자유를 갖고 있지 않음을 인식하게 해준다. 그래서 로크는 다음과 같이 말

한다.

“모든 인간은 유일하고 최고의 주인인 신의 하인으로서 그의 명령에 의해 그의 사업을 돕기 위해 세상에 보내졌기 때문에, 인간은 신의 재산이자 작품 으로서 그들에게 좋아서가 아니라, 오직 신에게 좋을 동안에만 존속하도록 되 어 있다 … 각자는 자기 스스로를 보존해야 할 의무가 있고, 자신의 위치를 마 음대로 떠나서는 안 된다. 같은 이유에서 인간은 자신의 자기보존에 위태롭게 되지 않는 한, 다른 인류 전체의 보존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경주해 야 하며, 범죄자에게 정의를 행사하는 경우가 아닌 한, 타인의 생명 또는 생명 의 보존에 필요한 것, 즉 자유, 건강, 신체 또는 재화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6)

그러나 상당히 신학적 전통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논증은 자

세히 보면 그저 외관에 불과하다. 물론 전통적인 스콜라철학과 합리주의에

서와 마찬가지로 로크에게도 자연법은 인간에게 절대적인 의무를 부과하는

최상위의 법칙으로서 인간을 공동체나 사회로 결집시키는 공통의 유대(紐

帶)이고, 이 점에서 인간은 다른 모든 생명체와 구별된다. 하지만 자연법이

11) 괄호 안의 숫자는 모두 “통치론” 제2권의 절을 뜻한다. 번역은 존 로크, 통치론(강 정인/문정인 옮김), 2007을 기초로 영어원본인 John Locke, Second Treatise of Governement, edited, with an Introduction by J.B. Macperson, 1980과 독일어판 Zwei Abhandlungen über die Regierung(übers. v. Walter Euchner), 1977을 참고 하여 우리말 번역본에 약간씩 수정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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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공통의 유대는 로크에게는 상당히 느슨한 유대로 파악된다. 즉, 이

유대의 원천은 인간의 이성으로서, 비록 모든 인간이 똑같이 이성에 참여

하고 있긴 하지만, 그 이성은 단지 잠재적인 이성일 뿐이다. 다시 말해 현

실 속에서 이성은 극히 상이하게 분배되어 있다. 왜냐하면 로크의 이성은

스콜라철학이나 합리주의가 “생래적 이념(innate idea)”이라는 이론을 통해

주장했던 것처럼 자연법의 공통성을 선험적으로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성에 내재하는 분석적 능력을 실제로 구사할 때에야 비로소 획득된다고

보기 때문이다.12) 그 때문에 로크는 정신의 세계에서도 물질의 세계와 마

찬가지로 무엇인가가 선물로 그저 주어지지는 않으며, 오로지 정신적 노동

인 사유를 거칠 때에만 신의 창조가 평형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드는 영원

불변의 법칙을 통찰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로크는 신이 인간에게 이성

과 손 그리고 물질을 만들어주고 난 이후에는 더 이상 다리와 집을 지어

주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소질을 갖추어 준 이후에는 더 이

상 인간을 지도할 생래적 개념들을 정신에 심어놓지는 않았다고 말한다.13)

그렇다고 해서 자연상태에서는 자연법을 알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14)

단지 자연법에 대한 인식을 위해서는 감각을 통한 지각과 이성이 함께 작

용하도록 정신적 노동을 필요로 하며, 오로지 부지런한 자만이 그러한 인

12) 중세의 신학적 전통, 특히 스콜라철학의 자연법론과 이성관과 로크를 포함한 근대 자연법론 사이의 차이점에 관해서는 특히 W. Euchner, Naturrecht und Politik bei John Locke, 1969, S. 24f. 참고.

13) J. Locke, Versuch über den menschlichen Verstand, Bd. I, S. 89f. 계속해서 로크 는 이렇게 말한다: “이 세계의 상당수 민족들은 타고난 재주가 있음에도 다리나 집 을 전혀 갖고 있지 않거나 흠이 많은 다리나 집을 갖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에 대한 관념과 도덕원칙을 전혀 갖고 있지 않거나 갖고 있더라도 매우 불완전하기 짝 이 없는 경우가 많다. 어느 경우이든 원인은 그들이 갖고 있는 타고난 능력과 힘을 그런 방향으로 열심히 사용하지 않은 채, 그저 기존의 익숙한 생각이나 관행 또는 그들의 고향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에 만족하여 멀리 보려고 노력하지 않은 탓이 다.”(S. 90)

14) L. Strauss, Naturrecht und Geschichte, S. 235ff.는 이 점을 오해하고 있다. 이는 슈트라우스가 로크를 전적으로 홉스의 후예로 해석한 나머지, 로크도 홉스와 마찬 가지로 철저히 자기보존권만이 절대적이라고 본 데 기인한다. 이러한 해석에 대해 자세히는 Strauss, S. 230ff.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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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15) 이에 반해 정신노동을 행하지 않는 게으른

자들은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여 바로 지금 여기의 순간에만 집착하여, 신

이 그에게 부여한 “지침”을 포착할 수 없다고 한다.16) 그렇기 때문에 자연

법은 이성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는 명백한 반면, 직접적인 이해관

계와 격정에 사로잡혀 이성을 구사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전

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그 때문에 다수의 사람들은

자연법을 알지 못하거나, 자연법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거나, “타락과

사악”에 빠져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느라 자연법을 의도적으로 위반한다(§

124, 128).

따라서 홉스와 마찬가지로 로크에게도 이성과 욕망은 서로 부조화의 상

태에 있다. 다만 자연법은 개인들로 하여금 이성에 따라 공존할 수 있는

상태에 도달하도록 할 수 있고, 이는 심지어 “모두 똑같이 소박하고 가난

하게 살면서도” 개인의 욕망을 억제하고 분쟁이 발생하지 않는 공존상태가

가능하다고 본 점(§ 107)에서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으로 묘사되는 홉

스의 자연상태와는 구별된다. 그러한 상태를 로크는 “원래의 자연상태” 또

는 “헛된 야망과 흉악한 소유욕, 사악한 탐욕이 인간의 마음을 타락시켜

진정한 권력과 명예에 관해 그릇된 생각을 품게 되기 이전의 황금시대”(§

111)라고 부른다. 그러나 자연법이 필연적으로 그와 같은 상태를 유발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자연법은 인간의 타고난 본성에 따른 직접적이고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라, 이성의 활동이라는 매개 장치가 개입될 때에만

인식가능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연법이라는 불문의 법은 “사람

의 정신 속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기에 격정과 이해관계로 말미암아

자연법을 왜곡하거나 잘못 적용하는 일이 발생한다(§ 136). 바로 그 때문

에 자연상태에는 “서로 다투는 자들 사이에서 결정을 내릴 권위가 없는

곳에서는 아무리 사소한 다툼일지라도 결국 도달하게 되는 상태”인 전쟁상

15) 이에 관해서는 Euchner, S. 136ff. 참고.

16) 이는 로크가 그의 초기 저작 “자연법에 관하여(Essays on the Law of Nature)”(1663)에서부터 “통치론”을 거쳐 후기 저작인 “기독인의 합리성 (Reasonableness of Christianity)”(1695)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는 관 점이다. 이 점을 지적하고 있는 Euchner, S. 138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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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가 잠재되어 있다.

이렇게 정치적 사회가 설립되기 이전의 자연상태와 전쟁상태에서 이미

인간본성이 갖고 있는 두 가지 대립되는 측면이 표출된다. 즉, 평화와 전

체인류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성과 격정으로 인해 폭발하는 당파성

과 폭력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 형태는 결코 시간의 측면에서

순차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이 아니다. 예컨대 태초에는 평화롭고 안전한 상

태였다가 나중에 타락과 죄악으로 인하여 어느 순간 전쟁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이 아니다.17) 로크의 자연상태는 결코 원죄로 인해 종말을 고하는

순수한 상태가 아니라, 정치적 사회가 형성되기 이전에 인간의 공동생활을

지배하는 형태로서, 그 자체 의지의 결단과 이성적 성찰이 교차하는 상태

이다.18) 전쟁상태 역시 특정한 역사적 단계가 아니라, 자연상태가 언제든

지 전락할 수 있는 가능성의 생존형식일 뿐, 홉스에서처럼 자연상태가 필

연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상태가 아니다. 심지어 자연상태에 비해 훨씬 더

좋은 제도적 예방장치를 갖추고 있는 정치적 사회일지라도 얼마든지 자연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로크의 이러한 논증에 따른다면 자연상태와

전쟁상태는 완벽하게 극복될 수 없으며, 그러한 상태는 시민사회의 국가에

서도 늘 잠복하고 있는 일종의 “원초적 유산”이다.

그러나 국가가 아닌 사회의 성격에 관한 이러한 논리적, 구조적 사고와

함께 로크는 자연상태, 전쟁상태 그리고 사회상태를 역사적 측면에서 서로

관련을 시키는 또 다른 논증방식도 취하고 있다.19) 즉, 로크는 홉스와는

달리 한 개인의 자기보존을 위해서는 칼과 총보다는 오히려 생계수단을

더 필요로 한다는 점을 뚜렷하게 인식하고 있었다.20) 물론 신은 인간에게

충분할 정도의 생계수단을 부여했지만, 인간은 일단 생계수단을 자신의 것

17) C.B. Macpherson, Die politische Theorie des Besitzindividualismus, 1967, S. 272.

18) 이에 관해서는 Euchner, S. 72f. 참고.

19) 이 두 번째 논증방식에 대해서는 특히 H. Medick, Naturzustand und Naturgeschichte der bürgerlichen Gesellschaft, 1973, S. 116ff. 참고. 메딕은 로크 의 자연상태이론이 초기 시민사회 구조의 문제에 대해 규범적이면서 동시에 역사적 으로 지향된 이론이라고 해석한다.

20) Strauss, S.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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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취득해야만 한다. 이러한 취득이 이루어지는 형식으로부터 로크는 개

인의 소유권을 도출해낸다. 즉, 비록 땅과 지상의 다른 생명체는 모든 인

간에게 공동으로 속하지만, 인간은 자기 자신의 인격에 대해서만은 오로지

그 자신만이 소유권을 가지며, 이 소유권은 원칙적으로 사회적 처분의 대

상에서 배제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이러한 배타적 영역으로 끌어들인

것과 자연적인 상태를 벗어난 것은 근원적인 소유와 결합되어 그 인간의

전유물이 된다. 자연과의 교류를 거쳐 인간은 창조의 한 부분에 “만물의

공통된 어머니”가 인간에게 부여한 것과는 다른 무엇인가를 추가함으로써

그 창조의 일부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게 된다(§ 28). 자연은 모든 사람에

게 모든 것을 공동으로 부여했지만, 각 개인은 그 자신의 개인적인 노동 -

모든 취득은 노동이다 - 을 통해 생존과 재생산에 필요한 요소들을 종합해

내고, 그러한 요소들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설정한다. 그러므로 노동을 통

한 취득은 공동의 재화를 강탈하는 짓이 아니라, 신의 선물을 더욱 풍성하

게 만들 수 있기 위한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다.

물론 로크는 일단 취득된 사적 소유에 대한 권리가 자기보존의 법칙에

근거하고, 따라서 자연법적으로 정당화되지만, 자연상태의 초기단계에서는

바로 그 자연법을 통해 소유권에 제한이 가해진다고 한다. 즉, 각 개인은

“그것이 썩기 전에 삶에 이득이 되도록 사용할 수 있는 만큼만”(§ 31) 노

동을 통해 자신의 소유로 만들 수 있다. 그 이상의 것은 타인에게 속하며,

따라서 그것을 욕구해서도 안 된다. 자연은 소유가 가능할 수 있도록 만들

어주면서도, 동시에 소유가 특정한 정도에 머무르도록 제한하는 셈이다.

왜냐하면 자연은 개인의 생산능력과 소비능력에 한계를 설정할 뿐만 아니

라, 다른 사람도 똑같이 소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기 때문이

다.

이러한 자연적 제한은 사실적인 성격보다는 상당히 규범적인 성격을 갖

고 있다. 왜냐하면 로크는 낭비, 즉 타인의 잠재적 소유에 대한 침해를 명

시적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연상태의 초기단계에

서는 결코 평화가 가능할 수 없다고 결론지어서는 안 된다.21) “통치론” 제

21) Strauss, S.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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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법학 제34권(2011.10) 364

2권에서 로크가 세계의 초기단계에 관해 서술한 내용에 비추어 보면 오히

려 그와 정반대로 해석해야 한다. 즉, 인구가 밀집되지 않고 비옥한 토지

가 충분히 남아 있던 상태(“사용되는 것보다 제공되는 것이 더 많은 상

태”)에서는 개인들의 취득은 자연적인 사회를 해체시키는 결과를 빚지 않

았으며, 그리하여 “설정된 소유권에 대한 분쟁이나 다툼이 발생할 여지가

거의 없었다”(§ 31, 51, 107)고 한다. 따라서 적어도 노동이 자연적인 생

산조건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 머물러 있고, 빈곤과 기아로 인한 사

회적 갈등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는 별다른 저항에 부딪히지 않고 얼마든

지 인간 사이의 통일성을 형성하는 기능을 실현할 수 있었다. 물론 전쟁이

라는 늘 존재하는 위험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지라도, 국가가 형성되

기 이전의 초기 사회는 그러한 한계상황에 쉽사리 빠져들지 않았다고 한

다. 황금시대에는 “더 많은 덕이 있었고, 당연히 더 훌륭한 통치자와 덜

사악한 신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111).

하지만 인간의 노동이 자연적 생산조건에 대한 예속으로부터 해방될수

록 자연법의 안정화기능과 통합기능은 상실된다. 로크는 이러한 해체과정

이 노동 그 자체로 인해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 공동체의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하나의 발견 때문에 시작한다고 한다. 로크는 “통치

론” 가운데 가장 유명한 제5장의 “소유권에 관하여”에서 이 과정을 다음

과 같이 묘사한다. 즉, 인간들은 처음에는 자연이 그들의 욕구충족을 위해

부여한 것에 만족하며, 노동도 자연에 대해 기생적인 형태를 취하고, 자연

이 제공하는 가치 역시 개인의 소비능력 및 부패나 사용불능이라는 자연

적 한계를 통해 제한받았다. 그러나 인간들이 이러한 한계에 봉착하지 않

는 새로운 형식, 즉 “부패하지 않고, 보관할 수 있는 것으로서 상호간의

합의를 통해 참으로 유용하지만 썩기 쉬운 물품과 교환”(§ 47)할 수 있게

만드는 형식을 발명하면서부터 과거의 자연적 상태는 급속한 변화를 겪게

된다. 이 형식이 곧 화폐이다. 로크에 따르면 화폐에 가치를 부여하는 “묵

시적 동의”를 통해 자연발생적 사회화의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한다(§ 36).

즉, 화폐를 발명하기 전에는 자연적 재화가 부패하기에 재화의 축적을 무

의미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자신의 삶에 필요한 이상으로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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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법과 역사 - 존 로크 법철학의 양면성365

화를 욕구하지 않았던 반면, 화폐가 도입된 이후에는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하는 욕구”가 인간이 활동하는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화폐와 함께 자연이 노동과 소유에 대해 설정

했던 절제와 제한장치는 제거되었다. 화폐는 저장과 교환이 가능하기 때문

에 화폐를 축적하는 것은 합리적이고, - 로크 스스로 강조하듯이 - 자연법

적으로도 극히 정당하며, 화폐의 본성상 절제란 있을 수 없다. 노동 또한

더 이상 절제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자연적 조건의 구속으로부

터 해방되는 과정을 겪게 된다. 그 때문에 로크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

는 이미 인간의 삶에 필요한 거의 대부분의 것들이 노동에 힘입고 있다고

평가한다. “사물이 우리의 사용에 이바지하는 바에 따라 그것들을 정당하

게 평가하고, 순전히 자연에 속하는 것과 노동에 속하는 것들에 관한 몇

가지 비용들을 계량해보면,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100분의 99가 전적으로

노동에 의해 형성된 것임을 발견하게 된다.”(§ 40)

합의에 의한 화폐도입이라는 로크의 이론은 분석적인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에는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무엇보다 그의 화폐이론은 화폐가 사

회적 모순과 대립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그러한 모순과 대립이

화폐를 유발한다는 맑스 정치경제학의 근본 통찰22)에 반한다. 하지만 로크

는 맑스가 아니고, 그가 살던 17세기는 맑스의 19세기가 아니다. 그가 다

양한 생산양식이 병존했던 과도기에 살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노동과 화폐

및 사회적 대립 사이에 연관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설명을 모색했

다는 점에서 로크는 놀라울 정도의 정신적 노동을 보여준 셈이다. 이 점에

서 로크는 노동이 갖는 근원적 의미를 발견하고, 노동을 화폐와 교환에 관

련시켜 설명했던 최초의 근대 사상가이다.23) 즉, 비록 엄밀한 개념을 통해

포착하지는 않았지만 로크는 단순히 외적으로만 연결되어 있는 생산자들이

일단은 그들 자신의 필요를 위해 사용가치를 생산하지만, 소유의 한계에

대한 계약이나 상품의 교환을 통해 생산 자체를 벗어난 거대한 사회적 관

22) K. Marx, Grundrisse de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1974, S. 65.

23) 이에 관해서는 R. Rotermundt, Das Denken John Lockes. Zur Logik des bürgerlichen Bewußtseins, 1976, S. 23, 69ff.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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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법학 제34권(2011.10) 366

계 속에 편입된다는 점을 뚜렷하게 인식하고 있다. 즉, 원래는 사적 개인

들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던 것들은 노동과 화폐를 통해 사적 개인의 몫

으로 나뉘고, 사회적 미덕마저도 개인적 이익을 충족하는 것이 곧 “인류

전체의 재산”을 증식하는 것이 된다는, 노동이 원래 의도하지 않았던 부수

효과로 축소된다고 한다. 노동과 취득이 갖는 이러한 부수효과 때문에 로

크는 심지어 “영국의 일용노동자들이 아메리카 대륙의 거대하고 비옥한 지

역의 왕보다 더 잘 입고 더 잘 먹는다”라고까지 말한다(§ 41). 그리하여

이 일용노동자들은 자연상태에서 그들이 갖고 있던 모든 권리를 행사할지

라도 결코 노동의 대가로 받는 임금에 미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토지와

다른 유용한 물건에 대한 자연적 권리를 상실했다고 불평할 권리가 없다.

설령 그 임금이 그날그날 먹고 살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할지라도!24)

이는 화폐로 인해 인간의 소유욕이 자연적 제한으로부터 해방되어 발생

하는 필연적 결과이다. 즉, 자연상태의 초창기에 인간은 자연법의 한계 내

에서 자신의 노동을 통해 생산한 모든 것에 대해 소유권을 가질 수 있었

지만, 화폐의 발명으로 이러한 한계가 제거되고 난 이후에는 더 이상 그러

한 소유권을 갖지 못한다.25) 이로써 인간의 소유권은 ‘생명’과 ‘자유’에 국

한되고, 단지 소수의 사람만이 물질적 재화에 대한 ‘소유(property)’까지 추

가할 수 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소수의 성공한 자들은 더욱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금과 은은 식품, 의복 및 운송수단에 비해 인간의 삶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금과 은은 인간들의 오로지 합의에 의해서

만(물론 이 합의의 척도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 노동이다) 그 가치가 정해

진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토지를 불균등하고 불평등하게 소유하는 데 합의

한 셈이다. 왜냐하면 인간들이 묵시적 또는 자발적 동의를 통해 금과 은을

잉여생산물의 대가로 보유한다면 그 사람은 그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것

24) Strauss, S. 252f.

25)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자연상태의 초창기에는 소유에 대한 불가양의 자연권을 가졌 다는 뜻은 아니다. 로크에게 소유는 인간이 갖는 속성의 한 부분이고, 인간 자신의 동의가 있을 때에는 이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점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는 P. Laslett, Introduction, in: John Locke, Two Treaties of Government, 1960, S. 102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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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더 많은 땅을 소유해도 무방한 정직한 방법을 발견한 것이기 때문이

다. 더욱이 이 금속들은 소유자의 수중에서 부패하거나 유실되지 않으며,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손해를 입히지 않고서도 계속 보존할 수 있다. 불평

등한 사유재산제와 같은 물건의 분배가 이루어지게 된 것은 인간이 사회

의 경계 밖에서 아무런 계약도 없이 전적으로 금과 은에 가치를 부여하고

화폐의 사용에 암묵적으로 동의했기에 가능했다. 왜냐하면 국가에서는 법

률이 소유권을 규율하고, 토지 소유권은 실정법규에 의해 자세히 규정되기

때문이다.”(§ 50)

다시 말해 로크에 따르면 공동소유와 노동이 중심이 되는 사회가 존재

한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더 이상 그러한 사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다. 즉, 상대적 평등과 사회적 책임이 우선하는 사회가 존재했지만, 그러한

시대는 지났다. 이제 개인의 사회적 행동은 오로지 시장에서 이루어질 뿐

이며, 시장을 넘어서는 영역에서는 불평등과 대립의 왕국이 시작되고, 소

유의 분배는 “불균등하고 불평등”하다. 그리하여 어떤 이는 부를 향유하는

반면, 다른 어떤 이는 오로지 자신의 인신과 노동력만을 소유하여, 생존을

위해서는 노동력을 파는 것 이외에는 다른 선택권이 없게 된다.26)

이러한 조건하에서 자연상태는 갈수록 균형과 화합의 상태에서 멀어져

점차 다툼과 경쟁, 즉 전쟁의 상태로 향하게 되어, 각자의 권리에 대한 주

장이 서로 첨예하게 충돌하고, 이러한 충돌은 결국 사회적 집단 사이의 대

립으로 비화하게 된다.27) 이렇게 다수가 적은 소유를 하고, 소수가 많은

소유를 하는 곳에서는 적어도 천부적 자질에 따르면 누구나 참여하고 있

는 이성마저도 결국은 특권을 가진 자들의 일이 된다. 우리가 이 글의 맨

앞에 내세웠던 인용문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즉, 이성

26) 따라서 임금노동은 맥퍼슨(Macpherson, S. 242ff.)이 해석하듯이 자연상태의 시작 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라, 화폐가 발견된 이후에 비로소 존재하게 된다.

27) 물론 이러한 대립이 계급갈등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로크에게는 계급개념이 분명 하게 드러나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도 맥퍼슨의 테제는 - 완전한 오류는 아니지만 - 로크를 너무 계급개념에 고정시켜 이해한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로크 철학에서 계급의 문제에 관해 자세히는 Michael Rostock, Die Lehre von der Gewaltenteilung in der politischen Theorie von John Locke, 1974, S. 63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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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결국 이성을 활용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는 자들의 전유물이 되고 만

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특권을 가진 자들이 언제나 이성을 활용하며, 이

에 반해 노동자들은 선험적으로 이성에 도달할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는 뜻은 아니다. 아무튼 현실주의자 로크로서는 “평생 힘든 직업생활로 고

통 받는 사람이 날이면 날마다 험한 갓길과 더러운 시골길을 지나 시장에

갔다 돌아오다 보니 그 지역 지리를 잘 알 게 된 말보다 더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수없이 많은 사건의 다양성에 대해 더 잘 알 수는 없다”고 진단

한다. 그리고 이성을 함양할 수 있는 기회가 더 이상 평등하게 분배되어

있지 않은 상태를 변경할 수 없다는 점에서 자연법 또한 모든 사람이 인

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로써 자연법은 인간들 사이의 통일성을 형성

하는 능력을 상실하고 점차 주관적 해석의 대상으로 해체되어, 각 개인이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자연법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관철하려고 시도하게

된다. 물론 소유의 불평등이 곧바로 전쟁상태를 낳는 것은 아닐지라도, 개

인의 권리와 안락한 삶이 서로 화합할 수 있었고 권리를 둘러싸고 다툼을

벌이거나 타인을 침해할 여지가 없었던, 자연상태의 초기단계에 비해서는

전쟁상태가 전개될 개연성이 훨씬 더 높아진다.28) 바로 이러한 소유의 불

평등이 자연상태를 참을 수 없는 상태로 만들고, 정치적 사회의 수립을 불

가피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정치적 사회에서는 확고한 법률과 공정한 최고

권력이 자연법의 실현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는 로크의 논거는 원칙적으로 홉스의 논거와 크게 다르지 않

다. 그 때문에 상당수의 로크 해석자들은 평화로운 자연상태에 관한 전통

적인 이론을 철저히 파괴할 목적으로만 사용하는 홉스와 같은 반열에 올

려놓는다.29) 그러나 이렇게 로크의 자연상태론을 홉스의 그것과 동일시하

면 자연상태의 초기단계에 대한 로크의 서술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단순

화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 된다. 로크가 홉스와는 반대로 국가 이전의 상태

에서도 얼마든지 사회적 통일성이 확립 - 비록 붕괴될 위험을 안고 있긴

하지만 - 될 수 있다고 보았다는 사실은 결코 과장된 해석이 아니라, 홉스

28) 이에 관해서는 § 51의 서술을 참고.

29) 대표적으로는 Strauss, S. 230, 240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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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법과 역사 - 존 로크 법철학의 양면성369

와는 다른 역사적 경험, 즉 국가 이전의 상태 또는 국가가 없는 상태가 반

드시 완전한 카오스상태인 것만은 아니라는 경험에 기초한다. 자연상태에

대한 홉스의 서술30)은 17세기 초반의 내전과 자본주의의 맹아단계에서 나

타나듯이 자연발생적인 사회가 완전히 붕괴된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면, 로크의 자연상태론은 혁명 이후의 영국에서 사회적, 정치적 관계가 상

당히 안정된 환경 속에서 형성되었다. 따라서 로크의 자연상태는 자연발생

적 사회화의 종착점에 대한 성찰이라기보다는 순전히 인위적인 사회화 체

계의 초기단계에 대한 성찰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인위적 사회화

체계는 여전히 자연발생적 사회화의 요소가 잔재해 있고, 그 때문에 순수

자본주의적 관계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31) 어쨌든 논리적 및 연대기적

측면에서 국가가 시민사회에 앞선다고 보고, 소유권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우선 평화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보았던 홉스와는 반대로 로크는 국가 이

전의 상태에서도 법과 국가와는 관계없이 개인들 사이에 특정한 관계를

형성하는 사회(물론 소유권자들의 사회)가 존재하고, 따라서 법과 국가는

이러한 사회적 관계를 확고하게 한다는 의미에서만 필요할 뿐이라고 보았

다. 그렇기 때문에 로크에게 정치적 사회의 설립은 홉스와는 달리 결코 극

단적이고 급진적인 단절을 의미하지 않는다. 즉, 자연상태의 개인들은 반

드시 국가를 거쳐 사회로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회를 구성하고 있

다. 이렇게 소유와 사회가 국가에 앞선다는 점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홉스

와는 다른 결론을 낳게 된다. 무엇보다 개인들은 자신들이 자연상태에서

획득한 소유를 계속 유지하고, 그 보존과 증식을 보장하고자 의욕하게 된

다. 바로 그 점이 시민적 사회의 형성, 즉 국가형성의 목적이다. 둘째, 개

인들은 사적 소유에 기초하여 사회적 교환의 유일한 형식으로서 시장질서

(경쟁)를 의욕하여, 더 높은 예견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보편적 형식에

따라 시장질서를 규율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것이 곧 국가 법질서의 목적

30) Th. Hobbes, Leviathan, Book I, § 13 이하(토마스 홉스, 리바이어던, 진석용 옮김,

제1권, 2008, 168면 이하) 참고.

31) 이 점에서도 맥퍼슨의 로크 해석은 과장이라 할 수 있다. 이에 관해서는

Macpherson, S. 278f.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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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셋째, 개인들은 대외적으로는 통일된 정치적 단위로서 행위능력을

갖추기를 의욕하여, 외적으로부터 정치적 사회를 최대한 보호하고자 한다.

이러한 목적들이 곧 자연적 사회가 하나의 헌법질서를 제정하는 이유이자,

동시에 헌법질서에 설정된 한계이기도 하다. 따라서 개인들이 결합한 사회

는 전적으로 정치적-법적 의미에서 사회일 뿐이며, 발전적-생산적이기보다

는 소유권자들의 감싸고 있는 외적 형식으로 순환적(circulative) 성격을 갖

는다. 즉, 정치적 사회는 “사회의 경계 바깥에서”(§ 50) 형성된 물질적 조

건에 구속된다. 그러므로 국가가 사회구성원(정확히는 사회구성원의 다수)

의 동의를 받지 않고 이러한 목적과 한계에 반하여 행동할 때에는, 즉시

전쟁상태로 복귀하게 된다. 정치적 사회 또는 시민사회는 그러한 사회가

형성되는 조건 자체에 계속 연결되어 있는 셈이다.

Ⅲ. 인식론적 경험주의와 소유절대주의-시민 중심의

계급국가에 대한 정당화?

정신사적 관점을 배제하고, 사회사와 정치경제사의 관점에 국한시킨다면

“계몽기”는 반봉건주의 계층이 자신들의 자기상(Selbstidentität)에 대해 기

나긴 커뮤니케이션을 거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약 150년에 걸친 이

과정에서 로크는 - 홉스나 루소 또는 칸트와 비교해 볼 때 - 경제적, 사회

적 이해관계의 다양한 스펙트럼 가운데 유독 소유를 중시하고, 소유권자의

이해관계를 변호하며, 이를 위한 국가질서와 법질서 프로그램을 전파하는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해석된다.32) 물론 로크는 상당히 신중을 기하면서

주로 이론적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 즉, “통치론”에서는 영국의 혁명이나

32) 이른바 소유개인주의(possesive individualism)라는 “맥퍼슨테제”는 로크에 대한 이 러한 해석을 대표했고, 실제로 로크에 대한 정통적인 해석으로 정착되어 왔다. 이 에 관해서는 강정인, 로크사상의 현대적 재조명. 로크의 재산권이론에 대한 현대적 재조명을 중심으로, 한국정치학회보 32집 3호, 1998, 55면 이하; J. Rawls, Lectures on the History of Political Philosophy(인용은 독일어판 Geschichte der politischen Philosophie), S. 234ff.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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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법과 역사 - 존 로크 법철학의 양면성371

내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고 있고,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해 왕당파에 속하는 법률가인 후커(Hooker), 바클레이(Barclay) 또는 심

지어 제임스 1세를 인용한다. 그렇지만 통치론에서 펼쳐진 이론적 내용에

비추어 볼 때, 로크의 법철학은 귀족과 왕권의 세습권력에 대항하는 섬세

한 논거를 담고 있다. 그와 같은 반론에 관한 한, 로크의 인식론(“인간오

성론”은 “통치론”과 같이 1690년에 출간되었다)과 국가이론은 완전히 일치

한다. 즉, 이미 “인간오성론”에서도 경험주의 인식론에 근거하여 “생래적

관념(innate idea)”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래적 실천원리(innate

practical principles)”와 “생래적 법률(innate law)”은 없다는 결론을 도출한

다.33)

생래적 권리가 없고, 따라서 당연히 생래적 지배권도 없다는 결론은 당

연히 절대주의적 세습군주정을 겨냥한 것이었고, 사회의 전통적 권력구조

에 대한 비판이었다. 생래적 진리와 생래적 행위원칙 그리고 생래적 권리

와 의무를 부정함으로써 로크는 감각과 성찰(sensation and reflection)만이

우리의 지식과 권리의 유일한 원천임을 밝힌다. 그러나 로크는 학문이 경

험에 근거해야 한다는 명제를 학문은 경험을 뛰어넘어서는 안 된다는 명

제로 이해하지 않았다. 이성은 인간에게 최후의 심판관이자 모든 일의 지

침이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통치론” 제1권에서 로크가 지루할 정도

로 조목조목 반박을 가하고 있는 대상인 필머(Robert Filmer)와 같이 성서

의 아담과 그 창조주에 연원하는 왕권을 옹호하는 자들은 오로지 왕만이

알고 있는 신의 비밀스러운 의도를 원용하는 반면, 로크와 같은 계몽철학

자는 오로지 인간의 이성을 통해 밝혀진 사회질서와 국가질서만을 인정하

며, 그러한 국가질서와 사회질서의 근본사상은 어떤 초월적인 타율, 즉 신

의 은총을 통한 국왕의 지시와 명령이 아니라, 주체의 자기결정과 자율에

기초한다. 이러한 근본사상은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관헌에게 복종하는 것

이 아니라, 관헌이 인간에게 복종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만든다. 바로 이 점이 원래는 고립되어 있는 개인들이 하나의 사회로 결합

33) Locke, Versuch, S. 29, 52, 80ff. 로크의 이러한 인식론적 프로그램에 관해 간략하 게는 F. Schupp, Geschichte der Philosophie, Bd. 3, S. 194f.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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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법학 제34권(2011.10) 372

하게 되는 계약을 체결하고, 계약을 통해 결합된 사회가 다시 계약을 통해

국가로 형성된다는 사회계약의 이론적 구상이 의도했던 내용이고, 실제로

그에 상응하는 역사적 발전과정의 동반자로서 역할을 했다. 이를 로크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구절로 표현한다.

“모든 인간은 본래(by nature) 자유롭고 평등하고 독립된 존재이므로, 어떠 한 인간도 자신의 동의 없이는 이러한 상태를 떠나 다른 사람의 정치권력에 복종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자연적 자유를 포기하고 시민사회의 구 속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방법은 … 동의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과 함께 결합하 여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 일정한 수의 사람들이 하나의 공동체 또는 하나의 정부를 만들기로 동의했다면 그들은 이로써 하나의 단체로 결합되어 하나의 정치공동체(body politic)를 결성하는 것이 된다.”(§ 54)

그렇다면 개인의 행태와 인간 상호간의 행태는 아담이 살던 시대부터

권위를 갖고 있던 관헌들이 교회의 지원을 받아가며 지시한 내용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 곧 다른 인간들과의 관계를 규정하는

창조주가 된다(“인간은 그 자신의 주인이다 by being master of himself!”

  • §44). 따라서 계약형식의 보편성은 시민사회의 고유한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즉, 남자와 여자의 관계, 매도인과 매수인의 관계, 주인과 노예의 관

계, 소유권자 상호간의 관계, 시민과 정부의 관계 등 인간 사이의 모든 관

계는 각 행위자들의 의사의 합치라는 똑같은 방식에 기초한다.

그러므로 적어도 이 사회계약론자의 이해에 따르는 한, 남자와 여자, 매

도인과 매수인, 기업가와 노동자, 시민과 정부는 모두 비결정론적 자유의

지의 주체로서 각각의 관계가 어떠한 성격을 갖게 될 것인지를 스스로 규

정할 수 있다. 이렇게 모든 인간관계에 보편적 타당성을 갖는 계약론은 분

명 자유로운 경쟁사회라는, 일종의 환상적인 마술을 전제한다. 다시 말해

계약이라는 법적 구성의 배후에는 상품시장과 권력시장의 모든 사회적 관

계를 추상화하여 동일한 카테고리로 포착하는 낙관적 낭만성이 자리 잡고

있다. 그렇긴 하지만 당시의 관점에서는 모든 사회적 관계를 소유권자의

관계로 포섭하려는 로크의 이론구상 자체는 명백히 진보적인 요구를 포함

하고 있다. 왜냐하면 국가의 권력행사를 신의 은총이 아니라, 소유권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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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법과 역사 - 존 로크 법철학의 양면성373

위임으로 정당화했고, 인간의 이성에 부합하는 국가를 분업을 통해 작동하

는 자본회사 - 이 회사의 주주는 소유권자이다 - 의 한 지점쯤으로 해석했

던 로크로서는 봉건질서의 타파와 함께 새로운 경제질서에 대한 이론적

정당화를 마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도 로크는 홉스와는 달리

스스로를 혁명가로 자처할 필요가 없는 경제적 냉철함을 발휘한다. 또한

소유권자의 이익을 부정하는 국가권력에 대한 저항과 혁명(물론 로크 자신

은 “하늘에 대한 호소 appeal to heaven”라는 유연한 표현을 구사한다 - §

168)을 차분한 어조로 정당화할 수 있었다.34)

국민의 저항권과 혁명권에 관한 로크의 이론에서 말하는 국민은 분명

국민의 다수인 무산자가 아니라, 소유권자이다.35) 물론 이 점은 계몽과 해

방의 사상가인 로크를 미래를 기획하는 예언자나 소시민을 위한 민주주의

자 또는 잠재적 자코뱅주의자로 생각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아쉬움을 안겨

줄지 모른다. 그러나 명백히 로크는 그러한 위상을 갖지 않았고, 또한 그

자신 그런 위상을 추구하지도 않았다. 로크는 자본가였고, 노예거래회사의

주주였으며 증권투자와 영국은행의 창립주주로서 거부가 된 자였다. 또한

이론가로서 로크는 타인의 노동에 기초한 사적 소유권을 스스로의 노동을

통해 성립된 소유권만큼이나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며, 부자와 빈자의 법적

평등에도 불구하고 개인은 오로지 공공복리에 대한 기여도에 따라서만 의

회에서 대표권을 행사할 권리를 갖는다는 점을 정당화한다.36) 자유에 대한

그의 관심은 (그의 초기저작에서와는 반대로) 재산적 자유에 집중한다. 독

일관념론 철학자들이 로크를 “천박하다”고 비난하거나37), 동시대인들 가운

34) 이에 관해서는 Locke, Ein Brief über Toleranz, 1975, S. 101도 참고. 또한 로크는 국가를 하나의 주식회사로 이해했다는 해석에 관해서는 Macpherson, S. 283 참고 (특히 17세기 중반 영국의 사회구조를 분석하고 있는 S. 311-327 참고). 이와는 반 대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로크 법철학 사이의 관련성을 부정하면서, 주로 청교도 주의적 해석을 시도하고 있는 입장으로는 J. Dunn, Individuality and Clientage in the Formation of Locke's Social Imagination, in: R. Brandt(Hg.), John Locke Symposium, 1981, S. 67ff.도 참고.

35) 이 측면에서 로크의 혁명이론과 소유권이론 사이의 명시적 연관성을 부정하고 있는

Euchner, Naturrecht, S. 216f. 참고.

36) 자세히는 앞의 뒤의 IV.의 서술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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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법학 제34권(2011.10) 374

데 급진적인 입장을 취했던 사람들이 그의 관용원칙(principle of

tolerance)이 진정한 종교보다는 상업의 발달을 꾀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실

망감을 표출38)하기도 했지만, 로크의 법철학과 국가철학이 갖는 현실적 의

미는 그가 속한 계급의 세속적인 욕구를 매우 세속적으로 표출했다는 데

있다.

그의 이론적 출발점은 17세기 영국에서 여전히 통용되던 봉건적 소유개

념과의 대립이었다. 이 소유개념에 따르면 국왕 이외에는 그 어느 누구도

토지에 대한 완전한 지배권을 갖지 않으며, 단지 봉토나 영지로서 일시적

으로만 지배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소유개념에 대항하여 로크는 일관

되게 초기자본주의적 소유개념을 제시하여, 소유권자의 욕구에 적합한 사

회의 정치적 구조를 기획했다. 소유권자에 대한 입법의 복종, 입법에 대한

행정의 복종, (경제적으로 불평등한 자들의) 법 앞의 평등에 대한 구상 또

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관용에 대한 그의 호소마저도 궁극적으로는 경제적인 고려에 바탕을 두

고 있고, 국가권력의 제한에 대한 확고한 입장 역시 소유권자의 이익을 염

두에 두고 있다는 점은 “관용론”에도 나타나 있다. 즉, 소유권자에게는 일

용노동자가 “회교도여서 금요일에 휴일을 갖든 아니면 유대인이어서 토요

일에 휴일을 갖든 또는 기독교인이어서 일요일에 휴일을 갖든” 아무 관계

가 없으며, 따라서 “누군가 나에게 집을 사라고 명령할 수 없는 자가 천당

을 살 수 있는 그 자신의 방법을 내게 강요할 수 없고, 내가 건강을 유지

할 수 있는 규칙을 명령할 수 없는 자가 내가 나의 영혼을 구원할 방법을

내게 명령할 수 없으며, 내 부인을 선택할 수 없는 자가 나의 종교를 선택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사적 영역에 대한 어떠한 개입도 있

을 수 없다고 한다. 그리하여 국가의 관헌은 내게 어떠한 종교도 강요할

수 없다. 왜냐하면 “관헌이 내 이웃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줄 수는 있을지언

37) 대표적으로는 G.W.F. Hegel, Vorlesungen über die Geschichte der Philosophie Ⅲ, Werke Bd. 20, 1971, S. 219; L. Feuerbach, Geschichte der neueren Philosophie, Gesammelte Werke, Bd. 3, 1969, S. 3(“로크를 오해할 수도, 그렇다고 피상적으로 다룰 수도 없다”).

38) 대표적으로는 M. Cranston, John Locke, 1957, p.331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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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법과 역사 - 존 로크 법철학의 양면성375

정, 내세에서 보상을 해줄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39)

이렇게 볼 때, 로크의 사상 전체가 소유권과의 밀접한 연관성 속에서

전개된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기 어렵다. 다만 이러한

소유절대주의가 맥퍼슨이 말하는 “소유개인주의”의 전형으로서 철두철미

친시민적, 반무산자계급적인 극단적 자유주의의 자본주의의 철학으로 자리

매김하는 데에는 시대사적 배경을 무시하거나, 특정한 측면을 지나치게 과

장하는 것이다.40) 그렇지만 로크가 인식론의 차원에서 생래적 원칙과 생래

적 행위규칙(권리와 의무)을 거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명과 소유에

대한 권리 및 그에 따라 타인의 생명과 소유를 존중해야 할 의무를 자연

법으로, 다시 말해 생래적 원칙으로 규정하고 있고, 그 점에서 인식론과

실천철학 사이에 어떤 괴리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는

있다. 그리하여 혹시 사소유권자들의 사회 및 사소유권자들의 국가가 보편

타당성과 영원성을 입증하려는 시도를 통해 그가 의미하는 자유가 오히려

소수의 경제적 자유와 다수의 경제적 부자유를 정당화하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고 해석할 여지를 남겨 놓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해석가능성은 그의

국민개념을 살펴봄으로써 더욱 더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Ⅳ. 로크의 국민개념 - 소유를 통한 제한

로크가 근대의 “국민주권이론”의 선구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면, 우선 그의 법철학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국민”개념을 더욱

엄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로크에 따르면 “자연상태에 있는 일정 수의

사람들이 최고의 통치권력 하에 있는 하나의 국민, 즉 하나의 정치체제를

39) J. Locke, An Essay Concerning Toleration, in: A Letter Concerning Toleration and Other Writings, Edited and with a Introduction by Mark Goldie, 2010, p.109-111.

40) 이에 관해서는 앞의 Ⅱ.의 서술 그리고 역사적 배경에 집중하고 있는 정태욱, 존 로 크(John Locke) 사상의 재조명, 혁명론, 소유권론, 관용론을 중심으로, 법철학의 모색과 탐구 심헌섭 박사 75세 기념논문집, 2011, 53면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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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법학 제34권(2011.10) 376

결성하기 위해 사회에 가입하는 경우에는 언제나”(§ 89) 국민이 형성된다

고 한다. 이 때 합의에 참여하는 모든 개인은 자신의 자연적 주체성이라는

요소를 포기하고 이를 집단적 주체에게 이양하며, 그 대가로 이 집단적 주

체가 보장하는 이익을 공유하게 된다. 자연법에 비추어 모든 인간은 자유

롭고 평등하기 때문에, 하나의 국민 내부에서는 어떠한 법적 차이도 존재

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로크의 국민개념은 평등주의와 보편주의의 경

향을 보인다. 그러나 근원적인 계약이 성립하는 조건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국민개념의 보편성은 상당히 희석된다. 로크에게 계약은 다수의 의지들이

맺는 상호관련성이고, 이러한 의지는 이성을 전제하며 또한 계약의 내용은

자연법에 합치해야 한다. 그러나 누구나 이성과 자기 나름의 의지를 갖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어떤 결핍으로 말미암아 “법을 이해할 수 있고 법

의 규칙에 따라 생활할 수 있기에 충분한 정도의 이성을 갖고 있지 못하

다면, 그러한 사람은 결코 자유인이 될 수 없으며, 그런 사람에게는 결코

그의 의지대로 행동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60) 이렇게 지속적으로 비

이성적인 사람은 정신질환자로서 다른 사람의 후견을 받도록 해야 한다.

또한 자연법에 반하여 전쟁을 시작하거나 부당한 공격을 감행하는 사람들

이 있는데, 이들을 포로로 붙잡은 후에는 “자연권에 따라 주인의 절대적이

고 자의적인 지배에 복종하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그들의 생명

을 몰수당한 자들로서 생명과 더불어 자유도 몰수당하였으며, 재산도 상실

했다. 또한 이들은 노예상태에 있고 소유할 능력도 없기에 결코 시민사회

의 일원으로 생각할 수 없는 상태에 처해 있다. 시민사회의 주된 목적은

소유의 보존이기 때문이다.”(§ 85) 이렇게 볼 때, 대다수 지역에서 전쟁포

로로 인해 노예가 된 사람들이 주민의 40%를 차지했던, 아메리카 대륙의

뉴잉글랜드의 사람들에게 로크는 결코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

을 것이다.

그러나 로크의 “국민”개념에서 배제되는 사람들은 이 정도에 그치지 않

는다. 즉, 정신병자와 노예 이외에도 진정한 자유를 구가하기 위해 필요한

성숙도에 도달하지 않은 어린 아이들도 당연히 국민개념에서 배제된다. 물

론 어린 아이들의 경우에 그러한 하자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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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법과 역사 - 존 로크 법철학의 양면성377

만 로크가 그러한 미성숙을 완전하게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남자아이들

에게만 인정할 뿐, 여자 아이들은 미성숙을 극복할 수 없다고 단정하는 것

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58). 심지어 남편과 아내는 “상이한 이해력을 갖

고 있는 나머지 때로는 서로 다른 의지를 가지게 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최종적인 결정권, 즉 지배권이 누군가에게 주어져야 하고, 이 지배권은 당

연히 조금 더 유능하고 힘이 센 남자의 몫이 된다.”(§ 82) 따라서 로크가

가부장이 가족에 대해 갖고 있는 권력이 “매우 취약하고 단기적일 뿐”(§

86)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의 논증 자체는 전통적인 “가정전제주의

(Oikosdespotismus)”의 논증방식을 취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즉, 로

크는 사회와 관련해서는 자연적인 지배질서가 존재하는 것을 철저히 거부

하는 반면, 가정과 “아내, 자식, 하인 및 노예와의 모든 종속관계”(§ 86)에

관한 한은 여전히 가부장권이라는 전통의 잔재를 그대로 붙들고 있고자

했다. 그리하여 이 영역과 관련해서는 시민상태에서도 자연상태가 지속되

고 있다. 물론 로크는 이와 관련하여 엄밀한 논증을 하고 있지는 않다. 그

렇더라도 그의 서술이 여성과 하인에게 선거권을 부여한다는 식의 사고와

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41)

로크가 국민개념의 외연에 가한 제한의 또 다른 측면은 특히 맥퍼슨이

강조하고 있다. 즉, 로크에 따르면 소유를 갖고 있는 자라면 누구나 “정치

공동체”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소유는 단순한 재산권에

국한되지 않는, 넓은 개념으로서 “사람이 재산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신에

대해서 갖고 있는 것(§ 173)”을 포괄한다. 이에 반해 통치할 권리 및 통치

를 통제할 권리와 관련해서는 소유의 개념을 좁혀 전적으로 물질적 소유

의 의미로 이해한다. 다시 말해 정부의 통치를 통해 보호받는 사람은 누구

나 “그의 재산에서 정부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할당분을 지불해야 하

기”(§ 140) 때문에 로크는 충분한 재정적 수단을 제공하는 자만이 그 사

용데 대해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국민의 어

떤 부분도 그 부분이 어떤 식으로 결합했는지 관계없이 오로지 “자신들이

41) 이에 관해서는 M. Seliger, The Liberal Politics of John Locke, 1968, p.210; W. Kendall, John Locke and the Doctrine of Majority Rule, 1965, pp.120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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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법학 제34권(2011.10) 378

공공에 제공한 부조에 비례하여”(§ 158) 국민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데 참

여할 것을 요구할 수 있을 뿐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선거권과 대표자를

통해 정부를 통제할 권리는 공공에 대한 재정적 기여의 정도에 따라 차등

적인 형태로 보장될 수 있을 뿐이다. 물론 로크는 “통치론” 제2권에서 오

로지 소유권자만이 선거에 참여할 수 있다는 식으로 명시적으로 주장하고

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식민지 카롤리나(Carolina)의 헌법초안에서 로크는

국민의 정치적 지위를 계급에 따라 뚜렷이 차이를 두도록 하고 있고, 더

나아가 (토지)소유권의 분배 역시 계급에 따라 차등을 두도록 헌법적으로

규정하고 한다. 즉, 전체 토지의 5분의 1은 “귀족 재산가”에게, 또 다른 5

분의 1은 “하급귀족”에게 귀속시키고 나머지는 다른 “일반 소유자들”에게

귀속시키도록 하고 있다.42) 더욱이 이 일반 소유자들 가운데에서도 일부만

이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500에이커의 토지를 소유해야 하며, 선거권을 가지려면

50에이커의 토지를 소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 관한 한, 로크가 “지

나칠 정도로 봉건주의 특권을 인정하고” 있고, 로크의 국가는 의심의 여지

없이 계급국가라는 셀리거(M. Seliger)의 지적은 타당하다.43) 이렇게 본다

면 로크의 자유개념 역시 그가 살던 당시 대다수 학자들의 자유개념에 대

한 이해와 일치한다. 17세기에 “자유(freedom; liberty)”는 오늘날과는 다른

의미를 가졌다. 오늘날 자유라고 할 때에는 일반적으로 외부의 제한이 없

고,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뜻한다. 이에 반해 윌리엄 3세가 지배하던 당시 자유라는 개념은 오늘날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즉, 그 당시 자유는 특권과 배타성을 의미했다. 예

를 들어 도시의 자유인은 일정한 특권을 향유했고, 하급계층의 사람들은

이러한 특권으로부터 배제되었다. 다시 말해 토지를 소유한 자유인들은 자

42) Locke, The Fundamental Constitutions of Carolina, in: Works, Vol. X, S. 190, Article LXXII.

43) Seliger, pp. 288, 292. 같은 입장에 있는 Macpherson, S. 280f.; Euchner, Naturrecht, S. 204도 참고; 이와는 달리 롤즈는 로크의 법철학 자체가 필연적으로 계급국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를 허용하고 있을 뿐이라는 유보적인 태 도를 취한다. 이에 관해서는 Rawls, Geschichte, S. 28f.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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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법과 역사 - 존 로크 법철학의 양면성379

신의 토지 내에서는 배타적 권력을 누렸다. 같은 맥락에서 의회의 ”자유“

역시 17세기에는 예컨대 회기 중의 불체포특권과 같은 일정한 특권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자유는 곧 무엇인가를 소유하고 있다는 상징이

었지, 외부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뜻이 아니었다.

이렇게 볼 때 로크의 국민개념은 전적으로 그 시대의 제약으로부터 결

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그가 살던 시대가 새로

운 시장경제와 이윤창출 방식이 시작되어 사회적 관계에 대해 새로운 내

용을 부여할 필요가 있었고, 그 맥락에서 근대적 주체성의 맹아들을 여기

저기에서 발견할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은 사회적 교환형식 전체를 아우

를 정도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즉, 로크의 17세기는 여전히

여러 영역에서 지배와 특권이 횡행했던 것이다. 하지만 신분과 특권 그리

고 농노 대신 상거래를 통한 이윤창출과 토지의 자본화라는 새로운 경향

이 대두되었다는 사실 자체에는 의문을 제기할 수 없다. 그렇더라도 사회

의 구조는 여전히 개인적인 상하관계와 소수 계층의 정치적 특권에 기초

한 직접적 폭력에 의해 규정되었다. 그 때문에 시민계층의 형성신화라 할

수 있는 사회계약론 역시 그와 같은 시민사회 이전의 지배관계를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었다. 물론 로크에 따르면 모든 개인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생명과 소유에 대해 똑같이 이익을 갖고 있다. 하지만 오로지

소수의 개인만이 소유권자가 되고, ‘재산’과 ‘토지’를 획득한다. 또한 모든

개인이 국가가 존재해야 할 이익을 갖고 있지만, 오로지 소수의 개인만이

국가의 존재에 대해 특별한 이익을 갖는다. 모든 개인이 법률에 복종해야

하지만, 오로지 소수의 개인만이 법률을 만들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

민의 의사가 갖는 보편성은 적어도 로크에서는 일종의 허구에 불과하다.

즉, 로크의 법철학에서 국민의 의사는 사실상 소수의 국민들 가운데 다수

를 점하는 자들의 의사일 뿐이다.

그리고 이들 소수의 국민들은 늘 똑같은 사람들로 구성된다. 물론 로크

가 특권이 없는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이성적인 삶을 살아

갈 능력이 없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44) 로크 스스로 가난한 자들일지라

44) 이와는 달리 맥퍼슨은 계급의 고착화와 불가변성에 집중하는 논증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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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법학 제34권(2011.10) 380

도 종교와 도덕과 관련해서는 충분한 지적 능력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있

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로크는 “자신들의 이성을 함양할 여유를 가진 엄

청난 행운을 가진 자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으른 무지에 만족하는

것”45)을 격렬하게 비난한다. 그렇기 때문에 로크가 계급사회에 대한 어떤

인간학적 정당화를 제공했다고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렇더라도 그

가 이성과 관련된 엘리트이론의 입장에 서있었던 것은 분명하며, 적어도

그 결과적 측면에서는 사실상 어떤 입장을 취하든 같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인류의 “대다수 사람들”은 지배를 할 능력이나 소명을 갖추고

있지 못하며, 오로지 “더 이성적이고 더 많이 지각하는 자들”만이 그러한

능력과 소명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된다. 또한 이렇게 특권에 기초한 물질

적 상황에 힘입어 보편에 대한 통찰을 훈련할 수 있는 자들만이 공동체를

지도할 능력을 갖는다. 더욱이 공동체의 최상의 목적은 소유를 보호하는

것이고, 그러한 공동체에 대해 가장 커다란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자들은

곧 특권을 향유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사실상 공동체를 지도할 능력을 가

진 자들은 대부분의 경우 이미 예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로

크가 구상한 국가가 그 과제영역과 구체적 현실에 비추어 아무리 보편성

을 갖는다 할지라도, 국가의 보편성은 무엇보다 소유권을 기초로 하는 계

급적 기반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소유가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노동시설이나 이주제한 또는 욕망에 대한 통제나 구빈지원의 거부 등을

통해 소유권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훈육할 대상일 뿐이다.46) 물론 그렇더라

도 그러한 “무산자계층”이 지배자들에게는 늘 위협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도 로크는 그러한 집단이 급속히 “폭발하는 군중”으로 변화하여 소유권자

에 대한 존경심을 상실한 채 자신들의 요구를 폭력을 동원하여 관철할 위

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그들은 언제가 부자들을 급습하여 마치 해일과도

같이 모든 것을 쓸어내 버린다.”47) 로크의 소유권자 국가는 분명 홉스의

Macpherson, S. 250 참고.

45) Locke, Versuch, Bd. Ⅱ, S. 423.

46) Euchner, Naturrecht, S. 60; Rotermundt, S. 53ff.

47) Locke, Some Considerations of the Consequences of the Lowering of 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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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법과 역사 - 존 로크 법철학의 양면성381

리바이어던에 비해 훨씬 더 잘 기능하는 국가임에 틀림없다. 로크의 국가

는 시민적이며 또한 동시에 혁명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국가의 토대

는 여전히 박약하여 자연발생적 사회를 완전히 극복할 수는 없다.

Ⅴ. 맺음말

이상의 서술은 로크의 자연법이론이 일정한 시대적 배경 하에서 탄생했

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그것이 상당부분 계급국가적 사고에 기초함을 밝히

고자 했다. 그리하여 어떠한 자연법이론도 설령 보편성과 절대성을 표방할

지라도 시대구속적이고 시대제약적인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

하고자 했다. 즉, 자연법은 역사와 함께 그리고 역사의 문을 거치면서 형

성되는 이론임을 로크의 법철학에 비추어 밝히려는 것이었다. 모든 사상가

는 결국 “시대의 아들”(헤겔)이라는 숙명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 이렇게

자연법의 역사성에 대한 인식을 출발점으로 삼는다면, 로크의 법철학이 소

유절대주의나 계급국가적 속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그의 법철학에

대한 거부와 비난의 동기가 될 수 없다. 예컨대 국민의 범위를 소유를 중

심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은 결코 로크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48) 적

어도 이러한 역사성을 의식하는 한, 오늘날의 자유주의나 민주적 헌법국가

의 문제를 초역사적인 차원에서 해결하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 오늘의 문

제는 로크의 문제가 아니었고, 오늘의 문제는 아마도 로크와는 다른 해결

방안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사상이 민주적 헌법국가 자체 그리고

and the Raising the Value of Money, in: Locke Works, Vol. 5, 1963, p.71.

48) 대표적으로는 칸트(Kant)를 들 수 있다. 그는 공화국의 시민이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독립성의 전제조건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입법에서 표결권을 갖고 있는 자 가 곧 시민(bourgeoise가 아니라 citoyen이다)이다. 시민이 되기 위해 필요한 성질 은 자연적 성질(그러니까 아이나 여자가 아닐 것) 이외에는 단 한 가지이다: 시민 은 그가 그 자신의 주인(sui iuris)이어야 하고, 따라서 생계를 보장하는 무언가 소 유를 갖고 있어야 한다(소유에는 모든 예술, 수공업 또는 학문도 포함된다; I. Kant. Über den Gemeinspruch. Das mag in der Theorie richtig sein, taugt aber nicht für die Praxis, in: Kants Weke, Bd. 8, 1971, S. 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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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법학 제34권(2011.10) 382

그에 대한 법철학적 정당화를 둘러싼 기나 긴 진화의 연속선상에서 특정

한 시대의 의미론으로 작용했고, 현대 역시 그 의미론의 연장선상에 있다

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주제어: 존 로크, 자연법론, 소유권, 계급국가, 국민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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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법과 역사 - 존 로크 법철학의 양면성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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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법학 제34권(2011.10) 386

Naturrecht und Geschichte-Zwiespältigkeit der

Rechtsphilosophie von Loc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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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i-Wang Yoon

In der Naturrechtstradition hebt sich John Locke besonders dadurch

hervor, dass seine Theorie des Naturrechts auf dem neuzeitlichen

Besitzindividualismus basiert und damit letztlich einen Klassenstaat

rechtfertigt. Diese als “Macpherson-These” bekannt gewordene

Locke-Interpretaion sieht in seiner Rechts- und Staatsphilosophie, die er

hauptsächlich in “Two Treaties of Civil Gouvernment” entwickelt hat,

einen probürgerlichen und contraproletatischen Entwurf des um die

Eigentümer zentrierten Staates. In der Tat lässt sich bei seiner

Rechtsphilosophie mühelos feststellen, dass die Interessen der Eigentümer

bereits vor der Gründung einer politischen Gesellschaft eine

naturrechtliche Legitimation erfährt und der absolute Vorrang des

Eigentums auch im staatlichen Zustand intakt bleibt.

Unabhängig von der Richtigkeit solcher Lesart kann man sich jedoch

fragen, ob die Naturrechtstheorie überhaupt - gegen ihren Selbstanspruch

  • keineswegs absolute Geltung hat, sondern vielmehr ein Produkt des

jeweiligen geschichtlichen Zustandes darstellt. Der vorliegende Beitrag

setzt sich an dieser Frage an. Um diese Frage im Rahmen der

Ideengeschichte über den demokratischen Verfassungsstaates angemessen

zu behandeln, wird die Naturrechtstheorie von Locke in ihren

allgemeinen Zügen erläutert(II) und anschließend im Zusammenhang mit

  • Professor, School of Law, Korea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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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법과 역사 - 존 로크 법철학의 양면성387

der Erkenntnistheorie von Locke kritisch beleuchtet(III). Dabei steht vor

allem die Frage im Vordergrund, ob es einen Hiatus bzw. eine

Zwiespältigkeit zwischen seiner Erkenntnistheorie und praktischen

Philosophie geben könnte. Schließlich wird es über den Volksbegriff bei

Locke erörtert und geklärt, inwieweit dieser Begriff die meisten

Menschen von dessen Extension ausschließt(IV). So gelangt der Beitrag

zu einer Einsicht, dass “Naturrecht und Geschichte” in einem

notwendigen Zusammenhang stehen und in dieser Hinsicht eine

überzogene Ideologiekritik an Locke ungebührlich ist.

Key Words: John Locke, Naturrechtslehre, Eigentumsrecht,

Klassenstaat, Volkssouveränitä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