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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논증 그리고 논증이론*
윤 재 왕**
1)
◀ 目 次 ▶
Ⅰ. 글머리에
Ⅱ. 법률구속 그리고 구속되지 않는 법관
Ⅲ. 법관의 논증의무
Ⅳ. 논증과 법적 논증이론
Ⅴ. 법적 논증이론과 법실무
(논문투고일 : 2019.12.9. / 논문심사일 : 2019.12.23. / 게재확정일 : 2019.12.30.)
- 이 글은 2015년 대법원의 연구용역과제 「법적 논증 실천론 연구(연구책임자: 이계일)」 에서 글쓴이가 담당한 부분인 ‘제1장 법적 논증 실천론 연구’를 법률개정과 최근 문헌을 고려하여 수정 및 보완한 것임을 밝힌다. **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학박사(Dr. iur.)
국 문 초 록
판결의 성립과정을 법적 논증이론의 관점에서 재구성함으로써 이를 법실무
의 비판적 자기성찰의 소재로 제공하고자 함이 이 글의 목적이다. 이를 위해
우선 법률구속 이념과 그 한계에 관한 정치사적⋅이론사적 서술을 전개하였
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법해석이론과 법학방법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독일의 경우에 비추어 법률구속 이념을 둘러싼 이론적 통찰을 살펴봄으로써
판결이 법률로부터 논리적으로 도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더욱 구체화하면서,
법률구속으로부터의 해방이 곧바로 판결의 결단적 성격을 부각시키는 방향으
로 급선회하지 않았고 또한 그럴 수도 없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를 통해 법
Dankook Law Review Vol.43 No.4 (2019. 12)
https://doi.org/10.17252/dlr.2019.43.4.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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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글머리에
판사를 포함하여 법률가들이 일반적으로 법에 대해 갖고 있는 잘못된 생
각 가운데 하나는 법이 법률 속에 존재하고, 법을 인식하는 일의 대상이 곧
법률이라는 생각이다. 다시 말해 법이 곧 법률이라는 무미건조한 텍스트 속
에 담겨 있고, 마치 고고학자가 유물을 발굴해내듯이 특정 법률을 탐색하고
탐구하다 보면 어떤 식으로든 법이라는 ‘실재’를 찾게 된다고 생각한다. 과
연 그럴까?
예를 들어보자. 일련의 판결에 따르면 이른바 보복운전은 자동차라는 ‘위
험한 물건’을 ‘휴대’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형법 제284조1)에
따라 처벌할 수 있다고 한다.2) 이 경우 ‘자동차 = 위험한 물건’이라는 ‘인
1) 형법 제284조(특수협박) 단체 또는 다중의 위력을 보이거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전 조 제1항, 제2항의 죄를 범한 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 한다. 2) 예컨대 서울북부지방법원 2016. 11. 15. 선고 2016고단1969 판결은 “피고인은 2016. 5. 11. 20:40경 서울○○○○○○○호 ○○○ 택시를 운전하던 중 서울 종로구에 있는 ‘○○○역’ 사거리 앞 도로에서 편도 3차로 중 3차로를 따라 ‘○○○역’ 방향에서 ‘○ ○○구청’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손님을 기다리기 위하여 정차하다가 그 뒤에서 진행하
률구속 이념이 보장하고자 하는 법적 결정의 합리성을 포기하는 대신, 논증의
합리성으로 대체해온 이론사를 검토한다. 즉 논증이론이 부상하게 된 배경을
법률구속 이념을 중심으로 서술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법관의 논증의무와 관
련된 헌법이론적 측면을 간략히 다룸으로써 판결과 논증이론의 연결가능성을
확보하고, 이를 토대로 법적 논증이론의 내용을 특정 논증이론에 구속되지 않
은 채 설명한다. 이로써 법원의 논증, 즉 판결이유의 작성을 위한 확정된 규칙
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논증이 법질서 전체 및 사법작용에서 갖는 의미를
확인하고자 한다. 즉 논증이론으로부터 직접 논증의 기준들을 도출하려는 규
범적 기획으로부터 상당히 먼 거리를 유지하고자 한다. 끝으로 법실무의 측면
에서 법적 논증이론에 관하여 몇 가지 측면을 지적하고자 한다.
<주제어> 법관의 법률구속, 사법적 삼단논법, 논증, 법적 논증이론,
법관의 논증의무, 법학방법론, 방법적 정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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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 그리고 자동차도 휴대가 가능하다는, 일반적 용례에 반하는 ‘인식’은 도
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또한 만일 이러한 인식이 참된 인식이라면 다
음과 같은 문장도 아무런 문제 없이 이해할 수 있을까? “오늘 회식 장소에
갈 때는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고 가는 게 좋겠어. 어젯밤에 액체로 된 위험
한 물건을 너무 많이 마셨더니 다른 위험한 물건을 가지고 가면 아무래도
그 액체 위험한 물건을 피하는 데 좋은 구실이 되지 않겠어. 설마 나더러
다른 사람에게 대신 내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도록 강요하지는 않겠지?” 물
론 이 문장은 난센스이거나 일종의 패러디처럼 들리겠지만, 보복운전에 대
한 판결을 전면적으로 거부하지 않는 한 - 또는 거부할지라도 - 자동차가 일
정한 맥락에서는 위험한 물건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처음부터 완전히 배제
할 수는 없다. 이와 관련된 고전적인 예를 들자면 사족동물이 야기한 손해
의 배상을 규정한 로마의 12동판법(Leges Duodecim Tabularum)은 로마제국의
식민지 확장으로 인해 아프리카에서 대량 유입된 타조(이족동물)에게도 적용
되었다.3)
문제는 ‘위험한 물건’이라는 형법상의 구성요건표지에 ‘자동차’가 이미 포
함되어 있었고, 그 때문에 판사는 이 법률로부터 자동차는 위험한 물건이라
는 인식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생각해야 하는가이다. 조금 더 이론
적 언어를 동원하자면, 도로교통 중에 다른 운전자에게 위협을 가한 행위는
형법상의 특수협박에 해당한다는 결론은 ‘법률 - 사안 – 법률효과’라는 도식
에 따른 논리적 추론이고, 그 점에서 판결의 결론은 논리필연적 진리라고
보아야 하는가이다. 더 나아가 판결은 언제나 그와 같은 도식에 따라 이루
어지거나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즉 판사는 처음부터 그와
같은 도식을 통해 기계적이고 자동적으로 법적 결론에 도달하게 될까? 하지
만 판결의 성립과정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와 같은 도
식적 사고가 판결과정에서 커다란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
던 피해자 B(46세)이 운전하는 서울○○○○○○○호 ○○○○○○○ 버스의 진로를 막게 되었고, 이에 피해자가 피고인을 향해 경적을 울렸다. 그러자 피고인은 앞서 진행 하던 위 버스를 추월하여 위 도로를 위 방향으로 위 버스 앞에서 진행하다가 서울 동 대문구 ○○○로 ○○ 앞 편도 2차로에 이르러, 급제동을 하고, 다시 진행하다가 재차 급제동을 하여 피해자 B을 협박 [……] 하였다”라고 범죄사실을 확정하고 피고인을 특 수협박죄(형법 제284조, 제283조 제1항)로 처벌하였다. 3) 이와 관련된 상세한 서술로 최병조, “D.9.1 “사족동물의 가해가 주장되는 경우” - 대역 및 주석”, 서울대학교 법학, 제41권 1호(2001)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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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러한 도식에 훨씬 더 앞서 판사는 먼저 일종의 brainstorming을 거친다
고 보는 것이 현실에 더 가깝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가 얼마나 끔찍한 일인
데 자동차로 그런 위험한 짓을 하는 것은 용납해서는 안 되지”라든가 “내
딸아이가 그런 일을 당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지” 또는 “혹시
경찰이 그렇게 했다면 범인을 잡으려고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모를까, 일반 운전자에게 그런 위험한 짓을 하는 것은 당연히 엄
벌에 처해야 마땅하지” 등등 법률텍스트 자체와는 직접 관계가 없는 사고가
앞서게 된다.
물론 법률가가 하게 되는 brainstorming은 이러한 상식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당연히 법률전문가로 사회화되는 과정에서 학습된 전문적 지식이
개입한다. 예를 들어 법관의 법률구속이라는 헌법적 원칙, 유사한 사례에 대
한 최고법원의 선결례, 유추를 금지하는 죄형법정주의 원칙, ‘위험한 물건’에
대한 형법학의 개념정의, 도로교통 안전과 관련된 입법정책적 고려 또는 외
국의 판례 등 극도로 다양한 관점들이 상식적 고려만큼 또는 그보다 더 중
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이 측면에서 보복운전이 특수협박죄를 구성한다고
결론을 내릴 경우 - 당연히 특수협박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리는
경우도 - 이 결론을 지지하는 근거를 제시할 수 있는 방법은 상당히 많다.
하지만 방법의 다양성과는 별개로 최종적인 결론은 단 하나일 뿐이다. 즉
특수협박죄를 구성하거나 구성하지 않거나 하는 결론 이외에 제3의 가능성
은 없다. 일반적으로 표현하자면, 법관이 결정에 도달하는 과정에는 법률만
이 아니라, 법률과 직접적 관련성이 없는 다수의 비법률적 관점들이 개입하
지만, 이러한 관점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하나의 결론, 즉 결정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 적어도 법치국가를 전제하는 한 - 이 단
하나의 결정은 최대한 이를 납득할 수 있는 합리성을 담보해야 하고, 결정
의 합리성을 텍스트의 형식으로 설명해야 한다.4) 다시 말해 이미 주어져 있
는 법이라는 실재를 단순히 인식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사
례에 비추어 올바른 결정을 구성하고, 그 구성의 과정들을 최대한 문서의
4) 이처럼 법적 결정의 정당성은 합법성 이외에도 실질적 정당성이라는 요청에도 구속된 다는 사정을 밝히고 있는 Ulfrid Neumann, “진리와 권위: 법에서 근거제시를 통한 정당 화의 가능성과 한계”, 「구조와 논증으로서의 법」, 2013, 99면 이하 참고; 이러한 점이 법적 논증이론의 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밝히는 Ulfrid Neumann, 「법과 논증이론」, 2009, 9-13면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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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으로 담아내야 한다. 이와 같은 문서화 작업의 결과가 곧 판결문이다.
그 때문에 판결문은 판사의 사유과정의 결론에 해당하는 주문과 주문에 도
달하게 된 과정을 묘사하고 주문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는 판결이유로 구성
되어 있다.
그러나 판결이유는 결정을 내리는 판사가 겪은 모든 정신적 과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낼 수 없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정과는 별개
로 판사 개인의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심리적 프로세스는 판사 자신도 완벽
하게 서술할 수 없는 영역이다. 특히 판결이유가 결정에 대한 근거를 제시
하는 것이라면 ‘근거’라는 표현은 단순히 의식의 객관화가 아니라, 일정한
법질서 내에서 일반적으로 승인되는 법적 근거를 뜻하는 것이어야 한다. 어
떤 도화나 영상이 ‘음란물’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척 보면 안다(prima facie)!’
라고 말한 어느 유명한 미국 대법관의 설명5)은 결정에 대한 근거가 아니라,
자신의 직관을 표현한 것일 뿐이다. 물론 그러한 직관이 결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직관을 통해 결정에 도달한다는 것과 도달한
결정에 근거를 제시하는 것은 별개의 작업이다. 즉 판사가 일정한 결정을
선택하게 된 주관적 동기와 객관적 근거는 구별해야 한다.6)
다른 한편 판사의 결정은 구체적 사례와 관련된 것이긴 하지만 결정의 근
거를 제시할 때에는 그 근거 자체가 오로지 구체적 사례에만 해당하는 일회
적이고 특수한 근거가 아니라, 결정한 사례와 모든 중요한 관점에서 동일한
성격을 갖는 다른 모든 사례에도 해당할 수 있는 근거이어야 한다. 즉 법적
결정의 근거는 특수한 근거가 아니라, 일정한 범위 내에서 일반화가 가능해
야 한다.7) 이는 결정이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라는 가장 보편
적 의미의 정의요청에 부합하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이다.8) 극단적으로 말하
자면, 법의 세계에서는 단 하나의 사건에만 해당하는 논거는 있을 수 없다.
5) Jacobellis v. Ohio, 378 U.S. 184, 197 (Stewart, J., concurring, 1964). 6) 주관적 동기와 객관적 근거의 구별을 결정의 도출(Herstellung)과 결정에 대한 설명 (Darstellung)의 구별과 연관지어 설명하는 Ulfrid Neumann, “법적 논증이론”, 「법과 논증 이론」, 2009, 181면 이하 참고. 7) 이러한 보편화가능성원칙(Universalisierbarkeitsprinzip)을 통해 결정이 하나의 규칙에 지 향되도록 하는 것이 비로소 보장된다는 Ulfrid Neumann, 「법과 논증이론」, 15면 이하, 61면 이하, 184면 이하 참고. 8) 이처럼 법적 결정에 대한 근거가 반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상 술하고 있는 Niklas Luhmann, 「사회의 법」, 2014, 466면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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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근거로 제시된 내용이 일반적 규칙으로 형성될 가능성을 담고 있지 않을
때는 설령 결론에 해당하는 주문이 타당할지라도 올바른 판결이유로 볼 수
없다. 이 점에서 솔로몬의 재판과 같은 현자재판(賢者裁判)은 제도화된 사법
부의 판결이 달성해야 할 이상적 목표라 할 수 없다.
더욱이 판사가 자신의 결정에 대한 근거로 제시하는 내용은 다른 모든 합
리적 근거에 우선하여 법률에 합치하는 근거이어야 한다는 제도적 구속을
받는다. 이는 법관이 법률에 ‘의하여’ 재판해야 한다는 헌법적 명령의 표현
이다.9) 물론 - 이미 지적했듯이 - 판결은 단순히 법률로부터 결정을 논리적
으로 도출해내고, 판결이유는 이 논리적 추론과정을 ‘답습’하여 서술하는 영
역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계적 논리를 배제한다는 전제하에 과연 어떤
식으로 법률구속의 원칙을 판결에 실현할 수 있을까? 법률이 단지 판결에서
고려해야 할 여러 가지 관점 가운데 하나이고, 따라서 판결을 완벽하게 구
속하는 장치가 될 수 없다면 민주적 정당성을 갖는 입법자에 의해 제정된
법률의 규율프로그램이 어떻게 사회 속에서 관철될 수 있을까?10) ‘법률과
법관’이라는 표제 아래 이미 오래 전부터 법이론의 핵심주제로 다루어진 이
물음은 법관의 독립이나 법관의 자유(자의?)라는 전통적 논의대상에서 시작
해서 법이라는 하나의 사회체계가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에 관한 사회학적
이론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이론적 스펙트럼 속에서 첨예한 논쟁의 대
상이 되고 있다.11) 다만 모든 논쟁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사실만은 분
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즉 법관의 법적용은 결코 법률을 통해 완벽하게 규
정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론적 공통분모에 해당하는 이러한 사실은 곧바
로 법적용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법관의 주관적 가치평가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고 이러한 결론은 다시 그러한 가치평
가가 법관의 자의적인 결단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근원적 혐의
의 근거가 된다.
9)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라 고 규정한다. 10) 이러한 의문을 권력분립원리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 기초하여 검토하는 윤재왕, “권력분 립과 언어 - 명확성원칙, 의미론 그리고 규범적 화용론”, 강원법학, 제44권(2015), 429면 이하 참고. 11) 이와 관련한 이론사를 압축적으로 조명한 윤재왕, “‘법관은 법률의 입’? - 몽테스키외에 관한 이해와 오해”, 안암법학, 제30권(2009), 112면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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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950년대부터 이론적 지평 위로 떠오른 이른바 ‘법적 논증이론’12)은
한편으로는 법률이 판결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 사실이 법관의 자의를 조장한다는 혐의를 불식시키기
위한 이론적 시도이다.13) 즉 논증이론은 판결이 단순히 법률을 인식하는 것
이 아니라, 법관의 의지가 개입된 창조적 활동이라는 의미에서 하나의 실천
이지만, 이 실천은 일정한 규칙의 지배를 받는 근거제시 활동, 즉 논증의 실
천으로서 가치평가의 합리성과 객관성을 담보하는 길이 있다는 전제에서 출
발한다. 그 때문에 상당수의 법적 논증이론은 판결의 합리성과 객관성을 보
장하기 위해 일정한 논증의 기준들을 제시하고자 한다.14) 물론 법적 논증이
론이라는 지붕 아래에는 다시 다양한 성격과 지향성을 갖고 있는 다수의 이
질적 사유경향이 함께 살고 있다. 다시 말해 - 이 점은 미리 분명하게 밝혀
둘 필요가 있다 - 단 하나의 정당한 논증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래의 서술은 앞에서 극히 단순화하여 설명한 판결의 성립과정을 법적
논증이론의 관점에서 재구성하고 이를 법실무의 비판적 자기성찰의 자료로
삼을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법률구속의 이념과 구속의 한
계(II)를 정치사적, 이론사적 관점에서 밝히겠다. 이 부분의 서술은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법해석이론과 방법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독일을 모범으로
삼아 법률구속의 이념의 역사적 형성배경 및 이 이념의 한계에 대한 이론적
통찰을 살펴봄으로써 판결이 법률로부터 논리적으로 도출되지 않는다는 -
이미 언급한 - 사실을 조금 더 구체화하면서, 법률구속으로부터의 해방이 곧
바로 판결의 결단적 성격을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급선회하지 않았고 또한
그럴 수도 없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를 통해 법률구속이 보장하고자 하
는 법적 결정의 합리성을 포기하고, 그 대신 논증의 합리성으로 대체해가는
과정을 이론사의 측면에서 검토할 것이다. 다시 말해 논증이론이 부상하게
12)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 관해서는 Ulfrid Neumann, “1945년 이후 독일의 법철학”, 「구조 와 논증으로서의 법」, 2013, 373면 이하 참고. 13) 이러한 혐의에 대한 비판을 가하며 ‘결정이 필연적으로 자의를 뜻하지는 않는다’라는 법적 논증이론의 통찰을 제시하는 Ulfrid Neumann, “진리와 권위: 법에서 근거제시를 통한 정당화의 가능성과 한계”, 「구조와 논증으로서의 법」, 2013, 105-107면 참고. 14) 법률은 판결을 단지 부분적으로 규정할 뿐이라는 인식, 즉 법적 결정의 창조적 성격에 대한 이해로부터 판결의 구조를 자세히 분석하고 정당한 판결의 기준을 형성하려는 시 도가 이루어졌음을 밝히는 Ulfrid Neumann, “1945년 이후 독일의 법철학”, 「구조와 논 증으로서의 법」, 2013, 375-377면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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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 배경을 법률구속 이념을 중심으로 서술하게 된다. 그 이후 법관의 논증
의무와 관련된 헌법이론적 측면을 간략히 서술(III)함으로써 판결과 논증이론
의 연결가능성을 확보하고, 이를 기초로 법적 논증이론의 내용(IV)을 특정한
논증이론에 구속되지 않고 설명하도록 하겠다. 미리 밝혀두지만 논증이론에
관한 서술은 법원의 논증, 즉 판결이유의 작성을 위한 확정된 규칙을 제시
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 단지 논증이 법질서 전체 및 사법작용에서
갖는 의미를 확인하고자 할 뿐이다. 따라서 이 글은 논증이론으로부터 직접
논증의 기준들을 확정하는 규범적 의도로부터 상당히 먼 거리를 유지하고자
한다. 또한 논증 ‘이론’ 전반이 그렇듯이 다양한 법이론적 측면을 함께 고려
해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추상성을 전제한다. 끝으로 법실무의 측면에
서 법적 논증이론에 관해 몇 가지 언급(V)을 추가하도록 한다.15)
Ⅱ. 법률구속 그리고 구속되지 않는 법관
- 정치적 프로그램으로서의 법률구속과 사법적 삼단 논법
법관이 오로지 법률에만 복종해야 한다는 법률구속의 원칙은 법관이 법률
상의 지침 이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준수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이는 곧
법관의 독립이라는 고전적 요청의 핵심이다. 즉 구속을 통한 독립 또는 독
립을 위한 구속이라는 역설적 표현으로 집약할 수 있다. 이러한 고전적 요
청은 절대주의에 대항하여 법관은 군주의 지침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사고의 표현이다. 즉 법관의 법률구속 또는 법률복종이라는 사고는 처음부
터 법관이 법률상의 지침 이외에는 그 어느 것도 따라서는 안 된다는 요청
을 담고 있었다.16) 법관의 독립이라는 표현 자체는 시민사회의 국가이론적
15) 이와 같이 ‘법적 논증이론(Theorie der juristischen Argumentation)’이라는 표제는 특정한 이론적 경향이 아닌 법철학의 특정한 문제영역을 지칭한다는 점을 밝히는 Ulfrid Neumann, 「법과 논증이론」, 2009, 2면 이하 참고. 16) 이 점에 대한 비판을 의식하며 원칙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Karl Engisch, 「법학방법론」, 2011, 70면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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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논증 그리고 논증이론 39
구상 자체가 법관이 아니라, 법률을 최상의 권력으로 설정했음을 뜻한다.17)
따라서 엄격한 법률구속이라는 정치적, 헌법적 프로그램은 사법부가 군주에
의한 자의적 개입으로부터 해방되는 대가였던 셈이다.18)
이러한 프로그램을 실현하기 위한 법기술적 장치는 법관의 판결활동을 논
리적 작동의 수행으로 규정하는 것이었다. 즉 논리적 작동이 가능하다고 전
제한다면 법적용은 외부의 영향이나 결정자인 법관 자신의 주관적 사고를
통해 판결이 불순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판결
의 내용이 법률의 의미를 통해 논리적으로 결정된다고 전제함으로써 법의
지배가 보장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논리적 작동을 오늘날에는 통상 사법
적 삼단논법(judicial syllogism) 또는 법률삼단논법(legal syllogism)이라고 부르
다. 사법적 삼단논법은 법적용을 두 가지 전제로부터 논리적으로 연역되는
자명한 추론과정으로 여긴다. 이때 대전제는 법률규범이고, 소전제는 규범의
적용조건으로 확인된 사실이다. ‘적용조건’의 확인은 증거조사를 통해 확인
된 사실을 법률상의 구성요건에 귀속시킴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사안
과 법률상의 구성요건 사이의 상호접근(포섭)은 단순한 기계적 과정으로서
사안의 포섭이 이루어지면 곧바로 이에 대해 법률효과가 귀속되는 논리적
추론이 가능하다고 전제한다.19)
법관의 법률구속을 통해 군주의 주권을 제한하고자 했던 자유주의가 사법
적 삼단논법에 기대했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충
족되어야 한다. 자유주의는 이러한 전제조건이 이미 마련되어 있다고 생각
했다. 즉 적용될 법률이 일반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법률이 특정
한 개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그리고 법률이 추상적이어야
한다. 즉 구체적인 행위에 지향된 것이 아니어야 한다. 더 나아가 법률의 의
17) 입법과 판결의 구별 및 그에 기초한 위계질서 형식에 대한 이론사적 성찰로 Niklas Luhmann, 「사회의 법」, 402면 참고. 18) 이와 같이 법관의 법률구속 및 사법적 삼단논법의 실천적 의의를 서양의 근대시민사회 의 태동과 결부지어 서술하는 이상돈, 「새로 쓴 법이론, 제3판(2005)」, 147면 이하 참고. 19) 사법적 삼단논법에 대한 논리학적 접근으로는 심헌섭, “법률적 삼단논법 -논리적, 철학 적 소고-”, 서울대학교 법학, 제14권 2호(1973), 141면 이하, 특히 161면 이하; 나아가 ‘판결을 근거지을 때 삼단논법의 추론절차가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고 또한 과연 법적 논증이 특정한 논리계산의 도움으로 재구성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앞세우며, 법적 논증에 대한 논리적-분석적 접근으로서 사법적 삼단논법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전개하 는 Ulfrid Neumann, 「법과 논증이론」, 2009, 24면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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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 명확해야 한다.20) 일반조항(general clause: 신의칙, 공서양속, 공공의 안
전 등)과 같이 법규범이 불명확한 경우에는 이를 구체화하는 해석을 필요로
하고 그 결과 법관은 삼단논법의 대전제에 해당하는 조건부에 특정한 내용
을 부여해야 한다. 다시 말해 법관이 대전제를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 또
한 개별사례에 국한된 조치법률은 소전제를 둘러싼 포섭절차를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린다. 이렇게 되면 사법적 삼단논법 모델은 공허한 것이 되고 만다.
따라서 사법적 삼단논법이 효율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흠결이 없
는 완벽한 법체계를 전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19세기에 이루어진 포
괄적인 법전편찬과 법실증주의의 끈질긴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완벽한
법체계는 만들어질 수 없었다.21) 그 때문에 법률의 흠결이 등장하는 경우에
도 법률구속 사고를 견지하기 위해 입법자는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일 수밖
에 없었다. 역사적으로 여러 번에 걸쳐 시도한 바에 따르면 법률의 흠결이
있는 경우 입법자가 개입하도록 하는 방법을 구사했는데, 이는 입법자의 사
법고권(Justizhoheit)과 법률의 지배가 그 역사적 동기였다. 가장 먼저 구사된
방법은 법관의 법률해석을 금지하고, 그 대신 법률의 내용에 의문이 있을
때에는 별도의 행정기관에게 유권해석을 요청하도록 강제하는 장치였다. 이
방법은 현실적으로 실현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유권해석 기관의 권력이
비대해진다는 또 다른 정치적 고려 때문에도 곧장 포기하게 되었다.22) 그리
하여 법관이 스스로 흠결을 보충하거나 대전제를 구체화하는 것을 인정하면
서 이와 관련된 해석지침을 제시하는 쪽으로 방법을 바꾸게 된다.23) 이러한
엄밀한 해석지침을 전통적으로 방법론이라고 부르는데, 방법론은 법관이 법
을 발명(법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법을 발견(법인식)한다는 사고를 견지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로 기능한다.
20) 이처럼 법률적 삼단논법의 인식론적 전제 가운데 하나로 언어의 명확성을 드는 이상돈, “법률적 삼단논법의 인식론적 오류”, 안암법학, 제3권(1995), 11면 이하 참고. 21) 이러한 사실을 결정의 정당성 기준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Ulfrid Neumann, 「법과 논증이 론」, 2009, 98면 참고. 22) 이와 같은 역사적 흐름에 대한 간략한 서술로 윤재왕, “‘법관은 법률의 입’? - 몽테스키 외에 관한 이해와 오해”, 안암법학, 제30권(2009), 115면 이하 참고; 이와 관련하여 ‘재 판거부금지’의 근대적 확립과정을 다루는 윤재왕, “법관의 결정의무 – 재판거부금지의 역사적 전개과정에 관하여”, 고려법학, 92호(2019) 참고. 23) 법학방법론의 과제 및 이를 수행하기 위한 해석지침(Auslegungscanon)에 대한 비판적 음미로 Robert Alexy, 「법적 논증이론」, 2007, 23면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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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논증 그리고 논증이론 41
사법적 삼단논법은 곧이어 등장한 추상적-일반적 법률의 위기와 완결된
법체계에 관한 실증주의적 이상의 붕괴 및 구속력 있는 확실한 해석방법론
이 존재할 수 없다는 일반적 인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남았다. 삼단논
법은 오늘날에도 법을 적용하는 구체적인 현실과는 관계없이 여전히 살아남
아 있는 이데올로기이고 어쩌면 법률구속이라는 신화 덕분에 연명하고 있다
고 말할 수 있다. 법률구속 이념이 기술적으로 삼단논법적 법적용을 요청하
고 또한 이를 기반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은 곧 삼단논법의 생명력과 지속력
을 보장하고 있는 셈이다.24) 삼단논법을 통한 연역은 판결의 중립성을 보장
하고, 따라서 법관은 판결의 결과에 대해 어떠한 개인적, 정치적 책임을 부
담할 필요가 없다는 외관을 만들어냄으로써 사법부에 대한 비판을 차단하고
사법작용을 안정화하는 기능을 담당한다는 사정 이외에는 삼단논법의 끈질
긴 생명력을 설명할 길이 없을 것 같다. 물론 법이론은 일찍부터 법적용 과
정에 대한 분석에 기초하여 법률구속과 사법적 삼단논법를 통한 판결의 객
관성 신화에 대해 철저한 비판을 가하기 시작했다.25)
- 법률구속과 삼단논법에 대한 비판적 성찰 - 간략한 이론사
사법적 삼단논법에 대한 첫 번째 대규모 공격은 자유법학(Freirechtslehre)
에 의해 이루어졌다[미국의 경우에는 법현실주의(legal realism)가 이를 주도
했다]. 이 법학적 혁명의 주도자들은 19세기 말에 이른바 법률실증주의와 개
념법학의 사슬을 끊고 당시의 지배적인 확신에 대항하여 법률을 통해서든
방법을 통해서든 결코 배제할 수 없는, 법적용자의 자유를 다시 부각시켰
다.26) 하지만 거의 성스러운 권력에 대한 도전이라 할 수 있는 이 세속적
24) 법관의 법적 결정이 삼단논법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함과 동시에, 법 적 논증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이를 사법적 삼단논법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에 대해서 도 의문을 제기하는 Ulfrid Neumann, 「법과 논증이론」, 2009, 187-188면 참고. 25) 이러한 법이론적 비판을 수행하는 국내문헌 가운데 사법적 삼단논법의 비실제성(허구 성)을 그 법률적용모델이 가지고 있는 실증주의적 성격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하는 이상 돈, 「새로 쓴 법이론」, 제3판(2005), 131면 이하 참고. 26) 이러한 자유법론의 생성과 발전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로 윤철홍, “해제: 법학의 전능인 칸토르비츠의 생애와 자유법 운동”, Hermann Kantorowicz, 「법학을 위한 투쟁」,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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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을 통해 당시의 저명한 법학자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자유법학
은 법률실증주의와 개념법학의 토대를 상당부분 파괴했지만, 이를 완전히
극복하거나 제거하지는 못했다. 그렇긴 하지만 법률에 어떠한 흠결도 없다
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과 사법적 삼단논법을 파괴하는 섬세한 분석은
자유법학의 커다란 성과에 해당한다. 자유법학자들은 법적용에 개입하는 법
관의 주관적 가치평가와 비합리적 영향을 증명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
울였으며 이를 통해 법률구속에 대한 믿음에 커다란 동요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자유법학파가 밝힌 법관의 자유는 다시 이 자유를 올바르게 사용하
기 위한 지침을 필요로 했다. 그와 같은 지침과 기준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다시 기준의 구체성과 명확성을 필요로 했지만 자유법학파는 그와 같은 기
준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더욱이 자유법학자들 사이에서도 비록 기존의 이
데올로기를 거부한다는 선언적 차원에서는 견해를 같이 했지만 구체적인 내
용의 차원에서는 견해가 달랐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서도 법관의 자유를 통
제하기 위한 기준에 대해 논란을 겪게 되었다. 즉 판결을 내리는 법관의 가
치결정, 의지적 결정 및 감정적 결정을 판결의 핵심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엄밀한 학문적 도구가 결여된 상태에서는
법관의 판결을 통제하는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 채 그저 ‘법관의 인격’을 중
시하거나 단순히 이를 정당화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말았기 때문이다.27) 그
리하여 법관의 출신배경, 사회화과정 등과 같은 사회학적 사실만을 지적함
으로써 법학을 사회학으로 해체했을 뿐, 판결과 관련된 구체적인 행위지침
을 제시하지 못한 상태에서 단순히 이미 오래 전부터 논란이 많았던 문제를
서술하는 데 불과했다. 특히 법관이 정의나 정당한 법, 사회적 목표 등과 같
은 일반적 가치관을 원용해야 한다는 자유법학의 요구는 그러한 가치관이
명확성과 보편적 구속력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실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자유법학의 보수적 분파라 할 수 있는 이익법학 (Interessenjurisprudenz)은 다시 법률구속을 구출하고 ‘이익형량’을 통해 확고
한 방법적 기준을 제시하고자 했고, 이는 이익법학이 성공하는 데 커다란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이익법학은 한편으로는 자유법학의 비판적 충동을 수
131면 이하 참조. 27) 이러한 점에 대한 보다 섬세한 비판으로 Ulfrid Neumann, “법, 진리, 권위”, 「법과 진리」, 2014, 119면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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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법률구속 이념을 견지함으로써 아무런 성찰도 없
이 다시 삼단논법적 포섭기계로 회귀하는 것을 저지했다.
그렇지만 이익법학은 자유법학이 밝혀낸 법관의 자유를 조직적으로 은폐
하는 역할을 했다. 즉 한편으로는 개념법학과 법률실증주의에 대항하고, 다
른 한편으로는 자유법운동에 대항했던 이익법학의 창시자이자 주도자인 필
립 헤크(Philipp Heck)는 법관의 구속과 자유를 성공적으로 화합시킬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법관의 법률에 대한 사유적 복종(denkender Gehorsam), 즉 법관은 법률의 생각하는 보조자라는 사고는 법관의 가치판단
의 유래와 범위 및 그 정당화라는 핵심적인 물음을 다시 사라지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법률가는 먼저 법률에 담긴 가치판단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
다시 말해 역사적-객관적으로 법률의 가치판단을 사후적으로 확인하고 그
다음에 이익형량을 통해 법률이 미치는 영향을 감안해 결정해야 한다는 헤
크의 막연한 표현은 도대체 법관의 사후적 평가와 형량의 기준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답도 주지 못했다. 법관의 독
자적 평가는 단지 부차적으로만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법률에 대한 복
종은 결코 약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고를 통해 이익법학 역시 전통적인 사
법적 삼단논법의 이데올로기와 마찬가지로 법관이 결코 파괴할 수 없는 신
성불가침의 영역이 존재한다고 인정했던 셈이다. 그 때문에 사법적 삼단논
법은 이익법학이라는 새로운 방법에 따를지라도 여전히 정상적인 법적용 방
법이었고, 그 때문에 이익법학은 법률외적 가치평가나 개인적 세계관으로부
터 독립된 중립성을 견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이익법학은 자유법학이 추구했던 법관의 가치평가의 배경과 범
위에 대한 이론적 분석을 말살하고 말았다. 주로 법률해석의 형식적 틀
을 고찰하는 데 국한된 오늘날의 방법론 역시 자유법학의 노력을 다시
살아나게 만들지 못하고 있다. 이익법학의 아류에 해당하는 평가법학 (Wertungsjurisprudenz) 역시 마찬가지이다. 평가법학은 그 이름에 걸맞게 법
적용이 법관의 평가를 수반한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도 정작 어떻게 평가가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어떤 이념으로
서의 정당한 법이 존재하고 평가는 그러한 이념을 지향해야 한다는 주장만
을 반복한다. 즉 법관이 평가를 해야 한다는 사실 말고는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오늘날의 주
류 방법론에 해당하는 평가법학(대표적인 학자로는 칼 라렌츠 Karl Lare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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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법관이 단순히 법률에 표현된 입법자의 의지를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다
는 이익법학의 주장을 극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법관의 판결을 객관적
인 정당성에 대한 인식으로 축소시키고 있다. 다시 말해 법적용자의 주관적
가치평가를 배제하고 판결과정을 정당한 법이라는 실체에 접근하는 정태적
과정으로 묘사한다.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는 이러한 표준적 방법론과는
달리 법관의 주관적 의지 또는 가치평가를 법적용이라는 왕국의 왕좌에 올
려놓은 것은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이었다.
이미 1950년대에 연방헌법재판소는 19세기 후반부터 하나의 대립구도, 즉 ‘법률인가 법관인가?’ 또는 ‘입법자의 의사인가 법률의 의사인가?’를 중심으
로 전개되어 온 주관적 해석이론과 객관적 해석이론 사이의 갈등상황28)에서
후자의 우위를 확인함으로써 법관의 가치평가가 법의 세계의 주재자임을 선
언하게 된다.29) 연방헌법재판소는 특히 입법절차에 참여한 기관 또는 개별
구성원이 법률규정의 의미에 대해 갖고 있던 주관적 생각은 결정적이지 않
고, 어떤 규정의 성립과 관련된 역사는 일정한 원칙에 비추어 확인되는 해
석의 정당성을 확인시켜주거나 객관적 방법으로는 제거할 수 없는 의문이
남아 있을 때만 고려의 대상이 된다고 본다. 이로써 연방헌법재판소는 법률
의 해석이 궁극적으로 해석자의 가치평가에 기초하여 법률의 객관적 의미를
추적하는 작업이라는 객관적 해석이론을 지지하고, 이를 통해 법적용과 관
련하여 법관의 폭넓은 자유를 인정하는 결론에 도달한다.30)
물론 객관적 해석이론은 이미 19세기 말부터 다수의 학자들에 의해 지지
되었고, 자유법학 역시 법관의 자유를 강조한다는 측면에서는 넓은 의미의
객관적 해석이론에 속하며, 제국법원도 객관적 해석이론을 지지했다. 그렇지
만 역사적으로 이미 오래된 이론이라는 사실로 인해 연방헌법재판소가 법관
의 자유를 법의 세계의 왕좌에 올려놓았다는 사실이 갖는 의미를 퇴색시키
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19세기 말에 법실증주의의 토양 위에서 성장한 객관
적 해석이론은 연방헌법재판소를 통해 그 기능이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되었
다. 객관적 해석이론은 원래 법률텍스트로부터의 이탈이 필수적이거나 또는
28) 이러한 대립에 관한 상세한 고찰로는 Karl Engisch, 「법학방법론」, 2011, 141면 이하 참고. 29) BVerfGE 1, 299(312). 30) 국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예로 들어 주관적 해석이론과 객관적 해석이론의 대립 을 설명하는 김영환, 「법철학의 근본문제」, 제3판(2012), 292면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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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경우(예컨대 법률의 흠결이나 법률의 오류) 이를 정
당화하고, 법률구속의 원칙을 넘어 실질적으로 타당한 구체적 결정을 가능
하게 만드는 과제(이는 사실상 법실증주의를 더욱 안정화하는 일이다)를 담
당했다.31) 그러나 이러한 탄생배경과는 관계없이 그 이후에는 곧바로 법관
을 법률로부터 해방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특히 법실증주의가 붕괴
한 20세기 초반부터 객관적 해석이론은 법률해석의 보조적 역할에서 주도
적 역할로 바뀌고 오늘날에는 법관국가(Richterstaat)를 숭배하는 이론이 되
었다. 더욱이 1960년대부터 가다머(Gadamer)로 대표되는 철학적 해석학 (Hermeneutik)이 법학의 방법적 성찰의 토대로 수용되면서 객관적 해석이론
의 비중은 모든 방법론적 규칙의 구체화 및 위계질서화 시도에도 불구하고
더욱 강력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철학적 해석학을 수용한 법적 해석학에
대해서는 조금은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객관적 해석이론이 입법자의 주관적 의도가 아니라 법관이 확인하는 객관
적 의미가 구속력을 갖는다고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법률구속의 이
념 자체는 견고하게 유지되었다. 이 이념은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메커니즘,
즉 사법적 삼단논법이 수세에 몰리는 순간에 비로소 비판적인 압박을 받게
되었다. 무엇보다 해석학을 수용한 법학자들은 ‘대전제와 소전제 사이의 시
각의 지속적 왕래’라는 엥기쉬(Karl Engisch)의 소박한 표현32)을 강력한 무기
로 사용했다. 즉 대전제인 법률텍스트에 대한 이해는 소전제인 사안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하고(사안을 통한 법률의 의미구성), 거꾸로 사안을 이해
하기 위해서는 법률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하며(법률을 통한 사안구성),
이처럼 법률과 사안 사이의 상호작용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때에만 법적용
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부각시켰다. 이러한 모티브를 발전시켜 법적 해석학
은 전통적인 방법론이 제시하는 해석규칙들이 결코 판결의 방법적 지침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밝히고, 이 관점에서 전체 법적용과정을 심사하는 쪽으
로 나아갔다.33) 일찍이 라드브루흐(Gustav Radbruch)는 해석규칙은 이 규칙과
31) 객관적 해석이 사법의 법률구속원칙과 법적 안정성에 커다란 위험을 야기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주관적 이론의 우위를 인정하는 Karl Engisch, 「법학방법론」, 2011, 161면 이 하, 특히 167면 이하 참고. 32) Karl Engisch, Logische Studien zur Gesetzesanwendung, 3. Aufl.(1963), S. 14. 33) 이러한 점을 ‘해석학적 법학방법론’이라는 표제 아래 설명하는 이상돈, 「새로 쓴 법이 론」, 제3판(2005), 201면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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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관계없이 형성된 결과를 사후적으로 정당화하는 데 원용될 뿐이라는 사
실을 지적했는데,34) 법적 해석학은 이러한 통찰을 재발견하면서 법적 결정
이 철학적 해석학에서 말하는 해석학적 순환(hermeneutischer Zirkel)이 개입하
는 과정으로 포착하게 되었다.
특히 두 가지 방식의 해석학적 순환이 법학에 수용되기에 적절했다. 하나
는 문헌학적 순환으로서 하나의 텍스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해석자는 해
석 대상인 텍스트에 대해 사전에 일정한 기대를 갖고 읽게 된다고 한다. 예
컨대 해석자의 성장배경에 따라 기업범죄에 관련된 배임, 횡령죄 조문에 대
한 의미기대는 사뭇 달라질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사전의 기대는 이해과정
에서 변화를 겪기도 하지만, 텍스트를 이해하기 이전에 해석자가 갖고 있는
선이해는 전체 이해과정을 지속적으로 규정한다. 이 점에서 선이해가 이해
를 낳고, 이해 과정에서 얻어낸 새로운 이해는 다시 선이해에 영향을 미친
다. 또 하나의 순환구조는 모든 이해의 전제조건으로 작용하는 선이해가 갖
는 역사성에 기인한다. 즉 선이해는 일정한 역사적 조건하에서 성립하고, 해
석자는 궁극적으로 자신이 처한 역사적 상황에 사로잡혀 있다고 주장하게
된다. 그리하여 해석자는 자신의 역사적 실존에 따른 선이해와 선판단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 때문에 해석자의 해석은 결코 절대적 의미의 객관성에
도달할 수 없다고 한다.
법적 해석학은 이 두 가지 순환(문헌학적 순환과 역사적 순환)을 법 이전
의 선이해와 법적 선이해로 구별하여 수용했다. 이러한 순환을 법적용과정
에 옮겨 놓으면 순환관계는 더욱 섬세해진다. 즉 선이해에 따른 규범이해와
선이해에 따른 사안구성은 서로 관련을 맺고, 관련을 맺는 작동 자체 역시
순환관계 있다. 다시 말해 법률상의 구성요건은 불완전하고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안을 필요로 하며, 사안은 규범의 관점에서 비로소 구성된다. 따
라서 -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 법을 적용하기 이전에는 법규범도 사안도
존재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법적용이 적용자가 갖고 있는 주관적 가치판단
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기계적이고 완벽하게 중립적인 법적용과 그에 따른
34) Gustav Radbruch, Einführung in die Rechtswissenschaft, 7./8. Aufl., 1929, S. 129(인용은 Gustav Radbruch Gesamtausgabe, Bd. 1, bearbeitet von Arthur Kaufmann 1987, S. 32에 따 름): “해석은 그 결과의 결과이고, 해석수단은 결과가 이미 확정된 이후에 선택된다. 이 른바 해석수단은 사실상 텍스트에 대한 창조적 보충을 이미 찾아낸 것을 사후적으로 텍스트로부터 정당화하는 데 이용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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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구속은 애당초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 것 역시 법적 해석학의
성과였다.
물론 법적 해석학은 해석과정에 대한 지침과 기준을 제공하고자 하는 방
법론에게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사법적 삼단논법을 고수하는 것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폭로함으로써 법적용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하
도록 자극을 주긴 했지만,35) 선이해 구조를 감안하면서 구체적으로 법적용
이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침도 제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긴 하지만 법적 해석학이 문언해석, 목적론적 해
석, 역사적 해석, 체계적 해석 등의 해석규칙만을 통해 정당한 결정에 도달
할 수 있다고 가정한 전통적 해석방법론36)의 한계를 극복하고, 방법론의 배
후에 자리 잡고 있는 법관의 가치판단의 의미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는 점은 커다란 성과에 해당한다.
법률구속의 이념이 더욱 커다란 위협에 봉착하게 된 것은 전혀 의식하지
않았던 쪽의 공격 탓이었다. 즉 법실증주의가 붕괴한 이후 지속되던 완벽한
체계라는 사고의 위기는 고대의 수사학적 전통을 재발견한 문제중심론 (Topik)에 의해 급속도로 상승하게 되었다. 피벡(Theodor Viehweg)의 작은 강
연에서 시작된 문제중심론의 도발은 최대한 완벽한 체계를 구성하여 법적용
자의 주관적 자의를 배제하려는 도그마틱적 사고를 구체적인 문제에 지향된
사고로 대체하고자 했다. 특히 구체적인 문제를 중심으로 고려할 수 있는
모든 관점(topos)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은 법률 및 법률적 가치평가를 여
러 가지 관점들 가운데 하나로 평가 절하했을 뿐만 아니라, 법률과는 무관
한 다양한 관점과 의견들이 법적 결정과정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보았다.37)
하지만 피벡이 출발점으로 삼았던, 체계사고와 문제중심적 사고의 대립관계
는 법적용의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했거나 한 가지 측면만을 과장한 것이
었다. 왜냐하면 법적용이 논리적 공리체계로서, 이 체계로부터 사례에 합당
35) 이와 관련하여 철학적 해석학의 성과를 토대로 법률 삼단논법을 비판하는 양천수, “삼 단논법적 법률해석론 비판 - 대법원 판례를 예로 하여”, 영남법학, 제28호(2009), 20면 이하 참고. 36) 해석방법에 대한 상세한 설명으로는 Karl Engisch, 「법학방법론」, 2011, 96면 이하 참고. 37) 이와 관련한 이론사적 맥락을 간략히 소개하는 김영환, 법철학의 근본문제, 제3판 (2012), 358면 이하 참고. 또한 문제중심론과 수사학적 전통을 이어받으면서 새로운 법 이론적, 사회이론적 경향을 수용하고 있는 이계일, “수사학적 법이론의 관점에서 본 법 적 논증의 구조”, 법철학연구, 제13권 1호(2010), 41면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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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제해결을 연역적으로 도출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은 애당초 실현 불가능
할 뿐만 아니라, 설령 그것이 가능할지라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전혀 논란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일 그와 같은 체계사고가 가능하
다면 사법부는 모든 탄력적인 대응 가능성을 포기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문제중심론은 법적용 과정과 법적 사고의 전 영역을 ‘체계사고 대 문제사고’
의 대립구도로 이해했고, 문제중심론을 지지하는 다수의 학자들을 생산하여
법이론적 논쟁이 상당히 비생산적으로 흐르게 만들었다. 문제중심론이 갖고
있는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 이론을 둘러싼 논쟁은 다음과 같은 점
에서는 커다란 소득이 있었다. 즉 법관의 결정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다수의
비법률적 논점들은 부각시켰고, 동시에 법률은 법관의 논증 맥락에서 단지
설득력을 갖는 하나의 논거에 불과하다는 사고를 펼치게 만들었다. 그로 인
해 법률구속이라는 이념은 지속적인 정체상태에 빠지게 되었다.38)
아무튼 해석학과 문제중심론을 둘러싼 논의는 과거에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정도의 법관의 해석 여지를 밝히게 되었다. 즉 법률을 해석 적
용하여 결정을 내리는 법관은 객관적 해석이론과 목적론적 해석을 수단으로
자신의 주관적 목적과 가치를 법률에 투영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더이상 부
정할 수 없게 되었다. 심지어 자의적 해석을 차단하기 위해 법이념, 정의,
자연법, 사물의 본성 등에 법관을 다시 구속시키려고 시도할지라도 결코 법
관의 주관적 가치판단의 개입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처럼 법률이 해석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이 법률을 지배한
다는 해석학적 통찰은 필연적으로 법률가로 하여금 가치에 관한 논의에 관
심을 돌리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왜냐하면 법관이 도대체 무엇에 구
속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불안정성보다 법관의 독립을 위태롭게 만드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법이론은 일반 철학에서 발전된 논증이론
의 통찰을 수용하기 시작한다. 특히 이미 주어져 있는 가치나 절대적 가치
와 같은 형이상학적 사고에서 벗어나면서도 가치평가에 관한 객관적 논의가
능성을 탐색하던 분석윤리학이나 대화의 규칙과 같은 절차적 기준들을 통해
실질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철학적 이론들은 법적인 논증에 대해 많은 시
38) 이밖에도 ‘법적 수사학’의 성과 및 한계를 논의하며 ‘법적 논증’의 필요성을 부각시키 는 Ulfrid Neumann, “진리와 권위: 법에서 근거제시를 통한 정당화의 가능성과 한계”, 「 구조와 논증으로서의 법」, 2013, 92면 이하 참고; Ulfrid Neumann, 「법과 논증이론」, 2009, 185-187면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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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논증 그리고 논증이론 49
사점을 제공했다.39) 이러한 법이론적 전개양상의 출발점은 법률구속 이념의
한계에 대한 뚜렷한 의식이었다. 즉 법관의 법률구속을 보장하기 위한 법기
술적, 방법론적 또는 제도적 방안은 원칙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식하게 된 것이다. 이에 반해 법관의 법률구속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지
배하고 법관의 자유를 축소하거나 은폐하는 방법론이 마련되어 있을 때는
이와 같은 상황은 별다른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법관은 자신의 판결이 전적으로 법률
에 의해 규정되었을 뿐이기 때문에 판결과 관련하여 자신은 아무런 (정치적)
책임도 부담하지 않는다고 도피할 수 있는 상황은 존재하지 않는다.40) 그렇
다고 해서 법관의 판결과정에 대한 어떠한 통제도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받
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것은 곧 권력분립 이념과 법치국가의 이념의 포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법관의 주관적 가치평가라는 자유영역을 다시
객관성과 합리성의 무대로 끌어오기 위한 노력은 법률 이외의 차원에서 법
관을 구속하는 메커니즘을 구성하고자 한다. 논증 또는 논증이론 그리고 법
관의 논증의무는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떠오르게 된 개념들이다.41)
Ⅲ. 법관의 논증의무
순전히 법제도적 차원에서만 본다면 법관의 논증의무는 절차법 규정으로
부터 직접 도출된다. 즉 민사소송법과 형사소송법은 판결서에 판결이유가
제시되어야 한다는 의무규정을 두고 있고, 특히 판결이유의 부재 또는 모순
을 상소의 이유가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절차법 규정은 판
결의 이유가 제시되어야 한다는 형식적 측면에만 집중되어 있을 뿐, 판결이
유와 관련된 실질적 내용까지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42) 그와 같은 형식적
39) 이러한 점을 분명하게 지적하는 Ulfrid Neumann, 「법과 논증이론」, 2009, 3면 이하 참고. 40) 켈젠(Hans Kelsen)의 논의를 바탕으로 이러한 점을 지적하는 윤재왕, “한스 켈젠의 법해 석이론”, 고려법학, 제74호(2014) 참고. 41) 이러한 배경을 해석학(적 법이론)의 성과를 기초로 구성하는 이상돈, “법률해석의 해석 학적 구조와 논증의무”, 법학논총, 제31집(1995), 305면 이하 참고. 42) 이러한 점에 대한 서술로 Ulfrid Neumann, “진리와 권위: 법에서 근거제시를 통한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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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法學論叢 第43卷 第4號
의미의 근거제시의무(= 논증의무)가 과연 법질서 전체에 비추어 어떠한 의
미와 기능을 갖는지는 절차법을 뛰어넘어 헌법적 차원에서 논의해야 할 문
제이다.43)
이 맥락에서는 무엇보다 법원의 결정이 다른 국가권력의 행사와 마찬가지
로 침해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판결
이나 결정과 같은 사법작용은 관련 당사자들에게 직접 부담을 주는 법적 규
율로서 국가의 권위를 통해 선고되고 관련 당사자들에게 구속력을 발휘하며
최소한 한 당사자에게는 일정한 의무를 부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모
든 법정절차에 해당한다. 예컨대 형사소송에서 피고인의 행위가 형벌규범에
대한 위반이라는 확인만으로 이미 피고인의 권리영역에 직접적으로 부담을
주게 되며, 불법의 확인에 뒤따르는 형사제재는 피고인의 자유와 재산을 침
해한다. 민사판결 역시 국가의 권위를 통해 - 설령 이미 존재하고 있는 법적
의무를 확인하는 것일지라도 - 일정한 급부이행을 명령하는 결정은 원칙적
으로 피고의 개인적 권리영역에 대한 침해이다.
적어도 자유 법치국가 또는 민주적 헌법국가를 전제하는 한, 개인의 자유
영역에 대한 국가의 침해는 원칙이 아니라 예외이다. 권리침해가 갖는 이러
한 예외적 성격은 예외를 정당화해야 한다는 헌법적 명령을 통해 통제된다.
여기서 정당화란 곧 근거를 제시(= 논증)한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
의 모든 조치는 그것이 정당화될 때, 다시 말해 일정한 근거가 존재할 때에
만 비로소 정당성을 갖는다. 사법권 역시 당연히 국가권력에 속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정당화 명령의 지배하에 놓인다. 따라서 사법권이 정의를 실현하
는 초국가적, 초개인적 중립성을 갖고 있다는 생각은 법치국가의 기본이념
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도 법원의 판결이 갖고 있는 침해적 성격에서 출
발하는 한, 법관이 과연 무엇을 결정했는지를 명확히 밝혀야 할 뿐만 아니
라, 왜 달리 결정하지 않고 바로 그렇게 결정했는지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
다. 그래야만 사법권이라는 국가권력의 행사를 통제해야 한다는 법치국가
원칙이 실현될 수 있다. 이 점에서 개개의 결정에 대해 그 근거를 제시할
화의 가능성과 한계”, 「구조와 논증으로서의 법」, 2013, 89면 이하 참고; 또한 Ulfrid Neumann, 「법과 논증이론」, 2009, 14면 이하도 참고. 43) 법관의 논증의무를 헌법상 재판청구권에서 도출하려는 시도로는 박준석, “재판청구권과 법원의 논증의무 - 대법원 2010. 6. 24. 선고 2010도3358 판결을 중심으로”, 법학논총, 제36권 2호(2012), 185면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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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논증 그리고 논증이론 51
의무는 법치국가 이념으로부터 도출되며, 그에 따라 국민은 자신의 권리가
침해된 때에는 사법부에 대해 침해의 근거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도록 요구할
권리가 있다. 그럴 때만 국민은 자신의 권리를 적절히 보호받을 수 있기 때
문이다.
하지만 논증의무의 헌법적 근거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이 의무가 구체적
으로 어떻게 이행되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대답할 수
없다. 물론 법률구속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논증의 대상과 범위가 달
라진다는 점은 분명하다. 예컨대 법률구속의 실현가능성을 확신한다면, 법관
의 논증의무는 자신의 결정이 어떤 의미에서 법률에 부합하는지를 설명하는
데 집중하게 된다. 이에 반해 법률구속 이념의 한계를 뚜렷이 의식하는 입
장에 선다면 법관의 논증의무는 단순히 결정이 법률과 합치한다는 데 그치
지 않고, 법률상의 가치평가 및 법관 자신의 주관적 가치평가를 정당화하고
결정이 법률 이외의 관점에서도 합리성과 정당성을 갖는다는 점까지도 설명
해야 한다. 다만 법률과의 합치 여부 역시 사법적 삼단논법을 통한 논리적
추론의 대상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법관의 가치평가가 개입할 수밖에 없
다는 통찰이 옳다면, 법률구속을 기준으로 논증의 방식과 범위가 달라진다
고 확언할 수는 없다. 그렇긴 하지만 법관이 판결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법
률구속을 얼마만큼 강하게 의식하는지에 따라 논증 스타일이 달라질 수 있
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쉽게 입증할 수 있다.44)
이와 같이 논증의무의 헌법적 정당성을 확인하는 작업은 논증이론의 성장
배경과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전적으로 권위에 의존하는
법질서는 논증 또는 논증이론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45) 이에 덧붙여
법률이 판결의 성립에 미치는 영향에 한계가 있다는 법이론적 인식은 판결
의 근거제시가 갖는 의미와 기능을 훨씬 더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때
문에 논증과 논증이론은 결과의 타당성에 앞서, 결과에 이르러 가는 과정을
44) 예컨대 ‘부부강간판결(대법원 2013.5.16. 선고 2012도14788,2012전도252)’의 소수의견은 논거의 실질적 내용과는 관계없이 적어도 법률구속의 정도에 관한 한 다수의견에 비해 훨씬 더 섬세하고, 법률구속을 진지하게 고려한 논증스타일에 해당한다. 45) 이러한 점을 민주적 법치국가와 근거제시의무의 관계를 통해 논의하는 Ulfrid Neumann, “진리와 권위: 법에서의 근거제시를 통한 정당화 가능성과 한계”, 「구조와 논증으로서 의 법」, 2013, 88면 이하 참고; 또한 Ulfrid Neumann, 「법과 논증이론」, 2009, 13면 이하 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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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法學論叢 第43卷 第4號
설명하거나 이에 대한 지침을 제시하려는 절차적 성격을 띠게 된다.46)
이밖에도 판결이 올바른 결정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판결을 내리는 자의
의지적 활동(예컨대 가치평가)을 통해 구성하는 작업이라는 법이론적 통찰은
논증의 방식과 범위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왜냐하면 ‘인식’은 어떤
대상, 즉 실재를 올바르게 파악했는지 여부에 달려 있기 때문에 그 자체 복
잡한 논증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결정의 의지적, 구성적 (또는 창조적) 성격을 강조하면, 그와 같은 의지결정과 구성이 왜 타당한지
에 대해 훨씬 더 복잡한 논증을 구사하지 않을 수 없다. 앞에서 든 예를 다
시 끌어들이자면, ‘자동차는 위험한 물건에 해당한다’는 명제가 순전히 인식
의 문제라면 그렇게 인식한 자는 단순히 자신이 그렇게 인식했다는 사실만
을 지적하면 그만이지만, 이 명제가 다수의 규범적 평가에 기초한 구성의
산물이라는 것을 의식할 때에는 그러한 구성의 근거가 되는 가치평가를 밝
히고 평가를 정당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그리고
어떠한 근거를 동원하여 그와 같은 정당화가 이루어지는지 또는 이루어져야
하는지는 논증과 관련된 이론적 작업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러
한 사정을 감안하면서 다음 장에서는 논증과 논증이론 전반에 대해 개괄적
으로 설명하도록 한다.
Ⅳ. 논증과 법적 논증이론
- 논증의 개념
앞에서 몇 차례 지적했듯이 논증에 대한 일반적 개념정의는 ‘하나의 주장
을 찬성 또는 반대하는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 개념을 조금 더 자세히
규정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1) 근거를 제시한다는 의미의 논증은 하나의 활동 또는 실천이다. 이 점
46) 법적 논증이론은 정당성을 근거제시 가능성과 결합시킴으로서 어떤 구체적 내용을 담 은 규범적⋅형이상학적 전제와 거리를 두게 되고, 따라서 정당화를 위한 실질적 기준 이 아닌 절차적 기준을 지향하게 된다. 이에 관해 더 자세히는 Ulfrid Neumann, 「법과 논증이론」, 2009, 19-20면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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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논증 그리고 논증이론 53
에서 논증은 논거와 구별된다. 논거란 논증에서 사용될 수 있는 어떤 것이
다. 논거는 언제나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다. 문장으로 표현된 논거는 문장
의 구조와 문장의 의미를 밝히는 작업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논증이라는
개념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이 문장을 어떠한 상황에서 어떠한 목적으로 사
용하는가에 관련된 쓰임새의 차원(언어학의 용어 따르면 화용론적 차원)을
포괄한다. 다시 말해 같은 의미를 갖는 문장일지라도 문장이 사용되는 맥락
이나 문장을 사용하는 주체 또는 이 문장을 듣거나 읽는 청중에 따라 의미
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이 논거는 입법자의 의사에는 합치하지만, 법률에
는 명시적으로 표현되어 있지 않다”는 표현과 “이 논거는 법률에는 명시적
으로 표현되어 있지 않지만, 입법자의 의사에 합치한다”는 표현은 의미가 완
전히 일치하지만, 제시되는 논거의 맥락이나 사용의 주체(판사 또는 변호인)
에 따라 서로 다른 비중을 갖게 된다.47) 이처럼 근거를 제시하는 활동과 관
련된 논증개념과는 달리 단지 이러한 활동의 결과에만 초점을 맞추어 더 좁
은 의미의 논증개념을 구성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논거들의 집합만을 논
증이라고 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논증개념은 완전한 의미의 논증개념
이라고 할 수 없다. 논거의 사용 맥락을 함께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특정한 논거가 언제나 동일한 의미와 비중을 갖는다는 전제는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논증 과정을 기계적이고 정태적인 과정으로 축소할 위험이
있다. (2) 논증개념과 관련해서는 정당성 개념이 핵심적인 의미를 갖는다. 하나
의 주장을 찬성 또는 반대하는 근거를 제시하는 사람은 이 근거가 주장의
타당성 또는 부당성을 설명하기에 적합하다는 주장을 함께 제기하는 것이
다. 따라서 논증에서 제시되는 논거들은 단순히 그것이 하나의 논거라는 경
험적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그 논거가 타당하다는 정당성 주장을
포함한다. (3) 모든 논증은 주장된 내용의 타당성 또는 부당성에 관해 확신을 갖게
될 청중을 전제한다. 가능한 청중의 스펙트럼은 논증을 하는 사람 본인부터
시작해서 논증을 접하는 집단을 거쳐 인류 전체(보편청중)에까지 확장될 수
47) Kartharina Sobota, Rhetorisches Seismogramm - eine neue Methode in der Rechtswissenschaft, JZ 1992, S. 231ff; Ulfrid Neumann, “진리와 권위: 법에서 근거제시를 통한 정당화의 가능성과 한계”, 「구조와 논증으로서의 법」, 2013, 92면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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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法學論叢 第43卷 第4號
있다. 그렇기 때문에 논증은 청중들에게 주장의 정당성 및 주장된 내용의
타당성에 대해 확신을 갖도록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는 활동이라는 의미에
서 정당화라는 개념을 포함한다.48) 이에 반해 정당화 개념이 하나의 문장의
근거가 되는 여러 명제들의 집합에 관련될 때에는 정당화개념은 다른 차원
에 놓이게 된다. 이 의미의 정당화는 좁은 의미의 논증, 즉 논거들의 집합이
라는 개념에 국한된다.
- 법적 논증의 목표와 기능
일반적 논증개념에 비추어 볼 때 법적 논증 역시 근거를 제시하는 활동이
다. 특히 법관은 법제도적, 헌법적 차원에서 논증의무를 부담하고, 이 의무
는 법관의 결정이 합리적 논증에 기초할 때에만 충족된다. 물론 법관 이외
의 법률가 역시 의무까지는 아닐지라도 논증을 거치지 않고서는 법률가로서
활동할 수 없다.49) 예컨대 형사변호인 또는 민사소송의 소송대리인으로서의
법률가는 재판부가 자신의 의뢰인에게 유리한 결정을 내리도록 하기 위해서
는 논증을 해야 한다. 또한 변제할 의사가 없는 계약당사자의 변호인과 협
상을 할 때 법률가는 상대방에 대해 자신의 의뢰인이 주장하는 청구권이 타
당하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논증을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확신을 갖도록 만들고자 한다. 단순히
특정한 목표 자체에만 도달하고자 하는 경우, 예컨대 계약당사자에게 다툼
의 대상이 되는 급부를 이행하도록 하거나 재판부로부터 특정한 결정을 얻
는 것만이 문제되는 경우에는 논증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수단을 고려할 수
있을지 모른다. 즉 협박이나 담합 또는 뇌물이 훨씬 더 효과적인 수단을 것
이다. 실제로 법률가들은 가끔씩 이러한 수단을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것은 결코 법적인 수단이 아니다. 법률가의 무기는 논거다. 법률가는 다른
사람에게 확신을 갖도록 만들어야 하고, 이 점에서 논증의 목표는 현실적
48) 이러한 점을 지적하는 Ulfrid Neumann, “진리와 권위: 법에서 근거제시를 통한 정당화 의 가능성과 한계”, 「구조와 논증으로서의 법」, 2013, 94면 이하 참고; Ulfrid Neumann, 「법과 논증이론」, 2009, 185면 이하도 참고. 49) 이러한 근거제시의무의 간략한 역사적 이해 및 현황에 대하여는 Ulfrid Neumann, “진리 와 권위: 법에서 근거제시를 통한 정당화의 가능성과 한계”, 「구조와 논증으로서의 법」, 2013, 88-91면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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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논증 그리고 논증이론 55
이해관계의 충족 이전에 논증에 동원된 논거들이 구체적 사안에 비추어 설
득력을 갖고 확신을 유도해내는 일이다.
이러한 사정을 확인한다면 곧바로 다음과 같은 물음을 제기하게 된다. 즉
법률가는 도대체 무엇에 관해서 자신의 논증상대에게 확신을 갖도록 만들려
고 하는가? 분명 신청한 급부(피고인에 대한 무죄선고, 채무의 변제 등)를
이행하는 것에 대해 법률가 자신이 갖고 있는 이익을 상대방이 확신하도록
만드는 것은 아니다. 법적 논증은 당사자의 이익이 아니라, 권리와 의무를
목표로 삼는다. 따라서 법률가는 자신의 대화 상대방으로 하여금 특정한 법
적 가치평가 또는 특정한 사례에 대한 결정이 정당한 평가 또는 결정이라는
것에 대해 확신을 갖도록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예를 들어 법관의 판
결은 법관이 자신의 판결이 정당한 판결이라는 점에 대해 확신을 갖도록 만
들어야 한다.
그러나 이 결론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왜냐
하면 다시 다음과 같이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법적 가치평가 또는 한
사례에 대한 결정의 ‘정당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하나의 결정은 그것
이 당사자들 및 사회에 최상의 결과를 가져다주면 정당한 것일까 아니면 결
정이 초실정적 정의의 규칙에 합치하면 정당한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결정
이 현재 효력을 갖고 있는 실정법에 부합하면 정당한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해서는 보편타당한 답을 제시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결정의
정당성을 규정하는 기준은 법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확정되기 때
문이다. 예컨대 신정질서의 자연법체계에서 출발하면 신의 의지가 법의 정
당성 주장의 기준이 되는 관련점이 된다. 이에 반해 세속적인 자연법체계에
서는 결정의 지침이 되는 규칙의 정의 또는 합리성이 논거 및 논증의 정당
성 기준이 된다. 또한 선례 중심의 판례법질서에서는 결정이 판례를 통해
발전된 규칙과 합치하는지가 결정적인 기준이 되고, 성문법체계에서는 결
정이 실정법의 규칙과 일치하는지 여부가 곧 정당한 법적 결정의 기준이
된다.50)
50) 이처럼 법적 논증이 그 기초가 되는 법개념에 의존하고 있음을 밝히며, 법철학과 법적 논증이론의 밀접한 관련성을 포착하고 있는 Ulfrid Neumann, 「법과 논증이론」, 2009, 177-180면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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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法學論叢 第43卷 第4號
- 법적 논증의 구조
1) 법적용과 사실확인
법률은 전형적으로 조건적 구조를 갖고 있다. 즉 구성요건이 실현되면 특
정한 법률효과가 확인 또는 확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구체적 사례에 대한
법적 결정이 정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해당하는 법규범을 정확히 적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실에 대한 정확한
확인(사실인정)까지 전제되어야 한다. 이에 따라 결정의 근거를 제시하는 법
관은 어떻게 해서 문제의 사건을 자신이 판단한 대로 발생한 것으로 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해야 한다. 비록 판결이유에서 차지하는 이 사실
인정 부분에 대해서도 특수한 법적 규칙이 적용되긴 하지만(예컨대 증거평
가금지) 이는 법적 논증이론의 핵심영역은 아니다. 법적 논증이론의 핵심은
사례에 대한 법적 ‘평가’의 정당화이다.
2) 규칙지향
이러한 근거제시의 기본구조는 첫 단계에서는 특정한 법체계에 우선하는
합리적 논증의 조건으로부터 도출된다. 하나의 결정에 대한 합리적인 논증
은 결정의 대상이 되는 사건과 유사한 모든 사례유형을 똑같이 결정하도록
만드는 규칙에 근거할 때에만 가능하다. 이 일반화의 요소는 합리적 논증이
라는 개념 자체로부터 도출된다. 왜냐하면 규범적 영역에서 근거란 경험의
영역에서 원인과 마찬가지로 일회적인 사건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
를 들어 어떤 바이러스가 특정 질병의 원인인지는 같은 조건 하에서 다른
사례에서도 같은 질병을 야기할 때에만 병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법의 영역에서도 만일 국산 승용차가 특수협박의 도구로서의 위
험한 물건에 해당한다면 같은 조건 하에서 외제 승용차 역시 언제나 같은
의미의 위험한 물건로 해석해야 한다. 소극적으로 표현하자면, 자연과학의
영역에서 보편적인 자연법칙에서 어긋나는 단 일회의 사건(기적)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법의 영역에서도 일반적 규칙과 정당성기준에 모순되
는 규범적 기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규칙의 예외가 존재하긴 하지만, 이 예외 역시 다시 일반화된 형태
로, 다시 말해 예외규칙의 형태로만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 이처럼 근거(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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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논증 그리고 논증이론 57
거)의 일반화라는 요소는 법적 영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는 모든 합
리적인 논증의 경우에 항상 통용되는 모델로서, 일반 논증이론이나 실천철
학에서는 ‘보편화가능성 원칙’이라고 말한다.51) 이 때문에 법적 결정을 논증
하기 위해서는 결정의 대상인 사건에만 국한된 유일한 논거란 존재할 수 없
다. 따라서 논증을 하는 법관은 자신의 논거가 한 사건에 국한되는 것이 아
니라, 이 사건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다른 사건에서도 통용될 수 있는 논거
를 제시해야 하고, 기존의 원칙적 논거의 예외에 해당한다는 논거를 구사할
때는 이 예외 논거가 다시 예외에 해당하는 다른 사건에도 적용될 수 있도
록 논증해야 한다.
3) 법률의 규칙과 도그마틱 규칙
이에 반해 이러한 규칙을 어디로부터 끌고 와야 하는지는 (도덕과 구별된
다는 의미에서의) 법질서 전체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개별 법체계에서도 제
기되는 문제이다. 성문법질서에서는 통상 법률의 형식으로 제정된 법규범에
우선적인 의미가 부여된다. 그러나 법적 결정에 대한 정확한 근거제시를 위
해 필요한 법적 규칙을 법률규범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 이는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첫째, 법률은 규칙뿐만 아니라, 법원칙도 포함하고 있고, 이
러한 원칙은 구체적인 법적용이 가능할 수 있는 원칙으로 응축되어야 한다.
둘째, 규칙의 형태로 선포된 법률일지라도 대부분의 경우 법률규칙은 불확
정적인 경우가 많고, 법률규칙만으로는 구체적인 결정에 대한 실질적인 근
거제시를 가능하게 해주지 못한다. 다시 보복운전의 예를 들자면, 승용차가 ‘위험한 물건’에 해당하는지는 형법 제284조의 법률규칙만으로는 확정할 수
없다. 즉 법률규칙 이외에 다른 더 섬세한 규칙들이 형성되어야 하고, 이러
한 규칙형성의 과제를 담당하는 것은 1차적으로 법학과 법실무에 의해 발전
되는 법도그마틱이 담당해야 할 몫이다. 물론 이러한 규칙 형성 자체에 대
해서도 다시 논증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판결에 대해서는 두
단계의 논증을 필요로 한다. 즉 법률규칙 또는 도그마틱 규칙을 통한 결정
의 정당화(내적 정당화)와 이 규칙 자체에 대한 정당화(외적 정당화)가 그것
이다.52)
51) 이에 대한 상세한 설명으로 Robert Alexy, 「법적 논증이론」, 2007, 93면 이하 참고; Ulfrid Neumann, 「법과 논증이론」, 2009, 118면 이하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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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法學論叢 第43卷 第4號
4) 규칙지향의 한계
법률규칙이나 도그마틱 규칙에 따라 결정을 정당화하는 것은 많은 경우
별다른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다. 승용차가 위험한 물건에 해당한다면 도로
위에서 보복운전을 한 A의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인정될 수
있다. 그리고 이 결론을 추론의 연관관계로 재구성하는 것 역시 어려운 일
이 아니다. 하지만 위험한 물건이 무엇인지를 사전에 명확하게 확정하여 관
련된 모든 사안에 적용할 수 있는 대전제로서의 규칙을 형성하는 것은 상당
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 문제가 법실무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
다. 왜냐하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따라 판결의 통일성을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 다시 말해 일반적 규칙의 형성 여부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물론 최고법원이 판결의 통일성과 동질성을 보장하는 과제를 담당한다.
하지만 최고법원을 통한 판결의 통일성이라는 목표는 결정이 일반적 규칙에
기초하도록 만들 때만 가능하다. 문제는 언제나 그와 같은 일반적 규칙을
형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가 위험한 물건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할
때 일반적 규칙을 원용할 수 있는 가능성은 썩 높지 않다. 또는 이를 일반
적 규칙으로 형성하기 이한 논증은 상당히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죄형법정주의, 유추금지, 가능한 문언의 의미, 의미론적 해
석의 가능성과 한계, 문언해석과 목적론적 해석의 관계 등 전형적인 법적
논거들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법감정에서 시작해서 법관의 주관적 판단과
법정책적 고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법률외적 논거들을 고려해야 한다. 심
지어 전혀 일반적 결정규칙을 원용할 수 없는 개별사례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예외적 상황이다. 원칙적으로는 결정은 하나의 규칙에 비추어
정당화할 수 있다. 물론 이 규칙은 법률로부터 도출될 수 있는 것이 아니
라, 법실무와 법학에서 발전된 도그마틱 규칙을 고려하여 형성되지 않을 수
없다.
52) 이와 관련하여 법적 판단의 ‘체계내재적 정당화’와 ‘체계외재적 정당화’를 구별하는 알 렉시(Robert Alexy)의 법적 논증이론에 관한 요약적 서술로는 Ulfrid Neumann, 「법과 논 증이론」, 2009, 122면 이하 및 189면 이하 참고; 더 상세한 논의는 Rober Alexy, 「법적 논증이론」, 2007, 311면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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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논증 그리고 논증이론 59
- 법적 논증의 기준들
1) 권위적 논거와 실질적 논거
앞에서 서술한 대로 법적 논증은 1차적으로 도그마틱을 통해 결정규칙을
형성하여 결정을 정당화한다(내적 정당화). 이러한 규칙 자체를 정당화하는
것, 즉 외적 정당화는 훨씬 더 어려운 문제를 낳는다. 하나의 도그마틱 규칙
을 정당화하기 위해 어떠한 논거를 원용할 수 있는지는 일단 법원(法源)이론
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53) 오로지 법률만을 법원으로 여긴다면 모든 법적
결정규칙은 법률에 연원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 경우에는 전적으로 법률에
대한 해석을 통해서만 결정규칙이 획득될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법
률구속 이념의 한계나 오늘날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법관의 법형성54)과 법관
법55)까지 고려한다면 법적 논증의 범위는 훨씬 더 넓어지고 복잡해진다. 이
경우에는 법률이라는 권위만으로는 규칙을 정당화할 수 없으며, 오로지 규
칙의 실질적 정당성이라는 논거를 통해서만 정당화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러한 실질적 차원의 정당화는 입법자가 아니라, 법관의 권한과 의무에 속
한다.56)
이러한 사고는 법적 논증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구별을 낳는다. 그것은
곧 권위적 논거와 실질적 논거의 구별이다. 어떤 법적 규칙과 이 규칙을 근
거로 삼는 결정은 이 결정을 관할하는 기관에 의해 내려졌다는 사실을 근거
로 제시할 수도 있고 아니면 이 결정이 합리적이고 정당하기 때문이라는 근
거를 제시할 수도 있다. 또는 결정이 결과적 측면에서 유용하기 때문이라는
근거를 제시할 수도 있다. 권위적 논거의 전형적인 예는 입법자의 의사를
53) 이처럼 법적 논증이론이 법원이론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음을 밝히는 Ulfrid Neumann, 「 법과 논증이론」, 2009, 20-21면 참고. 54) 법형성(Rechtsfortbildung)의 필요성과 한계를 포괄적으로 다룬 최근 문헌으로는 Drechsler, Stefan, Grundlagen und Grenzen der richterlichen Rechtsfortbildung, in: ZJS 2015, S. 344ff 참고; 국내 판례를 평석하며 법형성을 깊이 있게 다루는 임미원, “법관의 법형 성에 관한 일고찰”, 공법연구, 제41권 1호(2012), 165면 이하 참고. 55) 법관법(Richterrecht)에 대한 대표적인 국내 문헌으로는 이계일, “법관법의 대상영역과 규범적 힘에 관한 연구”, 법학연구, 제26권 3호(2016), 209면 이하 참고. 56) 법적 결정의 ‘합법성’과 ‘실질적 정당성’ 모두 법적 논증을 구성하는 요청이 된다는 점 을 역설하는 Ulfrid Neumann, “진리와 권위: 법에서 근거제시를 통한 정당화의 가능성 과 한계”, 「구조와 논증으로서의 법」, 2013, 99-100면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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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法學論叢 第43卷 第4號
원용하거나 통설을 원용하는 경우 또는 법률문언을 지적하는 경우이다. 전
형적인 실질적 논거는 결정규칙이 정의롭다거나 합리적이라는 것 또는 이
규칙을 적용한 결과가 긍정적이라는 논거이다.57)
성문법체계는 - 이상적으로 볼 때 - 규칙을 제정하는 입법자와 규칙을 적
용하는 사법부 사이의 명확한 분업 관계를 전제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볼
때 권위에 지향된 논증만이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법실무를 분석해
보면 실질적 내용에 지향된 논증이 커다란 비중을 갖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구체적인 논증 실무에서 양자는 상당히 복잡하게 얽혀있다. 왜냐
하면 실질적 논거와 권위적 논거가 서로 결합되어 있고, 또한 실질적 논거
가 배후에서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만 겉으로는 권위적 논거를 통해 규칙
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특정한 법률해석은 부정당한 결과를 낳기
때문에 입법자의 의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식의 논증도 얼마든지 가능하
다. 더욱이 양자 사이의 역학관계는 특정한 법문화, 특히 사법부의 논증스타
일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가지 논증스타일이 구체
적으로 어떠한 관계에 있고 어느 쪽이 더 우선하는지는 경험적 분석을 거칠
때만 비로소 확인할 수 있다. 즉 이러한 경험적 분석과는 별개로 두 가지
논증스타일의 관계를 규범적으로 확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긴 하지만
법관이 자신이 원용하는 규칙의 타당성을 논증하는 경우 두 가지 논증 스타
일의 차이점을 뚜렷이 의식한다면 법관의 논증이 더욱 섬세해질 수 있고,
그에 따라 더욱 실질적인 의미에서 논증의무를 이행할 수 있으며 동시에 판
결에 대한 사후적 통제나 비판의 여지를 더욱 높일 수 있다는 것만은 분명
하다.
2) 법적 논증과 일반적-실천적 논증의 관계
앞에서 설명한 대로 법적 논증은 이미 내려진 또는 앞으로 내려야 할 법
적 결정의 근거를 제시하는 기능을 갖는다. 이처럼 정당성과 관련을 맺는다
는 점에서 법적 논증은 행위를 정당화하는 다른 형태의 논증과 구별되지 않
는다. 특히 행위와 행위규범에 대한 도덕적 논증과 법적 논증은 명백히 유
57) 이와 관련하여 법적 규칙과 결정은 입법자의 법제정행위에 연결되어 있어야 함은 물론, 정의와 실천이성의 관점에서 사법부의 활동이 충족해야 할 요건들에 상응해야 한다는 점에서 ‘권위논거(Autoritätsargument)’와 ‘실질논거(Sachargument)’를 구별하는 Ulfrid Neumann, 「법과 진리」, 2014, 56-60면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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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논증 그리고 논증이론 61
사한 점이 있다. 그 때문에 법적 논증이 일반적인 실천적 논증과 어떠한 관
계가 있는지를 물어볼 수 있다. 즉 법적 논증은 단지 일반적인 실천적 논증
의 특수한 경우인가 아니면 일반적인 실천적 논증과는 다른 독자적인 논거
체계와 논증구조를 갖고 있는 독자적인 논증영역인가?58)
이 물음에 대해 명확한 답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두 논증
체계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한 분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두 논증체계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갖는 비중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대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공통점을 더 부각시키면 법적 논증은 일반적
인 실천적 논증의 한 형태로 보게 되고, 차이점을 부각시킬 경우에는 법적
논증의 독자성을 더욱 강하게 인정하게 된다. 그렇긴 하지만 두 논증체계가
서로 겹치는 영역(결정의 정의와 합리성이라는 기준)이 있고 서로 분리되는
측면(법적 논증에서는 제정된 규칙이 어떤 의미에서든 구속력을 갖는다는
점)이 있다는 점 자체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을 수 없다.
이러한 공통점과 차이점의 비중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논증의 구조, 허
용되는 논거 및 논증의 목표를 구별해볼 수 있다. 구조적 측면에서 보면 법
적 논증이든 일반적인 도덕적 논증이든 모두 하나의 규칙을 구성해야 하고,
이 규칙에 비추어 법적 또는 도덕적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점에서 양자는
상당히 유사하다. 그러나 허용되는 논거의 유형의 측면에서는 법에서 사용
되는 특수한 논거들은 합리적인 도덕적 논증에서는 유사한 경우를 찾아볼
수 없다. 예를 들어 법률을 제정한 기관이나 통설을 원용하는 것은 합리적
인 도덕적 논의에서는 수용할 수 없다.
결정적인 차이는 법적 논증의 목표와 도덕적 논증의 목표의 관점에서 드
러난다. 법적 논증은 결정이나 법적 견해가 포괄적이고 절대적인 의미에서
정당하다고 밝히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정당성의 척도는 지금 여기에
서 효력을 갖고 있는 실정법이고, 실정법은 얼마든지 도덕규범과 모순될 수
도 있다(예컨대 피고인 또는 피의자의 거짓말은 도덕적으로는 비난의 대상
이지만, 법적으로는 권리에 속한다59)). 무엇보다 중요한 측면은 법적 결정이
58) 법적 논증은 일반적 실천적 논의의 특수경우이므로 법도그마틱은 실천이성의 특수한 영역에 속한다는 알렉시(Robert Alexy)의 주장에 대한 섬세한 반론으로 Ulfrid Neumann, 「법과 논증이론」, 2009, 126면 이하 참고. 이에 대한 알렉시의 대응은 Robert Alexy, 「 법적 논증이론」, 2007, 446면 이하 참고. 59) 진술거부권에 대한 역사적⋅이론적 성찰을 통해 이러한 점을 밝히는 홍영기, “Ne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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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法學論叢 第43卷 第4號
실질적으로 도덕적 기준을 원용하는 경우일지라도 이 도덕적 기준을 다시
법적 개념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법관은 보복운전이 단순히 도덕
적으로 비난 마땅하다는 사실만으로 보복운전의 가벌성 근거로 삼을 수 없
으며, 도덕적 논거를 다시 법적 논거의 형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특히 도덕
적 훈계를 판결이유의 한 부분으로 삼는 경우 이는 법관의 논증이라는 형식
적 의무의 측면에서는 납득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공자의 「논어(論語)」에
등장하는 문구는 그 자체만으로는 결코 법적 논거가 될 수 없다. 더욱이 논
증의무를 부담하는 법관이 이와는 정반대로 사회의 도덕을 관리하고 보존하
는 역할을 자임하는 것은 법관의 논증의무가 법치국가에서 갖는 의미와 기
능에 반한다. 법관이 사회의 초자아(Super-Ego)의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그와 같은 도덕적 근거가 법관의 의사결정에 결정적인 동기
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그러한 도덕적 판단은 다시 이 도덕
적 판단과 무관하거나 도덕적 판단을 구체화하고 있는 다른 법적 근거로 전
환될 때에만 법적 논증이 될 수 있다. 단순히 도덕적 근거를 제시하는 것만
으로는 법적 논증이라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실질적으로 보면 도덕적 근거를 원용할지라도, 도덕적 근거가
법적 규율체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전환규칙이 존재
해야 하고, 이러한 전환규칙 자체는 명백히 법적 규칙에 해당한다. 다시 말
해 법적 결정의 정당성을 위해 어떠한 근거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는 오로
지 법체계 스스로 결정한다.60) 이 점에서 법적 논증은 일반적인 실천적 논
증의 한 경우가 아니라, 독자적인 논증체계로 해석해야 한다.
- 법적 논증이론의 분류
일반 논증이론과 마찬가지로 법적 논증이론 역시 경험적, 분석적, 규범적
논증이론으로 나눌 수 있다. 경험적인 법적 논증이론은 법실무라는 논증영
역에서 실제로 어떻게 논증이 이루어지는지를 밝힌다. 다시 말해 기존의 논
tenetur-원칙”, 고려법학, 제66호(2012), 306면 이하, 특히 313면 이하 참고. 60) 이러한 점을 ‘법체계의 작동상 폐쇄성(operative Geschlossenheit des Rechtssystems)’이라 는 개념을 창안하여 설명하는 Niklas Luhmann, 「사회의 법」, 2014, 63면 이하, 특히 126 면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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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논증 그리고 논증이론 63
증실무를 서술하고 설명하고자 한다. 분석적 논증이론은 예컨대 포섭이나
이익형량과 같이 법적 논증의 구조에 관련된 문제를 분석한다. 끝으로 규범
적 논증이론은 올바른 논증을 위한 기준 또는 규칙을 제시하는 것을 과제로
삼는다.
이 가운데 가장 야심적인 법적 논증이론은 합리적인 법적 논증의 규칙과
기준들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규범적 논증이론이다. 규범적 논증이론은 논증
실무에 대해 구속력 있는 지침을 제시한다는 목표를 특징으로 한다. 이에
반해 경험적 또는 분석적 논증이론은 법적 논증에서 사실상으로 준수되는
규칙들을 법적 텍스트들(법률, 판례, 학설)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을 통해 재
구성하는 작업에 국한된다. 이러한 연구는 법적 논증에 관한 분석적-재구성
적 접근방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분석적 방법은 비판적 의도를 갖고 실제
로 이루어지는 법적 논증에 합리성이 결핍되어 있다거나, 법의 사회적 측면
을 무시한 채 법 또는 법개념이 마치 독자적인 실재인 것처럼 이념적으로
사고한다는 일종의 폭로에 집중할 수도 있다. 이러한 형태의 법적 논증이론
은 분석적-비판적 법적 논증이론의 관할영역이다. 물론 이러한 분류는 당연
히 이상형적 성격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해 각각의 형태의 법적 논증이론들
이 단절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계되거나 중첩될 수 있다. 예컨대 규
범적인 법적 논증이론은 법실무에서 사실상으로 준수되는 논증기준에 대한
정보를 필요로 하고, 이에 대한 비판적 분석이 없이는 논증에 관한 규범적
기준을 제시할 수 없다. 따라서 법적 논증이론에 대한 개별 연구는 각 연구
의 중점이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 경험적, 분석적, 규범적으로 분류할 수 있
을 뿐, 특정한 연구가 전면적으로 특정한 모델에만 국한된다는 식으로 생각
할 수 없다.61) 물론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논증이론은 규범적 문제제기에
지향되면서 분석적 통찰을 이용하고 경험적 정보를 충분히 활용하는 논증이
론이다. 이처럼 세 가지 차원을 포괄하는 이론이 비로소 합리적인 법적 논
증이론이 될 수 있다.
이밖에도 개개의 연구들을 법적 논증이론 모델들에 귀속시킬 때에는 또
다른 관점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즉 어떤 경우에는 논증을 순전히 언어적
61) 예컨대 피벡(Viehweg)의 문제중심론이나 페를만(Perelman)의 새로운 수사학을 기점으로 발전한 법적 논증이론은 법적 논증에 대한 분석적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 을 기초로 시도된 비판적 분석에는 규범적 성격이 포함되기 마련이다. 이에 관하여 자 세히는 Ulfrid Neumann, 「법과 논증이론」, 2009, 15-18면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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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法學論叢 第43卷 第4號
과정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 경우 논증분석은 텍스트분석에 국한되고, 규범
적 논증규칙은 텍스트를 구성하는 규칙에 국한된다. 이러한 시각은 논리적,
분석적인 논증이론에서 자주 등장한다.62) 다른 한편 논증을 두 사람 또는
다수의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이 경우 분
석적-재구성적 논증이론의 대상은 텍스트뿐만 아니라, 관련 당사자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관계이기도 하다. 규범적 논증이론에서는 이러한 시각에서 텍
스트를 구성할 때의 준수해야 할 기준뿐만 아니라, 논증 참여에 관련된 규
칙(예컨대 모든 논증참여자들은 방해를 받지 않고 자신의 견해와 입장을 표
현할 수 있다)까지도 포함한다.63)
- 법적 논증이론과 법학방법론
결정을 정당화하고 정당화의 근거를 제시하는 실천적 활동을 연구의 대상
으로 삼고 있는 법적 논증이론은 얼핏 보기에는 법관의 법률해석과 법형성
에 관한 방법적 지침을 제공하려는 법학방법론과 유사하다고 생각할 수 있
다. 즉 법학방법론의 중심을 이루는 다양한 해석규칙들은 얼마든지 판결의
정당화 근거로 원용할 수 있기 때문에 법학방법론도 논증이론의 한 형태로
이해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법학방법론과 논증이론은 근원적인 관점에서 차이가 있다.64) 무엇
보다 법학방법론은 결정의 발견, 판결서에서 말하는 주문에 도달하는 방법
적 지침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즉 예컨대 의미론적 해석
이나 목적론적 해석과 같이 일정한 규칙을 준수함으로써 올바른 결정을 도
출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방법론의 지침은 정당한 결정의 발견
을 목표로 삼고, 정당한 결정이 방법적 지침에 따른 인식의 대상이라고 생
각한다. 이처럼 법관의 판결을 인식의 문제로 이해하는 한, 해석규칙은 단지
이미 존재하는 실재로서의 법을 인식하기 위한 방법일 뿐, 결정 자체를 정
62) 이와 관련하여 자세히는 Ulfrid Neumann, 「법과 논증이론」, 2009, 24면 이하, 특히 68면 이하 참고. 63) 이와 관련하여 자세히는 Ulfrid Neumann, 「법과 논증이론」, 2009, 106면 이하 참고. 64) 전통적인 법학방법론과의 대비를 통해 법적 논증이론의 개념규정을 명확히 하려는 김 영환, “법적 논증이론의 전개과정과 그 실천적 의의”, 법학논총, 제12집(1995), 4면 이하; Ulfrid Neumann, 「법과 논증이론」, 2009, 5면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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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논증 그리고 논증이론 65
당화하는 논거가 아니다. 물론 정통적인 법학방법론은 법률해석의 규칙뿐만
아니라, 법률에 흠결이 있거나 법률이 오류일 때에는 해석을 뛰어 넘어 흠
결을 보충하는 법형성이나 법률을 수정하는 법창조의 가능성을 인정한다.
그렇지만 법형성과 법창조의 경우에도 방법론은 다시 법형성과 법창조를 위
한 방법적 규칙을 제공함으로써 이 영역에서도 여전히 판결을 실천적 활동
이 아니라, 인식의 대상으로 축소시키고자 한다.
이와는 달리 법적 논증이론은 방법에 부합하고 이 의미에서 ‘정당한’ 결
정발견을 목표로 삼는 것이 아니라, 발견된 결정에 대해 확실한 근거를 제
시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다시 말해 논증이론은 판결을 도출하는 문제에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도출된 판결에 대한 서술에 관련된다. 즉 법적 논증
이론은 - 과학이론의 용어를 빌리자면 - 발견의 맥락(context of discovery)이
아니라, 정당화의 맥락(context of justification)과 관련된다. 자연과학의 경우
이 두 가지 맥락이 엄격하게 분리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한 과학적 가
설(발견의 맥락)은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근거(정당화의 맥락)가 박약할지라
도 얼마든지 참으로 입증될 수 있다. 거꾸로 매우 견고한 근거가 제시되었
을지라도 가설 자체가 거짓으로 밝혀질 수도 있다. 이처럼 일정한 결론의
도출과 도출된 결과에 대한 정당화는 별개의 영역에 속한다.
법적 논증의 경우에도 두 영역은 분리가 가능하다. 즉 결정의 발견은 법
관의 경험적 직관이나 다른 여러 가지 동기에 의존할 수 있지만, 발견된 결
정을 정당활 때에는 그러한 직관이나 동기를 곧바로 근거로 제시할 수는 없
으며 직관이나 동기와 무관한 법적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결정발견의 과정이 합리적 및 비합리적인 동기들이 자유롭게 떠다니는 영역
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자연과학에서와는 달리 법과 같은 규범적 분야
에서는 두 영역을 극단적으로 분리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왜냐하면 예컨
대 결정발견 단계에서 법관의 직관이 결정적 역할을 그러한 직관은 법관으
로서의 사회화 과정에서 습득한 법적 논거들이 순간적이고 집중적으로 발산
된 소산일 뿐, 결코 비합리적이라는 의미의 직관일 수 없다. 설령 비합리적
사고나 주관적 가치판단이 결정발견을 주도했을지라도 이는 다시 법적 논거
로 전환되어야 하고, 정당화를 위해 법적 논거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다시
사후적으로 수정 또는 통제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두 영역이 극단적으
로 분리되는 경우 결정의 정당화는 실제의 결정발견 과정을 은폐하는 위장
술로 전락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법관의 논증은 결정의 발견과 이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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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法學論叢 第43卷 第4號
정당화 사이의 상호관련성을 의식하면서, 결정발견의 과정을 서술하고 발견
된 결정의 정당성 근거를 최대한 정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이 점에서 이른바 방법적 정직성(Methodenehrlichkeit), 즉 법관이 자신의
결정발견에 개입한 방법적 규칙을 밝히라는 전통적 방법론의 테제65)는 법적
논증이론의 관점에서도 당연히 타당성을 갖는다.66) 다만 법학방법론이 제시
하는 해석규칙 및 법형성/법창조의 규칙은 법적 논증이론(특히 규범적 논증
이론)의 관점에서는 결정발견의 규칙이 아니라, 결정을 정당화하는 여러 규
칙들 가운데 특수한 법적 논증규칙에 해당할 뿐이다. 이렇게 볼 때 법적 논
증이론은 판결을 단순히 인식과정으로 보면서 법관의 주관적 가치평가를 배
제할 수 있다고 전제하며, 그 때문에 판결의 실천적 활동의 성격을 무시하
는 법학방법론의 문제점을 극복하려는 새로운 대안에 해당한다.
Ⅴ. 법적 논증이론과 법실무
이상의 서술은 논증 및 논증이론의 중요성이 부각된 이론적 배경들을 소
개하고, 논증이 전체 법질서의 맥락에서 갖는 의미를 밝히면서 논증이론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시도했다. 이러한 시도는 - 이론사의 측면이든 아니면
논증이론에 관한 서술이든 모두 - 적어도 다음과 같은 점에서는 한 가지 동
일한 결론에 도달한다. 즉 법관의 판결은 단순히 법률을 사안에 적용하는
것, 즉 법률이라는 대전제에 사안을 포섭하는 추론에 불과하다고 볼 수 없
다는 사실이다. 만일 그와 같은 논리적 추론이 가능하다고 전제한다면 논증
이론은 필요하지 않거나 그 필요성을 의식할 수 없다. 그저 법률규범의 체
계, 내용 및 범위에 관한 정보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리고 규범을 적용하
는 과정 역시 언제나 명확하고 사후적 통제 또한 확실하게 이루어질 수 있
을 것이다. 그리하여 어떠한 규범을 적용하든 어떠한 사안에서든 동일한 절
65) 법관에게 ‘방법적 정직성’이 요청되는 까닭을 상술하는 박종희⋅윤재왕, “판례의 법형
성적 기능과 한계 - 서울행정법원 2012.11.01. 선고 2011구합20239, 2011구합26770 판결
(병합)에 대한 비판적 검토”, 고려법학, 제70호(2013), 213면 이하, 특히 216면 이하
참고.
66) 객관적인 입증에 이를 수 없는 영역에서 논증하는 이의 정직성이 중요한 의미가 있다
는 사실을 강조하는 Ulfrid Neumann, 「법과 논증이론」, 2009, 5-9면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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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논증 그리고 논증이론 67
차를 통해 판결이 성립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설령 법관의 논증구조
와 방식을 고려할지라도 그것은 순전히 우연의 소산에 불과하다. 오로지 법
률로부터 사례에 도달하는 추론의 형식적 타당성만이 관심의 대상이기 때문
이다.67)
이에 반해 판결에서 드러나는 형식적 측면은 그저 외관에 불과하고, 법률
구속의 이념은 결코 완벽하게 달성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법관의 행
위를 법관의 가치평가나 사회정책적 고려에까지 연결시켜 파악한다면, 법적
논증이론은 직접적인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형식적 추론이 아니라, 사안
에 부합하는 법률규범을 준비하고 법적인 사례를 법률에 비추어 구성하는
것이 판결의 핵심이라면 이론적 관심은 사안과 법률에 비추어 이루어지는
법관의 논증으로 향할 수밖에 없고, 이를 통해 판결의 정당성 기준을 설정
하고 검토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관성에 비추어 볼 때 법의
실현과정을 성찰하는 법학자라면 전통적인 형식주의와 고전적 법률구속은
극복된 것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법적 논증이론의 형성과 발전도 바로 이
러한 문제의식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훨씬 더 시급한 문제는 판례가 적절한 논증이론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 현재의 상황에 대한 최소한의 비판적 관찰만으로도 알 수 있듯이,
현재 논증실무 - 그것이 어떠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지는 접어두고 - 는 있지
만, 실무에 적합한 논증이론은 없다. 따라서 실무의 논증적 절차에 대해 근
거를 제시고 이를 정당화하거나 또는 제한하는 이론의 형성이 시급한 문제
이다. 법실무가 어떤 식으로든 논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는 의문이 있을 수 없다. 법률해석이 완전히 법률에 의해서만 규정된다거나
법률체계의 완전성과 완결성이라는 전제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고, 실제로
그러한 전제하에 법실무가 이루어진 적이 있었는지를 의심해야 할 정도이
다. 법관은 법률규범으로부터 도출한 정보와 결정해야 할 사례로부터 도출
한 정보 사이에서 다수의 이질적 결정원칙들을 끼워 넣고 있고, 특히 하급
심 판결은 상급심이 발전시킨 원칙들을 존중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그와
같은 결정원칙들은 매우 중요한 논거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도로교통법상
의 신뢰의 원칙 또는 과연 실정법상의 규칙인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특정
67) 이러한 점을 ‘법적 결정주의’라는 표제 아래 압축적으로 서술하는 Ulfrid Neumann, 「법 과 논증이론」, 2009, 4-6면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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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法學論叢 第43卷 第4號
법영역을 지배하는 신의칙이나 사회적 상당성은 그와 같은 원칙들에 속한
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 또는 논거를 분석, 비판하는 법적 논증이론은 존재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앞에서 서술한 논증이론은 결코 특정한 법적 논거에 대한 내용적
평가를 시도하는 이론이 아니다. 다시 말해 논거를 평가하는 이론이 아니고,
따라서 이 이론이 적용될 대상영역을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전제하면서 어떠
한 논거가 구체적 사례에서 판결에 원용되어야 하는지 또는 원용될 수 없는
지를 사전에 명시적으로 제시하는 이론이 아니다. 설령 그와 같은 이론이
존재할지라도 그러한 이론은 결정을 내려야 할 사례의 다양성과 예측불가능
성 때문에 실패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사례를 포괄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극히 일반적으로 서술되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실무에서는 아무런 성과도
보여줄 수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법적 논증 ‘이론’은 어쩔 수 없이 구체
적인 논증실무를 외부에서 관찰하는 관찰이론이자 메타이론일 뿐이다. 특히
당장 결정해야 할 구체적 사례에 직면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논증
에 대한 일반적 성찰은 결코 논증을 위한 규범적 기준을 제시할 수 없다.
따라서 법적 논증이론으로부터 곧바로 더욱 ‘성공적’인 논증 방법을 제공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처음부터 좌절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다. 법이
론이 법실무에 미치는 영향은 어차피 미미할 뿐이다. 물론 법실무가 법적
논증으로부터 자극을 받아 스스로의 논증방식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로 작용
할 수는 있다. 법이론의 한 분과로서의 법적 논증이론이 해낼 수 있는 역량
은 이 정도에 국한된다. 법이론은 학문체계 내에서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
션이고, 이에 반해 법실무는 법체계에서 중심적인 지위를 갖는 법적 커뮤니
케이션이기 때문이다.68)
그렇기 때문에 과연 이러한 외부의 자극을 법실무가 어떻게 처리할 것인
지는 법이론적 관점에서는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현재의 우리 법실무
가 논증이론에 대한 수요를 갖고 있다는 전제하에 다음과 같은 측면만은
지적할 수 있다. 필자가 보기에 가장 시급한 문제는 현재 법실무가 하고 있
는 논증 -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을 수
없다 - 에 대한 경험적 분석이다. 즉 기존의 판결이 과연 어떠한 경우에 어
68) 법체계에서 법원이 어떠한 지위를 갖는지에 관한 상세한 논의는 Niklas Luhmann, 「사회 의 법」, 2014, 397면 이하, 특히 428면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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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논증 그리고 논증이론 69
떠한 논거를 어떠한 목적에서 사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포괄적 분석이 이루
어져야 한다. 그럴 때만 비로소 좋은 근거와 덜 좋은 근거 또는 나쁜 근거
를 구별할 수 있는 기초적 작업이 가능하며, 이를 토대로 법실무 전반의 논
증스타일에 대한 개선을 기획할 수 있다. 법적 논증이론의 분류에 따라 말
하자면, 현재 법실무가 1차적으로 필요한 것은 규범적 논증이론이 아니라,
경험적 논증이론이다. 특히 논증은 문화적, 역사적으로 상대성을 갖는다. 논
거 또한 예컨대 특정한 법문화가 법과 도덕의 분리를 어느 정도까지 진지하
게 고려하는가와 같은 일정한 문화적 콘텍스트에 의존한다.69) 이처럼 다차
원적 현상인 법실무의 논증스타일을 경험적으로 분석하지 않고서는, 다시
말해 과거와 현재에 대한 자기성찰이 없이는 발전적인 미래를 기약할 수 없
다. 개인적 자기성찰과 마찬가지로 제도적 차원의 자기성찰도 스스로에 대
한 비판과 자신을 보는 타자에 대한 관찰을 필요로 하고, 그 때문에 상당한
인내심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자기성찰 과정에서 비로소 분석적 또
는 규범적 논증이론이 성찰과 개선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70) 이 점에서 ‘법적 논증’은 법이론과 법실무의 엄청난 간격을 조금이라도 좁힐 수 있는
성공적인 계기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69) 이러한 사실을 지적하는 Ulfrid Neumann, 「법과 논증이론」, 2009, ⅱ면 참고. 70) 법원의 자기성찰의 단초는 이미 마련되어 있다. 예컨대 김상준/이진만/신숙희/장철익 (편), 「법관의 의사결정: 이론과 실무」, 사법발전재단, 2010 참고. 특히 이용구, 사실인 정 과정의 논증(39-217면) 참고. 그리고 법적 논증과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지만 자기성 찰의 경험적 토대를 튼실히 제공하는 김상준, 「무죄판결과 법관의 사실인정」, 2013 참고. 문제는 이러한 자기성찰을 통한 경험적 논증이론의 확보를 위한 지속적인 노력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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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法學論叢 第43卷 第4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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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논증 그리고 논증이론 73
Argumentation in Law and
Argumentation Theory
Zai-wang, Yoon
I wrote this paper to reconstruct the phenomena of legal decision-making and its justification based on the legal argumentation theory and hence to enable practitioners to reflect upon what they do. I began with tracing the notion of the judge being bound by the applicable law (‘Gesetzesbindung der Justiz’) and its limitation in the context of political and theoretical history. German theoretical achievements show us that the legal decisions cannot be deductively derived from laws and the legal reasoning is not the same as the drawing of a syllogistic conclusion. One can learn from them that delimiting such notion did not ― and could not ― necessarily force us to accept the irrational aspect of judicial decisions alone. Rather, the question of the rationality of justifications of legal decisions has become one of the main themes of the evolving legal argumentation theory. Furthermore, I touched on a judicial duty to justify its decisions from the constitutional point of view, showing that legal decisions and argumentation theory can substantially correlate. My enterprise is, therefore, not to focus on ideal norms for acceptable arguments and criteria of acceptability which apply in legal practice; I intend to describe the significance of argumentation as such in the legal system as a whole and its adjudicative process in particular. In other words, I attempted to keep myself away from any normative dimension of the legal argumentation theory. And the last chapter deals with the interrelation between legal argumentation theory and legal prac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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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法學論叢 第43卷 第4號
the notion of the judge being bound by the applicable law (‘Gesetzesbindung der Justiz’), judicial syllogism (‘juristischer Syllogismus’), argumentation (‘Argumentation’), legal argumentation theory (‘Theorie der juristischen Argumentation’), a judicial duty to justify its decisions (‘Pflicht zur juristischen Argumentation’), legal methodology (‘Methodenlehre der Rechtswissenschaft’), methodological honesty (‘Methodenehrlichke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