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행정법과 학문의 길,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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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공법학회 신진학자대회 기조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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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법과 학문의 길
朴正勳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 들어가며
한국공법학회의 2021년도 신진학자대회에서 행정법을 대표하여 기조연설
의 기회를 갖게 되어 큰 기쁨이자 영광입니다. 개인적으로, 1992년 실무가에
서 법학자로 인생항로를 바꾸고 독일에 유학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1997년 3월 헌법재판소 대강당에서 ― 제1차 아니면 제2차로 기억되는 ―
한국공법학회 신진학자대회에서 ‘행정법에서의 법발견’이라는 발표를 한 지
정확하게 24년 만에, 전임(제5대) 행정법학회 회장으로서, 공법학회의 초청을
받아 최근 박사학위를 받은 신진학자들을 위해 말씀 드리게 되어 감회가 큽
니다. ‘少年易老學難成’을 절감하면서도 염치불구하고 ‘빠땀 풍 하더라도 바
람 풍 하시라’고 후학들을 위해 감히 저의 생각을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김종철 회장이 ‘모시는 글’에서 행정법학의 “근본정신과 방법론”을 말해
달라고 주문하셨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은 지금까지 제가 발표한 졸고1)들로
대신하고, 오늘은 ‘행정법과 학문의 길’이라는 제목 하에서 행정법에 대한 올
1) 행정법교육의 목표와 방향 – 행정법학의 여섯 가지 방법론, 연세대학교 법학연구소,
법학연구제12권 제2호, 2002, 113-134면 (현재 졸저, 행정법의 체계와 방법론, 2005, 59-80면; 한국 행정법학 방법론의 형성ㆍ전개ㆍ발전, 공법연구 제44집 제2호, 2015, 161-191면; 행정법과 ‘민주’의 자각 - 한국 행정법학의 미래, 행정법연구 제53 호, 2018, 1-24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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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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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 법학의 네 가지 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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思: 인문학과 사회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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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固: 소통과 학문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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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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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학문의 자세를 거칠게나마 말씀 드리면서, 저에게도 반성의 기회로 삼
고자 합니다.
오늘 드릴 말씀의 글감을 요즈음 탐독하고 있는 論語2)에서 찾았습니다.
爲政編제15장의 ‘學而不思則罔思而不學則殆’와 學而編제8장의 ‘學則
不固’입니다. 앞의 말은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혼란하여 멍청해지
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험해진다’라는 의미로, 뒤의 말은 ‘배우면
완고하지 않다’라는 의미로 이해합니다.3) 여기에서 學과 思와 不固, 세 마디
를 따서, 먼저 學을 ‘배움으로써 깨치다’로서, 법‘학’의 네 가지 차원과 연결
하고(2.), 다음 思를 ‘생각하여 깨침을 넓히다’로서, 인문학과 사회과학과 연
결한 다음(3.), 마지막으로 不固를 ‘마음과 귀를 열다’로서, 소통과 학문공동
체와 연결(4.)하여 설명 드리겠습니다.
- 學: 법‘학’의 네 가지 차원
(1) 독일에서 博士(Doktor)가 되는 것을 ‘Promotion’이라고 합니다. 라틴어의
전진시키다, 키우다, 높이다 등을 뜻하는 promovere에서 온 말로서, 자신의
신분 내지 지위를 승격시킨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프리드리히 대제 시절 제
정되어 지금까지 존속하는 ‘姓名法’(Namensgesetz)에 의하면, 후작⋅백작 등 5
개의 귀족 이름 이외에는 이름 앞에 별도의 호칭 사용을 금지하면서, 단 두
가지 예외로 박사(Dr.)와 교수(Prof.) 호칭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되, 그 호칭
을 허위로 사용하면 형사 처벌됩니다. 이는 프로이센 시절부터 부국강병을
위해서는 학문 발전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고 평민들에게 학문을 권장하는
2) 어릴 때 읽은, 주자학에 의해 ‘儒敎’로 敎條化된 論語가 아니라, 역사 속의 孔子말씀
을 직접 느끼고 깨닫는 방법으로 다시 읽고 있습니다. 3) 朱熹의 論語集註에 의하면, ‘學則不固’를 앞 문장의 ‘君子不重則不威’와 연결하여
‘군자가 중후하지 않으면 위엄이 없고 배움도 견고하지 못하다’라고 풀이하였으나(성 백효 역주, 최신판 논어집주, 2017, 28면 참조), 이는 ‘重=威=學’을 동일시하는 주자학 의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고, 漢代의 古注는 앞 문장과 분리하여 위와 같이 ‘배우면 완고하지 않다’라고 새겼으며(김용옥, 논어한글역주 1, 2008, 334면 이하 참조), 현재 우리나라에서 많은 분들이 이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이우재, 논어 읽기, 전 면개정판 2013, 60면; 이한우, 논어로 논어를 풀다, 2012, 55면; 윤재근, 사람인가를 묻는 논어 Ⅰ, 2004, 82면 등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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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에서 비롯된 것인데, 꽤나 성공을 거둔 정책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여
하튼 독일에서는 박사(학)위 ― Doktor-‘titel’ 또는 Doktor-‘würde’ ― 는 학문
적 지위만이 아니라 신분과 사회적 지위 자체를 의미하고 따라서 공적 장부
상 이름의 일부가 됩니다. 말하자면, 세속적 의미에서 Doktor는 당대 본인에
게만 한정된, 세습되지 않는, 후작⋅백작 등에 비견하는 ‘귀족’ 칭호입니다.
이에 대비될 수 있는 것은 論語에서 말하는 ‘君子’가 아닌가 합니다. 지
금부터 2,500년 전 춘추시대에는 느슨하게 귀족 계급이 형성되고 있었지만,
평민들도 ‘學而時習之’하면 君子가 되어 官이 될 수 있었습니다. 孔子의 제자
들은 거의 대부분 평민들이었는데, 孔子의 가르침은 官과는 무관하게, 스스
로 자신의 인격과 품위와 사고수준을 높이는 데 초점이 있었습니다. 이와 같
이 자기 자신의 ‘사고수준’을 높인다는 것, 이것이 바로 독일에서 말하는 ―
세속적인 의미의 신분상승이 아닌 ― 진정한 학문적 의미의 Promotion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점이 오늘 강조하고 싶은 첫 번째 ‘학문의 길’입니다.
이러한 ‘사고수준 높이기’는 學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學’은 두 손에 회
초리를 잡고 우매함에 빠져 있는 아이(‘子’)를 깨치게 한다는 형상과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4) 다시 말해, 學의 핵심은 배움을 통해 우매함을 깨치는 것입
니다. ‘배움’은 주로 독서를 통한 지식습득이지만 이것만으로 學이 될 수 없
습니다. 그 지식들을 통해 자신의 우매함을 깨치는 ‘깨달음’으로 나아가야 합
니다. 여러분은 행정법을 전공하여 박사가 되었지만, ‘행정법’박사 또는 ‘법’
박사가 아니라, 법‘학’박사로서 ‘學하는 사람’ 바로 學者가 되었습니다. 단지
행정법에 관한 정보들을 수집하여 체계화한다고 하여 學이 될 수 없습니다.
법‘실무’에서는 그것으로 충분할지 몰라도, 법‘학’에서는 그것을 넘어, 수많은
정보들에 담긴, 그 정보들을 관통하는 문제점과 해결방법을 깨달아 그 정보
들보다 더 높은 수준의 사고에 도달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강조하는 두
번째 ‘학문의 길’입니다.
(2) 저는 이와 같은 學으로서의 행정법학을 네 가지 차원에서 설명하여 왔
습니다.5) 즉, 행정법 도그마틱은 개념과 논리체계의 單線으로 이루어져 있다
4) 장연진, 漢子字源辭典(四), 2018, 932-935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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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점에서 제1차원(X축)에 속하고, 입법과 행정제도, 행정심판, 행정소송은 X
축의 개념과 논리체계가 현실에 적용됨으로써 면적을 갖게 된다는 의미에서
제2차원(XY축)에 해당하고, 비교행정법은 지구상의 공간적 의미를 갖기 때문
에 제3차원(XYZ축)에 속한다면, 시간의 차원인 제4차원(T차원)은 행정법 도
그마틱, 행정법 제도 및 그 기본이념들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변화 발전하였
는가를 고찰하는 것입니다.
學으로서의 행정법학은 어느 한 차원에만 한정되어서는 안 되고, 물론 학
자마다 비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 네 가지 차원들을 모두 배우고 깨쳐야
합니다. 박사논문의 주제에 따라 지금까지 여러분은 어느 한 차원에 치중하
였을지 모릅니다. 제1차원 도그마틱의 개념과 논리체계에만 치우쳐 제2, 3, 4
차원을 소홀히 하여도 안 되지만, 거꾸로 제도 연구, 외국법 연구, 역사 내지
이념 연구에 치우쳐 도그마틱을 소홀히 하여서도 안 됩니다. 어느 차원도 행
정법을 제대로 ‘깨닫는’ 學을 위해 빠져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바
로 직전에 통과된 행정기본법은 결코 도그마틱 차원에서만 논의되어서는
안 되고, 그 실제적 운용효과 분석, 비교법적 평가, 역사적⋅이념적 조망이
동시에 이루어져 하는 것입니다. 이 점이 오늘 강조하는 세 번째 ‘학문의 길’
입니다.
행정법‘학’은 위 네 가지 차원에서 모두, 헌법, 민법, 형법, 민사소송법, 형
사소송법 등 다른 법영역과 많은 접촉면을 갖고 있어 ‘종합법학’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이들 인접 영역에 대한 이해와 연구를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
다. 행정법학의 역량을 키우면 이들 모든 접촉면에서 연구영역을 확대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거꾸로 학문적 역량이 위축되면 인접법학들에
의해 연구영역이 잠식될 운명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3) 제1차원에서는 우선, 개념의 명확성과 논리의 체계성을 추구하여 도그
마틱의 ‘정확’한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우리나라의 법규⋅판례⋅학설에 기반
한 도그마틱이어야 합니다. 외국법과 비교법은 제3차원에서 비로소 고려되어
5) 자세한 내용은 졸고, 전게논문(한국 행정법학 방법론의 형성ㆍ전개ㆍ발전), 178면 이
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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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합니다. 또한 도그마틱은 끊임없이 비판적으로 검증되어야 하고, 이러한
관점에서 판례연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대표적으로 행정행위의 효력, 부관,
허가ㆍ특허ㆍ인가의 구별, 재량행위의 개념과 심사방식, 법규명령과 행정규
칙의 구별 등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제2차원에서는 무엇보다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의 실무를 이해하는 것이 중
요합니다. ‘학자’라고 해서 이를 소홀히 하면 學으로서 깨달음이 어렵게 됩니
다. 법은 항상 현실에 적용될 때 본연의 모습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판례
도 제1차원 도그마틱의 관점에서 그 결론과 논거만을 보아서는 부족하고, 제
2차원 제도의 관점에서 사안의 내용과 그 정치⋅사회⋅경제⋅문화적 배경도
탐구되어야 합니다. 의회입법과 행정입법의 과정을 공부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를 위해 입법학은 행정법학의 필수과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3차원의 비교법은 법‘학’이 법실무로부터 완전히 분리되는 출발점입니다.
비교법을 통하여 우리나라 법질서와 법제도를 객관적으로 파악함으로써 學
(깨딸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헤겔이 설파한 ‘자기의식’의 발전 3단
계에서 첫 번째 卽自存在(An-Sich-Sein)는 아기와 어린이처럼 자기밖에 모르
는 미성숙단계인데, 다른 사람을 인식하여 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하여 자기
를 의식하는 對他者存在(Für-Andere-Sein)를 거쳐야만, 비로소 자기를 객관적
으로 제대로 파악하는 對自存在(Für-Sich-Sein)가 됩니다.6) 여기서 對他者存在
에서 비교대상인 ‘他者’가 한 사람뿐이라면 제대로 對自存在로 성장할 수 없
듯이, 기하학에서 일정한 점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2개 이상의
다른 비교점이 필요하듯이, 비교법은 여러 나라를 동시에 비교하는 ‘다원적’
비교법이어야 합니다. 비교법(comparative law)는 외국법(foreign law)과 다릅니
다. 비교대상인 나라들을 모두 혼자 스스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학
자들의 연구결과를 활용하여도 충분합니다. 비교법의 초점은 우리의 것을 객
관적으로 파악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다원적 비교법은 후술하는
‘學則不固’와 연결됩니다.
제4차원의 역사에서 핵심적으로 연구되어야 할 주제는 민주(주의)와 법치
6) 헤겔, 정신현상학, 김양순 역, 동서문화사, 2016, 82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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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의 발전과정과 상호 대립관계입니다. 행정법이 ‘공법’으로서, 私法과 구
별되는 지점은 바로 民主, 즉 주권자로서의 民입니다. 私法은 사인 간의 합
리적인 이익조정을 위한 법치만으로 충분할 수 있지만, 공법의 주요 부분은
民主의 의지에 의해 구성됩니다. 여기에서 행정법학은 정치철학과 연결됩니
다. 역사 속의 행정법 이념에 관해 다루어져야 하는 주요 주제는 국가의 역
할, 사인과 기업의 자율성, 규제개혁과 공공성, 민영화와 보장국가 등입니다.
- 思: 인문학과 사회과학
(1) 앞에서 學은 배움과 깨달음이라고 하였는데, 그 깨달음을 넓히는 것
이 바로 思입니다. 論語는 學만 있고 思가 없으면 혼란스럽다고 가르칩
니다. 思는 문제의식, 즉 물음(問)을 전제로 합니다. 다시 말해, ‘學問’이라
고 할 때 問은 思의 출발점입니다. 學에 의해 일정한 깨달음을 얻은 다음
그것을 기초로 問함으로써 思하게 되어 그 깨달음을 넓히는 것입니다. 이
것이 진정한 學問의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행정법)학자도 법학서적을 통한 깨달음에 만족하지 않고 그
깨달음에 문제의식을 갖고 그에 관해 깊이 생각하여야 하는데, 바로 이러
한 思에 필요한 자료는 文⋅史⋅哲의 인문학에서 얻어집니다. 思는 법학
의 네 가지 차원 모두에서 이루어지지만, 인문학을 통한 思는 특히 제4차
원의 역사⋅이념에 관하여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와 같이 행정법학을 위
한 인문학은 學을 위한 것이 아니라 思를 위한 것이므로, 인문학 공부가
반드시 필요하긴 하지만, 그 범위와 깊이는 ‘행정법을 思하는 데 필요한
정도’이면 충분합니다. 인문학의 전문가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행정법
학을 제대로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문학에 대해 전문성
콤플렉스 없이, l’amateur, 애호가, 조건 없이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문학적
소양을 쌓을 수 있습니다. 전문성이 요구될 때에는 아래에서 말하는 소통,
즉 인문학자와의 공동연구로 하면 됩니다.
(2) 이 말은 사회과학에도 그대로 타당합니다. 행정법학은 행정을 연구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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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하는 ‘행정과학’으로서, 숙명적으로 행정학과 마주칩니다. 특히 제2차원
의 제도, 즉 행정법의 현실 적용 문제에서 두드러지기 때문에, 행정학에 대
한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행정학이 방법론적으로 법학, 정치학, 사회학, 경제
학, 심리학, 경영학 등을 종합하고 있으므로, 행정법학은 행정학을 매개로 여
러 사회과학과 만나게 됩니다. 여기에서도 사회과학은 행정법을 제대로 思하
기 위한 것이고, 따라서 사회과학 공부가 그에 필요한 정도로 충분합니다.
앞으로 행정법학이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반드시 ― l’amateur로서 ―
행정학과 사회과학의 소양이 필요하고, 행정학자, 사회과학자들과의 공동연
구도 절실하게 요구됩니다. 이것이 네 번째 ‘학문의 길’입니다.
- 不固: 소통과 학문공동체
(1) 마지막으로,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바로 學, 즉 배워 깨치면, 不
固, 완고하지 않다, 다시 말해, 고집을 버리고 마음과 귀를 여는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論語의 이 부분 해석에 다툼이 있을 만큼 ‘不固’
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필요합니다. 학문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행정법학은 다양한 차원에서 다양한 방법
론으로 광범위한 주제로 이루어지는데, 나 혼자 이 모든 것을 할 수 없으니
학문은 불가능하다고 단념하기 쉽습니다. 내가 지금 어떤 한 부분만을 공부
하고 있어도 다른 학자 동료들이 나머지 부분들을 맡고 있다는 믿음을 가질
때 비로소 진정한 학문이 가능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同學의 다른 방향
의 연구를 존중하고 그 업적을 경청하여야 합니다. 우리 모두의 연구들이 모
여 ‘행정법학’이 되는 것입니다.
(2) 행정법학은 앞에서 지적하였듯이 인문학과 사회과학과 연결되어 역사
에 대한 시각, 정치철학적 입장, 특히 民主와 법치의 상호관계에 대한 이해
에 따라 개별 주제에 대한 견해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공동체주
의와 자유주의, 권리중심적 사고와 객관법적 사고, 공법의 독자성 강조와 공
⋅사법 일원적 사고의 대립이 깔려 있습니다. 이는 비교법 연구의 주된 대상
국가 ― 독일, 프랑스, 영국, 미국, 일본 등 ― 와도 관련된 문제입니다. 그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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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때문에, 私法영역에서는 견해 대립이 주로 세부적, 미시적인 문제에 관
한 것인 반면, 행정법에서는 어떠한 문제이든지 모두 ― 예컨대, 처분의 개
념, 원고적격, 재량의 개념, 부관의 허용성, 행정행위 재심사, 앞으로 행정기
본법의 모든 조항, 모든 문구에 관해 ― 위와 같은 거시적인 관점으로 말미
암아 견해가 대립할 수 있고 갈등이 심화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학문에서
가장 좋은 ‘벗’은 자기와 다른 관점과 견해를 가지고 있지만 그 내용과 근거
를 정확히 이해하여 서로 비판ㆍ조언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학문에서 가장
무서운 ‘적’은 무관심입니다. (법학)박사, 다시 말해, 學과 思를 통해 지위와
품격과 사고수준을 높인 君子는 모름지기 和而不同 ‘어울리되 같지 않다’(論
語 子路編제23장), 아니 不同而和, 서로 다르지만 어울려야 합니다. 이것이
다섯 번째, 행정법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학문의 길’입니다.
- 마치면서
‘博士’는 중국 秦⋅漢시대부터, 우리나라에서는 고조선 때부터, 고구려의
태학박사, 백제의 오경박사, 신라의 국학박사, 고려의 국자박사, 조선의 성균
박사 등 2,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칭호입니다.7) 박사는 직업이 아니라
(학)위이기 때문에 死後에는 바로 神位가 되어 제사지방문에 오릅니다. 박사
가 아닌 사람이 ‘學生’과 ‘孺人’입니다. 다시 말해, 박사는 저승까지 갖고 가
는 호칭입니다. 독일의 Promotion, 즉 Dr. (Doktor)도 마찬가지입니다. 牧村김
도창 선생님은 30개가 넘는 직함을 갖고 계셨지만, 생전에 오직 ‘박사’로 불
리기를 원하셨고, 2005년 가실 때에는 棺위의 붉은 천에 ‘法學博士金道昶’
이라고만 적혀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박사(학)위 취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가문과 고향과 나라의 큰 慶事입니다. 學과 思, 그리고 不固로써 행정법의
‘학문의 길’에서 大成하기를 축원하고, 이 나라의 民主와 법치를 반석 위에
올리는 데 기여하기를 소망하고 기대합니다. (끝)
7) 두산백과 ‘博士’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098124&cid=40942&categoryId=
33373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