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균, 헤겔과 슈타인에 있어서 독일 관념론 국가사상,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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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헤겔과 슈타인에 있어서 독일 관념론 국가사상* **
1)2)
국순옥
인하대학교명예교수
김도균옮김
서울대학교법학전문대학원교수, 법철학
dkkim80@snu.ac.kr
<국문요약>
헤겔에게서 본격적으로 철학적인 표현을 얻었고 로렌츠 폰 슈타인에게서 국가론
적 표현을 획득한 국가와 사회의 분리라는 관념은 현재까지 독일 국가론의 핵심요
소를 이루고 있다. 즉, 국가와 사회의 갈등과 조화가 독일 국가론이 해결해야만 하
는 주된 과제가 된 것이다. 이 논문의 목적은 국가와 사회의 분리와 갈등을 헤겔과
슈타인이 어떻게 파악하였으며, 양자 사이의 매개와 조화를 어떻게 이루려고 했는지
를 살펴보고, 양 사상가의 해법이 갖는 철학적, 역사적 의의와 한계를 고찰하는 데
있다. 헤겔은 시민사회를 욕구의 체계로 파악하고 시민사회에 내재한 모순을 인식하
였지만, 윤리의 구현체인 국가를 통해 시민사회의 모순을 해결하려는 관념론적 해법
을 채택하였다. 이는 헤겔 당대의 사회적 상황, 즉 아직까지는 부르주아 계급과 노
동계급이 역사의 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하지 못한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헤겔의 사상을 수용하고 동시대의 사회이론들을 접목시켜 독자적인 국가론을 발
전시킨 슈타인은 헤겔이 당면했던 것과는 다른 시대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
에 대립하는 국가의 존재를 설정하고 이상적 국가 개념을 제시한다. 슈타인은 국가
가 사회경제적 환경에 좌우된다는 점, 즉 국가의 토대는 사회라는 점을 현실적으로
- 심사위원: 김종서, 송기춘, 송석윤
투고일: 2014.6.16. 심사개시: 2014.6.17. 게재확정: 2014.6.20. ** 이 글은 인문연구 제6집(인하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80), 101-124쪽에 수록 되었던 “Das Staatsdenken des deutschen Idealismus bei Hegel und Stein”을 번역한 것이다. 다만, 직접인용 방식으로 표기된 부분은 독자들의 편의를 위하 여 편집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밝혀 둔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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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하게 인식하였지만 이 사회학적 통찰력을 철저하게 밀고 나가지 못하고 헤겔식
의 관념론적 국가론 틀내에 머무르고 만다. 슈타인이 시민사회에 내재한 모순들을
국가와 사회의 긴장관계로 치환한 후, 시민사회의 외부에서 중립적으로 문제를 해결
하는 국가상을 제시하는 데 그친 것은 그 자신의 현실적 국가 개념과 헤겔식의 관
념론적 국가 개념 사이에서 동요하다가 후자의 이론적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한 데
있다고 하겠다. 노동계급을 포함한 하층민의 사회적 저항이 본격적으로 확산되던 당
대 사회현실과 대면하여 그토록 진지하게, 진정성을 가지고서 사상적 고투를 벌였으
나 슈타인은 자기 시대의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했던 것이다.
주제어: 헤겔, 슈타인, 시민사회, 시민사회의 모순, 관념론적 국가론, 이중화된 국가
개념
<차 례>
-
헤겔의 시민사회 개념과 관념론적 국가개념
-
슈타인의 사회관과 국가개념의 이중화
-
헤겔의 시민사회 개념과 관념론적 국가개념
헤겔의 저서 ‘법철학’이 독일 국가론에서 국가와 사회를 분리하는 이
분론적 사고의 물꼬를 트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이후, 국가에 대한 물
음은 필연적으로 사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물음으로 확장되었다. 관념
적으로 분리된 이 양 영역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로 “상호조화의 체계”
라는 성격을 띠게 되었기 때문이다.
주지하듯이1) 국가와 사회의 분리라는 정리(定理)는 부르주아 국가사상
의 발생초기부터 현재까지 독일 국가론을 구성하는 핵심요소이다. 그렇지
만 이는 구체적 현실과 관련성을 갖지 않는 추상적 관념이라기보다는 그
1) 특히 O. Brunner, Neue Wege der Sozialgeschichte, 26쪽 이하, 50쪽 이하, 80
쪽 이하. 또한 동저자, Land und Herrschaft, 111쪽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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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로 역사적인 개념범주로서 시민사회가 생성된 특수한 사회경제적 발
전조건 하에서 생겨난 것이다.2)
시민사회 이전의 사회에서는 원래 사적 영역은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성격을 가졌다. 유럽 법철학의 근세 자연법 단계에서도 ‘정치공동
체’(civitas)와 ‘개인들의 결사체인 사회’(societas civilis)는 실천철학의 고
전적 전통에서 제시하던 내용들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3) 그렇다면
국가와 사회의 이분론적 대립은 시장을 매개로 하는 부르주아 경제사회
의 발생과 함께 근대 세계에서야 비로소 시작된 것이라 하겠다.4) 실제를
보자면, 시민사회가 국가라는 정치제도와는 별개의 영역으로 차별화되는
2) E-W Böckenförde, “Die Bedeutung der Unterscheidung von Staat und
Gesellschaft im demokratischen Sozialstaat der Gegenwart”, 12쪽. 1960년대 초 반 특히 국가론자들과 정치학자들 사이에서 국가와 사회 이분론의 발생을 위한 역사적 전제조건에 관하여, 그리고 그 이분론이 당대 국가론과 헌법이론에 가 지는 함의에 관해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몇몇 비판적 연구성 과들이 나왔는데, 여기서는 그 중에서 특히 Gablentz, “Staat und Gesellschaft” 와 Ehmke, “‘Staat und Gesellschat’ als verfassungstheoretisches Problem”을 들 수 있다. 물론 국가와 사회의 이분론적 정리의 발생과 관련해서는 학자들 사이 에서 입장이 갈리고 있다 앙거만(E. Angermann)은 “Das ‘Auseinandersetzung von Staat und Gesellschaft”, 95쪽에서 그 분리사상의 징조는 1767년 퍼거슨 (Ferguson)의 “Esaay on the history of civil society”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지 만, 잘로몬(Salomon)은 “Vorwort” zu: Geschichte der sozialen Bewegung in Frankreich, XXII쪽에서 국가와 사회 이분론 사상의 기원을 중농학파에서 찾고 있다. 다른 견해는 M. Riedel, Studien zu Hegels Rechtsphilosophie, 165쪽 이 하 참조. 국가와 사회 분리론과 자유주의의 관계는 Th. Geiger, Demokratie ohne Dogma, 261쪽 이하 참조. 3) M. Riedel, Studien zu Hegels Rechtsphilosophie, 120쪽. 4) G. Schäfer, “Einige Probleme des Verhältnisses von ökonomischer und
politischer Herrschaft”, CVII쪽 각주 8. 쉐퍼는 “경제적 지배와 정치적 지배의 매개된 대립은 ‘경제’와 ‘정치’의 사회적 분리라는 배경 하에서, 따라서 자본주 의와 근대국가의 발전과 더불어 비로소 등장한다”고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경제’와 ‘정치’의 대립과 분리는 ‘시민사회가 그것들을 통해서 구성되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 형식들의 결과’에 다름 아니다.”는 것이다. 또한 E. Angermann, “Das ‘Auseinandertreten von Staat und Gesellschaft’ im Denken des 18. Jahrhunderts”, 89쪽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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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은 당시 상승하던 부르주아 계급이 근대 주권국가의 정치적 후견으
로부터 벗어나려던 노력과 동시에 병행해서 진행되었다. 자신들의 경제적
활동에 대해 합리적으로 예측할 수 있기를 바라던 부르주아 계급의 필요
에 맞아 떨어지는 중앙집권적 관료제 발생의 필요조건들을 근대국가가
창출하면서 그 해방적 역할을 수행하게 되자, 중상주의적 대외무역정책과
국내정치적 독점지배체제에 의해 지휘되던 국가권력의 중앙집권화 과정
은 이제 사적 자치를 요구하는 부르주아 계급과 불가피하게 충돌하게 된
다.5) 이러한 의미에서 독일식의 국가와 사회 이분론은 “절대왕정의 국가
기구가 자본주의 경제방식의 발전을 가로막고자 설치한 장벽을 무너뜨리
기에는 아직 힘이 약했던 독일 부르주아 계급의 역사적 단계를 개념화한
것”6)에 다름 아니라고 하겠다.
헤겔은 1821년 자신의 저서 <법철학>에서 이 근대적 현상을 이론적으
로 명확하게 하려는 작업을 시도하였다. 시민사회를 가족과 국가 사이에
별개로 위치한 객관정신의 변증법적 발전단계로 규정함으로써 헤겔은
“국가의 정치적 영역”과 “이제는 부르주아화된 사회의 영역”을 구별하였
다7):
5) ‘국가’와 ‘사회’의 개념쌍은 “자유주의적 사회구조를 위한 표현을 찾던 상승하
는 시민계급의 정치적 의지”(Th. Geiger, Demokratie ohne Dogma, 261쪽)를 담고 있기는 하지만, 시민사회가 국가로부터 분리되는 경향과 관련해서 볼 때 부르주아적 주체의 ‘무정치적인 내적 공간’으로서 사적 자치의 역사적 전개가 갖는 분열된 성격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J. Habermas, Strukturwandel der Öffentlichkeit, 86쪽 이하: “이 공공 영역으로부터 분리된 영역은 이미 관헌 의 규제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의미에서도 결코 ‘사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분리된 영역은 중상주의적으로 규제되는 영역으로서만 발생하였다. 게다가 중 상주의의 ‘도량화 체계’는 긍정적 의미에서 재생산과정의 사유화 시작이기도 하였다: 이 재생산과정은 점점 자율적으로, 시장 고유의 법칙들에 따라서 전개 되어 간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위로부터 추진되는 정도 에 따라 사회적 관계들은 교환관계에 의해 매개되기 때문이다. 시장영역이 확 장되고 자유롭게 전개되면서 재화소유자는 사적 자치성을 획득하게 된다. ‘사 적인 것’의 긍정적 의미는 자본주의적으로 기능하는 재산에 대한 자유처분이라 는 개념에서 형성된다.” 6) U. Preuß, Zum Staatsrechtlichen Begriff des Öffentlichen, 85쪽. 7) M. Riedel, 앞의 책, 1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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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는 국가보다 뒤늦게 형성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가족ㆍ
국가 사이에 별도로 자리하고 있는 시민사회가 존립하기 위해서는 독
립된 존재로서의 국가를 미리 전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시민사
회의 창조는, 이념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든 그 온갖 것에 대해 최초
로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현대세계에 속하는 것이다.”8)
헤겔은 [윤리적―옮긴이] 내용을 담은 국가간섭에 대하여 경제적 영역
이 자립화하는 과정을 암시적으로 제시한 1805/09년의 “예나 법철학”에
서 이미 국가와 시민사회의 분리 경향을 다룬 바 있었다.9) 이는 1821년
이전에 이미 헤겔이 당시 널리 확산되어 가던 시민사회와 관련지어, 프랑
크푸르트 시절로 소급되는 자신의 경제학 연구들, 프랑스 중농학파의 경
제이론들 및 특히 스튜어트(J. Steuart), 아담 스미스(A. Smith), 리카도(D.
Ricardo)의 영국 고전경제학이론들에 대한 연구들을 수행하였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10) 시민사회의 초기자본주의적 구조의 해명과 관
련된 그의 모든 비판적 발상에도 불구하고 시민사회에 대한 헤겔의 견해
가 기본적으로는 당시 영국의 국민경제학의 도덕철학적 울림을 연상시키
고 있다는 점은 헤겔이 경제학 지식들을 습득하게 된 바로 그 역사적 맥
락에서 볼 때 비로소 납득할 수 있다. 그리하여 계몽주의에 전형적인 주
관주의적 자연주의의 자연법론이 취하는 개인주의적 사회관에 맞추어 헤
겔은 시민사회를, 원자론적 구조의 내적 논리의 결과로 인륜성이 극단적
으로까지 상실되어 버린11) ‘욕구의 체계’로 정의하였던 것이다. 짧고도
명확한 잠언식의 표현방법으로 헤겔은 <법철학> §183에서 시민사회의
기본구조를 다음과 같이 정식화한다.
“이기적인 목적을 실현하는 데서 그와 같이 공동성에 의한 제약이 따
8) Hegel, Rechtsphilosophie, Zusatz zu § 182. 9) M. Riedel, 앞의 책, 76쪽. 또한 I. Fetscher, “Zur Aktualität der politischen
Philosophie Hegels”, 200쪽.
10) J. Habermas, “Nachwort” zu: G. W. E. Hegel, Politische Schriften, 361쪽. 그
리고 G. Lukacs, Der junge Hegel, 276쪽.
11) Hegel, Rechtsphilosophie, §§184, 188과 Enzyklopädie, §52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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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므로, 여기에 전면적인 상호의존 체계가 성립되고 개인의 생존, 복지
와 권리는 만인의 생존, 복지와 권리에 얽혀들어 있어 이를 기초로 한
연관성 속에서만 실현되고 확보된다.”
그러나 “사적인 목적들과 사적인 도덕적 견해들의 오성(悟性)이 짜증을
발산하는 장소인”12) ‘전면적인 상호의존 체계’에서도 “오성적 이성의 관
리(管理)”13)를 통해서 “주관적인 이기심”은 결국에는 “다른 모든 사람들
의 욕구충족”으로 수렴되게 되는 불가사의한 기적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
이다.14) 헤겔은 ‘사회화’와 ‘윤리화’가 이런 방식으로 상호내적인 연관성
을 갖게 함으로써 전면적인 상호의존 체계를, 절대이념의 필연적 계기가
함께 주어진 ‘강제와 오성이 지배하는 국가’15)로 명명한다.
헤겔이 시민사회의 중요한 구조적 징표로 묘사한 ‘전면적인 상호의존
체계’라는 관념은 합리주의 자연법론과 고전 국민경제학에서 이미 개진되
어 있었다.16) 따라서 시민사회에 관한 헤겔의 설명은 그 핵심에 있어서
는 합리주의 자연법론과 고전 국민경제학의 지식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
이라고 하겠다. 헤겔의 설명은 “이미 그전에 해방된 서유럽 사회에서 통
용되는 효용원리들”을 “독일-철학적 형식”으로 그저 번역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17) 그렇기에 헤겔의 ‘전면적인 상호의존 체계’는, ‘보이
지 않는 손’이 충돌하는 이해관계들의 배후에서 작동하여 일종의 ‘예정조
화’를 수행한다는 아담 스미스식의 초기 부르주아 세계에 대한 견해와
매우 가까운 생각이다. 헤겔이 그런 식으로 초기자본주의의 도저한 낙관
주의에 서 있기는 하지만, 헤겔의 법철학에서 말하는 시민사회는 어떤 인
류 사회에서도 등장하게 되는 “초역사적 범주”라는 테제를 옹호한다면
이는 헤겔의 사유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점을 놓치는 셈이 된다.18)
12) Hegel, Rechtsphilosophie, §186.
13) P. Vogel, Hegels Gesellschaftsbegriff und seine geschichltliche Fortbildung
durch Lorenz Stein, Marx, Engles und Lasslle, 18쪽.
14) Hegel, Rechtsphilosophie, §199.
15) Hegel, Rechtsphilosophie, §183. 또한 Enzyklopädie, §523 참조.
16) H. Neuendorff, Der Begriff des Interesses, 32쪽 이하, 73쪽 이하 참조.
17) M. Riedel, 앞의 책, 157쪽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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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철학>의 여러 곳에서 헤겔이 시민사회의 시간적 특성을 근대의 혁
명과 연관지어 해석하려고 애쓰고 있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헤겔이 진보
를 낙관하는 방향으로만 협소화된 부르주아 역사철학의 지평을 넘어서고
있음을 분명히 알게 된다. 시민사회를 그저 “방탕과 빈곤, 그리고 이 양
자에 공통된 육체적 도덕적 타락의 연극”19)으로 파악하는 시대적 한계를
갖는 관점에도 불구하고 헤겔은 시민사회에 내재하는 빈곤화 속성뿐만
아니라 그 적대성의 발전 경향도 분명하게 인식하였다. 그에 따르면 “부
의 과잉에도 불구하고 시민사회는 빈곤의 과잉과 천민의 출현을 방지할
만큼 충분히 부유하지 않다”는 것이다.20)
그 경제적 후진성에도 불구하고 독일식의 시민사회가 조만간 사회적
문제점들에 불가피하게 직면하게 되고 이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헤겔
의 막연한 예감은 시민사회의 자정능력에 대한 그의 불신을 강화시켜 헤
겔로 하여금 시민사회에 대한 현실분석을 의식적으로 외면하고 관념론적
인 권력해법(Gewaltlösung)을 택하게 만들었다.21) 헤겔식 국가철학이 부
딪힌 이 역사적 진퇴양난을 배경으로 해서, 국가는 “자신의 독자적인, 시
민사회로부터 독립한 고유의 목적을 위해” 시민사회를 이용할 사명이 주
어졌다는 식으로 “시민사회에 대한 국가의 관계를 비현실적으로 파악하
는 견해의 신비화”가 이루어진 것이다.22)
그렇게 되자 이제 헤겔의 유일한 화두는 “이 시민사회를 국가 내에서
조화시키는 것, 그 특수성을 공동의 사안과 연관해서 지양하는 것, 그리
18) L. Kofler, Maxistische Staatstheorie. Staat, Gesellschaft und Elite zwischen
Humanismus und Nihilismus, 18쪽. 이와 비슷하게 H. Heller, Staatslehre, 121 쪽. 반대입장으로는 P. Vogel, 앞의 책, 8면: “헤겔의 사회개념에는 시간성이 결여된 것이 아니다. 그는 사회 일반에 대해, 또한 인간 사회 자체에 대해 말 하지 않는다. 종종 헤겔은 자신이 말하는 사회는 근대적 발전의 산물이라는 점 을 지적하고는 했다. 헤겔의 철학적 사유의 역사성은 자기 당대의 세계에 머물 러 있었다.”
19) Hegel, Rechtsphilosophie, §185.
20) Hegel, Rechtsphilosophie, §186.
21) Th. W. Adorno, Drei Studien zu Hegel, 41쪽 이하.
22) G. Lukacs, 앞의 책, 6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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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결국에는 시민사회를 정치화하는 것”이 되었다.23) 이리하여 국가와
사회의 분리에서 화두가 되는 것은 “[국가와 사회 상호간의―옮긴이] 매
개(조화; 중재)가 아니라 [카톨릭 미사의 성체에서 포도주와 빵이 예수의
피와 살로 변한다는 식의―옮긴이] 가상적인 실체변화, 우연적 존재를 본
질적 존재로 신비화해서 왜곡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24) 실제 관계가 이
렇게 거꾸로 설정되면서, 시민사회는 이제 “이미 존재하는 국가에 외부로
부터 삽입된 경제적 대립의 장”25)으로 나타나게 된다. 바로 이 경제적
대립의 장에서는 ‘가족이라는 직접적 내용’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고립된
개인이 등장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국가의 한 요소로 격하되
어 버린 시민사회는 “윤리의 현상세계”26)에 지나지 않게 되는데, 이 세
계에서는 “각자가 저마다 타인을 통해서 인정받음과 동시에 다른 원리인
공동성의 형식을 통해서만 매개되고 인정받으면서 그 욕구가 충족된다
.”27) 헤겔은 국가와 사회를 명확하게 구별하면서도 양 영역의 실제 관계
를 결코 꿰뚫어보지는 못했다고 지적한 니츠케(Nizschke)의 주장은 위와
같은 점에서 정확하다고 하겠다.28)
오히려 현실적으로는 그와는 반대경향이 맞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 반
대경향이 헤겔의 국가사상에서 승리하는 것이 “방법론상으로 불가능하다
는 점”29)에는 고대의, 특히 플라톤적인 국가이상에 헤겔이 내심 공감하
고 있었다는 것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맥락에서 뢰비트는 자
신의 저서 <헤겔에서 니체로>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고대의 폴리스 이상으로 현대 사회의 성격을 설명하려는 헤겔의 이론
적 작업은 현대 사회의 구성원리를 부정하는 것으로 이어지기보다는
23) U. Cerroni, Marx und das moderne Recht, 124쪽.
24) U. Cerroni, 앞의 책, 130쪽.
25) U. Scheuner, “Hegel und die deutsche Staatslehre des 19. und 20.
Jahrhunderts”, 144쪽.
26) Hegel, Rechtsphilosophie, §181.
27) Hegel, Rechtsphilosophie, §182.
28) H. Nitzschke, Die Geschichtsphilosophie Lorenz von Steins, 129쪽.
29) G. Lukacs, 앞의 책, 6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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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원리의 지양으로 귀결된다. 고대의 국가이상이 시민사회 비판을 위
한 척도로 활용되기는 하지만, 현대사회의 개인주의 원리 역시 고대
정치공동체의 내용성 자체를 판단하는 기준으로도 활용된다.”30)
고대의 폴리스 이상을 이런 식으로 수정해야만 했던 헤겔은 변증법적
으로 매개(조정)된 “일반의지와 특수의지 사이의 동일성”31)을 통해 국가
내에서만 비로소 실현될 구체적 자유의 원리를 국가와 사회의 관계에 관
한 이론적 작업의 핵심으로 제시한다. 헤겔에 따르면, 특수성이 “아직까
지는 고삐에서 풀려나지 못해서 일반성으로, 즉 전체의 공동목적으로 되
돌아가는” 고대국가와는 달리 근대국가의 특징은 “일반성이 특수성의 완
전한 자유 및 개인의 복지와 결부되어 있다는 점, 따라서 가족과 시민사
회의 이해관계는 국가로 모아져야 한다는 점, 그러면서도 나름의 권리를
보유해야 하는 특수성의 독자적인 지식과 의욕 없이는 목적의 일반성은
진척될 수 없다는 점”에 있다는 것이다.32) 구체적 자유의 원리가 근대국
가의 법적 토대로 상승됨에 따라, 처음부터 근대의 국가사상들이 해결할
수 없었던 수수께끼로 등장했던 국가와 사회의 분리는 그에 맞추어 구체
적 자유의 현실체인 국가의 내용적 통일성 속에서 지양되어 버린다. 그렇
기에 <법철학> §261 추가부분은 다음과 같다.
“국가에서는 보편성과 특수성의 통일이 핵심관건이 된다.”
사변철학의 추상적 차원에서 미리 형성되어 있던, 사회발생사적으로
보면 극히 절제적인 이 국가개념은 헤겔의 자유개념이 갖는 내용상의 특
성과 결합될 때만 비로소 이해될 수 있겠다. 그 적용범위와 결과까지 최
대한 고려하여 헤겔의 자유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근대 자연법
론과 헤겔의 연관성을 고찰해야만 할 것이다. 주지하듯이, 헤겔은 자신의
철학체계 여러 곳에서 근대 자연법론의 혁명적 전통을 충분히 존중하고
30) K. Löwith, Von Hegel zu Nietzsche, 265쪽.
31) Hegel, Rechtsphilosophie, §155.
32) Hegel, Rechtsphilosophie, Zusatz zu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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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하고 있었다.33) 그러면서도 헤겔은 자연법론의 합리주의적-기계론적
관점에 대해서는 단호한 반대 입장을 취하여 자연법을 그 역사적 영향과
관련해서 살펴보려고 하였다.34) 따라서 자연법에 대한 헤겔의 입장은 선
택적 수용의 성격을 띤다고 하겠다. 이는 자연과 자유를 엄밀하게 분리시
키려고 했던 근대 자연법론의 시도를 내용상으로 수정하는 형식으로 받
아들이려 했던 헤겔의 자유의지론에서 특히 잘 드러난다.
“자기결정은 도덕에서는 아직 어떤 존재하는 것에도 도달하지 않은 순
수한 불안과 활동이다. 윤리의 단계에서야 비로소 의지는 의지의 개념
과 동일해지고 후자를 자신의 내용으로 삼게 된다.”.35)
자유의지 원리에 내용을 채워 해석하면 자유의 개념에서 근본적인 의
미 전환이 일어난다. 근대 자연법론의 개인주의적 자유관과는 달리, 개인
들의 자유 향유는 ‘윤리 이념의 실현’인 국가 위에서 정렬될 때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는 실체적 자유[관]는 “이기심의 제약으로부터의 해방”36)을
포함하게 된다.
“국가는 본래 그 자체가 윤리 전체이며 자유의 실현태여서, 이 자유를
실현하는 것이 이성의 절대적 목적이다. 국가는 인간의 세계 속에 뿌
리를 내리고 그 안에서 의식적으로 스스로를 실현해 나가는 정신이다.
반면 [국가 없는―옮긴이] 자연상태에서 정신은 그 자신을 그저 자신의
타자로서, 즉 잠들어 있는 정신으로서 현실화할 뿐이다.”37)
위와 같은 맥락에서 볼 때, 헤겔이 계약이론을 단호하게 거부하면서
33) M. Riedel, Bürgerliche Gesellschaft und Staat bei Hegel, 29쪽 이하.
34) J. Löwenstein, Hegels Staatslehre, 40쪽 이하.
35) Hegel, Rechtsphilosophie, Zusatz zu §108.
36) A. Verdross, Abendländische Rechtsphilosophie, 160쪽. 또한 M. Riedel,
Bürgerliche Gesellschaft und Staat bei Hegel, 32쪽. 리델에 따르면 헤겔의 자 유는 “자연으로부터의 점진적 해방이자 ‘제2의 자연’, 즉 정신세계의 산출로서 만 그 현존재를 갖는다.”
37) Hegel, Rechtsphilosophie, Zusatz zu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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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국가론자들이 시민사회와 국가를 잘못되게 혼동했다고 비판한 것
은 일관된 태도라고 하겠다.38) “소유와 개인적 자유의 보장과 보호”39)를
국가의 최고원리로 격상시키는 계약론적 국가 구성과는 달리, 헤겔에게
국가는 “공동의 이익 자체”40)를 최고의 절대적 목표로 선언함으로써 가
족과 시민사회를 ‘내용적 통일성’ 속으로 통합시키는 “자기의식을 갖는
윤리적 실체”41)로 이해된다. 이리하여 ‘내용적 통일성’은, “자유를 최고도
로 신장시키는” 국가의 “절대부동의 자기목표”가 된다. 그리고 국가 속에
서 “이 절대부동의 최종목표는, 국가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 최우선의 의
무인 개개인을 향하여 최고권을 갖게 된다.”42)
지금까지 상술한 헤겔 국가사상의 철학적 형성과정은, 그 과정에 큰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서 역사적으로 연관성을 갖는 상황을 비판적으로
고려할 때에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실제로 헤겔의 국가[론]는 당대의
특정 상황에 편안하게 순응하려는 기회주의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비
판을 받았는데, 이 때문에 헤겔 국가론은 애초부터 심각한 부담을 이미
짊어지고 있었던 셈이다. 헤겔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하면서 프로이센 국
가와의 “선택적 친화성”을 지적하고 헤겔의 <법철학>을 “프로이센 왕정
복고 정신의 거소(居所)”로 낙인찍은 하임(Haym)은 부정적인 헤겔상을
확립한 표준적인 예라고 하겠다.43) 헤겔의 국가사상에서 보이는 국가와
38) Hegel, Rechtsphilosophie, Zusatz zu §182, 특히 §258.
39) Hegel, Rechtsphilosophie, §258.
40) Hegel, Rechtsphilosophie, §270.
41) Hegel, Enzyklopädie, § 535.
42) Hegel, Rechtsphilosophie, §258.
43) R. Haym, Hegel und seine Zeit, 357쪽: “현재에도 여전히 우리가 함께 하고
있는 헤겔의 철학은 바로 헤겔의 삶과 철학 최후의, 동시에 가장 빛나고 행복 했던 이 시기의 것이다. 권력자의 총애를 받으면서 자기 업적의 성공과 명성에 도취되어 헤겔은 독일을 지배하는 철학적 독재자라는 목표에 근접해 있었다. 생존 당시에는 헤겔이 겪지 못했던 것이 바로 이 시대 우리가 갖는 주요 관심 사인 것이다. 이러한 행운, 영광, 영향력, 명성의 대부분에는, 헤겔의 정신적 업 적에 덧없음의 소인을 찍는 파괴적 권력이 숨겨져 있었다. 속세를 초월하면서 동시에 속세적인 것을 생각하는 헤겔의 관념론은 시대와 현실과 더불어 번영하 고 쇠퇴하기 위하여 완벽하게 거기에 뿌리를 굳게 내리고 있었다. 이 관념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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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분리에 관하여 앞에서 다루면서 우리는 이미 헤겔의 관념론적 국
가구성은 시민사회의 내재적 발전능력에 대한 그의 의구심이 빚어낸 논
리적 결과라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실제로 그 구조 및 내용상 헤겔의
국가는, 국민적 권력국가사상의 각성과 함께 해방적 열정을 가졌던 서유
럽 동시대인들과는 대조적으로 주위세계와 동떨어진 고독한 내면화의 상
태에 침잠했던 교양귀족 지향적인 독일 시민계급의 상황을 반영하는 것
이다.44) <법철학> §260에서 헤겔은 근대 국가의 “강점”과 “깊이”는 “주
관성의 원리를 특수한 인격의 자립이라는 극한에까지 이르게 하는 것, 그
리고 동시에 이 주관성 원리를 실체적 통일성 속으로 귀착시키는 가운데
주관성의 원리 속에서 실체적 통일성을 유지하는 것”에 있다고 본다. 그
리고는 프로이센 군주제의 구체적인 역사적 모습을 준거로 삼아 순수하
게 사변적으로 구상한 자신의 국가에 대해 근대 국가의 역사적 정당성을
부여한다.
당시 사회경제적 발전상태에 비추어보면 헤겔이 시민사회의 골상(骨相)
을 다른 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기는 했지만, 헤겔식
국가에 왕정옹호론적 측면이 있다고 해서 이로부터 곧바로 헤겔의 비판
적 의도를 제대로 고려함이 없이 곧바로 현상유지의 수구반동적 당파성
을 이끌어내는 것 역시 오류라고 하겠다.45) 여러 세대를 거듭하여 헤겔
의 국가론에 덮어 씌어졌던 국가신격화라는 익숙한 신화는, 헤겔 국가론
의 부정적 함의에 의해 완전히 가려져 있어서 지금까지 거의 주목받지
못했던 긍정적 측면을 암암리에 보존하고 있다.46) 따라서 시민사회 내의
첨예한 대립의 결과 “필연적으로 되어버린, 시민사회의 자연이론 교정”47)
그 시대의 철학이자 프로이센 철학이 되었다.”
44) H. Holborn, “Der deutsche Idealismus vom Staat und das Problem der Freiheit
in der modernen Gesellschaft”, 393쪽 이하 참조.
45) G. Rohrmoser, “Hegels Lehre vom Staat und das Problem der Freiheit in der
modernen Gesellschaft”, 393쪽 이하 참조.
46) J. Ritter, Metaphysik und Politik, 208쪽.
47) J. Ritter, 위의 책, 231쪽. 또한 H. Marcuse, Vernunft und Revolution, 180쪽
이하. 그리고 Th. W. Adorno, Drei Studien zu Hegel, 40쪽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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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국가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동기가 어쩌면 헤겔의
관념론적 국가 구상 배후에서 남모르게 작동하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전적으로 올바르다고 하겠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근대 국가의 원리
내에 담겨있는 개인의 해방적 자유가 역사적으로 존립”48)하기 위한 “구
체적이고 사실적인 조건”으로 구상된 헤겔의 국가는 시민사회의 병인(病
因)으로 추정된 것을 철학적으로 처리하려는 과감한 작업으로 볼 수 있
다. 반대자들에 의해 오래전부터 <법철학>에서 ‘가장 어둡고’ ‘가장 심오
한’ 부분으로 공격받아 왔으며 지금도 여전히 수구반동의 의심을 받고
있는, 저 유명하고 악명 높은 문장49)이 최근 다시 새로이 관심을 받는
현상은 헤겔의 국가에 대한 오랜 희화화가 과연 맞는지 다시 성찰해 볼
필요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헤겔의 <법철학>을 복권시키려는
모든 진지한 시도들에도 불구하고, 부르주아적-자유주의적 국가의 추상적
원리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려는 헤겔의 노력은 그의 국가가 갖는 사변적
성격으로 말미암아 내세울만한 그 어떤 성과도 약속할 수 없었다는 점에
서는 전혀 변함이 없다고 하겠다.
- 슈타인의 사회관과 국가개념의 이중화
슈타인의 사회관의 위상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다.
왜냐하면 그의 사회관은 사상사적으로 보아 이질적인 요소들로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포겔은 슈타인의 사회관에 대해 헤겔과 마르크
스의 입장 사이를 중재하는 역할을 부여하기도 한 바 있다.50) 실제로 슈
48) G. Rohrmoser, 앞의 책, 402쪽.
49) <법철학> 서문에 있는 이 문장은 다음과 같다: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고, 현
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 방대한 헤겔의 법철학 강의안들을 편집하여 명성을 얻은 이틀링(Itling)에 따르면 원래의 표현은 달랐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표현 은 정치적 고려 때문에 발표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상세한 것은 I. Fetscher, “Vorwort” zu: Hegel in der Sicht der neueren Forschung, IX쪽 참조.
50) P. Vogel, Hegels Gesellschaftsbegriff und seine geschichtliche Fortbild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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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사회관은 일관되고 통일된 발전경로를 보여주기보다는 격변기 사
회에 전형적인 다양성과 다층성을 그 특징으로 한다. 따라서 그의 사회관
의 위상을 규정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언제나 매우 다양한 견해차가 존재
한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의 사회관을 초기와 후기로 나누어 보려는 주목
할 만한 작업이 최근 시도되었다.51)
자주 인용되고 있는 슈타인 사회사상의 유물론적 경제주의는 그의 사
상적 발전에서 상대적으로 초기에 속하는 반면, 그가 서유럽의 관점에서
수행하던 사회비판으로부터 벗어나서 대폭 낭만주의적 관념론으로 전회
한 1848년에 이미 전환점은 시작되었다.52) 그리고 슈타인은 1852년의 논
문 “실업자들의 소득 특징과 그것이 공직과 귀족계급에 대해 갖는 특별
한 관계”(Das Wesen des arbeitslosen Einkommens und sein besondere
Verhältnis zu Amt und Adel)에서 종전의 입장과 완전히 결별을 고한
다.53) 그래도 역사학파에 대한 초기의 비판적 입장이 흔적도 없이 사라
져 버리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비록 역사학파가 슈타인에게 역사의식
이 배어든 현실주의적 세계관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 주었고 서유럽의 실
증주의에 쉽게 동조할 수 있게 만들어 주기는 했지만, 슈타인이 역사학파
로부터 잘못된 결론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역사학파가 그에게 부정적으
로 작용했다는 점도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그 명백한 예가 1856년의
<사회론>(Gesellschaftslehre)인데, 여기서 사회는 “재화세계의 순수하게
물질적인 질서체계 및 국가의 순수하게 통일적인 질서체계와는 대조되는
durch Lorenz Stein, Marx, Engels und Lassalle, 127쪽.
51) M. Hahn, Lorenz Stein und Hegel, 3쪽. 동저자, “Nachwort” zu: Lorenz Stein.
Proletariat und Gesellschaft, 212쪽. C. Schmid, “Lorenz von Stein 1815-1890”, 322쪽.
52) H. Nitzschke, 앞의 책, 125쪽 이하 참조. 슈타인의 사회 및 국가사상 발전에
1848년의 사건이 갖는 의미에 관해서는 F. Gilbert, “Lorenz von Stein und die Revolution von 1848”, 특히 370쪽. 또한 E. Grünfeld, Lorenz von Stein und die Gesellschaftslehre, 110쪽.
53) H. Nitzschke, 앞의 책, 132쪽. H. Marcuse, Vernunft und Revolution, 332쪽. K.
Mengelberg, “Einleitung” zu: Lorenz von Stein, 37쪽. M. Adler, 앞의 책, 48 쪽. 그에 반대되는 입장은 W. Schmidt, Lorenz von Stein, 1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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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사이의 정신적인 질서체계”54)로 정의된다. 그 핵심을 보건대 <사
회론>은, “실제 현실에서 나타나는 것을 중시하고 실상(實相)에 맞는 이
론을 강조하는 현실론적이고 실재론적인 서유럽의 사회개념과 본질론적
이고 관념론적인 독일 사회과학의 사회개념을 통합하려는 시도”라고 하
겠다.55)
서로 길항하는 사상사적 구성요소들의 상호작용으로부터 형성된 슈타
인 사회이론의 방법론상 특징이 이 지점에서 분명해진다. “구체적 경험의
실증주의와 사변적 사유의 선험주의를 옹호하는 이론가”였던 슈타인이
“방법론의 문제에서 독자적인 입장을 명확하게 수립할 수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하겠다.56)
슈타인이 ‘독일 사회학의 창시자’라는 세간의 묘사가 사람들을 오도하
기 쉬운 것이기는 하나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 현상에 대한
학적 성찰이 슈타인에 의해 처음으로 개척된 신천지는 아니다. 슈타인은
헤겔로부터 시민사회란 개념범주를 이어받은 후, 새로운 지식을 활용하여
그 개념에다가 시대에 맞는 수정을 가하였다.57) 따라서 그의 사회관은
이론적 내용 측면에서는 헤겔의 사회관과는 많이 다르지만, 그 논리적 구
조는 헤겔의 것과 상당히 흡사하다.58)
“헤겔의 사후 시민사회에서 최초의 큰 위기가 자라났다. 슈타인은 이
위기상황에서 시민사회를 파악하였다. 그의 이론은 헤겔이 절대 알지
못했던 것을 고찰하고 있다. 슈타인은 헤겔보다 더 정확하게 시민사회
54) Stein, System der Staatswissenschaft II, 16쪽.
55) H. Nitzschke, 앞의 책, 135쪽.
56) H. Nitzschke, 앞의 책, 29쪽. 또한 E. Gilbert, 앞의 논문, 369쪽.
57) G. Jellinek, Allgemeine Staatslehre, 88쪽 각주 2. P. Vogel, 앞의 책, 123쪽. H.
Freyer, Soziologie als Wirklichkeitswissenschaft, 231쪽, 특히 93쪽 참조: “마르 크스가 헤겔 법철학 비판으로 시작했던 것은 상징적인 가치를 갖는다. 그런데 슈타인의 <1789년부터 현재까지의 프랑스 사회운동사>(Geschichte der sozialen Bewegung in Frankreich von 1789 bis auf unsere Tage)도 일종의 헤겔 법철 학 비판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58) C. Schmid, 앞의 논문, 322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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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분석한 것도 아니고, 더 많이 안 것도 아니다. 그러나 헤겔과는 다
른 방식으로 보았다.”59)
시민사회의 초기자본주의 본질적 측면을 드러낼 때 활용된 그 이론적
개념에도 불구하고 슈타인의 사회관에서는 여전히 근대 자연법론의 개인
주의적 경향도 함께 작용하고 있다. 슈타인에 의하면, “인간사회”는 “재
화의 분배에 의해 제약되고, 노동 조직체에 의해 규제되며, 욕구의 체계
에 의해 움직이고, 가족을 통해 그리고 특정한 혈족에 대한 가족의 권리
를 통해 결속되는 인간삶의 유기적 통일체”이다.60) 헤겔 <법철학>으로부
터 빌려온 듯이 보이는 용어인 ‘욕구 체계’로부터 이미 짐작할 수 있듯이
슈타인은 ‘이익(이해관심사)’ 개념을 원리로까지 격상시켜 자기 사회관의
중심으로 설정한다.
“인간의 외부지향적인 모든 활동을 지배하고, 언제나 어디서나 존재하
며, 각 개인에게서 살아 움직이며, 개인의 전반적인 사회적 위치를 결
정하는 의식을 우리는 이익(이해관심사)이라고 부른다. 이익(이해관심
사)은 각 개인이 다른 각 개인과의 관계 속에서 하는 생명활동의 중심
이자, 전체 사회적 운동의 핵심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인간사회의 핵
심원리이다.”61)
그러면서도 슈타인은 같은 책의 다른 면에서 이익(이해관심사)은 “자각
적인 자아애”62)라고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한 심리학적 견해는 청
년헤겔주의자들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는 하지만,63) 슈
타인이 명시적으로 이익(이해관심사)을 “다양한 개별적 활동들을 중재하
여 통일된 사회체계로 되게 하는 원리”라고 파악할 때는 오히려 아담 스
59) M. Hahn, Lorenz Stein und Hegel, 23쪽. H. Marcuse, Vernunft und
Revolution, 333쪽.
60) Stein, Geschichte der sozialen Bewegung in Frankreich I, 29쪽.
61) Stein, 위의 책, 42쪽 이하.
62) Stein, 위의 책, 137쪽.
63) H. Nitzschke, 앞의 책, 57쪽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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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와 헤겔의 견해에 더 가깝다고 하겠다.64) 그러나 이해관심사들의 조
화를 윤리적 필연성으로 설정한 아담 스미스와 헤겔과는 달리, 슈타인은
자기중심적인 이해관심사 개념이 그 어떤 매개경로 없이도 곧바로 사회
적 차원으로 이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는 점도 여기서 분명히 지적되어
야만 할 것이다.65) 이러한 점에서 니츠케는 세밀하게 다음과 같이 지적
하고 있다.
“인간의 근원적 이해관심사는 경제적 이해관심사이기는 하지만, 그 자
체로서 깊어져서 정신화된다. 그렇다. 특히, 높아지려고 항상 애쓰는
계급의 경우 이 경제적 이해관심사 일부는 윤리적 자유 추구로까지 고
양되는 것이다.”66)
이리하여 슈타인의 사회관은, 그 적대적 대립구조 속에서 시민사회를
있는 그대로 비춰보려 했던 그의 지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시민사회의 “역사적 기원”67)을 더 이상 묻지 않는 존재론의 차원으로 옮
겨가 버리고 만다.68) 그에 따라 “계급대립은 사회의 보편불변적인 법칙
으로 설명되고 숙명적 사실로 받아들여지게 되면서”69), 이제 시민사회는
“인간사회의 근본형식” 또는 “자연범주”70)의 역할을 하게 된다.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사회는 부자유, 예속, 개인의 종속이다. 그 모
64) H. Neuendorff, Der Begriff des Interesses, 21쪽.
65) Stein, System der Staatswissenschaft II, 119쪽 이하, 특히 253쪽 이하. K.
Günzel, Der Begriff der Freiheit bei Hegel und Lorenz von Stein, 104쪽. 여 기서 귄첼은 헤겔의 ‘이익(이해관심사)’ 개념과 슈타인의 개념 사이의 차이점을 지적하고 있다.
66) H. Nitzschke, 앞의 책, 77쪽.
67) K. Löwith, 앞의 책, 267쪽.
68) O. H. v. d. Gablentz, “Staat und Gesellschaft”, 6쪽. F. Ronneberger, “Lorenz
von Stein”, 403쪽.
69) H. Marcuse, Vernunft und Revolution, 334쪽.
70) H. Pross, “Bürgerlich-konservative Kritik an der kapitalistischen Gesellschaft”,
1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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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 형식과 그 모든 결과를 보더라도 사회는 언제나 부자유 상태인데,
이는 재산소유와 무소유를 통해 그렇게 된다.”71)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슈타인의 이런 견해에서 우리는 홉스 사상의
강한 흔적을 감지하게 된다. 그러나 홉스에게 있어서 ‘만인에 대한 만인
의 전쟁’이라는 자연상태는 그 현실성을 주장할 수는 없는 그저 논리적
인 범주일 뿐이었다. 반면 슈타인은 “사회질서의 움직임”을 “선행하는 발
전단계들에 있던 부자유를 향한 진전”72)으로 파악하고 있는데, 이는 너
무도 명백하게 위의 논리적 범주를 역사적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다.
국가와 사회의 분리 문제가 헤겔의 <법철학>에서는 외관상으로만 변
증법적인 매개과정을 통해서 국가의 이념에 유리하도록 해소되었다면, 슈
타인은 그와는 다른 해결책을 제시한다. 슈타인은 “사회의 내적 모순을
국가와 사회 사이의 대립으로” 바꾸어 해석하면서 ‘사회의 원리’에 ‘국가
의 원리’를 대립적인 것으로 제시한다.73) 슈타인에게 있어서 사회란 “개
인들이 다른 개인들 아래로 예속되는 것, 타인의 종속을 통해 개인이 완
성되는 것”이지만, 국가는 “모든 개인들이 완전한 자유로, 완전한 인격발
전으로 고양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74) 이렇게 이해되자, 애초에
헤겔이 절대이념의 필연적 계기로 파악했던 국가-사회 이원론이 이제는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는 양극단이라는 형식으로 구체화되고,75) 이것은
그 이후의 독일 국가론의 발전방향을 결정하게 된다.76) 이렇게 국가의
71) Stein, Geschichte der sozialen Bewegung in Frankreich II, 104쪽.
72) Stein, Geschichte der sozialen Bewegung in Frankreich I, 66쪽. 홉스에 대한
비판적 언급은 Stein, Der Socialismus und Kommunismus des heutigen Frankreichs I, 84쪽. 그리고 Geschichte der sozialen Bewegung in Frankreich I, 173쪽 참조.
73) H. Marcuse, Vernunft und Revolution, 334쪽.
74) Stein, Geschichte der sozialen Bewegung in Frankreich I, 45쪽.
75) D. Blasius, Lorenz von Stein, 51쪽: 앙거만에 따라 블라지우스는 이 사물화된
형식에서의 대립적인 이분론을 “국가와 사회에 관한 추상적인, 초역사적인 자 연이론”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76) 이 사물화된 형식에서의 대립적 이분론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는 켈젠의
순수법이론에서 찾을 수 있다. 이에 관해서는 M. Adler, 앞의 책, 39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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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가 사회의 원리에 직접적으로 대립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
나가 다른 하나를 단순히 부정하는 관계는 아니다.77) 오히려 국가와 사
회의 관계는 인간 공동체의 유기적 과정 내에서의 작용과 반작용이라는
“논리적 원리”로 환원된다. 이 원리에 의하면, 국가와 사회는 각각 상이
한 과제를 가지면서 서로 뚝 떨어져서 병립해 있는 두 개의 영역이다.
“개개의 생명은, 하나의 통일된 전체 속에서 개인적인 것과 비개인적인
것이 작용하고 반작용하면서 생겨나는 일종의 운동이다. 개인적인 것
의 절대적 승리, 개인적인 것 속에서 비개인적인 것이 완전히 소멸되
는 것이 생명의 그 한 경계라면, 자연적인 것의 승리는 [생명의 다른
경계인―옮긴이] 죽음이다.”78)
따라서 국가와 사회는 “모든 인간 공동체의 생명요소들”에서 개인적인
요소들과 비개인적인 요소들을 구성하게 된다.79) 이리하여 국가와 사회의
이원론적 대립은 인간 공동체라는 낭만주의적 상위개념 속에서 해소되고,
양 영역의 긴장관계를 매개해야 할 진정한 변증법의 자리에 “시간 요소
가 결여된 추상적 변증법”80)이 들어선다. 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국가와 사회의 대립은 인간 공동체의 생명을 이루는 것이므로, 국가와
사회를 지배하는 법칙들은, 일단 한번 획득되면, 인간 공동체의 생명
자체를 지배하는 법칙을 이루게 된다. 그 법칙들은 과거를 포괄하면서
미래까지도 지배하게 될 것이다. 그 법칙들은 인간이 공동으로 살아가
면서 자유롭게 되기에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이 법칙들은 영원한 근본
형식이며, 그것들에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운동을 형성해야만 한다.”81)
77) Stein, Geschichte der sozialen Bewegung in Frankreich I, 45쪽 이하.
78) Stein, 위의 책, 31쪽.
79) Stein, 위의 책, 같은 쪽.
80) O. H. v. d. Gablentz, 앞의 논문, 6쪽. 또한 E-W. Böckenförde, Die deutsche
verfassungsgeschichltiche Forschung im 19. Jahrhundert, 188쪽.
81) Stein, Geschichte der sozialen Bewegung in Frankreich I, 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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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고찰한 바와 같이, 슈타인의 대립적 이원론은 시민사회에 대
한 특정한 관념과 결부되어 있다. ‘이념의 위계서열’을 고집하여, 그 기원
상 혁명적 성격을 갖는 분리사상을 반대하기에 이른 헤겔의 사이비 변증
법적 중재에 맞서서 슈타인은 자유주의적 방향으로 약간은 더 나아갔다
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비록 슈타인의 대립적 이원론이 추상적 성격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지금까지 거의 주목받지 못했으나 그의 국가관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한 생각의 계기를 지적하는 것이다. 자신의 저서
<사회론> 한 곳에서 슈타인은 국가와 사회는 작용과 반작용의 영원한 과
정에 있다는 초기의 주장과 연계해서 “개개 국가는 동시에 하나의 사회
질서”이고 “개개의 사회는 하나의 국가”라는 공리적 성격의 정리(定理)를
제시하고 있다.82)
그리고 난 후 그 상호작용의 방식들로서 ‘인민을 구성하는 국가’ 및
‘국가를 구성하는 인민’, ‘헌법구성’, 그리고 ‘행정구성’의 세 가지 법칙들
을 고찰한다.83) 그러나 슈타인에게 있어서 국가개념의 이중화를 연구하는
본고의 맥락에서는 무엇보다도 헌법구성의 법칙이 중요하다 할 것이다.
이 법칙에 의하면, 각 사회에서의 지배계급은 국가권력을 장악하려는 유
혹에 항상 빠지게 마련이다. 슈타인에게 있어서 현실 헌법상 국가는 전적
으로 “사회질서가 국가권력의 유기체 내에 결과한 것 또는 현상한 것”이
다.84) 더욱 분명하게 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82) Stein, System der Staatswissenschaft II, 33쪽. 일반적 견해에 따르면, 국가헌법
과 사회질서 사이의 상호의존성에 대한 슈타인의 명확한 인식은 생시몽의 견해 에 힘입은 것이다.(A. Fürst, Die soziologische Dimension, 161쪽; C. Schmid, 앞의 논문, 320쪽; M. Hahn, 앞의 책, 129쪽; D. Blasius, 앞의 책, 32쪽; K. Lenk, Theorien der Revolution, 46쪽). 그러나 Die Verwaltungslehre I/1, 32쪽 을 보면, 지금까지는 거의 주목받아 오지 못했으나 이러한 일반적인 견해에 의 문을 품게 할 만한 문장이 나온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각 헌법은 사회질서 및 그 물질적 기초의 산물, 즉 재산분배의 산물이라는 위대한 사상을 제시했던 최 초의 철학자이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정치학은 미래의 국가학과 관련해서 케 플러의 저서 <오르가논>이 천문학에 대해 가졌던 위치를 누리게 될 것이다.”
83) Stein, System der Staatswissenschaft II, 33쪽.
11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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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질서가 존재한다는 점을 자각하고 국가와 법에 대한 사회질서의
지배를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우리 시대의 고유한 성격, 정신적
단계이다. 이 의식은 인민들의 운동에 스며들어 가기 시작하고, 이를
통해서 인민의 운동들은 국가권력을 사회적 복리후생의 수단으로, 사
회적 투쟁에서의 무기로서, 사회적 자유의 조건으로서 파악하기 시작
했다. 이리하여 한 계급이 다른 계급에 대해 벌이는 투쟁은 스스로를
위해 합헌적 국가권력을 획득하고 이로부터 타 계급을 배제하는 것으
로 진행되어 간다.”85)
그러나 처음부터 슈타인에게 있어서 확실했던 점은, 국가는 그 이상적
개념에 의하면 “자신을 위해 그 어떤 경험적 현상도 내포하지 않는” 하
나의 추상이라는 것이다.86) 슈타인의 이상적 국가개념은 그 내적 구조에
따라 어떤 경우에라도 자기 자신으로부터 현실학문적인 관련성을 갖는
개념을 도출해 내도록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우리의 물음
은 다음과 같다.
슈타인이 프랑스에서 체류하면서 연구할 당시 최근거리에서 관찰했던
근대 국가의 현실은 독일 관념주의의 사변적 관점에서는 도대체 어떻
게 설명될 수 있을까?
니츠케가 슈타인의 국가사상은 “헤겔적”이면서 동시에 “반헤겔적”인
분열상태에 있다고 말했을 때,87) 바로 위에서 문제화한 사정을 명확하게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청년 헤겔주의적이고, 혁명적이며 행동파적인 지향성을 가지고
서 국가의 개념과 현실의 국가를 구분”88)했다고 지적하면서 특히 사상사
적 측면에서 세밀하게 고찰하지도 않은 채 슈타인의 국가사상을 헤겔과
84) Stein, Geschichte der sozialen Bewegung in Frankreich I, 69쪽.
85) Stein, 위의 책, 3쪽; 같은 책, 49쪽.
86) Stein, 위의 책, 30쪽.
87) H. Nitzschke, 앞의 책, 85쪽.
88) H. Nitzschke, 앞의 책, 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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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사이에 위치지은 니츠케의 견해가 받아들일 만한 것인지는 의
문스럽다.89) 오히려 슈타인 국가사상의 혼종적 성격은, 상당히 발전한 시
민사회 단계에서도 여전히 낭만주의적 지향의 사회상으로 되돌아가는 그
의 사회관이 갖는 퇴행적 경향(retrodarden Tendenz) 때문인 것처럼 보인
다.90) 그래서 슈타인은, 현저하게 심해진 모순들을 자기 스스로는 해소할
능력을 갖지 못한 시민사회의 난감한 처지와 직면해서91) 이전에 헤겔이
그랬듯이, 애매한 해결책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미 지적
한 바와 같이, 슈타인은 사회의 내적 모순을 국가와 사회 간의 대립으로
보이도록 만든 후, 그 궁지상황으로부터 시민사회를 빼내어 이념적 국가
개념으로 넘어가도록 구해 내기 위해서 국가 개념을 다시 이념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으로 이중화한다.92)
독특하게도 슈타인은 그렇게 이중화된 국가 개념을 가지고서 맨 먼저
혁명 이후 시기의 프랑스 헌법현실을 경험적으로 기술한다.93) 슈타인에게
있어 7월 혁명은 유럽 전체 역사의 발전에서 결정적인 단면을 의미한다.
“무엇보다도 7월 혁명은, 봉건사회의 마지막 잔재가 그것을 통해 일소
됨으로써 산업사회가 확실하게 지배력을 장악하게 된 축제의식(儀式)이
다.”94)
89) H. Nitzschke, 앞의 책, 82쪽. 또한 A. Fürst, 앞의 책, 162쪽 각주 4 참조.
90) P. Vogel, 앞의 책, 269쪽 참조. 다른 견해로는 K. Mengelberg, 앞의 글, 37쪽.
91) Stein, Geschichte der sozialen Bewegung in Frankreich III, 216쪽.
92) H. Freyer, Soziologie als Wirklichkeitswissenschaft, 94쪽 이하에서 프라이어는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다: “‘원리’로서의 국가와 ‘현실’로서의 국가 사이의 분 리는 슈타인을 헤겔로부터 결정적으로 갈라지게 만든 발상이다. 헤겔의 법철학 을 기반으로 하였다면, 국가를 ‘추상적 개념’으로 국가의 이념을 ‘단순한 이념’ 으로 파악하는 것은 잘못된 입장일 뿐만 아니라 구체적 사유의 정신을 모독하 는 행위일 것이다. 슈타인에게 있어서 개념세계의 이 급진적 재편성이 갖는 특 징은 국가 및 사회는 인간이 형성한 것이라는 확신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93) 특히 Stein, Geschichte der sozialen Bewegung in Frankreich I, 153쪽 이하 참
조.
94) Stein, Geschichte der sozialen Bewegung in Frankreich II,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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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인은 각 사회의 지배계급이 국가권력을 자신에게 유리하게끔 자기
수중에 집중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역사의 엄격한 법칙이라고 보기 때
문에, 산업사회 역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산업사회는 사회의 복
잡성 증대와 더불어 그저 가속화될 뿐인 폭증하는 사회적 이해관계들의
규모로 특징지어진다. 이로부터 슈타인은 “국가는 사회 외부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국가는 사회에서 공동체 질서를 결정하는 요소들로부
터 마찬가지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결론으로 끌어낸다.95) 그리고 계
속해서 슈타인은 “불가분의, 이 피할 수 없는 국가와 사회의 혼융으로
말미암아 국가는 사회의 지배계급이 갖는 갈망에 독자적으로 맞설 수 있
는 모든 힘을 상실하고 만다. 개념상으로는 지배하는 자가 실은 복종하는
자인 것이다” 라고 말한다.96)
이로써 슈타인의 국가가상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결
정적인 지점에 도달하게 된다. 슈타인은 국가의 현실적 성격은 오로지 사
회의 사회경제적 전체 맥락으로부터만 파악할 수 있다고 거듭해서 지적
하였지만,97) 국가에 대한 그의 관념론적 기본입장 때문에 슈타인은 7월
왕정에 대한 국가론적 고찰을 끝까지 밀고 나아가지 못하고 만다: 사회
적 이해관계들을 정치적 결정으로 직접적으로 전환시키는 데서 생겨날
수 있는, 실체적 국가이념의 취약성과 관련해서 슈타인도 암암리에 헤겔
95) Stein, Geschichte der sozialen Bewegung in Frankreich I, 51쪽.
96) Stein, 위의 책, 같은 쪽.
97) 주지하듯이, 슈타인은 ‘프랑스 사회운동사’에서 사회이론적 문제들을 본격적으
로 다루기에 앞서서 자신의 국가관을 개략적으로 소묘하고 있다. 자신의 국가 관을 분명하게 개관하려는 슈타인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슈타인의 국가 관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에 부딪히게 된다. 이는, 국가에 관하여 체계적인 분 석을 하려고 의도되었을 슈타인의 ‘국가학체계’가 단지 통계, 인구론, 사회론만 을 포함할 뿐인 미완성의 ‘토르소’로 머무르고 만 상황으로부터 설명될 수 있 다. 퓌어스트가 Die soziologische Dimension in der Gesellschaftslehre Lorenz von Stein, 162쪽에서 적절하게 지적하듯이, 그렇기는 하지만 우리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슈타인의 개별적인 언급들로부터 “마르크스가 국가와 사회에 대한 헤겔의 견해를 거꾸로 뒤집어, 국가로부터 분화되는 과정에서 생겨난다고 헤겔 이 생각했던 사회야말로 국가현실의 진정한 구성요인이라고 파악하면서 헤겔의 국가구성을 비판하게 된 것과 동일한 발상”을 명백하게 읽어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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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럼 항상 불안해했던 것이다.98) 따라서 슈타인은 국가의 이념을 현실의
사회에 대비시키고는 관념론적 해결책을 택한다.99) 현실주의적으로 획득
한 국가개념을 관념론적으로 재정돈한다는 가망성 없는 시도를 함으로써,
슈타인이 시민사회의 초기 자본주의 발전단계에 있던 프랑스 헌법현실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면서 추출했던 현실적 국가개념은 다시 그 기반을 박
탈당하고 만다.
요컨대 슈타인의 국가개념 이중화에는 당대 사회의 일반적 의식이라고
실제로 간주할 수 있는 관념론적 국가사상 고유의 난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하겠다. 비록 그가 “사회에 국가가 종속되어 있음을 강조하면서
헤겔과는 대조적으로 국가 속에서 사회가 지양되는 것을 피하려고 했지
만”, 헤겔과의 일시적인 단절은 이렇게 끝나고, 슈타인은 다시 헤겔식 국
가사상의 경로로 되돌아가고 만다.100) 슈타인의 다음 주장을 보자.
“국가를 인격 이념이 최고도로 형상화한 것으로, 그리고 국가의 생명원
리를 국가 권력으로써 각 개인을 최고도로 완성시킨다는 임무로 인정한
다면, 국가 그 자체가, 그 핵심 본질에 따르면, 자유상태라는 결론이 나
온다. 각 개인의 완전한 자기결정인 자유는 국가의 원리이다. 국가는 결
단코 부자유일 수 없다. 부자유가 발생할 수 있을지도 모를 경우란 순
수한 국가이념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개념은, 부자유일 수도 있을
헌법이나 행정을 형성할 수도 없다. 따라서 부자유한 국가 내에 있으면
서 국가 그 자체를 비난하거나 공격한다는 것은 절대적인 오류이다. 오
히려 국가는 윤리적 이념의, 개인적 자유의, 인격적 현실이다.”101)
이리하여 슈타인의 국가는 세속적 현존재 옆에 본질적인 존재를 둔 일
종의 야누스상임이 밝혀진다.
98) J. Habermas, “Nachwort” zu: G. W. F. Hegel, Politische Schriften, 364쪽.
99) S. Landshut, Kritik der Soziologie und andere Schriften zur Politik, 85쪽 각주
19 참조. 또한 C. Schmid, 앞의 논문, 328쪽과 H. Kelsen, Sozialismus und Staat, 30쪽 참조.
100) C. Schmid, 앞의 논문, 321쪽.
101) Stein, Geschichte der sozialen Bewegung in Frankreich I, 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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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념적 국가와 현실적 국가 사이의 갈등이 문제가 되면, 현실
의 국가는 국가이념의 정언명령으로부터 멀찍이 물러나고 만다.102) 이리
하여 국가권력을 수중에 장악하려는 지배계급의 시도는, 편재하는 국가이
념이 종국적으로 역사적 현실로 출현되게 하려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논리적인 통과단계로 상대화되어 버린다.
지금까지 서술한 바로부터 이끌어낼 수 있는 잠정적 중간결론은 슈타
인의 국가사상은 그의 사회관 발전에 맞게 수정되어야 할 압박에 항상
노출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념적 국가개념을 정의할 때의 논증
구조는 다양한 반면, 헤겔의 견해에 동조하여 시민사회가 그 이율배반으
로부터 빠져나올 유일한 탈출구를 바로 관념론적 국가 찬양에서 찾음으
로써 그의 국가사상은 철저하게 독일 관념론의 틀 내에서 움직이고 있
다.103) 그렇기에 앙거만은 슈타인만의 “특별한 불운”을, 슈타인이 고전
국민경제학 이론과 초기사회주의 사회비판의 강한 영향 아래 형성된 자
신의 사회이론을 헤겔의 관념론적 국가관과 모순 없이 결합할 수 있으리
라 믿었던 데서 찾았던 것이다.104)
슈타인은 “사회질서에 대한 국가이념의 무력함”105)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국가의 원리를 사회 모든 구성원의 개인
적 자유가 완전하게 발현되도록 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국가는 인격적 통일체로까지 높여진, 모든 개개인의 의지들이 모여 있
는 공동체인데, 이는 국가의 행위로서 모습을 드러낸다. 모든 개인들이
102) 슈타인의 국가사상과 관련해서 G. Schmoller, “Lorenz von Stein”, 136쪽에서
슈몰러는 “사변적인 입장이 갖는 명정상태의 확신”을 거론한다. 이러한 의미에 서 보면, Gumplowicz, Rechtsstaat und Sozialismus, 202쪽에서 슈타인은 “사변 적 관점에서만 현실을 파악하고, 자신의 추상개념들과 이념들의 모호한 기체 (基體)로 봉사하는 한에서만 현실을 고려하는 변증론자”로 묘사된다.
103) H. Ehmke, “‘Staat und Gesellschaft’ als verfassungstheoretisches Problem”, 30
쪽 이하 참조.
104) E. Angermann, “Zwei Typen des Ausgleiches gesellschaftlicher Interessen
durch die Staatsgewalt”, 150쪽.
105) Stein, Geschichte der sozialen Bewegung in Frankreich I, 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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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인격성을 형성하기 때문에, 각 개인이 처한 발전단계는 국가
자체의 발전단계가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에 따라서, 모든 개인들의
발전 척도는 국가 자체의 발전 척도가 된다는 매우 중요한 명제가 도
출된다.”106)
개인의 발전이라는 자유주의적 자유이념을 이렇게도 적극적으로 고백
하는 슈타인의 견해에서 우리는 자유주의 사상의 핵심이, 그 근본에 있어
서는 헤겔 국가사상의 속편인 슈타인의 관념론적 국가상으로 생뚱맞게
들어오는 현상을 목도하게 된다. 란트훗은 “슈타인의 국가관에서는 부분
적으론 헤겔적인 성격이, 부분적으로는 순수하게 자유주의적인 성격이 기
이하게 병행하고 있음”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107) 그러나 본고는 란
트훗이 이 양 사상의 형성과정에 존재하는 공통의 기초로부터 희망을 품
었던 “양자 사이의 모순 없는 조화 가능성”을 논의대상으로 삼지는 않겠
다.108)
왜냐하면, 슈타인도 결코 저항할 수 없었던 관념론적 국가사상의 강력
한 타당성 주장을 감안할 때, 슈타인에게 있어서 자유주의 요소는 지속성
을 갖지 못하는 과도기적인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질적인 이
상이 슈타인의 국가사상으로 생뚱맞게 들어온 것은, 그 때문에 최소한 슈
타인 국가관의 일관성에 대해 진지하게 의문을 가질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의 관념론적 국가사상을 전체적으로 의문시할 정도의 계기는 되지 않
을 것이다.
결국 다음과 같은 중요한 문제가 등장한다. 그렇다면 “모든 추상적인
106) Stein, Geschichte der sozialen Bewegung in Frankreich I, 35쪽. 같은 의미에
서의 수많은 표현들을 그의 여러 저적에서 발견할 수 있다. Stein, Der Socialismus und Kommunismus des heutigen Frankreichs I, 57쪽. Stein, Geschichte der sozialen Bewegung in Frankreich I, 163, 408쪽; Stein, Geschichte der sozialen Bewegung in Frankreich III, 6쪽; Stein, Die Verwaltungslehre I/1, 12쪽 이하.
107) S. Landshut, 앞의 책, 81쪽 각주 18. 유사한 견해로 H. Nitschke, 앞의 책, 84
쪽 각주 1.
108) S. Landshut, 앞의 책, 같은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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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과 이상적인 것의 무력함”109)에 대해 충분히 알면서도 슈타인이 국가
를 그 자신 내에서 독자적인 정신적이고 윤리적인 기초를 보유하는 의식
적인 행위주체로 설명하려고 한 까닭은 도대체 무엇인가? 슈타인이 자신
의 주저(主著) <1789년부터 현재까지의 프랑스 사회운동사>(Geschichte
der sozialen Bewegung in Frankreich von 1789 bis auf unsere Tage)를
집필할 때의 역사적-구체적 상황과 관련해서 그의 이념적 국가개념을 고
찰하면 답은 이미 나온다. 슈타인이 자신의 획기적인 저작물을 독일 사회
에 내놓았을 때 이미 시민사회는 헤겔이 1821년에 전혀 예상할 수조차
없었던 불안한 발전단계에 도달해 있었다는 것이다; 즉 헤겔이 시민사회
를 비판하던 때에는 정치적으로 전혀 움직이지 않는 하층민은 미지수였
던 반면, 노동이 자본의 대항마로 조직화되고 그 참담한 생존상황을 개선
하기 위하여 격렬한 투쟁을 벌이게 되자 점차로 사회적 갈등은 보편적
중요성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슈타인과 헤겔 사이에 놓여 있던 시대적 차이를 고려할 때, 시민사회
를 국가이념 내로 흡수시키려던 헤겔의 해법은 더 이상 통용될 수 없음
은 자명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한 해법 대신 슈타인은 국가개념을 이중화
함으로써 관념론 특유의 국가 인격화 과정을 이루어내는데, 이 인격화 과
정에 의해서 국가는 자신의 진정한 토대인 사회에 대하여 중립성을 견지
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바로 여기에 슈타인의 이념적 국가개념에서 작동
하고 있는 관념론적 국가사상의 오묘한 비밀이 놓여 있다고 하겠다. 이러
한 점에서 슈타인은 관념론적 국가사상을 가지고서, 혁명적 시대의 흐름
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철저하게 자신의 시대에 맞게 그리고 오로지 자신
의 시대 속에서만 산 것이다. 자신의 양심에 충실하면서 온갖 애를 썼지
만 슈타인은 자기 시대의 그늘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109) Stein, Geschichte der sozialen Bewegung in Frankreich I, 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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