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범, 이상주의도 자연주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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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철학연구 제25권 제2호: 485~522 한국법철학회 2022
이상주의도 자연주의도 아니다
―법의 관념성 이론이 나아갈 길에 대하여―*
1)
로렌츠 캘러(Lorenz Kähler)·이성범 옮김*
<국문초록>
법은 존재론적으로 관념적 실체이다. 이러한 성질은 다음과 같은 의문에 답
하기 위해 검토될 필요가 있다: 왜 법은 감각적으로 인지될 수 없는지, 왜 법의
내용은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지속될 수 있는지, 왜 법은 원칙적으로 번역될
수 있으며 왜 법은 이중성을 갖지 않는지. 존재론적으로 관념적인 법의 성질 때
문에 법은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독립적이고, 규범성을 가지며 합리적 논거들에
열려 있게 된다. 비록 법은 여러모로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존재론적으로 관념
적인 법의 성질은 추상성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DOI: 10.22286/kjlp.2022.25.2.011 * Lorenz Kähler, “Weder Idealismus noch Naturalismus: Zum Anliegen einer Idealitätstheorie des Rechts”, ARSP (Archiv für Rechts- und Sozialphilosophie) 2021, 392-416의 번역임. ** 독일 브레멘대학교 법학과 교수(lkaehler@uni-bremen.de). ***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조교수. 투고일자 2022년 7월 10일, 심사일자 2022년 8월 18일. 게재확정일자 2022년 8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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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들어가며
아무도 법을 보거나, 만지거나 느낀 적 없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가 보고 만
지거나 느끼는 무언가가 최소한 법으로 특징지어진다. 어떻게 이 두 가지가 동
시에 가능한지 그리고 어떻게 법의 비감각성(非感覺性)이 법의 힘을 형성하는
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탐색은 법이 대상으로서 어떤 종류에 속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으
로부터 시작한다. 이러한 존재론적 문제는 오랫동안 도외시되었다.1) 이는 그
문제의 근원성에 비추어 볼 때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근
원성은 하나의 대답이 사변적이고 빈번히 조롱받는2) 형이상학의 영역, 즉 이
에 대해 아무것도 믿을만한 것이 말해질 수 없는 곳에 빠져들까 두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럴 때 형이상학적 전제들을 건너뛰는 것만으로 그 전제
들이 해결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 간과될 것이다. 형이상학적 전제들은 공연히
주제화되지 않더라도 사고를 형성한다; 이 경우 어쩌면 비판적 성찰에 힘입어
그 조건들과 적용 범위를 명료하게 하는 경우보다 더 강하게 사고를 만들어 낼
것이다.3) 이는 이론철학에서 존재론이, 법철학의 경우와 유사한 이유로 오랫
1) Jules Coleman / Scott Shapiro (Hg.), The Oxford Handbook of Jurisprudence & Philosophy of Law, 2002와 Eric Hilgendorf / Jan C. Joerden, Handbuch Rechtsphilosophie, 2017 모두 법존재론에 대한 항목을 갖고 있지 않다. Ulfrid Neumann, Rechtsontologie und juristische Argumentation, 1979, 78 ff.는 법적 논 거들의 존재론적 함의와 법효력의 존재론에 대해서 다루고 있으나, 법의 존재론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2) Rudolf von Jhering, Scherz und Ernst in der Jurisprudenz, 13. Aufl., 1924/1992, 272의 이론가를 위한 “이상성(理想性)의 언덕(mons idealis)”에 대한 서술(역주: 예 링은 여기서 이론가와 실무가의 차이로 이상성의 언덕을 들며 우스꽝스럽게 말한 다. 밀랍으로 본떠 만든 이론가와 실무가의 뇌 모형을 놓고 비교하면서 이론가의 뇌 에 뭔가 불룩 올라온 부분을 보고 이것이 이상성의 언덕이라고 한다. 이 이상성의 언덕이 이론가들에게 그저 이상적인 사고를 가능하게 하여 이론가들을 실천적인 고려로부터 자유롭게 놔둔다고 한다. 그리고 이 이상적인 사고를 실무가들에게도 필요한 추상적 사고와 혼동하지 말라고 덧붙인다) 내지 Felix Cohen, “Trans- cendental Nonsense and the Functional Approach”, Columbia Law Review 35 (1935), 80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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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 근근이 버텨온 이후에 르네상스4)를 맞이한 이유 중 하나이다.
반면 이와 같은 르네상스가 법철학의 경우 아직 오지 않는 것은 무엇보다도
도덕적 신념들의 실천적 중요성과 20세기의 역사적 파국에 직면하여 법과 도
덕5)의 관련성이 오랫동안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졌던 점에 기인할 것이다. 이
에 실증주의와 일률적으로 자연법론이라 서술되는 반대입장을 구별하는 것이
법철학 전체에 있어 근본적인 것이라 빈번히 여겨졌다.6) 여기서 다음과 같은
문제, 즉 어떠한 임의적인 내용도 법이 될 수 있는지, 다시 말해 법과 도덕 사이
에 어떤 실증적인 관련성이 존재하는지가 핵심적으로 다루어졌다.7) 거의 모
든 법철학 이론들은 우선 이러한 법과 도덕의 관련성 문제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질문을 받았다.8)
그러나 그때 등한시되었던 것은, 이러한 관련성 문제가 그 중요성은 차치하
고 법철학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는 아니라는 점이다. 법이 도덕적 요청에 모순
될 수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강하게 모순될 수 있는지의 문제는 법이 어떠한 사
물에 속하는지를 분명히 알 때에만 제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이는
법이 자신의 실존양식만으로도 도덕적 영향에 놓여 있는지 혹은 처음부터 그
러한 영향에서 벗어나 있는지의 문제와도 엮여 있다. 이 점은 법의 존재론적
3) 그런 이유에서 Arthur Kaufmann, Rechtsphilosophie im Wandel, 2. Aufl., 1984, 73 ff.는 적절하게도 “형이상학의 불가피성”에 대해 언급한다. 또한 Neumann (주 1), 2도 참조. 4) 예컨대 John Searle, The Construction of Social Reality, 1995; Peter van Inwagen, Ontology, Identity, and Modality, 2001; Thomas Crisp / Michael J. Loux, Metaphysics, 4. Aufl., 2017 참조. 5) 이하에서 도덕은 비판적 평가를 견뎌내는 행동요구들 중 하나[“비판적 도덕성 (critical morality)”]를 말하고, 그에 대한 사실적 입장들[“실증적 도덕성(positive morality)”]을 말하지 않는다; 이러한 구별에 대하여 H.L.A. Hart, Law, Liberty, and Morality, 1963, 20; Dietmar von der Pfordten, Rechtsethik, 2. Aufl., 2011, 63. 6) 예컨대 Hans Kelsen, General Theory of Law and State, 194, 446; Jules Coleman / Brian Leiter, “Legal Positivism”, in: Dennis Patterson (Hg.), A Companion to Philosophy of Law and Legal Theory, 2. Aufl., 2010, 228 참조. 7) Gustav Radbruch, “Gesetzliches Unrecht und übergesetzliches Recht”, Süddeutsche Juristenzeitung 1946, 106; Robert Alexy, Begriff und Geltung des Rechts, 4. Aufl., 2005, 43 f. 8) 이러한 이론들의 분류에 대해 von der Pfordten (주5), 120 ff.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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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가 법과 도덕의 관련성 문제에 대한 대답을 완전하게 정한다는 것을 의미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러한 법의 분류로부터 도출되는 것이 아닌, 예컨대
도덕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법이 어떠한 경험적 결과들을 가질 것인지에 결
부된 다른 논거들이 하나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9) 그러므로 법이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도덕적 내용을 부정하는 것 역시 법에 대한 다양한 존재론들
과 어울릴 수 있다. 가령 법과 도덕을 엄격하게 분리한다면, 법을 초기 켈젠
(Kelsen)10)과 같이 관념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하트(Hart)11)와
같이 경험적인 것으로 여길 수도 있는바, 이러한 대립은 법이 어떤 대상에 속하
는가와 같은 존재론적 근본문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렇지만 존재론은, 그 답을 내주지는 않으나 특정 경로들을 여닫는 전철기
(轉轍機)들을 작동시킬 수 있다. 이를테면 법을 도덕과 유사하게 하나의 관념적
인 것으로 이해한다면, 양자가 다른 종류의 대상들에 포함되는 경우보다 양자
간의 관련성이 더 잘 형성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존재론은, 다른 비존재론적
근거들과의 상호작용 안에서 법과 도덕의 관계를 결정하는 논거들을 제공할
수 있다.
예컨대 법을 비물질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법에 대한 도덕의 영향이 일
반적으로 가능한 것이라 보기 위한 하나의 전제조건일 것이다. 아니면 법은 애
당초 도덕적 논거들에 접근하기 힘든 대상들의 종류에 속할 것이다. 이 경우
그러한 논거들은 법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데, 왜냐하면 도덕적으로 설득력
있는 것이라 여겨지는 것으로부터 사실적으로 그러하다는 점이 도출될 수 없
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존재로부터 당위를 도출하는 오류12)가 허용되지
9) 실증적 혹은 비실증적 법개념이 어떠한 효과를 갖는지에 대해서 Alexy (주7), 80 ff. 참조. 구체적으로는 졸고, “What Constitutes the Concept of Law?“, in: André Ferreira Leite de Paula / Andrés Santacoloma Santacoloma, Law and Morals, 2019, 195 ff. 10) Hans Kelsen, “Das Wesen des Staates”, in: Hans Klecatsky, René Marcic und Herbert Schambeck (Hg.), Die Wiener rechtstheoretische Schule, Bd. 2, 1968, 1722. 11) 승인규칙(rule of recognition)에 대하여 일단 H.L.A. Hart, The Concept of Law, 1961, 98; “기술사회학(descriptive sociology)”으로서의 그의 글에 대해 많이 논의 된 평가와 관련하여, aaO.,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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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위로부터 존재의 도출이라는 오류를 범하게 될 것이
다. 그러므로 법이 순수하게 경험적인 것이라면 도덕의 법에 대한 영향을 상정
하기 힘들다. 이러한 이유만으로도 법과 도덕의 관계와 관련하여 법이 대상으로
서 어떤 종류에 속하는가와 같은 존재론적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불가결하다.
이 점은, 실증주의와 비실증주의의 다양한 견해들 안에 큰 차이가 존재하여
서 그 견해들이 법의 종류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답하는지에
따라 먼저 분류될 필요는 없지 않은가라는 질문이 제기되므로, 더욱 중요하다.
가령 켈젠과 같이 법은 사실로 환원될 수 없다고 한다면,13) 이것은 적어도 존
재론적 특징 부여에 있어서 법을 사회적 사실14)로 환원시키려는 실증주의적
이론들보다 후기 라드브루흐(Radbruch)15)의 비실증주의적 이론들에 더 가깝
다. 왜냐하면 사회적으로 가공된 사실들의 집합을 이상주의적 전통하에서 정
신적인 것으로 이해할 때에도 법을 경험주의적 전통하에서는 결국 감각적으
로 파악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지가 근원적인 차이점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근거들에 비추어 볼 때 법이 어떤 종류에 속하는가와 같은 존재론
적 문제는 불가피하다. 이것 없이 법의 개념을 얻을 수는 없다. 적어도 고전적
인 정의 방식에 따를 때 법에 대한 이러한 목적을 위해 종류(genus)와 그 안에
서의 구별표지(differentia specifica)를 제시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16) 그러한
정의에 있어 법이 대상으로서 어떤 종류에 속하는지를 아는 것은 충분조건은
아니더라도 하나의 필수조건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이 존재론적 문제에 대한
답변은 법의 정의(定義)를 위한 초석을 제공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종류와 관련
12) David Hume, A Treatise of Human Nature, 1739, hg. von David F. Norton / Mary J. Norton, 2000, 469; Immanuel Kant, 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1785/1963, AA IV, 427. 13) Hans Kelsen, Reine Rechtslehre, 2. Aufl., 1960, 5. 14) Joseph Raz, The Authority of Law, 2. Aufl., 2009, 37; Jules Coleman, The Practice of Principle, 2003, 75; Kenneth Einar Himma, “Inclusive Legal Positivism”, in: Jules Coleman / Scott Shapiro (Hg.), The Oxford Handbook of Jurisprudence & Philosophy of Law, 2002, 126. 15) Radbruch (주7). 16) Aristoteles, Topik IV 2, 123a를 전제로 한 것이고, 그 적용 범위에 대해서 Richard Robinson, Definition, 1960,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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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다양한 후보들이 생각나는 것만 보아도 그것은 명백하지 않다. 예컨대 법
을 입법행위의 총체, 입법행위로 작성된 법조문의 총체, 그곳에 표현된 의미의
총체 또는 규범 적용의 총체로 이해할지 모른다. 이것들은 서로 관련되어 있으
나, 또 큰 차이점을 내보인다.
이러한 후보들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법을 관념적인 것으로 이해할 때
가장 설득력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이는 일단 Ⅱ부에서 설명되어야 할 논제이
다. 이 논제는 법을 자연주의(Naturalismus)17)와 같이 경험적 사실들로 환원하
려거나 이러한 종류의 사실들을 최소한 법의 요소로 인정하여 그것을 관념적
요소와 결합하려는 입장들에 반대한다.18) 후자의 입장을 최근 알렉시(Alexy)
가 주장한 법의 이중성 논제가 대변한다. 이러한 논제와 별도의 논쟁을 해 볼
가치가 있는데, 왜냐하면 자연주의의 경우와는 달리, 이 논제에 대한 비판점이
법의 관념성으로부터 이미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법의 관념성이 현실적 차원
과 결합할 수 없다는 점에서 나오기 때문이다(Ⅲ부).
법의 관념성은 법이 물질적 대상들과는 달리 어떤 특정한 공간과 시간을 갖
지 않으며 물리적 인과관계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점을 나타낸다. 이에 따라
법의 세 가지 핵심적인 특징들이 확인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법의 지속성,
편재성(遍在性) 그리고 합리성적격이다(Ⅳ부). 이러한 특징들에 있어 이하에서
설명될 관념성 이론(Idealitätstheorie)의 문제의식이 나타나는데, 법의 존재론
적 성질을 그저 흥미로운 영역으로서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론적 성질
에 기초한 법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을 얻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17) Brian Leiter, Naturalizing Jurisprudence, 2007, 15, 31 ff.; Stefan Magen, “Zur naturalistischen Erklärung rechtlicher Normativität”, in: Gralf-Peter Calliess / Lorenz Kähler (Hg.), Theorien im Recht ― Theorien über das Recht, 2018, 45 ff. 18) Gerhart Husserl, Recht und Zeit, 1955, 18은 법을 한편으로 “인간적 경험들의 이 상적인 대상들”에 포함시키면서 동시에 “인간의 생활실천”(41)으로 본다. Ota Weinberger, “The Norm as Thought and as Reality”, in: ders. / Neil MacCormick, An Institutional Theory of Law, 1985, 62에서는 규범을 한편으로 “객관적 의미로 서의 사고”로서 이해하면서 동시에 “인간적 의식의 영역 안에서 … 현실로서”(68) 파악한다; 이와 유사하게 Peter Koller, “On the Nature of Norms”, Ratio Juris 27 (2014), 157은 규범의 이상적 성질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사회적 실천으로서 법을 규정한다(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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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법의 관념적 성질
- 비감각적 성격
법의 존재론적 성질에 대한 첫 번째 힌트는 법을 감각으로 직접 파악할 수 없
다는 점으로부터 나온다. 법을 규범들의 집합으로 파악하든19) 나아가 목표
들20)과 근거들을 법의 기타 요소로 포함해서 생각하든 이는 물질적인 종류의
것이 아니며 감각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특히 규범은 무엇이 일어나야 하는지 혹은 무엇이 어떠한 방식으로 평가되
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으로서 사실 사람과 물건 그리고 이와 함께 적어도 물
질적 형체를 갖는 대상들에 관련된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과 규범은 다르다.
규범은 무엇이 사람 그리고 물건과 함께 일어나야 하는지를 지시하는데, 그렇
다고 규범이 사람과 물건의 부분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규범은 법률공보에 인쇄
되고 서버에 저장되어 이로써 유형적으로 표명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규범
은 그 안에서 표현될 뿐 그러한 유형적 형태들과 동일시되지 않는다. 이는 규
범이 그러한 유형적 형태들과 함께 소멸하지 않는 것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
난다. 법률공보의 소실(燒失)과 서버의 소실(消失)이 규범으로부터 그 효력이나
존재를 빼앗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의회에서의 표결 같은 제정행위들 혹은 법률관보에 의한 공포를 통해
규범이 물질적 성질을 얻게 되지는 않는다. 이러한 제정행위들은 사실 하나의
물질적 토대를 갖고 있고 이에 감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사건들이다. 그러나
이들 역시 이들을 통해 성립된 규범과 같지 않다. 왜냐하면 규범은, 특정의 조
건들하에서 어떤 특정한 법적 결론이 등장해야 한다는 규범적 요청에 국한되
기 때문이다. 어디서 그리고 언제 규범이 작성되는지는, 규범의 지시가 없는
한, 이러한 요청 자체에 대해 무의미하다. 그러한 이유로 규범은 입법행위와
분리될 수 있는데, 입법행위에 있어 무엇보다 입법의 내용이 규범정립행위를
19) 가령 Kelsen( 주13)과 Alexy (주7). 20) Dietmar von der Pfordten, “What is Law? Aims and Means”, ARSP 97 (2011),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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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드러지게 하는 특성들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것이 나타난다. 여기에 특히 규
범의 내용을 다루지 않는 입법의 시간과 장소가 속하는데, 그것들이 설령 규범
의 해석에서 하나의 역할을 할지 모른다 해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감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제정행위와 그 결과로서의 규범을 구
별해 볼 필요가 있다.21) 제정행위는 시간과 공간 안에서 규범제정으로 끝나는
하나의 사건이다. 이와 달리 규범은 계속된다. 규범의 과제는 가능한 한 장래
의 행동을 조정하는 것인바, 이것은 이를 위해 정해진 규칙들이 이미 일어난 일
들 안에서 소진되지 않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이에 장래의 행동과 관계되는,
규범정립행위 너머를 가리키는 어떤 의미가 필요하다. 이 의미는 규범정립행
위가 갖는 의미론적 내용으로서 비물질적이며 관념적인 것이다. 이 관념적인
것은 제정행위 안에서 몇몇의 가능한 표현들 중 하나만을 찾았을 뿐이다. 이는
특히 규범이 다른 시간 그리고 다른 장소에서도 같은 내용으로 나타날 수 있었
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그에 비해 법을 법의 물질적인 제정행위들로 환원하려
는22) 자연주의적 이론들은 그 제정행위로부터 독립적인 의미를 파악할 수 없
고, 그런 이유에서 왜 다양한 사회적 사실들을 가지고 같은 규범을 작성 내지
의결할 수 있는지도 설명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실들을 하나로 묶는
것은 그 사실들을 가지고 표현된 의미인바, 이는 관념적인 것으로서 경험적으
로 접근할 수 있는 특정의 사실들과의 동일시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비록 하나의 규범정립행위의 의미론적 의미를 자연주의적으로 설명하는 것
에 성공하더라도, 법을 그러한 행위들로부터 독립된 비감각적인 것으로 파악
하는 것은 여전히 필요하다. 하나의 행위와 함께 표현된 의미만이 이와 관련된
진술을 반드시 유효하게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한 규범의 표현 자체로부
터 그 효력이 나오지 않는다. 즉 어떤 경우에도 “a일 때, b가 나온다”라는 언명
으로부터 a일 때 b가 실제로 나와야 한다는 것이 도출되지 않는다. 기껏해야
이것을 말한 자가 a라는 조건하에서 b가 일어나는 점에 대한 의도를 갖고 있다
21) 이에 대해 von der Pfordten, “Validity in Positive Law: A Mere Summary Concept”, in: Pauline Westermann / Jaap Hage / Stephan Kirste / Anne Ruth Mackor, Legal Validity and Soft Law, 2018, 1, 2는 규범창조의 발화행위 (Sprechakt)와 그 결과로서의 규범을 구별하지만, 양자 모두 규범의 특성으로 여긴다. 22) 위 주1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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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점을 추론할 수 있을 뿐이다. 법정립의 권한에 대한 추가적 전제들의 도움
을 받아 비로소 그러한 언명으로부터 그 안에 표현된 규범이 실제로 유효하다
는 것이 도출될 수 있다. 그러므로 비록 규범과 규범정립행위의 의미가 동일한
내용을 가진다고 할지라도 양자는 동일시될 수 없다. 나아가 규범은 효력근거
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이유만으로도 어떤 규범정립행위의 물질성으로부터
규범의 감각적 성격이 도출되지 않는다.
그 외에 일반적인 규칙들을 통해 자유의 영역들을 구획하고 많은 사람들의
행동을 조정하는 법의 과제와 관련하여 법을 감각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특정
의 행위들 내지 대상들과 동일시한다면 이는 곤혹스러울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때 이러한 행위들 내지 대상들은 이들에 대한 직접적인 접촉에서만 잘 파악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법은 그와 같은 방식으로 전파될 수 없을 텐데, 이는
다양한 수단을 통해 구술 또는 문서로 전달될 수 있는 어떤 진술에 담긴 내용의
경우와 같다. 그러므로 법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기 위해 법은 감각적인 것이
어서는 안 되는바, 책이나 화면과 같이 그 안에 표명되어 있는 것을 감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사물이 존재해야 하더라도 그러하다. 법에 담긴 뜻(Sinn)은 법
의 비감각성(Unsinnlichkeit)을 전제한다.
- 의미의 불변
이렇게 법을 규범정립행위와 기타 의미들의 의미론적 내용으로부터 발생하
는, 감각적으로는 직접 파악할 수 없는 것이라고 이해한다면, 넓은 의미에서의
관념들과 유사성이 나타난다. 이러한 관념들에 예컨대 수(數), 알고리즘, 이야
기, 게임 혹은 시(詩)가 포함되는데,23) 이들도 특정의 의미들로 구성되고, 관념
적인 것들로서 그 물질적 발현과는 구분된다. 그것들은 아주 다양한 형태, 가
령 책, 칠판 또는 화면에 구현될 수 있다. 그럼에도 그 내용은 각각의 발현들로
인해 그와 동일한 혹은 다른 매개체 안에서 변하지 않는다.
23) 이들은 자주 추상적 객체들로 파악되는바, Wolfgang Künne, Abstrakte Gegenstände, 2. Aufl., 2007, 96 ff.; Gideon Rosen, “Abstract Objects”, in: Edward N. Zalta (Hg.), The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2017, https://plato.stanford.edu/entries/abstract-objects/ (2019.10.2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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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규범들은 의미 상실 없이 다양한 장소, 시간 그리고 수단들로 표
현될 수 있는바 이를 통해 내용을 잃지 않는다. 규범들 각각의 형체들은 이미
각자 고유의 장소를 가지고 있으므로 이들은 서로 구분될 수 있는 반면, 거기에
표현된 의미는 그렇지 않다. 올바른 텍스트에서 이 의미는 모든 형체를 가리지
않고 동일한데, 아무리 그것이 개별적으로 되어 있더라도 그렇다. 상이한 매개
체들이 규범들의 작성과 연결을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적합하다는 점이 이와
대립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내용에 있어 필연적인 차이점이 아니라, 내용을 어
떤 특정한 형태로 전달하는 어려움 안에서 필연적인 차이점을 가리킬 뿐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하나의 규범은 정신적 내용으로 파악될 수 있는바 그에 대
한 모든 표현과 형체들 안에서 변함없이 존재한다. 이러한 정신적 내용은 대부
분 하나의 규범적 요구를 제시하는 데 국한된다. 그래서 규범을 위해 특정의
형체가 필요하지는 않다. 규범적 효과는 규범이 어디서 어떻게 표명되었는지
에 종속되지 않는데, 그것이 아무리 강하게 규범의 발생과 사실적 효과를 위해
하나의 역할을 할 수 있다 해도 그러하다. 형체로부터의 이러한 독립성에 의해
서만 규범들은 그에 대한 어떠한 표현들과 발현들을 통해서도 계속 변함없이
존속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이것은 법의 근거들과 목표들에 적용된다. 그것들의 의미 역시
언제 어디서 그것들이 표현되고 기록되었는지 나아가 그것들의 사실적 효과
가 이로부터 얼마나 강하게 영향을 받을 수 있는지에 종속하여 변화하지 않는
다. 이에 법의 근거들과 목표들이 법에 속하는지24)의 문제는 여기서 열린 채로
남겨질 수 있다.
- 번역가능성
법의 관념적 성질은 법의 규범들이 기본적으로 하나의 언어에서 다른 언어
로 번역될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인상적으로 드러난다. 이것은 놀라울 정도로
자주 의미의 상실 없이 이루어진다. 예컨대 독일어, 영어 혹은 러시아어로 살
인이 금지되는지는 이렇게 표현된 규범들에 대해 어떤 내용적 관련성을 갖지
24) 위 주2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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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는다. 이것은 법규범들 안에서 특정의 단어들, 특정한 언어 또는 특정한 표
현행위에 구속되지 않은 의미들이 표현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러한 의미들
은 원어에서 역어로의 번역을 통해 전달된다. 그러므로 번역 이전에 이미 번역
되어야 할 내용이 존재하는바 이것은 표현행위에 구속되지 않고 또 이러한 이
유만으로도 물질적 성질을 갖지 않는다. 법이 주로 이러한 내용, 즉 개별적인
법명제들의 의미들로 중요하게 이루어진 내용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적어도
그 점에서 법은 관념적 성격을 내보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에 개별 언어들 사이의 다양한 차이점들이 대립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개념형성은 언어마다 다양하며, 이에 번역에 있어 하나의 단어가 가진 의
미들은 원어 그리고 역어에서 어쩌면 부분적으로만 일치하고, 양 언어가 동일
한 개념을 쓰지 않는 경우 우회적인 표현도 필요해진다. 그 때문에 번역에 있
어 여러모로 부정확함이 나타난다. 그러나 그것이 언어로부터 독립된 내용들
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 주는 것은 아니고, 단지 그러한 내용들이 다양
한 방식으로 그리고 아마도 불완전하게 옮겨진다는 점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법이 언어로부터 독립된 의미들로 구성되고 이에 그 성질이 관념적이라는 논
제는 이러한 의미들이 정확히 동일한 방식으로 개개의 언어들에 의해 재현될
수 있다는 점을 전제하지 않는다. 번역이 실패한다면, 그 실패는 원어와 역어
가 동일한 개념들을 알지 못한다는 우연한 사정에 기인한 것이고, 하나의 특정
한 관념적 내용이 하나의 언어와 불가분하게 엮여 있을 거라는 점 때문은 아니
다. 원칙적으로 하나의 언어로 표현된 내용으로 처음부터 그 어떤 번역으로부
터 벗어날 수 있을 만한 것은 없다. 생각은 자유로우며 하나의 언어에 속박될
수 없다.
이렇게 주어진 대체로 충분한 번역가능성 안에서 법은 경험적 사실들과 구
분된다. 이러한 사실들은 사건들과 사물들로 구성되며 다수의 물리적 특징들
을 통해 더 상세하게 특징지어질 수 있다. 그러나 경험적 사실들은 일회적 사
건들로서, 불완전한 형태로도 다른 사건들로 번역될 수 없다. 시간과 공간으로
특정된 하나의 사실은 다른 장소 또는 시간으로 전달될 수 없는바, 왜냐하면 그
사실이 어떤 다른 사실이 되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법의 원칙적인 번역가능성을 고려하기 위하여 법을 하나의 특정
의 언어 안에서 이루어진 그 표현으로부터 구별할 때, 이것이 순수한 의미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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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6 법철학연구
집합으로서의 언어 없이도 법이 존재할지 모른다거나 심지어 직접 이러한 의
미들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하지는 않는다.25) 법의 번역가능성을 제시하
는 것은 오히려 법의 의미가 하나의 특정한 언어 안에서의 특정한 표현과 동일
시되지 않고, 원칙적으로 다양한 언어로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
다. 그러므로 법이 언어 없이 존재할 수 없더라도, 결국 그 기초가 되는 표현행
위가 아닌, 법에서 표현된 의미가 법에 있어 결정적이다. 그런 이유에서 법은
역시 관념적인 것으로서 모든 법적으로 타당한 진술들의 정신적 기체(基體)로
이해되어야 한다.
- 규범성
다음으로 법의 존재론적 관념성은 법의 규범성에서 증명된다. 법이 경험적
사실들로 환원될 수 있다면, 법에는 그 어떤 규범적인 내용도 없다. 관념적인
것들만이 규범성의 소지자일 수 있는바, 왜냐하면 경험적 사실들은, 하나의 특
정한 상태를 특징지어 줄 수 있지만 어떤 상태가 일어나야 하는지에 대해서 아
무런 의미가 없는 사물과 사건들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존재와 당위의
범주적 구분은 그들26) 사이의 모든 결합에도 불구하고, 법을 경험적인 것으로
이해할 가능성에 배치(背馳)된다.
또한 규범의 특징은 어떤 특정한 시간과 특정의 장소에서 표현되었다는 점
이 아니라, 표현 안에 나타난 의미, 즉 규범텍스트에 담긴 명제적(propositional)
내용이다. 이는 그 어떤 규범에 대해서도 경험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규범정립
행위가 존재하여 모든 법명제가 규범정립행위로 환원될지 모른다고 해도 그
러하다. 왜냐하면 대상의 발생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의 문제는 무엇이 대상
자체를 나타내는지의 문제와 확연히 구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
서 법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규범들이 규범들을 발생하게 하는 행위들의 특
성을 공유할 필요는 없다. 규범들은 규범적 기준들로 구성되는바 이 기준들은
수학적 법칙들 또는 미학적 규칙들과 유사하게 그 어떠한 물질적 내용을 가지
25) Weinberger (주18), 61; Paul Amselek, “Law in the Mind”, in: ders., Neil MacCormick (Hg.), Controversies about Law’s Ontology, 1991, 22. 26) 위 주1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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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주의도 자연주의도 아니다 497
지 않는데, 이는 그 규범적 기준들이 이런 법칙들 내지 규칙들과 달리 우선 물
질적 사물에 관련되고 그 의미가 경험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사실관계들의 형
성이더라도 마찬가지이다.
법이 사회적 행동의 조정과 같은 목표들을 달성하려면, 법의 성질은 관념적
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법은 미리 정해두는 규범적 기준들을 포함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 법의 추상성?
규범을 추상적인 대상으로 이해했던 것에 기반하여 최근 법의 관념적 성질
을 파악하려는 시도가 빈번히 이루어졌다.27) 또한 철학적 담론 안에서 수(數)
나 다른 관념적인 것들이 때때로 추상적 대상으로 이해된다.28) 법에 있어 일견
이와 같은 대상으로의 편입이 쉽게 떠오른다고 하는데, 왜냐하면 행위, 유책성
또는 청구와 같은 법이 가지고 있는 개념들 대부분이 마찬가지로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규범들 역시 개별적 장소들과 같은 구체적인 대상들을 지시할 수 있으
며 추상적인 개념들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규범의 개념들을 극단적으
로 확장하려 하지 않고 또 공간과 시간 외부의 모든 대상들로 연결시키려 하지
않았을 때 왜 규범들 자체가 필연적으로 추상적 대상들이어야 하는지 분명하
지 않다. 하나의 규범이 개별적 사람들 혹은 대상들에 대한 규율로 제한된다
면, 그 규범은 어떤 구체적 성격을 취한다. 이에 구체적 규범들 역시 존재한다.
그와 같은 규범들은 가령 법률을 통해 어떤 특정한 도시가 수도로 천명된 경우,
장소와 시간이 자세히 적힌 특정의 급부들에 대한 계약상 합의가 된 경우 혹은
27) Alchourron Bulygin, “The Expressive Conception of Norms”, in: Risto Hilpinen (Hg.), New Studies in Deontic Logic, 1981, 96; George Pavlakos, “Normativity versus Ontology: Law, Facts, and Practical Reasons”, Rechtstheorie 3 (2003), 408; Kenneth Einar Himma, “Authority”, in: Giorgio Bongiovanni u.w. (Hg.), Handbook of Legal Reasoning and Argumentation, 2018, 195-197; Scott Shapiro, Legality, 2011, 103. 이와 대조적으로 Alexander Somek, The Legal Relation, 2017, 19: “법은 기술할 수 있는 추상적 대상이 아니다”. 28) Künne (주23), 96 ff; Rosen (주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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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8 법철학연구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행정행위가 발급된 경우와 관계된다.
그러한 종류의 규범들이, 대상적 관점에서 추상적이고 인적 관점에서는 일
반적인 규범들과 내용상 확연하게 구별될수록 존재론적 차이점은 덜 눈에 띈
다. 구체적인 규범들과 추상적인 규범들 모두 비물질적이며, 같은 방식으로 사
실적 효과와 엄격히 구별될 수 있는 규범적 효과를 펼친다. 그러므로 법의 관
념적 성격을 법이 가질 수 있는, 그러나 필연적이지는 않은 추상성과 혼동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구체적인 개별적 규범들의 집합이라 해도 존재론상으로
관념적이다.
나아가 용어상 법의 관념적 성질을 어떤 도덕적 혹은 미학적 이상성(理想性)
과 혼동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규범들은 그 내용에 따라, 관념적 성격을 잃
지 않은 채 이상적인 것과 완전히 다를 수 있다. 법률의 형태로 주조(鑄造)된 아
주 잔혹한 불법조차 존재론상 관념적이다. 이 점이 중요한데, 왜냐하면 이러한
법으로부터 법으로서의 성질이 박탈되는지의 문제와 무관하게, 그 법이 저절
로 관철되지 않고, 사람들이 그 법을 실행할 때에만 사회적 효과가 펼쳐지는 어
떤 관념적인 것이 남아 있다는 점을 설명하기 때문이다. “관념적(ideell)”과 “이
상적(ideal)”은 상이한 개념들로서 각기 다른 것을 나타내면서 나름의 이유대
로 형성되었다. 이상은 관념적이나, 모든 관념적인 것들이 이상적이지는 않
다. 이는 법에서도 마찬가지다.
법의 관념적 성질에 대한 이 논제는, 프레게(Frege)처럼 외부세계에도 또 그
에 대한 우리의 재현에도 포함되지 않는 “사고의 제3영역”을 받아들이거나,29)
포퍼(Popper)와 같이 물리적인 “세계 1”, 우리의 의식 경험이라는 “세계 2” 그리
고 “객관적 의미에서의 관념들”이라는 “세계 3”30) 사이를 구별하는 철학 이론
들과 잘 어울릴 수 있다. 그렇지만 관념성 이론이 “세계 3”이나 “사고의 제3영
역”에 대한 이론들을 전제하지는 않는바, 왜냐하면 관념성 이론은 덜 광범위한
전제들로도 문제없고 그 점에서 존재론상 더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관념적인
내용을 이를 표현하는 행위들로부터 구별하기 위하여, 다양한 세계들 사이를
위와 같이 구별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동일한 세계 안에서 대상들에 대한 물
29) Gottlob Frege, “Der Gedanke”, in: Logische Untersuchungen, hg. von Günther Patzig, 1966, 43. 30) Karl Popper, Objective Knowledge, 1972, 74, 153-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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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주의도 자연주의도 아니다 499
질적 그리고 관념적 종류의 구별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법에 대한 관념성 이론에 있어 정신철학상 제기되는 어려운 문
제들, 즉 관념적 내용들이 그것들의 표현에 기초를 이루는 정신적 행위들과 어
떠한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 열어 둘 수 있다. 법의 관념적 내용에 있어, 법이 심
리 안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법의 내용들이 법정립에 참여한 사람
들의 뇌 안에서 일어나는 재현들로 남김없이 환원될 수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
다. 법의 관념적 성질에 있어 어떤 법정립행위의 규범적 결과를 그 행위, 그 물
질적 표명들 및 경험적 효과들로부터 구분하는 것으로 충분하고 또 그러한 구
분이 중요하다.
관념성 이론은, 물질적 외부세계의 존재를 의식으로 환원시키고31) 이로써
결국 정신적 내용만을 인지하게 되는 형이상학적 이상주의(Idealismus)를 내용
으로 삼지 않는다. 세계의 속성에 대한 이와 같은 광범위한 문제들에 대해 법
의 관념성 이론은 중립적인 입장에 설 수 있다. 대신 관념성 이론은 경험적으
로 파악할 수 있는 사실들의 존재에 대해 말할 필요 없이 법의 관념적 성질을
주제로 삼는다. 이상주의와 관념성 이론의 가까움은, 양자 모두 관념적 대상이
존재하고 이것이 물질적 대상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전제와 어울릴 수 있다는
점에만 있다.
실증주의가 특히 뚜렷하게 나타난 형식으로서 법을 경험적 사실로 환원하
려는 자연주의적 이론들32)은 관념성 이론에 대립한다. 왜냐하면 자연주의적
이론으로 법의 비경험적, 관념적 성질은 무시되거나 적어도 중요하지 않은 것
으로 여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법의 특징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
Ⅲ. 법의 이중성?
법의 존재론적 관념성에 대한 논제는 법에 이중성을 부여하는 이론33)에 반
31) 이에 대한 개관으로 Paul Guyer / Rolf-Peter Horstmann, “Idealism”, in: Zalta (주 23), 2015. 32) 위 주17 참조. 33) Robert Alexy, “The Dual Nature of Law”, Ratio Juris 23 (2010), 167; 위 Fn. 1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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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 법철학연구
대한다. 알렉시에 따르면 이러한 이중성은 법의 모든 근원적인 문제들과 관계
된다고 하는데,34) 이로써 법의 존재론적 성질 역시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 법
은 이상적, 비판적 차원 외에 필연적으로 현실적 차원을 내보인다고 한다.35)
여기서 알렉시에 따른 이상적 차원이 정당성에 대한 요구와 존재론적인 것이
아닌 도덕적인 이상성을 말한다는 것을 차치한다 해도, 왜 법은 필연적으로 현
실적 차원을 가져야 하는가와 같은 문제가 남는다. 알렉시에 의하면 이러한 현
실적 차원은 유권적 정립뿐만 아니라 법의 사회적 효과도 포함한다.36) 그는 이
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이상적 차원은 무정부상태와 내전을 막고 협력과 같은
사회적 조정을 달성하기에 부족하다는 점을 든다.37) 이에 현실적 차원의 존재
는 하나의 도덕적 요구라고 한다.38)
이러한 논증은 일련의 질문들을 불러일으킨다. 어떤 도덕적 요구로부터 법
의 성질이 어떻게 정확히 나올 수 있는지부터 벌써 불분명하다. 이미 이러한
이유만으로도 도덕적으로 바람직하다고 보이는 모두가 법의 개념적 부분은
아니다. 도덕적 문제들의 논쟁적 성격을 고려할 때,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하나의 믿을 만한 방향설정의 척도를 마련하기 위해 사실 법을 유권적으로 정
립하는 것이 실제로 필요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필요성이 법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아니고, 우선 어떠한 도덕적 근거들이 법을 정당화하는지에
대해서만 말한다. 법의 존재를 위해 여러 가지 다른 필수조건들이, 이것들로
법의 성질이 정해지지는 않겠지만, 있을 수 있다. 가령 사회적 협력의 유지를
위해 긴급한 경우 규범에 대한 최소한의 보장을 강제로 관철하는 것이 필요할
지 모른다. 그러나 이로부터 법이 그 성질상 전체적 혹은 부분적으로 강제라는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바로 나오지 않는다. 법위반에 따른 제재가능성
만을 요구하는 제재이론39) 역시 이를 주장한 바 없다.
34) Alexy (주32), 180. 35) Alexy (주32), 173. 이로써 어떤 경험적 실재를 말한 것일 텐데, 사실 실재론의 개 념은 숫자와 같은 비경험적 대상들이 존재한다는 입장에서도 빈번히 사용되기도 한다. Alexander Miller, “Realism“, in: Zalta (주23), 2014. 36) Alexy (주32), 173; ders., “The Special Case Thesis and the Dual Nature of Law“, Ratio Juris 31 (2018), 256. 37) Alexy (주32), 173; (주35), 256. 38) Alexy (주32), 173; (주35),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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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주의도 자연주의도 아니다 501
그러므로 법은 반드시 하나의 현실적 차원을 가지면서 현실적 행위들로부
터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논제가 납득되려면, 법집행의 필요성 외의 다른
근거들이 요구된다. 이에 알렉시에 의해 거론된 법의 발생(1.)과 그 효과(2.),
이 두 가지 측면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유권적 법정립의 필요성에 대하여
법의 이중성 논제에는 모든 법은 유권적으로 정립되어야 한다는 점이 전제
되어 있다. 이 점이 실제로 예외 없이 그러한지 의문이다. 왜냐하면 실재하는
행위를 통해 의결된 것이 아니지만 규범논리학의 명제들40)처럼 법이 기능하
기 위해 필수적인 규범들의 존재를 부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러한 전제에 따르면, 규범해석의 방법론적 규칙들과 같이 어
떤 특정한 규범정립행위로 환원될 수 없는 메타규범들의 경우에도 법으로서
의 성질을 부인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이러한 법의 특수형태들에 있어, 유권
적 정립의 필요성을 포기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켈젠도 “논리적 원리들”의
적용가능성을 의결절차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법으로 인정한 바 있다.41) 이러
한 예외들은 특수사례들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도 법의 이중성 논제를 의문
시하는데, 법의 본질적 성격들은 전체 규범들에 적용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
다. 법규범들의 한 부분만이 유권적으로 정립된다면, 이러한 정립은 법으로서
의 성질에 속할 수 없다.
이와 달리 법의 관념적 성질에 대한 논제는 이러한 어려움을 면한다. 이 논
제는 법의 존재론적 관념성에 대해 의문시하지 않고, 규범논리학뿐 아니라 법
의 효력과 해석을 위해 필수적인 메타규범들도 인정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규범
논리학이나 방법론의 메타규범들 모두 존재론상 관념적이며 법의 현실적 차
39) Kelsen (주13), 36; Kenneth Einar Himma, Coercion and the Nature of Law, 2020, 4 ff.; 제재이론에 반대하는 논거들에 대하여 Joseph Raz, Practical Reason and Norms, 1990, 155 ff. 40) 여기에 어떠한 법률들이 개별적으로 속하는가에 대해 열린 태도를 취할 수 있는바, 이에 대해 Jan Joerden, Logik im Recht, 2005, 199 ff. 참조. 41) Kelsen (주13), 210; ders., Allgemeine Theorie der Normen, 1990,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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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2 법철학연구
원을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권적으로 정립된 규범들에 있어서도 그 정립으로부터 이를 통해
생성된 법의 현실적 차원이 나오는지 분명하지 않다. 어떤 사물의 창조를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 그 사물의 본질적 성격에 대한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에 법의 생성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 그와 같은 이유만으로도 법을 의미하지 않
는다. 즉 예컨대 성문법의 제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태어났다는 사실은 그 법
률제정의 필수적 조건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태어남은 무엇이 법의 성질을 형
성하는지와 무관하다. 하나의 사물이 갖는 모든 필수적 성격들이 그 사물의 본
질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42)
그러므로 법의 현실적 차원을 의심하기 위해 그 어떤 입법행위 없이도 순수
하게 관념적인 법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사실 이 점을 전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지
만, 여기서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는다)을 주장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법이 경
험적 행위를 통해서만 생겨난다는 이유에 기대어 사회적 행위들을 수단으로
정립된 법은 어떤 사실적인 차원을 갖는다고 하는 점에 대해 다투는 것으로
족하다. 법을 형성하는 것, 즉 법의 규범성은 그 생성행위들과는 무관하고, 이
것들 자체는 그 필요성이 상정된 경우마저도 법의 성질에 대한 근거가 되지
않는다. 규범의 원천과 효력은, 규범정립과 그 결과로서의 규범처럼 구별되
어야 한다.
이 점은 다른 관념적인 것들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어떤 시점에 구전되
거나 문서로 기록되지 않은 옛이야기의 존재에 대해 다툴 수 있고, 그 존재에
대하여 특정한 사실적 행위들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
정한 구전 내지 기록과 같은 사실적 행위가 그 전승을 위해 중요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옛이야기의 본질을 형성하는 것은 아니다. 언제 어디서 정확하게 하나
의 옛이야기가 탄생했는지는 거의 추적될 수가 없다. 옛이야기의 본질을 이루
는 것은 그것의 관념적 내용, 즉 그것을 전해 주는 중에 재현될 뿐인 그 이야기
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체스와 같은 게임들에 있어서, 창작행위 없이 게임들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 해도, 언제 그리고 어디서 그것들이 처음 만들어졌는
42) Kit Fine, “Essence and Modality”, Philosophical Perspectives 8 (1994), 4; 이에 대 한 논의로 Teresa Robertson / Philip Atkins, “Essential vs. Accidental Properties”, in: Zalta (주2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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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주의도 자연주의도 아니다 503
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게임들의 성질과 관련하여 그것들을 구성하는 규칙
만이 결정적이다. 이러한 규칙은 하나의 특정한 관념적 내용에 국한되고, 적어
도 창작 후에 일정한 형체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법에서도 무엇이 법의 성질을 형성하는지의 문제는, 무엇이 법의 성
립에 필요한가의 문제와는 다른 것이다. 규범을 만드는 입법행위에 대해 논하
지 않고도 규범의 내용은 제시될 수 있다. 이 점은 왜 어떤 규범이 특정의 내용
을 갖는지에 대한 논거로서 입법의 사정들을 사용하는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경우 특정의 규범내용에 대한 방법론적 정당화가 문제 되고, 그 내용
의 재현이 문제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법률 내용을 정당화하는 논거들과 이
를 통해 정당화되는 내용은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규범의 내용은 규범생성의 시점과 장소에 대해 논하지 않고도 제
시될 수 있다. 그 규범이 처음 인정되었던 것보다 더 이른 시점이나 다른 장소
에서 만들어진 것임이 밝혀진다 해도 규범 내용의 동일성은 유지된다. 규범을
형성하는 것과 관련하여 규범의 내용과 효력만이 결정적이다. 양자는 관념적
이고, 경험적으로 해명될 수 있는 사실적인 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비록 그 어
떤 예외도 없이 유권적 법정립의 필요성을 전제할지라도, 이로부터 법의 현실
적 차원이 도출되지 않는다. 이러한 법은 관념적인 것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그럼에도 법의 생성에 대해서는 어떤 경험적 사실행위가 요구될 수도 있겠다.
- 사회적 효과의 요구
법의 현실적 차원의 필연성을 보여준 다는 두 번째 논거는, 법이 법으로 존
재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효과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43) 이것 역시 매우 까다
로운 전제조건인데, 왜냐하면 하나의 법규범이 사회적 효과 없이 존재할 수 있
다는 점을 의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효과의 부재로 관련 대상이 실제로
사라지는가? 이는 현실 안에서 효과 없는 “죽은” 규범들에 대해 말할 수 있고
그 내용을 해석할 수 있다는 이유만 생각해 봐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마찬가지
로 어떤 특정의 규범이 규정에 따른 정립에도 불구하고 가령 관련된 사실관계
43) Alexy (주7), 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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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존재하지 않아 사실상의 효과를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이 그러한 규범이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가정하도록 만들지는 않는다. 한 규
범의 존재와 효과는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 이 개념들의 기저에는 상이한 질
문들, 즉 하나의 규범이 존재하는지, 그 내용이 구속적인지 그리고 그 규범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가 놓여 있다.
예컨대 로마법이 실제로 적용되지 않는 법으로서 사회적 효과 없이 현재 계
속 존재한다는 점은 사회적 효과 없음을 이유로 그 존재에 대해 다툴 필요 없이
확인될 수 있다.44)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관련성 있고 해석할 수 있는 로마법
대전(corpus iuris civilis)의 규범들이 과거에 대해 말할 필요 없이 존재한다. 이
러한 점에서 로마법은 가령 로마의 몰락과 같은, 예전에 일어난 특정의 사실들
이 기초를 이루고 있는 역사적 사실과는 다른 것이다. 로마법에 대한 논의에서
보통 로마법대전의 탄생과 같은 지나간 사건이 관계되지 않고, 이를 통해 만들
어진 법, 즉 그 내용이 이러한 사건과 분리될 수 있는 그런 법이 다루어진다. 그
러므로 관념적인 것으로서의 로마법은 그것이 사실적 효과를 잃어버렸다는
이유로 소멸하지 않는다. 마치 옛이야기의 존재를 지금 당장 아무도 그 얘기를
전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의심하는 것과 같이 사회적 효과가 없다는 이유
로 로마법의 존재가 다퉈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규범의 효과와 존재를 구별할 필요성은 장래의 규범들에서도 나타난다. 이
러한 규범들이 정치적 논의로 들어오게 된 후에는, 이들은 효력은 없으나, 제
안되고 그러한 범위에서 가능한 법(mögliches Recht)으로서 존재한다. 이 규범
들이 의결 전에 이미 가능한 법으로서 존재하지 않는다면, 민주적 담론에서 의
미 깊게 논쟁할 수 있을 것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장래의 법
은 유효하지도 않고 효과도 없더라도 법의 한 종류이다. 이러한 이유만으로도
왜 사회적 효과가, 그것의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는 법의 성질에 포함되어야 하
는지 불분명하다.
이로써 사회적으로 효과 없는 법이 존재할 수 있다면, 법의 이중성을 실정법
44) 이와 달리 Hart (주11), 101은 로마법을 여전히 효과가 있는 것처럼 고찰하려고 한 다. 그러나 로마법의 효과에 대해 진술하지 않고서도, 로마법에 대해 말할 수 있다. Husserl (주18), 11은 로마법은 로마의 멸망에서 살아남지 못했다고 말하지만, 그 것에 지속적인 영향을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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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주의도 자연주의도 아니다 505
에 국한하여 옹호하는 것이 쉽게 떠오른다. 이때 이 입장은 실정법은 최소한의
사회적 효과를 전제하기 때문에 이중적 성질을 가지며, 반면에 아직 유효하지
않거나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법의 성질에 대해 말할 것이 없다고 할 것
이다. 로마법과 장래의 법은 이런 식으로 법의 성질에 대한 분석에서 제외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제한은 법의 이중성 논제에 있어 곤란할 수 있는데, 왜냐
하면 그러한 제한은 법의 성질이 아닌 법의 하위부류인 실정법에 대해서만 일
반적인 진술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밖에 왜 유권적 정립에 근거하
지 않은 방법론적 규범들이 그러한 정립에 근거한 기타 규범들과 마찬가지로
법에 포함될 수 있는지를 설명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위 경우 어떻게 입법을 통해 장래의 법으로부터 현재 유효한 법이 나
올 수 있는지 그리고 현재 유효한 법으로부터 어떤 다른 입법행위를 통해 예전
의 법이 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것을, 관념성 이론과 다르
게, 입법은 한 규범의 효력을 부여하거나 박탈하여 그 규범의 성격을 변경하지
만 근본적이고 관념적인 대상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고 서술할 수는 없을 것이
다. 이러한 관념적 대상은 모든 입법행위들을 넘어, 특히 그 내용적 연속성으
로 나타나며 존재하고 있다.
오히려 이중성을 옹호하기 위해서는 입법으로 하나의 새로운 대상이 생성
될 것이라는 점을 주장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법이기 위하여 규범들이 실제
로 어떤 최소한의 효과를 가져야 한다면, 이미 그 개념상 입법 전에 효과 없는
법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대신 법이 아닌 것(Nicht-Recht)과 관련될 것
이다. 그러나 왜 입법행위를 통해 내용적 의미가 변경되지 않음을 이유로 하나
의 입법제안과 그로부터 변함없이 의결된 법률의 기저에 동일한 관념적 대상
이 놓여 있는지를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또 이전에 유효했던, 현재의 그리고
장래의 법이 갖는 내용적 연속성이 개념적으로 적절하게 파악될 수 없을 것인
데, 왜냐하면 법과 법이 아닌 것처럼 근본적으로 다를 수 있는 대상들에 내용적
연속성을 부여해야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법의 이중성 논제에 수반하는 실정법으로의 국한은, 법은 필연적
으로 하나의 특정한 효과를 전제한다는 가정과 유사한 어려움을 초래한다. 효
과와 존재 사이처럼, 여러 견해45)와 달리 규범의 존재와 효력 사이도 구별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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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 법철학연구
수 있다. 한 규범이 존재하는지 또는 아닌지는 그 규범이 유효한지의 문제뿐만
아니라 어떠한 효과를 그 규범이 갖는지의 문제와도 구분된다. 하나는 규범의
존재론에 관한 것이고, 하나는 규범의 규범성 그리고 또 하나는 규범의 사실성
과 관계된다. 왜 이러한 관점들을 그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분리할 수 없고 또
한 법의 다양한 종류에 대해 말할 수 없는지 분명치 않다.
어떤 법체계가 각각의 개별적 규범에 대해 최소한의 효과를 요구한다면, 전
체적으로 효과 있는 법체계조차 그 어떤 종류의 규범도 효과 없이는 포함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여러모로 인간 복제와 같은 가정적 상황들과 관련하여 만들
어진 규범들을 놓고 볼 때 잘 납득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은 규범들은 그것
들이 완성 단계의 기술이 아직 부족하여 현재 효과를 펼치지 못하고 그 규범이
가져올 장래의 효과가 불확실한 경우라도 유효하다. 그런 까닭에 법체계들은
보통 하나의 규범이 효과를 보이지 않을 때 바로 그 효력을 잃는다는 것을 예정
하지 않는다.46) 효과가 없다는 것은 그저 관련된 사실관계가 없다는 점에 기인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 한 규범의 효과와 효력을 연결하는 경우 왜 그 규범을 처음 적용해야
하는 규범적용자가 규범의 유효성을 전제해도 되는지 잘 이해되지 않을 것이
다. 왜냐하면 모든 규범이 필연적으로 하나의 현실적 차원을 갖고 여기에 규범
의 효과가 속한다면, 그 규범적용자는 효과가 없으므로 그가 적용할 수 있는 규
범도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전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어떤 규범의
첫 적용들이 효과에 대한 그와 같은 검토들 없이 일어난다는 점은, 규범의 효력
은 그 효과에 달려 있지 않고 이러한 이유만으로도 효과는 규범 성질의 한 부분
일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 준다.
위와 같은 가정 역시 제한하고, 한 규범의 효력과 관련하여, 반드시 효과가
45) Kelsen, Allgemeine Theorie der Normen (주40), 22; Raz (주15), 146. 효력 (Geltung) 개념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로 von der Pfordten, “Kritik der Geltung”, in: Michael Quante, Geschichte – Gesellschaft - Geltung, 2016, 693, 696. 46) 한 규범의 관습법적 폐지(desuetudo)는 상당한 이유로 꽤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효 과가 없을 것을 요구하는바, BGHZ 1, 369 (375) = NJW 1951, 800 (801), 그러므로 그저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를 위해 높은 요구들이 제시되기도 하는데, 가 령 Aleksander Peczenik, “The Passion for Reason”, in: Luc Wintgens, The Law in Philosophical Perspectives, 1999,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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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주의도 자연주의도 아니다 507
있지는 않더라도 전체적으로 보아 효과 있는 법체계의 한 부분이라는 점47)만
을 요구한다고 할 수도 있다. 실행되지 않은 규범은, 같은 법체계의 다른 규범
들이 실행되는 한 유효할 수도 있겠다. 물론 이때 어떻게 다른 규범의 이러한
효과가 그 실행되지 않은 규범들의 성질을 형성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 것이
다. 이 경우 모든 개별적 규범의 성질이 적어도 전체적으로 보아 효과 있는 다
른 규범들이 존재한다는 것에 달려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모든
개별적 규범의 법적 성질이 다른 규범들의 효과에 종속될 것이다. 각 규범이
갖는 법으로서의 성질 중 한 부분이 전체 법체계의 효과가 될 것이다. 한 법체
계의 여타 다른 규범들에 대해 다루지 않고서는 하나의 개별 규범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을지 모른다. 어떤 면에서 보면 한 개별적 규범의 대상이 사라질
것인데, 왜냐하면 다른 규범의 효과에 관해서 알 때 비로소 그 개별적 규범의
존재를 전제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전체 법체계의 효과에 개별규범이 갖는 법으로서의 성질이 종속됨
은, 이 효과가 개별규범의 성질에 있어 무엇인가 변경됨 없이 변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가령 특정의 규범들이 사회적 효과의 측면
에서 그 적용을 위한 사실관계들이 없었기 때문에 일단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
할 수 있으나, 그 후에 주저하며 실행되고 결국 광범위하게 관철될지 모른다.
이러한 모든 변화에도 불구하고 이로부터 독립적인 개별규범은 변하지 않고
남아 있다. 이를 통해 그 규범의 성질이 변할 수는 없다. 이는 한 법체계의 사회
적 효과를 그 체계의 개별규범들이 갖는 성질에 포함시키면 안된다는 것을 보
여 준다.
법의 이중성에 반대하는 이러한 논거는, 법의 효력을 위해 법이 전체적으로
보아 효과가 있을 것을 요구할 수 없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이 점은 불확실할
수 있다. 여기서는 이러한 효과에 개별규범이 갖는 법으로서의 성질이 종속될
수 없다는 것만이 중요하다. 이에 그 어떤 유효한 법도 최소한의 사회적 효과
를 전제하나 이로써 관념적 차원 외에 필수적으로 현실적 차원이 드러난다는
전제가 강요되는 것은 아니라는 논제를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현실
47) Kelsen (주13), 10; Hart (주11), 101; Raz (주15), 104; ders. (주38), 157; Alexy (주 7), 201; Koller (주18),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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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8 법철학연구
적 차원은 한 규범의 법으로서의 성질을 위한 것이 아닌, 한 규범의 효력을 위
해서만 필요할 것이다.
이에 따라 법의 효력은 사실 어떤 최소한의 효과를 전제하였다. 그러나 이러
한 효과는 법의 효력조건을 표현하는 규범의 구성요건표지 안에서만 수용될
뿐, 법의 필수적인 특성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며 법을 정의하는 데 중요
하지도 않다. 왜냐하면 항상 구성요건표지와 이 표지가 가리키는 사회적 현실
은 구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표지는 규범의 부분이자 법의 부분이나,
그 표지 안에서 관련된 현실은 규범과 법의 부분이 아니다. 한 건의 살인이 독
일 형법 제211조의 요소가 아니라 독일 형법 제211조가 가리키는 사건일 뿐인
것과 같이, 효과는 법의 부분이 아니고 기껏해야 법의 효력을 위한 하나의 조건
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한 규범의 사실적 효과는 잘해야 법의 효력조건들을 제
시하는 규범의 참조대상을 구성할 뿐이고, 법의 성질을 정하지는 않는다.
또한 규범들은 다른 사실적인 주어진 사정들과도 관계될 수 있는바 이때 이
렇게 주어진 사정들이 규범들의 부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어떤 법률이
긴급사태를 위해서만 유효하다면 이러한 긴급사태는 규범의 현실적 차원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고, 규범 적용이 허용되는 조건일 뿐이다. 그러므로 규범과
규범이 가리키는 대상들 사이는 엄격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이는 규범의 효력
조건들 및 기타 내용에 적용된다.
그러므로 법이 효력을 펼치기 위해 전체적으로 보아 효과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공유할 때에도, 법을 오로지 관념적인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언급된
법의 중심적 특성들, 즉 법의 비감각적 성격, 법의 의미상 불변성, 법의 번역가
능성 그리고 규범성은 그 효과에 종속됨 없이 존속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효과
는 법의 도덕적 정당성에 있어 법의 효력에서와 마찬가지로 중심적인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법이 갖는 법으로서의 성질은 그와 같은 효과를 규정할 수는
없다.
그 외에 법의 이중성 논제는 어떻게 법의 현실적 그리고 관념적 차원이 상호
작용하고, 이로써 하나의 통일체를 ―이것 없이 법은 구분가능한 대상으로서
존재하지 않았다― 형성할 수 있는지에 대해 해명해야 하는 어려움 앞에 서 있
다. 결국 이러한 차원들은 범주적으로 상이한 영역들에 속하는데, 그것들의 상
호작용은 그리 명확하지 않다. 이는 특히 규범들이 저절로 관철되고 이에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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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주의도 자연주의도 아니다 509
를 낳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분명해진다. 어떤 규범이 존재한다는 점은 어떻
게 인간이 사실적으로 행동하는지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하나의 경
험적인 효과를 펼치기 위해 규범들은, 그것들을 준수하고 적용하거나 다른 방
식으로 그로부터 영향받을 수 있는 인간을 필요로 한다. 인간의 행위 없이 법
은 순수하게 관념적인 것으로서의 규범에 머무른다. 여기에 법의 유한성이 나
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의 관념적 성질과 현실적 성질 사이의 상호작용이 설
명되고 이와 더불어 이중성 논제가 옹호될 수 있는가? 이를 위한 하나의 가능
성은, 법개념에 인간의 실행행위들을 포함시켜 그 법개념을 확장하는 것일지
모른다. 이 경우 사실 실행행위들을 수단으로 하여, 어떻게 관념적 차원과 현
실적 차원이 상호작용하는지가 설명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법과 법의 관철을 개념적으로 구별할 수 없게 될 것인바, 왜냐하면 후자가 이미
전자의 부분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은, 법이 그 실행과 함께 비로소 생성될
것이고, 그전에는 실행할 수 있을 것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만
으로도 설득력이 떨어져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경우 인간의 행위들이 그것의 모든 특성들, 예컨대 구
체적인 한 사람, 특정한 장소 그리고 특정의 동기에 의해 수행되는 점과 함께
법의 부분으로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법의 내용에 아무것도 기여하
지 않는 특성들로 법에 과부하가 걸리게 될 것이다. 법을 하나의 관념적인 것
으로 인식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인데, 왜냐하면 위의 경우 그 규범적 내용을 생
생하게 떠올리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법이 실행되는지 또 어떻게 실행되는
지도 항상 알고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규범을 실행하는 행위가 각 적용
되는 규범의 의미와 범위에 대해 어떠한 종류의 질문도 하지 않고 그 실현행
위와 어떠한 종류의 내용적 변화가 수반되지 않더라도, 하나의 규범은 규범을
실현하는 각각의 행위를 통해 바뀌어 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그와 같이 법에
대한 인간의 실행행위들로 법을 확대하는 것은 그리 매력적으로 보이지는 않
는다.
법의 개념 안에서 관념적 구성요소와 현실적 구성요소를 통합하는 다른 가
능성은 아마 법의 통일성이라는 표상을 포기함에 있을 것이다. 이때 존재론상
관념적인 규범들과 경험적인 현실행위들은 동시에 법에 속할 수 있을 텐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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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 법철학연구
냐하면 그들 간에 관련성이 존재할 필요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것들을 그들 사이의 어떤 내적 결합 없이 그저 하나의 전체집합으로 서로를 묶
어 버릴 것이다. 범주적으로 아주 상이한 것들의 한 덩어리가 탄생할 것이다.
법의 통일성은 사라질 것인바, 왜냐하면 그것은 관념적 요소들과 현실적 요소
들을 하나의 집합에 맞춰 넣는다는 결정에 근거할 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
소들은 서로 다른 특징들을 내보이기에 법이 통일적 특징들로 그려질 가능성
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구상으로는 아무 것도 얻어지지 않
을 것이다.
이와 달리 법이 그의 요소들이 내용적으로 서로 결합된 하나의 통일성을 형
성한다면, 그로 인해 법은 동시에 관념적인 요소들과 경험적-현실적인 요소들
로 구성될 수 없다. 그렇게 구성될 경우 법은, 그 부분들이 범주적 차이 때문에
내용적 통일성을 형성할 수 없는 하나의 자웅동체가 되고 말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도 법의 이중성 논제는 수긍할 만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Ⅳ. 관념적 성질의 귀결
- 편재성(遍在性, Ubiquität)
법의 관념적 성격을 생생하게 그려 보았다면, 물질적인 것들을 나타내는 모
든 특징들이 법에 부재한다는 것 역시 분명해진다: 공간, 시간 그리고 물리법
칙에의 종속.
우선 법적 규범들의 공간에 대한 관계를 살펴보자. 적어도 두 가지 관점에서
그것들 사이의 관계가 가능하다. 하나는 규범들이 입법행위를 토대로 특정의
장소에서 생성될 수 있다는 것인데, 그 입법행위가 장소와 관련하여 구체화될
수 있는 행위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규범들은 어느 특정의 공간에
서 일정한 행위들을 규정함으로써 그 특정한 장소에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념적 존재로서의 법은 공간적 차원을 갖지 않는바 이
에 법은 공간적인 것이 아니다.48) 법은 특정한 넓이를 갖지 않으며 물리적으로
특정의 장소와 연결되지도 않는다. 법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규범은 규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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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주의도 자연주의도 아니다 511
기준들에 국한되는데, 이들은 그 실존양식상 공간적 실체를 갖지 않는다. 어떤
특정의 규범이 유효하다면, 그 규범이 모든 장소에서 유효하지는 않을 경우라
도 그 규범의 효력은 동일한 자격으로 모든 장소에서 주장될 수 있다. 왜 그 규
범이 어떤 특정 법체계의 부분인지에 대한 이유들은 어디서나 동일하기 때문
이다. 한 규범이 예컨대 중국법의 부분인지는 항상 그와 같은 이유들에 달려
있는데, 중국이나 독일에서 그 증명을 위해 노력하는지는 이와 관계없다.
이러한 점은 물리적 대상들과 달리 법을 경험적으로 탐구할 수 없다는 결과
를 낳는데, 왜냐하면 법을 측정할만한 장소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칸디
나비아 법현실주의는 이것을 단점으로 파악하고, 대신 법을 정신적인(mental)
것으로 간주하려 한다.49) 사실 이러한 시도는 실패로 판단되는데, 그 이유는
법의 모든 내용이 정신에 재현된다는 보장이 어디에도 없다는 점에 있다. 예컨
대 개별적으로 아직 그 적용범위가 고려되지 않은 규범들의 조합으로부터 도
출되기 때문에 지금까지 아무도 아직 확인하지 않은 법적으로 옳은 명제들이
존재할 수 있다.
그래도 법이 비공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하나의 단점이라는 것에 대해 바
로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즉 경험적 접근가능성이 없다는 점은 규율하는
규범과 규율되는 대상 사이에 어떠한 종류의 공간적 관계가 존재할 필요가 없
다는 하나의 장점을 수반한다. 그래서 규범들은 아무도 있지 않았던 그리고 어
쩌면 아무도 오지 않을 장소들, 즉 우주에서 대부분의 장소들과 같은 곳에도 적
용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한 장소에서, 문서적으로 내지 전자적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보다 더 많이 법률들은 유효할 수 있다. 독일의 모든 평방 센티미터
위에서 거기에 대해 쓰여질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규범들은 유효하다. 법은
더욱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 장소들에도 적용될 수 있다. 예컨대 이제야 계획된
고층 건물에 대한 임대차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50) 연안 지역에서 쌓아 올리는
토목공사를 통해 하나의 섬이 생성되기 전에 이미 이 섬에 대해 도로교통법이
48) 이와 달리 Sabine Müller-Mall, Legal Spaces, 2013, 3, 49 ff.는 법을 공간적으로 생 각하는 것에 대해 찬성하는바 여기서 물론 공간을 “비영토적(非領土的)” 개념으로 사용한다(66). 49) Karl Olivecrona, Law as Fact, 1939, 47. 50) BGH, NJW 2007, 3273 Rn.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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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 법철학연구
적용된다. 모든 장소에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법의 이러한 특성은 법의 편재
성이라 표시될 수 있다.
법의 편재성에 있어 중요한 것은, 그 편재성을 공간이 갖는 특징으로서 파악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두 장소는, 그것들의 공간적 위치를 제외하고, 그 장소
들에 적용되는 법률들이 완전히 다르더라도 동일한 물리적 특성을 가질 수 있
다. 이는 한 장소에 적용되는 법은 이 장소 또는 그 장소의 상태가 갖는 특성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법의 편재성 논제는, 법이 모든 장소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장소에 대해 규범적 효과를 펼칠 수 있고 이러한
의미에서만 모든 장소에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효과는 장
소와의 상호작용 안에서 드러남 없이 그 장소에 대한 지시관계에 국한된다.
입법행위의 장소와 규율되는 장소 사이라도 물리적 관련성이 있을 필요는
없다. 입법자가 그 규율되는 장소에서 인간의 행위를 조정하는 것만을 할 수
있으므로 사실 그러한 관련성이 일반적으로 없지는 않다. 그러나 한 법률이 그
의결과 함께 즉시 효력이 발생하고 이로써 그 법률로 규율되는 장소에 직접적
으로 효과를 펼치는 것이, 그곳에 그 새로운 규율에 대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
기 전에도 가능하다.
이러한 이유에서 법의 관념적 성질은 사실들이 할 수 있을 것을 넘어서는 규
범들의 효과를 가능하게 한다. 그러므로 그 관념적 성질은 단점이 아닐뿐더러,
어떤 방식으로 법이 자신의 광범위한 규범적 효력을 펼치는지에 대한 이해의
열쇠가 된다. 자유의 영역들을 구획하고 이익들을 보호한다는 법의 과제를 법
이 실현해야 한다면, 법은 비록 그 생성과 효과가 어느 특정한 장소와 결부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 특정 장소에서의 체현(體現)에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 인
간들이 어떤 특정의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에 대한 근거로서 법을 진지하게 받
아들일 수 있다는 점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에 어느 특정의 장소에 대해 이러
한 근거가 종속됨은 그저 번거로운 방해가 될 뿐일 것이다.
- 지속성(Persistenz)
법의 관념적 성질로부터 나오는 두 번째 특성은 규범들의 지속성이다. 이것
은 한번 유효한 법이, 생물학적 존재처럼 영양공급을 필요로 하거나 물리학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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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주의도 자연주의도 아니다 513
체계에서 증가하는 엔트로피의 경우와 같이 변하지 않고, 스스로 존속하는 상
황을 나타낸다. 언제 한 규범이 그 효력을 상실하는지에 대해 미리 조건들을
기술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점 역시, 규범이 그러한 제한 없이 변하지
않고 계속 효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역설한다.
법과 함께 하는 일상에서 법의 지속성은 너무 당연한 것이어서 눈에 띄지 않
는다. 물론 자연주의처럼 법을 특정한 사실들로 환원하려 한다면,51) 규범들의
지속성은 불가사의한 것이 된다. 왜냐하면 형체를 가진 대상들은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법을 영속하는 사건으로 파악하는 것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위 경우 지속성의 자연주의적 설명에 있어 예컨대 일어난 입법
행위와 같은 종결된 사건들을 지시할 가능성만이 남기 때문인데, 이는 이러한
입법행위가 더 이상 변경될 수 없다는 점에 기인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과거
에 대한 참조는 법의 지속적인 효력을 설명할 수가 없는바, 이러한 지속효는 이
미 발생한 것에만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법은 규범적 효과를 어떠한 종류의
입법행위도 이루어지지 않는 시간을 위해서도 펼친다. 법의 지속성은, 장소와
시간에 따라 특징지어질 수 있는 사실들에 대한 참조가 제공할 수 없는 해명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점에서 법은 다른 관념적인 것들, 즉 그 발생 후에 기타 다른 행위에
의존함 없이 존속할 수 있는 것들과 유사하다. 이것은 예컨대 작곡된 이후 존
속하기 위해 반드시 연주되어야 할 필요가 없는 음악의 선율과 같다. 그 선율
의 식별에 있어, 한 규범의 식별을 위하여 그 입법행위를 명명하는 것이 쓸모있
는 것과 같이, 작곡가들을 지시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지시들은 어떻게
선율과 규범이 스스로 존속하는 것이 가능한지를 해명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관념적인 것들로서 물질적인 대상과는 달리 쇠진하지 않고, 시간적 한계가 정
해진 사건들을 말하지 않는다.
편재성과 같이 법의 지속성은 법의 기능들을 실현하게 할 수 있는 하나의 장
점이다. 한번 의결된 규범들이 스스로 존속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입법자는 새
로운 법의 제정에 몰두할 수 있고 지금까지의 규범들을 영원히 유지해야 할 필
요가 없다. 내용적으로 어떤 재검토는 때때로 타당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51) 위 주1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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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4 법철학연구
입법자에게 열려 있는데, 왜냐하면 규범들은 애당초 그러한 쇄신 없이도 존속
하는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법을 하나의 지속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법을 어떤 특정한 시점 안에서
그리고 시간적으로 변화하는 특정한 사정들과 관련하여 탄생한 것으로 여길
가능성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법의 지속성은 법이 시대정신으로부터 벗어날
지 모른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지속성은 입법자가 어떤 특정 시기에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각각의 표상들에 얼마나 강하게 이끌릴 수 있는지와 무
관하게 모든 규범에 어울린다. 지속성은 낡은 내용들이나 현대적인 내용들, 특
정 시대와 무관한 내용들이나 그 시대에 결부된 내용들 모두에 적용된다. 이것
은 어떤 법규범의 내용에 특별한 품위를 부여하지는 않는바, 규범이 그 지속성
을 통해 자연법의 어떤 영원한 명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도 그러
하다. 한 규범의 지속성이 그 내용과는 독립적이라는 것은 오히려 그 지속성이
도덕적이거나 비도덕적인, 나쁘게 혹은 잘 표현된 규범 모두에 적용된다는 것
을 의미한다. 이는 규범들을 그 관념적 성질에 근거하여 미화시키지 않는다는
점을 뒷받침한다. 규범들은 영원한 것은 아니고, 단지 지속적인 것일 뿐이다.
시간으로부터 독립적인52) 법의 실존양식은 현재에 벌써 장래 발생할 일들
을 규율할 가능성에 있어 특히 명확하게 나타난다. 독일 형법 제242조의 절도
금지는 이와 같이 지금 존재하는 대상들뿐만 아니라 모든 장래의 대상들을 포
착하고, 현재 독일에 사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장래에 비로소 그 행위를 할 사람
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지금 이미, 내일 절도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
다. 이 점은, 관념적인 것으로서의 법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과 대상들
과 관계될 수 있다는 점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있다. 법을 경험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경과들로 축소시킨다면, 존재하는 법의 아직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과
52) 이에 Immanuel Kant, Die Metaphysik der Sitten, AA, 1797/1907, Bd. 4, 296은 법 률관계 안에서 “모든 물질적인 것(시간과 공간 안의 존재에 귀속되는)”을 분리하는 것을 강조한다. 이에 반해 Kaufmann (주3), 123은 Husserl (주18)을 원용하여 법에 “역사성의 시간구조”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이것을 “시대를 뛰어넘는 법적 내용 들이 시간과 역사 안으로 구체화되고 특수화되는 것”이라고 이해하는데, 이는 여기 서 법의 실존양식이 아니라 내용이 문제 되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 준다. Husserl (주 18), 21은 창조된 사물들에 대하여 적어도 “역사적 시간의 흐름에 마주한 어떤 고유 한 견고함”을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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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주의도 자연주의도 아니다 515
대상들에 대한 이와 같은 관련성이 배제되어 버릴 것이다. 하나의 현실적 행위
에, 장래에 대한 그리고 그 현실적 행위 자체 너머를 가리키는 유의미한 내용이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법이 그와 같은 행위가 아닌, 어쩌면 그 행위의 유
의미한 내용과 동일시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법의 규범적 효과들을 과거에 미치게 하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
다. 일반적으로 이 점은 사실 별 의미가 없는바, 왜냐하면 지나간 것들이 일어
나지 않은 것으로 만들어질 수 없고, 규범들을 통해 잘해야 인간의 장래 행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개념적으로 소급효가 배제되지
않는데, 법의 개념 안에 법을 지나간 것에 미치게 하는 것을 금지하는 그 어떠
한 것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가령 어떤 판결이나 행정행위를 소급적인 효과로 취소하거나 위법한
처리를 추후에 합법화할 경우 고려된다. 이를 위해 소급효를 가질 수 없는 것
의 소급효에 대한 의제(擬制)들을 만들어 낼 필요는 없는데, 왜냐하면 애당초
장래의 것만을 규율한다는 시간적 경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렇게 하기로 결정하는지는 법의 존재론에 대한 문제가 아니고, 입법에 있어
제기되는 하나의 윤리적 문제이다. 지나간 것에 대한 규율가능성은 관념적인
것으로서의 법이라는 존재론적 분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금 보여 준
다. 그렇게만 법에서 고전물리학과 같이 시간적 소급효가 없을 거라는 기계론
적 관념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존재론은 법이 갖는 규율잠
재성(Regelungspotenzial)을 규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법과 다른 관념적인 것들에 있어 대부분 지속성 대신 비시간성(Nicht-
zeitlichkeit) 내지 비시제성(Atemporalität)이 언급된다.53) 물론 법규범들에 있
어 그것들이 보통 어떤 특정의 시점에 만들어졌고 그 효력이 그 시간에 달려
있다는 특수성이 고려될 여지가 있다.54) 그러므로 윤리적 규범들이나 근거들
의 경우와 달리, 완전한 시간초월성이 확언될 수 없는데, 법적 규범들의 효과
방식이 윤리적 규범들과 같이 시간으로부터 독립적이라도 그러하다.55) 한 규
53) Künne (주22), 94. 54) Weinberger (주18), 66의 용어로는 관념적 존재들에도 “시간적 좌표들”이 인정될 수 있다. 55) 이에 Stephan Kirste, Die Zeitlichkeit des positiven Rechts und 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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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의 법적인 결과들은 유예기간을 필요로 하지 않고 직접 나타나며, 규범이
예외를 규정하지 않는 한 그 결과들은 시간 속에서 변하지 않는다. 법적인 규
범들이 그 효력 안에서 시간적으로 정해지더라도 그 외에는 시간에 예속되지
않는다는 점을 잘 보이기 위해 오히려 지속성을 언급하는 것이 적당하다. 지
속성은 만들어진 규범들이 시간 안에서 변화하지 않고 존속한다는 점을 명료
하게 한다.
- 합리성적격(Rationalitätseignung)
법의 관념적 성질로부터 나오는 세 번째 특성은 법의 합리성적격이다. 한 규
범의 의미와 정당화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들이 규범의 적용 범위와 다른 규범
들에 대한 관계를 결정적으로 형성하고 그 점에서 이 근거들이 법에 속한다는
것에, 합리성적격이 존재한다. 이와 같은 근거들은 거의 모든 판결들 안에서
발견된다. 그 근거들은 예컨대 한 규범의 결론들, 그것의 전체체계로의 편입
혹은 다양한 원칙들의 형량과 관련된다. 이러한 각각의 경우에 법적 진술의 정
당화는 어떤 특정한 법률이 특정의 시점에 공포되었다는 지시에 국한되지 않
는다. 오히려 개별적 입법행위들에 부분적으로만 근거하는 합리적 논거들을
수단으로 법의 내용은 탐구될 수 있다.
여기서 이와 같은 법의 합리적인 규정이 달성되는지는 불확실할 수 있다. 비
록 법을 형성하는 합리적인 근거들이 법의 내용을 완전하게 규정하지 못하더
라도, 그 근거들은 얼마나 그 근거들의 함량이 충분한지에 따라 여하간 법의 내
용에 영향을 미친다. 이것이 자명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자연주의가 주장하
듯 법이 경험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사실로 환원될 수 있다면, 법의 내용에 대
한 논거들은 특정의 시점에 실제로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확인하는 것에 제한
되어야만 할 것이고, 이를 위해 자연과학적 법칙들만을 지시할 수 있을 것이
다. 애당초 한 규범의 의미, 전체체계에서 그 규범의 지위 그리고 그 규범이 갖
는 법윤리적 의미에 대한 합리적 논거들과 관련된 공간이 없게 될 것이다. 그
Geschichtlichkeit des Rechtsbewußtseins, 1998, 353은 “시간에 대한 법적인 ‘시간 초월성’”을 언급하는데, 물론 “탈시간적 규범”은 어떤 고유한 “법학의” 시간에 예속 된다는 점을 전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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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주의도 자연주의도 아니다 517
렇다면 개별적 법적 진술들은 결합 없이 그저 나열되거나 서로를 인과율적으
로 조건지어야 할 것이다. 의미 있는 관계를 위한 공간은 없을 것이다. 합리적
인 근거들은 법의 부분도 될 수 없고 법의 내용을 만들어 낼 수 없게 될지도 모
른다.
규범들이 관념적 성질을 갖고 이로써 칸트적 용어로 “자연의 왕국이 아닌,
원리들이 권력을 갖고 있는 자유의 왕국에”56) 속한다는 이유만으로도, 규범들
은 합리적 논거들의 유용한 대상이다. 법적 진술들이 자연과학적 인과법칙에
예속되지 않음은, 이 인과법칙을 결정론적으로 혹은 개연적으로 이해하는 것
과 상관없이, 일단 합리적 근거들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자유공간을 창출한다.
이러한 합리적 근거들은 다양한 진술들의 유의미한 관련성을 확인할 수 있는
데, 예컨대 하나의 진술이 다른 진술을 구체화하고 제한하거나 보충하는 것이
그것이다. 자연주의적 관점에서는 이러한 점이 중요하지 않을 것인데, 왜냐하
면 이 경우 애당초 법은 의미가 아닌, 시공간에서의 등장에 따라 판단될 수 있
는 대상에 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법의 관념적 성질 덕분에 법은 합리적 근거들을 통해 형성될 수 있
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여기에 규범논리학의 근거들만이 포함되는지 또는
법윤리적 그리고 경제적 근거들 역시 들어가는지 아니면 그것들 가운데 한 부
분만이 포함되는지는 이곳에서 열린 채 남겨질 수 있다. 여기서 어떠한 근거들
이 개별적으로 법적 논거들로 인용될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법은 그
성질상 그러한 종류의 근거들이 전반적으로 진입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에 법은 물질적 대상들과 구별되는데, 물질적 대상들에 대해 사실
합리적으로 논의할 수는 있지만, 그와 같은 근거들은 처음부터 그 물질적 대상
들의 부분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러므로 법의 존재론적 관념성은
법의 본성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열쇠이다. 법이 자신의 관념성 안에서 그와
같은 존재론적 성질을 합리적 근거들과 마찬가지로 내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도, 합리적 근거들은 법을 특징지을 수 있다.
56) Immanuel Kant, Die Religion innerhalb der Grenzen der bloßen Vernunft, 1793, Akademieausgabe, Bd. IV, 1968,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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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법철학연구
Ⅴ. 나가며
법의 존재론적 성질에 대한 문제가 근본적인 만큼, 그 각각의 관점들, 예컨
대 법의 공간 외적 그리고 지속적인 특성 같은 것들에 대해 독자적인 논의를 할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묶어진 형태로 법의 중요한 특성들, 즉 법
의 편재성, 지속성 그리고 합리성적격이 논의되었던 것은, 그것들이 개별적인 경
우보다 함께 할 때 더 명확하게 법의 관념적 성질을 전달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외에 이 특성들에 대한 개관은 이러한 성질이 법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만이 아니라, 어떻게 법이 그의 기능들을 실현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말하는
의미를 보여 주려 했다. 자유영역의 구획과 일반적 법률들을 수단으로 한 행동
의 조정은, 법이 특정의 표현 혹은 특정의 물질적 체현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매개물을 통해 아주 다양한 형태로 연관될 수 있는 어떤 관념적인 것을
나타내기 때문에 가능할 뿐이다. 여기서 법이 변함없이 존속하고 원칙적으로
하나의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번역될 수 있다는 점은, 사실들과 동일시될 수 없
고 이에 따라 특정의 시간과 장소에 구속되지 않는 의미들이 법을 본질적으로
구성한다는 점에 근거한다.
그러한 이유에서 법의 관념적 특성과 이에 수반되는 경험적 접근 불가능성
은, 실증주의적 혹은 자연주의적 이론들을 수단으로 하여 극복하려고 시도해
야 하는 단점들이 아니다. 오히려 그 관념적 특성과 경험적 접근 불가능성은
법이 자신의 기능을 실현할 수 있게 하는 장점들을 의미한다. 어떤 경우든 그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를 소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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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2 법철학연구
Abstract
Neither Idealism nor Naturalism
―About the Objective of an Ideality Theory of Law―
Lorenz Kähler / translated by Seongbum Lee
Law is an ontologically ideal entity. This feature shall be explored in
order to explain why law cannot be perceived by the senses, why its
contents can remain constant over time, why it can in principle be translated
and why it does not have a dual nature. Due to law’s ontologically ideal
nature it is independent from time and space, normative in kind and open
for rational arguments. Although law can in many regards be abstract, its
ontologically ideal nature has to be distinguished from abstractness.
법의 성질(Rechtsnatur), 법의 관념성(Idealität des Rechts), 이상주의
(Idealismus), 법의 이중성(Doppelnatur des Rechts), 편재성
(Ubiquität), 지속성(Persistenz), 합리성적격(Rationalitätseignung),
규범성(Normativität), 추상성(Abstraktheit)
색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