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과 형법 - 노동력의 형법적 보호를 둘러싼 후고 진츠하이머와구스타프 라드브루흐의 대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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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왕_노동법과 형법 229
노동법과 형법
- 노동력의 형법적 보호를 둘러싼 후고 진츠하이머와
구스타프 라드브루흐의 대립과 화해 -
윤 재 왕*
contents
I. 서 론
Ⅱ. 노동력에 대한 형법적 법익보호 - 라드브
루흐의 구상
Ⅲ. 노동력의 노동법적 보호 - 노동법의 자율
성과 독자성에 기초한 진츠하이머의 라드
브루흐 비판
- 근로자 보호가 근로자 처벌로 전도될
위험성
-
형법의 비효율성
-
노동법의 자율성과 형법에 대한 우위
Ⅳ. 노동법과 형법의 제자리 찾기 - 법률가
대회의 토론과정과 그 이후의 몇 가지
이야기
논문투고일자 : 2013. 9. 9, 심사일자 : 2013. 9. 30, 게재확정일자 : 2013. 10. 5 *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학박사(Dr. j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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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 노동법포럼 제11호(2013. 10)
Ⅰ 서 론
법이 존재한다는 것은 법의 대상영역으로 예상되는 사람들을 적어도 법적 측면
에서는 평등한 존재로 인정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즉, 법은 일반성과 보편성을 통
해 그 법의 적용대상이 ‘누구인가에 관계없이(ohne Ansehen der Person)’ 불편
부당한 공정성을 확보한다는 의미에서 법이다. 이미 입법과 판결을 구별하는 고대
의 이론(특히 아리스토텔레스)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졌던 ‘법률의 일반성’에 관
한 사고는 모든 개인의 보편적 자유와 평등을 법질서의 구성원리이자 그 정점으로
삼았던 근대 법질서에서는 구체적 현실에서 이 사고가 얼마만큼 실현되어 있는지
에 관계없이 그 자체에 대한 반박을 허용하지 않는 공리(Axiom)의 지위를 누리게
된다.1) 이 점에서 ‘자유와 평등’은 하나의 이데올로기이자 동시에 법질서가 궁극
적으로 추구하는 목표라는 의미에서 하나의 이념(Idee)에 해당한다. 따라서 근대
의 민주적 헌법국가는 근대가 생산한 또는 근대라는 진화과정 속에서 탄생한 이데
올로기이자 이념인 셈이다.
헌법 하위의 영역에서 민법과 함께 근대 법질서의 중추에 해당하는 형법 역시
근대법의 이데올로기적 기반 위에서 모든 사람을 똑같이 형법질서의 수범자로 전
제할 뿐만 아니라, 형법적 보호대상도 특정한 사람 또는 특정한 집단이나 계층에
국한시키지 않는 보편성과 일반성을 특징으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형법은 하나의
법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사회적 및 경제적 측면에서 평등하다는 가정에서 출발한
다. 문제는 이러한 가정이 구체적 현실과는 무관한 하나의 가정으로 고정될 경우
곧바로 이데올로기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현실 속에서 이 가정이 전혀
충족되지 않은 상태라면 형법이 표방하는 형식적 평등은 이를 현실에 적용할 경우
필연적으로 실질적 불평등을 야기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형법의 이데올로기화를
차단하고,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념의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형법이 실질적 평등 및
이를 통한 실질적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될 수 없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하는 것은 결코 이론적인 문제만은 아니다. 형식적 평등의 이데올로기적 측면
을 폭로하는 것은 결코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전유물이 아니다. 유물론적 역사관에
1) 이러한 전개과정에 관해서는 N. Luhmann, Das Recht der Gesellschaft, 1993, S. 299f.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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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는 단순한 상부구조에 불과한 법체계 스스로 이 이데올로기를 극복하기 위해 새
로운 법제도를 고안하거나 법체계 내부의 분화를 진행해왔다. 법체계의 이러한 분
화과정은 노동법의 형성과 함께 첫 번째 절정기를 맞이한다.2)
잘 알려져 있듯이, 노동법은 형식적 평등을 전제하는 민법의 원리를 제한하고
보충하여 실질적 평등을 보장하기 위한 법으로 분화되었다. 이 측면에서 노동법
은 - 적어도 그 탄생기의 관점에서는 - 민법의 특별법이다. 물론 그 이후 노동법
의 섬세한 분화는 그러한 일반/특수의 관계를 뛰어넘어 하나의 일반적 형식으로서
독자성을 향유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 그렇지만 평등이라는 관점을 기준으
로 하면, 노동법은 사실상의 불평등을 상쇄하기 위한 불평등취급, 즉 근로자를 보
호하기 위한 불평등취급을 원칙으로 한다는 점에서 민법과 형법의 평등취급 원칙
의 예외로서 특별법의 성격을 갖는다는 점에서는 변화가 있을 수 없다. 문제는 과
연 형식적 평등의 원칙이 지배하는 일반법 자체 내에 실질적 평등을 위한 장치를
별도로 마련할 수 있는가이다. 이 맥락에서 예를 들어 형법 자체에 노동력을 보호
하기 위한 특별한 구성요건을 창설할 필요가 있는가의 문제는 단순히 법질서의 체
계적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커다란 논란의 대상이었다. 그와 같은
‘특별한’ 보호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형식적 평등에 기초한 일반 형법
이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여러 가지 조항(절도죄, 강도죄, 사기죄 등)을 두고 있으
면서도 정작 ‘무산자계급의 유일한 재산’인 노동력에 대한 보호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그리하여 형법은 평등원칙만을 고수할 것이 아니라, 노동력을
보호하기 위한 불평등원칙까지 흡수하여 어느 정도의 편파성을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3) 다시 말해 형법의 이데올로기적 편향성을 또 다른 - 물론 질적으로 다
른 - 편향성을 통해 상쇄해야 한다는 것이다.
2) 사회보험제도의 도입 이후 노동운동의 성과로 형성된 노동법의 역사에 관한 간략한 소개로는 M. Stolleis, Geschichte des Sozialrechts in Deutschland, 2003, S. 89f. 참고. 3) 대표적으로는 A. Menger, Das bürgerliche Recht und die besitzlosen Volksklasse, 4. Aufl., 1908, S. 201(인용은 Nachdruck, 1968에 따름) 참고. 다만 멩어의 주장은 주로 독일 민법의 개정안에 집중되어 있음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즉, 불법행위법상의 상해와 건강손상과 관련된 노동력에 대한 침해를 명문화하여 손해배상청구권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당시의 민법과 형법이 종속관계에 있는 부녀의 정조와 일반 근로자의 노동력을 적절히 보호하고 있지 못하다는 서술을 앞세우면서 노동력에 대한 특별한 보호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 에서 멩어가 형법적 보호도 함께 염두에 두고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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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력의 형법적 보호’라는 제목으로 노동법의 역사에서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이 주제는 1928년 잘츠부르크에서 열린 제35회 독일 법률가대회(Deutscher
Juristentag)의 ‘경제법 및 재정법’ 분과에서 이루어진 발표와 토론의 대상이었
다. 이 주제가 형법 분과가 아닌, 경제법 분과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주목을 끌
지만, 그보다 더욱 주목을 끄는 것은 이 무대의 등장인물이다. 노동력의 형법적 보
호의 문제를 쟁점으로 부각시킨 것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법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구스타프 라드브루흐(Gustav Radbruch)였다. 그는 사회민주당 당원으
로서 바이마르 공화국의 초대 법무부장관을 지냈고, 법무부장관으로 재직하면서
1922년에 독자적으로 형법개정안(이를 라드브루흐초안 Radbruch-Entwurf이라
고 부른다)4)을 제안할 정도로 형법개혁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가 장관
에서 물러난 이후 1927년에 형법개정에 관한 정부안(Regierungsentwurf)이 발
표되자 즉시 ‘노동력의 형법적 보호’ 5)라는 짧은 논문을 자신이 공동편집인이었
던 잡지 ‘사법(Die Justiz)’에 게재한다. 자신의 제자 루돌프 네이포크트(Rudolf
Neivogt)가 쓴 같은 제목의 박사학위논문6)을 기초로 노동력을 형법적으로 보호
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고, 정부안이 이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
면서 새로운 입법의 길을 제시하는 것이 라드브루흐가 이 무대에서 맡았던 첫 번
째 역할이었다. 이러한 자극을 통해 촉발된 제35회 법률가대회에서의 논의는 독
일 노동법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후고 진츠하이머(Hugo Sinzheimer)를 소견서
작성자로 지명함으로써 ‘노동법의 형법적 보호’라는 무대에 두 번째 유명한 등장
인물을 올린다. 진츠하이머는 라드브루흐와 마찬가지로 사회민주당 당원이었고,
잡지 ‘사법’의 공동편집인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노동조합의 편에 서서 노동자와
무산자계층의 이익을 대변했고, 노동조합을 변호하는 변호사로서 이름을 떨쳤으
며, 필립 로트마(Philipp Lotmar)와 함께 독일의 노동법과 노동법학의 탄생에 결
4) 라드브루흐 초안의 성립배경과 이 초안의 운명에 관해서는 R. Wassermann, Einleitung zu: Strafrechtsreform. Gustav Radbruch Gesamtausgabe(Gesamtherausgeber: Arthur Kaufmann; 이하 GRGA로 약칭), Bd. 9, hrsg. v. R. Wassermann, 1992, S. 17f. 참고. 또한 라드브루흐의 형법개혁사상 전반에 관해서는 U. Neumann, Gustav Radbruchs Beitrag zur Strafrechtsreform, Kritische Justiz 2004, S. 431ff. 참고. 5) G. Radbruch, Der strafrechtliche Schutz der Arbeitskraft, in: Die Justiz, Bd. II(1926/1927), S. 574-579[인용은 GRGA Bd. 9, S. 253-258에 따름]. 6) R. Nevoigt, Der strafrechtliche Schutz der Arbeitskraft, Diss. Heidelberg,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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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인 역할을 했다.7) 그러나 진츠하이머는 노동법의 영역에 형법이 개입하는 것
을 반대함으로써 라드브루흐와는 상반된 입장을 취한다. 이 두 사람 이외에도 2
차 대전 이후 독일 노동법학의 핵심인물이 되었던 한스 칼 니퍼다이(Hans Carl
Nipperdey)와 훗날 나치의 박해를 피해 독일을 떠나야 했지만, 그 당시에 이미 노
동법과 관련된 이론과 실무에서 상당한 명성을 갖고 있던 프란츠 노이만(Franz
Neumann), 에른스트 프랭켈(Ernst Fraenkel), 오토 칸-프로인트(Otto Kahn-
Freund) 등도 무대에 등장한다. 하지만 - 아래의 서술을 통해 밝히듯이 - 이 무
대의 주인공은 단연 진츠하이머였다.
이 글은 이 작은 무대와 그 무대의 배경을 둘러싼 짧은 역사적 기행문이다. 즉,
어떠한 관점에서 ‘노동(력)의 형법적 보호’가 쟁점이 되었고, 보호를 주장하는 측
의 근거와 이를 반대하는 측의 근거를 살펴보는 것이 이 글의 1차적 목적이다. 이
와 함께 ‘노동형법’이라는 단어가 형법학에서든 노동법학에서든 아직 익숙하지
않은 상황8)이고, 또한 이 단어가 노동문제에 대한 형법의 편파적 개입을 연상시키
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먼 나라의 먼 과거 속에서 언젠가 이루어졌던 ‘논쟁’ 하
나를 통해 ‘노동(법)과 형법’의 관계를 한 번쯤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보
는 것은 이 글의 2차적 목적이다. 따라서 내가 속한 분과인 ‘법철학과 형법학’의
관점에서 이 주제와 관련된 노동법(학)의 다양한 관점들을 함께 고려하고 그에 대
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이 글의 몫이 아니다. 그 때문에 이 글은 하나의 역사적 편
린에 대한 보고문의 형식을 최대한 유지할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노동력을 형
법을 통해 보호할 것을 주장하는 라드브루흐의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
7) 진츠하이머의 생애와 저작에 관해서는 R. Erd, Hugo Sinzheimer. Aufruf zur Befreiung des Menschen, in: Kritische Justiz(Hrsg.), Streitbare Juisten. Eine andere Tradition, 1988, S. 282ff.; O. Kahn-Freund, Hugo Sinzheimer, in: Hugo Sinzheimer, Arbeitsrecht und Rechtssoziologie. Gesammelte Aufsätze und Reden, Bd. 1, 1976, S. 1ff.; K. Keiji, Hugo Sinzheimer - Vater des deutschen Arbeitsrechts, 1999 참고. 8)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로는 예컨대 이달휴, 진정노동형법의 법원과 부진정노동형법의 원리, 노동법학 제13호, 2001, 295면 이하; 이상돈, 노동형법정책과 헌법질서, 형사정책연구, 제68 호, 2006, 103면 이하; 우희숙, 노동형법의 패러다임 변화와 노동형법정책의 방향, 고려대학 교 박사학위논문, 2010 참고. 다만 이 문헌들에서 사용되는 ‘노동형법’은 ‘노동력의 형법적 보호’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즉, ‘노동’이라는 경험적, 사회적 현상과 관련된 형 법을 포괄할 뿐, ‘노동력’이라는 보호객체를 확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외연을 넓게 포착하고 있 는 개념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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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보호할 것인지와 관련된 내용을 서술(II)한다. 그 다음에 이를 반대하는 진츠하
이머의 논거들(III)을 서술한다. 반대 또는 비판의 내용을 다루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 대상에 대한 설명을 필요로 하고, 또한 그에 따른 대안까지 함께 설명해야 하
기 때문에 II와 III의 서술은 약간 긴 호흡을 필요로 한다. 끝으로 법률가대회의 토
론과정에서 진츠하이머와 라드브루흐가 행한 발언을 중심으로 양자 사이의 대립이
어떻게 해소되었는지를 밝히고 그 이후에 쌓인 몇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IV)하고
자 한다. 이러한 서술에서는 형법(그것도 과거의 형법)과 형법도그마틱의 용어들
을 자주 원용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 점에서 주로 노동법 전문가인 이 잡지의 독
자들에게 미리 약간의 인내심을 부탁드리지 않을 수 없다.
Ⅱ 노동력에 대한 형법적 법익보호 - 라드브루흐의 구상
인간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전락시키는 자본주의질서에 대한 경멸과 저주는 초
기 사회주의자에게는 일종의 ‘단골메뉴’에 해당했다. 일찍이 마르크스는 노동력
이란 “인간의 피와 살이라는 용기에 담긴 독특한 상품으로, 자유로운 노동자는 자
기 자신을 야금야금 팔아야 하고, 이로써 인간은 단순한 물건에 불과한 존재로 전
락한다” 9)고 비판한다. 이러한 사회주의적 비판은 노동력이라는 ‘독특한 상품’도
당연히 다른 재산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적 법질서의 보호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하지만 노동력에 대한 보호가 법질서가 구사하는 가장 날카로운
무기인 형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할 때에는 과연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
떻게 보호해야 할 것인지를 확정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라드브루흐의 구상은
보호의 대상인 노동력에 대한 정확한 규정, 즉 - 형법적으로 표현하자면 - 보호법
익의 확정에서 출발한다.
이 맥락에서 라드브루흐는 “노동력은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라고 규정한 바이
마르 공화국 헌법 제157조의 형법적 실현을 위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에서
노동력이라는 법익을 보호해야 할 과제가 제기된다고 한다.10)
9) K. Marx, Lohnarbeit und Kapital, in: MEW Bd. 6, S. 399f. 10) G. Radbruch, Der strafrechtliche Schutz der Arbeitskraft, S. 253. 이러한 분류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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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력의 실질을 침해와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것.
-
노동력의 착취 및 노동력의 재생산을 위협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
-
노동력 행사의 자유를 강제나 영향력으로부터 보호하는 것.
‘노동력’이라는 법익은 1차적으로 노동활동의 지속적인 행사를 위한 전제조건
으로서의 육체적 및 정신적 건강을 의미한다. 이 경우 보호법익은 노동력이 행사
되기 위한 육체적, 정신적 완결성을 뜻하고, ‘건강’의 보호는 노동력의 보호에 직
결된다. 이와는 별도로 노동력이 갖는 경제적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이 가치의 저
평가에 해당하는 ‘착취(Ausbeutung)’로부터 노동력을 보호해야 한다. 또한 노동
력을 행사하고 이를 경제적 가치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근로자는 사용자에 대한 종
속관계에 놓이기 때문에, 종속성을 악용하여 이루어질 수 있는 강요행위로부터 노
동의 자유, 더 정확히는 노동력 행사의 자유에 대한 침해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
다. 이와 함께 라드브루흐는 노동력을 보호하기 위한 형법 스스로 노동력 행사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다시 말해 노동력을 보호해야
할 형법이 사용자의 편에 서서 노동쟁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함으로써 형
법적 수단이 노동력을 보호하는 데 기여해야 할 뿐, 노동력과 노동력 행사의 자유
를 제한하기 위한 무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11) 라드브루흐가 노동력의 형
법적 보호라는 과제를 구체화하는 맥락에서 노동과 형법에 관한 이러한 일반적 원
칙과 방향을 제시한 이유는 19세기 후반부터 노동운동을 억압하기 위해 일반 형법
의 구성요건을 무제한적으로 사용했던 역사적 경험과 관련이 있다. 특히 당시 제
국법원의 판례는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근로자계층의 투쟁에 대항하는 여러 가지
무기를 당시의 현행형법으로부터 끄집어내곤 했다. 즉, 파업의 위협에 대해 공갈
죄의 형벌을 부과하거나,12) 계약을 파기하고 근로를 중단하는 행위를 법률에 대한
이후의 모든 논의에서도 하나의 도식으로 정착한다. 예컨대 법률가대회의 발제문이었던 W.
Groh, Berichterstattung, in: Verhandlungen des 35. Juristentages, Bd. 2, S. 856f.;
E.-J. Lampe, Der strafrechtliche Schutz der Arbeitskraft, in: Festschrift für R.
Maurach, 1972, S. 375f. 참고.
11) G. Radbruch, ebd., S. 254.
12) 이에 관해서는 U. Neumann, Zur Systemrelativität strafrechtsrelevanter sozialer
Deutungsmuster – am Beispiel der Strafbarkeit von Streiks und Blockadeaktionen,
ZStW 109(1997), S. 1ff.; ders., Der strafrechtliche Schutz der Arbeitskraft. E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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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복종의 선동이라는 구성요건이 충족된다고 보는가 하면, 피케팅을 형법 제360
조(공공질서의 교란)에서 의미하는 현저하게 부당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노동력의 보호를 위해 그가 제안하고자 하는 형법적 개입이 거꾸로 노동
자를 억압하는 도구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는 대원칙을 사전에 명시적으로 확인한
이후에 비로소 적극적으로 노동력과 그 행사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형법적 조치
를 구상한다.
라드브루흐는 노동력 보호를 위한 형법개정의 방향을 제시하기 전에 먼저 당
시의 현행법에 대한 해석론의 관점에서 노동력의 보호가 가능할 수 있는지 여
부를 검토한다. 노동력의 보호를 특별히 규정하고 있지 않은 당시의 제국형법
(Reichsstrafgesetzbuch; 1871년 발효)에서 노동력보호에 가장 근접한 구성요건
은 상해죄와 중상해죄였다. 즉, 노동력은 고전적인 법익인 육체적(및 정신적) 완결
성에 완전히 포섭되고, 따라서 ‘노동력의 침해 및 위태화 범죄’를 별도의 구성요
건을 창설할 필요가 없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라드브루흐는 노동력에 대한 침해
또는 위태화가 반드시 건강침해 또는 위태화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유로 현
행형법의 상해/중상해 구성요건만으로는 노동력을 충분히 보호할 수 없다고 한다.
라드브루흐는 안톤 멩어의 견해를 받아들여 과로나 분진의 흡입과 같이 상해죄의
처벌대상이 되는 건강침해가 없더라도 노동력을 상실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당
시의 형법으로는 그와 같은 경우를 처벌할 수 없다고 한다. 이밖에도 예컨대 피아
니스트의 왼손 가운데 손가락이 잘린 경우처럼 건강에 치명적인 손상을 가하지 않
고, 따라서 노동력 자체에는 침해가 없긴 하지만, 직업능력에 손상을 가한 때에는
이에 대한 형법적 보호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본다. 그 때문에 라드브루흐
는 노동력의 실질에 대한 형법적 보호와 관련하여 - 형법개정안까지 감안하여 -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에서 형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13)
1) 라드브루흐는 1927년의 형법개정안 역시 이러한 현행법의 한계를 전혀 감안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력의 상실을 중상해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는 표지
Kontroverse zwischen Hugo Sinzheimer und Gustav Radbruch, in: A. Höland u.a.(Hrsg.), Arbeitnehmermitwirkung in einer sich globalisierenden Arbeitswelt. Liber Amicorum Manfred Weiss, 2005, S. 639 참고. 13) G. Radbruch, ebd., S. 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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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명시할 것을 제안한다. 즉, “육체, 감각기관 또는 정신적 능력의 사용에 항구적
또는 장기적으로 현저한 침해를 당한 때”라는 중상해죄 구성요건에는 노동력이나
직업능력의 항구적 또는 장기적 파괴 또는 감소까지 당연히 포함되는 것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노동력과 직업능력의 침해를 이 구성요건에 추가하고자 한다.
2) 상해죄 및 중상해죄를 통해 노동력의 실질을 보호하는 것과 함께 노동력
에 대한 위태화(Gefährdung) 역시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고자 한다. 일반적으
로 사업장에 설치된 여러 가지 기술적 장비로 인해 근로자의 노동력을 침해할 위
험으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하는 법제(오늘날의 근로기준법과 같은 법제)에서 안
전시설의 유지와 관리를 소홀히 한 행위에 대해 형벌을 부과하는 조항은 ‘추상
적 위험범(abstrakte Gefährdungsdelikte)’의 구조를 갖는다. 즉, 구체적인 위
험이 아니라, 위험의 사전단계에 있는 추상적 위험성만으로 가벌성의 요건이 충
족된다. 라드브루흐는 그 당시 주로 사업장법(Betriebsordnung)이나 영업법
(Gewerbeordnung)에 산재해 있는 근로자보호규정들만으로는 근로자를 충분히
보호할 수 없다고 한다. 무엇보다 ‘추상적 위험범’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서, 안전
시설의 운용과 관련된 유책한 행위에 대해 ‘우스울 정도로’ 경미한 형벌을 부과
하고 있을 뿐이며, 근로자의 생명 또는 건강에 대한 구체적 위험을 야기하는 행위
(작위 부작위)를 처벌하는 특별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특별형법의 추상적 위험범
과는 별개로 구체적 위험범에 대한 별도의 규정을 신설하자고 제안한다. 이 제안
과 관련된 입법기술적 방법은 매우 특이한 측면을 갖고 있다. 라드브루흐는 근로
자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여러 법률규정의 구성요건을 그대로 준용하고,
고의로 이 구성요건을 충족하여 근로자의 생명과 신체에 구체적 위험을 야기한 경
우에는 일반 형법을 통해 가중 처벌하고자 한다. 이러한 입법은 이른바 ‘백지형법
(Blankostrafgesetz)’ 14)의 전형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백지형법은 형법조항 자체
에 구성요건을 규정하지 않고, 형법 이외의 법률에 있는 구성요건을 지시 또는 준
용하는 경우를 말한다. 물론 여타의 근로자보호 규정들과는 달리 ‘구체적 위험’이
14) 오늘날에는 Blankostrafgesetz보다는 Blankettstrafgesetz라는 용어가 일반적이다. 주로 부 수형법에서 다른 법의 구성요건을 지시하면서 가벌성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형법의 명확성원 칙과 관련하여 상당히 논란이 많은 입법기술이다. 백지형법의 일반적인 문제와 관련해서는 K. Tiedemann, Tatbestandsfunktion im Nebenstrafrecht, 1969, S, 239ff.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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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표지를 추가한다는 점에서는 순수한 백지형법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다른 그 어느 법보다도 명확성원칙을 중시하는 법치국가적 형법의 신봉자였던 라
드브루흐가 백지형법이라는 입법기술을 동원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노동력에 대한 형법적 보호를 진지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인 탓이었다
는 것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을 정도이다.
3) 노동력의 실질을 보호하기 위한 또 다른 제안은 다시 중상해의 구성요건과
관련된다. 1927년의 개정안 제243조는 “의도적이고 반양심적으로 인간의 생명에
대한 위험을 유발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을 담고 있었다. 라드브루흐는 근로
자보호에만 국한되지 않는 이 일반적 규정을 중상해죄까지 확대하여 중상해의 위
험을 야기한 행위 역시 별도의 규정을 통해 처벌의 대상으로 삼고자 한다. 다만 주
관적 구성요건의 차원에서 이러한 위태화 행위가 ‘탐욕(Gewinnsucht)’에 근거한
경우로 국한시켜 가벌성의 범위를 제한하자고 제안한다. 이는 사실상 앞의 백지형
법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백지형법에서 준용하게 되는 다른 근로자
보호법규들의 보호범위에 해당하지 않는 근로자들에 대해서도 형법적 보호를 제공
하기 위한 제안이다. 다시 말해 노동력의 침해를 넘어 노동력 침해의 위험단계에
까지 확장된 형법적 보호가 모든 근로자를 포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노동법의 실질이 아니라 노동력이 갖는 경제적 가치에 대한 보호는 당시의 형
법이론과 실무에서 상당한 논란의 대상이었다. 기본적으로 노동력을 경제적 가치
로 보는 것 자체를 거부했던 흐름은 1894년의 제국법원 판결을 통해 노동력 및
구체적 노동활동을 통한 노동력의 투입은 재산적 가치를 갖고, 따라서 사기죄 구
성요건의 보호이익이 될 수 있다고 함으로써 노동력 자체의 경제적 가치를 인정
하는 방향으로 선회한다. 하지만 상당수의 근로자들에게 현실적으로 가장 커다
란 문제였던 저임금(착취)이 형법상의 부당이득죄(Wucher)의 구성요건에 포섭되
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었다. 당시 제국형법은 부당이득을 금전부당이득
(Geldwucher)과 물건부당이득(Sachwucher)로 분리하여 규정하고 있었다. 전자
는 소비대차 또는 금전청구의 유예와 관련하여 상대방의 곤궁상태, 경솔, 무경험,
무지 등을 악용하여 일정한 급부와 현저한 불균형관계에 있는 재산상의 이득을 취
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제302조a)이었고, 후자는 특정한 법률행위와 관련하
여 금전부당이득과 동일한 구성요건을 충족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제302조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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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왕_노동법과 형법 239
이었다. 하지만 물건부당이득의 경우에는 금전부당이득과는 달리 영업적이고 상
습적인 행위만을 처벌대상으로 삼았다. 라드브루흐는 임금착취가 금전부당이득에
해당한다고 이해하는 반면, 다수설은 착취적 저임금이 ‘소비대차 또는 금전청구의
유예’와 관련된 부당이득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엄격한 문언해석을 고수하여 구성
요건해당성 자체를 부정했다. 물론 다수설은 임금착취가 물건부당이득에는 해당
한다고 보았지만, ‘영업적 및 상습적 행위’만을 처벌하기 때문에 사실상 임금착취
를 이유로 사용자가 처벌을 받는 것은 불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임금착
취를 부당이득죄로 처벌하는 사례가 단 한 건도 없었다. 형법개정안 역시 부당이
득죄와 관련하여 어떠한 개정내용도 제시하지 않고 제340조 이하에서 ‘곤궁상태
(Notlage)’를 ‘강제상태(Zwangslage)’로 바꾼 것 이외에는 기존의 내용을 고수
했지만, 라드브루흐는 개정안에 따르더라도 해석론상 임금 관련 부당이득은 당연
히 금전부당이득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즉, 근로자가 근로계약을 통해 추구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금전에 대한 욕구의 충족’이기 때문에 근로자의 곤궁상태
등을 악용하여 현저하게 불균형상태에 있는 반대급부(임금)의 지급은 금전부당이
득에 해당한다고 그 근거를 제시한다. 따라서 임금 관련 부당이득은 그 영업성과
상습성과는 전혀 관계없이 부당이득죄로 처벌이 가능하다고 한다.15)
라드브루흐는 이렇게 기존의 형법 또는 개정안의 해석론만으로도 임금착취의
가벌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봄에도 불구하고, 다른 측면에서 개정안을 보충할 필
요가 있다고 한다. 이 측면은 ‘현저한 불균형관계’라는 기준의 불확실성으로 말미
암아 어느 정도의 임금이 착취에 해당하는지, 다시 말해 노동과 임금 사이의 불균
형이 어느 경우에 ‘현저한(erheblich)’ 불균형이 되는지에 관한 문제와 관련을 맺
는다. 라드브루흐는 ‘정당한 임금’의 기준을 단체협약상의 임금, 더 정확히는 일
반적 구속력을 갖는다고 선언된 단체협약상의 임금으로 보자고 한다. 따라서 단체
협약상의 임금보다 낮은 경우에는 구체적 사례에서 임금이 낮은 정도가 부당이득
의 성격을 갖는지를 검토할 필요가 없이 곧바로 가벌성이 있다고 선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라드브루흐는 금전부당이득죄 구성요건에 다음과 같은 임금부
당이득죄 구성요건을 추가하자고 제안한다. “타인의 강제상태, 경솔, 무경험, 판
단력부족 또는 용역 및 근로관계로 인한 종속성을 악용하여 일반적 구속력을 갖는
15) G. Radbruch, ebd., S.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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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 노동법포럼 제11호(2013. 10)
것으로 선언된 단체협약에 확정된 임금조건에서 벗어나 근로관계를 착취적으로 형
성한 자는 처벌한다.” 16) 이 제안은 특히 제국법원이 협약임금보다 낮은 임금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했다가 사후에 협약임금을 요구하는 근로자를 사기죄로 처벌하는
실무에 제동을 걸기 위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협약임금보다 더 낮은 임금을 약정
한 근로계약 자체가 부당이득죄에 해당한다면, 근로자를 사기죄로 처벌할 가능성
자체가 봉쇄되기 때문이다.
노동력의 형법적 보호의 세 번째 측면에 해당하는 노동력 행사의 자유의 보호와
관련해서도 라드브루흐는 현행법 및 개정안의 미비점을 지적한다. 라드브루흐는
무엇보다 근로관계에 의해 성립한 종속성을 악용하거나 근로자의 일자리에 대한
염려를 악용하여 저질러지는 강요행위로부터 근로자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강요
죄의 구성요건을 확장하거나 기존의 강요죄 구성요건에 대한 해석을 수정하려고
시도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당시의 강요죄 구성요건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
다. 즉, 폭력을 동원하거나 ‘민감안 해악’을 가할 것이라고 위협하면서 특정한 행
위, 용인 또는 부작위를 강요하는 것을 처벌하는 오늘날의 독일형법(제240조)과는
달리 당시의 형법(제240조)과 개정안(제279조) 모두 폭력이나 ‘범죄 또는 경죄를
저지를 것이라고 위협’을 통한 강요를 구성요건으로 삼고 있었다.17) 따라서 범죄
나 경죄를 저지를 것이라는 위협에 해당하지 않는 강요행위는 종속관계에 있는 부
녀에게 성교를 강요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별도의 조항(개정안 제289조) 이외에는
가벌성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라드브루흐는 종속관계에 따른 성교의
강요를 훨씬 확장하여 종속관계를 토대로 근로자의 자유를 제한하는 강요행위 전
반을 형벌로 위협하는 별도의 구성요건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근로자가 해고로 인해 소득이 없는 상태에 빠질 위험을 악용하여 근로자의 인간으
로서의 존엄이나 근로자의 확신이나 명예를 파괴하는 자에 대해서는 형벌을 부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명예강요의 경우에도 ‘일자리의 박탈’을 위협하는 경
우를 추가하여 구성요건을 확대하자고 한다. 특히 근로자에게 일자리를 잃을 것이
라고 위협하여 근로자의 정치적 신념을 침해하거나 노조가입을 저지하는 행위는
‘명예강요죄(Ehrennötigung)’를 신설하여 처벌해야 한다고 한다. 이 점에서 라
16) G. Radbruch, ebd., S. 257. 17) 이에 관해서는 U. Neumann, Der strafrechtliche Schutz der Arbeitskraft, S. 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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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왕_노동법과 형법 241
드브루흐는 “형사고발, 명예를 위태롭게 하기에 적합한 사실의 폭로 또는 선량한
풍속에 반하여 용역 및 고용관계의 박탈을 위협하면서 특정한 행위, 용인 또는 부
작위를 강요하는 자는 처벌한다”는 내용으로 명예강요죄를 구성한다.18)
라드브루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취업상태에 있는 근로자뿐만 아니라, 근로관계
를 형성할 의도가 있는 실업자에게도 형법적 보호가 필요하다고 한다. 특히 라드
브루흐는 사용자들이 결탁하여 ‘블랙리스트’를 작성함으로써 ‘요주의인물’로 낙
인찍힌 근로자가 노동시장에 재진입하는 것을 차단하는 행위를 형법적으로 처벌하
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러한 형법적 처벌을 개정안 제107조의 ‘선거와 관련
된 명예실추(Wahlverruf)’에 연결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치적 권리의 행사를
방해하는 것을 처벌하는 이 조항을 노동조합의 권리행사를 방해하는 행위에도 확
장하자는 것이 라드브루흐의 의도였다. 이러한 확장은 블랙리스트가 주로 노동조
합 간부와 같이 노동조합활동 경력이 있는 실업자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거나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노동조합활동을 한 근로
자의 명예를 침해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내용을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
리하여 개정안 제107조의 내용을 확장하여 “투표를 하지 않거나 특정한 방향으로
투표를 하지 않았다거나 또는 근로조건 또는 경제조건의 유지와 촉진을 위한 단결
의 자유를 행사했다는 이유로 타인에게 경제적 또는 사회적 불명예를 겪게 한 자
는 처벌한다”고 규정하자고 제안한다.19)
이와 같이 노동력과 관련된 여러 가지 측면들을 형법을 통해 보호하고자 하는
라드브루흐의 기획은 명백히 형식적 평등이 아니라, 실질적 불평등에 기인하고 또
한 실질적 불평등으로 귀결되는 기획이다. 이 점에서 라드브루흐에게 노동력의 보
호는 그 자체 계급투쟁이다. 하지만 자신의 제안은 투쟁하는 계급들의 관점에서
고찰할 대상이 아니라, 정의의 관점에서 고찰해야 할 대상이라고 한다. 즉, 정의
의 핵심인 평등원칙을 실질적으로 관철하는 것은 결코 이데올로기적 편향성이 아
니라, 정의의 실현이고, 이를 위해 형법이라는 수단을 이용하는 것 역시 정의의 관
점에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산자보다는 무산자에게 훨씬 더 가혹하
게 작용하는 형법뿐만 아니라, 노동력에 대한 효율적인 보호를 제공하지 않는 형
18) G. Radbruch, ebd., S. 256. 19) G. Radbruch, ebd., S.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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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 노동법포럼 제11호(2013. 10)
법도 라드브루흐에게는 계급형법(Klassenstrafrecht)이다. 그러므로 계급에 대한
형법적 보호, 즉 사람에 대한 보호와 재산에 대한 보호 사이의 균형을 확보하는 일
은 사회적 형법의 과제일 뿐만 아니라, 정의의 요구이기도 하다는 것이다.20)
물론 노동력의 보호는 당연히 정의의 요구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은 자유주의
가 정착한 이후의 역사적 발전과정 자체를 통해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다. 적어도
‘완전한 시장의 자유’라는 허구와 유령을 붙들고 있지 않는 한, ‘약자보호’ 자체
는 규범적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역사의 전개과정의 관점에서도 근대적 정의의
핵심이다. 문제는 규범적 및 현실적 관점에서 그와 같은 정의가 반드시 형법을 통
해 실현되어야 하는가이다. 즉, 노동력의 보호가 정의에 부합한다는 사실과 형법
을 이를 위한 수단으로 투입하는 것의 타당성은 별개라는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
다. 실질적 정의라는 한 지붕 아래에서 라드브루흐의 구상에 대한 비판과 반론이
시작되는 지점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이었고, 이 문제의식을 비판과 반론으로 구
체화한 한 지붕 아래 식구는 바로 진츠하이머였다.
Ⅲ 노동력의 노동법적 보호 - 노동법의 자율성과 독자 성에 기초한 진츠하이머의 라드브루흐 비판
1927년에 출간된 라드브루흐의 논문과 이 논문의 토대가 된 그의 제자 네포이
크트(Nevoigt)의 하이델베르크 대학 박사학위 논문은 제35회 독일 법률가대회
의 경제법 및 재정법 분과에서 ‘노동력의 형법적 보호’라는 주제 아래 상세한 논
의의 대상이 된다. 대회가 열리기 전 제출된 진츠하이머의 소견서는 주로 네포이
크트의 논문을 인용하고 있지만 사실상 라드브루흐에 대한 반론과 비판으로 읽힌
다. 물론 이 주제에 관한 논의가 형법분과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의도
적인 것일 수도 있고 우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사실만으로 이미 토론과정과 결
과에 대한 표결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독일의 법상태에 관
한 발터 그로(Walter Groh)의 발제문과 오스트리아의 상황에 관한 빅토르 주카
20) G. Radbruch, ebd., S.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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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왕_노동법과 형법 243
넥(Viktor Suchanek)의 소견서, 라이프치히 노동법원장 호르스트 아우어발트
(Horst Auerwald)의 공동발제문에서는 모두 노동력의 보호와 관련하여 형법에게
상당히 제한적이고 부차적인 의미만을 부여한다. 즉, 노동력의 보호에 관한 한, 1
차적인 책임은 노동법이 부담하여, 특히 사회보험법과 단체협약법이 중요한 역할
을 해야 한다는 것이 다수의 결론이었다.21)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법률가대회가 열리기 전에
제출된 진츠하이머의 소견서였다. 특히 그로와 아우어발트의 발제문은 거의 전적
으로 진츠하이머의 견해를 따랐다. 노동력의 형법적 보호에 대한 진츠하이머의 반
론과 비판은 대략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점으로 집약할 수 있다. 첫째, 형법을 통한
노동력보호는 근로자에게 위험하다. 둘째, 형법을 통한 노동력 보호는 사용자의
사회적 지위나 전반적인 행태를 감안할 때 비효율적이다.22) 진츠하이머의 소견서
와 그가 토론에서 행한 발언의 핵심은 노동력의 보호는 당연히 법의 과제긴 하지
만, 이러한 보호의 강화와 확대는 노동법의 과제이지 형법의 과제가 아니라는 것
이다. 소견서에서 진츠하이머는 노동법의 보호와 관련된 세 가지 측면을 출발점으
로 삼는 라드브루흐의 견해를 그대로 따라 가면서, 각각의 측면에 형법이 개입할
경우 어떠한 문제점을 유발하는지를 조목조목 비판한다. 비판의 줄기는 크게 다음
과 같은 세 가지 논점이다.
- 근로자 보호가 근로자 처벌로 전도될 위험성
앞에서 언급했듯이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형벌구성요건을 사법부가 거
꾸로 근로자를 처벌하기 위해 이용할 위험성에 대한 우려는 당시의 노동조합이나
사회민주당에게는 항구적인 문제였다. 검찰과 법원이 파업근로자를 공갈죄로 처
벌한 제국법원의 판결(1890년)을 더 이상 따르지 않는 시대에도 여전히 그러한 우
려는 존재했다.23) 이러한 우려가 얼마나 커다란 것이었는지는 부당이득죄와 관련
하여 ‘곤궁상태’를 ‘강제상태’로 바꾸었을 뿐, 기존의 조항을 그대로 유지한 형
21) 진츠하이머의 소견서 등과 토론과정에 대한 기록은 모두 Verhandlungen des 35. Juristentages, 2. Bd. 1928에 실려 있다. 22) 이 점을 지적하고 있는 U. Neumann, ebd, S. 644f. 참고. 23) 이 점에 관해서는 M. Martiny, Integration oder Konfrontation? Studien zur Geschichte der sozialdemokratischen Rechts- und Verfassungspolitik, 1976, S. 161f.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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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 노동법포럼 제11호(2013. 10)
법개정안에 대한 진츠하이머의 비판에서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에 따르면 일
단 기존의 부당이득죄 구성요건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전제하에, 만일 ‘강제상태’
라는 표현으로 대체한다면 예를 들어 사용자에게 파업을 위협하거나 여타의 노동
쟁의 수단을 이용하여 임금을 인상한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 역시 부당이득죄로 처
벌될 위험이 있다고 한다.24) 즉, 강제상태라는 단어는 근로자에게 불이익한 방향
으로 부당이득죄를 남용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부당이득이라는 개념은 그 역사
적 연원에 비추어 볼 때 실질적 의미의 곤궁상태, 즉 경제적 곤궁상태를 전제하지,
단순히 의사의 강제를 의미하는 강제상태를 전제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용자는 극
소수의 예외적 상황이 아닌 한, 경제적 곤궁상태에 처하지 않지만 노동쟁의를 통
해 얼마든지 강제상태에 처할 수는 있다. 이 점에서 ‘강제상태’라는 표지를 유지
할 경우 근로자를 착취로부터 보호하려는 개정안은 그 의도와는 정반대로 근로자
를 위협하는 수단이 되는 양날의 칼이라고 한다.25)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형벌규정이 현실에서는 근로자에 대항하여 적
용될 수 있다는 논거는 임금 부당이득을 명시적으로 범죄화하자는 라드브루흐의
제안에 대해서도 제기되었다. 실제로 단체협약상의 임금을 초과하는 임금의 지급
도 협약임금 이하의 임금협약을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임금 부당이득에 포섭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츠하이머의 대안은 사회적 입법의 확대였다. 특히 당시 가
내근로자에게만 적용되던 최저임금규정을 모든 근로자에게 확대하고, 단체협약상
의 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약정하는 근로계약을 무효화하는 입법을 통해 임금과 관
련된 근로자의 지위를 강화하는 것이 현명한 정책이지, 구성요건의 일반성을 최
대한 고려해야 하는 형법을 투입할 경우에는 거꾸로 형법의 칼날이 근로자를 베는
역설적인 상황이 전개된다는 것이다. 이와 똑같은 맥락에서 근로자보호를 위한 안
전시설과 관련된 규정을 준수하지 않은 행위를 구체적 위험범의 형태로 형사처벌
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라드브루흐의 제안도 근로자가 그러한 규정을 준수하
지 않음으로 인해 처벌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수용할 수 없다고 한다.26)
24) H. Sinzheimer, Gutachten zum 36. Deutschen Juristentag, in: Verhandlungen des 35. deutschen Juristentages, 2. Bd., 1928, S. 392; ders., Diskussionsbemerkung, ebd., S. 919f. 25) H. Sinzheimer, Gutachten, S. 391. 26) H. Sinzheimer, Gutachten, S. 391f. 토론과정에서 그로 역시 이 점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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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왕_노동법과 형법 245
명예강요와 관련된 라드브루흐의 제안에 대한 진츠하이머의 비판의 핵심 역시
근로자를 범죄화할 위험성이었다. 사용자단체(카르텔)와 근로자단체(노동조합)에
대해 서로 다른 법을 적용할 수는 없기 때문에 한 쪽의 자유에 개입하는 것(사용자
의 처벌)은 동시에 다른 쪽의 활동공간(근로자의 자유)을 제한하는 것이 될 수 있
다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노조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진츠하이머의 입장은 형법
을 원용하는 것이 오히려 부메랑이 될 위험이 너무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해고를
위협하거나 취업을 유인책으로 구사하여 노조가입을 차단하거나 노조활동의 중단
시키도록 강요함으로써 근로자를 고립시키는 행위를 형사처벌하는 것 역시 그 실
효성과는 별개로 조직강제의 처벌이 거꾸로 노동조합 내부에서 행해지는 단결강
제를 처벌하는 쪽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에 거부의 대상이 된다.27) 다시 말해 조
직강제를 처벌하는 형벌규정은 단결에 적대적인 사용자뿐만 아니라, 단결한 근로
자들에게도 해당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라드브루흐의 제안을 따르게
되면, 노동력을 보호하기 위한 형법적 조치가 단결한 근로자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방향으로 선회할 수 있기 때문에 노동력보호의 강화를 요구하는 주장에 부합할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노동력의 경제적 가치의 보호나 노동력 행사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형
법을 동원하는 것은 그 자체 ‘이데올로기적 편향성’을 갖고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
한 노동법의 존재가치가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이데올로기적 중립성’을 표방하는
형법을 통해 감소 및 상실될 위험이 있고, 이 형식적 평등과 중립성의 소용돌이 속
으로 근로자나 노동조합이 휘말려들면 노동력의 보호에 역행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 진츠하이머의 결론이다.
- 형법의 비효율성
노동력 보호를 위한 형법규정으로 제안된 규정들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진츠하이머의 입장은 특히 노동력의 경제적 가치에 대한 저평가(‘극단적 저임금’
W. Groh, Diskussionsbemerkung, in: Verhandlungen des 35. Juristentages, 2. Bd., S. 870. 27) H. Sinzheimer, Gutachten, S. 392f.; ders., Diskussionsbemerkung, in: Verhandlungen des 35. Juristentages, 2. Bd., S. 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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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 노동법포럼 제11호(2013. 10)
지급을 통한 착취)에 관련된다. 진츠하이머는 무엇보다 ‘임금부당이득죄’라는 구
성요건을 신설하거나 기존의 금전부당이득죄를 저임금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다
는 해석론 모두 현실적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난관에 봉착할 것이라고 진단한다. 왜
냐하면 어떠한 전제하에서 임금과 근로 사이에 ‘현저한 불균형’이 존재하는지를
명확하게 확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난관은 그 때까지 임금 부당
이득으로 진행된 형사소송이 단 한 건도 없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고 한다. 더욱이
그러한 형벌규정을 도입할지라도 근로자가 받는 임금수준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한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도 진츠하이머는 사회적 입법의 확대가 근로자
보호의 실효성을 담보하는 조치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개혁의 중심은 사회적 입
법조치라는 것이다. 특히 형벌규정을 도입하는 것만으로 근로자들의 가혹한 노동
현실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양심의 가책을 누그러뜨린 이후, 형법적 조치를 구실로
사회적 입법조치는 반대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고 한다. 이 점에서 일반 형법규
정의 도입은 사회적 입법조치를 촉진하기보다는 장애가 된다고 한다.28) 이와 함께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의 사회적 대등성(soziale Parität)이 실현되지 않은 상태에
서 형법을 통해 노동력을 보호하는 조치를 취할 경우, 형법의 일반성과 보편성으로
인해 근로자와 사용자의 대등성을 표현함으로써 실질적으로는 효율적인 근로자 보
호에 반대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에 주의를 환기시킨다.29)
물론 라드브루흐가 제안한 대로 일반적 구속력을 갖는다고 선언된 단체협약이
있는 경우에는 근로와 임금 사이의 현저한 불균형을 확인하는 데 따르는 난관은 존
재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라드브루흐의 제안에 따라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협
약임금 이하로 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모두 부당이득에 해당할 것이기 때문이다.30)
하지만 진츠하이머는 이 제안에 대해서도 실효성의 관점에서 의문을 제기한다. 즉,
협약임금이라는 기준도 단체협약에 속하지 않는 영역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단체협약이 전체 근로자에게 확대되지 않은 상황에서 협약임
금을 기준으로 부당이득 행위를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근로자 보호의 실효성을 보
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협약범위의 확대나 단체협약법에서의 임의규정 배
28) H. Sinzheimer, Gutachten, S. 390; ders., Diskussionsbemerkung, in: Verhandlungen des 35. Juristentages, 2. Bd., S. 917. 29) H. Sinzheimer, Gutachten, S. 391. 30) G. Radbruch, Der strafrechtliche Schutz der Arbeitskraft, ebd., S.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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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왕_노동법과 형법 247
제 또는 단체협약 이하의 임금을 거부할지라도 실업급여를 상실하지 않도록 규정
한 근로중개법과 실업급여법의 적용범위를 확대하는 것 등이 훨씬 더 실효적이라
고 한다. 이와 동일한 선상에서 최저임금제도의 확대 역시 노동자 보호의 실효성을
위해 필요하고, 이를 부당이득죄 처벌의 기준으로 삼을 이유는 없다고 한다.31)
근로영역에 형법의 개입을 반대하는 이러한 논리는 노동력의 실질에 대한 구체
적 위험을 처벌하기 위해 형법에 별도의 구성요건을 신설하자는 라드브루흐의 제
안에도 그대로 해당한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도 진츠하이머의 선택은 근로자의 생
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근로자보호법의 강화와 확대였다. 특히 당시의 저명한
형법학자인 마이어(M.E. Meyer)의 형법이론을 원용하면서 구체적 위험의 위법성
은 명확성을 확보하기 위한 입법기술의 기초적인 규칙을 충족하기 어려운데 반해,
추상적 위험을 통해서는 ‘위험성기준의 상대성과 부정확성을 배제하고 위법성의
확인을 확실하게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장점을 활용하면서
동시에 근로감독과 근로자보호설비에 관련된 행정강제절차가 훨씬 더 실효성이 높
다고 한다. 이 점에서 형법이 아니라, 기존의 근로자보호규정들의 섬세화와 확대
가 우선적인 과제라고 한다.32)
전반적으로 볼 때 진츠하이머는 임금협정이 경제적 강자가 자신의 이익을 무제
한적으로 관철하는 “세력들 사이의 자유로운 게임”이 되는 것을 제한하고, 사전
에 확정된 임금규율을 도입하여 근로계약의 중요한 구성부분을 당사자의 자유로
운 처분에서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노동입법의 경향을 지속적으로 관철하
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하면서, 이 영역에서는 ‘형벌’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구
사하는 형법이 전혀 실효성을 갖지 못한다고 한다. 그 때문에 임금 부당이득죄 구
성요건의 도입은 진츠하이머로서는 별로 진지하지 않은 ‘마치 .. 인 것처럼(Als
Ob)’의 형법,33) 다시 말해 마치 형법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자기기만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한 형법은 입법자가 근로자를 보호하
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는 그럴듯한 외관을 만들어주고, 형법보다 효율적인 노
31) H. Sinzheimer, Gutachten, S. 390. 32) H. Sinzheimer, Gutachten, S. 383. 33) H. Sinzheimer, Diskussionsbemerkung, in: Verhandlungen des 35. Juristentages, 2. Bd., S. 917. 이 표현은 당시의 신칸트주의 철학의 핵심저작으로 여겨지던 H. Vaihinger, Die Philosophie des Als OB(1911)에 기인하며, 진츠하이머 역시 책의 제목을 언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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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 노동법포럼 제11호(2013. 10)
동법적 규범을 마련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그저 ‘저 강력한’ 형법규정을 제정한
것만으로 안도하고 만족한 채 실제로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경향으로 흘러간다
는 뜻이다. 따라서 그와 같은 형법은 오늘날의 형법학적 용어를 빌리자면 상징형
법(symbolisches Strafrecht)일 뿐이라는 것이다.34) 이밖에도 “우리 시대의 극히
섬세한 법적 관계(근로관계 - 글쓴이)에 형사법관이 개입하게 되는” 35)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덧붙인다. 근로자의 집단적 권리는 자율적인 권리로서
근로자 스스로 이를 보호하고자 하며 또한 그럴만한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 노동법의 자율성과 형법에 대한 우위
진츠하이머 주장의 핵심은 형법을 통한 근로자의 보호가 아니라, 노동법, 특히
집단적 노동법을 통한 보호이다. 이는 다시 말해 국가와 국가의 형사소추기관을 통
한 보호가 아니라, 노동조합과 노조의 사회적 권력을 통한 보호이다. 노동법의 자
율성에 대한 이러한 강한 신뢰는 블랙리스트와 같이 근로자 또는 취업을 하고자 하
는 근로자에게 치명적인 손해를 가하고,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는 행위의 위험성
을 진츠하이머 스스로도 뚜렷이 의식하고 있음에도 역시 형법의 개입을 반대하는
결론을 갖게 만든다. 물론 진츠하이머는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는 사용자들의 약정
은 오로지 자신의 노동력에만 의존하는 자가 그 노동력을 사용할 수 있는 근로기회
를 더 이상 얻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근로자 개인에 대항하여 부당하게 처분권을
남용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근로자 개인을 넘어 사회적으로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와 같이 반사회적이고 자의적인 처분에 대항하는 것은 당연히 법
의 사회적 과제라는 점도 인정한다. 하지만 형법이 과연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지에 대해서는 회의를 표명한다. 이와 관련해서도 진츠하이머는 형벌규정의 실효
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즉, 블랙리스트와 같은 약정을 구성요건해당성의 측면에서
34) 이에 관해서는 지적은 U. Neumann, Der strafrechtliche Schutz der Arbeitskraft, S. 647 참고. 35) H. Sinzheimer, Gutachten, S. 390. 여기에 덧붙여 진츠하이머는 “집단법은 자율적인 법 이다” 또는 “집단적 권리는 자율적 권리이다”라고 이중적 의미를 갖는 문장(Das kollektive Recht ist autonomes Recht)을 통해 노동법과 단결권의 자율성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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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왕_노동법과 형법 249
의문의 여지없이 확인하여 처벌할 수 있는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블랙리스트와 같은 처분권의 남용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근로중
개법이나 실험보험법의 영역 또는 노동청의 근로감독을 보완, 강화하는 방안이 우
선한다. 예컨대 노동청이 사용자에게 고용을 강제할 권한이나 블랙리스트로 인해
심각한 침해를 당한 근로자에 대한 고용보호를 지시할 권한을 부여하거나 사용자
의 기록을 열람하거나 정보제공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36)
이러한 반론의 과정에서 진츠하이머는 여러 번에 걸쳐 형법의 보충성 또는 형
법의 최후수단성(ultima ratio-Prinzip)을 원용한다.37) 즉, 근로자보호가 근로자
침해로 전도될 위험성에 대한 지적과 형법적 조치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의 배후에
는 형법이 법익보호를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서 단편적이고 보충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근대적 형법이론의 핵심내용이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진츠하이머가 이러
한 형법적 원칙을 고수하고자 하는 동기는 노동법의 독자성과 자율성을 최대한 확
보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노동법의 자율성에 대한 확신은 다시 근로자들의 단결권
과 이 단결권의 확장 및 발전을 통해 사회적 대등성을 실현할 수 있다는 신념을 배
경으로 삼고 있다. 다시 말해 노동조합은 근로자들이 실질적으로 불평등한 지위에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야 할 소명을 갖고 있고, 이
소명을 다할 능력도 갖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인간이 저열한 임금을 받으며 시
달리는 곳에서 이 문제를 척결할 힘과 능력을 갖고 있다.” 38) 그렇기 때문에 형법의
도움이 없이도 또는 형법의 도움이 없을 때에만 그러한 역사적 소명에 부응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 길 위에서 마주치는 걸림돌들은 노동법적 조치만으로도 얼마든
지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측면에서만은 진츠하이머가 라드브루흐를 지지한다. 즉, 중상해
의 구성요건에 노동력에 대한 침해를 별도로 명시하는 것에 대해서는 진츠하이머
도 동의한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서도 진츠하이머는 해당하는 규정이 가질 수 있는
36) H. Sinzheimer, Gutachten, S. 393. 37) H. Sinzheimer, Gutachten, S. 375.; ders., Diskussionsbemerkung, in: Verhandlungen des 35. Juristentages, 2. Bd., S. 915. 소견서의 각주 54는 프란츠 폰 리 스트(Franz v. Liszt)의 유명한 말을 인용한다. “형벌은 그것이 법질서의 유지에 필요한 경우 에만 정당하다(Strafrecht Lehrbuch, 6. Aufl. 1894, S. 65).” 38) M. Martiny, Integration oder Konfrontation?, S. 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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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 노동법포럼 제11호(2013. 10)
효율성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덧붙인다. 그에 따르면 이 구성요건의
명문화는 단지 ‘사회교육학적 영역’에 해당할 뿐이어서 그러한 규정을 통해 노동
력이 “특별히 보호를 받는 법익의 가치목록에 포함”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
는다고 한다.39) 다시 말해 노동력의 침해를 법질서가 특별히 보호한다는 인상을 갖
게 만드는 상징적인 의미 이상의 실효성은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형법을 통한
노동력의 보호에 대한 그의 근원적인 회의가 다시 한 번 분명하게 표출된다.
Ⅳ 노동법과 형법의 제자리 찾기 - 법률가대회의 토론과정과 그 이
후의 몇 가지 이야기
‘노동력의 형법적 보호’를 다루는 제35화 독일 법률가대회 경제법분과의 회의
의 첫 번째 발제자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민법교수였던 그로(Groh)였다. 그로는
발제문40)에서 진츠하이머와는 달리 라드브루흐의 이름을 명시적으로 언급하면서,
거의 모든 논점과 관련하여 진츠하이머의 입장을 지지한다. 즉, 근로자들의 사회
적 자구노력과 경제적 이해관계 사이에 균형을 창출하는 과제는 형법의 몫이 아니
라, 이 과제를 담당하는 원래의 영역인 노동법의 몫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아우
어발트(Auerwald) 역시 몇몇 섬세한 영역(예컨대 근로자의 노조활동과 정치활동
의 보장을 위한 명예실추죄의 확장)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관점에서 진츠하이머
의 소견서를 지지한다.41) 이들 발제자가 라드브루흐의 제안을 거부하는 핵심적인
논거는 진츠하이머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노동과 관련된 영역에서 형법은 비효율적
이라는 진단과 근로자를 보호하는 노동법의 발전 및 강화가 노동력의 보호를 위한
최상의 수단이라는 인식이었다.
발제가 끝난 이후 토론시간의 첫 발언자는 쾰른대학의 민법교수였던 니퍼다이
(Hans Carl Nipperdey)였다. 니퍼다이는 훗날 나치의 이데올로기를 노동법의 영
39) H. Sinzheimer, Gutachten, S. 377.; ders., Diskussionsbemerkung, in: Verhandlungen des 35. Juristentages, 2. Bd., S. 919. 40) W. Groh, Berichterstattung, in: Verhandlungen des 35. Juristentages, Bd. 2, S. 856f. 41) H. Auerwald, Berichterstattung, in: Verhandlungen des 35. Juristentages, Bd. 2, S. 877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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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왕_노동법과 형법 251
역에 실현시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2차 대전 이후에는 독일 노동법학의
거두로서 초대 연방노동법원장(1954-1963)을 지냈던 인물이다. 당시 우파자유주
의세력에 속해있던 니퍼다이는 노동문제에 형법이 개입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결
론의 측면에서는 진츠하이머의 견해를 전적으로 지지하면서, 법률가대회의 결의
문에 ‘노동력 보호의 확대와 강화는 무엇보다 노동법의 과제이다’라는 문구를 맨
앞에 놓자고 제안한다.42) 하지만 노동력의 형법적 보호를 반대하는 동기의 측면에
서는 진츠하이머와는 사뭇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니퍼다이로서는 사용자에
대한 형사처벌 위험성을 최대한 축소하고자 했고, 특히 민사법의 원리에 충실하
여 노동법이나 사회법의 논리가 민사법을 제한하는 것을 가급적 피하고자 하는 태
도를 취한다.43) 이 맥락에서 니퍼다이는 산업시설에서 발생한 사고로 인해 노동능
력이 침해 또는 상실된 근로자가 사용자에 대해 여하한 손해배상청구권도 갖지 않
는다는 당시 사회보험법의 규정을 사고에 대해 사용자 또는 그 보조인이 유책성을
갖고 있을 때에는 민법상으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개정하자고 제
안한다. 이와 함께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의 임금약정은 협약임금의 존재 여부와
관계없이 그 자체 사적 자치의 영역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다만 단체협
약법을 개정하여 근로관계가 지속하고 있는 동안에는 기존의 협약임금에 기초한
임금청구권을 포기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문구를 삽입하는 것만으로 근로자
를 충분히 보호할 수 있다고 한다.
니퍼다이를 이어 뮌헨의 변호사 바서만(Wassermann)이 부당이득죄에 관해 짧
은 발언을 한 이후 드디어 이 날의 주인공 진츠하이머가 등장한다. 그는 발언 서두
부터 형법이라는 수단은 해악을 퇴치하기 위한 사용할 수 있는 다른 수단들이 더
이상 없을 때에만 비로소 적용해야 한다는 형법의 보충성을 재차 확인하면서 자
신의 소견서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노동법, 특히 근로자보호를 위한 노동법은
계속 확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노동법이 발전시켜야 할 영역에서 일반 형법의
42) H. C. Nipperdey, Diskussionsbemerkung, in: Verhandlungen des 35. Juristentages, Bd. 2, 909f. 43) 니퍼다이의 보수주의와 정치적 기회주의가 2차 대전 이후 독일 노동법학에 어떠한 영향 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R. Wahsner, Arbeitsrechtskartell - Die Restauration des kapitalistischen Arbeitsrechts in Westdeutschland nach 1945, Kritische Justiz 1981, S. 369ff., 372ff.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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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 노동법포럼 제11호(2013. 10)
확충은 필요하지 않다.” 44) 이러한 대원칙에 비추어 진츠하이머는 - 앞에서 서술했
듯이 - 블랙리스트 작성을 처벌하기 위한 명예실추죄 구성요건을 개정, 임금부당
이득죄의 신설이 형법 본연의 기능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그 실효성도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하게 부각시킨다. 이와 함께 협약임금보다 낮은 임금약정을 무효
로 법개정이 필요하다는 니퍼다이의 제안에 동의하면서 그와 같은 사회적 입법조
치가 근로자 보호를 위해 훨씬 실효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견
해 및 분과토론의 전반적 내용을 다음과 같은 짧은 문구로 요약한다. “형법이 아
니라, 노동법!(Arbeitsrecht, kein Strafrecht!)” 45)
진츠하이머의 발언보다 더욱 흥미를 끄는 것은 바로 뒤이어 행해진 라드브루흐
의 발언이다. 그는 물질적 재산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형법적 보호의 대상이 되는
반면, 인간의 노동력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상식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를 검토
하게 되는 약간은 의외적인 사태가 발생한 것에 놀라움을 표명하고, 소견서 작성
자에서 전체 발제자 그리고 토론과정의 모든 발언이 노동력에 대한 형법적 보호에
회의적인 것은 이미 노동력에 대한 법적 보호가 어느 정도 진척된 데 그 원인이 있
다고 한다. 다시 말해 노동력에 대한 노동법적 보호가 후진상태에 있는 한, 노동력
의 형법적 보호는 얼마든지 타당하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라드브루흐는 발언 서두
부터 발제자인 그로 교수가 자신이 ‘예전에’ 가졌던 생각을 대상으로 했다고 말함
으로써46) 그 사이 이 주제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노동력의 형법적 보호’라는 주제와 관련된 구체적인 측면과 관련해서는 다음
과 같은 세 가지 점을 지적한다. 첫째, 노동력의 손상을 중상해죄의 구성요건에 포
함시키고, 특히 직업능력의 손상을 단순한 건강침해와 구별하여 규정할 필요가 있
다고 한다. 또한 근로자보호규정에 위반하여 인간의 생명에 위험을 야기하거나 중
상해의 위험을 야기하는 행위를 형벌로 위협해야 한다고 한다. 이 점에 관한 한,
라드브루흐는 자신의 기존의 입장을 고수한다. 둘째, 근로자의 노동력 행사의 자
유를 보호하기 위해 명예강요죄를 확장하는 것은 ‘진츠하이머 교수의 예리한 서
44) H. Sinzheimer, Diskussionsbemerkung, in: Verhandlungen des 35. Juristentages, 2. Bd., S. 915. 45) H. Sinzheimer, ebd., S. 920. 46) G. Radbruch, Diskussionsbemerkung, in: Verhandlungen des 35. Juristentages, 2. Bd., S. 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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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왕_노동법과 형법 253
술’에 비추어 볼 때,47) 오히려 근로자에게 훨씬 더 불리한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
에 이에 관한 자신의 제안을 명확히 철회한다고 한다. 셋째, 임금부당이득죄를 신
설하거나 임금부당이득을 기존의 금전부당이득죄 구성요건에 포함시키는 해석론
이 협약임금을 초과한 임금약정을 요구하는 근로자를 처벌할 위험이 있다는 진츠
하이머의 우려를 감안하여, 그와 같은 위험성을 배제하는 쪽으로 구성요건을 변경
할 수 있으며, 특히 자신의 원래 의도는 임금부당이득의 형사처벌 여부 자체에 관
련된 것이 아니라, 임금과 관련하여 부당이득을 취하는 사용자가 얼마든지 금전부
당이득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었을 뿐이라고 한다. 이는
기존의 부당이득죄 구성요건에 대한 해석론과 임금부당이득죄 구성요건의 신설과
관련하여 상당히 강한 신념을 드러냈던 그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후퇴한 것이다.
즉, 자신의 입장을 명시적으로 철회하지는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진츠하이
머와 마찬가지로 형법이 노동법과의 관계에서 부수적이고 보충적인 기능을 할 뿐
이라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실제로 결의문의 표결 직전의 짤막한 언급들을 통해
진츠하이머와 라드브루흐 모두 자신들의 견해가 서로 대립관계에 있지 않음을 강
조한다.48)
물론 법률가대회 토론과정에서 라드브루흐가 자신의 입장을 완전히 뒤집는 태
도를 보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노동력의 형법적 보호’라는 화두를
던졌고, 이 화두가 법률가대회의 논의 주제가 되게 만든 원인제공자가 즉석에서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은 인간적으로든 학자의 고집이라는 측면에서든 어려운 일이
었을 것이다. 진츠하이머에 대한 이론적 ‘승복’은 오히려 법률가대회가 끝난 이후
에 라드브루흐가 발표한 글에서 이루어진다. 대회가 끝나고 그 다음 주에 라드브
루흐는 하이델베르크 타게스블라트(Heidelberger Tagesblatt)라는 일간지에 ‘잘
츠부르크 법률가대회에서의 형법’ 49)이라는 제목으로 학회보고문을 기고한다. 이
기고문에서 라드브루흐는 법률가대회의 논의과정을 소개하면서 명시적으로 “형법
이 아니라, 노동법이 헌법이 기약하고 있는, 노동력에 대한 ‘특별한’ 보호를 보장
47) G. Radbruch, ebd., S. 921. 48) G. Radbruch, ebd., S. 923. 49) G. Radbruch, Das Strafrecht auf dem Salzburger Juristentag, in: Heidelberger Tagesblatt vom 27.9.1928(인용은 GRGA Bd. 9, hrsg. v. R. Wassermann, S. 307f.에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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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 노동법포럼 제11호(2013. 10)
할 수 있다”라고 쓰고 있다.50) 또한 2년 후인 1930년에 출간된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 주석서(편집자는 니퍼다이였다)에서 제157조(노동력보호)에 관한 주석을 하
면서 라드브루흐는 노동력의 보호를 위해 형법이 개입하지 않는 것은 ‘충분한 근
거(aus guten Grüden)’가 있다고 적고 있다.51) 하지만 이러한 사정을 한 학자의
이론적 패배라고 평가할 필요는 없다.
그 보다 훨씬 더 중요한 사정은 신칸트학파의 법철학자인 라드브루흐가 1930년
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사회민주주의자로서의 자신의 신념을 법철학적 차원
에서 이론화하기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즉, 라드브루흐는 1930년에 발표한 논문
‘개인주의적 법으로부터 사회적 법으로’ 52)에서 시작하여 나치가 집권한 이후에 이
르기까지 여러 편의 글을 발표하면서 자유주의 법사상의 한계를 극복하는 ‘사회적
법사상(soziales Rechtsdenken)’을 구상한다. 53)
이러한 사상적 흐름 속에서 ‘노동력의 형법적 보호’에 관한 그의 이론적 경험
은 틀림없이 하나의 중요한 축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제35회 법률가대회
는 라드브루흐에게 패배의 기억이 아니라, 사상적 발전의 계기였던 셈이다. 이 점
에서 진츠하이머는 자신의 기존의 노동법사상을 그대로 고수하면서, 친구이자 사상
적 동지인 라드브루흐에게 풍부한 정신적 자양분을 제공한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 사이의 이론적 편차는 일종의 작은 ‘가족싸움(Familienstreit)’이었을 뿐이
다. 싸움이 끝난 이후 각자는 원래의 제자리에서 자신의 이론과 신념을 유지하고 발
전시키는 작업을 계속한다. 국가형법에 대한 제한이라는 법치국가적 형법의 원칙을
발전시키고자 했던 라드브루흐는 예외적으로 노동력의 보호를 위해서는 형법이라
는 수단을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떨쳐버림으로써 자신의 원칙을 계속 유지할 수
50) G. Radbruch, ebd., S. 309. 51) G. Radbruch, Art. 157 Abs. 1 Arbeitskraft, in: H. C. Nipperdey(Hrsg.), Die Grundrechte und Grundpflichten der Reichsverfassung. Kommentar zum zweiten Teil der Reichsverfassung, Bd. 3, 1930(인용은 GRGA Bd. 14, hrsg. v. Hans-Peter Schneider, S. 54ff.에 따름), S. 64. 52) G. Radbruch, Vom individualistischen zum sozialen Recht, in: Hanseatische Rechts- und Gerichts-Zeitschrift 13, 1930(= GRGA Bd. 2, hrsg. v. Arth. Kaufmann, S. 485ff.). 53) 라드브루흐의 사회적 법사상에 관한 자세한 서술은 윤재왕, 법철학과 사회법 - 라드브루흐의 사회적 법사상을 중심으로 -, 안암법학 37권, 2012, 331면 이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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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왕_노동법과 형법 255
있게 되었다. 기존의 모든 경제적 관계를 폐기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향해 전진
하는 계급투쟁을 최우선과제로 삼는 정통 마르크스주의로부터 일찍부터 거리를 둔
진츠하이머로서는 근로자계급과 사용자계급 사이의 사회적 대등성54)이라는 자신의
‘개량주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동법이 근로자들의 단결권을 강화하는 자율
적인 법영역으로 확립되어야 한다는 이론적 확신을 방어하고 유지할 수 있었다. 특
히 노동법의 자율성에 대한 진츠하이머의 확신은 오늘날의 체계이론적 용어를 빌리
자면 노동법의 ‘자기생산(Autopoiesis)’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그의 노동법사상
의 처음과 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55) 아무튼 법치국가형법과 노동법의 자율성이
라는 이념의 타당성은 그 이후의 역사가 충분히 입증하고 있다. 다만, 나치라는 괴
물을 통해 이 이념들이 순간의 물거품이 되고 만다는 사실 그리고 그로 인해 자신들
이 겪게 될 개인적 불행에 대해서는 아직 즐거운 가족싸움을 하던 당시에는 라드브
루흐와 진츠하이머 모두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모든 역사가 그렇듯이.
주제어 : 구스타프 라드브루흐, 후고 진츠하이머, 노동형법, 노동법의 자율
성, 노동력의 형법적 보호
54) 사회적 대등성은 진츠하이머 노동법학의 기치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와 관련해서는 진츠 하이머의 두 논문을 지적한다. H. Sinzheimer, Die Fortbildung des Arbeitsrecht(1922), in: ders., Arbeitsrecht und Rechtssoziologie, Bd.1, 1976, S. 78ff.; ders., Der Kampf um das neue Arbeitsrecht(1924), ebd., S. 91ff. 또한 사회적 대등성을 실현하기 위한 집 단적 자치시스템이 노동법질서에서 갖는 의미에 관한 박종희, 노동3권의 보장의의와 내용, 고 려법학 제 48호, 2007, 107면 이하 참고. 55) 이 점을 지적하고 있는 R. Erd, Hugo Sinzheimer. Aufruf zur Befreiung des Menschen, ebd., S. 292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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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 노동법포럼 제11호(2013. 10)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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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희, 노동3권의 보장의의와 내용, 고려법학 제 48호, 2007, 107-140
-
우희숙, 노동형법의 패러다임 변화와 노동형법정책의 방향, 고려대학교 박사
학위논문, 2010
- 윤재왕, 법철학과 사회법 - 라드브루흐의 사회적 법사상을 중심으로 -, 안암
법학 37권, 2012, 331-367
- 이달휴, 진정노동형법의 법원과 부진정노동형법의 원리, 노동법학 제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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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왕_노동법과 형법 259
Arbeitsrecht und Strafrecht - Zu einem Streit zwischen Hugo Sinzheimer und Gustav Radbruch über den strafrechtlichen Schutz der Arbeitskraft
Prof. Dr. jur. Zai-Wang Yoon(School of Law, Korea University)
Die vorliegende Abhandlung ist ein kurzer Bericht über eine Verhandlung des 35.
deutschen Juristenstentages, der 1928 in Salzburg gehalten wurde. Dabei handelt
es sich um die Verhandung der Abteilung 'Wirtschafts- und Finanzrecht' über das
Thema 'Der strafrechtliche Schutz der Arbeitskraft'. Auf dieser Bühne traten zwei
prominente Rechtswissenschftler auf, nämlich Gustav Radbruch, einer der bekantesten
Rechtsphilosophen des 20 Jahrhunderts einerseits und Hugo Sinzheimer, der Vater
des deutschen Arbeitsrechts andererseits. Im Vorfeld des Juristentages hat Radbuch
in einem kleinen Aufsatz dafür plädiert, die Arbeitskraft mittels des Strafrechts zu
schützen. Demgegenüber hat Sinzheimer aufgrund seiner festen Überzeugung über
die Autonomie des Arbeitsrechts und auch über die Selbsthilfekraft der Arbeiterklasse
an der Einmischung des Stafrechts in die Arbeitsverhältnisse eine grundlegende
Kritik ausgeübt. Gleichzeitig sah er in der Kliminalisierung eine große Gefahr,
weil das Strafrecht dessen Spieß umdrehen und als Waffe gegen die Arbeitnehmer
verwendet werden kann. So bewertete er den strafrechtlichen Schutz der Arbeitskraft
als einen zweischneidigen Schwert. Vor diesem Hintergrung optierte Sinzheimer für
die Verstärkung und Fortbildung der sozialgesetzgeberischen Maßnahmen als besten
Weg zum Arbeitskraftschutz. Im Rahmen der Verhandlung hat Radbruch bei beinah
allen Punkten seine frühre Ansichten hinter sich lassen und die Berechtigung der
Sinzheimer‘s Kritik bestätigen. Diese wissenschaftliche Auseinandersetzung muss eine
große Anregung dafür gegeben haben, dass Radbruch später sein soziales Rechtsdenk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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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 노동법포럼 제11호(2013. 10)
entwickelt hat. Der Verfasser hofft, dass dieser kleine historische Reisebericht einen
Anlass dazu bieten könnte, über das Verhältnis von Arbeits- und Strafrecht bzw. die
Rolle des Arbeitsstrafrecht in der gesamten Rechtsordnung kritisch nachzudenekn.
Key Words : Gustav Radbruch, Hugo Sinzhimer, Arbeitsstrafrecht, Autonomie
des Arbeitsrechts, Der strafrechtliche Schutz der Arbeitskra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