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균, 한국 법질서와 정의론 공정과 공평, 그리고 운의 평등,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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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한국 법질서와 정의론: 공정과 공평, 그리고 운의 평등*
- 試論 -
1)
金 度 均**
“(…) 근본적 전환은 목전의 편파적 이익에 안주하려는 우리들에게 현실적 설득력
은 극히 약할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길로 나아가는 것만이 우리
모두가 상의상생[相依相生]할 수 있는 정도(正道)라고 확신한다.”
<이흥재, 노동법 제정과 전진한의 역할』(2011)>에서)1)
요 약
이 논문의 목표는 한국 법질서의 근저에 놓여 있다고 평가되는 정의원리들을 명 료하게 드러내고, 이 정의 원리들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정당화하는 정의론을 찾아 보는 데 있다. 이 논문은 한국 사회의 법현실을 고찰한 후, 한국 사회의 법질서 근 저에 놓여 있는 기본적 정의관념들을 공정과 공평이라고 특징짓는다. 한국 최고법원 의 판례들에서 추출한 개별적인 정의원리들을 설명하고 정당화할 수 있는 정의론의 후보로서 자유지상주의 정의론, 평등지향적 자유주의 정의론, 공동선지향적 정의론 을 살펴본 후 이 논문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전개한다. 자유지상주의 정의론은 개인 의 노력과 성과를 강조하지만 정의의 대원칙으로서 응분원칙을 충분히 충족하지 못 한다는 결함을 갖고 있어 공정의 이상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한다. 공동선으로서의 정의론은 응분의 원칙을 중심에 두고 해당 사회구성원들의 공유된 이해로부터 추출 한 정의원칙들을 제시하려 하지만 사회경제적 재화의 분배 문제를 적절하게 다루지 못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평등지향적 정의론은 자연적 운과 사회적 운의 영향 을 차단하려한다는 점에서 공정성과 공평성 이념을 잘 구현하고 있으며 응분 원칙 의 근본사상도 적절하게 구현하고 있다. 법원의 판례에 나타나는 정의원리들에 대한 경험적 분석과 정의이론들에 대한 규범적 고찰을 토대로 하여, 이 논문은 응분 원칙 과 운의 평등을 한국 법질서의 근저에 놓여 있으면서 입법과 사법, 행정의 작동을 지도하는 정의이념으로 보자고 제안한다.
주제어: 정의, 공정, 공평, 응분 원칙, 운의 평등, 정의지향적 관점
- 이 논문은 서울대학교 법학발전재단 출연 법학연구소 기금의 2012학년도 학술연구비 지원을 받았음.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법학대학원 교수.
1) 이흥재, 노동법 제정과 전진한의 역할,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1, 215면.
서울대학교 法學 제53권 제1호 2012년 3월 325∼413면 Seoul Law Journal Vol. 53 No. 1 March 2012. pp. 325∼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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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머리말
- 고대 로마법학 이래로 법은 정의를 실현하려는 의지의 산물이자 정의를 실현
하는 기예로 인식되어 왔다. 이 전통에 따르면, 법은 ‘선(善)과 정의를 실현하는
기술’이며, 법학은 “정의를 돌보고, 선과 정의의 지식을 교시하여 공평한 것과 불
공평한 것을 구분해내고, 허용되는 것과 허용되지 않는 것을 분간하며, 사람들을
비단 징벌의 위협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격려를 통해서 선하게 하고자 갈구하는”
기술을 익히게 하는 학문이다. 그리고 법률가들과 법학자들은 ‘정의의 사제’로서
파악된다.2) 필자는 정의가 사회제도나 법제도를 평가하는 유일한 기준이 아님을
인정하면서도, 법이 지향하는 중요한 이념이라는 이와 같은 전통적인 사상을 받아
들인다.
이로부터 법과 법학의 두 가지 속성과 기능을 추출해낼 수 있다. 하나는 정의의
실현이라는 가치적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분쟁해결을 위한 기술적이고 도구적인
측면이다. 법과 정의의 연관성을 고려하면, “선과 정의에의 지향 없는 법학은 맹
목적이고, 기술의 연마 없는 법학은 공허하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현실 속의 법은 정의보다는 부정의를 유지하는 강력한 수단으로 평가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론에서는 정의는 언제나 이렇게 법이념의 핵심으로 인정되어 왔
던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법의 정의(Gerechtigkeit des Rechts)에 관해 질문하면 냉소적인 반
응에 부딪치지만 필자는 한국 법질서가 현실에서 어떤 점에서 비합리적이고 부정
의한 지를 거론하지는 않겠다. 비합리적이고 부정의한 현실의 법들이 보다 낫게
개선되려면 어떤 내용의 정의원리들이 적절한지, 그리고 어떤 정의론이 필요한지
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진행할 것이다.
- 필자는 한국사회에서의 법의 정의 문제를 다루면서 세 가지 가정에서 출발한
다. 우선, 법적 정의는 절차적 정의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내용상의 정의와 독립해
서 판단되는 정의가 아니라는 가정이다. 두 번째 가정은 한국 법질서에 담겨 있는
정의원리들은 원리정합성(consistency in principles) 또는 통일성(integrity) 덕목을
이루어야 한다는 가정이다.3) 원리정합성 또는 통일성 가정에 기대어서 필자는 한
2) 최병조, “로마법률가들의 정의관”, 서울대학교법학 제31권 3․4호(1990), 167-181면, 특 히 172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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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법체계의 근저에 놓여 있는 심층적인 정의원리들을 찾고자 노력할 것이다. 마
지막으로, 대한민국의 헌법질서에 담겨 있는 근본가치들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의 결합을 반영(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하고 있고, 법의 제정과 해석에서 공
적인 정당화의 근거로 삼을 한국 사회의 정의론은 이 지반(plateau) 위에서 구성될
것이라는 가정이다.
법률의 정의와 부정의를 판단하는 실질적 정의기준들은 어떻게 추출할 수 있을
까? 필자는 우리 법체계의 정의나 법률들의 정의를 판단하는 정의원리들을 전적
으로 외국 학자들의 이론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가능하면서도 적절한
방안은, 근현대 한국 법문화나 정치문화의 근저에 놓여 있는 정의판단들이나 정의
원리들을 경험적으로 고찰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 헌법이나 각종 헌법적
초안과 같은 공식적인 정치적 문서들이나 다양한 법률들, 법원의 판례, 헌법재판
소의 결정들, 그리고 산업화와 민주화의 과정에서 제시되었던 전문가나 시민들의
주장들을 살피고, 이것들로부터 공공적 논의의 잠정적인 기준으로 삼을만한 정의
이념이나 정의원리들을 추출해보는 것이다. 어떤 정의론이 합당한가의 문제에 답
할 때도, 외국의 학자들이 제시한 정의론들을 참조로 하되 이것들을 우리 정치공
동체 및 법공동체의 과거에서 추출한 숙고된 정의판단들(justice-judgements)과 정
의원리들과 비교해서 적절한 변증법적 균형(reflective equilibrium)에 서는 정의론
을 후보로 구성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어떤 정의론이 자유주의적 가치(liberal
values)를 존중하면서 민주주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평등주의적(egalitarian) 정의론
의 하나일 때, 합리적 상식과 견해를 가진 시민이라면 그것을 한국 법질서의 공적
정의론으로서 대체로 수긍할 것이라고 필자는 믿고 있다.4)
- 사회정의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놀라울 정도로 늘고 사회정의의 주제에 대
해 철학자들이나 사회과학자들의 연구도 증대했지만 그 성과를 법이론의 영역으
로 끌어들여 정교화한 문헌들은 적은 편이다. 법이론과 사회정의론 사이의 간격을
줄이고 상호 간의 대화를 촉진시키는 것이 시급하다고 보지만 이 글에서는 문제
제기와 아이디어의 제시 정도로 그쳤다. 필자가 이 글을 ‘試論’으로 명명한 것도
3) 이에 대해서는 김도균, “우리 대법원의 법해석론 전환: 로널드 드워킨의 눈으로 읽기”,
법철학연구 제13권 제1호(2010), 95-138면 참조.
4) 바로 이러한 정의관의 구성이 후기 롤즈 정의론의 기획이었다. J. Rawls, Political Liberalism, expanded edition, New York,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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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까닭에서이다. 이 글에서 출발점으로 삼는 규범적 전제들과 군데군데서 제시
하는 결론들에는 철학적으로 논증해야 할 점들이 많지만, 이에 대해 필자는 본격
적인 논증을 하지 않고 필자의 가설과 상관성을 갖는 자료들을 정리하여 해설을
가했을 뿐이다. 게다가 근거로 활용된 경험적 자료도 매우 불충분하고 일부분에
국한되어 있어 필자의 가설을 입증하기에는 너무도 빈약하다. 그저 장래의 연구를
이끌 문제의식, 아이디어, 연구방향을 스케치할 뿐이어서 이 글은 본격적 연구를
위한 일종의 서문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글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우선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기존의 연구
문헌들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살펴보고, 정의 담론의 기본요소들과 기본원칙들을
서술한 후 한국의 법제도에 담겨 있다고 사법부가 공적으로 선언하고 있는 정의
원리들을 잠정적인 기준으로 해서 현대 정의론의 흐름을 비교하고 평가한다. 마지
막으로 그 결과들을 정리하여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이 합리적으로는 거부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필자가 판단하는 정의원리들과 정의론을 제시한다.
II. 한국 사회 부정의의 깊은 속살과 맨얼굴:
불공정과 불공평의 다양한 양상
특임장관실이 지난해 9월 11일 전국 16개 시와 도에 거주하는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공정사회 관련 대국민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실시한 공
정사회 관련 대국민 여론조사 결과, 국민 72.6%가 우리사회가 공정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이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사회에 대해 ‘별로 공정하지 않다’는 응답은
57.6%, ‘전혀 공정하지 않다’는 의견은 14.9%로 조사되었는데, 불공정성 답변이
72.5%에 해당된다. ‘공정하지 않다’는 응답은 젊은 층일수록 높게 나왔는데, 20∼
30대는 75% 이상, 40∼50대는 72∼73%, 60세 이상은 65%가 우리사회가 불공정
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시민들이 우리 사회의 불공정과
불공평으로 인식하고 있는 문제점들은 무엇일까? 물질적 재화, 교육기회, 삶의 전
망(life chances)을 사회적으로 분배함에 있어 그 불공정과 불공평이 한국 사회에
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그리하여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가장 고통을 주는 불
평등은 무엇인지를 필자의 평소 관심사에 비추어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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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배-예속으로부터의 자유
피고용자의 처지가 고용주의 기분에 좌우되는 경우, (비정규직) 노동자가 고용
주나 관리자의 자의에 예속되는 경우, 시민의 운명이 경찰과 검찰의 자의와 재량
에 무방비상태로 맡겨져 있는 경우 등이 한 사회에서 관찰되는 일상적인 모습들
이라면 그 사회는 지배-예속(domination-subjection)이 만연하는 사회이다.5) 인류가
꿈꾼 정의로운 사회의 모습을 소박하게 표현한다면, 각 개인의 처지가 타인의 기
분과 변덕에 따라 좌지우지되지 않는 사회, 즉 각 개인이 독립성을 갖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였지 않았나 싶다. 이렇게 사회적 강자집단(에 속하는 개인
들)의 변덕, 자의, 재량에 속수무책으로 사회적 약자집단(에 속하는 개인들)이 좌
우되고 예속된 상태를 ‘지배’(domination)란 개념으로 단순화해보자.
‘지배’의 문제를 천착해 온 정치철학자 페팃은 ‘지배’ 개념을 타인의 선택과 삶
에 자의적으로 간섭할 능력과 권능으로 정의한다. 간섭당하는 사람들의 이익이나
의견에 구애받지 않고 간섭하는 사람의 자의에 따라 결정이 이루어지고, 그 결정
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가 간섭하는 자의 재량에 전적으로 내맡겨져 있다면, 그러
한 상태가 지배-예속의 관계이다.6) 따라서 타인의 지배로부터의 자유가 보장된 정
의로운 상태란 각 개인이 타인의 자의적 간섭(=지배)으로부터 벗어나서 사회적으
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제도적 조건이 갖추어진 상태로 정의해도 좋을 것이
다. 권력자(정치권력/경제권력/사회권력)의 자의적 지배(자의와 변덕에 기반을 둔
전횡)에 의해 개인들의 선택과 행동이 좌우되는 정도가 심한 현실을 감안하면 지
배-예속 관계의 철폐가 한국 사회 정의론의 목표라고 생각한다.7)
정의를 지향하는 법이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은, 그저 개인의 선택과 행위에 불
간섭하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단순히 불간섭(non-interference)을 자유로 파악한
다면, 불간섭으로서의 자유를 누리는 개인들이 실질적으로 예속된 상태에 있을 수
5) M. Viroli(김경희 옮김), 공화주의, 인간사랑, 2006, 35-36면 참조.
6) P. Pettit, Republicanism, Oxford, 1997, 52면 참조. 페팃은 “자유는 누구나 자신이 원하 는 것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변덕스럽고, 불분명하고, 알 수 없는 자의적 의지에 예속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는 로크의 발언을 예로 들면서 비예속상태로서의 자유관이 실은 자유주의 원조 사상가들(가령 몽테스키외나 로크)의 핵심임을 지적한다 (앞의 책, 31면).
7) E. Anderson, “What is the Point of Equality”, Ethics 109(1991), 287-337면 참조. 또한 J. Rawls, Justice as Fairness: A Restatement, Cambridge/Mass., 2001, 130면: “A second reason for controlling economic and social inequalities is to prevent one part of society from dominating the 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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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있다는 점을 포착해내지 못한다. 자비로운 노예소유주나 가부장의 지배 아래
있는 노예나 여성은, 설령 노예소유자나 가부장이 실제로 간섭을 하지 않기 때문
에 불간섭으로서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 언제든지 그들의 기분이나
변덕에 좌우될 가능성이 있는 한, 지배에 예속되어 있고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하
다. 개인이 독재정에 살던 민주정에 살던 그저 국가의 간섭과 법의 규제가 가능한
한 적은 상태(불간섭의 정도)를 좋은 사회로 바라보는 입장은 사회적 강자(정치권
력/경제권력/사회권력을 가진 자)의 자의적 지배(자의와 변덕)에 의해 개인들의 선
택과 행동이 좌우되는 현실을 전혀 포착하지 못한다.8)
우리가 자유를 비예속상태(non-domination)로, 부자유를 타인의 변덕과 자의에
따라서 내 선택과 삶이 좌지우지되는 가능성이 있는 상태로 이해한다면,9) 불간섭
으로서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은 국가와 타인의 자의적 간섭을 방어할 수 있을 때
라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타인의 지배를 방어할 수 있으려면 간섭을 받
는 사람들이 간섭을 하는 사람을 견제할 수 있을 정도의 사회경제적 조건과 정치
적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점도 깨닫게 될 것이다.
앞에서 말한 바를 받아들인다면, 정의로운 사회는 국가나 법이 개인의 선호에
따른 선택과 결정에 가능한 한 간섭하지 않는 사회(최소국가)가 아니다. 오히려
정의로운 사회이려면 국가의 공적 권력의 자의적 간섭뿐만 아니라 사적 권력들의
자의적 간섭(즉, 지배)까지도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는 중대한 위험요인으로 파악
하고, 이를 견제하고 철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것이 자유주의적
가치를 존중하는 정의론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주목을 받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제시된 공동선으로서의 정의관도 바로 비
8) 페팃은 비-예속(non-domination)이야말로 중세 신분사회나 근대의 불평등체제를 혁파하 려고 했던 각종 정치철학 및 사회운동의 핵심목표였으며, 현대 페미니즘 정치철학의 목표(“Throughout its plurality, feminism has one obvious, simple and overarching goal - to end men’s systematic domination of women.” - S. Okin, “Feminism”, in: R. Goodin (ed.), A Companion to Political Philosophy, Oxford, 1993, 269면)이기도 하다는 점을 강 조한다. 이에 대한 상세한 분석으로는 Marilyn Friedman, “Pettit’s Civic Republicanism and Male Domination”, C. Laborde and J. Maynor (eds.), Republicanism and Political Theory, 246-268면 참조.
9) P. Pettit, 위의 책, 5면: “Being unfree consists in being subject to arbitrary sway: being subject to the potentially capricious will or the potentially idiosyncratic judgement of another.”(강조는 첨가). 불간섭으로서의 자유론과 비예속상태로서의 자유론이 한국 사 회에서 갖는 함의는 김도균, “불간섭으로서의 자유와 비예속상태로서의 자유-한국사회 의 자유담론과 관련해서”, 법과사회 제39호(2010), 237-268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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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속상태로서의 자유를 실현하려는 정의론을 표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10)
- 자산 불평등과 부동산 불로소득
앞에서 서술한 지배-예속관계가 생겨나는 원천 중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사회경
제적 불평등일 것이다. 이하에서는 한국 사회에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들이 겪는 고
통의 근원인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속살과 맨얼굴을 엿보기로 한다.
최근 한국 사회의 고질병을 탐구한 여러 연구들에 따르면,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낳는 주범은 부동산 불로소득의 사유화, 특히 토지 불로소득의 사유화이다.11)
2007년 10월 행정자치부가 발표한 ‘2006년 토지소유현황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06년 말 기준으로 한국 사회 토지소유자 중 상위 1%(50만 명)가 민유지 57%,
상위 10%(500만 명)가 민유지 98.4%를 소유하고 있다.12) 이와 같은 토지소유의
편중이 재산의 불평등에 미친 효과를 보면, 1999년 상위 1% 계층의 자산점유율이
9.6%였는데 2006년에는 16.7%로 두 배로 증가했다. 상위 10%의 자산점유율이
1996년 46.2%에서 2006년 54.3%로 증가했다. 가구 순자산의 불평등도를 구성요소
별로 분석하면 부동산 자산의 불평등기여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고 2006년
의 경우 순자산 중 부동산이 약 93%, 금융자산이 약 12%의 불평등도를 높인 것
으로 확인되었다.13)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개발 등의 우연적인 이유로 땅 값이 폭등했는데도 그 이
10) 마이클 샌델(이창신 옮김), 정의란 무엇인가, 김영사, 2010.
11) 이는 손낙구, 부동산 계급사회, 후마니타스, 2008에서 제시된 자료를 받아들인 것이다. 또한 남기업, 공정국가, 개마고원, 2010 참조. 철학자로서 이 점에 주목한 이승환, “토 지 불로소득과 분배정의”, 황경식 외, 공정과 정의사회, 조선뉴스프레스, 2011, 49-85 면 참조.
12) 주민등록 세대 기준으로 토지 소유 현황을 분석한 통계는 손낙구, 위의 책, 54-5면: “전체 가구의 27%(500만 가구)가 사유지의 99%를 소유하고 있다. 또 27% 중에서도 땅을 상대적으로 많이 갖고 있는 5.5%(100만 가구)가 사유지의 74%를 차지하고 있고, 그 중에서도 땅이 더 많은 2.7%(50만 가구)는 사유지의 59%를 소유하고 있다. 또한 땅을 가장 많이 소유한 최상위 10만 가구(전체 가구의 0.5%)는 사유지의 30%를 차지 하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가 100명이 사는 사회라면 27명이 사유지 기준으로 국 토의 99%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이 소유하고 남은 1%의 땅에 33명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북새통을 이루며 살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나머지 40명은 서 있을 자리도 없어 바다 속에 빠진 상황이다.”
13) 한국 사회의 소득 및 자산의 분배와 불평등에 대해서는 이정우, “소득 및 자산의 분 배”, 석현호 외, 한국사회의 불평등과 공정성 의식의 변화,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05, 61-113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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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을 토지 소유자가 고스란히 가져간다는 것이 한국 사회 토지소유관계의 문제점
이라는 데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다. 땅값 상승으로 인한 불로소득의 문제
에 초점을 맞추어 오랫동안 연구해 온 전문가들에 따르면, 1980년에서 2001년까
지 21년 간 전국적인 땅값 상승으로 인한 개발이익은 1,284조원이다. 1980년도 땅
값 총액이 134조였고, 2001년에는 1,419조원이었으니 그 차액을 계산한 것이다.14)
1981년에서 2003년까지 발생한 토지 불로소득은 약 1,283조원으로 추산되기도 한
다. 특히 2001년에서 2003년까지 토지 불로소득은 212조원으로서 한 해 평균 70
조원에 달했고, 2002년의 경우 상승액은 134조원으로 국내총생산 684조 원의 1/5
규모였다.15) 물론 현실화된 소득이라기보다는 잠재적 이익을 추산한 것이기는 하
지만, 이 정도면 토지소유의 극심한 불평등이 한국 사회 양극화의 주범이라고 보
아도 좋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 사회에 적합한 정의론이려면 토지소유의 불평등과
토지 불로소득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만 할 것이다.16)
토지소유의 극심한 불평등과 함께 건물과 주택의 소유 또한 매우 불평등하게
편중되어 있다. 2003년과 2005년에 발표된 <세대별 주택 보유현황>을 참고하면
다음과 같다. 전체 가구의 0.08%인 1만4,823명은 가구당 평균 21채씩 총 30만
7,351채를 소유하고 있다. 2채에서 1,083채까지 소유하고 있는 다주택소유자는 전
체 가구의 5%인 89만 명이며, 이들이 소유한 주택 수는 전체의 1/5인 237만 채이
다.17)
2000년대 이후 부동산 투기의 특징은 주택, 특히 아파트 가격의 폭등이다. 손낙
14) 정희남․김승종․박동길, “개발이익 발생규모와 환수수준에 대한 실증분석 1980∼ 2001”, 감정평가연구 제13집 2호(2003), 85-110면 참조.
15) 전강수, “양극화 해소를 위한 토지정책 방향”, 토지정의시민연대 창립총회 및 정책토 론회 발표문(2005. 2. 22) 참조(토지정의시민연대 홈페이지 www.landjustice.or.kr).
16) 남기업, 공정국가, 94면 이하 참조. 토지 불로소득이 부정의하지 않다는 자유지상주의 적 주장을 담고 있는 대표적 문헌은 김정호, 왜 우리는 비싼 땅에서 비좁게 살까: 시 장경제로 풀어보는 토지문제, 삼성경제연구소, 2005; 동저자, “한국법학자들의 토지재 산권 개념 비판”(2005), 자유기업원 홈페이지(www.cfe.org).
17) 손낙구, 부동산 계급사회, 49-50면. 2003년에 발표된 행정안전부 <세대별 주택 보유 현황>을 보면, 개인이 소유한 총 주택 수는 1,370만 채이며 이 중 40.6%인 556만 채 를 1가구 1주택자들이 소유하고 있고, 59.4%인 814만 채는 1가구 다주택자들이 소유 하고 있다. 전체 가구 절반이 넘는 841만 가구는 무주택소유자로서 전세, 월세, 사글 셋방에 살고 있다고 한다. 집을 2채 이상 소유한 다주택자는 276만 가구이며 전체 가 구의 16.5%이다. 이들이 소유한 주택은 전체 주택의 60%에 달한다. 집을 3채에서 20 채까지 소유한 다주책자는 118만 가구로 전체의 7.1%이며 이들이 소유한 주택은 498 만 채로 전체 주택의 36.4%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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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 연구에 따르면, 2000년에서 2006년까지 6년 동안 집값이 올라 발생한 불로
소득은 약 648조 원이다. 이 중 87%인 566조 원은 아파트값이 올라서 생긴 것이
다. 그리고 그 6년 동안 서울 지역과 강남 지역에서 아파트값의 급상승으로 발생
한 불로소득 총액은 약 320조 6,223억이다. 서울 지역 아파트값이 올라 발생한 불
로소득은 전국 아파트값 불로소득의 57%, 전체 집값 불로소득의 50%에 달하는
규모이다. 이 중 강남․서초․송파 3개구 아파트값이 올라 발생한 불로소득은
113조9,689억 원이다. 강남 지역에서만 발생한 불로소득은 서울 아파트값 불로소
득의 36%, 전체 아파트값 불로소득의 20%에 달한다. 전국 집값 상승으로 인한 불
로소득의 18% 규모이다.18)
부동산 불로소득, 특히 토지 불로소득이 한국 사회 전반에 끼치는 해악을 전문
가들의 견해를 빌어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19)
첫째, 토건 분야에 불필요하게 많은 국가재정이 할당되어 국가재정사용의 왜곡
을 낳는다는 것이다.
둘째, 엄청난 부동산 불로소득의 사유화가 후진형인 토건형 산업구조를 고착화
시킨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지식기반형․기술기반형 산업구조로 나아가는 것
을 가로막는 주범은 바로 토지 불로소득에 뿌리를 두고 있는 토건형 산업구조이
다. 부동산 투자 이득이 자본 투자 이득보다 월등이 높으니 재벌을 비롯한 기업들
이 생산활동보다는 부동산 투기에 눈을 돌리게 되고, 기형화된 산업구조가 고착화
되지 않을 수 없다.20)
셋째, 부동산 불로소득의 사유화는 경제위기의 주된 원인들 중의 하나이며, ‘내
18) 손낙구, 부동산 계급사회, 60면 이하 참조. 부동산 불로소득의 대부분은 누구에게 돌 아갔을까. 손낙구에 따르면, 2001∼03년 사이에 발생한 토지 불로소득 21조원은 전체 땅의 45%를 가진 상위 1%(약 10만 명)가 가져갔다. 지난 6년 동안 발생한 주택 불로 소득의 60%는 집을 2채 이상 소유한 다주책자들에게 돌아갔다. 집 2채 가진 사람은 6,233만 원, 3채는 9,331만 원, 4채는 1억2,472만 원, 5채는 1억5,500만 원을 벌었다.
19) 이하 부분은 남기업, 공정국가, 95면 이하와 손낙구, 위의 책, 90면 이하를 정리․요 약한 것이다.
20) 임야에 집중되었던 제3차 부동산 투기시대 1985∼88년 4년간의 자료를 보면, 5대 재 벌은 기술개발 등 부동산 매입 이외에 지출한 액수는 5,334억 원인 반면, 부동산 매 입에 쓴 돈은 2조2,783억 원으로서 생산 부문의 4.3배를 부동산 투기 자금으로 쓴 것 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소유한 전체 토지 중 생산용지로 활용되는 공장 용지는 많아 야 4%인 반면, 임야 64%, 논밭과 목장 용지가 9%, 대지는 6%였다. 이에 대해서는 손낙구, 위의 책, 72-3면 참조. 자세한 분석은 장세훈, 자본의 토지소유 및 개발에 대 한 국가정책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1996) 참조. 상세한 통계자료는 토지공개 념위원회, 토지공개념연구위원회보고서(198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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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침체→투자하락→일자리부족/실업’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부동산 불로소득의 사유화는 ‘높은 주택가격→정규직
노동자들의 무리한 임금 상승→대기업의 고용의지 위축 및 하청기업에 대한 착
취 심화→하청기업의 생산성 하락 및 임금지불능력 하락→고임금-고생산성 고용
축소와 저임금-저생산성 고용 증가’ 악순환과 함께 ‘토지 투기→고지가(高地價)
→신규창업 제약→일자리 축소’라는 악순환을 낳는다.21)
넷째, 부동산 불로소득의 사유화와 그로 인한 불평등 심화는 ‘주택가격→폭등
주거비 급등→생계압박→노동쟁의 증가’라는 사회갈등현상을 고착화시킨다.22)
또한 부동산 격차가 곧 빈부격차를 낳고, 교육 불평등과 건강 불평등까지도 초래
한다.23)
마지막으로, 부동산 불로소득의 사유화는 부정부패를 비롯하여 한국 사회에 만
연하는 온갖 반칙들의 온상이 된다는 것이다. 부정부패와 뇌물수수로 구속되는 공
무원의 60% 이상이 건설․토건행정 관련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공무원이라는
점이 이를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24)
물론 소득불평등이 부동산불로소득으로부터만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소득이
높은 직장을 가졌는지 여부와 정규직인지 여부도 중요하다. 영세자영업이나 비정
규직, 임시고용직, 실업자 등은 한국사회에서 매우 열악한 처지에 빠져 있다는 점
은 새삼스럽게 지적하지 않아도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일 것이다.
- 교육의 불평등과 취업 불평등: 운이 개인의 일생을 좌우하는 불행한
사회
한국 사회는 출생이나 소속이라는 운이 우리의 일생을 좌우하는 불행한 사회이
다. 부모, 가정환경, 타고난 재능과 같은 자연에 의해 각 개인에게 임의로 주어진
운(luck)이 개인의 일생을 좌우하고, 이 운의 불평등을 적절하게 교정할 수 있는
적절한 장치나 방안들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사회, 즉 사회적 안정망(social safe-
21) 이에 대해서는 남기업, 공정국가, 125면 이하, 특히 169-170면 참조.
22) 이러한 경향에 대해서는 삼성경제연구소,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긴급대책”, CEO Information, 402호에서 제시되었고, 이를 건설교통부, 통계청, 노동부의 자료를 종합하 여 실증적으로 확인한 손낙구, 부동산 계급사회, 123면 이하 참조.
23) 손낙구, 위의 책, 제4장 참조.
24) 경향신문(2005.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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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y-net)이 부실한 사회는 부정의한 사회이다.25) 한국 사회의 20대와 40대(일명
‘2040세대’)의 70% 이상이 한국 사회를 ‘부모의 지위에 의해 계층상승기회가 결
정되는 폐쇄적 사회’, ‘패자부활의 기회가 없는 사회’, ‘노력한 만큼 보상과 인정
을 받지 못하는 사회’로 바라본다는 최근의 한 여론조사(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보
건사회연구소)는 이러한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26)
부동산 불로소득을 비롯한 소득 불평등과 교육 불평등은 매우 밀접한 상관성을
보이고 있다. 교육 불평등(educational inequality)을 “교육의 기회와 질이 사회계층
이나 집단에 따라 다르게 또는 편향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것”27)으로 일단 이해하
도록 하자. 교육 불평등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통계가 있다. 2003년의 경우
가장 못사는 소득 1분위의 월교육비 지출은 5만5826원이었다면, 가장 잘 사는 소
득 10분위의 교육비 지출은 36만2084원으로 6.48배 차이였다. 2008년에는 소득 1
분위는 6만5631원이었다면, 소득 10분위의 54만3588원으로 8.28배였다. 5년 동안
소득 1분위의 17% 증가율과 비교할 때, 소득 10분위의 증가율은 50%였다.28)
고소득층의 자녀들이 저소득층 자녀들보다 학업 성취도가 더 높다는 점은 민주
노동당 권영길 의원의 발표자료(2009)에서도 확인된다. 이에 따르면, 국내외 명문
대학 진학률이 높은 외국어고등학교 재학생 아버지의 상위직 비율은 44.7%이고,
민족사관고등학교의 경우는 부모가 상위직인 경우가 87.83%이다. 일반 고등학교
의 경우는 13.11%, 실업계고등학교의 경우는 3.58%이다.29) 부모의 학력과 지위,
자식의 학력과 지위 사이에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는 우리의 상식은 각종 실증적
연구에서 입증되고 있다.30)
25) 남기업, 공정국가, 106면.
26) <한겨레>, 2012. 2. 14.
27) 조영달, “한국 교육의 불평등과 교육정의”, 황경식 외, 공정과 정의사회, 360면. 교육 불평등에 대한 국제적 차원에서의 비교분석으로는 D. Holsinger/W. Jacob (eds.), Inequality in Education: Comparative and International Perspective, Hong Kong, 2009 참조.
28) 국가통계포털(http://www.kosis.kr) 참조. 남기업, 위의 책, 107면 참조. 또한 방하남/김 기헌, “기회와 불평등-고등교육기회에 있어서 사회계층간 불평등의 분석”, 한국사회학 제36집 제4호(2002), 193-222면 참조.
29) 권영길, “외고생 4명 중 1명만 동일계열 대학 진학, 동일 지역 중학교 출신”, 보도자 료(2009.6.25.) 2002년의 연구이기는 하지만 실증적 분석으로는 장미혜, “사회계급의 문화적 재생산: 대학간 위계서열에 따른 부모의 계급구성의 차이”, 한국사회학 제36집 제4호(2002), 223-251면 참조.
30) 가령 차종천, “학력 및 직업 획득의 불평등과 그 변화”, 석현호 외, 한국사회의 불평 등과 공정성 의식의 변화,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05, 21-47면: 여유진, “한국에서의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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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불평등과 그에 수반하는 문화자본(cultural capital)의 불평등, 사교육비의
과중한 부담, 능력주의와 학력주의의 강고한 결합, 학벌(이른바 명문대학)의 과도
한 프리미엄 등이 교육 불평등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데,31) 가속화되고 있는
한국 사회의 교육 불평등의 원인과 양상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불공정성’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경쟁을 위한 출발선의 불공정한 차이가 교육의 불평등을 낳게 된
다는 것이다.32)
소득 불평등에 따른 교육 불평등은 취업의 불평등을 낳고, 또한 건강과 복지의
불평등과도 상관성을 갖는다.33) 부모의 소득과 재산 등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자녀의 교육 기회와 능력이 결정된다는 점은 한국 사회가 계층간 이동이 불가능
한 폐쇄적인 신분제 사회로 이동해가고 있음을 전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34) 이
는 한국 사회가 노력보다는 출생과 소속에 의해, 즉 개인이 선택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자연적인 운(natural luck)과 사회적인 운(social luck)에 의해 개인의 사
회경제적 지위와 일생이 결정되는 사회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육을 통한 사회이동 경향에 대한 연구”, 보건사회연구 제28권 2호(2008), 53-80면 참 조. 최근의 동향에 대해서는 김희삼, “세대간 경제적 이동성의 현황과 전망”, KDI 정 책포럼 제220호(2009-13)(2009.12.29) 참조.
31) 이에 대한 다양한 연구성과들을 정리하여 교육 불평등과 불공정성의 복합성을 보여주 는 조영달, “한국 교육의 불평등과 교육정의”, 347-395면 참조.
32) 가령 남기업, 공정국가, 115면. 양정호, “한국의 사교육비 격차에 관한 연구: 한국노동 패널조사의 다극화지수와 지니 계수를 이용한 분석”, 제7회 한국노동패널 학술대회 발표논문, 한국노동연구원, (2006. 2. 2)(한국노동연구원 홈페이지 www.kli.re.kr <한국 노동패널>에서 검색).
33) 이에 대해서는 리처드 윌킨슨(김홍수영 옮김), 평등해야 건강하다-불평등은 어떻게 사 회를 병들게 하는가, 후마니타스, 2008 참조.
34) 남기업, 위의 책, 109면. 윤태호, “빈곤, 불평등 사회, 그리고 건강”, 복지국가소사이어 티(http://www.welfarestate.net/) 컬럼에서 윤태호 교수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소득불평등을 나타내는 대표적 지표인 ‘지니계수’는 2인 이상 도시가구의 시장 소득 을 기준으로 2008년 0.325를 기록해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90년 이후로 사상 최고치 를 기록하였다. 가계수지에서도 통계조사가 시작된 2003년 이래로 빈부 간의 격차가 가장 크게 벌어지고 있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하위 20%의 소득은 16만 8천원 증 가한데 비해, 상위 20%는 164만 3천 원이 증가하여, 전체 소득에서 하위 20%가 차지 하는 소득의 비중은 5.6%에서 5.4%로 떨어졌고, 상위 20%는 40.6%에서 41.7%로 증 가했다. 학력계층 간 임금 격차는 고졸자 임금을 100으로 했을 때 대졸자의 임금은 2003년 151.7, 2005년 154.9, 2007년은 157.7로 계속 확대되어가고 있다. 남녀 간 임금 격차 역시 심각하여 여성의 평균 임금수준은 남성의 60% 정도에 불과하여 OECD 국 가들 중 최하위 그룹에 속한다.” 소득분배의 악화와 사회보장정책의 연관성에 대해서 는 구인회, 한국의 소득불평등과 빈곤, 서울대학교출판부, 200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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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다.35)
- 노사관계의 불평등: 이익과 부담 배분의 불공평
대한민국은 세계 최대의 간접고용의 나라이다. 노동영역과 관련하여 2010년의
자료를 보면 비정규직이 860만 명(노동자의 50.4%)이고, 비정규직의 평균임금은
정규직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해마다 들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자살 소식
은 그들 삶의 고통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경영상의 이유로 인한 정리해고에서 이득과 부담 분배의 불공정성이 나타나기
도 한다. 정리해고된 노동자들의 피폐한 삶은 노동자 자신과 가족들의 물질적 곤
궁함뿐만 아니라 정신적 고통으로도 나타난다.36) 정리해고는 기업의 영업의 자유
와 노동자의 생존권이 충돌하는 지점으로서, 그 불이익과 비용은 어느 한 편에 과
도하게 지울 것이 아니라 사용자, 노동자, 사회가 공평하게 분담하는 편이 정의로
운데도, 우리 법제는 그 정의로운 해결책을 도외시해왔다. 근로기준법 제24조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의해서만 정리해고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라는 조건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종래 법원은 경영합리화와
영업실적 부진까지도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로 인정하는 입장을 취해왔다.37)
2009년 ‘콜트악기 해고무효확인 판결’(인천지방법원 민사11부 2009.5.14.) 이후
법원은 “기업은 단순히 주주나 투자자의 의사에 따라 운영되고 정리여부가 결정
되는 것이 아니다. 그 기업이 존재하게 된 많은 사회적 요인에 따라 그 존속여부
가 결정된다. 단순히 도산의 위험성이나 장래 막연한 경영상 위기라는 이유로 그
기업을 폐지하여 근로자를 해고하고 사회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방기하는 결과를
낳는 방향으로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라는
35) 남기업, 공정국가, 110면.
36) 가령 2009년 5월 이후 쌍용자동차 노동조합이 파업에 돌입한 후 1년 동안 해고노동 자 및 가족이 6명이 자살했고, 파업참여자 41%가 고도의 우울증을 호소하고 있으며 1600명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어려움에 빠져 있다. 이는 부정의한 대량 정리해고가 얼마나 당사자들에게 큰 고통을 가져다주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37) 대법원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는 반드시 기업의 도산을 회피하기 위한 경우에 한정 되지 않고, 장래에 올 수도 있는 위기에 미리 대처하기 위하여 인원 삭감이 필요한 경우도 포함한다.”고 설시함으로써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기준을 다소 넓게 파악하면 서도 “그러한 인원삭감은 객관적으로 보아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되어야 한다.”는 단 서를 첨가하여 일종의 제동장치는 설정해둔 것으로 보인다.(대법원 2002.7.9. 선고 2001다29452 판결; 2004.1.15. 선고 2003두11339 판결 등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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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을 취하고 있다. 정리해고 과정을 통해 관리직 사원들의 경우 임금상승이, 남
은 생산직 사원들의 경우 노동시간 330% 증가라는 결과로 이어졌음을 지적하면
서 법원은 주문량 감소로 인한 구조조정이라는 회사 측의 논거가 설득력이 없음
을 판단하는 부분도 주목할 만하다.38)
-
-
- 대법원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관련 판결’에서 ‘긴박한 경영상의
-
이유’를 엄격하게 해석하여 종래 경영합리화와 영업실적 부진까지도 긴박한 경영
상의 이유에 해당한다고 보던 정리해고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 ‘기업이 존폐위기
에 처할 심각한 재정위기의 도래’와 ‘예상치 못한 급격한 경영상의 변화’만을 긴
박한 경영상의 이유에 해당한다고 인정한 것이다. 노사관계에 있어서 불공정과 부
정의에 대한 법원의 최근 판결이 공정을 향한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 할 것이다.
5.‘용산 참사’와 부정의
‘용산 참사’는 현재 한국사회 전반을 음울하게 만드는 ‘암흑의 핵심’을 대표한
다. 그 배후에는 개발주의, 토건자본의 탐욕, 인간존엄성의 무시와 같은 사고방식
이 놓여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다. 법학자로서는 용산참사를 낳은 직
접적인 원인으로 법의 부정의를 꼽지 않을 수 없다. 법의 제정과 적용 차원에서
부정의가 누적되어 나타난 비극이라는 것이다.
용산 재개발과 관련된 법률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다. 이 법률(이하 ‘도
시정비법’)에 의해 규율되는 정비사업의 목적은 퇴락한 도시의 일부를 정비해서
도시 전체의 균형 잡힌 기능을 회복시키는 것에 있다. 도시의 기능을 회복시킨다
는 의미에서의 도시재생은 정비사업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촉진사업(도시재
정비촉진을 위한 특별법), 지역조합사업(주택법), 도시개발사업(도시개발법) 등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
도시정비법에는 주택재건축, 주택재개발 등 우리가 잘 아는 개발사업 이외에도
도시환경정비사업과 주거환경개선사업이라는 두 개의 사업이 더 있다. 최근 용산
에서 벌어진 사고의 현장도 재개발사업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하게는 국제빌딩
주변 용산4구역을 대상으로 하는 ‘도시환경정비사업’이다. 재건축이나 재개발과
달리 도시환경정비사업에는 상가세입자들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특히 용산 참사
38) 인천지방법원 2009.5.14. 선고2008가합7082 판결 외 서울고등법원 2009.8.13. 선고 2008누32548 판결, 서울행정법원 2010.4.29. 선고 2009구합37395 판결 등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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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경우 정비사업의 철거민은 당해 사업지역의 상가세입자들이었다. 상가세입자
들은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면서 철거를 반대한다는 주장을 펼쳤지만 ‘생떼거리’라
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통상 세입자들은 재개발사업을 반대할 때 보상을 요구하고 철거를 저지하는 방
식을 사용한다. 이는 건물이 철거되면 보상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에 기
초한 것이다. 그리고 그 불안감에는 납득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 상가세입자
의 경우 건물이 없어지는 순간 상가의 영업이 사실상 불가능해질 뿐 아니라 손실
의 입증도 어려워지는 처지에 놓이고 만다. 상가세입자보상에 대한 법률상 근거조
문이 매우 불합리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세입자들은 사후적인 보상금수
령을 꺼리게 된다. 그러므로 세입자들이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 가장 효과적
인 방법은 건물에 대한 점유상태를 계속 유지하면서 재개발사업을 지연시키는 방
법이다.
이처럼 정비사업의 철거와 세입자의 보상 문제는 사실상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데도 관련 법률은 세입자의 정당한 요구를 적절하게 수용하지 못하였다. 정상적인
방식으로 진행되는 정비사업의 경우 적법한 철거를 위해 세입자에 대한 명도소송
과 명도단행 가처분절차가 진행된다. 이때 소송절차에서 승패의 관건은 세입자에
게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결국 세입자에 대한 보상관련 조항의
해석이 명도소송과 가처분소송의 승패를 가르는 기준이 되지만, 의외로 관련법령
의 조항들은 결함이 많고 체계적이지도 않아 세입자들에게 매우 불리하다. 불분명
한 공법상 보상체계와 법적 불안정성, 즉 ‘법의 부정의’ 때문에 정비사업의 불법
적이고 기습적인 철거가 반드시 생겨날 수밖에 없으며 용산참사와 같이 비극적인
결말에 이르기도 한다. 용산참사의 원인으로 정부와 언론은 세입자와 사업시행자
의 이기적인 주장들 사이의 충돌을 거론하지만, 세입자에 대한 보상내용, 보상 절
차 등을 정확하게 정하고 있지 않는 법제의 불비와 부정의가 이 비극의 중심에
있다.39)
그렇다면 재개발과 재건축을 정의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의 핵심 물음은 다음과
같다. 재개발․재건축과 관련해서 어떤 보상이 정의로운 보상인가? 두 가지 측면
에서 정의로움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절차적 정의의 측면이고, 다른
39)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도시재개발과 관련해서 법적인 측면에서 깊이 있는 분석과 대안 을 제시한 김종보, “재개발사업의 철거와 세입자보상”, 행정법연구 제23호(2009), 109-135면을 참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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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실질적 정의의 측면이다. 용산 참사와는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지만, 최근
법원에서 종래의 재개발․재건축 행정 및 사업 진행과 관련해서 주목할 만한 판
결들을 내리고 있어 이하에서 이를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재개발과 재건축 동의를 하려는 주민들이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얼마의 비용을
부담하면 몇 평 아파트를 분양(소유권 귀속)받느냐이다.40) 그러나 대체로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주민 부담금은 70∼80%씩 상승하게 되는데, 애초 동의를 하는
과정에서는 이러한 사항에 관해 명확하게 밝히지 않다가 구체적인 비용 분담을
정하는 관리처분 단계에서 조합과 시공사가 일방적으로 거액의 분담금을 부과한
다. 이것이 재개발 재건축 사업현장마다 일어나는 분쟁과 소송의 원인으로 지목되
고 있는데, 절차상으로나 실질적으로 비합리적인 재개발․재건축 사업과 관련해
서 그동안 법은 충분히 공정한 지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와 관련해서 최근 절차적 정의의 측면에서 공정성을 관철하려는 법원의 입장
이 강화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판결로 서울고등법원의 ‘순화 제1-1구역 도시환
경정비사업조합 설립 부존재 확인 소송’ 판결(서울고법 2009.3.19. 선고 2008나
3834)을 꼽을 수 있다. 사업비 분담 및 소유권 귀속 절차 및 내용과 관련해서 동
법원은, 시작 단계에서 비용 분담과 소유권 귀속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
지 않은 채 동의를 받아 조합이 설립되었고, 이후 세 차례의 설계 변경을 거치면
서 조합원의 구체적 비용 분담과 소유권 귀속의 정보가 변경되었는데도 최초의
재개발 동의에 필요한 80%의 동의를 다시 받는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면 조합설
립이 무효라고 판단했다.
최근 법원은 절차적 정의의 정신에 비추어 사업비 분담 및 소유권 귀속과 관련
해서 구체적이고 투명한 기준이 제시되고 엄격한 절차에 따른 동의획득과정이 충
족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사업비 분담 및 소유권 귀속과 관련해서 중
요한 내용이 변경되었을 때에는 그 내용을 구체적이고 투명하게 밝히고 다시 최
초의 재개발재건축 조합 설립 때와 같이 엄격한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
다. 기준의 구체성 및 투명성과 민주적 절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절차
40) 대법원 판례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상 조합설립의 동의 사항에 ‘비용 분담에 관 한 사항 및 소유권 귀속에 관한 사항’을 두어 주민들 자신이 어느 정도의 비용을 투 입해 어느 정도 규모의 건물을 소유할 수 있는지 기초지식을 제공하는 게 가장 중요 하고 본질적인 사항임을 인정한다(대법원 2010.07.15. 선고 2009다63380 판결; 2009. 01.30. 선고 2007다31884 판결 등). 이는 재개발과 재건축이 정의의 사안임을 보여주 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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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질서와 정의론: 공정과 평등, 그리고 운의 평등 / 金度均 341
적 정의의 측면에서 한걸음 발전한 판결이라 하겠다.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용산참사와 같은 비극을 방지하기 위한 해결책의 일환으
로 ‘생활권’ 보상이 적절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 많은 연구자들이 동의하고 있
는 바, 이는 실질적 정의의 쟁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주거이전비, 영업손실보상,
이주대책 등 전통적으로는 재산권침해의 대상 및 보상내용에 포섭되기 어려운 내
용들을 보상의 대상으로 편입하기 위한 정당화근거로서 생활권 보상의 개념은 매
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41) 생활권보상은 대규모 개발사업으로 인해 취락 등이 소
멸되는 것에 대한 보상으로서 넓은 의미의 이주대책을 한 축으로 하고 다른 한편
전통적인 재산권보상의 대상에서 소외되었던 세입자에 대한 보상의 확대를 또 다
른 한 축으로 발전되어 왔다.42) 그러나 도시정비법과 법원의 판례는 정당한 생활
권보상의 문제를 소홀히 다루어왔고, 이것이 바로 상가세입자들이 철거에 반대한
이유이기도 했다. 재개발사업에서 세입자가 마땅히 배려받아야 할 몫을 제대로 반
영하지 못하는 법의 결함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비극적으로 보여 준 사례가 용
산참사라고 생각된다.
한국 사회에서 정의 이념에 반하는 정도가 극심한 법의 영역이 있다면 사회경
제적 법영역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 법영역은 사회적 힘의 차이를 그대로 반
영하기 때문에 비합리적 불평등을 교정하는 정의 원리가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과
연 이 영역에서는 어떤 정의원리가 타당할까? ‘지금 여기’의 한국 사회의 현실에
맞는 정의원리들과 구체적인 정의원칙들을 추출하려면, 그리고 이 원칙들을 체계
화하는 정의론을 수립하려면 위에서 지적한 심각하고 긴급한 문제점들을 진지하
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부동산 불로소득,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 교육 불평등, 취
업 불평등, 복지 불평등, 특권에 기초한 구조적 반칙 등의 문제점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분석하고, 해결하는 정의원리들과 정의론은 무엇일까. 이하에서는 이 물
음을 중심으로 필자의 생각을 펼쳐 보이고자 한다.
- 정의 영역의 대분류와 지도원리
앞에서 살펴 본 부정의의 양상들을 참조해서 이하에서 필자는 한국의 법질서와
정의를 세 영역 또는 세 차원으로 나누어 고찰하고자 한다.43)
41) 박균성, 행정법론(상), 박영사, 2008, 799면.
42) 이에 대한 논의로는 김종보, “재개발사업의 철거와 세입자보상”, 115면 이하 참조.
43) 정의의 삼차원을 제시한 견해로는 낸시 프레이저(김원식 옮김), 지구화 시대의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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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사회경제적 정의 영역이다. 이 영역에서의 부정의는 사회경제적 재화의
(비합리적인) 불평등분배이다. 이 영역에서는 “모든 사회구성원은 인간으로서의
번영된 삶을 사는 데 필요한 물질적 수단에 대해 대체로 평등한 접근권을 가져야
한다”는 원리가 지도적인 정의원리일 것이다.44) 그 핵심인 ‘인간으로서의 번영된
삶’(human flourishing)이라는 개념이 매우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잠정적인 출발점
으로서 필자는 인간으로서의 번영을 일단 ‘개인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능
력과 재능을 충분히 계발하고 발휘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자 한다.45) 이때
평등한 접근권은 동일한 재화나 소득의 보장을 강조하기보다는 일정한 정도의 불
평등을 인정하는 기준이다. 인간으로서의 번영에 필요한 수단들은 개인마다 다를
것이고, 이 필요한 수단들에 접근할 때 평등한 기회가 보장된다면 불평등은 생겨
나기 마련일 것이기 때문이다. “만인이 충분히 가지기 전까지는 공정하게 몫을 나
누되, 잉여분에 대해서는 공정한 경기를 통해서 배분한다.”(“Fair shares until ev-
eryone has enough; fair play for the surplus.”)는 규칙은 이러한 발상을 반영하는
것이다.46)
정치적 공간에 대한 새로운 상상, 그린비, 2010, 105면 이하 참조. 프레이저는 정의의 세 차원을 3R, 즉 ‘재분배’(redistribution), ‘인정’(recognition), ‘대표’(representation)로 개 념화하고 있다. 그리고 프레이저에 따르면, 근대사회들에는 ‘경제구조’, ‘신분질서’, ‘정치구조’라는 세 가지 구별되는 사회질서 차원들이 내재하고 있으며, 이 세 질서들 은 상호 환원불가능하며 각각의 고유한 부정의가 발생하게 된다(108면).
44) 에릭 올린 라이트(권화현 옮김), 리얼유토피아: 좋은 사회를 위한 진지한 대화, 들녘, 2012, 44면 참조.
45) 롤즈도 유사한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그의 발언에 서 나타난다: “각 개인이 가진 잠재력은 그가 실현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보다 더 크 다. 유사하거나 상보적인 능력을 가진 상이한 존재들은 그들의 공통적인 혹은 관련되 는 성격을 실천하면서 협동을 할 수 있다. 사람들은 각기 자신의 능력발휘에 대한 즐 거움에 확신을 갖게 되면, 타인들의 완전한 능력발휘(perfections of others)도 귀중하게 생각하게 된다.”(존 롤즈 [황경식 옮김], 정의론, 이학사, 2003, 669면); “훔볼트를 따라 말하자면, 타인들이 보유한 자연적 자질의 총체적 실현에 각 개인이 능동적으로 참여 (participate)할 수 있는 것은 그 성원들의 필요와 잠재력에 입각한 사회적 연합체 (social union)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우리는 그 사회적 연합체의 성원들이 자 유로운 제도에 의해서 일깨워진 서로 간의 탁월성과 개성을 향유하며, 그 사회적 연 합의 전 체계가 모든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완전한 실천활동에서 각 개인의 선 (good: 좋음)을 구성요소로서 인정하는 인간공동체(community of humankind)라는 관념 에 이르게 된다.”(위의 책, 670면-번역 약간 수정하였음); “항상 사람들은 서로를 필요 로 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타인들과의 적극적인 협동 속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오직 사회적 연합을 통해서만 개인은 완전하게 된다(only in a social union is the individual complete).”(위의 책, 671면, 각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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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헌법 제10조 전문에서 규정하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행복추구권은 일반적인 행동자유권과
개성의 자유로운 발현권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는데,47) 필자는 이 ‘개성
의 자유로운 발현’이라는 개념을 ‘인간으로서의 번영’으로 해석하여 철학적으로
정교화한다면 의미있는 성과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48)
둘째, 개인에 대한 존중이나 인정의 배분과 관련된 사회문화적 정의 영역이다.
이 영역에서의 부정의는 무시나 경멸, 신분상의 불평등이나 신분위계질서로 나타
난다. 동등한 구성원으로서의 존엄성을 인정하지 않는 각종의 문화적 가치들, 남
성중심주의적 시선들, 이방인에 대한 모멸적 태도들 등이 그 예라고 하겠다. 사회
적 지위와 속성에 기초한 경멸과 모욕, 무시, 차별, 사회적 배제는 비합리적인 경
제적 불평등만큼이나 인간으로서의 번영에 필요한 사회문화적 가치들을 박탈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부정의라 불릴 만하다. 필자는 독일의 철학자 호네트와 미
국의 철학자 낸시 프레이저를 따라 이 사회문화적 영역에서의 정의를 이끄는 지
도원리를 ‘인정’(recognition)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각 개인이 집단적
계층화 없이 자신의 고유한 활동과 능력이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받
을 기회의 대등함”이 인정 개념에 담겨 있다고 보면,49) 후술하는 반이등국민제 원
리는 이 ‘인정’이라는 지도원리를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셋째, 정치적 영향력을 미치는 데 필요한 수단들의 배분과 관련된 정치적 정의
의 영역이다.50) 이 영역에서의 부정의는 ‘특정 집단의 개인들이 전혀 대표되지 않
거나 과소대표되거나 과잉대표되는 것’(misrepresentation) 또는 정치적 발언권이
46) W. Ryan, Equality, New York, 1981, 9면.
47) 헌재 1991.6.3. 선고 89헌마204.
48) 좋은 사회의 핵심적 이상으로 ‘인간으로서의 번영’ 개념을 이론적으로 정교화한 시도 로는 M. Nussbaum, Women and Human Development: The Capability Approach, Cam- bridge, 2000 참조.
49) 인정 개념의 다층적 의미에 대해서는 악셀 호네트(문성훈/이현재 옮김), 인정투쟁, 사 월의책, 2011, 248면 이하 참조. 모든 부정의는 그 근본을 보면 ‘무시’의 변형태들이라 고 주장하는 호네트의 견해는 경청할 만하다. 이에 대해서는 A. Honneth/N, Fraser, Redistribution or Recognition?: A Political-Philosophical Exchange, London, 2003, 110- 198면 참조.
50) W. Sadurski, Giving Desert Its Due, 56면: “When influence upon a political decision is considered as a social good in itself, the democratic procedure is the one that comes closest to equal distribution of this good. (...) Political justice (understood as just distribution of the means of political influence) is an important part of social justice but not the overriding one.”(강조는 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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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탈되거나 부당하게 제한되는 것이다. “각 개인들이 자신들이 삶에 중요한 영향
을 미치는 결정에 유의미하게 참여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수단들에 대해 대
체로 평등한 접근권을 가져야 한다”는 원리가 정치적 정의 영역에서의 지도원리
이다.51) 각 개인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선택을 스스로 내릴 자유,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집단적 결정에 참여하고 그 결정을 효
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자유와 능력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자는 정치
적 정의의 자유주의적 차원을, 후자는 민주주의적의 차원을 표현하고 있다.52)
사회정의의 세 영역을 모두 관통하고 연결하는 공통의 원리는, “모든 사람이 평
등한 동료로서 사회생활에 참여할 수 있는 사회질서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요청
으로 집약되는 ‘참여의 동등성’(parity of participation) 원리이다. 이렇게 보면 전
영역에 걸쳐 공통된 부정의란, “각 개인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완전한 동료로서
사회적 상호작용에 동등하게 참여하는 것을 방해하는 제도적 장애물”이 있는 상
태이다.53) 그러한 장애물에는 세 가지 유형이 존재하게 되는데, 동등한 동료로서
참여하는 데 필수적인 사회경제적 수단들의 보장을 정당한 사유없이 거부하는 경
제질서, 정당한 사유 없이 동등한 동료로서의 지위를 박탈하거나 제한하는 문화적
가치와 위계질서, 공적인 토론과 공동의 의사결정에서 동등한 발언권을 박탈하는
의사결정규칙과 제도가 그것이다.54)
이렇게 분류된 사회정의 영역과 정의원리들을 염두에 두고 이하에서는 한국 법
질서에 담겨 있다고 여겨지는 정의원리들을 고찰하기로 한다.
III. 한국 법질서와 정의원리
- 정의의 기능
고대 로마법에서의 법과 정의의 관계에 관하여 통찰력 있는 연구를 한 최병조
교수의 견해에 따르면, 정의는 법과 관련하여 세 가지 기능을 한다. 첫째, 현행 법
51) 에릭 올린 라이트, 리얼유토피아, 44면 참조.
52) 이 원리에 대해서는 에릭 올린 라이트, 위의 책, 51면 이하 참조.
53) 낸시 프레이저, 지구화 시대의 정의, 108면 이하 참조.
54) 낸시 프레이저, 위의 책, 109면 참조. 프레이저에 따르면, 동등한 참여의 원리가 세 차 원의 정의들과 부정의들을 서로 연결시키고 통약가능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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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의 존재의의를 체계적 설명하고 정당화하는 기능이다. 둘째, 법규의 적용과 관
련된 가치지시기능이다. 정의는 현행법의 적용에 있어서 일정한 기준을 제시하고,
선(先)-실정법적이거나 초실정법적인 법가치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셋째,
현행법에 대한 비판기능이다. 정의를 법과 대치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법 자체의
발전을 도모하는 기능이다.55)
법과 정의의 관계는 대체로 두 차원으로 파악할 수 있다. 하나는 법다움(legality)
을 판단하는 차원에서 정의와 법의 관계를 묻는 차원이다. 정의에 위반하는 정도
가 심한 법률의 경우 법으로서의 자격을 박탈하는 정의의 기능을 ‘소극적 기
능’(negative function)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른 하나는 법의 품질과 품격을 따지
고 좋은 법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차원이다. 이는 법을 보다 낫게 향도하려는,
정의의 ‘적극적 기능’(positive function)이라고 할 수 있다.
정의의 소극적 기능으로 대표적인 것이 “극도로 부정의한 법은 법이 아니다”라
는 독일 법철학자 라드브루흐 불법판단의 공식이다.56) 이 불법판단 공식에 따르
면, 어떤 법률이 정의의 핵심을 의도적으로 부정하고 있는 경우 그 법률은 단순히
악법에 그치지 않고 애초부터 법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다. 그런 경우 문제의 법
률은 법률의 외관을 띠고는 있지만 법효력이 인정되지 않는 법들, ‘법률의 외관을
띠고는 있으나 실은 법이 아닌 法律的 不法(gesetzliches Unrecht-‘법률 형식의 탈
을 쓴 不法’)이라는 것이다. 민주화가 상당 정도 이루어진 사회에서는 위에서 든
극도로 부정의한 법률들은 드물게 나타난다. 그러나 사회에서 타당하다고 인정되
는 실질적 정의원리들을 충족하지 못하는 법률들이 제정되고 적용될 위험은 항상
존재한다는 점에서 정의의 소극적 기능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의가 법이 지향해야 할 목표이자 법(의 제정과 적용)을 인도하는 지도원리로
서 역할을 한다면 정의의 적극적 기능과 가치지시 기능이 수행되는 것인데, 정의
의 적극적 기능은 두 차원으로 구분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최대치의 차원으로
서 법이 이러이러한 모습이었으면 좋겠다는 이상적 정의원리이다. 다른 하나는 최
소치의 차원으로서 법이 이 정도 이상은 반드시 실현해주었으면 하는 최소한도의
정의원리이다. 이하에서는 정의의 적극적 기능에 초점을 맞추어 다양한 법영역에
55) 최병조, “로마법률가들의 정의관”, 177-178면 참조. 정의와 법의 다양한 연관성에 대한 분석으로는 M. Beck-Mannagetta (Hrsg.), Der Gerechtigkeitsanspruch des Rechts, Wien/ New York, 1996 참조.
56) 이에 대해서는 구스타프 라드브루흐(최종고 옮김), 법철학, 제4판, 삼영사, 2011, 284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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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등장하는 정의원리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 정의 개념과 근본 기준
통상 우리는 개인들에게 이익과 부담을 배당하거나, 이익과 손해의 균형을 맞추
고자 할 때 정의판단을 내린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일단 정의의 문제를 ‘이익
과 부담을 옳게 나누거나 이익과 손해 사이의 균형을 옳게 맞추는 것’(the right
balancing of benefits and burdens)의 문제라고 요약해 보자.57) 이하에서는 정의의
문제를 주로 사회적 상호작용에서의 정의, 즉 ‘사회정의’(social justice)의 문제로
국한해서 다루기로 한다.
(1) 정의 담론의 근본 목표
사람들은 재화나 기회를 분배하거나 부당하게 입은 손해를 원상회복하려 할 때
적용할 정의원칙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 저마다 다른 생각을 가진다. 그러나 적어
도 정의가 왜 필요하며, 그것의 역할은 무엇인지, 정의원칙이려면 최소한 어떤 모
습을 갖춰야 되는지에 대해서는 공통된 생각을 갖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들이 정
의의 내용 혹은 실체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 모두
가 공통으로 갖고 있는 정의의 가장 기초적인 의미와 의의를 정의의 개념(the
concept of justice)이라고 불러보자.58) 정의 개념의 핵심을 우리는 정의의 역할과
필요성에 대한 우리의 공통된 이해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정의는 개인 및 집단 상호간의 분쟁을 만인 대 만인의 무력투쟁이 아니라 공통
의 규범에 의해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필요한 경우 안정된 상호협력을 끌어내는
데 필수적인 사회적 덕목이다. 사회적 협동을 유지하고 증진하기 위하여 정의는
상과 벌, 혜택과 부담, 권리와 의무 등을 할당하는 원칙들을 제시하게 된다. 따라
서 정의는 개인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희소한 자원들을 분배하는 원칙들의
체계인 것이다. 이것이 정의의 필요성과 역할에 대해 우리가 공통되게 가지고 있
는 숙고된 판단들이다.
57) J. Rawls, A Theory of Justice, revised edition, Oxford, 1999, 9면 이하. W. Sadurski, Giving Desert Its Due, Dordrecht, 1985, 101면에서 정의를 ‘이득과 부담의 적절한 균형’ (equilibrium/balance of benefits and burdens)이라고 풀이하는데, 이것도 유사한 발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58) J. Rawls, 위의 책, 5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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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역할과 관련된 우리의 공통된 감각은 정의는 지속적인 사회적 협동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지속적인 사회적 협동에 적용되는 정의(사회정의)의 원
리는 서로 협동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권리와 의무, 협력의 혜택과 부담을 적정하
게 나누는 원리여야 한다.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사회적 협동의 올바른 조건을
정하는 역할을 수행하려면 정의는 상호협동하는 구성원들이 가장 신경 쓰고 중요
하게 여기는 기본적 권리와 의무, 협동의 혜택과 부담을 각자에게 적절하게 나누
는 규칙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사회적 협동은 단지 물질적 재화를 공동으로 만
들어내고 이를 나누기 위한 수단만은 아니다. 지속적 협동을 위해서는 서로에 대
한 존중이나 자유, 평등과 같은 무형적인 지위나 자격 등도 필요하다.
위에서 서술한 바를 정리하자면, 정의의 문제는 각자에게 이익과 부담을 분배하
는 문제이다. 특히 사회정의의 문제는 사회구성원들이 중요하다고 평가하는, 사회
구성원들의 일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가치와 자원들을 배분하는 문제이다. 한
국 사회에서 사회정의의 대상이 되는 중요한 가치와 자원들을 꼽자면 대학입학의
기회, 일자리(직장/직업), 소득, 자산, 권리와 의무, 권력, 타인존중과 자존감(self-
respect)으로 대표되는 인정(recognition) 등이다. 이 사회적 가치들을 어떻게 배분
해야 정의로운지를 따지는 작업이 한국 사회 정의론의 과제가 될 것이다.59)
(2) 정의 담론의 공통요소
우리가 정의를 말할 때, 모든 정의 담론에는 네 가지 요소가 반드시 들어 있다.
정의 담론의 첫째 요소는, ‘무엇을 배분할 것인가’라는 물음에서 나타나듯, 배분대
상이 되는 ‘재화’의 요소이다. 이때 ‘재화’란 반드시 물질적인 것(돈이나 직장)일
필요는 없고, 권리와 의무, 명예와 굴욕, 칭찬과 비난(처벌), 인정과 무시와 같은
비물질적인 것도 포함된다. 무엇을 정의의 대상인 재화로 볼 것인지도 정의 담론
에서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정의 담론의 두 번째 요소는, 재화를 배분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또는 누구에게 재화를 배분할 것인가라는 ‘배분 대상자’의 요소이다. 가령 대한민
국에서 선거권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배분된다. 대통령이나 국회
59) 이러한 작업의 일환으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연구자들이 한국 사회에서의 공정성과 정 의론을 모색한 것으로는 황경식 외, 공정과 정의사회, 조선뉴스프레스, 2011 참조. 또 한 신중섭 외, 한국에서 공정이란 무엇인가, 동아일보, 2012. 이정전, 시장은 정의로운 가, 김영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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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에 입후보할 자격인 피선거권이라는 재화의 경우 특정한 집단의 사람들(일정
한 나이에 도달하지 못한 자, 수감자 등)은 배제되기 마련이다. ‘누가’ 재화를 배
분받을 자격을 갖는지를 정하는 것은 정의담론 공동체의 범위와 그 공동체구성원
의 자격을 정하는 것이기도 하므로, ‘무엇을’ 배분할 것인가라는 재화의 요소 못
지않게 정의 담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의 담론의 세 번째 요소는, 어떤 기준에 따라 재화를 특정 집단의 사람들에게
배분하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배분 기준’의 요소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는
‘각자에게 각자의 것을’이라는 원리를 정의의 근본기준으로 삼아왔다. 무엇이 각
자의 몫인지를 놓고 많은 기준들이 제시되었는데, 각자의 필요(needs), 각자의 노
력과 업적(merit), 선택과 교환(exchange) 등이 배분기준의 후보자로 거론되는 것들
이다. 그리고 각자의 몫을 정하는 실질적인 기준은 아니지만, ‘일단 기준이 정해
졌다면 그 기준을 충족하는 개인들은 평등하게 대우하고 그렇지 못한 개인들은
불평등하게 대우하라’는 형식적이고 절차적인 기준(‘같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
게’)도 보편적인 정의원리로 인정되어 왔다.
정의 담론의 마지막 네 번째 요소는, 과연 도대체 ‘누가’ 배분대상인 재화의 요
소, 배분대상자 요소, 배분기준의 요소를 정하는 정의 담론의 주체인가라는 ‘주체’
요소이다.60) 정의 담론의 주체는 국가, 국회, 행정부, 사법부인가? 아니면 재벌 대
기업인가? 또는 언론인가? 해당분야 전문가들인가? 당연히 우리는 정의 담론의
주체는 시민이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태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정의 담론의
주체 문제는 정의와 민주주의 사이에 밀접한 관련성이 있음을 나타낸다.61)
(3) 정의 이념의 공통분모: 형식적 정의
정의의 목표는 개인들이 가족 배경, 출신 지역, 유전자의 차이 등으로 인해 억
울함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릴 만한 사람이 누리고 가
질 만한 사람이 가지도록 하고, 배려할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기
준들이 이러한 정의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적절할까? 정의원리는 그 내용이 무엇
60) 정의담론의 주체 문제에 대해서는 낸시 프레이저, 지구화시대의 정의, 111면 이하 참 조. 낸시 프레이저는 정의담론의 주체를 정하는 원칙으로서 ‘종속된 모든 사람들의 원 칙’(the all-subjected principle)을 제안하고, 이 원칙을 “특정한 협치구조에 종속된 모든 사람들은 그 구조와 관련된 정의문제와 관련하여 주체로서의 도덕적 지위를 갖는다” 는 내용으로 구체화한다.(117면).
61) 낸시 프레이저, 위의 책, 120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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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든 무엇보다도 자의적 차별을 배제하는 역할을 해야 하며,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적절하게 균형지울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자의적 차별이나 적절한 균형과 같은 표
현은 상당히 형식적이어서 그 내용에 대해서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다
양한 해석이 바로 정의의 내용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들(이론들)에 의해 제시되는
데, 이러한 해석체계들(이론들)을 정의관(conceptions of justice)이라고 부르기로 하
자.62) 다양한 정의관(정의론)들이 있지만, 이들이 다 수용하는 공통된 정의의 기본
원리들은 있다. 이하에서는 그러한 원리들을 살펴보자.
(가) 정의이념의 공통 근본기준 I: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보편적으로 승인되고 있는 정의의 가장 근본적인 기준은
“각자에게 각자가 마땅히 받아야 할 몫을 주라”는 원리일 것이다. “각자에게 각자
의 몫을”이라는 기준을 채우는 실질적 배분기준 문제에 대해서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기준들이 타당한 것으로 제시되고 있다: 각자에게 균등하게, 각자의 공과(功
過) 또는 공적(merits)에 따라, 또는 마땅히 받아야 할 응분의 자격(desert)에 따라,
각자에게 필요한 것들(needs)에 따라, 각자의 선택의 자유과 교환에 따라, 각자에
게 법에서 정해진 권리(legal entitlement)에 따라 재화를 배분하라.63) 문제는 이 기
준들이 동시에 적용될 수 없는, 때로는 상호 양립할 수 없는 정의기준들이라는 데
있다. 이와 같이 상이한 실질적 정의 기준들 간의 관계를 정하는 방법은 있는 것
일까?
(나) 정의이념의 공통 근본기준 II: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모든 정의론에 공통된 두 번째 근본기준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하라’(“treat like cases alike and treat different cases differently”)는 요청으로
집약된다. 이 고전적인 정의원리는 가장 추상적인 정의 개념(“각자에게 각자의 몫
을”)을 좀더 구체화한 것으로 한 개인이 받을 몫을 타자와의 비교관계 속에서 정
식화한 것이다.64)
자세히 보면 형식적 정의원리는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같은 것은
62) J. Rawls, A Theory of Justice, 9면 참조.
63) 이러한 다양한 기준들에 대해서는 Ch. Perelman (심헌섭, 강경선, 장영민 역), 법과 정 의의 철학, 종로서적, 1986 참조. 그리고 T. Honoré, Making Law Bind: Essays Legal and Philosophical, Oxford, 1987, 197면 참조.
64) Ch. Perelman (심헌섭, 강경선, 장영민 역), 법과 정의의 철학, 21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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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게”라는 평등대우의 요청을, 다른 부분은 “다른 것은 다르게”라는 불평등대우
(차등대우)요청을 내용으로 한다. 후자의 요청은 “중심기준의 측면에서 유사하지
(동등하지) 않은 개인들은 그들 간에 존재하는 차이의 정도에 따라서 차등대우(불
평등배분)할 것”이라는 요청이기도 하다. 따라서 형식적 정의원리는 ㉠ 평등대우
의 요청(‘같은 것은 같게’)과 ㉡ 차등대우의 요청(‘다른 것은 다르게’)의 결합이다.
이때 전자가 후자에 우선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65)
일반적으로 평등대우요청이 차등대우 요청보다 우선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요청은 ‘평등대우 우선성 추정(the presumption of equal treatment) 원칙의 관점에
서 이해되고 있다. 평등대우 우선성 추정 원칙은 ‘조건부 평등대우 원칙’으로 다
음과 같이 정식화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수락가능한 근거가 불평등 취급 내지 불평등 배분을 정당화하지 않
는 한, 협력체의 구성원은 일단 평등하게 취급되고 또 공동협력의 산물인 이익과
부담은 일단 평등하게 배분되어야 한다.”66)
형식적 정의의 제1 요청(평등대우요청)이 우선순위를 가지는 것은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동등하다’는 근대 계몽주의와 이성법적 정신과 결합할 때이다. ‘평등
대우의 요청’이 ‘차등대우의 요청’에 우선한다는 주장은 ‘인간의 본질적(근원적)
평등성’(fundamental equality)을 전제로 한 것이다.67)
65) J. Feinberg, Social Philosophy, Prentice-Hall, 1973, 100면 이하에 따르면, 평등대우 우 선성을 읽어내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약한 의미에서의 우선성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 내용은 “개인들 사이의 차이점이 있을 때는 제외하고는 개인들을 평등하 게 대우하라”(“treat all men alike except where there are relevant differences between them.”)는 요청으로 표현되는 차등대우 예외 원칙(exceptive principle)으로 정식화된다. 다른 하나는 우선성을 강하게 해석하여 “개인들 사이에 차이점이 있다는 점이 입증되 기 전까지는 일단 개인들을 평등하게 대우하라”(“treat all men alike until it can be shown that there are differences between them.”)는 평등대우 우선성 추정(the presumption of equality) 원칙이다. 개인들을 차등대우할 타당한 사유가 있음을 입증하기 전까지는 일단 평등대우의 요청을 우선 적용해야 한다는 원리이다. 이 원리에 따르면 평등대우 를 하지 않는 측에 입증책임부담이 전가된다. 파인버그는 전자의 원칙으로 이해하는 편이 더 낫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이러한 측면에서 고찰해보 면 의미있는 성과가 나올 것이다.
66) 심헌섭, “정의에 관한 연구-정의의 기본개념과 기본원리”, 서울대학교 법학 제29권 2 호 (1988), 99면 참조. 그리고 심헌섭, “정의의 실질적 규준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법학 제36권 제1호 (1995), 85-109면.
67) 인간의 본원적 평등성을 어떤 측면에서 정당화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인상적인 논증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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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형식적 정의의 逆說
‘형식적 정의’는 사람들 사이의 조건이 유사하다면 ‘다른 동료들에 비해서 불리
하게 대우받지 않을 권리’를 함축한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이는 일단 ‘같은 것은
같게 다루라’는 원리로 집약될 것이다. 그런데 형식적 정의를 규칙의 일관된 적용
이라는 측면으로만 이해하게 되면, 형식적 정의의 逆說로 이어지기도 한다. ‘형식
적 정의의 逆說’(the paradox of formal justice)이란, 정의를 ‘어떤 규범을 모두에게
두루 일관되게 적용’(‘the justice of conformity to rule’)할 때 발생하는 逆說을 말
한다.68)
가령 어떤 의무나 부담을 부과하는 규율을 갑에게는 적용하면서 같은 조건에
있는 을에게는 적용하지 않는다면, 이는 갑에게 불공정한 규율적용일 것이다. 의
심할 나위 없이 형식적 평등은 정의의 기본적인 요청이지만, 오로지 규율을 공평
하게 적용하는 면에서만 ‘법적 정의’의 개념을 파악하게 되면 다음과 같은 명백한
역설적 결과를 낳는다.
만일 ‘모든 인디언은 죽이라’는 규칙이 있을 때 동정심으로 어떤 인디언을 살려
준다면(그러니까 자의적으로 규칙을 적용했다면) 이 행위는 부정의(不正義)인
가?69) ‘여성에게는 선거권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규칙을 여성 모두에게 두루 공평
하게 적용하면 여자들 사이를 평등하게 대우한 셈이므로 정의인가? 규칙의 일관
된 적용이 부정의의 증폭을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명백하다. 이러한 예
로부터 우리는 공평한 규칙의 적용과 집행은 ‘부분적 정의’(partial form of justice)
로 T. Christiano, The Constitution of Equality, Oxford, 2008, 12면 이하 참조.
68) “법도 극단으로 치달으면 불법의 극치가 된다”(summum ius summa iniuria)라는 로마 법상의 법언(法諺)은 이러한 형식적 정의의 逆說 현상을 표현하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 이렇게 보자면 ‘실질적 정의의 逆說’이라는 표현도 가능하다. 가장 추상적 차원에서 말해 본다면, 실질적 평등을 추구하다 보면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게 되고, 자유를 추구하다보면 평등을 침해하는 결과가 나타나기도 하는 상황이 ‘실질적 정의 의 逆說’이다. 필요에 따른 분배정의를 추구하다보면 능력에 따른 분배정의를 침해하 는 결과가 그 예일 것이다. 정의를 진지하게 추구한 결과가 부정의로 귀결되는 현상 도 ‘정의의 逆說’이라고 표현함직하다. 이러한 정의의 逆說 현상을 방지하기 위하여 월쩌(M. Walzer)는 정의의 다양한 영역을 상정하고는, 각 영역에 적합한 분배기준이 있으며 이 다원적 기준들의 적절한 관계가 정의라는 ‘복합적 평등론’을 제시한 것이 아닐까 싶다. 어느 특정한 영역에 적합한 정의기준을 타 영역으로까지 끌고 들어가 관철하려는 태도는 그 의도와는 정반대로 부정의를 낳는다는 것이다. M. Walzer, The Spheres of Justice: A Defense of Pluralism And Equality, New York, 1984 참조.
69) 유사한 사례들은 J. Feinberg, Social Philosophy, 106-7면 참조. 우리나라의 사례로는 유 병진(신동운 편), 재판관의 고민, 법문사, 2008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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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는 불완전한 정의(incomplete form of justice)에 지나지 않는다는, 아주 상식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규칙의 일관된 적용과 집행이 이처럼 명백하게 부정의를 낳는
경우가 ‘형식적 정의의 逆說’이다.70)
(라) 형식적 정의의 역설에서 추출한 두 가지 정의 원리
우리는 첫 번째 예(인디언 사례)에서 “부정의를 항상적으로 초래하는 경우를 제
외하면 동등한 경우는 동등하게 대우하라”는 내용을, 여자의 선거권의 예에서 “규
율의 일관된 적용은, 그 규율이 정의로운 규율체계에 속하는 한에서만 정의를 보
장한다.”는 내용을 첨가할 때에 비로소 이 逆說로부터 벗어날 길을 찾을 수 있
다.71)
그렇다면 이익과 부담을 배분할 때 ‘적절하게 관련성을 가지는 속성들’(동일한
속성이나 차이를 정해주는 속성들: relevant property)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대
략 다음과 같은 기준들이 상상될 수 있을 것이다.
㉠ 사람들이 전혀 책임질 수 없는 차이점(자기가 선택할 수 없는 차이점)들을 바
탕으로 하여 그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개인들을 차별대우
하면 불합리한 차별대우가 된다.
㉡ 사람들이 자신의 선택과 책임아래에서 배분의 기준이 되는 속성들을 획득하거
나 버릴 수 있는 공정한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경우에만 그 속성들은 합당한
차별대우의 기준이 된다.
개인들 간의 차이는 그 차이를 지닌 당사자들이 책임질 수 있는 것일 때, 정의
로운 불평등배분의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4) 실질적 정의기준들
입법과 법해석에서 대표적으로 원용되는 실질적 정의의 기준들에는 ‘균분’ 원칙
(the principle of equal distribution), ‘응분의 몫에 따른 배분(the desert principle)’
원칙, ‘필요에 따른 배분’(the principle of needs) 원칙, ‘각자의 자유로운 선택(교
환)에 따른 배분’(the principle of free choice) 원칙이 있다.72) 이하에서는 정당한
70) 이 사례는 T. Honoré, Making Law Bind, 200면 참조.
71) T. Honoré, 위의 책, 201면.
72) D. Miller, Principles of Social Justice, New York, 199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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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을 지시하는 후자 세 가지 분배원칙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가) 應分(desert)의 몫에 따른 배분(“giving people what they deserve”): 응분 원칙
(the principle of rewarding according to desert based on effort)73)
응분 원칙은 ‘재화 P는 각 개인이 마땅히 받아야 할 응분(應分)의 자격 D에 따
라 배분되어야 한다’는 기준을 핵심으로 한다. 이 ‘응분의 자격’ D는 여러 가지
기준으로 채워질 수 있겠지만, 노력에 의한 결과, 적합한 재능이나 필요한 덕성,
업적이나 기여도 등이 대표적인 예들일 것이다. 가령 어린아이들 사이에서 체육학
교나 음악학교의 자리는 그에 적합한 재능에 따라 배분되어야 할 것이며, 시험성
적은 개인의 노력에 따른 결과에 따라서 배분되어야 할 것이며, 조직의 지도자 자
리는 그에 적합한 능력이나 필요한 덕성의 기준에 따라서 배분되고, 연봉이나 소
득은 업적이나 기여도에 따라서 결정될 것이다. 응분의 몫에 해당될 기준들로는
㉠ 개인의 도덕적 품성(어떤 종류의 인물인가/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 ㉡ 업
적(performance/merits: 어떤 일을 성취했는가), ㉢ 기여(contribution: 긍정적 가치나
재화의 산출에 어느 정도 기여하였는가), ㉣ 노력(effort: 어느 정도로 노력을 기울
였는가)을 꼽을 수 있다.74)
이 중 필자는 응분의 기초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75) 어떤 개인이 바람직한
덕목을 갖추기 위해 그 사람이 열심히 노력한 것에 대해 우리는 포상을 하고 영
예를 부여한다. 성과(업적)나 기여, 성공이나 성과(결과)의 경우 행위당사자의 통
제를 넘어서는 요인들이 작용할 여지가 노력의 경우보다 더 크기 때문에 기여나
성과(업적)는 노력을 핵심으로 하는 응분 원칙에서 파생하는 기준이라고 보는 편
이 더 합당할 것이다.76) 성과나 기여 또는 결과를 응분자격의 핵심 기준으로 파악
하는 입장들이 있다. 각 개인은 자신의 정신과 신체를 활용한 노동의 산물에 대해
배타적 소유권을 갖는다는 자유지상주의 정의론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정의론은
73) 응분 원칙의 내용, 위상, 타 배분 원칙들과의 관계에 대한 분석과 응분 원칙에 대한 긍정적 평가로는 D. Miller, Principles of Social Justice, ch. 7 참조. 그리고 이를 수정 한 D. Miller, “The Concept of Desert”, M. Clayton/A. Williams (ed.), Social Justice, Oxford, 2004, 186-200면 참조. 응분원칙과 평등의 관계에 대한 논의로는 주동률, “평 등과 응분(desert)의 유기적 관계에 대한 변호”, 哲學 85(2005), 193-217면.
74) T. Honoré, Making Law Bind, 202면 이하 참조. W. Sadurski, Giving Desert Its Due, 116면 이하 참조.
75) 이에 대한 설득력 있는 논증은 W. Sadurski, 위의 책, 116면 이하 참조.
76) W. Sadurski, Giving Desert Its Due, 134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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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노동의 산물(결과)에 기여하는 비개인적, 사회적 요인들을, 즉 개인적 노력의
산물이 아닌 요인들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이라는 정의의 근본기준을 각자가 ‘마땅히 받을 응분의
몫’을 받을 때 정의롭다는 점으로 이해하는 것이 응분 원칙이다. 이 때 응분의 자
격은 배분대상자가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한 행위를 수행하는 노력에 따라 정해진
다. 형벌도 마찬가지이다. 처벌받는 개인의 인간성이 나빠서가 아니라 해악을 끼
치는 그의 의식적 행위 때문에 형벌을 가하는 것도 응분 자격의 기준이 적용되는
사안이다. 이렇게 보면 응분 원칙은, 각 개인이 자신이 받을 몫이나 받을 자격에
대해 일종의 선택-책임(responsibility)을 질 수 있을 때 적용될 수 있는 원칙이
다.77) 다시 말하면, 산출된 결과(성과; 업적; 功過)와 나의 선택 및 노력이 인과관
계에 있을 때, 나는 그 결과에 대해 나의 몫으로 마땅히 받을 응분의 자격이 있다
는 것이다. 나의 선택과 노력에서 나온 산물이 아닌 성과에 대해 내가 포상을 받
거나 내 노력의 산물이 아닌 불로소득을 내가 가져간다면 그것은 도둑질이 된다.
내가 고의나 과실로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 나는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하지만, 타인
의 잘못으로 내가 벌을 받거나 내가 저지른 잘못 이상으로 과도하게 벌을 받는다
면 부정의한 형벌이 될 것이다.78) 이는 응분 원칙이 개인의 자유의지와 선택 책임
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함축한다.79)
이렇게 보면 응분 개념은 행위당사자의 속성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person-
oriented), 해당 개인의 행동에 대한 가치평가적 고려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value-laden), 이미 수행된 과거행동에 대한(past-oriented) 판단을 담고 있다.80)
필자의 견해로는 응분 원칙은 인류의 보편적 정의 감각을 반영하는 상식적인
보편적인 정의 원칙이다. 다시 말하면, 응분 원칙은 인류가 갖는 정의의 감각(a
sense of justice)에서 핵심을 이루며 정의 판단에서 출발점으로서의 위치를 갖는다
는 것이다. 물론 응분 원칙이 유일한 배분적 정의 기준이 아님은 분명하다. 가령
필요 원칙은 배분대상자가 마땅히 받을 응분의 자격이 없어도 해당 개인의 필요
77) D. Miller, “The Concept of Desert”, 187면 이하 참조. 또한 S. Olsaretti (ed.), Desert and Justice, Oxford, 2003, 4면 이하, 27면 이하 참조.
78) 내 자신의 선택이나 노력의 결과가 아닌 행운이나 불운으로 이득을 얻게 되거나 손해 를 입은 경우 이를 정의의 문제로 설정하고 판단기준을 고찰하는 정의론의 흐름이 이 른바 ‘행운 평등주의’(luck egalitarianism)이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한다.
79) W. Sadurski, 위의 책, 131면 이하 참조.
80) 이에 대해서는 W. Sadurski, 위의 책, 117-118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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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따라 재화를 배분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미 정해진 규칙의 요건을 충족하여
누군가가 어떤 재화나 기회, 상을 받을 權源(entitlement)를 얻었다면, 그가 금메달
을 마땅히 받을 만한 노력을 하지 않았거나 실력이 없더라도 금메달을 받는 것이
정의롭다. 올림픽 축구경기에서 금메달을 따는 팀이 반드시 그것을 받을 마땅한
자격(노력과 실력)을 가지지 않을 수 있지만(운 등으로 인해서) 금메달이 수여되
는 것은 정당화된다. 이처럼 갑이 상을 받을 응분의 자격(노력과 실력)이 없다고
해서 갑에게 그것을 주어서는 안 된다거나 갑으로부터 그것을 박탈해야 한다는
결론이 반드시 나오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계약이나 약속, 규칙의 존재가
응분 원칙을 물리치는 데 원용되는 정의의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다른 분
배기준들이 응분의 기준과 충돌하기도 하고 때로는 응분의 기준을 물리칠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과 책임을 중요시하는 이상 응분의 기
준이 일차적 정의원칙임은 의심할 수 없어 보인다.81)
응분 원칙이 배분적 정의에서 매우 중요한, 핵심을 이루는 기준인 것은, 응분
원칙이 해당 개인의 행위에 대한 도덕적 평가와 본질적으로 매우 밀접하게 연관
성을 가지는 정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필요에 따른 배분의 경우 재화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개인들에 대한 자비심이나 연민, 연대 등의 감정이 작용할 수 있는
있지만, 그들 행동의 도덕적 속성을 평가(마땅히 받을 노력을 했다거나 칭송할 만
한 기여를 했다거나 하는 평가)하지는 않는다. 반면 응분 원칙은 해당 개인이 개
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노력(socially valuable efforts)을 했다는 이유로
81) 응분의 기준이 제도나 규칙이 존재하기 이전에 이미 형성되어 작용하는 前-제도적 (pre-institutional) 성격을 갖는 것인지, 아니면 제도와 규칙에 의해 비로소 응분 자격이 정해지는 제도적(institutional) 성격을 갖는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있다. 제도적 원칙임 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규칙과 제도가 개인들에게 이러이러한 경우에는 가질 자격이 있다고 마땅히 요구할 정당한 기대치를 결정해주고 난 후에 각 개인은 이를 토대로 해서 응분의 자격을 주장하게 된다고 본다. 필자는 응분의 개념은 제도를 통해서 비 로소 형성된다기보다는 그에 먼저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제도에 의해 비로 소 생겨나는 응분 기준도 있을 것이다. 상세한 논의는 S. Olsaretti (ed.), Desert and Justice, Oxford, 2003 참조.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는 달리, 롤즈도 응분 원칙이 전- 제도적 성격을 갖는다는 점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의지에 바탕을 둔 의도적 노 력’(deliberate effort of will)을 전제로 하는 도덕적 응분(moral desert)의 개념을 인정하 면서도, 사회정의론에서 유의미한 원리이기 위해서는 응분 개념은 “공정한 조건 아래 에서 획득된 권원”(權源 - “entitlement earned under fair conditions”)과 그 권원에 기반 을 둔 정당한 기대(legitimate expectation)로 이해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즉 제도적 속 성을 갖는 응분 개념이 사회정의 원리로서 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J. Rawls, Justice as Fairness: A Restatement, Cambridge/Mass., 2001, 72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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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어떤 행동이 행위자 자신의 예견 속에서 의사의 지배
(통제) 아래 이루어졌고, 또한 그 행동이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칭송받을 만한) 것
이라고 우리가 확신할 때 그 행위자에게 포상을 한다. 이는 응분 원칙이 분배대상
자를 도덕적으로 자율적인 개인으로 상정한다는 점을 함축하는 것이다.82)
이러한 이유에서 응분 원칙은 재화나 기회, 명예나 직위의 배분이 행위 당사자
들이 선택할 수도 없고 통제할 수도 없는 요인들(impersonal factors)에 의해 정해
지는 것에 정면으로 반대한다. 유전적 재능이나 출생 시의 사회적 지위와 같은,
개인이 선택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요인들이 중요한 사회적 재화들(가치들)의
배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을 제거하거나 축소 또는 무력화하려는 생각이
응분 원칙의 근저에 놓여 있는 것이다. 자신이 노력한 이상으로 불로소득을 가져
가는 것을 정당하지 못한 배분으로 보는 정의론들은 모두 이 응분 원칙을 기초로
삼고 있다. 사회적 삶의 문제를 게임이나 복권/추첨의 사안으로 환원해서 바라보
려는 흐름에 반대하고, 가치 있는 재화/기회들의 사회적 배분을 도덕적인 속성을
갖는 사안(노력한 당사들에게 응당 돌아가야 할 문제)으로 파악하려는 것이 응분
원칙이라고 하겠다.83)
82) W. Sadurski, Giving Desert Its Due, 131면 이하 참조.
83) W. Sadurski, 위의 책, 156면 이하 참조. 내기골프가 도박에 해당되는지 여부와 관련 한 우리 법원의 판례(서울고법 2006.1.11. 선고 2005노2065 판결)를 보면 운과 실력의 판별기준을 제시하고 있는데, 응분 원칙의 기본발상과 맥을 같이 하고 있어 흥미롭다: “도박이란 ‘재물을 걸고 우연에 의하여 재물의 득실을 결정하는 것’을 의미하고, 여기 에서의 우연은 ‘당사자 사이에 있어서 확실히 예견하거나 자유로이 지배할 수 없는 사실(내지 이에 관하여 승부를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한편, 우연은 보통 장래의 사 실에 관한 것이겠지만, 행위자가 불확실한 인식을 가진 이상 과거나 현재에 속한 사 항에 대하여도 인정되며, 우연성이 인정되는 한 승패를 가름할 우연성의 정도는 도박 죄의 성립에 영향이 없다고 설명되고 있다. (...) 원심은 경기의 경우 참가자들이 기능 과 기술을 다하여 승패를 결정하려고 하고 그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므로 이를 우연이 라고 할 수 없고, 골프를 비롯한 운동경기는 화투, 카드, 카지노 등과 같이 당해 승패 의 귀추에 있어 지배적이고도 결정적인 부분이 우연에 좌우되는 경우와 달리 승패의 전반적인 부분이 경기자의 기능과 기량에 의하여 결정되고 사소한 부분에 있어서만 우연이 개입되므로 그 결과에 재물을 걸더라도 도박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경기 참가자들이 기능과 기술을 다하여 결정한 경기의 승패에 대하여 사후적 으로 우연이라는 평을 할 수 없다거나 그 경기의 특성을 우연에 의하여 결과가 좌우 된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은 도박죄 성립에 요구되는 우연의 개념과는 관점이나 차원 을 전혀 달리하는 것이다. 즉, 경기결과가 ‘우연’이 아니라 선수들의 우수한 기량이나 불굴의 투지에 의하여 결정되었다거나 승리를 위해서는 요행이나 ‘우연’에 기댈 것이 아니라 기량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가치평가나 의지표 현으로서 그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도박죄에서 요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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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질서와 정의론: 공정과 평등, 그리고 운의 평등 / 金度均 357
응분 원칙을 적용하면, 응분의 몫에 따른 불평등들(deserved inequalities)은 정의
롭지만 마땅히 받을 자격이 없는 몫을 받음으로써 생겨나는 불평등(undeserved in-
equalities)은 부당하다.84) 필자는 응분 원칙이 한국 사회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갖는
정의원리로서 중요하게 다루어져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필요(needs)에 따른 배분: 필요 원칙
A는 가족이 없는 독신자이고, B는 처와 여섯 명의 아이를 부양가족으로 하고
있을 경우, 양자의 능력이나 업적이 동등하다면 A와 B에게 똑같이 월급을 주는
것은 실질적으로는 A를 더 후하게 보장하는 셈이므로 불공평한가? 또는 무인도에
서 구출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식량을 분배하는 경우, A가 심하게 아파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식량을 필요로 할 때 동일한 양의 음식을 주는 것은 정
의롭지 못한 배분일까? 바로 이러한 정의의 영역에서 ‘각자의 필요에 따른 배분’
이라는 정의의 기준이 등장하게 된다. 필요(needs)에 따른 배분이 정의론의 관심사
가 되는 때는 어떤 경우일까? 어떤 재화들이나 물질적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 개인의 삶에서 큰 부담을 낳게 되고 개인의 삶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중대
한 장애가 된다면, 우리는 그것들이 개인의 삶에서 ‘중요한 필요’라고 보고 그 필
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회적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무엇인가가 매우 필요하다고 해서, 또는 무엇인가에 대한 필요가 절실하
거나 중요하다고 해서 모두 사회정의론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또
는 누군가가 무엇을 원하거나 필요로 한다고 해서 그것이 사회정의의 원리가 될
수는 없다. 브라이언 배리(B. Barry)가 정확하게 논하였듯이, 필요 개념은 항상 모
종의 가치를 전제로 해서 등장하는 상대적 속성을 가지므로 어떤 정책을 정당화
하는 독자적인 기준이라기보다는 보다 상위의 기준으로부터 도출되는 파생적인
기준이기 때문이다. 배리의 논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필요의 개념을 담는 진
술은 ‘나는 ...하기 위해서 x가 필요하다’는 구조를 갖는다. 이 ‘...하기 위해서’(in
우연은 선수들의 이러한 기량, 투지, 노력 등에 대비되어 다소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 된 ‘우연’이 아니라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당사자 사이에 있어서 결과를 확실히 예견 하거나 자유로이 지배할 수 없는’ 성질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가치평가와 무관한 개념 이어서 선수들의 기량 등을 모두 고려하더라도 경기의 결과를 확실히 예견할 수 없고 어느 일방이 그 결과를 자유로이 지배할 수 없을 때에도 이를 도박죄에서 말하는 우 연의 성질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밑줄은 첨가된 것임). 대법원(대법원 2008.10.23. 선고 2006도736 판결)도 이 항소심의 판단을 지지하였다.
84) L. Temkin, Inequality, Oxford, 1993,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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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der to.../in order for...)란 표현은 언제나 발언자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을 전제
하거나, 발언자가 실제로 원하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도달해야할 목표상태
(end-state)를 전제하고 있다. ‘필요로 하는 그것’은 이 목적의 성취와 관련해서 수
단의 지위를 갖는 것에 불과하므로 독자적인 사회정의 원리가 될 수는 없다는 것
이다.85) 파생적인 위상을 갖는다는 점 이외에도 ‘필요’ 개념은 분배정의의 원리로
통용되기에는 너무도 주관적인 속성을 갖는다는 점도 지적해 둘 만하다.
필요의 주관성 쟁점을 다루기 위해 필자는 사회정의의 사안으로서 중요하게 고
려되어야 할 것으로, 통상의 필요와는 질적으로 구분되는 기본적 필요(basic needs)
라는 개념을 들고자 한다. 이러한 필자의 입장은, ‘필요’라는 개념은 매우 막연하
고 주관적이며 탄력적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필요 개념을 객관적인 기준으로 가공
하기 위하여 ‘기본적 필요’(basic needs)와 ‘非-기본적 필요’(non-basic needs)를 구
분하는 노선을 따른 것이다.86)
‘기본적 필요’ 개념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기본적 필요는 일차적으로
생존(survival)과 관련된 것이다. X라는 재화가 인간에게 ‘기본적인 필요’라고 할
때, 그 의미는 만일 내가 X를 향유하지 못한다면 고통스러운 상처, 영양실조, 질
병, 광적인 상태, 요절 등과 같이 심각한 신체적, 정신적 해를 입는다는 것이다.87)
일정량의 음식물, 난방연료, 옷, 거주지, 의료서비스 등과 같은 재화가 이와 같은
‘기본적인 필요’에 해당되는 재화들이다. 또한 X라는 재화가 없이는 인간다운 삶
을 영위할 수 없거나 인간으로서, 직업인으로서, 시민으로서 제대로 기능작용
(functionings)을 할 수 없거나 기본능력(basic capabilities)을 발휘할 수 없는 경우
에도 X라는 재화는 ‘기본적 필요’의 대상이 된다.88) 이러한 고찰로부터 필자는 필
85) B. Barry, Political Argument. A Reissue with a New Introduction, New York/London, 1990, lxiv면, 48면 이하 참조.
86) 이러한 구분을 강조하는 학자들로는 D. Wiggins, Needs, Values, Truth, Oxford, 1967; D. Braybrooke, Meeting Needs, Princeton, 1987; G. Thompson, Needs, New York, 1987; L. W. Sumner, Welfare, Happiness, and Ethics, Oxford, 1996 등 참조. 필요 개념을 정 치철학의 차원에서 깊게 다룬 문헌으로서 L. Hamilton, The Political Philosophy of Needs (Cambridge, 2003)가 매우 유용하다.
87) L. Hamilton, The Political Philosophy of Needs, 27면 이하 참조. 해악의 관점에서 기 본적 필요(fundamental needs) 개념을 정의하는 개럿 톰슨의 견해에 따른 것이다. G. Thompson, Needs, 8면 참조. 그리고 사두스키의 개념 정의도 귀담아들 만하다고 생각 한다: “Basic needs are considered to be for things in the absence of which ‘a person would be harmed in some crucial and fundamental way’.”(W. Sadurski, Giving Desert Its Due, 15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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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들 사이에서도 중요도와 우선성의 등급이 있다는 필요의 위계질서(the hierarchy
of needs)를 인정하고, 어떤 필요들이 우선 충족되어야만 하는지를 판별하는 일종
의 객관적 판별기준이 있다는 잠정적인 결론을 이끌어내고자 한다.
기본적 필요 개념이 ‘우리가 생존하기 위하여 그리고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삶
을 영위하기 위해 반드시 요구되는 조건들을 내용으로 하는 필요들’로 풀이한다
면, ‘기본적 필요’의 내용은 인간 및 시민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충족되
어야 할 물질적 수단들, 사회문화적 수단들(대표적인 것이 의무교육), 특정한 권리
들(가령 장애인 이동권이나 접근권), 공동체적 관계 등을 구성하는 재화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89)
물론 기본적 필요의 목록과 보장수준은 사회나 문화에 따라 해당 사회의 사회
경제적 발전단계에 따라 상대적으로 결정된다.90) 그러나 기본적 필요의 내용이
상대성을 띤다고 해서 사회적 또는 문화적 상대성을 과도하게 강조하면서 기본적
필요라는 기준 자체의 의의를 부정하는 태도는 너무 나아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적 필요의 내용과 수준이 사회와 문화에 따라 상대적으로 결정되는 측면도
있지만, 생물학적 측면에서 보편적인 내용을 갖는 기본적 필요들이 있기 때문이
다. 인간의 삶이 갖는 보편적 속성에서 우리는 기본적 필요의 보편적인 요소들을
추출할 수 있고, 이에 비추어서 특정 시대의 특정 사회의 구성원들이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하려면 반드시 충족되어야 할 기본적 필요들을 뽑아낼 수 있을 것이
다.91)
이렇게 보면 중요한 기본적 필요들에 비추어서 특정한 개인들을 특별하게 대우
해야 한다는 정의의 주장은 응분 원칙에 근거한 정의의 주장들과는 독립해서 정
당화된다. 장애인, 만성질환자, 노숙자 등의 경우에는 응분의 몫에 따른 대우가 아
니라 그들의 특별한 필요를 고려해서 재화가 배분되어야 하고, 이러한 배분은 응
88) L. Hamilton, The Political Philosophy of Needs,
89) W. Sadurski, Giving Desert Its Due, 168면. 사회적 맥락에서의 기본적 필요 개념은 L. Hamilton, 위의 책, 31면 이하 참조.
90) 가령 헌재 2002. 12. 28. 2002헌마52: “‘인간다운 생활’이란 그 자체가 추상적이고 상 대적인 개념으로서 그 나라의 문화의 발달, 역사적․사회적․경제적 여건에 따라 어 느 정도는 달라질 수 있는 것일 뿐만 아니라, 국가가 이를 보장하기 위한 생계보호 수준을 구체적으로 결정함에 있어서는 국민 전체의 소득수준과 생활수준, 국가의 재 정규모와 정책, 국민 각 계층의 상충하는 갖가지 이해관계 등 복잡하고도 다양한 요 소들을 함께 고려하여야 한다.”
91) 이에 대해서는 W. Sadurski, Giving Desert Its Due, 161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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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의 원칙과는 독립된 별도의 고려들에 의해 정당화된다는 것이다.92) 인간의 생
존과 인간다운 삶의 핵심적 가치의 보호를 위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조건들과 자
원들을 내용으로 하는 기본적 필요들이 충족되지 못할 경우 개인들은 정상적으로
사회적 협동에 참여할 수 없게 되고, 정의의 여타 영역들에서 배분대상자의 자격
을 가질 수도 없게 되면서 결국 정의담론의 주체로서 활동할 수도 없다. 기본적
필요가 충족되지 않은 개인들은 노력 자체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는 점에
서, 또는 교환 영역에서 교환할 재화를 갖고 있지 못하여 교환적 정의 원칙 자체
의 적용 대상이 안 된다는 점에서, 기본적 필요의 충족 원칙은 여타의 정의 원리
들을 적용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독자적인 위상을 갖는 셈이다.93)
기본적 필요는 응분 원칙이 적용되기 위해서 반드시 먼저 충족되고 고려되어야
할 전제조건(prerequisites for desert-considerations)이라는 명제는, 각자가 마땅히
받을 응분의 몫에 따라 각자에게 배분하라는 응분 원칙이 적용되려면 그 전에 기
본적 필요에 따른 배분이 먼저 충족되어야만 한다는 요청을 함축하는 것이다.94)
이를 일반화하면, 기본적 필요를 구성하는 재화나 가치들의 영역에서는 필요 원칙
이, 달리 볼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일단(prima facie) 응분 원칙에 앞서지만,
비기본적 필요(통상적인 필요)의 영역에서는 필요 원칙보다는 응분 원칙이 우선한
다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95)
‘필요’ 개념이 주관적 속성을 갖는 불명확한 개념인 것은 분명하지만, 기본적
필요(basic needs)란 개념은 상당한 정도 객관성을 갖는 기준일 수 있으므로 필요
원칙(기본적 필요에 따른 배분 원칙)은 한국 사회의 정의원칙으로서 법체계나 법
원의 법적 판단, 시민들의 공적 논의에서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96)
92) W. Sadurski, 위의 책, 158면 이하 참조.
93) 이러한 발상을 롤즈가 Political Liberalism에서 수용하여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 다: “[T]he first principle covering the equal basic rights and liberties may easily be preceded by a lexically prior principle requiring that citizens’ basic needs be met, at least insofar as their being met is necessary for citizens to understand and to be able fruitfully to exercise those rights and liberties. Certainly any such principle must be assumed in applying the first principle.”(7면: 강조는 첨가된 것임).
94) W. Sadurski, 위의 책, 163면.
95) W. Sadurski, 위의 책, 164면.
96) 기본적 필요 원칙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D. Miller, Principles of Social Justice, 제10장 참조; D. Schmidtz, Elements of Justice, Cambridge, 2006, 161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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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자유로운 교환(선택: free choice)에 따른 배분: 교환의 원칙
이 정의원칙은 여러 가지 가능성들 중 자기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계산한 후에 이를 최대화하려는 ‘경제적인 의미에서 합리적 개인’(ration-
al individual)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그러한 합리적 개인들이 자유로운 계산 위에
서 선택한 바에 따라서 재화를 배분하자는 요청을 정의의 기준으로 삼는다. 그 결
과가 어떻게 산출되든 자유로운 선택과 교환의 산물이라면 정의롭다. 이때 각 개
인들의 능력, 소질, 업적 등은 중요한 변수가 되지만, 필요나 노력 또는 기여도,
덕목 등은 정의의 실현에 부차적이거나 관련성을 갖지 않는 요인들로 여겨진다.97)
소유권보장과 계약자유의 최대보장을 지상목표로 하는 정의이론들이 이 원칙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
- 한국 법체계에 담겨 있는 정의 원리
한국 법체계에 담겨 있는 정의원리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일단 우리 헌법은
전문에서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
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
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 안으로는 국민생활
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것을 공언하고 다짐하고 있다. 이로부터 각 개인의 개성과 능력이 최대한 발현되
도록 공정한 기회균등의 원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한국 법체계의 근본정신을 추
출해낼 수 있을 것이다.
(1) 동등한 인간존엄성과 반(反)이등국민제 원리(Anticaste principle)
(가) 동등한 인간존엄성 원리와 법앞의 평등
우리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동등한 인간존엄성 원리가 한국 법
체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우리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파악한다.
“우리 법질서는 최고규범인 헌법을 정점으로 하여 통일적인 법질서를 유지하고
97) D. Schmidtz, 위의 책, 73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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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 헌법 제10조의 인간존엄성 규정은 헌법규범 가운데에서도 근본규범으로
서 모든 국가작용의 목적과 가치판단의 기준을 제공하고, 모든 법규범 효력과 내
용을 해석하는 기준이 되며, 법의 흠결을 보충하는 제1차 원리가 된다.”98)
헌법 제1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법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
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평등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이 헌법조항에서 필자가 주
목하는 것은 ‘법앞에 평등’ 개념과 ‘사회적 신분에 따른 차별’이라는 개념이다.
여기서 사용된 ‘법앞에 평등’ 개념이 의미하는 바는 “행정부나 사법부에 의한
법 적용상의 평등을 뜻하는 것 이외에도 입법권자에게 정의와 형평의 원칙에 합
당하게 합헌적으로 법률을 제정하도록 하는 것을 명령하는 이른바 법 내용상의
평등”이다. 따라서 “입법의 내용이 정의와 형평에 반하거나 자의적으로 이루어진
경우에는 평등권 등의 기본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한 입법권행사로서 위헌”인 법률
이 되어 법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게 된다.99)
“헌법 제11조의 1항의 규범적 의미는 ‘법 적용의 평등’에 끝나지 않고, 더 나아가
입법자에 대해서도 그가 입법을 통해서 권리와 의무를 분배함에 있어서 적용할
가치평가의 기준을 정당화할 것을 요구하는 ‘법 제정의 평등’을 포함한다. 따라서
평등원칙은 입법자가 법률을 제정함에 있어서 법적 효과를 달리 부여하기 위하여
선택한 차별의 기준이 객관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을 때에는 그 기준을 법적 차별
의 근거로 삼는 것을 금지한다. 이때 입법자가 헌법 제11조 1항의 평등원칙에 어
느 정도로 구속되는가는 그 규율대상과 차별기준의 특성을 고려하여 구체적으로
결정된다.”100)
98) 대법원 2008. 11. 20. 선고 2007다27670(강조는 첨가). 99) 헌재 1992.4.29. 선고 90헌바24.
100) 헌재 2000.8.31. 선고 97헌가12. 정의지향적 관점(justice-orientated perspective)에 의거 한 평가 없이는 법적용의 평등이란 정의의 원리라기보다는 단순히 “법을 준수하라” 또는 “법을 일관되게 적용하라”는 법준수의 요청에 불과하다. 이러한 지적은 로버트 알렉시 (이준일 옮김), 기본권이론, 한길사, 2007, 462-63면. 또한 카임 페를만(심헌섭 외 옮김), 법과 정의의 철학, 45면: “우리의 분석은 일반의 생각과는 달리 정의의 기 초, 더욱이는 형식적 정의의 기초를 이루는 것은 결코 평등 관념이 아니라 동일한 본질 범주에 속하는 모든 구성원에게 동일한 규칙을 적용한다는 바로 그 사실이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처우의 평등[평등대우-인용자]이란 단지 규칙의 준수라는 사실의 논리적 귀결에 불과한 것이다.”(강조는 첨가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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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읽어낼 수 있는 점은 세 가지이다. 우선, 우리 헌법상의 법앞의 평등은
법적용의 평등과 법내용의 평등을 모두 포함한다는 것이다. 이때 ‘법 내용의 평
등’은 사회정의의 전형적 사안이다. 법규범 자체의 분배적 특성, 즉 이득과 부담
을 사회구성원 개인들에 귀속시킬 때의 정당성(평등대우와 차등대우 기준 자체의
정당성)을 따지기 때문이다.101)
둘째, 차등대우의 기준이 정당화될 수 없을 때에는 차등대우는 금지된다는 설시
는 평등대우 우선성을 인정하는 것이다.102) 이때 ‘차별 기준의 객관적 정당화 가
능성’이라는 기준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라는 물음은 실질적 사회정의론에
입각해서 답해져야 할 사안이기도 하다. 개인들이 어떤 측면에서 같은지 다른지를
가르는 기준 자체는 실질적 정의원리에 의거하지 않고서는 설정되지 않기 때문이
다.103)
셋째, 합리적 차등대우(정당한 불평등)의 기준은 해당 영역의 개별적 특성에서
찾을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당한 불평등의 기준은 복합적이라는
점을 우리 헌법재판소는 상정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법영역에
나타나는 정당한 불평등의 복합적 기준들에 대해서는 후술하기로 한다.
사회적 신분에 따른 차별 금지 조항에서 ‘사회적 신분’이란 개념이 말하는 바는
종래 양반-양인-천민과 같은 신분제만을 염두에 둔 것일까? 우리 헌법재판소는 전
과자가 사회적 신분에 해당하는지와 관련한 결정에서 “헌법 제11조 1항에서의 사
회적 신분이란 사회에서 장기간 점하는 지위로서 일정한 사회적 평가를 수반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전과자도 사회적 신분에 해당된다”고 판단한 바 있다.104) 그 취
지를 좀더 밀고나가 과감하게 해석해본다면, ‘사회적 신분’이란 이등국민(second-
101) W. Sadurski, Equality and Legitimacy, Oxford, 2008, 94면: “Formal equality before the law is an engine of oppression destructive of human dignity if the law entrenches inequalities in the political, economic, social, cultural or any other field of public life.” (이는 사두스키가 호주 최고법원의 판결 Gerhardy v. Brown 59 ALJR 311, 337 (1985)에서 개진된 대법관의 의견을 인용한 것이다.).
102) 이 설시는 앞에서 서술한 약한 평등대우 우선성(즉 차등대우 예외 원칙)을 채택하는 듯이 보이기도 하고, 또는 차등대우할 정당한 차이점이 있다고 입증되기 전까지는 일단 개인들 사이의 유사성을 추정하고 우선적으로 평등대우한다는 평등대우 우선성 추정 원칙(강한 해석)을 채택하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우리 헌법재판소가 어떤 견해 를 취하는지 분석해 볼 만한 주제이다. 이러한 탐구를 위해 유용한 분석은 로버트 알렉시, 기본권이론, 461면 이하 참조.
103) W. Sadurski, 위의 책, 94면 이하 참조.
104) 헌재 1995.2.23. 선고 93헌바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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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 citizenship)을 지칭하는 것이며, 사회적 신분에 따른 차별금지는 반(反)이등
국민제 원리(Anticaste Principle)를 천명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 헌법질서가 반이등국민제 원리를 채택하고 있다는 미국의 헌법학자 선스
틴(C. Sunstein)에 따르면,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장애인과 같이 도덕적인 관점
에서 보았을 때 차등의 사유로서 무관하고 부적절할 뿐 아니라 누구라도 명백하
게 식별할 수 있는 기준(피부색, 성별, 신체장애, 또는 지역출신과 같은 자연적 요
인)에 따라 특정 집단의 구성원들을 지속적으로 불리하게 차별하는 법적, 사회적
관행과 실무는 이등국민제도를 실질적으로 제도화하고 있는 셈이다.105) 필자는 반
-이등국민제 원리는 낸시 프레이저가 제창하는 ‘인정의 정치’(the politics of recog-
nition)에서의 인정 이념과 결합하여 그 내용을 발전시키면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
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다. 앞에서 설명하였듯이, “사람들이 서로 상호존중을 표시
하고 그들 모두가 사회에서 동등한 인간존엄성을 갖는, 도덕적으로 동등한 사람임
을 승인하는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인정의 이념106)을 반-이등국민제 원리가 구체
화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종래 여성, 장애인에 대한 차별에 더하여 성적 소
수자들, 탈북한 사람들, 외국인과의 혼인에서 태어난 자녀들에 대한 유형무형의
차별은 이등국민제의 효과를 낳는 신분적 차별이며 철폐되어야 할 부정의라 할
것이다.
(나) 판자촌 거주민과 거주이전의 자유107): 반이등국민제 원리의 적용
‘법앞에 평등’의 특수경우인 반이등국민제 원리는 미국 사회에만 해당되는 정의
원리는 아니다. 서울시 서초구 양재2동 212번지 서울시 시유지에 형성된 판자촌
‘잔디마을’ 거주민들의 사례를 소재로 하여 살펴보도록 하자. 한국사회의 경우 판
자촌 거주민은 법적으로 보면 유령과 같은 존재이다. 도시개발의 결과 도시 외곽
으로 강제로 밀려나 불법으로 판자촌을 형성하여 사는 도시 빈민들은 전입신고를
105) C. Sunstein, “Anticaste Principle”, Michigan Law Review 92 (1994), 2410-2455면 참조: “The anticaste principle forbids social and legal practices from translating highly visible and morally irrelevant differences into systemic social disadvantage, unless there is a very good reason for society to do so.”(2411면)
106) 이에 대해서는 N. Fraser, “Rethinking Recognition”, New Left Review 3(2000) 107-120 면, 특히 113면 이하 참조. 프레이저는 인정의 개념을 개인의 사회적 위상(status)의 측면에서 바라보고, ‘인정의 정치’를 평등한 사회적 위상을 갖는 존재로 서로를 상호 인정(reciprocal recognition)하는 사회질서에 대한 노력으로 이해하고 있다.
107) 이 부분은 박경신 외, 호모 레지스탕스, 해피스토리, 2011, 13-27면을 참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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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당해왔다. 따라서 이들은 해당 주소지로 전입신고가 되지 않자 인근지역에 위
장전입을 해놓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이들은 취학통지서, 선거투표
통지서, 기타 행정문서 등을 위장전입한 주소에서 수령해야 했고, 또한 기초생활
수급대상 혜택도 받을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주민등록은 개인의 일
상생활 뿐만 아니라 공법상의 법률관계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데, 주민등록을
실제 거주지의 주소에서 하지 못한다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가장 기본적으
로 누려야 할 권리들도 누릴 수 없는 이등국민의 처지에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러한 법적 상황이 바뀌는 계기가 발생했다. ‘잔디마을’에 10여 년 살아왔던
한 거주자가 전입신고를 거부당한 채 지내오다 용기를 내어 2007년 4월 양재2동
동사무소에 주민등록전입신고를 하였다. 당연히 양재2동 동장은 수리거부를 하였
는데, 남의 땅에 무단으로 침입하여 무허가건축물을 짓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국가
가 주민등록이라는 법적 편의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였다. 종전의 대법
원 판결은 그러한 수리거부처분을 합법적인 것으로 승인해왔다. 관련 법률인 주민
등록법 제6조 제1항은 주민등록법상 주민등록 대상자가 되기 위한 요건으로서
“30일 이상 거주할 목적으로 관할구역 안에 주소 또는 거소를 가진 자”로 명시하
고 있는데, 이 규정의 해석과 관련해서 2009년 판결 이전까지 대법원의 입장은 다
음과 같았다.
“주민등록법상 주민등록대상자의 요건인 ‘30일 이상 거주할 목적으로 그 관할구
역 안에 주소 또는 거소를 가질 것’이라 함은 단순한 외형상의 조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주민등록법의 입법목적과 주민등록의 법률상의 효과 및 지방자치의
이념에 부합하는 실질적 의미에서의 거주지를 갖춘 경우를 의미한다. 따라서 주민
등록을 담당하는 행정청으로서는 주민등록대상자가 이러한 실질적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다고 불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그 등록을 거부할 수 있다.”108)
그리고 행정안전부는 빈곤층 집단거주지역 주민등록 전입과 관련해서 아래와
같은 지침을 수립하고 적용하고 있었다.
“주민등록 전입은 거주지 여건 등을 판단하여 사례별로 조치하되 전입을 원할 경
우, 주거목적과 민원발생 소지 등 종합적인 판단 하에 적극적으로 조치한다. 또
108) 대법원 2002.7.9. 선고 2002두1748 판결(강조는 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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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6 서울대학교 法學 제53권 제1호 (2012. 3.)
전입을 원하는 경우 주거 목적과 민원발생 소지 등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적극적
으로 전입 조치하되, 철거지역 또는 투기 등 주민등록상 효과가 없는 경우는 주
민등록 전입을 제외한다.”109)
종전의 대법원 판례와 행정안전부의 행정지침에 따르면 당시 양재2동장의 전입
신고수리거부는 합법적인 조치였지만, 전입신고를 거부당한 그 시민은 서울행정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였고, 당 법원은 이 시민의 주장을 받아들여 양재2동장의 신
고수리 거부처분이 위법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그 근거는 아래와 같았다.
“주민등록법은 주민의 거주관계 등 인구의 동태를 항상 명확하게 파악하여, 주민
생활의 편익을 증진하고 행정사무를 적정하게 처리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지
부동산 투기방지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투기방지 등의 목적은 주
민등록법이 예정하고 있지 아니한 이상 간접적인 효과에 불과할 뿐이다. 따라서
투기나 전입신고에 따른 이주대책 요구 등을 방지하기 위하여 전입신고수리를 거
부한 것은 주민등록법의 입법목적과 취지 등에 비추어 허용될 수 없다.”110)
양재2동장은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하였으나 동 법원 역시 제1심과 같은 입장을
취하였다.111) 상고심인 대법원도 전원합의체 판결112)로 종전의 대법원 판례를 변
경하면서 “양재2동장에게 ○○씨의 주민등록전입신고 수리 여부를 심사할 권한은
분명히 있으나, 헌법상 보장되고 있는 거주이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으므로
그 심사는 제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주민등록법의 목적이 ‘주
민을 등록하게 함으로써 주민생활의 편익을 증진하고 행정사무를 적정하게 처리
하는 것’에 있으므로, 양재2동장은 해당 주민이 30일 이상 거주할 목적으로 잔디
마을로 거주지를 옮기는 것인지 여부만 심사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 판결을 계기로 해서 ‘잔디마을’이나 ‘구룡마을’과 같은 판자촌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전입신고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주민등록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물론 주
민등록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이들의 무단점유가 불법에서 합법으로 전환되는 것
은 아니다. 또한 이들 거주민의 거주이전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해서 해당 토지의
109) 박경신 외, 호모 레지스탕스, 22-23면에서 재인용.
110) 서울행정법원 2007.11.25. 선고 2007구합27332 판결.
111) 서울고등법원 2008.6.4. 선고 2007누33780 판결
112) 대법원 2009.6.18. 선고 2007누33780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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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질서와 정의론: 공정과 평등, 그리고 운의 평등 / 金度均 367
소유자와의 민사법적 관계가 변경되는 것은 없다. 여전히 무허가 불법건축물은 철
거대상이다. 그러나 이제 거주민들은 위장 전입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선거
때가 되면 거주지 근처에서 설치된 투표소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떳떳하게 참
정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113) 이등국민의 지위에서 동등한 권리를 갖는 시민
으로서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물론 법률상의 인정일 뿐이기는 하지
만 말이다.
지나친 해석일지는 모르지만, 필자는 위의 판결에 담겨진 근본정신은 앞에서 서
술한 반 이등국민제 원리를 구현한 것으로서 한국 법질서의 정의론을 구성할 때
소중한 의미를 가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2) 정당한 평등과 불평등: 복합적 정의 기준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사회정의의 영역에서는 어떤 경우에 평등대우가 정당하
며, 어떤 경우에 불평등대우(차등대우)가 정당한지를 판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재화들의 배분은 어떤 정의원리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는가?
우리 법질서에 담겨 있는 정의원리들은 복합적 정의영역에 따라 각 영역에 적합
한 기준들로 구성된다고 보면 어떨까? 적어도 (헌)법적인 논의는 특별하게 합당한
사유가 없는 경우에는 일단 우선적으로 중요한 이익들과 부담들을 평등하게 배분
할 것을 인정하고, 입증의 부담을 차등대우(불평등대우)를 주장하는 쪽에 지우고
있다. 우리 헌법재판소의 경우 다음과 같이 평등원칙을 이해한다.
“헌법 제11조 제1항의 평등의 원칙은 일체의 차별적 대우를 부정하는 절대적 평
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 근거가 없는 차별을 하여서는 안 된다는 상대
적 평등을 뜻하며, 합리적 근거가 있는 차별인가의 여부는 그 차별이 인간의 존
엄성 존중이라는 헌법원리에 반하지 아니하면서 정당한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
하여 필요하고도 적정한 것인가를 기준으로 판단되어야 한다.”114)
헌법재판소의 견해는 우리 헌법에 편입되어 있는 정의의 원칙으로서 ‘(법 앞에
서의) 평등의 원칙’은 절대적 평등이 아니라 상대적 평등을 의미하므로 ‘합리적
113) 박경신 외, 호모 레지스탕스, 25면 참조.
114) 헌재 1997.5.29. 선고 94헌바5. 유사하게 J. Rawls, Justice as Fairness: A Restatement, 132면: “It is from the point of view of equal citizens that the justification of other inequalities is to be underst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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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등대우’(정의로운 차등대우)는 허용된다는 것이다. 이때 차등대우의 합리성을
판별하는 최고의 기준으로 ‘동등한 인간 존엄성’이라는 헌법적 (도덕)원리를 들고
있음을 염두에 두자. 평등원칙과 관련된 헌법재판소의 결정문들을 좀더 깊이 분석
해야만 복합적 정의원칙들을 추출해낼 수 있을 것이지만, 이 글에서는 복합적 정
의영역의 존재를 가정하고 각각의 영역에 적용될 복합적 정의원칙들을 탐구할 필
요가 있다는 점만 지적하기로 한다.
(가) 동등한 인간존엄성 원리와 평등대우의 두 차원
각 개인을 동등한 존엄성을 가진 존재로 보고 인간의 근원적 평등을 인정하게
되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평등하게 존중받고 배려받을 권리’(the right to equal re-
spect and concern)를 보유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가장 근원적인 권리인 평등
권에 비추어보면 평등대우의 원칙은 ㉠ 동등한 존엄성을 가진 존재로서 평등하게
대우받을 권리(the right to equal treatment as equal beings)와 ㉡ 재화를 평등하게
배분받을 권리(the right to equal distribution)를 포함한다.115)
우리가 보통 평등대우라고 하면 ㉡의 재화의 평등배분 차원에서만 생각하지만,
엄밀하게 고찰하면 ㉠의 차원에서의 평등대우가 더 근원적인 것이다. 이로부터 ㉠
의 근원적 평등대우 원칙을 충족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불평등한 배분도 이루어
져야 한다는 정의원칙을 이끌어낼 수 있다. 동등한 인간존엄성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 되는 차등대우는 정의롭다는 것이다. 즉 ㉡의 재화의 평등배분 원칙은 ㉠
의 근원적 평등대우 원칙의 한 부분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우리 헌법
재판소가 “합리적 차별은 동등한 인간존엄성의 원리에 비추어서 판단되어야 한
다.”고 말할 때의 진정한 취지일 것이다.
(나) 동등한 인간존엄성의 원리로부터 나오는 차등대우의 요청
‘동등한 인간 존엄성’의 원리와 평등의 요청이 지향하는 바를 결합하여 한번 다
음과 같이 요약해보도록 하자.
어떤 법규범이 규정하는 구성요건을 동일하게 충족하는 관련당사자들을 동등하게
처우하라는 원칙 또는 그들에게 재화를 균등하게 배분하라는 원칙이 정의로운 것
은, 이 평등분배가 동등한 인간존엄성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적합하다고 인정되는
115) 이에 대해서는 R. Dworkin, Taking Rights Seriously, Cambridge/Mass., 1977, 227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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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질서와 정의론: 공정과 평등, 그리고 운의 평등 / 金度均 369
경우이며, 평등분배 그 자체가 정의의 목표이념은 아니다.
‘평등한 몫의 배분’ 원리는 ‘법 앞의 평등’이나 ‘기준의 일관된 적용’과 마찬가
지로 ‘동등한 인간존엄의 원리’를 실현하는 한 방편일 뿐이다. ‘동등한 인간존엄의
원리’는 필요한 경우에는 재화를 불평등한 배분을 할 수 있음을 함축한다는 것이
다. 이처럼 “어떤 배분의 기준이 정당한가?”라는 정의의 문제에 대해서 ‘동등한 인
간존엄성의 원리’에 비추어서 대답할 때 비로소 제대로 된 정의이론이 될 것이다.
(3) 정치적 평등의 원리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는 정치적 권리 중에서 매우 중요한 위상을 갖는다.
그 가치와 역할에 대해서 우리 헌법재판소는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집회의 자유는 개인의 인격발현의 요소이자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요소라는 이중
적 헌법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로운 인격발현을 최고의 가
치로 삼는 우리 헌법질서 내에서 집회의 자유도 다른 모든 기본권과 마찬가지로
일차적으로는 개인의 자기결정과 인격발현에 기여하는 기본권이다. 뿐만 아니라,
집회를 통하여 국민들이 자신의 의견과 주장을 집단적으로 표명함으로써 여론의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집회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와 더불어 민주적 공
동체가 기능하기 위하여 불가결한 근본요소에 속한다.”116)
이 결정문에 담겨 있는 정치적 정의의 요청을 추출해보자면, 정치적 권리들(민
주주의적 권리: democratic rights)은 시민으로서의 사적 자율성과 공적 자율성의
신장에, 그리고 민주적 공동체의 기능에 중요한 수단이 되는 사회적 재화(social
good)로서 그 분배는 평등원리에 입각해서 이루어져 한다는 것으로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야간시위를 제한/금지하는 규정을 담고 있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0조
에 대해 헌법불합치판정이 내려졌다.117) 현대 한국사회의 변화를 고려할 때 야간
집회 및 시위의 해악이 주장되는 것만큼 크지 않다는 것도 이유 중의 하나였지만,
헌법재판소 판단의 가장 핵심적인 근거는 야간 집회 및 시위제한/금지는 정치적
권리의 불평등한 배분으로 귀결된다는 것이었다. 직장을 다니는 시민들의 경우 주
116) 헌재 2000.10.30. 선고 2000헌바67(강조 첨가).
117) 헌재 2009.9.24. 2008헌가25(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0조 등 위헌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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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0 서울대학교 法學 제53권 제1호 (2012. 3.)
간에 집회와 시위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야간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야간 집회
와 시위를 제한/금지한다면 민주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정치적 권리를 심각하게 침
해당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요지였다.
정치적 권리의 불평등한 배분은 특히 선거운동의 영역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의
미를 갖는다. 정치적 권리의 불평등은 시민의 삶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
안들에서 사회적 협동의 산물인 이익과 부담을 불공평하게 부과하는 공적 결정
(법률, 정책적 결정 등)으로도 이어지므로 법적인 부정의(legal injustice)의 전형적
인 사례라고 하겠다.
(4) 재산권 영역의 정의 원리: 재산권의 두 구성요소와 정당한 제한의 기준
헌법 제23조 제2항에서 규정하는 재산권의 공공복리적합성(사회적 구속성)에
입각하여 재산권의 제한이 정당한 경우를 따지면서 우리 헌법재판소는 다음과 같
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헌법은 재산권을 보장하지만 다른 기본권과는 달리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고 하여(제23조 제1항) 입법자에게 재산권에 관한 규율권한을 유보하고
있다. (...) 일반적으로 재산권의 제한에 대하여는 ① 재산권 행사의 대상이 되는
객체가 지닌 사회적인 연관성과 사회적 기능이 크면 클수록 입법자에 의한 보다
광범위한 제한이 허용된다. ② 한편 “개별 재산권이 갖는 자유보장적 기능이 강할
수록, 즉 국민 개개인의 자유실현의 물질적 바탕이 되는 정도가 강할수록 그러한
제한에 대해서는 엄격한 심사가 이루어져야 한다.”118)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입장을 재산권 영역의 정의원리와 관련하여 응분의 원칙
(노동 기여에 따른 소유권 인정 원칙)에 비추어 분석하면 매우 흥미로운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순전히 자신의 노력으로 획득되었고 개인의 자율
성과 독립성 보장과 관련해서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 재산권은 국가로부터, 그리고
불로소득을 사유화하려는 시도들로부터 강하게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반
면 재산권 획득과정에서 타인의 협력이나 사회의 기여가 있었다면 그만큼에 대해
118) 헌재 2005.5.26. 선고 2004헌가10(밑줄과 번호는 첨가한 것임). 독일의 경우 독일연방 헌법재판소는 BVerfGE 21, 73 (82면 이하)에서, 토지의 속성상 “개별소유자들의 자 의에 토지에 완전히 맡기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는 요청을 이끌어내면서 “공평한 사 회질서와 법적 질서를 위해서는 토지에 있어서 공익을 다른 재산적 재화의 경우에서 보다는 더욱 강력하게 반영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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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질서와 정의론: 공정과 평등, 그리고 운의 평등 / 金度均 371
서는 사회가 기여한 사람들을 대표해서 재산권에 대해 일정한 권한(조세)을 행사
할 마땅한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119)
(5) 기회균등의 원리, 능력주의, 적극적 우대조치
우리 헌법이 전문에서 기회균등의 원리를 천명하고 있다는 점을 앞에서 살펴보
았다. 이때 기회균등 원리는 어떤 내용을 갖는 것일까? ‘군가산점 판결’120)에서
개진된 헌법재판소의 견해에서 추론해보도록 하자.
ⓐ 사회적 약자의 적극적 보호: “헌법은 실질적 평등, 사회적 법치국가의 원리
에 입각하여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국가가 적극적으로 보호하여야 함을 여
러 곳에서 천명하고 있다. 성별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헌법 제11조,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헌법 제34조 제1항외에도, 위에
서 본 헌법 제32조 제4항, ‘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노
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34조 제3항, ‘신체장애자 및 질병․노
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
의 보호를 받는다’고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34조 제5항, ‘국가는 모성의 보
호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36조 제2항 등이 여
기에 해당한다.”
ⓑ 한국 법체계의 통일성과 정의원리: “여성과 장애인은 각종의 제도적 차별,
유․무형의 사실상의 차별, 사회적․문화적 편견으로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고, 특히 능력에 맞는 직업을 구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
다. 이러한 현실을 불식하고 평등과 복지라는 헌법이념을 구현하기 위하여
여성․장애인 관련분야에서 이미 광범위한 법체계가 구축되어 있다. 여성발
전기본법, ‘남녀차별금지및구제에관한법률’, ‘남녀고용평등법’에서 여성의 사
회참여 확대, 특히 공직과 고용부문에서의 차별금지와 여성에 대한 우대조
치를 누차 강조하고 이를 위한 각종 제도를 마련하고 있으며, ‘장애인복지
법’, ‘장애인고용촉진등에관한법률’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금지와 보호장치를
규정하고 있다. 어떤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헌법이념과 이를 구
체화하고 있는 전체 법체계와 저촉된다면 적정한 정책수단이라고 평가하기
어려울 것이다.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철폐에 관한 협약’ 등의 각종
119) 이에 대해서는 후술한다.
120) 헌재 1999.12.23. 선고 98헌마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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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협약, 위 헌법규정과 법률체계에 비추어 볼 때 여성과 장애인에 대한
차별금지와 보호는 이제 우리 법체계내에 확고히 정립된 기본질서라고 보아
야 한다. 그런데 가산점제도는 아무런 재정적 뒷받침 없이 제대군인을 지원
하려 한 나머지 결과적으로 이른바 사회적 약자들의 희생을 초래하고 있으
므로 우리 법체계의 기본질서와 체계부조화성을 일으키고 있다고 할 것이
다. 요컨대 제대군인에 대하여 여러 가지 사회정책적 지원을 강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사회공동체의 다른 집단에게 동등하게 보장되어
야 할 균등한 기회 자체를 박탈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가산점제도는 공
직수행능력과는 아무런 합리적 관련성을 인정할 수 없는 성별 등을 기준으
로 여성과 장애인 등의 사회진출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므로 정책수단으로서
의 적합성과 합리성을 상실한 것이라 하지 아니할 수 없다.”
ⓒ 능력주의(응분 원칙의 적용)와 공정한 기회균등의 원리: “직업공무원을 선발
할 때에는 임용희망자의 능력․전문성․적성․품성을 기준으로 하는 이른
바 능력주의 또는 성과주의를 바탕으로 하여야 한다. 헌법 제7조에서 보장
하는 직업공무원제도의 기본적 요소에 능력주의가 포함되는 점에 비추어 헌
법 제25조의 공무담임권 조항은 모든 국민이 누구나 그 능력과 적성에 따라
공직에 취임할 수 있는 균등한 기회를 보장함을 내용으로 한다고 할 것이다.
국가공무원법 제26조와 ‘공개경쟁에 의한 채용시험은 동일한 자격을 가진
모든 국민에게 평등하게 공개하여야 하며……’라고 하고 있는 동법 제35조
는 공무담임권의 요체가 능력주의와 기회균등에 있다는 헌법 제25조의 법리
를 잘 보여주고 있다. 능력주의에 바탕한 선발기준이 아니라 직무수행능력
과 무관한 요소인 성별․종교․사회적 신분․출신지역 등을 기준으로 삼는
것은 국민의 공직취임권을 침해한다.”
ⓓ 잠정적 우대조치의 인정: “잠정적 우대조치란 종래 사회로부터 차별을 받아
온 일정집단에 대해 그 동안의 불이익을 보상하여 주기 위하여 그 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취업이나 입학 등의 영역에서 직․간접적으로 이익을
부여하는 조치로서 그 특징은 개인의 자격이나 실적보다는 집단의 일원이라
는 것을 근거로 하여 혜택을 준다는 점, 기회의 평등보다는 결과의 평등을
추구한다는 점, 항구적 정책이 아니라 구제목적이 실현되면 종료하는 임시
적 조치인 점이다.”121)
121) 헌재 1999.12.23. 선고 98헌마363. 구 여성발전기본법[법률 제5136호, 1995.12.30,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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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질서와 정의론: 공정과 평등, 그리고 운의 평등 / 金度均 373
이러한 결정들로부터 이끌어낼 수 있는 점은, 중요한 재화나 직업과 관련된 경
쟁에서는 공정성과 기회균등의 원리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헌법재판소가 강
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기회균등의 원리와 관련해서 심층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문제이지만 기회균등의 원리에 대한 상세한 분석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자 한다.
(6) 사회국가적 정의 이념 – 인간다운 삶의 보장(social minimum) 원리와 필요
원칙
사회국가(복지국가)원리는 사회정의 이념과 연대 이념을 표현한 것이다. 우리
헌법재판소는 “우리 헌법이 자유시장 경제질서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사회국가원
리를 수용하여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을 아울러 달성하려는 것을 근본이념으로 하
고 있다”고 파악한다.122) 그리고 실질적 사회정의 원리는 다음과 같은 헌법상 국
가의 정책의무규정들에서 반영되어 있다고 해석한다.
① 헌법 제34조 ②: 국가는 사회보장 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가 있다.
① 헌법 제34조 ③: 모성의 보호와 여자의 복지 및 권익향상의무
③ 헌법 제34조 ④: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향상을 위한 정책을 펼칠 의무
④ 헌법 제34조 ⑤/⑥: 신체장애자 및 질병․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시민에 대한 국가의 보호의무, 재해로부터의 국민보호의무
⑤ 헌법 제35조 ③: 주택개발정책
우리 헌법의 사회국가적 정의원리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다음과 같은 해석은
한국 법질서의 정의론을 구상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 “우리 헌법은 사회국가원리를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헌법의 전문,
사회적 기본권의 보장(헌법 제31조-36조), 경제영역에서 적극적으로 계획하고
유도하고 재분배하여야할 국가의 의무를 규정하는 경제에 관한 조항 등과 같
정] 제6조는 ‘잠정적 우대조치’란 표제어 아래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여성의 참여 가 현저히 부진한 분야에 대하여 합리적인 범위 안에서 그 참여를 촉진하기 위하여 관계법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잠정적인 우대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었 다. 또한 현행 ‘남녀고용평등법’ 제2조에서는 ‘적극적 고용개선조치’란 표제어 아래 “현존하는 남녀간의 고용차별을 없애거나 고용평등을 촉진하기 위하여 잠정적으로 특정성을 우대하는 조치”라고 정의하고 있다.
122) 헌재 1998.5.28. 선고 96헌가; 2003.2.27. 선고 2002헌바4 등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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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국가원리의 구체화된 여러 표현을 통하여 사회국가원리를 수용하였다.
사회국가란 한마디로, 사회정의의 이념을 헌법에 수용한 국가, 사회현상에 대
하여 방관적인 국가가 아니라 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정의로운 사회질
서의 형성을 위하여 사회현상에 관여하고 간섭하고 분배하고 조정하는 국가이
며, 궁극적으로는 국민 각자가 실제로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그 실질적 조건
을 마련해 줄 의무가 있는 국가이다.”123)
㉯ “우리 헌법의 경제질서는 사유재산제를 바탕으로 하고 자유경쟁을 존중하는
자유시장 경제질서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이에 수반되는 갖가지 모순을 제거하
고 사회복지와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국가적 규제와 조정을 용인하는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124)
㉰ “국가가 행하는 생계보호가 헌법이 요구하는 객관적인 최소한도의 내용을 실
현하고 있는지의 여부는 결국 국가가 국민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함에 필
요한 최소한도의 조치는 취하였는가의 여부에 달려있다고 할 것이다. ‘인간다
운 생활’이란 그 자체가 추상적이고 상대적인 개념으로서 그 나라의 문화의
발달, 역사적․사회적․경제적 여건에 따라 어느 정도는 달라질 수 있는 것일
뿐만 아니라, 국가가 이를 보장하기 위한 생계보호 수준을 구체적으로 결정함
에 있어서는 국민 전체의 소득수준과 생활수준, 국가의 재정규모와 정책, 국민
각 계층의 상충하는 갖가지 이해관계 등 복잡하고도 다양한 요소들을 함께 고
려하여야 한다.”125)
생활능력이 없는 시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규정은 사회정의 이념의 실현을
향한 국가와 법의 의무를 나타내는 것임이 분명하다. 이는 ‘기본적 필요’ 원칙을
우리 법질서의 정의원칙으로 수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사회적 최
소수혜자층을 위한 이 정의원리의 실현 방식이나 정도는 어떻게 되어야 할까?
“사회적 기본권은 입법과정이나 정책결정과정에서 사회적 기본권에 규정된 국가
목표의 무조건적인 최우선적인 배려가 아니라 <단지 적절한 고려>를 요청하는 것
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회적 기본권은, 국가의 모든 의사결정과정에서 사회적
기본권이 담고 있는 국가목표를 고려하여야 할 국가의 의무를 의미한다.”126)
123) 헌재 2002.12.28. 선고 2002헌마52.
124) 헌재 2001.2.22. 선고 99헌마365.
125) 헌재 2002.12.28. 선고 2002헌마52.
126) 헌재 2002.12.18. 선고 2002헌마52(강조와 꺾쇠 표시는 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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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질서와 정의론: 공정과 평등, 그리고 운의 평등 / 金度均 375
이때 ‘단지 적절한 고려’란 용어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최소한도의 조치’를
뜻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그리고 ‘국가목표를 [적절하게] 고려하여야 할 국가의
의무’는 어떤 내용으로 이루어지는 것일까? 연대 의무라고 해도 좋을 국가의 의무
는 어떤 내용일까?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을 내리려면 한국의 법체계에 담겨 있
는 복합적 정의원리들을 체계적으로 설명해줄 정의론이 필요할 것이다.
- 보론: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정의론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정의 이념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간략하게 살펴
보기로 하자.127) 우선 동 재판소는 독일 법질서에서 정의이념이 작동하는 과정을
두 단계로 나누어서 파악한다.
(1) 정의 이념 작동의 두 단계
(가) 첫 번째 단계의 정의이념
이 단계에서의 정의 이념은 법개념과 법효력의 판단기준으로서 역할을 한다. 라
드브루흐의 생각을 받아 들여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법규범들이 ‘근본적 정의원
칙’에 명백하게 부딪치는 경우 법이 아니라고 본다. ‘보편적으로 타당한 정의의
본질적 가치’ 또는 ‘정의의 근본원리들’이 법체계의 ‘최후의 경계’를 이루는데,
‘자의성 금지’(das Willkürverbot)를 핵심으로 하는 법치국가 원리, 즉 법 앞에서의
평등, 죄형법정주의가 정의의 본질적 가치들을 구성한다고 동재판소는 해석하고
있다.128)
(나) 두 번째 단계의 정의이념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정의이념을 독일 법질서에 실제로 구현된 핵심적 법원
리인 평등원칙의 맥락에 위치짓는다. 이 단계에서의 정의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정의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질적 정의관념들’(‘materielle Gerechtigkeit-
svorstellungen einer gewandelten Gesellschaft’)로서 파악되고, 개별적인 생활의 영
역들에서 적용될 구체적인 배분적 정의의 기준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129) 연방헌법재판소는 구체적인 배분적 정의의 원칙들이 근거 지어 졌을 때
127)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정의관련 판결들에 대한 포괄적 분석은 G. Robbers, Gerechtigkeit als Rechtsprinzip, Baden-Baden, 1980 참조.
128) BVerfGE 3, 225(237); 23, 98(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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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 서울대학교 法學 제53권 제1호 (2012. 3.)
법해석적 관련성을 가진다고 보는데, 이때 근거 지어졌다 함은 ‘실천이성의 규준
들’에 맞고 ‘전체 법원리들의 체계’에 부합하는 경우를 이른다.130) 어떤 법규범이
이 단계에서의 정의이념에 충돌한다고 해서 곧바로 법의 성격이나 법효력을 상실
하는 것은 아니다.
(2) ‘정의지향적 관점’과 평등원리
일반적으로 독일 법질서에서 평등원칙은 정의의 이상을 실정법화 하고 있다고
인정되고 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판례에 따르면,
“독일 기본법 제 3조 1문의 평등원칙은 ‘그때그때 문제가 되는 맥락에 따라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다룰 것’을 요구한다. 이때 같은 것과 다른 것의 범
주 결정은 ‘언제나 정의이념을 지향하는 시각에 서서’(‘bei steter Orientierung am
Gerechtigkeitsgedanken’) 행해져야 한다. 즉 평등원칙은 구체적인 맥락에 따라서
‘정의지향적 관점’(‘eine am Gerechtigkeitsgedanken orientierte Betrachtungsweise’)
에 비추어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131)
무엇이 ‘정의지향적 관점’일까? 정의의 영역은 정당하게 평등한 영역들(just
equalities)과 정당하게 불평등한 영역(just inequalities)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
면 중요한 사회적 재화나 권리의무를 ‘정의지향적 관점’에 따라서 배분하라고 할
때, ‘정의지향적 관점’이란 개인들이 어떤 측면에서 근원적으로 평등한지를 해명
하는 관점이기도 하며, 이 근원적 평등성에 근거하여 어떤 경우에 평등대우의 원
칙을 적용하며, 어떤 경우에 차등대우의 원칙을 적용할 것인가를 밝히는 관점이라
고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이 ‘정의지향적 관점’이라는 개념을 차용해서 한국의
평등권 논의를 고찰하는 것도 의미있으리라 생각한다.132)
129) BVerfGE 34, 269(289).
130) BVerfGE 18, 224 (237 f.); 25, 28(49) 등.
131) BVerfGE 9, 124(129 f.)(강조는 첨가).
132) 평등원칙을 해석할 때 정의지향적 관점이 가동되어야 한다는 독일연방헌법재판소의 견해는, 사회정의의 문제가 법앞의 평등(평등원칙)의 문제에 개념적으로나 규범적으 로 앞서서 해결되어야 한다는 점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법이 사람들이나 사태 들 사이의 ‘범주 분류’(classification)를 하지 않을 수 없다면, 어떤 분류가 비합리적 차별에 해당되는지 아닌지를 판별하기 위해서는 실질적 정의의 관념에 좌우될 수밖 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W. Sadurski, Giving Desert Its Due, 3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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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질서와 정의론: 공정과 평등, 그리고 운의 평등 / 金度均 377
(3)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정의판결에서 나타난 (헌)법적 정의 영역과 정의기준들
정의지향적 관점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연방헌법재판소의 정의판결들
에서 예를 찾는 것이 도움이 될 듯하다.
(가) 정치적 의사결정과 엄정한 평등주의 : 우선 정치적 의사형성의 과정에 관
련된 정치적 기본권의 영역에서는 연방헌법재판소는 ‘엄격한 평등주의적’
(‘radikal-egalitär‘) 원칙을 인정한다. 투표의 균등한 효과를 보장하려는 비
례대표제는 이러한 정의의 요청(’Forderung der Gerechtigkeit’)을 실현하는
제도이다. 그리고 정당들간의 기회균등의 원리는 ‘정치적 의사형성에 동등
하게 참여할 수 있는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합당한 기준이 된다.133)
(나) 형벌 정의와 (개별)사태적합적 정의: 형벌의 영역에서는 ‘정의로운 형벌’의
기준으로서 잔혹한 형벌의 금지원칙을 들 수 있다. 죄와 형벌은 ‘사태적합
적 관계’(sachgerecht)에 있어야 한다는 원칙도 있다. 즉 양형은, 범죄를 저
지른 개인이 누군가에 상관없이, 범죄행위로 인해 침해된 법익의 정도에
따라 정해져야한다는 등가성의 원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이를 연방헌법
재판소는 ‘(개별)사태적합적 정의’(Sachgerechtigkeit)로 표현한다.134)
(다) 조세정의와 소득능력의 기준 : 자유권적 기본권영역 만큼이나 연방헌법재
판소의 정의판결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는 조세정의(Steuergerechtigkeit)
이다. 연방헌법재판소는 조세정의를 헌법적 평등원리의 중요한 분야로 봄
으로써 조세부담의 문제는 헌법적 논의에서 활발한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조세정의의 영역에서 연방헌법재판소는 형식적 평등원칙이나 사실적 평등
의 원칙을 적용하지 않고 개별적 사례의 특수한 사정을 고려해야한다는 원
칙을 제시한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가장 근본적인 조세정의 원칙으로
‘소득능력의 기준’(das Leistungsfähigkeitsprinzip)을 드는데, 이 원칙은 다음
과 같이 세분화된다. 135)
㉠ 수평적 조세정의 원칙(‘horizontale Steuergerechtigkeit’) : 동등한 소득능
력을 가진 시민들은 동등한 조세부담을 진다.
㉡ 수직적 조세정의 원칙(‘vertikale Steuergerechtigkeit’) : 시민들이 상이한
133) BVerfGE 13, 243(237) 등 참조.
134) G. Robbers, 앞의 책, 45면 이하 참조. 또한 BVerfGE 25, 269(286) 등 참조.
135) BVerfGE 82, 60(89) 등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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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8 서울대학교 法學 제53권 제1호 (2012. 3.)
소득능력을 가진다면 그 소득능력에 대응해서 조세부담이 행해져야 한다.
(라) 사회적 기본권과 최저생활보장의 기준 : 이른바 사회권적 기본권과 관련해
서 독일 헌법학자들은 사회정의의 근본이상이 독일 기본법 20조 1항의 ‘사
회적 복지국가 원리’(das Sozialstaatsprinzip)를 매개로 해서 독일 사회에서
헌법적 지위를 부여받고 있음을 지적하는데, 연방헌법재판소의 입장은 그
다지 뚜렷하지 않다.136) 이는 아마도 사회복지국가 개념과 사회정의 개념
의 다차원성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연방헌법재판소의 입장을 분
명하게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 사회정의 개념을 세 가지 차원으로 나누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 가장 넓은 의미에서 사회정의 : 근대성을 특징짓는 자유, 평등, 박애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정치철학적, 법철학적 이념들의 총집합을 지칭한다.
이 차원에서의 사회정의는 근대 입헌민주주의 헌법에 표현된 법원리들
의 전체를 포괄하는 이상으로 볼 수 있다.
㉡ 두 번째 의미의 사회정의 : 형식적 평등원리를 넘어서서 중요한 재화들
을 고르게 분배하여 실질적 평등을 보장하는 사회를 이루려는 배분적
정의의 영역과 관련해서 이해할 수 있다.
㉢ 가장 좁은 의미에서 사회정의 : 배분적 정의의 영역 내에서도 기본적
필요들의 보장과 최소생활의 보장과 관련된 정의로 해석할 수 있다.
사회복지국가 원리와 관련해서 독일 헌법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모든 시민이 인
간다운 생활을 누리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최저생활의 보장, 사회적 평등의 실
현, 사회보장제도의 확립, 전반적 복지상태의 향상 등을 드는데, 이는 두 번째와
세 번째 차원에서의 사회정의 개념을 포괄하는 듯하다. 사회복지국가의 원리가 내
포하는 사회정의 이념의 실현은 입법자의 권한에 속한다고 연방헌법재판소가 판
시할 때, 첫 번째와 두 번째 차원의 사회정의 개념을 염두에 두는 것 같고, 다른
한편으로 사회복지국가 원리에서 ‘최소생존의 보장’(das Prinzip des Existenzmini-
mums)은 인간존엄의 헌법원리에서 도출되는 헌법상의 원리로서 그 실현여부의
검토는 헌법재판소의 영역에 속한다고 판시할 때에는 세 번째 차원의 사회정의
136) BVerfGE 22, 180(204); 27, 253(292); 36, 237(248 ff.); 69, 272(314) 등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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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을 염두에 두는 듯하다.137)
IV. 정의론의 비교와 검토
위에서는 한국의 법체계에 담겨 있다고 여겨지는 정의원리들을 산발적으로 추
출하여 보았다. 이렇게 복합적인 법영역들에서 추출한 정의원리들을 체계적으로
통일성을 갖추도록 설명해 줄 정의론은 어떤 것일까? 자유지상주의 정의론, 평등
지향적 자유주의 정의론, 공동선지향적 정의론이 그 후보들로 거론될 수 있겠다.
그 중 어떤 정의론이 가장 적절할까? 이하에서는 앞에서 서술한 응분 원칙에 비
추어서 각 이론의 장단점을 비교하기로 한다.
- 자유지상주의 정의론: 자유교환으로서의 정의
자유지상주의 정의론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자유교환의 산물이면 정의롭다’
는 자유교환으로서의 정의(justice as free exchange)이다. 선택과 교환을 강조하는
자유지상주의 정의론은 모든 개인은 각자의 정신과 신체에 대해 온전한 소유권을
갖는다는 전제 위에 서있다.
(1) 신체소유권, 운의 불평등, 재산권
이러한 견해를 가장 체계적으로 제시한 노직의 1974년 저서 아나키, 국가 그
리고 유토피아(Anarchy, State, and Utopia)는 정당한 소유권에 토대를 둔 정의론
을 전개한다. 노직은 자연적 정의의 원칙으로서 아래의 세 가지 원리를 출발점으
로 삼는다.138)
첫째 원리는 정의로운 원초적 취득 원리(a principle of just initial acquisition)이
다. 토지나 자연물에 대해서 타인이 충분히 이용할 수 있는 상태로 남겨 두는 한
에서는, 누구나 자기 것으로 가질 수 있고, 이러한 취득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둘
째 원리는, 대상물이 개인 사이에서 정당하게 양도되고 이전될 경우 자연으로부터
정의롭게 취득된 재화는 사적 소유자들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정의롭게 축적할
137) BVerfGE 1, 97(100); 19, 354(368); 89, 365(380) 등 참조.
138) R. Nozick, Anarchy, State, and Utopia, New York, 1974, 160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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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다는 정당한 양도 원리(a principle of transfer)이다. 이에 따르면, 최초부터
정당한 소유권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소유물이 자발적 교환을 통해서 양도된 것이
라면 이는 정의롭다. 따라서 타인으로부터 선물이나 증여를 통해서 받은 것과 노
동을 통해 생산한 것 사이에는 도덕적 정당성의 측면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게 된
다. 불로소득인지 근로소득인지 여부는 공정한 원초적 취득과 정의로운 이전이라
는 역사적 기준에 의해 판별될 수 있다. 셋째 원리는 부정의의 시정 원리(a princi-
ple of rectification of injustice)이다. 자원 독점, 강제 노동, 사기 등에 의한 부당한
재물취득으로 야기된 부정의한 상태는 시정되어야 한다는 원리이다.139)
노직의 정의론은 자기소유권을 확장한 것으로서 “모든 사람은 자신의 신체와
힘을 행사하여 사적 소유권을 온전하게 마땅히 가질 도덕적 자격이 있다.”는 관념
에 서 있다. 노직이 대표하는 자유지상주의 정의론의 논리를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140)
① 나는 내 자신을 소유한다 ― 자기신체 소유권의 대전제
② 내 자신을 소유한다면, 나는 내 재능도 소유한다 ― 재능소유권 인정
③ 내 신체와 재능을 소유한다면, 나는 그 재능을 투여한 노동의 산물을 소유할
권리를 갖는다 ― 노동생산물에 대한 소유권 인정
④ ‘공유(지)의 비극’(the tragedy of commons)을 방지하기 위해서 원래는 무주물
인 자연계에 대한 사적 소유권이 인정되어야 한다 ― 자연에 대한 사적 소유
권 인정
⑤ 내 노동의 산물에 대한 소유권이 인정되고, 자연에 대한 사적 소유권의 필요
성이 인정된다면, 국가나 사회는 소득세 등을 통한 재분배정책으로 내 소유권
을 침해할 수 없다 ― 소득재분배 정책의 부당성
⑥ 왜냐하면 소득세를 통한 재분배는 결국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권리이자 정의
의 대원칙인 자기신체소유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의 산물은 노동한 개인의 선택, 근면과 노력의 산물이므로 마땅히 신체소유
권자의 소유물이 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이러한 논변의 핵심을 이룬다. 이를 전제
로 하여 각종 세금은 개인의 노동시간을 강탈하는 것이고, 개인의 노동을 강제로
139) 노직의 정의론에 대한 상세한 분석은 조나산 울프(장동익 옮김), 로버트 노직: 자유주 의 정치철학, 철학과현실사, 2006 참조.
140) 이에 대해서는 윌 킴리카(장동진 외 옮김), 현대 정치철학의 이해, 동명사, 2005, 153 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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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질서와 정의론: 공정과 평등, 그리고 운의 평등 / 金度均 381
수용하는 것이며, 결국은 개인을 노예로 삼는 것과 같다고 자유지상주의는 주장한
다.141)
이러한 정의론은 자연권적인 속성을 갖는 재산권을 정의의 기초로 보면서 많은
불평등들을 정당화한다. 종업원의 노동조합가입을 금지하는 계약(Anti-union con-
tract)을 금지하는 캔자스 주의 법률이 위헌이라고 선언한 1915년 미연방대법원의
판결은 이러한 사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동법원의 다수의견은 계약 협상력의 평
등을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 아니라고 보면서 다음과 같이 논변을 전개한다.
“사유재산권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분명히 운의 불평등들이 존재해야 하고 존재할
것임은 분명하다. (...)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아도, 사유재산권과 계약의 자유가 함께
존재하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계약을 체결할 때 당사자들이 불가피하게 각자가 보
유한 재산의 정도에 따라 영향을 받게 마련임을 알게 될 것이다. (...) 모든 것을 공
유로 하지 않는 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재산을 더 많이 가질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따라서 계약의 자유와 사유재산권을 주장하면서 이 권리들의 행사에 따
르는 필연적 결과인 운의 불평등들을 정당한 것으로 승인하지 않는 것은 사물의 본
성상 불가능하다.”
(“No doubt, wherever the right of private property exists, there must and will be
inequalities of fortune; and thus it naturally happens that parties negotiating about a
contract are not equally unhampered by circumstances. This applies to all contracts,
and not merely to that between employer and employee. Indeed, a little reflection will
show that wherever the right of private property and the right of free contract coexist,
each party when contracting is inevitably more or less influenced by the question
whether he has much property, or little, or none; for the contract is made to the very
end that each may gain something that he needs or desires more urgently than that
which he proposes to give in exchange. And, since it is self-evident that, unless all
things are held in common, some persons must have more property than others, it is
from the nature of things impossible to uphold freedom of contract and the right of
private property without at the same time recognizing as legitimate those inequalities
of fortune that are the necessary result of the exercise of those rights.”)142)
141) R. Nozick, Anarchy, State and Utopia, 169면 참조.
142) Coppage vs. Kansas, 236 U.S. 1 (1915 - 밑줄 친 부분을 번역하였으며 강조는 첨가 된 것임). 홈즈 대법관은 반대의견에서 그러한 법률을 위헌으로 판단할 근거가 연방 헌법에서 찾을 수 없음을 강조하면서 동법률이 합헌이라는 견해를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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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 자유지상주의 정의론의 근저에는 다음과 같은 생각이
놓여 있다고 여겨진다: 각 개인의 가정환경이 다른 데서 나오는 불평등이 공정하
지 못하다는 지적은 맞지만, ‘삶이란 원래 불공정’한 것이다(‘life is not fair’).143)
자유지상주의 정의론을 향한 비판은 두 가지로 집약된다. 첫째, 개인은 자기의
신체에 대한 완전한 소유권을 가질 자격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둘째, 현재의 소
유권자들이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재화나 토지에 대한 응분의 자격을 갖는가하
는 것이다.
(2) 자기신체소유권의 원천에 대한 비판
자유지상주의 정의론의 자기신체소유권에 대한 비판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우선 자연을 누가 소유하는 것이냐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신체는
그 신체를 소유한 사람의 개인적 선택과 노력으로 나온 산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연히 나의 신체는 부모님의 선택과 노력의 산물이다. 내 신체는 부모님과의 거
래를 통해 정당한 과정을 거쳐 나에게 양도된 것도 아니다. 이러한 이유로 여성주
의 정치철학자 수전 몰러 오킨(Susan Okin)은, 우리가 신체소유권이라는 전제로부
터 출발한다면 결국 모든 사람의 신체에 대한 소유권은 어머니인 여성이 보유하
거나 아니면 최소한 90% 소유권 지분을 갖게 되는 모계노예제사회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비꼬기도 한다.144)
두 번째 유형의 비판은 내가 나의 것이라고 당연히 전제하는 재능과 지식, 역량
은 온전히 내 노력과 선택의 산물이 아니라 상당한 정도 과거에 축적된 사회적
유산의 영향으로 형성된 것이라는 비판이다.145) 이러한 비판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자세하게 다루기로 한다.
143) 이러한 생각은 M. Friedman, Free to choose, Harmondsworth, 1980, 167-168면: “Much of moral fervor behind the drive for equality of outcomes from the widespread belief that it is not fair that some children should have a great advantage over others simply because they happen to have wealthy parents. Of course it is not fair.”
144) S. Okin, Justice, Gender, and the Family, New York, 1989, ch.4 참조.
145) 이에 대해서는 G. Alperovitz/L. Daly, Unjust Deserts: How the rich are taking our common inheritance, New York, 2008 참조. 이 책은 전북대학교 원용찬 교수에 의해 서 독식 비판(민음사, 2011)이라는 제목으로 국역되었다. 이 책은 응분원칙에 입각 하여 재산권 문제를 다루는 뛰어난 역작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지식경제시대의 재산 권 문제를 분배적 정의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어 현대 한국사회의 정의론을 구성하 는 데에 매우 유용한 문헌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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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불로소득과 응분 원칙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경제학자 허버트 사이먼(H. Simon)은 개인의 소
유권 문제를 다룰 때 사회의 기여도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파한다.
“우리가 자신에게 매우 관대하다고 하더라도 소득의 5분의 1 정도만 온전하게 내
자신의 ‘노력에 대한 응분의 보상’이라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나머지 5분의 4는
엄청난 생산적 사회 시스템에 개인들이 참여해서 이룩한 사회 전체의 세습재산이
다. 이는 거대한 물리적 자본의 축적,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이전된 지식, 기술,
조직 노하우를 포함하여 한층 커다란 지적 자본이 축적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지식의 상당 부분과 후하게 할당된 수많은 불로소득은 모두 동료시민들이 똑같은
재능을 주고받는 상호과정 속에서 우리에게 옮겨 오게 된다.”146)
그렇다면 대대로 세습되어 사회적 유산으로 물려받은 사회 전체 생산물의 몫을
어떻게 배분해야 정의로운 것일까? 사이먼은 협소한 경제적 공식이 정의 기준으
로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면서, 민주적인 의지형성에 바탕을 둔 ‘정치적
과정을 통해 결정되어야 할 가치의 문제’임을 강조한다.147)
소유권을 강조하는 자유지상주의 정의론도 응분 원칙을 받아들인다면, 결국 무
엇이 기여분이고 무엇이 유산인지, 무엇이 노력의 대가이며 무엇이 불로소득인지,
누가 무엇을 응분의 보상으로 받아야 하는지를 따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러
한 문제의식은 영국의 정치철학자 레너드 홉하우스의 발언에서도 잘 드러난다.
“경제학의 근본 문제는 재산권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제자리를 찾아
줌으로써 재산권의 사회적 개념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는 부의 형성에서 개인적
요소와 사회적 요소를 정확하게 구분함으로써 이루어질 것이다.”148)
146) H. Simon, “Public Administration in Today’s World of Organizations and Markets”, PS: Political Science and Politics Vol. 33 no. 4 (2000), 756면.(가 알페로비츠/루 데일 리, 독식비판, 236면에서 재인용).
147) 가 알페로비츠/루 데일리, 독식비판, 236면.
148) L. Hobhouse, Liberalism and Other Writings, ed. J. Meadowcroft, Cambridge, 1994, 91 면. 소유권 및 재산권, 시장의 제반 과정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데 국가와 공공 시스 템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분석한 문헌으로는 S. Holmes/C. Sunstein, “The Cost of Rights: Why Liberty Depends on Taxes” (New York, 1999)와 L. Murphy/T. Nagel, “Myth of Ownership: Taxes and Justice” (New York, 2002)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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몫을 받을/청구할 마땅한 자격(desert)의 문제는 “내가 번 것 중 많은 부분은 사
회에서 나온 것이다.”는 세계적인 부호 워렌 버핏의 발언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
는 개인들이 노력해서 번 것처럼 보이는 가치가 실제로 어디에서 나오는가, 즉 얼
마만큼이 순전히 개인적 ‘노력의 대가’로 평가되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상
식적인 답이라고 하겠다. 이 물음을 다루는 데 필요한 판단기준은 ① 사람은 자신
이 실제로 창조한 것을 소유할 권리가 있다는 원리와 ② 자신이 창조하지 않은
것은 소유할 권리가 없다는 원리이다.
개인이 노력을 통해 창조한 것은 그 개인이 가질 마땅한 자격이 있다는 노동기
여 원리(노동/노력에 따른 응분보상의 원리)는 존 스튜어트 밀이 토지재산과 관련
하여 정확하게 지적한 바 있다.
① “사유재산권 제도는 자기가 스스로 노력해서 생산한 것, 또는 생산자에게서 무
력이나 사기를 통하지 않고 선물이나 공정한 합의에 의해서 받은 것을 각 개
인이 남의 간섭 없이 처분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는 제도이다. 그 토대는
자기가 생산한 것에 대한 생산자의 권리이다. 그러므로 현행 재산권 제도는,
자신이 생산하지 않은 것에 대한 사유재산권을 어떤 개인들에게 인정하고 있
다고 비판할 수 있다.”149)
② “재산이라는 개념에 함축되는 것은 각자가 자기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자기
능력으로써 자기가 생산한 것에 대해서 공정한 시장에서 생산물과 바꾸어 얻
은 것에 대해서 권리가 있다는 것이 전부다. 그리고 그는 또한 자기가 선택한
누구에게든 이것을 줄 권리가 있고, 그 상대방은 그것을 받아 누릴 권리가 있
다.”150)
③“재산제도의 핵심원리는 각자가 노동하여 생산하고 절제를 발휘하여 축적한
것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만, 이 원리는 땅 속의 천연자원처럼 노
동의 산물이 아닌 경우에는 적용될 수 없다. 토지의 생산력이 근로가 아니라
전적으로 자연에서 도출된 것이라면 또는 어디까지가 자연의 결과고 어디까지
근로의 결과인지를 분별할 수단이 있다면 자연의 선물을 개인이 독점하는 것
은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고도의 불의(injustice)일 것이다. 토지 자체는 근로의
산물이 아니지만 토지에 함유되는 가치 중 많은 부분은 근로의 산물일 수 있
조. 이 두 문헌은 사유재산권의 형성에는 이미 공공 시스템이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149) 존 스튜어트 밀(박동천 옮김), 정치경제학원리 제2편, 나남, 2010, 43면
150) 존 스튜어트 밀, 위의 책, 47면. 물론 밀은 유증할 권리의 한계를 설정한다(5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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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질서와 정의론: 공정과 평등, 그리고 운의 평등 / 金度均 385
다. (...) 이러한 이치에 따르면 토지재산의 정당화는 소유자가 토지생산력의 질
을 높일 때에만 성립한다.”151)
④“신성한 사유재산권을 운위할 때에 토지재산에는 그와 같은 신성함이 그만큼
함유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토지를 만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토지는 인간이라는 종 전체가 받은 원초적 상속분이다. 토지를 어떻게
전유하는가의 문제는 사회 전체를 위한 편의의 문제일 뿐이다. 토지를 사유재
산으로 삼은 것이 사회 전체에 편의가 아니라면 그것은 곧 불의가 된다.”152)
밀에 따르면, 토지소유자가 아무것도 기여하지 않았는데도 증식된 가치를 사유
화하도록 허용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그와 같은 사유화는 자신의 노력이나 지출
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것, 즉 사회전체에서 나오는 가치를 토지 소유자 개인이
부당하게 가지는 것일 뿐이다. 이러한 불로소득은 특정한 개인들이 ‘사회에 대하
여 세금을 부당하게 징수하는 것’으로서 ‘공공적 부를 불법적으로 개인들이 탈취
하는 것’이다.153) 밀의 견해는 한국 사회의 부동산 불로소득 문제를 다룰 때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노력의 대가(earned)와 노력의 산물이 아닌 부당한 보수(unearned), 응당
한(deserved) 보상과 응당치 못한(undeserved) 보상의 문제에 대해, 그리고 개인의
부에 사회(또는 사회적 협동에 참여한 과거와 현재의 구성원 전체)가 기여한 몫에
대해 마땅히 주장할 사회의 권리(또는 공동협동에 참여한 구성원들의 권리) 문제
에 대해서 자유지상주의 정의론은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는 일리가
있다고 여겨진다.
- 평등지향적 자유주의 정의론: 공정성으로서의 정의와 운의 불평등 보정
평등지향적 자유주의(egalitarian liberalism) 정의론은 미국의 철학자 존 롤즈
(John Rawls)의 정의론에서 가장 잘 나타나므로, 이하에서는 롤즈의 정의론을 중
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60년대 미국사회의 인종차별, 베트남전쟁, 계급격차,
성차별과 같은 부정의한 현실을 목도하면서 실현가능한 유토피아(realistic utopia)
를 위한 정의론으로서 출간된 롤즈의 정의론(A Theory of Justice: 1971)은 개
인의 개성발현과 독립성을 중심으로 하는 자유를 중시하면서 실질적 기회균등과
151) 존 스튜어트 밀, 정치경제학원리 제2편, 61면.
152) 존 스튜어트 밀, 위의 책, 64면.
153) 이에 대해서는 가 알페로비츠/루 데일리, 독식비판, 118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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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경제적 평등을 지향하는 정의론을 제시하였다. 롤스의 정의론은 절차적 공정
성과 실질적 정의(결과의 정의)의 결합, 공정성과 공평성의 결합으로 이해할 수
있다.
(1) 공정성으로서의 정의:154) 불운의 교정과 응분 원칙
자유지상주의 정의론은, 각 개인이 신체에 대한 소유권을 갖는다면 마찬가지로
자신의 재능과 천부적 능력에 대해서도 소유권을 갖는다고 본다. 자유지상주의가
출발점으로 삼은 정의의 근본원리는, 자신이 숙고하고 위험을 감수해서 선택하고,
남들이 놀 때 근면성실하게 노력하여 뛰어난 업적을 냈다면, 그에 대해 자기의 몫
이라고 마땅히 주장할 응분의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상식과 숙고된
판단에도 합치하므로 정의의 핵심 원칙으로서 적합하다고 일단 인정하도록 하자.
최근 한국사회에서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공정사회론’과 롤즈의 정의론을 비교
하면 평등지향적 자유주의 정의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재능, 의지,
노력의 측면에서 비슷한 개인들이 그 출신과 무관하게 또 각자가 속한 계층과 무
관하게 동등한 성공가능성을 가질 때, 공정한 기회균등의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
일반적으로 그 사회는 공정하다고 우리는 말한다. 이러한 통념을 잘 정리해서 이
명박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공정사회론’을 제시한 바 있다.
“공정한 사회는 출발과 과정에서 공평한 기회를 주되, 결과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
임지는 사회입니다. 공정한 사회는 개인의 자유와 개성, 근면과 창의를 장려합니
다. 공정한 사회에서는 패자에게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집니다. 넘어진 사람은 다시
일어설 수 있고, 일어선 사람은 다시 올라설 수 있습니다.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습니다. 이런 사회라면 승자가 독식하지 않습니다.”(2010년 제65주년 광
복절 기념사).
이 대통령의 경축사에는 공정성의 세 가지 차원이 들어 있는 듯하다.155) 첫째,
경쟁 규칙과 경쟁 절차의 공정성(procedural fairness)이다. 특권에 기초한 반칙이
154) 이는 김도균, “샌델 풍으로 한국사회 읽기”, 이택광 외, 무엇이 정의인가?, 마티, 2011, 139면 이하의 내용을 축약한 것이다.
155) L. Jacobs, Pursuing Equal Opportunities, Cambridge, 2004, 13면 이하 참조. 제이콥스 는 절차적 공정성과 배경 공정성의 차원에 더하여 승자독식 방지라는 의미에서의 결 과의 공정성 차원을 고려하는 삼차원적 기회균등관을 제시하고 있는데 설득력 있는 견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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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질서와 정의론: 공정과 평등, 그리고 운의 평등 / 金度均 387
작동되지 않도록 경쟁 규칙과 절차의 공정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둘째, 배경
공정성(background fairness) 원칙의 일정 부분도 담고 있다. 사회계층의 측면에서
나 가정환경의 측면에서 불리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라도 재능 있고 근면함을 갖
추었다면, 그 능력을 발휘해서 성공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출
발선의 공정성을 지향하는 것으로 독해할 수 있겠다. 셋째, 결과의 공정성도 읽어
낼 수 있다.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거나 과식하는 것이 아니라 패자에게도 일정
정도의 몫이 보장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승자독식의 방지와 패자부활
전의 보장이라는 의미에서의 공정성(stakes fairness)이다. 이렇게 보면 이명박 대통
령의 ‘공정사회론’은 다음과 같은 논리로 구성되어 있다.
① 성공의 영광을 받을 만한 ‘응분의 자격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근면과 창
의)을 발휘한 사람이다.
② 경쟁의 규칙과 절차를 공정하게 하고 출발선을 공정하게 만들어서 재능, 천성,
노력의 측면에서 우월한 개인들의 성과를 인정하면 창의성의 계발을 통하여
사회적 부를 창출할 것이고, 이를 통해 결국에는 사회전체의 구성원의 복지
가 증진될 것이다.
③ 공정사회란 이러한 기본원칙이 실현된 사회다.
이 ‘공정사회론’은 능력과 노력의 차이에 따른 몫의 배분은 그 결과가 불평등해
도 정당하다는 상식과, 스스로 선택하고 열심히 노력한 사람은 그 결과물을 마땅
히 받을 응분의 자격(desert)이 있다는 정의의 핵심 원칙을 반영하는 것처럼 보인
다. 정의의 근본기준이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주라’는 것이라면, ‘열심히 숙고한
후 불확실한 결과를 감수하면서 모험을 선택하고 노력을 한 자에게는 마땅히 그
만큼의 몫을 주라’는 응분자격의 기준은 이 근본기준을 충족한다고 보아도 좋겠다.
이명박 대통령의 ‘공정사회론’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사회경제적 재화의 불평
등이 자신의 능력과 노력(선택)에 의한 것이라면 공정한 조건의 산물이므로 정의
로운 불평등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불평등이 개인의 재능을 갈고 닦은 노력
과 선택의 산물인 한, 즉 스스로의 선택과 노력의 산물인 한, 그 불평등은 정당한
불평등이라는 것이다. 출발선과 경쟁과정의 공정성이 보장되면 재능과 노력의 차이
에 따른 불평등은 정당하다는 전제가 ‘공정사회’론을 뒷받침하고 있다.156)
156) 이러한 이 대통령의 공정사회론은 “재능 있으면 출세할 수 있다”(careers open to talents)는 사고방식(롤즈의 용어로는 ‘자연적 자유체제-system of natural liberty-에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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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전제가 앞서 말한 정의의 대원칙에 합치하는 것일까. 내가 가진 재능
과 근면함이 과연 전적으로 내가 선택하고 노력한 산물인 것일까. 재능과 근면함
의 결실에 대하여 온전히 나의 것이라고, 내가 마땅히 그것을 전부 받을 응분의
자격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바로 이 지점에서 자유지상주의 정의론의 대전
제에 대한 평등주의 정의론의 비판이 등장한다.157)
이와 관련해서 롤즈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158) 롤즈는 재능이나 근면함, 인내심
과 같은 천부적 품성은 자연이 각 개인에게 무작위로 배당한 추첨의 결과(“natural
lottery”)라고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159) 그렇다면 사회에서 맨 처음 주어진 출발
선이 당연히 내 몫(선택과 노력의 결실)이라고 주장할 근거가 없는 셈이다. 마찬
가지로 내게 주어진, 즉 자연이 우연히 분배한 재능도 당연히 온전하게 내 몫이라
고 말할 응분의 자격이 없다.160)
롤즈에 따르면, 능력을 애써서 갈고 닦게 만드는 내 우월한 성격이 당연히 내
몫이라는 생각도 아주 일부분만 타당할 뿐이다. 그러한 성격 형성에는 좋은 가정
과 사회적 환경이 크게 영향을 미치므로 전적으로 개인적 선택과 노력의 산물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이다. 따라서 나의 재능과 성격에 대해 순전히 나의
선택과 노력의 산물이라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161) 누군가가 자기가 노력해
서 산출한 것이 아닌데도 마땅히 가질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 결과물을 그
냥 가져가는 경우, 우리는 공정하지 못하다고, 불의라고, 경우에 따라서는 심지어
절도라고 비난한다. 자신이 선택하고 노력한 부분에 대해서만 자기가 가져야 할
정당한 몫으로 주장할 수 있을 뿐이라는 생각에서이다.
당된다)에 머무르지 않고, 동일한 수준의 재능과 성취욕구와 의지가 있으면 당사자의 사회경제적 위치와 무관하게 동일한 성공의 전망을 가져야 한다는 ‘공정한 기회균등’ 의 조건을 부가한 것이다. 황경식 교수가 정확하게 지적하듯이, 이는 사회적 우연성 을 차단하려 한다는 점에서 자연적 자유체제보다는 진일보한 것이지만 여전히 자연 적 운의 영향력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결함이 있는 공정사회론이라고 하겠다. 황경식 외, 공정과 정의사회, 25-6면 참조.
157) J. Rawls, A Theory of Justice, 86면: “Since inequalities of birth and natural endow- ments are undeserved, these inequalities are to be somehow compensated for.”(강조는 첨가).
158) J. Rawls, 위의 책, 86면 이하 참조.
159) J. Rawls, 위의 책, 64면 참조.
160) J. Rawls, 위의 책, 87면: “No one deserves his greater natural capacity nor merits a more favorable starting place in society.” 그리고 J. Rawls, Justice as Fairness: A Restatement, 74면 이하 참조.
161) J. Rawls, A Theory of Justice, 6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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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질서와 정의론: 공정과 평등, 그리고 운의 평등 / 金度均 389
롤즈는, 우리 각자의 재능이 다르다는 것이 불평등으로 이어지기는 하지만, 이
점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강조한다. 재능의 차이는 재능의 다양성을 의
미하고, 서로 차이가 나는 다양한 재능들을 가진 개인들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
해서 사회는 더 풍부해지고 각 개인들을 이로부터 혜택을 얻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사람들의 타고난 재능이 다 다르고 불평등하게 주어진 것 자체(distribution
of natural talents)를 공동자산(common assets)으로 보는 게 합당하다고 주장한
다.162) 문제는 특정한 재능들과 근성들만을 우월하고 귀중한 것으로 평가하고, 이
에 기초해서 중요한 사회적 가치들을 배분함으로써 불평등한 사회적 지위를 만들
어내는 데 있다.
롤즈의 ‘차등원칙’(the difference principle) 근저에 놓여 있는 사상은, 재능과 노
력의 차이에 따른 몫의 불평등은 인정하되, 그 재능의 차이가 자신의 노력에 의한
산물이 아니라 자연에 의해 주어진 것이므로 누구도 마땅히 자기 것이라고 주장
할 정당한 자격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우연한 차이가 행운을 타고나지 못한
사람들의 처지를 낫게 하는 데 쓰인다면 그 한도 내에서 그 재능에 따른 불평등
배분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재능의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되 사회 전체에
이득이 되게끔 차등 배분이 이루어진다면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기본구조가 확
립될 것이라고 롤즈는 굳게 믿었다.163)
롤즈는 공정성으로서의 정의론이 목표로 하는 것은 사회적 출발선(신분질서나
사회경제적 지위 등), 자연적 혜택(가령 선천적 재능), 사회적 행운/불운에 의해 결
정되는 인생전망 상의 불평등(inequalities in life prospects)을 보정(補正)하는 것임
을 누차 강조하는데,164) 이는 후술할 운의 평등주의로 이어지게 된다.165)
(3) 자연적 재능과 운의 차이, 그리고 응분 원칙
우리가 자발적으로 선택을 했거나 노력을 통해서 획득한 것이 아닌 자연적 재
능의 차이에 기초해서 중요한 사회적 재화의 배분이 이루어지면 “도덕적인 관점
162) J. Rawls, A Theory of Justice, 87면; Justice as Fairness: A Restatement, 75면 참조.
163) J. Rawls, 위의 책, 102면 이하 참조. J. Rawls, Justice as Fairness: A Restatement, 74 면 이하 참조.
164) J. Rawls, Political Liberalism, 271면. J. Rawls, Justice as Fairness: A Restatement, 55 면 참조.
165) J. Rawls, A Theory of Justice, 88면에서 합당한 정의원리들이라면 “운의 자의성에 대 처하는 공정한 방식”(“a fair way of meeting the arbitrariness of fortune”)을 담고 있어 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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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보아 자의적인”(“arbitrary from a moral point of view”) 기준에 따른 배분이
므로 불공정하고 정의롭지 못한 것일까? 자연적 재능, 자질, 품성의 차이가 작용
한 결과를 교정한다는 발상은 과연 타당하며 실현가능할까?
사회적 이득의 배분에 자연적 재능의 작용을 차단하거나 교정하려는 발상 또는
자연적 재능을 공동자원으로 이용하자(“common pool of natural abilities”)는 발
상166)에 대해서는 개인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반론이 제기되었다. 개인이
자신의 재능을 어떻게 쓸 것인지를 사회가 지정하거나, 어떤 인간이 될 것인지가
공동체의 필요에 따라 정해진다면, 개인 간의 차이들이 무시되면서 개인의 자율성
과 책임이 과도하게 제한될 것이라는 점이 반론의 주된 근거이다. 또한 자연적 재
능의 차이는 정의나 공정성의 시안이 아니므로 국가나 사회가 의도적으로 교정할
사안이 아니라는 반론도 설득력이 있다.167) 실제로 롤즈 스스로도 다음과 같이 말
하고 있다.
“[운의] 자연적 배분은 그 자체로는 정의롭지도 않고 부정의한 것도 아니다. 사람
들이 특정한 지위로 사회에 태어나는 것 역시 부정의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것
들은 단순히 자연적 사실(natural facts)일 뿐이다. 정의롭고 부정의한 것은 바로
(사회) 제도가 이 자연적 사실들을 처리하는 방식이다.”168)
미국의 철학자 토마스 네이글이 지적하듯, 자연적 재능의 차이에 기초한 사회경
제적 불평등은 신분에 기초한 사회적 차별이나 사회경제적 지위의 차이(부의 상
속)에서 생겨난 불평등보다는 덜 부정의하다고 여기는 우리의 정의판단에는 납득
할만한 근거가 있다.169)
166) 이러한 발상의 원천은 J. Rawls, A Theory of Justice, 101면: “We see that the differ- ence principle represents, in effect, an agreement to regard the distribution of natural talents as a common asset and to share in the benefits of this distribution whatever it turn out to be.”(강조는 첨가). 그리고 자연적 재능의 공동자산화에 대한 심층적 고찰 은 A. Kronman, “Talent Pooling”, J. Pennock/J. Chapman (eds.), NOMOS 23: Human Rights, New York, 1981, 58-79면 참조.
167) C. Fried, Right and Wrong, Cambridge/Mass., 1979, 143-150면 참조. R. Nozick, Anarchy, State, and Utopia, 228면.
168) J. Rawls, 위의 책, 102면.
169) T. Nagel, Equality and Partiality, Oxford, 1991, 102면 이하 참조. 네이글은 사회경제 적 불평등의 원천으로 차별(discrimination), 계급(class), 재능(talent)을 들고, 전자 두 가지 원천과는 달리 재능의 차이를 보정하는 시도는 여러 가지 난점이 있음을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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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질서와 정의론: 공정과 평등, 그리고 운의 평등 / 金度均 391
내 자신의 선택이나 노력의 결과가 아닌 행운이나 불운으로 내가 사회적으로
유리한 지위나 불리한 지위에 놓이게 될 때, 이를 정의의 문제로 판단할 수 있을
까? 이 물음을 정의의 문제로 설정하고 긍정적으로 대답하려는 정의론이 이른바
‘(행)운 평등주의’(luck egalitarianism)이다. 로널드 드워킨, 리처드 아네슨(R. Arneson),
제롬 코엔(Gerome Cohen), 보이체크 사두스키(W. Sadurski) 등이 주장한 (행)운 평
등주의는 개인들이 자기 노력을 투여해서 얻은 결과물에 대해서는 마땅히 소유할
응분의 자격이 있지만, 노력이 아닌 행운의 부분에 대해서는 그럴 자격이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노력과 선택의 차이에 따른 불평등은 도덕적으로 정당하지
만, 계급적 지위나 성별, 인종, 가족 환경과 같은 운에 따른 불평등은 최소화되어
야 한다. 위험을 감수해서 모험을 선택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당사자가 선택
을 통해서, 그리고 선택과 관련해서 발생한 운(option luck)이어서 그 결과에 대해
응분의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 반면 그런 선택과 노력 없이 그저 개인들에게
주어진, 해당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운(brute luck: 자연적 불운이나 행운, 가족환
경이나 사회환경과 같은 운)의 결과에 대해서는 당사자들은 응분의 포상을 요구
할 자격이 없다.170)
최근 운의 평등주의가 응분(desert) 개념을 사회정의론(분배적 정의론)에서 다시
복원시키려는 까닭은, 응분 개념이 개인의 선택과 책임(선택에 대한 책임)과 밀접
한 관련성을 갖고 있어서, 그동안의 평등지향적 정의론에서 부족했던 점들을 보완
해주기 때문이다. 자유지상주의 정의론에서 강조하는 개인의 선택과 그에 따른 책
임의 결과를 받아들이되, 개인적 재능 사이의 불평등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견해를 상당 정도 수정하려는 응분 정의론은 이른바 ‘선택(자율)과 책임을 고려하
는’(choice/responsibility-sensitive) 정의론이면서, 동시에 개인의 노력과 선택의 산
물이 아닌 운(brute luck)이 사회적 지위의 보유나 재화나 기회의 배분에 부당하게
영향을 미치는 점을 차단하거나 무력화하려는(luck-insensitive) 정의론이라고 평가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운 평등주의가 공정성 원칙, 기회균등의 원칙, 그리고 개인의 노력과 선
택을 강조하는 응분 원칙을 결합하여 합리적 평등과 합리적 차등의 결합으로서의
한다. 재능 차이의 보정이 이론적으로 까다로운 주제임을 보여주는 예일 것이다.
170) 이에 대해서는 R. Dworkin, Sovereign Virtue, Cambridge, Mass., 2000(국역: 염수균 옮 김, 자유주의적 평등, 한길사, 2005); G. Cohen, Self-ownership, Freedom, and Equality, Cambridge, 1996; W. Sadurski, Equality and Legitimacy, Oxford, 200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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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가장 잘 설명하는 정의론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법질서의 근저에 놓여 있
는 정의론을 운의 평등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여 세밀하게 고찰한다면 의미 있는
성과가 나올 것이라고 전망하지만 그 작업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자 한다.
- 공동선으로서의 정의171)
공동선으로서의 정의론은 마이클 센델이 자신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설명하고 있으므로 이를 중심으로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샌델의 정치철학 또
는 공공철학(public philosophy)에 대해서는 필자가 깊이 연구하지 못하고 그가 저
술한 세 권의 저서만을 참고했을 뿐이다.172) 따라서 이하에서 다루어진 샌델 정의
론에 대한 서술과 평가는 피상적인 수준의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협소한 절차와 권
리만을 중심으로 정의론을 전개하는 자유주의 정의론(또는 정치철학)에 대한 예리
한 비판을 담고 있는 샌델의 공공철학에는 귀담아 들을 만한 부분들이 많지만 독
자적인 정의론이 제시되지는 않고 있다. 노직과 롤즈의 정의론 및 정의원리들에
대한 비판은 있지만 자기자신만의 독자적인 정의론과 정의원리들이 보이지는 않
는다는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의 저서만을 소재로 해서는 과연 공동선으로서
의 정의론이 한국 법질서의 정의론 후보로서 적절한지 문제를 다루기에 미흡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법질서의 정의론 후보로서 샌델 정의론 또는 공동선
으로서의 정의론을 깊이 있게 검토하는 것은 차후의 과제로 남겨두기로 하겠다.
(1) 배분되는 재화의 텔로스(telos: 근본목표, 본질) 묻기
샌델 정의론의 핵심은 자유주의 정의론이 핵심으로 삼는 ‘개인주의적 관점에서
중시되는 권리의 정치’(politics of rights)는 ‘공동선의 정치’(politics of common
good)로 대체되거나 보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173) 그리고 정의의 원리는 해당 정
치공동체의 역사와 무관한 추상적인 원리들로 구성되어서는 안 되고 해당 공동체
의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공동선에 대한 이해(shared understandings)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174)
171) 김도균, “샌델 풍으로 한국 사회 읽기”, 149면 이하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172) 참고한 책은 그의 <정의란 무엇인가>(2010),
173) 윌 킴리카, 현대 정치철학의 이해, 298면.
174) 윌 킴리카, 위의 책, 29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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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질서와 정의론: 공정과 평등, 그리고 운의 평등 / 金度均 393
플루트를 배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샌델에 따르면, 그 기준을 정하기 위해서
는 플루트라는 악기(=재화)의 속성이나 본질목적(텔로스 telos)을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플루트라는 재화의 텔로스를 묻다보면 그 텔로스(아름다운 음악)에 가장
적합한 능력과 기예를 갖춘 사람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는 것이
다. 이렇게 이해하면 플루트에 접근할 수 있는 절차나 기회의 공정성은 정의의 필
요조건도 층분조건도 아니다. 샌델이 말하는 ‘텔로스’를 편의상 행위와 제도의 존
재의의나 최고목적으로 이해하도록 하면, 텔로스의 내용은 배분될 재화 자체의 속
성(본질)을 가리키기도 하고, 해당 사회에서 구성원들이 공통으로 이해하고 있는
의미를 지칭하기도 하며, 인류가 오랫동안 공통으로 가져 왔던 공유된 관념들
(shared understandings)을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점들을 근거로 해서 샌델은 ㉠
재화를 공정하게 배분하려면 먼저 해당 재화의 ‘텔로스’가 무엇인지 정해야 하고,
㉡ 공정으로서의 정의는 공동선으로서의 정의를 전제해야 한다는 견해를 정당화
한다.175)
샌델의 정의론을 필자 나름대로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다. 가령 의료혜택이라는
재화는 그것을 가장 필요로 하는 환자들에게 배분되어야 한다. 이것이 의료행위에
대한 인류의 오랜 공통감각이다. 물론 덜 긴급한데도 부자라거나 권력자라거나 하
는 이유로 의료혜택이 먼저 제공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지만 우리는 이를 부당하
다고 비판한다. 그러한 비판의 근저에 놓여 있는 정의 판단은 의료혜택이라는 제
도와 행위(=재화)의 텔로스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력의 텔로스를 분
석해보면, 공동선을 지향하면서 실현가능성이 있는 정책을 마련하고 대중들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할 능력을 가졌으며 그 정책을 실현할 추진력과 통솔력, 그리고
대중들을 이끌 수 있는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기준이 나온
다. 판사라는 직위는 법률적 분쟁을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는 논리적 능력과 분별
력 그리고 인간의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마땅히 배분되어야 한
다. 정치인, 고위공직자, 판사에 대한 대중의 비판에는 이처럼 오랜 기간에 걸쳐서
형성되어 왔고 인정되어온 텔로스가 깔려 있는 경우가 많다.
샌델은 전형적인 미국적 예를 들어 텔로스 묻기와 정의의 연관성, 선과 정의의
내적 연관성을 설명한다.176) 미국의 한 고등학교 미식축구부 응원단원(치어 리더)
에 뇌성마비장애인 캘리 스마트가 입단하였고 미식축구부의 마스코트가 될 정도
175)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262면 이하 참조.
176) 마이클 샌델, 위의 책, 259면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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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4 서울대학교 法學 제53권 제1호 (2012. 3.)
로 인기를 얻었다. 그런데 캘리가 미식축구부 응원단원으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기예를 갖추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가령 다리 일자 뻗기와 공중회전 등을 하지 못
한다는 이유로 일부 응원단원과 학부모들이 그녀를 응원단에서 퇴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연히 논쟁이 벌어졌는데, 샌델은 이 퇴출소동을 주도한 응원단장 학
부모가 옹졸하기는 해도 무언가 곱씹어볼 만한 주장은 했다고 인정한다. 즉, 미식
축구부 응원단의 텔로스는 무엇이어야 하며, 그 텔로스에 적합한 자격은 무엇이어
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롤즈 정의론에서 주장하는 공정성을 넘는 무언가가 이 소동에 담겨 있었다고
샌델은 본다. 응원단원 자리를 할당하는 공정한 방법을 정하기 이전에 먼저 응원
의 본질과 목적에 대해 가치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정절차나 방법은 목
적과 상관해서만 정해지는 파생적 기준의 위상을 갖는다는 것이다. 응원의 텔로스
는 미식축구선수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응원하는 학생들의 분위기를 돋우어 팀
으로서의 일체감을 드높이는 것인가, 아니면 학생들이 존경하고 따르고 싶어 하는
특정한 자질과 자격, 신체적 탁월함(미모)이나 기예(다리 일자 뻗기와 공중회전과
같은 능력)의 보유인가. 후자는 미국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응원이라는 사회적 행
위에 대해 부여해 왔던 공통된 의미일 것인데, 이것을 캘리 스마트라는 존재가 조
롱한다고 퇴출론자들은 판단했다는 것이다. 샌델에 따르면, 캘리 스마트의 출현으
로 응원이라는 사회적 행위가 갖는 텔로스와 그에 대해 부여되던 영광의 의미가
새롭게 정의되어야 할 상황에 처했다. 응원단에 대해 전통적인 텔로스를 수용하는
학부모들의 관점에서는 이의를 제기할 만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응원단에 부여되
는 영예로움(honor)은 공적인 토론을 통해서 새롭게 수정되어야 할 성격임을 샌델
은 인정하면서도, 자유주의 정의론이 하듯 덕목과 영예로움과 같은 실질적 가치에
대한 논의를 하지 않고 공정성과 권리에만 몰두해서는 적절한 정의론을 발전시킬
수 없다고 주장한다.177)
샌델은, 자유지상주의건 평등지향적 자유주의건 자유주의적 정의론은 정의의
문제를 텔로스에 대한 진지한 고려 없이 ‘권리와 의무의 문제’로만 축소해서 파악
한다고 비판한다. 특히 미국과 같은 노동이 자본의 지배를 견제하지 못하는 사회
177) 샌델이 응원단의 텔로스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필자의 해석으로는, 이 사안을 전통적인 이해에 대해 실질적인 가치논쟁 없이 공정 성의 사안으로만 보려는 태도는 현실에서 실천적 의미가 없다는 점을 샌델은 강조하 려는 것이었다. 샌델은 응원단의 텔로스에 대한 전통적 견해에 비판적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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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질서와 정의론: 공정과 평등, 그리고 운의 평등 / 金度均 395
에서는 시장의 텔로스가 여타의 재화들의 텔로스를 식민화해버렸기 때문에 매우
불공평한 사회가 되었다는 주장도 한다. 재화마다 텔로스가 다른데도 특정 재화
(가령 경제적 재화)의 텔로스를 다른 재화들에 뒤집어씌우면 부정의가 발생한다는
것이다.178)
(2) 덕목기반적 정의론과 응분 원칙의 복원
인류의 역사를 보면 정의에 관한 논쟁은 칭송받을 자격이 있는 덕목이나 바람
직한 삶(가치 있는 삶: the good life)에 관한 논쟁이기도 했음을 잊지 말라고 샌델
은 강조한다. 권리와 의무로 정하기 위해서는 먼저 권리와 의무로 선정된 행위들
의 텔로스를 하나하나 따져야만 하는데 자유주의는 이 문제를 어렵다고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행위의 텔로스를 고려하는 것은, 결국 해당되는 재화나 가치의 근
본목적과 의미에 비추어서 그것을 누릴 만한 마땅한 응분의 자격을 갖추었는지를
판단하라는 요청으로 집약된다. 정의와 선 사이의 내적 연관성을 중시하자는 것인
데, 이러한 점에서 샌델의 정의론은 응분 원칙의 복원을 강조하는 입장으로 분류
함직하다.179)
샌델에 따르면, 자유주의 정의론은 민주적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인 시민으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덕목들을 정의론의 영역에서 삭제하고는 개인에게 부여된 권
리만을 중심으로 정의의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따라서 자유주의 정의론은 올바른
삶에 대한 성찰과 논의를 차단한 채 개인주의적 권리의 틀 내에서만 공적 사안을
해결하려 함으로써 시민으로서의 능력과 민주적 덕목을 왜소하게 만들어 버린다
고 샌델은 비판한다.180) 이러한 사태에 대한 샌델의 처방은 ‘덕목형성적 정치’(for-
mative politics)의 복원이다. 타인을 존중하되 공적 사안에 대해 실질적인 도덕적
판단을 내리면서 공적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민주적 덕목을 함양하도록 교
육하고 지원하는 정치, 즉 민주적 자치에 필요한 자질과 덕목 양성을 목표로 하는
정치가 자유주의 정의론의 난점을 치유할 해답이라는 것이다.181)
시민적 덕목 및 윤리와 관련된 사안이나 민주주의와 관련된 사안과 관련해서는
178) M. Sandel, Public Philosophy: Essays on Morality in Politics, Cambridge/Mass., 2005, 69면 이하 참조.
179) 이 점에 대해서는 고바야시 마사야(홍성민/양혜윤 옮김), 마이클 샌델의 정의사회의 조건, 144면 이하 참조.
180) M. Sandel, 위의 책, 156면 이하 참조.
181) M. Sandel, 위의 책,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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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델의 견해가 설득력을 갖지만 사회경제적 재화의 분배와 관련해서는 샌델의 정
의론은 별로 말하는 바가 없다는 점이 지적되어야겠다. 물론 샌델 스스로 도덕적
영역에서 타당한 자신의 이론을 사회경제적 재화의 분배 문제에도 적용할 수 있
도록 발전시켜야 한다는 언급은 하고 있지만, 전망은 그다지 밝아 보이지는 않는
다. 사회경제적 재화의 배분은 단순히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물질적 이해관계의
첨예한 충돌의 문제이어서 성윤리나 시민적 덕목의 영역과는 달리 ‘공통된 텔로
스’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 의료, 주거, 보육, 노후, 기초소득보
장과 같은 복지의 문제, 토지소유의 불평등과 관련해서도 샌델의 정의론이 총론은
거론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말하는 바는 별로 많지 않다. 철학자가 추상적 지침
을 제시하고 그에 따라 시민들이 행동하는 방식보다는 시민들이 공공선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서 직접 정의담론에 참여하여 해결책을 찾는 편이 더 나을 것이라
고 샌델은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샌델이 말하지 않는 바를 두고 비판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한 처사일 것이다.
센델은 정치공동체에 대한 좋은 의미의 애국심을 강조하고 동료시민들에 대한
강한 연대를 주장하지만, 국제적 차원의 지원이나 인권보호의 문제에 대해서는 특
별히 말하는 바가 없다. 한국 사회에는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하여 이주민, 이주노
동자, ‘불법체류자’, 탈북자 등 국제인권법상의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는 점을 감안
하면, 한국 법질서의 정의론이기에는 샌델 정의론의 한계가 보이기는 한다. 그러
나 공동선에 대한 이해가 빈약하고 그에 대한 논의가 부족한 한국의 법적 담론에
서 샌델의 정의론은 여러 각도에서 연구되어 수용될 만한 가치를 갖는다고 생각
한다.
V. 한국 법체계의 공공적 정의론 구성을 위한 출발점
동등한 인간존엄성과 반이등국민제 원리가 정의의 근본원리로 삼아 한국 법체
계에 담겨 있는 정의론과 정의원리들이 무엇일지 상상해보자.
- 근원적인 의견불일치 조건하에서의 공공적 정의론
다원주의 상황 아래에서는, 중요한 도덕적 사안이나 정치적 사안 또는 정의의
사안과 관련하여 각자가 나름대로 공동선을 지향하고 사리사욕을 넘은 관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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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질서와 정의론: 공정과 평등, 그리고 운의 평등 / 金度均 397
진정성 있는 신의성실의 태도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결코 하나의 견해로 합의
할 수 없는 경우들이 있다. 이러한 근원적 의견불일치의 경우를 ‘심원한 도덕적
불일치’(profound moral disagreement) 상황이라고 하자.182) 중요한 공적 사안들에
대해 양심적이고 합리적인 시민들이 사리사욕 없이 진지하게 논의를 하더라도 결
코 합의에 도달할 수 없고 의견불일치를 해소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이해해도 좋
겠다.
이러한 도덕적 불일치 상황에서 민주적 시민들이 합의하고 수용할 만하고, 합리
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한다면 도저히 거부할 명분이 없는 정의원리들을 내용으로
하는 정의론이 있을까? 이와 같은 정의론을 우리는 공공적 정의론(a public con-
ception of justice)라고 불러보자. 이런 정의론이 있다면 우리는 공적 논의와 공적
결정에서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고, 공적 결정의 정당화 기반이자 근거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 인간상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독일 법질서의 근저에 놓여 있는 인간상(Menschenbild)과
관련하여 초기부터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는데 그 기본견해는 다음과 같다:
“독일 헌법이 상정하는 인간상은 고립된 개인이 아니다.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긴
장관계가 있지만, 독일 법질서의 인간상은 개인의 공동체적 관련성과 공동체에의
귀속성(Gemeinschaftsbezogenheit und Gemeinschaftsgebundenheit der Person)이라는
측면에서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긴장관계를 해소하려고 한다. 물론 그 경우에도
개인이 가지는 고유한 가치를 훼손하여서는 아니 된다.”183)
한국 법체계가 상정하고 있는 인간상은 어떠한 내용일까? 이러한 독일연방헌법
재판소의 견해와 유사하게 우리 헌법재판소도 대한민국 법질서의 근간을 이루는
인간상을 다음과 같이 파악한다. 헌법재판소는 다음과 같이 파악하고 있다.
“① 우리 헌법질서가 예정하는 인간상은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사회관을
바탕으로 사회공동체 안에서 각자의 생활을 자신의 책임 아래 스스로 결정하고
182) 이 개념에 대한 상세한 설명에 대해서는 A. Gutmann/D. Thompson, Democracy and Disagreement, Cambridge/Mass., 1996, 11면 이하 참조.
183) BVerfGE 4, 7 (15 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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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성하는 <성숙한 민주시민>인바, ② 이는 사회와 고립된 주관적 개인이나 공동
체의 단순한 구성분자가 아니라 공동체에 관련되고 공동체에 구속되어 있기는 하
지만 그로 인하여 자신의 고유가치를 훼손당하지 아니하고 개인과 공동체의 상호
연관성 속에서 균형을 잡고 있는 인격체라 할 것이다.”184)
헌법재판소의 견해가 시민들의 생각들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상식
을 가진 개인이라면 이성적으로는 거부할 수 없을 내용을 가지고 있어서 상당한
합의를 획득할 정도로 합당한 인간관이라고 여겨진다. 이렇게 파악된 인간상은 자
유지상주의나 강한 공동체주의 정의론이 상정하는 인간상보다는 독립된 시민의
지위(①의 요소)와 공동체관련성(②)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샌델의 공동선으로서의
정의론이나 평등지향적 자유주의 정의론의 배후에 놓여 있는 인간상에 더 가까운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185) 양자 중 어느 쪽이 우리 법질서가 예정한 인간
상에 더 부합할지, 이 인간상을 더 잘 설명해줄지, 인간상에 대한 논의가 어떤 법
학적인 함의를 갖는지에 대해서는 좀더 깊은 이론적 분석이 필요하다.186)
- 한국 사회의 양대 정의원리: 공정과 공평
앞부분 II에서 살펴본 한국 사회의 심각한 고질병은 불로소득의 사유화와 이에
기반한 구조적 반칙, 권력 불평등, 소득 불평등, 교육 불평등, 취업 불평등, 복지
불평등이었다. 이 문제점들을 고치고 교정할 수 있는 정의의 원리들을 두 가지 상
위개념으로 표현하자면, 공정과 공평이다.187)
184) 헌재 2003.10.30. 선고 2002헌마518.(강조와 번호는 첨가).
185) ‘성숙한 민주시민’, ‘공동체와 절연된 무연고적 자아도 아니고 공동체의 한 부품도 아닌 개인’, ‘공동체에 관련되고 공동체에 구속되되 공동체와의 상호연관성 속에서 균형을 잡고 있으면서 자신의 고유 가치를 보유하는 개인’이란 어떤 속성을 가지는 것일까? 이에 답하려면 인간상에 대한 심도 깊은 분석이 필요하며, 인간상에 대한 견해 차이가 정의론과 법적 논의에 어떤 실질적 차이점을 낳는지에 대해서도 정치한 고찰이 필요하다. 차후의 연구과제로 남겨둔다.
186) 독일에서의 논의를 보려면 R. Nickel, “Gleichheit in der Differenz? Kommunitarismus und die Legitimation des Grundgesetzes”, in: W. Brugger (Hrsg.), Legitimation des Grundgesetzes aus Sicht von Rechtsphilosophie und Gesellschaftstheorie, Baden-Baden, 1996, 395-418면; W. Brugger, “Kommunitarismus als Verfassungstheorie des Grund- gesetzes”, AöR 123 (1998), 337-374면 참조.
187) 이하의 내용은 공정과 공평의 개념을 천착하여 한국 사회의 현실에 맞게 구체화한 김대호, 진보와 보수를 넘어서, 백산서당, 2007, 99면 이하 참조; 남기업, 공정국가, 57면 이하를 참조하여 정리한 것이다. 공정과 공평에 대한 좀더 이론적인 접근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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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질서와 정의론: 공정과 평등, 그리고 운의 평등 / 金度均 399
(1) 한국 사회 부정의: 불공정과 불공평
한국 사회의 현실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불공정과 불공평이다.188) 앞에서 살
펴본 바대로, 교육 불평등, 직장 불평등(대기업/공기업 정규직, 중소기업 정규직,
비정규직), 소득 불평등(거대한 실업자, 반실업자로 분류되는 불완전고용인력, 경
제활동에 포함되지 않는 사실상의 실업자들, 영세 자영업자의 문제), 자산(토지와
주택 불로소득)의 불평등, 건강 불평등, 복지 불평등, 권력 불평등, 정치적․경제
적․사회적 소권력들(선출되지 않은, 민주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소권력들: 기업,
사법기관, 행정기관, 언론기관 등)의 횡포와 자의적 지배 등이 한국 사회의 속살
을 나타내는 현실이다.189)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깊이 분석하고 진단해온 김대호
소장의 따끔한 지적을 들어보자.
“한국 사회의 가치생산사슬은 토지 불로소득에 의해, 독과점에 의해, 우월한 지위
에 있는 집단의 약탈적 거래행위에 의해, 토건족과 토호 등의 재정약탈에 의해,
조합이기주의에 의해, 기타 기득권 편향의 법과 제도에 의해 매우 왜곡되어 있다.
이것이 한국 사회의 성장과 통합을 가로막는 가장 결정적인 질곡이자 부정의이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외세, 독재적 집권세력, 파당적 정치인과 관료, 재벌 등의
강고한 이익집단들의 사적 이해관계에 따라 조직되고 운영되어 왔기에 공평과 공
정의 원칙과는 거리가 먼 사회다. 오히려 불공정과 불공평을 지렛대로 하여 경제
발전전략을 추구해왔기 때문에 불공정과 불공평의 뿌리는 너무나 깊다. 한국의 노
블레스와 강한 이익집단은 돈, 권력, 지식, 정보, 단결력, 연고 등을 무기로 하여
진입과 경쟁을 제한하는 장벽을 설치함으로써 적게 기여하고도 많이 누리는 몰염
치한 ‘경제적 지대 추구자’가 되어 버렸다.”190)
한국 사회의 정의, 공정과 공평을 훼손하는 존재는 주변화된 소수의 정치사회세
력이 아니라, “법 제․개정권, 인․허가권, 재정 할당권, 인사권, 금권, 지식, 연고,
단결력 등 저마다 무기를 거머쥐고 때로는 자유와 자율과 애국을 부르짖으며 (...)
는 황경식 외, 공정과 정의사회, 조선뉴스프레스, 2011에 실린 글들을 참조하는 것도 좋겠다.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공정성을 다룬 문헌으로는 피터 코닝(박병화 옮김), 공정사회란 무엇인가, 에코리브르, 2011. 공정성 개념에 대해 분석적으로 접근한 대 표적인 문헌은 B. Barry, Political Argument, 94면 참조.
188) 김대호, 진보와 보수를 넘어서, 103면 이하 참조.
189) 이러한 진단은 김대호, 위의 책, 136면 이하 참조.
190) 김대호, 노무현 이후, 새 시대 플랫폼은 무엇인가, 한걸음․더, 200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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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거대 이익집단과 노블레스 자체”라는 김대호 소장의
지적은 한국 사회 부정의의 핵심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191) ‘특권
층의 반칙과 부패’와 ‘합법적․제도적 부정의’로 대표되는 한국 사회의 부정의를
간략한 용어로 표현하자면, 불공정(특권에 기초한 반칙과 출발선의 불평등)과 불
공평(비합리적인 불평등)이라고 할 것이다.
한국 사회 부정의의 대척점인 공정과 공평을 지렛대로 하여 한국 사회에 시급
한 정의원칙들을 제시한 견해들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보면서 한국 사회의 정의론
과 정의원칙들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한다.
(2) 공정성, 기회균등, 운의 평등: <특권에 의한 반칙 금지 + 출발선의 평등>
최근 공정성의 원칙에 입각하여 한국 사회의 문제점들을 진단하고 처방을 제시
한 주목할 만한 저서가 출간되었다. 남기업 박사의 저서 <공정국가>이다. 이 저서
에서 출발점으로 삼은 공정성 원리의 가장 기본적인 내용은 공정한 경기(fair
play)에 대해 우리가 갖는 일상적 판단에서 나온다. 참가의 기회가 열려 있고, 참
가자가 같은 조건에서 출발하거나 경기해야 하며, 경기 중에 반칙을 범한 사람에
게는 그에 걸맞는 벌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192) 남기업 박사는 공정
성에 대한 일상적인 숙고된 판단에서 공정성의 원칙을 끌어내어 <출발선의 평등
- 반칙 없는 경쟁과정>으로 공정성 원칙을 집약한다. 따라서 불공정성이란, 합당
한 사유 없이 다른 참가자들보다 특별하게 유리한 조건하에서 출발하는 특권을
갖는 것이며, 경쟁과정에서 이러한 특권에 기초하여 다른 사람에게 해악을 가해도
벌을 받지 않는 것이다.193)
공정성의 양대 원칙과 관련해서 노직과 같은 자유지상주의자는 공정성을 경쟁
과정에서 반칙이 없는 것만으로 한정하려 한다. 출발선의 평등을 실현하려면 비용
이 들기 마련인데, 이는 반드시 많이 가진 자들에 대한 과세로 이어지고 자유를
침해하게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이다. 출발선의 평등을 실현하는 것과 반칙 없는
경쟁과정을 보장하는 것은 양립불가능하므로 어느 하나를 선택하라면 자유를 덜
침해하는 후자를 공정성의 핵심으로 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194)
191) 김대호, 노무현 이후, 20면.
192) 남기업, 공정국가, 57면.
193) 남기업, 위의 책, 58면 참조.
194) 남기업, 위의 책, 59-60면 참조. 노직은 다음과 같이 묻는다: “Is it unfair that a child be raised in a home with a swimming pool, using it daily even though he is no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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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질서와 정의론: 공정과 평등, 그리고 운의 평등 / 金度均 401
김윤상 교수의 사상을 계승하여 남기업 박사는 출발선의 평등을 보장하는 데
드는 비용을 참가자들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조달할 수 있는 방안으로서
‘불로소득의 환수 원칙’을 제시한다. 불로소득에 해당되는 부분을 사회에 귀속시
켜서 그것으로 재정을 확보하자는 것이다.195)
앞에서 살펴보았던 응분의 원칙을 적용해보면, 개인에게 주어진 출발조건은 그
당사자의 노력과 선택의 산물이 아닌 경우가 많다. 만일 출생과 재능이 행운과 불
운에 의해서 결정되는 ‘자의적인’ 것이라면 출발선의 불평등은 응분의 원칙에 위
반된다. 따라서 “시장과 사회에서의 경쟁에서 자연이 자의적으로 멋대로 분배한
운(출생과 소속)에 의해서 오늘의 결과가 정해지고, 또 이 결과는 내일의 출발조
건에 영향을 주고 다시 그 결과가 출발조건으로 누적되는 과정이 구조화되면 사
회 구성원들의 일생은 그야말로 불공정한 경쟁에 의해 좌우될 것”이라는 남기업
박사의 지적은 매우 타당하다고 여겨진다.196)
이렇게 파악된 공정성의 원리를 제도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 남기업 박사는 공
정성의 하위 세 원칙을 제시한다.197) 합리적인 출발선의 평등을 보장하기 위해서
는 기회균등의 원칙이, 또한 반칙 없는 경쟁과정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특권에 기
초한 불평등한 경쟁조건이 제거된 상황 하에서의 자유경쟁 원칙이 핵심적 두 원
칙을 이루며, 이 양대 핵심원칙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불로소득 환수의
원칙’이라는 것이다.198)
남기업 박사에 따르면, 기회균등의 원칙은 경쟁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조건이 참
가자 자신의 노력뿐만 아니라 사회적이고 자연적인 우연에 의해서도 정해진다는
점을 감안한 원칙이다. 물론 자연적 우연성과 사회적 우연성, 즉 운 자체의 완전
한 평등은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도 않으므로 국가는 어떤 사람도 사회적 우연성
deserving tan another child whose home is without one?”(Anarchy, State, and Utopia, 238면). 노직의 답은, 이러한 상황이 불공정할 수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각자에게 자 신의 응분자격에 맞게 삶의 조건을 제공하는 것은 그 사회적 비용이 너무 높고 개인 의 자유를 침해하는 대가가 너무 크기 때문에 정당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195) 남기업, 공정국가, 59-60면 참조. 김윤상 교수의 사상을 알려면 김윤상, 지공주의-새로 운 토지 패러다임, 개정판, 경북대학교출판부, 2011; 김윤상 외, 토지정의, 대한민국을 살린다, 평사리, 2012 참조.
196) 남기업, 위의 책, 60면 참조.
197) 남기업, 위의 책, 66면 이하 참조.
198) 상세한 내용과 정책에 대해서는 남기업, 위의 책, 173면 이하 참조. 간략하지만 토지 불로소득 환수 원칙에 대한 철학적 정당화와 역사적 검토는 이승환, “토지불로소득과 분배정의”, 55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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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자연적 우연성이 만들어낸 열악한 조건에서 출발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뒷받
침하는 데 역할을 한정해야 할 것이라고 남기업 박사는 주장한다. 그러나 교육과
의료의 기회, 직장을 다시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 직장을 다시 얻을
때까지 비인간적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기회균등 원칙이 추구하는 구
체적 내용이라고 강조한다.199)
남기업 박사에 따르면, 자유경쟁의 원칙이 실현되기 위해서도 힘(불로소득에 기
인한 특권)에 의한 독점을 제거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특히 시장에서의
공정한 자유경쟁을 위해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관계에서 반칙이 작동하
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부동산소유의 불평등에 주목하여 남기업 박사는
부동산 불로소득, 특히 토지 불로소득에 의한 반칙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공정한 경쟁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이 점에 대한 국가의 감시와 규제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200) 힘에 의한 독점이 차단되고, 우월적 지위를
누리는 특권이 제거되며, 패자에게 다시 경쟁에 참가할 기회를 주는 사회적 안전
망이 갖추어진 시장만이 공정한 자유경쟁의 원칙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201)
남기업 박사는 불로소득은 개인의 선택 및 노력과 무관하므로 환수하더라도 유
능한 개인들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해서, “노력소득은 더
많이 보장하고, 불로소득은 환수하는 것”이 재산권을 진정으로 보호하는 길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202) 불로소득의 환수는 노직이 제시한 ‘부정의의 시정’(the rec-
tification of injustice in holdings) 원칙에도 부합하기 때문이다.203) 불로소득을 환
수하는 조세제도야말로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주는 복지사회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간략하게 살펴본 남기업 박사의 견해는 앞에서 언급한 운 평등주의를 한국 사
회에 접목하여 구체화한 정의론이라고 생각된다. 공정성의 원칙과 응분의 원칙을
199) 남기업, 공정국가, 69면 참조. 이를 앞에서 언급하였던 필요의 원칙이 우선적으로 충 족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200) 이에 대해서는 프레드 해리슨(전강수/남기업 옮김), 부동산 권력, 범우, 2009 참조. 이 에 대해서는 곽정수, 재벌들의 밥그릇, 홍익출판사, 2012 참조.
201) 남기업, 위의 책, 76면.
202) 남기업, 위의 책, 85면. 이에 대해서는 선대인, 세금혁명, 더팩트, 2011 참조. 종합부 동산세나 개발이익환수제도는 불로소득 환수 원칙을 적절하게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 한다. 이에 대해서는 전강수/남기업/이태경/김수현, 부동산 신화는 없다: 투기 잡는 세 금 종합부동산세, 후마니타스, 2008 참조.
203) 이승환, “토지 불로소득과 분배정의”, 6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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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질서와 정의론: 공정과 평등, 그리고 운의 평등 / 金度均 403
결합하여 노력소득에 대한 보장을 실질화하되 불로소득에 대한 환수를 강조하는
남기업 박사의 정의론은 롤즈의 정의론이나 운 평등주의에서 주장하는 바를 발전
시켜 한국사회의 현실에 맞는 정의원칙들을 제시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라고 평가
할 수 있을 것이다.
(3) 공평성 원리: 합리적 차등대우와 응분원칙
공정이 절차적 정의의 문제와 깊은 관련성을 갖고 있다면, 공평은 실질적 평등
의 문제와 연관성을 갖는다. 황경식 교수는 공정과 공평을 아래와 같이 구분하고
있는데, 이를 공정과 공평 개념을 이해하는 데 기본 지침으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공정과 공평은 모두가 영어로 ‘fairness’로 번역될 수밖에 없는 것이긴 하나, 우
리말 용법상으로는 공정은 보다 절차주의적 어감을 띠고, 공평은 평등을 함축하는
바, 보다 결과주의적 어감을 갖는 말이라고 하겠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에게는 공
정과세보다는 형평과세나 공평과세가 자연스러우며 공평한 게임이나 게임의 룰보
다는 공정한 게임이나 게임의 룰이 보다 편하게 들린다. 공정公正은 글자 그 자
체로서도 공적 정당성(rightness) 내지 공적 올바름을 의미한다면 공평公平은 공적
형평(equity) 내지 공적 평등(equality)을 가리킨다 할 것이다. (...) 이렇게 본다면
롤즈의 정의론은 평등한 자유원칙이나 기회균등의 원칙에 의해 출발선(start line)
에서의 공정과 최소수혜자 최우선 고려라는 차등원칙에 의해 종착선(finish line)에
서의 공평을 요구하는 입장으로 해석될 수 있다.”204)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로 표현되는 형식적 정의의 기준을 바꿔 표
현해보자면, 정의는 정당한 평등과 정당한 불평등의 합이라는 것이다. ‘같은 것은
같게’라는 평등대우 원칙은 재화나 권리, 기회의 균분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의
존엄성은 동등하고 근원적으로 평등하다는 근본이념도 담는 가치이다. 균분 원칙
은 인간의 근원적 평등과 결합되어 신분제 철폐, 보통선거권 보장을 통한 민주주
의 발전, 인간다운 삶의 보장이라는 국민의 기본권 확충 등 다방면에서 역사발전
에 큰 기여를 하였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일 것이다.
‘다른 것은 다르게’라는 차등대우의 원칙은 어떤 조건에서 얼마나 다르게 대우
해야 하는지의 문제를 다룬다. ‘다름’을 판별하는 기준들 자체도 답하기 어렵고,
204) 황경식, “공정한 경기와 운의 중립화”, 황경식 외, 공정과 정의사회, 35면. 또한 이정 전, 시장은 정의로운가, 3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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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조건에서 차등대우의 기준들을 적용할 수 있는지도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김대호 소장은 바로 이렇게 합리적 차등대우를 다루는 정의의 문제가 공평원리의
적용영역이라고 파악한다.
“공정이 법 앞의 평등, 경쟁 출발선의 평등, 경쟁과정의 평등, 성공할 기회의 평
등을 뜻한다면, 공평은 합리적 불평등(차별/차등대우)을 의미한다. 경쟁의 과정, 기
회, 조건, 출발선의 평등을 의미하는 공정성의 가치가 경쟁의 입구와 과정을 관리
하는 기준이라면, 공평은 경쟁의 출구를 관리하는 기준으로서 사회적 상벌체계의
핵심이 된다. 공정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경쟁에 참여하여 창의와 열정을 발휘하
며, 공평해서 격차나 차별이 합리적이 되면 승자는 나태하지 않고 패자는 재도전
의 의지를 잃지 않는다. 공평의 기준은 사회적 기여/부담과 이익/혜택 사이의 적
절한 균형을 도모한다.”205)
공평은 “정당한 불평등, 합리적 불평등을 다루는 가치”로서 “인간이 필요로 하
는 자원이나 가치를 마땅히 더 주어야 할 것에 더 주고, 더 부담해야 할 곳에는
마땅히 더 부담시키는 원칙”을 핵심으로 한다. 즉, ‘기여․부담․의무와 이익․혜
택․권리 사이의 적절한 균형’이 공평 개념을 이룬다는 것이다.206) 이렇게 공평의
관점에서 보면,
“사회 전체에 이득이 되고 동시에 최소수혜자에게 이득을 주는 한에서 삼성전자
등기이사나 최고 금융전문가가 받는 수십 수백원의 연봉은 합리적이고 정당할 수
있다. 반면 최소수혜자를 포함한 사회 전체에 이득이 되지 않는다면, 교사나 공무
원, 공기업 직원과 자동차 회사 정규직 노조원이 누리는 대단치 않은(?) 처우도
불합리할 수 있고 부당할 수 있다. (...) 처우의 격차는 물론이고 자격증, 특허권,
상속권, 부동산 관련 권리, 취약계층에게 주어지는 복지혜택, 정년/고용보장, 보훈
과 예우 등 수많은 불평등(격차, 특권, 특혜)의 합리성과 정당성을 판단할 때에도
최소수혜지를 포함한 사회 전체의 이득 여부를 중심으로 놓는 사고방식이 공평의
관점이다.”207)
이렇게 이해하면, 공평은 무조건 “격차가 적은 사회를 지향하는 원칙”이라기보
205) 김대호, 노무현 이후, 248면.
206) 김대호, 진보와 보수를 넘어서, 16면 참조.
207) 김대호, 위의 책,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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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질서와 정의론: 공정과 평등, 그리고 운의 평등 / 金度均 405
다는 “사회적 최소한의 지속적인 상향과 더불어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들(부, 자유,
연대의식, 윤리의식 등) 총량의 지속적인 상향을 추구하는 원칙”이다. 즉, 공평 원
칙은 “사회가 요구하는 긍정적 가치들의 창출에 더 많이 기여하는 개인들에게 더
많이 보상하라는 원칙”인 것이다. 격차, 특권, 특혜 자체를 부정하기보다는 ‘합리
적 불평등’인지를 묻고, 지나치게 낮은 사회적 최소한과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패
자부활 시스템과 불합리한 불평등을 낳는 불공정하고 불공평한 제도와 법을 문제
삼는 것이 공평원리의 역할이다.208)
김대호 소장이 인정하듯이 “공평의 원칙이 해당 사회의 발전단계나 정치사회세
력의 역관계, 해당 사회를 지배하는 철학과 문화에 따라 변하고 정해지는, 시대마
다 사회마다 변하는 원칙”이기는 하지만,209) 앞에서 살펴본 실질적 정의기준들을
해당영역에 적절하게 적용한다면 한국 사회에서 합리적 상식과 견해를 가진 사람
들이라면 합의할 공통된 정의원칙들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정의 원칙들을
각각의 정의영역별로 면밀하게 탐구하여 체계화하고 정당화하는 것이 앞으로의
이론적 과제라고 하겠다.
VI. 맺음말
지금까지 정의론과 관련하여 설명한 바를 정리하여 다음과 같은 실질적 정의원
리들을 한번 제시해보도록 하자. 응분이라는 정의의 기본원칙과 공정성과 공평성
원리에서 출발해서 다음과 같은 정의원리들을 구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① 동등한 인간존엄성과 반이등국민제 원리(Anticaste principle): 평등한 시민 원리
② 인간다운 삶의 보장 원리(기본적 필요 충족의 원칙 : social minimum): 사회경
제적 기본재화들은 모든 시민들이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게끔 배분되어야 한다.
개인으로서 시민으로서 기타의 권리들과 자유들을 행사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기본적 필요들이 우선 충족되어야 한다.
③ 평등대우 우선성 원리
④ 권리 평등배분의 원리 : 기본적 자유 및 권리들은 최대한 평등하게 배분되어
208) 김대호, 진보와 보수를 넘어서, 17-18면 참조.
209) 김대호, 위의 책,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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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하며, 특히 중요한 정치적 권리들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공정한 기
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⑤ 자유교환의 원리 : 공정한 조건 아래에서 자유로운 선택과 거래에 따른 배분
은 정당하다.
⑥ 공정한 기회균등의 원리 : 재능과 의지력이 유사한 사람들에게는 직장, 교육,
승진, 포상과 같은 재화를 획득할 수 있는 기회가 균등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⑥-1 : 비슷한 재능과 근면성을 가지고 있는 개인들에게는 성별이나 인종, 민
족출신, 사회계층과 무관하게 직장, 전문기술, 교육, 승진과 같은 중요
한 재화들에 대하여 공정한 기회평등이 부여되어야 한다.
⑥-2 : 잠정적 우대조치-과거에 매우 부당하게 차별대우를 받아서 현재의 사회
적 성취가능성에 필요한 수단의 활용에 불리한 지위에 있는 사회적 집
단에 속하는 개인들에 대한 우선적 대우는 잠정적인 조치로서 정당하다.
⑦ 정당한 차등대우 원리 : 각 영역에 적합한 정의 기준의 적용(영역에 맞는 배분
기준의 적용)
⑧ 노력 소득 보장 원리와 불로소득 환수 원리(응분 원칙)
이 정의원칙들은 중요한 사회적 재화들을 배분할 때 원용될 수 있는 기준들이
며, 한국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질 정의원칙의 내용이라고 필자는 생각한
다. 물론 이는 설득력 있는 논거가 뒷받침되지 않은 필자만의 가설일 뿐이다. 이
가설을 설득력 있게 입증하기 위해서는 한편으로는 정의론에 대한 이론적 연구가,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 사회의 정치적․사회경제적․법적 정의담론에 대한 포괄적
이고 면밀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투고일 2012. 2. 15. 심사완료일 2012. 3. 7. 게재확정일 2012.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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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 서울대학교 法學 제53권 제1호 (2012. 3.)
For a Public Conception of Justice for the Korean Legal System: Fairness and Equality of Fortune
- A Preliminary Study -
Kim, DoKyun*
210)
The chief social problems in Korea can be characterized as unfairness and
inequity (i.e. unjustified equal and unequal treatment), which are insufficiently
rectified by the Korean legal system. As an effort to find a way out, this paper
attempts to articulate and to make explicit those notions and principles of justice
thought to be already latent in the Korean legal system, and to work out a public
conception of justice which can explain and justify them systematically. By way of
doing so, this paper first analyzes considered justice-judgments found in Korean
legal discourses, especially in courts’ decisions, and proceeds to propose a
desert-based conception and principles of social justice by examining three existing
theories of justice in the light of that proposal.
A libertarian theory of justice emphasizes individual performances as the core
distributive criterion but does not provide grounds for justifying the criterion per
se. In contrast, an egalitarian theory of justice successfully satisfies the fairness
requirement and the principle of desert by neutralizing and eliminating unfair
effects of natural and social luck, which are not the product of individual efforts
and choices. Lastly, a theory of justice based on the idea of common good takes
the principle of desert seriously into account but fails to tackle the matter of
socioeconomic justice in a satisfactorily manner.
This paper draws on an empirical study and related normative considerations,
thus leading to a proposal that if a theory of justice is to serve as a reasonable
public conception of justice aspiring to be an ideal standard by which law is to
be judged, it must achieve two things: first, to incorporate the principles of
- Professor, College of Law/School of Law, Seoul National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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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질서와 정의론: 공정과 평등, 그리고 운의 평등 / 金度均 413
fairness and desert as essential part of justice-judgements; second, to deal properly
with the problem of inequality in life chances which results from the arbitrary
effects of natural and social luck.
Keywords: justice, fairness, the principle of desert, basic needs, equality of fortune,
a justice-orientated perspective